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your bunny2021-03-01 00:00:00
<벌새>, 그래도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14살 소녀 은희가 마주한 거대한 세계 속의 이야기, <벌새>
두 번째로 보는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긴 여운이 남은 영화였다. 처음 보기 시작할 때는 ‘러닝타임이 꽤 길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계속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라는 생각이 들고,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나오면 ‘벌써 끝나 버렸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다. 장면 하나하나를 모두 눈에 담고 싶을 만큼 편안한 색감을 띄는 것이 이 영화를 보고, 또 보게 하는 매력인 것 같다.
전반적으로 잔잔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영화를 보다 보니 어딘가 ‘소란스럽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14살 소녀 은희가 마주한 거대한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들 때문인 것 같다. 인상 깊었던 장면을 이야기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은희가 친구 지숙에게 자신을 때리는 오빠 때문에 자살하는 상상을 얘기하는 장면이다.
- 내가 자살을 하는 거야. 오빠 새끼가 괴롭혀서 힘들다고 유서 남기고.
- 죽고 나서 하루만 유령으로 있는 거야. 그 새끼 막 울고 아빠한테 혼나. 그럼 난 그걸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상상을 한다.
- 그러면 난 막 상상만 해도 후련해.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이런 상상을 해야 하는 은희의 모습에 탄식이 저절로 났다. 그리고 지숙의 대답인 “다들 우리한테 미안해하긴 할까?”라는 말을 듣고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갑자기 내 뒤통수를 때린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게 아직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현실이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진심을 담아 미안해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어른들이 너무 많다. 아직도 우리의 주변에는 마땅히 받아야 할 사과를 받지 못하고 눈앞의 현실에 낙담하고 있을 아이들이 많다. 앞으로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바꿔 나가야 할 과제이다.
은희가 우연히 발견한 엄마를 애타게 부르지만, 엄마는 전혀 듣지 못하고 그런 엄마를 은희가 그저 바라보는 장면이다. 아마 이때 엄마는 돌아가신 외삼촌, 즉 엄마의 오빠를 생각하고 있던 것 같다. 그리워하고 있던 것 같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은데 닿지 않는 사람이 있다. 지금 당장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다시는 그 사람을 직접 만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의 기분은 참 이상하다. 감정이 무뎌져서 당장 눈물이 펑펑 날 정도로 슬프진 않은데 그냥 좀 마음이 이상하다.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가만히 그 사람을 생각하다 보면 주위의 소리가 차단되며 멍-해지기도 한다. 잠시 정적에 휩싸인다. 이 장면에서 은희의 엄마가 딱 그 상황이지 않았을까.
영지가 다툰 이후로 사이가 서먹해진 은희와 지숙에게 ‘잘린 손가락’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다.
-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서 소주 한 잔 마시는 밤
덜걱덜걱 기계 소리 귓가에 남아 하늘 바라보았네
잘린 손가락 묻고 오던 밤, 시린 눈물 흘리던 밤
피 묻은 작업복에 지나간 내 청춘, 이리도 서럽구나
하루하루 지쳐진 내 몸 쓴 소주에 달래며
고향 두고 떠나오던 날 어머니 생각하며
술에 취해 터벅, 손 묻은 산을 헤매고 다녔다오
터벅터벅 찬 소주에 취해 헤매어 다녔다오
영지의 정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조용히 영지의 목소리를 듣고, 눈빛을 바라보고, 가사를 곱씹어보면 괜히 울적해진다. 노래를 다 부른 영지는 은희와 지숙을 보며 햇살같이 웃는다.
이 장면의 영지는 정말 ‘새벽’ 같다.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이 있으세요?’라는 은희의 물음에 대한 영지의 대답이다.
나도 내가 좋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사람들도 누구나 나 자신이 싫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이 장면을 접하기 전까지의 나는 내가 싫어질 때 자책하곤 했다. 나를 싫어하는 그 감정을 외면하려고만 했다. 하지만 내가 마냥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나 자신이 좋을 때도 있듯이 내가 싫어질 때도 있는 법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이다.
오빠에게 맞고 지낸 은희에게 앞으로 맞지 말고, 가만히 있지 말라는 말을 건네는 영지의 모습이다.
어떻게든 맞서 싸우라는 사람, 맞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주는 사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사람,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사람.
‘가만히 있지 마’라는 말을 실제로 해주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운 것 같다. 나조차도 이런 말을 선뜻 해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용기가 있다는 점에서 영지는 참 좋은 사람 같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그래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 하루를 겪어도,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웃던 사람이 떠나도, 친한 사람과 사이가 잠깐 틀어져도, 내게 위로가 되어주던 사람의 다정한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어도,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
나쁜 일을 겪으면 신기하게도 기쁜 일이 다가온다. 어떤 인연을 놓치면 놀랍게도 또 다른 좋은 인연이 찾아온다.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Relative contents
-
-
- 영화 서복 후기 / 티빙 동시 개봉 / 공유, 박보검의 환상 케미 / 복제인간이 현실이 된다면...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서복”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복제인간, #박보검, #공유, #브로맨스, #티빙, #OTT
-
- 넷플릭스 <제니퍼 로페즈 : 내 인생의 하프타임> 공식 예고편
제니퍼 로페즈를 오늘날의 아이콘으로 만든 투지와 집념을 밀착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그녀의 인생 후반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한 《제니퍼 로페즈: 내 인생의 하프타임》은 라틴계 여성, 엄마, 아티스트로서 주도적으로 길을 개척하고 더 원대한 목표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그녀의 진화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
-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메인 예고편
1995년 작가를 꿈꾸는 조안나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에
CEO 마가렛의 조수로 입사한다.
출근 첫날,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 샐린저의
팬레터에 기계적으로 응대하라는 지시를 받지만,
조안나는 그들에게 진심 어린 답장을 보내려 한다.
-
- 권선징악의 끝판왕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스포일러 포함 (feat. 전종서)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23.03.22 개봉)
감독: 애나 릴리 아미푸르
출연: 전종서 등
피 나오는 재난 영화도 못 보는 제가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을... 왜 보았을까요......
네 정답은 CGV 필름마크가 가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ㅋㅋ 그것도 있지만 사실은
유튜브에 예고편 틀어 주는 거 보고 반했어요
전종서 님께 반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려나요
기괴한 연기(??)를 너무 잘하시는 거 같아요 몸값부터,,
암튼 강려쿠한 스포 하나 드리자면
첫 장면부터 피 잔뜩 튀기는... 잔인한 영화입니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깔리는 BGM으로
어딘가 모르게 섬뜩하고 소름돋는 분위기가 연출돼요
그럴 만한 게 애초에 주인공 모나부터가
정신 병원을 탈출한 조현병 환자예요
망명으로 인해 10살 때부터 정신병원 신세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조현병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나의 아동 학대 행위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은
모나의 자유를 향한 여행 계획... 그쯤 되는데요
정신병원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모나,
그녀를 돕는 이는 많지만 진정으로 임하는 사람은 몇 안 돼요
여기서 '권선징악'이라는 감독 의도를 깨달았고
또 '자유의지'에 관한 생각이 하나 들었는데요
사람들은 모나의 눈을 보면 조종당하는 기분이 듭니다
온몸에서 열이 나고 손이 멋대로 움직인다... 고 하죠
그렇다면 모나가 마녀인가? 그건 아닐 거예요
정신병원에 갇혀 발톱마저 혼자 못 깎는 신세였던 그
내가 내 손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영화적 기법으로 허용된 판타지지만요
그렇다면 권선징악은 무엇인가?
모나는 악한 행동을 한 이에게만
자유의지가 없어지는 최면의 벌을 내려요
자신을 괴롭혔던 병원 사람들,
자신을 그 지옥에 가두려는 경찰,
사람을 마구 때리는 여자,
왕따시키는 가해자 아이들 등
세상에 벌을 내려야 할 사람이 이렇게 많네요
물론 보니의 주도로 인해
모나도 사람들의 돈을 훔치는 데 일조했지만
이 벌은 주동자였던 보니가 받았죠?
죽기 직전일 정도로 아주 심하게,, 맞았으니까요
근데 또 사람 때린 값은 그의 동료가 갚아 줘요
권선징악을 이루려면 사람 때리는 데 끝이 없네요
암튼 그런 모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돕기만 하는 캐릭터가
딱! 두 명 있죠?
찰리랑 퍼즈요 ㅎㅎ
퍼즈는 모나랑 어떻게 함 해 보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옷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위조 신분증도 주고
모나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는 부드러운 남자였고
찰리는 모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현재를 버리기까지 하는 멋진 남자예요
사실 저는 모나가 찰리를 구해 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임하는 엄마의 옆에서요
그런데 결국 찰리가 그 손을 놓아 버렸고......
이번에는 욕망 덩어리 모나 혼자 도망쳤네요
어떤 후기에서
자유와 욕망 그 굴레... 라는 한 줄 평을 보았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자유=욕망이지만, 욕망 때문에 자유를 잃을 수도 있거든요
그 대표적인 예시로 보니가 있겠네요
암튼 2시간짜리 영화였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보고 왔답니다 ㅎㅎ
으스스한~ 분위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봐 볼 만한 영화였어요!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
- 타임 루프 감옥에서 살아남는 101가지 방법
간만에 청량하고 화끈한 로맨스 코미디 한 편을 보았습니다. 2020 선댄스 영화제 출품작 중 사상 최고 판매가 기록(약 2,250만 달러)을 세우고, 로튼 토마토 신선도 95%를 기록하며, 2021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최우수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영화, 바로 <팜 스프링스>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 팜 스프링스 지역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한 두 사람이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타임 루프(Time loop)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포스터에서는 이 영화를 단 세 단어로 요약하죠. '타임 루프, 썸머, 로맨틱 코미디'. 이 단어들은 <팜 스프링스>를 설명하기에 조금의 과함도, 약간의 부족함도 없습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살펴보시죠.
※ 8월 11일(수)에 진행된 <팜 스프링스>의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팜 스프링스>는 2021년 8월 19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팜 스프링스
Palm Springs
첫 번째 단어, '타임 루프'입니다. 타임 루프는 영화가 사랑하는 단골 소재입니다. 액션 장르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부터 로맨스 장르의 <어바웃 타임>, <이프 온리>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타임 루프 소재는 관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치트키였죠. 하지만 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영화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의 참신함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개 '우연히 타임 루프 마법에 빠진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타임 루프를 빠져나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며 살아간다'는 주제를 내포하기에 관객에게 색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어렵죠. 저 역시도 큰 기대 없이 영화관에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팜 스프링스>는 여타 타임 루프 소재의 영화들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유사한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신선함이 더 컸다는 표현이 정확할 겁니다. '우연히 타임 루프 마법에 빠진 주인공'까지는 이전의 작품들과 유사하나, 이 '주인공'이 타임 루프 마법에 빠진 시점이 독특합니다. 일반적으로 타임 루프물의 주인공은 영화 시작과 함께 타임 루프의 마법에 빠지는데요. <팜 스프링스>의 남자 주인공 '나일스'는 매일 반복되는 타임 루프의 감옥 속에서 억겁의 시간을 살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입니다. 얼마나 오래 타임 루프 안에 갇혀 있었는지는 '나일스'도, 관객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반복되는 11월 9일, 그 하루가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자신의 원래 직업이 무엇인지조차 망각해버리고, 결혼식에서 멀끔한 정장 대신 하와이안 셔츠를 걸쳐도 아무렇지 않은 '나일스'의 모습을 통해 그저 짐작해볼 뿐이죠.
‘나일스’는 타임 루프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곳을 벗어날 생각조차 없죠. 대신 그 안에서 꽤 편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영화는 매일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 의미 있는 삶을 향유하는 법을 유쾌하게 보여줍니다. 영화 중반 즈음엔 타임 루프에 갇혀 사는 삶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런데 문득 타임 루프에 갇힌 '나일스'의 상황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제한이 생긴 우리는 집 안에서 매일 반복되는 무료한 하루를 보내고 있으니까요. 코로나19가 우리를 타임 루프의 감옥에 빠트린 셈이죠. 하지만 이러한 삶도 향유하고자 마음먹으면 충분히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탈출할 방법이 없다면, '나일스'처럼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하죠. 참으로 시의적절한 영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나일스'로 인해 갑작스럽게 타임 루프에 빠져 혼란스러움을 겪는 여자 주인공 '세라'는 어떨까요? <팜 스프링스>는 타임 루프가 익숙한 '나일스'와 타임 루프가 낯선 '세라'의 대비를 위트 있게 풀어내기도 합니다. 타임 루프 안에 여러 명의 타임 루퍼(Time looper)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매우 신선한 접근이었습니다. 하필 술을 퍼마시고 잊어야 할 정도로 괴로운 기억이 있는 11월 9일의 아침이 매일 같이 반복되다니, '세라'는 이 타임 루프를 탈출해야만 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세라'는 주류 영화가 다뤄왔던 여성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방법을 찾을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요행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세라'는 주체적으로 이 고리를 끊어낼 방법을 찾습니다. 남성 캐릭터의 이야기에 부수적으로 여성 캐릭터를 끼워 넣는 형태를 완전히 벗어났죠. 그녀는 무한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타임 루프의 장점을 이용해 양자 역학을 공부하고, 시공간의 곡률을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똑똑한 과학자가 등장해 주절주절 어려운 말을 늘어놓고는 툭 방법을 던져주는 SF적 설정이나 비가 내리는 날 연인과 키스를 나누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판타지적 설정에 의존하는 대개의 타임 루프 영화와 다른 지점이죠. '세라'는 과연 탈출에 성공했을까요?
타임 루프 속에서 살아남는 법부터 타임 루프를 탈출하는 법까지, 모두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확실히 달랐다'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죠.
⊙ ⊙ ⊙
두 번째 단어는 ‘썸머’입니다. <팜 스프링스>는 제목 그대로 '팜 스프링스'라는 지역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그게 여름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요? 팜 스프링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군에 있는 지역으로, 사막에 둘러싸인 휴양지거든요. 여름에는 최대 50도까지 기온이 오르는 더운 사막 기후라, 11월이 여행에 가장 적합한 시기인 지역이죠. 영화의 배경인 '탈라'와 '에이브'의 결혼식이 11월 9일로 설정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영화 속 배경은 '될 대로 돼라' 마인드로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결혼식장을 횡보하는 '나일스'와 정말 잘 어울립니다.
같은 하루가 매일 반복되는 타임 루프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내일이 없는 것처럼 하루를 보내는 '나일스'와 '세라'의 화끈한 데이트 장면들도 뜨거운 여름과 잘 어울립니다. 마침 11월 9일에 집을 비운 팜 스프링스의 어느 가정집은 타임 루프가 계속되는 한 영원히 빈 객실과도 같죠. 그들만의 안전 가옥에서 맥주 한 캔과 함께 수영을 즐기는 모습은 지상 낙원이 따로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수영장을 놀러가기도, 피서를 떠나기도 어려운 요즘, 대리만족하기에 아주 제격이죠. 맥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화 속에서 '나일스'와 '세라'는 끊임없이 맥주를 마십니다. 여기에도 숨겨진 비밀이 하나 있더군요. 그들이 마시는 맥주는 '아쿠파라(Akupara)'라는 브랜드인데요. 이는 힌두교에서 세계를 등껍질에 짊어진 거북이를 이르는 말로, '무한대의, 불멸의'라는 뜻을 가진 가상의 브랜드라고 합니다. 영화의 핵심 소재를 이 커플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맥주 브랜드 속에 숨겨 놓았네요.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휴양지, 시원한 맥주와 하와이안 셔츠까지. 누군가 '여름'하면 떠오르는 영화를 물었을 때, 추천할 만한 영화가 또 한 가지 생겼습니다.
⊙ ⊙ ⊙
마지막으로 ‘로맨스 코미디’입니다. 영화는 결국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룹니다. 타임 루프 속에서 지루한 하루하루를 지내던 '나일스'와 지나간 고통에 연연하며 괴로워하던 '세라'는 타임 루프 덕에 오직 현재에만 충실하는 법을 배우죠.
그들에겐 필요한 것은 바로 어바인(Irvine)이었습니다. 어바인(Irvine)은 '나일스' 때문에 타임 루프 지옥에 빠진 또 한 사람인 '로이'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세라'와의 사랑에 어려움을 겪는 '나일스'가 '로이'를 찾아갔을 때, '로이'는 이렇게 충고하죠.
"We all have an Irvine."
우리에겐 모두 어바인이 있어.
<팜 스프링스>에서 딱 한 문장의 대사만을 기억해야 한다면 저는 이 대사를 택할 겁니다. 자신을 타임 루프 지옥으로 끌어들인 '나일스'를 원망하며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로이'는 문득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머무르는 어바인의 소중함을 깨닫고, 타임 루프에서의 삶에 적응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나일스'에게도 자신만의 어바인을 찾으라고 충고하죠. 타임 루프 지옥에 빠지더라도 어바인과 같은 안식처가 있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과연 '나일스'의 어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여러분의 어바인은 무엇인가요? 영화를 감상하시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 ⊙ ⊙
여름철 더위가 한풀 꺾인 모양새입니다. 날씨가 풀린 것인지, 이 영화의 청량함이 제 더위를 앗아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코미디를 기대하시는 분도, 로맨스를 기대하시는 분도, 참신한 타임 루프물을 기대하시는 분도 모두 만족스럽게 보실 수 있는 영화일 겁니다. 참, 이 영화에는 익숙한 배우들도 다수 등장합니다. <위플래쉬> 플레처 교수 역의 J.K. 시몬스, <리버데일> 베로니카 역의 카밀라 멘데스, <슈퍼맨과 로이스> 슈퍼맨 역의 타일러 헤클린까지, 여러 배우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함께 누려보세요.
Summary
“오늘은 어제고, 내일도 오늘이에요…” 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될 멋진 결혼식이 열리는 팜 스프링스의 리조트.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남자 나일스에게 오늘은 100만 번째(?) 결혼식일 뿐이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세라가 나일스의 세상에 개입하면서 똑같았던 하루는 늘 특별한 오늘(!)이 되는데… 진짜 내일 없이 사는, 두 남녀의 썸머 코믹 로맨스가 시작된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맥스 바바코우
출연: 앤디 샘버그, 크리스틴 밀리오티, J.K. 시몬스 외
-
- 찬란한 스포트라이트 뒤의 어둠, <아네트>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참석한 영화 <아네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이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브라운관과 무대, 모니터 너머의 세계는 언제나 동경과 열광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대중은 언제나 자신을 환호하게 하는 대상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스크린 너머에서 살아가는 '스타'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곤 한다. 스타는 그로 말미암아 부와 명성을 얻고, 대중은 그들로 말미암아 대리만족적인 쾌감을 느낀다.
예술가와 그의 예술을 향유하는 자들의 관계가 언제나 이러한 '윈-윈' 관계였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것이 꼭 그렇지는 않다. 어느 연극의 무대 위를 떠올려 보라. 강렬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면 그 여남은 곳에는 짙은 어둠이 내리 깔린다. 대중은 스타들의 '선별된' 찬란함에 환호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현실이 존재하곤 한다.
영화 <아네트>는 이에 대한 이야기다.
1. 죽는 여자와 죽여 주는 남자
헐리우드의 스텐드업 코미디언인 헨리 맥헨리는 특유의 '죽여주는' 입담으로 명성을 떨친다. 비관적이고 조소적인 그의 유머와 퍼포먼스는 순식간에 관객을 매료한다. 비참과 죽음에 대한 유머는 무겁고 우울하지만, 관객들은 그의 말와 퍼포먼스에 시종 웃음을 터트린다. 그것이 헨리가 이 무대에서 맡은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가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는' 퍼포먼스가 펼쳐졌을 때도 관중은 웃는다. 관중을 웃게 하는 것이 헨리의 역할이고, 관중은 그들이 헨리에게 기대하는 바 이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헨리, 왜 코미디언이 되었나요?'
그러나 헨리가 그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재차 그에게 묻는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그들의 물음에서 중요한 것은 헨리 맥헨리라는 개인이 아니라, '관객의 기대를 충족하는 코미디언인 헨리 맥헨리'이므로. 그가 온갖 혐오적 발언들을 유머라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모두의 사랑을 받는' 오페라 가수인 '안'과 사랑에 빠진 것은 그야말로, 희대의 스캔들이다. 우울한 악동과 천사같은 오페라 스타의 만남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세간의 이목을 끌만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어둡게 내리 깔린 맥헨리의 짙푸름은 타오르는 태양처럼 선명한 붉음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마치 닿지 말아야 할 것이 닿아 버린 것처럼. 이 두사람은 너무나 달라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가?
헨리가 '죽여주는 남자'라면 안은 '죽는 여자'다. 안은 무대 위에서 몇 번이고 죽는다. 칼에 찔리고, 피를 흘리면서. 그 기괴한 살해와 죽음의 광경에 관객은 열광한다! 그들이 '죽여주는 남자'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다시 말하자면, '사랑스러운 안'과 '악동같은 헨리'는 본질적으로 대중에게, 대중이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된다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대중은 그들이 '왜 죽거나 죽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비하고자 하는 것을 소비한다.
관객은 또한 그들이 왜 사랑에 빠졌는지 파악할 수 없다. 영화에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크린 너머에서 그들은 숱하게 노래한다. '우린 사랑에 빠졌지만 그 이유는 나도 알 수 없어.'라고.
안과 헨리는 정말로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물론 정말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비하는 자'(대중)와 '소비 당하는 자'(스타)의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이해하거나 깨닫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은 순전히, 관객이 그 내밀한 속사정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속의 숱한 기사들은 헨리와 안의 로맨스에 대해 떠들어대고, 그들의 화려한 삶을 조명하지만 '인간'인 안과 헨리의 삶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이는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극히 이기적이다!
그러한 로맨스의 결말은 어디에 다다르게 될까?
그렇다. 죽음이다. '죽여주는 남자'는 '죽이고', '죽는 여자'는 죽는다.
대중이 그토록 열광하던 비극의 내용과 같이!
2. 아기 아네트: 아버지와 대중의 꼭두각시
이러한 '상품화된 연인' 사이에서는 '상품화된 딸'이 태어난다. 그녀의 이름은 '아네트'다.
'아네트(annette)'란 '작은 안(anne)'이라는 뜻이다.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의 전철을 따를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이름에서부터 보여준 셈이다. '아네트'는 그 이름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녀의 재능을 선보인다. 그녀가 어머니를 여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자, 그렇지 않아도 좋은 먹잇감이었을 아이는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대중의 스포트라이트 아래 난도질 당하게 되었다.
'아네트'는 다른 등장인물과는 다르게 '꼭두각시 인형'으로 등장한다. 그녀의 탄생부터 대중의 열광을 받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살아있는 인형'이다. 날 때부터 구경거리였던 아네트는 타블로이드지 따위에서 '사랑스러운 연인의 딸'에서, '어머니를 잃은 가련한 아기', 그리고 이윽고는 '믿을 수 없는 재능을 타고난 아기'로 이름을 떨친다. 그 안에서 '아네트' 개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어디에도 없다.
아버지인 헨리 맥헨리는 '광대'인 자신의 딸이 저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을 우려했으나, 그랬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과 그의 아내를 팔았던 것과 같이 그의 딸인 아네트 역시 대중에게 팔아넘긴다. 그토록 목말라하던 돈과 명성 때문에.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라는 것은 술이나 마약과도 같아서, 지나치면 그것이 스스로를 망치는 것임을 알면서도 끊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극히 왜곡된 욕망에 휘둘리게 되는 셈이다.
대중의 사랑을 갈구하던 헨리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아네트를 '소비'한다. 아네트는 귀애의 대상이자 변명거리고, 돈벌이의 수단이다.
아네트의 주변에 상식적인 어른이 조금이라도 더 남아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아네트에게는 의지할 만한 '어른다운 어른'이 없었다. '안'의 반주자였고 나중에는 '지휘자'가 된 남자(이하 지휘자)가 어쩌면 비교적 상식적인 축에 속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지휘자라고 뾰족하게 다른 인간은 아니었다. 제 욕망을 좇기로는 지휘자도 마찬가지다. 아동착취임을 알았음에도 그 또한 아기 아네트 쇼에 동참하지 않았던가? 안의 지휘자가 되려 했던 욕망 때문에! 그가 안을 잃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이루었을 어떤 야망을 이루기 위해! 안을 잃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녀(안)의 옆에서 내로라하는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재능있고 사랑스러운 딸(아네트)의 아버지가 되었을 것이기에!
그리고 부나방처럼 욕망만을 좇으며 나아가던 이들은 결국 '비극적 죽음'에 다다르고 마는 법이다.
3. 파멸과 재기의 이야기
헨리의 오른뺨에 있던 붉은 점은 점점 자라난다. 마치 그가 살인자임을 알려주는 것처럼, 마치 그의 뺨에 튀었던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은 것처럼. 대중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인기를 얻은 '죽여주는 남자'는 정말로 아내와 동료를 죽이고 자신의 아이를 착취하고, 끝내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죽이는' 자가 된다. 그로 인해 정말로 그 역시도 죽은 사람이 된다. 그의 쇼에서 그가 시니컬하게 외친 바와 같이.
그러고보면 파멸을 맞이하는 것은 헨리 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어떤 의미로든 죽음을 맞이한다.
'안'은 남편에게 살해당했고, '지휘자'는 사랑했던 여자의 남편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헨리는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죽였고, '아네트'는 자신의 빛나던 재능을 죽인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대중매체를 펼치면 흔히 보이는 연예인들의 스캔들, 예술가에 대한 미화, 그리고 아동착취적인 방송들이 도사리고 있는 현대 사회가 엿보이지는 않는가? 우리는 우리가 보고싶어하는 것만 보지는 않았나? 그 쇼와 텔레비전과 편집된 영상 너머의 어둠을 들여다보려고 한 적이 있는가? 누군가의 비극을 웃음거리로 삼지는 않았나?
영화 <아네트>의 관객은 스크린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영화적 연출로 말미암아 영화 밖의 관찰자였다가, 영화 안의 엑스트라였다가, 조연이었다가, 이윽고는 영화의 모든 사태를 자아낸 주역으로 변모한다. 감독은 이러한 연출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이기적인 대중과 스타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단순히 '대중과 스타의 욕망'이 가져온 비극에 대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네트는 분명히 그녀를 낳고 기른 환경을 원망하기는 하지만, 어쩐지 그녀는 앞으로 나아갈 것만 같기 때문이다.
아네트는 말한다. 나는 부모 두 사람 모두를 원망한다고. 어머니는 그녀에게 이런 재능을 주었고, 그래서 그로 말미암아 착취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녀를 착취한 장본인이다. 그러므로 아네트는 두 사람 모두를 용서할 수 없다.
아네트는 이제 영영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글쎄,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램프를 깨고, 콘서트장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고발하고, 노래를 부르지 않겠노라, 그를 사랑하지 않겠노라고(그의 '사랑'의 대상이 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는 그녀는 '달라졌다.' 그녀는 더는 인형이 아니다. 하나의 살아 있는 사람이다. 헨리와 안, 그리고 우리 모두와 같이. 그녀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날카롭고 예리한 선언으로 자신의 부모로부터 '홀로 서기로' 마음 먹는다.
'나는 강해져야 해.'
그녀는 말한다.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기엔 너무나 가슴아픈 말이지만, 그럼에도 어쩌면, 희망적이다. 그녀는 더이상 아버지와 대중의 피아노줄에 따라 춤추거나 노래부르지 않고 그녀만의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때론 우울하고 때론 좌절스러울테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강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아갈테고, 그녀의 가슴 속에 간직한 흉터를 평생에 걸쳐 회복하게 되리라.
영화 <아네트>는 단순히 뮤지컬 영화로만 홍보되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언뜻 보기에는 <라라랜드>의 우울한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시청각적 연출과 미장센은 너무 감각적이라서 도리어 아프기까지 하다!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 그리고 풍자적인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 처음과 끝까지 음악을 담고 있지만 어둡고 기괴한 사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다소 불쾌해지는데, 그 불쾌해지는 이유를 잘 생각해보면 그걸 바라보는 '나'(관객) 또한 그러한 '불쾌함'을 자아내는 사람들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 있다. 관객은 스크린 안에서, 밖에서 수없이 영화 속 엑스트라였다가, 조연이었다가, 마침내는 이 영화에서 도무지 빼놓을 수 없는 주연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아주 수작이다. 기왕이면 큰 스크린에서 보기를 바란다. 내가 스크린의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헷갈릴 정도로 장황한 곳으로.
<이런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우리 사회의 어둠을 한없이 들여다보고 싶으신 분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짙은 어둠 너머에 반짝이는 옅은 희망을 엿보고 싶으신 분
-
- 죽음 앞 한 남자의 회한 그리고 따뜻한 마지막
시사회 참석으로 개봉 전 관람하고 작성한 리뷰 입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영화 <더 웨일>의 주인공 찰리(브렌든 프레이저)는 습관적으로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는 뭐가 그렇게 미안한 걸까. 왜 계속 상대방에게 사과를 하는 걸까. 그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등장하는 각기 다른 상대방에게 모두 미안하다는 말을 던진다. 그의 육중한 몸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정말 잘못을 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살다 보면 다양한 인생의 분기점을 만난다. 그 분기점 앞에서 우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떤 식이 될지 그 선택의 순간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때론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어쨌든 선택을 해낸다. 그 선택에 따르는 결과는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 결과가 바로 볼 수 있게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결말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들고 회한의 감정이 들 때에서야 비로소 그때 그 결정이 옳았는지 아니면 잘못된 것인지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죽음이 곧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는 자신이 했던 수많은 결정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중에서도 후회가 되는 선택들을 떠올리며 그것에 대해서 누군가에게는 사과를 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후회되는 선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선택으로 인한 행복한 순간들도 머릿속에 같이 맴돌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더 강렬하게 반복되는 감정은 후회와 미안함이다. 이제 더 삶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생각은 삶의 의지를 점점 떨어뜨린다.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주인공 찰리의 마지막 7일
영화 속 찰리는 죽음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다. 엄청나게 살이 찐 그를 옆에서 돕고 진료를 하는 친구는 간호사 리즈(홍 차우)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권유하지만 찰리는 병원에서 돈을 쓰기를 원하지 않는다. 리즈는 찰리가 살 수 있는 날이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찰리는 육중한 몸을 스스로 가누기가 어려워 걸을 때도 보조기구를 활용한다. 그는 온라인 강의로 간간히 생활비를 벌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동성애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 불운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그렇게 연인의 죽음 이후 찰리는 거의 집에만 갇혀 살게 된다. 찰리가 동성 연인을 만나기 전에 그는 이미 한 여자와 결혼을 했었고 딸 엘리(세이디 싱크)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혼 후 동성 연인과 함께하는 선택을 한다.
찰리의 그 선택은 힘들고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그 선택을 했고 뜨겁게 자신의 사랑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그 선택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과거 부인이었던 메리(사만다 모튼)에게 상처를 주었고, 딸인 엘리에게도 큰 상처를 줬다.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찰리는 마지막 7일 동안 온전히 감당하고 있다.
찰리가 집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딸 엘리
마지막 7일 동안 다양한 사람이 집에 찾아온다. 친구인 리즈가 매일 찾아와 그를 진료하고 상태를 봐주고, 한 교회의 선교를 하러 다니는 토마스(타이 심킨스)가 우연히 집에 왔다가 찰리와 대화를 하게 된다. 그리고 부인 메리와 엘리도 찰리에게 찾아와 대화를 나눈다. 특히나 딸 메리와 찰리가 함께 있는 모든 순간들은 꽤 긴장감이 넘친다.
엘리는 아빠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있다. 반항적이면서 삶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의지도 없어 보인다. 영화는 그를 바라보는 찰리의 얼굴을 가만히 비추며 그가 딸에게 던지는 말을 세세히 전달한다. 그의 딸을 향한 말들은 매우 늦었다. 그가 떠난 몇 년 동안 엘리가 겪었던 상실감은 지금의 찰리가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찰리도 잘 알고 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들을 딸에게 전달한다.
엘리는 아빠와 대화하기 거북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빠를 찾아와 그의 앞에 앉는다. 수많은 비아냥과 분노를 솔직하게 내뱉는 그의 모습은 찰리에겐 딸에 대한 다른 면을 발견하게 만든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 그것이 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다른 오해를 만들지 않는다. 그렇게 찰리는 엘리의 마음속 깊은 곳의 언어를 발견해 나간다.
영화 <더 웨일>은 영화 내내 긴장감이 넘친다. 영화는 찰리의 집 안에서만 진행된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게다가 찰리는 고도 비만으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전혀 긴장감이 없을 것 같은 구성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그의 앞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이용해 영화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찰리가 기분이 우울해져 음식을 마구 먹을 때 긴장되는 음악이 같이 연출되어 있어 혹시나 찰리가 죽지 않을지 숨을 죽이며 바라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의 말이 모든 인물들과의 대화를 마친 찰리가 딸 엘리에게 엘리가 쓴 에세이를 읽어보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영화의 모든 감정들이 폭발하며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긴장감 넘치고 따뜻한 영화 <더 웨일>
이 영화는 찰리를 연기한 브렌든 프레이저의 영화다. 그는 고도 비만의 남자를 연기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굴곡들과 자신의 회한까지 캐릭터에 담아냈다. 브렌든 프레이저는 <미이라> 시리즈로 할리우드의 정상에 섰지만 그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고 이혼을 하면서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동성에게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면서 예전의 샤프한 모습을 잃어갔다. 그래서 찰리는 브렌든 프레이저, 그 자체로 보이는 캐릭터다. 이 영화로 그는 배우로서 완전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연출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2011년에 개봉했던 <블랙스완>이나 <마더!> 같은 인물의 심리를 이용한 긴장감을 잘 만들어내는 감독이다. 이번 <더 웨일>에서도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을 바탕으로 긴장감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는 그가 그간 연출했던 어떤 영화보다 따뜻한 감정을 끌어낸다.
영화 <더 웨일> 속 찰리는 무엇이 그렇게 미안했던 것일까.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던지는 찰리의 태도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찰리라는 한 사람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찰리는 자신이 동성 연인에게 가기 위한 분기점에서 사랑을 택했다. 그가 딸을 버리고 싶어 떠난 건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가지고 있던 마음의 짐은 영화 끝까지 계속 그를 괴롭힌다. 이 영화는 찰리의 마지막 7일을 다루는 이야기이지만 그가 가진 회한과 후회를 잘 정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꽤 감정적이고 따뜻한 이 영화는 힘든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
- [DMZ DOCS] 제일 조선인들에 대한 비극과 공포를 보여주는 작품
감독: 금선희
출연진: 제일 조선인들
시놉시스
일본에 살던 제일 조선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당시 한반도에서는 북한과 남한의 이념 대립으로 인해 북한에 있던 제일 조선인들은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본에서도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살기 힘들었으나 북한을 탈출한 이들에게는 제대로 머물 곳이 없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여기 있다. 이 작품은 금선희 작가가 만든 작품으로 식민지 시대의 조선인들부터 지금의 제일 조선인들로 오기까지 여러 차례의 고난을 겪어왔단 것을 3중 스크린으로 통해 볼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혼란스럽지만 하나만 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시선을 고려했기에 3개로 된 장면들이 영상에 나타났다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과연 금선희 작가가 전해주는 메세지는 어떤 것일까?
제일 조선인들의 슬픔과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금선희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들은 여러 개가 있다. 타국의 하늘(Foreign Sky)이라는 작품과 비스트 오브 미(Beast Of Me)가 대표적인 예시인데 제일 조선인들처럼 소외받는 소수자들이나 약자들을 영상으로 표현해낸다. 그들이 가진 역사적 아픔과 겪어왔던 고난들을 금선희 작가는 영상으로 재현해낸다. 일본에게 식민 지배를 받던 조선인들과 6.25 전쟁이 일어났던 일들을 영상으로 담아 파운드 푸티지라는 영상 기법으로 관객들의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이런 역사적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숨은 의도의 메세지를 공개한다. 북한으로 돌아간 제일 조선인들이 탈출을 결심할 정도로 북한이란 나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조차 반역죄로 여길 만큼 자유가 없는 곳이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북한에서 도망쳐 갈 곳 잃은 이들을 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준비된 역사의식이 필요한 것 같다.
제일 조선인들에 대한 비극은
그들이 갈 곳 없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2022.09.24 (토) 메가박스 백석 컴포트 4관
DMZ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09월 22일 - 09월 29일
-
- 어른같은 8살 소녀의 이별 이야기<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영화 리뷰
일본의 고즈넉한 풍경 중에서도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이미지는 바로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거리 사이에 놓인 기찻길 건널목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과 이와이 슈운지의 <러브 레터>를 비롯해 수많은 일본의 고요하고 따스한 영화들이 일본 고유의 이 풍경을 활용하곤 했다. 조금은 다르지만 기차역을 배경으로 한 <철도원>과 같은 영화들도 일본의 기찻길을 떠오르게 만들며 최근에는 <가족의 색깔>이나 한국영화 <윤희에게> 또한 일본 철도가 주는 소박하고 포근한 풍경에 꽤나 빚을 졌다.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또한 기차 건널목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여덟 살의 소녀 사야카(니쓰 지세)는 그곳을 지나가다 문득 반년 전의 기억을 생각한다. 반려견이었던 루와 함께 이곳을 걸었던 사야카.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년 전에 사야카는 작은 동물들을 분양하는 펫샵 앞에서도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강아지 루를 발견했다. 데려가는 사람이 없으면 가게 사장이 이 아이를 곧 내쫓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사야카는 부모님을 졸라 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사야카는 학교에서는 친구 없이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지만, 루와 함께면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 전혀 외롭지 않다.
어느 날, 함께 동네를 걷던 도중 갑자기 루가 조그만 구멍 틈으로 넘어가고, 루를 따라 힘겹게 몸을 구기고 구멍을 통과한 사야카는 그곳에서 아무도 없이 푸른 들판이 펼쳐진 세상과 만난다. 그들은 매일 이곳에 놀러와 자신들만의 세계를 꾸린다. 소풍 온 듯 맛있는 걸 먹기도 하고, 달리기를 하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만끽한다. 어느 날, 킁킁거리며 땅을 파던 루를 따라 사야카 또한 들판의 아래쪽을 캐다 보니 단단한 기찻길을 발견하게 된다. 과연 이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나오키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주인 시즈카의 소설이 원작이다. 반려동물과 소녀의 우정을 그리면서 삶과 죽음, 관계라는 것을 따뜻하게 탐구하는 영화로, 사야카 외에도 사야카의 할아버지, 그리고 카페를 운영하는 후세 아저씨(오이다 요시)의 역할을 더해 사야카가 점차 인생의 진실을 깨닫고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루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야카는 주변의 사려깊은 조언과 판타지와 같은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악나다. 동물과 인간의 유대감을 그린 영화는 아주 많았지만,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는 일본 특유의 단촐하고 소박한 감성을 통해, 그리고 소녀의 시선을 통해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인생의 진실을 포착한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
-
- 영화 서복 후기 / 티빙 동시 개봉 / 공유, 박보검의 환상 케미 / 복제인간이 현실이 된다면...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서복”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복제인간, #박보검, #공유, #브로맨스, #티빙, #OTT
-
- 넷플릭스 <제니퍼 로페즈 : 내 인생의 하프타임> 공식 예고편
제니퍼 로페즈를 오늘날의 아이콘으로 만든 투지와 집념을 밀착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그녀의 인생 후반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한 《제니퍼 로페즈: 내 인생의 하프타임》은 라틴계 여성, 엄마, 아티스트로서 주도적으로 길을 개척하고 더 원대한 목표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그녀의 진화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
-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메인 예고편
1995년 작가를 꿈꾸는 조안나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에
CEO 마가렛의 조수로 입사한다.
출근 첫날,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D. 샐린저의
팬레터에 기계적으로 응대하라는 지시를 받지만,
조안나는 그들에게 진심 어린 답장을 보내려 한다.
-
- 권선징악의 끝판왕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스포일러 포함 (feat. 전종서)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23.03.22 개봉)
감독: 애나 릴리 아미푸르
출연: 전종서 등
피 나오는 재난 영화도 못 보는 제가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을... 왜 보았을까요......
네 정답은 CGV 필름마크가 가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ㅋㅋ 그것도 있지만 사실은
유튜브에 예고편 틀어 주는 거 보고 반했어요
전종서 님께 반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려나요
기괴한 연기(??)를 너무 잘하시는 거 같아요 몸값부터,,
암튼 강려쿠한 스포 하나 드리자면
첫 장면부터 피 잔뜩 튀기는... 잔인한 영화입니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깔리는 BGM으로
어딘가 모르게 섬뜩하고 소름돋는 분위기가 연출돼요
그럴 만한 게 애초에 주인공 모나부터가
정신 병원을 탈출한 조현병 환자예요
망명으로 인해 10살 때부터 정신병원 신세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조현병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나의 아동 학대 행위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은
모나의 자유를 향한 여행 계획... 그쯤 되는데요
정신병원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모나,
그녀를 돕는 이는 많지만 진정으로 임하는 사람은 몇 안 돼요
여기서 '권선징악'이라는 감독 의도를 깨달았고
또 '자유의지'에 관한 생각이 하나 들었는데요
사람들은 모나의 눈을 보면 조종당하는 기분이 듭니다
온몸에서 열이 나고 손이 멋대로 움직인다... 고 하죠
그렇다면 모나가 마녀인가? 그건 아닐 거예요
정신병원에 갇혀 발톱마저 혼자 못 깎는 신세였던 그
내가 내 손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영화적 기법으로 허용된 판타지지만요
그렇다면 권선징악은 무엇인가?
모나는 악한 행동을 한 이에게만
자유의지가 없어지는 최면의 벌을 내려요
자신을 괴롭혔던 병원 사람들,
자신을 그 지옥에 가두려는 경찰,
사람을 마구 때리는 여자,
왕따시키는 가해자 아이들 등
세상에 벌을 내려야 할 사람이 이렇게 많네요
물론 보니의 주도로 인해
모나도 사람들의 돈을 훔치는 데 일조했지만
이 벌은 주동자였던 보니가 받았죠?
죽기 직전일 정도로 아주 심하게,, 맞았으니까요
근데 또 사람 때린 값은 그의 동료가 갚아 줘요
권선징악을 이루려면 사람 때리는 데 끝이 없네요
암튼 그런 모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돕기만 하는 캐릭터가
딱! 두 명 있죠?
찰리랑 퍼즈요 ㅎㅎ
퍼즈는 모나랑 어떻게 함 해 보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옷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위조 신분증도 주고
모나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는 부드러운 남자였고
찰리는 모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현재를 버리기까지 하는 멋진 남자예요
사실 저는 모나가 찰리를 구해 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방임하는 엄마의 옆에서요
그런데 결국 찰리가 그 손을 놓아 버렸고......
이번에는 욕망 덩어리 모나 혼자 도망쳤네요
어떤 후기에서
자유와 욕망 그 굴레... 라는 한 줄 평을 보았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거 같아요
자유=욕망이지만, 욕망 때문에 자유를 잃을 수도 있거든요
그 대표적인 예시로 보니가 있겠네요
암튼 2시간짜리 영화였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보고 왔답니다 ㅎㅎ
으스스한~ 분위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봐 볼 만한 영화였어요!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
- 타임 루프 감옥에서 살아남는 101가지 방법
간만에 청량하고 화끈한 로맨스 코미디 한 편을 보았습니다. 2020 선댄스 영화제 출품작 중 사상 최고 판매가 기록(약 2,250만 달러)을 세우고, 로튼 토마토 신선도 95%를 기록하며, 2021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최우수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영화, 바로 <팜 스프링스>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 팜 스프링스 지역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한 두 사람이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타임 루프(Time loop)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포스터에서는 이 영화를 단 세 단어로 요약하죠. '타임 루프, 썸머, 로맨틱 코미디'. 이 단어들은 <팜 스프링스>를 설명하기에 조금의 과함도, 약간의 부족함도 없습니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살펴보시죠.
※ 8월 11일(수)에 진행된 <팜 스프링스>의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팜 스프링스>는 2021년 8월 19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팜 스프링스
Palm Springs
첫 번째 단어, '타임 루프'입니다. 타임 루프는 영화가 사랑하는 단골 소재입니다. 액션 장르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부터 로맨스 장르의 <어바웃 타임>, <이프 온리>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타임 루프 소재는 관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치트키였죠. 하지만 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영화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의 참신함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개 '우연히 타임 루프 마법에 빠진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타임 루프를 빠져나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며 살아간다'는 주제를 내포하기에 관객에게 색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어렵죠. 저 역시도 큰 기대 없이 영화관에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팜 스프링스>는 여타 타임 루프 소재의 영화들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유사한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신선함이 더 컸다는 표현이 정확할 겁니다. '우연히 타임 루프 마법에 빠진 주인공'까지는 이전의 작품들과 유사하나, 이 '주인공'이 타임 루프 마법에 빠진 시점이 독특합니다. 일반적으로 타임 루프물의 주인공은 영화 시작과 함께 타임 루프의 마법에 빠지는데요. <팜 스프링스>의 남자 주인공 '나일스'는 매일 반복되는 타임 루프의 감옥 속에서 억겁의 시간을 살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입니다. 얼마나 오래 타임 루프 안에 갇혀 있었는지는 '나일스'도, 관객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반복되는 11월 9일, 그 하루가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자신의 원래 직업이 무엇인지조차 망각해버리고, 결혼식에서 멀끔한 정장 대신 하와이안 셔츠를 걸쳐도 아무렇지 않은 '나일스'의 모습을 통해 그저 짐작해볼 뿐이죠.
‘나일스’는 타임 루프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곳을 벗어날 생각조차 없죠. 대신 그 안에서 꽤 편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영화는 매일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 의미 있는 삶을 향유하는 법을 유쾌하게 보여줍니다. 영화 중반 즈음엔 타임 루프에 갇혀 사는 삶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런데 문득 타임 루프에 갇힌 '나일스'의 상황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제한이 생긴 우리는 집 안에서 매일 반복되는 무료한 하루를 보내고 있으니까요. 코로나19가 우리를 타임 루프의 감옥에 빠트린 셈이죠. 하지만 이러한 삶도 향유하고자 마음먹으면 충분히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탈출할 방법이 없다면, '나일스'처럼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하죠. 참으로 시의적절한 영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나일스'로 인해 갑작스럽게 타임 루프에 빠져 혼란스러움을 겪는 여자 주인공 '세라'는 어떨까요? <팜 스프링스>는 타임 루프가 익숙한 '나일스'와 타임 루프가 낯선 '세라'의 대비를 위트 있게 풀어내기도 합니다. 타임 루프 안에 여러 명의 타임 루퍼(Time looper)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매우 신선한 접근이었습니다. 하필 술을 퍼마시고 잊어야 할 정도로 괴로운 기억이 있는 11월 9일의 아침이 매일 같이 반복되다니, '세라'는 이 타임 루프를 탈출해야만 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세라'는 주류 영화가 다뤄왔던 여성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방법을 찾을 때까지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요행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세라'는 주체적으로 이 고리를 끊어낼 방법을 찾습니다. 남성 캐릭터의 이야기에 부수적으로 여성 캐릭터를 끼워 넣는 형태를 완전히 벗어났죠. 그녀는 무한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타임 루프의 장점을 이용해 양자 역학을 공부하고, 시공간의 곡률을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똑똑한 과학자가 등장해 주절주절 어려운 말을 늘어놓고는 툭 방법을 던져주는 SF적 설정이나 비가 내리는 날 연인과 키스를 나누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판타지적 설정에 의존하는 대개의 타임 루프 영화와 다른 지점이죠. '세라'는 과연 탈출에 성공했을까요?
타임 루프 속에서 살아남는 법부터 타임 루프를 탈출하는 법까지, 모두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확실히 달랐다'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죠.
⊙ ⊙ ⊙
두 번째 단어는 ‘썸머’입니다. <팜 스프링스>는 제목 그대로 '팜 스프링스'라는 지역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그게 여름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요? 팜 스프링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군에 있는 지역으로, 사막에 둘러싸인 휴양지거든요. 여름에는 최대 50도까지 기온이 오르는 더운 사막 기후라, 11월이 여행에 가장 적합한 시기인 지역이죠. 영화의 배경인 '탈라'와 '에이브'의 결혼식이 11월 9일로 설정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영화 속 배경은 '될 대로 돼라' 마인드로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결혼식장을 횡보하는 '나일스'와 정말 잘 어울립니다.
같은 하루가 매일 반복되는 타임 루프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 내일이 없는 것처럼 하루를 보내는 '나일스'와 '세라'의 화끈한 데이트 장면들도 뜨거운 여름과 잘 어울립니다. 마침 11월 9일에 집을 비운 팜 스프링스의 어느 가정집은 타임 루프가 계속되는 한 영원히 빈 객실과도 같죠. 그들만의 안전 가옥에서 맥주 한 캔과 함께 수영을 즐기는 모습은 지상 낙원이 따로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수영장을 놀러가기도, 피서를 떠나기도 어려운 요즘, 대리만족하기에 아주 제격이죠. 맥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화 속에서 '나일스'와 '세라'는 끊임없이 맥주를 마십니다. 여기에도 숨겨진 비밀이 하나 있더군요. 그들이 마시는 맥주는 '아쿠파라(Akupara)'라는 브랜드인데요. 이는 힌두교에서 세계를 등껍질에 짊어진 거북이를 이르는 말로, '무한대의, 불멸의'라는 뜻을 가진 가상의 브랜드라고 합니다. 영화의 핵심 소재를 이 커플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맥주 브랜드 속에 숨겨 놓았네요.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휴양지, 시원한 맥주와 하와이안 셔츠까지. 누군가 '여름'하면 떠오르는 영화를 물었을 때, 추천할 만한 영화가 또 한 가지 생겼습니다.
⊙ ⊙ ⊙
마지막으로 ‘로맨스 코미디’입니다. 영화는 결국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룹니다. 타임 루프 속에서 지루한 하루하루를 지내던 '나일스'와 지나간 고통에 연연하며 괴로워하던 '세라'는 타임 루프 덕에 오직 현재에만 충실하는 법을 배우죠.
그들에겐 필요한 것은 바로 어바인(Irvine)이었습니다. 어바인(Irvine)은 '나일스' 때문에 타임 루프 지옥에 빠진 또 한 사람인 '로이'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세라'와의 사랑에 어려움을 겪는 '나일스'가 '로이'를 찾아갔을 때, '로이'는 이렇게 충고하죠.
"We all have an Irvine."
우리에겐 모두 어바인이 있어.
<팜 스프링스>에서 딱 한 문장의 대사만을 기억해야 한다면 저는 이 대사를 택할 겁니다. 자신을 타임 루프 지옥으로 끌어들인 '나일스'를 원망하며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로이'는 문득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머무르는 어바인의 소중함을 깨닫고, 타임 루프에서의 삶에 적응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나일스'에게도 자신만의 어바인을 찾으라고 충고하죠. 타임 루프 지옥에 빠지더라도 어바인과 같은 안식처가 있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과연 '나일스'의 어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여러분의 어바인은 무엇인가요? 영화를 감상하시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 ⊙ ⊙
여름철 더위가 한풀 꺾인 모양새입니다. 날씨가 풀린 것인지, 이 영화의 청량함이 제 더위를 앗아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코미디를 기대하시는 분도, 로맨스를 기대하시는 분도, 참신한 타임 루프물을 기대하시는 분도 모두 만족스럽게 보실 수 있는 영화일 겁니다. 참, 이 영화에는 익숙한 배우들도 다수 등장합니다. <위플래쉬> 플레처 교수 역의 J.K. 시몬스, <리버데일> 베로니카 역의 카밀라 멘데스, <슈퍼맨과 로이스> 슈퍼맨 역의 타일러 헤클린까지, 여러 배우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함께 누려보세요.
Summary
“오늘은 어제고, 내일도 오늘이에요…” 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될 멋진 결혼식이 열리는 팜 스프링스의 리조트.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남자 나일스에게 오늘은 100만 번째(?) 결혼식일 뿐이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세라가 나일스의 세상에 개입하면서 똑같았던 하루는 늘 특별한 오늘(!)이 되는데… 진짜 내일 없이 사는, 두 남녀의 썸머 코믹 로맨스가 시작된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맥스 바바코우
출연: 앤디 샘버그, 크리스틴 밀리오티, J.K. 시몬스 외
-
- 찬란한 스포트라이트 뒤의 어둠, <아네트>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참석한 영화 <아네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이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브라운관과 무대, 모니터 너머의 세계는 언제나 동경과 열광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대중은 언제나 자신을 환호하게 하는 대상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스크린 너머에서 살아가는 '스타'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곤 한다. 스타는 그로 말미암아 부와 명성을 얻고, 대중은 그들로 말미암아 대리만족적인 쾌감을 느낀다.
예술가와 그의 예술을 향유하는 자들의 관계가 언제나 이러한 '윈-윈' 관계였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것이 꼭 그렇지는 않다. 어느 연극의 무대 위를 떠올려 보라. 강렬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면 그 여남은 곳에는 짙은 어둠이 내리 깔린다. 대중은 스타들의 '선별된' 찬란함에 환호하지만, 그 이면에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현실이 존재하곤 한다.
영화 <아네트>는 이에 대한 이야기다.
1. 죽는 여자와 죽여 주는 남자
헐리우드의 스텐드업 코미디언인 헨리 맥헨리는 특유의 '죽여주는' 입담으로 명성을 떨친다. 비관적이고 조소적인 그의 유머와 퍼포먼스는 순식간에 관객을 매료한다. 비참과 죽음에 대한 유머는 무겁고 우울하지만, 관객들은 그의 말와 퍼포먼스에 시종 웃음을 터트린다. 그것이 헨리가 이 무대에서 맡은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가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는' 퍼포먼스가 펼쳐졌을 때도 관중은 웃는다. 관중을 웃게 하는 것이 헨리의 역할이고, 관중은 그들이 헨리에게 기대하는 바 이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헨리, 왜 코미디언이 되었나요?'
그러나 헨리가 그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재차 그에게 묻는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그들의 물음에서 중요한 것은 헨리 맥헨리라는 개인이 아니라, '관객의 기대를 충족하는 코미디언인 헨리 맥헨리'이므로. 그가 온갖 혐오적 발언들을 유머라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모두의 사랑을 받는' 오페라 가수인 '안'과 사랑에 빠진 것은 그야말로, 희대의 스캔들이다. 우울한 악동과 천사같은 오페라 스타의 만남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세간의 이목을 끌만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어둡게 내리 깔린 맥헨리의 짙푸름은 타오르는 태양처럼 선명한 붉음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마치 닿지 말아야 할 것이 닿아 버린 것처럼. 이 두사람은 너무나 달라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가?
헨리가 '죽여주는 남자'라면 안은 '죽는 여자'다. 안은 무대 위에서 몇 번이고 죽는다. 칼에 찔리고, 피를 흘리면서. 그 기괴한 살해와 죽음의 광경에 관객은 열광한다! 그들이 '죽여주는 남자'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다시 말하자면, '사랑스러운 안'과 '악동같은 헨리'는 본질적으로 대중에게, 대중이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된다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대중은 그들이 '왜 죽거나 죽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비하고자 하는 것을 소비한다.
관객은 또한 그들이 왜 사랑에 빠졌는지 파악할 수 없다. 영화에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크린 너머에서 그들은 숱하게 노래한다. '우린 사랑에 빠졌지만 그 이유는 나도 알 수 없어.'라고.
안과 헨리는 정말로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물론 정말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비하는 자'(대중)와 '소비 당하는 자'(스타)의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이해하거나 깨닫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은 순전히, 관객이 그 내밀한 속사정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속의 숱한 기사들은 헨리와 안의 로맨스에 대해 떠들어대고, 그들의 화려한 삶을 조명하지만 '인간'인 안과 헨리의 삶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이는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극히 이기적이다!
그러한 로맨스의 결말은 어디에 다다르게 될까?
그렇다. 죽음이다. '죽여주는 남자'는 '죽이고', '죽는 여자'는 죽는다.
대중이 그토록 열광하던 비극의 내용과 같이!
2. 아기 아네트: 아버지와 대중의 꼭두각시
이러한 '상품화된 연인' 사이에서는 '상품화된 딸'이 태어난다. 그녀의 이름은 '아네트'다.
'아네트(annette)'란 '작은 안(anne)'이라는 뜻이다.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의 전철을 따를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이름에서부터 보여준 셈이다. '아네트'는 그 이름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녀의 재능을 선보인다. 그녀가 어머니를 여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자, 그렇지 않아도 좋은 먹잇감이었을 아이는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대중의 스포트라이트 아래 난도질 당하게 되었다.
'아네트'는 다른 등장인물과는 다르게 '꼭두각시 인형'으로 등장한다. 그녀의 탄생부터 대중의 열광을 받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살아있는 인형'이다. 날 때부터 구경거리였던 아네트는 타블로이드지 따위에서 '사랑스러운 연인의 딸'에서, '어머니를 잃은 가련한 아기', 그리고 이윽고는 '믿을 수 없는 재능을 타고난 아기'로 이름을 떨친다. 그 안에서 '아네트' 개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어디에도 없다.
아버지인 헨리 맥헨리는 '광대'인 자신의 딸이 저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을 우려했으나, 그랬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과 그의 아내를 팔았던 것과 같이 그의 딸인 아네트 역시 대중에게 팔아넘긴다. 그토록 목말라하던 돈과 명성 때문에.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라는 것은 술이나 마약과도 같아서, 지나치면 그것이 스스로를 망치는 것임을 알면서도 끊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극히 왜곡된 욕망에 휘둘리게 되는 셈이다.
대중의 사랑을 갈구하던 헨리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아네트를 '소비'한다. 아네트는 귀애의 대상이자 변명거리고, 돈벌이의 수단이다.
아네트의 주변에 상식적인 어른이 조금이라도 더 남아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아네트에게는 의지할 만한 '어른다운 어른'이 없었다. '안'의 반주자였고 나중에는 '지휘자'가 된 남자(이하 지휘자)가 어쩌면 비교적 상식적인 축에 속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지휘자라고 뾰족하게 다른 인간은 아니었다. 제 욕망을 좇기로는 지휘자도 마찬가지다. 아동착취임을 알았음에도 그 또한 아기 아네트 쇼에 동참하지 않았던가? 안의 지휘자가 되려 했던 욕망 때문에! 그가 안을 잃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이루었을 어떤 야망을 이루기 위해! 안을 잃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녀(안)의 옆에서 내로라하는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재능있고 사랑스러운 딸(아네트)의 아버지가 되었을 것이기에!
그리고 부나방처럼 욕망만을 좇으며 나아가던 이들은 결국 '비극적 죽음'에 다다르고 마는 법이다.
3. 파멸과 재기의 이야기
헨리의 오른뺨에 있던 붉은 점은 점점 자라난다. 마치 그가 살인자임을 알려주는 것처럼, 마치 그의 뺨에 튀었던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은 것처럼. 대중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인기를 얻은 '죽여주는 남자'는 정말로 아내와 동료를 죽이고 자신의 아이를 착취하고, 끝내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죽이는' 자가 된다. 그로 인해 정말로 그 역시도 죽은 사람이 된다. 그의 쇼에서 그가 시니컬하게 외친 바와 같이.
그러고보면 파멸을 맞이하는 것은 헨리 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어떤 의미로든 죽음을 맞이한다.
'안'은 남편에게 살해당했고, '지휘자'는 사랑했던 여자의 남편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헨리는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죽였고, '아네트'는 자신의 빛나던 재능을 죽인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대중매체를 펼치면 흔히 보이는 연예인들의 스캔들, 예술가에 대한 미화, 그리고 아동착취적인 방송들이 도사리고 있는 현대 사회가 엿보이지는 않는가? 우리는 우리가 보고싶어하는 것만 보지는 않았나? 그 쇼와 텔레비전과 편집된 영상 너머의 어둠을 들여다보려고 한 적이 있는가? 누군가의 비극을 웃음거리로 삼지는 않았나?
영화 <아네트>의 관객은 스크린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영화적 연출로 말미암아 영화 밖의 관찰자였다가, 영화 안의 엑스트라였다가, 조연이었다가, 이윽고는 영화의 모든 사태를 자아낸 주역으로 변모한다. 감독은 이러한 연출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이기적인 대중과 스타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단순히 '대중과 스타의 욕망'이 가져온 비극에 대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네트는 분명히 그녀를 낳고 기른 환경을 원망하기는 하지만, 어쩐지 그녀는 앞으로 나아갈 것만 같기 때문이다.
아네트는 말한다. 나는 부모 두 사람 모두를 원망한다고. 어머니는 그녀에게 이런 재능을 주었고, 그래서 그로 말미암아 착취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녀를 착취한 장본인이다. 그러므로 아네트는 두 사람 모두를 용서할 수 없다.
아네트는 이제 영영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글쎄,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램프를 깨고, 콘서트장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고발하고, 노래를 부르지 않겠노라, 그를 사랑하지 않겠노라고(그의 '사랑'의 대상이 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는 그녀는 '달라졌다.' 그녀는 더는 인형이 아니다. 하나의 살아 있는 사람이다. 헨리와 안, 그리고 우리 모두와 같이. 그녀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날카롭고 예리한 선언으로 자신의 부모로부터 '홀로 서기로' 마음 먹는다.
'나는 강해져야 해.'
그녀는 말한다.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기엔 너무나 가슴아픈 말이지만, 그럼에도 어쩌면, 희망적이다. 그녀는 더이상 아버지와 대중의 피아노줄에 따라 춤추거나 노래부르지 않고 그녀만의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때론 우울하고 때론 좌절스러울테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강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아갈테고, 그녀의 가슴 속에 간직한 흉터를 평생에 걸쳐 회복하게 되리라.
영화 <아네트>는 단순히 뮤지컬 영화로만 홍보되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언뜻 보기에는 <라라랜드>의 우울한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시청각적 연출과 미장센은 너무 감각적이라서 도리어 아프기까지 하다!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 그리고 풍자적인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 처음과 끝까지 음악을 담고 있지만 어둡고 기괴한 사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다소 불쾌해지는데, 그 불쾌해지는 이유를 잘 생각해보면 그걸 바라보는 '나'(관객) 또한 그러한 '불쾌함'을 자아내는 사람들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 있다. 관객은 스크린 안에서, 밖에서 수없이 영화 속 엑스트라였다가, 조연이었다가, 마침내는 이 영화에서 도무지 빼놓을 수 없는 주연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아주 수작이다. 기왕이면 큰 스크린에서 보기를 바란다. 내가 스크린의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헷갈릴 정도로 장황한 곳으로.
<이런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우리 사회의 어둠을 한없이 들여다보고 싶으신 분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짙은 어둠 너머에 반짝이는 옅은 희망을 엿보고 싶으신 분
-
- 죽음 앞 한 남자의 회한 그리고 따뜻한 마지막
시사회 참석으로 개봉 전 관람하고 작성한 리뷰 입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영화 <더 웨일>의 주인공 찰리(브렌든 프레이저)는 습관적으로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는 뭐가 그렇게 미안한 걸까. 왜 계속 상대방에게 사과를 하는 걸까. 그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등장하는 각기 다른 상대방에게 모두 미안하다는 말을 던진다. 그의 육중한 몸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정말 잘못을 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살다 보면 다양한 인생의 분기점을 만난다. 그 분기점 앞에서 우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떤 식이 될지 그 선택의 순간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때론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어쨌든 선택을 해낸다. 그 선택에 따르는 결과는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 결과가 바로 볼 수 있게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결말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이가 들고 회한의 감정이 들 때에서야 비로소 그때 그 결정이 옳았는지 아니면 잘못된 것인지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죽음이 곧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는 자신이 했던 수많은 결정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중에서도 후회가 되는 선택들을 떠올리며 그것에 대해서 누군가에게는 사과를 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후회되는 선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선택으로 인한 행복한 순간들도 머릿속에 같이 맴돌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더 강렬하게 반복되는 감정은 후회와 미안함이다. 이제 더 삶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생각은 삶의 의지를 점점 떨어뜨린다.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주인공 찰리의 마지막 7일
영화 속 찰리는 죽음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다. 엄청나게 살이 찐 그를 옆에서 돕고 진료를 하는 친구는 간호사 리즈(홍 차우)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권유하지만 찰리는 병원에서 돈을 쓰기를 원하지 않는다. 리즈는 찰리가 살 수 있는 날이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찰리는 육중한 몸을 스스로 가누기가 어려워 걸을 때도 보조기구를 활용한다. 그는 온라인 강의로 간간히 생활비를 벌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동성애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 불운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그렇게 연인의 죽음 이후 찰리는 거의 집에만 갇혀 살게 된다. 찰리가 동성 연인을 만나기 전에 그는 이미 한 여자와 결혼을 했었고 딸 엘리(세이디 싱크)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혼 후 동성 연인과 함께하는 선택을 한다.
찰리의 그 선택은 힘들고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그 선택을 했고 뜨겁게 자신의 사랑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그 선택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과거 부인이었던 메리(사만다 모튼)에게 상처를 주었고, 딸인 엘리에게도 큰 상처를 줬다.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찰리는 마지막 7일 동안 온전히 감당하고 있다.
찰리가 집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딸 엘리
마지막 7일 동안 다양한 사람이 집에 찾아온다. 친구인 리즈가 매일 찾아와 그를 진료하고 상태를 봐주고, 한 교회의 선교를 하러 다니는 토마스(타이 심킨스)가 우연히 집에 왔다가 찰리와 대화를 하게 된다. 그리고 부인 메리와 엘리도 찰리에게 찾아와 대화를 나눈다. 특히나 딸 메리와 찰리가 함께 있는 모든 순간들은 꽤 긴장감이 넘친다.
엘리는 아빠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있다. 반항적이면서 삶을 정상적으로 살아갈 의지도 없어 보인다. 영화는 그를 바라보는 찰리의 얼굴을 가만히 비추며 그가 딸에게 던지는 말을 세세히 전달한다. 그의 딸을 향한 말들은 매우 늦었다. 그가 떠난 몇 년 동안 엘리가 겪었던 상실감은 지금의 찰리가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걸 찰리도 잘 알고 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들을 딸에게 전달한다.
엘리는 아빠와 대화하기 거북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빠를 찾아와 그의 앞에 앉는다. 수많은 비아냥과 분노를 솔직하게 내뱉는 그의 모습은 찰리에겐 딸에 대한 다른 면을 발견하게 만든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 그것이 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다른 오해를 만들지 않는다. 그렇게 찰리는 엘리의 마음속 깊은 곳의 언어를 발견해 나간다.
영화 <더 웨일>은 영화 내내 긴장감이 넘친다. 영화는 찰리의 집 안에서만 진행된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게다가 찰리는 고도 비만으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전혀 긴장감이 없을 것 같은 구성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그의 앞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이용해 영화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찰리가 기분이 우울해져 음식을 마구 먹을 때 긴장되는 음악이 같이 연출되어 있어 혹시나 찰리가 죽지 않을지 숨을 죽이며 바라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의 말이 모든 인물들과의 대화를 마친 찰리가 딸 엘리에게 엘리가 쓴 에세이를 읽어보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영화의 모든 감정들이 폭발하며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긴장감 넘치고 따뜻한 영화 <더 웨일>
이 영화는 찰리를 연기한 브렌든 프레이저의 영화다. 그는 고도 비만의 남자를 연기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굴곡들과 자신의 회한까지 캐릭터에 담아냈다. 브렌든 프레이저는 <미이라> 시리즈로 할리우드의 정상에 섰지만 그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고 이혼을 하면서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동성에게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면서 예전의 샤프한 모습을 잃어갔다. 그래서 찰리는 브렌든 프레이저, 그 자체로 보이는 캐릭터다. 이 영화로 그는 배우로서 완전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연출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2011년에 개봉했던 <블랙스완>이나 <마더!> 같은 인물의 심리를 이용한 긴장감을 잘 만들어내는 감독이다. 이번 <더 웨일>에서도 한정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을 바탕으로 긴장감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는 그가 그간 연출했던 어떤 영화보다 따뜻한 감정을 끌어낸다.
영화 <더 웨일> 속 찰리는 무엇이 그렇게 미안했던 것일까.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던지는 찰리의 태도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찰리라는 한 사람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찰리는 자신이 동성 연인에게 가기 위한 분기점에서 사랑을 택했다. 그가 딸을 버리고 싶어 떠난 건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가지고 있던 마음의 짐은 영화 끝까지 계속 그를 괴롭힌다. 이 영화는 찰리의 마지막 7일을 다루는 이야기이지만 그가 가진 회한과 후회를 잘 정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꽤 감정적이고 따뜻한 이 영화는 힘든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