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3-11 00:00:00
왓챠에서 볼 수 있는 힐링 영화(인생영화) 추천 4
코로나의 확산세가 다시 너무 무서워서 지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힐링이 필요한 시기, 힐링이 될 수 있는 영화를 추천합니다.
오늘은 왓챠에서 볼 수 있는 힐링 영화를 꼽아봤습니다.
리스트를 꼽다 보니 인생영화로 꼽게 되는 작품들이라. 제목에 (인생영화) 문구를 추가했습니다.
소년의 성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빌리 엘리어트>
<빌리 엘리어트>는 성장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작품입니다
발레는 다른 예체능 분야보다도 대부분 여성이 참여하는 예체능 분야죠.
주인공 소년 빌리처럼 발레에 관심을 갖고,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배경은 80년대이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는 발레를 하면 한 마리의 새처럼 날아다닌다고 고백하며 발레를 사랑하고 발레에 열정을 바칩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빌리가 꿈을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해 울림과 감동을 줍니다
짠한 사연과 따뜻한 한 끼
<심야식당 1,2>
일본에서 사랑받은 드라마를 원작으로 마스터 (코바야시 카오루)가 심야에 운영하는 식당에서 허기와 마음을 달래줍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사연은 유머러스한 사연, 짠한 사연이 다채롭습니다.
인물들의 사연만큼 영화에 등장하는 별미들도 상당히 맛깔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음식을 보는 눈도 행복해집니다!
(1편, 2편 모두 단짠 매력을 제대로 갖춘 작품입니다!)
청춘의 긍정 에너지
<세 얼간이> (171분 ver.)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은 인도영화로
세 명의 대학생의 꿈과 열정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인도의 명문대, 졸업을 인정받지 못한 학생이 살을 하는데,
영화의 주인공 세 얼간이는 이 죽음이 단지 자살이 아니라 스펙만 강조하는 인도 사회와 학교문화가 살해한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세 얼간이는 학교 시스템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유쾌한 소동을 일으키고 멋진 활약을 합니다
* 영화의 주인공이 대학생이지만, 인도 국민배우 아미르 칸은 실제로 <세 얼간이> 촬영 당시 47세였는데요.
주요 인물들이 대학생 또래의 인상을 주는 영화인데, 아미르 칸은 그들 사이에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촬영 당시에도 유쾌하고 열정적인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합니다.
정갈한 힐링영화
<카모메 식당>
<카모메 식당>도 영화 <심야식당>처럼 힐링 쿡방 영화인데요. 조금 더 정갈한 느낌의 영화입니다
핀란드 해변 마을 헬싱키에 위치한 일본 여성이 운영하는 식당. 식당의 사장님, 직원들은 각자 저마다의 사연도 있습니다
조용한 식당이었지만 점차 손님들이 모여들고 식당의 음식과 사연이 어우러지는데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이 잔잔하게 묘사되어 더욱 힐링을 받는 느낌의 영화입니다
인물의 과거를 신파극으로 나열하는 영화들과는 다른 잔잔한 힐링영화라 더욱 귀한 작품입니다
이상으로 힐링영화 (인생영화)(@왓챠)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리얼리스트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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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겐 이 꼰대가 필요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목을 매달 밧줄을 산 뒤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집에 들어오던 전기도 끊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오토’(톰 행크스). 정장을 차려입고 죽을 준비를 다 마친 그. 그러나 세상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드디어 죽을 수 있겠다 싶은 타이밍마다 이웃들이 그를 방해하기 때문. 새로 이사 온 '마리솔'(마리아나 트레비노)과 '토미'(마누엘 가르시아룰포) 부부는 주차도 제대로 못해서 오토의 속을 뒤집어 놓고, 아무 때나 먹을 걸 가져다준 뒤 오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오토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소냐'(레이첼 켈러)'의 묘비 앞에 앉아 이웃들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지를 못한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의 인생 최악의 순간, 원치 않았던 이웃들의 관심 덕분에 그의 삶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마크 포스터 감독의 신작 <오토라는 남자>는 스웨덴 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영상화한 코미디 작품으로, 인생 최대의 트라우마에 빠진 한 남자가 어떻게 삶의 의지를 되찾는지를 그려낸 착실한 드라마다. 동시에 건실한 가족 영화이기도 하다. 먼저 떠나보낸 가족을 향한 오토의 사랑과 회한이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 영화는 코미디로 시작해서 잔잔한 감동으로 마무리되는 교과서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이 정공법은 꽤 성공적이다. 러닝타임 내내 관객석에서는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웃음과 울음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 <오토라는 남자>를 그저 준수한 코미디이자 가족 영화로만 남겨 두자니 아쉬움이 남는다. 주인공 오토를 연기한 배우 톰 행크스의 존재 때문이다. 그는 '가장 미국적인 배우'이자 '미국의 얼굴'이라 불린다. 그의 연기력이나 흥행력을 고려하면 미국의 송강호라고 해도 될 터. 그런 그가 소품이라고 불릴만한 영화에 출연했으니, 한 가지 질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대체 톰 행크스가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 물론 이유는 본인만 알겠지만 영화 속에도 짐작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오토라는 남자>는 단순히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특히 민주주의를 누리는 모두가 곱씹어 봐야 할 이야기에 가깝다.
웃픈 꼰대, 오토
<오토라는 남자>는 코미디로 시작한다. 오토의 괴팍함이 주재료다. 그의 하루 패턴을 훑으면서 그가 얼마나 괴팍한지 보여준다.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는 오토. 눈이 오는 날이면 자기 집 앞 인도까지 눈을 치운다. 눈이 오지 않으면 아침을 먹고 바로 동네 순찰에 나선다. 주차장에 주차증이 없는 차가 있는지, 도로와 주차장을 분리하는 문은 잘 잠겨 있는지, 쓰레기장 분리수거는 잘 되어 있는지, 자전거 보관대가 아닌 곳에 자전거를 두고 가지는 않았는지, 신문이나 광고가 동네 미관을 해친 건 아닌지. 일일이 확인한다. 오토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면 그 누구도 독설을 피할 수 없다. 새로 이사 온 이웃도,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도, 갈 곳 없는 길고양이도.
하지만 그가 괴벽해진 이유를 알고 나면,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웃기지 않다. 그의 괴팍함은 트라우마를 숨기려는 방어 기제다. 임신한 소냐와 나이아가라 폭포 여행을 떠났던 오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그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 오토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그는 다행히도 무사했지만, 불행하게도 소냐는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유산했고, 그녀의 하반신도 마비됐다. 오토는 뒤늦게 버스 회사가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버스를 운행해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걸 알았다. 이는 마음속 깊은 흉터가 됐다.
그 후로도 오토는 자꾸 다친다. 장애인이 된 아내를 무시하고, 그녀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점차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아예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워졌다. 원칙을 어기는 사람을 싫어하고, 비난한다. 마트 직원이 로프 길이와 가격을 잘못 계산하면 크게 화내고, 회사에서 부사수가 상사로 임명되자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한다. 이웃들이 혹시나 잘못된 행동을 한 건 아닌지 감시하면서 매일 순찰을 돈다. 그렇기에 오토는 더 이상 우습지 않다. 웃프다.
오토의 트라우마 극복기
동시에 <오토라는 남자>는 눈물을 자아내는 드라마다. 오토의 병든 내면을 가감 없이 펼쳐 보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그가 치유되는 과정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소냐와 사별한 뒤, 트라우마가 더 심해지자 오토는 결국 죽기로 결심한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무덤에 가서 소냐와 대화를 나눈다. 조만간 당신 옆으로 가겠다고. 당신과 재회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거라고. 오토는 죽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한다. 천장에 목을 매달기도 하고, 차 안에 가스를 채워서 질식사도 시도한다. 전철에 몸을 던지거나 머리에 총을 쏘는 것도 선택지에 있다. 그는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점차 죽어가면서 아내와 행복했던 과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에서의 첫 만남, 레스토랑에서의 첫 데이트, 졸업식과 프러포즈, 신혼 생활까지. 오토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치유다.
이상한 일이 생긴다.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오토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다. 하루는 앞집에 이사 온 마리솔이 창문을 고치겠다며 사다리를 빌려 달라고 부탁한다. 하루는 한때 절친한 친구였으나 사이가 멀어진 루벤의 집 라디에이터를 수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아무 때나 찾아오는 마리솔은 대뜸 운전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어느 날에는 고등학교 교사였던 소냐의 제자, 말콤이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부탁한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에게 쫓겨났다면서. 편견 없이 자기를 대해줬던 선생님이 생각나서 왔다고. 새 가족도 생긴다. 눈 내린 날에 얼어 죽기 직전이었던 고양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오토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오토는 굳게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연다. 자살하지 않아도 이승에서 죽은 아내와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깨닫는다. 이웃에게 베풀고, 그들과 삶을 공유하면서 소냐의 뜻을 이어가면 된다. 소냐가 말콤에게 그랬고, 마리솔이 자기에게 그랬듯이. 타인을 향한 관심과 이웃과의 협력 덕분에 그는 마침내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죽음을 포기하고 아내의 유품도 정리한다. 그렇게 오토는 자기 삶을 살아간다. 덕분에 그의 장례식에서 동네 이웃들은 슬퍼하기보다는 기쁘게 웃을 수 있다. 자살을 꿈꾸던 그가 편안히 죽음을 마주한 건 그가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금, 오토 같은 꼰대가 필요한 이유
여기까지만 보면 <오토라는 남자>는 한 노년 남성이 평화를 되찾는 사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오토의 꼰대스러움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영화에 숨어 있는 사회적 함의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루벤의 집 라디에이터를 고치면서 오토는 이렇게 한탄한다.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 더 이상 사람들이 이웃들의 일에, 공동체를 관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고 각자 살기 바쁘다고. 실제로 오토가 순찰할 때 다른 이웃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웬 오지랖이냐는 식이다. 파편화된 시민의 모습은 다른 장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자살하기 위해 전철역을 찾은 오토. 그가 선로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다른 남성이 먼저 선로에 떨어져 버린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오토. 그러나 그는 주위 승객들의 반응에 더 놀란다. 그들은 하나같이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만 찍을 뿐 아무도 도우려 나서지 않는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공중의 쇠퇴를 경계했다. 그는 기술의 변화로 인해 다른 산업 구조가 등장하고, 사회가 거대해지고 조직화되면 사람들이 점점 비인격적인 관계를 중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작중 듀이가 전망한 사회적 관계의 변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례로 오토가 퇴사할 때, 같은 부서 직원 한 명은 축하 케이크 위에 그려진 오토의 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반으로 잘라버린다. 그 결과 민주주의에 필요한 가치나 조건, 그리고 공동체는 훼손된다. 개인은 많지만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 오토 말고는 아무도 거리에 신경 쓰지 않고, 공동체가 합의한 규칙을 중시하지 않듯이. 중요한 의사결정은 권력과 재력을 지닌 사람에게 넘어간다. 건설 회사가 오토와 이웃들의 집을 불법적으로 매수하려 해도 그들은 권력자를 막을 힘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토의 꼰대스러움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거대해진 사회에 대응해 '거대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듀이의 주장과도 궤를 같이한다. 듀이는 이웃 공동체, 지역 공동체처럼 신뢰를 바탕으로 모인 이들끼리 서로 자유롭고 직접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오토와 이웃들은 솔직하게 소통하고 협력해서 루벤의 집을 지켜냈다. 그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될 위기도 타개할 수 있었다. 이웃 공동체에 대한 애정은 가지고 있었던 오토의 '순찰'에 힘입은 결과였다. 비록 예민하게 원칙을 따지고 방식이 거칠기는 했지만. 뒤집어 보면 <오토라는 남자>는 상이한 정체성 간에 대화 대신 갈등만 가득한 현재 미국 사회를 겨냥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는 원작 소설과 달리 이웃 주민의 인종이나 성 정체성이 수정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국의 얼굴'인 톰 행크스가 오토 역을 맡은 건 꽤 의미심장하다.
물론 <오토라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원작 소설을 읽었다면 내용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452 페이지에 달하는 원작의 내용 중 잘려나간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스웨덴에서 먼저 영화화한 <오베라는 남자>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도 나올 수 있다. 스웨덴 버전은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분장상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호평받은 수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누구와 함께 극장을 찾든 간에 <오토라는 남자>를 보고 나면 옆 사람에게 감사를 전할 일이 생길 거라는 사실이다. 엔딩 크레디트에는 이 영화의 진가가 담겨 있다. 엔딩 크레디트는 오토와 마리솔의 아이들이 등장하는 서툰 그림으로 가득하다. 또 홀로 사는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는 문구가 같이 등장한다. 그러니 영화관을 나설 때 마음이 따뜻해지지 따뜻해지지 않기는 어렵다.
A(Acceptable, 무난함)
오토의 순찰이 계속될 때, 우리 모두는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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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한 감동을 주는 로드 무비 모음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모두들 무탈한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수요일, 대리만족을 시켜줄 로드 무비 모음을 가져왔어요!
이란 영화계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대표작 <체리 향기>부터
2019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3관왕에 빛나는 <그린 북>까지!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8편의 로드 무비와 함께할 준비가 되셨나요?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체리 향기(1997)
Taste of Cherry
ⓒ MUBI시놉시스
바디(호마윤 엘샤드)는 자동차를 몰고 황량한 벌판을 달려간다. 그는 지나치는 사람들을 눈여겨보며 자신의 차에 동승할 사람을 찾는다.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은 수면제를 먹고 누운 자신의 위로 흙을 덮어 줄 사람.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는 그의 간절한 부탁에도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앳된 얼굴의 군인도, 온화한 미소의 신학도도 죽음이란 단어 앞에선 단호하게 외면할 뿐. 드디어 한 노인이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박물관에서 새의 박제를 만드는 노인은 그에게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며 작지만 소중한 삶의 기쁨들을 하나씩 펼쳐 놓는다.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현듯 삶에 대해 강한 애착을 느끼는 바디. 운동장을 뛰어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도시의 하늘 너머 펼쳐지는 저녁노을의 눈부신 빛깔. 밤이 오고 바디는 수면제를 먹고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 안에 눕는다. 아침이 오면 그는 그토록 바라던 죽음을 얻게 될까? 아니면?
CINE PICK!
영화 <체리향기>는 1997년 칸 영화제에서 이란 정부의 출국금지 조치로 출품되지 못하다가 폐막 3일 전 프린트를 몰래 빼내 기습적으로 상영,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는 기적을 이룬 작품입니다. 영화의 제목인 '체리 향기'는 11세기 이란의 시인이었던 오마르 하이얌의 시 구절 "삶을 즐기려면 죽음이 쫓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체리 향기를 맡아보라.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에서 착안했다고 합니다. 체리는 가장 달콤하고 아름다운 과일 중 하나이고, 그렇기 때문에 체리의 향기가 삶의 환희를 나타낼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게 감독의 생각이었다고 하네요. 영화는 자살을 기도하는 한 남자의 하루를 다루고 있는데요, 그가 차를 몰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들이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출연한 배우들의 경우 모두 감독이 길거리에서 캐스팅한 일반인으로, 주인공에게 삶의 기쁨을 알려주는 노인의 역할을 맡은 사람은 촬영이 끝나자 이름도 밝히지 않고 사라져 크레딧에도 실제 이름이 아닌 시나리오 상의 배역 이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메이킹 필름이 짧게 삽입되어 있는데, 이는 극영화의 형식을 취하되, 조작된 겉모습 이면의 진실성을 잡아내려 했던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이니, 삶에 지치셨던 분들이라면 한 번쯤 꼭 보시길 추천드려요.
명대사
"좌회전해주세요."
"이 길은 모르는데요."
"난 알아요. 돌아가는 길이지만 편하고 아름다워요."미스 리틀 선샤인(2006)
Little Miss Sunshine
ⓒ 네이버 영화시놉시스
본인의 절대무패 9단계 이론을 팔려고 엄청나게 시도하고 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대학 강사 리차드. 이런 남편을 경멸하며 이 주째 닭날개 튀김을 저녁으로 내놓고 있는 엄마 쉐릴. 헤로인 복용으로 최근에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 전투 조종사가 될 때까지 가족과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9개월째 묵언 수행 중인 아들 드웨인. 그리고 이 콩가루 집안에 얹혀살게 된 외삼촌 프랭크는 게이 애인한테 차인 후에 자살을 기도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방금 퇴원한 프로스트 석학이다. 마지막으로 7살짜리 막내딸 올리브는 유난히 미인대회에 집착하며 분주하다. 그러던 어느 날, 올리브에게 캘리포니아 주에서 열리는 쟁쟁한 어린이 미인 대회인 '미스 리틀 선샤인' 대회 출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리고 딸아이의 소원을 위해 온 가족이 낡은 고물 버스를 타고 1박 2일 동안의 무모한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좁은 버스 안에서 후버 가족의 비밀과 갈등은 점점 더 커져만 가는데..
CINE PICK!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은 미국의 부부 감독인 조나단 데이톤, 발레리 페리스의 2006년작 영화입니다. 미국 최고의 콩가루(?) 집안사람들이 딸의 어린이 미인대회 참가를 위해 낡은 승합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며 그리는 화해와 성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렉 키니어, 스티브 카렐, 토니 콜렛, 폴 다노, 아비게일 브레스린, 알란 아킨 등의 배우들이 출연해 호연을 펼쳤고, CF와 뮤직비디오로 명성을 얻었던 감독 부부의 연출 또한 호평을 얻었습니다. 캐스팅 과정에서 고심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독특한 가족구성원들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훌륭한 캐스팅과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로 완성된 깜찍한 영화랍니다.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거두며 대중들에게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명대사
"결과야 어떻든 네 힘으로 노력했다는 게 중요해."
"진짜 패배자는 질까 무서워서 시도도 안 하는 사람이란다."
"힘겨웠던 시절들이 삶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라고 했단다. 그게 자신을 만들었으니까."
기쿠지로의 여름(1999)
Kikujiro
ⓒ MUBI
시놉시스
모두가 기다리던 여름방학. 하지만 마사오는 전혀 즐겁지 않다. 할머니는 매일 일을 나가시느라 바쁘고 친구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다나 시골로 놀러 가버려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 어느 날 먼 곳에 돈을 벌러 가셨다는 엄마의 주소를 발견한 마사오. 그림 일기장과 방학숙제를 배낭에 넣고 엄마를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친절한 이웃집 아줌마는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는 전직 야쿠자 남편 기쿠지로를 마사오의 보호자로 동행시킨다. 왕복 600km의 여정. 그러나 그 여행은 마사오도 기쿠지로도 잊을 수 없는 생애 최고의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는데... 52세 철없는 어른과 9세 걱정 많은 소년. 그들이 마침내 찾은 것은?!
CINE PICK!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은 일본을 대표하는 만능 엔터테이너 기타노 다케시(배우로서의 예명 비트 다케시)가 연출, 주연을 맡은 1999년 영화입니다. OST이자 영화의 무드와 잘 어울리는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 독주곡인 'Summer'로 유명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이 곡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요.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3 원소로 불리는 코미디, 폭력, 센티멘털리즘이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영화 전반에 어우러져 있으며, 그러면서도 조금 더 가볍고 천진난만한 분위기로 타 작품들보다 가볍게 시청하기 좋습니다. 뜨거운 여름날의 일본을 배경으로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명대사
"이건 천사의 종이라는 거야. 힘들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이 종을 울리면 천사가 와서 도와준대."
"다음에 우리 또 엄마 찾으러 가자."
"근데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기쿠지로다, 바보야!"델마와 루이스(1991)
Thelma & Louise
ⓒ 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보수적인 남편을 둔 가정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스’(수잔 서랜든).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함께 휴가를 떠난 두 친구는 휴게소에서 그녀들을 강간하려는 한 남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되고, 즐거웠던 여정은 순식간에 끝을 알 수 없는 도주가 되어버린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뒤로 한 채 사막을 달리며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그녀들.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멕시코로 향하는 길목에서 매력적인 카우보이 ‘제이디’(브래드 피트)가 나타나게 되고,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델마’를 지켜보며 ‘루이스’는 조금씩 불안감이 커진다. 한편, 강력범으로 수배가 된 그녀들은 좁혀오는 수사망과 함께 점차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는데…
CINE PICK!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91년 작품으로, 여성 주인공들을 내세운 로드 무비입니다. 영화의 두 주인공으로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가 출연해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명 모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대신 각본가 칼리 쿠리가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이외에도 촬영상, 감독상, 편집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음악은 한스 짐머가 담당하였고, 무명 시절의 젊은 브래드 피트가 출연하기도 하였습니다. 수준 높은 페미니즘 영화로 평가받기도 하는데요, 리들리 스콧이 작업 당시 전통적으로 남성이 주인공을 맡았던 버디 무비 장르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었다고 합니다. 감독의 전작인 <에일리언>에서 역시 전통적으로 남성이 맡아왔던 역할에 여성을 캐스팅하기도 했지요. 절벽을 넘어 떨어지는 자동차의 모습이 담긴 결말 씬이 굉장히 인상적인데, 강렬한 장면인 만큼 여러 매체에서 오마주, 패러디되고 있습니다. 밝고 화사한 색감의 야외 씬들의 향연 또한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입니다.
명대사
"별 개떡 같은 재미가 다 있군. 돌아서, 기억해 둬. 여자가 저렇게 우는 건 재밌어서가 아니야."
"신사숙녀 여러분,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갈 때까지 바닥에 엎드려 주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계속 가는 거야."
모터싸이클 다이어리(2004)
The Motorcycle Diaries
ⓒ 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23살의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퓨세)’는 생화학자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남미대륙 횡단을 계획한다. 안데스산맥을 가로질러 사막을 건넌 후 아마존을 거쳐 베네수엘라까지 가는 것이 이들의 목표. 여행을 통해 만난 세상은 지금까지 알던 현실과 너무 다르고, ‘퓨세’와 ‘알베르토’는 세상의 불합리함에 분노한다. 청년 ‘퓨세’의 인생을 뒤흔든 생생한 기록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그는 이 여행을 통해 훗날 현명하고 인간적인 지도자로 추앙받은 세기의 우상, '체 게바라'로 거듭난다. 열망으로 가득 찬 ‘두 청년’과 한 대의 낡은 모터사이클 ‘포데로사’. 그리고 이들이 시작한 8,000km의 여정. 인류의 역사를 바꾼 특별한 여행기가 공개된다!
CINE PICK!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그라나도와 체 게바라가 쓴 두 권의 여행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로드 무비인 전작 <중앙역>으로 유명세를 얻은 월터 살레스 감독의 영화로, 주인공 '퓨세' 역할은 이냐리투의 <아모레스 페로스>, 알모도바르의 <나쁜 교육> 등으로 유명한 가엘 가르시앙 베르날이, '알베르토' 역할은 <종이의 집> 속 '팔레르모' 캐릭터로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가 맡았습니다. 영화는 몇 년 뒤면 '체'라는 애칭을 갖고 베레모를 쓴 혁명가가 될 체 게바라가 아직 '퓨세'로 불렸던 시절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아름답지만 험한 라틴아메리카의 흙길, 그 안에서 가혹한 현실로 인해 고통받고 있던 사람들을 보듬으며 혁명의 꿈을 키워 나가는 푸세의 성장이 마음을 울리는 영화입니다.
명대사
"본 적 없는 세상이 그리울 수도 있나요?"
"어떻게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이토록 무참히도 짓밟아버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전에는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또 다른 인류에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 있어요."
중앙역(1998)
Central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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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브라질의 수도 리우 데자네이루. 산업화에 실패한 도시의 중앙역. 노처녀 도라(페르난다 몬테네그로)는 중앙역 한 구석에서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의 편지를 대필해 주는 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믿음이 없는 도라는 나름대로 절실함이 담긴 편지를 아무 거리낌 없이 쓰레기통에 버린다. 습관처럼 버린 편지들 속에는 어린 아들 조슈에(비니시우스 드 올리베이라)를 홀로 키우며 남편을 기다리는 아나의 절실함이 쓰인 편지도 있다. 아나는 편지를 부탁한 후 중앙역 건널목에서 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다. 홀로 남은 조슈에는 도라의 곁에 머물고 도라는 그 조슈에를 입양소에 팔아넘긴다. 그러나 그곳이 아이들의 장기를 팔아넘기는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죄책감에 조슈에를 빼돌려 함께 조슈에의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CINE PICK!
영화 <중앙역>은 위에서 소개해드린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감독이기도 한 월터 살레스의 1998년 작입니다. 역에서 편지를 대필해 주는 일을 하던 노처녀 도라가 한 소년의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길에 동행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로, 그해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월터 살레스는 브라질 출신으로 이전에는 다큐멘터리 연출을 주로 하다가 <중앙역>을 통해 주목받는 영화감독으로 급부상하였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도라'와 '조슈아'의 여정을 통해 브라질의 현실을 가까이서 보여주며, 세상에 신뢰를 잃은 어른이 아이와의 우정을 통해 되찾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라' 역의 브라질의 국민 배우 페르난다 몬테네그로가, '조슈아' 역에는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발탁된 신발닦이 소년 비니시우스 드 올리베이라가 출연해 가슴 따뜻해지는 연기를 펼쳤습니다.
명대사
"너희 아빠는 네 말대로 꼭 오실 거야. 우리 아빠도 좋은 면이 있었던 것 같구나."
"날 기억하고 싶을 땐 우리의 작은 사진을 꺼내보렴."
"그리운 게 너무 많다. 너무 많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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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자신의 꿈은 접어둔 채 16년째 ‘라이프’ 잡지사에서 포토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월터 미티. 해본 것도, 가본 곳도, 특별한 일도 없는 월터의 유일한 취미는 바로 상상! 상상 속에서만큼은 ‘본 시리즈’보다 용감한 히어로, ‘벤자민 버튼’보다 로맨틱한 사랑의 주인공이 된다. 어느 날, ‘라이프’지의 폐간을 앞두고 전설의 사진작가가 보내온 표지 사진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당장 사진을 찾아오지 못할 경우 직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 월터는 사라진 사진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연락조자 닿지 않는 사진작가를 찾아 떠나는데…
지구 반대편 여행하기, 바다 한가운데 헬기에서 뛰어내리기, 폭발직전 화산으로 돌진하기 등 한 번도 뉴욕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월터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상상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많은 어드벤처를 겪으면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당신이 망설이고 있는 그 순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CINE PICK!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배우와 작가, 감독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활동으로 인정받은 벤 스틸러가 처음으로 진지한 정극 연출을 맡아 감독과 주연배우로 활약한 영화입니다. 1939년에 쓰인 동명 소설(원제인 The Secert Life of Walter Mitty)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상상 멍 때리기'에만 몰두하던 월터 미티가 어디론가 사라진 숀 오코넬의 25번 필름을 찾아 여행을 시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1947년작 영화의 리메이크 버전이며,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고귀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진지한 메시지를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로 풀어냈습니다. 북유럽의 그림 같은 풍경과 함께 다양한 패러디와 판타지에 가까운 월터의 공상 씬들로 꽉꽉 채워져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명대사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에 머물고 싶지."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유령 표범처럼 아름다운 것. 월터 미티."
그린 북(2018)
Green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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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1962년 미국, 입담과 주먹만 믿고 살아가던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교양과 우아함 그 자체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박사의 운전기사 면접을 보게 된다. 백악관에도 초청되는 등 미국 전역에서 콘서트 요청을 받으며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돈 셜리는 위험하기로 소문난 미국 남부 투어 공연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투어 기간 동안 자신의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로 토니를 고용한다. 거친 인생을 살아온 토니 발레롱가와 교양과 기품을 지키며 살아온 돈 셜리 박사. 생각, 행동, 말투, 취향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그들을 위한 여행안내서 ‘그린북’에 의존해 특별한 남부 투어를 시작하는데…
CINE PICK!
영화 <그린 북>은 제43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관객상, 제7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3관왕에 이어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피터 패럴리 감독의 휴머니즘 영화입니다. 평단의 호평뿐만 아니라 일반 관람객에게도 인기를 얻어 북미에서 총수익 3억 416만 달러를 기록하며 흥행에도 성공하였습니다. 실존인물들을 모티프로 제작되었으며, 인종차별과 화합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의 케미와 유머로 유쾌하고 풀어냈다고 평가받는 영화입니다.
명대사
"충분히 백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흑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남자답지도 않다면 그럼 난 뭐죠?"
"외로워도 먼저 손 내미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세상을 바꾸는 것은 천재성 만으로 충분하지 않죠. '용기'가 있어야 해요."
이렇게 오늘은 로드무비 7편을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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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란한 지휘자의 무거운 발걸음
찬란한 지휘자의 무거운 발걸음
영화 <비바 마에스트로>
감독] 테드 브라운
출연] 구스타보 두다멜
시놉시스] 영화 비바 마에스트로는 테드 브라운이 시기적절하게 내놓은 희망적인 다큐멘터리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손바닥을 새기고, 수백명의 어린이에게 사인 요청을 받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그는 베네수엘라의 유소년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세계적 성공을 거둔 지휘자다. LA 필하모닉,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그는 클래식 스타의 영향력을 건설적으로 발휘할 방법을 늘 고민한다. 여전히 불안정한 고국에서 그는 음악으로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스포일러 주의#
음악이 주는 치유의 메시지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이다.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음악을 가르쳐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교육 시스템이다. 과연 음악 하나로 인성적 사회적 교육이 가능할까? 처음에는 의심스러웠다. 경제적으로 힘든 가정에게는 직접적인 경제적 지원이 가장 큰 도움이 될텐데 아무리 무상이라지만 문화적 교육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제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옳았다. 또래 아이들과 악기를 통해 합주를 하면서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과의 협동심을 기를 수 있었고, 한 단체에 소속되어 동료로서, 그리고 선후배로서 악기를 서로 가르쳐주면서 사회성 역시 발달되었다. 또한, 불우한 자신의 가정 환경을 탓하는 것이 아닌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자신의 강점과 장점을 찾으며 자신의 환경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클래식을 연주하면서 그 음악 자체로도 심적 안정감과 힐링을 받으니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교육 시스템이 어디있을까. 한 조사에 따르면 어두운 골목길에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것만으로도 강도, 살인과 같은 중범죄부터 소매치기와 같은 경범죄까지 그 비율이 절반 가까이 떨어진다고 한다. 아마 엘 시스테마를 처음으로 만든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음악이 가지는 힘이 지금 당장의 경제적 뒷받침을 되지 못하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가치 체계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엘 시스테마를 통해 혼란스러웠던 베네수엘라의 아이들을 교육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과연 늦었는가
구스타보 두다멜은 지휘자로서 어린 나이에 성공을 거두었다. 17살의 나이에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데뷔를 하고, 2004년 독일의 밤베르크 교향악단 주최로 열리는 지휘자 경연대회인 ‘구스타프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면서 지휘자로서 성공가도를 쭉쭉 달리기 시작했다. 이후 중견 지휘자들 빰치는 분주한 활동을 계속하면서 지휘자의 커리어를 알차게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커리어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고향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와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며 그들의 음악적 성장을 위해 고뇌하고, 더불어 정치적으로 너무나도 불안정한 베네수엘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매일같이 고민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차베스 정권 당시에는 친정권적인 태도를 보이고, 마두로 정권에 들어오면서 부터 현 정권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현한 것에 대해 너무 뒤늦게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아닌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이 부분도 영화 비바 마에스트로에서 꼬집는다. 하지만 과연 구스타보 두다멜의 입장에서 차베스 정권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나 싶긴 하다. 차베스는 집권 초기 엘 시스테마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면서 지원 중단을 검토했으나 빈곤 퇴치와 범죄 예방 그리고 사회 부흥 및 국가 자부심의 원천이 된다고 판단해 지원을 지속하며 해외 공연을 늘리면서 엘 시스테마를 해외에 알리는데 집중했다.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서 아이들의 정서발달과 사회적 교육의 일환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왔던 두다멜에게는 엘 시스테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자신이 정치적 입장을 밝혀버리면 한 집단 전체가 매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마두로의 집권 이후 유혈사태와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유혈사태는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성명을 발표하면서 정치적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입장이 뒤늦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 정치성으로 이용되길 원치 않았던 그에 있어서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성명 발표로 인해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하나둘 다른 일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나라로의 이민을 선택하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점차 단원들의 빈자리를 보여주면서 왜 그가 정치적 입장을 이제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무게감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자신이 지휘자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 것을 넘어서 단원들의 생계 역시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동안의 비판에서도 침묵을 지켰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엘 시스테마부터 구스타보 두다멜의 이야기까지 베네수엘라의 현재 상황과 그의 행보에 대해서 다룬 영화 비바 마에스트로. 찬란해보였던 행보와 달리 앞으로 나아가는 한 발자국에도 엄청난 무게감이 있음을 잘 보여준, 그리고 미래의 그의 행보 역시 기대를 품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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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지만 동시에 사랑할 수 없는.
모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모녀의 관계는 친구 같은 존재로 서로 의지가 되는 관계이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는 관계이기에 더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에 본 ‘로스트 도터’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더욱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모성애라는 단어가 절대 변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생각했었던 나에게 신선함을 가져다 주었다. 어떻게 보면 무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은연 중에 강요해왔던 어떤 개념을 비틀어 버림으로서 과연 엄마라는 존재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물음을 이제야 해보는 것 같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가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을 지금에야 마주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마치 드러내지 않아야 온전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떤 감정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서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임에도 왜 이렇게 침묵을 유지하기 시작했을까. 이 영화는 가영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이 엄마에 의해서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는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으로 시작한 자신의 영화를 찍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영화와 현실이 겹쳐지며 그 누구보다 엄마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처음이라는 두려움은 항상 존재한다. 우리의 미래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지금의 나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두려움을 표출하는 부정적인 감정은 항상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이에게 솟구친다. 되물림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남들처럼 하길 바라는 마음이 나이고 싶은 마음과 끊임없이 충돌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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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빠진 것처럼>, 단순한 화면 공유를 넘어 공간과 감각의 공유로
영화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출처 없는 목소리를 제시하며 해당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화면으로 시작한다. 키아로스타미는 공백을 통해 관객이 영화에 개입할 수 있는 틈을 열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화면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 중 정작 목소리의 주인공은 없는 듯 하고, 과연 발화자는 누구인지 관객의 궁금증은 증폭된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단발머리 여자가 카메라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앉음으로써 비로소 화면은 채워진 듯한 느낌이 들고, 곧이어 화면이 전환되며 드디어 출처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드러난다. 그녀는 아키코라는 대학생으로 콜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어느 날 히로시는 아키코에게 홀로 살고 있는 타카시의 집에 방문하라고 제안하고, 할머니가 올라오시는 날이라며 몇 차례 거절을 반복하던 아키코는 결국 할머니와의 만남을 외면한 채 타카시의 집으로 향한다. 타카시의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 아키코는 할머니가 남긴 음성메시지를 듣는다. 그런 아키코를 따라 이어폰으로 타고 들어오는 할머니의 음성메시지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외면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그 다정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감정은 영화가 창조한 아키코와의 동일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V.F. 퍼킨스의 주장에 따르면, 인물과 관객을 동등한 조건에 두는 것은 동일시를 창조하고 강화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에서 아키코는 마지막 음성메시지가 끝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음성메시지를 듣는데 이는 아키코라는 인물을 시각적, 청각적 수행만 가능한 관객과 동등한 조건에 두는 것이며, 이로써 영화 속 인물과 관객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다. 즉, 영화는 인물과 관객을 동등한 처지에 위치시킴으로써 아키코와 관객의 동일시를 창조하고, 관객은 그러한 동일시를 통해 아키코의 감정에 이입하며 영화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등장인물과 관객을 동등한 조건에 둠으로써 동일시를 창조하는 예는 히치콕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창>에서 부상으로 인해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이웃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제프리와 <마니>에서 화장실 벽에 기대어 바깥소리를 엿듣고 있는 마니가 그 예시다. 앞서 발생한 아키코와 관객의 동일시는 그녀가 탄 택시가 역 근처에 다다랐을 때 관객 또한 아키코와 같이 고개를 쭉 내밀고 창가에 바싹 붙어 할머니가 정말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느끼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 장면에서 택시는 역에 안정적으로 정차하는 것이 아니라 원형의 도로를 따라 계속 주행하는데, 이때 중간에 정차한 차와 뛰어가는 행인으로 인해 아키코의 시야에서 할머니가 기다리는 동상의 아랫부분이 일시적으로 가려지기도 하며 창밖에 나무들과 차 창틀, 가로등들은 아키코가 할머니에게 근접하는 동안 계속해서 할머니의 모습을 드러내고 감추기를 반복함으로써 영화는 할머니가 그곳에 서 있다는 걸 대놓고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선택을 통해 영화는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을 한번에 드러내주지 않음으로써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관객이 영화에 참여하게 만들고, 원형의 도로는 할머니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주위를 뱅뱅 맴돌기만 하는 아키코의 심정을 부각한다.
아키코가 타카시의 집에 들어설 때, 그의 집에서는 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키코가 도착하자 타카시는 들고 있던 수화기를 내려놓고 스피커폰으로 전환하는데, 이를 통해 관객은 아키코와 함께 수화기 너머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며, 초조하고 난처한 타카시의 감정에도 이입하게 된다. 타카시는 걸려온 전화에 응답하기 바빠 아키코를 제대로 맞이하지 못하고, 그녀가 집 안을 활보하는 동안에도 전화를 붙들고 안절부절못한다. 타카시는 애써 통화를 마무리 지으려 해보지만, 발신자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심지어는 다른 화제로 새거나 본론을 잊기도 하는데, 타카시와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그러한 상대의 전화를 끊지 못하고 계속해서 들으며 타카시의 초조하고 답답함에 공감하게 된다. 아키코는 타카시가 준비한 음식도 먹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려 한다. 타카시는 그녀를 방 밖으로 유도하려 하지만 아키코는 도통 말을 듣지 않고, 카메라도 그녀처럼 고집스럽게 방 안을 떠나지 않는다. 이때 거실에 있는 전화가 울리고,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들려오는 소리는 관객이 얼른 전화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가서 전화를 끊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한편으로 이것은 고집스럽게 방 안을 지키고 있던 카메라를 타카시를 따라 방 밖으로 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타카시가 전화를 끊기 위해 방을 나서자 카메라도 그제서야 방 안을 벗어난다. 마찬가지로 잠시 후, 거실로 나온 타카시와 관객을 다시 아키코가 있는 방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역시 방 안에서 울리는 전화벨이다. 화면 밖에서 들려오는 전화벨은 반복적으로 들리는 소리를 중단시키고 싶다는 관객의 욕구를 자극하고, 타카시가 전화선을 뽑아둠으로써 전화벨이 또 울려 잠들어 있는 아키코를 깨울 것 같다는 걱정과 긴장감은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다양한 시각, 청각 장치를 활용하며 관객이 영화 속 인물과 사건이 실제로 그러하다고 믿고 개입하도록 한다. 어쩌면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영화가 가진 그 제목에서부터 관객의 참여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목 끝에 모양이 서로 비슷하거나 같음을 나타내는 격 조사 ‘처럼’ 을 더함으로써 그것의 의미는 어딘가 모호해지고, 관객은 등장인물 중 누가 사랑에 빠진 것인지, 그 인물이 정말 사랑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런 척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제목을 비롯해 작품 속에서 전화와 음성메시지, 창문과 같은 다양한 시청각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관객에게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영화를 “감각하고 참여할 것”을 제시하며 퍼킨스가 ‘순수한 반응’이라고 했던 어떤 것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관객은 단순히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영화를 경험하며, 그것과 ‘공간과 감각을 함께 공유’하는 것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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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한 물방울로 그린 세월의 흔적들
이 모든 게 끝이 있을 거예요. 누군가에게 했던 말이다. 끝이 있다는 말. 그게 언제인지 모르겠는 막연함은 참 답답하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데 명확한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끝이 있다는 것.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삶이란 게 지겹긴 해도 좋은 건가 봐'라고 썼던 글 한 편이 생각난다. 좋은 것 맞나? 그렇게 마지막 날이 오면 세상을 이해할 날이 올까? 일단 내가 '작가님' 소리 듣고 싶어 벌였던 오만 짓이 생각났다. 그리고 사회복무요원 생활 동안 왜 키보드를 놓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런 것들은 이해하고 말고 가 없다. 그냥 내가 그런 삶을 사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니까 벌이는 일이다.
문득 이런 나를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띠리리링. "이 작가의 이상향은 이동진 평론가지만 현실은 그냥 한국의 씨네필 중 하나일 뿐입니다" 라는 문장을 내 마음 안에서 짓는다. 아니거든! 나 그래도 원고료도 받아보고 방송도 나와보고 조회수도 잘 나오거든! 시나리오 봐달라는 메일 온 적도 있거든! 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나는 이미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어차피 남의 시선(들)중 하나 아닌가? 뭔가를 써서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결국 중요했던 건 '나 자신이 왜 이런 것들을 하지 않고서는 못 베기나'에 대한 문제였다. 그렇게 나도 모를 동기부여에 탐구하는 것이 예술하는 사람이 짊어져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여기 두 예술가가 영화로, 각자의 마음 안에 들어온 구멍 하나를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는 아버지와 지난한 세월이라는 구멍이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다.
전설적인 아티스트
1929년. 김창열 화백은 그 해에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치하. 어린 시절 서예를 비롯한 미술을 배우며 보냈던 유년기. 화백이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전공했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만 보고 자랐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20살이 채 되기도 전에 벗어났던 일제의 수탈을 뒤로하고, 한국전쟁까지 겪었다. 곯고 곯은 김 화백. 그렇게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겪으며 방황하던 화백은 서울과 제주, 뉴욕을 거쳐 프랑스에 정착한다. 동료 예술가 백남준과 시간을 보내다 캔버스 뒤편에 맺힌 물방울을 보게 된다.
그렇게 50여 년의 화가 인생을 물방울에 투영하는 김창열 화백. 1970년대부터 그리기 시작했던 작품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데 도화선이 됐다. 백남준과 함께 한국의 현대미술을 이끄는 트렌드세터가 된 김창열 화백. 예술가로서 입지전적인 명성을 얻은 그지만 그의 내면은 복잡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왜 물방울을 고집했는지, 노자를 신봉하면서도 예술가적인 명성을 마다하지 않았는지, 좋고 밝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아버지가 아닌 달마대사의 에피소드를 전하는 인물이었는지 등등. 아들 김오안 감독은 아버지가 견뎌내야만 했던 삶의 지난함 들을 탐구해보고자 했다.
재미있는 영화
난 다큐멘터리를 별로 안 좋아했다. 어렸을 때 투니버스 볼 시간도 없는데 다큐멘터리 볼 시간이 어디 있어? 그런데 엄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종종 보곤 했었다. "엄마~ 돌리면 안 돼요?" 징징댔던 나. 그리고 거의 20여 년이 지난다. 20대 중반이 된 나. 역시 나이가 들면 취향은 바뀌는 것일까? 이제는 다큐멘터리에 무덤덤해졌다. 잔잔한 것들도 곧잘 봐서 그런가 싶었다. 나에게 여전히 다큐멘터리는 그냥 잔잔한 영화 장르에 가깝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잔잔하지 않다. 잔잔하지 않다고 느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시각효과 구성이 좋았다.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돌이켜보는 아들의 시각이다. 당연히 부친 김창열 화백이 화가니까 그의 작품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 장르마다 변환에 효과를 부여한 시각적 쾌감이 대단하다. 어떤 시퀀스에 그림이 연속적으로 제시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굉장하다. 영화에서 제시된 그의 삶을 스르륵 돌아보면서, 굉장히 많은 물방울의 수가 지나간다. 그럼 아련해진다. 아버지가 지나왔던 삶에 아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느껴진다. 이렇게 이 영화에서 물방울 그림을 다시 구조화시키는 방식은 굉장히 탁월한 리메이크 노래를 듣는 느낌이다. 한 장르의 비디오 아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이와 살짝 다른 지점이지만 '왜 아버지(김창열 화백)는 물방울을 그리는 데에 집중했을까?'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있다. 분명히 김 화백의 아버지가 갖고 있는 과거를 중심으로 전개해야 한다. 그거랑 관련이 있으니까. 감독은 어떤 장면과 나레이션으로 이를 보여준다. 우리가 어떤 에세이를 읽으면 그 광경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이 시퀀스는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까지 다 계산한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었다. 이 이유를 듣고 나면 김 화백의 그림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전적으로 아버지를 소재로 했지만 왜 김오안 감독의 작품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시퀀스였다. 이는 김창열 화백의 자의식 탐구만큼이나 묵직하게 다가오는 영상미일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장르에서 가져올 수 있는 특징을 잘 뽑아낸 셈이다.
두 번째. 장면마다 촬영을 잘했다. 김창열 화백 얼굴 나타나는 클로즈업. 눈 오는 설산. 화백이 자 그리고 선 찍 긋는 장면. 이런 장면 하나하나 구도도 잘 잡았고 색감도 예뻤다. 이 영화가 눈이 심심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영상미의 아름다움도 한몫했다. 이 영상미는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진다. 심오하게 들릴 수 있는 한 인물의 내면을 직관적으로 딱딱 이해가게 배치한 좋은 연출 방식이다. 영화를 보면서 신기했던 것이, 과거의 뉴스 자료를 갖고 온 방식이었다. 아니 2022년에 보는 데도 어제 찍은 것 같은 동영상들이었다. 이런 거 어떻게 가져왔대? 또 앞 두 가지와는 좀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스릴러, 코미디 장르가 연상되는 장면도 영화 곳곳에 있으니 감독님이 영화를 많이 보신 것 같은 느낌이다.
깊은 자의식을 들여보다
뭔가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어두우면 작품이 쉽게 나온다는 점이다. 이를 가장 극단적으로 활용한 것이 아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일 것이다. 이 감독의 영화를 보며 느낀 건 '생각 많아서 짜증 나겠다'였다. 이렇게 복잡한 사람이 예술가가 되어 자기의 혼을 드러내는 거겠지. 비단 라스 폰 트리에뿐만 아니라 박찬욱, 봉준호 감독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속할 수도 있다. 첫사랑이라 서투를 수밖에 없었던 것(<박쥐>), 모성애의 방향에 대한 탐구(<마더>) 둘 다 어두운 감정을 바탕으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것 역시 어두운 내면을 소재로 삼았다고도 볼 수 있겠지?
예술가에게 있어 소재란 무궁무진하다. 온갖 것을 가지고 자기를 표현할 수 있으면 예술가다. 영화는 이 예술가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징을 다뤘다. 아버지가 겪어온 어둠은 무엇인지, 그럼에도 아버지가 추구했던 즐거움이 무엇이었는지, 그 삶이 남기고 간 건 무엇인지 등등을 탐구하며 아버지가 예술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추론하며 제시한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앞에서도 썼듯 이것은 아들 김오안 감독의 영화다. 이 영화에는 김오안이라는 예술가가 생각하는 영화란 무엇인가? 도 담겨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영화에 관한 영화인 메타 영화가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굉장히 신선하고 독창적이다. 영화가 전해주는 시각적 재미 중 하나가 여기에서도 온다고 생각한다. '엥? 이게 영화가 되네? 그리고 꽤 잘 만들었네?' 싶은 것이다. 이런 예술가적 창의성은 관객에게 영향을 주기 충분하다. 비단 내가 지금 쓰는 글도 한 종류의 예술이다. 이런 걸 좋아하고 한 30대가 되고 나서도 하고 싶은 나의 입장으로서도 이 영화가 제시하는 방법론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는 그래서 다른 분들도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상영관에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 다음 주 금요일 14일에 VOD로 출시된다고 하는 것 같다. 뭔가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이 영화의 방법론이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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