여름이야기2022-09-19 07:37:57
사랑의 다양한 형태
영화 헤어질결심의 난해함
-헤어질 결심-
"최연소 경감 승진자이지만 불면증을 앓고 있는 경찰. 그의 앞에 나타난 젊은 중국인 과부. 남자는 남편 살인 사건의 피의자 신분인 그녀를 염탐하면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때론 연민을 느끼고, 때론 의심과 불안감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기도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사랑하는 듯 보인다. '사랑하는 듯'. ‘헤어질 결심’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지, 불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우리의 머릿속엔 박찬욱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선홍빛의 태양, 습습한 회색빛의 안개, 순백의 설산들이 가득 찬다. 서사보다 이미지가 더 각인되는 영화다. 그리고 가끔씩 우리 삶엔 불륜이라는 스토리보다 사랑이라는 본능 혹은 본질 같은 것들이 더 선명해질 때가 있다. 붕괴와 희생의 순간을 배우들의 연기로 원자 단위까지 쪼개버린 듯한 이 영화 '헤어질 결심'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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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
대학원 재학 시절 논문을 쓸 때 찾아듣는 오르골 소리 리스트 중에는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 있었다. 이 음악이 나의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올려주는 bgm이었는데 생각해보니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본 기억이 없어서 허겁지겁 넷플릭스에서 찾아봤었다.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 시놉시스
13살 초보마녀 키키의 아주 특별한 마법 같은 모험! 사랑스러운 초보마녀 ‘키키’는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빗자루를 타고 마녀 수련을 떠난다.항구 마을에 불시착한 키키는 첫날부터 우여곡절을 겪지만, ‘배달’에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본격적인 마법 수련을 시작한다.
*본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옛것의 도움, 그리고 자신의 능력
키키가 마녀수련을 떠나긴 직전 키키의 엄마는 빗자루를 자신의 것으로 들고 가라고 말한다. 이에 키키는 자신이 만든 빗자루가 좋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것이 훨씬 크고 길이 잘 들어졌으니 타기 편할 것이라며 다시금 추천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꼭 옛것이 나쁘고 새것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것인만큼 축적된 지혜가 있을테니 현재의 상황에 맞게 현재의 사람이 잘 활용하면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좋았던 것은 키키에게 엄마가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것이 좋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키키에게 선택권을 주면서 키키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끔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사람의 강요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있게끔 믿는다는 것이 좋았다.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되었을 때
마녀 가문에서 마녀로 태어난 키키는 태어날 때부터 빗자루를 통해 날 수 있었다. 남들에게는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이 흠모의 대상일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키키는 이런 말을 한다. “직업이라서 매일 재밌는 건 아니야.” 이 말을 듣는 순간 다른 말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라는 말. 그런데 과연 그게 행복할까?
키키의 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고 그것을 통해 경제 활동을 해야할 때는 당연히 따라오는 책임과 의무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의무감이 다가올 때마다 과연 내가 이걸 진짜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게 커져가다보면 더 이상 하기 싫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아직까지는 정말 좋아하는 것을 그저 취미로만 남겨두고 싶은 생각이 아직 크다.
부모의 믿음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부모의 태도였다. 13살이라면 한국나이로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어린 나이다. 이 아이가 독립을 하겠다고 수련을 떠나는 키키를 향해 전혀 불안해하지 않고 키키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부모의 태도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하다.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글에서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할 역할을 자녀가 살아갈 길을 앞에서 진두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힘들고 두려워서 뒤를 돌았을 때 그 자리에서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응원과 지지를 해주는 역할이라고 했다.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그 모습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를 밖에 내보내는 것이기에 불안하지만 자녀에게는 그런 불안함을 티내지 않고 잘 할 수 있다는 지지를 보내는 것. 그리고 작은 일 하나라도 키키 스스로가 해낼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주고 닦달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들이 이 작품을 반드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는 성장을 통해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한 교훈을 주는 따뜻한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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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데드풀과 울버린>이 개봉 후 첫 주말을 맞아 70만 명을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1위에 오른 <데드풀과 울버린>의 누적 관객 수는 100만을 넘기고, <슈퍼배드 4>가 2위에 오르며 누적관객 수 58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탈주>는 꾸준한 인기를 보이며 누적관객 수 228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탈주>는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은 물론 2024 전체 박스오피스 5위에 안착했습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북미에서도 1위를 기록했고 첫 주말 수익 2억 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R등급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전체 영화 흥행 기록으로 8위에 오르며 침체된 ‘마블’영화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트위스터스>는 <데드풀과 울버린>에 밀려 2위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흥행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슈퍼배드 4>는 3위를 기록했고 누적수익 2억 9천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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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러” 라는 음악가를 건네주는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남들이 다 하는 대로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음악에 별다른 재능이 없었던 나는 중도 포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시작했으니 일단 뭐라도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성실함 하나로 바이엘을 지나, 체르니 100번, 체르니 30번까지 하나씩 마스터 한 후, 마침내 피아노를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동안 피아노를 쳤지만, 좋아하는 곡이나 음악가는 따로 없었다. 음악의 즐거움을 알기보다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해야 완수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가까웠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 나에게 음악이, 피아노 연주가 아름답다고 알려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캠프에서 만난 친구였다. 각 학교별 몇몇이 선정되어 온 지역 캠프여서 처음 본 친구들과 조를 이루고 한방에 자게 되었다. 캠프 행사 내내 거의 말이 없어서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던 그 친구가 늦은 밤 소등한 뒤 내 침대를 툭툭 치고는 이어폰 한쪽을 건네주었다. 창밖으로는 달이 밝았고, 이어폰에서는 쇼팽의 녹턴이 흐르고 있었다.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클래식이란 장르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요즘의 조성진이나 임윤찬처럼 나의 학창 시절엔, 장영주 장한나가 있었다. 장영주 바이올리니스트의 신보가 나오면 레코드 가게에 달려가 테이프를 사던 20년 전 그때부터 5월이 되면 장영주의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듣고, 겨울이 오면 장한나가 연주한 첼로 협주곡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클래식을 좀 아느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 안다거나, 좋아한다라고 말하기엔 여전히 어려운 장르가 클래식인 것 같다. 친구 덕에, 장영주 바이올리니스트 덕에, 장한나 첼리스트 덕에 좋아하는 곡을 하나씩 발견해 가는 중이랄까?
오랫동안 천천히 발견하고 있는 클래식이란 장르에서 나에게 ‘말러’의 존재를 알려준 것은 영화였다.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영화에 등장했을 곡이지만, 아니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고 궁금증을 자아낸 영화는 <타르>였다. 말러의 교향곡 5번을 그토록 연주하고 싶었던 리디아 타르. 왜 감독은 리디아 타르에게 말러를 매칭 했을까? 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하자 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영화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었다.
이 영화는 대표적인 말러리안*으로 알려진 레너드 번스타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과 공동 각본뿐만 아니라 주연을 맡아서 열연했다. 제작에 마틴 스코세이지,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참여하여,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말러리안(Mahlerian) :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추종하는 클래식 애호가를 이르는 말
레너드 번스타인 (1918~1990)은 우크라이나계 유태인 출신으로 뉴욕 필의 부지휘자가 되었다. 그러다 브루노 발터의 대타 지휘자로 운 좋게 데뷔를 하게 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이후 몇 년간의 삶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이후 번스타인은 1957년 미트로플로스와 함께 뉴욕필의 공동 지휘자로 취임하게 되었고. 1969년까지 상임지휘자로 있으면서 뉴욕 필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번스타인의 뉴욕 필 재임 기간 동안의 가장 큰 업적은 구스타브 말러의 교향곡 전곡 녹음이었다.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이 철학적이고 연주하기 까다로운 특성으로 난해하다는 평 때문에 인정받지 못했던 교항곡 전집을 녹음하면서 말러를 재평가받게 만든 인물이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 말러 붐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영향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니까. 번스타인은 뉴욕 필 뿐만 아니라 빈 필, 암스테르담 콘서트허바우, 이스라엘 필의 지휘를 많이 했는데, 이때도 말러 교향곡은 주요 레퍼토리여서 번스타인은 자연스럽게 말러 지휘자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번스타인은 말러의 작품에 대하여 '마치 내가 쓴 것 같이 느껴진다'라고 할 정도로 애정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나는 말러에게 매우 동정적이다: 나는 그의 문제를 이해한다. 마치 한 몸에 갇혀 있는 두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은 지휘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작곡가이다... 그것은 이중인격자가 되는 것과 같다.'
영화는 담담하게 레너드 번스타인의 생애를 짚어 간다. 대단한 업적을 가진 지휘자로만 알고 있었던 그의 사생활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보여준다. 조금 더 영화적인 영화를 기대한 사람에게도 아쉬움을 남고, 번스타인의 음악을 기대한 사람에게도 조금은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대미를 장식하는 대성당에서의 말러 2번 연주 장면만은 압도적이었다. 영화가 그 장면을 위해 달려 온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씬 하나로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영화가 바로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었다.
나에게 이어폰 한쪽을 건네 쇼팽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친구처럼,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번스타인의 생애를 통해 ‘말러’라는 음악가는 내 삶에 건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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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된 아이, 사라진 기록
해당 콘텐츠는 씨네랩 초청으로 참석한 <케이 넘버> 시사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해외 입양인들의 귀환을 가장 가까이에서 담은 독립 다큐멘터리, <케이 넘버>의 개봉이 다가온다. 오는 14일에 개봉 예정인 해당 다큐멘터리의 시사회에 씨네랩의 초청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시사회 참석이 처음이라 설레던 마음도 잠시, 다큐멘터리 속 해외 입양의 실태와 그 아픔에 눈물을 흘리며 점등을 맞이했다.
다큐멘터리 <케이 넘버> 포스터
<케이 넘버>는 조세영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로, 장장 6~7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상영관을 찾아온 작품이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수상하고,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70년의 해외 입양 역사에서 나아진 것이 없음을 냉철히 지적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왼쪽부터 차례로 노혜련 숭실대 명예교수(전 홀트 직원), 조세영 감독, 김유경 배냇 대표의 모습
영화의 제목이 되는 K-NUMBER란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낼 때 입양기관이 아이를 분류하기 위해 붙인 표식이다. 한국전쟁 이후 70,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동의 수는 자그마치 20만명에 달한다. 가정과 직장이 있는 성인이 되어 돌아온 입양인들의 귀환과, 이들의 뿌리찾기를 돕는 한국인여성모임 ‘배냇'의 추적에서 드러나는 해외 아동 입양의 진실을 영화는 조명한다. 감독의 집요한 질문과 따뜻한 시선을 따라가며 해외 입양인들이 ‘그들’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타국으로 떠나 보낸 우리 아이들의 귀환이 될 수 있음을 느껴보자.
1970년대 초, 길에서 우연히 발견된 미오카.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미오카는 가족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찾는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건 조작된 서류와 감춰진 기록.
K-Number의 진실은 무엇이며, 사라진 서류는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시간과 국경을 넘어, 숨겨진 진실이 풀리기 시작한다.
<케이 넘버> 시놉시스, 출처 씨네 21
영화는 2004년, 관에서 본인의 입양서류 기록을 받지 못해 화를 내는 한 해외 입양인 여성의 외침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미오카 밀러, 한국 이름은 김미옥으로 ‘추정된다’. 한국 이름이 정확한지 확인 할 수 없는 것 또한 입양서류의 불분명성과 위조 가능성 때문이다. 이후 20년간 미오카는 5번의 한국 방문을 이어가며 본인의 뿌리와 가족의 기억을 찾기 위해 방방곡곡을 해메왔고, 그 여정에 사회봉사단체 ‘배냇’이 동참했다.
2004년에서 2024년. 한 사람이 태어나 성인으로 자라나기까지의 기간동안, 미오카와 배냇은 불분명한 서류와 감춰진 해외 아동 입양의 진실과 사투하며 ‘뿌리찾기’를 이어가고 있다. 입양 이후 한국에 처음 방문하는 입양인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앞에서 자국민의 도움없이 대여섯살때의 단편적인 기억만으로 가족을 찾는 것이 말이 되냐는 배냇 김유경 대표의 물음에는, 입양민 ‘뿌리찾기’의 실태와 그 어려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공개되지 않는 기록에 대한 분노. 미국을 떠나 한국까지 와서도 미오카씨를 반기는 것은 사실확인조차 되지 않고, 본인의 정보조차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반의 반쪽짜리 서류다. ‘이 서류를 기반으로 가족을 찾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겠냐‘는 무력함의 끝에서 나온 질문에도 미오카 씨는 ‘지금 가지고 있는 패는 어쨌든 전부 뒤집어 보아야 한다‘고 답한다. 새로운 서류가 나오고, 정보가 나오고, 거짓이거나 조작되었음이, 혹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진실의 테두리임이 드러날 때 마다 그렇게 밝고 힘이 넘치던 미오카 씨의 얼굴이 조금씩 피로와 절망, 무력과 분노로 물들어간다.
한국 전쟁 이후, 국가 재정난을 겪던 대한민국은 국책 사업으로 ‘해외 입양 제도’를 정비하기 시작한다. 당시 한국은 전 세계 유일하게 '대리 입양' 제도가 가능했던 나라로, 입양 부모는 한국에 방문하지 않고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었기에 그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대리 입양제도에 대해 당시 미국 입양 전문가들의 반대가 극심했으나, 대표적인 해외 아동 입양 기관이었던 홀트의 로비로 무마되었다는 노혜련 교수(홀트 전 직원, 숭실대 명예교수)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 한다. 마치 품종묘를 샵에서 고르듯이, 서구 사회의 부모들은 아이의 성별, 인종적 특징을 바탕으로 원하는 아기를 고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동을 일종의 상품처럼 여기며 타국의 양부모에게 배달하는 이러한 '우편 입양' 서비스는 그 대가로 입양기관에게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국가와 사기업이 주도하는 일종의 인신매매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국가와 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입양 대상 아동을 확보하고 아동의 출신 서류 위조까지 감행한 범죄이자 불법행위”라는 김영우 2024서울독립영화제 예심위원의 분석은 정확하다. 해외 아동입양은 단순히 고아 아동에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취지의 해외 입양이 아니었다. 입양 이후의 아동의 안전과 생활과 관련된 어떠한 보고와 의무도 없이, 아동을 판매하면 그것으로 끝인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아동의 기본권은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아동의 입양 과정이 강제적이냐 자발적이냐와는 관계없이, 아동의 재화화와 이로 인한 이익의 수취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그것도 국가와 사기업의 주도하에 20만명의 아동이 해외로 이주되었고, 이들의 성장과 안전이 한국 사회에서 비가시화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의 아픈 단편으로서 재조명될 가치가 충분하다.
20만명의 아동을 해외로 수출한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은, 국외 시선을 고려해 해외 아동 입양이 중단되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동 수출 과정에서 조작된 서류로 뿌리를 찾지 못하고 배신감과 무력감을 경험하는 해외 입양민들의 존재로 인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명은 저출생 국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끊임없는 재생산을 거듭한다. 가장 해외 아동 입양이 많았던 1985년, 한국은 이미 출생률 1.7%를 기록하며 저출생 국가로 진입하고 있었다. 아동을 재화화 하고 떠나보낸 책임을 지고, 해외 입양인의 귀환과 ‘뿌리찾기’를 돕는 일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어 왔던 해외 아동 입양의 진실과 역사 외에도, 영화를 구성하는 또 다른 축으로서 ‘여성’이 존재한다. 해외 아동 입양의 과정은 여성에게 행해지는 폭력의 또 다른 면모를 담고 있다. 북유럽으로 입양된 해외 입양민 여성들의 인터뷰에서, 한 인터뷰이는 ‘20만명의 아이들이 국가 주도의 조직적인 인신매매 정책으로 해외로 보내졌다는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보이지 않는 신원 미상의 미혼모와 여성들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망상적 서사를 너무나도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며, ‘더 나아가 그러한 믿음이 그녀들의 딸, 아들인 해외 입양인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거대 권력의 국가보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책임과 비난의 화살이 돌려지는 익숙한 그림이다. “적어도 제가 만나본 한국 여자들은 아이를 쉽게 버릴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입양민 여성의 평가는, ‘설령 아이를 버리는 엄마가 있었더라도, 그곳에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있으며, 남아선호사상 아래에서 셋째 딸의 낙태와 입양을 권유하는 가정과 사회는 어디에 있으며, 아이를 가정으로 돌려보내주고 키울 여건을 마련해주는 대신 길고양이를 잡아 가두듯 모아와 두 당 얼마를 받고 팔아넘긴 기업과 국가는 어디에 있으며, 이를 묵인하고 심지어는 추진한 대통령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라는 무거운 질문을 불러온다.
주제가 아닌 구성의 차원에서도, 다큐멘터리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다. 여성 감독, 배냇의 여성 회원들, 뿌리를 찾는 해외 입양민 여성들과 이들의 어머니-언니, 그리고 탐문을 돕는 시장의 할머니들. 출산과 아동의 양육이라는 테마 때문만이 아니다. 연대와 공감, 실행과 보호라는 테마에서 비로소 여성은 끈끈하게 뭉친다.
‘좋은 일’과 ‘더 좋은 환경’으로 포장된 해외 아동 입양 사업의 실태를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관객은 마주하게 된다. ‘평범한 한국인들은 입양인의 귀환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는 입양인의 질문 앞에, 아마 이들의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던 대다수의 관객은 할 말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감독의 끈질기고 따듯한 시선을 따라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된 시점에서, <케이 넘버>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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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의 정서로 계급 격차를 깨는 승리호 이야기
우리가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자연환경일 것이다. 숨 쉴 수 있는 공기와 산, 강, 바다와 같은 자연환경은 우리가 굳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그것이 자본주의 논리와 만나면 그것을 모두가 누리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과거에 마시는 물이 판매된 것처럼, 공기를 판다거나 산, 강, 바다에 가는 것도 비용을 내고 가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이미 진행 중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자연환경과 가까운 집이나 땅은 그 가격이 그만큼 비싸져 아무나 가질 수 없다.
그렇게 환경적인 것조차 구입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면, 그것은 더욱 계급 격차가 벌어지는 사회일 것이다. 부가 많은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좋은 환경을 얻지 못한다. 결국 그것은 개개인의 건강문제에도 영향을 주게 되어 계급별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코로나가 유행하고 있는 현시점에도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국가들은 많은 백신을 사들여 공급하지만 그런 여유가 없는 국가들은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연적인 환경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그저 방치될 뿐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자신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환경으로 인한 빈부격차를 바탕에 깔고 보여주는 국산 SF <승리호>
영화 <승리호>는 그런 환경으로부터 유발된 빈부격차를 바탕에 깔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영화 속 지구는 환경적으로 먼지에 쌓인 곳이 되었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두꺼운 호흡기기를 필수적으로 착용하고 지구에 살아가고 여건이 되는 일부는 좋은 환경을 갖춘 우주의 이주 기지에서 살고 있다. 그 이주 기지는 UTS라는 기업이 개발한 것으로 이 기업은 궁극적으로 화성에 좋은 자연환경이 있는 이주 기지를 만드는 것을 추진 중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이주 기지는 이주민과 비 이주민의 계급을 명확히 가르게 되고 그 중간 어딘가에 어디에도 끼지 못한 층들을 등장시킨다. 우주선에서 생활하는 우주 청소부라는 중간 계급이 영화 속에 나온다. 말이 중간 계급이지 이들은 지구인도 아니고 이주민도 아닌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태호(송중기), 장선장(김태리), 타이거 박(진선규), 업동이(유해진)가 같이 생활하고 일하는 승리호는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우주선이다. 그들은 승리호를 이용해 지구 주변의 우주 쓰레기를 팔아 생활을 이어나간다. 로봇인 업동이를 제외한 세 사람은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서 모두 과거에 어느 정도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던 인물들이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자신의 위치에서 청소부로 추락하면서 지구와 이주 도시 사이에 머무르며 자신들의 다음 계획으로 나아갈 기회를 찾는다. 그들은 지구로 돌아가기보다 이주 도시 근처에 남아 그곳에서 쓰레기를 치우며 자금을 모으며 생활한다. 어찌 보면 그들 자신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하겠지만 그들은 지구에서도, 이주 도시에서도 살 공간이 없어진 인물 들인 셈이다.
영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태호다. 태호는 전직 UTS 기동대의 장교였고 아마도 등장인물 중 가장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었던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 순간의 선택으로 UTS 기동대 자리를 잃고 자신이 키우던 딸아이와 노숙인처럼 생활한다. 갑자기 사회에서의 위치가 추락하면 꽤 긴 시간 동안 마음을 다잡기 어렵다. 실제로 태호는 그 방황기를 꽤 오랜 시간 동안 보냈고, 그 사이에 자신의 딸을 잃는다. 그가 우주선에서 우주 쓰레기를 치우며 돈을 모으는 것은 그가 우주에서 잃은 딸의 시체를 찾기 위함이다. 어쩌면 잃은 딸의 시신을 찾으려 노력하는 그 행위 자체가 태호의 삶에서 남은 유일한 목적이자 살게 하는 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태호의 머릿속에서 계급이나 이주민, UTS의 사업은 관심사가 아니다. 사실 태호뿐 아니라 장선장이나 타이거 박도 개인적인 목적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는 편이다. 즉,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들이지만, 꽃님이(박예린)를 만나게 되면서 이슈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간다.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의도하지 않게 이들을 사회문제의 중심으로 끌어들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런 문제들에 관심이 없고, 아마도 계속 그들의 그런 의식은 유지될 것이다. 그들은 의도하지 않게 영웅의 길을 들어오게 되어 평등한 기회가 있는 사회에 기여하게 된 것인데, 특별한 능력을 가진 꽃님이를 보호함으로써 자연을 살리는 길을 인류에게 선사하게 된다. 즉, 계급 구분을 무시한 주인공들이 환경오염 때문에 임의로 나뉘어버린 이주와 비 이주민의 구분을 없앰으로써 어쨌든 그들은 다시 인류가 평등을 추구하는 세상으로 갈 기회를 준 것이다.
그들에게 영향을 준 꽃님이는 사실 권력에게 자신의 능력을 착취당하던 존재다. 아주 순수한 아이인 그는 그 자신이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빠를 위해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한 선한 의도라는 것 때문에 UTS를 도왔을 가능성이 높다. UTS라는 기업이 한 아이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사업적으로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선함은 승리호 선원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에게 아이의 아픔과 외로움을 공감하게 만든다. 결국 그런 공감의 힘이 인류의 희망이 되고, 온 지구에 그 선함을 전달함으로서 다시 생명의 씨앗을 트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전혀 계급적이지 않은 존재들이 착취당하던 피해자에게 동감하고, 그로 인한 반발력이 비평등의 구조를 깬다는데 있다. 어쩌면 인류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온갖 계급과 계층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주민과 비 이주민의 계급을 깨뜨리는 승리호
영화에 등장하는 UTS의 운영자 설리반(리차드 아미티지)은 전형적인 기업 중심적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다. 임의로 만든 자연환경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궁극적으로는 화성 이주 프로젝트로 전 인류의 생명줄을 쥐고 자신의 의지대로 조정하려고 한다. 어찌 보면 그는 지구의 재앙을 이용해 일부러 사회 구조적 계급을 만들어낸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만들어낸 그 계급 구조에 속하지 않는 승리호의 인물들과 그가 마지막에 대립하게 되는 건 이야기의 흐름상 필연적일 것이다. 결국 <승리호>는 세상을 구분하려는 측과 그 구분을 부수려는 측의 대립이 끝까지 이어진다.
영화 <승리호>는 이렇게 잘 만들어진 구조 안에 주인공들이 우연히 흘러가게 되는 일들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높은 우주에서 이주 도시를 만들었다는 것에서 비슷한 콘셉트의 영화 <엘리시움>이나 <알리타: 배틀엔젤>이 떠오르기도 한다. 결국 양분화된 계급적 구조 사이에 우주 청소부라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들을 넣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익숙하지만 조금은 다른 세계를 만들어냈다. 완전히 새롭게 창조한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 영화들과 겹치는 설정들로 기시감은 들지만 오락영화로서 우주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은 어색함이 없다. 또한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매력은 갖추고 있다.
사실 태호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장선장이나 타이거 박의 과거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아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왜 결국 따뜻한 정서를 택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것인지를 영화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다른 인물들 이야기까지 모두 하게 되면 영화가 산만해질 수 있기 때문에 태호에게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해 나가는 것 같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야기의 작은 구멍들을 꽃님이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간단히 대처하고 있다.
또한 영화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설리반은 너무 전형적인 형태의 악당이어서 클라이맥스의 전투에서도 크게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 않는다. 그의 의도는 명확하지만 인간미가 없어 그저 로봇처럼 보인다. 강력한 악당으로서 영화 속에서 기능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그에 따라오는 특별한 매력은 없어 아쉽다.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악당에 대한 기억은 별로 남지 않고 다른 캐릭터들만 기억에 남는다.
조성희 감독은 전작 <늑대소녀> 나 <탐정 홍길동>에서 이미 독특한 설정의 세계관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영화 안에는 늘 순수한 아이들이 등장해 그 특유의 세계 안에서 희망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승리호>에는 우주로 세계관을 확대시켰고, 순수한 아이 역시 인류의 희망으로 등장한다. 그의 영화는 늘 다음 편이 궁금해지는 결말을 맺는데, 이번 <승리호>도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 특히나 영화 속에 담긴 계급격차나 그것에 속하지 않는 승리호 멤버들의 구도는 꽤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고 그 격차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2시간 반의 짧은 러닝타임에는 다 담지 못한 장선장의 이야기나, 타이거 박의 이야기 등을 볼 수 있게 영화나 드라마가 이어진다면 더 많은 관심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영화의 여러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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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 리뷰>* 본 콘텐츠는 Rabbitgumi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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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욕망이 파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은 사람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어떤 물건이나 지위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욕망’의 사전적 의미는 부족함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실현하고 싶어 하는 ‘꿈’과는 엄연히 다르다. 삶에서 부족한 무언가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이 생기고 자라나면서 장난감을 비롯한 다양한 것을 욕망한다. 그것은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다. 대부분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건 인간의 일생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며 때론 괴롭게 하고 또 황홀하게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욕망을 채우는데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것을 탐하다가 그것이 채워진 순간, 그 황홀한 기분에 도취되기 쉽다. 그런 성취감은 점점 그 욕망에 집착하게 만들고 더욱 크고 완벽한 것을 취하게 만든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금기의 선을 쉽게 넘게 된다. 한 번 선을 넘으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저 계속 앞으로만, 욕망에만 이끌려 가게 된다. 사실 주변에서도 그렇게 몰락하는 여러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욕망은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지만, 자칫 잘못하면 파멸로 이끄는 독약처럼 위험하기도 하다.
한 남자의 욕망의 변화를 따라가는 영화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는 주인공 스탠튼(브래들리 쿠퍼)이 자신의 욕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스탠튼은 영화 초반 아버지로 보이는 시체를 집에 묻고 불을 낸다. 그만의 장례식처럼 보이는 그 장면에는 어떤 설명도 없다. 영화는 그저 그가 하는 행동을 보여주고 그가 향하는 길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가 우연히 만나게 된 유랑극단을 만나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다양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특히나 그곳에서 만난 독심술사 지나(토니 콜렛)와 그의 남편 피트(데이비드 스트라탄)는 스탠튼에게 그들의 독심술을 조금씩 알려주게 된다.
독심술은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내는 것이다. 어쩌면 스탠튼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자 하는 욕망을 이미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를 만나기 전까지 스탠튼의 모습은 큰 욕망 없는 떠돌이처럼 보였지만 그가 독심술을 접하고 나서 그는 자신만의 계획을 만들어간다. 그 이후부터 주도적으로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가려 애쓴다. 극단에서 만난 몰리(루니 마라)에게 대시를 하고, 그에게 도시로 가서 자신들만의 공연을 하자고 제안하는 등, 스탠튼은 조금씩 대담하게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간다.
영화에는 스탠튼의 과거에 대해서는 자세히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를 미스터리로 두면서 스탠튼이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극단을 떠난 이후 몇 년이 지난 모습을 보여주는 후반부는 그의 욕망이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이 이어진다. 실제로 그는 독심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심령술까지 영역을 넓히게 된다. 아주 작은 심리 술로 시작한 그의 욕망은 독심술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그것을 발전시킨 심령술을 이용해 사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뻗친다.
심리학자 릴리스를 만나면서 더욱 욕망에 집착하는 스탠튼
후반부에는 심리학자인 릴리스(케이트 블란쳇)를 등장시킨다. 스탠튼 역시 다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재능이 있지만 릴리스는 스탠튼의 심리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욕망까지 투영해보게 된다. 사실 이 두 사람이 만난 그 순간은 스탠튼이 가진 욕망의 선이었다. 스탠튼이 그 선을 넘는지 넘지 않는지는 그가 릴리스를 계속 만나는지 아닌지로 알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것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스탠튼이 술을 거부하다 처음 마신 순간이다. 그 이후 스탠튼은 욕망의 선을 완전히 넘어버린다.
릴리스의 이미지는 무척 고급스럽고 화려하다. 스탠튼이 이전에 만난 어떤 인물보다 화려한 느낌을 가진 인물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두 인물이 만날 때, 스탠튼의 욕망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스탠튼과 같이 살고 있는 몰리는 사실 그의 욕망을 어느 정도 조절하게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릴리스는 그가 가진 화려함 때문인지, 스탠튼의 욕망을 강하게 자극시켜 파국으로 이끈다.
영화 초반, 유랑극단에는 이상한 기인이 등장한다. 그 기인은 극단 주인(윌렘 데포)이 어디선가 데려온 술주정뱅이였다. 주인이 술과 마약을 미끼로 데려온 기인은 술을 얻기 위해 주인의 말에 따라 이상한 공연을 하게 된다. 기인은 공연에서 살아있는 닭을 물어뜯고 이상한 공연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기인이 갇혀있는 곳에서 그를 만난 스탠튼은 기인이 하는 혼잣말을 듣는다. “이건 내가 아니야. 난 이렇지 않았어”. 스탠튼은 그 말을 그냥 듣고 흘리지만, 그 말은 결국 스탠튼에게 다시 돌아간다. 영화 속의 그 기인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미쌍관처럼 영화의 앞과 뒤에 비슷한 장면이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나고 나면 그 처음과 끝의 장면들을 곰곰이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아름답고 화려한 파멸의 이야기를 담은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영화에는 소소하고 직접적이지만 아기자기한 유랑극단의 모습이 아름답게 담겨있고, 후반부 스탠튼과 몰리가 고급스러운 무대에서 벌이는 공연도 화려하게 담겨있다. 마치 스탠튼의 욕망이 계속 크고 화려하게 변하는 것처럼 작은 불꽃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그 규모와 색감을 넓혀간다. 그러다 파멸의 순간 다시 회색빛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 이렇게 영화의 색감과 분위기, 음악은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윌리엄 린지 그레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1947년에 한 번 영화화된 적이 있지만 이번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연출한 2022년작은 영화판의 리메이크라기보단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다시 재구성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과거 영화들과 달리 괴물 같은 존재가 나오지 않지만 한 남자의 욕망이 괴물처럼 무섭게 변해가는 과정을 고급스러운 화면과 분위기로 담았다.
이 영화는 스탠튼 역을 맡은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그저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가진 남자가 자신만의 욕망을 가지게 되고, 결국 파멸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브래들리 쿠퍼는 원초적인 욕망을 가진 인물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으면서까지 욕망으로 거칠게 달려가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케이트 블란쳇이나 루니 마라, 토니 콜렛 같은 좋은 배우들의 연기도 좋지만 이 영화는 브래들리 쿠퍼의 영화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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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메어 앨리>
https://www.youtube.com/watch?v=KFUGkN-bf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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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건 매버릭, 실감나는 전투기 액션을 담다!
?Rabbitgumi 입니다!
탑건 매버릭이 개봉했습니다.
1986년에 1편이 나온 이후 30년이 넘게 지난 시점이죠.
톰 크루즈의 매력이 돋보였던 1편인데, 이번 2편에는 그 매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까요?
전투기 액션이 많이 담겼고 실제로 배우들도 전투기를 조종했다고 하죠.
여러가지 제약이 많았을텐데 과연 멋지게 담아냈을까요?
제가 영화가 어땠을지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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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결산 - 리뷰는 못 했지만 추천하는 독립영화 7작품 l 상 2편 ( #최선의 삶 #비밀의정원 #좋은빛좋은공기 # 십개월의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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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렇게, 제가 극장에서 관람은 했지만, 여러 이유로 리뷰를 남기지 못했던 작품들, 그 중에서 특히 추천드리고 싶던 국내 독립영화 7편(로그인 벨지움, 빛과 철, 혼자 사는 사람들, 비밀의 정원, 좋은 빛 좋은 공기, 최선의 삶, 십개월의 미래)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해당 작품들은 [로그인 벨지움]을 제외하고 유튜브를 포함한 VOD서비스를 통해서 만나보실 수 있고요. 다들 좋은 작품들이니 한번쯤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영화등대 채널에서 준비한 2021년 독립영화 연말결산 [상1, 2]편 마무리 짓고요. 저는 다음번에 연말결산 중편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번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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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낫아웃> 티저 예고편
고교 야구부 유망주 광호는 프로야구 드래프트 선발에서 탈락한다.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대학 진학을 원하는 광호. 하지만 광호의 선택은 동료들과 보이지 않는 갈등을 만들고, 기댈 곳이 없어진 광호는 친구 민철과 함께 가짜 휘발유를 판매하는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