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7-22 15:34:42
다른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순간.
영화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리뷰
이 무더운 여름조차 싱그러운 분위기로 새겨주어 본격 여름이 그리워지는 영화인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소개하려고 한다. 세대와 세대를 잇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 따뜻한 영화는 2년이 넘은 지금도 바래지지 않은 채 색을 유지하고 따뜻함을 간직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은 정말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졌지만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환갑을 맞은 정연은 일본에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딸을 만나러 일본에 간다. 비가 무수같이 떨어지는 날, 딸이 아닌 손녀인 안이 마중 나와 있다. 일면식도 없던 손녀와 택시를 타고 딸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은 정적 그 자체다. 손녀 안은 한마디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통화를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정연이 집을 돌아본다. 그 모습을 보던 안은 밖으로 나가자고 말하고 정연은 안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긴 외출을 하고 돌아와 우연히 손녀의 휴대폰을 보게 된다. 두 사람은 오늘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갈 곳을 잃어버리다가 한 대상을 찾아 언제 끝날지 모를 원망을 자신을 상처 내면서 까지 쏟아붓는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져드는 원망이라는 마음은 누군가가 되짚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감정을 깨닫고, 인정하는 순간 왠지 모를 미안함과 민망함이 몰려오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나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다가갈 수도 없다. 의외의 지점에서 겹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언어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눈빛, 몸짓, 그 외의 비언어적인 요소를 통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아픔을 공유한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이루어지지만, 긍정적인 상황에서도 이루어져서 서로의 마음을 잘 두드릴 수 있었다. 타인이 우리가 되는 순간이 좀 늦어도 시간을 두고 기다려주는 모습이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짧게만 느껴지는 영화의 여운은 끊어지지 않을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안이 서울로 왔을 때, 서로 어떤 표정으로 다시 만날지 궁금해진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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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생물을 만나 얻은 삶의 동력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 큰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 상실감은 슬픔과 분노, 외로움 같은 다양한 감정들로 변형되어 퍼진다. 그런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며 삶을 살아내야 할 목적을 찾아 헤맨다. 대부분은 그런 의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죽음을 택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살고자 하는 욕구를 조금씩 느끼게 된다. 그것이 바로 상실감 속에 숨겨진 삶의 의지이고 그것을 꺼내게 되는 계기는 바로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부터 나온다.
상실감이라는 감정의 파고는 언젠가 잦아들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 시간에 누군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하고, 때론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나의 감정을 이해받기도 한다. 상실감이 극에 달한 그 상황에서 결국 위로받는 건 주변에 다가오는 존재들로부터 온다. 그것이 바로 삶의 의지를 꺼내는 계기가 된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기생수 더 그레이>는 괴수 장르 혹은 외계인 크리쳐 장르에 속한다. 일본 원작 만화의 세계관을 따르고 있는 이 시리즈는 한국의 수인(전소니)이 중심인물이다. 여기에 건달 강우(구교환), 특수수사팀 그레이의 팀장 준경(이정현)이 등장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 세 인물의 공통점은 모두 상실감 속에 있다는 것이다. 세 인물 모두 상실감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이 연결되어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무척 다르다.
첫 번째 감정 - 수인의 외로움
수인은 부모를 모두 잃었다. 어린 시절 직접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떠나 다른 가정을 꾸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어머니를 몰래 찾아가 봤지만, 어머니는 5만 원 몇 개를 쥐어주고는 절대 다시 오면 안 된다는 말을 건넬 뿐이었다. 그러니까 수인은 부모에게 완전히 버림받은 존재다. 한 명은 육체적으로 수인에게 폭력을 가했고, 다른 한 명은 정신적으로 수인에게 폭력을 가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 속에서도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건, 형사 철민(권해효) 덕분이다. 철민은 무심한듯하지만 세심하게 수인이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도움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인은 상실감이 만들어낸 외로움 속에서 평생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딜 가도 안 좋은 일만 생기는 듯한 그녀에게 우연하게 들어온 기생생물은 그녀의 뇌를 다 먹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지킬과 하이드처럼 수인의 몸속에서 다른 인격의 존재가 된다. 철저하게 외롭게 살아가야 할 수인에게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가야 할 존재가 생긴 것이다.
기생생물이 들어온 이후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저주 같아 보였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수인과 기생생물 하이디는 동화되어 간다. 각자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서로의 감정을 알게 된다.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수인은 좀 더 큰 용기를 내어 과감한 행동을 하는데, 그런 수인의 변화는 평생 같이 함께 하게 된 하이디의 존재가 무척 큰 동기가 된다. 수인의 외로움이 점점 약해지고 그녀의 주변에 그를 돕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길수록, 수인의 삶의 의지는 조금씩 커져간다. 그리고 수인이 가지고 있던 외로움과 상실감도 그녀가 가지게 된 삶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
두 번째 감정 - 강우의 슬픔
사실 강우와 슬픔이라는 감정은 잘 어울리는 감정은 아니다.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이야기 내내 그는 무척 가벼워 보이고 철없는 인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을 즉흥적으로 결정하거나, 대충 마무리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그는 도통 중요한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감독이 이 인물을 넣은 이유는 아마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회사원 같은 모범생 타입의 인물은 아니지만, 조금 철없지만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생생물에 감염된 누나에게 이상함을 느끼고 실종된 여동생을 찾으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떤 상황을 맞이하고 큰 슬픔을 느낀다. 실제로 극 중에서 그는 꽤 많은 눈물을 흘리는데 그건 그의 주변에 그를 이해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의미이고, 실제로 이야기 속에서 그의 주변에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인물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간다. 그래서 겉으로는 무척이나 밝고 별 걱정 없어 보이는 강우지만, 그의 내면에 박혀있는 상실감은 더욱더 커져간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무너지기 직전에 수인과 하이디를 만난다. 전혀 연결점이 없을 것 같은 세 존재가 만나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상실감의 무게를 조금씩 나누어 가진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완전히 잡아먹은 기생생물들을 퇴치하고자 하는 공통 목표를 가지게 된 그들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 결국 강우의 슬픔은 두 존재와 나누면서 이겨낼 수 있는 감정이 되고, 강우에게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의지가 만들어진다.
세 번째 감정 - 준경의 분노
준경은 <기생수 더 그레이> 안에서 가장 이성적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프로파일러 출신 경찰인 그녀는 약간 상대방에게 비아냥대는듯한 말투를 가지고 있지만, 기생생물을 찾아내고 처치하는 작전 수행능력은 무척 뛰어나다. 프로파일러가 가진 특유의 감은 그가 좀 더 옳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돕는다. 그녀는 기생생물을 잘 이용할 줄 알지만, 과도하게 기생생물 퇴치에 목을 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준경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그녀가 가진 분노다. 그녀는 기생생물 등장 이후, 그것에 감염되어 버린 남편을 잃었다. 바로 눈앞에서 기생생물에 전염된 남편은 준경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죽이려고 시도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을 죽인다. 비록 준경은 가까스로 자신의 목숨을 지켰지만, 손이 잘리고 심한 부상을 입었다.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그 상황은 그녀를 슬픔에 가두기보다는 분노를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야기 내내 그는 무척 차가 워 보이고 기생수 퇴치가 전부인듯한 말을 내뱉는다.
그녀의 앞에 나타난 세 존재, 수인과 하이디 그리고 강우는 준경에게 그렇게 중요한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그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정황들을 보면서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한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마음, 그 마음은 수인과 강우도 똑같이 경험한 감정이며, 기생생물인 하이디도 동일하게 느낀 감정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갑작스럽게 상실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은 존재들이고, 우연히 만나 상실감으로부터 발현된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느끼게 된 존재들이다. 이들이 만나 세상에 흩어져버린 기생생물들과 벌이는 대결은 감정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며 끝까지 집중하게 만든다.
연상호 감독은 <기생수 더 그레이>를 짧은 호흡으로 구성했다. 총 6회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보다 짧은 호흡으로 전개되면서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본론으로 진입한다. 또한 각 인물들의 감정을 단순하게 표현하면서 좀 더 직관적으로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들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들은 꽤나 흥미롭다.
이 시리즈는 수인의 이야기다. 기생생물 하이디와 공생하게 된 수인은 끔찍하게만 느껴졌던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큰 용기를 내어 기생생물들과 대결을 벌인다. 비록 그녀의 가족은 그녀를 버렸지만, 수인은 혼자가 아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상실감과 외로움으로 시작하지만, 모두가 함께인 따뜻함으로 마무리된다. 무엇보다 시리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비밀스런 새로운 인물은 원작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더욱 반길 것이다. 그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youtube.com/shorts/HRDUH5A0Jbs?si=cIaXY3LwMKKkD36N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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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한국영화를 사랑하게 된 이유
떠나려 하네. 저 강물 따라서. 익숙한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그 시간들도 다시 돌아오진 않아. YB의 윤도현이 부르는 노래다. 난 YB의 음악을 좋아했다. 내가 10대 때에 TV 프로그램이 있었고 거기에 YB가 나왔다. 당시 주류였던 아이돌 음악을 별로 안 좋아했던 나.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이유는 없지만 아이돌의 음악을 그렇게 좋은 음악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26살의 나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 4만 번 이상을 생각했다. 물론 시간은 기차처럼 뒤로 돌아오지 않는다. 행복했던 시간. 후회되는 과거.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하는 미련. 만약과 가정은 잔인하게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근데 그런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터닝포인트는 보통 한 번만 찾아오지 않는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 아닌가? 한번, 두 번, 세 번 계속 일어나서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강물 따라 비행기를 타 한국을 떠나도 그 안에서 계속되는 루틴이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이게 잠깐 들고 끝나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웬만하면 흑역사는 누적되니 괴롭다. 난 21살 때 이 누적되는 흑역사들이 참 싫었다. 엄마, 아빠에게도 병이 있다는 사실 자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우울함에 장식되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에 점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할 때, 새로운 취미에 눈 뜨고 싶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게 됐다. 그리고 한국영화의 팬이 됐다. 나에게 이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니 만큼 여러분에게도 권하고 싶다.
1. 무엇에 관한 작품인가요?
처음 시퀀스를 보면 익숙한 느낌이 들 것이다. 어딘가 사연이 많아 보이는 남자 영호.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일행들의 마이크를 뺏어 노래를 부른다. 노래도 부르다 말고 갑자기 철로 위로 올라가는 영호. 갑자기 만난 사람이 느닷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거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한 명을 남기고 다른 친구들은 트로트 음악에 춤사위를 벌이고 있다. 선로 위에 올라간 영호.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한 채로 영호는 기차에 몸을 던지기로 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비명과 함께.
영화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영호의 과거를 좇는다. 그가 어떤 과정을 겪었기에 그런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격동의 한국사를 천천히 살펴본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정통으로 맞은 영호. 그렇게 자기의 선택지를 고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회의 희생양이 된 인물이 영호다. 이 영화는 왜 사회에게 상처를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얼마나 한국사에 상처가 많은가'와 '당신이 돌아가고 싶을 만큼 행복한 때는 언제인가'라고 묻는다. 이 영화는 그런 작품이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세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상처. 역사. 공감. 상처는 인물의 상처를 들여다보기 때문에. 역사는 우리 한국사회의 과정과 인간의 삶이 큰 관련이 있단 걸 보여주기 때문에. 공감은 감독 이창동이 해결책이 아닌 절규로 인물의 최후를 묘사했다는 것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상처받은 이들에게 설루션이 아닌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세 가지 키워드로 보여준다.
3.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근데 한국적이다. 이게 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전부를 관통하는 장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엔딩을 서두에, 오프닝을 결론부에 배치하는 거야 그렇게 찾아보기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분명하게 구분되는 차이점은 이런 내용을,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건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보장한다. 뭐랄까. 이 영 호라는 인간이 질이 구린 인간인 거야 초반부만 봐도 느껴지는데, 어쩐지 모르게 이 인물에게 느껴지는 공감이 있다. 근데 그 기분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다. 세상에게 상처를 받는 이유가, 어쩌면 그가 피할 수 없는 어떤 요인들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 때문일 수도 있다. 또, 그 아픔을 겪고 나서 보여주는 리액션이 우리의 인생과 그렇게 멀지 않음도 그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질이 구린 인간에게 느껴지는 연민과 위로'는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역사에 좌절하는 인간이 보여주는 리액션'은 우리나라 사람이기 때문에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이 이창동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탁월한 완성도도 그 특이함과 장점을 경험할 수 있다.
4)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영화가 어렵지는 않다. 근데 보는 건 좀 힘들 수도 있다. 감독이 연출을 잘 만들어 인물에게 이입을 잘하게 만들었다.
5)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설경구. 문소리. 작년 2021년에 활동했던 배우들이기도 하다. <자산어보>와 <세 자매>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인 두 사람이기도 하다. 이 둘의 신인시절이 담겨 있는 영화다. 후에 <오아시스>로 재회하는 둘이지만 '뇌성마비에 걸린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보다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안에 거대한 화와 상처를 품고 있는 영호. 대놓고 감정연기를 하는 것보다 내면에 화를 품었다는 걸 드러내기가 어렵지 않나? 정말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아픔이나 결핍을 알기 어려우니까. 배우 설경구는 주인공 영호의 심리상태를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끔 아주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걸로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 평단의 인정을 받았단 뜻도 될 듯. 문소리도 <오아시스>만큼이나 고난도는 아니었겠지만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감독 이창동이 이런 쪽으로 배우의 연기를 뽑아내는 걸 잘하는 것 같다. <밀양>에서의 송강호 배우나, <버닝>에서의 스티븐 연의 연기나 뭐랄까 우리 주변에 실제로 있을 법 한 인물을 잘 설정한다는 느낌이다.
6) 줄거리 외의 부분은 어떤가요?
보통 이 부분에 대해 쓸 때는 미장센에 대해 썼다. 근데 사실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미장센이 두드러지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상미가 안 좋은 뜻은 결코 아니다. 그냥 평범한 영화 같다는 뜻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미장센이 어쩌고는 신경 쓰이지 않는다. 플롯 연출이 워낙 탁월해서 조용히 영호의 마음에 스며든다.
7) 이 영화를 보기 전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아마 10대 때 한국사 과목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IMF, 5.18 광주사태 등등. 우리나라 국민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실들을 상기시키기만 한다면 될 것 같다.
8)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반복되는 상처에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 생의 끝까지 왔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어떤 삶이든, 당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요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 박하사탕을 먹고 조금이라도 더 눈물을 쏟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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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시작점을 다시 쓴다는 것
- 겨울이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는가? 누군가에겐 <이터널 선샤인(2004)>일 수도, <러브레터(1995)>나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일 수도 있겠다만 내 대답은 <윤희에게(2019)>이다. 왜일까. 푹푹 내린 눈으로 뒤덮인 흰 풍경 속에서 검은 코트를 입고 선 윤희(김희애)가 막막한 세상의 단독자처럼 보여서일까. 혹은 스무 살을 앞둔 딸을 키우는 중년 여성 윤희가, 외면했지만 여전히 여린 상처를 보듬고 나아가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라면, 찬 겨울의 중심부에서 찾아낸 이야기의 절단면을 어루만지며 그 시절의 선명했던 감정을 담담히 긍정하는 모습이 찬연했던 탓일지도. 아무튼 2023년 1월의 끝물에 나는 다시 <윤희에게>를 보았다.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영화 <윤희에게>는 과거와 바다, 꿈의 경계를 횡단한 편지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다. 조금 더 풀어내자면 이렇다. 지금은 일본에 사는 윤희의 20여 년 전 첫사랑 쥰(나카무라 유코)이 쓴 고백이 예산에서 지극히 수동적인 자세로 일상을 견디는 윤희에게 도착한다. 정확히는, 윤희의 딸 새봄(김소혜)에게. 새봄은 몰래 편지를 읽고서 엄마에게 일본 오타루 여행을 제안하고, 오타루에선 쥰의 편지를 몰래 보낸 장본인 마사코(키노 하나)와 합심해 두 사람의 재회를 이끈다.여느 영화가 그렇듯 <윤희에게>를 읽어내는 방법은 무수하기 그지없다. 우선 젠더가 가장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윤희를 억압했던 한국의 가부장적 사회에 집중할 수도 있을 것이고, 영화의 구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표류하던 개인의 성장 서사로 이해할 수도 있을 테고, 윤희와 새봄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뤄봄직하다. 당연하지만 쥰에게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그중에서 내가 집중하고 싶은 건 윤희 개인의 내면적 성장 – 그러니까, 스스로가 다시 쓰는 개인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퀴어라는 주제를 깊게 다루지 않는 까닭은 그러한 소수자성이 없는 내가 함부로 꺼내도 괜찮은 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으로, 어쩌면 내 부족함을 유야무야 덮어버리는 회피인지도 모른다.)영화 초입에서 우리가 만나는 윤희는 공허하다. 공장으로 향하는 봉고차에 탄 눈빛엔 힘이 없고, 식당 배급을 하는 그의 일상은 지겨운 굴레처럼 보인다. 심지어 담배를 피우는 가로등 옆의 건물마저 곧 무너질 듯 초라하다. 인생이 그를 어찌나 가혹하게 휘둘렀던지, 이따금 윤희는 자신의 목을 일찌감치 내놓은 연약한 초식 동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는 것은 윤희가 자아내는 고독이다. 윤희는 대화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마다 단절하는 쪽을 택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기다리고 관찰하기만 한다. 오죽하면 딸인 새봄이 윤희의 태도를 비꼬아 “나 자꾸 신세 지게 만들지 마, 그거 다 빚이야.”라고 말했을까. 그러하니 전 남편인 인호(유재명)가 윤희는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한 평가가 완전히 틀리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러한 윤희의 안전거리 확보는 자신을 돌보기 위한 방편이다.윤희가 과거 사랑을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는 분명 참담한 배반이었다. 쥰을 사랑한 윤희가 도달한 곳은 정신병원이었다. 가족이 윤희를 사랑한다는 미명 하에 내어준 선택지는 ‘괜찮은 남자’와의 이른 결혼이었으며, 윤희를 사랑했다던 전 남편은 술에 취해 윤희의 집에 돌아오는 불편한 폭력을 거듭한다. 어디 그뿐인가. 가족은 사진을 향한 윤희의 애정을 알았지만 대학교 사진학과에 진학한 이는 윤희가 아니라 윤희의 오빠였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가 그를 억압할 때, 숨죽여 삶을 이어가야 하는 개인이 가장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결코 전복일 수 없다. 전복엔 적지 않은 용기와 지지가 필요하다.이러한 윤희에게 용기를 더해준 사람은 두 명이다. 쥰이 부치지 않은 편지를 한국에 전한 쥰의 고모 마사코와, 편지를 읽고 대담한 여행 계획을 세운 딸 새봄. 쥰의 고모가 없었더라면 쥰의 편지는 윤희에게 닿지 않았을 것이며, 새봄이 없었더라면 윤희는 오타루로 향하지 않았을 터다. <윤희에게>의 쥰은 의도적으로 편지를 부치지 않았다. 자신은 흘러넘친 마음으로 버거워하면서도 수신인이어야 했을 윤희를 배려한 셈이다. 어쩌면 전윤호 시인의 시구처럼, 쥰이 “때를 놓친 마음은 재난일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절절하게 이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쥰의 고모는 그의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다. 그런데 쥰의 편지는 윤희에게 닿기 전, 새봄에게 먼저 도착한다. 잘못 도착한 것일까? 아니, 결코 아니었다.봄은 그 자체로도 새로움의 상징인데 굳이 새롭다는 의미가 더해진 이름을 가진 윤희의 딸 새봄은, 어린 윤희를 많이 닮았다고 소개된다. 사진에 재능이 있고, 엄마와의 첫 번째 해외여행에 남자친구까지 비밀리에 불러내는 걸 계획할 만큼 배짱이 두둑한 그를 통해 관객은 윤희의 어린 시절을 엿보게 된다. 쥰이 동경했을 사람,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자 친구와 연애한다고 밝혔을 소녀를 스크린 너머로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새봄은 윤희의 후세대인 만큼, 그와 완전히 동일시되지는 않는다. 새봄은 새롭게 쓰이는 과거인 동시에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찬란한 미래인지라, 언뜻 막막해 보이는 윤희의 길을 명랑하게 안내하는 데에 성공한다.이러하니 마사코와 새봄 두 사람의 존재는 일상 속에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항상 우리 곁에 있었기에 낯설지 않은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두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큰 대가를 치른 윤희와 쥰에게 다시금 사랑의 미덕이 무엇인지를 되돌려주는 이들이다. 마사코와 쥰이 포옹하는 씬이나, 일순 새봄이 윤희를 사진에 담아내는 순간은 너무나도 짧은 찰나이고 거창한 수식어도 거대한 감정의 해일도 없지만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삶 앞에서 휘청이는 개인을 버티게 하고 나아가게 하는 건 그런 마음들의 합집합이라는 걸, 또한 알게 된다.잿빛에 가까운 일상에 금이 간다. 금 간 곳엔 항상 빛이 들어온다고 누군가 말했듯, 계기를 획득한 윤희는 공장 조리사로 일하던 기존의 삶을 정리한다. 삭막해 보이는 아스팔트 길을 해방된 얼굴로 걸어가던 그에게 이윽고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삿포로 근방에 있다는 오타루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의 첫 문장을 연상시킨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하얗게 쌓인 눈은 모든 소리를 잡아먹을 듯하다. 보내지지 않았던 고백이 편지로 켜켜이 쌓인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희고 고요한 오타루에서 검은 코트를 입은 윤희가 남긴 매 순간의 궤적조차 자신의 온 마음이 담긴 편지였으리라.그럼에도 한 번 훼손되었던 마음은 손쉽게 발화되지 않는다. 같은 땅에 있음에도 윤희는 쥰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한다. 반면 쥰의 고모와 새봄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끊어진 시간을 잇는다. 애타는 마음으로 꿈에서만 만나던 두 사람이 현실에서 만난다. 동경으로 싹을 틔웠던 마음이 사랑을 거쳐 막연한 그리움으로 변한 시점의 재회였다. 눈 내리는 도시에서 20여 년간 녹색 숲(綠の林)이라는 동물 병원을 운영한 쥰이 새봄이라는 딸과 도착한 윤희를 만난 건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존 버거의 책 『A가 X에게』를 부분 인용하고 싶다. “(…) 나의 하루는 당신의 부재로 시작하지 않거든요. 그건,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을 하기로 했던, 우리가 함께 내렸던 그 결정으로 시작해요.” 모든 걸 견딜 수 없는 순간, 꾹꾹 닫아 두었던 마음의 둑이 터지는 순간조차 부칠 수 없는 편지의 글귀로 남겨두는 두 사람에게 선택지가 다시금 돌아온다. 어떻게 매일을 시작할 것인지, 어떻게 개인의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인지.쥰과 윤희가 숨겨두어 먼지 쌓였을 기억과 마음을 현재로 가져오는 데에 성공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치유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지 궁극적으로 사랑이 실현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랑이란 감정은 인생의 모든 것처럼 착각되는 강력한 순간을 우리에게 종종 부여하지만, 궁극적으로 삶의 전부로 치환되기는 어렵다는 걸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다만, 자의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했을 그 시절의 감정에 제대로 된 결말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두 사람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 감히 단언한다. 여행을 끝마친 윤희는 예산을 떠나 이력서를 적는다. 고졸이라는 짧은 단어에 햇살이 드리우고 윤희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언젠가 직접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꿈은 윤희의 미소와 새봄의 사진 속에 남는다. 그는 더 이상 삶을 멀찍이에서 두려워하지 않으며, 변화 앞에서 움츠려들지 않는다. 지난한 현실의 고달픔은 여행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르나 그가 가진 삶의 이력만큼은 더 이상 남루하지 않으므로.윤희와 마찬가지로 쥰 역시,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태생조차 숨기며 살아야 했던 시간에 종막을 고할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자신의 취약했던 한 시절과 화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지 못할 리 없다. 다리 위에서 윤희를 불렀던 만큼의 용기가 있다면, 내가 꾸는 꿈이 실은 상대방도 꾸는 꿈인 세상을 사는 게 어째서 두렵고 힘들기만 하겠나.한병철은 자신의 저서 『리추얼의 종말』을 통해 "예술의 본질은 삶에 지속성(멈춤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에게 <윤희에게>는 그 본질을 너무도 명징하게 실천한 영화일 터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무언가를 꿈꾸기 전, 내가 쓰려는 이야기의 시작점이 어디인지를 돌이키게 만드니까. 나를 멈추게 만드는 이 영화의 후유증이 반갑다. 깊은 호흡을 몇 번 한다.그리고 발견한다. 세상에,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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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눈먼 두사람 ; 영화 블라인드 리뷰
이 글은 영화 [블라인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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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에 얇게 치약을 바르면 된다고 하지만 그거 바를 정성이면 제가 이를 닦고 산책을 나갔겠죠? 저는 게으릅니다.
저는 시력이 좋지 않습니다.
저희 집식구들 모두 시력이 좋은데 저만 그렇습니다 . (참고 1) 요새처럼 마스크가 제2의 문신이 되는 일상이면 안경에 김이 서려 시각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식이나 라섹 같은 시력 교정술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 니다. 하지만 현미경을 많이 보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빛 번짐이 가장 흔한 부작용 중 하나인 그런 수술을 쉽게 선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그 어떤 감각보다도 제게 중요한 것은 바로 시력입니다. 조금만 안경에 문제가 생겨도 불안해합니다. 그러니 건강한 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온 마음 가득 담뿍 담으며 살다가 시력을 잃어버린 루벤의 상실감은 얼마나 클까요. 집이 제아무리 부자라 해도. 루벤이 갇혀 있는 어둠을 걷어줄 수 있는 안경은 구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출처:네이버 블로그 [은하계 반지하]
" 이 거울 조각들은 세상 모든 지역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이 작은 거울 조각이 사람의 눈에 들어가게 되면 본인은 그것을 알지 못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는 모든 것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자신이 보는 것의 가장 나쁜 부분만 보게 된다. 그 거울 조각이 심장에 박힌 사람들이 있는데 이 경우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의 마음이 꽁꽁 언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
눈의 여왕
후천적 사고는 참으로 명사수였습니다. 정확하게 루벤의 아름다운 눈을 겨냥해 활시위를 당겼죠. 그리고 그 화살은 보기 좋게 과녁을 맞혔습니다. 점점 시야는 희미해지는데, 자신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자신만 못 본다는 생각에 루벤은 미친 듯이 발악합니다. 덕분에 화살은 더 깊숙하게 박혀 루벤의 자존감까지 관통해버리고 말았죠.
안타깝게도 영화에는 화살을 맞은 또 다른 짐승이 등장합니다.
어릴 적부터 학대를 받아 외모 콤플렉스가 심한 마리입니다. (참고 2) 길고 오래된 학대에 대한 기억은 마리가 다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어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겉모습 은 학대의 흔적인 흉터로 가득합니다. 그녀의 고개가 다른 사람의 눈높이까지 쉽사리 올라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루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을 조건으로. 상처받은 두 짐승은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주기 위해 처음 만나게 됩니다. 루벤은 루벤대로. 마리는 마리대로. 눈과 가슴에 모든 것을 차갑고 나쁘게만 보는 거울 조각이 박힌 채로 말입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어린 카이, 소중한 카이, 드디어 너를 찾았어!!"
그러나 카이의 몸은 뻣뻣하고 차가웠으며 앉은 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어린 겔다가 흘린 뜨거운 눈물이 카이의 가슴에 떨어지더니 그 기운이 카이의 심장까지 전해졌고 얼음조각 같던 심장을 녹여주고 심장에 꽂혀 있던 작은 유리조각마저 씻겨내 버렸다. 카이와 겔다는 그 의자들에 앉고 나란히 손을 잡았다. 그러자 장엄했지만 춥고 텅 비어 있던 눈의 여왕의 궁전이 악몽처럼 그들 기억에서 사라졌다.
"너희들이 어린아이들처럼 되지 못하면, 너희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 "
눈의 여왕
처음 만난 순간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부딪침은 있었죠. 시각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한 루벤과 달리. 이상하게 마리는 루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리 지르고 막 대해도. 마리는 정해진 시간에 루벤을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루벤은 마리의 손길 아래서 점점 순한 짐승이 되어 갑니다. 마리가 책을 읽어주는 그 시간만큼은 욱신거리는 자신의 상처를 잊을 수가 있었죠
.그것은 마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리가 가진 단점들을 루벤은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마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외모가 아닌 마리 자체를 봐 준 사람을 만난 순간이었을 겁니다. 가난하고 흉측하다고 손가락질 당하는 마리를 좋아해 준. 사람이기도 했고요. 자신은 알 지 못할 순수한 표정으로 마리에게 조금씩 호감을 보이는 루벤이 싫을 리가 없었습니다.
루벤은 점점 마리 옆에서 웃음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 역시 루벤의 옆에서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합니다. 그들의 마음에 깊이 박혔던 유리조각은 서로에 의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죠 .
루벤은 점점 마리와의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하지만. 마리는 자신을 느끼려 하는 루벤의 손길에 자신의 추함이 드러날까 두려워합니다. 탐스러운 붉은 머리에. 스물한 살의 마리. 그것이 자신이라고 포장합니다. 그저 마리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루벤은 마리의 말을 참고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녀의 초상화를 완성해 나갑니다.
사진출처 : 티스토리
카이의 생각들은 여전히 그의 눈 안에 들어가 있는 유리조각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는 완벽한 구조를 지닌 모양을 많이 조립해서 서로 다른 단어들도 표현해냈지만, 본인이 그렇게 만들어내고 싶은 단어가 있었지만 만들어 내지 못한 단어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영원'이라는 단어였다. 눈의 여왕이 그에게 말했었다. "네가 그 단어를 알아낼 수 있을 때, 너는 너 자신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이 모든 세상과 새로운 스케이트 한 쌍을 줄게"그러나 카이는 그 단어를 만들 수가 없었다.
눈의 여왕
하지만 심술궂은 운명은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주치의는 루벤에게 시력 회복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알려줍니다. 꿈에만 그리던 마리를 직접 만날 수 있던 생각에. 루벤은 한껏 신이 났지만. 마리는 그렇게 될 경우 끔찍한 자신의 겉모습을 보고 루벤이 떠나버릴 까봐 겁이 나기 시작합니다.
마리의 거짓말을 알고 있는 루벤의 어머니 케서린 역시. 슬슬 마리가 원망스럽습니다 .
루벤이 시력을 찾게 되었을 때. 마리의 실제 모습에 실망하게 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모습이 걱정되었을 테죠. 이미 너무도 깊어진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나빠지기 시작한 자신의 건강하지 못한 몸이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지. 모든 것이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복잡해진 마리는 자신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는 루벤을 바라봅니다.
이제 피어나는 20대의 삶을 시작하는 자신의 연인. 그토록 그리던 시각을 찾고 나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것을 알고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은 마음을 거두지 않을 수 있을지.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목에 기꺼이 목줄을 끼워 마리의 손에 단단히 고삐를 쥐여준 자신의 지고지순한 연인을 바라봅니다. 마리는 그저 서재에 숨어 한없이 우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이 드넓은 세상에서 홀로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그것은 모두 깨진 유리조각 때문이야. 하나는 카이의 심장에 박혀있고 아주 작은 유리 파편이 그의 눈에 들어갔어. 이 유리조각들을 빼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는 다시는 인간과 같은 따뜻한 영혼을 가질 수 없어. 카이는 눈의 여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돼.
눈의 여왕
마리는 결국 떠나기로 합니다. 사랑해 마지않는 자신의 어린 연인을 두고. 완전히 모습을 감추기로 합니다. 그리고 영영 놓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손에 단단히 쥐어진 루벤의 고삐를 천천히 놓아줍니다.
마리가 없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 버린 루벤은. 고통 속에서 수술을 마칩니다. 마리는 눈을 뜨기 전에도. 그 후에도. 자신의 앞에 없었습니다. 설상가상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모든 것을 지켜봐 주던 어머니까지 세상을 뜨게 되죠. 루벤은 눈을 뜨고 모든 것을 얻을 것 같았지만. 시력을 잃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자신이 그토록 그렸던 세상을 볼 수 있었지만. 결국 자신이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자신의 연인은 모습을 감춘 뒤였죠.
루벤은 정처 없이 떠돕니다.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머나먼 여행도 떠나봅니다. 하지만 마음은 흙탕물처럼 가라앉아 잠잠해지기만 할 뿐. 조그마한 충격에도 다시 섞여 루벤의 마음은 매번 혼탁해지기만 합니다. 그 원인은 언제나 마리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었죠.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이 영화는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 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루벤이 카이 , 그리고 마리가 겔다 . 라고 말을 하죠. 하지만 영화상에서는 루벤의 시력 회복 수술을 기점으로 이 역할은 바뀐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전반부의 차가운 루벤을 바꿔준 것이 마리. 라면 후반부의 차가운 마리를 치유해 주는 것은 다시 루벤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서로에게 서로가 없이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그것이 절실히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이 안타까운 연인이 도서관에서 재회하는 신(Scene)부터라고 할 수 있죠.
루벤은 외모로는 마리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자신이 기억하던 향기와 책을 읽어주던 목소리로 도서관의 사서가 마리임을 확신합니다. 자신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애절하게 말을 하지만. 마리는 그런 루벤의 마음이 진심이 아닐 것이라고.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견디지 못해 결국은 돌아설 것이라고 단정해버립니다. 그리고 루벤의 손길과 마음을 다시 한번 뿌리치게 되죠.(참고 3)
자신의 앞에서 사라져 가는 마리를 보며, 루벤의 마음은 다시 한번 흙탕물이 되어버립니다.
"장미는 피었다가 지지만, 아기 예수는 항상 볼 수 있다"
지붕 옆 테라스 의자에 앉아 있는 카이와 겔다는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아이처럼 순수했다. 초여름이 되었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초여름이었다.
눈의 여왕
루벤은 선택을 하기로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리가 없는 세상은 자신에겐 의미가 전혀 없었죠. 그녀가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게 할 방법이 단 하나뿐이란 것을. 루벤은 너무도 쉽게 찾아냅니다.
자신이 두 번 다시 못 보게 될 세상을. 루벤은 두 눈 가득 담아봅니다.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하지만 그다지 미련 따위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가 원하는 세상은 결국 눈을 감았을 때야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러니 루벤 은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찔러버리는 행동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암흑으로 돌아간 루벤을 비추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그렸던 마리의 모습과 실제 마리의 모습이 달랐을지언정. 자신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죠. 다시 장님이 되었으니 자신의 연인 마리가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루벤은 웃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영화의 끝을 열린 결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꽉 찬 돌직구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장면의 배경을 보세요. 차갑고 시린 겨울이 아닌 (최소) 봄이 배경입니다. 루벤의 마음이 마리로 인해 완전히 녹았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마리의 마음도 자신이 녹여줄 것임을 다짐하는 루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죠.
다른 사람들은 손가락질할 것입니다. 아직도 이런 미련하고 초라한 사랑이 존재할 것 같냐고 반문도 하겠죠. 하지만 카이와 겔다의 여행이 끝이 나고 봄이 온 것처럼. 둘은 서로를 사랑으로 구원해 낼 것입니다.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그 "초라한"사랑으로 말입니다.
참고 1.
저희 집 사람들은 생활 패턴이 매우 규칙적입니다. 저는 뭐 말 안 해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부모님이나 남동생이 잠들었을 때 책이 읽고 싶었었는데 그게 안되니 작은방에 숨어서 불도 켜지 않고 책을 읽었죠. 덕분에 혼자만 시력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주워 온 거 아닙니다.
참고 2.
마리는 백색종(알비노) 비슷한 병으로 인해 학대를 받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참고 3.
저 장면에서 아 같이 가라고!!!!!라고 소리 지를 뻔함.
[이 글의 TMI]
1. 영화관에서 스피커 바로 밑자리에 앉는 바람에 루벤이 소리 지르면서 난리 칠 때마다 고막 나가는 줄 알았음.
2. 최근 다이어트를 하시는 잇님들이 많아지셔서. 다이어트 관련 글도 쓰려고 합니다. 욕 주의.
3. 연애 관련 포스팅을 계획하고 써 내려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도 순수한 사랑은 존재한다고 생각함.
4. [눈의 여왕]이 기억 안 나서 [겨울 여왕] 이라고 구글에 치고 안 나온다고 구글 탓함. 뎨성합니다.
5. 이 영화는 마리의 입장에서 심리학적으로 접근한 글 or 연애에 외모가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다시 쓸 예정
* 본 콘텐츠는 브런치 Rigo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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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오면 생각나는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다들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아시나요?
오늘은 바로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대설'입니다.
전국에 비 또는 눈이 내린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눈'하면 생각나는 영화
총 디섯 편을 추천드릴까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눈 오면 생각나는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러브레터
ⓒ 네이버 영화
synopsis
죽은 약혼자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죽은 약혼자의 어린 시절
첫사랑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cine pick!
8일, 국내에서 재개봉하는 <러브레터>는 '겨울만 되면 생각나는 영화'로 벌써 6번이나
국내에서 겨울에 재개봉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가슴 저릿한 스토리로 여운이 강한
영화이다.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 네이버 영화
synopsis
2차 세계대전 중, 전쟁을 피해 먼 친척 집에 맡겨진 네 남매들은 어느날, 그 저택에 있는 마법의
옷장을 통해 환상의 나라 나니아에 들어가게 된다. 마녀의 마법에 빠져 영원히 겨울만 계속되는
나니아... 아이들은 위대한 사자 아슬란과 함께 위험에 빠진 나니아를 구하기 위해 불가능한
모험을 시작하는데....
cine pick!
영화는 <슈렉>으로 세계적 흥행 기록을 세우며 오스카상을 수상한 뉴질랜드 출신 앤드류 아담스
감독의 실사 영화 데뷔작이다. 시공을 초월한 나니아 세계를 재현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캐롤
ⓒ 네이버 영화
synopsis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 테레즈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그리고 두 사람은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cine pick!
탄탄한 스토리, 배우들의 열연, 감독의 연출력 그리고 미술, 의상, 음악 모두가 잘 어우러져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는 영화 업계에서도 인정 받아 많은 영화상을 휩쓸기도 했다. 미국 영화 평론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는 비평가지수 96점, 로튼토마토 신선도 94%라는 만점에 가까운 높은
점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겨울왕국
ⓒ 네이버 영화
synopsis
서로가 최고의 친구였던 자매 ‘엘사’와 ‘안나’. 하지만 언니 ‘엘사’에게는 하나뿐인 동생에게조차
말 못할 비밀이 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신비로운 힘이 바로 그것. ‘엘사’는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힘이 두려워 왕국을 떠나고, 얼어버린 왕국의 저주를 풀기 위해 ‘안나’는 언니를 찾아
환상적인 여정을 떠나는데……
cine pick!
전 세계,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신드롬을 일으켰던 <겨울왕국>. 영화는 제71회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 주제가상 등 애니메이션 최다부문 노미네이트가 되며, 디즈니 사상 최고의
야심작으로서 저력을 입증하기도 하였다.
폴라 익스프레스
ⓒ 네이버 영화
synopsis
눈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 갑자기 들리는 굉음에 소년은 화들짝 놀라 밖을 내다보니 기차가
멈춰서 있었고, 소년은 뛰어나가 폴라 익스프레스를 타고 기나긴 여행길에 오르는데...
cine pick!
동명의 동화책을 원작으로 하는 <폴라 익스프레스>는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향상, 음향편집상,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교훈이 담긴 스토리와 좋은 OST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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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소녀 (2022)
* <20세기 소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20세기 소녀 (2022)
감독: 방우리
출연: 김유정, 변우석, 박정우, 노윤서
장르: 로맨스, 드라마
상영시간: 119분
공개일: 2022.10.21
<20세기 소녀>. 제목만 들어도 이야기의 서두와 결말이 완벽하게 예측되는 고교 시절 첫사랑 이야기. 90년대 배경, 공중전화와 비디오 테이프, 삐삐가 상징하는 아날로그 문화, 왈가닥 하는 성격의 소녀와 엄친아 소년이 티격태격 하다 사랑으로 발전되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스토리는 청춘 로맨스 장르의 클래식이자 클리셰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과 <스물다섯 스물하나>, 혹은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를 과몰입해 시청했던 사람들이라면 더 이상 새롭게 느끼기 힘든 서사이기도 하다. 첫사랑 이야기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인물의 이름만을 제외하면 대부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심지어 국가가 달라져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첫사랑 이야기의 공식은 여전히 통한다. 뻔하고 유치할 지라도 네 청춘남녀의 떼 묻지 않은 우정과 사랑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작중 주인공 ‘보라(김유정)’는 아픈 심장을 수술하러 미국으로 떠난 단짝 친구 ‘연두(노윤서)’를 대신해 친구가 짝사랑하는 ‘현진(박정우)’을 주도 면밀하게 관찰한다. 매일 같이 뒤를 쫓아 관찰 일지를 쓰고, 이메일로 친구에게 보고를 할 정도로 큐피드 역할에 꽤나 진심이다. 하지만 ‘현진’의 절친 ‘풍운호(변우석)’에게 곧바로 들킨 이후 투닥거리는 사건들이 자꾸만 생겨나고, 급속도로 가까워진 두 소년소녀 사이에는 풋사랑의 감정이 싹 튼다. 드라마틱한 흐름의 감정선은 아니지만 ‘보라’와 ‘운호’가 붙는 장면마다 설렘을 일으키는 동시에 그 때 그 시절 첫사랑의 경험 유무와 관계없이 추억 조작의 필터를 덧씌운다.
하이틴 청춘물 장르의 작품은 주연 배우의 역할이 특히나 중요하다. 비주얼은 물론이며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감성의 대사까지 자연스럽게 살릴 수 있는 연기력도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유정’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다는 감독의 판단은 탁월했다. ‘나보라’를 연기한 ‘김유정’은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나희도’,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시원’, ‘성나정’ 못지 않게 기분 좋은 활력과 사랑스러움을 마구 발산하며 뛰어난 존재감으로 극을 휘어잡는다. 가벼운 코미디와 풋풋한 로맨스, 절절한 감정신까지 ‘김유정’의 20년 연기 내공은 본작에서도 빛을 발한다. ‘현진’과 ‘운호’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이 통통 튀는 매력의 소녀에게 한눈에 빠져들었듯이 관객 역시 ‘김유정’의 모습에 연신 미소를 띠게 된다. 그동안 연기로 크게 두각을 나타낸 적 없었던 ‘변우석’도 싱그러운 첫사랑 소년 그 자체로 분했다. ‘연두’와 ‘현진’을 포함한 네 친구의 케미스트리, 그리고 ‘운호’와 ‘보라’의 러브 스토리를 장편의 에피소드로 볼 수 있는 드라마로 제작되었더라도 재미가 상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첫사랑은 절대 이뤄질 수 없다는 공식이 있듯 ‘연두’의 오해로 인해 아름다울 것만 같았던 ‘보라’의 첫사랑은 제대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일이 제대로 꼬인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 결단을 내려야 하다니. 열일곱 인생의 최대 난관이 아닐 수 없다. 비슷한 플롯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는 대개 중반부부터 더욱 뻔한 구조를 취한다. 같은 남자를 좋아한 두 친구의 우정이 깨지고, 주인공들의 오해로 인해 결국 이들의 첫사랑은 허무하게 이뤄지지 못한다는 식의 전개. 이와 차별화된 구성을 택한 <20세기 소녀>를 보며 해당 장르에 대한 감독의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느꼈다. 본작은 친구와의 우정, 이성 간의 애정 모두 형태만 다를 뿐 본디 상대방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피어났음을 나타낸다. 오해가 있었지만 ‘보라’와 ‘연두’의 우정은 깨지지 않았고, 두 친구는 끝까지 서로를 위한 선택을 했다. 애초에 우정에서 촉발된 이들의 풋사랑이기에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치정을 이유로 관계가 파국으로 이어졌다면, 작품의 청량감과 몽글몽글한 감성도 빛을 잃었을 것이다.
사랑으로 뒤엉킨 친구들의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되었음에도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보라’와 ‘운호’는 기차역에서 눈물과 함께 진심을 고백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지만, 운명의 장난은 잔인했다. 누군가의 오해도, 친구와의 엇갈린 삼각관계도, 현실적인 문제도 아닌 알 수 없는 연락 두절을 이유로 관계가 끝났으니까. ‘보라’는 그 이후로 ‘운호’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소년이 담긴 마지막 선물을 확인함으로써 애틋한 사랑의 잔상을 떠올린다. 카메라 렌즈 너머 늘 사랑을 담은 시선으로 자신을 지켜보던 소년의 진심은 비디오 테이프 시대를 넘어 스트리밍 시대에 접어들 때까지 낡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했다. 운명적으로 이뤄질 수 없던 두 사람이다. 하지만 20년 전 발송한 영상편지를 통해 전해진 첫사랑의 온도는 홀로 남은 당사자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절한 정서를, 그리고 영화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렸을 관객에게는 쉽게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긴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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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로부터 단 14일 뒤, ‘타다금지법’이 통과됐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이 들려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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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레그스] 끝장리뷰 | 답은 이미지와 사운드에 있다 | 클린턴과 백악관 상징 | 제목 분석 | TV, 뱀 해석 | 가족 파괴
(영화 [롱레그스](2024)는 씨네랩 측에서 제공한 시사회권으로 감상하였습니다)
[롱레그스](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이미지와 사운드
Chapter 2 클린턴과 백악관, 제목 분석, 가족 파괴
00:00 롱레그스
01:43 이미지와 사운드
03:11 TV 상징
05:01 이미지 뱀
06:13 클린턴과 백악관
07:35 제목 분석
09:58 별점 및 한 줄 평
10:15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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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쇼미더고스트> 티저 예고편
영혼까지 끌어 모아 마련한 돈으로 드림 하우스에 입성한 20년 절친 예지와 호두.
완벽한 줄 알았던 집에 귀신이 들자, 돈도 갈 곳도 없는 둘은 귀신을 내쫓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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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비싼 전문 퇴마사 대신 꽃도령 야매 퇴마사 기두와 함께 셀프 퇴마에 나서는데…
"귀신님, 아직... 안 나가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