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Choice Movie2022-08-16 13:15:36
8월 3주 최신 개봉영화
8월 3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8월 3주 개봉영화!
놉
NOPE , 2022
영화 "놉"은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하고 기묘한 현상을 그린 작픔으로
북미 개봉과 동시에 폭발적인 입소문을 자랑하며 박스오피스 1위 달성했습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것’에 대한 공포심과 호기심!
은 올여름 그가 전할 메시지와 함께 관객들을 새로운 장르의 세계로 강렬하게 흡입 시킬 예정입니다
다니엘 칼루야가 '겟 아웃' 이후로 조던 필 감독과 다시 함께했는데요
그가 맡은 OJ 헤이우드는 말수는 적지만 기품 있는 행동을 하며 영화의 정신적인 중심을 맡습니다
또한 '미나리', '버닝'의 스티븐 연도 이번 작품에 함께했습니다
그가 맡은 '리키 주프 박'은 어린 시절 할리우드에서 아역 스타로 유명세를 얻고
지금은 자신이 출연한 작품의 본인 캐릭터 이름을 딴 ‘주피터 파크’를 운영하고 있는걸로 나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한 조던 필 유니버스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더 커진 스케일!
다양한 해석과 해설로 영화 세계를 뒤덮는
추천영화 "놉" 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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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 이슈와 소셜 미디어 폐해를 섞은 풍자극
“안녕하세요. 한정미입니다!” 여장을 한 조정석이 이 말을 하는 순간! <파일럿>을 향한 관심도 커졌다. 한 미모(?)하는 조정석의 모습과 연기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여장 남자 코미디 영화라는 점에서 올여름을 기다리게 만든 것. 물론, 기존 여장 남자 코미디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한 기시감은 여름 성수기에 이륙하려는 영화의 불안 요소! 하지만 이륙한 영화를 만나보니 기시감 미탑승! 대신 다른 요소들이 착석했다.
최고의 비행 실력 보유자, <유 퀴즈 온 더 블럭>까지 출연할 정도로 인기 고공행진 중인 항공 조종사 한정우(조정석). 하지만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 직장 술자리에서 여성 차별적 발언을 한 그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다. 다른 항공사에 문을 두드려봐도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를 뽑아주는 항공사는 없다. 설상가상으로 이혼까지 하고, 모아둔 돈도 다 떨어져 가는 신세. 하는 수 없이 이찬원 성지순례를 다니느라 바쁜 엄마(오민애)와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여동생 한정미(한선화)에 집에 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항공사에서 성 비율에 맞춰 파일럿을 채용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지원서를 낸다. 이름은 한정미, 성별은 여성, 직책은 부기장으로. 며칠 후, 1차 서류 합격 소식을 들은 그는 여동생의 도움으로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의 가짜 삶을 시작한다.
<파일럿>은 두 개의 엔진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는 여장 남자 코미디다. 잘 나가던 조종사가 말실수로 추락한 후, 여동생의 이름과 신분을 빌려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자신의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를 전한다. 일하기 위해서는 여성으로 살아야 하는데, 고초가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여자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남자 화장실에 가는 건 기본, 한정우로 살았던 말투와 기억, 행동들이 기어이 표출되고, 동기이자 워맨스를 이루는 윤슬기(이주명) 등 자신의 비밀을 숨겨가며 연명하는 한정우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에 젠더 이슈를 통한 웃음도 첨가된다. 한정미라는 여성으로 살려고 마음먹은 그가 가장 참지 못하는 건 바로 사회적 편견에 알게 모르게 여성을 비하하는 언행, 성희롱까지 당해야 하는 등 남성이었을 때는 전혀 문제기 안되었던 부분이다. 육사 후배이자 함께 비행기 운행을 해야 하는 기장 서현석(신승호)과의 에피소드는 이를 잘 그린다. 남자인지 모르고 한정미에게 추파를 던지는 상황 자체가 주는 재미는 물론, 이를 벗어나기 위해 한정우의 다소 과격한 타파 방법이 웃게 만든다. 이 터프한 모습에 더 빠져드는 서현석의 모습에 그 웃음은 배가 된다.
이런 서사적 구조와 코미디 작법은 <파일럿>만의 장점은 아니다. 영화의 원작인 스웨덴 작품 <콕핏>은 물론, <투씨>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 여장 남자 코미디 계보를 잇는 작품에서 숱하게 봐왔던 부분이다. 선배 격인 영화들과의 차별화 포인트를 가져가야 하는 건 <파일럿>의 운명. 연출을 맡은 김한결 감독은 이 코미디 장르에 좀 더 깊숙이 파고드는 젠더 이슈와 캔슬컬처를 포함한 소셜미디어 폐해를 가져온다. 이는 <파일럿>의 두 번째 엔진으로서 그 역할을 다한다.
앞서 소개한 듯 영화는 남성에서 여성의 삶을 사는 한정우를 통해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고초를 투영한다. 비록 코미디라는 장치로 활용될 때도 있지만, 극이 후반부로 갈수록 단순히 휘발되는 게 아니라 묵직한 풍자 요소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한다. 기장은 남성, 부기장은 여성으로 대변되는 직업의 성 우위, 여성을 직업의 숙련도와 포부가 아닌 외모로만 평가하는 사회적 잣대 등 반복되는 젠더 이슈는 점점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여기에 SNS로 대변되는 소셜미디어의 폐해도 중요한 역할은 한다. 핵인싸로서 살아가는 한정우의 삶은 빛 좋은 개살구다. 사회적인 지위와 면모에만 중점을 뒀기 때문에 가족도 그리고 비행기 조종을 좋아했던 자기 자신도 잊고 산다. 진짜 자신의 이름과 성을 가린 채 여성으로 변장해 살아가는 건 어쩌면 과거 진짜 한정우가 아닌 핵인싸 한정우의 삶을 지향했던 그의 과거 모습과 겹친다. 어쩌면 한정미로 살아가는 삶은 예전의 과오를 오롯이 체감하는 형벌처럼 느껴지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과정으로도 보인다.
소셜미디어의 폐해 대상은 한정우만이 아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화려한 모습에만 현혹되어 반응을 보이고, 어느 순간 자신의 생각과 달라져 팔로우를 취소하고 비판하는 일반 대중의 캔슬컬처 행태도 꼬집는다. <가장 보통의 연애>를 통해 뜬소문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세태를 멜로 장르로 보여줬던 김한결 감독은 이번엔 코미디 장르로 전작과 유사한 현대인들의 행태를 꼬집는다. 이런 부분으로 인해 <파일럿>은 기존 여장 남자 코미디와의 차별화를 가져가면서도 젠더 이슈, 소셜미디어 폐해 등 현시대의 세태를 반영하는 풍자극으로서 그 소임을 다한다.
두 가지 엔진은 가열차게 움직이지만 그 균형감을 유지하는데 공을 들이다 보니 웃음의 강도와 풍자의 깊이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난기류를 만나는 것처럼, 태생적으로 지닌 풍자의 메시지가 다소 무거워 간혹 마냥 웃을 수 없는 장면들을 마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코믹함이 계속 연결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 번 이륙한 영화가 안전하게 착륙할 때까지 관객을 사로잡는 건 역시나 조정석이다. 이 역할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천연덕스럽게 1인 2역을 오가며 웃음을 유발하는 건 물론, 앞서 소개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리 역할을 말끔하게 소화한다. 웃음을 줬다가 뺐다 하는 밀당의 고수처럼,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이 영화를 무난히 즐길 수 있는 건 조정석의 힘이라고 본다.
극 중 한정우를 도와주는 여동생 역 한선화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현실남매 포스를 보여주면서 말 맛 제대로 살리는 티키타카 파트너로 극을 살린다. 여기에 이 남매의 엄마 김안자 역의 오민애의 연기도 뒤지지 않는다. 이찬원을 향한 덕심으로 똘똘 뭉친 중년 여성 역을 입체감 있게 그리는데, 핸드폰 받는 자세부터, 말투, 팬덤에 사로잡혀 열정을 바치는 이들의 모습 등 포인트 마다 코믹과 감정 연기를 임팩트 있게 보여줘 몇 장면 나오지 않음에도 기억에 남을 정도다.
<파일럿>은 코믹 판타지다. 설정 자체부터 말도 안 되는 웃음이 그득하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팝콘 무비로 소비하기엔 아쉽다. 한정우 또는 한정미를 통해 보여준 이야기가 그리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도 한정우처럼 남에게 보여주는 것만 신경 쓰다 자신을 잃어버린 채 비행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난기류를 만나 추락하기 전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일단 신나고 쓰디쓰게 웃으면서!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3.5 / 5.0
한줄평: 여장 남자 코미디로 이륙했다 사회 풍자극으로 착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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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이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아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대비하는 방법이 있을까?
우리는 늘 속수무책으로 찾아오는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아버지의 죽음을 연습해 보는 딸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이자 촬영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커스틴 존슨
은 아버지인 딕 존슨이 여러 유형의 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는 모습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카메라를 드는 것이 일임에도 치매에 걸려 세상을 떠나기 전, 총명하고 따뜻했던 엄마의 모습을 기록한 영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아버지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서, 그리고, 갑자기 찾아올 아버지의 죽음에 무뎌지기 위해서 죽음을 리허설하는 것이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처음부터 충격적인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손자들의 그네를 밀어주던 딕 존슨이 위에서 떨어진 물건에 머리를 맞고 처참하게 쓰러진 장면이 그것이다. 손자의 그네를 밀어주던 다정한 할아버지이자 유쾌한 인물이 어떠한 주의도 없이 머리에 물건을 맞아 쓰러지는 장면.
이를 보고 놀라 멍하니 있을 관객들에게 영화는 쓰러진 딕 존슨이 스탭들의 도움을 받아 일어서는 광경을 보여주며 그의 죽음이 허구적 연출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계속해서 딕 존슨이 죽는 여러 사고를 허구적 연출을 통해 보여준다. 바로 이것이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의 특징이다. 죽음을 당하는 딕 존슨의 모습을 보여주고 다시 멀쩡히 일어서거나 자신으로 분장한 스턴트맨의 죽음을 바라보는 딕 존슨의 모습을 담아내며 관객들을 다시 안심시킨다.
사실, 허구를 다루는 영화에 있어서 우리에게 익숙한 형식은 허구적 상황을 관객이 믿도록 만드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보는 극 영화의 대부분이 그런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관객들이 허구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도록 한다. 이로써 관객들은 죽음에 무뎌지게 된다. 처음 그려지는 죽음은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죽음에, 그리고 그 죽음이 계속해서 허구임을 보여주는 연출 방식에 우리는 적응하게 된다. 즉, 영화가 어느 정도 전개되었을 때는 딕 존슨이 갑자기 사고를 당해 죽는 모습을 보여줘도 그가 아무렇지 않게 나타날 것이라는 걸 알기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다 예측 가능하게 관람하게 된다. 물론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관객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버지의 죽음을 연습한다’라는 주제 덕에 이러한 문제점을 피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에 장난처럼 반응하던 딕 존슨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가상에 죽음에 진심으로 몰입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점차 진지하게 자신의 죽음을 대하는 딕 존슨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우리는 더 이상 공포나 스릴을 느끼지는 않지만 그에 감정에 공감하며 지루
함을 느끼지 않고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허구적 연출임을 관객들에게 계속 보여주는 이러한 방식은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
한다. 이렇게 기존 영화들과는 다르게 관객들이 영화에서 빠져나와 몰입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이 작품에서 제일 좋아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우리는 몰입을 방해당함으로써 영화 외부의 시선으로 딕 존슨의 죽음과 그에 대한 그의 반응올 목격할 수 있다. 딕 존슨에게 몰입하게 되면 언젠가 자신에게 닥칠 죽음을 두려워하는 시선을 가지게 되고, 감독인 커스틴 존슨에게 몰입하게 되면 다가올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선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외부의 시선에서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죽음이라는 넓은 키워드에 주목할 수 있게 된다. ‘딕 존슨’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보편적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고 이를 자신에게 대입해 볼 수도 있다.
즉,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라는 제목에서 딕 존슨이 누군가의 이름 000으로 바꿔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죽게 되었을 때 남겨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지와 같이 말이다.
죽음을 다루고 있는 영화들이, 특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감정이 굉장히 처절하고 마음 아프게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굉장히 무거운 주제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가상일지라도 누군가의 죽음을 보여주는 것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을 약간은 유쾌하게 다루고 있으며 죽는다는 것 자체를 무섭고 슬픈 일만으로는 그리고 있지 않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천국에 가 있는 듯한 딕 존슨의 모습이 종종 중간에 삽입된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초콜릿을 찍어 먹기도 하고 아내와 춤을 추기도 하며 아픔이었던 자신의 발가락이 펴지기도 한다. 우리는 모르는 죽음 뒤에 벌어질 상황, 즉 사후세계에 대한 불완전한 지식은 사람이 죽음을 무서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후세계를 천국이라는 긍정적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죽음을 두려운 상황으로만 표현하지 않고 유쾌하고 발랄하게 표현한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에서 ‘000이 죽었습니다‘를 마주하게 될, 그리고 그 000에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가게 될, 더 나아가 000에 내 이름이 들어갈 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직감하게 될 어느 날,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주변에 누군가가, 혹은 내가 죽을 날이 가까워졌을 때, 나는 죽음을 처절하고 비참하게 그려 낸 영화를 마주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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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현실주의 애니메이터가 연출한 <앨리스>
체코의 조각가이자, 위대한 애니메이션 작가인
얀 슈반크마이에르 감독. 감독님은 초현실주의 운동에
강한 영향을 받으며 작품을 제작해 왔습니다.
굉장히 난해한 작품들을 만들어 호불호가 갈리지만
마니아층이 상당하며, 팀 버튼, 테리길리엄, 퀘이 형제 감독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감독님의 대표작으로는 <앨리스> <파우스트> <살인축구> <죽음의 식탁>
<대화의 가능성> <어둠, 빛, 어둠> 등이 있습니다.
영화 뿐만 아니라 연극, 회화, 조각, 설치미술, 문학 등 다양한 예술 형식을 넘나들며
작품을 만들어 오고 동부 유럽 최고의 작가입니다.
슈반크마이에르가 구현한 초현실주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앨리스> 같이 감상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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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미야케 쇼, 2022)에 관한 단상
우리는 감각하고 그녀는 투쟁한다
미야케 쇼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감흥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따뜻하다”일 것이다. 후끈한 열기라기보단 딱 체온 정도의 따스함. 세상을 향한 의심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때, 마음의 온도가 식었을 때라면 혹은 그런 누군가를 만난다면 미야케 쇼의 영화를 찾고 싶어진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필자가 본 미야케 쇼의 영화 3편(<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벽의 모든>)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보는 내내 ‘케이코’(키시이 유키노 분)의 투쟁을 지켜보면서도 스크린이 그 생동감 넘치는 세계의 따뜻한 온기를 관객에게 실어 나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각: 흐르는 이미지와 부산한 사운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극장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영화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청각장애인 복서의 드라마를 따라가지 않는 이야기, 관객은 영화의 러닝타임 동안 다루는 영화 속 시간의 케이코만 만날 수 있을 뿐 그녀의 전사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카메라는 필요 이상으로 케이코에게 다가가려 하지도 않고, 때론 그녀의 아주 개인적인 부분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케이코를 계속 지켜보지만,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읽을 수가 없다. 이야기 자체도 그렇지만, 이미지와 사운드 측면에서도 다르다. 작품의 배경은 분명 도쿄다. 그러나, 우리가 ‘도쿄’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번화가의 이미지가-이를테면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 같은- 아니라 케이코가 냄새난다고 했던 강변과 평범한 골목길, 세월의 흔적이 가득 묻은 복싱 체육관이 주 무대다. 16mm 필름의 따뜻하고 생생한 질감과 빛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한겨울에 온기를 가득 부여한다. 로케이션만 생동감 넘치게 담아냈을 뿐 아니라,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복싱의 운동성, 특히 케이코와 관장, 또는 동생 커플이 함께 섀도복싱을 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일 것이다.
사운드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도시의 온갖 소음, 엠비언트 사운드를 영화의 후반 작업에서 누르지 않고 가능한 살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영화는 청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함과 동시에 대단히 소란스럽다. 상대적으로 적은 대사량과 달리 영화 내내 극장을 가득 메우는 소음은 거부감이 들기보단 오히려 작품의 세계를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영화엔 음악이 거의 삽입되지 않는다. 음악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체육관에서의 훈련에서 반복적인 소리다. 줄넘기, 미트, 운동기구의 반복적인 소리가 씬에 독특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반드시 주목할만한 점은 주인공 케이코는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있는’ 사운드를 듣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관객은 평소보다 더 생동하는 세계를 체감함으로써 케이코의 불편을 인식한다.
투쟁: 작고 느리지만, 꾸준한
케이코는 소음뿐 아니라 경기 중의 코칭과 공이 울리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복서로서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그녀는 어쩌다 복싱에 빠졌을까. 이 영화는 그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가 왜 복싱을 그만두려 하는지도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없다. 내가 아는 (좋은) 영화에서의 복싱은 경쟁이라기보단 투쟁이다. 나 자신과의, 혹은 세계와의 투쟁. 이 영화는 케이코의 승패엔 별로 관심이 없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케이코가 세계를 제대로 대면하고 자세를 고쳐잡아 투쟁해나가는 성장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케이코에게 복싱은 어떤 동기나 목표라기보단 그녀가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케이코는 아픈 게 싫다. 그녀가 링 위에서 상대에게서 물러나고, 달려드는 이유는 마찬가지로 아픈 게 싫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번째 경기(케이코에겐 2번째)와 두 번째 경기의 양상은 상당히 다르다. 첫 번째 경기에서의 케이코는 승리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케이코가 상대보다 유효타를 더 많이 넣어 이긴 판정승이다. 경기 후 체육관에서 코치 ‘하야시’는 “두려우니까 앞으로 달려드는 거지?”라고 묻는다. 그리고 이어진 훈련에서 물러나지 말라는 말에도 케이코는 자꾸만 물러나 프레임 바깥으로 프레임아웃 한다. 영화 중반부에서 관장은 케이코에게 “복싱은 싸울 마음이 없으면 할 수가 없어. 싸울 마음이 없어지면 상대에게도 실례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후반부 두 번째 경기에서는 케이코는 패배하지만, 케이코는 상대에게 전력으로 달려든다. 브레이크 이후에 그녀가 내지르는 기합은 그녀가 상대에 대한 태도, 혹은 세계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순간이다. 그때 비로소 케이코는 상대의 ‘눈을 들여다본다’. 복싱을 계속할지 고민하던 그녀는 강변에서 상대를 만나 감사를 전해 듣는다. 그리고 뭔가 결심한 듯 언덕을 뛰어올라 로드워크를 시작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영어 제목은 <Small, Slow but Steady>다. 작고 느리지만, 꾸준한. 케이코는 관장이 인터뷰에서 밝히듯 복싱에 재능이 있는 선수는 아니다. 다만 그녀는 ‘인간적인 기량’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케이코는 작고 느리지만, 솔직하고 정직하다. 그녀는 이제 세계와 제대로 대면함으로써 꾸준히 나아갈 것이다.
작고 느리지만 꾸준한 것은 안타깝게도 성장하는 케이코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관장 부부에게 설명하듯 “작은 빗방울이 긴 시간 동안 단단한 돌을 뚫는 일”이 있다.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단순히 케이코라는 인간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만큼 사라져가는 것들에게도 주목한다. 뇌 질환을 앓는 관장, 낡은 체육관, 오래된 골목의 풍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사라지게 될 운명이기에 그 역시 작은 존재일 것이다. 케이코가 이 체육관을 떠나기 싫어함은 짐작해보건대, 그 공간에서 관장과 사제 이상의 가족애와 같은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케이코가 세상을 제대로 대면한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사라지게 두어야 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라지는 것들을 처연하게 섣부르게 연민하지 않는다. 병색이 짙어져 병원에 입원한 관장은 케이코의 경기를 보고 나서 만족한 듯 힘겨워 보이지만 천천히 휠체어를 끌고 간다. 미야케 쇼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히길 이 영화의 콘셉트는 “우리가 바라봐야 했던 것은 아마도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 그 작은 존재를 쌓아나가서 큰 영화로 만드는 게 아니었을까.”라고 했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분명 작은 존재들을 긍정한다. 그 긍정의 힘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필자의 생각엔 그 힘은 연대에 있다. 작중 시간적 배경은 오래되지 않은 코로나 시절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온라인을 통한 범세계적 연결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오프라인에서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던 시기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은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 모양을 통해 소통해야 하므로,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코로나 사태는 소통의 어려움을 증폭시켰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케이코를 포함한 농인들이 수어로 대화할 때 자막을 삽입하지 않았다. 관객들도 그 소통의 어려움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연대는 언어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짓으로 하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섀도복싱 장면들에선, 나란히 선 사람들이 비언어적인 제스처로 마치 합일되는 것만 같다. 언어로 말하기보단 눈을 맞추듯 몸짓을 맞추는, 따뜻하고도 놀랍도록 시네마틱한 그 순간들. 케이코는 “결국 사람은 혼자야”라고 말했지만, 그녀가 세상과 제대로 대면할 힘을 얻은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연대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엔딩 쇼트에서 그녀는 혼자 달려 나가지만 두 번째 복싱 경기에서 사람들이 멀리서 함께했듯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한 가지만 더 말하고 싶다. 두 번째 경기에서 케이코를 지켜본 사람들은 가족과 체육관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스크린을 통해 바라본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그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생생하게 느꼈던 세계 속에서 진심으로 투쟁하기 시작하는 케이코를 모두가 응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엔딩크레딧은 그 소란스러운 엠비언트 사운드와 함께 도쿄의 풍광이 하나씩 지나간다. 엔딩크레딧이 끝나고 상영이 종료되기 직전, 작게 줄넘기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오프닝이 끝나고 체육관에서 들었던 첫 번째 소리다. 아무래도 케이코는 복싱을 그만두지 않은 것 같다.
+) 올해 초에 작성했던 이 글을 일부 수정하고 문장을 추가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필자가 동시대 감독 중 최고로 여기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가 많이 떠오른다. 시네필 책방 ‘코프키노’의 대표님과 잠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는 “하마구치 류스케는 22세기 영화로 가고, 미야케 쇼는 20세기로 돌아가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그 둘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고, 동료애를 쌓아나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연대의 가치를 믿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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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여운 공존과 특별한 평화
최근에 본 해리포터 시리즈 영화와 며칠 전에 본 <대니쉬 걸>의 주연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라는 배우가 등장하는 교집합적인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이 영화 역시 시리즈로 진행되는 영화이긴 하지만, 시리즈를 몰아서 보진 않은 채 일단 첫 번째 작인 <신비한 동물사전>만 보고 글을 적으려 한다. 나중에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를 비롯하여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도 막을 내릴 때 감상문을 적지 않을까 예상한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신비한 동물사전> 네이버 스틸컷
친화력
<신비한 동물사전> 주인공인 뉴트 스캐맨더(에디 레드메인)는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신비한 동물들을 조사하고 연구하며 어떻게 하면 이들과 공존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호그와트 출신 마법사다. 후플푸프 출신답게 상당히 넓은 관용과 차분함이 있는 성격이다. 이러한 성격으로 동물들을 사랑하고 애정을 가졌기에 그가 보여주는 동물 관리법은 굉장하다. 각 동물마다 가진 특징과 행동들을 정확하게 꿰뚫으며 대처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옵스큐러스로 인해 변해버린 크레덴스(에즈라 밀러)를 차분히 설득하는 뉴트의 모습은 그가 가진 이해력과 친화력을 확인할 수 있다.
동물
제목 그대로 흥미로운 동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필자가 가장 재미있게 본 동물은 문카프다. 문카프는 뉴트에 가방에 있던 동물로 보름달을 지켜보다가 제이콥(댄 포글러)이 주는 먹이를 먹으러 쫓아오는 목이 길고 검은 털로 뒤덮여 있으며, 눈이 큰 특징을 지녔다. 문카프가 등장하기 전 겉보기에도 사나워 보이는 천둥새나 거대한 폭탄 뿔을 지닌 에럼펀트라는 동물도 신기하게 봤다. 하지만 문카프는 뉴트의 센스가 돋보이게 해 준 동물이다. 머글 태생인 제이콥에게 눈두나 천둥새 같은 위험한 동물에게 먹이를 주라 하지 않고, 머글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얌전한 문카프에게 먹이를 주라고 한 뉴트의 센스 있는 행동이 돋보여 더 흥미롭게 바라본 동물이기도 했다.
공존과 평화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키워드다. 두 가지 상황으로 공존과 평화가 있는데, 첫 번째는 뉴트의 신비한 동물들과 마법사 사회다. 뉴욕 마법사 사회는 신비한 동물을 금지하는 법이 있을 정도로 동물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있는 사회다. 그러나 뉴트는 신비한 동물사전이라는 책을 집필하는 동시에 동물들의 성격과 특성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충분히 인간과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뉴트는 신비한 동물의 조사와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마법사와 머글 세계다. 호그와트 학교가 있는 런던 사회는 머글들이 사는 사회 속에 마법사들이 뉴욕 마법사 사회보다 자연스럽게 살고 있지만, 뉴욕 사회는 아예 지하 세계로 내려와 살고 있다. <신비한 동물사전>에 등장하는 대사로 추측하면 머글들이 마법사들을 공격하여 지하세계로 쫓겨나듯 도망친 상황으로 보인다. 그래서 뉴욕 마법사 사회는 머글 눈에 안 띄는 법을 가장 중요시 여기고,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이들도 어찌 보면 마법사와 머글들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지닌 공존과 지하세계로 살아가며 머글 사회 눈에 띄지 않으려 하는 특별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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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다이애나 스펜서의 슬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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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 아이가 사람들의 손을 타면 안 좋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누구나 너무 예뻐하고, 예쁘다고 쓰다듬고 한 번 볼 걸 두 번 보게 되는 아이는 명이 짧다나. 그리고 그들은 익명의 죽은 아이들이 얼마나 예뻤으며 주변에서 얼마나 예쁘다고 난리였는지 회상했다.
이제는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모두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어떻게 무너지는가. 우리는 그런 케이스들을 자주 확인했다. 영화를 보면서 몇몇 사람들을 떠올렸다. 관심이라는 포장을 씌우면 비수도 무디어지는지 모를 일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영국에서는 당연하고,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평범한(사실 귀족 출신이지만) 유치원 교사 여자가 왕자님과 결혼하는, 말 그대로 신데렐라와 같은 러브스토리로 비추어졌다. 레이디 다이애나의 결혼식부터해서 패션까지 유행했고 그 스타일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한편으로는 모나코 공국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와도 비교할 수 있겠다. 그들은 다 떠났는데 디올의 레이디백, 에르메스의 켈리백은 아직까지 사랑받는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사흘간의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이다. 다이애나는 기사도 없이 별장으로 향한다. 지도를 보아도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내비게이션은 정말 대단한 발명품이다). 한참을 헤매다 보니 어릴 적 살던 동네이다. 아버지의 외투로 만든 허수아비를 발견하고서야 깨닫는다. 그걸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결국 여왕보다 늦게 별장에 도착한 다이애나는 별장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삐걱거린다. 크리스마스를 즐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별장에 들어왔을 때의 몸무게와 나갈 때 몸무게를 재는 것.
이 관습은 단지 '재미'로 시작되었다. 몸무게를 다는 것이 재미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몸무게의 족쇄로부터 벗어나 있는 사람뿐이다. 대상화되지 않는 쪽, 관찰자인 쪽이다. 관찰자는 누구인가. 권력을 쥐고 있는 쪽이다. 영국의 제레미 벤담이 설계한 판옵티콘처럼, 보는 자는 권력을 쥔 자이다.
웨일즈의 공주, 왕세자비, 신데렐라인 레이디 다이애나는 안타깝게도 언제나 대상화되었다. 궁 안에서는 궁의 예절와 법도를 어기지 않는지 감시받아야 했고, 궁 밖에서는 파파라치들의 카메라에 비친 관찰자였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기자들과 파파라치들이 따라붙는 삶, 매일 얼굴이 신문 1면에 대문짝하게 나오는 삶, 뭘 입고 뭘 했는지 모두가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자신은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삶이란 얼마나 끔찍한가.
그때 한 명이라도 자기의 편이 있다면, 아주 작은 진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나마 거기에 기대어 살겠다. 다이애나에게 남편 찰스 왕세자가 그 역할을 해주었어야 했으나 찰스는 그럴 수 없었다. 그에게는 다이애나와 결혼하기 전부터 만나왔고, 결혼 후에도 정리하지 못한 여자가 있었으니, 아내는 그저 왕실에 맞는 허울을 뒤집어 쓴 껍데기에 불과했다. 심지어 내연녀와 똑같은 진주목걸이를 선물받았다는 걸 아는데도 그 목걸이를 크리스마스 내내 걸어야 하니, 지옥이 달리 지옥이 아니다.
다이애나도 그렇지만, 왕실 역시 다이애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인들의 모든 관심은 다이애나에게 쏠려 있었다. 왕자인 찰스가 가장 당황스럽지 않았을까. '찰스 왕자의 비(妃) 다이애나'가 아닌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남편 찰스가 되어버린 꼴. 게다가 딱딱하고 절제되어 있던 왕실의 분위기와 다이애나의 다정한 이미지 사이의 괴리 때문에 영국 사람들은 다이애나에게 더욱 열광했다.
영화에서 찰스의 역할은 미미하다. 찰스뿐만 아니라 왕실의 누구도 돋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역도 없고 다이애나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하지만 가장 나쁜 것은 방조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을 쳐다보지만, 왕실에서 다이애나는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크리스마스 이브 밤, 아이들과 함께하는 놀이에서 '엄마는 왜 슬픈지' 묻는 큰아들 윌리엄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먹은 것을 다 게워내는 다이애나에게, 남편 찰스는 위로는 커녕 요리사들을 생각해서 토하지 말라는 말을 할 뿐이다. 그나마 다이애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시종 매기까지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자 다이애나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사방에 믿을 사람 하나 없는 다이애나는 앤 불린의 책을 읽으며 불안에 떨기 시작한다. 앤 불린은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이다. 숱한 여자들과 바람을 피운 헨리 8세는 오히려 앤 불린에게 외도의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앤 불린은 참수형으로 죽는다.
다이애나는 아마도 앤 불린에게 자신을 투영한 것 같다. 정작 바람은 본인이 피우고 있으면서도 다이애나를 단속시키는 찰스의 모습은 헨리 8세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그러지 않아도 다이애나는 임신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몇 번의 자해가 있었고, 거식증과 폭식증도 있었다. 그럴 때 누구라도 다이애나의 곁에 있어주었더라면 사정이 좀 나아졌을까.
먹지도 못하고, 행사에 참여도 하지 못하던 다이애나는 자꾸만 어릴 때 살던 집으로 가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저지당한다. 기어코 폐허가 된 옛날집에 들어갔을 때, 다이애나의 눈앞에 유년시절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웨일즈의 공주, 왕세자비, 레이디 다이애나가 아닌 '다이애나 스펜서'로서의 삶.
크리스마스 연휴 마지막날에는 꿩 사냥이 관습인가 보다. 꿩은 아름다운 깃털을 가졌지만 사냥용으로 길러질 뿐이다. 죽임을 당하기 위해 사는 존재. 작은아들 해리는 아직 꿩 사냥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왕실의 법도에 의해 꿩사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이애나는 꿩 사냥터에 나타난다. 그리고 아들들을 데리고 별장을 떠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최고급 셰프가 만든 복숭아 수플레가 아닌 KFC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KFC 점원이 주문자의 이름을 묻자 다이애나는 말한다. '스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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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을 새롭게 써보고자 했다. 다이애나에 관한 영화는 이미 몇 편 나와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다이애나의 사랑, 안타까운 이별 등이 아니라 왕실의 일원으로서 다이애나의 슬픔과 불안, 우울 등의 감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비운의 왕세자비' 같은 타이틀 말고, 인간 다이애나 스펜서에 관하여.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이혼 후 활발하게 사회운동을 해나간다. 아프리카 빈민구조, 지뢰제거, 적십자 활동 등을 해나가며 '대상'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이혼 후에도 파파라치의 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파파라치를 피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모자라, 즉사가 아니었음에도 파파라치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쳐 죽고 말았다. 영국 국민들은 슬픔에 잠겼으나 왕실은 끝까지 냉정했다. 그러다 블레어 총리까지 추모를 할 것을 촉구하여, 왕실장으로 장례식을 치른다. 그때 윌리엄, 찰스 왕자는 고작 10대 초중반이었다. 엄마가 죽었는데도 왕실의 법도를 따르며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그 심정을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비극은 어쩌면 현대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뻣뻣한 왕실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해리 왕자와 결혼한 매컨 마클은 신문사의 횡포에 참지 않고 사생활침해 소송을 꾸준히 하고 있다. 물론 왕실의 인종차별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모두의 관심 속에 사는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한두 사람의 사랑이 지지대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는 관심이라는 무기로 너무 많은 사람들을 보냈다.
관람 포인트
* 다이애나 역을 맡은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목소리와 발성이 거의 다이애나 그 자체였다. 영화 상영 전에 잠시 크리스틴의 인터뷰를 보여주는데, 다이애나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찾아보고 연구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목소리도, 제스추어나 표정도 옛날 다이애나비의 영상 속의 그 모습 같다. 영화를 보기 전후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영상을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찍은 클레르 마통이 촬영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도 보여주었지만 그가 보여주는 미술적 감각은 정말 아름답다. <스펜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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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더 킬러> 공식 티저 예고편
결정적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타깃을 놓친 암살자. 사적인 감정은 배제한다는 신조 아래 국제적인 추격전에 뛰어드는데. 그 여정에서 의뢰인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더 킬러》, 일부 극장에서, 그리고 11월 10일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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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종이의 집 - 파트 5 1부] 공식 예고편
누가 우리에게 굴복을 말하는가. 《종이의 집》 파트 5: 1부, 9월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