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08-17 06:56:32
[JIMFF 데일리] 메탈, 일상과 사회의 불안함을 극복하다
폐막작 '사이렌' 리뷰
감독: 리타 바그다디 / Rita Baghdadi
출연: Lilas Mayassi, Shery Bechara, Maya Khairallah
시놉시스: 베이루트 외곽에서 활동하는 릴라스와 그녀의 스래시 메탈 밴드 멤버 셰리, 마야, 알마와 타티야나에게는 큰 꿈이 있지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기대를 품고 참가한 영국의 음악 축제도 그들의 생각대로 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던 릴라스는 붕괴 직전의 레바논을 목격한다. 설상가상으로 릴라스와 동료 기타리스트 셰리의 복잡한 우정에도 금이 가기 시작하고... 밴드, 국가, 꿈 모두가 위기에 처한 릴라스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사이렌' 속 레바논의 한 뉴스 앵커는 스래시 메탈 밴드, 슬레이브 투 사이렌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흔히 메탈 음악은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왜 당신들은 일상적인 소재를 가사로 다루냐고. 그러자 리더인 릴라스는 이렇게 답한다. 조부모들이 태어난 이래로 레바논은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레바논에서 사는 일상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주제라고 생각한다고. 이 문답은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리타 바그다디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사이렌'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준다.

일상에 힘을 주니 사회가 보인다
사실 '사이렌'이 단지 릴라스와 셰리를 비롯한 밴드 멤버들의 개인사만 보여주려는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은 도입부에서부터 알 수 있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시위대가 거리를 점거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만큼, 이 작품에 레바논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있음은 명백하다.
그런데 영화는 레바논의 사회적 문제점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는다. 대신 밴드 멤버들의 일상에 주목한다. 돈이 되지 않는 밴드가 영국 글래스턴베리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벌에 가서 유명세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나 릴라스가 동성 연인을 두고 어머니와 벌이는 갈등이 스크린을 채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학교에서 음악 교사로도 일하는 랄라스의 모습, 앨범에 들어갈 노래의 키나 템포를 놓고 세리와 릴라스가 충돌하는 것도 그들의 일상을 장식한다.
하지만 일상 자체가 고통이라는 릴라스의 말대로, 힘을 주지 않아도 스쳐 지나가는 그들의 일상에서는 레바논의 사회적 문제가 엿보인다. 좀처럼 성공하기 힘든 메탈 밴드의 현실은 표현의 자유조차 보장될 수 없는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의 사회문화적 측면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릴라스와 엄마의 말다툼도 동성애를 사회악으로 치부하는 억압적인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릴라스와 셰리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여성밴드는 대타가 없다"는 말은 여성으로서 메탈 밴드에서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비주류적인 활동인지를 보여준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시위대 옆에서 주인공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기에 오히려 일상과 사회가 연결되는 지점은 흥미롭다. 이러한 다양한 갈등 덕분에 '사이렌'은 다큐멘터리지만 극영화 같기도 하다.

일상과 사회를 잇는 메탈 밴드와 음악
물론 영화의 의도가 직설적으로 엿보이는 장면이 없지는 않다. 베이루트 항구 폭발사고를 다루는 대목이 그렇다. 이 사고는 레바논의 정치와 경제를 모두 혼란에 빠트린 대형 사고였고, 순전히 사고인지 아니면 인위적인 테러인지도 아직 불명확하다. 이때 영화는 릴라스와 셰리의 갈등을 이 사건과 곧장 이어 붙인다. 그저 일상적일 수 있는 갈등이 모이고 모이다 보면 레바논의 수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거대한 폭발처럼 커질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처럼.
바로 이 지점에서 메탈 밴드와 그들의 음악이 갖는 힘이 존재감을 발휘한다. 깊어지던 릴라스와 셰리의 충돌은 진솔한 대화 이후 더 끈끈한 우정으로 모습을 바꾼다. 이렇게 밴드 내의 반목이 사라지자 그들이 준비하는 앨범의 트랙 리스트는 멤버 모두가 만족할 만한 명곡으로 채워진다. 밴드가 하나 되자 그들의 문제는 해결된다. 혼자라면 무서울 검고 어두운 터널도 함께 걸으면 그렇지 않듯이.
그래서 무너진 신전을 배경으로 오케스트라와 합동 공연을 펼치는 슬레이브 투 사이렌의 모습 역시 상대적으로 짧게 지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인상적이다. 혼란스러움과 불안함, 우울함이 가득한 일상을 극복하듯이 다양한 문제가 산적한 레바논 사회도 전진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렬한 메탈 합주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거대하고 화려한 무대를 꾸미는 슬레이브 투 사이렌이 보이는 엔딩 크레디트 덕분에 그 믿음은 더욱 강해진다.

그들이 '사이렌의 노예'인 이유
특히 밴드 멤버들이 다름 아닌 사이렌의 노예라는 점에서 그 믿음은 더욱 특별하다. 본래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 속 등장하는 괴물이다. 상반신은 여성,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한 이들은 지중해의 한 섬에서 감미로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직 오디세우스만이 돛대에 자신을 묶은 채로 사이렌의 노래를 들어 유혹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이렌과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괴물에 불과했던 사이렌의 존재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오디세우스는 기존 질서를 회복하려는 영웅이다. 그렇기에 그를 유혹해 파멸시키려는 사이렌의 존재는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려는 모든 타자를 상징한다. 동성애자나 여성 메탈 밴드 멤버,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시위대처럼. 즉, 사이렌의 노래는 그저 사회를 위협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당당히 발화하는 주체, 억압되고 무시당했지만 언제나 사회 안에 잠재되어 있던 주체의 목소리이자 힘의 가능성이다. 이것이 '사이렌'의 메탈 음악에 담긴 진짜 힘이자 의미다.
그래서 '사이렌'이라는 노래를 들려주는 영화는 제목부터 마지막 크레디트까지 한 톨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다.

Schedule in JIMFF
2022-08-14 20:30 CGV 제천 1관
2022-08-15 16:30 메가박스 제천 1관
2022-08-16 20:30 의림지 무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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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리뷰/행복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찬실이는복도많지#강말금#독립영화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다들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영화는 제가 보고 올게요! 마스크 꼭 쓰고 다니세요~ 토요일엔 역사 컨텐츠가 올라갑니다. 참고로 엔딩곡 꼭 듣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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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꿈꾸는 고양이> 메인 예고편
우리는 개발로 인해 유용한 삶을 누리게 되겠지만
그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존재들이 있다는 건 잘 알지 못한다.
건물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길 위 고양이들의 삶.
우린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지켜줄 수 있을까?
무너지는 그곳에서 만난 아이에게 꿈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공존하는 삶을 꿈꾸는 여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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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트위스터스> 2차 예고편
올 여름, 역대급 토네이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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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넷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연말에 다소 무거웠던 <서울의 봄> <노량: 죽음의 바다>를 벗어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소재의 영화로 관객들에게 찾아온 <시민 덕희>!
영화는 실화바탕의 '보이스 피싱' 소재로 통쾌한 스토리를 들려줄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이번주 개봉예정작 같이 만나보실까요?
시민 덕희
Citizen of a Kind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14분
감독: 박영주
출연: 라미란 공명 염혜란 박병은 장윤주 이무생 안은진 등
개봉: 2024.01.24.
배급: ㈜쇼박스
시놉시스
내 돈을 사기 친 그 놈이 구조 요청을 해왔다! 세탁소 화재로 인해 대출상품을 알아보던 생활력 만렙 덕희에게 어느 날, 거래은행의 손대리가 합리적인 대출상품을 제안하겠다며 전화를 걸어온다. 대출에 필요하다며 이런저런 수수료를 요구한 손대리에게 돈을 보낸 덕희는 이 모든 과정이 보이스피싱이었음을 뒤늦게 인지하고 충격에 빠진다. 전 재산을 잃고 아이들과 거리로 나앉게 생긴 덕희에게 어느 날 손대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는데… 이번엔 살려달라는 전화다! 경찰도 포기한 사건, 덕희는 손대리도 구출하고 잃어버린 돈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필살기 하나씩 장착한 직장 동료들과 함께 중국 칭다오로 직접 날아간다.
CINE PICK!
이 영화는 2016년에 발생한 사건을 모티브로 경기도 화성시에서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던 김성자씨의 보이스피싱 사기로 직접 보이스피싱 총책의 사진, 은신처 정보, 중국에 소재한 사무실 주소 등을 모아 경찰에 제출하며 경찰이 총책을 검거하는데 성공한 실화 사건을 영화로 옮긴 작품입니다.
넥스트 골 윈즈
Next Goal Wins
ⓒ 네이버영화
개요: 코미디 | 미국, 영국 | 104분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오스카 카이틀리 등
개봉: 2024.01.24.
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인성 논란으로 퇴출 위기에 놓인 축구 감독 ‘토머스 론겐’은 31: 0이라는 기록적인 패배로 창설 이후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FIFA 랭킹 최하위 아메리칸사모아 국가 대표팀의 감독을 어쩔 수 없이 맡게 된다. 승률 제로, 단합 제로, 용기 제로 모든 것이 부족한 선수들과 ‘론겐’은 고군 분투하게 된다. 그들의 목표는 승리도, 우승도 아닌 오직 한 골!
CINE PICK!
<조조 래빗> <토르: 라그나로크>의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과 <엑스맨: 아포칼립스>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연기력을 보여준 마이클 패스벤더가 만난 영화로 2014년에 나온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바탕으로 미국령 사모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2014fif a 월드컵 브라질 오세아니아 1차예선 시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클럽 제로
Club Zero
ⓒ 네이버영화
개요: 미스터리, 스릴러 |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 | 110분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출연: 미아 와시코브스카 외
재개봉: 2024.01.24.
배급: 판씨네마㈜
시놉시스
STEP 1. 깊게 심호흡하고 눈앞의 음식에만 집중해 보세요 STEP 2. 한 번에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어보세요 STEP 3.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세요 모든 단계를 통과한 여러분을 이제 ‘클럽 제로’의 회원으로 임명합니다! 최고급 기숙사 시설에서 학생들에게 일대일 특별 교육을 제공하는 엘리트 학교의 새로운 영양교사로 임명된 ‘미스 노백’. 건강을 유지하면서 학습 능력을 키우는 ‘의식적 식사법’을 가르치는 ‘미스 노백’의 다정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수업에 아이들은 점차 빠져들게 되고 더 극단적이고 위험한 식사를 이어가는데…
CINE PICK!
<슬픔의 삼각형> 제작사 참여, <스토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미와 와시코브스카의 만남으로 영화 <클럽 제로>는 독특한 식사법을 설파하는 미스 노백과 이를 맹목적으로 믿는 앨리트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영화입니다.
도그맨
DOGMAN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프랑스, 미국 | 115분
감독: 뤽 베송
출연: 케일럽 랜드리 존스 외
개봉: 2024.01.24.
배급: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뉴저지의 한 도심, 핑크 드레스에 짙은 화장을 한 남자가 수백 마리의 개와 함께 긴급 체포된다. 아무런 진술도 하지 않던 그는 정신과 의사에게 15년간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개들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한 남자의 쇼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진다!
CINE PICK!
<도그맨>은 안티히어로가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는 휴먼드라마로 <레옹> <루시>를 연출한 뤽 베송 감독이 연출을 맡으며 2021년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케일럽 렌드리 존스, 폭스테리어, 도베르만, 그레이하운드와 같이 열연을 펼칩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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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의 천국은
자유와 번영의 나라가 반듯하게 서 있는 곳. 이곳은 불과 몇 백 년 전까지 황량한 땅이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이들 바로 뒤에는 경제적 자유를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미국은 그렇게 태어났다. 다른 모든 건국처럼 이 건국에도 명과 암이 있었다.
자유와 금을 향한 거침없는 행보는 명암 모두 강렬했다. 역사책뿐 아니라 영화사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서부의 휑한 땅에 있는 마을, 주로 보안관으로 묘사되는 총잡이 히어로, 문제를 일으키는 무법자, 풀이 굴러가는 벌판에서의 결투,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거나 술잔을 들이키거나 석양 너머로 떠나는 히어로…
역사는 흘러가고 영화도 그렇다. 카우보이나 보안관이 총을 쥐고 나서는 서부극은 이미 클리셰가 되다 못해 비틀고 뒤집는 것조차 유형화되었다. 서부극에서 새로운 것이 더 나올 수 있을까 싶지만, 서부극의 영향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점점이, 새로이 흐르고 있다. 서부극의 장르적 재미를 영화사에서 제할 수는 없지만, 서부 개척시대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지는 이들의 눈에는 반가운 흐름이다. <노매드랜드>나 <미나리>에서 서부극의 냄새를 (기존 서부극에서라면 절대 등장하지 못했을 이들의 얼굴이기에 더욱) 신선하게 맡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 서부극이라는 장르에 부드러운 우유를 붓는 <퍼스트 카우>를 만난다.
영화는 서부 개척시대를 정면으로 마주본다. 하지만 여기에 낭만의 색깔은 한 겹 사라져 있다. 서부 개척시대는 황금과 총으로 거침없이 나아간 이들만 존재한 시대가 아니다. 광야에 가까운 땅을 밟는 이들의 신발 밑창이 진흙탕뿐 아니라 어떤 이들의 삶까지 짓밟는 시대였다. 기존 서부극에서는 진흙탕보다 크지 않은 존재감으로 그려지던 이들의 삶.
<퍼스트 카우>의 두 주인공 쿠키와 킹 루도 어쩌면 그런 존재들이다. 쿠키는 사냥꾼들과 함께 다니며 식사 담당을 맡고 있는데, 사냥에도 그들이 퍼붓는 폭력에도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덫을 놓아 동물을 사냥하기보다는 숲 속을 걸으며 버섯을 딸 때 전심으로 집중한 모습이고, 그때마다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러시아 강도들에게 쫓기던 초면의 킹 루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줄 만큼 따뜻한 사람이다.
킹 루는 서부극에서는 드문 황인종의 얼굴을 하고 있다. 거기에도 중국인이 사냐는 질문에 "모두가 살지", 사실상 "아무나 다 살지"에 가까운 현답을 덤덤하게 던진다. 인종적으로도 홀로인데다 쫓기는 신세지만, 기회를 보아 영민하게 움직일 줄 알고 강단 있는 성격이다.
쿠키와 킹 루는 어느 마을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다. 킹 루는 생명의 은인이 된 쿠키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술을 나눠 마시고 묵묵히 집안일을 함께 돌보던 두 사람은 어느새 같이 지내게 된다. 그때 마을의 유지 팩터 대장은 제대로 된 티 타임을 갖겠다고 암소를 데려오고, 쿠키와 킹 루는 거기서 돈 벌 기회를 모색한다. 우유가 없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우유를 넣은 케이크라면 떼돈을 벌 수 있겠지. 두 사람은 밤에 몰래 우유를 짜 와서 반죽에 넣고 튀겨 튀김빵 같은 케이크를 만들어 판다. 꼬리가 길어져도 밟히지 않을 수 있을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얼핏 야심차 보인다. 그러나 백인 남성들이 총 들고 싸우던 배경에서,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비주류 인종의 두 사람이니, (영화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쿠키의 성은 '피고위츠'로 감독은 인터뷰에서 쿠키가 유대인임을 밝혔다.) 사실 그렇게 대단히 야심찬 이야기도 아니다. 게다가 이야기는 잔잔한 우정의 빛깔을 하고 풍광에 스며든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영화 시작 시 나온 윌리엄 블레이크의 구절은 이들의 행동 곳곳에서 묻어난다. 인간에게는 우정이야말로 집이 되어준다는 포근한 구절은 쿠키와 킹 루의 관계뿐 아니라, 쿠키와 젖소 사이에도 존재한다. 사람에게 말을 걸듯 소에게도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감정을 전하는 쿠키의 다정한 눈은 소의 그것과 닮아 있다.
게다가 영화 중간중간 비춰지는 '인디언' 원주민들의 모습은 착취나 왜곡 없이 잔잔하기만 하다. 말간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어린아이부터 덩치 큰 팩터 대장의 집사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야기 진행을 위한 도구가 아닌, 그 땅의 거주자로.
“런던의 맛”과 “파리의 유행”에 곁눈질하며 몸만 여기 있는 ‘나으리’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이들이 사람을 보는 시선은 딱 두 가지다. 상위의 사람이라면 정치의 상대고, 하위의 사람이라면 그저 당연히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이다. 모두 제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돈을 추구하는 것은 킹 루나 쿠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타인의 자리까지 빼앗으며 돈을 추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으리’들은 총과 칼로 황야를 “개척”하고 그 자리에 당연하다는 듯이 군림한다. 팩터 대장의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서도 이들이 상위를 차지하고 앉은 계층도가 층층 드러난다.
소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런던에서처럼 티 타임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 우유 맛이 그리워서 소를 들여왔지만 팩터 대장에게 그 소는 혈통의 산물이다. 무슨 혈통과 무슨 혈통을 교배한, 우수한 소. 소의 본질은 바라보고 있지 않다. 킹 루나 쿠키, 잠깐씩 등장한 인디언들처럼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보는 눈은 이들에게 없다.
무법자outlaw만이 악당은 아니다. 치안이 불안한 서부극의 세계에서 법망을 어그러뜨리고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자들만이 악당은 아니다. 때로 악당은 가장 견고한 치안의 얼굴, 가장 단정한 법망의 얼굴을 하고 올 수도 있다. 이분법적으로 선악을 분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서부극의 세계에서 배제되던 인물들이 둥실 떠올라 있는 이 영화를 보다 보면 현실의 서부세계에서 과오를 저지른 얼굴들이 떠오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토해냈던 마음처럼, 어디선가는 토해져야 할 마음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이 마음을 그저 서부 백인 남성들의 것만으로 치부하고 마음 편하게 다리 뻗을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동물을 혈통으로 이름 붙이는 데 익숙해진 현대인으로서, 19세기 서부극에서 동시대의 무언가를 본다. 이들이 총과 칼로 이룬 “당신들의 천국” 한구석에 나도 살고 있다. 어쩌면 이 당신들의 천국은, 누군가가 바람처럼 가만히 존재하던 자리를 짓누르고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꿈꾸던 이들이 잠자는 위에 쌓아 올린 것인지 모른다. 발끝을 내려다 본다. 내 디딘 발 아래에는 무엇이 묻혀 있는가.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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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미국 독립 영화 배급사 'A24' 영화 큐레이션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독보적인 개성과 입지로 탄탄한 매니아층을 쌓아가고 있는
배급사 A24를 알고 있으신가요?
<문라이트>에서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리고 현재 상영 중에 있는 영화 <클로즈>까지!
오늘 씨네랩은 웰메이드 다양성 영화를 배급하고 미국 독립영화계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A24 영화사가
제작 혹은 배급한 작품 큐레이션 입니다 :)
평론가 그리고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과 호평을 받은 A24 TOP 7 지금 바로 살펴 보시죠!
문라이트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11분
감독: 베리 젠킨스
출연: 알렉스 R.히버트, 에쉬튼 샌더스, 트래반트 로즈
개봉: 2023.03.22.
시놉시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푸르도록 치명적인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명대사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
CINE PICK!
A24에서 제작한 영화 <문라이트>는 흑인 소년 '샤이론'이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을 3 파트로 나눈 이야기이자 사랑 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017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 3관왕을 차지하며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영화 <문라이트>는 A24 제작사의 대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킬링 디어
ⓒ 네이버 영화
개요: 스릴러 | 영국, 아일랜드, 미국 | 121분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콜린 파렐, 니콜 키드먼, 배리 케오간
개봉: 2018.07.12
시놉시스
성공한 외과 의사 스티븐과 그에게 다가온 소년 마틴 미스터리한 그와 친밀해질수록 스티븐과 그의 아내의 이상적인 삶은 완벽하게 무너지는데... "이 악몽을 끝내줘. 할 수 있어?"
명대사
이건 은유에요. 상징 같은 거죠.
CINE PICK!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제70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충격적인 복수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콜렌 파렐, 니콜 키드먼, 베리 케오간 등이 출연해 절제되면서도 섬뜩한 연기를 펼쳤고 '더 랍스터'로 연출력을 인정 받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스릴러 작품입니다.
유전
ⓒ 네이버 영화
개요: 미스터리 | 미국 | 127분
감독: 아리 에스터
출연: 토니 콜렛, 밀리 샤피로, 가브리엘 번, 알렉스 울프
개봉: 2018.06.07
시놉시스
‘애니’는 일주일 전 돌아가신 엄마의 유령이 집에 나타나는 것을 느낀다. 애니가 엄마와 닮았다며
접근한 수상한 이웃 ‘조안’을 통해 엄마의 비밀을 발견하고, 자신이 엄마와 똑같은 일을 저질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애니의 엄마로부터 시작돼 아들 ‘피터’와 딸 ‘찰리’에게까지 이어진 저주의 실체가 정체를 드러내는데…
명대사
지금 일어나는 일. 나만 막을 수 있어
CINE PICK!
영화 ‘유전’은 할머니의 죽음에서 시작된 저주로 헤어날 수 없는 공포에 지배당한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소름끼치는 심리적 공포를 극대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유전’에 대해 “공포영화 장르 말고도 기본적으로 잘 만든 영화”라면서 “장르 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전적이면서 우월한 영화”라고 극찬하며 평론 및 대중적으로도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미나리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15분
감독: 정이삭
출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조
개봉: 2021.03.03
시놉시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고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씨를 담은 할머니가 도착한다.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여느 그랜마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한데…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명대사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CINE PICK!
영화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제78회 골든글로브까지 전세계 영화제 78관왕을 기록했다. 더불어 '미나리'의 '순자' 역을 맡은 배우 윤여정님은 한국 역사 최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아 더욱 재조명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50분
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출연: 양자경, 스테파니 수, 키 호이 콴, 제이미 리커티스
개봉: 2023.03.01
시놉시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명대사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난 너와 여기 있고 싶어
CINE PICK!
아카데미을 휩쓴 화제의 영화 에.에.올! A24 배급 영화 중 북미, 글로벌 흥행 1위 타이틀을 거머쥔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35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클로즈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벨기에,네덜란드,프랑스 | 104분
감독: 루카스 돈트
출연: 에덴 담브린, 구스타비 드와엘
개봉: 2023.05.03
시놉시스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는 친구들에게 관계를 의심받기 시작한다. 이후 낯선 시선이 두려워진 레오는 레미와 거리를 두고, 홀로 남겨진 레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고 만다. 점차 균열이 깊어져 가던 어느 날, 레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명대사
오늘은 왜 먼저 갔어?
CINE PICK!
영화 '클로즈'는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루카스 돈트 감독은 첫 장편작 <걸>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감독으로 루카스 돈트 감독 특유의 다채로운 동선과 디테일한 움직임,
그리고 뛰어난 묘사력이 더해지면서 <클로즈>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을 완성한 작품입니다.
<클로즈> 또한 A24가 배급을 맡았습니다.
이 외에도 A24는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이디 버드> <미드 소마> 등 웰메이드 다양성 영화들을 선보여왔습니다.
특히 올해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클로즈>를 비롯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애프터썬> <더 웨일> 등을 통해
최다 후보를 배출해내는 데 성공하며, 더욱 그 위상과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A24 큐레이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추후 더욱 유익하고 재미난 영화 소식으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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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나로 자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벚꽃이 만개하고 하늘엔 몽실한 구름이 떠다니는, 어엿한 봄이다. 다만 그 봄이 조금 과하게 느껴진다. 한낮의 온도는 거의 30도에 육박하고, 꽃잎은 쉴 새 없이 흩날리다가 떨어진다. 바닥에 물든 분홍과 빨강들. 이제 실감한다. 계절 또한 순간이다. 금세 지나갈 것을 알기에 그리 구경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순간을 붙잡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니까.
봄이면서도 초여름. 애매한 중첩을 보니 주인공의 이름이 떠오른다. 춘희. 기쁠 희, 좋을 희, 즐거울 희. 온갖 의미 중에서도 그의 이름 말은 봄 춘春, 계집 희姬. 봄의 계집이다. 출생등록을 할 때 잘못 입력한 한자. 동시에 탓하기 좋은 변명거리다. 일이 꼬이고 꼬여 문제만 생길 때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원래 이렇게 되었으리라고.
자기 자신을 운명이란 이름에 가둬둠으로써 탄식하고, 연민하고, 모순적이게도 위로받는다. 춘희의 삶도 엇비슷한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여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이던, 누구에게나 있을 처연한 시기. 다만 춘희에게는 그 시간이 꽤, 길었을 뿐이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는 춘희의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중학생 춘희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사촌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동갑내기 여자애는 쌀쌀 맞고, 그의 보호자들은 교묘하게 차갑다. 마치 떠안기 싫은 짐을 어쩔 수 없이 진 것처럼. 몸만 겨우 누일 수 있는 자그마한 다락방. 여러 이불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게 최선인 독방. 춘희에게 허용된 크기와 위치는 딱, 그 정도다.
지금의 춘희는 어떨까. 여전히 같은 방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알록달록한 전구도 놓고, 창가와 벽에 사진도 붙이고, 나름 아늑한 공간이다. 춘희는 살면서 많은 것을 갖지 못했을 테지. 특별히 안타깝다거나 불쌍하다는 둥 가치판단을 멋대로 내리고 싶진 않다. 단지 그 공간에 대한 춘희의 애착이 느껴졌을 뿐이다.
춘희의 일과는 퍽 단순했다. 일어나서 수경을 끼고, 마늘을 한 알씩 까고, 2kg는 족히 되는 것 같은 양을 어깨에 이고 식당을 찾아간다. 사촌 오빠가 운영하는 식당. 노동의 대가는 3만 원. 이런 일 말고 홀서빙을 하라는 제안에도 춘희는 고개를 젓는다.
춘희는 하루 3만 원을 통장에 차곡차곡 모으는 중이다. 이 같은 성실함은 간절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다한증 수술. 땀이 많아 금세 손이며 발이며 축축해지는 것이 춘희에겐 오래된 스트레스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모든 공간엔 자신의 흔적이 남았다. 사람들은 그 흔적을 불쾌하게 여겼고, 춘희는 찌푸린 얼굴이나 날 선 목소리 따위를 빼곡히 기억했다. 어릴 때야 무덤덤한 표정에 가려 잘 드러나진 않았겠지만.
벼락과 천둥이 치던 날, 춘희는 평소처럼 할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에 벼락을 맞는다. 검댕이가 묻은 얼굴로 집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들었는데 웬걸. 제 몸 위로 이불이 덮였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이 없는 집인데 말이다. 의아한 상황은 곧 믿을 수 없는 일로 이어진다. 어린 춘희, 그러니까 중학생 춘희가 지금의 춘희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같이 마늘을 까고, 라면을 먹고, 대화를 나눈다. 춘희의 기억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지금의 자신에게 있는 손의 흉터가 중학생 춘희에겐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다한증인 자신이 싫고 미워서 소각장 앞에 불씨에 손바닥을 가져다댔는데 말이다.
춘희가 깊게 생각하지 않은 건 또 다른 일상의 변화 때문이겠다. 얼결에 참여한 모임에서 주황을 만났다. 말을 더듬는 주황과 땀이 흥건한 춘희. 자기 자신의 결점이라고 생각하는 점을 그대로 드러낸 관계. 솔직해서인가,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춘희는 술김에 말도 안 되는 일을 들려주겠다며 중학생 춘희 이야기를 스리슬쩍 꺼낸다.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면, 무얼 하겠느냐고.
주황은 아버지의 폭력에 매번 맞기만 하지 말고 한 번은 덤비라,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반면 춘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던가. 그 애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은지, 무엇이 필요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모든 것이 나름 순조롭게 흘러갈 무렵 사건은 하나둘씩 생겨난다. 하나, 중학생 춘희가 사라졌다. 둘, 사촌오빠가 춘희에게 새로운 집을 구하라고 통보한다. 그 집을 매물로 올려놨다고. 셋, 모임 세미나에서 거금을 사기당했다. 다한증을 치료하려고 모아두었던 돈이 몽땅 사라진 셈이다. 모든 것을 잃기만 한다.
그러나 춘희는 침묵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이 집이 어떤 의미인지, 자신의 어머니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목소리를 낸다. 물론 사촌에겐 얼토당토않는 얘기다. 집에 누가 거주하느냐에 따라 임대인 자격을 얻고 잃는 건 아니니까. 사실을 바꿀 만한 힘은 없었다. 애초에 그건 춘희의 목적이 아니기도 했다.
그저 중학생 춘희가 꾹꾹 눌러 두었을 진심을, 집에 대한 애착을, 자신의 보호자들을 향한 그리움을 발화하고 싶었을 테다. 수수깡으로 정성스레 만든 집이 제 허락도 없이 망가져 버려진데도 오히려 사과를 건네야 하는 시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상처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지금의 춘희로.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어린 시절 학대받은 아이는 그때로부터 자라나지 못한다고. 10년이든 20년이든 시간만 흐를 뿐이라고. 몸만 커져서 어른처럼 보이지, 여전히 아이라고. 춘희는 자라지 못한 자신을 알아주기로 한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다 싫어하고, 미워하고, 불쾌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며 오롯이 견뎌온 상처들 또한 끌어안는다. 자신에게 남은 손바닥의 화상을 어린 춘희에게 되물려주지 않기 위하여,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말과 행동으로 지켜내기 위하여.
영화에서도 내내 보였다. 춘희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공통점이자 기이한 지점. 춘희를 진심 어린 눈으로 걱정했다가 날카로운 말씨로 돌변했다. 순식간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여기서 카메라의 담긴 시선이 달랐다. 부드러운 상황을 보여줄 땐 상대방의 모습을, 춘희를 비난할 땐 춘희의 상처받은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춘희가 기억하는 타인의 모습은 일부일 뿐이라고. 모두 춘희를 미워하고 싫어한 게 아니라, 아끼는 마음도 존재했다고.
나 자신을 다독여준 후에야 춘희는 새 집으로 새 출발을 한다. 이제는 사촌 집의 다락방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갈 춘희. 자신의 점액질로 흔적을 남기는 민달팽이처럼 꿋꿋이 제 길을 걸어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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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에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참석 후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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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신념이 만들어낸 다소 싱거운 지옥도
똑같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행동한다. 누군가에는 기쁜 일이, 누군가에는 슬픈 일, 누군가에게는 분노가 치미는 일이 되는 것처럼. 인풋은 같은 데 아웃풋이 다른 건 사람마다 상이한 믿음 때문이다. 도대체 믿음이 뭐길래. 만약 그 믿음이 그릇된 것으로부터 잉태되었고, 신념으로 뒤바뀐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계시록>은 뒤틀린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물음의 답을 내놓는 영화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오늘도 열심히 신도들과 예배를 진행한 개척 교회 목사 민찬(류준열)은 여학생을 쫓아 교회로 들어온 의문의 사내 양래(신민재)를 발견한다. 예배가 끝난 후 민찬은 신도를 늘릴 생각으로 양래와 이야기하던 중 그의 발에 채워진 전자발찌를 확인한다. 맞다. 양래는 성범죄자다. 민찬은 그 사실을 알고도 양래에게 자주 오라고 권한다. 죄를 회개하라는 의미의 말을 전하며. 이후 민찬에게 큰 사건이 벌어진다. 갑자기 자녀가 사라진 것. 민찬은 양래를 의심하고, 그의 뒤를 쫓는다. 그리고 외진 고갯길에서 양래와 몸싸움을 벌이다 살인을 저지른다. 자책도 잠시, 이 모든 게 죄인을 단죄하라는 신의 뜻으로 여긴 그는 이 사실을 은폐한다. 정말 신의 뜻일까? 우연은 톱니바퀴처럼 물리고 민찬은 의심조차 받지 않는다. 단, 양래로 인해 친동생이 목숨을 끊은 후 악몽에 시달리는 형사 연희(신연희)만 빼고.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세상은 그 믿음을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상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계시록>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누구인가? <사이비>부터<지옥>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그릇된 믿음으로 잉태된 다양한 군상들을 그린 감독 아닌가. 이번에도 그는 목사 민찬, 형사 연희, 성범죄자 양래를 주축으로 이 주제를 스크린에 옮긴다.
세 사람 중 가장 중심에 있는 건 민찬이다. 개척 교회 목사로서 하느님을 모시는 일에 유념 없는 그의 마음은 한순간 혼탁해진다. 발단은 양래와의 만남 때문이지만, 이미 그의 마음엔 아내의 불륜으로 인해 배신감, 더 큰 교회의 담임 목사를 내심 바라는 욕망이 그득하다. 실수로 양래를 살해한 후, 그토록 바랐던 큰 교회 담임 목사 기회를 부여받자 그의 마음은 이내 이기심으로 뒤덮인다. 그리고 자신이 욕망하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를 잘 보여주는 건 매 순간 우연한 사건과 눈에 보이는 신의 계시다. 이를 오롯이 믿는 그는 ‘신의 계시’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에겐 실제 진실은 중요치 않게 된다. 그가 믿는 게 곧 진실이기 때문이다.연희 또한 양래의 범죄에 의해 스스로 세상을 떠난 동생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 무거운 마음은 환각을 낳으며 자신을 갉아먹는다. 어쩌면 그가 권양래를 쫓는 이유는 마음의 짐을 덜고, 편안히 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권양래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아비의 폭력과 학대로 인해 깊은 상처가 생겼고, 그로 인해 잉태된 외눈박이의 공포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인도한 자신이 행동을 타당화한다.
이처럼 세 사람은 시작은 다르지만, 결국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진실을 외면하고, 편의상 자신이 만든 허상을 맹목적으로 믿으며 살아간다. 결국 자기 합리화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사는지도 모른 채 이들은 바보같이 상대방을 탓하며 스스로 더 깊숙한 늪에 잠긴다. 후반부 세 사람이 만나 육탄전을 벌이는 롱테이크 장면은 이를 잘 보여주는 지옥도이자 우리의 현실이다.
극 중 민찬의 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계시’의 주체는 신이 아닌 본인 자신이다. 감독은 이들을 통해 점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는 게 진실인 것처럼 여기는 현실 속 사람들의 행태를 꼬집는다. 이전 작품과 달리 최대한 CG 사용을 자제한 것만 봐도 감독이 이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알 수 있다. 마치 영화는 거울 효과 치료 영상처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를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힘의 근원은 류준열이다. 그는 목사임에도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왜곡된 세상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인물을 연기한다. 불안한 영혼이 소유자였다가 계시라는 명목하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행해야 한다는 신념이 잡힌 후 변화하는 표정은 소름~~! 차 안에서 아내의 간음을 실토하게 하는 장면이나 신도들 앞에서 벌이는 광거이러니 퍼포먼스는 강렬한 임팩트를 전한다.
그럼에도 <계시록>은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달린다. 세 인물로 점철된 잘못된 신념의 말로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컸던 나머지 개연성과 짜임새 부분이 덜컹거린다. 더 중요한 주제를 위함이라고 믿고 또 믿으며 지켜보지만, 초반보다 축 늘어지는 스토리의 긴장감은 단점이 된다. 여기에 연기나 장면이 아닌 대사를 통해 주제 의식이나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세련되지 못한 것도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는 지옥도의 비극으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대신 연희를 통해 자신이 만든 허상을 깨뜨리고 벗어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장면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점차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자체로 의미는 있다. 극 중 등장하는 범죄 심리학자인 교수는 연희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만든 허상 말고, 진실을 보자고. 어쩌면 이 교과서적인 대사는 연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하는 말일 수 있다.
사진 제공: 넷플릭스
평점: 3.0 / 5.0
관람평: 잘못된 신념이 만들어낸 다소 싱거운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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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없는 갈등은 없다
지금 우리 학교는
줄거리
과학 선생님에게서 나는 수상한 냄새.
과학실에 감금되었다고 말하는 친구.
그리고, 사람들을 물어뜯는 학생들...
지금 우리 학교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본 리뷰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유없는 갈등은 없다
숨은 의미 찾기
드라마 내에서 좀비 사태가 발발한 가장 큰 원인은 ‘학교폭력’이었다.
아들이 왕따를 당하며 고통받는 것을 보기 힘들었던 이병찬이 아들에게 좀비 바이러스를 주입해 그를 좀비를 만들어 버린다. 아들과 아내는 집에서 관리했으면서, 그놈의 실험 쥐는 왜 과학실로 가져온 건지. 하여간 그 쥐에 물린 학생이 보건 선생을 물고, 응급실에 가서는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물어버리면서 좀비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사실 드라마는 전개되는 내내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각종 다양한 사회문제를 이야기한다.
임대 아파트 주민에 대한 차별적 대우, 미성년자 미혼모, 체육계 폭력사태, 대학 입시제도까지. 언뜻 보면 학교는 모든 사회 문제를 가두고 키워나가는 양식장과도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했던 것은,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한 언급만 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연과 경수는 결국 화해하지 못했고, 미혼모는 홀로 공중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았으며, 하리는 국대에서, 미진이는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다.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은 결국 좀비가 되어버렸고, 간신히 좀비 떼들로부터 벗어난 아이들은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이러한 산발적인 사회문제 나열을 두고 불만을 표출하는 이들이 많다. 많을 수밖에. 지지부진한 전개는 그렇다 쳐도, 이유도 없이 이토록 많은 인물들이 낭비되기만 하는 사태에 대해 짜증이 나지 않을 시청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드라마가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고발하고자 했다면 이런 식으로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명확한 주제의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논의를 끌어냈어야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좀비와 사회문제에 시달리며 12화 내내 몸부림치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문제들을 “어떻게” 다뤘어야 하는가가 아닌, “왜” 다뤘는가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시즌제’라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가 시즌 2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다. 이는 일반 방송사에서 제작하는 드라마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전개 속도에 제약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떡밥을 던져놓고도 시즌 1에서 굳이 회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크다. 그렇게 되면 시즌 1을 본 사람들은 자연스레 시즌 2를 기다리게 되는데, 이는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낸다. 그러니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일단 시즌 1에서 엄청난 어그로를 끌어줘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일단 좀비라는 소재, 자극적이다. 웹툰 원작으로 인한 홍보효과도 확실하다. 하지만 시즌 1에서 원작대로 깔끔하게 끝내버린다면? 제작사 입장에서는 매우 아쉽다. 그러니 여기에 '떡밥처럼 보이는 다양한 갈등상황'을 중간중간 섞어서 전개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이리저리 틀어준다면? 인물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이 유발되고 문제가 터지는 와중에 시청자들은 이리저리 문제상황과 다툼에 휩쓸리며 정신을 팔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해결책을 내놓지도 않을 문제들을 나열하며 상관도 없는 문제들을 꺼내놓은 게 아닌가.
하지만 시청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똑똑해서, 그런 눈속임 수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좀비 바이러스가 갈등을 조장하는 어떤 악의 세포라거나, 이러한 문제들도 생사의 기로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등의 의미만 부여했어도 이 정도로 참혹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시대가 변했다. 좀비물도 이제는 변화할 때다.
단순 재미만 추구하는 것도 때론 필요하지만,
정말 차별성 있는 좀비물을 만들고 싶다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어쩐지 찝찌입한 결말
감상평
원작을 봤는데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무 오래전에 뜨문뜨문 봐서 그런 듯하다. 흐름을 주도하는 몇몇 인물과 특별한 상황들은 알지만, 그 외에는 전혀 모른 채로 봤다. 워낙 좀비물을 좋아하는 터라 재밌게 보긴 했지만, 이건 좀비물이라기보단 연애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연애씬이 많았던 드라마.
너무 인물을 이유 없이 죽여버린다는 느낌이 많았다. 애초에 살려둔 인물이 너무 많아서 급하게 처리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적절한 때에 적절한 인물의 서사가 필요한데, 이놈의 드라마는 굵은 줄기는 없이 잔가지만 가득... 원작 볼 때는 분명 엄청나게 여운 남고 감동도 있었는데 드라마는 아닌 걸 보니 확실히 원작이 뛰어났던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면에서 의아했다. 시즌 2로 넘어가지 않고 그냥 깔끔하게 끝냈으면 했는데 결국 시즌 1에서 마무리가 되지 않고 끝났다. 대체 폐허가 된 곳에서 또 무슨 얘기를 할지도 모르겠고. 이러다가 '서울역'이나 '반도' 꼴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시즌 2를 보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으니 이 정도면 제작사에서 의도한 대로 이득 본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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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리뷰/행복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찬실이는복도많지#강말금#독립영화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다들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영화는 제가 보고 올게요! 마스크 꼭 쓰고 다니세요~ 토요일엔 역사 컨텐츠가 올라갑니다. 참고로 엔딩곡 꼭 듣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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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꿈꾸는 고양이> 메인 예고편
우리는 개발로 인해 유용한 삶을 누리게 되겠지만
그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존재들이 있다는 건 잘 알지 못한다.
건물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길 위 고양이들의 삶.
우린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지켜줄 수 있을까?
무너지는 그곳에서 만난 아이에게 꿈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공존하는 삶을 꿈꾸는 여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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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트위스터스> 2차 예고편
올 여름, 역대급 토네이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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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넷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연말에 다소 무거웠던 <서울의 봄> <노량: 죽음의 바다>를 벗어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소재의 영화로 관객들에게 찾아온 <시민 덕희>!
영화는 실화바탕의 '보이스 피싱' 소재로 통쾌한 스토리를 들려줄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이번주 개봉예정작 같이 만나보실까요?
시민 덕희
Citizen of a Kind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14분
감독: 박영주
출연: 라미란 공명 염혜란 박병은 장윤주 이무생 안은진 등
개봉: 2024.01.24.
배급: ㈜쇼박스
시놉시스
내 돈을 사기 친 그 놈이 구조 요청을 해왔다! 세탁소 화재로 인해 대출상품을 알아보던 생활력 만렙 덕희에게 어느 날, 거래은행의 손대리가 합리적인 대출상품을 제안하겠다며 전화를 걸어온다. 대출에 필요하다며 이런저런 수수료를 요구한 손대리에게 돈을 보낸 덕희는 이 모든 과정이 보이스피싱이었음을 뒤늦게 인지하고 충격에 빠진다. 전 재산을 잃고 아이들과 거리로 나앉게 생긴 덕희에게 어느 날 손대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는데… 이번엔 살려달라는 전화다! 경찰도 포기한 사건, 덕희는 손대리도 구출하고 잃어버린 돈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필살기 하나씩 장착한 직장 동료들과 함께 중국 칭다오로 직접 날아간다.
CINE PICK!
이 영화는 2016년에 발생한 사건을 모티브로 경기도 화성시에서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던 김성자씨의 보이스피싱 사기로 직접 보이스피싱 총책의 사진, 은신처 정보, 중국에 소재한 사무실 주소 등을 모아 경찰에 제출하며 경찰이 총책을 검거하는데 성공한 실화 사건을 영화로 옮긴 작품입니다.
넥스트 골 윈즈
Next Goal Wins
ⓒ 네이버영화
개요: 코미디 | 미국, 영국 | 104분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오스카 카이틀리 등
개봉: 2024.01.24.
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인성 논란으로 퇴출 위기에 놓인 축구 감독 ‘토머스 론겐’은 31: 0이라는 기록적인 패배로 창설 이후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FIFA 랭킹 최하위 아메리칸사모아 국가 대표팀의 감독을 어쩔 수 없이 맡게 된다. 승률 제로, 단합 제로, 용기 제로 모든 것이 부족한 선수들과 ‘론겐’은 고군 분투하게 된다. 그들의 목표는 승리도, 우승도 아닌 오직 한 골!
CINE PICK!
<조조 래빗> <토르: 라그나로크>의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과 <엑스맨: 아포칼립스>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연기력을 보여준 마이클 패스벤더가 만난 영화로 2014년에 나온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바탕으로 미국령 사모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2014fif a 월드컵 브라질 오세아니아 1차예선 시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클럽 제로
Club Zero
ⓒ 네이버영화
개요: 미스터리, 스릴러 | 오스트리아, 영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 | 110분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출연: 미아 와시코브스카 외
재개봉: 2024.01.24.
배급: 판씨네마㈜
시놉시스
STEP 1. 깊게 심호흡하고 눈앞의 음식에만 집중해 보세요 STEP 2. 한 번에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어보세요 STEP 3.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세요 모든 단계를 통과한 여러분을 이제 ‘클럽 제로’의 회원으로 임명합니다! 최고급 기숙사 시설에서 학생들에게 일대일 특별 교육을 제공하는 엘리트 학교의 새로운 영양교사로 임명된 ‘미스 노백’. 건강을 유지하면서 학습 능력을 키우는 ‘의식적 식사법’을 가르치는 ‘미스 노백’의 다정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수업에 아이들은 점차 빠져들게 되고 더 극단적이고 위험한 식사를 이어가는데…
CINE PICK!
<슬픔의 삼각형> 제작사 참여, <스토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미와 와시코브스카의 만남으로 영화 <클럽 제로>는 독특한 식사법을 설파하는 미스 노백과 이를 맹목적으로 믿는 앨리트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영화입니다.
도그맨
DOGMAN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프랑스, 미국 | 115분
감독: 뤽 베송
출연: 케일럽 랜드리 존스 외
개봉: 2024.01.24.
배급: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뉴저지의 한 도심, 핑크 드레스에 짙은 화장을 한 남자가 수백 마리의 개와 함께 긴급 체포된다. 아무런 진술도 하지 않던 그는 정신과 의사에게 15년간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개들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한 남자의 쇼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진다!
CINE PICK!
<도그맨>은 안티히어로가 자신만의 정의를 실현하는 휴먼드라마로 <레옹> <루시>를 연출한 뤽 베송 감독이 연출을 맡으며 2021년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케일럽 렌드리 존스, 폭스테리어, 도베르만, 그레이하운드와 같이 열연을 펼칩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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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의 천국은
자유와 번영의 나라가 반듯하게 서 있는 곳. 이곳은 불과 몇 백 년 전까지 황량한 땅이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온 이들 바로 뒤에는 경제적 자유를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미국은 그렇게 태어났다. 다른 모든 건국처럼 이 건국에도 명과 암이 있었다.
자유와 금을 향한 거침없는 행보는 명암 모두 강렬했다. 역사책뿐 아니라 영화사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서부의 휑한 땅에 있는 마을, 주로 보안관으로 묘사되는 총잡이 히어로, 문제를 일으키는 무법자, 풀이 굴러가는 벌판에서의 결투,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거나 술잔을 들이키거나 석양 너머로 떠나는 히어로…
역사는 흘러가고 영화도 그렇다. 카우보이나 보안관이 총을 쥐고 나서는 서부극은 이미 클리셰가 되다 못해 비틀고 뒤집는 것조차 유형화되었다. 서부극에서 새로운 것이 더 나올 수 있을까 싶지만, 서부극의 영향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점점이, 새로이 흐르고 있다. 서부극의 장르적 재미를 영화사에서 제할 수는 없지만, 서부 개척시대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지는 이들의 눈에는 반가운 흐름이다. <노매드랜드>나 <미나리>에서 서부극의 냄새를 (기존 서부극에서라면 절대 등장하지 못했을 이들의 얼굴이기에 더욱) 신선하게 맡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 서부극이라는 장르에 부드러운 우유를 붓는 <퍼스트 카우>를 만난다.
영화는 서부 개척시대를 정면으로 마주본다. 하지만 여기에 낭만의 색깔은 한 겹 사라져 있다. 서부 개척시대는 황금과 총으로 거침없이 나아간 이들만 존재한 시대가 아니다. 광야에 가까운 땅을 밟는 이들의 신발 밑창이 진흙탕뿐 아니라 어떤 이들의 삶까지 짓밟는 시대였다. 기존 서부극에서는 진흙탕보다 크지 않은 존재감으로 그려지던 이들의 삶.
<퍼스트 카우>의 두 주인공 쿠키와 킹 루도 어쩌면 그런 존재들이다. 쿠키는 사냥꾼들과 함께 다니며 식사 담당을 맡고 있는데, 사냥에도 그들이 퍼붓는 폭력에도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덫을 놓아 동물을 사냥하기보다는 숲 속을 걸으며 버섯을 딸 때 전심으로 집중한 모습이고, 그때마다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러시아 강도들에게 쫓기던 초면의 킹 루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줄 만큼 따뜻한 사람이다.
킹 루는 서부극에서는 드문 황인종의 얼굴을 하고 있다. 거기에도 중국인이 사냐는 질문에 "모두가 살지", 사실상 "아무나 다 살지"에 가까운 현답을 덤덤하게 던진다. 인종적으로도 홀로인데다 쫓기는 신세지만, 기회를 보아 영민하게 움직일 줄 알고 강단 있는 성격이다.
쿠키와 킹 루는 어느 마을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다. 킹 루는 생명의 은인이 된 쿠키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술을 나눠 마시고 묵묵히 집안일을 함께 돌보던 두 사람은 어느새 같이 지내게 된다. 그때 마을의 유지 팩터 대장은 제대로 된 티 타임을 갖겠다고 암소를 데려오고, 쿠키와 킹 루는 거기서 돈 벌 기회를 모색한다. 우유가 없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우유를 넣은 케이크라면 떼돈을 벌 수 있겠지. 두 사람은 밤에 몰래 우유를 짜 와서 반죽에 넣고 튀겨 튀김빵 같은 케이크를 만들어 판다. 꼬리가 길어져도 밟히지 않을 수 있을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얼핏 야심차 보인다. 그러나 백인 남성들이 총 들고 싸우던 배경에서,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비주류 인종의 두 사람이니, (영화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쿠키의 성은 '피고위츠'로 감독은 인터뷰에서 쿠키가 유대인임을 밝혔다.) 사실 그렇게 대단히 야심찬 이야기도 아니다. 게다가 이야기는 잔잔한 우정의 빛깔을 하고 풍광에 스며든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이라는, 영화 시작 시 나온 윌리엄 블레이크의 구절은 이들의 행동 곳곳에서 묻어난다. 인간에게는 우정이야말로 집이 되어준다는 포근한 구절은 쿠키와 킹 루의 관계뿐 아니라, 쿠키와 젖소 사이에도 존재한다. 사람에게 말을 걸듯 소에게도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감정을 전하는 쿠키의 다정한 눈은 소의 그것과 닮아 있다.
게다가 영화 중간중간 비춰지는 '인디언' 원주민들의 모습은 착취나 왜곡 없이 잔잔하기만 하다. 말간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어린아이부터 덩치 큰 팩터 대장의 집사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야기 진행을 위한 도구가 아닌, 그 땅의 거주자로.
“런던의 맛”과 “파리의 유행”에 곁눈질하며 몸만 여기 있는 ‘나으리’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이들이 사람을 보는 시선은 딱 두 가지다. 상위의 사람이라면 정치의 상대고, 하위의 사람이라면 그저 당연히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이다. 모두 제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돈을 추구하는 것은 킹 루나 쿠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타인의 자리까지 빼앗으며 돈을 추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으리’들은 총과 칼로 황야를 “개척”하고 그 자리에 당연하다는 듯이 군림한다. 팩터 대장의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서도 이들이 상위를 차지하고 앉은 계층도가 층층 드러난다.
소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런던에서처럼 티 타임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 우유 맛이 그리워서 소를 들여왔지만 팩터 대장에게 그 소는 혈통의 산물이다. 무슨 혈통과 무슨 혈통을 교배한, 우수한 소. 소의 본질은 바라보고 있지 않다. 킹 루나 쿠키, 잠깐씩 등장한 인디언들처럼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보는 눈은 이들에게 없다.
무법자outlaw만이 악당은 아니다. 치안이 불안한 서부극의 세계에서 법망을 어그러뜨리고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자들만이 악당은 아니다. 때로 악당은 가장 견고한 치안의 얼굴, 가장 단정한 법망의 얼굴을 하고 올 수도 있다. 이분법적으로 선악을 분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서부극의 세계에서 배제되던 인물들이 둥실 떠올라 있는 이 영화를 보다 보면 현실의 서부세계에서 과오를 저지른 얼굴들이 떠오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토해냈던 마음처럼, 어디선가는 토해져야 할 마음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이 마음을 그저 서부 백인 남성들의 것만으로 치부하고 마음 편하게 다리 뻗을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동물을 혈통으로 이름 붙이는 데 익숙해진 현대인으로서, 19세기 서부극에서 동시대의 무언가를 본다. 이들이 총과 칼로 이룬 “당신들의 천국” 한구석에 나도 살고 있다. 어쩌면 이 당신들의 천국은, 누군가가 바람처럼 가만히 존재하던 자리를 짓누르고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꿈꾸던 이들이 잠자는 위에 쌓아 올린 것인지 모른다. 발끝을 내려다 본다. 내 디딘 발 아래에는 무엇이 묻혀 있는가.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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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미국 독립 영화 배급사 'A24' 영화 큐레이션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독보적인 개성과 입지로 탄탄한 매니아층을 쌓아가고 있는
배급사 A24를 알고 있으신가요?
<문라이트>에서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리고 현재 상영 중에 있는 영화 <클로즈>까지!
오늘 씨네랩은 웰메이드 다양성 영화를 배급하고 미국 독립영화계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A24 영화사가
제작 혹은 배급한 작품 큐레이션 입니다 :)
평론가 그리고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과 호평을 받은 A24 TOP 7 지금 바로 살펴 보시죠!
문라이트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11분
감독: 베리 젠킨스
출연: 알렉스 R.히버트, 에쉬튼 샌더스, 트래반트 로즈
개봉: 2023.03.22.
시놉시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푸르도록 치명적인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명대사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마."
CINE PICK!
A24에서 제작한 영화 <문라이트>는 흑인 소년 '샤이론'이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을 3 파트로 나눈 이야기이자 사랑 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017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 3관왕을 차지하며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 영화 <문라이트>는 A24 제작사의 대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킬링 디어
ⓒ 네이버 영화
개요: 스릴러 | 영국, 아일랜드, 미국 | 121분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콜린 파렐, 니콜 키드먼, 배리 케오간
개봉: 2018.07.12
시놉시스
성공한 외과 의사 스티븐과 그에게 다가온 소년 마틴 미스터리한 그와 친밀해질수록 스티븐과 그의 아내의 이상적인 삶은 완벽하게 무너지는데... "이 악몽을 끝내줘. 할 수 있어?"
명대사
이건 은유에요. 상징 같은 거죠.
CINE PICK!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제70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충격적인 복수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콜렌 파렐, 니콜 키드먼, 베리 케오간 등이 출연해 절제되면서도 섬뜩한 연기를 펼쳤고 '더 랍스터'로 연출력을 인정 받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스릴러 작품입니다.
유전
ⓒ 네이버 영화
개요: 미스터리 | 미국 | 127분
감독: 아리 에스터
출연: 토니 콜렛, 밀리 샤피로, 가브리엘 번, 알렉스 울프
개봉: 2018.06.07
시놉시스
‘애니’는 일주일 전 돌아가신 엄마의 유령이 집에 나타나는 것을 느낀다. 애니가 엄마와 닮았다며
접근한 수상한 이웃 ‘조안’을 통해 엄마의 비밀을 발견하고, 자신이 엄마와 똑같은 일을 저질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애니의 엄마로부터 시작돼 아들 ‘피터’와 딸 ‘찰리’에게까지 이어진 저주의 실체가 정체를 드러내는데…
명대사
지금 일어나는 일. 나만 막을 수 있어
CINE PICK!
영화 ‘유전’은 할머니의 죽음에서 시작된 저주로 헤어날 수 없는 공포에 지배당한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소름끼치는 심리적 공포를 극대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유전’에 대해 “공포영화 장르 말고도 기본적으로 잘 만든 영화”라면서 “장르 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전적이면서 우월한 영화”라고 극찬하며 평론 및 대중적으로도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미나리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15분
감독: 정이삭
출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조
개봉: 2021.03.03
시놉시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고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씨를 담은 할머니가 도착한다.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여느 그랜마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한데…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명대사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CINE PICK!
영화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제78회 골든글로브까지 전세계 영화제 78관왕을 기록했다. 더불어 '미나리'의 '순자' 역을 맡은 배우 윤여정님은 한국 역사 최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아 더욱 재조명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50분
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출연: 양자경, 스테파니 수, 키 호이 콴, 제이미 리커티스
개봉: 2023.03.01
시놉시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명대사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난 너와 여기 있고 싶어
CINE PICK!
아카데미을 휩쓴 화제의 영화 에.에.올! A24 배급 영화 중 북미, 글로벌 흥행 1위 타이틀을 거머쥔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35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클로즈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벨기에,네덜란드,프랑스 | 104분
감독: 루카스 돈트
출연: 에덴 담브린, 구스타비 드와엘
개봉: 2023.05.03
시놉시스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는 친구들에게 관계를 의심받기 시작한다. 이후 낯선 시선이 두려워진 레오는 레미와 거리를 두고, 홀로 남겨진 레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고 만다. 점차 균열이 깊어져 가던 어느 날, 레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명대사
오늘은 왜 먼저 갔어?
CINE PICK!
영화 '클로즈'는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루카스 돈트 감독은 첫 장편작 <걸>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감독으로 루카스 돈트 감독 특유의 다채로운 동선과 디테일한 움직임,
그리고 뛰어난 묘사력이 더해지면서 <클로즈>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을 완성한 작품입니다.
<클로즈> 또한 A24가 배급을 맡았습니다.
이 외에도 A24는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이디 버드> <미드 소마> 등 웰메이드 다양성 영화들을 선보여왔습니다.
특히 올해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클로즈>를 비롯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애프터썬> <더 웨일> 등을 통해
최다 후보를 배출해내는 데 성공하며, 더욱 그 위상과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A24 큐레이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추후 더욱 유익하고 재미난 영화 소식으로 찾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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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나로 자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벚꽃이 만개하고 하늘엔 몽실한 구름이 떠다니는, 어엿한 봄이다. 다만 그 봄이 조금 과하게 느껴진다. 한낮의 온도는 거의 30도에 육박하고, 꽃잎은 쉴 새 없이 흩날리다가 떨어진다. 바닥에 물든 분홍과 빨강들. 이제 실감한다. 계절 또한 순간이다. 금세 지나갈 것을 알기에 그리 구경 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순간을 붙잡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니까.
봄이면서도 초여름. 애매한 중첩을 보니 주인공의 이름이 떠오른다. 춘희. 기쁠 희, 좋을 희, 즐거울 희. 온갖 의미 중에서도 그의 이름 말은 봄 춘春, 계집 희姬. 봄의 계집이다. 출생등록을 할 때 잘못 입력한 한자. 동시에 탓하기 좋은 변명거리다. 일이 꼬이고 꼬여 문제만 생길 때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원래 이렇게 되었으리라고.
자기 자신을 운명이란 이름에 가둬둠으로써 탄식하고, 연민하고, 모순적이게도 위로받는다. 춘희의 삶도 엇비슷한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여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이던, 누구에게나 있을 처연한 시기. 다만 춘희에게는 그 시간이 꽤, 길었을 뿐이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는 춘희의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중학생 춘희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사촌의 집에 얹혀살게 된다. 동갑내기 여자애는 쌀쌀 맞고, 그의 보호자들은 교묘하게 차갑다. 마치 떠안기 싫은 짐을 어쩔 수 없이 진 것처럼. 몸만 겨우 누일 수 있는 자그마한 다락방. 여러 이불을 켜켜이 쌓아 올리는 게 최선인 독방. 춘희에게 허용된 크기와 위치는 딱, 그 정도다.
지금의 춘희는 어떨까. 여전히 같은 방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알록달록한 전구도 놓고, 창가와 벽에 사진도 붙이고, 나름 아늑한 공간이다. 춘희는 살면서 많은 것을 갖지 못했을 테지. 특별히 안타깝다거나 불쌍하다는 둥 가치판단을 멋대로 내리고 싶진 않다. 단지 그 공간에 대한 춘희의 애착이 느껴졌을 뿐이다.
춘희의 일과는 퍽 단순했다. 일어나서 수경을 끼고, 마늘을 한 알씩 까고, 2kg는 족히 되는 것 같은 양을 어깨에 이고 식당을 찾아간다. 사촌 오빠가 운영하는 식당. 노동의 대가는 3만 원. 이런 일 말고 홀서빙을 하라는 제안에도 춘희는 고개를 젓는다.
춘희는 하루 3만 원을 통장에 차곡차곡 모으는 중이다. 이 같은 성실함은 간절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다한증 수술. 땀이 많아 금세 손이며 발이며 축축해지는 것이 춘희에겐 오래된 스트레스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모든 공간엔 자신의 흔적이 남았다. 사람들은 그 흔적을 불쾌하게 여겼고, 춘희는 찌푸린 얼굴이나 날 선 목소리 따위를 빼곡히 기억했다. 어릴 때야 무덤덤한 표정에 가려 잘 드러나진 않았겠지만.
벼락과 천둥이 치던 날, 춘희는 평소처럼 할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에 벼락을 맞는다. 검댕이가 묻은 얼굴로 집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들었는데 웬걸. 제 몸 위로 이불이 덮였다. 자신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이 없는 집인데 말이다. 의아한 상황은 곧 믿을 수 없는 일로 이어진다. 어린 춘희, 그러니까 중학생 춘희가 지금의 춘희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같이 마늘을 까고, 라면을 먹고, 대화를 나눈다. 춘희의 기억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지금의 자신에게 있는 손의 흉터가 중학생 춘희에겐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다한증인 자신이 싫고 미워서 소각장 앞에 불씨에 손바닥을 가져다댔는데 말이다.
춘희가 깊게 생각하지 않은 건 또 다른 일상의 변화 때문이겠다. 얼결에 참여한 모임에서 주황을 만났다. 말을 더듬는 주황과 땀이 흥건한 춘희. 자기 자신의 결점이라고 생각하는 점을 그대로 드러낸 관계. 솔직해서인가,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춘희는 술김에 말도 안 되는 일을 들려주겠다며 중학생 춘희 이야기를 스리슬쩍 꺼낸다.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면, 무얼 하겠느냐고.
주황은 아버지의 폭력에 매번 맞기만 하지 말고 한 번은 덤비라,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반면 춘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던가. 그 애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은지, 무엇이 필요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모든 것이 나름 순조롭게 흘러갈 무렵 사건은 하나둘씩 생겨난다. 하나, 중학생 춘희가 사라졌다. 둘, 사촌오빠가 춘희에게 새로운 집을 구하라고 통보한다. 그 집을 매물로 올려놨다고. 셋, 모임 세미나에서 거금을 사기당했다. 다한증을 치료하려고 모아두었던 돈이 몽땅 사라진 셈이다. 모든 것을 잃기만 한다.
그러나 춘희는 침묵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이 집이 어떤 의미인지, 자신의 어머니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목소리를 낸다. 물론 사촌에겐 얼토당토않는 얘기다. 집에 누가 거주하느냐에 따라 임대인 자격을 얻고 잃는 건 아니니까. 사실을 바꿀 만한 힘은 없었다. 애초에 그건 춘희의 목적이 아니기도 했다.
그저 중학생 춘희가 꾹꾹 눌러 두었을 진심을, 집에 대한 애착을, 자신의 보호자들을 향한 그리움을 발화하고 싶었을 테다. 수수깡으로 정성스레 만든 집이 제 허락도 없이 망가져 버려진데도 오히려 사과를 건네야 하는 시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상처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지금의 춘희로.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어린 시절 학대받은 아이는 그때로부터 자라나지 못한다고. 10년이든 20년이든 시간만 흐를 뿐이라고. 몸만 커져서 어른처럼 보이지, 여전히 아이라고. 춘희는 자라지 못한 자신을 알아주기로 한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다 싫어하고, 미워하고, 불쾌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며 오롯이 견뎌온 상처들 또한 끌어안는다. 자신에게 남은 손바닥의 화상을 어린 춘희에게 되물려주지 않기 위하여,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말과 행동으로 지켜내기 위하여.
영화에서도 내내 보였다. 춘희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공통점이자 기이한 지점. 춘희를 진심 어린 눈으로 걱정했다가 날카로운 말씨로 돌변했다. 순식간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여기서 카메라의 담긴 시선이 달랐다. 부드러운 상황을 보여줄 땐 상대방의 모습을, 춘희를 비난할 땐 춘희의 상처받은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춘희가 기억하는 타인의 모습은 일부일 뿐이라고. 모두 춘희를 미워하고 싫어한 게 아니라, 아끼는 마음도 존재했다고.
나 자신을 다독여준 후에야 춘희는 새 집으로 새 출발을 한다. 이제는 사촌 집의 다락방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갈 춘희. 자신의 점액질로 흔적을 남기는 민달팽이처럼 꿋꿋이 제 길을 걸어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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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에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참석 후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