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02-03 09:27:27
학교 내부를 관조하기에도 벅찼던 <지금 우리 학교는>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느 때와 같이 평범하게 흘러가던 효산고등학교의 일상. '온조(박지후)', '청산(윤찬영)', '남라(조이현)', '수혁(로몬)'이 복잡한 애정전선을 형성하는 사이, 은지는 늘 그랬듯이 '귀남(유인수)'과 그 패거리에게 가혹하게 괴롭힘 당한다. 그러나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병찬의 과학 실험실에 감금되었던 '현주(정이서)'가 풀려나면서 효산고등학교의 일상은 파괴된다. 한 번 번지기 시작한 좀비 떼는 삽시간에 학교와 효산 시를 점령해 나가기 시작하고, 가까스로 좀비들의 공격을 피해 교실로 되돌아온 온조와 청산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좀비들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그러나 '나연(이유미)'을 필두로 좀비보다 무서운 의심과 편견이 교실 내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간신히 되찾은 안전마저 사라지기 시작한다.
좀비물은 기본적으로 사회비판적 요소를 갖는 장르다. 좀비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천태만상을 묘사하며 인간 본성에 대해 고민하고, 인간군상의 원인을 잘못된 사회적 시스템에서 찾아 비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각각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좀비 영화, 드라마라 할 수 있는 <부산행>과 <킹덤> 역시 좀비의 출현 원인을 사회적 모순으로부터 포착한다. <부산행>은 주인공 석우(공유)가 다니는 증권회사가 수익에만 집착해 되살린 부실기업이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었다는 진실을 통해 성장 중심 사회를 비판했고, <킹덤>은 <아신전>을 통해 조선이라는 국가의 모순이 어떻게 좀비 아포칼립스로 되돌아왔는지를 묘사한다.
특히 좀비에 대한 설정이 어느 정도 확립된 이상 좀비에 관한 드라마 파트의 중요도는 더욱 크다. 바이러스 형태로 전파되고, 소리에 민감하며 인육을 탐닉하며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식으로 최근 좀비 영화의 트렌드는 수렴해 가고 있다. 따라서 아주 새롭거나 획기적인 볼거리를 보여줄 수 없다면, 좀비물은 감정적 측면에서 관객 혹은 시청자를 흡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동명의 웹툰 원작을 영상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안타깝게도 잠재력을 온전히 꽃 피우지 못한 유망주라고 할 수 있다. 학교라는 장소와 배경, 환경에 좀비물을 접합한 발상과 착안 자체는 (원작 웹툰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흥미롭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방법이 과하고 올드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학교와 좀비를 결합해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학교라는 공간 자체의 구조를 활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라는 공간 안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좀비와 인간의 싸움에 대입하는 것이다. 우선 드라마는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일상적 풍경의 모습을 전환시켜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처절한 싸움을 만들어 낸다. 도서관, 과학실, 음악실, 강당 등 학교의 시설들을 이용해 펼쳐 보이는 액션은 <부산행>에서 KTX 속 액션신을 보는 듯 신선하게 다가온다. 초반 급식실에서의 대규모 감염이나 중반 이후 나오는 도서실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만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한국 고등학교의 보편적인 구조를 활용한 연출이다. 현재까지도 한국의 많은 학교는 넓은 운동장과 그 주위를 ㄱ자 내지는 ㄷ자로 감싸는 직사각형 건물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교 외부와 내부를 이어주는 문은 극히 드물며, 문을 제외하면 많은 경우에 울타리나 담벼락으로 둘러쳐진 형태를 띤다. 쉽게 말해서 한국의 고등학교는 근본적으로 군대 건물이나 교도소 건물과 다르지 않다. 즉 탈출하기에 가장 어려운 형태를 띠는 건축물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학교 내에 출연한 좀비는 탈출할 수 있는 경로가 제한된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부지불식간에 습격할 수 있고, 이러한 연출은 좀비물로서 상당히 효과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학교 내부의 구조가 본질적으로 판옵티콘이라는 사실 역시 엄청난 공포감을 자아내는 데 기여한다. 판옵티콘은 감시자가 고개만 돌려도 모든 수형자들의 방을 볼 수 있는 구조의 감옥이다. 한쪽 벽면에 쏠려 있고, 복도 쪽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는 교실로 가득한 학교는 복도에서 학생들을 감시하기에 최적화된 구조인 것이다. 이는 학교 내부에서 교실에 숨는 데 성공하더라도 언제든 들킬 수 있다는 급박함을 자아내며, 창문과 학교 외벽을 이용하는 등의 다채로운 액션을 가능케 한다.
또한 판옵티콘 형태의 학교 건물은 액션을 단순한 볼거리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액션에 담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판옵티콘 구조는 수형자가 언제 어디서든 감시당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갖게 만들고,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든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첫 에피소드에서 학생들이 핸드폰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출하는 범주 내에서 꼼수를 부리는 것, 학교과 학생들이 구조의 최우선 대상이 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가운데 학생들이 학교를 탈출할지 말 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과도 오버랩된다. 따라서 학생들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학교 내에서 펼쳐지는 드라마 속 액션은 몇십 년째 변하지 않는 구시대적이고 근대적인 교육관에 기반한 학교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한 저항이자 사투로 볼 수 있다. 단지 그 형태가 좀비와의 싸움일 뿐이다.

더 나아가 학교라는 건축물을 활용한 메시지는 학교라는 공간 속 학생들의 드라마와 더해지면서 그 강도가 더해지기도 한다. 학교는 지식 전달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사회화의 공간이기도 한데, <지금 우리 학교는> 속 좀비와 인간의 사투는 집단 괴롭힘을 비롯한 학생들 간의 갈등 및 충돌과 연계되어 과연 현재 우리 학교가 그 기능을 적절히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작중 좀비 바이러스가 단순한 재난, 혹은 우연한 재앙이 아니라 왕따 피해자로부터 발생한 것만 보더라도 이 작품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다. 또 일행 중 누군가가 좀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경계심과 의심의 근간에 기초생활수급자의 준말인 '기생수'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편견과 차별 심리가 깔려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교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아야 하는 '희수'도 유사한 맥락에서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드라마는 학교의 사회화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와 지식 전달이 더 강조되는 세태를 함께 지적한다. 그 중심에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나 좀비가 되지는 않은 이른바 '절비(절반만 좀비)' 은지, 귀남, 남라가 있다. 작중 좀비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두려움으로부터 배양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들은 좀비보다도 학교 자체에 더 큰 두려움을 지녔기에 좀비가 되지 않는다. 집단 괴롭힘의 피해자인 은지는 좀비들보다도 자신의 치부가 주위에 전파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또 좀비가 된 다른 학생들을 내려다볼 때 이번에도 자신은 따돌림을 당했다면서 좀비보다도 자신의 처지를 자조한다. 가해자인 귀남도 출몰하는 좀비보다 자신이 다른 일진들의 장기짝이나 다름없다는 열등감이 노출되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남라도 좀비보다 학교라는 공간을 더 싫어한다. 전교 1등이고 반장이지만 정작 같은 반 학생들과 소통할 줄도 모르는 남라에게 좀비는 오히려 친구를 만들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좀비를 이용해 좀비보다 더 끔찍할 수도 있는 학교 시스템을 역설적으로 비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가까스로 학교를 탈출한 주인공들이 향하는 곳이 폐교도소에 마련된 임시 수용 시설인 것은 아이러니함을 배가한다. 좀비 떼보다도 끔찍한 학교라는 현실로부터 벗어난 주인공들이 다시금 학교와 다를 것 없는 공간에 갇히는 비극의 물레바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결말의 모닥불에 담긴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수용소를 벗어나 폐허가 된 학교로 다시 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학교라는 공간과 제도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다만 그 학교가 통제받고 감시당하고 사회로부터 묘하게 방치되며 서로를 불신하게 되는 좀비 아포칼립스 같은 학교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효산고등학교 옥상에 피워진 모닥불에는 진정으로 친구를 만들고 서로를 이해하며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달라는 외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학교는>이 보여주고자 하고, 들려주고자 하는 학교 제도에 대한 다양하고도 중요한 목소리는 단발적인 아이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 느껴진다. 드라마가 학교라는 염불보다 사회 풍자라는 잿밥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좀비물은 사회 비판과 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이미 학교과 교육이라는 사회 시스템을 주된 타깃으로 설정한 상황에서 굳이 학교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까지 스토리텔링에 끌어들이는 것은 그리 영리한 선택은 아니라고 보이는 것이다. 근래 재난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렉카 유튜버나 개인방송 이야기를 삽입한 것이나 사회 지도층의 모순, 왜곡된 개신교 및 님비현상을 비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물론 그 덕분에 전형적이고 진부한 캐릭터 클리셰를 파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 장점이 될 수는 있다. 자신의 잇속을 챙기면서도 진짜 시민을 생각하는 정치인,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결정에 죄책감을 느끼는 군인처럼 기능적으로 소비되지 않는 입체적인 캐릭터는 분명 극에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이는 각 부분을 조각으로 쪼개 볼 때의 장점일 수는 있어도, 전체적으로는 분량 및 비중 배분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총 12개인 에피소드 개수를 절반 내지는 2/3 수준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외에 아무리 고등학교가 배경이라고 해도 로맨스의 비중이 크고 삽입되는 타이밍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점, 비록 해외에서는 한국 콘텐츠의 특징이자 신선한 점이라 평가받는 대목이라 해도 거의 매 회차마다 신파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것 역시 완주를 힘들게 만든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넷플릭스의 2022년 한국 콘텐츠 중 첫 스타트를 끊은 작품이자, <부산행>과 <킹덤>에서 촉발된 한국형 좀비물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실제로 설 연휴 직전에 공개된 후 플릭스 패트롤(FlixPatrol) 월드 랭킹에서 TV 쇼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뛰어난 흥행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확실하게 갈리는 장단점을 고려하면, <지금 우리 학교는>의 성공에 있어서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하지 못한 작품의 내용 및 결과물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P(Poor 형편없는)
선택과 집중의 실패. 학교 안에만 집중했으면 그래도 유의미할 뻔했던.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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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천천히 찾아오는 것
Director] 아누파마 스리니바산Anupama Srinivasan, 아니르반 두타Anirban Dutta
Program note]
인도-미얀마 국경 근처의 외딴 마을 토라에는 도로가 없고 수도가 없고 학교나 병원도 없다. 인도 독립 70주년이 훌쩍 지났지만 오랜 반란의 역사 탓에 세상에서 밀려나 잊혀진 마을 토라에 어느 날 전기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환한 불빛을 볼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 희망에 들뜬다.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냉장고를 들여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 생각에 마음이 들썩이고, 마을 남자들은 땅을 파고 전봇대를 세우느라 진땀을 흘린다. <깜빡이는 불빛>은 온 마을에 첫 전구가 켜지는 날까지 토라 사람들의 이상과 현실, 희망과 좌절을 다정하고 사려 깊은 시선으로 지켜본다. 타고난 유머러스한 낙관과 역사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그들의 열망이 깜빡이다가 환히 켜지는 불빛 마냥 눈부시다. (강소원)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하기 무섭게, 예상했던 질문이 바로 나왔다. “영화 속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인도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과 가까워 보인다. 혹시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이해를 위해 ‘인도-미얀마 국경 근처’라고 표현된 지역은 마니푸르(Manipur) 주, 더 넓게 말하면 인도의 북동부 지역이다. 이쪽 사람들은 확실히 우리가 통상적으로 인지하는 인도 사람들의 얼굴, 터번과 멋진 수염과 큰 덩치로 흔히 표현되는 북인도 사람들이나, 상대적으로 더 진한 갈색 피부와 둥근 눈을 한 남부 인도의 얼굴과는 다르다. 외려 흔히 생각하는 동아시아 쪽의 얼굴에 가깝다. 실제로 인도 북동부의 토착 부족민들은 티베트 혹은 미얀마 쪽과 더 가까운 혈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담은 나가(Naga) 족의 경우에도 나갈랜드(Nagaland)와 마니푸르 주에 주로 거주하지만, 미얀마에도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다. 옛날에는 외부 교류가 많지 않았다가 영국인 선교사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인도 타 지역에 비해 기독교인 비율이 높다는 것 또한 독특한 특징이다.
1940년대 말 인도라는 국가가 세워진 이후로도 이들은 끊임없이 각자의 독립국을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또 인도 국내에서의 차별로 이어졌고, 이 영화 <반짝이는 불빛>은 그 중에서도 아주 외딴 지역의 ‘토라’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전기도 수도도 학교도 일자리도 없는 마을. 사람들이 달밤에 손전등에 의지해서도 춤과 노래를 멈추지 않는 마을. 태양열 전지를 동원해 한밤중에도 농작물 정리하는 바지런한 손길을 멈추지 않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부 소식에 촉각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풍경이 정직하게 담겨 있어, 영화는 얼핏 TV프로그램 <인간극장>의 한 장면처럼 소박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고된 농사 중 기숙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아침, 아직 붓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로 멀거니 차를 마시다 말고 남편에게 촬영 팀 바나나라도 갖다 드리라고 말하는 구멍가게 아주머니 ‘자스민’의 얼굴은, 그야말로 우리가 아는 똑똑하고 적극적인 아주머니의 모습 그 자체다. 15년 가량 주민들과 관계를 쌓았다는, 실제로 전기 공사를 진행하는 인부들의 옆 방에서 먹고 자고 발전기를 돌리면서 촬영하고 무려 7년을 녹여 영화 작업을 했다는 감독들의 접근이 이 거리감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동시에 영화는 이들이 사는 현실에 언제라도 서늘한 긴장감이 서릴 수 있는 곳임을 살짝살짝 표현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독립군 생활을 하고 마을에 정착해 살고 있는 노인 ‘캄랑’은 여전히 라디오로 평화 협정 진전 소식을 들으며 “끝이야…”하고 허탈하게 웃기도 하고, 지난 투쟁의 역사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있다. 이따금 뉴스에서 전해지는 특정 지역 통행 금지령이나 심상치 않은 연기나 총 소리는 여전히 이들의 삶이 언제든 긴장으로 빠져들 수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거기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에는 자유와 주체성이 또렷하다. 없는 불빛에 의지해서 합창 연습을 하는 찬송가 가사 또한, “나가 지역 젊은이는 특출하고 공부도 잘한다”거나 “넓고 비옥한 땅을 모두가 부러워한다”면서 지역의 색깔과 자부심을 톡톡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 자의식을 바탕으로, 이들은 이전에도 몇 번 불발되었던 전기 연결이 과연 이번에는 될까 의구심을 품은 시선으로 느리작느리작 진행되는 공사 과정을 지켜본다. 특히나 독립 운동을 오랜 기간 해온 캄랑 노인은 전기 공급도, 평화 협정 임박 소식도 온전히 믿지 않는다. 그에게 이런 소식은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진짜 올 때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오랜 기간 피부로 체득한 감각일 것이다.
마침내 전기는 아주 천천히 주민들을 찾아온다. 수풀을 헤치고 나무를 베고 전봇대를 하나씩 설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전봇대가 마을 한복판으로 다가오고, 지연 끝에 자재가 도착해서, 집집마다 두꺼비집 판과 전구 자리를 설치하고… 그러다 마침내 마을 첫 전구에 불이 들어오고, 우리 나라 옛날 모습처럼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모여서 다 같이 영화를 보고, 냉장고를 들인 기념으로 구멍가게에서는 주스를 얼린 아이스크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이 바란 바로 그 크리스마스에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몇 해 지연되어서나마 그들은 비로소 불 밝힐 수 있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그러나 평화 협정은 여전히 저 멀리 있다. 전기뿐 아니라 평화로운 공존의 미래 또한 자연스럽게, 이내 도래하기를 바라게 되는 영화였다. 이들의 단단한 자의식이 무너지지 않고도 평화로이 살아갈 수 있기를. 깜빡깜빡 서서히 들어오는 백열등처럼 찾아와 주기를. 이들은 어둠 속에서도 작은 불빛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캄랑 노인의 말대로 “어둠과 빛은 같지 않”으니까.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2023.10.04-13) 상영시간표]
10월 05일 19: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2관(상영코드 055)
10월 07일 16:30 CGV 센텀시티 2관 (상영코드 160)
10월 10일 14:00 CGV 센텀시티 1관 (상영코드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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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리뷰
지브리 스튜디오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2023)>가 개봉했다. 개봉일에 곧바로 달려가진 못했으나 개봉 첫 주 안에 달려가 영화를 보며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쩐지 이전 작품을 보고 싶어졌다. 여전히 지브리의 작품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번 작품 역시 만족스러웠는데 말이다. 아마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2023)>내에 지브리의 타 작품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많아 내 안의 어떠한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리라. 그중에서 이번 11월, 내가 돌아간 작품은 <천공의 성 라퓨타(1986)>다.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정말이지 멋쩍을 만큼 없다. 그저 내가 주기적으로 열어볼 만도 한데, 자주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틀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바라보는 '비행'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하늘을 난다는 건 오랜 역사 내내 인류의 꿈이었고 낭만이었다. 마치 그곳엔 지상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꿈이라도 있을 것만 같다는 환상을 품으며 천사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상상 속 신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렇기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푸른 하늘을 떠도는 천공의 섬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건 퍽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극장에 걸리는 그들의 만화는 그야말로 가공된 상상 그 자체이지 않은가. 그런데 떠올려보면, 이 애니메이션, 굉장히 이상하다. 하늘을 떠도는 섬을 제목으로 삼았음에도 이 애니메이션은 끝없는 상승을 거부한다. 대뜸 주인공의 추락으로 이야기를 열더니만, '비행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돌은 소녀와 소년을 안전히 착륙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대지의 가장 깊숙한 구석에서 수런대는 돌을 가공한 결과물이라는 게 밝혀진다. 심지어 천공의 성 라퓨타의 부활을 열망하는 이는 빌런으로 설정된 무스카밖에 없다.
등장인물들이 이미 오래전 멸망하여 전설에 가까워진 왕국으로 향하기야 한다만 관심사는 각자 다르다. 주인공인 파즈가 라퓨타에 관심을 갖고 있긴 하지만, 이는 불명예스러웠던 아버지의 최후 때문이니 그가 실질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버지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것에 가깝다. 또한 해적 도라 역시 라퓨타에 관심을 갖고 있으나 그는 '해적'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라퓨타에 숨겨져 있을 고대의 보석에 관심이 있는 것뿐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라퓨타를 인도할 수 있는, 적법한 후계자인 주인공 시타는 어떤가? 그는 이름과 비행석, 약간의 마법을 알고 있으나 그게 전부이다. 아이는 희미해진 고대의 지식에 목매지 않으며, 조상이 가졌을 절대권력에도 무관심하다. 허황된 상상을 할 법도 한데 시타는 자연에 가까운 소박한 삶을 추구할 뿐이다. 그가 라퓨타를 향한 여정에 동참하게 된 건 순전히 무스카가 그를 납치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고작 그 정도 이유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라퓨타가 하나의 맥거핀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등장인물들이 끝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 역시 사실이다. 비행선을 타야 하기에, 추락했기에 자신의 높이를 가늠하기 위해서, 감방을 탈출하기 위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라퓨타를 찾아야 하기에. 실로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이유들이지 않은가! 그러나 지브리 스튜디오가 정말 전하고 싶어 하는 건 땅 -평범함의 가치-이다. 라퓨타의 공주인 시타는 자신의 마을 곤도아를, 야크를 키우며 보냈던 평범한 나날을 그리워하며 무스카에게 땅을 떠나 살 수는 없다고 선언한다. 광부 마을 출신 소년 파즈는 시타를 순수한 마음으로 돕는 주요 조력자이며, 그가 살던 곳의 마을 사람들은 쫓기는 둘을 군말 없이 도우며 끈끈한 애정과 선의를 과시한다. 더군다나 라퓨타 성이 지나갈 때면, 지하의 비행석은 감응하며 수군댔다. 도라 해적단은 '해적'이긴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했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시타와 파즈에겐 그들과의 모험조차 순간의 접점일 뿐이다.
어쩌면 간단히 이런 도식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비행과 하늘이 꿈이라면 땅은 현실이라고. 그렇기에 애니메이션 속 소녀는 떨어지고 땅에 도착한 후, 파즈와 관객을 자신의 불안정한 세상으로 초대하며, 우리를 몰입하게 만들고, 라퓨타에서 미련 없이 대지를 위한 선택을 했다. 하지만 지브리의 다른 애니메이션처럼 라퓨타가 전하는 다정은 이런 곳에 있는 듯하다; 영영 인간이 찾을 수 없도록 라퓨타를 행성 밖으로 보내며 자유를 선사하고선 소녀와 소년을 땅으로 돌아오게끔 안전히 바래다주는 것. 심장 뛰는 거대한 모험 한 두 개가 아니라 자그마한 일상의 연속만으로 너, 나, 우리는 충분하다는 메시지. 배제 없이 따뜻해지는 순간과, 그리고 라퓨타를 띄운 게 비행석이었던 것처럼 꿈의 뿌리는 언제나 지하에 닿는다는 사실.
80년대 작품이라 한들, 꿈을 선물하는 애니메이션의 다정함과 순수함은 유통기간이 없는 게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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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오는 여름, 입맛 없을 때 이 영화 어때요? 침샘 폭발 영화 5편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는 요즘, 올 여름 긴 장마와 역대급 무더위가 찾아올 것으로 예고되면서 걱정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그러하여 오늘 씨네랩은 무더위로 지친 입맛 사로잡는 침샘 폭발 영화 5편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다가오는 여름, 보는 것 만으로 입맛 돋우는 침샘 폭발 영화 5편!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아메리칸 셰프
Chef
ⓒ영화사 진진
개요: 코미디 | 미국
개봉: 2015.01.07.
감독: 존 파브로
출연: 존 파브로, 엠제이 안소니, 소피아 베르가라, 스칼렛 요한슨
배급: 영화사 진진
시놉시스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 칼 캐스퍼는 레스토랑 오너에게 메뉴 결정권을 뺏긴 후 유명음식평론가의 혹평을 받자 홧김에 트위터로 욕설을 보낸다. 이들의 썰전은 온라인 핫이슈로 등극하고 칼은 레스토랑을 그만두기에 이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는 쿠바 샌드위치 푸드트럭에 도전, 그 동안 소원했던 아들과 미국 전역을 일주하던 중 문제의 평론가가 푸드트럭에 다시 찾아오는데… 과연 칼은 셰프로서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까?
CINEPICK
쿠바 샌드위치만으로 당장 여행 떠나고 싶어지는, 공복에 절대 보지 말 것!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가 해고당한 후 푸드 트럭 셰프로 변신해 진정한 스트리트 푸드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로
최고급 레스토랑 코스요리부터 미국 각지 대표 간식들까지 여느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비주얼과 디테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푸드 무비입니다. 특히 영화 <아이언맨 1>의 감독이었던 존 파브로가 감독 및 주연을 맞아 화제를 모았으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특별 출연해 깨알 재미는 덤!
줄리 & 줄리아
Julie & Julia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개봉: 2009.12.10.
감독: 노라 에프론
출연: 메릴 스트립, 에이미 애덤스
배급: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시놉시스
전설의 프렌치 셰프 ‘줄리아 차일드’ (메릴 스트립). 외교관 남편과 함께 프랑스에 도착한 줄리아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생활에서 먹을 때 가장 행복한 자신을 발견하고 명문 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를 다니며 요리 만들기에 도전, 마침내 모두를 감동시킨 전설적인 프렌치 셰프가 되는데...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뉴욕의 요리 블러거 ‘줄리’ (에이미 아담스). 한창 잘나가는 친구들과 잔소리 뿐인 엄마 사이에서 기분전환으로 시작한 요리 블로그. 유일한 지원군은 남편 뿐이지만 전설의 프렌치 셰프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을 보며 365일 동안 총 524개의 레시피에 도전하는 그녀의 프로젝트는 점차 네티즌의 열렬한 반응을 얻게 되는데는 성공하지만...
CINEPICK
전설의 프렌치 셰프 줄리아와 요리 블로거 줄리가 선사하는 힐링 레시피.
‘줄리 앤 줄리아’는 두 30대 여성이 요리를 통해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영화로 프랑스 요리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전설적인 셰프 줄리아 차일드(1912∼2004)와 그의 요리책을 참고해 만 1년 동안 자신의 블로그에 524가지 프랑스 요리 도전기를 연재한 줄리 파월(36)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라따뚜이
Ratatouille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개요: 코미디 | 미국
개봉: 2007.07.25
감독: 브래드 버드
출연: 패튼 오스왈트, 루 로마노
배급: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시놉시스
절대미각, 빠른 손놀림, 끓어 넘치는 열정의 소유자 ‘레미’.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그에게 단 한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주방 퇴치대상 1호인 ‘생쥐’라는 것! 그러던 어느 날, 하수구에서 길을 잃은 레미는 운명처럼 파리의 별 다섯개짜리 최고급 레스토랑에 떨어진다. 그러나 생쥐의 신분으로 주방이란 그저 그림의 떡. 보글거리는 수프, 둑닥둑닥 도마소리, 향긋한 허브 내음에 식욕이 아닌 ‘요리욕’이 북받친 레미의 작은 심장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하는데! 쥐면 쥐답게 쓰레기나 먹고 살라는 가족들의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주방으로 들어가는 레미. 깜깜한 어둠 속에서 요리에 열중하다 재능 없는 견습생 ‘링귀니’에게 ‘딱’ 걸리고 만다. 하지만 해고위기에 처해있던 링귀니는 레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의기투합을 제안하는데. 과연 궁지에 몰린 둘은 환상적인 요리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레니와 링귀니의 좌충우돌 공생공사 프로젝트가 아름다운 파리를 배경으로 이제 곧 펼쳐진다!
CINEPICK
쥐가 요리를 한다고요..?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생쥐 '레미'의 요리도전기.
<라따뚜이>는 요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생쥐 '레미'와 재능 없는 요리사 '링귀니'의 의기투합을 그려낸 애니메이션입니다. 결말에 다다르면 아이와 함께 가서 어른들이 더욱 눈물을 흘리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개봉: 2018.02.28
감독: 임순례
출연: 김태리, 류준열, 문소리, 진기주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오랜 친구인 재하와 은숙을 만난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 평범한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은숙’과 함께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끼 한끼를 만들어 먹으며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게 된 혜원. 그렇게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고향으로 돌아온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된 혜원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는데…
CINEPICK
잔잔한 감성과 맛있는 음식들까지, 한국의 사계절을 모두 담은 소중한 한 끼.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리틀 포레스트’는 2015년 개봉한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한국적인 정서와 우리의 전통적인 요리를 담아 더욱 친근감을 느낄 수 있고 일본에서는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 두 편으로 나뉘어 영화화 된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한 편에 사계절을 모두 담아 속도감과 리듬감이 더해진 일상을 향한 힐링이 가득한 영화 입니다.
카모메식당
Kamome Diner
㈜엔케이컨텐츠
개요: 코미디, 드라마 | 일본
개봉: 2007.08.02.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고바야시 사토미, 카타기리 하이리
배급: ㈜엔케이컨텐츠
시놉시스
헬싱키의 길모퉁이에 새로 생긴 카모메 식당. 이곳은 야무진 일본인 여성 사치에(고바야시사토미)가 경영하는 조그만 일식당이다. 주먹밥을 대표 메뉴로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지만 한달 째 파리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다. 그래도 꿋꿋이 매일 아침 음식 준비를 하는 그녀에게 언제쯤 손님이 찾아올까? 일본만화 매니아인 토미가 첫 손님으로 찾아와 대뜸 ‘독수리 오형제’의 주제가를 묻는가 하면, 눈을 감고 세계지도를 손가락으로 찍은 곳이 핀란드여서 이곳까지 왔다는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가 나타나는 등 하나 둘씩 늘어가는 손님들로 카모메 식당은 활기를 더해간다. 사치에의 맛깔스런 음식과 함께 식당을 둘러싼 사연 있는 사람들의 정체가 서서히 밝혀지는데….
CINEPICK
입맛 자극은 기본! 소박하고 정갈한 카모메 식당이 주는 휴식과 위안.
무레 요코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헬싱키의 길모퉁이 카모메 식당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오니기리가 너무 먹고 싶어지죠!
보일링 포인트
Boiling Point
(주)이놀미디어
개요: 드라마, 스릴러 | 영국
개봉: 2022.08.04
감독: 필립 바랜티니
출연: 스테판 그레이엄
배급: (주)이놀미디어
시놉시스
365일 중 가장 바쁜 크리스마스,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 셰프 ‘앤디’는 사고 없이 음식과 직원, 손님 모두를 살펴야 한다. 쏟아지는 주문으로 정신없는 가운데 반갑지 않은 위생 관리관의 급습과 입맛 까다로운 평론가의 눈치까지 보게 되고, 여기에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들은 서로 싸우기까지 한다. 도저히 통제되지 않는 현장에 ‘앤디’는 점점 끓어오르기 시작하는데… 단 한 번의 테이크로 질주하는 키친 서스펜스를 경험하라!
CINEPICK
요리를 향한 환상은 버려라! 극한으로 치닫는 키친 서스펜스, 웰컴 투 헬’s 키친!
1년 중 가장 바쁜 크리스마스 시즌,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압박을 원테이크로 묘사한 키친 서스펜스로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하며 놀라운 리얼리티를 선보인 작품이죠. 원 컨튜니어스 샷 기법을 통해 단 한 번의 테이크로 레스토랑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한 독특한 연출기법으로 극찬을 받은 바 있으며 질주하는 현장감, 펄펄 끓는 리얼리티 주방 서스펜스를 체험해보고 싶다면 바로 이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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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그리 서둘러 덮으려 하시었소
어렸을 때 한국식 제사를 지낸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현관문을 조금 열어두어야 돌아가신 분들이 들어와 제삿밥을 먹는다는 것을. 영화에 나오는 서양 귀신은 투명한 데다 발이 없거나 벽을 통과해 다니는데, 한국 귀신은 참 예의가 바르다. 문을 열어주어야 집에 들어온다. 그것은 완전한 비물질화 된 서양 귀신과, 완전히 물질화된 일본 요괴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한다.
묘를 파한다는 의미의 <파묘>는 이렇게 한국인이라면 어릴 적부터 몸으로 체험하고 들어왔던 이야기들이지만, 그것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 영화로 실체화된 카타르시스는 상당하다.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마주하고 보니 정말 독특하다.
한국인의 재미있는 특징은 굉장히 여러 가지 종교가 비교적 탈없이 잘 어울려 산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나 인도처럼 서로 다른 여러 종교의 기념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 놓았다. 한국은 대종교의 개천절, 불교의 부처님 오신 날, 기독교의 성탄절이 다 법정공휴일이다. 양력의 새해 첫날도 휴일이고 음력 설도 휴일이다. 한국의 전통 달력은 태양태음력이라서 해는 음력으로 계산하지만 24 절기는 양력이다. 띠는 절기를 따지는 것이므로 1월 1일이나 음력설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입춘에 바뀐다. 또, 국기에는 동양철학인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과 괘를 넣었다. 태극과 팔괘는 주역에서 온 것으로, 조선의 성리학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한국의 민속신앙은 여러 종교를 혼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민족의 사상과 철학은 이처럼 많은 것이 혼재되어 있다.
한민족의 민속학, 민속종교
무당과 음양오행과 풍수. 이 세 가지가 같이 있는 모습은 우리에겐 너무나 친숙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조금씩 다르다.
무당은 한반도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신내림을 받아 굿을 하는 사람과 그 신앙을 말한다. 제례의 방식이나 섬기는 신, 교리등이 무당과 교파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주변에 들어온 것들을 모두 흡수하는 성격을 가진다. 삼국시대부터 불교와 도교 영향을 받아 불교에 등장하는 신들을 섬긴 지 오래되어서, 용어가 불교 도교와 많이 겹친다. 근래에는 예수를 섬기거나 맥아더 장군을 모시는 곳도 있다. 무당 자체의 정해진 교리가 없다 보니 타 종교의 경전과 철학을 끌어다 혼합한다. 중세시대에 음양오행이나 사주팔자를 보는 주역 등은 당시엔 과학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이었지만, 무당들은 그것마저 신점을 보는 데에 이용한다.
오행은 말 그대로 화, 수, 목, 금, 토 다섯 가지 기운이 서로 상생과 상극을 이루며 우주를 이룬다고 하는, 우주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오행은 4원소설과 다르게 실재하는 물 불 흙을 이야기한다기보다, 그런 방식의 기운을 말한다. 이것의 관계도를 보면 마치 다섯 개로 하는 가위바위보 같기도 하다. 누구는 누구를 이기고, 누구는 누구를 만들고, 누구는 누구를 도와주고, 누구는 누구를 약하게 한다는 식이다. 원래 주역은 오행이 만들어지기 이전 학문이라서 음양만 있고 오행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후대에 주역과 오행이 합쳐져 음양오행이 되고 사주에도 오행 해석이 들어가게 되었다.
풍수 역시 한반도에서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민속학이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동아시아 전체에 퍼져있는 학문이지만, 종교의 영역이라기보단 고대과학에 더 가깝다. 풍수는 원래 음양오행이 아니라 땅의 맥과 혈을 중요시하고 바람과 물과 땅의 흐름과 기운을 살펴 명당을 찾는 학문이고, 중간에 음양오행을 받아들였다. 음양오행은 형상이 아니라 기운을 말하는 것이지만, 풍수에서는 실제 사물과 대치시켜 거꾸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풍수에도 여러 학파가 있고 거기에 따라 오행을 받아들이고 아니고의 차이도 있다. 하지만 조선의 풍수는 음양오행을 받아들인 음택풍수가 주류였다. 한민족은 특히 풍수를 중요시해서, 삼국시대부터 불교의 스님들이 국가적인 명당자리를 골라주곤 했다. 풍수를 세상을 설명하는 과학이라 여겼기에 고려의 불교도, 무당과 불교를 미신이라 여기던 조선의 성리학도 풍수를 믿었다. 후대에 가서는 풍수가 너무 땅을 비싸게 사고파는데 악용되자 미신이라며 배척하는 학자들이 많아졌지만.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이런 민속학, 민속종교가 서로 공유하는 '음양오행'으로 연결시켜, 눈요깃거리가 아니라 흥미롭고 힘을 가진 영화적 소재로 재탄생시켰다. 그러나 <파묘>가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히 소재의 디테일함이나 완성도 있는 연출이 아니다. 바로 메시지가 다른 오컬트 영화와 남다르기 때문이다.
장재현 감독의 세계
심령, 귀신, 요괴, 악마 등 종교나 민간신앙, 신비주의를 다룬 오컬트 콘텐츠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것들의 대부분은 그 종교를 겉핥기식으로 소재를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 장재현 감독은 종교의 이야기를 할 때, 내용 자체에 그 종교의 가르침이 깊이 스며들도록 만든다.
한국 고전문학 중에 <구운몽>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구운몽>을 짧게 줄이면 '팔선녀의 꿈을 꾸고 돌아와서 아 x발 꿈'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내용이 아니라 <구운몽> 자체가 읽고 이해하면 불교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야기 경전이다. 꿈을 꾼 성진에게 스승인 육관대사는 그럼 지금 현실은 꿈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지금도 누군가의 꿈일 수 있고, 그 꿈은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일 수 있다. 그것이 윤회이며 공이다. 그 꿈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해탈하는 것이다. 성진은 팔선녀와 노닐던 것이 꿈이고, 꿈에서 깬 지금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이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로운 팔선녀 판타지를 섞어만든 불교 경전과도 같다.
장재현 감독은 이전부터 종교의 교리에 주목했다. <검은 사제들>은 가톨릭 중에서 신비주의 단체라고 여겨지던 장미십자회를 다룬다. 가톨릭은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이다. 거기에 주인공 최준호 아가토는 어릴 적 여동생이 개에게 물려 죽을 때, 도망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가톨릭 교리에는 인간이 가진 원죄를 중요시하고, 그래서 미사시간에도 '내 탓이오'라며 가슴을 치는 의식을 한다. 최준호는 그 죄책감을 이겨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악마는 자신의 가장 약한 곳을 건드린다. 악마와 싸우려면 온전히 자신을 신에게 바쳐야 한다. <검은 사제들>은 내용 자체가 하나의 천주교 경전과 다를 바 없다.
<사바하>역시 마찬가지다. 불교를 다루지만 그중 주술과 신비주의 교리를 가진 밀교를 소재로 하고 있다. 밀교는 오랜 시간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비법을 통해 바로 깨달음을 얻고 성불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세 가지란 수인, 진언, 만다라다. 수인은 손으로 신비한 힘을 가진 동작을 하는 걸 말하고, 진언은 신비한 힘을 가진 주문을 말하며 만다라는 수행을 위해 그려진 도형을 말한다. 작중에는 수인과 진언이 등장해 밀교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쌍둥이이나 쌍둥이가 아니고, 쌍둥이가 아니지만 쌍둥이인 존재들이 서로 얽혀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을 드러낸다. 불이(不二)는 부처와 중생, 선과 악, 나와 네가 다르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불교는 이 지점에서 기독교와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과연 무엇이 절대악인지 모호해진다. 선이라 믿었던 것이 악이고, 악이라 믿었던 것이 선이다. 혹은, 다시 또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파묘>는 민속학과 민속종교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파묘>에서는 그 민족의 정신과 삶, 얼에 대해 다룬다.
조상의 한
LA에 사는 돈 많은 박지용(김재철)의 가족 남자들이 시름시름 앓고, 환각과 환청을 듣고 정신착란에 시달린다. 무당 이화림(김고은)은 법사 윤봉길(이도현)과 함께 미국까지 건너가 그 진상을 파악해 본다. 그리고 조상의 묘의 터가 좋지 않아서 노하신 거라는 묫바람이라고 결론짓고 사람을 모은다. 김상덕(최민식)은 이화림과 종종 일을 같이하는 의열 장의사의 지관(풍수사)이다. 개신교 장로인 고영근(유해진)과 같이 장의사를 한다.
김상덕은 자리를 알아볼 때 흙 맛을 본다. 영화 처음에 나오는 파묘를 한 곳에서 그는 맛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향긋~하다"라는 말을 한다. 오행에서 흙은 사행을 화합하고 중화시키므로, 그 맛이 달고 냄새가 향긋하다고 한다. 그러나 박지용이 의뢰한 묘에 갔을 때, 그는 흙 맛을 보더니 쓴 것을 맛본 듯 퉤 뱉어버린다.
조선은 고려의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국가의 기반으로 삼았다. 성리학은 유교에서 나온 철학으로, 기본적으로 사후세계에 대한 것들은 '알 수 없다' 즉 불가지론의 성향을 띠고 있다. 따라서 불교나 도교를 포함한 모든 귀신이 나오는 종교와 믿음을 미신으로 간주했다. 그렇다면 유교에서의 제사는 어떤 의미인가? 제사는 살아있는 자손들이, 죽은 조상에게 갖추는 효의 개념인 것이다. 그래서 바티칸에서도 그 특별한 개념을 나중에서야 이해하고,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제사 지내는 것을 허용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그것이 조상님을 섬기는 것으로 변질되었다고 여겨,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즉, 원래 유교의 제사는 귀신이 와서 밥을 먹고 조상님이 나에게 길흉화복을 미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에 도교와 민간신앙 등이 합쳐지고, 신분제도가 폐지된 후 너도 나도 좋은 가문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제사가 화려해졌다. 유교의 제사가 자연스럽게 '조상님이 나에게 길흉화복을 미친다'로 흘러가게 된 것은 한민족 사회가 가족중심의 사회이고, 부모가 살아생전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대살굿과 파묘를 하고, 관을 꺼내고 나서 사고로 인해 관뚜껑이 열렸다. 거기서 무언가 험한 것, 한이 서린 조상의 영이 나오게 된다. 관에서 빠져나온 영은 LA에 있는 자신의 아들을 찾아가 창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창문을 열어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귀신이라니, 지극히 한국적이다. 그런데 그 영이 집에 들어와서 처음 하는 것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박지용의 가족들은 그 묘의 주인, 박지용의 할아버지에 대해 철저히 감추려고 하는 느낌이다.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고, 관을 열지도 말라고 한다. 이렇게 할아버지에 대해 감추려고 했다면, 당연히 제사는 한 번도 드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할아버지는 백 년 가까이 제삿밥을 먹지 못했으니, 그 배고픔과 한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그 한은 자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된다. 박지용은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의문의 말을 남긴 채 죽는다.
끊어진 허리
"경로를 이탈하여 재검색합니다"라는 내비게이션의 음성을 기점으로, 영화는 허리가 끊긴 듯 완전히 앞뒤가 나눠진다.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생각하면, 앞 이야기는 그것을 여는 포문이었을 뿐이다. 앞부분의 분위기가 너무 괜찮았기에 뒤로 이어지는 부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장재현 감독이 그간 만들어왔던 영화들을 생각할 때, 민속종교와 민속학을 주제로 하는 영화의 내용은 그 민족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여우에 의해서 범의 허리가 끊긴 이야기.
여우는 중국 한국 일본에서 '구미호'라는 간을 빼먹는 요괴로 유명하다. 특히 일본에서 최고로 무서운 요괴 중 하나가 하쿠멘콘모우큐비노 키츠네(白面金毛九尾の狐: 백면금모구미호)이고, 후지타 카츠히로의 만화 <요괴소년 호야(우시오와 토라)>의 최종보스 요괴인 백면인도 그것을 모티브로 했다. 여우가 일본어로 키츠네인데, 키츠네 -> 기순애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말은 여러 가지 층위로 해석할 수 있다. 범은 일본에는 살지 않았으나 조선에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일본에게 있어서 범은 조선을 상징했다. 일제는 조선을 점령하자 각종 동물들을 마구잡이로 잡았는데, 그중 호랑이도 있었다. 호랑이는 결국 한반도에서 멸종했다.
일제가 패망한 후, 원래는 일본이 4 대국에 의해 분단될 처지였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을 서방세력과 소련이 나눠 점령함으로써 독일이 당장 힘을 갖지 못하도록 한 것과 같은 운명에 놓여있었다. 포츠담 회담에서는 원래 일본을 미국, 영국, 소련, 중국 4개국이 분할통치할 계획이었으나, 중국은 자신들의 국가도 분할되어 버린 마당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한반도만 분할통치를 받게 되었다. 거기엔 패망이 짙던 일본이 1945년에 원폭을 맞고도 항복을 미루고 미뤄 소련이 일주일 참전하게 해서, 콩고물을 얻어가게 한 일본의 책임이 있다. 일본은 소련을 중재자로 해 미국과 강화 협상을 하려 한 것이다. 소련과 미국이 땅을 나눠가지게 된다면 일본보다는 더 동북쪽으로 나아간 한반도를 분할하는 게 미국에도 유리했다. 결국 한반도가 분할통치를 받게 돼,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은 셈이다.
영화에서는 그 말을 풍수지리상으로 해석해 일제가 한반도 곳곳에 쇠말뚝을 박은 이야기를 하고, 또 그것의 99.9%가 거짓이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쇠말뚝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실제로 그런 말뚝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일본이 풍수지리를 그렇게 잘 알지 못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기순애라 불리는 일본의 음양사 무라야마 준지는 실존인물인 무라야마 지쥰을 모티브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무라야마 지쥰은 일제 당시 조선의 민속학과 민속신앙을 집대성한 인물로, <조선의 풍수>, <조선의 무격>이라는 책을 냈고 이 책은 현재도 서점에서 팔고 있다. 그만큼 일본은 조선의 민속학에 대해서 잘 알았다. 조선총독부를 경복궁 문을 헐고 그 자리에 지은 것은 풍수를 잘 믿는 조선인들의 기를 꺾으려는 통치방식이라 볼 수 있다. 쇠말뚝이 실재하느냐 아니냐 보다도, 그것이 박혀있다는 낭설이 퍼지면 그것 자체가 풍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더 나아간 해석을 하자면, 쇠말뚝은 진짜 쇠말뚝이 아니라 일제가 한국에 남기고 간 여러 사회적 문화적 잔재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 해방 후 친일파의 득세, 사회에 전반적으로 심해진 가부장제와 군대문화 등이다. 그것들은 지금까지도 한국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그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것으로,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진 제국주의식 군대문화를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는 말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영화 속에선 실제로 일어났다.
험한 것
가짜 이야기를 파냄으로써 진짜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친일을 했다는 박 씨 집안. 그는 기순애라는 스님이 점지해 준 곳에 묻혔다. 그 무덤에는 오로지 경도 위도의 방위만 쓰여있었다. 박지용의 고모는 기순애가 무라야마 준지라는 일본 음양사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왜 아버지가 그런 악지에 묻혔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일본에 충성했으니 부귀영화를 누리게 한 것이 아니라, 무라야마 준지는 그 충성심을 이용해 험한 것을 서둘러 가리는 뚜껑 정도로 그 무덤을 썼다.
일본의 요괴들은 한국의 영과는 다르게 원념으로 가득 차있으며, 실체가 있는 요괴들이다. 영만 상대하던 무당과 지관은 당연히 그 실존의 공포를 마주하곤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아마 500년 전, 일본을 무시하다가 엄청난 일본 군대의 실체 마주한 조선인들이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거짓이 진짜가 된다. 환상이 실제가 된다. 영이 요괴가 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없다고 믿었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극한의 절망과 공포가 아닐까? 그리고 그 실체는 세키가하라에서 죽고 불멸의 존재가 된 오니(도깨비)였다. 도깨비는 불이다. 오행에서 불은 쓴맛이 난다. 그러므로 그 무덤의 땅은 향긋하지 않았고, 일꾼을 동티나게 만든 일본요괴인 사람얼굴을 가진 뱀 - 누레온나가 살고 있던 것이다. 그 오니가 세키가하라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의 장수였고, "북으로!"라는 외침으로 볼 때 임진왜란에 참전했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박지용 할아버지의 무덤을 파냈을 때, 이순신이 그려진 100원을 김상덕이 그 안에 던져 넣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요괴의 몸에 칼을 넣는 주술로 오니 자체를 쇠말뚝으로 만들어버린 그 기괴함은 거대한 오니의 실체만큼이나 섬뜩하다. 그 민속종교의 모습은 그 민족의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한국의 조상귀는 박지용의 할아버지처럼 자손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이화림의 할머니처럼 자손을 지켜주기도 한다. 일본의 요괴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쟁하다 죽은 장수로 만들어진 오니는 다이묘에 대한 충성과 북쪽으로 진군하며 모두 죽이려는 원만 남아있다. 일본과 한국의 귀신은 물성도 다를 뿐 아니라 감정도 다르고 주술의 방식 자체가 다르다. 대체 이것을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나무와 쇠
일본과 한국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음양오행이다. 한국과 일본만이 요일 이름으로 음양오행을 쓰고 있다. 김상덕과 이화림은 처음부터 겪어보지 못한 험한 것들을 상대하기 위해, 풍수와 무속을 음양오행적으로 섞고 변형시켜 대응해 왔다. 풍수지리에 대한 믿음은 일본보다 한국이 더 강하다. 따라서 음양사는 한국에 저주를 내리기 위해 풍수를 이용했다. 오행에 의하면 한국은 목의 기운을 가진다. 장의사 앞의 나무, LA의 박지용 집 앞의 나무, 박지용 할아버지가 있는 산의 나무, 보국사의 다듬지 않은 원목기둥이 중요하게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목과 상극인 것은 쇠다. 쇠는 목을 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땅에 쇠를 박아 넣는 것이 풍수적으로 상극의 행위다. 또한 목은 오장육부로 따지면 간에 해당한다. 오니가 여우에 의해 만들어졌다곤 하지만 인간의 간을 빼먹는 것은 또 그렇게 딱 맞아떨어진다.
이화림의 할머니가 오니를 막아서지만 그것도 잠시, 오니는 도깨비불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오른다. 김상덕은 자신의 앞으로 떨어진 도깨비불, 오니를 마주한다. 이때 이화림은 무엇이든 해보려고 준비해 온 말피를 쏟아붓는다. 사실 한국 도깨비가 말피를 싫어하기 때문에 부은 것이었다. 오니는 도깨비와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다. 통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니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그것을 본 김상덕은 일본의 요괴는 음양오행이 실체화된 것이라 판단하고, 원래는 기운을 뜻하는 음양오행을 말 그대로 실체로 해석해 대응한다.
말피가 물이기 때문에 상극인 불, 오니를 죽이고 있다. 물과 나무는 상생으로, 나무를 강하게 만든다. 또한 상모에 의하면 강해진 나무를 쇠는 자를 수 없다. 실제로 물을 먹어 단단해진 나무는 쇠도 자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오행 상극 개념에 오류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건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화된 존재의 오행을 따져야 한다. 존재하는 요괴를 상대하는 것이 아닌가. 풍수에서 오행을 이용할 때도, 풍수는 실제 물과 나무와 흙을 보는 것이므로 오행의 상극과 반대로 해석하는 부분들도 있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나무는 한국을 상징한다. 불과 검에 대항하는 피에 젖은 나무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의 일본과 한국의 모습을 상징한다. 일본은 500년 전 포와 검으로 조선을 쳐들어왔지만, 백성들은 의병을 일으켜 피에 젖은 손으로 7년 동안 나라를 지켜냈다. 100년 전 일제가 쳐들어와서 결국 조선을 자신들의 나라로 만들었을 때도, 독립운동가들은 자주독립을 외치며 피를 흘리고 죽어갔다. 결국 오니를 피에 젖은 나무로 때려잡는 김상덕의 모습은,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짓밟아도 절대 굴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이다. 쇠로 나무를 자른다고 할지라도, 그 피는 나무를 단단하게 만들고 결국 쇠를 이겨낼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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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사 앞에 그려진 문양을 보고, 김상덕은 "풍수 문양이 절 이름에 그려져 있어서 의아했다"라고 한다. 그 문양은 바로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나오는 태극문양이다. 그 태극 문양은 성리학에서 받아들여, 성리학의 이기론과 음양을 설명하는 도상으로 많이 쓰였다. 조선의 어기로 쓰인 태극팔괘도의 태극문양도 바로 이 주돈이의 태극문양이다. 딱히 상징하는 문양이 없던 풍수에서는 음양을 상징하는 이 태극문양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불교는 음양오행 사상이 아니라 다른 상징하는 문양들이 많기 때문에, 주돈이의 태극을 쓴 것이 의아했던 것이다. 불교에서 성리학을 상징하는 태극문양을 쓸 리가 없으므로. 사실 알고 보니 그곳은 절이긴 했지만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풍수 때문에 쓰기도 했겠지만, 보국사라는 이름과 역할을 생각해 보면 조선의 태극문양을 쓴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에 '반일'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러나 이 영화가 풍수, 음양오행을 소재로 한 것을 상기해 보면, '일본은 절대악이니 배척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음양오행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이 없다. 서로 조화를 이루며 우주를 이루는 기운이다. 우리의 땅을 유린한 일본의 세력이 있기 때문에 맞서 싸운 것이다. 한국이 목이라고 했지만, 사실 일본도 목이다. 오행으로 생각하면 일본과 우리는 형제와도 같고 바로 옆에서 서로 상생하며 나아가야 할 존재이고, 그 오행을 깨트린 일본의 침략세력을 견제하고 조화롭게 되돌려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그 상생을 깨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칼을 나무에 꽂아놨을까. 보이는 칼이라면 파내고 뽑으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칼은 파낼 수도 없다. 보이지 않는 칼을 지키는 묘도 많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지만, 굿을 하다 자꾸 오니가 떠오르는 이화림처럼 순간순간 더 섬뜩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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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의 형태 - 절대 매꿔지지 않는 상처
본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시청이 가능합니다.
줄거리
따분한 것은 질색인 아이 '이시다 쇼야’
어느 날, 쇼야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자신의 따분함을 가져가 줄 소녀 '니시미야 쇼코'가 전학을 오게 된다.
니시미야는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으로
쇼야의 수 많은 장난에도 웃으며 싱글벙글 웃으며 넘어간다.
하지만 쇼야의 심한 장난에 결국 쇼코는 결국 전학을 가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쇼야는 외톨이 신세가 되고, 쇼코가 당한 그대로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 사건 이후,
6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쇼야는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없는 하루를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쇼코를 만나야겠다 다짐하며, 만나게 된다.
"나는 네가 정말 싫었다.
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진…"
예고편
총 평
★★★★ 8.5/10.0
짧은 리뷰
당시 같은 해에 상영한 '너의 이름은.'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였지만,
진짜 원석은 나중에 발견되듯, 이 작품이 그러했다.
‘너의 이름은.’은 얕고 묵직한 한방이라면
목소리의 형태는 깊고 적절한 한방이다.
영화 '너의 이름은.’이 작화가 뛰어나고 동일본 대지진에 관련하여 작품을 이루어 냈다면,
이 작품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지만 다들 묵인하는 학교폭력이란 흔하다면 흔하지만 매우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흐릿한 분위기의 무거운 영화가 아닌, 잔잔한 듯한 분위기의 무거운 영화이다.
이 영화는 타 영화와 달리 학교폭력이라는 소재를 표현할 때, 시청각적 변화를 주어서 과감한 연출도 시도하였고,
그러한 연출은 이 영화를 더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영화를 진행하는데에 초점을 쇼야와 쇼코 그리고 우에노 이렇게 세명한테만 맞춰서
나머지 인물들의 사건들은 전부 잘려나갔다.
원작을 본 사람들에게는 아쉬울 것이라 셍각한다.
-애니메이션 이라는 장르의 한계성을 극복한 연출-
애니메이션 이라는 장르는 직접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보다 더 자유로울 것 같지만,
실상은 대부분 사용하는 구도와 촬영기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흔히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서 사용하는 카메라 기법과 연출을 사용했습니다.
주로 캐릭터의 감정과 심상을 말로 표현하기 보다는 이 영화에선 몸짓과 행동, 주변사물과 다양한 촬영기법으로 표현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에서 뮤지컬이나 연극에서나 주로 사용할 법한 방식을 채택한 것은 매우 이래적이며,
이정도로 준수하게 나온 것은 더 이래적입니다.
그러면서 위의 연출들이 부조화가 아닌 매우 딱 선을 지키는 절제를 잘 하는 연출이였습니다.
너무 투머치가 아닌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잘 사용해서 더 보기 좋았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연출 중 하나인데,
학교폭력 가해자 라는 인식이 찍힌 쇼야는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을 끊은체 숨죽이고 지내는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인물들의 얼굴에는 ‘X’ 표시가 되어있는데, 자신이 마음을 닫고 지낸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 정말 참신했다.
-무거운 주제를 끌고가는 잔잔한 전개-
학교폭력에 관한 영화를 몇개 뽑아보자면 한공주, 파수꾼 등이 있는데, 대부분 분위기가 암울하다.
사건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런 모습을 보이며, 배우들은 그러한 불안함을 연기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달리 '니시미야'는 화를 절대 내지 않는다.
이 부분을 현실에 대입해서 보면, 실제로 학교폭력을 당하는 주변을 보면,
대게 소심하거나 더 큰 트러블이 싫어서 속으로 앓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는 이런 모습을 너무 잘 표현했다.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느낌으로 전달 할 때, 미화하거나 너무 과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집어넣어서
영화를 어거지로 끌어갈 수 있는데,
전혀 그러지 않고 어린 아이에게 한걸음 한걸음 걷게 하는 듯 만든 전개는 정말 좋았다.
-뛰어난 더빙-
쇼코라는 캐릭터의 더빙은 정말 일품이였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말을 못해 끙끙대는 그런 느낌을 이렇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더빙은 손에 꼽을거라 생각했다.
말을 몇 마디 하는데, 어버버 하면서 말을 저는 모습은 진짜 인상적이였다.
그리고 쇼야의 연기도 일품이였는데,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옛날 친구이자 자신이 학교폭력 가해자로 찍힌 순간
가장 먼저 등을 돌린 친구를 보며, 다시 자기 자신을 추궁하는 모습을 하는 연기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인 주변 묘사-
진짜, 이 영화에서 감탄 한 것중 하나가 현실에 있을 법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학교폭력을 하는 쇼야 때문에 화가 나는게 아니라,
꼬리자르기 당해진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도 현실의 반응과 똑같기 때문에 더 화가나는 영화였다.
위선적인 선생님과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리얼했다.
대게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학교폭력을 그저 골치아파 하며, 귀찮아하는데 이 영화에서도 너무 잘 나타났다.
자신이 속한 반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볼 수 있는데,
학교폭력에 가담 했지만, 자신이 한 일이 걸리지 않은 아이가 오히려 역지사지의 태도로
처벌받은 아이를 먼저 따시키기 시작한다.
그게 '카와이'와 '우에노'라는 캐릭터에서 너무 잘 들어나는데,
카와이는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찬 아이이며, 후반에는 쇼야를 추궁하며 자신은 잘못이 없다라고 하며
반에서 쇼야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큰 소리로 퍼트려 골탕먹이려 들고
니시미야와 함께 있을 때는 가식과 함께 미안하다며, 사과한다.
그러면서, 우에노가 과거에 한 짓은 직접적인 것이고 자신은 하지 않았다고 합리화 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 부분이 정말 현실과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쉬운 상영시간-
원작을 2시간 안에 담는건 너무 무리였지만,
중요 비중의 캐릭터들의 분량과 핵심까지 다 잘라먹은 것은 좀 아쉬웠다.
원작 만화책은 7권의 분량인데, 그래서 주인공의 가족사와 같은
굵직하지만, 내용전개에 완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다 잘린 것이 아쉬웠다.
차라리 상중하로 나눠서 내거나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러닝타임을 조금만 더 늘려서, 각본 수정을 좀만 더 디테일하게 진행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아마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상도 충분히 노려볼만 했을 작품이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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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름, 폴 메스컬 캘럼은 즐겁고도 우울했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하여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른 해가 넘게 살았으나 유년 시절은 삶의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내 경우, 그러한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부모님과 보냈는데, 부모님과 함께한 나날들은 분명 아주 소중하고, 대체로 즐겁고 행복했지만, 때때로 우울하거나 서러웠다. 내 부모님이 나를 부적절하게 해코지를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보다 좀 더 사소한 일이다. 예를 들어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짜증을 내던 엄마라든가, 내가 떼를 쓰는 것을 모른 척 하는 아버지라든가, 나는 잘 모르는 어떤 일로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아 있어서 다가가기조차 무서웠던 당신들... 이런 것들 말이다. 이것은 부모님의 잘못이었을까? 음, 여기서는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그들이 왜 그래야 했을까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그들을 부모가 아니라 각각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보면서. 그들이 가슴에 품었을 생각이 무엇이었을지 가늠해보면서.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니 얼마쯤은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영화 <애프터 썬>을 이런 시각으로 한번 살펴보려고 한다.
1. 어느 부녀의 튀르키예 여행
어른이 된 소피는 낡은 캠코더 너머로 어느 추억의 단편을 살핀다. 그 곳에는 어린 소피와 그의 아버지, 폴 메스칼 캘럼이 있다. 이혼 이후 멀리 떨어져 살던 두 사람은 모종의 계기로 인해 함께 튀르키예 여행을 떠난다. 좋은 추억을 남기자고 약속하면서.
그러나 그러한 기약은 쉬이 힘을 잃고, 아버지와 딸은 시종 불안하다. 각자의 사연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
2. 방황하는 자
영화 전반에 걸쳐 그들은 방황한다. 뿌리를 둘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디에 소속되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피는 밝고 명랑한 아이로 자라났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는 스스로가 누구를 사랑해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는 남들과 좀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깨닫는 것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으므로, 아이의 끝자락은 으레 그렇듯 혼란스럽고 두렵다. 그리고 외롭다.
이러한 사정은 폴도 다르지 않다.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그에겐 깊은 시름이 있다. 그를 충분히 아끼지 않은 부모라든가, 사업의 실패, 이혼 그 중 일부이거나, 그 모든 것이 그를 고통스럽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그는 우울하다. 명상과 농담 따위로 그에 저항하고자 애썼으나, 그럼에도 우울은 온다. 그의 눈에는 생의 의지는 보이지 않고, 해가 자취를 감추면 깊은 무기력함과 슬픔이 그를 잠식한다. 그는 서서히 질식해들어간다. 그 깊은 어둠에.
3. 누군가의 태양
그러나 우울증 환자라고 해서 기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태양이 솟아 오르듯 폴에게는 소피가 있다. 우울한 아버지도 천진한 딸아이 곁에서는 그나마 미소지을 수 있는 것이다.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소피는 폴에게 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숱한 사랑-어떤 종류의 것이든-의 실패를 겪은 그에게 가장 살뜰한 애정과 이해를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소피였으므로. 그러므로 소피는 폴의 친우이자, 이해자이고, 태양이며, 그를 살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Queen의 'You're my best friend'의 가사에서처럼 말이다.
이렇듯 소피는 폴의 유일한 태양이자 사랑이자 벗이었으니, 그는 더 깊은 우울에 빠져 더는 헤어나오지 못하기 전에 딸을 위한 무언가를 준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없는 형편에 튀르키예 여행을 준비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4. 그러나, 해는 지기 마련이다.
폴과 소피의 여행은 얼마쯤 즐겁고, 얼마쯤 우울했다. 소피는 제게 충분히 호응하지 않는 아버지가 답답하고, 폴은 그런 딸에게 부채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는 서서히 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으므로. 귀여운 딸이 준비한 생일 축하 이벤트에도 기꺼이 웃지 못한 것은 그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어서였으리라.
여행지에서 할 만한 건 다 했는데, 어쩐지 그는 무기력하다. 놀러오기는 했는데 자꾸만 잠을 자고, 늘어지고, 웃으면서도 웃음기가 없다.
5 second of summer의 'Try hard'의 가사들처럼, 소피는 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러나 폴에게는 그런 딸조차 치유하지 못할 어둠이 있었다. 우울이란 그렇다. 깊은 물 속을 허우적거리고 군중 속을 끝없이 헤매는 기분. 그것은 아주 개인적인 것이어서 타인의 눈에는 쉽게 관찰되지 않는다. 상대가 필사적으로 그것을 감추려고 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생각해 보라. 어느 아버지가 딸에게 자신의 어둠을 보여주고 싶어하겠는가? 폴은 소피만큼이나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가장 소중한 이가 가장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했을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5. 해가 진 다음의 이야기
여행의 마지막날, 소피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가고, 폴은 다시금 우울의 품에 안긴다. 해가 부재한 그곳으로.
평생토록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던, 인생이 실패투성이라 여기던 아버지는 영영 딸과 이별하게 되었을까? 영화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막연하게, 어른이 된 소피는 캠코더 너머의 아버지를 본다. 그리고 어느 우울 너머에 서 있을 아버지를 본다.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서. 그의 눈에는 얼마쯤의 애정과 연민이 있다.
*
나는 이 폴의 결말이 어땠을지에 대해 논하고 싶지 않다. 영화가 그것을 열어두었다면 나 또한 그러고 싶다. 그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폴과 소피가 서로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에 대해서이다. 비록 서로 상처를 줄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함께함으로써 행복했고 그것은 분명 어떤 의미로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폴은 어떤 아버지인가? 우울을 빌미로 생으로부터 도망친 비겁자인가? 실패자인가? 아니,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폴은 그 모든 우울에도 불구하고 딸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딸이 그 나름의 삶과 사연을 만들어 나가기를 바랐다. 설령 제 자신이 부재할지라도 그 아이가 언제까지고 빛나기를 바랐으므로.
어른이 된 나는 때때로 내 또래였을 부모님에 대해 생각한다. 폴이 그러했든 내 부모님도 당신들 나름의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부모면서 각각의 개인이고, 그 개인들은 각자의 삶이 있을 것인데, 그 각각은 한 사람의 것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세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삶을 각각 살아가면서도 그 삶의 한편을 나를 위해 내어 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유년 시절에 때때로 나를 서럽게 했던 그들을 이해하기로 했다. 어쨌건 그들이 보였던 헌신과 사랑만큼 진실된 것은 없으니까.
나는 아직 부모가 되어 보지 못했으므로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헤아릴 길이 없다. 다만 내게는 내 삶을 함께 한 몇몇 반려동물들이 있었고, 그들로 말미암아 부모의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해 볼 뿐이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무조건적이지는 않지만 진실된 사랑을 포함한다. 때때로 미숙할지언정 그 사실은 변하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나는 영화 <애프터 썬>의 폴이 소피에게 증명해 보인 사랑을 얼마쯤 원망할지언정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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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이 영화를 공개합니다. 전세계 언론이 극찬한 영화.[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헌터킬러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배급사)의 사용 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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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 다시 돌아온 분질 패밀리! 자동차 액션의 끝까지 간다
분노의 질주 9편이 새로 개봉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제대로 된 블럭버스터 영화가 개봉한지 오래되었는데요.
오랜만에 머리를 비우고 볼 수 있는 자동차 액션이 개봉을 합니다.
도미닉이 그대로 돌아오고 주요 등장인물도 돌아옵니다.
여기에 한도 살아서 다시 등장하는데 팬들이라면 좋아하실 것 같고요.
도미닉과 친동생의 이야기가 주요 서사의 축이지만 이 시리즈는 서사 보다는 액션에 방점이 찍어져 있죠.
액션은 우주까지 날아갑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리즈여서 1편~6편의 DVD도 소장하고 있어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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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위왓치유> 티저 예고편
평범한 집처럼 꾸며진 3개의 세트장,
12살로 설정한 페이크 계정을 만들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선 배우들.
계정 계설과 동시에 전 세계 남성이 접촉해왔으며
열흘 간 나체사진 요구, 가스라이팅, 협박, 그루밍 등을 시도하는 남성은 총 2,458명이었다.
그리고 우린 그 중 21명과 대면하게 된다.
범죄의 형식이 온라인으로 확산된 언택트 시대.
성에 대한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동·청소년들에게 일어나는 충격적인 디지털 성범죄를 추적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디지털 성범죄자 검거 프로젝트
<#위왓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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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탈주> 티저 예고편
청룡부부 사건? 이제훈이 구교환에게 청룡영화제에서 고백한 사건이다. 이 조합 대 대 대 찬성이요 (・`◡´・)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