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Choice Movie2022-06-20 14:36:39
6월 4주 최신 개봉영화
6월 4주 최신 개봉영화 5편
2022년 6월 4주 개봉영화!
탑건: 매버릭 Top Gun: Maverick , 2021
톰 크루즈가 돌아왔다!
영화 "탑건: 매버릭"은 교관으로 컴백한 최고의 파일럿 매버릭과 함께 생사를 넘나드는 미션에 투입되는 새로운 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항공 액션 블록버스터입니다
톰 크루즈는 36년 전 자신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 '탑건'의 속편 "탑건: 매버릭"에 제작자와 주연으로 나섰는데요.
다양한 항공 액션도 모두 스턴트 없이 직접 톰 크루즈가 소화했다고 합니다.
또한 톰 크루즈가 생애 열 번째 내한이 확정되어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항공 액션의 리얼리티 끝을 보여주는 영화!
첫번째 추천영화 "탑건: 매버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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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쉐어링 My Perfect Roommate , 2021
나문희X최우성
영화 "룸 쉐어링"은 까다롭고 별난 할머니 '금분'과 흙수저 대학생 '지웅'의 한집살이 프로젝트를 그린 영화입니다.
나이부터 성격, 가치관까지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생애 처음 '룸 쉐어링'을 시작하는 과정을 통해 유쾌한 웃음을 전하는데요.
이순성 감독은 영화의 출발점에 대해 "노원의 한 도서관에서 룸 쉐어링과 관련한 팜플릿을 봤다.
할머니랑 젊은 대학생이 함께 살면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룸 쉐어링의 두 주인공은 베테랑 나문희와 신예 최우성인데요
세대를 초월한 호흡이 기대가 됩니다.
혼자 사는 노인과 대학생이 하나의 가족이 되는 감동스토리
두번째 추천영화 "룸 쉐어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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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주의보 2021
다시 돌아온 홍수아
영화 "감동주의보"는 큰 감동을 받으면 생명이 위험해지는 감동병을 앓고 있는 보영이 착한 시골청년 철기를 만나 꿈과 사랑을 이루어 내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입니다.
홍수아가 5년 만에 국내 관객을 만나는데요 "감동주의보"로 전화점을 맞을지 기대가 되고 있습니다.
남자주인공으로는 최웅으로 스크린 첫 데뷔인데요 항상 드라마에서 봤던 최웅을 스크린에서 만날수 있어 기대가 됩니다.
감동받으면 죽는다는 희귀질환인 감동병을 앓는 컬링 천재 보영,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시골청년 철기의 로맨스주의보
세번째 추천영화 "감동주의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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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 윌벤져스 : 수상한 캠핑 대소동 2022
‘'윌리엄&벤틀리'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윌벤져스: 수상한 캠핑대소동"은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등
대한민국 대표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500편 이상 기획,제작하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게일의 새로운 프로젝트입니다.
2020년 코로나 예방 캠페인으로 제작된 윌벤져스 애니메이션 공익 영상이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자
"윌벤져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따뜻한 가족용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팬들의 많은 호응이 있을 것 같다"라는
신창환 감독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특히 이번 애니메이션에서는 샘 해밍턴이 아빠 샘 캐릭터로 등장해 직접 본인 캐릭터 목소리 더빙을 했는데요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일 예정입니다.
동물과 대화하고 공룡 힘을 내는 초능력 가진 '윌벤져스'!
네번째 추천영화 "감동주의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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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굴 Please Make Me Look Pretty , 2020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해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 은혜씨
영화 "니얼굴"은 발달장애인 은혜씨가 양평의 문호리리버마켓 셀러가 되어 진정한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입니다.
'핑크 팰리스', '두물머리' , '잘 왔다, 우리 같이 살자'를 연출한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은혜씨의 아버지인 서동일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다운증후군 화가들이 많지만, 정은혜 작가는 7년이 넘는 꾸준한 활동으로 4천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완성하면서 작품의 가치 또한 뛰어나는데요
'천명의 얼굴'을 시작으로 북한산 우이역 공공예술 프로젝트 '달리는 미술관-2' 등 다양한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크레아에서 '같이 잇는 가치'문화예술 포럼의 아티스트 3인 중 한 명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은혜씨의 예술 가득한 사랑스러운 일상을 담은 영화
다섯번째 추천영화 "니얼굴" 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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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
운명이란 무엇인가. 이는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성경에서부터 공상과학소설까지 운명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되풀이해 왔다. 그리고 이는 문학에서 영화까지 매체를 달리하면서도 이어진다. 드니 빌뇌브는 운명이란 주제를 거듭해서 표현했다. 〈그을린 사랑〉(2011)부터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블레이드 러너 2049〉(2017)까지 오이디푸스 신화, 전쟁, SF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운명과 자아를 탐색해 왔다. 특히, 소설을 원작으로 한 〈컨택트〉(2017), 《듄》 시리즈(2021-2024)는 운명에 대한 탐색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영화다. 특히, 〈컨택트〉, 《듄》 시리즈 모두 공상과학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며, 각 작품에서 운명을 대하는 방식에서의 차이가 드니 빌뇌브의 운명에 대한 감독으로서의 관점을 파악하는데 유의미하다. 그렇기에 이 두 작품을 바탕으로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을 탐색하고자 한다. 두 작품의 공통점을 통해 드니 빌뇌브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운명의 의미을 정의하고, 〈컨택트〉와 〈듄〉과 〈듄: 파트2〉에서 나타나는 운명 양상의 차이를 살펴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을 밝혀보도록 하겠다.
먼저, 〈컨택트〉, 《듄》 시리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운명의 양상을 살펴 드니 빌뇌브의 운명을 정의하자. 그의 운명론은 ‘예지자의 등장’, ‘상대 문화의 습득’, ‘수행의 서사’라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운명을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 차저.’라고 정의한다. 즉,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운명이라 부르기 위해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아야 하고, 그것이 미래에 실현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예지자의 존재가 중요하다. 두 영화에서의 예지자의 등장을 살펴보면, 〈컨택트〉에서는 헵타포드, 《듄》 시리즈에서는 베네 게세리트가 그 예지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헵타포드는 외계 생명체로서, 인간과 다른 체계의 언어를 사용하고, 베네 게세리트는 그들만이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 두 존재 모두 외부의 독자적 문화를 가진 존재라는 측면에서 이방인이다.
또한, 헵타포드는 우주에서 온 존재이고, 베네 게세리트는 우주를 떠돌기 위해 필요한 존재로, 두 존재 모두 지금 있는 곳 너머의 공간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다. 여기서 상상이라는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 혹자는 인간의 특성을 상상력으로 정의할 정도로, 상상은 인류 문명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없는 것을 떠올리도록 하여, 욕구를 만들고 목표를 갖게 하며 변화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규칙과 사회를 만들고 체계화된 제도를 만든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 이러한 상상을 자극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두 존재는 인간의 종적 성질 및 원초적 욕구와 맞닿아 있다.
게다가 두 존재는 모두 주인공을 각성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헵타포드는 언어를 전달함으로써, 베네 게세리트는 고통을 줌으로써 각 영화의 주인공을 각성시킨다. 그리고 그 각성의 과정은 주인공이 이전에 겪어 본 적이 없는 무언가이며, 그것을 통해 극심한 감정을 겪는다. 딸의 죽음을 알게 된다거나, 죽을 듯한 고통을 겪는 것처럼. 그리고 이로 인해, 두 주인공은 새로운 선택의 문제를 부여받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각성 또한, 이전에 두 주인공이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각성 이전의 선택과 이후의 선택은 차이가 있다. 이전의 선택은 누군가에 의해 제안된 것 사이의 선택이라면, 각성 이후의 선택은 목적 의식을 기반으로 한 자발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자발성에는 정해진 미래라는 외부의 압력이 존재하나, 그 순간만은 주인공이 스스로 선택하는 듯 보인다. 즉, 각성은 주인공의 선택의 결과이며, 그에 따른 대가를 만들고, 그 이후 보다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즉, 드니 빌뇌브의 운명에서 상상과 결부된 존재로서 주인공을 각성시키는 이방인인 예지자는 필요조건인 것이다.
또한, 이 각성의 과정에서 드니 빌뇌브는 플래시 포워드를 사용한다. 드니 빌뇌브는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플래시 포워드를 독특하게 사용한다. 그의 플래시 포워드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 영화의 시작에서 플레시 포워드를 플래시 백처럼 시킨다. 그로 인해, 그것이 단순한 환상인지, 과거에 있었던 일인지, 미래에 있을 일인지 관객을 한번에 인지할 수 없다. 둘, 클로즈업 쇼트나 롱 쇼트로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제공한다. 그는 플래시 포워드로 각성의 순간을 표현하며, 운명을 보여주는데, 이는 시퀀스가 아닌 쇼트로 단편적으로 표현되며, 일상적인 스케일의 화면이 아닌, 극도로 확대되었거나 축소된, 그리고 극도로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는 화면으로 표현하여 이질성을 극대화한다. 마지막으로 내레이션의 존재다. 그의 플래시포워드는 예지자에 의한 각성으로 야기됙기에 보여지는 이미지와 다른 음성이 삽입된다. 그리고 이는 주로 내레이션으로 삽입되며, 영상과 음성의 격차가 발생한다. 이러한 특징은 각성 순간의 혼란을 표현하며, 예정된 미래로 인해 관객이 느낄 허무와 수동성을 옅게 하고, 모호함에 의한 긴장감과 주인공의 적극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다음으로, 상대 문화의 습득을 살펴보자. 이는 앞선 예언자에 의한 각성과 연결된다. 하지만 단순히 예언자에 의한 각성을 넘어 더 능동적인 문화 습득이 이루어지는 부분도 있다. 예언자에 의한 각성은 앞선 문단에서 살폈으니, 후자만 다뤄보자. 먼저, 〈컨택트〉를 보면, 가장 두드러지는 문화 차이는 헵타포드의 문화와 인간의 문화다. 그리고 이들의 소통은 언어를 매개로 이뤄진다. 그런데 이 외에 또다른 문화 차이의 축이 존재한다. 이는 물리학자와 언어학자의 차이다. 이는 물리학에서의 관점 차이와 언어학에서의 음성-문자 차이로 나타나며, 소설에서 보다 잘 드러난다. 먼저, 관점 차이를 살펴보면 언어학자와 물리학자는 페르마의 원리를 통해 소통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페르마의 원리는 빛의 굴절 현상을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는 것으로 이 또한 문화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측면에서는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 사이의 차이가 나타난다. 소설에서는 보다 상세하게 설명되며,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게 다뤄지나, 영화에서는 그 과정까지 세세히 묘사되지는 않는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으로 실현되지 못한 몇 가지의 문화 차이가 있으나, 어찌하였든 이 차이를 담은 원작을 선정하였다는 점에서 드니 빌뇌브는 문화 수용이 운명을 수용하는 과정과 연관됨을 명백히 밝힌다.
역시나 《듄》 시리즈에서도 문화 수용이 드러난다. 오히려 상대의 문화 수용은 《듄》 시리즈에서 더 잘 드러나는데, 특히 눈에 띄는 문화의 수용은 프레멘과의 교감이다. 그 외형이나, 영화에서의 설정을 살펴보면 주인공은 과거 유럽 가문의 후계자를 상징하고, 프레멘은 그들이 침략한 곳의 원주민을 상징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가문이 멸하자, 프레멘의 터전으로 들어가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배운다. 이처럼 두 영화에서 모두 다른 문화를 수용함으로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묘사된다.
마지막으로 수행의 서사를 살펴보자. 드니 빌뇌브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운명을 받아들인 이후의 과정에서 수행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컨택트〉는 그 영화 전체가 수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헵타포드에게 가기 전, 언어학자는 외계 생명체가 출몰했다는 뉴스가 나와 학생들이 강의에 나오지 않는데도 강의를 하러 대학에 나가는 사람이다. 그것을 수행해야만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헵타포드에 의해 비극적인 미래를 알게 되었을 때조차, 그 행위를 기꺼이 수행한다. ‘그럼에도 하는’ 사람인 것이다.
《듄》 시리즈에서도 미래를 수행하는 행위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듄〉에서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 전인 주인공은,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듄: 파트2〉에서는 이 모습이 더 흥미로운 양상을 띤다. 〈듄: 파트2〉에 오며, 주인공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은 심화되고, 지금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지 고민하는 것 사이의 갈등이 반복된다. 즉, 지금의 수행과 미래의 수행 사이의 갈동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써 끝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지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점이 나타난다. 바로, 이 운명을 거스르는 수행을 하려는 자의 등장이다. 변화한 주인공으로 인해 조력자가 반동 의지 가져 발생하는 변화는 운명에 의한 수행의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지껏 수용적 수행만이 강조되다, 소설에서 영화로 재창작하며 비중이 확대된 인물이 반동적 수행을 하려는 의지를 품는 것으로 마무리됨으로써 또다른 차원의 운명론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확신의 수행이든 의심의 수행이든 간에, 그리고 수용의 수행이든 반동의 수행이든 간에, 어찌하였든 드니 빌뇌브는 운명에 의한 실천, 즉 수행을 강조한다. 행위로 이어짐으로써 운명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두 영화 모두 운명을 수행하는 서사를 갖추는 것이다.
즉,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은 운명을 예지하는 자에 의한 운명의 시작, 차이 수용으로 인한 운명의 과정, 수행으로 인한 운명의 완성으로서 정의될 수 있다. 특히 이 세 요소 중, 앞의 두 전제 예지자의 존재와 상대의 문화 수용은 모든 작품에서 비슷한 양상을 띤다. 이는 운명의 ‘예정된 미래’의 가정인 내재적 의미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을 실현하는 ‘수행’의 측면에서 〈컨택트〉, 〈듄〉, 〈듄: 파트2〉는 서로 다른 태도를 견지한다. 그로 인해, 세 영화는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각자의 서사를 쌓아가는 다른 영화로서 존재한다. 먼저, 〈컨택트〉를 살펴보자. 〈컨택트〉에서의 수행은 ‘행위적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행위적 태도란 말 그대로 ‘하는 것’, ‘행위’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즉 행하는 것 자체가 운명의 완성이라는 것이며, 이는 이후 언급될 다른 태도에 비해 다소 조작적이고 가치중립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컨택트〉에서 드러나는 행위적 태도는 실존주의와 연관이 있다. 드니 빌뇌브는 이 영화에서 인간 개인과 개인의 주체성과 존재성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행위는 ‘선택’이 되고, 영화의 끝에 다다라 자유의지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컨택트〉는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의 등장과 함께 시작한다. 소설에서는 헵타포드가 지구에 온 이유가 설명되는데, 이는 “지구에 방문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다. 또한 ‘행동’이 원서에서 ‘연기’라는 의미도 갖고 있는 “performance”로 표현되며, 모든 것이 정해진 미래로의 착실한 수행이며, 이는 정해진 각본대로의 연기와 닮았음를 의미한다.
이는 실존적 측면에서 자유의지의 문제를 야기한다. 아무리 현재에서 바꾸고자 노력해도 어차피 올 미래가 있다면, 그 미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결과로 상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정된 미래를 가정하는 운명의 개념은 실존적 측면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는 정해진 미래에 대한 수행을 자유의지의 결과로 해석한다. 이는 주인공의 선택을 통해 드러낸다. 이를 관찰하기 전에 영화에서 운명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야 한다.
영화의 시작, 아이의 웃음 소리와 함께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어느 정보 없이 첫 장면을 마주한 관객은 자연스레 이것이 플래시 백이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거쳐 영화의 결말에 다다르면, 첫 장면이 플래시 백이 아닌 플래시 포워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 순환하는 구조를 갖춘 영화의 형식은 운명의 ‘이미 예정됨’을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이렇게 순환하고 예정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영화의 구조 안에서,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우리가 보는 주인공의 모습은 주체적이다. 그녀는 강의를 나가고, 정부의 요청에 응대하고, 매일같이 우주선에 올라가는 ‘그럼에도 하는’ 사람이고, ‘기꺼이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은 외계 생명체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할지, 우주선에 어떤 사람을 보낼지, 어떤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할지를 선택한다. 이는 그들이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최선의 결과을 얻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끝내 운명을 맞닥뜨렸을 때, 다시 첫 장면의 내레이션을 떠올리며, 플래시 포워드로 묘사된 그 미래는 운명에 대한 막연한 수행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행임을 알게 된다. 비로소 관객은 이를 통해, 일종의 투쟁처럼 보이기도 하는 영화 속 인물의 적극성이, 운명에 대한 수행이 수동적 행위가 아닌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며, 기꺼이 운명을 행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드니 빌뇌브는 이를 통해 운명 수행의 행위적 태도를 드러내며, 운명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인간의 자유의지가 개입할 수 있음을 밝힌다.
《듄》 시리즈는 〈컨택트〉와 달리 보다 가치가 개입된 측면의 수행을 다룬다. 각자의 수행에는 목적이 있으며, 그 의도성에 따라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판단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때의 양상이 〈듄〉과 〈듄: 파트2〉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기에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이 두 편의 영화는 운명의 측면에서 따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먼저, 〈듄〉을 살펴보자. 〈듄〉에서 묘사되는 운명의 수행은 메시아적 태도다. 메시아적 태도란 종교적 의도성을 갖춘 운명관으로, 구원을 목적한다.
〈듄〉은 주인공이 자신의 운명이 무엇인지 받아들이는 과정을 주요 골자로 한다. 성경을 모티프로 가지고 와, 진행되는 서사는 점지된 운명과 그를 수행해야하는 인물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성경에서 묘사되는 운명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니 빌뇌브는 주인공을 예지자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태어난 구원자로 설정하며, 운명이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즉, 운명은 거시적으로는 예지되는 반면, 미시적으로는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운명의 벗어남은 주인공의 부모, 즉 개인의 의지의 산물로서, 개인의 욕망과 의지를 통해 바뀔 수 있는 운명의 불완전성을 암시한다.
여기서 묘사되는 주인공은 예수적 인간으로,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진 인간이다. 또한 그의 운명은 구원을 목적으로 하며, 가장 성스럽고 완전에 가까운 존재로서 묘사된다. 하지만 그는 통제에서 벗어나 의도와 다르게 태어난 존재란 점에서 불완전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괴리에 의해서 주인공은 혼란을 겪는다. 결국 운명에 대한 부정에서 인정으로 넘어가는 이 서사에서는 운명을 인식하는 수준에서 멈추고, 이를 온전히 수용하는 것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운명의 존재를 인지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갖기 시작하는 데서 멈추는 이 영화의 운명관은 이후 〈듄: 파트2〉에서 발전된다.
〈듄: 파트2〉에서는 운명에 수용적 태도와 거부적 태도의 갈등으로서 수행에 대한 태도가 설명될 수 있다. 주인공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운명에 대해 고민하며 이를 수용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 갈등은 운명에 의해 연결된 두 여성 캐릭터로 표항된다, 수용적 태도는 어머니로서, 거부적 태도는 챠니로서 드러나며 운명에 대한 내적 갈등을 심화한다. 끝내 수용을 택하는 주인공의 자세는 햄릿적 인간을 닮았으며, 운명에 대한 고민은 말 그대로 “to be or not to be”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선택한 수용적 태도는, 퀴사츠 해더락을 낳는 계획된 운명을 바꾸려 했던 자인 어머니로서 상징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거부적 태도를 드러냈던 예지자로서, 예지의 각성제인 ‘진실을 밝혀주는 독약’을 마심으로서 수용적 인간으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운명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흥미롭게 표현한다. 특히, ‘진실을 밝혀주는 독약’을 마시는 것이, 주인공 또한 운명에 대한 수용적 태도를 견지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각성제로 인한 운명의 수용을 시각적, 서사적으로 짜임새 있게 표현한다. 게다가 수용적 태도를 상징하는 그녀는 선택 주체인 주인공의 어머니로서, 애인보다 더 강력한 운명이라 할 수도 있을 혈연으로 연결된 자라는 점에서도 수용적 수행의 상징으로서의 흥미로운 점을 지닌다.
어머니의 운명에 대한 태도의 변화는 챠니와 겹쳐 보이며, 마치 챠니 또한 이러한 변화를 겪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야기한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는 챠니가 운명에 대한 거부적 수행을 결심하는 장면에서 영화를 마침으로서, 새로운 태도의 가능성을 남기고, 운명에 대한 수용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님을 밝힌다. 소설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챠니에게 많은 역할을 부여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괄목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 편의 영화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드니 빌뇌브의 운명 수행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컨택트〉와 《듄》 시리즈 사이의 시간 간격이 있었따는 점과 〈듄〉과 〈듄: 파트2〉는 함께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즉, 운명에 대한 행위적 수행에서 의도적 수행으로의 변화는 그의 운명관의 변화로서 이해할 수 있는 반면, 메시아적 수행과 상반된 수행은 연관지어 이해해야 한다.
《듄》 시리즈에서의 〈듄〉과 〈듄: 파트2〉 서사적, 주제적 측면에서 분석했을 때, 〈듄〉은 〈듄: 파트2〉를 위한 준비 단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드니 빌뇌브의 운명관은 메시아적 태도를 통해 운명 수행에서의 의도 개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햄릿적 태도를 통해 상반된 수행의 포용으로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운명 그 자체도 ‘절대로 변화할 수 없는 것’에서, ‘변화 가능성이 극도로 낮은, 하지만 변화할 수도 있는 것’으로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드니 빌뇌브의 운명론에서 자유의지 개입의 여지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컨택트〉에서 《듄》 시리즈로 넘어오며, 백인 서사 비틀기가 강화되었음을 확인함으로서도 알 수 있다. 백인,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 외부인, 여성 중심의 서사를 강화하는 것은 그의 영화 전반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주로 소설보다 남성 인물의 비중이 줄고, 여성 인물의 비중이 늘어났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외계인의 언어를 습득하고, 원주민의 문화를 습득한다는 점에서 식민지 강탈의 서사와 백인에 의한 원주민 구원 서사를 해체하고 소통과 화합의 서사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컨택트〉에서는 외계의 언어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외계어와 인간어 사이의 약화된 우열관계가 묘사되고, 상호 간의 문화 공유이기보다는 선물주기식의 일방적인 공유에 그친다는 점에서 운명에 대한 단편적인 측면만을 보여준다는 한계가 발생한다. 반면 《듄》 시리즈에서는, 한편에서 프레멘과의 상호작용에서 단순히 언어 공유를 넘어 그들의 지역에서 생활하고 문화에 융화된다는 점에서 비튼 서사를 보여주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결국 백인 남성 메시아와 그를 추종하는 원주민의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그리고 그 신념 또한 백인에 의해 주입된 신념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백인 중심의 서사를 함께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다 복합적인 운명관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를 수용하는 주인공과 거부하는 챠니를 통해 백인 남성 중심 서사와 운명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렇기에 드니 빌뇌브는 〈컨택트〉에서는 자유의지를 수용의 측면에서만 다룬 것을 넘어, 《듄》 시리즈에서는 메시아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등 거부의 측면에서도 운명의 수행을 탐구한다.
이처럼 드니 빌뇌브는 두 편의 공상과학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를 통해, 자신의 운명론을 드러냈다. 그는 예지된 미래를 수행하는 수행자로서의 역할을 살피며, 개인의 자유의지를 깊이 있게 이야기했다. 예정된 것 속에서, 예정된 것을 기꺼이 해내기도 하고, 예정되지 못한 것을 열렬히 해내기도 하며, 운명을 수용하든 그렇지 않든 기꺼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는 인물을 통해, 그는 운명 속에서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성립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렇기에 그의 운명론은 공허하지 않고 투쟁적이며 적극적이다. 살아있는 자들의 살아있는 운명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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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4주 차, OTT 종료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OTT를 구독해도 항상 어떤 영화를 볼 지 고르는 데만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시는 분들 있으신가요?
그럴 때 저는 종료예정작 중에 마음에 드는 영화를 보고 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이번 주에 꼭 봐야만 하는 종료 예정작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6월 4주 차 종료예정작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내 이름은 아닌아
06.22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내 이름으로 놀리는 친구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다.
하필 교장 선생님이 나타나 우릴 데려갔고, 신비한 봉투를 나눠주며 절대 열어보지 말고
일주일 후에 그대로 가져오라는 벌을 주는데...
cine pick!
동화가 원작인 이 영화는 동화책 속 나올법한 캐릭터 디자인으로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나의 어머니
06.24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엄마와의 이별을 앞두고 가족도, 일도, 사랑도 마음처럼 쉽지 않은 영화감독 마르게리타와
그녀의 곁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를 우아한 유머와 담담한 슬픔으로 담아낸 드라마
cine pick!
제 68회 칸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수상 후 15분 간의 기립 박수를 받은 작품.
난니 모레티 감독의 어머니와의 추억에서 출발한 영화 <나의 어미니>는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더 테이블
06.24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나의 카페, 하나의 테이블에 하루 동안 머물다 간 네 개의 인연을 통해 동시대의
사랑과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비추는 작품
cine pick!
매력적인 연기를 펼치는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 배우와
감성 비주얼리스트 김종관 감독이 만나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전석 매진이 됐으며,
제 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5초만에 매진이 되었다.
몬스터 헌터
06.23
넷플릭스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사라진 부대원을 찾기 위해 파견된 지상 최고의 군인 아르테미스 대위가 목숨을 위협하는
강력한 거대 몬스터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펼치는 사투를 그린 생존 액션
cine pick!
영화는 전 세계 6,000만 장 이상 판매된 게임 [몬스터 헌] 시리즈를 영화한 작품이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폴 앤더슨 감독 X 배우 밀라 요보비치 X MCU 참여 시각 효과팀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은 영화이다.
인비저블 사인
06.24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아빠가 삶의 의욕을 잃는 이름 모를 병에 걸리자 딸 모나도 그를 따라 삶의 의욕을 버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유일하게 수학만큼은 흥미를 버리지 못한 모나는 초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된다.
cine pick!
LA 타임즈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보이지 않는 사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성장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따듯한 영화이며, 긍정적인 기운을 샘솟게 만든다.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06.24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친밀한 인간관계를 피하며 살아온 호주 시골 마을의 택시운전사 렉스는
어느 날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존엄사 허용법이 통과된 다윈까지
3,000km의 여정을 떠난다.
cine pick!
여운이 오래 남으며, 인생에 대한 고찰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나며 유수의 영화제에서 왜 호평을 받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화장실의 피에타
06.25
왓챠 종료 예정작
ⓒ 네이버 영화
synopsis
화가에 대한 꿈을 포기한 히로시는 고층 건물의 창문을 닦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삶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생의 마지막 여름에 고등학생 마이를 만난다.
cine pick!
제 39회 일본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와 함께 마츠나가 다이시 감독의 연출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다.
마지막 엔딩곡까지 울림을 남기는 영화이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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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 오브 더 데드: 도둑들> 톱니바퀴에 깃든 낭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뛰어난 금고털이 실력을 지니고도 평범한 은행원으로 살아가던 '루트비히 디터(마치아스 슈바이크회퍼)'. 그런 그의 앞에 어느 날 그의 실력을 증명해보라는 의문의 메시지가 온다. 메시지 속 주소를 찾아간 디터는 우연히 금고털이 대회에 참여하고, 유감없이 자신의 실력을 선보인다. 이에 몰래 디터를 관찰하던 '그웬(내털리 이매뉴얼)'은 그에게 접근해 전설로만 전해지던 네 개의 금고를 터는 범죄에 합류해달라고 요청하고, 기계적인 삶에 지칠 대로 지친 디터는 새로운 모험을 약속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디터는 그웬을 비롯한 팀원 '브래드(스튜어트 마틴), '코리나(루비 O. 페)', '롤프(거스 칸)'와 함께 좀비 아포칼립스가 시작되는 틈을 타 전설이 될 은행털이에 나선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첫 넷플릭스 작품인 <아미 오브 더 데드>는 공개 후 호불호가 강하게 갈렸던 작품이었다. 좀비 영화나 블록버스터에게서 기대하는 서스펜스나 액션의 비중은 적었던 반면, 딸의 죽음을 계기로 감독 본인의 삶을 반추하는 듯한 고백록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미 오브 더 데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해서라도 딸을 살리고자 하는 부성애에 주목했다.
또한 그 논의를 확장시켜 사회적 차원에서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사회비판적 시각도 보여줬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법한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를 '제우스'라는 신의 이름을 빌린 좀비에게 넘기거나 기껏 훔쳐낸 달러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잭 스나이더 감독의 아이디어에 동의한다면 <아미 오브 더 데드>는 나름대로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그렇지 않다면 상업 영화로서의 매력을 갖추지 못한 채 실패한 낯선 작품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인상은 <아미 오브 더 데드>의 프리퀄이자 잭 스나이더가 각본과 제작을 맡은 신작 <아미 오브 더 데드: 도둑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전작에서 열쇠공이자 금고털이범으로 등장했던 루트비히 디터의 이야기를 다룬 <아미 오브 더 데드: 도둑들>은 금고, 신화, 그리고 낭만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통해 <아미 오브 더 데드>의 콘셉트를 충실히 따라간다. 우선 영화의 중심 소재이자 루트비히 일생의 목표인 금고는 루트비히의 삶을 비유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을 지키고 관리하는 것이 금고의 역할이듯이 은행원인 디터 역시 철저히 금고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특히 규칙적인 톱니바퀴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금고처럼 그의 삶도 철저히 기계적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이 비유는 의미심장하다.
디터는 금고의 잠금장치를 여는 일을 가장 좋아하며, 그의 꿈은 전설로만 전해지는 네 개의 금고를 자신의 손으로 여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관심사를 담은 유튜브의 조회수는 0이고, 유튜브 밖의 세상에서 그는 매일 아침 똑같은 커피와 빵을 먹고,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삶을 살아간다. 마치 <모던 타임스>에서 컨베이어 벨트 속을 돌아다니던 찰리 채플린이 그러했듯이, 디터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하나의 부품이 되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원으로서 돈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는데도 자신의 업무나 삶에서 아무러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디터의 모습을 보면 작중 금고가 돈의 무가치성, 무의미함을 보여주며 현대 사회에 대해 통렬히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줬던 전작의 의미를 온전히 이어가는 키워드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창구에 앉아 있는 그가 창구 앞에서 빨리 돈을 달라며 극도로 흥분한 할머니 고객과 뉴스 속보에서 피와 살을 탐하는 좀비의 모습을 겹쳐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금고는 그 존재 자체로 이 작품이 전작처럼 신화적인 구성과 내용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 힌트는 금고의 이름에 있다. 작중 등장하는 네 개의 금고는 각각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속 네 막의 제목인 라인골트(Das Rheingold), 발퀴레(Die Walküre), 지크프리트(Siegfried), 괴터데머룽(Götterdämmerung)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영화는 이 금고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특히 각 금고를 해체하기 전후로 오페라 내용이나 모티브와 유사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예를 들어 라인골트에서는 니벨룽겐의 반지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훔친 알베리히를 디터가 자신과 일치시킨다거나, 발퀴리에서는 지그문트와 지클린데를 연상시키는 디터와 그웬의 로맨스가 본격화되는 식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의 형식에서도 신화적인 모티브를 확인할 수 있다. 전설적인 네 개의 금고를 만든 장인 한스 바그너의 이야기를 '옛날 옛적에 뮌헨이라 불리는 아주 먼 곳에(once upon a time, in a farsaway land called Munich)'로 시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문구는 현대의 신화라 불리는 <스타워즈>의 상징과도 같은 오프닝 타이틀 '오래전 멀고 먼 은하계에(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를 연상시킨다.
이에 더해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를 잡아서 항상 꿈꿔오던 모험에 나서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 곧 은행원이 아닌 금고털이로 거듭나는 디터의 서사는 신화적 이야기의 전형에 충실하다. 이는 전작에서 좀비 영화의 서스펜스나 볼거리 대신 아버지와 딸의 가족사에 더 집중했던 것처럼 돈을 두고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하이스트 장르의 쾌감 대신 다른 것에 주목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바로 기계처럼 살아가던 한 개인이 삶의 의미를 찾고, 진짜 살아있는 인생을 누리는 낭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그웬의 등장을 기점으로 영화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우연으로 시작해서 운명적인 로맨스로 발전하는 디터와 그웬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 역시 낭만으로 가득한 꿈과 모험이기 때문이다. 결코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둘은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더 가슴 뛰고 흥분되는 미래를 기대하며, 그런 그들에게 금고 속에 들어있는 거액의 돈은 단지 전설로 여겨지던 금고를 실제로 여는데 성공했다는 증표에 불과하다. 이처럼 돈보다 인생의 목적을 쫓는 연인의 이야기는 돈을 매개로 그웬과 관계를 맺어왔던 브래드의 삶과 대비를 이루면서 더욱 가치 있게 빛난다.
또한 낭만이라는 키워드는 디터의 금고털이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이제 그에게 금고털이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오랫동안 고대했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동시에 기계처럼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일깨우는 쾌감을 맛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디터 본인이 금고 잠금장치나 다름없던 인생에서 깨어나듯이, 금고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자본주의의 방패막이었던 금고는 디터가 떠나는 낭만적인 모험의 일부이자 목적으로 의미가 달라진다. 영화는 이러한 변화를 바그너의 오페라 음악을 통해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디터는 항상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인 바그너의 오페라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하는데, 이 대목이 마치 그웬이 자신의 삶에 새로운 모험과 낭만을 불어넣었듯이 디터도 굳게 닫힌 금고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렇게 현실보다 이상과 꿈을 좇는 낭만으로 가득한 디터의 이야기를 그가 전편에서 처음 등장한 장면과 연결시킨다. 즉, 그의 이야기는 네 개의 금고 중 유일하게 만나지 못했던 마지막 금고인 괴터데머룽을 만나고 그의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때 금고의 이름이 '신들의 황혼'이라는 의미라는 점을 생각하면 오로지 인생의 마지막 목표를 이루기 위해 좀비들이 가득한 도시로 향하는 그의 모습은 더욱 인상적이다. 세상이 멸망할 것을 알고도 그 황혼의 아름다움을 장식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북유럽 신화 속 신들이나 영웅들처럼 그의 모험에도 낭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저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루트비히의 디터의 삶은 신화의 정서가 함축적으로 응축된 이야기로 끝난다.
문제는 전작의 콘셉트만큼이나 똑같이 이어받은 단점으로 인해 잭 스나이더가 보여주고자 한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인생의 모습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전작에서 좀비 영화의 매력을 살리는 대신 그 틀만 빌려왔듯이 이번에도 하이스트 영화라는 장르의 틀만 빌릴 결과 장르 영화, 상업 영화로서의 매력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일례로 다른 하이스트 영화들의 존재를 직접 언급하며 쿨한 척하는 대사는 그들이 언급한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형화된 캐릭터들의 존재 때문에 그다지 효력이 없다.
또한 범죄 계획을 설명함과 동시에 해당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편집의 경우, 이미 숱하게 사용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가이 리치 감독의 작품처럼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지도 못한다. 인터폴과 그웬 일행 사이의 악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쫓고 쫓긴다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추격전에서도 그다지 긴장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워낙 분량이나 비중이 그웬과 루트비히한테 쏠려 있다 보니 이들의 대립, 긴장, 갈등이 설 자리가 없다.
이에 더해 시리즈라는 관점에서도 성공적인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속편까지 제작 진행 중인 <아미 오브 더 데드> 세계관은 엄연히 좀비 영화 시리즈물이다. 문제는 그 특징이 이번 작품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좀비의 존재가 뉴스를 통해 등장하고 영화 전개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치기는 하나, 디터의 악몽과 같은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좀비는 그저 배경 설정, 상황 설정을 위해 도구적으로 활용되는 데 그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전편과 연동되는 대목들이 등장하고 디터의 관점에서 보면 새롭게 느껴질 장면이나 대사들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미 본편의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상황에서 이들이 프리퀄의 장점이 되거나 필요성을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분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 결과 <아미 오브 더 데드: 도둑들>은 본편의 장단점을 쏙 빼닮았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에 계속 애정을 갖고 남아있을지, 아니면 큰 기대와 미련 없이 시리즈에서 하차할지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나 다름없어 보인다.
P(Poor, 형편없음)
스케일이 작아진 것만 빼면 본편의 장단점, 메시지와 주제의식까지도 쏙 빼닮은 프리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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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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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받는다면 그건 굉장히 운이 좋은 일이다.
마이클 샌델도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그렇게 말한다.
반대로,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해서 인간답게 살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공정하지 못함에 분노하지만, 만약 그 불공정이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운이 좋았다며 겸양의 미덕을 보일지도 모른다.
40년 동안 목수로 일해온 댄은 누구보다 열심히 산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열심히 한 만큼의 대가가 돌아온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치매를 오래 앓은 아내의 병원비를 대느라 돈이 하나도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장병 때문에 일을 더 할 수도 없다.
이제 나라의 복지에 기대야 할 상황이다. 의사는 질병수당을 신청하라고 했지만 반려되었다.
질병수당 대신 실업수당을 신청하려고 했으나 40년 동안 나무만 만진 사람이 갑자기 컴퓨터로 문서를 제출하기는 쉽지 않다.
전화로 물어보고 싶은데 대기 시간만 50분. 대기 중에도 요금은 책정된다.
구직활동은 건강 문제로 불가하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적극 활용하라는 정부의 지침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업수당도 못 받는다.
옆집 청년은 중국산 나이키 신발을 되팔아서 돈을 번다. 젊은 사람은 저런 식으로도 돈을 버는데 댄에게는 복지 수당을 받는 것조차 너무 버겁다.
집에 있는 가구들을 하나씩 팔아가며 그나마 버티고 있다.
구직을 해야 하지만 약속 시간에 늦었다는 이유로 상담이 거절된 케이티는 두 자녀를 데리고 이민온 미혼모다.
케이티와 그의 아이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도 갖추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겨우 얻은 집은 촛불로 난방해야 할 정도로 형편 없고,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아이들에게 줘야 할 통조림을 먹고 죄책감에 오열할 정도로 먹을 게 없다.
센터에서 댄을 만난 이후 댄에게 조금씩 도움을 받는다. 40년 경력의 목수 댄은 집도 척척 고쳐주고 아이들에게 장난감도 만들어준다.
한편, 당국의 부당한 대우와 부조리한 복지 제도에 분노한 댄은 다 필요없다며 질병수당 명단에서 자신을 제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고는 건물 밖 담벼락에 페인트로 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댄의 그래피티 퍼포먼스에 사람들은 환호하지만 어쨌든 범법이므로 댄은 연행된다.
이후 집 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있는 댄에게 케이티가 찾아온다.
도움을 받았으니 댄을 돕겠다는 것. 법과 제도가 할 수 없는 일을 인간은 한다.
케이티는 결국 구직도 하지 못하고, 밑창이 떨어진 운동화를 신는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는 아이들 때문에 성매매에 뛰어든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핼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을 함부로 비난할 수 없다.
사실 기회마저도 운이다. 기회가 있는데 왜 잡지를 못하냐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기회가 온다고 다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앞뒤상황 맥락없이 비난하는 건 또 얼마나 쉬운가.
댄은 케이티를 어둠 속에서 끌고 나온다.
케이티는 댄의 질병수당 심사 항고에 동행한다. 질병수당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이야기를 가장 비극적으로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가. 주인공이 성공을 눈앞에 두고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것이다.
댄은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죽는다.
케이티는 그가 심사에서 낭독하려고 했던 선언문을 결국 그의 장례식에서 읽는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니엘 블레이크의 죽음 이후로 바뀐 것이 있을까. 당사자의 죽음으로 항고는 기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이후, 케이티의 삶이 조금은 나아졌기를, 댄과 비슷한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 복지 혜택을 받기가 조금은 편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선별적 복지제도는 복지를 받아야 할 사람이 내가 얼마나 불쌍한지 증명해야 하고, 증명하지 못하면 자격을 박탈당하기 마련이다.
내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잘 설명해야만 혜택을 받는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젊었을 때 돈 좀 벌지. 남들 돈 벌 때 뭐 했냐', '노력을 안 하니까 저렇게 사는 거다', 또는 '난 저렇게 살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만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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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없는 사람에게, 컴퓨터 못 만지는 사람에게 너무도 가혹한 세상이다.
마르크스가 노동과 자본에서 인간의 소외를 말한 지가 벌써 200년이 다 되어 간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간소외는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코 앞에 있다.
모든 것을 돈으로 보는 세상이 숨막힌다. 모든 가치의 척도가 돈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인간성을 잃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매년 겨울마다 생각한다. 길거리에 노숙자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재기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해서 겨울에 얼어 죽어야 할 이유는 없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선별적으로 급식 카드에 돈을 받고, 돈까스 하나 먹었다고 비난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우생학이 따로 있는가. 예전에는 종의 개량이었다면, 이제는 돈을 잘 버는 인간만 살아남아라, 하게 된 것뿐이다.
아무튼 이 영화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마지막 문장을 떠올려 본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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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정과 열정 사이
냉정과 열정 사이.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진실이 사랑했던 두 사람, 결별 이후 남자는 이탈리아 유학에 오르게 된다.
어느날 우연히 이탈리아에서 전애인을 발견한 남자는 그 여자에게 연락을 취해 다시 만나게 되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일본에 와서도 계속 생각나는 그녀, 남자는 용기를 내 그녀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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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특유의 감성이 나랑 맞지 않는달까.
90년대 ~00년대 초반까지의 일본 영화 특유의 필름질감과 분위기는 그 어떤 다른나라 영화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어서 좋지만서도,
영화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들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선과 행동 그리고 혐오때문에 가끔은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도 그렇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피렌체와 밀라노를 보여주지만,
막상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다.
'주인공들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들만의 고고한 사랑을 위해 다른사람의 사랑과 진심 그리고 인격까지 무시하는 연출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조성한다.
여주인공이 현재의 남자친구를 대하는 방식도 옳지 않지만,
나는 남주인공 준세이가 자신의 여자친구 메미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싫었다.
위에서 나는 '여자친구'라고 언급하였지만,
그녀가 그의 여자친구가 맞긴 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그녀는 그에게 그저 성적대상일뿐 제대로 된 인격체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는 그녀의 열렬한 사랑에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하지않으면서 그녀와 같이 살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는 그에게 그저 성적욕구해소를 위한 도구가 아니었을까?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내가 너무 공격적이고 과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 극중 준세이는 그런 사람이다.
그녀가 울면서 나를 사랑하긴하는거냐고 소리칠 때, 그는 꿈쩍도 안하고 자기는 아오이를 더 사랑한다며 떠날때, 준세이가 정말 끔찍해보였다.
메미를 단 한번도 존중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준세이와 아오이의 '사랑' 이야기를 보니 달갑지 않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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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가 이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전부이다.
이 영화의 인상 깊은 부분은,
아오이와 준세이의 예의 없는 사랑과
극중 배경인 피렌체와 밀라노의 아름다움
그리고 사운드트랙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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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소설 원작인데 왜 불편하다고 중얼됨?"
이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일본 소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더 물으신다면...
할 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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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유일하게 좋았던 점은
영화보면서 피렌체, 밀라노 여행갔던게 생각나서 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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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 투 헤븐> 그들이 유품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그루(탕준상)'는 모든 유품에는 생전의 삶이 깃들어 있으며, 따라서 작은 흔적도 세심히 챙겨야 한다는 아버지 '정우(지진희)'의 교훈을 실천에 옮기며 아버지와 함께 유품 정리 업체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사망하고, 그루 앞에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삼촌 '상구(이제훈)'가 법적 후견인으로 등장한다. 정식 후견인이 되기 위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 상구는 본래 직업을 숨긴 채 그루와 함께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겠다고 나서고, 이에 그루는 새롭게 만난 삼촌 상구, 평생을 함께한 절친 '나무(홍승희)와 함께 고인의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한다.
의학 혹은 법정 드라마의 서사에는 두 개의 축이 존재한다. 주인공의 개인적인 서사와 환자 혹은 의뢰인(혹은 범인)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주인공들은 새로운 환자를 치료하거나 의뢰인 혹은 범인의 사건을 해결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비밀을 깨닫거나 인생을 관통하는 교훈을 배우면서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 드라마와 법정 드라마의 완성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새롭게 등장하고 또 퇴장하는 외부인의 이야기에 달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는 비록 의학 드라마와 법정 드라마, 두 장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엄연히 같은 본질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그루와 상구가 죽은 이들이 미처 전하지 마지막 메시지를 대신 전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만큼, 주인공들의 이야기 못지않게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고인들의 삶에 더 눈길이 가고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공장에서 사고사 당한 대학생을 비추며 시작되는 드라마는 뒤이어 노모와 절연한 아들, 스토킹 피해 여성, 퇴직한 노부부, 동성애자 커플, 미국 입양아 등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다양한 죽음을 보여준다.
특히 각각의 죽음이 한국 사회에서 공론화가 된 후로도 여전히 해결이 요원한 이슈를 담고 있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더욱 흡입력이 강하고, 가슴 아프다. 당장 비정규직의 산업재해는 본래 의도에서 적잖이 후퇴한 채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안을, 스토킹범에게 살해당한 유치원 교사는 올해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가해자 처벌에 비해 피해자 보호에는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은 스토킹 처벌법을 둘러싼 논쟁을 연상시킨다. 이에 더해 십수 년 전에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에서도 심금을 울리는 소재로 등장했지만 여전히 관심을 필요로 하는 국외 입양아 문제, 동성애 커플의 이별에 담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급변하는 가운데 당장 눈 앞에 닥친 노인 문제 등도 마찬가지다.
이때 작중 단편적이고 분리되어 있는 듯한 일련의 죽음들을 잘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모두는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한 기준선을 충족시키지 못한 실패자 내지는 사회가 규정한 경계에서 제외된 소외자의 삶을 공유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난 몇십 년간 한국 사회의 거시적 목표이자 과업이었고 동시에 현재 한국 사회를 지탱해 온 두 축인 산업화와 민주화 신화에 속하지 않았던 이들의 삶을 드라마는 녹여낸다.
드라마의 시작을 맡은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 늙은 어머니를 외면한 아들의 회한,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퇴직한 후 아파트 경비원이 되어 갑질의 피해를 온몸으로 떠안은 할아버지의 말년은 산업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람을 공장 기계와 같은 도구로 여기고, 인륜보다도 눈에 보이는 현금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동등한 사람을 서열과 계급으로 나뉘어 차별하는 잘못된 인식, 가치관, 관행을 꼬집는다. 한편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성취했으나, 생활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정립되지 못한 한국 사회의 한계를 비판한다. 동성애부터 입양아, 스토킹 피해에 이르기까지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라는 이유로, 또 약하다는 이유로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수없이 차별과 피해를 경험한 가운데 과연 실질적으로 다양한 삶과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생활로서의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의 배경은 두 주인공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상구가 형과 가족을 등지고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며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다. 그는 이윤만을 바라보는, 사람을 비롯해 책정할 수 없는 가치마저도 돈과 숫자로 치환시켜온 사회와 가정이 낳은 또 한 명의 피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그루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면서도 친구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당당히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동시에 입양아이면서도 아버지의 큰 사랑 속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상구와 남부럽지 않은 가족을 이루어 나간다. 이렇게 드라마는 그루의 삶을 통해 목적지향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삶을 요구하던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를 제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무브 투 헤븐>이 말하는 메시지는 사회적 기준선에 속하지 못해 소외된 주인공 그루와 상구의 직업이 유품 정리사이기에 더욱 풍성해진다. 작중 그루와 상구가 하는 일은 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의 작업은 오염된 장소를 청결하게 탈바꿈시키는 일이다. 달리 말해 오염과 청결을 가르는 기준선을 해체하고 다시 긋는 것이 본질이다. 또한 그들은 삶과 죽음의 마지막 기준선을 지키는 이들이자, 고인의 흔적을 마지막으로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를 읽어내고 전달하면서 삶과 죽음의 기준선을 일시적으로 넘을 수 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특정 경계선을 넘나들 수 있는 유품 정리사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오염과 청결의 범주가 단지 위생의 측면이 아니라 도덕과 사회 질서, 체계의 근원을 이루었다는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그녀는 특정 영역의 경계나 기준을 상징하는 존재들, 특히 특정 존재의 오염 혹은 청결 여부는 문화적 분류와 사회 질서의 가장 기초가 된다고 파악했다. 경계 밖에 위치한 것으로 상정되는 존재들을 더럽고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는 과정을 통해서 기준선 안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사회 질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통합된다고 본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무언가 더럽고 불결하다고 인식되는 것을 정리 정돈하거나 청소하면서 청결과 더러움의 기준선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것이 넓게는 사회 질서의 범주와 영역, 경계까지도 바꾸는 함의를 포함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사망한 이들의 공간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루와 상구의 작업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분위기, 인식, 제도의 변화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이들은 혈흔과 체액, 벌레와 쓰레기들로 더럽혀진 장소를 깨끗하게 만듦과 동시에 일원화된 기준선을 맞추지 못해 사회로부터 배척받고 낙오된 개개인들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투영하면서 보듬어 안는다. 그렇게 상구와 그루는 주변 주민들로부터 더럽고 불결한 일을 한다고 손가락질받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의뢰받은 공간을 청결의 영역으로 다시 옮겨 놓는 것에 정성껏 최선을 다한다.
사실 <무브 투 헤븐>의 구성이 의학 드라마나 법정 드라마와 유사하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아주 새롭고 기발하면서 재치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못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브 투 헤븐>이 넷플릭스에서 공개 직후부터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은, 지나치기 아까울 만큼 뭉클하고 따뜻한 휴먼 드라마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는 유품정리사만이 경험할 수 있는 온갖 착잡한 사연들을 차분히 제시하고, 더 나아가 다양한 사람들의 진정성을 모자이크를 채워 나가듯이 전달하며 우리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룬 단단한 이야기의 힘이다.
A(Acceptable, 무난함)
유언을 남긴 이와 유언을 들으려는 이의 진심이 한데 모여 그려낸 희망의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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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이발사#송강호#419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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