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ong2022-01-29 22:53:26
<오징어 게임>만큼 노골적으로, <지옥>처럼 추접하게
<지금 우리 학교는>, 스포일러 없이 추천합니다!
윤여정 배우가 작년인가 청룡영화상에 나와서 한 말이 있다. "몇 주 전 가디언지와 인터뷰를 했는데 '왜 한국의 콘텐츠들이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지 아느냐'라고 물었다. 우리는 항상 좋은 영화와 드라마들이 있었다. 세계가 단지 지금 우리에게 주목할 뿐이다."라고 모두발언에서 말했다. 굉장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오징어 게임>이 굳이 잘 나가지 않아도 나는 한국에서 좋은 콘텐츠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벌새>나 <꿈의 제인> 같은 영화들, 되게 한국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벌새>는 작품 자체만 보면 한국인이기 때문에 경험했던 기억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봐도 충분히 짠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영화인 셈이다.
이렇게 <벌새>와 같이 우리는 충분히 좋은 영화와 드라마를 찍어내고 있다. 작년 국내 여론으로는 <오징어 게임>만큼이나 인기가 많았던 <DP>가 있고, 김다미-최우식 배우의 좋은 케미를 볼 수 있는 <그 해 우리는>도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나의 아저씨>나 <비밀의 숲>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으니 한국의 시청자들은 사실 눈이 높은 게 맞다. 이렇게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해 OTT가 발달하고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이 세태에 K-아포칼립스 드라마물이 하나 등장했다. <부산행>의 좀비, <오징어 게임>의 시스템에 대한 은유, <지옥>의 디스토피아 묘사까지 한국형 스릴러물의 좋은 본보기가 나온 셈이다. 5일 걸쳐있는 설 연휴기간, 넷플릭스로 달려가 보자.

1) 어떤 것에 대한 드라마인가요?
1화 도입부에 한 학생이 학교폭력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울며불며 사정하지만 가해자들에게 그딴 건 없다. 몇 번 몸싸움을 벌이다 피해자 학생이 옥상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한 3층 정도 되는 높이에 부딪힐 때 간판에 맞고 떨어졌기 때문에 최소 중상이다. 피해 학생은 병원으로 실려간다. 아버지와 대면한 피해자. 아버지는 피해 학생에게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위로하지만 아들은 상처가 깊은 듯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상처에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한다. 마치 과학자가 테스트용 실험쥐를 가진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극이 시작된다.
드라마는 빠르게 한국사회를 훑는다. 학교폭력. 유튜브에 의해 뽑히는 자극적인 썸네일. 왕따. 미투 운동. 전염병이 창궐하고 나서의 한국사회. 현재 한국의 징병제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 많은 순간을 지나쳐왔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부조리까지. 뭐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대한민국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기존의 한국 드라마들이 세태를 공격했던 부분까지 포함되어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시스템에 대한 비유를 극으로 제시한 부분이나 쉽게 타인을 혐오하는 <지옥>에서의 새 진리교의 모습 역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좀비라는 장르적인 소재도 위화감 없이 잘 녹아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어떤 드라마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1화의 첫 줄에서 썼듯 학교폭력이라는 소재가 영화의 중심축을 이끈다. 이 좀비 바이러스를 만든 사람이 학교폭력 피해자의 아버지였다는 점이 어떤 연출 의도를 담았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 또 극을 보다 보면 왕따 피해자-가해자-그 외의 학생들이 물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역시 극을 보다 보면 감독이 필연적으로 약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해 어떤 조소를 건네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차가운 냉소를 보면 이들에게 우리가 너무나도 무관심했다는 것 역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코로나19가 창궐한 세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헬스장을 갈 때 시간제한이라는 게 생겼다. 원래 나는 모든 일과를 끝마치고 외로운 몸을 침대에 누워 1시간은 쉬었다가 운동하러 간다. 그런데, 9시까지 가는 통금 제한이 생겨 행동에 강제가 생겼다. 그러면 어떤 모습을 볼 수 있느냐. 헬스장에 사람이 많이 보인다. 10시~11시에 갈 때보다 작은 시간에 회원들이 집중적으로 모이는 것이다. 이것도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쉬운 조건 아닌가? 어떤 정파에 휩쓸려서 생각해보자는 것이 아니다. 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모두 안다고 여길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단 매일 운동하러 가는 일개 사회복무요원인 나도 '왜 내가 적어도 8시까진 운동하러 가야 하지'에 대한 이유를 알지는 못한다. 이건 어떤 정당이 대선에서 이기든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냥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정보를 통제하며 부조리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뭘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거라는 도구도 단순히 몇몇 정치인을 끌어내릴 수는 있었지만 이들이 우리를 이용해서 나쁜 짓을 벌이는 것을 견제할 수 있었나 싶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이 모습을 '재난에 극복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극화해서 제시한다. 이게 코로나19 확산 이후에 여러 방역수칙과 전염병 대응방안이 유사하게 떨어지며 극의 몰입을 더한다.
3. 이 드라마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첫 번째, 조연진의 연기 퍼포먼스가 어마 무시하다. 특히 이유미 배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유미 배우는 현재 1994년 7월생이라고 한다. 13학번이니까 지금 29살이다. 근데 이 사람이 10대 배역을 맡았다. 솔직히 이거 티 좀 난다. 살짝 비주얼 상으로는 안 어울리는 느낌이 있다. 혼자만 선생님 포스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이게 상쇄된다. 극의 초중반부는 이유미 배우의 카리스마로 이끌어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또 다음은 윤귀남 역을 맡은 유인수 배우다. 이 역은 연기 조건이 다른 역들에 비해 많다. 좀비가 튀어나와야 하고. 액션도 해야 하고. 일진 역할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다. 그런데 이 수많은 전제조건을 살기 어린 액션으로 소화한다. 또, 이 인물을 관통하는 내적인 콤플렉스가 있는데 이를 소화하는 데 있어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또 박미진-장하리 두 역을 맡은 배우들도 퍼포먼스가 좋았다. 특히 장하리 역을 맡은 배우는 내면의 고독함과 똑 부러져야만 하는 현실을 감내하는 그 기분과 감정이 잘 느껴졌다.
다음은 액션과 촬영이다. 사실 윤찬영 배우가 대사 하는 데 있어 좀 잔잔한 감이 있다. 굳이 고등학생이 아니더라도 감정적으로 고양될 수밖에 없는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너무 점잖다. 근데 액션 연기는 진짜 미쳤다. 중반부 액션신 롱테이크는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이 기대해도 좋다. 깔끔하게 잘 뽑혔다. 또 이수혁 역을 맡은 배우의 맨몸액션도 잘 뽑혔다. 피지컬이 되게 좋은 것으로 보이는데 팔다리가 길쭉해서 보는 맛이 있었다. 이 액션 하나만으로도 극의 퀄리티가 업그레이드됐다고 생각한다.
4. 난이도가 있는 드라마인가요?
일단 12부작이다. 도합 709분이 걸린다. 좀 길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좀비가 나오기 때문에 잔인한 편이다. 이 외에는 극을 보는데 크게 어렵다고 느낄 부분은 없을 듯하다.
5.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요?
사실 주연진 이유미/윤귀남 배우를 제외하면 학생들의 연기가 어색하다. 특히 윤찬영-박지후 두 배우는 뭔가 감정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낀 부분인 것 같다. 둘이 처하고 있는 상황에 비해 너무 나긋나긋한 느낌? 근데 크게 막 보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박지후 배우 좋아하는데 욕 안 먹었으면 좋겠다.
6.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일단 이 드라마에 질병관리청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알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감독이 현 한국사회에 대해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어떤 인물이 소외되었는가? 와 그 소외된 인물이 어떤 선택지를 고르며 어느 위치에 있는가? 도 중요하다. 또 학교 구성원 중 누가 제일 먼저 좀비가 되었는지도 확인한다면 극의 메시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7.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당연히 설 연휴 코시국에 나가기엔 심심한 분들이 아닐까? 킬링타임 용으로 딱 좋다!
난 이거 국제적으로 꽤 히트칠 것 같다! <오징어 게임>만큼이나 잘 만들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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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로애락이 교차되어 빛나는 삶의 순간
2007년 장편 데뷔작 ‘모두 용서했습니다’로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 세자르상 최고데뷔작상 후보에 올랐고,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2009년 ‘내 아이들의 아버지’,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2015년 ‘다가오는 것들’ 등 섬세한 연출로 사랑받는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을 보고 왔습니다. 2021년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오가는 ‘베르히만 아일랜드’로 칸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에 오른데 이어 마침내 제75회 칸영화제 독립 부문 감독주간 최우수유럽영화상을 거머쥐며 명실상부한 프랑스 대표 감독으로 우뚝 선 그녀의 최신작이죠. 삶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담는 그녀의 시선 덕분에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확보해 지난 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이 밖에도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작품성과 화제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 작품입니다. 근래 극장가가 조용한데, 얼마나 관람하실지 궁금해지네요. :)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요양원의 할아버지보다 이 책들에서 할아버지가 더 느껴져”
시놉시스: 여덟 살 난 딸, 투병 중인 아버지와 파리의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산드라는 어느 날 오랜 친구 클레망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일과 가족, 사랑 사이에서 삶은 계속되고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지만 아침은 여느 때와 같이 찬란하게 찾아온다.
예고편│Trailer
원제: Un beau matin, 영제: One Fine Morning│감독·각본: 미아 한센-로브
출연진: 레아 세이두, 멜빌 푸포, 파스칼 그레고리, 니콜 가르시아, 카미유 르방 마르탱 외 多
장르: 멜로/로맨스, 드라마│상영 시간: 113분
국가: 프랑스, 영국, 독일│등급: 15세 이상 관람가│수입·배급: 찬란
평점: 평론가 7.0, 왓챠피디아 3.3, 로튼토마토 신선도 92% 팝콘 69%, IMDB 7.0, 메타 스코어 86점
개봉일: 2023년 9월 6일
“삶은 어디에나, 언제나 존재한다”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스타일이 늘 그러했듯, 이번에도 파리에 사는 주인공 산드라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의 희로애락을 이끌어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 동전의 양면처럼 한쪽은 상실과 슬픔이 존재하고 다른 쪽에는 사랑과 행복이라는 상반된 감정선이 흐르는 그녀의 모습에 빠져들 수밖에 없죠. 자전적 경험을 확장시키는 그의 스타일상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삶을 상기시키는데, 이번에도 ‘베르히만 아일랜드’ 집필 이후 깊어지는 아버지의 병세에서 영감을 얻어 직접 깨달은 가치와 진심을 담은 스토리는 더욱 친밀하게 와닿습니다.
한동안 ‘007’ 시리즈, ‘프렌치 디스패치’, ‘프랑스’, ‘디셉션’, ‘내 아내 이야기’까지 뇌쇄적이고 몽환적이며 혹은 화려하고 강렬한 인물을 연기했던 프랑스 대표 배우 레아 세이두는 주인공 산드라로 변신해 자신의 가치를 빛냅니다.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캐릭터를 맡아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까지 생생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로 그녀가 겪는 슬픔을 더 가까이 느끼게 해줍니다. 기본의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듯 수수한 스타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싱글맘으로 변신해 매 순간 변화를 맞이하는 산드라의 심경을 전달합니다. 배우 본연이 가진 신비로운 눈빛과 말투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감정의 연장선을 더욱 깊게 연결해 주는 듯했습니다. 그만큼 산드라로 분한 레아 세이두의 연기가 친근함, 그 이상을 이끌어낸 것이라 생각됩니다.
누구나 경험하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삶에서 찾은 작은 변화로 상실의 빈자리를 극복해 가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완성한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이었습니다. 일과 가족, 사랑 사이에 놓인 평범한 일상이 담긴 인생의 한 페이지를 통해 여러 순간들을 거쳐 위로와 희망을 얻고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있죠. 노쇠한 아버지를 향한 상실감, 새로운 연인 클레망과의 사랑 등 쓰디쓴 인내의 시간을 지나 다시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내일을 향한 기대와 위로를 전하면서 말입니다. 관객과 함께 삶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공유하는 미아 한센-러브, 다음엔 또 어떤 장면을 담아줄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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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고 존재하기’의 최고은 PD
최고은 PD는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통해 광주극장에서 이루어지는 뮤지션들의 인터뷰와 라이브 클립을 선보이며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오랜 시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잘 버텨내고 존재하는 광주의 광주극장처럼,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 ‘버텨내고 존재하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제 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국내 경쟁작 '버텨내고 존재하기'에서 얼굴 마담이 되고 싶었지만 성공적이지 않았던(웃음)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입니다.
간략히 영화 소개해 주세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공간을 지켜내고 있는 광주극장, 그곳에서 저를 포함한 8명의 뮤지션이 어떻게 음악을 하고 있는지 라이브 클립 공연하는 모습과 인터뷰로 이루어진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때 제목을 우선 시 생각하는데 '버텨내고 존재하기' 제목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생각하게 되셨나요?
음악을 시작 한 지 12년 차가 되었는데 10년 차 때 부터 생각했던 화두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라 이전에 음악 하던 흐름과 많이 달라져야 했습니다.활동 방향과 방법이 변하면서 음악을 어떻게 즐겁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어떻게 버텨내고 어떻게 존재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이었지만, 제 주변 뮤지션들도 그러했습니다. 오래된 공간들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들어졌기 때문에 공감이 많이 되는 주제라 함께 이야기 해 보고 싶었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하기'에서 의도하신 바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호스트 입장으로 영화에 설정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2019년부터 매해 진행했던 커밍홈의 세 번째 이야기라, 제가 호스트 되어 주변의 뮤지션을 광주에 초대해 광주 알리고자 했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하기'에서 감독님과 PD님이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권철 감독님께서 영화 상영후 GV에서 적절한 표현을 해주셨는데, ‘냉장고를 부탁해’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제가 냉장고를 준비해서 냉장고 안 에 요리할 수 있는 재료를 넣어 권철 감독님께 드리면 권철 감독님이 요리하는 과정입니다. 저의 역할은 주제와 뮤지션 및 공간 섭외였습니다.
그렇다면 권철 감독님께 제안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권철 감독님은 2011년에 처음 뵈었는데, 이후로 해외 투어 가거나 라이브 클립 작업 시 권철 감독님과 함께 했습니다. 감독과의 작업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음악 대한 애정이 깊고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서 보는 것이 듣는 것과 같은 쾌감이 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에세이 읽는 것처럼, 시 낭독 들었던 것처럼 기억되도록 작업하십니다. 일련의 흐름처럼 영상 파트에 권철 감독님이 늘 계셨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공연하는 뮤지션들의 라이브 클립곡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뮤지션들을 광주로 초대할 때, 주제를 소개하면서 스스로 어울리는 곡을 생각해 라이브 클립을 하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우리가 선정하지 않고 뮤지션 자신이 생각해서 어울릴 만한 곡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곡들입니다.
기억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아마도 이자람밴드가 떠오르네요. 광주극장이 4층 건물 높이인데 당시 이자람 님이 4층에서 라이브 하셨고 저는 1층에 대기하는데 4층 이자람 님의 목소리가 1층까지 울렸어요. 폭발적인 가창력, 목소리 트임에 아주 놀랐습니다.
최고은 PD님의 버텨내고 존재하는 비중을 나타내자면 어느 정도 일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는 ‘존재한다는 것’ 에 집중했습니다. 버티는 것 자체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나를 기록에 남기지’ 의 존재에 집중했다면 가면 갈수록 버텨내는 힘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버텨낸다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앞에 있는 것이라 ‘다른 일을 하더라도 똑같겠지, 음악 아니면 뭐 하지’ 생각해도 음악이 저에게 대체 불가한 길이라 버텨냈는데 요즘은 밸런스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 시대를 버텨내고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하고 나의 이야기가 소중한 만큼 남의 이야기도 소중하게 생각하면 서로가 힘이 되어 잘 버텨내고 잘 존재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이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통해 무엇을 얻어 가면 좋을지 말씀해 주세요.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우리 모두의 사람살이 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버텨내고 존재하기의 괄호 앞에 들어가야 합니다. 광주극장이라는 공간은 1933년 개관했으니 90여년 되었고, 영화에 등장하는 뮤지션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꾸준히 하고 만들어 갑니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숨어있는 가치를 지켜내는 것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광주에 갈 기회가 있다면 광주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뮤지션들의 음악도 들어 보시고, 중간중간 나오는 뮤지션들의 추천 영화들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최고은 PD는 10월 말에 있을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광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우리나라 마지막 손간판쟁이로 알려진 박태규 화백이 작업한 '버텨내고 존재하기' 손간판을 직접 세워 영화를 상영하고 뮤지션들이 공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시간이 보이는 공간, 광주극장에서 90여 년 세월 동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고 존재하는 장소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가 너무나 기대된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미정, 김문숙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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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콕 휴가를 책임질 홍콩영화, <무간도>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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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지옥에 빠진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받게 된다. 불교의 18지옥 중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이다.
죽지도 못하는 것만큼 큰 벌이 있을까 싶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대가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고도 다음 날이면 다시 살아나 또 쪼이는 벌을 받았다.
차라리 죽여 주십사 하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무간도는 프로메테우스 쪽보다는 시지프스에 가깝겠다. 시지프스는 하데스와의 약속을 어기고 영원히 바위를 끌어올리는 벌을 받는다.
하나의 범죄조직에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경찰으로 위장한 삼합회 조직원과 경찰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삼합회 스파이가 된 경찰.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이분법적이다. 설정 자체가 그렇다. 그 속에 회색지대는 없다. 좋은 놈은 끝까지 좋은 놈이고,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쁜 놈이다.
물론 악인에게도 약간의 선의가 있을 수 있고, 선인에게도 악의가 있을 수 있다.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그들을 괴롭게 하면서도 그 질문을 전면에 배치하지는 않는다.
<무간도>는 1편, 2편(혼돈의 시대), 3편(종극무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시간 순서로 따지면 2-1-3편의 순으로 놓인다.
1편에서 경찰 진영인과 삼합회 조직원 유건명이 만나 엇갈린 운명을 확인한다면, 2편은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스토리다.
진영인, 유건명 뿐만 아니라 삼합회 보스인 한침, 1편에서 죽은 황 국장 등에게 이야기의 겹이 쌓이면서 1편의 인물들에게 서사가 부여된다.
3편은 진영인의 사망 이후의 사건들이며, 무간도 전체의 흐름에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때는 홍콩이 반환되던 시기이다.
홍콩 영화에서 유독 자주 볼 수 있는 배경인데, 이는 홍콩 반환 당시 홍콩인들의 정체성 혼란과 거부감, 혹은 회한 등 미묘한 감정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영국인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중국인이 되어버린 마음들이 홍콩 출신 감독의 영화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중국과 영국은 너무도 다른 나라다. 그리고 지금, 홍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 보자. 그러므로 어쩌면 이 영화는 우화다.
악은 선 속에서도 악하고, 선은 악 속에서도 선하다. 3편 종극무간에서 진영인과 양 반장, 심등은 서로 총을 겨누나 죽이지 않는다.
"조준하지 않았다"는 대사에서 심등은 진영인이 경찰임을 알아본다. 셋이 서로의 정체를 확인한 뒤에 잠깐 보이는 진영인의 미소는 세 편의 시리즈 중 가장 마음이 편안해 보인다.
1편에서 진영인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묻는 유건명에게 "미안하지만 난 경찰"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3편에서의 유건명은 분노와 광기에 휩싸여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은 그를 더욱 더 광기로 몰아붙인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보스인 한침을 죽이는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아는 진영인의 경찰 기록을 삭제한다.
유건명의 말도 틀리지 않다. 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유건명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가.
하지만 기회를 갖고 싶었다면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다. 죄를 인정하지 않고 덮어두려고만 했기 때문에 그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썩은 부위를 도려내지 않고 덮어버렸기에, 부패는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퍼져 나간다.
유건명은 환청과 환상, 분열된 자아 속에서 고통 받는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과 외부적으로 보이는 악행의 충돌은 자아를 흔들어놓다가, 기어이 자신을 진영인과 혼돈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자신의 악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결국 자신의 광기에 이기지 못해 양 반장을 총살하고 자신의 목에도 총을 겨눈다.
그러나 그는 자살기도마저 실패한다. 삶이라는 벌을 받는다. 모두가 죽고 혼자 남았다.
첫사랑이나 다름없었던 한침의 아내 메리를 죽게 만든 건 본인이었다. 그 뒤에 만난 아내 메리를 떠나게 만든 것도 그 자신이다.메리가 낳은 아이는 아빠라는 말을 하지만 아이를 볼 수도 없다. 진영인도, 황 국장도, 양 반장도, 한침도 죽었다.
유건명은 모두가 떠난 삶에 혼자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살아내야 한다. 그곳이 무간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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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위해서 집에 머물 수밖에 없는 휴가 기간이다.
이번 휴가는 집에 콕 틀어박혀 시리즈물을 보는 건 어떨까.
시원한 액션과 양조위, 유덕화, 여명의 리즈시절 미모를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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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의 곳에서 발견한 여성들의 연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Roma)>. 멕시코 배경 영화라고 들었는데 왜 제목이 <로마>인 거지? 그리고 Rome도 아니고 Roma? 넷플릭스에서 처음 영화를 찾아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일단 재생 버튼을 눌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증명해낸 <로마>.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로마>는 작품성이 뛰어날지는 몰라도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화면이 흑백인 데다가, 이야기의 전개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지지도 않는 탓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남의 일기를 엿보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문외한이라 그 근거를 일일이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매우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이고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감정과 생각의 폭을 넓고 깊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촬영기법과 화면이나 소품과 장면들의 메타포에 대해 분석한 많은 영상이 있다.)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1년을 잊지 못해 멕시코가 제2의 고향이라 말하고 다니는 만큼, 넷플릭스에서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새로 나왔다는데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얼마나 인정받는 감독인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어떤 상을 수상했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서 영화계에 어떤 의미를 던졌는지 등은 내게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들은 아니었다. 단순히 멕시코가 나온다고 해서 보기 시작한 이 영화는 예상보다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렸다는 이 영화는 1970년대의 멕시코시티로 우리를 데려간다. 멕시코에서 1970년대에 있었던 민주화 운동도 짧게 등장하긴 하지만 영화는 어떤 사회적 시대상보다는 한 가족의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 멕시코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보모 겸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인디오* 클레오와 그녀가 일하는 가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과장하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고 담담하게 따라가며 보여준다.
*인디오(Indio): 중남미의 원주민을 일컫는 말.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이 인도인 줄 알고 인디안(Indian)으로 부른 것에서 유래해 스페인식으로 인디오가 됨.
클레오가 일하는 혹은 살고 있는 집에는 네 명의 아이들과 엄마, 아빠, 할머니, 그리고 클레오와 함께 일을 하는 아델라가 함께 지내고 있으며, 네 명의 아이들은 모두 클레오를 친엄마나 친누나처럼 따른다. 클레오가 차고를 청소하거나, 아이들의 음식을 챙겨주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장면들처럼 딱히 특별해 보일 게 없는 장면들을 계속 보여주면서 영화는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어느 날 아이들의 아빠는 미국으로 장기 출장을 떠나고 집에는 할머니, 엄마, 아이들 그리고 클레오, 아델라만이 남는다. 아직 어린 아이들과 여자들만 남은 이 집에서 엄마 소피아는 이제 가장의 역할을 해야만 한다.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숨기고 있었지만 사실 아이들의 아빠는 출장을 간 게 아니라 외도로 다른 여자와 함께 살기 위해 집을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소피아는 이제 양육비도 보내주지 않는 아이들 아빠의 도움 없이 홀로 서야만 한다, 본인뿐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도. 소위 경단녀였던 그녀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클레오 또한 남자친구 페르민에게 큰 상처를 받는다. 사실 페르민은 임신 사실을 고백하자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도망가버리는, 남자친구라 부르기도 민망한 인간이다. 클레오는 임신 때문에 소피아에게 해고당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불러오는 배를 언제까지고 숨길 수 없기에 소피아에게 본인의 임신 소식을 사실대로 말한다. 그런데 클레오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소피아는 클레오를 꼭 안아주면서 병원 검진까지 예약해준다. 두 인물이 서로를 안아주는 이 장면은 도망가버린 구 남친(aka. 똥차)의 반응과 대비되면서 클레오와 소피아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줬다.
글 제목에 거창하고 건방지게도 여성연대라는 말을 붙였지만, 엄청 거창하게 무엇인가를 해야지만 여성들의 연대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여자들끼리 힘을 합치고 함께한다면 그게 여성연대가 아닐까. 그 이후에도 클레오와 소피아는 함께 병원에 가고, 휴가를 떠나고 시간을 보내며 힘겨운 시간들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이겨낸다. 아빠+엄마+아이들, 이렇게 이루어진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만이 가족이 아니라 제도나 혈연으로 묶여있지 않아도 클레오, 소피아, 아이들은 이미 한 가족이었다. (feat. 한국의 <가족의 탄생>, 일본의 <어떤 가족> 등)
아마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그의 유명세만큼 이 영화에도 많은 의미와 은유들을 숨겨놨을 것이다. 하다못해 영화의 처음과 끝에 나오는 옥상에 누워서 보는 비행기와 '죽은 척 놀이'만 해도 그에 대한 수많은 해석들이 있다. 그 많은 은유들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여성의 강인함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1년간 있으며 겪었던 멕시코가 그다지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이라거나 양성 평등의 환경이 제대로 갖춰진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다룬 이러한 영화가 나왔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외였다. 요즘도 그러하다면 50년 전에는 더 심했을 테니까 말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상황들이 더 좋지 않아서 할 수 있는 한 남은 여성들끼리 힘을 합쳐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기 전 처음에 품었던 궁금증은 완벽하게 해결이 되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주인공의 집이 있는 지역으로 ROMA 거리 표지판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 그런 이유로 영화 제목을 ROMA로 지었나 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ROMA 철자를 반대로 하면 스페인어로 사랑, AMOR가 된다. 그래, 이 영화는 AMOR,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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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슈퍼 히어로 3부작의 또 다른 정점
내 사랑은 일단 이 지구에 없어
얼핏 들어보면 주먹으로 누군가를 때리는 듯 한 소리가 난다. 드러머는 그웬이다. 펑펑펑펑..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의 드럼에는 한탄이 묻어 나오는 듯하다. 머릿속에 가득한 그 사람의 얼굴. 그 사람은 마일즈다. 스파이더우먼이 된 그웬. 그웬은 거미에게 물린 후로, 정확히 슈퍼히어로가 된 후에 스스로를 혼자라고 생각했다. 차원문이 열린 후에 만난 마일즈는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마음이 잘 맞았던 두 사람. 사실 그웬에겐 첫사랑이 있었다. 이름은 피터 파커. 학교폭력 피해자였다. 하지만 그웬은 피터의 편이었다.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던 그웬과 피터. 그렇다고 해서 피터가 엇나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피터. 친구를 떠나보냈다는 아픔을 잊을 채도 없이 경찰인 아버지에게 살인범 누명이 써진다.
역시 혼자일 수밖에 없는 걸까. 차라리 거미한테 물리지 않았으면 다행일 텐데. 아버지도 속여야 한다. 여전히 외로운 그웬. 이런 입장에서 마일즈가 그웬 삶에 등장했다는 건 선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소극적이었던 그웬. 별다른 인사도 못한 채로 마일즈를 다른 차원으로 떠나보냈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했었나? 갑자기 그웬의 지구에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르네상스 벌처'가 이쪽 세상에 침입한 것이다. 출동하는 스파이더우먼. 분전을 펼치지만 쉽지 않다. 이때 낯익지만 어딘가 신선한 얼굴이 들어온다. 파마머리에다 임산부인데, 분명히 스파이더우먼이다. 다른 차원에서 온 손님인가? 그웬의 호기심은 곧 사실이 된다. 안녕! 그웬? 난 제시카 드루! 다른 차원에서 왔어. 또 다른 멀티버스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이 멀티버스에서 그웬이 생각지도 못했던 대환장파티가 열린다. 과연 이곳에서 어떤 모험이 벌어질까?
숫자로는 4년 차
4년여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신작이다. 4년이면 뭔가 좀 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 '멀티버스'와 '스파이더맨'이 익숙하다. 왜 익숙한지 따지기 전에 우선 전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시리즈의 1편이었던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 이 작품이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들과 차별점을 가져 호평을 들었던 이유는 클리셰 뒤집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스파이더맨 시리즈 굉장히 익숙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코믹스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서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실사영화 시리즈들도 우리가 잘 알고 있다. 호러 장인 샘 레이미가 연출했던 '스파이더맨' 3부작은 글쓴이 같은 90년대 후반생의 관객이라면 다들 알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파이더맨이 거미줄로 기차를 멈춰서는 장면은 히어로영화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또 앤드류 가필드가 피터 파커를 맡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엠마 스톤의 추락신이 역시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톰 홀랜드가 주인공을 맡은 마블의 스파이더맨 3부작은 가장 최근작인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이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전 세계 히어로 무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스파이더맨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만화/영화이기 때문에 시리즈의 필수요소 같은 것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뿐일까? 멀티버스라는 소재는 근 몇 년간 영화판에서 핫했던 소재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한국 기준으로 2주 전에 개봉한 <플래시>, 올해 아카데미 7관왕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로키>가 그렇다.
전작 1편과 이 2편은 이 앞의 영화들이 갖고 있는 특징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강점을 갖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1편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자면 스파이더맨 시리즈들의 캐릭터를 을 아주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스파이더맨의 네 번째 리부트? 또 벤 삼촌 나오겠지? 빌런 벌처/닥터 옥토퍼스/일렉트로/미스테리오/그린 고블린/샌드맨/베놈같이 기존에 나왔던 캐릭터들 아니야? 보나 마나 히로인 또 죽겠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무조건 나올 거 같은데? 삼촌 어떻게 죽을까? 스파이더맨을 또 온 세계가 괴롭히겠지? 이거 전부 다 빗겨나갔다. 우선 1편의 메인빌런은 킹핀이다. 이 킹핀이 원래 북미에서 스파이더맨의 안티테제 중 하나로 유명하다고 알고 있다. 그 대신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판에선 '데어데블' 시리즈의 빌런으로 디즈니 플러스와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바 있지만 그거 드라마 일일이 다 본 분들이 많지 않을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킹핀을 빌런으로 선정했다는 것은 코믹스 바탕이었던 영화 전개의 디테일도 살리고 신선함까지 갖추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빌런 캐릭터를 변주하는 방식은 프라울러에게도 마찬가지다. 프라울러와 마일즈와의 관계, 그러면서도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어떤 공통점을 갖는 좋은 연출이 있었다. 이 외에도 멀티버스의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방식도 신선했다. 닥터 옥터퍼스가 누구야? 에 대한 부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코믹스에서 튀어나온 스파이더맨의 세팅이 그렇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 세명의 스파이더맨을 봤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에서도 스파이더맨이 인간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영화는 이것마저 깼다. 스파이더맨 누아르나 피터 포커 같은 캐릭터는 그냥 만화에서 나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색할 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 장르니까. 이런 화술을 가진 1편은 가히 사람들에게 걸작이라는 평을 받기 충분했다.
2편인 본 작은 1편이 갖고 있던 장점을 그대로 승계한 것처럼 보인다. 우선 도입부쯤에 등장하는 벌처와 한 빌런이 그렇다. 벌처가 '르네상스 시대'에 그게 있었다는 상상부터가 신선하다. 이는 초반부 그웬 지구의 피터가 어떤 인물이었는가? 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빌런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확 뒤집은 셈이다. 이 두 세팅은 결국 영화의 후반부에서 반복되면서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딜레마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빌런은 인지도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글쓴이도 이 영화에서 감독들이 가상으로 창조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빌런의 능력을 묘사하는 방식이 기존 멀티버스 소재 영화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는데, 이 자체가 영화의 시각화와 분명하게 시너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단 이 빌런뿐만 아니라 미겔 오하라 스파이더맨 / 제시카 드루 스파이더 우먼 역시 마찬가지다. 이 스파이더맨, 스파이더우먼은 각자의 명분이 확실하다. 이 덕에 인물의 개성이 죽지 않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분이 영화를 직접 보시길 바란다.
멀티버스 뒤집기
지난 아카데미에서 7관왕을 기록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 영화는 멀티버스 상상력의 극한을 찍으며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바로 핫도그가 손가락인 세상 묘사다. 또 뭐 모녀가 돌인 세상도 있고 나무인 세상도 있고 그렇다. 그러나 이런 시각적 묘사만큼이나 중요했던 건 이야기의 구성이다. '에에올'의 핵심이 뭐냐? 그 모든 가능성을 감수하고 현재를 선택하겠다는 로맨틱함이다. 이는 곧 '내가 성공하더라도 현재가 소중하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조부 투파키의 내적 세팅이 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욕심 때문에 흑화 한 조부 투파키. 모든 가능성을 경험했다는 것은 시각적인 소재 '멀티버스'와도 이어진다. 이는 곧 혹시나 만약같이 '과거에 이렇게 되면 어땠을까?'를 붙여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손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 모든 멀티버스에 모녀의 관계를 넣었던 점이 흥미로웠다. 비단 '에에올' 뿐만 아니라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플래시>도 이와 비슷하다. 전자는 슈퍼히어로 완다가 다크 홀드에 의해 주화입마에 빠져 자기의 운명을 바꾸고자 하지만 결국 피할 수 없었고, 후자는 배리가 어렸을 때 겪었던 상처를 스스로 극복하려고 했지만 이를 받아들였다는 내용이 영화의 중심이다. 그러니까 '에에올'과 유사하게 정해진 운명을 슈퍼히어로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다뤘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영화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멀티버스를 풀고 있다. 그러니까 '정해진 운명'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본다면 이 영화가 멀티버스를 활용하는 방식에 감탄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이는 왜 이 영화가 스파이더맨 시리즈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성립한다. 또 슈퍼히어로라는 장르 특성에도 충족한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생기는 철학적인 대립도 흥미롭다. 마이클 샌델이 공리주의를 이야기하면서 기차에 대한 비유를 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있다. 이 비유를 어떻게 치환시켰는지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통통 튀는 전개
멀티버스를 영화에서 어떻게 풀었는지와는 별개로 후반부의 이야기 전개는 아주 흥미롭다. 우선 이를 위해 미겔 오하라와 스팟, 그리고 '중간에 등장하는 어떤 스파이더맨'에 대해 쓸 수 있다. 3번째 인물은 등장만으로도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영화가 품고 있는 힙한 감성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스팟은 기존 마블 영화 다 합쳐서 가장 위협적인 빌런처럼 등장한다. 갖고 있는 능력은 다르지만 '정복자 캉'과 궤를 같이 하는 감이 있다. 이를 위해 시각적으로 스팟의 능력 묘사를 어떻게 보여주는지가 영화에서 굉장히 두드러진다. 전체적으로 통통 튀고 힙한 시각화 방식에 기괴함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를 보여주는 좋은 묘사였다고 생각한다. 추후에 데어데블 시리즈의 킹핀만큼이나 강력한 빌런으로 언급될 만하다.
미겔 오하라 스파이더맨은 굉장히 그럴듯한 인물로 보인다. 아니 사실 이 사람이 갖고 있는 동기부여는 옳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인물이 갖고 있는 당위성에서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포스가 있다면 설득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5대 5로 대립할 수 있던 이유는 기존 영화들이 심리적으로 그 둘에게 감정이입 할 수 있게끔 잘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스파이더맨에게 감정적인 설득력을 부여했다는 점은 영화에서 핵심 딜레마를 묘사하는 데 있어 엄청난 강점으로 뽑힌다. 오스카 아이작의 목소리 열연이 이를 덧붙인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두 번째 강점이다.
눈호강의 최고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영화의 최고 가치 중 하나는 시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느꼈던 눈호강은 <아바타> 1편과 맞먹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시각화 중에서도 훌륭한 두 지점은 예고에서도 나왔던 부분이다. 바로 마일즈와 그웬이 서로 만나는 모든 신이다. 특히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글쓴이가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한데, 그웬이 쌓아 올린 인물 서사와 감정선 또 마일즈가 쌓아 올린 감정선이 이 장면을 기점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중심으로 본다면 아주 흥미롭다. 영화에서 주요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등장에 임팩트를 주는 방식도 쾌감이 어마어마했다. 특히 스팟과 어떤 나라에서 벌어지는 장면 모두 다 바스키아를 연상케하는 시각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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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썬더볼츠*>가 개봉 2주 차에도 1위의 왕좌를 지켰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며, 3,300만 달러를 벌어들여 누적 수익 1억 2,840만 달러를 기록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박스오피스에서는 누적 관객 수 80만 명으로 3위를 기록하며
다소 아쉬운 성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씨네스: 죄인들>은
개봉 4주 차 주말에도 2,11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여전히 강한 흥행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는 5월 15일부터 21일까지 IMAX 70mm 재상영이 확정되며, 추가적인 흥행 상승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국내 박스오피스에서는 누적 관객 수 300만 명 돌파를 목전에 앞둔 <야당>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4주째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야당>이 과연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누적 관객 수 약 301만 명)의 성적을 넘어서,
과연 올해 한국 영화 개봉작 중 최대 관객 수를 기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북미에서 큰 사랑을 받은 <A MINECRAFT MOVIE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누적 관객 수 123만 명을 기록하며 2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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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에 가려진 서사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그린 나이트” 후기입니다. 난해하지만 쿠키영상이 있습니다. *아래 네이버지식백과에 나온 원작시에 대한 해설을 참고하고 영화를 감상하신다면 판타지와 원작을 비교하면서 충분히 영화를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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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선균 배우의 유작 "탈출" / 더운 여름 시원한 액션 영화 / 이선균 주지훈의 티키타카 / 탈출 스릴러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탈출"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딱히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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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461개의 도시락>
15살 코우키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뮤지션인 아빠 카즈키와 단 둘이 함께 살게 된다. 아빠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매일 도시락을 사줄 것을 약속하고, 대신 코우키는 학교에 빠지지 않고 등교하기로 약속한다. 학교에서 아빠의 도시락이 때로는 시한폭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절친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1년을 유급하여 한 살 어린 친구들과 같은 반에서 생활하는 것도 부모님의 이혼도 적응이 안 되는 코우키는 방황을 하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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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공식 예고편
" 다 죽을거야. 희망 같은 거 갖지마요." 학교는 생존을 위한 전쟁터로, 친구는 가장 위험한 적으로 변했다. 우리는 함께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죽기 싫다. 죽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