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2022-02-16 10:58:15
깊은 상실 뒤에는 사실 사랑이
[리뷰]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한 소녀가 건널목 앞에 앉아 있다. 이윽고 전철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올 거야.” 옆에 누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리며 말하는 소녀. 옆에는 아무도 없다. 전철이 건널목에 다다랐을 때쯤 소녀는 전철을 바라보며 자신의 왼손을 쭉 펼친다. 마치 뭘 잡고 있는 것처럼. 여덟 살 이 소녀의 이름은 사야카(닛츠 치세). 사야카의 왼손에 예전에 있었던 건 반려견의 산책 줄이었다. 사야카는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반려견 루를 잊지 못하고 있다.
17일 개봉하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하시모토 나오키)는 이별과 상실을 겪은 사람들을 느릿하게 그린 드라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떠나보냈으나, 여전히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야카도 마찬가지다. 그는 루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다. 사야카가 우연히 만난 술집 마스터 후세(오이다 요시)도 아들 고이치로를 먼저 떠난 보내 아픔을 가지고 있다. 사야카가 고이치로가 죽었냐고 물었을 때 후세는 “안 죽었다”며 버럭 화를 낸다. 사야카도, 후세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루가, 고이치로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다. 이런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던 둘은 결국 마음을 나누게 된다.
죽음과 이별, 그로 인한 상실감 등의 키워드로 풀어내는 영화이지만 사실 이 둘에게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사랑이다. 누군가를 마음에서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는 건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 상상조차 안 되는 애정의 깊이. 오죽했으면 떠난 게 사실임에도 그걸 믿지 않고 오히려 부정하려고 하는 걸까. 그 깊이를 쉽게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인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여덟 살 소녀나 백발의 노인이나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사랑.
사야카와 후세는 조금 달라진다. 자신들이 기다린다는 그 ‘무언가’를 찾으러 작은 여행을 떠나면 서다. 그곳에서 둘은 꿈을 꾸고 환상 같은 일을 겪으며 아픔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품는다.
사야카를 연기한 닛츠 치세는 2010년생으로 2014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으로 데뷔했다. 국내에서 379만 명이 본 흥행작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딸이다. 배우 아리무라 카스미가 영화에서 10년 뒤 사야카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일본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받은 동명의 단편소설이 원작.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영화 시사회 참석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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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으로도 채우기 힘든 사람의 마음
난 오늘도 크림 앱을 켜서 사고 싶은 물건을 구경했다. 보통이면 여러 개 찾아 보겠지만 근래의 나는 하나만 검색한다. 이제 물건은 나를 더 이상 기쁘게 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신발은 당근에 내놓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신는 것은 덩크 2족과 컨버스, 로퍼 4켤레다. 살 필요가 없던 것에 돈을 써왔다. 아. 이럴꺼면 그냥 우리 엄마 가방이나 사 줄걸. 무엇이든 경험해 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라곤 하지만 요즘 신발장만 보면 씁쓸하다. 결국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건 내면이었다. 최소한의 사람구실만 할 정도로,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TPO만 맞는다면 일상을 사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남들 사춘기때 하는 걸 안하고 살았으니 그 만큼의 댓가를 겪었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이 합리화에 살을 더 붙힌다. 에잉. 그래도 뭐 먹는것보단 낫지. 물건이라도 남았으니까. 큰 손해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근데 이 합리화도 얼마 못 갈거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금전감각이란 큰 돈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무뎌지기
때문이다. 난 머지 않아 요즘은 뭐가 나왔나? 하는 마음에 스니커즈를 보고 있을 것이다. 또 아직 사회인도 아닌데 단일품목에 그정도를 태우는건 선 넘었지 하며 그거보다 싼 것들을 위시리스트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돈을 쓴다. 담배를 안 피우고 밖에서 밥을 잘 안 시켜먹는 내 생활패턴이 이 돈을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하며 내 자신을 속인다. 그리고 호구가 된다. 리셀가로 웃돈을 주고 산다. 이번엔 다를거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마찬가지다. 이걸 산다는 의미가 나의 어떤 것을 증명해주는게 아니라는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마음에 드니까 산다!라는 핑계로 난 나를 속인다. 이 세상은 내가 알아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남이 나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되게 잘 아는 인생의 교훈인데 가끔 나는 알아서 멀리 돌아간다. 가끔 내가 하는 행동이 코미디같다.<블루 재스민>은 자아의 붕괴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재스민과 진저다. 진저와 재스민은 자매 사이다. 자매 사이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재스민의 남편이 진저의 돈을 갖고 사기를 친 것이다. 사실 사기꾼은 재스민의 남편 할이었어서 언니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긴 하다. 이에 따라 언니를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지만 진저는 수천의 빚에 명확한 일자리도 없는 언니가 루이비통 가방과 일등석을 타고 왔다는 사실에 황당해한다.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재스민. 정신 차리기는 커녕 재스민은 과거 회상에 자주 빠진다.
과거 회상에 자주 빠진다는 것은 현재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스민은 사실 오갈 데 없는 처지다. 동생 부부가 복권으로 딴 20만 달러를 사기당해 모두 날렸고 전남편은 남 등쳐먹은 사기꾼이었기 때문에 기댈 가족이 없다. 심지어 이에 대한 충격으로 아들 대니와도 멀어졌으니 낙동강 오리알이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돈 흥청망청 쓰던 과거에서 돌아와 현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재스민은 드와이트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드와이트는 정계 입문에 관심이 있는 외교관으로 품격 있는 미모의 재스민과 완전 찰떡인 커플이다. 둘의 연애 초기는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근데 이 알콩달콩한 분위기는 오래 못 갔다. 우연히 만난 진저의 전 남편(그러니까 남편 할의 사기 피해자)에게 재스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듣고 드와이트는 이별을 고한다. 어려운 이별을 받아들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재스민은 화를 불같이 낸다. 진저와 칠리가 깨를 쏟아내며 알콩달콩 사랑에 빠진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돌아버린 재스민은 진저 커플에게 악담을 내뱉고 밖으로 달려나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를 보자마자 '자아의 붕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지금 당장 네이버에 '자아'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과 관념이라는 뜻이 나온다. 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과 관념'은 구체적으로 딱 떨어지는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각자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데, 나는 이 자아라는 단어를 삶의 기준이라고 적용하고 싶다. 내 자아가 무너졌을 때도 내 기준이 없어서 사람들이 규정한 것을 따라갔다. 재스민에게 있어 명품은 이 자아를 흐리게 만든 도구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나도 비싼 스니커즈들 좋아하고 아직도 신는 입장이라 잘 안다. 비싸다라는 기준은 애초부터 타인에게서 온다. 내가 싸다고 생각하면 싼거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또 이것은 상대적이다. 내가 어떻게 목표를 설정했느냐에 따라, 또 현실 지갑 상황에 따라 갈리는게 싸다 혹은 비싸다라는 관념이다. 이런 식으로 타인이 설정한 기준이 부조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을때가 있다. 나는 내가 비싼 스니커즈들을 사면서 느꼈던게, 이것들을 사다보면 사람의 돈이 쉬워진다. 넷플릭스 구독료가 올라간다고 하면 '와 얘들 돈독 제대로 올랐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30~40만원대 스니커즈들은 '괜찮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건이 주는 기쁨이 되게 신선한 것이라서 사치품을 사는 것이 자아가 혼자 설 수 있는 환경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더 중요한건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일텐데. 그것들에게서 받는 기쁨보다 중요한 건 맛있는거 먹고 좋아하는 사람 만나며 영화 재밌게 보는, 그런 사람의 근본적인 지점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이란 이런 '나는 누구인가'를 채워과는 과정이었다.
재스민은 명확한 직업 교육도 못받았고 무너지는 현실에 대한 대처능력도 없어서 이런 것에 대해 탐구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자아가 붕괴됐다. 오갈데 없는 입장인데 자기가 부자라는 환상에 빠진 채로 끝나는 결말이 그 예시다. 원래 자기가 만든 자아라는게 있었다면 돈을 해프게 쓰지도 않았겠거니와 동생의 복권 당첨금을 다 날려버리는 결과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 뿐일까? 돈 많은 남자랑 연애한다고 몸을 움츠리며 울 일도 없었을 것이고 사기꾼 남편을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쉬운 구조를 통해 현실감각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우디 앨런식의 코미디가 아닌 현실의 한 단면을 잘라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내가 누구라는 물음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있게 도와준다. 물건? 있으면 좋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내 자신이 어떻게 서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앞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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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의 모든 것이 싫었던 어떤 요리사의 일갈
단 12명에게
담배 좀 피우지 마. 남자 타일러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자에게 잔소리 한마디 한다. "왜?" "우리 진짜 쩌는 셰프한테 가는 거라고. 담배 피면 후각이 둔해져." 에휴. 여자 마고는 '그래도 1,250 달러를 내줬는데..' 하는 마음으로 담배를 끈다. 타일러와 마고는 초대장을 받았다. 이 초대장을 받으면 전 세계 최고의 셰프가 대접하는 한 끼 식사를 먹을 수 있다. 가격은 무려 1,250달러. 신형 맥북 가격이다. 가격이 가격인지라 같이 가는 일행 수도 적다. 단 12명이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섬으로 초대받은 12명의 사람들. 12명의 인원은 배를 타고 외진 섬으로 향한다. 약간의 탑승수속 절차를 거치는 사람들. 마고도 예외는 없다. 셰프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 이상한 걸 느낀다. 어? 원래 오기로 한 사람이 안 왔는데? 타일러에게 문의하는 직원. 타일러는 "갑자기 일정이 바뀌었다"라며 직원에게 해명한다. 같이 섬으로 가는 일행은 다방면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셀럽, 요리평론가, 방송사 직원 등등. 기 센 사람들 아니랄까 봐, 너도 나도 뻐드럭거리며 배 안에서 섬으로 이동했다.
섬에 도착한 일행. 섬에는 신기한 것이 많았다. 여직원의 설명이 이어진다. "셰프는 여기서 요리를 직접 수확합니다. 또 우리 요리사들은 한 곳에서 함께 숙식하죠. 셰프의 숙소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설명을 이어가는 여직원 엘사. 숙성 기간 계산을 잘못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음식 재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한다. 뭐지? 느낌이 싸하다. 뭔가 찝찝한 마고. 그런데 일행인 타일러는 어딘가 행복해하는 듯하다. 식당 안으로 들어온 타일러와 마고. 문 앞에 덩치 좋은 남자들이 버티고 있다. 입구가 막힌 건가? 불안한 느낌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다. 첫 번째 코스는 그럭저럭 맛있었다. 아니, 사실 첫 번째 요리부터 어딘가 기괴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점점 뒤틀리고 있는 코스 요리들. 화려한 음식들 아래 숨어있던 코스의 어두운 내면이 점점 모습을 드러낸다.
요리의 특성을 활용하다
영화의 강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은 요리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당연히 음식일 것이다. 이 요리들은 실제 음식들을 갖고 온 구석이 몇 군데 보인다. 그런데 어느 코스를 지나고 나서는 감독이 이런 음식들을 창작했다. 여기서 요리의 분위기로 영화의 정서를 이끄는 과정이 신선했다. 이는 두 번째 요리가 특히 그렇다. 이 두 번째 요리에 대한 발상 자체는 익숙하다. 뭔가 예전 전래동화에서 볼 수 있는 느낌? 그러나 극에서 제시되는 ‘이 요리가 등장하는 이유’는 분명히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창의성이었다. 이 두 번째 코스요리 이후 극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음식으로 치환하는 형태가 반복되는데, 살짝만 어긋나면 작위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의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완성된 요리의 형태를 제시했기 때문에 극에서 지적하고 싶은 한 집단의 위선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만약 예를 들어서 상위층의 위선을 폭로하기 위해 ‘너희들은 라면이나 끓여먹여라’라고 한다면 감정적으로 들끓을지 몰라도 확실히 몰입에 아쉬운 지점이 생길 것이다. 유치해지는 것이다. 셰프 슬로윅의 장점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장르적인 특성이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요리는 우리가 아는 ‘요리’의 이미지를 1차원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코스요리’라는 키워드가 우리가 먹을 수 없는 어떤 것으로 표현되는 장면이 몇몇 있다. 영화에서 연출로 방점을 쾅 찍는 부분이기도 하다. 윗 문단에서 적었던 두 번째 코스요리처럼 이런 방식의 아이디어 자체는 왠지 익숙하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를 영화에서 전개하는 방식은 확실히 신선하다. 세 번째 코스요리였나? 이 요리가 제시되고 난 다음 영화의 이야기가 갑자기 전복된다. 영화에서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를 쌓다가 폭발하는 이야기.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의 전복을 요리로 치환할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설명이 머릿속에 잘 박힌다. 글쓴이는 이에 대한 감독의 설명이 비평가 캐릭터와 방송업계 종사자 캐릭터를 삽입했기 때문에라고 생각한다. 이는 여러분이 직접 보고 판단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거 이렇게 될 것 같은데?'를 뒤집는 이야기 전개가 이 요리를 통한 비유에서 나왔다고 느낀다.
왜 영화를 볼까
왜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까? 왜 <박하사탕>에 꽂혔을까? 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꽂혔을까? 왜 이런 글을 쓰는 걸까? 글쓴이가 갖고 있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재밌으니까. 또 일상이 지칠 때 어떤 영화에 기댈 수 있다는 건 축복 같은 일이다. 내가 싫을 때 <매그놀리아>를 보는 것. 나만 안 되는 인간관계에 <벌새>를 보는 것. 나만 안 되는 짝사랑에 속상할 때면 <리코리쉬 피자>를 본다. 그 이유가 단지 그것 때문이라면 다행이다. 이런 글쓴이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첫 시작은 그랬을지 몰라도 과연 나 자신이 사람들에게 허영을 부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영화는 이런 글쓴이에게, 또 우리에게 맛있는 코스요리를 제시한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란 영화가 있다. 항간에 알려진 바로는 이 영화 진짜 어렵다. 그리고 실제로도 어렵다. 극후반부까지 이야기를 점점 쌓다가 엔딩부에서 모든 내막이 밝혀진다. 여기까지 가는 것이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굉장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글쓴이는 이 영화에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리고 영화를 봤다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사진을 올린다. 이때의 나에게 묻는다. 이걸 굳이 올리는 이유는 뭘까? 질문의 답은 인정하기 싫은 사실로 옮겨간다. 정말 내가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있는 걸까? 이런 고상한 취향 가졌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이 <더 메뉴>는 음식이라는 소재에 집중한다. 음식이 뭐야? 의식주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인간의 필수요소다. 음식 안 먹으면 인생 못 산다. 그러면 무언가를 먹는 것이 그 자체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가끔 같은 티켓 가격 내고 다른 사람 위에 있고 싶어 할 때가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나 음식이나 공통점을 가진다. 그냥 그 자체로의 목적을 가질 수 있는데, 이에 힘입어 나 자신을 표현할 소재가 되는 것이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이런 흐름을 타서 발전하지 않았나. 더 높은 권위를 찾고. 혹은 그 권위에 다가가려 하고. 이 <더 메뉴>는 권위를 만드는 방식, 그 이면을 드러내 여러분에게 ‘더 주체적으로 다가가라’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블랙코미디적인 특색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유는 하고자 하는 말을 신선하게 했기 때문
창작자에 대한 은유
영화는 그렇게 관객들과 평론가들을 조롱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창작자들에게 냉기를 뽐내기도 하고 있다. 일단 영화를 보다 보면 극 안에서 반복되는 어떤 사건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주인공인 슬로윅은 셰프다. 이 요리사는 어떤 계기를 통해 마음을 먹고 돌아가기 위해 이 일을 벌인다. 여기서 이 ‘어떤 일’이 아무리 납득이 간다고 하더라도 방법론이 옳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글쓴이는 이렇게 방법이 극단적이라는 장르적 특징이 창작자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조롱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돌아가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다는 '너무 멀리 왔다'식의 한탄인 것이다.
이는 영화에서 슬로윅과 나머지 셰프들 간의 위치 묘사를 통해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슬로윅이 전체 코스요리의 스토리텔링을 이끌고 있다는 건 감독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 엘사가 맡은 일은 조연출쯤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슬로윅 아래에서 인물들의 구체적인 동선을 기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로 슬로윅의 부주방장이 나온다. 이 부주방장은 영화에서 배우를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영화는 직업이라는 인간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를 계속해서 드러낸다. 또 이 영화는 요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닌가? 셰프들이 요리를 한다. 그런데 그 요리를 하는 이유가 직업적인 특성과 관련이 있다. 이 과정 중에서 예술가가 뭔가를 창작하는 이유가 뭔가 숭고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몇 있다. 뭐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마스터>를 생각해보면 그렇다. 물고 물리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묘사하기 위해라고 생각하면 그의 천재성에 대해 어림짐작 하곤 한다. <마스터> 같은 발상과 이야기는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웅장한 이유가 있더라도 그 내면에는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모순적인 특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를 묘사한다. 창작자들이 엄청난 걸 만들어서 일반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방식과 의도가 보이는 것에 잡아먹혀 매 번 옳게 전달된다고 맹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더 메뉴>는 창작자들의 그런 이중성을 꼬집어 풍자한다. 옳은 것만 좇는답시고 허영심에 빠져 본질을 잃어버린 예술가들을 불태운 것이다.
재미있는 영화
뭐 이렇게 요리와 영화의 비유를 바탕으로 창작자들에 대한 조롱과 반성을 담은 이 <더 메뉴>. 이 영화가 좋은 영화인 이유는 그냥 이중적인 메타포를 잘 때려박아서가 아니다. 그냥 영화가 재밌는 영화다. 호러/스릴러/미스터리의 장르 특성을 잘 잡은 느낌? 예고에도 나오는 슬로윅의 박수, “예스. 셰프!’하는 비명소리. 칼을 이용한다는 직업적 특성까지 요소요소 하나마다 이야기에 새긴 냉기는 스릴러로서 영화를 봐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를 위해 랄프 파인즈가 내면을 알 수 없는 인물의 눈빛, 표정연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냥 손님들이 와서 요리만 먹다 가면 장르 전복에 이질감이 느껴질 것이다. 이에 굴곡을 부여하는 좋은 퍼포먼스였다. 뿐만아니라 안야 테일러 조이의 연기도 전형적이지 않은 주인공 연기를 잘 보여줬다. 이 인물은 다른 사람들과 색다른 특징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특징을 구현하기 위해서 굳이 안야 테일러 조이라는 슈퍼스타가 필요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배우가 고유하게 품고 있는 매력을 꼬집어내어 관객에게 설명한다. 유달리 이 영화에서 헤어와 코디가 잘 어울리게 나온다. 또 영화의 주요 조연 중에서 뇌리에 박힌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요리와 영화의 상관관계를 내세우며 창작자와 관객을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정말 재미없는 영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코멘트해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우리가 식당에 가서 요리를 먹다가 귀뚜라미가 나온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귀뚜라미 나왔어’라고 항의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단순히 예술이라는 이유로 모든 창작자의 의도를 좋게 판단하는 건 너무 저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영화에서 이 지점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면 더 품이 넓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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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영화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속 주인공들의 근황이 궁금해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2005~2010)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를 아시나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등 수많은 판타지 영화가 있지만 이제는 정말 추억속으로 사라진듯한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가 있는데요. 오늘은 그래서 문득 궁금해진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한 주연 배우들(보통 어린 배우들 이었죠)은 현재 무슨 활동을 하면서 지내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3편이 나온지 벌써 11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가장 최근 근황이 궁금궁금!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윌리암 모즐리
4남매 중 첫째, '피터 페벤시' 역
첫번째는 극중에서 맏 형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었던 첫째 '피터 페벤시' 역을 맡은 87년생 배우 윌리암 모즐리라는 배우인데요, <나니아 연대기>이후에 유독 눈에 띄는 작품 출연이 얼마 없었으나 짧게 출연한 3편을 마지막으로 여러 작품에 간간히 눈도장을 찍은 배우인데 최근 2016년도엔 <언프렌드>라는 독일 영화, 또 가장 최근엔 잘 알려지지 않은 <더 베일>이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경력이 있는 배우입니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에서 가장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배우였는데 그 이후에 작품 활동이 얼마 없어서 아쉬운 배우이기도 하네요,,
<나니아 연대기> 이후의 작품.
안나 팝플웰
4남매 중 둘째, ‘수잔 페벤시’ 역
페이스만 본다면 여러 영화에서 많이 본듯한(?) 느낌을 주는 88년생 그녀이지만,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이후에 '헤일로: 슈퍼솔져 2012'라는 작품과 '레인 1, 2' 드라마 시리즈 밖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배우인데요, 특히 이 배우는 나니아 연대기 후 영화보다 드라마 쪽으로 많이 성장해 나가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지만 영화쪽으로도 많이 접했으면 하는 배우였습니다, 최근에는 드라마, 영화 둘다 활동을 안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는 본래 4편까지 계획 했으나 배우들의 나이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죠,,
<나니아 연대기> 이후의 모습들
스캔다 케인즈
4남매 중 셋째, '에드먼드 페벤시' 역
91년생 배우로 나니아 연대기라는 작품 이후에 유일하게 작품활동이 하나도 없는 셋째, 에드먼드 페벤시 역을 맡았던 '스캔다 파인즈', 그 이유는 시리즈 이후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활동을 중단했다고 하는데요, 그 선택은 정말 성공적 이었다고 합니다. 최근 근황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을 다닌다고 해요. (유독 호강하는 미모로 많은 여성 팬들에게 인기를 끈 배우였던,,) 마지막으로 이 배우는 근황이 얼마 없기 때문에 최근으로 추정되는 사진들과 여심을 울렸던 <나니아 연대기> 속 모습들과 함께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워후,, 잘생기긴 했,,,
조지 헨리
4남매 중 넷째, ‘루시 페벤시’ 역
"가장 잘 자라준 배우"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막내 역을 맡았던 순둥순둥 배우 95년생의 '조지 헨리', 그녀도 유난히 눈에띄는 작품 활동은 얼마 되지 않지만 안나 팝플웹과 비슷하게 <퍼펙트 시스터즈>, <더 시스터후드 오브 나이트>란 드라마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배우인데요, 그 이후에 작품 활동은 되지 않지만 95년생 이라는 아직 어린 나이의 여배우인지라 꼭 영화 작품에 출연했으면 하는 배우이기도 하네요. 아래사진은 거의 최근 사진들!
벤 반스
'캐스피언 왕자/왕’ 역
다음은 그래도 국내 팬들의 눈에 익숙한 81년생 배우 '벤 반스' 입니다. 그는 어린 던스텐 쏜 역을 맡았던 영화 <스타더스트>라는 작품으로 눈도장을 찍은 배우이기도 한데요, 또한 그는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2편의 주인공격 캐스피언 왕자로 나왔던 그는 시리즈 이후에 큰 작품들은 아니지만 영화 <더 스토리: 세상에 숨겨진 사랑>에서 조연, <빅 웨딩>이란 영화에서 주연, 그리고 상당히 많이 아쉽던 2015년에 개봉한 판타지 영화 <7번째 아들>에서 주인공 톰 역을 맡으면서 여러 작품들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배우입니다. 7번째 아들이 흥했었으면,,
<7번째 아들> / <재키 앤 라이언>
윌 폴터
'유스터스 스크럽’ 역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의 주연은 4남매의 사촌으로 나오는 유스터스 스크럽 역을 맡은 배우이자 나니아 연대기 이후 가장 눈에띄는 작품들에 다양하게 출연한 배우인 윌 폴터 입니다. (3편에만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죠), 그가 출연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영화 <메이즈러너> 1편에서 갤리 역, 디카프리오, 톰 하디 주연의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선 짐 브리저 역으로 출연해 많은 분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배우인데 93 년생으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중에 한명이기도 한 배우입니다. 2014년도엔 제67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제 신인상을 수상!!
<메이즈러너> /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리암 니슨 / 틸다 스윈튼
'아슬란’ / ‘하얀 마녀’ 역
또한 그 외에 간간히 등장한 1, 2, 3편에 진정한 주연 사자 역의 에슬란/아슬란의 목소리를 녹음한 '리암 니슨'과 1편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 등장한 하얀 마녀 '틸다 스윈튼' 배우들은 현재 최고의 헐리우드 배우들로 자리 매김 하고있으며 더 쟁쟁한 배우들이 되었습니다.
진짜 4편 은의자가 너무 보고싶은(..)
소설도 굉장히 재밌습니다 ( ^ω^ )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배우들
7년이 지난 이젠 정말 추억속의 영화가 된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배우들을 앞으로도 다양하고 좋은 작품들로
만나보았으면 합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영소남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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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곁에 있을거야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관람 후 작성했습니다. :)
노웨어 스페셜
존(제임스 노튼)은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의 서른다섯 번째 생일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창문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존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에게는 새로운 가정이 필요하다.
마당이 있는 넓고 좋은 집, 많은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집, 아이를 바라는 다양한 후보들 사이에서 존은 망설인다.
마이클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중대한 결정을 자신이 내려도 괜찮을까. 마이클은 아빠의 죽음과 새로운 가족과의 만남을 점차 이해하기 시작한다.
훗날 자신의 부모를 궁금해할 마이클을 위해 ‘기억 상자’에 물건들을 하나하나 담듯이 영화는 존과 마이클의 마지막 여정을 한 장면 한 장면 소중히 눌러 담는다.
죽음을 말하는 방법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전작 <스틸 라이프>(2014)는 누구나 홀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죽음 앞에서 삶과 사람의 소중함을 이야기했다.
이번 영화 <노웨어 스페셜>은 예견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는다. 존의 마지막이기도 하지만, 마이클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죽음은 회색 하늘로 날아간 빨간 풍선과도 같다. “슬픈 게 아니라 그냥 없어”져서 보이지 않는 것.
마이클은 동화책과 빨간 풍선, 움직이지 않는 딱정벌레를 통해 죽음을 이해한다. 감독은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삶에 더 집중한다.
<스틸라이프>가 죽음 이후에 삶을 되짚어 보았다면, <노웨어 스페셜>은 죽음의 앞에 선 채로 삶을 응시하고, 죽음 이후에 남는 것을 찾아내려 하는 영화다.
존의 희망
아이를 버리고 떠난 엄마와 너무 일찍 죽어버린 아빠. 존은 마이클이 친부모를 잊기를 바라는 동시에 자신을 "창문 청소부로" 기억하기를 바란다.
마이클을 위한 기억 상자에도 창문 청소도구는 빠지지 않고 담긴다. 창은 존재하되 보이지 않아야 한다.
존은 자신이 보이지 않더라도 마이클이 자신의 존재를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존에게 있어 유리창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이다. 창의 존재조차 잊을 정도로 깨끗이 닦아낸 창문 너머의 풍경은 그가 닿을 수 없는 희망을 담고 있다.
창 너머의 단란한 가족, 장난감으로 가득한 아이의 방, 교복을 입은 아이. 창 너머의 삶과 행복은 존이 바라던 삶의 모습이다. 손에 닿을 듯 보이나 창문 너머로 갈 수는 없다.
존의 생일 케이크에 마이클은 서른네 개의 초를 꽂는다. 그리고 붉은색 초 하나를 존에게 건넨다.
존은 그 초를 꽂은 서른다섯 번째 생일 케이크를 볼 수 없지만, 마이클의 곁에 있기를 바란다.
타오르지 못할 붉은 초 하나는 기억 상자에 고이 담긴다.
마이클을 위한 기억 상자는 마이클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존의 희망이 담겨 있다.
For Michael, 마이클에게
존과 마이클은 서로를 깊이 바라본다. 서로의 모습을 한순간이라도 더 눈에 담겠다는 듯이 말이다.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이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사려 깊음이 묻어난다.
두 사람이 대화를 시작하면 카메라는 말을 끊지 않고 지그시 바라봐준다. 서로의 얼굴은 가까운 클로즈업으로 자세히 본다.
존의 수척하고 푸석한 얼굴과 마이클의 섬세한 표정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마이클은 존의 병세가 악화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거칠고 고통스러워하는 얼굴과 떨리는 손을 본다. 존은 마이클의 옅은 미소와 뾰로통한 입술로 표현되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응시한다.
두 사람이 함께 할 때는 정다운 투샷을 놓치지 않는다. 두 사람의 모습을 소중하게 담아 간직하려는 것처럼.
존은 마이클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기억 상자에 담는다. 영화 <노웨어 스페셜>은 그 자체로 두 사람을 위한 하나의 앨범 혹은 '기억 상자'와도 같다.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서로를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시선으로써 서로의 기억을 존재 깊숙이에 각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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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는 강하게, 공포는 약하게
우리는 종종 가슴 아픈 일들을 만난다. 그렇게 만난 아픈 과거는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아픈 일을 완전히 잊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심한 상처를 남긴 과거를 완전히 잊기는 어렵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괴롭히는 그 일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마음에서 멀어져 간다. 그것도 단지 생각이 멀어질 뿐이지 마음 깊은 곳에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사람들은 그 아픈 일은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앞으로 나가면서 과거의 아픔을 어느 정도는 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또한 그렇게 아픈 기억을 지우는 것만이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과거의 일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미래를 대처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따라 마음의 짐이 가진 무게가 달라진다.
<인시디어스> 1편과 2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인시디어스: 빨간 문> 은 2012년과 2013년에 연달아 개봉했던 <인시디어스>와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에서 9년이 지난 현재를 다루고 있다. 조쉬 램버트(패트릭 윌슨) 가족에게 찾아온 기이한 일을 다루는 영화는 ‘저 너머 세상‘ 로 불리는 다른 차원의 세계와 연결되는 조쉬와 그의 아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기이한 일들로 고통받던 조쉬의 가족은 영매인 엘리즈(린 샤예)와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에게 나타나는 기이한 일의 원인을 알게 된다.
특히나 ‘저 너머 세상’에 있는 악령은 현실에서 넘어온 조쉬와 그의 아들 달튼(타이 심킨스)의 삶이 큰 영향을 준다. 지난 이야기 속에서 악령에 의해 조정되어 움직이는 아빠 조쉬는 그의 가족들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적이 있다. 그건 악령의 조종이라는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모든 가족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일이 해결되고 나서 최면을 통해 그 기간에 벌어진 일을 잊게 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니까 조쉬와 달튼은 아픈 상처를 계속 떠올리는 것 보단 완전히 잊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시리즈의 1편과 2편이 흥미로웠던 건 '저 너머 세상'의 모습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가족 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습을 담았다는 데 있다. 특히나 악령에 씌인 아빠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가장 친숙한 존재가 망치를 들고 가족을 해치려 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아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평소엔 아주 좋은 아빠이지만 어느 순간 돌변해서 가족들을 해치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마치 영화 <샤이닝>의 정신 나간 아빠를 보는 듯한 모습은 무척 공포스러웠다.
이번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전편에서 9년의 시점이 지난 후를 다루고 있다. 본의 아니게 가정폭력의 상흔을 가지고 살아온 가족들 중 모든 것을 기억하는 아내 리나이(로즈 번)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그 상흔을 가지고 살아왔다. 비록 조쉬와 달튼은 최면을 통해 그 당시의 기억을 지웠지만 조쉬는 다시 과거와 같은 다정한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달튼도 성장과정에서 일상에 적응하고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조쉬와 아내는 이혼을 했고 조쉬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아이들을 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가족과 잘 지내지 못하는 아빠 조쉬
영화는 마치 아이가 어린 시절 느꼈던 아빠에 대한 공포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조쉬와 달튼은 서로 가까워지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아 보인다. 조위와 달튼의 대화를 딱 그 시점만 보면 그저 사춘기 소년과 아빠의 어색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시리즈의 1편과 2편까지 생각하면 과거에 겪었던 폭력적인 일과 쉽게 연관 지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5편에서는 조쉬와 달튼의 상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왠지 모르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기억을 지웠기 때문에 그들 자신도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과거의 상처를 그냥 덮어놓는 방식으로는 서로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가진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을 서로 이해해야 비로소 진짜 좋은 관계가 시작된다.
<인시디어스: 빨간 문>에서 훌륭한 건 이렇게 과거의 상처를 덮은 가족이 다시 그 기억을 복원하고 그 공포를 이겨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잘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 자체로 과거 1편과 2편의 이야기를 완전히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는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아빠와 아들이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그 감정이 왜 그렇게 행동하게 했는지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 두 사람은 다시 '저 너머 세상'에서 만나 힘을 합한다.
두 사람이 따로 떨어졌을 때보다는 함께 있을 때 전달되는 감정의 파고가 더 크다.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불편함을 크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 얼마나 상대방을 아끼고 있는지, 상대방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후반은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마음 속의 아픈 상처를 드러낸 아빠와 아들
이렇게 아빠와 아들, 그리고 조쉬 가족 모두의 서사는 나쁘지 않다. 과거 1편과 2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이야기도 좋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드라마가 아니라 공포 영화라는데 있다. 과거 시리즈에서 '저 너머 세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벌어졌던 숨 막히는 긴장감이 이번 영화에서는 덜 느껴진다. '저 너머 세상' 이 초반에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고 후반부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그렇게 보여지는 공간이 오히려 작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악령이나 '저 너머 세상' 보다는 조쉬와 달튼의 관계에 집중하다 보니 공포 영화로서의 매력이 과거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과거 <인시디어스>와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은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을 맡았었다. 그는 <컨저링> 시리즈를 연출했던 것처럼 집안과 가족들의 주변을 활용해 무척 효율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 이후 <인시디어스3>과 <인시디어스: 라스트 키>는 각각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이번 <인시디어스: 빨간 문>은 극 중 조쉬 역할을 연기한 배우 패트릭 윌슨이 직접 연출을 맡았다.
패트릭 윌슨은 자신이 <컨저링>이나 <인시디어스> 시리즈에서 연기를 하면서 경험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번 영화를 첫 연출작으로 택했다. 그는 조쉬와 달튼의 부자 관계를 보여주면서 드라마를 더 강화했고,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 효과인 점프 스케어 등을 활용하면서 공포 영화로서의 효과도 높이려 했다. 드라마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게 전개되었지만 시리즈 특유의 공포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시키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절반의 성공인 연출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조쉬의 가족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들은 과거의 가슴 아픈 일을 잊는 것을 택했지만, 영화는 그렇게 잊는 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조쉬와 달튼이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를 상대방에게서 발견하는 순간이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비록 공포 영화로서의 힘은 조금 떨어지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풀려가는 과정 자체는 무척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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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어쩌면 나만 섬인가봐
* 제목은 타블로의 노래 <airbag>에서 인용
절해고도(A Lonely Island in the Distant Sea)
감독 : 김미영
상영시간 : 110분
시놉시스 : 20대 때 청년조각상을 받았지만 지금은 인테리어 업자로 살아가는 40대 이혼남 윤철에게 10대 딸이 있다. 미술가로 장래가 촉망되던 딸이 어느 날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겠다고 한다. 윤철도 한때 예술가로 성공하지 못하면 신부나 스님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윤철은 자신이 꿈만 꾸고 가지 못한 길을 딸이 가는 것 같아 인생을 도둑맞은 것 같은 느낌이다.(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우스갯소리로 예술하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라고 한다. 소위 대박이 터지기 전까지 생활의 궁곤함은 차치하고, 기질적인 예민함과 높은 이상, 비대한 자의식이 가까운 사람을 괴롭히기 때문일 거다.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것이라 장점도 았다. 예민한 사람들이 가진 다정함과 배려심, 감각적인 표현과 시선 같은 것들, 먹고 사는 문제나 돈 벌 궁리 말고 다른 이야기들을 밤새워 할 수 있다는 새로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전공자이기 때문이다.
<절해고도>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 혹은 작업하는 사람의 이야기, 예술과 재능과 운에 대한 이야기다. 먼 바다에 있는 외로운 섬, 한때는 유배지를 절해고도라 불렀다.
너무 멀리 있어서 눈에 보이지만 다다를 수는 없는 섬이 있다. 그런 섬을 상상해보자. 먼 바다 끝에 보물섬이 있다. 어떻게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헤엄을 쳐도 닿지를 않고 배를 타고 갈 수도 없다. 그 섬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미 거기에 있다. 어쩌면 그 섬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20대에 청년조각상을 한 번 받은 후에 그렇다할 작업물 없이 인테리어 업자로 살아가는 윤철에게 현업 조각가의 꿈은 먼 바다의 섬 같다. 한때 자기보다 못했던 후배도 개인전을 여는데,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아버지와 딸은 거푸집에서 찍어낸 듯 닮기도 한다.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야구선수 이대호의 딸도 그렇고 윤철의 딸 지나도 그렇다.
지나는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종종 그렇듯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된다. 하필이면 질투는 경쟁자들보다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한다. 때로는 가족이, 때로는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가.
같이 그림을 그리던 친구가 남긴 '쓰레기'라는 댓글은 예술하는 19세 청소년에게는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의 무게를 지닌다. 지나는 예술가이므로 자기 감정을 학교 블라인드에다가 표현해놓고 학교를 떠난다. 그림이 너무 잔혹했기 때문에 학교 선생은 지나의 부모를 호출한다.
학교에서 선생을 만나고 돌아온 윤철은 지나에게 '그림에 재능있기가 쉽지 않다'는 말만 주구장창 한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고 스님이 되겠다는 지나를 보며 한때 자기도 종교에 귀의하고 싶었던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금우스님의 말처럼, 윤철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지나는 윤철이 멀리서 보기만 해야 했던 그 섬에서 태어난 아이다.
지나는 머리를 깎고 '행자 도맹'이 된다. 이제 윤철과 지나의 관계는 부녀에서 행자-거사의 관계로 바뀐다. 이들은 남남처럼 서로 존대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윤철은 더 이상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지 않고 국숫집을 꾸린다. 술도 팔지 않는 국숫집이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가게 문을 열고 국수를 삶는 일은 행자의 수행과 다름없다. 이 부녀는 요원한 섬을 꿈꾸며 허우적거리는 대신 고독한 수행자가 되는 방식을 택한다.
절해고도는 유배지의 다른 이름이었다. 컨테이너 작업장에 스스로를 유폐하는 삶과 시장으로 나가 국수를 삶는 삶 중 어느 쪽이 폐쇄적인가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윤철은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쪽에 가깝다. 이전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자리에 끼지 못해 좌절감과 자격지심으로 괴로웠다면 이제는 잘 맞는 옷을 찾아 입은 셈이다.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러빙 하이스미스>라는 제목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된다. 영화 <캐롤>과 <리플리>의 원작으로 유명하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민음사, 2009)>라는 제목의 단편집이 있는데, 러닝타임 내내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생각했다.
김미영 감독은 영화에서 '관계를 통한 성장'에 방점을 찍었으나 윤철과 매우 긴밀한 관계였던 영지(강경현 분)의 존재는 이 텍스트와 어울리지 않아 생략했다. 관계보다는 작업하는(만드는) 인간으로서의 윤철에게 더 집중했다. 나는 윤철과 비슷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지나는 윤철에게 "평생 그렇게 살"라고 가시돋힌 말을 던진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 자리를 찾아갔을 때, 마침내 윤철도 자기 자리와 할 일을 찾았으므로 절해고도 같은 유배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평생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다르게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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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22년 8월 27일 | 16:00 - 17:50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5관
2022년 8월 29일 | 19:30 - 21:20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6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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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2021)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쉬운 해석
Chapter 2 어려운 해석
00:00 깐느 박
01:53 쉬운 해석법
02:58 외도 세 번
05:47 이과적, 엑스레이
06:49 담배, 스마트폰 상징
08:45 어려운 해석
09:40 김신영 캐스팅
10:17 박찬욱이란 사람
11:09 편견, 선입견 타파
13:39 별점 및 한 줄 평
13:55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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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페이스](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이중성, 저택과 창고
Chapter 2 노예와 영화
00:00 김대우 월드
01:42 이중성
03:43 저택과 창고
04:33 노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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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 별점 및 한 줄 평
07:32 다음 리뷰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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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즈의 마법사> 예고편
9월 6일 환상의 나라 오즈에 다시 한 번 당신을 초대합니다? 세기의 명작 [오즈의 마법사] 재개봉✨ 도로시와 함께 동심의 세계로 떠나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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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퍼지: 포에버> 메인 예고편
매년 단 하루, 12시간 동안 살인은 물론 어떤 범죄도 허용되는 미국의 연례 행사 ‘퍼지’ 데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정착한 멕시코 부부 ‘아델라’와 ‘후안’,
텍사스 부촌에서 마구간과 농장을 꾸리며 안락하게 살아가는 ‘딜런’ 가족까지
모든 이들이 긴장감 속에서 ‘퍼지’ 데이를 맞이한다.
다행히 큰 사고없이 ‘퍼지’ 데이를 보낸 이들은 공식적인 ‘퍼지’ 종료 사이렌이 울리자 일상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영원한 퍼지’를 통한 ‘미국의 정화’를 외치는 추종자 세력이 등장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기 시작한다.
안전을 위해 멕시코 국경까지 이동해야 하는 ‘아델라’와 ‘후안’, 그리고 ‘딜런’ 가족은
과연 공권력과 법의 통제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영원한 퍼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시작만 있을 뿐, 더 이상의 끝은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퍼지’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