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7-21 22:53:49
사라져도 기억될 영화와 마음, 좋아하는 마음으로도 충분하니까.
영화 <썸머필름을 타고!> 리뷰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주인공은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을 하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속해있는 영화 동아리는 카린을 중심으로 로맨스 영화만 촬영한다. 사무라이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맨발은 불만을 품지만 <무사의 청춘>을 만들겠다는 마음만큼은 절대 져버리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담고 싶은 영화의 주인공과 닮은 린타로를 만나게 되면서 꿈을 현실로 만들 기회가 눈앞에 다가온다. 과거를 아는 것보다 미래를 아는 게 더 희망적일까. 불확실함에서 확실함을 찾아가야 하는 현재는 용기를 내기가 어렵고 또 겁난다. 자신의 현재이자 미래를 바꿀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영화는 말이야, 스크린을 통해 현재랑 과거를 이어준다고 생각해. 난 내 영화를 통해 미래를 연결하고 싶어” 오해와 어려움을 거쳐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영화를 통해 마주하게 된다. 기록에는 남지 않아도 기억에는 남을 열정과 영화 그리고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다.
영화관에서 만나기 전에 재팬 필름 영화제에서 만난 작품 중 하나로 어느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만난 착한 영화였다. 그때는 봄이었는데 지금은 뜨겁고 끈적이는 여름이 되어 그 자체가 싫어지는 와중에 다시 이 영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여름이었다’ 라는 흔한 말과 ‘청춘’이 그대로 담겨있는 이 영화는 민낯의 청춘들을 사랑하고 있다. 성공, 인생의 목표, 뚜렷함과 같은 것들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지만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도 만든다. 그런 나를 위로하듯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영화에 한가득 담아낸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맨발은 좋아하는 것을 영화에 진심을 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끊임없이 자신의 두려움의 감정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만들어내는 단어들이 떠오르고 뒤보다는 앞을 바라보게 만드는 용기를 얻어갈 수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마주하고 바라보고 있는 영화 안에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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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여성들의 이야기와 여전히 끝나지 않는 소외에 대하여
<열 개의 우물>은 필수적인 노동이지만 여타 운동과 역사에 가려져 그림자의 영역으로 머물렀던 ‘돌봄’의 영역을 수면 위로 드러낸다. 영화는 1970년대부터 80년대 유신체제 당시, 서로 다른 위치에서 ‘노동과 생계’ 라는 같은 경험을 공유했던 여성들을 탁아 운동을 통해 하나의 근원지로 연결하고, 공통된 경험 속에서 이제는 다양한 길로 뻗어나간 여성들의 저마다의 우물을 쫓는다. 당시 사회로 진출하는 여성들은 교육 기회의 제한 뿐 아니라 아이의 출산과 양육, 돌봄과 위탁의 부담과 문제 또한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돌봄의 영역은 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관심의 영역에 들지도 않았던 그림자의 영역이었으며 이때, 여성 운동이자 탁아 운동으로 불렸던 ‘돌봄’은 여공들을 회사로 나갈 수 있게 했던, 여성들도 부당한 힘에 저항할 수 있게 만들었던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노동이 된다. 감독은 불안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각자의 소명을 다하고 돌봄 노동으로 일상을 유지하게 만들었던 그녀들을 주목한다.
<열 개의 우물>은 그녀들의 과거를 정지된 이미지, 혹은 과거에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지금의 그녀들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요소로서, 현재까지 그녀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으로서 현재와 계속해서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제시한다. 이는 <열 개의 우물>이 과거의 사실을 다루는 대개의 다큐멘터리에서 과거 자료를 제시하는 방식과 다른 방식을 택한 것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대개의 다큐멘터리에서 과거 자료를 화면에 보여주고 현 인물들의 증언을 입히는 것과 달리, <열 개의 우물>은 2 분할 화면을 통해 한쪽에는 과거의 사진을, 한쪽에는 말을 하고 있는 현재 그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제시되는 그녀들의 과거는 단순히 회고하는 추억이나 지나간 어느 한때의 이야기로 머물지 않고 오늘날 그녀들의 모습과 끊임없이 연결 지으며 생각하게 만든다. 단순히 과거의 사진만이 제시될 때는 당시 모습을 단지 재현하거나 복원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달리 한 화면에 동시에 제시된 같은 인물이 서로 다른 시간에 놓여있는 모습은 ‘Before – After’의 과정을 보여주는 연결된 하나의 자료이자, 연속된 해당 인물의 구성 과정으로 보인다. 과거 사진 옆, 현재의 그녀들은 시간이 흘러 예전의 앳된 모습이 지니던 활기는 잃었지만 생생히 움직이고 있는 영상 속에서 여전히 또 다른 생동감을 가진다.
감독이 그녀들의 과거를 단순히 회고하는 추억, 과거에 정지되고 고정된 기억으로 제시하지 않는 것은 감독이 그녀들에게 접근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검은 바탕의 유신 체제의 역사를 자막으로 드러내고, 공식적으로 기록된 과거를 제시하며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하는 듯하던 영화는 이내 바람과 햇살이 드나드는 열린 문을 보여주며 갑작스럽게 따스함이 느껴지는 분위기로 전환된다. 이 문은 김현숙 씨가 운영하는 책방의 문인 것으로 드러나는데, 여기서 감독이 그녀들의 마음의 문을 넘어 인생에 발을 내디딘 방식이 드러난다. 감독은 과거의 재현을 위해 그녀를 찾지 않는다. 그녀들의 현재의 삶을 찾는다. 특정한 순간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특정 순간을 보낸 후 그녀들의 이후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 감독은 현재의 인물의 모습에 주목하되 현재를 통해 그 안에 잠재된 과거의 기억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김현숙 씨뿐 아니라 영화 속 만난 인물들과 만난 방식은 모두 현재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이다.
같은 시대의 일어난 다른 사건에 주목한 다큐멘터리 <김군>에서 사진 속 김군의 존재를 찾기 위해 그를 목격했다는 사람들, 당시 현장에 함께 있던 이들,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면 <열 개의 우물>에서 감독은 당시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사건의 주요 인사라는 이유로 그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이 영화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소개해 주고 싶다.’는 현재 인물들의 말에 또 다른 인물들을 만나러 간다. 그녀들의 과거가 드러나기 전 항상 그녀들의 현재 모습이 제시되며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모습이 공존할 때에도 감독은 현재 과거에 대한 말을 하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을 생생한 영상으로 제시하며 과거보다 그에 대해 현재 말하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을 더욱 우선시한다. 이로써 감독은 과거의 기억을 재현해 줄 여성들을 만나는 대신 과거의 기억으로 구성되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만나고, 정지된 과거의 사실이 아닌 현재까지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인물의 구성물로써 과거를 제시한다.
영화에서 주목한 돌봄의 문제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노동의 그림자 영역에 머물고 있다. <열 개의 우물>이 1970-80년대 당시 돌봄의 부재 상황을 드러낸다면, 현대사회에서도 소외되고 있는 돌봄 노동의 영역은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시 공장으로 나가던 여성들처럼 현대 사회에도 여성도 일을 하는 맞벌이 가정이 많다. 개인주의가 발달하는 현대사회에서 마을의 개념은 점차 희미해져 가고 공동체의 유대와 연결이 약화하며 돌봄 문제는 더욱 커졌다. 특히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팬데믹이 덮치며 갑작스럽게 마주한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돌봄 위기는 더욱 커졌고, 마을 방과후 교사들은 위기 속 남겨진 돌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의 방과 후 교사들도, <열 개의 우물> 속 돌봄을 책임진 여성들도, 국가의 지원도, 공공시설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떠한 보상도 대우도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지만 그들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소명을 다해 돌봄이라는 노동을 하고 그를 통해 다른 여타의 노동을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두 영화를 보면 ‘여성의 노동을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던 힘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꼭 필요한 노동으로 많은 노동자들을, 우리 사회를 돌보았던 그들을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돌봄이라는 노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에서 나아가 노동을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힘을,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영역들을, 그저 엄마라는 여성의 영역으로 남겨졌던 돌봄의 가치를 생각해 보게 한다.
영화 속 인물의 세대를 경험하지 못한 나의 입장에서 <열 개의 우물>을 보고 나니 역사를 재현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재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엇을’ 재현하는가 보다는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의 문제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현재와 상호작용 하는 것으로 재현했을 때 비로소 바라보는 관객은 자신의 현실 경험과 관련 지으며 능동적으로 과거의 재현에 참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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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케네스 로너건과 배우 캐이시 애플렉의 완벽한 조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
해소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
행복했던 기억들은 어려운 현실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은 트라우마로 남는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상실로 인한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가는 리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상실, 아픔을 회상과 연기력으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제목의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맨체스터와는 다른 지역으로 바다 근처에 있는 지역이다. 이러한 바다가 주는 공간적 느낌은 고요하고 평화롭게 보이지만 고통을 겪은 리의 모습을 보고 나서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 채 언제 그랬냐는 듯한 평온이 더욱 밉게 느껴진다. 단순히 형(가족)의 죽음을 감당하는 것도 어려운데, 주인공인 리에게는 형이 남긴 것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아픈 기억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패트릭을 통해 상실을 처음 겪는 모습과 깊은 비애에 빠져 현실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무덤덤한 상태에서 현실을 받아드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은 리가 그 당시 사건을 받아들이기 얼마나 어려웠는지, 얼마나 슬펐을지 떠올릴 수 있도록 한다.
연출 뿐만 아니라 각본까지 쓴 로너건 감독은 전작에서도 죽음, 상실, 트라우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 특히나 부모의 사로고 인한 부재부터 영화의 막을 올리는 <유 캔 카운트 온 미>는 낚시 장면 등을 통하여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얼마나 감독과 닮아있는지를 아는 데에 도움을 준다.
Flash Back, 일반적인 영화 기법으로 과거를 회상하거나 관객에게 보여줘야 할 때 쓰는 쓰는 기법으로 많은 영화들이 회상 장면이나 과거를 보여줄 때 이용한다. 본 영화에서는 리의 과거를 플래시 백으로 보여주지만 지금까지의 여느 영화와는 조금 다르게 보여준다. 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두드러진 형식이자, 리가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불쑥불쑥 떠오르는 고통으로 보여주기에 너무나 적합하다.
보통의 플래시 백은 영화의 절정 부분, 영화의 중반부 이후 혹은 후반부에 위치하여 이야기를 극대화시킨 뒤 정점을 찍지만 본 영화는 초반부부터 보여 주며 관객이 리의 아픔을 함께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 일반적인 형식으로 보면 영화의 흐름의 키가 되는 플래시 백을 앞부분에 위치한다는 것은 단순히 분석하면 비효율적, 비경제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초반에 보여줌으로써 관객도 리와 함께 고통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한다. 감독은 이야기의 흐름에서 절정을 보여주는 것보다 인물 감정을 따라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플래시 백의 길이 또한 굉장히 중요하게 이용한다. 리에게 짧게 짧게 떠오르는 기억들도 있지만, 가장 긴 기억인 리의 집이 불에 타고 딸들을 잃는 장면은 한 덩어리마냥 연결될 수 밖에 없는, 단편적으로는 떠올릴 수 없는 고통인 것이다. 리의 회상은 주로 리가 부정적인 감정의 상태일 때 찾아온다. 리의 과거의 상실이 핵심내용인만큼 그 고통이 떠오르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핵심인 것이다.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지만 플래시 백을 가장 있어야하는 순간에, 가장 적합하게 이용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리의 고통을 체감하게 한다. 여름, 월척을 낚은 어린 패트릭과 장난을 치며 형과 셋이서 보트에 올랐던 영화의 첫 씬에서, 고통스러운 겨울을 지내고 형을 장례를 치룬 뒤, 성장한 패트릭과 보트에 앉아 낚시를 하는 장면의 대조를 통해 행복했던 과거를 재생할 수는 없지만 다시 살아내어 가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는 보는 내내 마음이 아리지만, 지속되는 쏟아낼 수 없는 우울함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그런 영화이다. 인물의 감정을 고조시켜 절정을 이루지않고 그 아픔을 계속 끌고 가는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자 감독의 의도이다. 해소할 수 없는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격려가 아닌 공감으로 통하여 위로를 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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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 떠내보낸다는 것에 대하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사>는 떠나보내는 것과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렌의 시선으로 담아낸다. 영화에선 소마이 신지 특유의 아이가 어른처럼 행동하고, 어른이 아이처럼 행동하며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해체하는 연출과 인물을 정적으로 두지 않고 표정을 찡그리거나, 갑자기 문워크를 하고, 늑대처럼 울고, 특정 언어를 반복시키는 등 묘한 움직임을 이용한 연출이 잘 담겨있다. 이런 연출들은 <이사> 속에서 렌에게 다가온 부모의 이혼이라는 사건을 마냥 비극으로만 보이게 하지 않도록 하는 힘을 가진다.
렌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조명의 바로 밑이자 화면의 가운데인 상석에 있다. 또한 양옆의 엄마와 아빠에게 식재료를 자신에게 이야기했으면 사 왔을 거라는 둥, 생선을 잘 발라 먹으라는 둥 핀잔을 준다. 렌은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아빠와 길에서 복싱 놀이를 하며 상황극을 하고, 옷장에 들어가려는 등 아이 같은 모습도 공존한다. 이는 렌에게만 한정된 모습이 아니다. 엄마는 렌과 외식을 나갔다가 술에 취해 돌아와 바닥을 구르거나, 아기자기하게 꾸민 계약서를 렌 앞에 들이밀며 밤새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빠도 본인의 이사 준비는커녕 렌과 같이 상황극을 하며 놀고, 옷장에 같이 들어가려 하기도 한다. 이렇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해체하는 소마이 신지의 연출은 렌을 부모와 아이가 아닌, 대등한 가족의 한 구성원처럼 받아들여지게 만든다. 렌이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 아이처럼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렌의 고민은 결혼이나 이혼을 고민하는 어른들의 고민과 같은 무게를 가진다. 그래서 렌은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먼저 결정해 버린 엄마와 아빠에게 화를 낸다.
렌의 혼란과 고민은 영화 속에서 주로 색으로 표현된다. 렌의 반 친구가 렌에게 이혼을 막기 위해 이런 일을 하라고 조언해 주는 장면, 렌의 반 친구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는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알파벳이 파랑, 빨강, 노랑, 초록으로 나타나 있다. 이 장면과 첫 장면을 연결해 엄마와 아빠가 각각 왼쪽, 오른쪽에 있었고 그 가운데에 렌이 위치해 있던 것을 티셔츠에 대입한다면 엄마와 빨강, 아빠와 파랑, 렌과 노랑, 초록이 연결된다. 이렇게 부여된 색은 렌의 혼란스러운 여정에 함께하며 렌의 감정을 보여주고, 성장을 함께한다.
첫 번째로 렌의 의상은 엄마와 아빠의 의상에 비해 변화가 잦고 비교적 차분한 색을 입고 등장하는 부모님과 달리 사용되는 색의 스펙트럼이나 무늬도 넓다. 처음의 쨍한 연두색에서 노랑, 빨강, 과일이 그려진 흰 원피스 등 색이 옅어지기도 하고, 무늬가 생기기도 하며 계속 달라진다. 이혼 소식을 듣고 계속 갈팡질팡하는 렌의 감정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다.
두 번째로는 불과 비이다. 아빠의 이사한 집에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태우고 있는 아빠를 돕던 렌은 가족사진이 타자 빨리 꺼내라며 아빠를 재촉하며 사진에 붙은 불을 끈다. 가족사진을 태우는 불처럼 이혼은 렌에게 가족을 태우는 불과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아빠가 필요없는 물건을 태웠던 것처럼 엄마와 아빠에겐 이미 필요 없는 것들을 태울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렌이 사진에 붙은 불을 두고 볼 수 없었듯 렌에게는 불태울 시간이 필요하다. 과학실 장면에서 이혼한 아이와 어울린 것으로 친구들에게 추궁을 당하던 렌은 알코올램프를 과학실 책상에 떨어뜨린다. 렌은 엄마와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불태워보려 하지만, 선생님이 불을 끄고 렌을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오며 제대로 불태우지 못한다. 그러던 렌은 부모님과 함께 호수로 여행을 가고, 축제에서 볏짚을 태우는 광경을 뚫어져라 보며 점점 그 불에 다가가려 하지만 축제를 진행하던 사람들에게 위험하다고 제지당한다.
영화에서 비가 오는 장면은 이삿짐이 가득한 캄캄한 방 안에서 의자에 앉아 비오는 바깥을 바라보는 아빠의 뒷모습이 나오는 장면과 잠에서 깬 렌이 비오는 밖을 바라보며 장마가 싫다고 말하는 장면이 첫 번째, 같은 반의 이혼한 친구와 장을 본 후 언덕길에서 짐을 나르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두 번째이다. 푸른 색채로 묘사된 비를 바라보는 아빠의 뒷모습과 비를 맞으며 자신의 아빠가 다른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는 이야기하는 친구의 장면을 볼 때 불이 이혼이라면 비는 그 후의 변화 정도로 연결된다 볼 수 있다. 불처럼 비 또한 렌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나, 렌은 장마가 싫다고 말하고, 친구를 두고 비를 피해 언덕길을 달려 내려간다.
렌의 여정은 부모님과 함께 떠난 호수 여행에서 종착점을 맞는다. 렌은 여행 내내 흰색의 옷을 입는다. 렌은 엄마와 아빠를 떠나 혼자 축제에서 볏짚을 태우는 걸 구경한다. 이때 불은 사진에 붙은 불과 알코올램프의 불보다 훨씬 거대한 불로, 렌의 흰옷을 불의 붉은 빛에 물들게 한다. 볏짚을 태우던 농가를 떠나 렌은 산으로 이동한다. 토리이 등을 거쳐 가며 산을 걷는 렌은 아빠의 색처럼 푸른 색채로 묘사된다. 렌이 계속 이동함에 따라 주변은 점점 초록빛으로 변하고, 렌은 마지막 장소인 물가에 도달한다. 물가에는 배를 태우는 축제를 하고 남은 천과 장식들이 쌓여있다. 이때 천과 장식의 색은 그간 렌이 거쳐왔던 빨강, 파랑, 초록, 흰색이 모두 담겨있다. 렌은 그곳에서 푸른 물 위에 뜬 불타는 배와 흰옷을 입고 물놀이를 하는 부모님과 자신을 본다. 불과 물이 합쳐진 채 뭍에서 멀어지고, 그 길을 엄마와 아빠도 함께 걷자 어디에 가냐고 물으며 불안해하는 자신을 렌은 육지에서 보게 된다. 렌은 물 안의 자신과 엄마, 아빠, 물을 떠다니는 불타는 배에게 모두 축하한다고 반복해 말하며 물로 들어간다. 렌은 비로소 이전까지의 가족을 떠나보내고 이혼을 축하하며 미래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이사>에는 롱테이크가 많이 쓰인다. 특히 마지막의 롱테이크는 영화의 모든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데, 마지막의 롱테이크에서 렌은 빨강, 파랑과 그 둘을 섞은 색인 보라색을 모두 입고 시작한다. 나무를 지나며 그 옷도 벗어 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렌은 어디로 가냐는 물음에 미래로 간다고 답한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혼란은 렌의 보라색 옷처럼 정리된 감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렌은 새 옷을 입고 과거의 기억들에 인사를 건넬 수 있다. 그리고 렌은 다시 나무를 지나며 그 기억도 떠나보내고 중학교 교복을 입은 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렌이 떠나보낸 것들은 렌의 안에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을 테지만, 밝게 인사했던 렌처럼 슬프게 추억할 필요도, 동시에 계속 떠올려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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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찾아온 토네이도와 함께 옛 기억을 쫓다
다시 찾아온 손님
이 영화의 주인공은 기상청 직원 케이트(데이지 에드가 존스)다. 평범한 직장인인 케이트. 하지만 이런 케이트에게는 거대한 상처가 있다. 어렸을 때 케이트의 꿈은 토네이도를 공부하는 일이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케이트. 하지만 토네이도에 친구들을 잃고 나서 케이트의 마음에는 거대한 폭풍이 있었다. 하지만 애써 눈 감는다고 해서 뉴스를 안 볼 수가 있나? 여기저기에 들이닥치는 토네이도들.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과 함께 케이트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트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은 친구 하비(앤서니 라모스)다. 토네이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케이트. 하비에겐 빵빵한 팀이 있다. 본인과 함께 토네이도를 연구하자고 제의하는 하비. 케이트의 마음이 흔들리고 오클라호마로 향한다. 거기서 만난 토네이도 인플루언서 타일러(글렌 파월)와 함께 사소하게 부딪히는 케이트 일행. 이런 세 사람에게 초거대한 토네이도가 주인공 일행을 습격했다. 토네이도 전문가 세 사람과 각 팀원들은 이 자연재해에 맞서기 시작한다.
반복과 차이
이 영화는 훌륭한 재난물이면서 따뜻한 내면을 다룬 휴먼드라마이기도 하다. 우선 첫째. 영화 자체가 과거라는 모티브를 다뤘다는 점에 있다. 우선 케이트. 케이트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휘둘리는 인물이다. 이 설정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을 토네이도에 의해 잃었으니까. 그럼 극복하고 싶은 내지는 여전히 큰 상처로 남은 과거가 있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있으니 이걸 극복해야겠지? 그런데 영화는 판에 박힌 듯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 성장물로서의 장르적인 특성을 잘 살리기 위해 영화는 여러 요소를 덧붙였다. 이 성장서사가 1차원적이었으면 영화의 몰입감이 분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뻔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을 재난이라는 배경 하에 섬세하게 붙여놓았다. 글쓴이는 인간관계를 서로 엇갈리게 묘사한 것이 인상 깊었는데, 토네이도를 다루면서 인간 내면에 있어서도 탄탄한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온기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이 인간 관계성 묘사는 <미나리>가 연상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불의 이미지를 가족 간의 연대와 병치시킨다는 점에서 극이 문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둘째. 이 영화는 인간관계성을 묘사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여러 가지를 덧붙여 관객을 격려한다. 어떻게? 이 영화는 현재의 나를 통해 과거의 나를 극복하는 영화다. 한 마디로 성장서사다. 이 성장서사가 굳이 이런 플롯으로 이어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 영화와 다른 예시인 <데드풀과 울버린>도 일종의 성장영화다. 둘은 과거와 유사점이 없는 사건을 마주하고 진짜 슈퍼히어로가 된다(MCU에 편입한다). 이 <트위스터스>는 <데드풀과 울버린>과 다르다. 오클라호마로 돌아온다는 공간적 설정, 케이트가 과거에 했던 시도, 케이트-타일러의 관계, 다시 찾아온 친구 하비, 어머니의 대사들까지 과거와 묘하게 다른 차이를 반복으로 받아들이는 내용이 인물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과거를 현재로 돌아와 다시 겪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은 정말 중요하다. 왜? 데이비드 흄이 말했듯 필연적으로 과거의 일이 맞는다는 보장이 없다. 영화는 이 간단한 명제를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토네이도도 휘몰아치고 두 남자도 등장시키고 하비를 핵심인물로 내세우며 과거의 일과 현재의 일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토네이도도 이런 우리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다. 토네이도가 인류에 등장한 지 굉장히 오래됐을 것이다. 그 원인을 몇 백 년 동안 조사해 온 인류라면 그걸 막고도 남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자연재해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이런 토네이도의 속성은 글쓴이가 앞에 쓴 영화의 핵심과도 닿아있다. 과거에 겪어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오늘은 다르다는 것이다.
보고 듣고 느낀 것
이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은 정이삭 감독의 덕업일치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이야기 외 내적으로 핵심이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첫째. 외적인 부분. 어떤 영화 든 간에 연출자가 지닌 과제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점이다. 글쓴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고전적인 향취가 느껴진다. 대표적으로 재난을 보여주는 카메라가 그렇다. 영화 중후반부에 숙박업소에서 일어나는 일이 있다. 이 장면은 스필버그의 <쥐라기 공원>과 <죠스>에서 봤던 연출법이다. 뭔가 기괴한 이미지를 보여준다던가 사운드로 관객들을 휘어잡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클래식한 이미지들이다. 무언가를 꽉 잡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을 <타이타닉>에서 봤던 기억이 있는데 이런 이미지를 2024년에 구현했다. 그리고 영화의 두 주인공 중 하나인 타일러를 묘사하는 방식도 고전적인 섹시가이(?)다. 이 고전적인 섹시가이가 무슨 말이냐. 뭔가 비주얼이 깔끔하지 않다(대표적으로 수염자국). 성격도 잘난 체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나르시시스트다. 하지만 그 내면을 보면 여주인공을 단단하게 사로잡으며 스트레이트로 직진한다. 겉으로 단단한 내면을 그대로 노출하며 직진하는 서양 사나이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글쓴이는 <매그놀리아>, <탑건>에서 톰 크루즈나 <델마와 루이스>에서의 브래드 피트를 떠올렸다. 두 영화를 참고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당시 시대상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감독이 과거의 것들을 가져온 근거가 된다.
다른 부분. 글쓴이는 이 영화가 자연에 대해서도 어떤 걸 말하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정이삭 감독이 어렸을 때 경험했던 두 가지가 그대로 핵심이 된다. 첫째는 어렸을 때 구경했던 토네이도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건 ‘어렸을 때 구경했던’이라는 뜻이다. 좀 찾아보면 정이삭 감독이 어렸을 적 미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낼 때 토네이도를 구경했던 기억이 선명하기도 했고 어느 정도는 동경했다고 전해진다. 이 관점이 영화 안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토네이도에 도전하는 인간들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자연재해의 공간적 배경인 오클라호마가 <미나리>의 일부 공간과 겹쳐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그 토네이도에 대한 경외감은 엔딩 하이라이트 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토네이도가 이 공간을 공격하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영화감독이라는 점은 창작자가 ‘이곳’과 토네이도를 동일시시킨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둘은 하나가 되어 <트위스터스>를 보고 있는 관객에게 도착했기 때문에.
토네이도가 뭐게
이 영화에서 글쓴이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장르적인 재미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재난영화다. 그럼 그 재난을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 몫을 철저하게 해낸다. 이게 토네이도를 실제로 만들었을 리는 없다. 그건 크리스토퍼 놀런 할아버지가 와도 불가능하다. 그럼 VFX로 구현했다는 의미인데. 이 자세한 부분들을 어떻게 구현했는지는 관객들이 다 다른 장점을 말할 것 같다. 정말 잘 만들어서 토론의 여지가 다분한 토네이도였다는 뜻이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장점은 물건이나 사람이 날아가는 방향이다. 이게 터무니 없으면 맥없이 날아갈 것 같은데 빠른 속도와 정확한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어 아주 생생하다. 이 토네이도가 인물들의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재난 외적인 이야기도 잘 만들었지만 내적인 이야기도 잡았으니 장르물로서 제 역할을 다한다.
하지만 이 장르적인 재미로서의 토네이도는 후반부에 이르러 어떤 변화를 표현한다. 글쓴이가 생각했을 때 이 영화에서의 토네이도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암시하고 있다. 어리면 잘 모른다. 저거 할 수 있겠는데? 객기 부린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처가 늘어나고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에게 치유받는다고 했던가. 과거에도 ‘이 것’이었고 지금 현재도 ‘이 것’을 만났지만, 또 둘 중 뭐가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토네이도처럼 피할 수 없이 사람에게 다가오고 강력한 상처를 만든다. 미래를 예측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영화를 다 본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토네이도와 ‘그 어떤 것’ 역시 위의 문장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엔딩에서 특히 이것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고. 이 연출이 이물감이 없이 자연스럽다는 점은 재난영화로서의 특징과 변화구를 둔 영화의 선택 둘 다 빛내는 좋은 선택이었다. 흐뭇한 웃음이 저절로 지어진다.
아는 것 그 자체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단점은 타일러 일행 묘사다. 구체적으로 영화가 이 인물의 설정을 잘 살린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일러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크리에이터이면서 섹시가이다. 그럼 뭐가 필요할까? 비전문가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전문성 중 하나인 경험이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영상을 라이브로 송출하는 준비단계에 대한 부분이 더 들어갔어야 했다. 만약 글쓴이가 이 영화의 각본을 썼다면 카메라 장비에 관한 부분을 더 보여주면서 타일러의 과거 서사를 더 넣었을 것 같다. 영화가 불필요한 걸 다 잘라내고 간단한 플롯으로, 고전적인 영웅서사로 질주하기 때문에 이 선택은 당연하게 따라오는 단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런 초거대한 자연재해에도 의외로 무덤덤한 타일러의 행보가 의아하기도 했다. 또 섹시하다는 이미지도 정이삭 감독이 자기 것이 아닌 걸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글쓴이라면 영화에서 타일러의 피지컬적인 능력이나 리더십을 더 부각하는 장면을 넣었을 것 같다. 인물의 개성이 납작하기 때문에 초반부가 진부해진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후반부의 장르 변주가 이 인물의 다양한 내면에서 온다는 점을 생각해 봐서도 그렇다.
영화 잘하시네
<트위스터스>에 대한 글쓴이의 총평은 좋은 장르영화라는 것이다. 초반부가 납작해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 전부를 보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미나리>처럼 소담한 이야기를 바란 관객이 있을 수도 있다. 글쓴이는 이 영화가 <미나리>와 비슷하면서 아예 다른 점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미나리>를 넘은 정이삭 감독의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만족스러웠다. 8월 14일 4편의 영화가 대규모로 개봉하며 빅매치가 예고된다. 이 빅매치에서 의외의 복병이 되기 충분한 <트위스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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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명만 하다 끝내 펴지 못한 날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최근 마블 영화의 현주소를 알기 때문에 기대보다는 조금이라도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체크하는 것에 방점을 뒀다. 그럼에도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아쉬움이 남는다.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멋진 신세계를 열려고 했던 마블의 야망과 자신감은 그 자체가 동력 아닌 족쇄가 되어버린다. 힘찬 날갯짓으로 비상(飛上)하려던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의 첫 비행은 아쉽게도 비상(非常)을 알린다.
팔콘 아니다.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다. 스티브 로저스로부터 방패를 물려받은 샘 윌슨(안소니 마키)은 팔콘 시절 날개를 무기 삼아 자신만의 캡틴 아메리카의 길을 연다. 어느 날, 그는 차기 팔콘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와 함께 ‘아다만티움’을 탈취, 불법 거래를 시도하려던 일당을 소탕한다. 그 노고를 인정받아 대통령이 된 ‘새디우스 로스’(해리슨 포드)의 초청으로 슈퍼 솔져 이사야(칼 럼블리)와 함께 백악관 만찬에 초대된다. 기쁨도 잠시,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총소리가 들린다. 이시야가 대통령을 향해 총을 쏜 것. 체포된 이시야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배후를 찾아 나선 샘은 뜻밖의 사실을 마주한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증명’이다. 샘은 캡틴 아메리카로서 많은 이들 앞에서 증명해야 한다. 더 이상 팔콘이 아닌 어벤져스의 리더이자 미국과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로서 준비, 앞으로 그 역할을 맡겠다는 결심은 약 2시간 내내 이어진다. 이를 위해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샘 스스로 단계별 증명을 하는 과정을 오롯이 담는다.
좀 더 고난과 역경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샘은 스티브 로저스와 다르다는 걸 인지시킨다. 특히 슈퍼 혈청을 맞지 않은 인간으로서 방패와 비브라늄 날개 슈트로 세상을 구해야 하기에 더 큰 노력을 하고. 그만큼 더 많은 자기 검열에 쌓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승이자 우상으로 여긴 이사야가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자신과 손을 잡자던 대통령은 테러 이후 ‘넌 스티브 로저스가 아니야’라는 말을 하며 적대 관계를 유지하는 등 샘은 자신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깨뜨리려는 챌린지에 시달린다. 유독 이 영화에 빌런 수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증명은 대통령이 된 로스도 해야 한다. 과거 닉네임인 ‘썬더볼트’에 걸맞은 과오, 특히 헐크를 잠재우기 위해 어보미네이션 만들거나 소코비아 협정을 제시하며 어벤져스를 분열시켰다. 그런 그가 국가를 책임지는 대통령이 되었고, 그 자리에 맞게 변모한 자신을 증명해 내야 한다. 샘처럼 로스 또한 거하게 챌린지를 당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증명할 기회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의 모습은 샘과 마찬가지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인크레더블 헐크> 때 와해된 딸 베티(리브 타일러)와의 소원한 관계를 개선하려는 아비의 마음도 보여주는 등 샘 보다 더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과하면 넘친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증명을 계속해야 하는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떨어진다. 특히 배후에 위치한 빌런이 공개되고, 로스가 레드 헐크로 변하는 이유,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샘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범위내에서 진행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와 비슷한 결의 (정치) 첩보 장르를 택하며 숨겨진 배후를 계속 찾아가는 재미, 새로운 광물 아디만티움을 놓고 겨루는 강국들의 패권 다툼 등 현실 정세를 녹인 부분도 있지만, 짜임새가 너무 헐거워 긴장감이 덜한 건 아쉬운 부분이다.
마블 영화를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역시나 액션. 이번 작품의 뷰 포인트는 역시나 활공 액션이다.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액션 스타일은 시선을 사로잡는데, 후반부 일촉즉발의 순간에서 전투기 공격을 막아내는 액션은 큰 스크린에서 볼거리를 선사한다. 차세대 팔콘과의 협동 공격도 굿! 다만, 지상 공격에서는 심심하다. 활공보다는 스피드와 파괴력이 잘 살리지 않아 둔탁한 느낌도 드는데, 이를 상쇄하기 위해 방패, 날개 등 아이템을 활용하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로 따라 후반부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레드 헐크와의 대면 액션도 확실한 볼거리를 주긴 하지만, 기대보단 평이한 수준으로 그친다.
이게 다 마블 때문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워낙 높아진 눈높이에 과거 찬사를 받은 전작들의 아성을 뛰어넘는 것 자체가 신작들의 챌린지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증명해 내야 하는 게 제작진들의 숙명. 어쩌면 극 중 증명 챌린지를 찍는 듯한 샘과 로스의 모습에서 그동안 어벤져스 시리즈 이후 관객들에게 외면당한 마블 영화의 과오를 반성하고 이를 발판으로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겠다는 제작진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캡틴 아메리카가 누구인가. 포기를 모르는 남자 아니던가. 쿠키에서도 나오지만 세상은 또 한 번 위기에 처했고, 캡틴 아메리카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이야기가 계속되는 한 더 멋지게 돌아온 캡틴 아메리카와 마블 영화를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동안 쏟아부은 티켓값이 아까워서라도 꼭 멋지게 돌아와야 한다.)
사진 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평점: 2.5 /5.0
한줄평: 더 멋진 마블 영화는 ‘다음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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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야기를, 내가 짊어온 삶을, 들어준다면
보호자 대신 보호 시설 안팎에서 하루하루 살아내기 급급한 아이들의 불안정한 입지. 이곳, 벨기에 사람으로서 사업을 영위하는 어른은 겪을 일 없는 처지다. 아이러니하게도 거주할 권리를 증명받지 못한 '로키타'와 체류권은 있어도 한낱 꼬마에 불과한 '토리'는 여전히 벨기에 시민에 속하지 못하기에 이 어른들의 이해타산과 딱 맞는다. 마약 거래상으로 뒷돈을 챙기는 일은 의심받기 쉬울뿐더러 시민인 이상 허락되지 않는 일이기에.
푼돈에 급급한 아이들은 군말 없다. 하물며 자신들이 수고스럽게 받아온 돈 뭉탱이에서 50유로 한 장을 받는다 하더라도. 기대나 실망이 담길 틈 없는 눈빛. 그러나 공허하진 않다. 토리와 로키타에겐 서로가 있기에. 지켜야 할 존재가 있다는 건 사람을 가장 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유약하게 만든다.
다 자라지 못한 어른들의 세상에 편입된 이미 다 커버린 아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요 줄거리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어른의 삶은 산다는 건 어떤 것인가. 정의할 말은 여럿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타인을 간단히 가늠하는 것 아닐까. 생판 처음 보는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가늠해 가며 적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내며 인간 사회의 규모가 점점 더 커졌으니까. 안타까운 건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엔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진위여부를 가리기에 급급하니 말이다. 이 말이 진짜인지, 거짓이 섞인 건 아닌지, 과장한 거라면 어느 정도가 진짜일지.
로키타가 거쳐온 인터뷰도 비슷한 양상일 테다. 어른들은 로키타가 살아온 보육원에 대해 질문하고, 토리와 만나게 된 경위를 묻는다. 하지만 로키타의 답변엔 관심이 없다. 그가 진짜를 말하고 있는지, 우리 어른이 듣기에 납득할 만한 타당한 사실인지를 확실히 가리고자 질문에 질문을 거듭한다. 취조 현장과 다를 바 없다. 잘못해서 불려 온 것도 아닌데.
마치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논리를 갖춘 구조로, 빈틈없이, 하나의 매끄러운 발표문처럼 말해야 하는 현실과 겹쳐진다. 일평생 더불어 살아온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소개하기도 어려운데, 그런 내가 겪은 한 사건의 특정 시점을 얼마나 명료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이가 만약 질문받는 입장이 느낄 당혹스러움과 혼란을 느껴봤다면, 결코 꼬투리 잡듯 묻지 못했을 거다. 결코 상대의 처지에 놓이리라는 생각을 못했기에 뾰족하게 콕콕 찌를 수 있을 테지.
한편으로는 질문을 건네는 쪽의 최선이기도 하다. 비스름한 상황에서 엇비슷한 진술을 하는 수천수만 명을 상대로 어떻게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진짜를 말하는 것인지 가늠하는 게 가장 빠르고 손쉽다. 증거의 적확함을 토대로 판결을 내리는 법이 그러하듯.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을 따라 모든 판단은 기출문제처럼 유형이 정해졌다. 그 형식에 능한 사람은 조금 더 유리한 판정을 얻어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순서가 뒤로 밀린다.
로키타는 후자에 속했다. 쉽게 당황하고, 말주변이 없고, 금세 패닉에 빠진다. 어찌 보면 그는 유약할 수밖에 없다. 온갖 궂은일을 제가 다 처리해 가며 동생인 토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동생과 함께 일하지만 직접 마약을 건네고 고객을 상대하는 건 로키타가 전담한다. 와중에 토리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기까지 하며.
다소 강박에 가까운 애씀. 이 책임감은 엄마의 불신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과 뒤섞인 걸지도 모르겠다. 그와 동생이 하루하루 모은 돈은 엄마와 다른 동생들이 있는 쪽으로 보낸다. 아니, 정확하게는 보내려고 했다. 브로커들이 낚아채지만 않았더라면. 로키타가 엄마에게 이 사실을 전하는 과정은 또다시 진술의 형태를 띤다. 피해 사실의 보고. 그리고 역시나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순식간에 일어난 그 일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가 느끼는 억울함과 분노, 슬픔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그가 증거품목이라고 내밀 수 있는 건 오로지 그의 머릿속, 그의 마음속에 있기에 무엇도 증명할 수 없다.
로키타는 자신이 겪은 세계로부터 토리를 보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진실을 증명해야 하고, 거짓을 말했다는 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증명해야 하고, 그럼에도 반복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이 나날에서. 이미 자신은 세상의 진흙탕에 굴러 너무 더러워졌다.
하지만 로키타가 토리를 신경 쓰는 만큼 토리 또한 로키타를 아끼고 챙기려 든다. 보호받는 동시에 보호하고자 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로키타보다 토리가 유리하다. 남자 어른은 여자 아이를 건들 생각만 하지, 남자아이에겐 새로운 일감을 주니까.
욕구와 요구만이 가득한 주변에서 그나마 잠시 반짝이는 빛이 그들에게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빛에 기대지 않는다. 우리를 믿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으니까. 도움은 측은지심에서 일어난 순간적인 반응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위협이 되거나 낯선 느낌이 들면 내민 손을 금세 거둬들인다. 신기루에 이끌려 어느 하루를 버틸 생각보다는 서로에게 기대어 제 발로 이 땅을 디디고 서는 게 안정적이다.
살아가고자 하는 절박함과 간절함은 구린내가 나는가 보다. 생존 자체가 목적인 모습이 그들과 동등한 사람이라기보단 길들이고 사육할 동물로 보이는 것인지. 몇 마디의 협박과 위협적인 소음을 만드는 것을 생각하면 애석하게도 이 예상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기죽지 않는다. 자신이 한 노동의 대가는 비합리적일지라도 필요한 게 있다면 필요한 것을 정확히 언급한다. 음식점의 남는 빵, 손님들을 위해 불러준 공연의 값, 하다못해 깨끗한 침대보라도. 최후의 보루였는지 모른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람임을 증명받기 위한.
이마저 통하지 않자, 둘은 그들이 함께 살아갈 새로운 방향을 찾아낸다. 머리가 지끈할 만큼 무모한 선택이다. 하지만 무어라 나무랄 수 있을까. 그 길은 막혔으니 다른 길로 가라고, 가리킬 대안이 없다. 최선의 선택은 최고의 선택이지 않다. 때로는 최선이기에 최악이다.
서로를 부르는 음성과 깊은 포옹. 그리고 목적지가 있을 수 없는 달음박질.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노랫말이 자꾸 귀에 맴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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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흥신소-아이스라떼극장] 심령사진촬영전문 사진작가 '셔터'
영화 흥신소 -(아이스)라떼극장 EP.05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공포영화를 보며 무더위를 날려버리자
뺑소니 교통사고를 저지른 후 카메라에 찍히는 귀신
어깨와 목이 뻐근한 게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데....
움짤 귀신등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던 태국산 호러영화 '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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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킹덤 : 엑소더스> 오프닝 예고편
'킹덤으로 향하는 입구가 또다시 열리고 있다' ?☠심약 주의☠? 킹덤 종합병원의 기괴하고 섬뜩한 비밀은?! 코펜하겐 최고의 종합병원 '킹덤' 그 터가 아주 오래전 시민들이 화학약품으로 표백한 의류를 세탁하던 곳으로 원혼이 깃들어져 있다는데... 2024년 다시 시작될 세기말의 공포 ☠ [킹덤: 엑소더스] 오프닝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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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멜리에> 재개봉 예고편
이름: 아멜리 풀랑
직업: 몽마르트르 두 개의 풍차 카페 직원
특징: 취미 부자
금요일 저녁, 혼자서 영화 보는 것을 즐기는 아멜리는
크렘 브륄레의 캐러멜을 티스푼으로 깨트리거나
생 마르탱 운하에서 하는 물수제비뜨기를 좋아한다.
현재 남자친구는 없으며
그녀의 주변은 늘 독특한 성격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세월이 흘러도 혼자만의 시간과 여유를 즐기던
아멜리에게 어느 날, 운명의 사건이 찾아왔다.
8월 29일, 48시간 뒤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뀔 것이다!
물론 그녀는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