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6-04 16:02:40
미쳐야만 알 수 있는 본질, 그 끝에서 무너지다
영화 <스파이의 아내>
애국은 무엇일까. 애국(愛國) : 자신이 속한 국가를 사랑하는 것, 이는 사전적 의미로서 국가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포괄적 해석이 가능한 애국이라는 단어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가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이 영화에서의 애국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 애국이 주는 어떤 영향까지도 세세하게 바라보면 더 곱씹으며 볼 수 있다. 한 국가의 공(功)과 과오(過誤)는 어떤 나라에도, 어떤 시대에도 존재한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제국주의는 세상을 덮었다. 모두에게 강요된 체제임에도 누군가는 순응하며 살았고 또 누군가는 체제에서 맞서고 있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모두가 바란 일이 아니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륙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마주하게 된 유사쿠와 후미오는 지금의 삶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국가와 맞서게 되면서 이 영화의 본격적인 내용이 스파이의 ‘아내’인 사토코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유사쿠가 행하는 애국의 과정에서 사토코는 사소한 오해를 갖게 된다. 거짓말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선택했던 유사쿠의 행동에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졌던 가토 코는 사람 자체에 믿음을 가지며 믿음의 뿌리를 어렵사리 내린다. 사회 전반에 깔린 감시는 사회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도 의심을 뻗치게 했다. 사회가 만든 감시와 침묵, 그 침묵의 대가는 방관이 되어 신뢰보다는 불신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침묵은 그의 편안한 삶을 위한 거짓말이 된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지금 일본의 모습이 이때 정착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깥세상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투명창과 체스판의 말처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사건의 참혹함을 목격해도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른 걸까?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꽤 극단적으로 표현된다. 자국을 위해 무한의 충성을 행하는 이들과 진실을 위해 행동하는 이들이 비친다. 하지만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치우치지 않는 사토코와 같은 사람은 그 안에서도 길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쉽지 않은 일들이 빠르지도 않게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진다. 패망과 체제의 무너짐 앞에서 슬픔 속의 기쁨이 소용돌이 침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만큼은 놓지 않는다.
“난 절대 미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편으로 난 미친 거예요. 적어도 이 나라에서 만큼은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각본으로 구로사와 기요시가 연출한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인해 장소에 대한 한계는 있었으나 영화 특유의 잔잔함과 일본의 과거사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자국의 모습을 색채 가득한 모습으로 미화하기보다는 스파이의 ‘아내’의 모습으로 투영하는 영화의 표현이 매력적이었다. 외부의 변수로 생략된 부분들이 아쉽게 느껴졌는데, 사회적 제약을 받지 않았다면 어떤 영화가 탄생했을까. 일본이 행했던 전쟁의 참혹함이 주변의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지금의 일본은 어떤 모습인지도 동시에 비추면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시원하게 드러낼 그때를 기대해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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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 예보보다 부정확한 인생 예보
"제75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최고작품상) 수상작인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 언론/배급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미 영화 <더 스퀘어>로 2017년 제70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적 있는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블랙 코미디 <슬픔의 삼각형>은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계급 피라미드를 소재로 삼은 난장판 코미디입니다. 예상을 빗나가기 일쑤인 통제 불가능한 인생에 대한 알레고리이자 극단적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사회심리학 실험 같기도 합니다."
[슬픔의 삼각형] 일기 예보보다 부정확한 인생 예보
외출하기 전 창밖을 내다보니 해가 쨍쨍하다. '또 당할 수 없지.' AI 스피커에게 오늘 날씨를 물어본다. "최저 기온은 12도, 최고 기온은 24도, 오후 8시에 비 예보가 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오후 6시쯤이면 집에 돌아와서 간밤에 다 보지 못한 스티븐 연, 앨리 웡 주연의 <성난 사람들(BEEF)>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래, 귀찮으니까 우산은 안 챙긴다.'
오후 5시,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출발하려는데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이런, 쌰... 이러니 내가 성이 나? 안 나?'
누구나 일기 예보가 틀려서 난감했던 적이 있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 '구루'와 '마루'가 정교한 예보모델을 활용해 정말 열심히 계산해도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기후 위기 시대이기 때문에 앞으로 정확도는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누구나 인생 예보가 틀려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일일 생활계획표를 지킨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정오부터 1시까지인 점심시간 이후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수학 공부를 할 시간이다. 1시 5분, 겨우 책상에 앉았더니 친구가 전화한다. "PC방 가자" 한여름의 PC방은 엄마와 달리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주는 지상 낙원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방학 동안 푼 수학 문제보다 게임에서 획득한 아이템의 수가 훨씬 더 많아졌다. 계획대로였다면 2학기에 수학 성적은 90점을 넘어야 하지만 점수는 하락했다.
그뿐인가? 열과 성을 다해 아끼고 사랑했던 애인은 느닷없이 헤어지자고 한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별의 원인을 모르겠다. 사실 상대방은 수개월 전부터 꾸준히 이별 신호를 송출하고 있었다. 내가 애써 모른 척하고 무시했을 뿐. 뒤늦은 깨달음을 장문의 메시지로 전해 보지만 카톡의 숫자 '1'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홀로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던 행복한 가족사진은 무참히 분쇄되고 만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은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계급 피라미드를 소재로 삼은 난장판 코미디다. 예상을 빗나가기 일쑤인 통제 불가능한 인생에 대한 알레고리이자 극단적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사회심리학 실험 같기도 하다. 젊고 건강한 육체적 매력으로 무장한 패션모델 겸 인플루언서 커플 '칼(해리스 딕킨슨)'과 '야야(故 찰비 딘 크릭)'. 두 사람은 늙고 돈 많은 사람들이 승객의 대다수인 초호화 요트에 초대된다. 고기압이 지배하는 맑은 날씨 속에서 배 위의 손님들은 늘어질 대로 늘어진 채로 먹고 마신다. 자신들이 거액을 지불하고 구매한 사치로운 평화가 영원할 것처럼. 하지만 인생 예보는 일기 예보보다 부정확한 법이다.
괴짜 선장(우디 해럴슨)은 '선장 주최 디너 파티'를 굳이 요트가 저기압대로 진입하는 목요일 저녁에 하자고 우긴다. 폭풍우를 통과하며 요동치는 요트에서 강행된 '선장 주최 디너 파티'는 결국 재앙적 결과를 초래한다. 산해진미와 최고급 술은 멀미약이 아니기 때문에 식사를 하던 승객들은 하나둘 구토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배변도 활발해진다. 정화조까지 역류하는 바람에 번쩍번쩍 빛나던 요트가 순식간에 똥물로 도배된다. 목불인견의 엉망진창 와중에 러시아 자본주의자를 자처하는 "똥팔이" 비료 회사 사장 '디미트리(즐라트코 버릭)'와 미국 공산주의자(선장 본인 주장에 따르자면, 마르크스주의자) 선장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관련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갑작스러운 해적의 공격으로 배는 침몰하고 소수의 인원만 살아남아 외딴섬에서 명줄을 이어간다.
문명의 이기를 활용할 수 없는 원시적인 섬에서 자기 손으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부자들은 일순간 최하계급으로 추락한다. 요트에서 일개 "화장실 매니저(청소부)"였던 '애비게일(돌리 드 레옹)'은 물고기를 잡고 불을 피우는 능력 덕분에 섬에서는 선장이 된다. 계급이 완전히 전복된 것이다. 이후 벌어지는 갖가지 웃긴 상황들은 때로는 실소를 자아내고, 때로는 인간 본성의 가장 밑바닥을 건드리며 급소를 찌른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맨얼굴에서 어쩌면 우리 자신의 얼굴이 겹쳐 보일지도 모르겠다. (끝)
* 5월 9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진행된 <슬픔의 삼각형> 언론/배급시사회에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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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 스프링스> - ‘무의미한 오늘 속에서 찾은 가장 값진 의미’
팜 스프링스 (Palm Springs, 2020)
개봉일 : 2021.08.19 (한국 기준)
감독 : 맥스 바바코우
출연 : 앤디 샘버그, 크리스틴 밀리오티, J.K.시몬스, 피터 갤러거, 메레디스 하그너
‘무의미한 오늘 속에서 찾은 가장 값진 의미’
아마도 올여름, 가장 재기 발랄한 로코물이 아닐까 싶은 영화 <팜 스프링스>.
'타임 루프 로맨스'라는 소재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소재다. 타임 루프 로맨스의 원조 <사랑의 블랙홀>과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어바웃 타임>, <이프 온리>같은 타임 루프 로맨스 영화들이 파스텔 핑크와 같은 색감이라면 <팜 스프링스>는 핫핑크 빛이다. 마냥 얌전하지만은 않은 거침없고 유쾌한 로맨스랄까. 통통 튀는 영화의 색과 무해한 농담들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일이 없다는 듯 여러 모험에 도전하며 마음을 나누는 세라와 나일스의 모습과 이들이 던지는 농담은 보는 이에게 대리 만족과 가벼운 웃음을 선사한다. 거기에 시원한 풀장 배경과 청량한 색감이 더해져 그들의 파티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듯한 흥겨움은 덤으로 따라온다.
인생 최고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결혼식 날에 갇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날을 살아가고 있는 나일스에게 누군가의 결혼식 날은 더 이상 특별한 날이 아니다. 날이 갈수록 능글능글한 말솜씨와 사람들에게 대처하는 방법은 늘어가지만 잠에서 깨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보니 그는 점차 오늘의 소중함을 잊게 된다. 나일스에게 오늘은 그저 똑같고 의미 없는 반복일 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당연하게 오늘도 역시 어제와 같은 하루일 거라 생각했는데, 사소한 실수로 인해 오늘이 조금 달라진다. 시간이 흐른 건 아니고, 나일스의 하루에 세라가 들어온 것이다. 어쩌다 보니 갇혀버린 같은 시간 속에서 나일스와 세라는 어제의 오늘과는 다른 특별한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하루를 기억해 주는 유일한 사람, 무의미한 오늘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사람. '영원히 반복될 오늘에 갇히더라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 나일스는 오늘을 기대하게 된다.
나일스와 세라는 "이 사람들은 어차피 내일이면 잊을 거야!"라고 외치며 지금껏 해본 적 없는 귀여운 일탈과 과감한 장난을 반복한다. 두렵고 신경쓰이는 게 많았던 현실을 벗어나 모든 걸 예상할 수 있는 '오늘'에 갇히다니.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나에게 해가 될 것도 없고, 모든 게 내 손안에 있는 편안함이 나름 나쁘지 않다. 불안감과 위험 따위가 없는 시간들은 이들에게 안정감을 부여하지만, 이내 결국 사라질 것이 뻔한 오늘에 대한 무력감을 몰고 온다. 당장 무서울 것이 없으니 반복돼도 괜찮겠다 싶었던 하루가 무의미한 것이 되자 이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두려움을 외면하며 영원히 함께 갇혀있어도 괜찮을 것만 같은 사랑을 이대로 지키고 싶은 남자 나일스와 미뤄뒀던 두려움을 다시 마주하며 내 삶을 찾고 싶어 하는 여자 세라. 다른 목표를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닮아있는 운명 같은 두 사람은 이 사랑을, 내 삶을 지켜낼 수 있을까?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하루에서 만난 내 삶의 가장 큰 의미가 된 당신. 이 로맨스의 끝엔 오늘이 있을지 내일이 있을지 궁금하다면 <팜 스프링스>를 추천한다.
팜 스프링스 시놉시스
“오늘은 어제고, 내일도 오늘이에요…”
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될 멋진 결혼식이 열리는 팜스프링스의 리조트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남자 나일스에게 오늘은 100만 번째(?) 결혼식일 뿐이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세라가 나일스의 세상에 개입하면서
똑같았던 하루는 늘 특별한 오늘(!)이 되는데…
진짜 내일 없이 사는, 두 남녀의 썸머 코믹 로맨스가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오늘 기분 어때요?”
“오늘, 내일, 어제 다 똑같죠.”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나는 탈라와 에이브의 결혼식 날. 홀로 결혼식 날에 갇힌 나일스에게 어제, 오늘, 내일은 모두 똑같은 날이다. 나일스는 같은 날을 살아가며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어디서 왔는지와 같은 정보들을 모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의 상황극을 즐긴다. 현실에선 할 수 없는 여친 두고 바람피우기, 동성의 인물들 꼬셔보기, 결혼식 방해하기까지. 지금껏 해본 적 없는 수많은 일탈들은 처음엔 즐거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루하고 무의미한 행위로 변한다. 거기에 점점 더 사라져가는 ‘나 자신’에 대한 기억들. 나일스는 타임루프 속에서 나를 잃고 조금씩 지쳐간다.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라와의 하루를 시도하던 날 밤, 세라가 나일스를 따라 타임 루프에 들어온다. 신부 탈라의 언니인 세라는 결혼식에서도 온갖 눈치를 보고 있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실패한 결혼과 순간의 판단 미스로 저질러버린 신랑 에이브와의 하룻밤. 이 행복한 결혼식에서 죄책감과 눈치에 맘 편하게 웃지 못하고 술을 잔뜩 들이켜고 있던 세라에게 타임 루프는 안전한 도피처다. 세라도 역시 나일스처럼 처음엔 어떤 사고를 쳐도 깔끔하게 사라져버릴 오늘을 마음껏 즐긴다. 오늘의 실수를 책임질 내일이 없으니 사고도 마음껏 쳐보고 이런 일 저런 일에 뛰어들어본다. 그리고 어딘가 나와 닮은 나일스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나일스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쳤다는 걸 알 게된 후 나일스와 거리를 두고 형체 없이 반복되는 하루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오늘의 내 실수와 어제의 후회를 책임질 필요 없는 타임 루프는 분명 안전한 도피처다. 실수에 대한 책임도 그에 대한 죄책감도 어차피 내일이면 없는 일이 될 하루. 하지만 다른 이들은 오늘 나의 실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타임 루프에 갇힌 나는 나의 실수와 후회를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나일스는 타임 루프 속에서도 타인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실수와 후회이기에 그것을 꼭 되돌릴 필요는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의 실수를 되돌리거나 변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내일이, 새로운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 인생을 되찾아야겠어요"
우리는 보통 지난 실수와 후회를 떠올리며 다시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어제보다 한 뼘 더 성장한다. 하지만 타임 루프 속에선 이러한 성장을 이뤄야 할 이유도 이룰만한 기회도 없다. 세라는 타임 루프에 빠진 후 매일 아침 에이브의 침실에서 눈을 뜬다. 세라는 처음엔 그저 타임 루프가 선사하는 자유를 즐기기 바빴지만 나일스의 거짓말을 듣게 된 후 타임 루프를 방패 삼아 거짓말을 하거나 실수를 모르는체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현실로 돌아가면 분명 전처럼 눈치 보는 날이 반복될 테고, 어쩌면 결혼식 전날에 저질러버린 실수를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무의미한 하루를 반복하는 것 대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한 뼘 더 성장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나일스는 이제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현실로 돌아가길 두려워한다. 세라가 동굴을 폭파시켜 현실로 돌아갈 거라 말하자 나일스는 “당신과 남고싶어요.” “여기 남아줘요.”라고 말하며 세라를 붙잡지만 세라는 단호하게 자신의 인생을 되찾겠다며 자리를 뜬다. 나일스는 세라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깨닫고 함께 현실로 돌아갈 용기를 낸다. 혼자 무의미한 오늘에 남아 현재에 안주하며 사느니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을 살아가는 것. 그게 진정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자네만의 안식처를 찾아봐."
어쩌면 우리는 항상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걸지도 모른다. 내일은커녕 당장 몇 시간 뒤에 일어날 일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거창한 비유를 내려놓고 가볍게 말하자면 오늘 먹으려고 결정해둔 저녁 메뉴가 갑자기 품절이 되는 것과 같은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긴다면 또다시 고민을 반복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게 인생이다.
타임 루프 속에서 겪는 오늘은 모든 게 다 예상되는 정해진 일들의 연속이지만 진짜 인생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툭하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나일스와 세라 역시 인생의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나일스는 정해진 길과 결과가 있는 타임 루프를 ‘나만의 안식처’라고 느끼며 타임 루프를 벗어나길 꺼리지만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세라를 보며 다시 삶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세라의 존재가 진정한 오늘의 의미이자 안식처임을 알게 된다.
내일이 오지 않는다는 건 결국 새로운 기회와 조금 더 발전할 나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타임 루프는 그저 반복되는 나의 실수를 가볍게 외면해도 괜찮다는 특권일 뿐, 달라진 나와 또 다른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배경은 아니다. 시간은 의미 없이 낭비되고 있고 무의미에 갇힌 사람은 변하지 않는 오늘처럼 변하지 않는 삶을 산다.
변화도 의미도 없는 타임 루프 속에서 만난 최고의 인연은 서로에게 내일을 꿈꾸게 될 동력이 된다. 무의미한 하루 속에서 발견한 가장 의미 있는 그를 바라보며 두 사람은 조금 더 나아갈 우리를 궁금해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내일’은 꼭 맞이해야 할, 가장 필요한 존재로 변한다. 내일을 맞이하게 되면 무의미한 시간을 반복할 때보다 걱정도, 부딪혀야 할 일도, 책임져야 할 것도 어마 무시하게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적어도 지루하고 힘들진 않겠지-싶다. 더 아름다워질 우리의 내일과 한 발자국 나아갈 나를 상상하며 내딘 내일을 향한 한 걸음엔 용기와 사랑, 믿음이 가득하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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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 알고리즘] ‘여행과 사랑’, 낯선 곳에서의 당신
[무비 알고리즘 Movie Algorithm]:
‘온더플로어’만의 컨텐츠, [무비 알고리즘]에서는 다양한 영화들을 하나로 묶어본다. 너무나 달라보이는 영화들. 하지만 영화 하나하나를 조금씩 살펴보면, 우리는 그것들에게서 어떠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이번 무비 알고리즘의 연결고리는 ‘여행’과 ‘사랑’이다. 지금부터 여행과 사랑이라는 연결고리로 묶인 네 편의 영화들을 살펴보자.여행 가기 전날 밤 잠에 들기전의 설렘, 여행지에 도착해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면서 떠나온 땅들을 바라볼 때의 아쉬움. 이처럼 여행이 만드는 설렘과 행복, 그리고 아쉬움은 사랑이 가진 그것들과 너무나 닮아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린 우리들. 우리가 여행 속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이 있겠지만, 이것들 중에 가장 특별한 감정은 단연 사랑일 것이다. 낯선 이가 느낄 차가운 공기, 그 속에서 더욱 뜨거웠던 그 둘만의 시간을 소개한다.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
- 영화: 비포 선라이즈 (1995)
-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 출연진: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안드레아 에커트 外
‘단 하루를 위해’
달리는 기차 안, 싸우는 독일인 커플을 보며 똑같은 감정을 느낀 ‘제시 (에단 호크 分)’와 ‘셀린 (줄리 델피 分)’. 각각 미국과 프랑스에서 온 그들은 같은 기차를 타고 있다는 공통점 외에는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로 대화를 나누게 된 그들은 짧은 순간이지만 서로에게 흥미를 갖게 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한 기차, 원래라면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는 셀린은 함께 내리자는 제시의 제안에 그들은 함께 비엔나를 여행하게 된다. 비엔나에서 보내는 단 하루, 그들은 비엔나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잊지 못할 감정을 갖게 된다.
‘떠나가기에 더 간절한’
여행과 사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트릴로지>였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은 모두 일관되게 제시와 셀린이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다룬다. 기차 안 스치듯한 만남에서 시작해 평생의 연인이 되어가는 그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18년의 세월동안 그들 곁에서 살아갔다는 생각마저 든다. <비포 선라이즈>가 <비포 트릴로지> 중의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해당 작품을 최고의 작품으로 뽑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감히 생각하기에는 두 사람의 첫 시작이 여행이 가지는 풋풋함과 설렘, 그 로망을 가장 잘 드러내서는 아닐까 싶다.
작품 속에서 제시와 셀린은 하루동안 비엔나의 다양한 장소들을 돌아다닌다. 허나 비엔나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어느 순간이 되면, 우리의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제시와 셀린의 대화에 빠져들게 되어서이다. 가벼운 농담에서 시작하여 죽음과 인간, 그리고 사랑까지. 능글맞고 현실적인 제시와 섬세하고 이상적인 셀린의 표현과 말은 극과극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그들 모두 꾸밈 없이 솔직했다. 영화를 보면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하루만에 저렇게 사랑을 느끼고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카페에 앉아 친구에게 전화하는 형식을 빌려 서로에게 뜨거운 사랑을 말하는 이들을 보며 그 마음은 금방 바뀌게 되었다.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 각자의 기차에 탄 제시와 셀린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는다. 행복한 미소와 감은 눈. 아마 그 의미는 평생 다시 겪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그 하루를 꿈속에서나마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냉정과 열정 사이 Calmi Cuori Appassionati>
-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2001)
- 감독: 나카에 이사무
- 출연진: 타케노우치 유타카, 진혜림, 유스케 산타마리아 外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밀라노에 살고 있는 두 이방인 '준세이 (다케노우치 유타카 分)'와 '아오이 (진혜림 分)'. 그들은 일본에서 만나 서로를 너무도 사랑했지만, 그 기억을 묻어둔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오해와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멀어진 이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재회한 그들은 다시 서로에게 끌리게 되지만, 이미 각자의 삶에는 다른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준세이는 그림 복원을 배우며 ‘메미 (시노하라 료코 分)’와 동거 중이고, 아오이는 마빈 (왕민덕 分)’과 안정적인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준세이와 아오이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과연 그들은 결국 10년 전 연인이었던 시절 아오이의 30번째 생일에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고 다시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냉정을 이기는 것’
<냉정과 열정 사이>는 수많은 한국 관광객을 이탈리아 피렌체으 ‘두오모 성당’으로 이끈 대표적인 일본의 로맨스 영화이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섬세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특히, 원작 소설은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라는 남녀 작가 두 명이 신문에서 2년간 각각 ‘아오이’와 ‘준세이’의 입장이 되어 교대로 연재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만큼 다소 단조로워 보이는 형식임에도,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을뿐더러 깔끔하게 이야기가 구성되었다. 결국 관객들은 10년의 세월동안 일어난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과 애틋한 감정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두 인물의 비극적인 상황과는 반대되게 이탈리아 피렌체와 밀라노의 풍경은 아름답게 묘사된다. 두오모 성당, 아르노 강변, 밀라노의 거리 등 낯선 이의 얼굴과 함께하는 이국적인 풍경은 준세이와 아오이의 사랑 이야기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든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엔야 (Enya)’의 특별한 음악과 ‘요시마타 료 (Yoshimata Ryo)’의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은 영화의 깊이와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특히, <'The Whole Nine Yards'>와 같은 두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명곡들은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도 <냉정과 열정 사이>의 준세이와 아오이라는 캐릭터 모두 감정선이 요동치지 않아 표현하기가 어려움에도 이들을 연기한 두 배우의 연기는 훌륭했다. 다케노우치 유타카는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내면에 열정을 간직한 준세이를 잘 소화했고, 진혜림은 잔잔해보이지만 강인한 아오이의 매력을 충실히 표현했다.
빛 바랜 추억을 복원하는 준세이, 영롱한 사랑을 세공하는 아오이. 10년의 시간, 점점 더 멀어지는 그 간극을 뛰어넘은 그 사랑의 힘의 원천은 서로의 존재가 갖는 믿음과 이끌림인듯 하다.
<김종욱 찾기 Finding Mr. Destiny>
- 영화: 김종욱 찾기 (2010)
- 감독: 장유정
- 출연진: 임수정, 공유, 이청아 外
‘세상 모든 종욱들’
뮤지컬 무대 감독 ‘지우 (임수정 分)’는 인도 여행에서 만난 첫사랑 '김종욱'을 잊지 못하고, 결국 '첫사랑 찾기 사무소'를 운영하는 ‘기준 (공유 分)’에게 의뢰를 하게 된다. 기준은 꼼꼼함과 집요함으로 '김종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하지만, 이는 쉽지가 않다. 전국에 있는 수많은 '김종욱'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이상형과 딱 맞는 그때의 그 남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찾으면 찾을수록 오히려 자신의 옆에서 티격태격하며 늘 함께 있는 기준에게 마음이 끌린다. 한편, 기준은 융통성 없고 답답한 지우를 구박하면서도, 그녀의 첫사랑 찾기를 진심으로 돕는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기준은 '김종욱'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게 되고, 지우에게 이 단서를 가져간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될까.
‘내 곁에 누군가’
영화는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적인 흐름을 따라간다. 앞서 본 <냉정과 열정 사이>가 시종일관 잔잔함을 바탕으로 여운을 준다면, 해당 작품은 발랄함과 유쾌함을 통해 즐거움을 선물한다. 해당 영화 역시 원작을 갖고 있는데 동명의 뮤지컬이 그 원작이다. 이를 통해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음악으로 뮤지컬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면서, 영화적 연출도 놓치지 않았다. 첫사랑 찾기라는 소재에 더해 ‘공유’와 ‘임수정’이라는 로코 (로맨틱 코미디) 장인들의 연기도 볼만 하다. 공유는 그 특유의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한기준' 역을 맡아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와 츤데레 매력을 선보이고, 임수정은 털털하고 사랑스러운 '서지우'역을 맡아 로코퀸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들의 연기와 얼굴합은 영화의 즐거운 요소이다.
영화는 판타지적 요소보다는 첫사랑에 대한 현실적인 연애 감정에 집중한다. 뮤지컬은 극적인 효과를 위한 장치일뿐, 실질적으로 영화가 관객에게 유도하는 방향은 첫사랑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에 대한 고찰이었다. 호두과자를 하나 안 먹고 남겨두는 이유를 묻는 기준의 말에 ‘끝을 안내면 좋은 느낌 그대로 두고두고 남는다’라고 답하는 모습. 사실 김종욱씨의 모든 것을 알면서도 끝일까, 실망할까 두려워 알면서도 모른 척 김종욱을 찾지 않은 지우. 이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이를 통해 관객들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며 영화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공유와 임수정이 나오는 인도 ‘조드프루’ 지역의 회상신과 같이 국내외 여행지에서의 풍경은 아름다웠고 로케이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감미로운 OST나 대사 등 누군가에게는 오글거리는 장면들도 많았다. 그러나 ‘김동욱’, ‘신성록’, ‘김무열’, ‘정준하’ 등 익숙한 스타들을 카메오로 볼 수 있고 영화 내내 나오는 특유의 유머는 “나 이런 게 좋아하네”라는 말을 자동으로 나오게 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누군가를 찾기 위해, 또 다른 여행을 떠난 두 사람. 그들의 원래의 목표였던 ‘김종욱 찾기’는 어느새 맥거핀이 되어버렸고 그들에게는 여행 속 항상 함께했던 서로가 너무나 큰 의미로 남게 되었다.
<해피 투게더 Happy Together>
- 영화: 해피 투게더 (1997)
- 감독: 왕가위
- 출연진: 양조위, 장국영, 장첸 外
‘나랑 같이 있어줘’
홍콩 반환을 앞둔 1997년,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는 하보영 (장국영 分)의 말 한마디에 이끌려 여요휘 (양조위 分)는 그와 함께 홍콩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아르헨티나까지 오게 된다. 두 사람은 이과수 폭포를 함께 보러 가기로 약속하지만,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다른 피부색의 두 이방인에게 낯선 타지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요휘는 탱고 바에서 일하며 힘겹게 생활을 이어가는데, 그러던 어느 날, 보영이 심하게 다친 채 아휘 앞에 다시 나타난다.
아휘는 보영을 간호하며 다시 한번 그에게 마음을 열지만, 보영의 변덕스러운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보영은 아휘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며, 쉽게 떠났다 쉽게 돌아온다.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는 아휘는 그런 보영에게 지쳐가면서도, 그를 쉽게 놓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 새롭게 일을 한 식당에서 ‘장 (장첸 分)’을 만나게 되는 등,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혼란에 빠진 아휘와 보영의 관계. 과연 그들의 끝에는 서로가 있을까.
왕가위 감독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해당 영화는 그의 독보적인 세계를 다시 한번 세계에 각인시켰다. 감독의 특징인 즉흥적인 연출과 미장센, 다양한 상징들은 영화 내내 끊임없이 살아 숨쉰다. 먼저 작품의 구성은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는데 초기에는 장국영이 아닌 ‘유덕화’가 보영의 역할이었고, 이과수 폭포로 가는 로드 무비가 원래의 구성이었다. 또한 아휘의 이성 연인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작품은 제작 내내 변화를 거쳤다.
왕가위의 영혼의 파트너 ‘크리스토퍼 도일’이 담당한 촬영 역시도 정해진 대본 없이 촬영된 장면들이 많다. 일례로 보영과 아휘가 갈등하고 다투는 장면에서 활용된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는 인물들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클로즈업을 통해 아휘의 슬픔과 고독, 보영의 불안과 후회 등 복잡한 감정들을 전달한다. 흑백, 붉은색, 녹색, 노란색 등의 활용을 통한 강렬한 색채 대비 역시 두 남자의 엇갈린 운명과 혼란스러운 감정을 상징한다. 특히, 흑백의 색은 현실의 고단함과 과거를, 컬러의 색은 현재를 상징하며 붉은색과 노란색은 열정과 불안, 녹색은 희망과 고독을 나타낸다..
‘구름 사이 봄햇살’
<해피 투게더>는 단순한 동성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이방인의 고독, 불안정한 관계와 엇갈린 운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감독은 영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상징과 장치들을 활용하여 이러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작품 내내 관통하는 상징적 이미지인 아래로 쏟아지는 이과수 폭포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휘의 방 안에 놓인 이과수 폭포 스탠드는 두 남자가 함께 이루고자 했던 꿈, 이상향을 상징한다. 반면, 결말에 보영 없이 혼자 이과수 폭포에 도착한 아휘가 직접 맞이한 거대하고 압도적인 이미지는 아휘의 공허함과 상실감을 극대화한다 작품 내내 등장하는 여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보영의 여권을 숨긴 아휘의 행동은 상대를 구속하고 옭아매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여권은 곧 자유와 이동의 가능성을 상징하는데, 이를 빼앗음으로써 강압적 수단을 사용해야만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그들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작품의 후반, 아휘와 보영만큼이나 큰 영향력을 보여준 인물은 첸이었다. 자신이 정한 선을 넘지 않으면서 아휘에게 다가가는, 그리고 "귀가 눈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첸. 이러한 첸의 행동과 대사는 아휘가 보영과의 관계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만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감정과 욕망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첸은 아휘가 스스로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찾는데 있어서 그의 성장을 돕는 희망의 상징이자 방향이 되었다.
영화의 제목이자 가수 ‘터틀즈 (The Turtles)’의 목소리로 마지막을 장식한 그 말 "해피 투게더". 이는 역설적이게도 두 주인공의 불행하고 엇갈린 사랑을 의미한다. 함께 있지만 진정으로 행복하지 못하고 외로웠던 두 사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어느새 우리의 몫으로 넘겨졌다.
‘사랑하게 될거야’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속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나와 당신은 의지할 곳, 의지할 것 하나 없는 이방인이 된다. 너무나 낯선 그 곳, 그 다른 색의 눈들이 만든 시선들은 너무나 차가워 우리는 그 눈들을 피하려 애를 쓰곤 한다. 그렇게 경계하는 눈들을 피하고 한 숨을 돌리고 나면 보이는 어느 누군가. 그 누군가에게서 당신은 냉기를 식혀줄 가장 뜨거운 바로 그것, ‘사랑’을 느끼게 된다. 끝이 두렵다고 여행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여행의 끝이 언제나 해피엔딩은 아닌 것처럼, 뜨거웠던 사랑의 끝이 아쉽고 또 아플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못 볼 지나간 풍경들을 놓쳤다고 괴로워하기 보다는, 자그마한 용기를 내어 사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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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와 세계의 아이러니, 아득한 풍경, 생존이라는 사치
※영화 〈정말 먼 곳〉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진우(강길우)는 강원도 화천에서 홀로 딸 설(김시하)이를 키우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그를 돕는 목장 주인 중만(기주봉) 역시 딸 문경(기도영)과 어머니 명순(최금순)을 모시고 살아간다. 인적 드문 산골 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서울에서 연인 현민(홍경)과 쌍둥이 동생 은영(이상희)이 진우 앞에 나타나고, 평화롭던 일상에는 균열이 생긴다. 현민은 진우를 따라 화천으로 내려와 성당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시를 가르친다. 진우의 쌍둥이 동생 은영은 자신의 딸을 맡긴 지 오 년 만에 소식도 없이 설을 데리고 가 평범하게 키우겠다고 말한다. 모두 버리고 찾아온 정말 먼 곳에는 불안한 관계가 뒤얽히고, 비밀을 감춘 이들 앞에 시련은 연이어 찾아온다.
역설과 짐작의 자리를 비워놓은 시 詩
고착된 언어로 규정된 정상성을 의도적으로 비트는 영화는 전작 〈한강에게〉처럼 서사가 시로, 시가 이미지로 전이하는 흐름을 택했다. 특히 호칭으로 고착화하는 인물의 역할 관계를 변주하는 방법으로 경계 밖 소수자의 삶과 인물의 관계성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든다. 집 나간 며느리가 아닌 집 나간 서방이 돌아온다는 표현으로 남편 없이 홀로 가족을 부양했던 명순의 전사를 짐작할 수 있고, 은영의 아이를 자식처럼 키워온 진우가 아빠가 아닌 엄마인 이유는 성별 이분법적 관계를 답습하는 사고를 벗어나고자 하는 그의 현실과 관련 있다. 설이는 사실상 엄마의 위치를 담당했던 문경을 언니로 부르지만 정작 친모인 은영의 호칭을 따로 부여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진우와 특별한 관계로 연결될 수 없는 문경의 상황과 더불어 은영과 설이의 해소되지 않는 심리적 거리를 묘사한다. 이 가운데 영화는 아버지라는 단어만 남긴 채 의도적으로 전통적인 부성의 존재를 제거한다. 극 중 유일한 ‘아버지’인 중만은 조용히 영화의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일종의 관조자이자 삶을 먼저 겪은 세대로서 몇 안 되는 대사에 켜켜이 덮인 세월의 깨달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존재로 기능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인 정상 가족의 해체와 성적 지향과 대척점에 선 가부장의 위계가 사라진 가족은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존재를 그저 받아들이는 이상적 형태를 띤다.
영화는 각자의 사정으로 얽힌 인물들이 하나의 유사 가족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명시적 표현으로 드러내기보다 관객이 개개인의 삶을 짐작하게끔 여백을 만들어 두었다. 여러 대사 없이도 상황과 이미지로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장면은 압축된 언어로 감정을 담아내는 시와 같다. 명순의 죽음을 가족들이 처음 알게 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차 안의 현민을 두고 멀리서 보이는 창문 밖의 모습으로 다른 가족의 반응을 지켜보기만 한다. 카메라와 인물, 그리고 인물과 인물은 서로를 그저 짐작하며 개입하지 않는다. 〈정말 먼 곳〉의 미덕은 언어가 주는 정신적 폭력에 사려 깊게 대처했다는 점이다. 성소수자를 향하는 편견과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들의 대사는 들리지 않게 웅얼거리고, 거기에 반응하는 진우와 현민 역시 말없이 노려볼 따름이다. 자칫 또 다른 고통으로 느낄 영화적 재현을 지양하는 태도는 영화의 가치를 끌어올린다.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매체에서 침묵이 주는 안도감은 이미 일상이 되어 지친 우리에게 무거운 숙제를 건넨다. 각자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 때 때로는 침묵과 직시가 답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는 문제를 피하지 않고 직면하되 조심스러운 접근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촉구한다.
언어보다 행위로 짐작해야 하는 영화에서는 배우의 작은 몸짓에도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특히 〈정말 먼 곳〉은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섬세함이 인상적인 영화다. 특히 이상희 배우와 기도영 배우는 미세하게 변화하는 인물을 흡입력 있게 묘사한다. 앞서 언급한 문경과 은영의 태도와 설이와의 관계성을 영화는 손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필사적으로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는 문경은 마치 자신의 노동을 바쳐 원래의 궤도로 돌려놓으려는 듯 영화 내내 쉴 새 없이 손을 놀린다. 이에 반해 은영은 어디서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직접적인 상황에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진우와의 대화든, 양에게 먹이를 주는 동안이든 마찬가지다. 그의 수동적인 태도는 서울로 설을 데려가고자 마음먹었지만, 미처 친밀함을 쌓지도 못했던 지난 삶의 준비되지 않은 머뭇거림이다. 설을 연기한 김시하 배우가 주는 울림도 상당하다. 영화 후반 은영의 고백에 애써 자신의 마음을 감추려는 듯 담담히 책을 읽어가는 설이의 목소리는 늘 천진난만했던 모습 한편에 못내 감추던 상처가 드러나 버린 가슴 아린 장면이다. 영화는 진우와 현민의 이야기를 중심 서사로 놓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을 수 있는 도경과 은영의 서사를 상상할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은 배우에 있다. 장례식장에서 아웃팅을 하는 은영의 모습이 자칫 극적인 장치를 위한 작위적 흐름이 될 수 있었으나 인물의 심리와 감정을 적절히 쌓은 덕분에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배우들의 호연으로 영화는 감정적인 호소나 극적인 장면 없이도 느리지만 긴장감 있는 서사를 관객에게 스민다.
현민이 영화 중반 낭송하는 시는 박은지 시인의 동명의 등단작을 인용했다. 둘의 관계가 모두에게 알려진 다음 이어지는 현민의 장면은 허탈함과 분노, 두려움 등 여러 감정을 가슴에 차곡히 억누르다 결국 짧은 시 한 편으로 겨우 내뱉을 수밖에 없던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잔잔한 바다를 뒤흔드는 큰 파동을 맞고 숨 고르기를 하는 듯 울리는 현민의 내레이션은 앞으로의 상황을 상상할수록 막막하고 공허하다. 영화의 주제를 요약해 놓은 시는 제목의 물리적 공간감으로 보이지 않는 인간의 무력한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말한다. 진우는 자신의 삶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가장 먼 곳이라고 생각했던 공간마저 일상의 혐오로부터 안전하지 않았다. 생각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은 이상 ‘정말 먼 곳’에 왔다는 인식은 상상에 불과하며, 실은 아직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현실의 외로움과 무력감은 불안한 시어로 표현된다. 규정된 언어를 깨뜨리려는 현민의 수업에서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정작 현민의 언어는 그들에게 끝내 와 닿지 않는다. 그리고 무너지는 발밑을 바라보며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가깝고도 먼 풍경의 위력
언어를 양보한 자리에 채워진 풍경은 그 공백조차 느낄 수 없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말 먼 곳〉의 배경이 된 화천의 자연은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복잡한 고민마저 작아지게 만든다. 과묵한 등장인물들만큼이나 담담한 풍광은 가족들의 평화로운 일상에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더한다. 설이와 양들이 함께 거닐던 초원이나 진우와 현민의 사랑을 품어주는 새벽녘의 섬은 행복의 순간을 찬란하게 밝혀준다. 지형지물을 활용한 절묘한 인물 간의 구도는 여러 컷 분할 없이도 충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가파른 절벽에 있는 목장의 들쑥날쑥한 들판은 인물의 시선과 관계를 설명한다. 롱테이크 장면에 고정된 배경은 연극의 한 장면처럼 인물의 움직임을 주목하며 시선을 따라간다. 저 멀리 느리게 흘러가는 장면 하나하나는 유달리 소중하다. 별다른 기교나 편집 없이도 와이드 스크린의 저 끝에서 반대편 사이를 무대 삼아 펼쳐지는 서사는 제한된 공간성으로 인물의 동선과 반응을 집중시킨다. 화천의 아름다운 풍경과 최소화한 카메라 움직임은 익숙지 않아 오히려 초현실적인 감상을 자아낸다. 죽었던 명순이 설과 만나는 장면이나 동트기 전 숲에서 사라졌던 설이를 데려오는 장면은 이질적인 풍경과 함께 묘한 긴장감을 안겨준다. 또한 무질서한 자연이 프레임 안에서 재배열되는 기적적인 장면들은 실제 감독도 예측할 수 없었다는 인터뷰 내용처럼 믿기 힘든 자연의 신비를 경험하게 한다. 디렉션이 불가능한 양들의 움직임을 멀리서 담은 장면들은 인물의 연기와 신기하게도 어우러진다.
의도하지 않은 경이로움은 영화 마지막 눈보라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출산을 앞둔 양을 보러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는 이들에게 점차 거세지는 눈바람은 마지막 순간 관객을 압도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에 삶이란 대개 눈보라에 가까웠다. 각자의 생활환경과 가치관, 여러 사정이 얽힌 이들에게 행복했던 일상은 잠시일 뿐 수없이 좌절하고 고통받는다. 위기는 때를 가리지 않으며 영화가 끝난다고 한들 여전히 남은 숙제는 산더미다. 진우는 사라진 현민을 찾아야 하고 은영은 설이와의 관계 형성을 위해 팔을 걷어 붙어야 한다. 목장에 남은 중만과 문경은 명순의 죽음 이후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삶의 끝에 죽음이 있듯 소멸의 자리에는 또 다른 생명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 가장 오래된 양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설은 영화의 마지막 이름처럼(雪) 눈을 이끌고 가장 어린 생명을 바라본다. 가족의 막내 설과 가장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눴던 이는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명순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설이의 눈을 보며 희망을 발견한다. 편견과 혐오의 사회에서 설은 꿋꿋이 성장할 것이고, 어떻게든 절망을 딛고 살아갈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기대와 함께.
이기적인 인간, 죽음으로 이어지는 삶의 기대
〈정말 먼 곳〉은 할미 양의 죽음에서 시작해 새끼 양의 탄생으로 끝난다. 인간사에 오랫동안 함께 했던 양을 향해 선조들은 풍요와 안녕을 기원했고, 그들은 신의 말씀으로 인간을 대신해 생을 다했다. 풍요와 희생의 의미를 모두 지닌 양은 인간과 닮아있다. 중만의 말처럼 양은 인간만큼이나 이기적이다. 다 함께 무리 지어 살아가지만 솔직한 눈빛 안에는 서늘한 진실이 숨겨있기도 한다. 영화의 마을 사람들은 진우에게 누구보다 따뜻하고 친절했지만 다름을 내보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등을 돌리는 냉혹한 이면을 지녔다. 또한 독립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자식을 품에 두고 놓지 못하는 어미 양처럼 중만과 진우는 각자의 반경에 문경과 설이를 둔 채 떠나보내지 못한다. 중만은 문경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고, 진우는 차별이 일상인 사회에서 상처를 주기 싫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은 바깥세상에서 받은 공포를 나눠 짊어지고 싶은 이기적인 감정에 의해 거짓 이유를 대고,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기기만의 공간에 자신을 가두었다. 마치 자유롭게 뛰노는 것처럼 보이는 양들에게 둘린 울타리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내몰린 사람들의 방어기제에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까. 소위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한국 사회에서 받았을 고통을 짐작한다면, 고향을 떠나 홀로 자식을 키워야 했던 중만과 명순, 그리고 배우자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 진우에게 연고도 없는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중만의 혼잣말은 어미 양의 투명한 눈빛에 비친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선택은 달랐다. 현민의 입으로 들은 진실과 설이의 실종을 겪으며 진우는 외면했던 자신의 진심과 대면한다. 설이를 위한다고 여겼던 도피가 어쩌면 자신의 불안이며, 진우의 두려움은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말이다. 목장을 떠나기 전날 밤 진우는 중만에게 불안 섞인 물음을 던진다. 이 세상의 끝으로 생각했던 이곳마저 벗어나야 한다는 복잡한 마음을 중만에게 털어놓지만, 사실 진우는 중만보다 먼저 답을 찾아낸 셈이다. 두 사람을 품어줄 ‘정말 먼 곳’은 이 세상에 없다. 더는 나아갈 수 없어 그렇게 믿기로 한 중만과 허상의 공간임을 깨달은 진우가 있을 뿐이다. 중만의 여정을 책임졌던 동력은 소진되었고 남은 선택지라고는 지금의 삶에 순응하며 존재하지 않는 곳을 그리워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진우는 나아가야만 한다. 그는 있지도 않은 곳을 찾기보다 남아있는 실체에 집중하기로 한다. 현민을 찾고, 설이를 돌보고, 세상 앞에 다시 위험한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그는 숨겨진 자연을 떠나 칠흑 같은 어둠으로 향한다. 그렇게 영화 속 모두는 한 칸씩 성장하고 있다.
오 년 전 진우가 정말 먼 곳을 찾을 수밖에 없던 그 심정을 떠올려본다. 폭력과 차별에 지치고 사람이 싫어 도망치듯 떠났던 참담함을 생각한다. 익숙함의 관성에 밀려난 평범한 인간의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 존재를 인정하지 못해 끝없이 밀어냈던 결과는 막다른 벼랑 앞이다.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 그곳에서 떨어지고 만 사람들이 이번 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곁을 떠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어느 정치인은 원하는 사람들끼리 특화된 공간을 만들어 거기서 즐겨 보라고 말했다. 절망을 모르는 이들은 여전히 세상에 없는 정말 먼 곳을 만들어 쫓아보낸다. 그 시간에도 누군가는 일상이 '욕심이며 사치'인 사회에 견디지 못해 사라진다. 시 구절을 잠시 빌리자면 “정말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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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마지막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4월의 마지막 주말도 잘 보내셨나요?5월의 첫 시작도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개봉 주 주말의 관객 수'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이 3주째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말 관객 수가 저번 주와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주말 동안 (4월 29일~5월 1일) 관객 수 18만 7,14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07만 5,520명을 돌파하였습니다.저번 주와 동일하게 누적 관객 수가 약 30만 증가하였습니다.이번 주에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하기 때문에 1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2.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NEW)▶ 가해자들의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인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주말 동안 (4월 29일~5월 1일) 관객 수 15만 9,58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2만 8,434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같은 반 친구 4명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남긴 채, 의식불명 상태로 호숫가에서 발견된 ‘건우’.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가해자 부모들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데…
3. <서울괴담> (NEW)▶ 10개의 현실에서 겪을 법한 괴담을 다루고 있는 작품 <서울괴담>.
연기파 배우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이돌까지 출연해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주말 동안 (4월 29일~5월 1일) 관객 수 4만 2,80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6만 912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어두운 터널을 홀로 지날 때의 두려움, 옆집에서 들려오는 의문의 소리
중고 가구에 얽힌 미스터리, 다른 사람을 향한 그릇된 질투.
복수, 저주, 욕망에서 시작된 죽음보다 더한 공포의 실체가 찾아온다!▶씨네픽의 이번 주 98회 예측 이벤트는 4월 마지막 주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유저분들이 예측해주신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의 4월 29일, 4월 30일, 5월 1일의 관객 수 스코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55%, 여성 45%로 남성이 조금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네요!
연령대 별로는 20대와 30대가 똑같이 3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40대 초반 여성(157,882명)과 30대 초반 여성(162,976명)이었습니다.
또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29%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공기살인> (▼2)▶ <공기살인>은 저번 주말과 비교했을 때, 약 3만 명이 줄어들었는데요.
주말 동안 (4월 29일~5월 1일) 관객 수 3만 540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4만 3,622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수퍼 소닉2> (-)▶ <수퍼 소닉2>는 4주째 박스오피스 순위 TOP 5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저번 주와 동일하게 5위를 하였습니다.
주말 동안 (4월 29일~5월 1일) 관객 수 2만 8,126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8만 7,69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국내 박스오피스와 달리 <The Bad Guys> 차지했습니다.
주말 동안(4월 29일~5월 1일) <The Bad Guys>의 매출액은 $16,000,000 (한화 약 202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총 누적 매출액은 $44,000,000 (한화 약 555억)을 기록했습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4월 15일 ~ 2022년 4월 17일)1. <배드 가이즈> 1,600만 달러 (누적 4,400만 달러)2. <수퍼 소닉2> 1,135만 달러 (누적 1억 6,092만 달러)3.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830만 달러 (누적 7,955만 달러)4. <노스맨> 631만 달러 (누적 2,280만 달러)5.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554만 달러 (누적 3,549만 달러)...씨네픽의 4월 마지막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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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달지만은 않은 시나몬 사탕 같은 멜로 영화, 그리고 음악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Cast
감독: 박찬욱
출연: 박해일, 탕웨이
Synopsis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맡게 된 형사 ‘해준’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와 마주하게 된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탐문하기 시작하는데, ‘해준’은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Review
<헤어질 결심>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킨 ‘헤결사’를 아시나요? 이 자리에서 당당히 고백하겠습니다. 제가 바로 그 ‘헤결사' 중 한 명이랍니다. <헤어질 결심>은 아름다운 각본으로 잊을 수 없는 명대사를 한 움큼 만들어내고, 섬세한 연출로 2022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의 영예를 얻은 멜로 영화입니다. 마침내 미결로 남은 ‘해준'과 ‘서래'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많은 ‘헤결사'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겼죠.
하지만 <헤어질 결심>에 음악이 없었더라면, 마냥 달지만은 않은 시나몬 사탕 같은 박찬욱 표 멜로 영화는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 작품의 음악은 국내 영화 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조영욱 음악 감독이 맡았는데요.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올해의 큐레이터'로 선정된 조영욱 음악 감독을 기념하며, 그가 “내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독특한 작품”이라고 밝힌 <헤어질 결심>의 영화 음악을 파고 들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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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의 영화 음악에는 OOO가 없다
때때로 배우의 연기와 현장 소리만으로 채워진 영화를 보다 보면, 내심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금쯤 ‘쿠구궁…’ 할 때가 됐는데…” 이처럼 음악은 영상 중심의 시각 매체인 영화에 깊이를 더하는 요소입니다. 영화와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 사이와도 같죠. 서로의 옆집에 산다는 박찬욱 감독과 조영욱 음악 감독처럼 말입니다. 조영욱 음악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등의 작품을 박찬욱 감독과 함께 완성했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한 번쯤 본 듯한 소재들로 만들어졌으나, 이상하게도 한없이 낯설고 새로운 영화입니다. 그리고 음악은 이 영화를 낯설게 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죠. 조영욱 음악 감독은 멜로 영화가 음악을 사용하는 전형적인 패턴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일반적으로 멜로나 로맨스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감정이 피어오를 때, 설레는 느낌을 자아내는 감미로운 음악을 사용합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그릴 때는 밝고 경쾌한 음악을, 두 사람의 갈등이 심화할 때는 축 가라앉은 음악을 쓰고요. 멜로 영화답게 <헤어질 결심>에도 감정이 피어오르고, 사랑에 빠지고, 갈등이 심화하는 장면이 모두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음악들’은 찾아볼 수 없죠.
“멜로드라마지만 감정을 배제한 음악이 이 영화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들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스토리 강화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두 인물 간에 오가는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조영욱 음악 감독, <헤어질 결심> 프로그램 노트
그의 말처럼 <헤어질 결심>의 음악에는 감정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멜로디 라인이 거의 없죠. 대신 같은 음을 반복해 내는 타악기의 소리가 인상적입니다. 영화에서 긴장감을 조성할 때 주로 쓰는 반복적인 사운드가 ‘해준'과 ‘서래'의 사랑 주변을 맴돕니다. 둘의 사랑이 커지는 와중에도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을 온갖 요소들을 절로 떠올리게 하죠. “<헤어질 결심>의 영화 음악에는 OOO가 없다”, 정답은 ‘멜로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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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교향곡 ‘아다지에토’와 정훈희의 ‘안개’
멜로디가 거의 없는 음악들로 채워진 작품이기에 오히려 몇 없는 멜로디가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아마도 관객의 뇌리에는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와 가수 정훈희의 ‘안개'가 깊이 박혀있을 겁니다. ‘아다지에토'는 ‘서래'의 첫 번째 남편 ‘기도수'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추천한 음악이자, ‘해준'이 이윽고 붕괴하는 순간에 흘러나온 음악입니다. ‘안개'는 수사를 핑계로 ‘서래'의 집 안을 들여다보는 ‘해준'의 사랑이 저도 모르게 커지는 순간과 ‘서래'의 죽음으로 영원히 종결되지 못할 사랑이 되어버린 순간에 흐르던 음악이죠.
‘기도수'는 집에 청음실을 마련해두고 음악을 즐기는 인물입니다. 영화에서 구태여 강조하지는 않았으나, 박찬욱 사단은 관객들이 이 사실을 놓치지 않도록 장면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구성했죠. ‘서래'는 ‘기도수'가 말러의 음악을 추천하며 산을 타는 방법을 소개하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산을 올라 ‘기도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기도수'가 청음실에서 음악에 빠져있을 때 유서를 위조합니다. 이러한 디테일로 영화는 더욱더 단단한 서사와 만듦새를 갖춥니다. 조영욱 음악 감독은 여기에 말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친 곡이라는 ‘아다지에토'의 음악적 디테일까지 더했죠. 음악에 비유하자면,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가 한 번에 소리를 낼 때 귀를 즐겁게 하는 풍부한 청음이 가능한 것과 같습니다. 박찬욱 사단의 영화는 작은 디테일도 그냥 만들지 않습니다. 완벽한 음악을 선사하려는 오케스트라의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만드는 박찬욱 사단의 작품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헤결사'는 오늘도 영화속 숨은 디테일을 찾으며, <헤어질 결심>에 반할 수밖에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를 찾아냅니다.
‘안개'는 <헤어질 결심>의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고려한 음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수 송창식에게 듀엣곡으로 녹음해주기를 간청했다는 일화도 유명하죠. ‘안개'는 이별 후 안개 속을 걷는 사람이 그리운 마음을 애써 억누른다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언제나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뿌연 안개가 낀 이포에서 안개처럼 존재했다가 그렇게 사라져버린 ‘서래'를 그리며 살아갈 ‘해준’의 심정을 반영한 노래 ‘안개'는 더할 나위 없이 적확한 엔딩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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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사단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진 않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를 만듭니다. 아주 사소한 의문도 남지 않도록 철저하게 설계하고 다듬어 영화를 세상에 선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린 이를 ‘변태 같다'는 말로 가볍게 표현하곤 하지만요. 제겐 박찬욱 사단의 영화가 나만 알고 싶은 맛집과도 같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알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영원히 나만 알고 싶을 만큼 소중한 그런 영화 말이죠.
조영욱 음악 감독은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위해 선정한 영화 중 한 편인 <겟 카터 1971>의 상영이 끝나면,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관객과의 만남을 가질 예정입니다. <헤어질 결심>의 영화 음악이 인상적이었다면, 제천에서 조영욱 음악 감독을 직접 만나보세요.
Schedule in JIMFF
<헤어질 결심> 2022.08.14(일) 메가박스 제천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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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의 화원 - 평범한 여직원이 분노하면 벌어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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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12월 15일 개봉한 작품
‘지옥의 화원’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압도적 격투 능력만 있다면 최강의 여직원으로 칭송 받는 대양아치의 시대… 왕년의 양아치, 폭주족들이 최강 자리를 놓고 사내 파벌을 형성하며 군웅할거하고 있는 혼란 속에서 지극히 평범한 회사 생활을 보내던 나오코는 새로 입사한 란과 우연한 계기로 친해지게 된다. 그러나 뛰어난 싸움 실력을 지닌 란이 사내 서열을 평정한 후 전국 양아치들의 표적이 되고 나오코 역시 주먹 세계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마는데… 회사원은 언제나 싸우고 싶다. 심장을 뜨겁게 할 오피스 코믹 액션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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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위 윌 락 유> 메인 예고편
크리스천 록이 열풍을 일으키던 1986년 여름
10대 소년 마이클과 친구들은 크리스천 메탈 밴드 3:16을 결성한다.
이들의 뛰어난 실력 덕분에 밴드는 금세 유명세를 얻게 되고, 유명 밴드 매니저 출신의 스킵이 지방 순회공연을 제안한다.
교회와 캠프를 중심으로 공연을 하며 점점 더 큰 인기를 누리게 된 친구들. 하지만, 새로운 멤버 영입 문제로 다툼이 발생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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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마블스> 티저 예고편
'마블'히어로들의 역대급 팀워크! 11월, 마블의 새로운 우주가 열린다! [더 마블스] 티저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