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로진2022-08-27 22:58:41
[SWIFF 데일리] 깨어있든지, 다음이 되든지
<데카메론> 리뷰

데카메론(Decameron, 2021)
감독 : 쉬야수
상영시간 : 108분
시놉시스 : "역사는 단지 날짜의 문제가 아니다." 1997년 영국이 홍콩 행정부를 중국에 반환하기 직전, 크리스 패튼은 홍콩의 영국 총독으로서 마지막 연설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이 영화는 크리스 패튼의 연설을 포함한 역사적 자료들을 픽션과 결합한다.(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나는 한 번도 홍콩에 가본 적 없지만 홍콩을 좋아한다. 홍콩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제니쿠키와 몇 편의 홍콩영화만을 좋아할 뿐이다. 어릴 때 엄마가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로 시작되는 <홍콩 아가씨>라는 노래를 자주 불렀다. 내가 좋아했던 홍콩은 예술가들에 의해 잘 만져진 홍콩이고, 나는 홍콩을 모른다.
홍콩은 1841년 아편전쟁을 겪고,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근현대사에서 뭔가 구린내가 난다 싶으면 영국이 끼어 있다. 아무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도 영국은 홍콩을 계속 식민지로 둔다. 중국 본토에는 사회주의 체제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지만 홍콩만큼은 세계사의 흐름대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취한다. 그리고 중국의 부호들과 돈 좀 벌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홍콩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첨밀밀>의 이요와 소군처럼.
왕가위 감독은 홍콩 반환을 앞두고 그가 사랑하는 홍콩의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 1997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편입되었다. 덩샤오핑은 일국양제로 홍콩의 민주자본주의를 50년간 유지하기로 했으나, 우리가 중국에 대하여 보고 들은 바와 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우산을 들고 최루탄에 맞섰다. '우산혁명'이라 불리는 2014년 홍콩 민주화운동이다. 5년 뒤인 2019년에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맞서 시민들이 다시 거리에 나섰다. 우산혁명 당시에는 평화적 시위를 이어나갔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평화시위는 힘이 없었다. 1996년생인 조슈아 웡은 대한민국에도 홍콩과 뜻을 같이할 것을 호소했다.
영화는 영국령 홍콩의 마지막 총리 크리스 패튼이 연설하는 장면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교차편집하여 보여준다. 총리는 말한다. "역사는 단지 날짜의 문제가 아니"라고. 대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데카메론>은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가 쓴 소설의 제목이다. 흑사병이 돌고있는 도시를 떠나 교외의 별장에 머무는 귀족들이 떠드는 이야기.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굳이 '데카메론'이라는 제목을 차용했다. 21세기의 흑사병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겠다.
영화에는 홍콩 역사의 이모저모가 담겨있다. 100년 전인 1922년 홍콩 선원 파업 사건과 코로나 이후 홍콩 예술인들의 노조 설립을 병치하고, 1966년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잇는 유일한 운송수단이었던 스타페리호의 가격인상이 도화선이 되어 발생했던 1967년 폭동과 2019년 혁명,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광복홍콩 시대혁명'까지 영화는 홍콩의 큼직큼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훑어간다.
그 가운데, 코로나로 봉쇄된 도시에서 주부들이 화상회의로 만난다. 주부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로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자 엄마들이 난감해졌다. 거시적으로도 난리가 났지만 미시적으로도 케파가 딸리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밖에서는 검은 옷만 입어도 전경에게 취조를 받아야 하고, 안에서는 밖에 나가지 못하는 가족을 돌보거나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경찰들 때문에 조마조마해야 하는 삶.
아무튼 <데카메론>은 홍콩의 과거와 현재다. 홍콩영화 특유의 찬란한 네온사인도, 화려한 액션도 없는, 홍콩 그 자체다.

'홍콩을 정말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제작했다는 엔딩 크레딧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작품은 공권력에 의해 살해되거나 실종된 수많은 홍콩사람들을 기억하는 일, 억울한 죽음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이는 일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마음 그 자체다.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기록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에서 교차편집하여 보여주었듯이,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홍콩 시위대가 남긴 "깨어있든지, 다음이 되든지(Be aware, or Be next)"라는 문구를 목격한 우리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에도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기록하는 사람들과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곧 행안부 소속 경찰국이 신설될 예정이다. 어쩌면 다음은 우리일지도 모르겠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 스케줄
2022년 8월 27일 17:30~19:18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9관
2022년 8월 31일 16:00~17:48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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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벤져스 어셈블, '어벤져스: 엔드게임 리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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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예고편에서 히나만 모아봤다, '날씨의 아이 히나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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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AV보다 야하다,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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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불매운동 중에 일본 애니를? '불매운동과 일본 애니메이션을 알려드림'
https://youtu.be/ow10tiErTiU
9. 라이온킹은 애니메이션과 얼마나 똑같을까?
https://youtu.be/O4TpyQm9L_M
10. 토니는 영화에서 멱살을 얼마나 잡힐까?
https://youtu.be/v7au_Lx_NF4※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연락처
adonai0919@gmail.com※ 트위치
https://www.twitch.tv/sura_chtr※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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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사제들의 뒤를 잇는 "검은 수녀들" / 단순하지만 독특한 설정 / 크게 무섭지 않은 순한 맛 호러 /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검은 수녀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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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신세계로부터> 공식 예고편
눈 앞에 펼쳐진 동화 같은 세계?! 원하는 모든 것이 실현되는 유토피아에서 예측불허! 상상초월 '신세계'가 펼쳐진다! 이승기x은지원x김희철x조보아x박나래x카이 《신세계로부터》 11월 20일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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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헬로, 굿바이,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것> 공식 예고편
대학에 들어가기 전 헤어지기로 약속한 클레어(탈리아 라이더)와 에이든(조던 피셔)은 연인으로 보내는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데이트에 나선다. 첫 만남부터 첫 키스, 그리고 첫 다툼까지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는 두 사람. 이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결정적 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우리 계속 연인으로 남아야 할까, 아니면 영원한 작별을 고해야 할까. 제니퍼 E. 스미스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인기 시리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제작진이 만든 매력적인 로맨틱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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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둘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2025년을 맞이한 지 어느새 일주일이 지난 지금!
신년을 맞은 극장가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금주에는 대작 영화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대표적인 감독 마이클 만의 신작 <페라리>부터 ‘천재 작가’라고 불리우는 아사노 이니오의 SF 만화를 원작으로 한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히든페이스>에 이어 빠르게 차기작으로 돌아온 박지현 주연의 <동화이지만 청불입니다>, 세계적인 팝 스타 퍼렐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레고 무비로 담은 <피스 바이 피스>까지 고루고루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번 주 관객의 선택을 받게 될 영화는 무엇일까요?
페라리
FERRARI
개요: 드라마 | 미국, 이탈리아, 영국 | 131분
감독: 마이클 만
주연: 아담 드라이버, 페넬로페 크루즈, 쉐일린 우들리
개봉: 2025.01.08.
배급: CJ ENM
줄거리
1957년, 전세계를 뒤흔든 '페라리'의 충격 실화가 드러난다!
파산 위기에 놓인 '엔초 페라리'. 회사 존폐의 기로에서 사사건건 충돌하는 아내 라우라. 아들 피에로를 페라리 가로 인정하라고 압박하는 또다른 여인 리나.
평생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기 직전인 1957년 여름, 이탈리아 전역 공도를 가로지르는 광기의 1,000마일 레이스 '밀레 밀리아'에서 엔초 페라리는 판도를 뒤집을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데...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Dead Dead Demon's Dededede Destruction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120분
감독: 토모유키 쿠로카와
주연: 이쿠라, 아노, 타네자키 아츠미, 시마부쿠로 미유리, 오오키 사에코, 와키 아즈미, 시라이시 료코
개봉: 2025.01.08.
배급: (주)올랄라스토리, 롯데컬처웍스(주)롯데시네마
줄거리
정체불명 초거대 우주 모함 도쿄 상공 출현! 내일 지구가 폭망해도 오늘을 즐기는 하이텐션 고교 라이프! 3년 전 그날 이후 조용하지만 착실히 멸망은 진행 중…
아이도 어른도 아닌 우리, 일상도 비일상도 아닌 그때. 모든 게 불확실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선명했습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절대적’이란 것!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FORBIDDEN FAIRYTALE
개요: 코미디 | 대한민국 | 109분
감독: 이종석
주연: 박지현, 시원, 성동일
개봉: 2025.01.08.
배급: ㈜미디어캔, ㈜영화특별시SMC
줄거리
동화 작가가 꿈이지만 현실은 불법 음란물 단속팀 새내기인 ‘단비’는 스타 작가를 찾던 성인 웹소설계 대부 ‘황대표’와 우연한 사고로 노예 계약을 맺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19금 소설을 쓰게 된다.
생전 접한 적 없는 장르를 집필하는 데 난항을 겪던 ‘단비’는 음란물 단속을 하다 권태기에 빠진 선배 ‘정석’의 응원과, 친구들의 생생한 경험담에 힘입어 어느새 자신도 알지 못했던 성스러운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데…
피스 바이 피스
Piece by Piece
개요: 애니메이션 | 미국 | 93분
감독: 모건 네빌
주연: 퍼렐 윌리엄스, 스눕 독, 스웬 스테파니, 켄드릭 라마, 저스틴 팀버레이크
개봉: 2025.01.08.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제 이야기를 레고로 만들면 쩔거 같지 않아요?”
창조의 귀재, 현존 최고의 아티스트 ‘퍼렐 윌리엄스’ 제이 지, 켄드릭 라마, 저스틴 팀버레이크, 스눕 독의 샤라웃을 받은 음악의 신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모두 작품이 된다!
레고로 그려내는 ‘퍼렐윌리엄스’의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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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함없는 20년 지기 영국 누나의 사랑학개론
역시 이 누나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좋아할 수밖에. 2000년대 초반에 만났을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2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젠 두 아이의 엄마이자 50줄에 접어든 브리짓 존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스럽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던 브리짓 존스의 변함없는 매력을 전하는 동시에 조금 더 성숙해진 사랑의 개념을 그녀의 에피소드를 통해 전한다. 1편부터 그녀와 함께 걸어온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는 그 자체로 반가운 작품이다. 그것도 눈물 나게.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의 아침은 전쟁터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을 등교시켜야 하는 그녀는 매일 이 쉽지 않은 일을 해낸다. 몇 년 전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남편 마크 다시(콜린 퍼스)가 이었으면 더 수월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녀는 현실을 마주하며 특유의 웃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그러던 어느 날, 브리짓은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다이어리를 다시 쓰고, 방송국에 취직해 일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도 시작한다. 그것도 20대 꽃미남 록스터(리오 우달)과의 열정적인 사랑을. 더 나아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동년배 교사 스콧(추이텔 에지오포)과도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가 30대 여성의 현실을 보여준 것처럼, 네 번째 시리즈인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극 중 브리짓 존스의 나이에 맞게 50대 여성들의 현실을 조명한다. 예전처럼 그녀는 불투명한 미래와 진정한 사랑 찾기에 상처받고, 외로워하며, 이를 술과 애정하는 친구들과의 수다로 풀지 않는다. 나이를 먹었고,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입장이며, 사별의 아픔도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예전처럼 당당함과 용기도 줄어들었다.
50대라면 충분히 공감대를 살 이야기를 전반부에 뿌린 영화는 이를 발판 삼아 20대 남자와의 불같은 사랑으로 환기한다. 현실에서 쉽게 이뤄질 수 없는 판타지이지만, 브리짓은 이 잊고 지냈던 뜨거운 감정으로 점점 화사하게 빛난다. 그리고 우중충했던 과거의 삶과 안녕을 고한다. 중요한 건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열병과도 같은 이성과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그 범위를 확장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금은 성숙해진 브리짓처럼 영화 또한 시리즈의 중심축인 ‘사랑’의 개념을 확장하고 성숙한 시선으로 표현한다. 사는 환경이 변했고, 위치가 달라졌고, 더 챙겨야 하는 이들이 많아진 브리짓 존스의 중요한 선택들은 전작들보다 현실적이고, 그 자체로 공감대를 갖는다. 이를 통해 동년배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는다. 어쩌면 이 부분이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주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이번 영화는 단순히 추억 팔이에만 무게 중심을 둔 작품은 아니다. 중년여성으로서 갖는 고민과 두려움을 충분히 들려주고, 이를 조금씩 타파해 가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브리짓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전작들에 비해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어 이어진다는 점에서 짜임새는 헐겁다.
이런 단점에도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의 8할은 르네 젤위거에서 나온다.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는 기분 좋게 만드는 그의 모습은 이 영화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해맑은 눈웃음만 봐도 마음을 열리게 하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이 계속 이어지는데, 순간 20여 년전 처음 만났던 그때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나이가 들어도 엄마가 되어도 2%, 아니 20% 부족하지만, 여전히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 캐릭터는 르네 젤위거만이 연기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런 모습을 조금 더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예전에 입었던 파자마와 음악, 상황 등을 만든 제작진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다니엘 역에 휴 그랜트를 비롯해, 시리즈에 출연했던 다수의 배우가 등장하는데,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그리 반가울 수 없다. 특히 르네 젤위거와 마찬가지로 다니엘 역을 맡은 휴 그랜트 또한 그 매력이 변함없다. 그 또한 세월을 비껴갈 수 없었지만, 과거 다니엘의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 매력은 그대로 선보인다.
영화는 브리짓 존스와 함께 늙어가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겠지만,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2~30대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건 사실이다. 전작에 나왔던 명장면을 패러디하고 주요 아이템을 오버랩시키는 등 팬들만이 아는 즐길 구석이 의외로 많다. 만약 이 영화를 심드렁하게 봤다면 집에서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꼭 한 번 보기 바란다. 50대의 브리짓도 20년전에는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실패를 경험하고 용기를 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변함없이 사랑스럽다는 것도. 제2의 인생을 위해 오늘도 웃는 브리짓을 응원한다. 영원히~덧붙이는말: 쿠키는 없다. 하지만 엔딩크레딧과 함께 전 시리즈의 스틸이 화면을 수놓는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브리짓 존스와 마크 다시, 다니엘, 그리고 지금도 이 영화 안에서 숨 쉬고 있는 모든 인물의 모습은 그 자체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눈물 나는 감동도 전한다. 시리즈의 팬이라면 손수건은 필수니 꼭 가져가길 바란다.
사진 제공: 유니버셜 픽쳐스
평점: 3.0 / 5.0
한줄평: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좋은 영국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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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날 우리> - '첫사랑을 완성하는 마침표‘
여름날 우리 (你的婚礼, My Love, 2021)
개봉일 : 2021.08.25 (한국 기준)
감독 : 한톈
출연 : 허광한, 장약남
'첫사랑을 완성하는 마침표‘
2018년에 개봉한 박보영, 김영광 배우 주연작 <너의 결혼식>의 중국 리메이크판 영화 <여름날 우리>. 많은 관객들이 답답하고도 애타는 현실 청춘 로맨스의 정석이라 이야기했던 <너의 결혼식>의 리메이크 작이라는 정보와 소지섭 배우의 투자, <상견니>로 온갖 사랑의 기억을 조작했던 허광한 배우의 출연 소식으로 화제를 모은 <여름날 우리>가 <너의 결혼식> 개봉 3주년이 지난 2021년 여름, 한국에서 개봉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원작인 <너의 결혼식>을 봤을 때 가장 먼저 이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여름날 우리>를 보고 나서도 똑같이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름답고 찬란하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소중한 첫사랑의 추억. 그 추억이 아무리 빛나고 애탄다고 한들, 내가 붙잡을 수 없다면,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결국은 보내줘야 한다.
원작 <나의 결혼식>과 리메이크작 <여름날 우리>는 인생을 바꿔 놓은 첫사랑과, 우리를 위해 열심히 달려온 오랜 시간, 그리고 오래된 청춘의 추억을 보내주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른 건 걱정하지 않고 마치 사랑에 눈이 먼 사람처럼 달려온 행복했던 날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사랑의 부드러운 위로와 사랑 앞에서 초라하게 무너졌던 순간들. 그리고 결국은 놓아줘야 했던 마지막까지. 인생에 한 번뿐 이기에 더욱 지키고 싶었고, 잊고 싶지 않았던 그를 보내주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한다.
가슴이 미어질 만큼 미안했고, 그래서 더 고마웠던 나를 만들어준 ‘첫사랑’. 사실 내 첫사랑은 이토록 싱그럽고 아프고 아름답진 않았지만, 이런 영화들을 보고 있다 보면 괜히 내 첫사랑도 웅장하고 아름답게 포장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의 첫사랑은 이럴 수도 있구나.. 괜히 부럽기도 하고 말이다. 조금 지질해 보일 수도 있지만 만약 나의 약혼자가 이들과 같은 청춘, 첫사랑의 기억을 가졌다면 질투 나서 결혼을 못 할 수도 있겠다-싶을 만큼 이들의 이야기는 빛이 난다.
단일 감정이 아닌 행복, 슬픔, 죄책감, 고마움, 설렘, 믿음, 애정 같은 여러 빛깔의 감정이 한곳에 모여 만들어진 ‘사랑’이라는 감정. 그것은 나의 실수를 뼈저리게 후회하는 순간에도, 뜻대로 되지 않고 끝없이 엇갈리는 상황을 맞이한 순간에도 ‘그를 만난 걸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나의 청춘, 나의 죄책감, 나의 아픔을 모두 담은 나의 첫사랑.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가진 것 없는 맨몸인 걸 알면서도 용감하게 그 감정에 뛰어들 수 있었던 싱그러운 젊은 날의 후회 없는 사랑의 끝맺음을 담은 <여름날 우리>. 맞춤양복 대신 소녀의 그림이 담긴 셔츠를 입는 장면, 불꽃놀이 장면 등 원작과 같은 듯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변화된 장면들과 비 오는 날 땡땡이 치던 날의 추억, 두 사람이 벤치에서 이별을 말하던 순간처럼 원작의 장면이 절로 떠오르는 장면들을 각각 비교하고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원작을 아꼈던 관객이라면 <여름날 우리>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약간은 오글거리고 뻔하기도 하고, 끝없이 애타는 순간도 있지만, 청춘 로맨스물의 매력은 이런 순간들에서 오는 게 아니던가.
여름날 우리 시놉시스
처음이었다, 사랑이 싹트는 기분 너에게 풍덩 빠져버렸던 17살의 여름. 너를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21살의 여름. 그리고 몇 번의 여름이 지나고 다시 만난 너, 이젠 놓치지 않을 거야. “널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오직 눈앞의 수영장과 싸움에만 시선을 던지던 단순한 소년의 세상에 한 소녀가 향긋한 바람을 몰고 온다. 수영장(yóuyǒngchí)와 비슷한 발음의 이름을 가진 소녀 ‘요우 용츠’. 그녀는 수영장에 꽂혀있던 소년 저우 샤오치의 시선을 단박에 빼앗고 그의 청춘의 중심이 된다. 구제불능이었던 저우 샤오치는 요우 용츠를 위해 무모한 경기를 치르기도 하고 그녀에게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모든 힘을 짜내 공부를 한다. 저우 샤오치가 수영부 주장 샤크와 내기를 걸 때, 요우 용츠는 저우 샤오치가 지지 않을 거라며 믿음을 보여주고 요우 용츠가 보낸 믿음과 그녀의 존재는 저우 샤오치의 발전 원동력이 된다.
“풋사랑은 그렇다. 느닷없이 시작되고 또 그렇게 끝난다.”
소년의 사랑은 소녀와 함께 비를 맞던 날 더욱 깊어지고, 또다시 비가 내리던 날 갑자기 끝난다. 깨져버린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요우 용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맞이한 첫 번째 이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기적적으로 다시 만난 요우 용츠는 이미 다른 인연을 만났고, 현실은 저우 샤오치가 꿈꿨던 모습과 달랐다. 저우 샤오치의 시선은 여전히 요우 용츠를 향해 있지만 요우 용츠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있다. 두 사람의 시선은 매번 미묘하게 엇갈린다. 베프라고는 말하지만 왠지 특별한 이유 없이는 연락하면 안 될 것 같은 애매모호한 사이. 첫사랑이긴 하지만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 버린 듯한 사이. 항상 그를 생각했지만 맞지 않았던 타이밍의 반복. 두 사람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맴돌던 두 사람의 사이가 진전이 되는 계기는 슬프게도 ‘상처’때문이었다. 저우 샤오치는 요우 용츠를 구하려다 어깨 부상을 입게 되고, 저우 샤오치를 간호하던 요우 용츠는 사랑과 그 위에 얹어지는 죄책감의 무게를 함께 받아들인다.더 이상 좁혀지지 않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저우 샤오치의 사고를 계기로 한걸음 나아가게 된다. 두 사람은 분명 서로를 사랑했고, 사랑을 통해 행복을 얻는다. 하지만 그 밑에 깔려있던 상대를 향한 죄책감과 ‘어쩌면’이라는 후회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연인을 향한 죄책감과 후회는 사랑 밑에 숨어 사랑을 의미 없이 지속시키기도 하고 현실과 힘을 합쳐 끝내 사랑을 부숴버리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선수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저우 샤오치는 “내가 그 트레이너보다 더 잘할걸요”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거절했던 체육관 전단지를 손에 한가득 쥐고 있다. 저우 샤오치의 서포트를 통해 용기를 얻은 요우 용츠는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지만 저우 샤오치는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는다. 두 사람의 세계는 그렇게 나뉘어버린다. 저우 샤오치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너를 위해서”가 “너 때문에”로 변하기 시작하자 화살은 연인 요우 용츠에게로 향한다. 우리 둘만 있으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던 미래는 결국 현실이 되지 못했고 두 사람은 후회 주변을 맴돌다 사랑을 끝낸다. 이제 사랑이 아닌 나를 위해 살자는 다짐을 나누면서.
“우리 15년 뒤에 뭐 하고 있을까?”
꼬치집 앞에서 함께 15년 뒤를 그리던 소년과 소녀는 어느덧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어른이 됐다. 잊을 수 없는 첫사랑과 청춘의 기억을 뒤로 미뤄두고 현재를 찾은 어른 말이다.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32살의 나와 너. 첫사랑인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17살의 나와 우리. 하지만 이제는 살며시 내려놔야 할 추억들. 많이 행복했기에 그만큼 아팠고 서툰 마음에 저질렀던 실수들이 후회로 남은 불완전한 사랑이었지만 그 어떤 사랑도 대신할 수 없는 ‘첫사랑’이 가진 향으로 가득했던 소중했던 우리의 어린 여름날. 두 사람은 쉼 없이 바라보고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후회보단 고마움으로 가득한 첫사랑과 오랜만에 시선을 맞추며 지나간 우리의 사랑을 정리한다. 항상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조금씩 어긋나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이젠 상대가 아닌 온전히 ‘나의 앞에 펼쳐진 길’로 향하는 순간이다.
소녀는 어느덧 입고 싶었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되었고 소년은 소녀의 손을 담백하게 맞잡고 그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남자가 되었다. 첫사랑이라는 단어의 무게와 죄책감만으론 지킬 수 없었던 사랑을 마무리 짓고, 서로를 등지고 걸어나가는 두 사람 뒷모습이 무겁기보단 홀가분해 보인다. 미련 없을 만큼 열심히 사랑했기에 이별의 순간마저 빛났던, 영원히 기억될 단 하나의 첫사랑이란 이야기에 마침표가 찍힌다. 더 이상 더해질 수도 지워질 수도 없는 찬란한 첫사랑은 이렇게 완성된다.
“내가 없어도 기억하길. 이 순간은”
두 사람은 결국 완전한 이별을 맞이한다. 당장은 그가 아련하게 떠오를지 몰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그를 잊어갈지도 모른다. 함께한 시간인 15년 정도가 더 지나고 나면 그의 얼굴, 목소리와 특징들을 잊고 그저 ‘첫사랑’이라는 존재로만 기억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첫사랑에 빠진 그때의 나, 나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첫사랑의 존재와 그에게 빠져있던 행복한 순간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완벽하든 완벽하지 않았든 ‘첫사랑’이란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단어니까.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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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에 가려진 현실을 들추는 로맨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화려한 패션으로 무장한 이 도시는 수많은 영화에서 로맨틱하고 사랑이 꽃피울 것만 같은 부드러운 인상으로 등장했다. 파리의 예술에 대한 판타지가 집약된 로맨스로 유명한 <미드나잇 인 파리>나 시즌 2까지 공개되어 큰 인기를 끈 <에밀리, 파리에 가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국 그래픽 노블 작가의 단편 세 편을 각색한 자크 오다아르 감독의 <파리, 13구>는 다르다. 파리의 20개 행정구역 중 하나로 유럽에서 가장 큰 아시아 타운이 있는 파리 13구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파리는 그저 흑백 필름의 배경일뿐이다. 우연적인 만남은 있을지언정 그 만남은 드라마 같은 낭만적 사랑 이전에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 그렇게 영화는 절제된 도시의 느낌과 배경을 통해 청춘의 사랑, 자유, 방황, 불안정한 삶을 온전히 전해 준다.
오다아르 감독이 그려내는 파리는 첫 장면에서부터 알 수 있다. 텅 빈 도시의 밤거리를 비추던 카메라는 이내 불 켜진 창문들을 칸칸이 스쳐 지나간다. 네모난 칸 안에 분절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칸 안에서 비슷하게 또 다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채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 외로움은 서로 다른 캐릭터의 모습으로, 또 그들 간의 관계와 섹스 안에서 등장한다. 사랑을 갈구하는 '에밀리(루시 장)',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 채 쫓기만 한 '카미유(마키타 삼바)', 다른 이를 사랑하는 일이 두려운 '노라(노에미 메를랑)', 사랑이 값비싼 '앰버 스위트(제니 베스)'가 그들이다. 영화는 제각기 처한 상황과 사랑과 삶을 마주하는 태도가 다른 이들이 우연히 스치고 만나는 시간과 그 시간에 담긴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첫 만남은 에밀리와 카미유의 만남이다. 파리 정치 대학을 졸업하고도 OTT 멤버십 가입을 권유하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에밀리는 룸메이트를 구하다가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학교 선생일을 하는 카미유를 만난다. 첫 순간부터 카미유와 눈이 맞은 에밀리. 그녀는 함께 섹스를 할 때 비로소 자신을 옥죄는 가족을 잊고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그녀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고, 가장 자기 자신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에밀리만 카미유를 사랑한 일방향적 관계는 이내 틀어진다. 카미유와 다른 여자 친구인 스테파니를 집에 들인 것을 두고 갈등을 빚은 끝에 카미유가 집을 나가 버리고, 에밀리 본인도 성적인 뉘앙스로 고객 응대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다음 만남은 노라와 엠버 스위트의 만남이다. 고향에서의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홀로 서기를 하기 위해 30대 초반에 법대생으로 파리에 온 노라. 그러나 그녀는 신입생들과 어울리기 위해 참석한 파티장에서 쓴 금발 가발 때문에 포르노 모델인 엠버 스위트와 동일 인물이라는 오해를 산다. 학교에서 야유를 당한 노라는 결국 신과 닮았다는 포르노 배우 엠버 스위트와 직접 유료 채팅을 시작한다. 엠버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노라. 포르노 사이트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본명을 쓰는 노라를 보면서 엠버도 자신의 본명을 알려주고, 둘은 개인 계정을 통해 화상 채팅을 이어가며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로 발전한다.
다음은 노라와 카미유다. 학교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던 노라는 휴학을 선택한 뒤, 고향에서 원래 종사했던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자 카미유가 친구 대신 운영하던 사무실에 취직한다. 에밀리와 몸을 섞으면서도 마음을 주지는 않았던 카미유지만, 그는 능력 있고 매력적인 노라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장벽이 있다. 노라는 카미유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분위기에 맞춰 자신의 감정과 몸의 반응을 연기한다. 이미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엠버에게 큰 위로를 받고 있던 노라에게 진실되지 않은 카미유와의 만남은 매력이 없다. 그런 노라를 보면서 카미유는 카미유대로 에밀리에 대한 생각을 지우지 못하며 그녀와 재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인 고객의 통역을 위해 부동산 사무실에 들른 에밀리를 보고, 노라는 카미유에게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이들의 만남은 항상 섹스와 쾌락이 우선하고, 그다음에 사랑과 관계에 대한 고뇌가 뒤따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그 고뇌가 단지 로맨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각 캐릭터의 삶에 관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처음 만난 날부터 즉각적인 육체관계를 갖는 에밀리와 카미유, 그저 대화를 원한다는 노라에게 망설이지 말고 원하는 서비스를 말해보라는 엠버, 각자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관계를 맺는 카미유와 노라. 이것이 세 여성과 한 남성이 만들어 낸 관계도다. 이 관계도는 통상적인 사랑과 쾌락의 관계가 뒤바뀐 듯하고, 무척이나 가볍지만 무시할 만한 무게는 아닌 감정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파리, 13구>는 인터넷으로 만난 관계는 진지할 수 없다는 통념을 조금씩 벗겨내는 감정, 희미한 호감이 있지만 적극적 구애로 전환하기는 애매한 감정이 빚어내는 현대적 사랑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때 영화는 단지 중심 없이 혼란스러우며, 두루뭉술한 사랑의 그림을 보여주는 데에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림 밑바탕에 있는 스케치의 모습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 스케치는 청년들이 확신에 찬 사랑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시대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그 핵심은 불안감이다.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사회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이에 사랑은 부차적인 이슈가 된다. 경제적 조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믿지 못하고, 그 불안감으로 인해 사랑을 잡을 날을 요원해진다.
에밀리, 카미유, 노라, 앰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만남은 어느 로맨스 영화처럼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그 우연은 곧장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감정들은 사랑에 앞서 삶을 돌아보고 뒤바꾸는 기회가 되고, 그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기회가 된다. 에밀리는 직장과 집을 오가며 답답한 삶을 살았지만, 카미유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수입원이 사라지고, 가족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며,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에 이르기까지 언젠가 필요했을 변화의 순간을 초래한다. 노라에게 일어나는 변화도 다르지 않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가벼운 성욕 너머에 있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캐릭터들의 진짜 외로움이다. <파리, 13>가 '낭만의 도시’라 불리는 파리를 흑백으로 담아내어 전달하려는 건 이 혼란스러운 감정의 흐름이다. 그래서 영화는 현재의 사건과 대화를 인물들을 둘러싼 과거의 배경과 사연으로 눈으로 돌린다. 대만계인 에밀리의 가족을 통해, 카미유의 가족을 통해, 화상 채팅을 통해 그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왜 그들이 사랑에 집착하고 또 사랑을 알지 못하는지를 납득시킨다. 적나라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사랑의 감정은 카미유가 동생 에포닌과 오해를 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외적으로 닮았지만 전혀 다른 이들이 담담히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결과, 클라이맥스의 키스신은 덜 섹슈얼하더라도 그 어떤 장면보다도 농도가 높고, 외로운 청춘들의 욕망은 깊은 계곡을 넘어 낭만적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네 주인공의 만남과 욕구, 사랑의 서사를 더욱 진하게 만드는 것은 감각적 요소, 특히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의 활요이다. 우선 영화는 흑백 촬영을 선택해, 파리에 기대하는 일반적인 이미지에 변화를 주었다. 화려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도시의 색을 없앴다. 그 덕분에 쾌락과 섹스처럼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 너머에 있는 이야기들에 집중할 수 있다. 자칫 매우 자극적인 영상의 향연일 수 있었지만 파리라는 도시를 이루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제한적으로 등장하는 음악의 존재감은 네 주인공의 삶의 무게를 극대화한다. 내용이 전환될 때 들려오는 빠른 템포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와 대비를 이루며 이질적인 인상을 준다. 이는 마냥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사정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청춘들의 이면을 음악으로 담아냈다고 할 수 있겠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에 따르면 “<파리, 13구>는 현시대를 보여주는 시대극이라 말할 수 있다.” “이 도시에 사는 등장인물이 성취감을 얻고, 성적인 면에서는 정체성을 깨닫고 쟁취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던 포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리 13구역에서 성장통을 겪는 네 명의 캐릭터들은 다양한 배경과 문화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느껴진다. 그렇게 <파리, 13구>는 육체적 쾌락에서 시작해 낭만적 감성을 충족시키며 파리의 색다른, 또 색이 없는 사랑을 그려낸다.
A(Accepatble, 무난함)
낭만을 잠시 버린 파리의 색다르고 색 없는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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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우연들과 상상들이 모이고 모여 일으키는 강력한 힘
2021년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 있어 의미있는 해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 이렇게 한 해에 두 작품을 공개했을 뿐더러 드라이브 마이 카는 칸 영화제 각본상, 우연과 상상은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감독 세계를 인정받아왔지만, 그의 감독 세계와 우상을 더욱 견고히 하였다.
이 중 필자는 <우연과 상상>을 이야기하고 싶다.
3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로, 이 3편의 단편은 서로 연계되지 않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전작들에서 보여주는 일부 씬들에 대한 실험적 시도나 재편성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면, 첫번째 단편인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에서 택시 씬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후반부 가후쿠랑 다카츠키가 차에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문은 열어둔 채로"는 대화 스타일이나 영상의 톤이 전체적으로 '열정'이 연상됐으며, "다시 한번"은 해피아워에서 온천으로 놀라가서 서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처럼 옴니버스이기에, 3가지 단편을 통해 감독이 보여줄 수 있었던 각자의 스타일을 보여줬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는 설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많은 대화를 통해 상황과 설정을 나열하는데, 그것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흥미롭게 전개되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특유의 담담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영상미 덕분에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는 현실적이면서 신비롭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영화는 SF, 판타지 같이 비현실적이지 않으면서 그 상황과 분위기는 전혀 평범하지 않고, 때로는 서스펜스까지 존재하는 신비로움을 풍긴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의 사건들은 정말 제목 그대로, '우연'과 '상상'들로 부터 이루어진 사건들이다.
우연히 만나고, 어떠한 상황을 떠올리고, 누군가를 떠올리고, 우연이 알아채는 수많은 우연들과 상상들이다.
이런 작고 작은 우연들과 상상들은 개별적으로는 정말 작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모이고 모여 보이지 않게 강력한 힘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점점 영화의 힘에 사로잡히고, 그렇기에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면 큰 여운을 남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전작인 <아사코>나 <드라이브 마이 카>에 비해 장소의 변환이나 인물이 적어 소품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지닌 영화적 연출과 영화적 힘은 여전히 강력하게 발휘한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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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얼리티 가족 다큐멘터리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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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성 발언.
나는 여자다. 그리고 김씨다. 조부는 종가집 장손이었다. 무려 4대 독자! 그리고 대망의, 내 본적은 경상북도다. 나는 순혈이다. 지독한 가부장제의 순수혈통. 종친회에서 고칠 데를 손 봤다는 올칼라 족보를 만들었고, 여전히 나는 남동생의 동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 가족 소개 같은 숙제를 하면 아버지가 그리 말씀하셨다. 우리 집은 무슨 김씨 무슨 파 무슨 왕의 몇대손이며 우리 할아버지는 몇대 독자고 어쩌고 저쩌고. 어릴 때는 그게 자랑인 줄 알았더랬다. 그리고 좀 커서는 족보를 샀겠거니 생각했다.
커서 보니 쓸 만한 유전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나와 내 동생과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등과 비슷한 모습일진대 무슨 놈의 대를 그렇게 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도대체 이 족보주의에서, 순수 혈통을 이어가서 얻는 게 무엇인가. 그 유전자를 굳이 길이길이 남겨야 하는가. 어릴 때부터 이해가 안 갔다. 물론, 뭐 내가 태어났을 때 딸이어서 아무도 병원에 안 오고, 내 이름이 뒤에 아들 낳는 이름으로 지어질 뻔하고, 족보에도 올려주지 않아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무슨 왕정 제도를 미시체계에서 이룩한다는 게 좀 우스우니까. 장남을 왕세자에 책봉하고, 훗날 왕위를 물려주는 것마냥 일개 가정에서 신수왕권설 같은 걸 주장하는 게 이상하니까.
자, 개인사를 주절주절 늘어놓은 까닭은 영화 <장손>이 픽션이기 때문이다. 픽션인데,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리얼리즘 픽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경상북도 김씨 가족의 장손에 관한 이야기'다. 너무도 핍진하여 두 시간 동안 경상북도 김씨 가족의 차남의 장녀가 괴로움에 몸부림쳤던, 그 이야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건
족보와 장손밖에 없다. 장손을 제외한 나머지는 흩어져야 산다. 영화는 가정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층위의 갈등을 두 시간 동안 보여주는데, 그 갈등이 비단 가정 내에서만 발생하지는 않는다.
프랙탈은 일부를 확대해 보면 전체와 동일한 모양이 반복되는 구조를 말한다. 그러니까 '선산 김씨'네 가정은 대한민국의 프랙탈이다. 영화는 가족에 관해서 말하고 있으나 이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서사가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선산 김씨'네가 유난스럽지도, 특이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몇 개의 갈등이 중첩되면서 켜켜이 쌓인다. 그 갈등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제법 클리셰적인 갈등이다.
자기네 조상 제사를 지내는데 김씨 아닌 사람들만 모여 앉아 전을 부치고, 김씨들은 방문을 닫고 들어가 화투 치고 맥주를 마신다거나, 장손이 올 때까지는 에어컨도 안 틀어준다거나.
6.25 전쟁 때 빨갱이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고장난 라디오처럼 말하는 노인과 노인의 얘기가 궁금하지 않은 손자, 사업으로 부자가 된 자식과 사는 게 녹록지 않은 자식. 애초에 돈 되는 공장은 아들 주고, 낡은 집은 딸을 준 유산 분배.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와 세대갈등과 남녀갈등이 총체적으로 한 가정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전체와 동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두부 공장'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두부가 바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음식 아닌가.
두부를 잘 뭉치려면 쌩노가다를 해야 한다. 원래는 가정 내에서 만들었다(아는 척하는 이유는 내 외조모가 두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선산 김씨네 두부공장 역시 처음에는 가정 내에서 조모인 오말녀가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말녀는 며느리가 공장에서 찍어내는 두부가 못마땅하다.
두부 공장 씬에서 장남인 태근이 일하는 모습은 스케치로도 거의 잡히지 않는다. 대부분 며느리가 일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일하는 사람은 손녀사위다. 그런데 사장은 당연히 태근이다.
간단히 설명된다. 이 가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여자와 여자와 여자와 여자들이다. 다시 프랙탈. 유사 이래로 놀고 먹은 여자는 소수다. 장손이라 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어쩌고저쩌고 한 것만 같지만, 사실상 장손 혼자서 가정을 부양하고, 조상들을 제사지내주지 않는다.
조모는 장손 판타지를 공고히 한다. 조부는 규범과 같은 상징체계에만 관심이 있다면 실질적으로 현실화하는 사람은 조모다. 장손이 올 때만 에어컨을 켜 주고, 장손의 어릴 적 이야기를 신화처럼 반복하고, 제사상에 올릴 음식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여자들을 감시하는 여자. 장손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여자. 장손이라는 고귀한 존재를 만들어 희생을 합리화하는 여자. 어쩌면 장손은 고된 여자들이 만든 신화다.
그러니 사실 여자들이 뭉치지 않고 흩어지는 순간, 장손? 그게 뭔데.
가족의 미래
영화의 초반부에 제사 준비를 하면서 오말녀는 딸에게 '상조보험'에 가입하라고 재촉한다. 보살이 집안에 초상날 것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누구 하나 죽긴 죽겠구나' 하고 예상하게 된다.
누가 죽을까. 가족의 미래를 점쳐보자.
1. 김승필(장손의 조부)의 사망: 매우 자연스럽다. 나이도 많고, 대장암 수술을 해서 건강도 좋지 못하다. 제사를 꼭 자정에 맞추어 지내야 한다는 매우 고지식한 사람이다. 입만 열면 빨갱이 타령. 김승필이 사망한다면 자연스럽게 집안의 주도권이 김태근에게 넘어갈 것.
2. 김태근(장손의 부)의 사망: 장손의 모가 농담으로 하는 말. 하도 미워서 잘 때 한 대 때렸다. 죽지도 않고 왜 깼냐. 뭐, 슬프지만 장손이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두부 공장과 관련된 이슈가 발생할 것. 공장은 서울에서 연기하는 장손에게 갈 것이냐, 공장에서 일하는 손녀사위에게 갈 것이냐.
3. 김성진(장손)의 사망: 큰일난다. 이 가족 망한다.
4. 오말녀(장손의 조모)의 사망: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책임지고 있는 실질적 가장. 오말녀는 현재 매우 건강하고 꼬장꼬장한 노인이다. 한글을 배우려는 의지가 강하다. 오말녀가 죽는다면 장손 판타지로 이어온 가정은 붕괴된다. 오말녀만큼 장손을 우쭈쭈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
5. 그 외 여자들의 사망: 서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큰 사건이라 함은 누군가의 장례식이 될 것이다. 장례식은 별 탈 없이 잔잔하게 살던 가족에게 던져진 돌멩이가 아니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는 겉잡을 수 없는 와류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장례식을 계기로 드러났을 뿐.
<장손>은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BS독립영화상과 오로라미디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 전 감독이나 출연진, 줄거리, 어떤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갔다. 두 시간 동안 경북에 본적을 둔 여성을 미치게 만드는 솜씨에 무슨 상을 받아도 받았겠거니 예상만 했다.
이 영화에 다양한 매력이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탁월한 이미지를 꼽고 싶다. 오래된 한옥에 사는 노인들의 출입을 쉽게 하려고 문간에 걸어둔 동앗줄 같은 디테일. 동그란 손잡이가 달린 줄조차도 굉장히 의미심장해 보인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압권인데, 장손 성진이 택시를 타고 떠나고, 성진을 배웅한 노인은 눈 쌓인 비탈길을 아주 오래 걷는다. 롱테이크로 잡아낸 그 장면은 마치 서편제 같다. 뭐 대단한 걸 하고 돌아서는 장면 같다는 뜻이다.
택시를 탄 성진의 얼굴에 아침해가 날카롭게 비친다. 성진은 눈을 찡그린다. 빛을 보는 대신 눈을 가려 버린다. 그런 디테일에서, 이 가부장제라는 망령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장손 성진의 손에서는 결코 낡은 시대가 종언되고 새로운 체제가 구축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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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그땐 그랬지' 정도의 픽션, 누군가에게는 현재 진행형의 고통, 또 누군가에게는 피해망상,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관습'.
<장손>은 픽션이 아니다. 리얼 다큐멘터리다. 추석 직전에 개봉하는 만큼, 가족과 함께 보면... 과연 괜찮을까?
장손(House of the Seasons, 2024)
감독: 오정민
출연: 강승호, 손숙, 우상전 외
러닝타임: 121분
개봉: 2024. 09. 11.
씨네랩에서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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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흐뭇해서 죽어도 책임 안짐!! (╹౪╹*๑) 【토니피터 케미 명장면】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토니피터
토니피터 팬이라면 주목!
마블 영화상 가장 흥하는 조합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그 케미 터지는 명장면들만 모았습니다안보고 가신다고요?
안보면 인.절.손!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저의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추천 영상
1. 토니피터 환상의 케미,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명장면'
https://youtu.be/CoQ2ne32vHU
2. 극장내 침묵금지! '북미 어벤져스: 엔드게임 리액션'
https://youtu.be/K2L99rGOyS8
3. 나루토 질풍전 오프닝, '이승열 풍운'
https://youtu.be/t3W9eVu1m5E
4. 천조국 관객 클라스, '인피니티 워 리액션'
https://youtu.be/aKr-hZJtBcU
5. 어벤져스 어셈블, '어벤져스: 엔드게임 리액션'
https://youtu.be/X5MqhEaF3Is
6. 예고편에서 히나만 모아봤다, '날씨의 아이 히나 예고편'
https://youtu.be/BWPZiHAm9no
7. AV보다 야하다,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 리뷰'
https://youtu.be/rXgpROvqxvo
8. 불매운동 중에 일본 애니를? '불매운동과 일본 애니메이션을 알려드림'
https://youtu.be/ow10tiErTiU
9. 라이온킹은 애니메이션과 얼마나 똑같을까?
https://youtu.be/O4TpyQm9L_M
10. 토니는 영화에서 멱살을 얼마나 잡힐까?
https://youtu.be/v7au_Lx_NF4※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연락처
adonai0919@gmail.com※ 트위치
https://www.twitch.tv/sura_chtr※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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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사제들의 뒤를 잇는 "검은 수녀들" / 단순하지만 독특한 설정 / 크게 무섭지 않은 순한 맛 호러 /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검은 수녀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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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신세계로부터> 공식 예고편
눈 앞에 펼쳐진 동화 같은 세계?! 원하는 모든 것이 실현되는 유토피아에서 예측불허! 상상초월 '신세계'가 펼쳐진다! 이승기x은지원x김희철x조보아x박나래x카이 《신세계로부터》 11월 20일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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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헬로, 굿바이,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것> 공식 예고편
대학에 들어가기 전 헤어지기로 약속한 클레어(탈리아 라이더)와 에이든(조던 피셔)은 연인으로 보내는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데이트에 나선다. 첫 만남부터 첫 키스, 그리고 첫 다툼까지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는 두 사람. 이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결정적 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우리 계속 연인으로 남아야 할까, 아니면 영원한 작별을 고해야 할까. 제니퍼 E. 스미스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인기 시리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제작진이 만든 매력적인 로맨틱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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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둘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2025년을 맞이한 지 어느새 일주일이 지난 지금!
신년을 맞은 극장가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금주에는 대작 영화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대표적인 감독 마이클 만의 신작 <페라리>부터 ‘천재 작가’라고 불리우는 아사노 이니오의 SF 만화를 원작으로 한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히든페이스>에 이어 빠르게 차기작으로 돌아온 박지현 주연의 <동화이지만 청불입니다>, 세계적인 팝 스타 퍼렐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레고 무비로 담은 <피스 바이 피스>까지 고루고루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번 주 관객의 선택을 받게 될 영화는 무엇일까요?
페라리
FERRARI
개요: 드라마 | 미국, 이탈리아, 영국 | 131분
감독: 마이클 만
주연: 아담 드라이버, 페넬로페 크루즈, 쉐일린 우들리
개봉: 2025.01.08.
배급: CJ ENM
줄거리
1957년, 전세계를 뒤흔든 '페라리'의 충격 실화가 드러난다!
파산 위기에 놓인 '엔초 페라리'. 회사 존폐의 기로에서 사사건건 충돌하는 아내 라우라. 아들 피에로를 페라리 가로 인정하라고 압박하는 또다른 여인 리나.
평생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기 직전인 1957년 여름, 이탈리아 전역 공도를 가로지르는 광기의 1,000마일 레이스 '밀레 밀리아'에서 엔초 페라리는 판도를 뒤집을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데...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Dead Dead Demon's Dededede Destruction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120분
감독: 토모유키 쿠로카와
주연: 이쿠라, 아노, 타네자키 아츠미, 시마부쿠로 미유리, 오오키 사에코, 와키 아즈미, 시라이시 료코
개봉: 2025.01.08.
배급: (주)올랄라스토리, 롯데컬처웍스(주)롯데시네마
줄거리
정체불명 초거대 우주 모함 도쿄 상공 출현! 내일 지구가 폭망해도 오늘을 즐기는 하이텐션 고교 라이프! 3년 전 그날 이후 조용하지만 착실히 멸망은 진행 중…
아이도 어른도 아닌 우리, 일상도 비일상도 아닌 그때. 모든 게 불확실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선명했습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절대적’이란 것!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FORBIDDEN FAIRYTALE
개요: 코미디 | 대한민국 | 109분
감독: 이종석
주연: 박지현, 시원, 성동일
개봉: 2025.01.08.
배급: ㈜미디어캔, ㈜영화특별시SMC
줄거리
동화 작가가 꿈이지만 현실은 불법 음란물 단속팀 새내기인 ‘단비’는 스타 작가를 찾던 성인 웹소설계 대부 ‘황대표’와 우연한 사고로 노예 계약을 맺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19금 소설을 쓰게 된다.
생전 접한 적 없는 장르를 집필하는 데 난항을 겪던 ‘단비’는 음란물 단속을 하다 권태기에 빠진 선배 ‘정석’의 응원과, 친구들의 생생한 경험담에 힘입어 어느새 자신도 알지 못했던 성스러운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데…
피스 바이 피스
Piece by Piece
개요: 애니메이션 | 미국 | 93분
감독: 모건 네빌
주연: 퍼렐 윌리엄스, 스눕 독, 스웬 스테파니, 켄드릭 라마, 저스틴 팀버레이크
개봉: 2025.01.08.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제 이야기를 레고로 만들면 쩔거 같지 않아요?”
창조의 귀재, 현존 최고의 아티스트 ‘퍼렐 윌리엄스’ 제이 지, 켄드릭 라마, 저스틴 팀버레이크, 스눕 독의 샤라웃을 받은 음악의 신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모두 작품이 된다!
레고로 그려내는 ‘퍼렐윌리엄스’의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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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함없는 20년 지기 영국 누나의 사랑학개론
역시 이 누나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좋아할 수밖에. 2000년대 초반에 만났을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2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젠 두 아이의 엄마이자 50줄에 접어든 브리짓 존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스럽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던 브리짓 존스의 변함없는 매력을 전하는 동시에 조금 더 성숙해진 사랑의 개념을 그녀의 에피소드를 통해 전한다. 1편부터 그녀와 함께 걸어온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는 그 자체로 반가운 작품이다. 그것도 눈물 나게.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의 아침은 전쟁터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을 등교시켜야 하는 그녀는 매일 이 쉽지 않은 일을 해낸다. 몇 년 전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남편 마크 다시(콜린 퍼스)가 이었으면 더 수월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녀는 현실을 마주하며 특유의 웃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그러던 어느 날, 브리짓은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다이어리를 다시 쓰고, 방송국에 취직해 일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도 시작한다. 그것도 20대 꽃미남 록스터(리오 우달)과의 열정적인 사랑을. 더 나아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동년배 교사 스콧(추이텔 에지오포)과도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가 30대 여성의 현실을 보여준 것처럼, 네 번째 시리즈인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극 중 브리짓 존스의 나이에 맞게 50대 여성들의 현실을 조명한다. 예전처럼 그녀는 불투명한 미래와 진정한 사랑 찾기에 상처받고, 외로워하며, 이를 술과 애정하는 친구들과의 수다로 풀지 않는다. 나이를 먹었고,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입장이며, 사별의 아픔도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예전처럼 당당함과 용기도 줄어들었다.
50대라면 충분히 공감대를 살 이야기를 전반부에 뿌린 영화는 이를 발판 삼아 20대 남자와의 불같은 사랑으로 환기한다. 현실에서 쉽게 이뤄질 수 없는 판타지이지만, 브리짓은 이 잊고 지냈던 뜨거운 감정으로 점점 화사하게 빛난다. 그리고 우중충했던 과거의 삶과 안녕을 고한다. 중요한 건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열병과도 같은 이성과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그 범위를 확장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금은 성숙해진 브리짓처럼 영화 또한 시리즈의 중심축인 ‘사랑’의 개념을 확장하고 성숙한 시선으로 표현한다. 사는 환경이 변했고, 위치가 달라졌고, 더 챙겨야 하는 이들이 많아진 브리짓 존스의 중요한 선택들은 전작들보다 현실적이고, 그 자체로 공감대를 갖는다. 이를 통해 동년배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는다. 어쩌면 이 부분이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주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이번 영화는 단순히 추억 팔이에만 무게 중심을 둔 작품은 아니다. 중년여성으로서 갖는 고민과 두려움을 충분히 들려주고, 이를 조금씩 타파해 가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브리짓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전작들에 비해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어 이어진다는 점에서 짜임새는 헐겁다.
이런 단점에도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의 8할은 르네 젤위거에서 나온다.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는 기분 좋게 만드는 그의 모습은 이 영화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해맑은 눈웃음만 봐도 마음을 열리게 하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이 계속 이어지는데, 순간 20여 년전 처음 만났던 그때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나이가 들어도 엄마가 되어도 2%, 아니 20% 부족하지만, 여전히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 캐릭터는 르네 젤위거만이 연기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런 모습을 조금 더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예전에 입었던 파자마와 음악, 상황 등을 만든 제작진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다니엘 역에 휴 그랜트를 비롯해, 시리즈에 출연했던 다수의 배우가 등장하는데,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그리 반가울 수 없다. 특히 르네 젤위거와 마찬가지로 다니엘 역을 맡은 휴 그랜트 또한 그 매력이 변함없다. 그 또한 세월을 비껴갈 수 없었지만, 과거 다니엘의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 매력은 그대로 선보인다.
영화는 브리짓 존스와 함께 늙어가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겠지만,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2~30대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건 사실이다. 전작에 나왔던 명장면을 패러디하고 주요 아이템을 오버랩시키는 등 팬들만이 아는 즐길 구석이 의외로 많다. 만약 이 영화를 심드렁하게 봤다면 집에서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꼭 한 번 보기 바란다. 50대의 브리짓도 20년전에는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실패를 경험하고 용기를 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변함없이 사랑스럽다는 것도. 제2의 인생을 위해 오늘도 웃는 브리짓을 응원한다. 영원히~덧붙이는말: 쿠키는 없다. 하지만 엔딩크레딧과 함께 전 시리즈의 스틸이 화면을 수놓는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브리짓 존스와 마크 다시, 다니엘, 그리고 지금도 이 영화 안에서 숨 쉬고 있는 모든 인물의 모습은 그 자체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눈물 나는 감동도 전한다. 시리즈의 팬이라면 손수건은 필수니 꼭 가져가길 바란다.
사진 제공: 유니버셜 픽쳐스
평점: 3.0 / 5.0
한줄평: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좋은 영국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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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날 우리> - '첫사랑을 완성하는 마침표‘
여름날 우리 (你的婚礼, My Love, 2021)
개봉일 : 2021.08.25 (한국 기준)
감독 : 한톈
출연 : 허광한, 장약남
'첫사랑을 완성하는 마침표‘
2018년에 개봉한 박보영, 김영광 배우 주연작 <너의 결혼식>의 중국 리메이크판 영화 <여름날 우리>. 많은 관객들이 답답하고도 애타는 현실 청춘 로맨스의 정석이라 이야기했던 <너의 결혼식>의 리메이크 작이라는 정보와 소지섭 배우의 투자, <상견니>로 온갖 사랑의 기억을 조작했던 허광한 배우의 출연 소식으로 화제를 모은 <여름날 우리>가 <너의 결혼식> 개봉 3주년이 지난 2021년 여름, 한국에서 개봉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원작인 <너의 결혼식>을 봤을 때 가장 먼저 이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여름날 우리>를 보고 나서도 똑같이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름답고 찬란하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소중한 첫사랑의 추억. 그 추억이 아무리 빛나고 애탄다고 한들, 내가 붙잡을 수 없다면,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결국은 보내줘야 한다.
원작 <나의 결혼식>과 리메이크작 <여름날 우리>는 인생을 바꿔 놓은 첫사랑과, 우리를 위해 열심히 달려온 오랜 시간, 그리고 오래된 청춘의 추억을 보내주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른 건 걱정하지 않고 마치 사랑에 눈이 먼 사람처럼 달려온 행복했던 날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사랑의 부드러운 위로와 사랑 앞에서 초라하게 무너졌던 순간들. 그리고 결국은 놓아줘야 했던 마지막까지. 인생에 한 번뿐 이기에 더욱 지키고 싶었고, 잊고 싶지 않았던 그를 보내주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한다.
가슴이 미어질 만큼 미안했고, 그래서 더 고마웠던 나를 만들어준 ‘첫사랑’. 사실 내 첫사랑은 이토록 싱그럽고 아프고 아름답진 않았지만, 이런 영화들을 보고 있다 보면 괜히 내 첫사랑도 웅장하고 아름답게 포장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의 첫사랑은 이럴 수도 있구나.. 괜히 부럽기도 하고 말이다. 조금 지질해 보일 수도 있지만 만약 나의 약혼자가 이들과 같은 청춘, 첫사랑의 기억을 가졌다면 질투 나서 결혼을 못 할 수도 있겠다-싶을 만큼 이들의 이야기는 빛이 난다.
단일 감정이 아닌 행복, 슬픔, 죄책감, 고마움, 설렘, 믿음, 애정 같은 여러 빛깔의 감정이 한곳에 모여 만들어진 ‘사랑’이라는 감정. 그것은 나의 실수를 뼈저리게 후회하는 순간에도, 뜻대로 되지 않고 끝없이 엇갈리는 상황을 맞이한 순간에도 ‘그를 만난 걸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힘이다.
나의 청춘, 나의 죄책감, 나의 아픔을 모두 담은 나의 첫사랑.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가진 것 없는 맨몸인 걸 알면서도 용감하게 그 감정에 뛰어들 수 있었던 싱그러운 젊은 날의 후회 없는 사랑의 끝맺음을 담은 <여름날 우리>. 맞춤양복 대신 소녀의 그림이 담긴 셔츠를 입는 장면, 불꽃놀이 장면 등 원작과 같은 듯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변화된 장면들과 비 오는 날 땡땡이 치던 날의 추억, 두 사람이 벤치에서 이별을 말하던 순간처럼 원작의 장면이 절로 떠오르는 장면들을 각각 비교하고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원작을 아꼈던 관객이라면 <여름날 우리>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약간은 오글거리고 뻔하기도 하고, 끝없이 애타는 순간도 있지만, 청춘 로맨스물의 매력은 이런 순간들에서 오는 게 아니던가.
여름날 우리 시놉시스
처음이었다, 사랑이 싹트는 기분 너에게 풍덩 빠져버렸던 17살의 여름. 너를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21살의 여름. 그리고 몇 번의 여름이 지나고 다시 만난 너, 이젠 놓치지 않을 거야. “널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오직 눈앞의 수영장과 싸움에만 시선을 던지던 단순한 소년의 세상에 한 소녀가 향긋한 바람을 몰고 온다. 수영장(yóuyǒngchí)와 비슷한 발음의 이름을 가진 소녀 ‘요우 용츠’. 그녀는 수영장에 꽂혀있던 소년 저우 샤오치의 시선을 단박에 빼앗고 그의 청춘의 중심이 된다. 구제불능이었던 저우 샤오치는 요우 용츠를 위해 무모한 경기를 치르기도 하고 그녀에게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모든 힘을 짜내 공부를 한다. 저우 샤오치가 수영부 주장 샤크와 내기를 걸 때, 요우 용츠는 저우 샤오치가 지지 않을 거라며 믿음을 보여주고 요우 용츠가 보낸 믿음과 그녀의 존재는 저우 샤오치의 발전 원동력이 된다.
“풋사랑은 그렇다. 느닷없이 시작되고 또 그렇게 끝난다.”
소년의 사랑은 소녀와 함께 비를 맞던 날 더욱 깊어지고, 또다시 비가 내리던 날 갑자기 끝난다. 깨져버린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요우 용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맞이한 첫 번째 이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기적적으로 다시 만난 요우 용츠는 이미 다른 인연을 만났고, 현실은 저우 샤오치가 꿈꿨던 모습과 달랐다. 저우 샤오치의 시선은 여전히 요우 용츠를 향해 있지만 요우 용츠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있다. 두 사람의 시선은 매번 미묘하게 엇갈린다. 베프라고는 말하지만 왠지 특별한 이유 없이는 연락하면 안 될 것 같은 애매모호한 사이. 첫사랑이긴 하지만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 버린 듯한 사이. 항상 그를 생각했지만 맞지 않았던 타이밍의 반복. 두 사람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맴돌던 두 사람의 사이가 진전이 되는 계기는 슬프게도 ‘상처’때문이었다. 저우 샤오치는 요우 용츠를 구하려다 어깨 부상을 입게 되고, 저우 샤오치를 간호하던 요우 용츠는 사랑과 그 위에 얹어지는 죄책감의 무게를 함께 받아들인다.더 이상 좁혀지지 않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저우 샤오치의 사고를 계기로 한걸음 나아가게 된다. 두 사람은 분명 서로를 사랑했고, 사랑을 통해 행복을 얻는다. 하지만 그 밑에 깔려있던 상대를 향한 죄책감과 ‘어쩌면’이라는 후회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연인을 향한 죄책감과 후회는 사랑 밑에 숨어 사랑을 의미 없이 지속시키기도 하고 현실과 힘을 합쳐 끝내 사랑을 부숴버리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선수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저우 샤오치는 “내가 그 트레이너보다 더 잘할걸요”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거절했던 체육관 전단지를 손에 한가득 쥐고 있다. 저우 샤오치의 서포트를 통해 용기를 얻은 요우 용츠는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지만 저우 샤오치는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는다. 두 사람의 세계는 그렇게 나뉘어버린다. 저우 샤오치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너를 위해서”가 “너 때문에”로 변하기 시작하자 화살은 연인 요우 용츠에게로 향한다. 우리 둘만 있으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던 미래는 결국 현실이 되지 못했고 두 사람은 후회 주변을 맴돌다 사랑을 끝낸다. 이제 사랑이 아닌 나를 위해 살자는 다짐을 나누면서.
“우리 15년 뒤에 뭐 하고 있을까?”
꼬치집 앞에서 함께 15년 뒤를 그리던 소년과 소녀는 어느덧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어른이 됐다. 잊을 수 없는 첫사랑과 청춘의 기억을 뒤로 미뤄두고 현재를 찾은 어른 말이다.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32살의 나와 너. 첫사랑인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17살의 나와 우리. 하지만 이제는 살며시 내려놔야 할 추억들. 많이 행복했기에 그만큼 아팠고 서툰 마음에 저질렀던 실수들이 후회로 남은 불완전한 사랑이었지만 그 어떤 사랑도 대신할 수 없는 ‘첫사랑’이 가진 향으로 가득했던 소중했던 우리의 어린 여름날. 두 사람은 쉼 없이 바라보고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후회보단 고마움으로 가득한 첫사랑과 오랜만에 시선을 맞추며 지나간 우리의 사랑을 정리한다. 항상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조금씩 어긋나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이젠 상대가 아닌 온전히 ‘나의 앞에 펼쳐진 길’로 향하는 순간이다.
소녀는 어느덧 입고 싶었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되었고 소년은 소녀의 손을 담백하게 맞잡고 그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남자가 되었다. 첫사랑이라는 단어의 무게와 죄책감만으론 지킬 수 없었던 사랑을 마무리 짓고, 서로를 등지고 걸어나가는 두 사람 뒷모습이 무겁기보단 홀가분해 보인다. 미련 없을 만큼 열심히 사랑했기에 이별의 순간마저 빛났던, 영원히 기억될 단 하나의 첫사랑이란 이야기에 마침표가 찍힌다. 더 이상 더해질 수도 지워질 수도 없는 찬란한 첫사랑은 이렇게 완성된다.
“내가 없어도 기억하길. 이 순간은”
두 사람은 결국 완전한 이별을 맞이한다. 당장은 그가 아련하게 떠오를지 몰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그를 잊어갈지도 모른다. 함께한 시간인 15년 정도가 더 지나고 나면 그의 얼굴, 목소리와 특징들을 잊고 그저 ‘첫사랑’이라는 존재로만 기억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첫사랑에 빠진 그때의 나, 나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첫사랑의 존재와 그에게 빠져있던 행복한 순간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완벽하든 완벽하지 않았든 ‘첫사랑’이란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단어니까.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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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에 가려진 현실을 들추는 로맨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화려한 패션으로 무장한 이 도시는 수많은 영화에서 로맨틱하고 사랑이 꽃피울 것만 같은 부드러운 인상으로 등장했다. 파리의 예술에 대한 판타지가 집약된 로맨스로 유명한 <미드나잇 인 파리>나 시즌 2까지 공개되어 큰 인기를 끈 <에밀리, 파리에 가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국 그래픽 노블 작가의 단편 세 편을 각색한 자크 오다아르 감독의 <파리, 13구>는 다르다. 파리의 20개 행정구역 중 하나로 유럽에서 가장 큰 아시아 타운이 있는 파리 13구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파리는 그저 흑백 필름의 배경일뿐이다. 우연적인 만남은 있을지언정 그 만남은 드라마 같은 낭만적 사랑 이전에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 그렇게 영화는 절제된 도시의 느낌과 배경을 통해 청춘의 사랑, 자유, 방황, 불안정한 삶을 온전히 전해 준다.
오다아르 감독이 그려내는 파리는 첫 장면에서부터 알 수 있다. 텅 빈 도시의 밤거리를 비추던 카메라는 이내 불 켜진 창문들을 칸칸이 스쳐 지나간다. 네모난 칸 안에 분절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칸 안에서 비슷하게 또 다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채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 외로움은 서로 다른 캐릭터의 모습으로, 또 그들 간의 관계와 섹스 안에서 등장한다. 사랑을 갈구하는 '에밀리(루시 장)',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 채 쫓기만 한 '카미유(마키타 삼바)', 다른 이를 사랑하는 일이 두려운 '노라(노에미 메를랑)', 사랑이 값비싼 '앰버 스위트(제니 베스)'가 그들이다. 영화는 제각기 처한 상황과 사랑과 삶을 마주하는 태도가 다른 이들이 우연히 스치고 만나는 시간과 그 시간에 담긴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첫 만남은 에밀리와 카미유의 만남이다. 파리 정치 대학을 졸업하고도 OTT 멤버십 가입을 권유하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에밀리는 룸메이트를 구하다가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학교 선생일을 하는 카미유를 만난다. 첫 순간부터 카미유와 눈이 맞은 에밀리. 그녀는 함께 섹스를 할 때 비로소 자신을 옥죄는 가족을 잊고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그녀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고, 가장 자기 자신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에밀리만 카미유를 사랑한 일방향적 관계는 이내 틀어진다. 카미유와 다른 여자 친구인 스테파니를 집에 들인 것을 두고 갈등을 빚은 끝에 카미유가 집을 나가 버리고, 에밀리 본인도 성적인 뉘앙스로 고객 응대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다음 만남은 노라와 엠버 스위트의 만남이다. 고향에서의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홀로 서기를 하기 위해 30대 초반에 법대생으로 파리에 온 노라. 그러나 그녀는 신입생들과 어울리기 위해 참석한 파티장에서 쓴 금발 가발 때문에 포르노 모델인 엠버 스위트와 동일 인물이라는 오해를 산다. 학교에서 야유를 당한 노라는 결국 신과 닮았다는 포르노 배우 엠버 스위트와 직접 유료 채팅을 시작한다. 엠버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노라. 포르노 사이트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본명을 쓰는 노라를 보면서 엠버도 자신의 본명을 알려주고, 둘은 개인 계정을 통해 화상 채팅을 이어가며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로 발전한다.
다음은 노라와 카미유다. 학교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던 노라는 휴학을 선택한 뒤, 고향에서 원래 종사했던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자 카미유가 친구 대신 운영하던 사무실에 취직한다. 에밀리와 몸을 섞으면서도 마음을 주지는 않았던 카미유지만, 그는 능력 있고 매력적인 노라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장벽이 있다. 노라는 카미유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분위기에 맞춰 자신의 감정과 몸의 반응을 연기한다. 이미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엠버에게 큰 위로를 받고 있던 노라에게 진실되지 않은 카미유와의 만남은 매력이 없다. 그런 노라를 보면서 카미유는 카미유대로 에밀리에 대한 생각을 지우지 못하며 그녀와 재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인 고객의 통역을 위해 부동산 사무실에 들른 에밀리를 보고, 노라는 카미유에게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이들의 만남은 항상 섹스와 쾌락이 우선하고, 그다음에 사랑과 관계에 대한 고뇌가 뒤따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그 고뇌가 단지 로맨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각 캐릭터의 삶에 관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처음 만난 날부터 즉각적인 육체관계를 갖는 에밀리와 카미유, 그저 대화를 원한다는 노라에게 망설이지 말고 원하는 서비스를 말해보라는 엠버, 각자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관계를 맺는 카미유와 노라. 이것이 세 여성과 한 남성이 만들어 낸 관계도다. 이 관계도는 통상적인 사랑과 쾌락의 관계가 뒤바뀐 듯하고, 무척이나 가볍지만 무시할 만한 무게는 아닌 감정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파리, 13구>는 인터넷으로 만난 관계는 진지할 수 없다는 통념을 조금씩 벗겨내는 감정, 희미한 호감이 있지만 적극적 구애로 전환하기는 애매한 감정이 빚어내는 현대적 사랑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때 영화는 단지 중심 없이 혼란스러우며, 두루뭉술한 사랑의 그림을 보여주는 데에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림 밑바탕에 있는 스케치의 모습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 스케치는 청년들이 확신에 찬 사랑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시대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그 핵심은 불안감이다.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사회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이에 사랑은 부차적인 이슈가 된다. 경제적 조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믿지 못하고, 그 불안감으로 인해 사랑을 잡을 날을 요원해진다.
에밀리, 카미유, 노라, 앰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만남은 어느 로맨스 영화처럼 우연으로 시작되지만, 그 우연은 곧장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감정들은 사랑에 앞서 삶을 돌아보고 뒤바꾸는 기회가 되고, 그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기회가 된다. 에밀리는 직장과 집을 오가며 답답한 삶을 살았지만, 카미유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수입원이 사라지고, 가족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며,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에 이르기까지 언젠가 필요했을 변화의 순간을 초래한다. 노라에게 일어나는 변화도 다르지 않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가벼운 성욕 너머에 있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캐릭터들의 진짜 외로움이다. <파리, 13>가 '낭만의 도시’라 불리는 파리를 흑백으로 담아내어 전달하려는 건 이 혼란스러운 감정의 흐름이다. 그래서 영화는 현재의 사건과 대화를 인물들을 둘러싼 과거의 배경과 사연으로 눈으로 돌린다. 대만계인 에밀리의 가족을 통해, 카미유의 가족을 통해, 화상 채팅을 통해 그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왜 그들이 사랑에 집착하고 또 사랑을 알지 못하는지를 납득시킨다. 적나라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사랑의 감정은 카미유가 동생 에포닌과 오해를 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외적으로 닮았지만 전혀 다른 이들이 담담히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결과, 클라이맥스의 키스신은 덜 섹슈얼하더라도 그 어떤 장면보다도 농도가 높고, 외로운 청춘들의 욕망은 깊은 계곡을 넘어 낭만적 사랑으로 마무리된다.
네 주인공의 만남과 욕구, 사랑의 서사를 더욱 진하게 만드는 것은 감각적 요소, 특히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의 활요이다. 우선 영화는 흑백 촬영을 선택해, 파리에 기대하는 일반적인 이미지에 변화를 주었다. 화려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도시의 색을 없앴다. 그 덕분에 쾌락과 섹스처럼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 너머에 있는 이야기들에 집중할 수 있다. 자칫 매우 자극적인 영상의 향연일 수 있었지만 파리라는 도시를 이루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제한적으로 등장하는 음악의 존재감은 네 주인공의 삶의 무게를 극대화한다. 내용이 전환될 때 들려오는 빠른 템포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와 대비를 이루며 이질적인 인상을 준다. 이는 마냥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사정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청춘들의 이면을 음악으로 담아냈다고 할 수 있겠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에 따르면 “<파리, 13구>는 현시대를 보여주는 시대극이라 말할 수 있다.” “이 도시에 사는 등장인물이 성취감을 얻고, 성적인 면에서는 정체성을 깨닫고 쟁취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던 포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리 13구역에서 성장통을 겪는 네 명의 캐릭터들은 다양한 배경과 문화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느껴진다. 그렇게 <파리, 13구>는 육체적 쾌락에서 시작해 낭만적 감성을 충족시키며 파리의 색다른, 또 색이 없는 사랑을 그려낸다.
A(Accepatble, 무난함)
낭만을 잠시 버린 파리의 색다르고 색 없는 사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