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5-13 04:10:27
신선하고 발칙한 상상력,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오늘의 영화는 바로,
신선하고 발칙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입니다.
ⓒ 네이버 영화
정보
개요 드라마 | 한국 | 19분
감독 정가영
출연 정가영 등
줄거리
영화감독 가영은 조인성을 캐스팅하고 싶다. 아직 시나리오는 없지만.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의 T.M.I
ⓒ 다음 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속 조인성 ?
조인성 배우가 캐스팅 된 과정은 영화와 비슷하다. 정가영 감독은 소속사에 시나리오를 보냈고,
조인성 배우가 직접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출연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게다가 조인성 배우는 영화에
노 개런티로 출연을 했다고 한다.
촬영 날 감독과 통화 하면서 음성을 동시 녹음을 했는데, 조인성 배우가 네 번의 테이크를 가면서 각 테이크마다
다른 애드립을 해줬다고 한다.
"신선하고 발칙한 상상력"
ⓒ 네이버 영화
연출자라면 누구나 꿈 꿔 봤을 상황. 그러한 상상이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이 영화로 실현이 되었을 때,
그 쾌감이 얼마나 컸을까.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정가영 감독의 신선한 상상력에 더해 발칙한 대사의 향연이 영화의 매력을 배로 늘렸다.
"한정적이지만"
ⓒ 네이버 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를 보면 여러 방면에서 한정적인 요소가 많이 눈에 띄었다.
한정적인 공간, 한정적인 매개체, 한정적인 인물 등,
정가영 감독은 이러한 한정적인 요소에서도 다채로운 영화를 보여주었다.
19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 원 로케이션을 통해 한 사람의 이야기를 몰입감 높게 전개했다.
"자연스러움"
ⓒ 네이버 영화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러한 생각이 들곤 한다. '이거 진짜 연기인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대사, 그리고 그 대사를 하는 연기톤 모든 게 너무 실제 같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 제목처럼 조인성 배우에게 빠져들게 되겠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정가영 감독의 팬이 될 것이다.
정가영을 좋아하세요
"이런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 짧지만 강렬한 영화를 찾고 있다?
-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를 찾고 있다?
- 엄마 미소를 짓게 만드는 영화를 찾고 있다?
신선하고 발칙한 상상력이 가득했던!
지금까지 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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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ria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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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서 허우적대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블립 이후 PTSD에 시달리기 시작하자 '닉 퓨리'(새뮤얼 L. 잭슨)는 우주 방공 시스템 'S.A.B.E.R.'로 숨는다. 하지만 그가 우주에서 마음을 달래는 사이, 지구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퓨리가 새 집을 찾아주겠다는 30년 전 약속을 배신했다고 판단한 스크럴이 인류를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
새로이 스크럴 저항군의 리더가 된 '그래빅'(킹슬리 벤아디르)은 인류를 절멸할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고, 지구는 제3차 세계 대전 직전에 빠진다. 그 사이 퓨리의 절친 '탈로스'(벤 멘델슨), 아내 '프리실라'(샬레인 우더드), 그리고 탈로스의 딸 '가이아'(에밀리아 클라크)는 목숨을 위협받는다. 이에 퓨리는 마침내 지구로 돌아온다. MI6 국장 '소냐'(올리비아 콜먼)의 도움을 받아 그래빅을 막기 위해서.
닉 퓨리도 구하지 못한 MCU
MCU가 위기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정도를 제외하면 '마블'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흥행도, 비평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앤트맨: 퀀터매니아>로 막을 올린 페이즈 5도 표류 중이다.
디즈니+ 드라마도 반응이 안 좋다. <완다비전>, <호크아이>, <팔콘과 윈터솔져> 등 익숙한 히어로가 등장한 작품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변호사 쉬헐크>, <미스 마블> 등 새로운 캐릭터를 소개하는 작품은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연계도 악수가 됐다. 드라마를 보지 않으니 시리즈에 연계된 영화 역시 자연히 흥미가 떨어진다.
MCU는 여전히 두 리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셈이다. 이에 마블은 아끼던 카드를 꺼냈다. <엔드게임> 이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만 잠시 모습을 비춘 닉 퓨리가 첩보 드라마 <시크릿 인베이젼>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어벤져스 프로젝트의 기획자도 MCU의 구세주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시크릿 인베이젼>이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인간 닉 퓨리를 보다
<시크릿 인베이젼>을 <변호사 쉬헐크>, <미스 마블>과 같이 분류하면 닉 퓨리 기분이 꽤 나쁠지 모른다. '닉 퓨리'가 주인공이라는 개성과 재미만큼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퓨리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나 <캡틴 마블> 정도를 제외하면 언제나 조연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항상 베일에 가려 있었다. <시크릿 인베이젼>은 MCU가 10년이 넘도록 감춘 인간 닉 퓨리를 보여준다.
퓨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약하다. 동료들을 잃고, 나이가 들었다. 그는 지키지 못한 30년 전 약속에 짓눌린다. 자기가 초래한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도통 갈피를 못 잡는다. 그는 아내와 친구 등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찾아가 도움을 구한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그의 결점과 인간적인 면모를 들려줄 기회를 잡는다.
각 에피소드는 퓨리와 특정 인물과의 관계를 강조한다. 마리아 힐과의 동료애. 탈로스와의 애증 섞인 신뢰. 그래빅과의 갈등.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이아와 퓨리의 동병상련. 퓨리를 중심으로 각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문학적인 대사가 곁들여져 품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레이먼드 카버의 시 '마지막 단편'을 인용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결국 <시크릿 인베이젼>은 외관이 첩보물일 뿐, 퓨리의 인생을 들려주는 드라마에 가깝다.
이민자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물론 퓨리만 있지는 않다. <시크릿 인베이젼>은 퓨리를 중심으로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함께 풀어나간다.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서사는 탈로스와 그래빅의 대립이다. 퓨리가 새로운 집을 마련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종족의 생존을 위한 길을 선택해야 했던 둘. 그러나 그들이 생각한 방식은 달랐다.
드라마는 이들의 갈등을 단순한 선악으로 가르지 않는다. 그래빅이 빌런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신념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히 살핀다. 그래빅에게 퓨리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탈로스는 퓨리를 얼마나 신뢰했는지. 퓨리의 배신이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그래빅이 인간을 얕보는 이유와 탈로스가 믿는 인간의 강점까지. 퓨리와의 관계 안에서 그들의 신념이 만들어진 과정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니 둘의 대립은 마치 <엑스맨> 시리즈 속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갈등 같다. 탈로스는 인간과 돌연변이가 공존할 수 있다는 프로페서 X와 같은 의견이다. 그는 그래빅을 막고, 지구를 구한 대가로 인간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요청하려 한다. 반면에 그래빅은 매그니토에 가깝다. 인간을 모두 죽이고 지구를 차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혐오를 선동하는 지도자가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을 전쟁터로 내모는 역사가 반복된다.
최근 멀티버스에 집중하는 MCU에 지친 팬들에게 이 대목은 퍽 반갑다. 잠시 과거의 마블이 보이기 때문.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며 세계관을 확장한 덕분이다. <캡틴 마블>이 스크럴을 난민에 비유해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시크릿 인베이젼>은 스크럴을 이미 한 사회에 녹아든 이민자로 대한다. 드라마의 주된 배경이 미국이 아닌 유럽인 점도 무게감을 더해준다.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간과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크릿 인베이젼>은 꽤 만족스럽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각 인물의 서사는 잘 쌓아 올렸지만 정작 첩보물로서의 재미가 부족하다. 케빈 파이기가 이 드라마를 두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정신적 후속작이라고 밝힌 것에 비하면 성에 차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까지 등장했지만 첩보물다운 서스펜스는 부족하다.
이유는 명백하다. 마블 스튜디오가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연속성이다. 영화는 한 편의 완결성만 갖추면 된다. 속편 예고는 선택사항이다. 드라마는 다르다. 다음 화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회별로 기승전결을 가지되 전 회차 역시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드라마에 이중 플롯이 필요한 이유다.
이 작업은 정교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각 에피소드에 어떤 이야기를 분배할지, 각 회의 핵심 사건은 뭔지, 다음 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엔딩은 뭘지, 전 회차를 아우르는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낼지. 이 모든 작업이 이뤄져야 드라마의 이중 플롯이 안정적으로 완성된다.
모아 놓고 보면 부실한 이유
그런데 <시크릿 인베이젼>은 이중 플롯을 살리지 못했고, 첩보물로서의 연속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시도는 했고, 편린이 보이기도 한다. 동료도 조직도 잃은 채 그래빅의 음모에 대응하지 못하는 퓨리. 그 빈자리는 MI6 국장 소냐가 채운다. 그녀는 영국 정부에 침투한 스크럴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그래빅을 추적하고, 그의 계획을 조금씩 알아챈다.
하지만 그녀의 활약은 피상적이고, 부분적이다. 극의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활용될 뿐이다. 적은 아니지만 친구도 아닌 퓨리와의 팽팽한 줄다리기도 그리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을 지키지 못한 퓨리부터 헛되이 희생한 셈인 탈로스, 어벤져스를 모두 합친 것보다 다 강해진 가이아와 허망하게 퇴장한 그래빅까지. 여러 캐릭터의 마지막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첫 두 에피소드의 러닝타임은 50분 남짓이다. 이후 나머지 4개 에피소드는 40분 분량도 채우기 힘들어한다. 약 4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6개로 나눈 셈이다. 그러니 각 화의 플롯은 챙겨도 전체 에피소드를 연결할 플롯까지 온전히 챙길 여유가 없다. 주인공인 퓨리만 적극적으로 부각하고 나머지 캐릭터와 이야기를 희생한 격이다.
물론 퓨리의 뒷이야기를 감상하고, MCU의 확장을 본다는 점은 여전히 만족스럽다. 그러나 이 작품에게 기대한 첩보물의 성격이 옅어진 이상 주객전도라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특히 누구로든 변할 수 있는 스크럴 종족의 특성, 곧 첩보물에 가장 걸맞은 능력도 온전히 살리지 못했으니 더더욱. 결국 드라마를 제작한 기획부터 의문이 남는다. 6개 에피소드로 쪼개기보다 과감히 편집해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시크릿 인베이젼>은 마블의 현재를 요약해 준다. 마블은 디즈니+ 출범과 맞물려서 드라마 제작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드라마라는 형식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도통 감을 못 잡는 듯 보인다.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었다가 영화로 제작하기로 변경된 <아머워즈>가 방증하듯. 이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만달로리안>과 <안도르> 등의 드라마를 영리하게 활용해 프랜차이즈를 확장하는 것과 자연히 대비를 이룬다.
그렇다고 플랫폼을 포기할 수도 없으니 이런 딜레마도 따로 없다. 이미 <로키> 시즌 2, <에코>, <아이언하트>, <데어데블: 본 어게인> 등 8개 드라마가 공개 예정인 가운데, 과연 마블은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지만, 낙관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Poor 형편없음
디즈니+, MCU의 계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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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나를 ‘다이애나’라고 부르지만
영화가 시작하기 전,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연기한 주인공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짤막한 인터뷰가 나왔다. 그가 말했다. 다이애나 관련 영상을 ‘다’ 보았다고. 호기심이 잔뜩 일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납득할 만한 연기력을 처음으로 볼 수 있으려나.
그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들을 꽤 보았다. 2016년 <카페 소사이어티>와 <퍼스널 쇼퍼>, 2018년 <리지>, 2019년 <찰리스 엔젤스(미녀 삼총사 3)>, 2020년 <크리스마스엔 행복이>. 감상은 늘 비슷했다. 과하지도, 약하지도 않다. 그런데 인상적이지도 않다. 꾸준히 작품을 해온다는 건 배우로서 욕심이 있고, 그만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인데. 괄목할 만한 성과가 안 보여 내심 응원했던 것 같다. 구설수 말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이슈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스펜서>를 보던 중 문득 생각했다. 이래서 다이애나비 영상을 ‘모두’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구나. 디테일한 버릇, 몸짓, 말투, 태도까지. 그 인물을 잘 모르는데도 이 사람 특유의 제스처와 걸음걸이, 시선처리까지 한눈에 보였다. 물론 이 모든 걸 계산했다면 한계가 있었을 거다. 왜, 그런 캐릭터들이 있지 않은가. ‘나 지금 연기하는 중’ 임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캐릭터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들을 모두 잊었다고 했다. 덕분에 연기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애를 쓴다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냥, 그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 한 인물의 감정선을 집중적으로 표현하는 영화에서 연기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물론 있다. 연출.
이제 영화 내용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대목을 짚어보려 한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한 허구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라고 해야 할지 모호하다. 게다가 실화를 다룬 이야기는 내용을 알고 보아야 더 좋기도 하다. 예를 들면,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스펜서>
개봉: 2022.03.16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16분
출연진: 크리스틴 스튜어트, 샐리 호킨스 등
영화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노랗다. 이건 몇 가지 효과를 만드는데 1) 색 바랜 느낌을 준다. 2~30년쯤 지난 옛날의 분위기 말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망일이 1997년이니, 과거의 이야기를 바탕에 두었다고 표현한 것일 수 있겠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라는 영화의 주요 키워드와 연결되기도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2) 따뜻하다. 부드러운 햇살이 주는 따스함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삭막하고 엄숙하다. 이미지 간의 대비가 극명한 영화다. 다이애나의 화려한 겉모습과 썩어 문드러진 속(마음, 혹은 신체적 장기)을 대조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적막한 시작이었다. 배경이 넓게 보이는 롱샷으로. 군용차를 아주 조그맣게 보여준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만 고요히 울렸다. 그리고 카메라의 움직임은 드론 같았다. 차 문이 열리고, 군인들이 나오는 장면까지 말이다. 멀찍이서 비춘지라 인물 개개인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로 한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 표정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게다가 똑같은 군복 차림이라서 구별하기도 어렵다. 그들은 하나의 존재처럼 턱, 턱, 턱, 묵직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계단 아래로 향했다.
그곳은 널찍한 주방. 철제 테이블이 즐비한 곳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걷다가 말한다.
Clear.
군인들이 나가고, 요리사들이 들어온다. 새하얀 요리복을 차려입은 그들과 군인들과 다를 바 없다. 셰프의 지시에 맞춰 움직인다. 무슨 전쟁 중의 만찬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족끼리 오래간만에 모이는 자리였다. 정해진 순서, 정해진 역할, 정해진 준비. 숨이 꽉 막히는 상황. 배경에 깔린 음악이 불안하고도 불편했다.
한편, 다이애나는 홀로 운전 중이다. 도무지 알 수 없단 얼굴로 지도를 들여다 보고, 식당에 들어가 여기가 어딘지 묻는다. 길을 잃은 다이애나. 그가 물리적으로 처한 상황은 심리적 상황과 동일하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 딴에는 최선의 저항일 수도 있겠다.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자리에 최대한 늦게 도착하려고 이런저런 핑계를 만든 적. 사방에 널린 불편함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을 테다.
아주 느지막이, 왕실에 다이애나의 차가 들어선다. 그리고 그 위로 타이틀 <SPENCER>가 얹어진다. 현재 ‘다이애나’라고 불리는 그의 가문 이름, ‘왕세자비’에 가려진 그의 뿌리.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다이애나’ 혹은 ‘프린세스’가 들어가던 것. 왕실에서의 삶을 이름으로 붙였지, 그의 과거가 담긴 패밀리 네임은 제목으로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스펜서> 포스터를 보고서도 누구의 이야기인지 예측할 수 없다. 얼굴도, 익숙한 이름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웅크린 상반신과 끝없이 펼쳐진 드레스 자락만이 마주하는 전부다. 왠지 모를 무거움이 느껴지는 뒷모습.
즐거운 크리스마스에는 한 가지 풍습이 있다. 로비에서 몸무게를 재고,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다시 몸무게를 재서 얼마나 무게가 늘어났는지 확인한다. 잘 먹었다는 게 그만큼 시간을 잘 보냈다는 의미인 것처럼. 다이애나에겐 곤혹일 수밖에 없다. 명분뿐인 자리에서 즐거움은 찾아볼 수 없고, 무시와 조롱을 묵묵히 견뎌야만 한다. 3일. 3일만 버티자. 스스로에게 되뇌는 수밖에.
이제 환각 같은 일들이 드문드문 일어난다. 제가 앉을 의자에 각자가 맞춰 앉은 식사 자리. 남편 찰스 공이 준 진주 목걸이를 성가시다는 듯 계속 만지작대다 힘으로 뜯어낸다. 자연히 진주들은 하나씩 떨어져 일부는 수프에 퐁당 들어간다. 다이애나는 그것들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킨다. 딱 하나가 아니라 하나씩 여러 개를.
반짝이는 진주 목걸이. 보는 사람 눈에는 아름답지만, 착용하고 있는 사람에겐 무겁기만 하다. 목을 감싼 모양새가 목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을 ‘집’으로 명명해야 하는 다이애나에게 주어진 상징물. 게다가 진주 목걸이는 찰스가 불륜 상대에게 먼저 준 것이다. 결국 다이애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간다.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해야 하는 답답함. 뭐라도 뱉어내고 싶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얼마 먹지도 못한 수프가 뱉어낼 수 있는 전부다. 차라리 목을 꽉 막고 있는 진주였다면 좋았을 텐데.
무너진 그를 어떻게든 지탱하는 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다.
윌리엄과 해리, 두 아들들과 함께일 땐 다이애나가 밝다. 평소에도 몸에 밴 웃음기가 있지만, 표정에 생기가 돈다. 장난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왕실을 비꼬는 상황극을 이어간다. 두 아들의 나이대는 다이애나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떠올리는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 마냥 행복했던 지난날. 자신의 진짜 집이 있던 때. 마구 달릴 수도, 웃을 수도, 있던 때.
두 아들은 현재에 머물면서 다이애나에게 과거를 느끼게 해 준다면, ‘앤 불린’은 말 그대로 과거의 사람이다. 온갖 누명과 추문을 뒤집어쓰고 끝내 사형당한 영국의 16세기경 왕비. 의아한 건 다이애나가 앤 불린의 언니인 메리 불린의 후손이라는 거다. 왜 자신의 선조가 아닌 앤 불린의 환영을 보고, 살아갈 힘을 얻었을까.
아마 자신과 비슷한 삶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을 둘러싼 헛소문과 음해를 알면서도, 끝내 사형대까지 몰린 사람. 찰스의 경멸 어린 눈빛, 낮잡아 보는 태도, 미친 사람 보듯 하는 왕실의 신하들. 이러한 환경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건 생각만큼 어렵다. 게다가 왕실의 말을 듣지 않아서 죽게 된 선례가 버젓이 있으니, 압박감은 엄청날 테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존재한다.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는 셈이다. 사행 집행일에’ 나는 목이 얇으니 금방 죽이겠다’고 농담한 앤 불린의 담대함. 표적이 되었음에도 당당한 자세. 앤 불린은 사형당했으나 불쌍히 여길 사람은 아니다. 왕실이 그를 죽인 건 절대 움츠러들지 않았기 때문이니까.
크리스마스 만찬을 벗어난 다이애나는 자신의 옛날 집으로 향한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상태가 나빴다. 꼭 다이애나처럼. 위험한 곳이라고 왕실의 소령에게 알리고, 그는 웃으며 답한다. 썩은 계단을 밟아 죽는 건 다이애나의 선택이라는 듯이. 그곳에서 죽으려던 다이애나는 앤 불린의 환영이 걸어오는 말을 듣고, 꿋꿋이 살아가기로 한다.
다이애나,
당신의 무기는 당신 자신이에요.
다이애나의 옛날 집 주변에는 허수아비가 있는데, 아버지의 낡고 해진 재킷이 걸려있다. 다이애나는 언젠가 그것을 깨끗이 만들어 놓으라고 재단사 ‘매기’에게 말했다. 하지만 매기 또한 환영이다. 말끔하게 바뀐 줄 알았던 재킷은 여전히 더럽고, 매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앤 불린의 환영으로 생을 다짐한 다음 날, 환영이 아닌 진짜 매기가 나타난다.
환영과 실제의 차이는 화면 구도에서 보였다. 환영에서는 인물의 얼굴이 명확하게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이애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매기의 눈과 몸은 관객, 즉 정면이 아닌 다이애나를 향하기에.
그러니까, 다이애나는 몰랐던 거다. 자신과 몇 없는 주변 인물들 사이를 갈라 치기 하고, 헐뜯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도 있음을. 환영의 여성, 그리고 실존하는 여성에게서 힘을 얻은 다이애나는 두 아들을 꿩 사냥에서 빼내오기로 한다.
방법은 간단했다. 평소처럼, 그러니까 ‘미친 것처럼’ 보이면 되었다. 꿩 사냥을 하는 한복판에 나타나 아들 둘이 자신에게로 올 때까지 이곳에 서있겠노라고. 역시나 찰스는 끔찍하다는 얼굴이다. 다이애나는 그 눈빛에 개의치 않는다. 자신과 따스한 감정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 충분한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없다. 영화 초반, 다이애나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길과는 다르다. 그 길은 하나 빼고 모두 닫혀있었고, 이 길은 모든 방향으로 열렸다. 얼마나 열렸는가 하면 드라이브 스루로 치킨을 주문할 정도로. 그리고 이때, 다이애나는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말한다.
스펜서.
모두가 그를 다이애나라고 칭하지만, 그는 자신을 스펜서라고 칭한다. 엄연히 다른 이름, 다른 존재로.
스펜서의 마지막 표정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한다. 파파라치, 교통사고. 이로써 마냥 좋은 결말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해방감을 느낀 순간이 무의미하지도 않다. 허수아비처럼 왕실 한 자리를 지키고, 정해진 옷을 순서대로 입어야 하고, ‘좋은’ 겉모습을 꾸며내는 데에 급급한 삶에서 단 한 번이라도 자유를 얻었다면.
끝으로
매기가 말하기를, 당신에게 필요한 것.
Love 사랑
Shock 충격
Laughter 그리고 웃음.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 받아, 참석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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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루프를 벗어나는 기발한 방법
씨네랩의 초청 시사로 개봉 전 영화를 관람하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하루하루를 지나다 보면 문득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같은 사람을 만나서 비슷한 업무를 하고 늘 먹는 음식을 먹다보면 어느 덧 하루가 금새 지나가 있다. 그래서 특별한 변화가 없는 일상 속에서 권태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특히나 자신이 하는 일들이 잘 풀리지 않고 여러 사람과의 관계에 실망하고 지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런 권태감에 빠지기 쉽다. 내일도 오늘과 똑같을 거란 생각은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고 그저 한 자리에 계속 머물게 만들어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어렵게 한다.
영화 <팜 스프링스>는 같은 하루에 갇혀 반복되는 하루를 살고 있는 나일스(앤디 샘버그)의 이야기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과거 빌 머레이가 주연을 맡았던 <사랑의 블랙홀>과 유사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팜 스프링스>는 한 남자가 하루를 반복하며 산다는 설정에 그 하루를 똑같이 반복하는 다른 사람들을 넣어 변주하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 나일스가 하루의 무한 루프에 빠지게 된 과정을 먼저 보여주지 않는다. 처음 영화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나르시스트처럼 조금은 무력해 보이고 괴상하게 보인다. 나일스는 이미 무수한 오늘을 몇 번이고 반복했고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를 해오다 이제는 그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포기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작은 변화가 생긴다. 나일스가 참석하게 되는 결혼식 신부의 여동생 세라(크리스틴 밀리오티)가 하루가 반복되는 무한루프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애초에 이 무한루프가 왜 만들어졌는지는 모른다. 나일스는 혼자 하루를 반복하다가 중간에 남자 하객인 로이(J.K.시몬스)를 끌어들였고 이후에 세라까지 무한루프에 참여시키면서 이 세 명에게는 무수한 하루가 반복되게 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 하루를 기억못하지만 이 세 사람에게 반복되는 모든 기억은 그들의 기억속에는 남는다.
이 영화에서 최초에 하루를 반복하던 나일스는 유일한 변수였다. 나머지는 자고일어나면 리셋되어 버리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상황을 변주할 수 있는 건 나일스 자신 뿐이었다. 그런데 로이가 그 루프에 들어오게 되면서 작은 변수가 생긴다. 하지만 로이와는 거리 상으로도 멀리 떨어져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고, 나일스에게 악감정을 가지게 된 인물로 각자의 삶에서 변수가 되지만 서로의 루프에서는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더욱 큰 변수가 되는 건 세라의 등장이다. 새라가 무한루프의 하루를 같이 하게 되면서 나일스는 자신의 삶에 조금은 가까운 동반자가 생긴다.
그 무한루프를 벗어나려고 여러가지 방법을 쓰는 세라를 바라보는 나일스는 자신이 시도했던 여러 노력들이 쓸데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매번 한다. 나일스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는 어렵다고 결론내리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포기한 인물이다. 여자친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더이상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은 그를 더욱 그 하루에 안주하게 만들었다. 새롭게 무한루프에 들어오게 된 세라도 마찬가지로 그 결혼식에서 우울한 인물 중 하나였다. 동생의 남편이 될 사람과 바람을 피고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그가 반복되는 하루로 들어오면서 그 우울감을 잠시 잊어버린다.
영화의 두 인물은 삶에서 가장 우울하고 자기 자신을 좋아할 수 없는 시점에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게 되었다. 그 하루는 그들에게 최악의 하루였고 외롭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그런 두 인물이 같이 하루를 반복하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변주해나가는 모습은 꽤 유쾌하다. 어쩌면 그들이 자신들의 우울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하루 안에서 그들은 여러가지 모험도 해보고 극한의 상황을 만들어 새로운 경험을 해본다.
기존에 하루를 반복하던 나일스가 그 하루를 벗어나는 것을 이미 포기했는데, 그 이유는 그 하루가 최악의 하루이기 때문이다. 세라 또한 계속 그 하루를 벗어나려 애쓰는데 그 이유 또한 그 하루가 최악의 하루이기 때문이다. 나일스는 그 최악의 하루 속에서 그저 자잘한 변주로 재미를 느끼고 그 삶에 안주하려는 인물인 반면 세라는 어찌되었든 조금은 다른 내일을 꿈꾸는 인물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 두 인물의 관계는 흥미로운데 두 인물 모두 연인 관계에 있는 인물들이 모두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인물이 아니다. 즉 그 관계는 비정상적인 관계이거나 함께 미래를 볼 수 없는 관계다. 그렇게 우울함 속에 있는 인물들이지만 둘이 만나 같이 생활하면서 긍정적인 감정을 이끌어낸다. 특히 세라가 그 하루를 벗어나려 무던히 노력하고 나일스를 설득하는 여러 장면들은 미래로 가고자 하는 의지가 주변의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내일을 꿈꿀 수 없다는 것은 불확실하느 것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고 그저 오늘 편안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비롯해 주변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고 여러가지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든다. 영화 속 인물인 로이는 얼핏 나일스에 대한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는 현실에서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보면서 나름 행복한 순간을 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의 오늘만 볼 뿐 미래의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에 무척 안타까워한다.
비슷한 일상의 챗바퀴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한 편으론 편안한 길이다. 하지만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상을 만들면 그 챗바퀴에서 벗어나 조금은 다른 내일을 만들 수 있다. 영화 <팜 스프링스>는 기존의 타임루프 영화들과 비슷하면서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나일스와 세라는 이야기 안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을 만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오늘' 에서 벗어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내일'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들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 한 발 더 내딛는다.
나일스 역을 맡은 배우 앤디 샘버그는 드라마 시리즈 <브룩클린 나인 나인>으로 이름을 알린 코미디 배우이다. 이 영화에서 꽤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번 영화의 제작까지 맡아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팜 스프링스>는 지난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 코미디 부분 최우수 작품상을 타기도 했다. 연출을 맡은 맥스 바바코우 감독은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꽤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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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그빌 / Dogville
도그빌 / Dogville
/ 감상 /
지루한데 라스 폰 트리에 영화 중에서는 가장 안지루한 영화
음.. 역시나 이 영화도 라스폰트리에의 다른 영화들처럼 사람의 본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이 권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순간부터 가장 영악해지고, 오만해지고, 잔인해지는 것 같다. 그 권력이 무엇이든 간에.
이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른 권력을 행사한다.
(물론 그레이스를 찌르겠다는건 당연한거고)
여성들은 본인이 이곳에 더 오래 살았다고, 본인이 나이가 더 많다고, 그 미모로는 당연히 가벼운 여자일거라고 그레이스를 깎아내린다.
남성들은 본인이 남성이라는 점을 이용한다.
그레이스가 물리적힘이 본인들보다 약하다는 것을 이용하여 그녀를 강간한다.
당연히 앞서 말한 협박은 덤으로.
그리고 그레이스는 본인이 약자일때는 참고 견뎌왔던 이 모든 수모들을 본인이 권력을 가진 권력자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대로 되갚아준다.
내 기준 가장 통쾌한 결말이긴하지만 이 장면 또한 결국 권력이 주는 오만함과 이기심, 잔인함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개 모세만큼은 살려준 이유가, 그 모세만이 진정으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아닐까 싶다.
+ 엔딩씬에서 ‘she wants the young americans’라는 가사가 흘러나오며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음악이 상징하는게 분명히 있을거라는 생각이든다.
음.. 내 생각에는 American인 도그빌 주민들의 모습을 통하여 미국이 세계의 평화를 위한답시고 다른국가들에게 행사하는 그들의 권력을 비판하고자 하는 라스 폰 트리에의 큰 그림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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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오늘을 미망하는 시선
미망 (Mimang, 2024)
낯선 오늘을 미망하는 시선
개봉일 : 2024.11.20.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 92분
감독 : 김태양
출연 :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종로 길거리. 한 남자가 통화를 하며 길을 찾고 있다. 그는 자신이 서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가다 보면 알겠지”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그의 말대로 그가 아는 길이 나타난다.
영화 <미망>은 이 남자와 같은 태도로 정처 없이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변화하는 길과 시간 위를. 걸을수록 낯선 길은 익숙한 길로 변하고 멀리 떨어져 있던 시간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다. 참으로 멜랑꼴리한 경험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특히 도시, 서울은 정말 쉴 틈 없이 변화를 반복한다. 정신 차려보면 무언가 사라져 있고 익숙해졌다 싶으면 낯선 무언가가 생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것들이 과거로 빨려 들어가지만 나는 과거로 갈 수 없기에 그것들을 잊은 채 낯선 오늘을 살아간다.
가끔은 이 낯선 오늘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오늘 하루 난 뭘 했지? 오늘 하루가, 오늘 있었던 만남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 그저 시곗바늘을 따라 똑같은 자리를 달린 기분. 이런 찜찜함을 안고 잠들었던 밤이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미망>은 나의 이러한 의구심과 찜찜함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똑같은 자리를 달린 게 아니라는걸, 지금의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나를 잡아줄 변치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미래의 나도 길을 잃지 않을 거라는 걸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든다.
과거 연인이었던 남자와 여자는 길 위에서 재회한다. 어딘가 낯설어진 길과 과거 연인의 모습. 이 길이 맞나, 지금 내가 말 걸려는 사람이 그 사람이 맞나. 두 사람은 반신반의 상태로 그 길을 걷지만 여전한 남자의 걸음걸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 추억 같은 그대로 남아있는 익숙한 것들을 찾아낸다.
두 사람이 다시 각자의 길을 가면서 잠깐의 만남은 다시 과거가 되고 그 위로 현재의 새로운 만남이 덧씌워지지만 남자는 한 가지를 깨닫는다. 오늘 나는 12시부터 12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 시계가 아닌 어제와 다른 나로서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을.
남자와 여자는 과거를 미망(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하며 낯선 길 위를 미망(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한다. 그러다 작은 익숙함과 재회하고 자신의 발자취를 미망(멀리 넓게 바라봄) 한다. 마지막 미망은 잠깐의 위로를 주고 그들은 다시 각자의 낯선 길로 발을 돌린다. 미망과 미망과 미망. 낯섦과 익숙함, 인연의 과거와 현재. 이 단어들의 조합은 우리의 인생을 표현하기에 한치 부족함이 없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길이 바뀌고 사랑이 지나가고 서울 극장이 사라지고 친구가 죽는다. 남자와 여자의 마음은 아직 과거에, 서울 극장에, 또 떠난 친구에게 머물고 있는데 변화는 너무 빠르게 일어난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길을 헤맨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
동상 하나에도 얽힌 이야기가 수십 개인데 인연에 얽힌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남자와 여자. 그리고 친구는 추억을 떠올리며 지나간 과거와 새로운 현재를 다시 체감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과정이 그렇게 서글프기만 한 건 아니란 거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에 담긴 추억과 감정들은 오래도록 남는다. 모든 게 변한 길거리의 구석, 좁은 골목 한 편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소우처럼 일부는 유실됐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오래된 영화 <미망인>의 필름처럼. 도시가 변하고 극장이 사라지고 남자가 화가가 되고 친구가 택시 운전사가 되고 또 여자가 엄마가 되어도 지난 추억과 감정은 마음속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다.
여자의 새 연인은 매번 길을 헤맨다는 여자에게 ‘자세히 보면 변치 않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을 보고 길을 찾으면 된다’고 말한다. 언제나 길 한편을 지키며 보행자들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무언가처럼 변치 않은 추억과 인연은 우리의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맬 때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오늘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어 내 마음속 변치 않는 무언가로 남을지 모르니 실망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며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낯선 길 위에서 여자와 재회했던 남자는 새 연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12시에서 12시. 똑 같은 거 같아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네요.”.
낯설고 허탈한 오늘의 끝에서 <미망>을 만난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12시에서 12시를 지나온 건 어제와 같지만 오늘의 나는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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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종류의 눈물
네 가지 종류의 눈물
<위대한 개츠비>, <토니 타키타니>, 그리고 <여수의 사랑>, <성경>
어떤 눈물은 느닷없이 흐른다. 다 잠근 줄 알았던 수도꼭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처럼,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속을 이미 적셔놓고 밖으로 흐르는 눈물이 우리 삶에는 있다. 그런 눈물을 삶의 누수라고 하면 좋을까. 그런 눈물은 그야말로 새어 나오는 것이어서, 눈물이 흐른 흔적만큼 우리 삶에 빈 공간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어리둥절하다가 뒤늦게 알아차린다. 내 삶이 이만큼 비어있던 것이구나. 이 공간만큼 내가 결여를 느꼈던 것이구나. 흘려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내 삶의 여백을, 눈물은 증거한다. 라캉은 이렇게 말한 적 있다. 그는 앎(knowledge, 지식)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건 ‘스스로를 알고 있는 앎’과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앎’이 있다는 것.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 ‘알고 있는’ 앎과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모르는’ 앎이 있다. 삶의 누수 같은 눈물을 라캉 식의 구분법으로 해석해보자면, 그건 단연 후자다. 나는 내가 왜 눈물이 흐르는지 모른다. 그러나 안다. 그 순간만큼 나는 그동안 (알면서도) 몰랐던 삶의 진실을 마주했고, 그랬기 때문에 눈물이 흘렀다는 것을.
삶에서 그런 순간은 느닷없이 찾아오므로, 나는 대신 영화와 책에서 그런 사례를 추려봤다. 네 종류의 눈물이 있다. 네 가지 눈물이 흐르게 된 상황적인 요인, 맥락은 제각기 다르지만, 근원은 같다. 그들은 그 순간 자신의 삶에 진실했고 또 그래서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그런 눈물은 주체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영화에서 두 편, 문학에서 두 편이다. 영화에서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바즈 루어만 감독의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2013)와 마찬가지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치카와 준 감독의 <토니 타키타니, Tonu Takitani, 2004>가 있고, 문학에서는 한강의 <여수의 사랑, 2012>과 오래된 책인 <성경>의 ‘이사야서’의 말씀이다.
<위대한 개츠비>
먼저 <위대한 개츠비>. 첫사랑인 데이지를 잊지 못한 개츠비가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부자가 되어 나타나 다시 사랑을 고백하지만 개츠비의 사랑도, 자신도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토록 바라던 데이지와 재회한 개츠비는 자신의 집에 그녀를 데려와 구경하게 한다. 데이지의 감탄이 터질 때마다 그는 속으로 자신 스스로가 무척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개츠비는 복층 위로 올라가 자신의 영국제 셔츠 수십 벌을 꺼내 장난스럽게 데이지에게 건네는데, 그녀는 셔츠들을 보면서 돌연 울음을 터뜨린 것. 데이지는 왜 울었을까.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번역한 김영하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요컨대 데이지는 인간 개츠비가 아니라 영국제 셔츠를 사랑하는 여자다. 개츠비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사랑할 가치가 없는 여자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 아니, 그 여자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한다는 것.”(김영하, <위대한 개츠비>, 문학동네, 2009, 241쪽) 그러니까 데이지의 눈물은 그야말로 허영에 가까운 눈물이었다는 것. 마치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의 무구한 반응처럼 데이지의 눈물은 그런 반응의 극치라고 할 수 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자체를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허영으로 자신 삶의 허망을 견디고 있으니까.영화 <토니 타키타니>에는 <위대한 개츠비>를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 있다. 자신을 끔찍한 고독에서 건져내 준 아내를, 사고로 잃은 토니는 아내가 생전에 입었던 옷을 대신 입어줄 사람을 구한다. 간신히 찾은 여자(히사코)에게 아내의 드레스룸을 보여주는데, 그녀는 돌연 울음을 터뜨린다. 울음소리를 들은 토니가 방으로 들어가 왜 우는지 물었는데,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죄송해요.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이렇게 많은 옷을 처음 입어봐서 그런가 봐요.” 이 눈물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데이지의 경우에서처럼, 허영이 깃든 무구한 반응의 극치인 걸까. 무수한 오해로부터 그녀를 구할 길은 먼저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토니가 찾은 여자는 실직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곤란에 처해있었다. 하루 먹고사는 고민으로 하루를 버티던 그녀가, 한순간 거대한 아름다움과 대면했던 것이다. 자기 삶의 남루함과 세상의 거대한 아름다움 사이의 차이로부터 오는 기묘한 정서,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이렇게 많은데 내 삶은 이토록 남루하구나 라는 쓸쓸한 자기 인식. 그러니까 속에서 얼음처럼 차갑던 감정들이 아름다운 것을 마주하고는 이윽고 응결되어 새어 나온 것은 아닐까.
<토니 타키타니>
굳이 새삼스럽게 적지 않아도, <위대한 개츠비>와 <토니 타키타니>의 유사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다가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한강의 단편소설 <여수의 사랑>을. 자신의 부모가 누군지, 또 고향이 어딘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그저 여러 도시들을 떠돌던 자흔은, 다만 명료한 증거 하나만을 토대해 유추할 뿐이다. 자신이 2살 때, 여수발 서울행 열차에서 발견되었으며 그때부터 보호기관에서 자랐다는 것으로부터. 그러니까 자신의 고향은 여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그녀는 하는 중이다. 그녀는 ‘나’에게 언젠가 자신의 고향(이라 추측되는) 근처를 갔을 때의 일을 말한다.
“여수 앞바다의 해안을 따라 한없이 동쪽으로 가면 소제라는 이름의 시골 마을이 있어요. (중략) 그때가 저녁 무렵이었는데…… 완만한 뒷산 등선에는 해가 지고 있었고 그 주위로 새 깃털 같은 구름이 노다지처럼 노랗게 번쩍이고 있었어요. 그 풍경이 어쩐지 마음에 들어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대신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 봤지요. (중략) 마을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둥그런 만과 다도해 섬들이 파란 바다를 둘러싼 모양이 꼭 가느다란 푸른 실 하나하나를 촘촘히 엮어놓은 것 같이 잔잔했어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그냥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자흔은 왜 그 광경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걸까. 자흔은 이어 이렇게 말한다. “…… 바로 거기가 내 고향이었던 거예요. 그때까지 나한테는 모든 곳이 낯선 곳이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가깝고 먼 모든 산과 바다가 내 고향하고 살을 맞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흔의 눈물은 자신의 고향에 왔다는 아늑함에서 비롯된 것일 테고, 그 아늑함의 이면에는 단순히 고향에 왔다라는 차원을 초월해, 불분명했던 ‘자기 정체성’이 그제서야 비로소 명료하게 인식되는, 자기 존재의 의미마저 거기 배어 있었을 것이다.
<토니 타키타니>
세 가지 목록에 나는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성경>의 ‘이사야서’다. 세 종류의 경우처럼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니지만 정서상의 감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이사야서 6장에는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는데, 이사야에게는 하나님이 계신 성전과 앉으신 보좌, 그리고 둘러싼 천사들의 모습이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이사야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표준새번역 <성경>, ‘이사야서 6장 5절) 이사야는 눈물 흘리지는 않았지만 세 종류의 눈물만큼이나 선뜻 헤아리기 어려운 종류의 반응을 한다. 어째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과 신성에 감탄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탄식한 걸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그는 경이 앞에서 자신의 죄를 마주한 것이라고. 그래서 난감한 사태가 발생했다. 나는 이렇게나 누추하고 얼룩처럼 죄가 묻어있는데, 깨끗하고 아름다운 경이가 내게 찾아오다니. 두 번째의 눈물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반응이다.
나는 네 종류의 반응이, 우리가 예술을 대할 때 대체로 보이던 반응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예술을 허영으로 여기기도 하고(데이지), 또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이 각인시켜주는 자신의 남루한 처지를 쓸쓸해하면서(히사코), 누군가는 예술이 나 자신의 존재의 결핍을 깊이 헤아려준다는 느낌에 위로와 안도감을 감각하기도 하면서(자흔), 눈부신 경이 앞에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절망하기도 하던(이사야), 저마다 흐른 삶의 누수들. 우리는 왜 눈물이 흐르는지 몰랐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대체로 알고 있던 이유들이기도 하다. 그러니 라캉의 말이 옳다.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스스로 몰랐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겨우 알아간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이정식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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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ㄷㄷㄷ 이 영화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아포칼립스z 종말의시작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배급사)의 사용 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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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없이 사라진 ‘아귀레’에 대해 의문을 품은 이들로 인해
조용하던 ‘마르코’의 일상은 완전히 뒤집힌다.
예상치 못한 변수 ‘애나’까지 나타나면서
완벽한 범죄를 꿈꾸던 ‘마르코’의 모든 계획이 어긋나는데..
예상보다 이상하고, 상상보다 훨씬 더 비범한 이야기
오늘 난 완전 범죄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