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2-03-26 02:59:26
발칙하고 화끈함, 직설적이고 때로는 통쾌하다!
<배드 럭 뱅잉> REVIEW
2021년에는 2020년에 코로나로 인해 미뤄진 영화들까지 대부분 개봉하고, 신작들까지 겹쳐져 정말 볼 영화들이 많았던 해라 생각한다. 필자가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한국의 핵심 영화제에 참석해 여러 영화를 보았음에도 아직 못 본 영화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2021년 최고의 영화는 바로 라드 주드 감독의 "배드 럭 뱅잉"이라 단언코 말할 수 있다. 영화의 시놉시스만 보고서는 포르노와 관련된 주제만 이야기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감독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루마니아의 근대사, 인종, 계급 등 여러 사회의 문제들을 신랄하게 다뤄낸다. 1부는 주인공이 작중 상황에 어떻게 처하게 되었는지 담담하게, 마치 페이크 다큐 처럼 담아내고, 2부는 통칭 기분나쁜 그림 사전으로, 정말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풍자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엘리트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는 어디서 무시한 여자가 나같은 지식인에게 대들냐며 소리지르는 직원을 보여주고, 두개골을 설명할때는 흑인 차별로 이용된 골상학의 역사에 대해 보여준다. 3부는 학부모들과의 토론을 보여주고, 어떻게 끝날지 3가지 엔딩으로 보여준다. 이 세가지 엔딩은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비현실적이고 통쾌함을 선사하는 엔딩도 있다. 이러한 발칙하고 화끈하고 적나라한 연출들은 정말 직설적이고 때로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정말 만족스러웠지만 한국에서는 개봉 가능성은 없는게 현실이라 생각했지만, 최근 한 수입사에서 영화를 수입해왔다는 사실이 들려 곧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다만 선정성에 후하다는 일본도 일명 자가검열판으로 15세 관람가로 개봉했는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개봉할지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본 영화의 자가검열판은 감독 본인이 직접 일반 극장에도 틀 수 있게 검열한거라 하는데, 과연 검열을 거치고도 신랄한 풍자의 맛을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하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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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어린 시절에 사랑했던 아버지의 죽음이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남길까?
감독:다미앙 위그
주연: 사르 로지어스(레나 역)
출연: 두니아 엘왈리드,스베레 라우스,발렌티인 다에넨스,힐데 드 베르더메케르,세바스티앵 드와엘
시놉시스
레나는 아빠와 함께 바다를 보며 바다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레나의 아빠는 어부인데 어느 날 해양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아빠의 해양 장례식에서 레나가 목격한 건 배를 치고 지나간 거대한 괴물의 그림자였는데... 그 이후로 레나의 목표는 아빠를 죽게 만든 괴물을 찾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런 레나의 모습에 지인들은 어이가 없어한다. 과연 레나가 그토록 찾는 괴물의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레나는 자신의 아버지와 무척 친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바로 심해에 사는 바다 괴물의 그림자를 봤기 때문이다. 심해는 우리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고 빛도 없고 수압도 높아 갈 곳이 못 된다. 그런데 레나라는 어린아이가 본 건 과연 진짜 괴물이었을까? 일단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사람들은 트라우마가 생긴다고 한다.
그 트라우마가 심해서였을까? 레나는 해양 수족관에서 알바를 하는 빈센트를 만나 아버지의 무덤으로 가서 거대 물고기의 이빨 하나를 찾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죽은 아빠의 난파선에서 DNA 튜브를 몰래 가져와 자신의 아버지가 확실히 바다 괴물에게 죽임을 당한 거라고 믿고 싶어 한다.
결국 이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레나가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가 죽은 바다 위치를 찾아가게 되고 레나는 괴물에게 나오라고 울부짖으며 물속에 들어간다. 알고 보니 심해 바다 괴물이 존재했고 분노한 레나는 그 모습을 보자 저항하지 못하고 기절하고 만다. 그러고 나서부터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고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슬퍼한다.
이 영화가 말해주고 싶은 건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사랑했던 아버지가 죽어서 큰 충격으로 괴물의 환영을 받던 것일까? 아니면 진짜 괴물이 존재해서 아버지를 죽게 만든 걸까? 관객들에게 열린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는 그렇게 끝을 맺는다. 레나가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큰 트라우마가 생긴 건 맞지만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가장이 죽고 나면 가족들과 지인들이 얼마나 힘들어할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괴물에 집착하던 레나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2023.09.15 (금) 14:00 롯데시네마 은평(롯데몰) 4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기간: 09월 13일 -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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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오브 인터레스트 | 결코 남 일이 아닌 그들의 일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책임자로 일하는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와 그의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 그들은 귀여운 아들 둘, 예쁜 딸 둘과 함께 수용소 옆 관사에서 즐거운 일상을 보낸다. 주말이면 피크닉을 가고, 카누를 타며, 수영장 있는 정원을 즐기면서. 잡일은 유대인 하녀들에게 모두 맡겨둔 채로.
하지만 그들의 일상에는 균열이 생긴다. 아우슈비츠에 거대한 소각장을 들여놓은 후로 연신 흩날리는 잿가루가 회스 가족의 일상을 조금씩 방해하기 때문. 이에 더해 '최종 해결책' 시행을 앞두고 회스가 전근 명령을 받자 헤트비히는 이 일상과 관사를 떠나야 할까 두려움에 빠진다. 과연 회스와 헤트비히는 꿈이나 다름없이 행복한 그들의 삶을 지킬 수 있을까?
스크린 위에 펼쳐진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리고 '악의 평범성'. 세계사나 철학 같은 인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 책, 개념이다. 사실 '악의 평범성'은 유명세만큼 오해하기 쉽다. 이 개념은 흔히 모든 사람 마음속에 아이히만 같은 악마적인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는 성악설 비슷하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아렌트는 모든 사람에게 악마가 있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악이 얼마나 단순하게 탄생하는지 꼬집는다. 모든 사람은 역지사지의 능력을 바탕으로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의 입장에서 사유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악의 평범성'은 바로 그들이 악행을 저지른다고 지적하는 말이다.
당장 아이히만도 상투적인 나치의 명령과 말에 안주했을 뿐이다. 그는 유대인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자기 행동이 어떻게 유대인의 대학살로 이어졌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즉, 타인의 현실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한 그의 무사유가 홀로코스트를 만들어낸 셈이다.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악의 평범성'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스크린 위에 펼쳐 보인다. 한 독일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사유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 챙겼는지를 꼬집는다. 이 비판은 직설적이지 않아서 되려 더 날카롭다. 익숙한 비판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결말은 심란하다. '과연 나는 저들과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일상을 반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의 일상이 메스꺼운 이유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남부러울 것 없고, 흠잡을 데 없는 회스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직장에서 수많은 부하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아버지.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종일 바쁘게 일하며 집과 가족을 챙기는 어머니. 아버지는 두 딸이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줄 정도로 가정적이고, 그 덕분에 4남매는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낸다.
그들의 행복한 집도 감탄을 자아낸다. 큰 주택 옆에 딸린 숲과 강은 한적한 오후마다 피크닉을 즐기기에 최적이다. 집 앞 널찍한 마당에는 각이 딱 맞는 모습이 인상적인 수영장과 정원도 있다. 그래서인지 회스 가족의 일상은 <사운드 오브 뮤직> 속 트랩 대령 가족마저 부러워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주인공들이 노래만 부르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회스 가족의 일상은 보기 메스껍다. 그들의 일상을 지탱하는 퍼즐 조각이 하나씩 밝혀지기 때문. 그들의 옷, 화장품, 장난감은 모두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유대인의 유품이다. 저택은 아우슈비츠 바로 옆에 위치한 관사이고, 헤트비히를 돕는 충실한 하녀도 유대인이며, 정원에 뿌려지는 거름은 유대인 체를 태운 잿가루다. 회스가 몰두 중인 프로젝트마저 나치의 '최종 해결책'으로 밝혀진다.
무관심을 먹고 자란 일상
그런데 이 퍼즐 조각을 더 끔찍하게 만드는 주체는 따로 있다. 바로 회스 가족의 태도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헤트비히는 새로 받은 코트 주머니에서 립스틱을 꺼내더니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입술에 바른다. 그 주인이 바로 옆 수용소에서 어떤 일을 당하는지는 전혀 생각이 안 든다는 듯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첫째 아들은 무심하게 금이빨을 가지고 논다. 막내아들 '한스'는 처형 명령을 받은 유대인의 비명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는 그러지 마"라고 말한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정원을 가로막은 벽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을 신경 쓰지 않는다. 왜 거대한 굴뚝에서 낮에는 연기가, 밤에는 불길이 피어오르는 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회스 가족의 무관심은 음향 효과 덕분에 더욱 극대화된다.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영화는 유대인들의 아우성, 독일군의 명령, 발포음을 배경에 깔아 둔다. 하지만 회스 가족은 이 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다. 새 울음소리와 비명이 같이 나도 그들은 새소리만 듣는다. 귀가 멀지 않은 이상 그들도 소리는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무관심한 나머지, 그들은 그 소리에 대해 고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다소 독특한 영화의 시작과 끝도 이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목을 보여준 후에 약 2분 정도 기묘한 음악으로 가득한 검은 화면을 보여준다. 또 엔딩 크레디트는 배경에 깔려 있던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듯한 사운드로 가득하다. 이는 관객에게 보내는 신호이자, 신호를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하는 절차처럼 보인다. 회스 가족의 선택적 노이즈 캔슬링에 주목해 보라는 암시처럼 들리기 때문.
선택한 무관심
이에 더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회스 가족이 단순히 무관심한 게 아니라, 무관심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수용소 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회스가 유대인 여성을 성노예로 쓰고, 헤트비히가 하녀를 수용소 안으로 보내서 죽일 수도 있다며 기분풀이용으로 협박하는 모습이 그 방증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 일상을 누리고 지키려고 한다. 아렌트의 말마따나 현실의 모순에 대해서는 철저한 무사유로 일관한다. 회스가 전근 나갈 예정이라고 아내에게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헤트비히는 지금 집에서의 유복한 삶을 지속하지 못할까 봐 격렬히 화낸다. 이에 회스는 가족들을 관사 남겨두고 혼자 숙소로 떠난다. 그 집 옆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번에도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다른 인물과 대조하면 회스 가족의 문제점은 더 명확해진다. 바로 헤트비히의 친정 엄마 '리나'다. 딸을 만나기 위해 여행 온 그녀. 헤트비히는 하녀들을 동원해 가장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수영장과 정원에 핀 꽃을 자랑한다. 하지만 정작 리나의 시선은 다른 곳에 향한다. 그녀는 딸에게 묻는다. 정원을 막은 벽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고. 헤트비히는 그 질문을 무시한 채 자기 자랑을 이어가기 바쁘다.
이 차이는 모녀의 결별로 이어진다. 아빠랑 카누를 탄 아이들이 수용소 발(發) 잿가루를 뒤집어쓰자 헤트비히는 그들을 씻기기 바쁘다. 리나는 다르다. 밤새 굴뚝을 빛내는 불길과 떨어지는 잿가루를 목격한 그녀는 전날 오후 광경을 떠올린다. 해 지는 수영장을 청소하는 유대인 하녀들과 그 뒤에서 연기를 뿜는 굴뚝을. 아침이 되자 리나는 곧장 헤트비히의 집을 떠난다. 딸과 달리 그녀는 최소한 인간적으로 사유할 줄 아니까.
뺄셈의 미학으로 완성한 영화적 논박
더 나아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혹시 모를 변명까지도 철저히 논박해 버린다. 아이히만 같은 범죄자들은 다음 같이 변명하기도 한다. 그저 명령을 따른 직장인이었을 뿐이라고. 자기들도 또 다른 피해자라고. 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 지극히 영화적인 방법으로 그들이 결코 나치의 전쟁 범죄로부터 윤리적으로 무관하거나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최종 해결책'을 입안한 회스는 작전에 자기 이름이 붙었다면서 기뻐한다. 그는 조직 내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뿐, 자기 작전의 파급력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는다. 물론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내심 깨닫는다. 축하 파티가 끝난 뒤 사무실에서 퇴근할 때 극심한 구역질에 시달리기 때문. 이때 영화는 박물관이 된 현재 시점의 아우슈비츠와 잔뜩 쌓여 있는 유대인 희생자들의 의복과 신발을 비춘다.
이 몽타주는 회스가 내심 자기 작전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폭압적인지 마음 한편에서는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분명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그는 전혀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계단을 다시 내려가며 마지막까지 철저히 무관심하기를 선택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대를 이어 붙인 편집은 뺄셈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는 유대인의 피, 땀, 눈물을 직접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쉬운 길을 가지 않고도 홀로코스트의 '평범했던' 뒷사정을 보여준다. 그 어떤 작품보다도 나치의 책임을 명확히 못 박는 데도 성공했다. 전쟁 영화 중에 <덩케르크>가 있다면, 홀로코스트 영화 중에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있는 셈이다.
우리의 일상은 다를까?
마지막으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화살은 나치 부역자들이 아닌 관객에게 향한다. 아우슈비츠 박물관이 등장할 때, 영화는 직원들도 함께 보여준다. 그들은 매일 청소하고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홀로코스트와 가장 맞닿은 곳에서 일하지만, 그들에게 홀로코스트는 그저 일상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니까.
흥미롭게도 그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영화를 본 뒤 우리가 돌아갈 일상도 마찬가지로 비극에 무감각하기 때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 등에서 자행된 비인간적 행위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한국군 내에서 사고가 터져도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라며 무관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게 보면 비명을 무시하는 회스 가족과, 아우슈비츠를 청소하는 직원과, 비극을 접하고도 반응하지 않는 우리는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극 중 사과를 놓는 소녀가 유독 인상적이다. 사실 그녀는 뜬금없는 인물이다. 다른 주인공과의 접점도 없고,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등장마다 열화상 카메라로 보여주는 연출도 독특하다. 하지만 그녀는 뜬금없기에 중요하다. 그녀는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들과도 아무 접점이 없다. 그 덕분에 그들이 집어갈 수 있도록 수용소 주변 곳곳에 사과를 두는 선의는 오히려 더 빛난다. 회스 가족의 무관심과 대척점에 서서.
이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진정으로 당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와 상관없다고 여겨지는 일에, 내 관심사와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비인간적인 일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한 반성과 성찰이 없다면 누구든 회스 가족이 될 수 있다고 거듭 일깨워주면서. 그 결과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분명 걸작이지만, 그 미학과 완성도에 그저 마음 편히 박수 보낼 수 있는 영화는 아닌 듯하다.
Outstanding 특출남
400 페이지짜리 필설을 담고도 남은 1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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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시록 | 용두사미로 끝난 종교 미스터리 스릴러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본질을 놓친 종교 미스터리 스릴러
관점에 따라 종교의 정의는 달라지지만, 크게 두 가지의 공통된 조건은 꼽을 수 있다. '초월적 존재'와 '직관'이다. 인간과는 다른 초월적 존재나 현재 살고 있는 세상과는 별개인 초월적 세상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존재에 대한 직관적 경험을 토대로 믿음을 갖는다는 것. 이때 주관적인 경험이 여러 차례 반복되거나, 여러 사람에 의해 객관적으로 진술 또는 관찰될 수 되는 경험이나 사건이 있다면 이를 종교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정의를 따르면 종교는 일반 사회, 세속과 긴장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종교적 경험이 본질적으로 초월적인 존재와 세상의 질서와 규칙에 근거하는 한, 일반 사회의 범과 규범에 어긋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속의 관점에서는 시민적 합의 대신 초월적 존재에 근거하는 종교적 규범이나 질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유럽이나 중동에서 이슬람 전통과 민주주의 체제가 쉽사리 융화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계시록>은 바로 이 간극과 긴장 상태에 주목했다. 사회의 규칙과 다른 차원의 질서 간에 존재하는 갈등을 한 성범죄자를 추적하는 목사와 형사의 스릴러 내에 녹여낸다. 문제는 종교적 소재를 다른 메시지를 꺼내기 위한 도구로만 소비하는 연상호 감독의 고질병이 도졌다는 것. 그로 인해 <계시록>은 종교적 통찰과 메시지도, 미스터리 스릴러다운 장르적 쾌감도 놓치고 말았다.
종교 vs 사회
<계시록>의 전반부는 예상외다. 그간 연상호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캐릭터 개개인의 서사를 다루는 데 미숙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정이>, <선산>에서도 반복되는 문제였다. <계시록>은 다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제작자로 합류한 효과인지는 몰라도, '성민찬'(류준열)과 '이연희'(신현빈)의 내면을 세심히 들여다보며 긴장감을 쌓아 올린다. 그 덕분에 두 주인공이 속한 전혀 다른 세계도 직관적으로 대조를 이룬다.
민찬의 세계는 종교적이다. 계시를 따르면 현실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이 반복된다. 딸이 실종됐다는 전화를 받은 민찬은 교회에 방문했던 성범죄자 '권양래'(신민재)를 범인으로 의심하며 그의 뒤를 밟는다. 미행을 들킨 민찬은 몸싸움 끝에 양래를 산비탈 아래로 밀어버린다. 그런데 민찬의 살인미수는 밝혀지지 않는다. 양래의 집 앞 CCTV가 고장 나고, 그와 몸싸움을 벌인 현장도 폭우 때문에 증거가 사라진 행운이 뒤따른 덕분이다.
이에 민찬은 양래를 밀어버린 뒤 목격한 예수의 얼굴이 계시라며 그를 단죄하는 게 신의 뜻이라고 믿는다. 그 이후로 민찬에게는 행운이 이어진다. 새로 생길 대형 교회 담임 목사직도 제안받고, 우연히 방문한 양로원에서 겨우 살아난 양래를 발견해 그를 완전히 단죄할 기회도 잡는다. 민찬이 차 안에서 아내에게 불륜 사실을 고백하라고 외치는 기괴한 장면은 그의 세상이 직접 경험한 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희의 세계는 정반대다. 그녀가 양래를 죽여야 할 동기는 누구보다도 명확하다. 복수다. 여동생 '연주'(한지현)가 그에게 강간당했고, 그가 정신병력을 이유로 감형받자 연주는 자살했으니까. 연희 본인도 여동생의 환시와 환청을 겪을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중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사회의 질서를 준수하고, 법의 처벌을 믿는다. 여동생 사건을 겪은 후로도 연희가 경찰복을 벗지 않은 것이 그 방증이다.
롱테이크 액션에 담긴 함의
민찬과 연희의 세계는 양래를 기점으로 충돌한다. 그들은 양래가 흉악범죄자이고,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크다. 민찬은 신의 뜻대로, 신의 정의대로, 신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규율에 따라서 양래를 죽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본 계시에 따르면 살인이 사회적으로 살인이 금지된 행위일지언정 신의 정의에는 부합한다.
연희는 민찬의 세계를 용납할 수 없다. 아무리 그 의도나 목적이 선하다 하더라도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사회적 합의이니까. 이렇게 보면 두 주인공의 충돌은 인간의 관점에서 만들어낸 세속의 질서, 윤리나 선악의 기준이 초월적인 존재의 규범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여기에 양래의 서사가 더해지면 <계시록>의 종교적, 윤리적 딜레마는 더욱 깊어진다.
양래는 이미 계부의 가정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한 차례 감형을 받은 바 있다. 출소한 후에도 연주에게 했듯이 '아영이'(김보민)에게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계부 핑계만 늘어놓는다. 속죄하지 않는 그를 보다 보면 '그에게 과연 법의 처벌만으로 충분히 정의를 세웠다고 할 수 있을까?' '민찬의 방식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그런데 민찬이 법의 잣대를 어긋나도 그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버려진 건물에서 펼쳐진 원테이크 액션 시퀀스가 <계시록>의 하이라이트인 이유다. 물론 액션 연출 자체도 박진감 넘치고, <그래비티>와 <로마>에서 인상적인 롱테이크 장면을 보여준 알폰소 쿠아론의 존재감도 인상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 악인을 두고서 전혀 다른 정의와 질서, 우주와 세계가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상황을 고스란히 액션에 담아냈기에 이 시퀀스는 특히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계시라는 신기루
하지만 이 액션 시퀀스 이후로 <계시록>은 급작스레 길을 잃는 듯하다. 정신과 의사를 등장시키고, 그의 입을 빌려서 명확한 답을 알려주며 손쉽게 갈등을 매듭짓는다. 민찬의 계시가 서로 연관성이 없는 대상 사이에서 의미 있는 연결을 인식하는 심리적 경향인 '아포페니아(Apophenia)' 현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믿는 존재와 그가 사는 세계를 부정함으로써 두 우주, 질서의 충돌을 무마한다.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민찬을 양래와 같은 범주의 인물로 묶고, 그들과 연희의 차이점을 부각해 상술한 딜레마를 해결하려 한다. 이를 위해 <계시록>은 민찬이 본 계시를 일종의 신기루로 취급한다. 양래가 자신의 성범죄를 계부의 학대로 인해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고 변명하듯이, 민찬도 계시라는 합리화 기제를 통해서 살인미수를 신의 정의라고 변명한다는 것이다.
연희는 다르다. 자신의 행동을 신과 계부의 탓으로 돌린 두 사람과는 달리 자기 행동을 온전히 책임지려 한다. 복수심에 매몰되는 대신 자기 의지로써 동생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영이의 안위를 우선순위에 두려고 애쓴다. 이들의 차이를 통해 <계시록>은 한 인간을 악과 선으로 가르는 건 자신의 생각이고 의지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계시록>이 포기한 것
위와 같은 <계시록>의 결론은 윤리적으로 깔끔하다. 일반적인 상식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메시지의 설득력, 당위성과는 별개로 <계시록>의 답변은 영화적으로 영리하지 않다. 중반부까지 <계시록>은 민찬이 본 환시가 그의 합리화일지 아니면 진짜 계시일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를 스토리텔링의 원동력으로 삼았는데, 이 장점과 특색을 스스로 포기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민찬과 연희의 추격전에는 이중의 긴장감이 감돈다. 연희가 스릴러의 서스펜스를 담당할 때, 민찬은 다른 결의 긴장감을 쌓는다. 신의 정의를 내세우는 민찬에게 맞받아치는 양래의 하소연에 철학적 논쟁이 담겨 있기 때문. 만약 신이 전지전능하고 선하다면, 어린 양래가 계부에게 학대당할 때 신이 무엇을 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 신이 회개하는 죄인을 사랑한다면, 민찬이 신의 계시를 잘못 이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민찬의 계시를 허상이라고 결론짓는 순간, 그의 서사는 그저 비겁한 정신이상자의 틀 안에 갇힌다. 종교적 현상에 기대어 쌓아 올린 신비로운 분위기와 상이한 질서의 충돌이 빚어낸 긴장감도 한순간 허물어진다. 그렇다고 복수심을 극복하는 연희의 이야기만으로 그 공백을 채우지도 못했다. 인간의 의지가 선과 악을 가른다는 주제의식은 <다크 나이트> 같은 히어로 영화에서 자주 다뤄진 만큼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한 용두사미로 끝나다
더 나아가 연희가 극을 주도하는 후반부에서는 신비한 분위기와 미스터리에 가려졌던 부족한 완성도도 두드러진다. 사실 <계시록>은 첫 10분 정도만 보더라도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들이 어떻게 얽히게 될지를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연희가 아영이를 구해내는 후반부 전개는 그 예측으로부터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자연히 <계시록>의 결말은 범죄 스릴러 작품에게 기대할 법한 장르적 쾌감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또 종교적 미스터리를 포기하고 범죄극을 취했지만, 정작 범죄 드라마로서의 특별함도 부족하다. 양래가 아영이를 숨긴 위치를 찾아내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가해자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상징과 범죄 장소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 이는 <마인드헌터>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과 같이 프로파일러가 등장하는 범죄 심리극의 패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전개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종교를 이용해 판을 깔지만, 정작 종교를 깊이 못 다루는 작법은 연상호 감독의 고질병처럼도 보인다. 전작 <선산>에서도 선산에 얽힌 오컬트처럼 분위기를 잡다가, 결국 가족 관계의 비밀을 풀어내기 바빴으니까. 즉, 좋게 말해 예상외의 전개가 주는 재미가 있고, 나쁘게 말해 소재의 잠재력을 밀어붙일 용기가 없는 스토리텔링이 연상호 감독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임을 <계시록>이 확언해 주는 듯하다.
Poor 형편없음
연상호의 트레이드마크는 용두사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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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정 배우, SAG 어워즈 여우조연상 수상
미국 배우 조합상(Screen Actors Guild Awards, 일명 SAG Awards)은 헐리웃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 스턴트맨, 성우 등을 회원으로 하는 ‘미국 배우 조합’(SAG)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으로, 헐리웃의 영화 및 TV 산업에 기여하고 있는 배우들에게 상을 수여해왔습니다.
올해로 27번째 시상식을 맞은 SAG 어워즈는 작년, <기생충>이 <밤쉘>, <아이리시맨>, <조조 래빗>. <원스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제치고 외국영화 최초로 영화부문 앙상블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이 수상은 1999년, 로베르토 베니니의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노미네이트된 이후 두 번째 노미네이트이자 첫 번째 수상이었기에 더욱 화제가 되었습니다.
배우를 위한 시상식이니만큼, 송강호를 포함한 10명의 배우들이 이 상을 수상하였지만, 정작 봉준호 감독은 빈손이었는데요. 올해는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이 부문에서 <Da 5 블러드>,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원 나이트 인 마이애미>,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과 경합을 벌였지만, 상은 결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에게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윤여정 후보가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며 한국 배우 최초 노미네이트 기록에, 최초 수상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게 되었는데요. 윤여정 배우는 수상 소감을 통해 "동료 배우들이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선택해 줘서 영광"이라 말하며 다른 후보들에게도 감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윤여정 배우는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 등 유력한 후보들을 제치고 여우조연상을 차지하며, 4월 25일(현지 시간)에 열릴 오스카 시상식에서의 수상을 더욱 기대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윤여정 배우에게 또 하나의 연기상을 안겨준 ‘미국 배우 조합상’의 다른 수상 결과를 살펴보며,
오늘의 리포트 마무리하겠습니다.
영화부문 앙상블상
<Da 5 블러드> - 스파이크 리
<미나리> - 정이삭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조지 C. 울프
<원 나이트 인 마이애미> - 레지나 킹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 아론 소킨
영화부문 여우주연상
<힐빌리의 노래> - 에이미 아담스
★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비올라 데이비스
<그녀의 조각들> - 바네사 커비
<노매드랜드> - 프란시스 맥도맨드
<프라미시 영 우먼> - 캐리 멀리건
영화부문 남우주연상
<사운드 오브 메탈> - 리즈 아메드
★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채드윅 보스만
<더 파더> - 안소니 홉킨스
<맹크> - 게리 올드만
<미나리> - 스티븐 연
영화부문 여우조연상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 - 마리아 바카로바
<힐빌리의 노래> - 글렌 클로즈
<더 파더> - 올리비아 콜맨
★ <미나리> - 윤여정
<뉴스 오브 더 월드> - 헬레나 젱겔
영화부문 남우조연상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 사샤 바론 코헨
<Da 5 블러드> - 채드윅 보스만
★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 다니엘 칼루야
<더 리틀 띵스> - 자레드 레토
<원 나이트 인 마이애미> - 레슬리 오덤 주니어
영화부문 스턴트 상
<Da 5 블러드>
<뮬란>
<뉴스 오브 더 월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 <원더 우먼 1984>
TV드라마부문 앙상블 연기상
<베터 콜 사울>
<브리저튼>
★ <더 크라운>
<러브크래프트 컨트리>
<오자크>
TV드라마부문 연기상 (여자)
★ <더 크라운> - 질리언 앤더슨
<더 크라운> - 올리비아 콜맨
<더 크라운> - 엠마 코린
<오자크> - 줄리아 가너
<오자크> - 로라 리니
TV드라마부문 연기상 (남자)
<디스 이즈 어스> - 스털링 K. 브라운
★ <오자크> - 제이슨 베이트먼
<더 크라운> - 조쉬 오코너
<베터 콜 사울> - 밥 오덴커크
<브리저튼> - 레게 장 페이지
코미디 부문 연기상 (여자)
<데드 투 미> - 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
<데드 투 미> - 린다 카델리니
<더 플라이트 어텐던트> - 칼리 쿠오코
<시트 크릭 패밀리> - 애나 머피
★ <시트 크릭 패밀리> - 캐서린 오하라
코미디부문 연기상 (남자)
<더 그레이트> - 니콜라스 홀트
<시트 크릭 패밀리> - 댄 레비
<시트 크릭 패밀리> - 유진 레비
★ <테드 래소> - 제이슨 서더키스
<레미> - 라미 유세프
TV영화/미니시리즈 부문 연기상 (여자)
<미세스 아메리카> - 케이트 블란쳇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 - 미카엘라 코엘
<언 두잉> - 니콜 키드먼
★ <퀸스 갬빗> - 안야 테일러 조이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 - 캐리 워싱턴
TV영화/미니시리즈 부문 연기상 (남자)
<퀸스 갬빗> - 빌 캠프
<해밀턴> - 다비드 딕스
<언 두잉> - 휴 그랜트
<더 굿 골드 버드> - 에단 호크
★ <아이 노우 디스 머치 이즈 트루> - 마크 러팔로
TV부문 스턴트상
<더 보이즈>
<코브라 카이>
<러브크래프트 컨트리>
★ <더 만달로리안>
<웨스트월드>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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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극장가의 위기는 팬데믹 이후 매년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최근 극장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가 총 5,470만 달러로 올해 최저 주말 수익을 기록했습니다.파라마운트의 신작 <노보케인>이 누적 수익 870만 달러로 1위를,
<미키 17>과 <블랙 백>이 누적 수익 약 750만 달러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하며
한 주말 동안 단 한 편의 영화도 1,000만 달러를 넘지 못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썰렁한 극장가에 곧 개봉을 앞둔 디즈니의 실사영화 <백설공주>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펼친 인상적인 가창력과 연기력을 뽐낸 레이첼 지글러가 주연을 맡은 <백설공주>는
북미 개봉 첫 주 5,000만~5,600만 달러의 성적을 기대받고 있습니다.
국내 극장가 역시 한산하긴 마찬가지입니다.
1위를 차지한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은 주말 관객 수 32만 명을 불러들여 누적 관객 수 26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인기 애니메이션을 극장판으로 제작한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이 누적 관객 수 20만 명을 돌파하며 2위를,
교황 선거를 다룬 <콘클라베>가 지난주에 이어 3위에 올랐습니다.
가장 최근 개봉했던 디즈니 프린세스 실사 영화인 <인어공주>가 국내 누적 관객 수 64만 명에 그친 가운데,오는 19일 개봉하는 새로운 프린세스 실사 영화 <백설공주>는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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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선택한 소녀
모아나
줄거리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고, 드넓은 바다가 사방 천지에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섬, 모투누이.
그 곳에서 나고 자란 족장의 딸 '모아나'는 어려서부터 바다를 좋아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에 유일하게 쫄지 않았던 아이이기도 하다. '테 피티'여신의 심장을 훔친 '마우이'라는 영웅을 찾아서 '테카'를 잠재우고 심장을 돌려놔야 한다는 옛 이야기. 사람들은 다 그거 헛소리라고 해도 할머니는 모아나에게 너가 바로 바다에 선택된 아이라며 얼른 배 타고 나가라고 꼬신다.(물론 진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너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을 뿐.) 할머니는 모아나가 나가는 것을 두려워해도, 그러면서도 바다 근처를 서성거리며 망설여도 그저 바라보고 모아나의 선택을 존중한다.
모아나는 물론 너무나 바다로 나가고 싶지만, 완강한 아버지는 모아나가 족장의 자리를 지켜서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난리다. 그러나 책임감 스웩 넘치는 아빠도 언젠가부터 섬에 일어나는 이상한 일을 감지한다. 할머니는 이 때다 하면서 심장을 돌려놓지 않아서 저주가 온 거라고, 모아나에게 원래 이 부족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일깨워준다.(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뭐, 예상하겠지만 결국 모아나는 바다로 떠난다. 바다가 나를 선택했다는 것 하나만 믿고!
책임지는 방식에 대하여
숨은 의미 찾기
디즈니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 고전적 공주들로 큰 흥행을 거두었지만, 그 공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공주의 상은(이보시오, 관상쟁이 양반. 내가 공주가 될 상인가? feat.이정재) 아니었던 것 같다.
모법답안처럼 여겨지는 옛 공주들을 뒤로하고,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새로운 공주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시도를 통해 '포카혼타스/ 뮬란/ 미녀와 야수/ 벅스라이프의 개미공주' 같은 공주들 말고도 '타잔의 제인/ 인어공주의 딸/ 인크레더블의 헬렌' 처럼 여러 여자주인공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해서 정착한 공주들이 바로 '공주와 개구리/ 라푼젤/ 메리다와 마법의 숲' 속의 공주들이었다. 여기서 잭팟 터진 게 바로 '겨울왕국의 엘사(feat.레리꼬)'였던 것이고. 그러나 디즈니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세상에 숨어있는 더 많은 공주들을 발굴하고자 한다. 그런 시도에서 나온 것이 바로 모아나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를 잇거나, 가문을 책임지거나, 책임을 지는 것은 보통 남성의 역할로 도드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성별에 관계없이 극성 부모님을 만나면 누구나 다 똑같을 거다. 마치 모아나처럼. 이렇게 말하니 마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일 뿐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모아나는 분명 '디즈니가 최종적으로 다다랐던 공주들'과는 다르다.
보통 주인공에게 어떤 책임이 주어지면 '책임 vs 자유'의 구도로 나아가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주인공에게 책임을 분배하는 방식이 이분법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엘사와 모아나의 구도를 비교해보자면,
엘사 :'왕국에서 자신의 힘을 숨기고 훌륭한 여왕이 되는 것 vs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
모아나 :'족장이 되어 사람들을 바다로부터 지켜서 책임지는 것 vs 바다로 떠나 섬의 저주를 풀어 사람들이 넓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
이라는 상황에 놓인다. 엘사와는 달리 모아나는 '책임 vs 책임'의 구도를 갖는 것이다. 거기에 바다로 떠나는 것이 자신의 자유임과 동시에 부족의 정체성을 찾는 모험이기도 하다. 모아나는 아빠가 찾지 못했던 새로운 책임지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번에 디즈니가 말하고자 한 것은 '책임지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전에 인크레더블 2를 리뷰할 때, 제작진이 세대교체를 노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특이한 것은, 모아나를 격려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도록 조언하는 것이 할머니라는 점이다. 그것과는 반대로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모아나를 흔드는 것이 바로 아빠다. 이로써 두 종류의 어른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자신의 편견에 휩싸여,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인격체로 존중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어른은 진실을 알려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가 원하는 방향을 선택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나 자신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결국 공생하며 서로를 돕고 도움 받으며 살아야 한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지혜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다.
세상은 변한다. 문제에서 도망쳐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회피하고 그저 참기만 하던 옛날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부딪히고, 직면해야 한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전세대에게 말하고 있다.
젊은 층에게 자리를 양보하되,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짜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선택받은 게 아니다
감상평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사회에서 가장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단연 90년대생이다. 세대교체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세대를 무시하거나 제멋대로 굴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를 꾸려나갈 준비를 해야한다. 그 방식이 설령 믿을만한 것이 아니더라도, 시도조차 못하게 막는 것은 이전세대의 권력남용이다. 늘 새로운 것은 비난받았지만, 세상을 바꾼다.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아직은 모른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마우이'는 '모아나'와 같은 처지이다. 전설의 영웅이라 불리지만,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철부지일 뿐이다. 하지만 그건 모아나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길을 선택했지만,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막막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 때에 필요한 것은 마음이 통하는 동료이다.
두 사람은 서로 부족한 점을 배우고 채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함께' 결말을 만들어낸다. 뱃머리가 약간 삐그덕거려도, 거센 물살에 가끔은 심하게 흔들릴 지라도, 배가 바다에 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 모아나는 관객을 하나의 지점으로 이끈다.
우리 인생은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한 척의 배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가끔은 큰 파도를 만나서 다치기도, 누군가를 잃기도 한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다가, 다른 배를 만나고 무인도를 찾고, 새로운 곳을 개척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항해를 멈출 수는 없다. 가끔씩 지독한 인생의 파도에 너무나 지쳤을 때, 내가 발견했던 땅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물론 너무 마음에 드는 땅이 생긴 사람은 그곳에 정착할 수도 있고, 뭍보다는 파도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은 땅에 발 디딜 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바다로 내몰 수도, 땅으로 붙잡을 수도 없다.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영화 속에서 발견한 것은, 단순히 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뭉친 소녀가 아니었다. 자신이 선택한 바다라는 모험을 즐기고, 그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결국 모아나가 책임진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마우이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졌다.
때로 항해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결국 나의 마음이 어디로 끌리는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언젠가는 바다 위에서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답은 언제나 나에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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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선언, 좋았는데 아쉬운 영화
?Rabbitgumi 입니다!
기대를 많이 모았던 작품이죠.
비상선언이 개봉했습니다.
관상, 더 킹, 연애의 목적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의 신작이죠.
배우진도 화려합니다.
송강호, 전도연, 이병헌, 김남길, 임시완 같은 탑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개봉 후 첫 주의 반응은 호불호가 갈리는데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는 아래 링크에서! :)
https://rabbitgumi.stibee.com/
브런치는 아래 링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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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스> 메인 예고편
"미스 프랑스에 나갈 거예요"
동네 복싱장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지긋지긋한 매일을 보내던 알렉스.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고, 자신의 오랜 꿈을 기억해낸다.
좌충우돌 미스 프랑스 도전기!
한계를 뛰어넘은 당당한 발걸음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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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코브라 시즌2> 공식 예고편
바다에 수장된 2차 대전 탄약선이 폭발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서덜랜드는 신임 내무 장관인 조지프 오바시와 코브라를 소집해 비상 대피령을 내린다. 혼란한 와중에 러시아 재벌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무고한 국민이 희생되자, 서덜랜드는 암살범 검거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