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로진2022-02-08 14:17:49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클리셰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리뷰
이 심란한 마음을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나는 홍콩, 대만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영화관에 입장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SNS에 해시태그를 단 리뷰를 써서 당첨되면 대만 고량주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당연히 해 봐야지 생각했다. 이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지만, 굳이 한 마디 남긴다면 '일본 영화에서 본 난감한 캐릭터, 중국 영화에서 본 조잡한 CG, 한국 영화에서 본 불필요한 연출'이 마구 섞인, 동아시아 대통합 영화라고 하고 싶다.
영화를 안 봐도 알 수 있는 서사
영화의 시작은 나이 든 동네 아저씨들과 농구를 하던 '샤오룬'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갑자기 비가 오고,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고백하는데 또 갑자기 번개가 치고, 예상할 수 있듯이 번개에 맞아 죽는다. 그러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저승사자가 샤오룬을 데리고 저승으로 간다. <신과 함께>를 봤다면 대만 저승은 좀 만만하게 느껴질지도.
저승에 가면 몇십 년 된 컴퓨터로 갓 죽은 인간의 삶을 평가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굿플레이스>를 봤다면 저승도 기술발전 속도가 현저히 차이나는구나 싶을 거다. 생의 정보를 이마에 바코드를 대서 알아보는 시스템은 마치 애니메이션 <코코> 같다. 저승에 가면 누구나 염주를 하나씩 받게 되는데, 착하게 살았으면 흰색 염주알, 나쁘게 살았으면 검은 염주알이다. 검은 염주알로는 인간으로 환생할 수 없어 저승에서 일을 돕는다. 염주알이 흰색으로 바뀌어야 인간 환생 확정. 자, 또 떠오른다. 지구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배지를 모으는 <소울>의 아기 영혼들이. 왜 이렇게 비슷한 영화들을 끌어오냐 하면, 무엇하나 놀랍지 않았기 때문이다. 픽션은 상상의 산물일진대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하는 영화에서 판타지도, 로맨스도 놀라움을 안겨주지 않는다.
역시 예상할 수 있듯, 샤오룬은 죄가 많아 사람으로 환생할 수 없다. 그리고 옆방에는 죽음을 수용하지 못해서 억울해 미칠 지경인 여자 '핑키'가 있다. 이들은 갑자기 눈이 마주치고, 초면이면서 갑자기 서로를 비난한다. 둘이 욕하며 싸울 때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저 둘이 뭘 하겠구나.
그렇다. 그들은 죄를 갚기 위해 월노(月老), 우리나라에서는 월하노인이라 부르는 일을 같이 하게 된다. 두 사람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붉은 실로 맺어주는 인연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아주 임무가 막중한 역할이다. 핑키는 월노가 되기 전 악귀가 되지 않겠냐는 검은 유혹을 받는데, 잠시 자신을 죽인 자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혔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샤오룬에 의해 저지당한다. 판타지임에도 저승이라는 배경이 광활하지도 아득하지도 않다.
캐릭터의 존재 이유
귀신도 되었겠다, 핑키는 자기를 죽인 남자를 찾아간다. 남자는 죄책감도 없이 핑키가 죽음으로써(어떻게 챙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챙긴 돈으로 호위호식하며 산다. 샤오룬은 복수를 해주겠다며 그 남자와 밖에 서 있던 오토바이를 묶고, 갑자기 남자는 오토바이와 사랑에 빠져 오토바이에 유사성행위를 한다. 이 영화, 12세 이상 관람가로 해도 될까.
핑키는 자기가 왜 죽어야 했는지도 모르고 죽었으면서, 그렇게 복수의 칼을 갈았으면서 고작 그 정도로 원한이 다 풀린다. 그리고 고작 그 정도로 샤오룬에게 반한다.
번개 맞아 이마에 상처가 생긴 샤오룬은 죽기 전의 삶을 기억할 수 없다. 파트너가 핑키와 샤오룬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샤오룬이 원래 살았던 동네로 가게 된다. 왜 살았던 동네와 출신 고등학교를 알게 되었는지, 누가 알려줬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다 키우던 개가 샤오룬에게 달려가면서, 별안간 기억이 떠오른다. 세상에...
개를 찾으러 온 여자 '샤오미'를 보며 오열을 하는 샤오룬. 드디어 모든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쉽게 찾아질 기억이란 말인가. 허무하다.
그때부터 샤오룬은 샤오미 주변을 얼쩡거리는데, 저승의 임무를 맡은 귀신들이 너무 태만하다. 샤오룬에게 빠진 핑키는 샤오미와 다른 남자를 엮어주려고 하지만, 샤오미에게는 인연의 실이 묶이지 않는다. 왜겠나. 관객들은 다 알고 영화 속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도대체 핑키와 샤오미가 왜 존재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핑키는 한 남자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여성, 귀신이 된 후 샤오룬을 좋아하는 여성 이외에 아무런 서사가 없다.
샤오미 역시 '샤오룬이 좋아하는 여성' 외에는 특징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첫눈에 반한 여자, 샤오미가 모든 게 변한다는 걸 알아야 어른이 된다고 말할 때,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라고 말하게 하는 여자, 싫다고 싫다고 아무리 거절해도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고백하게 만드는 여자, 모든 기억이 사라졌을 때 갑자기 기억을 되돌려주는 여자, 귀신이 되어서도 지켜야 할 여자. 오직 샤오룬을 위해 존재하는 두 여자. 이들은 성격이라 할 것도, 배경이라 할 것도, 서사라 할 것도 없다.
두 여자주인공이 이런 마당에 남자주인공이라고 특별한 서사가 있겠나. 남자주인공 역시 '한 여자에게 사랑에 빠져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사랑하고, 죽고 나서도 한 사람만 사랑하는 동네 까불이'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따금 일본 로맨스 영화에 등장하는 당황스러운 캐릭터들을 모아둔 것만 같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에서의 당황스러움 같은.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주인공인 세 사람에 대한 묘사가 이 정도이다.
불필요한 연출
그러다 또 갑자기, 저승에서 원한을 풀지 못한 악귀가 이승에서 사람으로 환생한 과거 인연들을 죽인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박중헌쯤 된다. '파국이다'를 읊조려야 할 상황이 벌어지는데 저승에서는 손 놓고 구경만 한다.
이 악귀가 원한을 품은 것은 500년 전의 일 때문이다. 수많은 살생을 해 오던 도적떼 출신으로, 환생은 커녕 지옥에나 안 떨어지면 다행인 남자. 그런데 여기에서도 서사의 부재가 여실없이 드러난다. 이 도적떼는 왜 도적질을 하는가. 돈 때문인가? 아니다. 이들은 쫄쫄 굶는다. 의로움 때문인가? 전혀 아니다. 이들은 무고한 이들을 가차없이 죽인다. 나라에 대한 역모인가? 그것도 아니다. 설사 그렇다고 한들, 영화에서는 그 무엇도 말해주지 않는다. 악한 자들에게도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
원한을 품고 염라 밑에서 일하게 되지만, 자신을 배신한 자들이 줄줄이 환생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직접 찾아가 복수하기로 한다.
첫 번째 타자는 어린 아이다. 어린 아이에게 '너는 500년 전의 일을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억한다'며 양치하고 있는 아이를 공격하고, 이 아이는 또 수산물 파는 여자를 공격하고, 여자는 또 다른 남자를 공격하고, 남자는 샤오미를 공격한다. 가만히 있다가 샤오미가 공격당하자 그때서야 샤오룬과 기타 저승 인물들이 나서는데, 그 이유도 역시 알 수 없다.
문제는, 왜 보는 사람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잔인함을 연출했는지이다. 목을 꺾고, 칼로 찌르고, 아기가 조개를 생으로 씹어 먹어서 피를 토해야 하는지 전혀 개연성이 없다. 악귀에게 씌인 이들은 죄다 좀비화된다. 좀비 영화, 좀비 드라마가 유행인 건 알겠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등장해야 했나?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랑도 있지만 복수심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나. 이 징그러운 복수극은 로맨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트랙으로 진행된다.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악'은 스릴감도 주지 않고, 공포심을 주는 것도 아닌, 징그러움뿐이다.
논외로, '인간의 추악한 본성' 어쩌고 하는 인터뷰들을 몇 편 읽어 보았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우리가 왜 영화로 봐야 하는지,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은 간접경험을 통한 외연의 확장에 있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은 당장 포털사이트를 켜서 아무 기사나 눌러 보면 경험 가능하다. 굳이 간접경험하지 않아도 직접경험이 가능한 영역이지만 우리는 법과 제도와 문명과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조심하며 살아간다. 욕망하지만 차마 입밖으로 꺼내면 욕먹을까 봐 속으로만 생각했던 추악함(약자를 타자화, 대상화하는 등)에 픽션이라는 핑계가 하나 생긴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인연'에 대해서만 말한다면
서양영화에서 'God bless you'를 말하는 상황에 이 영화는 '아미타불'을 말한다. 대체로 불교적 관점의 영화이다. 윤회와 환생, 극락과 지옥이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맨스와 복수극은 테마라고 보기도 어렵다. 감독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보여주었던 애틋하고 풋풋한 로맨스가 한 스푼 정도 들어가 있다.
왜 샤오룬이 샤오미를 그토록 쫓아다녔는지, 악귀가 왜 여러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는지, 초반에 뿌려놓은 떡밥들이 뒤에서 조금씩 회수가 되는데(물론 납득이 되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모든 생명에는 인연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메시지이다.
악귀는 매미였던 시절 자신을 살려주어서 고맙다는 샤오룬의 격한 감사 인사에 그만 마음이 스르르 풀려서 사라진다. 윤회고 극락이고 필요없다더니,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못 들어서 그랬던 건가 싶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하나 마음에 담아둘 것이 있다면 인연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 내가 함부로 죽인 개미도, 나쁘게 대한 사람도, 나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도 나 나의 인연이니 소중히 대하자. 그들은 어쩌면 전생에 내가 빚진 사람, 나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다. 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인연이다. 너무 많이 미워하지도 말고, 너무 많이 사랑하지도 말고,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아끼지 말자. 언제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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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맛이 없었던 식당을 리뷰하지 않는다. 입맛이 달라서 그렇겠거니 생각하니까. 영화도 마찬가지로, 재미없었던 영화에 악평을 하지는 않는다. 십수년간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열광적인 팬이었지만 <매트릭스4>에 대해서 함구한다.
하지만 시사회에 참석하여 이 영화에 대해 말할 의무가 생겼으니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도 안내할 필요가 있겠다.
관람 포인트1.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 대만영화 특유의 풋풋한 로맨스 감상 가능.
관람 포인트2.
인연, 사후세계 등의 요소들과 기괴한 장면들을 좋아한다면 재미있을 듯.
관람 포인트3.
떡밥이 하나하나 회수되는 걸 보는 즐거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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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은 내일의 음악이 연주될 것이다 - 픽사의 신작 영화 '소울' 리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코로나19는 인사말의 무게도 바꾼 것 같다. 본론을 시작하기 전의 숨고르기 같았던 '안녕하십니까?'라는 형식적 질문이 팬데믹 이후에는 '당신의 삶, 정말 안녕하십니까?'라는 진중한 물음으로 읽히는 날들이 이어지는 중이다. 완전한 종식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만, 언젠가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면 예전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또 하루가 지나간다. '지금 나의 삶은 안녕한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머뭇거리다가 문득 되묻는다. '코로나19가 끝나고 평범한 나날로 돌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안녕을 되찾고, 충만해질까요?'
픽사의 신작 <소울>을 보고 나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평범하다 못해 때로는 지루한 일상에 이토록 목말랐던 적이 있었던가? 모든 지구인이 일상으로의 복귀를 염원하는 이때, 픽사의 신작 <소울>은 가벼이 흘려보내기 일쑤인 하루하루에 담긴 아름다움을 느껴 볼 것을 권한다. 픽사의 방식으로.
영화 <소울> 속 미국 뉴욕(!)에서 사람들은 마스크 없이 거리를 돌아다닌다. '3밀(밀집, 밀폐, 밀접)'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라이브 재즈 클럽에 다닥다닥 모여 앉아 공연을 즐긴다. 지금 현실의 우리에겐 부럽기만 한 풍경이지만 활짝 웃는 주인공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를 제외한 길거리의 다른 뉴요커들은 왠지 심드렁해 보인다. 무심함은 대도시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심리적 무기인 것일까.
음악 선생님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잃지 않는 불굴의 조. 운명은 조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가 그토록 선망하던 'The Dorothea Williams Quartet'의 피아노 연주자로 공연을 하기로 한 바로 그 날, 불의의 사고를 일으켜 조를 '저 세상'으로 보내 버린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저 세상', 즉 '태어나기 전 세상'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피트 닥터 감독의 가이드를 안심하고 따라가게 된다.
애니메이션의 전형성에서 탈피한 주제, 소재, 설정을 능수능란하게 저글링 하며 시각화하는 픽사의 저력은 <소울>에서 만개한 듯하다. 보통 '소울(영혼)'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기 쉬운 귀신과 사후 세계가 아니라 '태어나기 전 세상'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태어나기 전 세상'의 둥글둥글한 영혼들은 여느 공포영화의 귀신처럼 무서워서 심장에 무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귀여워서 심장을 직격한다. 피카소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태어나기 전 영혼 돌보미들은 간결한 선으로 표현된 2차원의 존재이지만 이질감 없이 3차원의 공간 속에서 움직이며 생경하고 신선한 비주얼을 완성한다.
<소울> 속 '태어나기 전 세상'은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귀여움의 허용치를 초과한 세계다. 또한 <소울>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꿈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도록 만들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좋은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어른들의 황량한 마음을 물조리개로 부드럽게 적셔 준다. 특히나 조가 자신이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The Dorothea Williams Quartet' 공연을 마친 후에 밀려오는 허무함을 도로테아에게 토로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꼭 실현하고 싶었던 목표일수록 달성한 후의 공허함이 크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무엇을 좇으며 살아야 할까? 도로테아는 말한다. "바다를 찾아가려고 하지 마라. 여기가 바다다"
<소울>은 조가 이 세상과 '태어나기 전 세상'을 오가며 깨달음을 얻는 과정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 '22(티나 페이)'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것을 보여 준다. 조와 22의 모험에 동참하다 보면, 삶의 목적에 매달리는 것이 오히려 온전한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먼지보다도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우리의 사소한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우주다. 이 우주적 삶은 악보를 주시하며 엄격하게 연주해야 하는 클래식보다는 즉흥성을 폭넓게 활용하는 재즈나 길거리 공연의 모습과 더 닮은 것이 아닐까?
내일은 내일의 음악이 연주될 것이다. 악보는 봐도 좋고, 안 봐도 좋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starshines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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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 Farewell my concubine
/ 줄거리 /
매춘부인 엄마에게 버림받고 경극단에서 생활하게 된 두지.
두지는 경극단에서 혹독한 훈련과정을 수행한다.
그러면서 동료인 시투와 돈독한 사이가 되었고,
결국 시투에게 남몰래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다.
고된 노력의 결과로 그들은 유명한 경극배우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시투와 사랑하는 경극을 평생하고픈 두지는
시투가 주샨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상처를 받게 되고
이 계기를 통해 그들의 사이는 점점 갈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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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낀점 /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한 국가의 역사를 안다는 것이 이런것일까?
감정과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두지의 인생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특히, 두지가 시투와 경극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과 그것을 갈망하는 듯한
모습은 사랑의 결핍속에서 자라난 두지의 사랑받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신경전은 있었지만 곁에서 두지를 보살펴 주던 주샨,
두지에게 둘 도 없는 친구였던 시투가 떠난
마지막씬에서
두지의 모습이 마치 패왕의 마지막 모습과 겹쳐보였다.
패왕이 배신한 우희, 그 우희가 진정한 패왕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난 사실 이 영화의 영제를 보고 정말 놀랐다.
' Farewell my concubine '
나의 첩에게 보내는 마지막(작별) 인사..
시투가 두지에게 고하는 마지막 인사이자
고달픈 삶을 살던 두지를 위로해주는 말인것 같다.
그리고 뭐랄까 진짜 그냥 영화 내용 그대로를 압축해서
잘 표현한 것 같다.
+
이 영화를 통해 장국영이라는 배우에게 빠지게 된 것 같다.
내가 근래에 본 영화배우들 중에 연기를 가장 잘하는 것 같다.
아니 어쩜 그렇게 연기를 하지?
장국영이 영화에서 눈물 한방울씩 뚝뚝 떨어트릴때 내 눈물도 떨어질뻔한게
한두번이 아니다.
이게 막 엄청 슬픈 상황이 아닌데도 그냥 눈물이 울컥했다.
진짜 우리나라 신파영화 처럼 감정을 강요하는게 아니라
내가 먼저 그 감정에 동요되었달까.
동성간의 사랑을 그린 비슷한 느낌의 서양권 영화를 볼때랑은 다른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아역도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하지..?
+
이걸 보기전에 중국의 근현대사를 잘 알고 갔더라면 좋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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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하고도 서슬 퍼런 폐곡선!
불안하다. 그리고 가혹하다. 바람에도 쓰러질 것 같고, 잠금장치를 해도 괴한이 들이닥칠 것 같은 비닐하우스를 집 삼아 사는 이 여성의 삶은 위태로워 보인다. 아들과 행복한 삶을 목표로 돌봄 노동의 굴레에 벗어나지 못하는 비참한 현실도 한 몫 한다. <비닐하우스>는 희망에 저당잡혀 고통을 반복하는 여성의 일상을 켜켜이 쌓아 불쏘시개로 활용하며 마지막 절망이란 화마를 관객에게 안긴다. 활활 타오를수록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불꽃을 한 참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관객들도 절망의 늪에 빠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만큼 이 영화는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폐곡선을 그리고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문정(김서형)은 소년원에서 출소를 앞둔 아들과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간병인 일을 한다. 치매를 앓고 있는 화옥(신연숙)을 돌보는 건 쉽지 않지만, 많은 걸 이해해주는 화옥의 시각 장애인 남편 태강(양재성) 덕분에 문정은 조금이나마 숨을 돌린다. 하지만 그녀 앞에 산재해 있는 고난은 변함없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집단 상담도 참여하지만 그녀의 삶을 행복으로 인도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태강이 외출한 사이 문정은 화옥을 돌보다 그만 사고를 낸다. 집에 돌아온 태강이 마주한 건 싸늘한 시체가 된 아내의 모습. 그가 앞을 볼 수 없다는 걸 아는 문정은 이 사실을 숨긴 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비닐하우스>는 마치 부풀어 오르는 풍선을 보는 듯하다. 문정이 숨기는 진실이 언제 밝혀질지 모르는 심리적 압박감은 계속해서 관객을 짓누르는데, 마치 문정이 처한 고난의 현실을 관객 또한 오롯이 느끼라는 감독의 의도처럼 보인다.문정에게 희망은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계속되는 돌봄 노동과 지옥 같은 현실을 버티기 위해 자신의 뺨을 후려 치는 자학뿐이다. 그녀를 도와줄 이는 없다. 오히려 그녀가 돌봐야 하고 선의를 배풀어야 하는 이들이 더 많다. 화옥은 물론, 요양병원에 있는 친엄마, 소년원 출소를 앞둔 아들, 그리고 집단 상담에서 만난 순남(안소요)이 바로 그 주인공. 문정은 이들에게 선의를 배풀지만 돌아오는 건 악의뿐이다. 어쩌면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현실은 그녀를 점점 미치게 만든다.
영화는 절망의 늪에 빠진 여성을 구하기는커녕, 온 몸이 잠길 때까지 지켜보는 세상의 비정함이 서려있다. 이는 사회안전망 밖에 놓인 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절망적 상황에 빠진 한 개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의 힘이 필요한데, 영화는 아예 이 부분은 거세한다. 스릴러 장르에 충실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이지만, 이런 감독의 의도는 실제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모두 케어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의 한계를 꼬집는다.
물론, 이 영화가 사회 비판적 시각만으로 점철된 작품은 아니다. 연출을 맡은 이솔희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따뜻하고 조용한 드라마로서 연약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벌어지는 지독하게 아픈 이야기”라고 설명한 바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감독의 이 말을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독’하게 아픈 이야기는 맞다고 본다. 극 중 문정을 포함해 행복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마지막 화재 장면은 모든 증거를 없애려는 문정의 행동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의 울분이자 그동안 억눌러왔던 화와 욕망이 발현된 장면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영화의 무겁고도 차가운 분위기는 절망뿐인 인물들의 감정을 돋보이게 하고, 의도하지 않은 예측불허의 사건들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등 스릴러 장르의 긴장감도 갖는다. 물론, 후반부 몰아치는 결말로 가기 위한 문정의 비윤리적, 비논리적 행동들이 스토리의 짜임새를 헐겁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건 김서형 덕분이다. 그녀는 전작에서 보여줬던 카리스마를 내려놓고 도무지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공허한 눈빛과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로 기이함까지 전한다. 그녀의 예측불허한 연기는 영화의 동력으로 작용하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서형에게 뒤질 세라 안소요의 연기 또한 발군이다. 순남 또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로서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문정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빚어지는 에너지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비닐하우스>는 예측불허의 스토리만큼이나 점점 변해가는 문정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뺨을 치는 소리로 시작해 화염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이 작품은 그동안 짓눌렀던 감정이 폭발하는 동시에 또 다른 죄책감에 사로잡힌 문정의 이야기로도 보인다. 마지막 그녀는 무엇을 보고 놀란 것일까? 진실은 그녀만이 알고 있을 듯하다.사진 제공: ㈜트리플픽쳐스
평점: 3.0 / 5.0
한줄평: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하고도 서슬 퍼런 폐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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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과라는 서정
올타임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진 구병모 작가의 소설 <파과>가 뮤지컬에 이어 이번엔 영화로 곧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주인공은 60대의 여성 킬러 '조각'으로 철저하게 원칙 아래 세상에 존재하는 쓰레기같은 인간들을 '방역' 하던 중 그녀의 삶에 등장한 새로운 얼굴들에 의해 그 원칙들이 조금씩 깨져가기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작에 대한 높은 평가와 더불어 국내 영화 시장에서는 좀 처럼 찾아 보기 힘든 60대 여성 킬러를 소재로 하여 잠잠해진 극장가의 새 바람을 불어올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을 접하지 않았더라도 보다 <파과>를 즐길 수 있는 몇 가지 포인트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영화는 원활한 영상화를 위해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를 비롯한 디테일들을 구성하여 보다 풍부하게 스토리를 진행시킨다. 122분의 러닝타임 빼곡히 자리한 조각을 둘러싼 새로운 만남들은 오랜 시간 만남을 꺼려왔던 조각의 마음을 뒤흔듦과 동시에 조각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성격적 특성을 빠짐없이 보여주게 된다. 특히 원작보다 풍성해진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는 조각과 상반된 모습과 시종일관 그런 그녀를 뒤쫓는 인물로 그려지며 궁금증을 더하고 조각의 삶을 위협하는 극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여기서 <파과> 만의 또 다른 진면목이 등장하게 되는데, 관객은 중반부부터 어쩐지 투우가 조각을 향해 분노가 아닌 색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조각과 투우, 두 인물의 대면씬마다 생겨나는 이 의구심은 영화의 결말까지 주요 관람 포인트가 되어주며 결국 한 명이 그 '진실'을 알아내는 순간 그간 쌓아올린 인물들의 감정선이 덩달아 폭발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투우 못지 않게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강 선생'은 그야말로 조각의 삶에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는 인물로 배우 투우와는 확연히 다른 차분한 어조와 행동 등으로 차이점을 보이며 의해 그간 흔들리지 않았던 원칙이 깨어지는 장치로 작용하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던 조각의 다짐과는 달리 자신을 구해준 강선생을 자신의 삶이라는 영역 안에 두고자 갈등하는 조각의 모습은 서정성을 보이게 되며 과연 그녀의 선택이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일로 향할지 아님 변화의 길로 향할지 궁금증을 남기게 된다.
지금 밝힌 바와 같이 영화는 조각과 투우 그리고 강 선생이라는 묘한 삼각관계를 만들어내는데 이들을 둘러싼 전개가 이전 영화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물간의 구조일 뿐더러 재차 강조하는 '60대 여성'의 삶 속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라는 것에 있어 색다른 관람을 선사하게 된다. 조각이 강 선생과 투우를 어째서 다르게 대할 수 밖에 없으며 투우는 그러한 차이에 왜 분노하게 되는지, 강 선생은 평범한 자신의 삶이 점차 위기 속으로 들어감에도 조각을 신경 쓰는지 등 그 관계성의 뒤를 정신없이 쫓다보면 어느새 영화는 그 끝으로 관객을 인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강렬한 만남에 간과하게 되는 또 다른 만남이 있다. 바로 강아지 '무용'의 존재이다. 원작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이 무용의 등장은 고단했던 조각의 삶을 상징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의 변화를 암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역시 점차 변화하는 조각의 모습을 무용에게 건네는 대화로 확인할 수 있으며 길 위의 상처 받고 버려진 존재가 어떻게 세 인물에게 각각 해당되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 역시 관람 포인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또한 영화는 일종의 세게관을 형성, 그 이후나 이전에 대해서도 역시 궁금증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한다. 신성방역이라는 킬러집단의 운영방식과 그 시작은 조각의 회상 등을 통해 보다 구체화 되나 대모 라고 일컫어지는 조각의 무시무시한 존재감에 영화 이전과 이후 역시 상상하게끔 한다. 또한 너무 세계관에 심취하기보다 영화는 과감하게 캐릭텅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택함으로 화려한 액션 외에도 정제된 킬러의 삶을 거쳐온 조각 그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점이 조각을 둘러싼 세계관은 물론 회상으로써만 등장하는 스승 '류'와 그에게 많은 것을 전수 받은 '어린 조각'의 이야기를 간접 체험하게 해 관객을 더욱 그 안으로 빨아들이는 효과를 빚어내게 된다.
인생은 타이밍 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저기 우스갯 소리로 쓰이곤 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삶에 분명한 타이밍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를 둘러싼 인연이 특히 그러하다. 내 삶을 바꿔놓을 정도의 큰 파장이 사람으로부터 뻗어나온 경험은 다들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여기 조각의 삶이 그러하다. 킬러는 사람들을 죽이는 직업이기에 그 수많은 청소 대상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단 하나 뿐인 사람이 된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역시 기억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그렇게 킬러의 뒤를 바짝 쫓게된다. 이는 살아남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조각 역시 강 선생에게 구해지는 순간, 스승 류에게 구해지는 순간 잊을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영원히 그 시간 속에 살아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반면 어떤 이는 묵묵하게 그 시간을 가슴에 묻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간다. 그곳에서 비롯된 비극은 극적이나 관객의 가슴에도 크게 남게 된다. 영화 <파과>는 바로 그러한 지점을 놓치지 않고 강조한다. 내 인생을 뒤흔들 만남 그리고 그에 따른 시련 하지만 결국 그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고 기억하겠다 말하는 그런 영화인 것이다. 하필 지금, 하필 이때 고독하게 살아오던 킬러 조각의 삶에 들어온 이들과 그들이 보여줄 서정. 이 영화 역시 다신의 타이밍에 맞게 찾아간 인연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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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하인츠 에미히홀츠 드로잉전: 기울어진 비전
고양시 예술창작공간 해움과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공동 주최하는 '기울어진 비전'은 독일의 다큐멘터리 감독 하인츠 에미히홀츠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를 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해당 전시는 크게 두 가지 갈래를 가진다. 하나는 하인츠 에이미홀츠의 꿈에 기반하여 무의식을 기록한 드로잉 시리즈로, 2차원으로 존재하는 꿈의 이미지를 3차원적 형식으로 부피감 있게 전시한 콘텐츠이다. 다른하나는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2004년부터 2021년까지 그가 작성한 공책과 스케치북, 길가의 나무 등이 비추어진다. 이는 자연에 의한 건축물을 해체를 기록하고 있으며, 다양한 텍스트와 콜라주를 통해 예술가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기울어진 비전>은 영화와 드로잉의 관계성을 가지는 작품들을 위주로 추린 드로잉을 전시한다. 평면적인꿈의 이미지는 전시장 내에서 이리저리 꼬여 입체감을 가지는 3차원적 형태를 가지게 된다. 관람객은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하는 드로잉 배치 형상을 통해 운동감을 느낄 수 있으며, 이미지의 재현은 관람객의 관람 속도와 거리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해당 전시의 드로잉은 보는 이의 주관적 경험과 판단에 기반한다.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장면들의 해석은 관객의 상상에 기댄다. 감독이 일방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하는 전통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관람객이 주체가 되어 사유할 수 있도록 능동성을 부여함으로써 해당 전시는 관객의 위치를 보다 동등하게 상승시킨다. 영화 연출 기법에서 불연속편집을 통해 흔히 의도되는 ’낯설게 하기‘ 가 전시에 적용된 셈이다.
하인츠 에이미홀츠 감독은 도전적인 전시 행태를 통해 관람객이 ‘기울어진’ 시선으로 새롭게 대상을 바라볼것을 의도하고 있다.
<전시 정보>
고양시 예술창작공간 해움 2024. 9. 26. (목) ~ 10. 2. (수) 10:00 ~ 18:00
도슨트 : 14시, 16시(약 15-20분 소요 * 9.29~30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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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웬디>는 없다.
피터팬 탄생 110주년, 어린 시절 애정하는 소설 중 하나였던 피터팬. 어른이 되어 다시 본 피터팬은 또 다른 시선으로 의문과 불편함을 만들어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 어린이들의 낙원 네버랜드로 날아가는 웬디와 친구들의 모습은 종종 꿈꾸는 환상으로 남아있었다. 전작 <비스트>(2012)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고, 가장 큰 독립영화제 선댄스 영화제에서 드라마 부문 심사위원 대상 수상,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색상에 노미네이트된 벤 자이틀린 감독이 '피터팬'이 아닌 '웬디'를 주인공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거기에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휩쓴 <노매드랜드>(2021)와 <캐롤>(2015)의 제작진이 더해져 <웬디>를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다. 날 수 있는 마법의 가루를 뿌려주는 팅커벨과 째깍째깍 시계를 울리는 악어는 어떻게 보여주었을까.
앞서 언급했듯, 전작 <비스트>로 큰 주목을 받은 감독인지라 전작의 연출 스타일과 비교하며 보게 되었다. <캐롤>의 제작진이 함께한 덕분일까, 영화 <캐롤>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들에서 '기차'는 훌륭한 메타포를 지닌다. 동시에 매우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하기도 한다. <웬디>에서또한 벤 감독은 기차를 다가오는 거대한 모험으로 보여준다. 흔히 공포물 혹은 괴수물에서 대상을 공포스럽거나 미지의 존재로 그려낼 때 대상의 전체가 아닌 일부의 모습만 클로즈업샷으로 보여준다. <웬디>에서도 기차가 웬디를 부를 때, 웬디의 시선에서 그 대상인 기차의 일부만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파악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궁금한 모험과 같던 기차, 그리고 웬디는 그 부름에 응답하고 거대한 기차는 멈출 수 없는 모험의 세계로 웬디를 데려간다. 이제는 다른 삶을 살기에 예전의 꿈을 이제는 잊었다는 말을 들으며 나이듦(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웬디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존재인 시간을 마주하듯, 한번 출발하면 멈출 수 없는 기차를 올라타고 ‘시간(나이듦)’이라는 존재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차는 웬디를 네버랜드로 데려가 '나이듦(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려준다.
전작 <비스트>와 마찬가지로 감독은 어머니의 존재를 자연(주로 대지)으로 표현하며 아이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존재로서 작용시킨다. 원작 '피터팬'에서 각색된 부분이자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분명하게 보이는 지점이다. 또한 웬디에게 모성애를 요하던 원작과 달리 리더십이라고는 볼 수 없는 피터와 쌍둥이 오빠인 더글라스와 제임스의 문제를 해결로 이끄는 웬디의 모습에서 벤 감독은 웬디를 온전히 어린이로 만들어준다. 덕분에 강요받지 않은 '어른다움'에서 웬디는 온전히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게 된다. 피터팬의 세계에서 '빌런'으로 그려지던 후크 선장에게서 또 다른 캐릭터와 서사를 부여한다. 단순 '빌런'이 아니라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해결해야 하는 방법을 모르는 몸만 큰 어린이의 존재로 보여준다. 또한, <웬디>에서 흑인 배우가 ‘피터팬' 역할인 ‘피터'를 연기한 것뿐만 아니라 비전문배우들로 구성하였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이는 배우가 아닌 실제 인물들로 연기를 한 것으로도 잘 알려진 <노매드랜드> 제작진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렇듯 스토리라인뿐만 아니라 각 캐릭터별 섬세한 설정부터 비전문배우를 연기자로 쓴 대담함까지 벤 감독이었기에 <웬디>를 통해 관객들을 ‘현실판 네버랜드'로 초대할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내가 기대했던 장면들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허구의 환상보다는 벤 감독의 네버랜드를 통해 어떻게 ‘나이듦’이라는 시간을 마주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때론 몽환적이지만 또렷한 색감의 이미지로 보여주는 자연이라는 존재는 시각적 만족을 넘어 감독이 전달하고자하는 바에 일조한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듯한 여아 웬디의 클로즈업된 손으로 시작하여 ‘Prison’이라는 티셔츠를 입고 기차 위에 올라 그 자그마했던 팔을 펼치는 웬디를 볼 때 느껴지던 해방감까지, 지금 어른이 된 이들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벤 감독에 의해 다시 꺼내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영화이다.
*사진출처 하이스트레인저**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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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수의 모든 것을 걸은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 본 영상은 '타짜: 원 아이드 잭'(타짜3)의 스포일러를 담은 리뷰입니다. 영화를 보시고 감상해주세요!
타짜3가 개봉했습니다. 오늘은 타짜 원 아이드 잭 리뷰입니다.
광수 형님의 엉덩이는 나오지만, 순정파 곽철용 형님 같은 특급 조연은 없었습니다.
재밌게 감상해주세요!#타짜3 #타짜원아이드잭 #영화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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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명탐정 코난 : 범인 한자와 씨> 공식 예고편
여기는 범죄 도시, 베이커가. 세계 최고 수준의 범죄율로 악명 높은 이곳에 누군가가 칠흑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남자(혹은 여자?)의 목적은 ‘어떤 사람’을 살해하는 것. 그렇다. 《명탐정 코난》 시리즈에 없어선 안 될 그 녀석이 이번엔 주인공이다! 온몸을 감싼 검은 타이츠, 순백의 두뇌를 소유한 그(녀)의 이름은 바로... 범인 한자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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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트루 스토리> 공식 예고편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케빈 하트와 웨슬리 스나입스가 주연한 <트루 스토리>에서, 셀럽과 범죄, 거짓말의 세계에 휘말린 두 형제의 긴장감 넘치는 여정이 펼쳐진다. <트루 스토리>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