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1-12-20 00:14:21
시작 전이 더 재미있는, 스토브리그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하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의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뜻합니다.
이 기간에 계약 갱신이나 트레이드가 이루어지는데요.
가상의 팀인 재송 드림즈의 꼴지 탈출을 위한 기간,
과연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곳곳에 썩어버린 땅에 심어진 사과나무 한 그루의 영향력.
잘하지 않는 팀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분명히 힘든 일입니다.
반대로 잘하는 팀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도 분명히 힘든 일이죠.
어느 팀이든 고민거리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팬들은 승부가 당연히 중요하고 실망하고 돌아서기도 하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하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건 당연합니다.
드림즈도 마찬가지였죠.
꼴찌면서 매너도 경기도 모두 지는 그런 팀이었기에 스토브리그가 굉장히 어려운 팀이 되었습니다.
곳곳에 썩은 뿌리가 심어져 있는 이 곳에 새로운 단장이 오게 되면서 많은 변화와 혼란스러움이 오지만
그럼에도 스토브리그를 드림즈는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을까요?
저도 프로축구를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힘들게 우승을 못하는 구단을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이야기 하는 종목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다뤄지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고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저렇다면 응원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강두기 선수)
항상 조롱을 당하고 기대감과 실망감을 동시에 받아야 했던 제가 조금은 위로를 받았던 드라마 였습니다.
KBS에서 이런 소재를 다루고 또 멋진 드라마로 마무리까지 잘 해낸 스토브리그,
추천합니다.
연기도 연출도 각본도 모두 잘 어우러진!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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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왈로우 (Swallow, 2019) - '그녀가 피를 토해내며 삼켰던 것들'
스왈로우 (Swallow, 2019)
감독 : 카를로 미라벨라 데이비스
출연 : 헤일리 베넷, 오스틴 스토웰, 데니스 오헤어, 엘리자베스 마벨
‘그녀가 피를 토해내며 삼켰던 것들’
2020 CGV CAV 전을 통해 선공개 된 후, 최근 왓챠에 공개된 영화 <스왈로우>. 여름에 그렇게 봐야지 봐야지~ 했지만 상황과 우선순위에 밀려 결국 보지 못하고 넘겼던 작품이었는데, 드디어 왓챠에 공개되었다.
<스왈로우>의 장르는 스릴러로 분리되어 있다. 근데, 이 영화의 공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스릴러와는 조금 다르다.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장면이 나오거나,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간혹 몸에 난 상처와 혈흔을 보여주긴 하지만 눈을 찡그릴 만큼 무서운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밖으로 터져 나오는 피가 아닌, 억지로 삼키며 토해낸 몇 방울의 피로 만들어진다.
널찍하고 예쁜 집, 최연소 상무이사가 된 남편, 새로 잉태한 생명. 넉넉한 집안과 충분한 능력을 가진 남편 리처드를 만난 주인공 헌터는 이제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닌 꿈을 좇을 수 있는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남편이 출근한 후 커다란 집에 남겨진 그녀는 집안일을 하고, 남는 시간엔 푹신한 소파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드넓게 펼쳐진 숲과 맑은 하늘. 헌터는 그림을 그리다가 이내 북북 지워낸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터는 여유로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편이 출근한 사이 집안일을 하고, 남는 시간엔 삽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무엇보다 일을 하지 않고도 돈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일명 ‘사모님’의 삶인 것이다. 헌터도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입버릇처럼 말한다. 나는 운이 좋았고, 행복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가짜 행복은 천천히 헌터를 옥죄고 있었다. 그녀는 리처드와 결혼한 순간부터 남편의 가족들 덕에 행복해진 사람이 된다. 그래서 그들 앞에선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그저 습관처럼, 주문처럼 ”행복하다“고 말할 뿐이다. 그 외에 다른 말은 쓸모없는 말이다. 헌터는 서슬 퍼런 눈빛들 앞에서 새빨간 말들을 속으로 삼킨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그녀를 물들인다.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역할과 비밀을 숨기고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은 헌터를 더욱 강하게 비튼다. 이러한 강박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헌터의 행동을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만큼 이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아플지도 모르겠다.
스왈로우 시놉시스
완벽한 남편과 함께 그림 같은 집에 사는 사랑스러운 아내 ‘헌터’. 그러던 그녀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먹어서는 안 될 금지된 것을 삼키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되는데…
"우리 아들 만나서 신세폈네"
회사를 운영하는 시부모님과 최연소 상무이사가 된 남편 리처드. 시부모님이 사준 집엔 넓은 마당과 수영장, 아름다운 풍경, 고급 가구가 그득하다. 누가 봐도 부잣집이다. 헌터는 그 집안의 며느리가 된다. 리처드와 결혼하기 전 욕실용품을 판매하던 그녀는 이제 진짜 꿈인 삽화가가 되기 위해 그림을 그릴 시간도 얻었고,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리처드가 출근하고 나면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고, 휴대폰 게임을 한다. 그리고 리처드가 오기 전에 저녁을 준비하고 그와 행복한 저녁식사를 하면 된다. 여유로운 일상이다. 하지만 헌터의 마음은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헌터를 집으로 부른 시어머니는 헌터에게 "우리 아들 만나서 신세폈네"라고 말한다.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헌터는 리처드를 만나면서 자유시간을 얻었고, 든든한 경제적 지원군이 생겼으니 말이다. 헌터는 습관처럼 나는 행복하고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리처드의 가족을 만나며 행복을 얻었다고 말이다. 근데, 이 행복은 그들과 진정한 가족이 되었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헌터는 리처드의 가족이 아니다. 이건 영화를 오래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리처드의 상무이사 취임을 축하하는 저녁 자리, 리처드는 헌터를 언급하며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아내라고 칭하고, 시어머니는 임신을 한 헌터에게 기쁨을 얻는 재능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을 선물한다. 리처드 가족에게 헌터는 헌신적인 아내이자 타인(리처드 가족)에게서 행복을 얻어내는 재능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리처드는 헌터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넥타이를 잘못 다리는 사소한 실수에 화를 내고, 정성껏 차린 저녁 식탁 앞에서 헌터가 아닌 휴대폰을 바라본다. 헌터의 임신을 축하하는 저녁 자리에서조차 그녀는 완전히 배제된다. 인사치레처럼 나누는 아기에 대한 몇 마디 대화가 지나가고, 리처드의 부탁으로 시작된 헌터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잘려버린다. 리처드 가족에겐 헌터의 말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저 헌신적이고 남편이 좋아하는 긴 머리를 가져야 하는 아내일 뿐이다.
"매일 새로운 것을 시도해라"
임신을 했지만 행복하지만은 않다. 헌터의 시간은 매일 의미 없이 흘러간다. 아내로서의 의미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준 '기쁨을 얻는 재능'을 읽는다. 그 책엔 기쁨을 얻기 위해선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헌터는 책을 읽고 구슬을 먹는다. 그리고 내가 삼켰던 그 동그랗고 매끈한 것이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온 걸 본 순간, 기쁨을 느낀다.
헌터의 이식증 증상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매끈한 구슬을 시작으로 뾰족한 핀, 배터리, 매트리스 충전재, 못, 반지, 여러 금속들. 몸의 작은 곳들에서 피가 비치고 고통이 찾아오지만, 헌터는 작은 물건들을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을 느끼며 고통을 잊는다.
"내가 괴물이라 미안해"
헌터는 리처드에게 자신이 괴물이라 미안하다고 말한다. 헌터에게 직접적으로 괴물이라 칭한 사람은 없었지만 헌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헌터를 괴물이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터는 강간 피해자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아이다. 어머니는 새로운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했고, 헌터에겐 배다른 동생들이 있다. 상담사 앨리스는 헌터에게 여러 번 어머니와 가족에 대해 묻지만 헌터는 "평범한 가족이다"라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다 홧김에 뱉어버린 어머니와 문제가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헌터는 앨리스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리처드도 몰랐던 깊은 상처와 고민들. 괴물 같던 범죄자 아버지 아래서 태어난 자신. 헌터는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했다고 말하지만, 가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녀의 눈빛엔 생기가 없다.
범죄로 인해 태어난 아이. 세상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헌터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리처드를 만나 드디어 행복한 삶을 살아보나 했는데, 헌터는 여전히 행복할 수 없다. 무신경한 남편과 며느리를 아이의 엄마 정도로만 생각하는 시부모님. 리처드의 아버지는 임신했다는 헌터를 만나자마자 "미래의 CEO가 여기 있다"라고 말할 뿐, 헌터에 대한 축하와 존중의 말은 하지 않는다.
헌터는 여전히 외로운 사람이다. 리처드 가족 사이에 불편하게 끼인 듯 앉아있는 그녀는 온전하고 따듯한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헌터는 그저 안정적인 삶 속에서 행복하다고 반복해 말하고 있는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일 뿐이었다. 영화 속에서 헌터에게 위로가 되는 인물은 남편도 그의 부모님도, 헌터의 어머니도 아닌, 헌터와 똑같이 외로움을 느끼는 인물들뿐이다.
리처드가 야밤에 직장 동료들을 데리고 집에 왔던 날. 혈흔을 지우는 헌터를 발견한 건 리처드가 아닌, 그의 직장동료 에런이었다. 에런은 헌터에게 외로우니 포옹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헌터는 에런을 안아주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살짝 묻어본다. 포옹을 끝내고 헌터는 에런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어째 부탁한 사람과 부탁을 들어준 사람의 입장이 바뀐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 헌터가 외롭다고 말하는 에런을 안아주는 순간, 외면하고 있던 자신의 외로움을 다시 느끼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헌터에게 위로가 된 또 다른 사람은 간병인 루아이다. 헌터의 이식증을 알게 된 리처드 가족은 아직 몸이 안 좋은 헌터를 위해 고용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 간병인을 루아이를 집에 상주시킨다. 루아이는 고용인 리처드를 위해 헌터를 감시하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헌터를 보며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그는 침대 밑으로 들어간 헌터의 옆에 따라 들어가 "여긴 안전해요"라고 말하며 그녀의 어깨를 천천히 토닥인다. 그리고 헌터가 정신병원에 입소하기로 한 날, 헌터의 도망을 돕는다.
이 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헌터에게 진실된 위로와 사랑을 전하지 않는다. 리처드와 가족들은 리처드의 평범한 삶을 위해 헌터의 이식증을 고치려 했고, 리처드의 직장동료는 이식증 사실을 안다며 형식적인 응원과 위로를 전할 뿐이다. 상담을 진행했던 앨리스는 트라우마를 치료할 열쇠가 될 수도 있다며 헌터의 과거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관심 있는 척하지만 상담 시간 끝을 알리는 타이머가 울리자마자 상담을 정리해버린다. 집을 뛰쳐나와 갈 곳이 없어진 헌터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헌터의 어머니는 언제 와도 반갑다며 반겨주는듯하더니, 동생이 아이를 낳아야 해서 방이 없다며 딸의 방문을 거절한다.
"내가 당신을 닮았나요?"
헌터가 갈 곳은 이제 한 곳뿐이다. 남편도, 시부모님도, 어머니도 나를 외면했으니 남은 건 아버지의 집뿐이다. 어머니를 강간했던 남자이자 아버지인 윌리엄 어윈. 헌터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마주한다. 헌터는 묻는다. 내가 당신과 닮았냐고. 어윈은 답한다. 닮지 않은 것 같다고, 당신(헌터)은 내가 아니라고.
"당신은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아무 잘못도 없잖아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헌터는 이 말을 듣고 싶어 어윈의 집에 찾아온 것이다. 범죄에 의해 태어난 존재. 그런 존재를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헌터는 자연스레 자신의 출생 비화를 숨겼고, 그렇게 평생 모든 것을 숨기며 살아왔다. 헌터는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 범죄자 아버지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원망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신문에 난 아버지의 사진을 오려 지갑 속에 넣어둔 그녀는 그렇게 깊고 가깝게 자신의 존재를 미워하고 있었다.
"내가 있어서 행복해?"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아내로, 상류층 집안을 만나 자유로워진 며느리로, 어머니에게 사랑받으며 자란 딸로. 헌터는 리처드의 행복을 위해 살았고, 남편의 집안에 의해 행복해진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리처드의 집안은 그런 헌터의 존재를 괄시한다. 그들에게 헌터는 잘하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내 애를 가진 여자였다. 헌터는 항상 불안과 공허함에 떨고 있었다. 반복해서 내가 있어 행복하냐고 묻고,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냐며 묻는다. 리처드는 당연하다는 듯 "넌 잘못하려 해도 못할 거야"라고 답한다.
이식증은 보통 만 1세에서 2세 사이에 나타난다고 한다. 흔히 아동들이 많이 겪는다고 하며 빈곤이나 아동학대, 가족의 혼란과 같은 상처들이 이 같은 증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헌터는 위와 같은 상처들을 모두 겪은 어른이다. 그녀는 이식증 증세를 처음 겪는다고 말한다. 왜 어릴 적이 아닌 지금 이 증상이 나타난 걸까?
그건 아마도 헌터가 지금껏 자신의 모든 상처를 외면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걸 인식할 여유조차 없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리처드와의 결혼, 시부모님의 압박, 그리고 임신 등 인생의 커다란 변화를 겪으며 지금껏 덮어두었던 상처가 곪기 시작한 건 아니었을까. 유년시절에 생긴 상처는 사라진 것이 아닌, 그 자리에 그대로 덮여있었을 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리처드 가족들 사이에서 살아가며 헌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저녁식사를 하며 남편에게 말을 꺼내볼까-하면 리처드는 문자 답장을 하기에 바빴고, 리처드의 부모는 망설이며 시작한 헌터의 말을 가차 없이 잘라버린다. 그녀의 말은 항상 쓸모없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헌터는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자신의 말들을 다시 목구멍으로 삼켜 넣는다. 그리고 쓸모없는 잡동사니들로 취급받는 것들도 함께 삼킨다. 고통을 주고, 혈흔을 남긴다 해도 그녀는 행복하기 위해 그것들을 다시 삼킨다.
음식이 아닌 차갑고 날카로운 속성을 가진 물건들이 헌터의 혀에 닿을 때, 헌터는 그 느낌이, 그것을 넘길 때 차오르는 자신감이 좋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리처드 집안에 들어온 여자가 아닌 나도 삼켰던 것을 다시 내뱉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생동감. 그것만이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헌터는 리처드의 집에서 도망치기 전까지, 온전한 나의 모습을 담은 거울을 본 적이 없다. 거울을 보는 리처드의 옆에 서있거나, 리처드와 동료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비치는 유리창을 바라보거나, 리처드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가 된 나를 보거나.
영화의 마지막, 화장실에서 약을 먹고 하혈을 한 헌터는 가방을 다시 메고 거울을 바라본다. 전보다 길어진 머리를 편하게 묶고, 여성스러운 원피스가 아닌 편안한 맨투맨과 청바지를 입고, 진한 눈 화장이 아닌 자연스러운 눈매를 가진 헌터의 모습. 온전한 나로서의 모습이 담긴 거울. 이제 그녀는 할 줄 아는 것 없는 누군가의 아내, 아이를 가진 엄마가 아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된다. 이제 여유로운 부잣집 사모님의 모습은 없지만 헌터는 한결 편안해 보인다.
헌터가 화장실에서 나가고, 수많은 여성들이 화장실에 들어오고 나간다. 여성들만이 들어오는 공간인 여자 화장실에서 이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헌터가 서있던 자리에서 거울을 보고, 같은 출구를 향해 나가는 수많은 여성들. 그들도 헌터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를 가진 사람을 서슬 퍼런 눈빛으로 바라보던 세상 속에서 헌터는 말을 삼킨다. 모든 것은 비밀이 되어야 했고, 비밀과 함께 삼킨 물건들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올 때. 그녀는 작은 행복을 느낀다. 오래도록 자신을 괴롭히던 강박과 억압을 끊어내기까지 헌터는 목까지 차오르는 것을 수도 없이 삼켰고, 그것들은 혈흔이 되어 그녀의 창가에 들러붙는다. 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은 붉은빛으로 바뀌어 방을 가득 채운다. 그게 그녀가 바라보던 세상이었다.
* 본 콘텐츠는 네이버 블로그 Kyung film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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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국열차: beyondness
“제자리를 지키고 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그 모든 게 합쳐서 무엇이 되나? 열차야. 각기 있어야 할 자리를 엄격히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합치면? 그게 인류야. 열차는 세계 우리는 인류야”
“이제 자네는 전 인류를 이끄는 성스러운 임무를 얻었어. 자네는 저들을 구원할 수 있어.”
차이가 차별을 만들어내는 사회
온난화를 막기 위해 살포한 CW-7으로 인해 지구는 빙하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얼어붙은 세상을 17년 동안 달리는 긴 열차가 있죠. 쉬지 않고 달리는 열차에는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앞 칸과 꼬리 칸으로 나누어 살아갑니다. 앞 칸은 표를 구입해서 열차에 오른 사람들, 꼬리 칸은 혹독한 추위를 피해 표 없이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격차는 17년 동안 크게 벌어졌습니다. 달리는 열차라는 사실만 빼면 얼어붙기 전 세상에서 살던 것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앞 칸 그리고 그런 앞 칸을 꿈꾸며 살아가는 꼬리 칸은 먹는 것부터 매우 차이가 납니다. 스시도 먹을 수 있는 앞 칸과 다르게 꼬리 칸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단백질 블록만을 먹고살죠.
꼬리 칸 사람들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7인의 반란, 맥그리거 폭동 등 밖으로 나가거나 앞 칸을 향해 나아간 사람들이 있었죠. 그들의 끊이지 않는 도전은 영화의 주인공 커티스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이미 실패한 전례가 있기에 그들은 더욱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앞 칸에서 그들을 돕는 정체불명의 조력자가 단백질 블록 안에 메시지를 써 보내주니 더욱 철저하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경비병들의 총에 총알이 없다는 걸 알아챈 커티스가 반란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반란은 시작되었고 반란이 혁명으로 번지기까지 촛불을 휘두르며 쉬지 않고 뛰어갔지만 그들이 가는 길에는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급수 칸 앞에서 폭도 진압을 위해 모인 복면인들과의 전투는 매우 잔혹하고 그들의 죽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울려서 싸우는 동안 열차의 간부 메이슨은 히죽 거리며 마치 재미있는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 마냥 구경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커티스를 잘 따르던 에드가도 죽었습니다.
곳곳에 뿌려지는 피와 날선 도끼에 맞아 눈을 부릅뜬 시체, 꼬치 꿰듯 꽂힌 꼬리 칸 사람들의 비명 없는 외침을 보며 그들의 전투가 잔혹하다는 걸 무척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한 생각이 들게 하죠. 서로 죽고 죽이는 이 싸움이 누굴 위한 것일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싸울 뿐입니다.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꼬리 칸과 앞 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복면인들은 각자의 신념이 있지만 그 신념을 유발하는 ‘차이와 차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기도 하고요.
질서를 지키려는 자와 무너뜨리려는 자
앞 칸의 주요 인물들은 질서(order)를 중요시합니다. 질서는 영화 속 영문 표기에도 나온 것처럼 order, 다른 의미로는 명령이며, 이 명령은 신성한 엔진을 수호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나오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영화 초반 메이슨이 “앞 칸이 머리면, 꼬리 칸은 신발이다.”라며 신발을 가리키며 이건 ‘무질서’ 또는 ‘죽음’이라고 표현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질서는 ‘생명’이 되죠. 즉, 질서(명령)는 열차를 지키기 위한 것임을 명시하는 겁니다. 그런 메이슨의 신념은 앞 칸의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피아노를 치며 윌포드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황홀감에 눈을 부르르 떠는 교사와 그를 따라 노래를 부르며 ‘윌포드는 위대하다! 엔진은 영원하다!‘고 외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릴 때부터 광기 어린 ’절대적인 명령(질서)‘을 주입하는 독재자의 그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 절대적인 명령은 ‘열차가 달려야 한다.’는 명제입니다. 이 명제 안에서 누구나 역할이 바뀔 수 있습니다. 길리엄을 추억하던 윌포드의 모습은 자신도 길리엄도 열차를 수호하기 위한 같은 역할임을 말하는 듯합니다. 이는 그들의 역할이 열차를 위한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죠. 윌포드가 자신의 자리를 커티스에게 물려주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윌포드 역시 열차를 달리도록 해야 하는 자신의 위치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다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요. 앞 칸 사람들 역시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지만 그 자리가 차이와 차별을 만들고 차별로 꼬리 칸과 앞 칸의 대우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앞 칸 사람들은 단지 꼬리 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멸종된 열차의 부품 대용으로 사용해버리죠.
부품을 대체하는 꼬리 칸의 모습은 우리가 사회를 구성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회사에 자신이 없어도 누군가는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나이가 들고 쓸모가 없어지면 더욱 젊고 튼튼한 부품으로 바꿔 버립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소위 말해 갈려나간다고 표현할 정도로 일을 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앞 칸은 늘 권리를 누려왔고 꼬리 칸은 권리를 얻기 위해 늘 투쟁해야 했습니다. 그 온도 차이를 볼 수 있는데, 앞 칸 사람들은 생존이 아닌 보다 높은 삶의 질에 대해 고민(커티스와 일행이 열차를 지나가면서 보는 모든 장면들이 그렇습니다)하지만 꼬리 칸 사람들은 늘 단백질 블록 하나만을 먹으며 매 순간 생존을 위해 걱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꼬리 칸 사람들은 앞 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꿈꾸며 그들을 향해 반란의 횃불을 들게 되는 거죠.
그러하기에 앞 칸은 더욱더 꼬리 칸을 강하게 억압합니다. 그리고 그 억압을 열차 내 무질서를 통제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하죠. 윌포드는 늘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그동안 실패했다던 7인의 반란, 맥그리거 폭동은 그들의 작품이었고, 영화의 주 내용이 되는 꼬리 칸의 반란 ‘커티스 대혁명’마저도 윌포드와 길리엄이 합작해서 만든 큰 계획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늘 변화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생겨나는 겁니다. 윌포드와 길리엄 그 누구도 작은 변수들이 모여 질서를 어지럽히게 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변수는 커티스 대혁명에서 조금씩 쌓여서 큰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횃불을 들고 싸우거나 니느웨를 구원한 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진 요나의 신비한 능력, 내내 골칫거리였던 크로놀이 폭탄으로 사용된다거나 자신의 팔이 잘리는 걸 무서워했던 커티스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팔을 희생하는 행동 등 변칙적인 요소들이 묶여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연 같았던 모든 변수들이 결코 우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걸 꿈꾸었기에 변수들을 발생시킬 수 있었던 거죠. 예로 남궁민수는 감옥에 갇히기 전부터 열차 밖을 상상했습니다. 마약 하는 것처럼 하면서 크로놀을 챙겼고, 그중 좋은 질의 크로놀을 골라내 폭탄을 제조했죠. 그 결과 열차는 무너지고 비로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열차 안 또는 열차 밖
윌포드는 열차를 세계라고 했지만 그 세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대가 잉태되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아담과 이브처럼 아무것도 없는 하얀 열차 밖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죠. 그들이 비교적 차별받는 황인과 흑인의 조합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그들의 조합은 하나의 거대한 질서인 열차를 벗어나게 되었고 북극곰을 보며 열차 밖에도 사람이 생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열차 밖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면 좀 더 쉽게 유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거대한 사회의 질서를 벗어나게 된다면, 거대한 흐름에서 튀어나간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열차 안의 삶과 열차 밖의 삶.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할까요? 새하얀 설원에서 엔딩을 맞은 영화처럼 그 답은 스스로 내려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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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가는길이 멀었던 이유
다큐멘터리_학교가는 길
감독 : 김정인
개봉일 : 2021.05.05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큐멘터리 학교가는 길 리뷰입니다.
학교가는 길은 2017년 특수학교인 서진학교가 설립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인데요, 서진학교의 설립과정 뿐만 아니라 지역구에서 이루어지는 소외 계층에 대한 대립들,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언뜻 보면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대립하는 사람들 조차도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담은, 다양한 시선으로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학교가는 길은 우리 주변에 정말 이런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견에 대한 시선들, 배척하는 마음들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학교가 코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2~3시간 가량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들을 보면서 아직도 장애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겠다는 부모님들의 노력도 엿볼수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해서 사람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제도가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특수학교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삭발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지에 대해서 알고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서울시 강서구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부터 많은 역사들을 알아야 영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제가 설명하기에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 따로 찾아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저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감독님과,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부모님과도 만날 수 있는 GV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거기서 감독님께서 하신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 자연스러운 사회의 현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서 그것이 과연 합당한 현실인지 물음표를 던질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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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지만 결코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니까, <나의 서른에게>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서른에게 29+1 (2016)
홍콩 | 드라마 | 15세 이상 관람가 | 105분
감독: 팽수혜
아니지만 결코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니까, <나의 서른에게>
서른이란 나이는 내게 어른의 증표였다.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서른을 바라보는 선배들을 보며 동경 대신 늙음의 웃음을 봤었던 게 엊그제였던 거다. 막연히 '어른'을 '늙음'으로 치부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기에, 인제 와서야 그 당시 내가 얼마나 한심스러웠는지 뼈저리게 깨닫는 중이다. 군대를 다녀온 남동생이 신입생들에게, 청소년들에게 '아저씨'로 불릴 생각을 하면 뒷골부터 당기지 않겠는가? 그 와중에 내 학번이 남동생 학번 친구들에겐 몇백 년 된 유물과 동급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웃기는가.
아주 끝없이 웃음을 유발하는 게 나이인 듯싶다.
<나의 서른에게>를 접한 건 그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젊음과 늙음의 양극단에서 저울질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짓이 없음을 안 순간부터, 내게 '어른'은 참 다양한 의미를 가져다줬다. 무엇을 가슴에 품고 있는지부터, 어떤 목적이 있고, 갖고 있는 꿈은 무엇이며, 또 그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사는 방식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정말 앞자리가 바뀌는 날이 오면 내 세상이 천지개벽하여 엄청난 반전이 일어날까, 하는 호기심까지 아주 스펙터클 했다. 결론은 없었다. 완벽한 세상에 사는 내가 아니라서, 완벽한 내가 있을 수 없고, 그렇기에 모든 고민이 기가 막히게 해결되지도 않았다. 그저 나이 앞자리가 +1로 인해 소리 없이 바뀐다는 것 말고는 속 시원한 진실을 알 수 없었다.
<나의 서른에게> 역시 답답한 가슴을 뻥 뚫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내 옆에 앉아 홀로 사색에 잠긴 또래의 삶을 엿보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러나 그만큼 의미 있는 건 없었다.
출처: 영화 <나의 서른에게> 스틸컷
서로 다른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서른을 맞이하는 여성들을 바라보는 수많은 이들의 관점 속에 고군분투하는 첫 번째 주인공, 임약군은 자신마저 같은 매너리즘에 빠져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 마치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진 법칙인 것처럼 서른을 맞이하는 데 온갖 힘을 쏟는다. 서른이 되면, 지금보다는 덜 힘들겠지, 덜 어렵겠지, 덜 아프겠지,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관점에서 나아가지 못해, 결국 우울함에 빠져버린다. 유일한 탈출구인 남자 친구와의 관계가 위태로운 마당에, 사랑하는 아버지가 떠나고, 승진했지만, 집주인의 횡포에 새로 집을 구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그야말로 파도가 급물살에 그녀를 예고도 없이 덮쳐버렸다.
지금까지 자신 있게 열정적으로 살아왔다고 믿었던 그녀는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초토화가 된다. 그대로 주저앉은 그녀에게 이제 남은 건 고독이다. 단 한 번도 자신의 공허함을 마주 본 적 없었던 그녀는 황천락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과 같은 나이이지만, 전혀 다른 이의 삶의 방식을 엿보게 되는 그녀. 임약군은 황천락의 일기장을 통해, 가슴 깊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본다.
출처: 영화 <나의 서른에게> 스틸컷
황천락은 음반가게에서 일하는 해맑은 친구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지를 아는 그런 사람. 이빨을 다 내보이며 세상을 향해 방긋 웃는 그녀의 미소가 보일 때마다 덩달아 미소가 지어지는 건 엄청난 힘이다. 고된 하루만을 보내던 임약군에게는 볼 수 없었던 즐거움과 행복이었다. 또한, '현실'이란 말 아래 스스로를 조금씩 죽이고 있는 우리가 제일 염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일상에서, 평범한 하루 속에서 찾는 소소한 행복이 쌓여 지금의 황천락의 삶을 만들었으나, 그녀 역시 지독한 현실을 살고 있었다. 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은 순간, 황천락은 더 이상 나이를 생각할 수 없었다 고백한다. '죽음으로 가는 길'에 서 있을 뿐이라는 말과 함께, 오랫동안 꿈만 꾸던 파리 여행을 떠나겠다 선포하는 그녀. 두렵고 복잡한 심경을 담담히 일기장에 써 내려가던 황천락의 글과 무수히 찍힌 사진들을 통해 임약군은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버려둔 채 미친 듯이 달려왔는지 깨닫는다.
서른이라 부르는 말에, 어른이 되면 나아질 거란 충고에, 프로페셔널한 여성이 되면 모든 고민이 없을 거란 농담에, 다 알면서 남들에게 튀지 않기 위해 수긍하며 살아온 나를 발견하는 임약군. 의미 없는 날이 모여도 괜찮고, 한 번쯤은 쓸데없는 말들에 휘둘려도 좋은 날들 속에서 '나'를 위한 쉼터 하나조차 만들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제야 임약군은 자신에게 말을 건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겠냐고, 버틸 수 있냐고, 아니 버틴다고 착각하는 게 아니냐고.
황천락의 이야기에 유방암을 넣어 삶을 다시 꿰뚫어 본다는 점이 허무하고 텁텁한 뒤끝을 남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자극적이진 않았지만, 뻔한 설정이란 평가는 흘려들을 수 없겠다. 인물들에게 주어진 한계 역시 배우만 다르게 나오는 주말 연속극(드라마)에 사용되는 소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예측이 쉬운 만큼, 긴장감이 결말에 다다를수록 떨어지는 점도 명확하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나의 서른에게>를 가벼운 영화라 말할 수가 없었다. 주말마다 연속극을 보며 힐링하는 게 바로 나다. 결말이 무엇인지 알아도 또 보고 싶어 웃고 울면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으니까. 솔직히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 않은가? <나의 서른에게>는 진정한 '나'를 찾자는 게 아니라, '현재의 나'를 보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함을 말해준다. 그래서 거창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확실한 감동을 선사한다.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자도, 훌쩍 넘긴 자도, 한참 기다려야 하는 자도 결국 에펠탑 앞에 서 있는 두 인물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분명 아니지만, 절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게,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을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틀림없다. 카메라를 들고 자기 인생 일분일초를 찍으며 그 순간을 기록하고 남기는 황천락의 습관처럼, 우리에게도 나만이 갖고 있는, 세상을 해쳐나가는 비법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그거면 된다. 서로에게서 주고받는 영향은 딱 그 정도면 된다는 소리다. 그 이상은 정말 무의미한 짓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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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5월 셋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41분
감독: 루이스 리터리어
출연: 빈 디젤, 제이슨 모모아, 제이슨 스타뎀 , 샤를리즈 테론, 브리 라슨
개봉: 2023.05.17
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줄거리
돔(빈 디젤)과 그의 패밀리 앞에 나타난 운명의 적 단테(제이슨 모모아).
과거의 그림자는 돔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달려온다. 단테에 의해 산산히 흩어진 패밀리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맞서야 하는 함정에 빠지고 마는데.. 달리거나 죽거나, 그들의 마지막 질주가 시작된다!
관전 포인트
역대급 캐스트와 더 진화된 카 체이싱으로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빈 디젤부터 제이슨 모모아, 제이슨 스타뎀, 샤를리즈 테론, 브리 라슨까지 초호화 캐스팅으로
사전 예매량 9만장을 돌파하며 흥행 열풍이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슬픔의 삼각형
ⓒ 네이버 영화
개요: 코미디 | 스웨덴, 미국 | 147분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
출연: 우디 해럴슨, 해리스 딕킨슨, 찰비 딘 크릭
개봉: 2023.05.17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줄거리
호화 크루즈에 #협찬 으로 승선한 인플루언서 모델 커플.
각양각색의 부자들과 휴가를 즐기던 사이, 뜻밖의 사건으로 배가 전복되고 8명만이 간신히 무인도에 도착한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구조 대기뿐인 사람들… 이때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여기선 내가 캡틴입니다. 자, 내가 누구라고요?”
관전 포인트
떠오르는 천재 감독의 흥미로운 블랙 코미디. 호화 크루즈에 탑승한 사람들의 예측 불가 계급 전복 코미디로 제75회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칸이 인정한 명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슬픔의 삼각형>은 블랙 코미디 장르를 사랑한다면 단연코 기대해 보셔도 좋습니다.
메리 마이 데드 바디
ⓒ 네이버 영화
개요: 코미디,액션 | 대만 | 129분
감독: 청 웨이 하오
출연: 허광한, 임백굉
개봉: 2023.05.17
배급: ㈜원더스튜디오, ㈜리안컨텐츠
줄거리
혈기왕성한 형사 우밍한은 중요한 사건 현장에서 도로에 흩어진 증거물을 수집하던 중 의문의 붉은 봉투를 발견하고 무심코 줍는다. 그때부터 밍한에게 벌어지는 불길한 사건들!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을 한사코 거부하던 밍한은 거듭되는 생명의 위협에 마지못해 인생 최대의 결심을 하는데...
얼결에 '부부'가 된 귀신과 최악의 빌런을 잡기 위해 인간+귀신 콤비가 벌이는 극강의 공조 수사!
코믹과 액션을 버무리고 감동과 반전까지 가미한, 풀옵션 오감으로 즐기는 블록버스터.
관전 포인트
혈기 넘치는 형사 우밍한(허광한 분)과 억울하게 죽은 영혼 마오마오(임백굉 분)의 독특한 인간·귀신 공조 수사를 다룬
코믹·액션 블록버스터. '상견니'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허광한이 주연으로 활약한
코믹 액션 장르 블록버스터로 탄탄한 국내 팬들의 관심이 더욱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페이퍼 스파이더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가족 | 미국 | 109분
감독: 이넌 샴페니어
출연: 스테파니아 오웬, 릴리 테일러, 페이튼 리스트, 이안 넬슨
개봉: 2023.05.18
배급: 블루필름웍스
줄거리
남편과 사별하고 사랑스러운 딸 멜라니(스테파니아 오웬) 마저 독립을 준비하게 되자 엄마인 던(릴리 테일러)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이사 온 이웃이 던의 집 앞 나무를 긁게 되고 언쟁을 펼치는데, 자신을 향한 복수심에 이웃이 우리를 감시한다고 생각하는 던은 편집증이라는 정신 장애를 겪게 되고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이 깨지게 된다. 한편, 멜라니는 엄마와 평화로웠던 일상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엄마의 정신 장애가 점점 심각해지고 결국 던은 자신의 딸마저 의심하게 되는데…
관전 포인트
정신 장애로 무너져가는 엄마 던과 사랑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한 딸 멜라니의 씁쓸한 현실과 모성애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보스턴 필름 페스티벌에서 4관왕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 받고 개봉 당시 외신의 찬사를 받아 영화가 선사하는 메세지와 연기력이 더욱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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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러닝타임이면서 아쉬운 점이 돋보였던 영화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에 퍼질 때 강남에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떤 사람이 빌딩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을 좀비로 만든다는 내용인 <강남좀비>는 티아라의 지연을 출연으로 많은 관심을 이끌었다. 하지만 러닝타임이 1시간 20분이고 보통의 좀비 영화들과 달리 대충 만든 것 같고 좀비들이 자신이 좀비가 되기 직전에 했던 행동들을 함으로서 재미를 반감 시켰다. 또한 강남에 좀비들이 몰리는게 아니라 빌딩 중 한 곳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그곳을 탈출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나온다.
특히 강남의 건물주가 갑질을 일삼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데 결국 좀비가 되는 최후를 맞이한다. 또한 유튜브를 한다는 핑계로 직원들에게 월급도 못주고 성추행을 일삼는 악덕 사장도 좀비가 되버린다. 스케일이 크진 않지만 마치 강남의 문제점을 풍자하는 듯한 이 영화는 그곳이 진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갑질과 성추행같은 범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최후를 맞이한다는게 통쾌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사는 강남에서 좀비들이 점령한 건물을 빠져나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코믹하기도 하고 무언가 아쉽기도 했다. 이 영화가 끝나고 쿠키 영상이 나오는데 마치 강남좀비 2가 나올 것 같다는 예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 미숙한 점들도 많고 러닝타임이 짧은만큼 가벼운 영화로 보는 걸 추천한다. 어쨌든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말고 짧은 킬링 타임 영화로 보는게 좋을 것이다.
강남에 좀비 한 명이 강남 건물
하나를 감염시킨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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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결산 - 리뷰는 못 했지만 추천하는 독립영화 7작품 l 상 1편 ( #로그인벨지움 #빛과철 #혼자사는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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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따뜻한 연말 보내고 계신가요!
또 1년이 이렇게 지나가네요...! 어느덧 유튜브를 시작한지도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올해도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죠!
시기가 많이 아쉽긴 하지만, 더 많은 작품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서
이번 연말결산 영상에서는 제가 리뷰는 못했지만 극장에서 보고 추천드리는 작품들을 준비해보았는데요!
영상이 조금 길어서 3작품, 4작품 나누어서 올릴게요 :)
그럼 내일도 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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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악녀 크루엘라, 패션계를 접수하다!
101달마시안을 새롭게 재해석한 디즈니 영화 크루엘라가 상영중이죠.
엠마 스톤이 크루엘라 역을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요.
정말 기대 이상으로 잘 어울려서 너무 멋지고 또 이상하게도 보이기도 해요.
과거 영화와는 다르게 악녀의 길을 가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조금은 다른 길을 가려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크루엘라의 머리가 흑과 백으로 딱 나뉘어 있는 것처럼 기묘하게 균형감이 살아있는 영화에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 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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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메인 예고편
서울에서 사업으로 잘나간다느 형 토오루의 말만 믿고 아들을 데리고 무작정 한국으로 날아온 츠요시는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형 때문에 하루아침에 낯선 길바닥에 나앉을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토오루는 기발한 사업 아이템이 있다며 좌절한 츠요시를 꼬셔 강릉으로 향하고, 기차 안에서 우연히 사연이 가득해 보이는 삼남매 솔, 봄, 정우를 만나 동행하게 되는데,, 불운만 가득했던 인생에 벌어진 우연 같은 운명! 기적이 간절할 때, 우리는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