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2-05-20 22:20:13
뚜렷한 선과 악 그리고 수퍼 히어로 마동석
-<범죄도시2>(2022)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선악구도로 나뉘지 않는다. 물론 각자 가지고 있는 경계가 어느 정도는 있지만 그것이 명확하게 나누어지지는 않기에 판사의 심판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등장하는 사이코패스나 살인자는 물론 악인이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이해하기보단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보고 사회적으로 동일한 악인이 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악인을 없애는 방법일 것이다. 그 모든 것 이전에 수많은 악인들을 잡아내는 형사들이 있다. 형사들은 판사의 판단을 받기 전에 가장 의심되는 용의자를 가려내고 잡아낸다. 어찌 보면 악인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범죄가 그들을 거쳐간다. 희미한 선악구도 속에서도 형사들은 최대한 그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영화 <범죄도시>는 마석도 형사(마동석)와 그 팀의 이야기를 담았던 범죄 영화였다. 선악구도가 꽤 분명하게 나뉘어진 이 영화는 약간은 때가 묻은 마형사를 등장시켜 최악의 악인을 쫓게 만든다. 깡패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던 마형사가 완전히 깨끗한 형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악인들이 더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정리했다. 여기에 아주 악독한 악인이 등장하면서 그는 모두의 영웅이 된다. 엄청난 덩치와 파워는 달려드는 악인들을 나가떨어지게 했다. 또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악인을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 한 팀으로 만들었다. 결국에 가장 나쁜 악인 중의 악인인 장첸(윤계상)을 잡아냈을 때 관객들이 느낀 건, 악인을 처벌했다는 통쾌함이었다. 그게 후속 영화를 만들어낸 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편의 이야기를 변주해 만든 두 번째 시리즈
<범죄도시2>는 1편의 이야기 방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번에도 영화의 악인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전편이 그랬단 악인을 먼저 보여주며 영화적 긴장감을 높인다. 이 영화의 악인 강해상(손석구)은 베트남에서 한국인을 납치해 돈을 뜯어내고 그 사람을 죽여 실종 상태를 만든다. 우연히 베트남 출장에 간 마형사가 강해상이라는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이 영화에 담겼다. 특히나 이번 영화는 선악구도가 더 명확해졌다. 1편에서 약간은 때가 묻은 듯했던 마형사는 이번 2편에서는 좀 더 정의로운 모습으로 나온다. 전편의 마형사가 어느 정도는 현실적인 모습이었다면 이번 영화의 마형사는 좀 더 수퍼영웅에 가까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전편과는 다르게 마형사가 크고 작은 범죄자들과 대결을 벌일 때 마형사가 상대를 가격하면 큰 음향효과가 추가되어있다. 그래서 마형사가 타격하고 상대가 나가떨어지면 느껴지는 관객들의 통쾌함도 극대화되어있다. 그러니까 선악구도를 명확히 하고 마형사를 좀 더 선한 인물로 조정하여 선이 악을 물리칠 때의 쾌감에 집중한 것이다. 그래서 마형사와 그의 팀이 활약할 때 관객은 든든함을 느끼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악인들을 물리칠지 기대하며 보게 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타격감은 앞으로 이어질 <범죄도시>라는 시리즈가 좀 더 수퍼영웅 장르로 뻗어나갈 것임을 암시한다.
1편의 이야기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이야기적으로는 기시감이 많이 든다. 베트남 로케이션을 활용하고 영화의 빌런을 바꾸었지만 악인을 우연히 만나고 그를 추적하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 한정된 공간에서 마형사와 빌런이 격투를 벌이는 모습도 1편과 거의 흡사하다. 그런 점을 본다면 이 영화는 몇 가지 요소를 제외하고는 전편의 구조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전편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는 담기지 않았다.
이 영화의 빌런인 강해상은 전편의 장첸과 마찬가지로 과거 그만의 사연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장첸보다 더 과거를 보여주지 않는 인물이다. 강해상은 장첸보다는 좀 더 순하게 보이지만 한 번 돌진하면 엄청난 에너지로 달려가는 인물이다. 그래서 전반적인 빌런의 느낌은 장첸보다는 덜 인상적이지만 무섭다는 느낌을 주는 건 그만이 가진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를 위해 몸을 키우고 서늘한 눈빛을 보여주는 배우 손석구의 연기가 강해상이라는 악인을 좀 더 공포스럽고 무서운 인물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빌런 강해상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마형사와 대적하게 되는 인물이다.
수퍼히어로 마형사가 주는 통쾌함
영화 <범죄도시2>는 목적이 분명한 영화다. 극장에서 팝콘을 먹으며 선이 악을 물리치는 과정을 즐기게 하는 것이 바로 그 목적이다. 이야기나 캐릭터의 특성은 전편에 비해 조악해졌지만 선과 악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잔인함은 조금 덜어내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게 문턱을 낮췄다. 영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마형사는 한국의 수퍼영웅으로 탈바꿈하였고 그가 주먹을 날릴 때마다 정의가 실현되는 느낌을 받게 한다. 코로나로 지친 관객들에게는 꽤 위로가 되는 영화다. 현실에서는 애매한 선과 악의 구분이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는 명확하다. 이야기 구성 자체도 복잡하지 않고 특별한 반전도 없다. 그래서 더욱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마형사 역할의 배우 마동석은 이미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서 무서운 주먹을 보여준 적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그가 맡은 한국영화의 배역 중 가장 강력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앞으로 시리즈가 계속 이어진다면 꽤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캐릭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범죄도시>의 마형사는 그가 맡은 여느 영화들 중에서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캐릭터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이상용 감독은 이번 영화가 연출 데뷔작이다. 과거 <범죄도시> 1편에서 조연출, <롱 리브 더 킹:목표 영웅>에서 조감독을 맡았었다.
많은 관객들이 다시 극장을 찾아 즐길 수 있는 영화 <범죄도시2>는 절대 선 마형사와 그의 팀이 활약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담는다. 마형사가 등장할 때 느껴지는 든든함은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경찰에게 느끼고 싶은 감정일 것이다.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 같은 설정이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면서만은 선이 악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며 그 희열을 즐길 수 있다. 앞으로 꽤 많은 관객들이 마형사의 타격감을 즐기려 극장을 찾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2Bw3gnfLJc&t=164s
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범죄도시2>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https://rabbitgumi.stibee.com/
Relative contents
-
-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신가요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사랑하고 계신가요?
사랑을 하고 계시다면 행복하신가요?
혹은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혼자인 시간들을 보내고 계실 수도 있겠네요.
요즘 예술 영화 보는 취미에 빠졌는데, 사랑을 하고 싶은 혹은 요즘의 사랑이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후기를 남겨봅니다.
작년 이맘때쯤 개봉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그때도 호불호가 갈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에겐 극호였고, 인생 영화로 등극해 버렸다. 어제 영화를 보고 아직까지 영화 리뷰를 찾아보고, 영화를 보다가 떠오른 질문들을 되새기고 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여주가 내 또래이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배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잠깐 봤던 예고는 내용도 그렇고 배경도 프랑스 영화 느낌이 강했는데 노르웨이 영화라고 한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배우의 당시 감정과 상황에 적합한 배경과 구도를 영상에 담아내는데, 영상미가 꽤나 뛰어나다. 뻔하지 않은 연출 또한 영화가 유명해진 데에 한 몫한 것 같은데, 2시간 정도의 영화가 12 part로 나누어져 흘러간다. 그 안에서 배우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세세하게 풀어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두드러진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다른 작품 델마와 오슬로, 8월 31일 도 좋다고 하는데 좋으면 리뷰해 봐야겠다.
억압된 감정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율리에
우린 인생의 단계가 달라
주체적이고, 똑똑한 주인공 율리에는 본인이 뛰어난 분야, 공부의 정점인 의사를 꿈꾸고, 그중에서도 목공을 하는 느낌일 것 같은 외과 의사를 진로로 정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본인과 맞지 않는 걸 깨닫는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정신과 의사를 꿈꾸지만 거식증에 걸린 동기들과 함께해야 된다는 것에 다른 진로를 찾는다. 그렇게 본인은 시각에 예민하다며 사진가라는 직업을 선택한다.
이 부분은 나를 포함한 요즘 세대라면 많이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누군가 이걸 하면 좋다더라, 이걸 하면 성공한다라는 것들은 내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직접 경험해 보면 나와 맞지 않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도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 번 선택한 직업을 쭉 유지하며 그 과정에서 만족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난 율리에와 비슷한 과정들을 겪어서일까 그녀의 선택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율리에는 사진 일을 새로운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당시 모델 남자친구와 간 파티에서 평생 잊지 못할 또 다른 사랑을 만나기도 한다. 둘은 첫 만남에 강한 끌림을 느끼고, 관계를 맺지만 율리에보다 15살이 많은 악셀은 서로의 인생 단계가 너무 다르다고 한다. 율리에는 아직 본인을 찾아가야 하는 시기이라며 만남을 이어가자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율리에는 그 말을 듣고, 악셀과 사랑에 빠지며 둘은 동거를 시작한다. 율리에가 사랑에 빠진 순간에 공감한다. 불완전한 나를 알아주고, 불안한 미래를 이미 겪어본 사람이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해줄 때, 사랑에 빠지지 않긴 힘들지 않을까?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아
그렇게 둘은 각자의 세계를 합치며, 행복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악셀은 본인의 가족의 휴가에 율리에를 초대하며, 가족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율리에는 악셀과의 가족과 어울리는 것도,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버겁기만 하다. 율리에는 그 이후 이 관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이미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악셀이 좋았지만, 그에게 맞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본인의 삶에서 그저 관중이 된 느낌이었다.
악셀의 행사가 끝난 후 공허함을 느끼는 율리에
악셀의 파티에서 나와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무작정 들어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파티. 그 안에서 율리에는 의사 행세를 하며 공허함을 채운다. 그러다가 이성적으로 강하게 끌리는 에이빈드를 만나게 되는데, 둘 다 연인이 있었기에 바람은 안된다며 선을 긋는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스킨십만 없을 뿐 누가 봐도 바람인 행동을 하며 밤을 새운다.
에이빈드와 헤어지고, 그와 보낸 하룻밤이 계속 생각나던 율리에. 악셀과는 다르게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고, 또래에 말이 잘 통한다 느꼈던 에이빈드. 그가 계속 생각나던 율리에는 결국 악셀에게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그를 떠난다.
예전에 우리처럼 대화 나눌 사람이 없어
그렇게 에이빈드와 열렬한 연애를 하던 율리에는 임신을 하고 마는데, 그 사실을 에이빈드에게는 말하지 않고, 악셀에게 찾아가서 고민 상담을 한다. 악셀은 심지어 얼마 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사실 영화에 표현된 주인공들의 감정과 스토리를 잘 알지 못하면 율리에는 최악의 사람이 맞긴 하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사랑할 땐 최악이 된다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악셀은 본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준다. 율리에는 본인이 이별을 고해놓고, 악셀 같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람이 없다며 후회 가득한 말을 한다. 미숙한 인간 그 자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율리에와 또래이고,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기에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갔다. 최악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들도 말이다. 나 또한 미숙한 사랑을 했었고, 앞으로도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진 모르겠다. 하지만 나보다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그녀의 선택들을 보며 깨달은 건 오래된 인연과 권태가 오더라도 그 와 사랑에 빠진 순간들을 잊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면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
-
- 평범함의 위대함이 담긴 따뜻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개봉 전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이 잘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어서까지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재능을 찾는 과정은 계속 이어진다. 그 무언가를 빨리 찾은 사람들은 그 길을 자신의 길이라 믿고 최선을 다해 그 능력을 배우려 노력하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그 능력을 이용한 직업을 찾아서 생활을 해나간다. 그 특별한 재능은 한 사람을 특정 짓는 것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을 찾는 과정은 삶에서 꽤 중요하고 어쩌면 그것을 찾는 과정 자체가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재능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성인이 될 때까지 특별한 무언가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많은 일 중에서도 자신이 좋아하고 할 수 있을만한 일을 찾는다. 그렇게 자신만의 직업이 생기고 그것을 해 나가지만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모습을 동경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팬이 되기도 하고, 그들과 가까워지고 힘이 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재능을 찾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모습을 꿈꾸지만 마음 깊숙한 곳엔 열등감이 싹트기도 한다. 그런 나쁜 생각들을 억누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부정적 감정은 겉으로 표출되기보다 안에 쌓여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기도 한다. 결국 그것을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은 자신 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나가는 것이다.
마법능력을 가진 마드리갈 가족의 이야기
애니메이션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개개인이 각기 다른 마법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마드리갈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특히 그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특별한 마법의 힘을 얻지 못한 미라벨(목소리:스테파니 비트리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마드리갈 가족은 할머니 아부엘라(목소리:마리아 세실리아 보테로)가 얻은 촛불의 마법 덕분에 모든 가족들이 각자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마법의 문을 열어 자신만의 능력을 얻는다. 미라벨도 그 시기가 되어 마법의 문 앞에 서지만 그에게는 마법이 주어지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의 능력은 다양하다. 미라벨의 엄마 훌리에타(목소리:앤지 세페다)는 음식으로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언니 루이사(목소리:제시카 다로우)는 힘이 세서 무엇이든 들고 옮길 수 있다. 또 다른 언니 이사벨라(목소리:다이앤 게레로)는 자유자재로 아름다운 꽃을 만들 수 있다. 그 밖에도 날씨를 조절하거나 작은 소리를 잘 듣고, 미래를 보는 등의 능력을 가진 가족들의 모습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실제로 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마드리갈 가족은 그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마드리갈 가족을 신성하게 여긴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미라벨이 등장할 때, 그의 모습은 그저 밝아 보인다.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노래와 함께 마드리갈 가족들이 가진 마법을 하나씩 설명할 때 그의 얼굴은 자랑스러움과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하지만 그가 특별한 마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의 표정은 아쉬움이 가득하고 실제로 미라벨의 표정도 작은 아쉬움이 보인다. 이내 다시 미소를 되찾고 자신의 가족들의 능력으로 충분하다는 미라벨의 말은 그가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는지 잘 보여준다.
가족 중 유일하게 평범한 미라벨, 그가 가진 감정
<엔칸토:마법의 세계>의 초반, 극을 이끄는 주된 감정은 아쉬움이다. 주인공 미라벨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영화는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은 마법에 대한 아쉬움과 약간의 열등감을 천천히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굉장히 낙천적이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건 미라벨이 가진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과 그가 가진 가족에 대한 사랑의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애니메이션 중반 이후 미라벨의 행동을 이끄는 건 아쉬움과 열등의 감정이라기보단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염려다.
마드리갈 가족의 집에 생기는 균열과 파괴는 미라벨에게만 보인다. 그 균열과 파괴가 왜 일어나는지, 왜 미라벨에게만 보이는지 같은 미스터리가 이 애니메이션이 가진 이야기의 동력 중 하나다. 이 단순한 미스터리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이 애니메이션 안에는 특별히 악당이라고 할만한 사람이나 얄미운 캐릭터가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적 긴장감이 끝까지 잘 유지된다. 특별한 악당 하나 등장시키지 않고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디즈니의 힘이 느껴진다.
애니메이션 초반 관객은 미라벨의 어려움과 아쉬움을 보게 되지만 각 가족 구성원들의 감정과 진심이 드러나게 되는 중반 이후에는 그들이 가진 감정과 고충을 알게 된다. 미라벨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알게 되고, 결국에 할머니가 가진 생각들까지 알게 된다는 측면에서 다르게 보면 가족의 감정을 알게 되는 어드벤처 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결국에는 각 가족 구성원들까지 세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 자체가 많다.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캐릭터는 총 12명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등장인물이 많기도 하다. 이들을 보다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각기 다른 색깔로 표현해 가족들의 특징을 뚜렷하게 담았다.
아름다운 색감과 음악으로 가득 찬 디즈니의 뮤지컬 애니메이션
무엇보다 <엔칸토:마법의 세계>는 화려한 색감을 가진 영화다. 각 가족 구성원들의 색깔을 다르게 구성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동물들과 건물들의 색감은 화려하다. 또한 뮤지컬 장면에서 등장하는 폭죽 장면과 축제 모습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디즈니의 다른 애니메이션인 <주토피아> 제작진들이 다시 모여 만든 영화라서 아름답고 화려한 화면이 돋보인다. 또한 이번 영화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6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한 지점이 있다.
오랜만에 등장한 뮤지컬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뮤지컬 장면과 음악들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기 뮤지컬 <해밀턴>의 작사/작곡/주연을 맡았고, 디즈니 <모아나> OST에 참여한 린 마누엘 미란다가 음악 작업에 참여하여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운드가 좋은 돌비 시네마에서 관람한다면 더욱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한 가족 구성원들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현대 확장된 가족의 의미로 해석해 볼 여지도 있다. 비록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고, 친구들과도 그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 구성원들 간에도 평범한 사람과 조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뉠 수 있기 때문에 가족뿐만 아니라 개인의 주변부로 이야기를 확대해도 충분히 공감 갈만한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심 캐릭터인 미라벨은 평범한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가 만들어낸 화합과 치유의 정서는 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어쩌면 이 영화는 평범함이라는 위대한 마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본 포스팅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하였습니다.
-
- 아날로그 감성을 풀어낸 관계의 이야기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다녀온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시사회. 영화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부터 윤여겨 봤던 마가렛 퀄리가 나온 작품이어서 이번에는 또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기대를 하며 보러간 작품이었다.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시놉시스
평범한 건 싫어요. 특별해지고 싶어요.
1995년 작가를 꿈꾸는 조안나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에 CEO 마가렛의 조수로 입사한다. 출근 첫날,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 샐린저의 팬레터에 기계적으로 응대하라는 지시를 받지만 조안나는 그들에게 진심어린 답장을 보내려고 한다. 자신을 좀처럼 봐주지 않는 회사에서 그녀는 점차 상사들의 눈에 들기 시작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점차 변화시켜나간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나에게 더욱 인상적이었던 작품
주인공 조안나는 작가 에이전시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 부분으로 시작으로 나는 이 영황에 빠져 들었다. 왜냐면 나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전시와 출판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래서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조안나를 보며, 그리고 신입으로 들어간 조안나는 보며 올해 처음 입사한 내 모습이 많이 떠올라서 감정 이입을 하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기계적인 답변을 달아야 할 때도 있지만, 회의와 미팅을 하며 자유롭게 어딜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본인이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재치있게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따뜻한 버전이 아닐까?
사수로 있었던 마가렛과 그녀의 조수 조안나. 이 둘의 관계를 보면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와 앤디 삭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란다는 앤디 삭스를 엄청 부려먹었다면 오히려 마가렛은 제대로된 일감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각각 앤디와 조안나가 회사생활을 하는 데 있어 실망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각각 잡지사와 출판업계에 있으면서 앤디와 조안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나셨고, 그 속에서 자신을 조금 더 회사에 맞춰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상사에게 시련이 닥치고, 그녀들을 보살피면서 그들에게 감동을 주고 둘의 사이는 점차 신뢰를 하는 관계로 이어진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점차 성장하던 이들은 이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다시 떠나는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가 비슷해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굉장히 결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조금 더 자극적이고 화려한 잡지사를 다룬 영화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와는 달리 차분하고 조용한 정서의 출판업계를 다룬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는 따뜻한 감성을 더 느낄 수 있었다. 1995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보니 그 아날로그한 감성과 아름다운 뉴욕의 가을 거리를 배경으로 그 따뜻함이 배가되어 다가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올바른 헤어짐이란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를 보면서 느낀 것은 헤어짐에도 예의가 있다는 것이다. 조안나는 버클리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친구를 불러 뉴욕에 놀러온다. 놀러온 뉴욕의 분위기가 자신과 맞다고 생각하면서 뉴욕 생활을 시작해버린다. 돈을 벌기 위해 그렇게 들어간 곳이 작가 에이전시였다. 하지만 이렇게 급하게 결정을 내리게 되면서 남자친구에게 제대로 된 이별을 통보하지 못한 채로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들게 된다. 그렇기에 전 남자친구는 조안나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런 조안나는 그 편지를 죄책감에 읽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
그러던 중 워싱턴 출장을 간 김에, 사실은 전남친이 초대해준 음악회에 가고자 워싱턴 출장을 자발적으로 임한 조안나는 그곳에서 전남친과 제외한다. 둘은 그저 우리 그만 만나자. 라는 간단한 말 한 마디면 됐을 일을 왜 그렇게 못했을까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 장면은 아마 조안나에게 가장 영향을 크게 준 장면일 것이다. 이러한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 조안나의 태도는 양쪽에 발을 담군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연락을 안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확히 헤어짐에 대해 이야기를 한 상태는 아닌 전남친과 현남친 사이에서, 작가 에이전시에서 일을 하며 시를 쓰고 싶지만 쓰지 않고 마가렛에게는 그저 조수로서 자신이 담당한 작가 제리에게는 작가로서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조안나의 모습을 자주 포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화 이후 조안나는 맺고 끊음을 정확히 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기분과 상태를 배려해주지 않는 현남친과의 관계도 확실히 정리하고, 우물쭈물 쓰지 못했던 시들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에 도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이전시에서 맡은 바 계약을 완벽히 처리하고 작가의 길을 가기 위해 마가렛에게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며 헤어짐의 인사를 당당하게 건넬 수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관계에서든 그 관계가 사람 사이이든, 물건이든, 상황이든 맺고 끊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같은 업계(?) 종사자여서 눈길이 더 갔고, 뉴욕의 분위기에 취해 뉴욕을 가고 싶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
- <봄밤> 심층 분석 2
첫번째 리뷰에서는 <봄밤>이 기석과 지호의 캐릭터 대비를 통하여 정인-지호 관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다루었다.
이번 리뷰는 봄밤의 타임라인을 따라가며 정인-지호-기석의 감정선 변화와 그를 담은 연출에 집중한다.
<봄밤>의 이야기의 배경은 놀랍도록 한정적이다. 약국, 도서관, 은행, 차 안, 집, 같은 산책로, 같은 카페와 식당.현실 속 사랑은 결국 일상을 기반으로 피어나기에 사랑에 빠진 우리의 삶은 정작 겉에서 보기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런 점을 표방하듯 <봄밤>은 화려한 로케이션이나 특별한 곳이 아닌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특별할 것 없는 장소들에서 피어나는 정인과 지호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시청자들은 숨을 죽인 채로 가만히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며, 마치 사랑에 빠져 들어가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보듬듯.
첫만남
정인과 숙취에 시달리던 날, 정인과 지호는 지호의 약국에서 약사와 (지갑을 가져오지 않은) 손님으로 처음 만난다.
지호는 정인을 처음 본 순간부터 정인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정인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소 융통성이 없는 정인이 평소엔 절대 하지 않을 행동 - "내 전화번호 줄까요?"- 을 한다. 지호는 대신 본인의 전화번호를 불러주고, 정인은 불러준 전화번호를 단번에 외우고는 놀라워한다.
후에 지호와 정인은 정인의 친구 아파트에서 다시금 우연히 마주치고, 바로 전 지호의 고백을 거절한 정인은 지호가 본인을 따라왔다 오해한다. 지호에게 역정을 낸 정인은 얼마 후 본인의 실수를 깨닫고 지호에게 연락을 한다.
연락을 받은 지호는 아파트 발코니를 통해 아파트를 떠나는 정인을 바라본다.
친구할래요?
그날 밤 정인과 지호는 밤의 약국에서 만나 서로의 속얘기를 털어놓는다. 친구하자는 정인의 제안을 지호는 거절하고, 정인은 떠난다.
지호는 정인이 두고 간 녹차잔 곁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다음날 정인이 기석을 따라 나간 기석의 농구동호회 경기에서 지호와 정인은 다시 만난다.
<봄밤>에서 '초반부의 설렘'을 담당하는 OST <Is It You>가 흐르며 봄밤의 첫화는 마무리된다.
정인-지호의 세번의 우연한 만남에서 연출은 집요하게 인물들의 시선을 좇는다.
첫번째 만남에서는 약국 바깥의 정인에게 관심을 갖는 지호의 시선, 두번째 만남에서는 아파트 발코니에서 정인을 바라보는 지호의 POV와 짧게나마 지호와 눈을 마주치는 정인의 시선. 세번째 만남에서는 불편해하면서도 신경이 온통 지호에게 쏠려있는 정인의 POV. 그에 담긴 정인과 스쳐가듯 눈을 마주치는 지호. <봄밤>은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추상적인 끌림을 시각화하여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정인의 시선 끝 지호]
기석의 농구 동호회 회식에까지 참여하게 된 정인과 재인. 정인은 화장실을 가러 잠시 바깥으로 나온 새에 지호와 아들의 통화를 들어버린다. 의도치 않게 지호의 사생활을 엿들어 버린 정인이지만 묘하게 싫지가 않다.
지호는 정인의 친구하자는 제안에 응하고,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된다.
혼란과 밀어냄
허울좋은 '친구' 라는 단어로 희미해진 선에 지호와 정인은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지호와 정인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통화를 하며 그런 자신들의 마음을 고백한다. 감정적 arc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자 3화의 하이라이트를, 카메라는 롱샷과 미디움 롱샷의 리버스를 교차해 가며 쌓아올린다. 둘의 얼굴 표정을 강조하는 타이트한 샷 대신 선택한 와이드한 샷구성은 장면이 과도하게 신파적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고,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는 두 주인공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서로를 향한 끌림을 참고 있는 둘의 속마음은, 표정보다는 그들의 경직된 자세에서 더욱 여실히 새어나오기 때문이다. 정인과 지호 사이에 위치한 횡단보도라는 물리적 제약 또한 와이드한 샷에서 큰 존재감을 발휘하며, 둘 사이에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있음을 시각화한다.
카메라는 지호가 돌아간 후 술집으로 돌아온 정인을 시퀀스에서 유일하게 미디움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내내 감정을 절제하다 지호가 사라진 뒤에야 아픈 마음을 드러내는 정인의 씁쓸한 표정이 강조되며, 시청자들은 정인의 혼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드라마 초반부 정인과 지호의 사이에는 언제나 물리적인 벽이 존재한다. 유리창, 횡단보도, 도서관의 책장. 둘 사이의 제약을 시각화하는 물체들]
다가감
처음에는 정인이 지호를 밀어냈다면, 둘의 혼란이 가중된 이후부터는 지호가 정인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정인은 결국 애틋함을 이기지 못한 채 지호의 집에 찾아가 모진 말을 쏟아내는 지호의 입을 막고 울음을 터뜨린다. 놀란 지호는 함께 저녁을 먹자 청하고, 둘은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
둘이 자주 만나는 카페에서 지호는 정인에게 힘들어도 본인을 밀어내라 말한다. "정인 씨가 너무 아까워서" 본인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말하는 지호를 정인이 바라보는 순간, 카페에서 배경 소음으로 흐르던 <We Could Still Be Happy>는 non-diagetic world 로 넘어와 이야기 바깥에서 흐르기 시작한다. 정인-기석과의 관계에서 매번 아깝다는 평가를 듣는 것은 기석이었지 한번도 정인이었던 적이 없다. 본인이 '을' 로 평가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정인이 본인의 존재를 가치있게 여기는 지호에게 다시금 세게 동요하는 순간을, <봄밤> 은 배우들 간의 시선과 음악으로 전달한다.
지호에게 다가서는 정인을 겨우내 독한 말로 밀어낸 지호지만, 정인 집 앞의 지호를 발견한 재인의 강요에 얼떨결에 정인의 집을 방문한다. 멀어지려던 둘의 거리는 지호가 정인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함으로서 다시 가까워진다. 직장이나 카페같이 공적인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던 둘의 교류가 집이라는 온전히 사적인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재인, 영재, 지호와 정인 네 명의 인물들의 대화 중간중간 편집된 정인과 지호의 dirty(Dirty shot: 피사체 인물 이외의 다른 인물의 신체부위를 걸고 찍는 샷) 미디움 클로즈업 샷은 그들만의 비밀스런 기류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관계의 긴장감을 표면화한다. 지호와 더 가까워지기로 결심한 정인은, 같은 날 밤 지호의 앞에서 기석에게 이별을 고한다.
[화면에 걸친 서로의 존재]/출처 넷플릭스
[기석에게 이별을 고하는 정인 --> OVS 로 정인의 신경이 향하는 곳이 지호임을 표명하는 동시에 지호에게 가기로 한 정인의 굳은 결심을 드러낸다]
지호-정인의 관계가 시청자들에게 설득력을 얻는 순간
일련의 사건을 지나 정인과 지호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정인 또한 기석과의 관계를 정리하려 온 힘을 다한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가슴 한구석에는 여전한 찜찜함이 남는다. 그는 누군가의 연애가 끝나고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을 보는 일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떳떳하지만은 않게 시작한 정인과 지호의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정인-지호의 관계 진전 이후 <봄밤>이 넘어야 할 산은 바로 시청자들의 그 '찝찝함'을 없애는 것이다. '너네의 사랑은 앞에 버리고 온 사랑과 뭐가 그리 다른데?' 라는 시청자들의 의문을 해결하는 것. <봄밤>은 16화 드라마에서 가장 결정적인 회차인 9화(8화 혹은 9화는 16화 드라마의 꽃으로 불린다)의 전체를 이 질문에 답하는 데에 할애한다.
9화 (32부작 기준 17, 18화) 에서 지호와 정인은 같은 날 각자의 부모님께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지호에게 정인은 자신을 '그냥 유지호'로 보아준 유일한 사람이며, 정인에게 지호는 자신이 꿈꿔오던 '따뜻한' 사람이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사랑에 빠진 이유가 설명되지 않아 둘 관계의 정당성이 흐릿했다면, 지호와 정인이 타인에게 상대를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시퀀스를 통해 둘의 관계성은 비로소 윤곽을 드러낸다.
둘의 관계성을 확립한 후 바로 이루어지는 데이트 시퀀스는 그래서 다른 데이트 시퀀스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세상의 시선 혹은 주변인들에게 위축된 채 '을'로 살아왔던 두 사람은 꿈꿔왔던 사람인 서로의 앞에 설때 비로소 편안하고 당당한 본연의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데이트를 끝내고 나오던 정인과 지호는 둘의 데이트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석과 마주친다. 삼자대면 엔딩에는 항상 대립 상황을 대변하던 <No Direction> 이 아닌 <We Could Still Be Happy>가 엔딩곡으로 쓰인다. 드라마를 닫는 샷 또한 세명을 모두 잡은 마스터가 아닌 정인과 지호의 2 shot - LS 이다. 이는 정인-지호/기석의 대립을 강조하는 대신 정인과 지호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엔딩으로, 데이트 시퀀스 앞에서 윤곽을 그린 그들의 관계성을 선명히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9화의 연출을 통해 정인-지호의 관계의 필연/정당성은 비로소 시청자들에게 가닿고, 엔딩 시퀀스에서 We Could Still Be Happy 가 흘러나오는 순간, 시청자들은 그들의 행복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깊어지는 지호와 정인의 관계, 옅어지는 기석의 확신
지호와 정인의 관계성이 확립되고 둘 사이의 확신이 짙어지며 카메라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인물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12화 (32부작 기준 23,24화)에서 정인이 지호와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을 슬쩍 내비칠 때, 카메라는 통화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이처럼 회차를 거듭하고 둘의 관계가 깊어질 수록 대화 씬 리버스샷에서 카메라의 구도는 점점 타이트해진다. 이러한 카메라의 개입은 14화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정인과 지호가 "죽을 때까지 상대방을 기억해주기"라는 약속을 할 때, 카메라는 dolly-in으로 통화하는 정인의 모습을 담는다. 이는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카메라가 존재감을 피력하는 순간으로, 점점 농도가 짙어지는 정인의 사랑을 시각화한다. 회차를 거듭할 수록 짙어지는 화면의 분홍색도 같은 역할을 한다.
믿음을 쌓아가는 지호-정인과 달리 회차를 거듭할 수록 기석은 이성을 잃어간다. 기석이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정인에게 막무가내로 프러포즈를 한 후부터 기석-정인-지호가 대립하는 씬에서 카메라는 기석의 샷은 약간의 high angle로, 정인-지호의 샷은 약간의 low angle로 촬영한다. 서로에 대한 확신을 얻은 지호-정인은 힘을 얻고, 점점과 이성과 확신을 잃어가는 기석이 열세에 놓였음을 카메라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봄밤>이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서로에 대한 확신과 사랑, 그리고 그를 통해 얻은 믿음이 주는 힘' 의 테마를 영상적으로 뒷받침한다.
수미상관
<14화>
지호와 정인이 처음 서로의 약점을 내보이던 밤의 약국. 후반부 공식적인 연인이 된 그들은 비슷한 시간대, 같은 곳에서 또다시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지호는 정인에게 처음으로 본인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고, 정인 또한 지호의 말에 귀기울인다.
또, 초반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건너오지 말라' 며 애닳아하던 둘은 이제, 횡단보도를 건너 망설임없이 서로의 품에 안긴다.
<마지막화>
정인은 지호의 약국에 찾아가 장난스레 '술 깨는 약을 달라' 말한다. 바깥의 요란한 공사 소리가 둘의 대화를 방해하지만, 이번에는 지호와 정인 둘다 장난스레 웃음짓는다. 공사 소리 때문에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해 애닳아 하던 과거와 대비되는 순간이다.
겨울 막바지의 눈에서 시작한 둘의 마음은, 벚꽃이 만개한 봄밤을 지나 어느 여름밤에 도달한다. 달라진 계절과 달라진 지호-정인의 관계가 같은 배경에서 수미상관으로 끝을 맺을 때 시청자들은 비로소 체감한다. 또 한편의 눈부신 이야기가 끝이 났음을.
-
- 1승 | 엉성한 토스와 힘이 부족한 스파이크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도자 생활 내내 10% 이상의 승률을 기록한 적이 없는 배구 선수 출신 감독 '우진'(송강호). 아내와도 이혼하고 맡은 팀도 없던 그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해체 직전의 프로 여자배구단 ‘핑크스톰’의 감독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 에이스 '성유라'가 이적하면서 오합지졸이 된 팀이지만, 우진은 기꺼이 감독 제의를 받아들인다. 1년만 버티면, 대학 배구팀 감독으로 옮겨주겠다는 이면의 약속과 함께.
의욕 없는 감독과 실력 없는 선수들이 만나 개막 후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한 핑크스톰. 하지만 자기 선수 생활을 망친 '문오성'(김홍파) 감독에게 조롱을 당한 뒤 우진은 마음을 고쳐 먹는다. 악연인 스승 앞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겠다고. 이에 발맞춰 안하무인 구단주 '정원'(박정민)도 핑크스톰이 1승을 하면 상금 20억을 풀겠다는 파격 공약을 걸자, 우진은 단 한 번이라도 이기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잘못된 비빔밥
대부분의 상업 영화가 그렇지만, 특히 스포츠 영화는 모범답안이 확실하다. 서사적으로는 전력이 약한 팀이나 선수가 기대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초반 훈련 과정은 유머로, 후반부에는 감동으로 풀어내는 식이다. 국내에서는 <국가대표>가 가장 대표적이다. 작년에 개봉한 이병헌 감독의 <드림>이나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도 비슷한 결의 영화다.
캐릭터는 감독과 선수가 핵심이다. 균형추가 한쪽으로 쏠릴 때도 있지만, 감독과 선수는 대체로 서로의 아픔과 상실감을 위로하며 한 팀으로 거듭난다. 근래에는 <머니 볼>이나 <스토브리그>처럼 단장, 구단주 등이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한다. 스포츠 경기 대신 스포츠 산업 종사자의 이야기를 다룬 <에어> 같은 영화도 유사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신연식 감독의 <1승>은 스포츠 영화의 공식과 트렌드를 모두 반영하고자 했다. 오합지졸 배구 감독과 선수를 묘사한 대목은 <드림>과 같은 웃음을, 그들이 한 팀이 되어 마침내 승리를 거두는 모습은 <국가대표>나 <우생순>과 비슷한 감동을 목표로 한다. 구단주가 새로운 목표에 맞는 팀을 재조직하는 과정은 <스토브리그>를 만화적으로 변형한 듯하다. 문제는 이 모든 요소가 따로 놀면서 서로의 맛을 해치고 있다는 점이다.
웃기 힘든 코미디 영화
<1승>의 초반부는 코미디를 지향한다. 구단주의 인수 사가, 단기 감독 임명, 의지 없는 선수의 조합만 놓고 보면 누가 보더라도 코미디다. 팀 내에서 쏟아져 나오는 갈등과 문제 역시 그 재료로서 적합하다. 코칭스태프와의 어떤 논의도 없이 에이스나 가장 안정적인 포지션 선수만 팔거나, 징계받은 선수를 대거 영입하고, 현금 트레이드를 하는 등.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기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런데 <1승>은 뻔뻔함이 부족하다. 코미디나 만화적인 전개로 빠지려는 찰나에 톤을 다운시키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우진의 서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1년만 프로 감독직을 맡은 후 대학 배구팀 감독으로 넘어가려는 속물로 묘사된다. 그런데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나올 때마다 영화는 우진과 스승과의 악연, 전처와 딸과의 미묘한 관계를 거듭 삽입하면서 웃음이 나오려는 분위기를 끊어버린다.
선수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폭행을 저질렀던 선수, 마흔이 된 베테랑 선수, 분노 조절 장애 선수, 일본 교포 출신 용병 등 각자 사연이 있는 문제아들은 훌륭한 유머 재료다. <드림>만 하더라도 노숙자 축구 선수들의 개인사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서 더욱 뭉클하게 표현한 바 있다. 하지만 <1승>은 이 모든 선수들을 단지 과거 팀의 에이스였던 성유라와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소비하면서 여러 가능성을 스스로 제약한다.
즉, <1승>은 만화적인 분위기를 밀어붙이는 뚝심이 부족하고, 다양한 캐릭터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했다. 꾸준히 비정상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정원 정도가 예외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나머지 인물들은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 성급하게 대사를 한다. 이는 코믹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도 장애물이 된다. 뻔한 유머 포인트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으니, 큰 웃음이 나오기 어렵다.
목적이 결여된 1승
중반부 이후에 톤이 완전히 바뀌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그토록 1승을 염원하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 일반적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려면 감독이나 선수가 진심으로 1승을 원하게 되거나, 서로 다른 생각을 하던 그들이 한 팀으로 거듭나게 되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국가대표>에서도 선수와 코치 모두 각자의 개인사나 비밀을 털어놓은 후에야 한 팀이 됐다. 그런데 <1승>에서는 그 전환점이 잘 안 보인다.
그래도 구단주와 감독의 목적은 유추할 수 있다. 정원은 일관적이다. 그는 문제아만 모이는 꼴등 팀이 1승을 챙겨서 반전 드라마를 썼다는 스토리텔링을 티켓 판매에 적극 활용한다. 우진의 변심도 어느 정도 근거가 보인다. 자리만 지키자는 생각을 하던 그는 고등학생 시절 선수 생활을 망쳤던 스승에게 패배한 후 조롱 섞인 비난을 듣는다. 이에 그는 어떻게든 1승을 챙겨서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는 욕구로 무장한다.
문제는 선수들이다. 적당히 연봉만 받자는 태도를 보여주던 선수들은 우진의 일갈 몇 마디에 갑자기 훈련과 경기에 몰입한다. 그 계기는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를 받고 싶어하는 몇몇 유망주를 제외하면, 선수들이 왜 1승을 원하는지를 좀처럼 알 수 없다. 성유라 관련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 결과 <1승>은 마지막까지도 각 캐릭터의 플롯이 하나의 목적지에서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스포츠 영화' 중 '스포츠'는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승>은 끝까지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 매는 힘이 있다. 바로 배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힘이다. 실제로도 배구 경기 양상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구현하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물론 초중반까지는 배구 경기가 흥미롭다고 하기 어렵다. 선수들 자체의 실력 문제가 있다 보니 경기 장면은 맥 빠지기 일쑤다. 하지만 후반부부터는 박력 넘치고, 쫄깃한 경기 장면이 등장하면서 보는 맛도 덩달아 살아난다.
특히 그래픽과 촬영분을 적절히 배합해 가능한 코트 위에서의 긴장감과 박진감을 재현하려 한 시도가 눈에 띈다. 특히 배구공에 카메라를 달은 시점에서 코트 양쪽을 10번 이상 오가는 랠리를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마치 <챌린저스>에서 테니스 공에 카메라를 단 시점으로 테니스 경기를 보여준 것을 연상시킨다. 배우들의 어설픈 움직임도 감출 수 있는 영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특정 배구 용어와 작전이 어떻게 코트 위에서 펼쳐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연출도 흥미롭다. 사실 해당 스포츠의 열성적인 팬이 아니라면 경기 도중에 전술, 전략적인 측면을 알아챌 눈썰미를 갖추기 어렵다. <1승>은 관객의 눈썰미까지 보충해 주면서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특정 선수 교체 타이밍, 서브 공격 작전, 후위 공격과 속공 활용 시점, 포지션 변경 이유 등을 짚어주는 식이다.
그 덕분에 드라마가 공감되지 않거나, 유머 포인트가 웃기지 않더라도 <1승>은 결말은 일정 수준 이상의 감동을 보장한다. 1세트, 1점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마지막 두 세 경기 양상을 쫓다 보면 승리를 향한 집념에 자연히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영화의 힘이라고 볼 수 없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퀸의 라이브 에이드 무대를 재현했을 때의 전율을 두고 영화보다는 퀸의 노래 덕분이라는 말이 나온 것과 비슷하다.
세대교체?
배우들 상반된 모습도 특이점이다. 박정민은 다시 한번 가치를 증명했다. 자칫 유치하거나 과장되어서 어색할 수도 있는 만화적인 캐릭터에 최소한의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배우 본인이 인터넷 방송에 익숙해서인지는 몰라도, 최근 한국 영화에서 개인 방송 화면이 등장할 때 느껴지는 위화감도 최소화했다. 만약 정원을 중심으로 더 유쾌하게, 끝까지 B금 감성을 유지했다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반면에 지난 20여 년 간 국민 배우였던 송강호의 선구안은 이제 의문스럽다. 물론 <1승> 속 모습만으로 그의 연기력을 비판할 수는 없다. 애초에 그에게 주어진 우진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인물이니까. 과거의 상처 때문에 속물처럼 살던 감독이 어릴 적 열정을 되찾는 서사는 스포츠 영화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클리셰다.
다만 <기생충> 이후 <나랏말싸미>, <브로커>, <비상선언>, <거미집> 등 송강호가 명성에 걸맞은 완성도를 갖추거나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디즈니+의 <삼식이 삼촌>도 다른 OTT 시리즈에 비하면 반향이 크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1승>은, 아무리 개봉일에 국가적 불상사가 겹쳤다 하더라도, 송강호가 믿고 보는 배우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표를 남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Poor 형편없는
우격다짐, 뒤죽박죽으로 간신히 챙긴 승리
-
- 직업에 귀천 없듯 액션 연기에도 마찬가지
연애도 스턴트맨처럼 하면 어떡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스턴트맨 콜트(라이언 고슬링)이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배우 콜트. 콜트는 좀 특별하다. 바로 스턴트맨이다. 몸값이 비싼 할리우드 배우들의 대역으로 액션 연기를 대신하는 콜트. 하지만 이런 콜트도 사람이다. 옆구리가 시린 콜트. 마땅히 기회(?)가 없으니 그냥 소같이 일만 한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사람은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 조디(에밀리 블런트)다. 영화 제작 스태프의 일원이었던 조디. 조디와 콜트는 서로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린다. "끝나고 뭐 해요?" 작업 거는 콜트. 조디와 콜트, 서로 사랑하기 5분 전이다. 마지막 액션 신만 찍고 나면 1일 시작이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했다. 허리를 크게 다친 콜트. 위축된 자신의 처지에 자존감이 급락한 콜트는 이내 잠수이별을 고한다. 화가 난 조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콜트가 잘 아는 제작자(해나 매딩엄)가 콜트에게 전화를 건다. "일자리가 들어왔는데. 조디가 감독인 영화야. 팀에 들어올래?" 신발도 안 신고 맨발로 뛰어나갈 기세다. 신난 콜트. 하지만 콜트에겐 문제가 생겼다. X를 구하려다 X 되게 생겼다. 영화 하나 찍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인가?
고추장 고사리 콩나물 시금치
이 영화를 장르적으로 구분한다면 액션/로맨스물이지만 내실을 따져보면 다양한 재료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선택은 영화의 이야기 줄거리 외/내적으로 좋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외피로 두르고 있는 로맨스/액션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의 흐름 상 콜트와 조디의 로맨스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사건의 배경이 두 남녀의 첫 만남이 있었고 콜트가 어떤 사건을 겪고 느닷없이 잠수를 탄다. 이후 ‘잠수를 탔기 때문’에 쌓여있는 인물 간의 오해가 이야기에서 중요하다. 이 오해를 풀고 싶은 것이 콜트의 핵심이다. 그냥 단지 ‘직업이 스턴트맨이니까’라고 보기엔 중반부 찍고 넓어지는 이야기를 감당하지 못하니 영화가 안전장치를 둔 것이다. 심지어 중후반부를 보면 영화의 로맨스적인 특성을 대놓고 드러내기도 하는데 허무맹랑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넓어지는 플롯을 로맨스라는 장르적인 특성으로 연결했다. 쉽게 말해서 '그래!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있으니까!'로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야기 상에서 액션이 등장하는 이유도 필연적이다. 직업이 스턴트맨이니까 액션을 보여주는 과정이 당연하다? 물론 제목과 직업에 대한 부분도 크게 작동하지만 중구난방으로 튈법한 영화 속 사건을 잇는 장치가 액션이 된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 이 <스턴트맨>은 영화를 만드는 영화다. 이런 플롯을 설정한 이유?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과정을 보여주면 당연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지? 이 과정에서 스태프들의 노고도 나오고 영화감독과 제작자 사이의 관계도 재미있게 그려진다. 하지만 그중에 더 중요한 것. 이 영화의 제목은 ‘스턴트맨’이다. 스턴트맨은 일종의 대역으로서 액션 연기를 대신하는 존재다. 그러면 영화 안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연기를 하든 뭘 하든 이 직업군들에겐 중요한 제약이 있다. 이 배우들의 목숨은 하나고 역시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 점을 보여주려면 ‘목숨이 하나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지? 그러려면 액션이 들어가는 것이 필연적이다. 연기로 몇 겹을 쳐도 목숨이 하나인 걸 두각한 연출을 보여줬다. 단순히 눈요깃거리로 장르를 소비한 것이 아닌 셈이다.
이 영화의 장르적인 내실을 까보면 온갖 것이 섞여있는 영화 전주비빔밥이라고 볼 수 있다. 글쓴이가 각본을 잘 썼다고 느끼는 지점 중 하나인데 이 영화의 핵심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할리우드의 역사를 영리하게 훑으며 긴 시간 동안 있어왔던 ‘스턴트맨’의 존재를 비추고 있다. 이것은 영화의 핵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 왜? 할리우드가 어떤 장르를 만들든 간에 스턴트맨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이 부분을 강조하듯이 호러, sf, 코미디, 미스터리, 애니메이션, 판타지 등등 여러 장르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포용한다. 그리고 스턴트맨 콜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결하니 안 본 분들 입장에서도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거친 부분이 있다. 긴 시간 동안 존재해 온 어떤 집단의 사람들을 2시간으로 압축시킨다? 당연히 매끄럽지 못하다. 이 부분은 영화의 호불호가 될 수 있다. 가령 주인공의 중요한 과제 톰 라이더를 찾는 부분에서 좀 불필요하다고 생각할만한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소재는 영화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것을 해결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어떻게’에 대해 생각해 보시라고 하고 싶다. 사실 이 영화는 그 이질감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콜트가 직접 겪는 개고생이 영화의 역사가 앞으로 계속 진보되어도 잊히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참기름도 있다구
이 영화는 또 오마주로 가득 찬 영화이기도 하다. 왜 오마주가 필요했을까?를 써보자면, (위에도 쓴 내용이지만) 현재를 넘어 과거의 스턴트맨에 바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의도야 충분히 좋다. 하지만 스턴트맨’만’ 중요하다고 하면 그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에 있어 우선순위가 부여된다면 영화감독이 직업인의 윤리에 있어 어긋나는 행동일 수도 있다. <스턴트맨>은 예전 영화들을 끊임없이 호명함으로써 연출가로서의 윤리를 살렸다. 스턴트맨의 헌신도 물론이지만 그만큼 노력했던 선배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턴트맨 출신이었다가 영화감독이 된 감독의 당사자성을 살려 이야기를 만든다면 "왜 내가 스턴트맨에서 영화감독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충분히 들어갈 만했는데, 이 영화의 감독이 좋아할 만한 장면을 오마주 했으니 만드는 사람의 진정성이 오롯이 드러나는 좋은 선택이었다.
이런 특징을 살려 영화에는 한 페이지로 적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오마주들이 들어가 있다. 어느 단계에서 어느 장면이 오마주다!라고 쓰면 영화의 재미가 급감하기 때문에 대략적으로만 서술해 본다. 영화 첫 번째 장면이 콜트가 스턴트맨 일을 하다가 사고를 겪는 장면이다. 이 장면 보면 <미션 임파서블> 1편이 연상된다. 그리고 영화 안 극중극은 콜트 역의 배우 라이언 고슬링이 맡았던 영화 중 어느 작품을 연상되게 한다. 시각적인 부분도 이 장르의 역사에서 이것저것 가져온 듯한 걸로 이루어져 있다. 또 조디라는 인물 역시 할리우드의 누군가가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은 연출로 중요하게 강조시키는데 오마주한 인물이 할리우드에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영화가 할리우드의 현재를 보여주려고 했던 의도가 보인다.
<거미집>과의 공통점, 차이점
이 영화와 함께 보면 좋은 작품은 작년에 개봉한 <거미집>이다. <거미집>의 서양판이 이 <스턴트맨> 같을 정도로 공통점이 있다. 우선 주인공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김열/조디)이라 그 내용이 전적으로 들어갔다는 점, 시대적인 맥락(1970년대/2024년 현대의 할리우드)이 들어간다는 점이 그렇다.
이 공통점의 내밀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거미집>의 김열(송강호)과 <스턴트맨>의 조디가 만드는 창작의 의미가 각각의 영화 안에서 표현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가령 <거미집>에서 김열이 방구석에서 보여주는 모든 장면은 이상의 ‘날개’가 연상될 정도로 개개인의 욕망을 더 깊숙하게 투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 안의 이야기를 만드는 건 김열이 촬영장의 리더로서 겪는 온갖 개고생이 핵심이다. 웃음도 여기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은 전미도(전여빈)이다. 전미도는 김열의 창작을 지원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미도가 풍기는 광인의 포스는 이야기가 미진하다고 느낄 즈음에 등장해서 영화를 이끈다. 반대로 <스턴트맨>의 조디가 만드는 영화는 후반부의 장면이 인물들의 상황과 겹치는 되는 지점이 있다. 심지어 기존 영화들의 오마주를 그대로 활용해서 인물의 내면과 감정적인 하이라이트가 겹쳐지게 하는 장면까지 있다(심지어 제목으로도 나온다). 이 장면은 영화 안의 로맨스를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 와도 닿아있다. 어느 장면을 넘어서 영화와 현실이 무너지는 분기점이 있는데 이 부분은 감독이 의도한 바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에게 영화는 현실의 업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둘째로 시대적인 맥락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공통점을 읽을 수 있다. 전자 <거미집>에선 1970년대의 맥락이 등장한다. 당시 김열이 직면한 여러 애로사항 중 하나는 당시 행정부가 예술가들에게 제약을 둔다는 것이다. 이 장애물은 스트레스 한가득이었던 김열의 창작물에 장애물이 되며 인물의 고통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거미집>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기억할 카메오가 나오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을 보면 그 모든 속박보다 창작자에게 깊고 크게 다가오는 장애물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왜? 이 장면이 일어나는 전후맥락에는 문공부라는 시대적인 맥락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장면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카메오가 김열에게 창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장면이다. 시대적인 맥락이 없다면 이 장면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장면을 어떻게 구성하느냐? 에 대한 문제를 시대적인 맥락도 가져와 보충한 것이다. 하지만 <스턴트맨>은 이것과는 살짝 다르다. 이 영화에는 2020년대 할리우드에 있던 사건 중 가장 인상 깊은 스캔들이 등장한다. 또 특정 소재는 2024년의 현대사회를 암시하는 듯하다. 이 두 요소가 왜 굳이 등장했을까? 바로 2024년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들 너희들 봐라!라는 의미다. 영화 외적인 요소를 굳이 안으로 가져와서 이야기의 구분선을 흐린 것이다. 이런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타겟을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리얼리티를 높인다. 사실 이렇게 영화가 외적인 맥락과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병치시켜서 우리에게 와닿게 설정했다는 것 자체는 흔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왜 스턴트맨일까? 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 나오는 영화배우의 노고에만 감탄하며 액션영화를 보곤 하지만 이들 아래에 수많은 스턴트맨이 있었다. 스턴트맨에서 스턴트 하다 다치면 영화 내적인 사건이 외적으로 향한다고도 볼 수 있다.
얼버무리고 넘어가
이 영화의 단점은 너무 많은 걸 보여주려고 했다는 점이다. 스턴트맨에 대한 헌사도 보여줘야 하고. 성공한 덕후가 된 감독의 덕질 역사도 보여줘야 하고. 주인공과 관련한 메인 플롯도 보여줘야 하고. 조디가 영화 만드는 이야기도 보여줘야 하고. 현재의 할리우드도 묘사해야 한다. 적어도 이 모든 게 하나의 이야기가 되게 하려면 희생돼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어떤 조건 몇 개는 생략해야 한다는 점이다. 글쓴이는 초반 조디와 콜트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이 부분을 느꼈다. 단지 그럴 수도 있다고 느끼면 크게 무리는 없다. 하지만 이 장면을 더 길게 늘여도 이야기 흐름에는 큰 문제없지 않았을까? 투박한 이야기 이음새가 인물의 동기를 더 공고히 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졌다.
또 어떤 두 캐릭터는 이 영화의 기획의도에 의해 희생됐다고 생각한다. 아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캐릭터들은 아니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배경은 나름 합리적이고 꼼꼼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만 있다면 가능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 충분하다. 하지만 이 인물이 엄청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냥 영화의 핵심만을 전달해 주는 분량만 있었다. 이 부분은 <스턴트맨>의 뒷맛을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그 장면에서 그게 꼭 들어가야 했을까? 사실 그게 굳이 아니더라도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다 전달하지 않았을까?
-
-
- 나쁜 부모밑에서 자란 귀여운 천재소녀 마틸다(결말포함 영화리뷰)
영화 마틸다 입니다.
결말포함 영화리뷰 추천영화 가족영화 입니다.
-
- 영화 <침범> 메인 예고편
2025년 가장 밀도 높은 심리 파괴 스릴러 #침범 3월 12일 개봉 확정 & 메인 예고편 공개👥 #somebody #곽선영 #권유리 #이설 #기소유 #심리파괴스릴러 #3월12일극장대개봉 #스튜디오산타클로스 #studiosantaclaus
-
- 넷플릭스 <웬즈데이> 시즌 2 공식 티저 예고편
그녀가 돌아왔다. 《웬즈데이》 시즌 2의 첫 공식 티저 예고편을 시청하세요. 8월 6일 파트 1, 9월 3일 파트 2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