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슬2021-11-24 23:30:54
꼭지 없는 몸
[광주여성영화제] 단편영화 리뷰 2 -젖꼭지 3차대전-
‘젖꼭지 3차 대전’은 방송국 내 여성 몸에 관한 검열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다소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감독은 ‘블랙코미디’ 장르를 염두해두고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올해 ‘괴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최성은 배우가 주연을 맡았는데, (사실, 최성은 배우가 출현했다고 하여 궁금함이 컸던 영화였다) 괴물에서 보여준 연기와 정반대라 신선하면서도 어색함이 있었다.
이 영화는 다소 ‘어색하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소재의 무거움 때문인지, 과장되게 표현하며 그 무게를 떨치고, 최대한 유쾌하게 풀어가기 위해 힘을 많이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있었긴 하였으나 작위적이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중요한 이유를 말해보자면, 어떻게든 말을 하였다는 점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젖꼭지’를 마치 없다는 듯이 대하는 이 미디어, 특히나 대중과 꽤 밀접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방송계에서는 금기시 된다는 모순점이 참 기가 막힌다. 단지 성별의 구분에 따라서 여성의 신체는 성적대상화가 당연시되고, 이에 수치스러운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이런 불합리한 인식에 부정하지 않는 것은 그 풍토를 유지시키며 힘을 가하는 것이다. 이에 영화는 ‘너희들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식의 모습을 비춰주는 것이 대리 통쾌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통쾌함을 선사하기 위해 다소 유쾌함을 끌어 내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유쾌함을 잘못 조절하면 되러 우스꽝스럽게 표현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말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노브라로 인해 옷의 굴곡으로 보이는 젖꼭지의 모양, 젖꼭지라는 언어 그 자체, 여아의 젖꼭지. 여성들의 젖꼭지는 하염없이 모자이크 처리가 된다. 우리는 언제까지 가려져야 하는 것일까.
Relative contents
-
- 나는 그의 신념에 동의한다.
*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영웅 스토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마블을 만난 뒤부터는 챙겨보고 있다. 마블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을 그려낸 ‘마블 코믹스’로 시작하였다. 지금은 그 캐릭터들로 영화를 만들어서 우리나라에선 ‘마블’ 하면 영화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마블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곳이 ‘DC’인데 슈퍼맨, 배트맨 등이 이곳에 소속되어 있다.
예전에 본 어떤 리뷰에 "디씨의 영웅에는 스토리가 없고, 마블의 영웅은 스토리가 있다"라고 했는데 그 말은 참말로 찰떡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캡틴 아메리카는 아직도 애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라서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 꾸역꾸역 챙겨보기만 한다.
사실 어벤져스에 대한 그리고 마블에 대한 리뷰는 검색만 해도 많이 나온다. 약 1,100만의 관객이 있었으니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보라색 악당인 타노스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블의 전반적인 세계관이나 영웅에 대한 캐릭터 분석도 재미있지만, 환경운동가로서 타노스의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음모론이나 미스터리도 참 좋아한다. 언젠가 스쳐 지나가며 읽었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이 인구의 수를 조절하기 위해 행하는 자정작용 같은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나에겐 신뢰감을 주는 이야기였다. 조금 다르게 말해서 이 말이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연은 오염된 것에 대해 자정작용을 끊임없이 하고 있고,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면 무의식중으로 그런 행동들을 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코로나바이러스도 '인재'냐 '자연재'냐의 논란이 많이 있지만 인재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말을 쓰면 아주 조금은 쉬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도덕적으로 혹은 인성적으로 부족한 사람의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완성형은 아니니까 하고 위안을 해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말도 안 되고 아주 위험한 발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영화에서 타노스가 딱 비슷한 말을 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구는 늘어가고 격차는 심해지고.
타노스가 자신의 고향인 타이탄의 인구를 줄이는 것을 제안했지만 설득이 되지 않았고, 결국 망해버리고 말았다. 타노스는 (아마도)자신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심지어 딸처럼 아끼는 가모라 고향과 그와 비슷한 몇 개의 별에서 인구를 줄이는 것이 답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이를 전 우주적으로 확장할 방법을 찾아서 실행에 옮건 것뿐 아닐까?
다들 알고 있겠지만 지금의 지구는 타노스가 걱정하는 딱 그런 상황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몇 년 전, 아니 몇 개월 전만 해도 기후위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이제는 지상파의 대기업 광고에서도 '기후 위기'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남의 이야기였던 재난이 나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기까지 인정하게 만들게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코로나로 인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여름 우리나라에는 물폭탄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 현상을 기후위기로 인식한 국민들이 많아졌다. 수치로 따지면 관측 이래 가장 강수량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나라에도 이상 기후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20년은 최근 10년의 어떤 해 보다도 가장 한국의 사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난 해이기도 했다. 이를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이 줄어서라고 극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다시 돌아온 뚜렷한 계절의 변화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렇다고 타노스의 방식이 전부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 없고, 잘살고 못살고 대단함과 비루함 관계없이 랜덤으로 반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참 우습게도 내가 사라지는 사람 명단에 있더라도 그렇게 나쁜 상황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버렸다. 타노스 역시도 본인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손가락을 튕겼다.
코로나로 인해 인간의 간섭이 줄면서 나타나는 다른 변화들도 있었다. 인간이 찾지 않는 해변과 도시에 야생동물이 찾아왔고, 배가 다니지 않으니 물이 깨끗해졌고, 비행기가 적게 날아다니니 하늘이 맑아졌다. 환경운동가들이 늘 말하던 '인간의 활동'이 줄어들게 되면 변화하게 될 자연과 환경은 증명해 보일 길이 없었는데 바이러스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라 불리는 인간의 활동이 조금 줄어든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변화가 나타나는데 반이나 줄어들게 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기대가 되기도 한다면 위험한 발상일까?
그래서 그런지 타노스는 내가 본 마블의 캐릭터 중에는 가장 영특하고 인간적이고, 대의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근데 그 목적이 개인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었고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겉으로 표현할 줄 아는 그런 캐릭터였다. 사실 보면서는 '가식 아니야?' 했고, 그가 다른 캐릭터들을 죽이는 것에는 화가 났지만 결국엔 그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그런 이중적인 마음마저 생기게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타노스가 아픈 몸을 이끌고 어떤 오두막 같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씬에 대해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요즘 현대인들이 바라는 삶이 아니냐며 웃었다. 퇴직하고 시골 내려가서 휴식하는 삶, 타노스, 우리의 타농부는 대의를 이루고 휴식의 정점인 귀촌까지 해냈다고 말이다.
그래서 다음 편이 기대된다. 감독(안소니 루소, 조 루소)들이 이번 편은 전적으로 타노스의 시점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했다. 이번 편에서는 타노스의 인간적인 면이 아주 조금 나타났지만 다음 편에서 분명 그 마음이 극대화될 것이고 (귀촌해서 혼자 살다 보니 외로움이 증폭될 것이라 판단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들이 그를 파멸로 이끌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선 파멸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 편에서 타노스의 행복을 바라면서 리뷰 끝.
-
- 부패는 어떻게 완성되는가?
(2024년에 쓴 글을 포스팅한 것이다.)
12.12 사태에 대해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을 봤다. 한국 역사를 다룬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아파서 보기를 망설이곤 했지만, 그럼에도 극장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어떤 분노는 기억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재미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고, 연출은 더 말할 것도 없다. 2시간 반이나 되는 짧지 않은 러닝 타임 동안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탁월했다.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를 감상할 때면 언제나 '역사를 왜곡하거나 악인을 지나치게 미화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를 하곤 하는데, 적어도 이 영화에 한해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불필요한 자극 없이 그 당시의 무력함과 분노를 충분히 끌어내는 힘도 있다. <서울의 봄>의 탁월한 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는 영화 속에서 '전두환'(극 중 이름은 '전두광')이 묘사된 방식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1. 부패는 어디서 싹트는가?
전두환과 같은 독재자에 대해 다룰 때, 우리는 부패에 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부패란, '정치, 사상, 의식 따위가 타락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타락이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을 '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할까? 흔히 사람들은 타락이 아주 거창한 계기에 의한 것이라고 상상하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타락은 대개 아주 사소한 이기심에서 자란다. 내 것, 내 밥그릇, 내 사람을 챙기고자 남의 희생에 눈감는, 그런 종류의 욕심 말이다.
'전두광'과 '노태건', 그리고 그들이 세운 '하나회'도 다르지 않다. 거창한 명분이 있을 것만 같지만, 그들이 그토록 활개를 쳤던 이유는 손 쉽게 힘과 지위, 명예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소위 그 당시의 '엘리트'를 자처하면서, 비슷한 욕심을 가진 사람들끼리 손을 잡고 삼삼오오 모여다니면서. 질나쁜 깡패들이 그러했듯이. 그건 '정석적이고 도덕적인' 길보다 훨씬 쉽고 간편했을 것이고, 이것이 그들이 기꺼이 타락했던 이유이리라. 그들이라고 어디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몰랐으랴마는, 어쨌든 그들은 그 모든 불의에 눈을 감다 못해 그것을 직접 이끌어 나가길 택했다.
하나회라는 카르텔에 대한 충성심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 집단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떡고물'이 먹음직스러웠을테니까. 다가올 이익에 대한 어떤 기대 혹은 약속은 마치 마법처럼 소속된 사람을 홀리곤 한다. 나치당과 히틀러에 현혹된 옛 독일의 국민들처럼, '우리'를 챙기고 '남'을 배척하는 사이 사람은 도덕과 정의에 무감해지고, 잔혹해진다. 나와 내 가족, 내 친구를 챙기는 그들의 지극히 이기적인 이타심 속에 부패의 씨앗이 자라난 것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된다는 말이 있듯, 부패의 씨앗은 쉬이 자란다. 부패는 그것에 눈감거나 당연시 여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힘을 얻고, 빠르게 몸을 부풀린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다다라서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경지에 이르고 만다. 이 사소한 부패가 모이고 자란 결과가 바로 전두광과 하나회다.
부패와 불의에 대해 논한다면 정의에 대해서도 논해야 마땅할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 정의는 개인 간의 관계와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른 길'을 말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이유들에 의해 사람들은 너무나 손쉽게 이 '바른 길'을 벗어나고 만다. 정의를 지키는 것이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
극중 이태신은 이러한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는 그저 그 자리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을 지키고자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부패는 너무나 하찮은 이유에 기인하고, 그래서 쉽게 눈감게 되니까.
2. 참, 멋없는 부패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탁월한 점은 '부패'의 멋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렇다. 우리는 많은 영화 속 '매력적인 악역'에 열광하곤 하지만, 실상 악당은 '멋있지 않다'. 그들은 치졸하고, 추악하고, 저열하다. 전두광은 그 모든 멋없음을 아주 탁월하게 표현한 캐릭터다.
극 중 전두광의 '쿠데타 계획'을 한번 살펴보자.
전두광은 자신의 부패에 가담하지 않은 육군참모총장을 제거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명분이 필요했다. 명분 없는 혁명은 결코 인정받을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그를 모함하기로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살해 공모자로 만듦으로써. 그러나 참모 총장은 그보다 지위가 높았고, 그를 체포하려면 더한 공권력이 행사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의 승인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또 대통령의 승인을 받으려면 일정한 절차를 통해 올려야 하므로 참모 총장이 그 사실을 모를 수 없게 되고, 그가 이 모든 일에 대비하게 되면 상황이 곤란해진다. 그래서 전두광이 선택한 것은, 그 모든 절차와 상식을 무시하고 참모 총장과 대통령 승인을 동시에 받는 것이었다. 자신과 하나회의 인맥과 군대를 활용해서! 그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우악스럽고, 폭력적인 발상이었다.
계획만으로도 기가 막히는데, 계획을 이행하는 과정도 엉망진창이다. 한밤중에 대통령을 세 번이나 찾아가 떼를 쓰지 않나, 강경하게 나오는 이태신의 작전에 일희일비하질 않나. 치밀하지 못하게 세워진 계획 위에 하나회는 우왕좌왕하고, 학연, 지연, 혈연 따위로 끌어모은 권력과 병력으로 뚫린 구멍을 땜질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게 '먹혔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망설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이 전두광의 길이 더 낫다고 생각하거나,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으니까. 그 부패와 악의를 묵인한 대가는 처참했지만, 그때 그들은 그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알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거나. 또 한편으로는 전두광의 악의가 너무나 비상식적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시민과 아군을 기꺼이 인질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상식적인 사람이 '사람'보다 '정의'를 우선시하지는 못하리란 것을 알았고,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모든 사건이 일단락되고,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전두광은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며 승리에 고취된다. 그것은 그가 벌인 그 모든 일이 그 개인의 '배설된 욕망'에 기인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추저분스러운 환희였다.
3. 오랫동안 곱씹을 수 있는 웰메이드 영화
영화는 노골적인 폭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폭력의 위압과 위협을 보여준다. 우리는 인물의 대사와 상황, 미장센을 통해 '평화와 친선'을 가장한 씬들의 이면에 강압적이고 우악스러운 폭력이 자리함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서 그 폭력을 미화하지 않고, 하찮고 추악한 것임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심각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 곳곳에서 활약하는 재치있는 유머들도 눈에 띈다. 악당들의 하찮고 치졸한 면면들을 풍자하는 그 장면들은 단순히 웃기려고 넣은 것이 아니라, 상당히 고심해서 넣은 영화적 장치로 보인다.
몇몇 반복되는 대사들을 포착하는 것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재미있는 방법일 것이다. 가령 아래 두 대사는 전두광과 이태신, 둘 모두의 입에서 나온 말인데, 대사는 같지만 그것이 내뱉어지는 상황과 경위, 인물들의 생각이 달라 극적인 대비를 준다.
'니편 내편이 어디있습니까. 대한민국 육군은 모두 한 편입니다'
'가려거든 여기서 나를 쏘고 가라' / '쏠 거면 쏴라. 갈 길이 바쁘다.'
위 대사는 전두광과 이태신 모두의 입에서 나왔지만 그것이 함의하는 바는 다르다. 전두광이 말하는 '우리(육군 등)'는 언제나 '나(전두광)'을 향해 있지만, 이태신의 '우리'는 그가 소속된 집단, 나라를 지키고 시민들을 보호하는 군 전체를 향한다. 같은 말을 해도 전두광은 과장되고 꾸며낸 거짓을 말하지만 이태신은 그렇지 않다. 그것이 이 두 인물의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여러 의미에서 아주 잘 만든 영화다. 여러 번 곱씹으며 생각하게 된다. 내가 속한 곳에는 어떤 불의와 부정이 있을까? 나는 그것을 알고 있을까? 혹시라도 내가 그것에 동조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같은 것들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둘러보고, 더 바른 길을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날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
- <우리, 둘> - ‘우리를 지키기 위한 느리고 아름다운 몸짓’
우리, 둘 (Deux, Two of Us)
개봉일 : 2021.07.28 (한국 기준)
감독 : 필리포 메네게티
출연 :바바라 수코바, 마틴 슈발리에, 레아 드루케, 제롬 바랑프랭, 허브 소근
‘우리를 지키기 위한 느리고 아름다운 몸짓’
젊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늦었다고는 할 수 없는 인생의 한순간, 우리, 둘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 순간. 니나와 마도는 당신을, 나를,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 둘>은 노년에 접어든 한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며 올해 5월 개봉했던 <슈퍼노바>가 함께 떠올랐다. 모두가 찬란하다고 말하기엔 어색한 느낌이 드는 노년의 사랑. 모두가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어려운 동성 간의 사랑.
우리가 사랑하고, 너와 내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완전하게 무시하기엔 우리 앞에 놓인 것이 너무도 많기에, 우리를 가릴 수 있는 그늘막 밑으로 숨어들게 되는 사랑. ‘아름다운 우리’가 있지만 당당할 수 없었던 사랑. 늦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충분히 행복한 사랑. 자주 다뤄지지 않는 색을 띤 사랑이지만 이 또한 충분히 아름다운 사랑임은 틀림없다.
조금 방심한 채 상영관에 입장했는데, 영화를 보고 난후엔 꽤나 긴 여운에 사로잡혀 니나와 마도의 사랑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니나와 마도에겐 전부인 사랑이지만 누군가는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사랑에 대해. 이제 세상은 변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사랑에 큰 불만을 갖지 않는다!고 외치지만 여전히 짊어지기엔 버거운 사랑과 인생의 무게를 느끼며 니나와 마도의 눈빛에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흔들림 없이 행복하다기보단 불안하게만 느껴지는 순간들의 연속이지만 사랑하기에 지켜내야만 하는 우리, 둘. 천천히, 끊임없이 이어지는 니나와 마도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몸짓이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니나와 마도의 사랑이 무한하다 한들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기에, 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순간이 더욱 숭고하고 뭉클하게 다가온다.
우리, 둘 시놉시스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맞은편에 살고 있는 니나와 마도. 마냥 가까운 이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은 20년째 사랑을 이어온 연인이다. 은퇴도 했으니 여생은 로마에 가서 편하게 살자는 니나의 제안에 마도는 가족들에게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기로 한다.
마도의 생일, 쉽지 않은 고백 과정에서 그녀는 결국 충격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니나는 가족으로부터 마도를 되찾을 플랜을 짜기 시작하는데…
온 세상을 떠나보내도 함께하고 싶은 두 여인이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랑 이야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니나와 마도는 서로를, 함께하는 우리를 사랑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며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니나와 마도를 제외한 세상은 둘을 ‘오래된 이웃’으로만 알고 있다. 마도는 가족들에게도 자신의 사랑을 숨겼고 프레드릭과 앤은 엄마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삶이 충분하다고 느껴질 만큼 사랑하는 우리, 둘.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우리, 둘의 사랑. 두 사람은 짧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사랑을 속삭인다.
니나와 마도는 점점 빠르게 느껴지는 인생을 실감하며 이제 은퇴를 했으니 둘이 처음 만났던 로마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자녀를 두지 않은 니나는 다른 고민 없이 빠르게 집을 팔고 떠날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마도는 프레드릭과 앤에게 이사 계획을 밝히려고 하지만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한다.
“할머니 정말 괜찮아요?”
마도의 생일날, 마도는 비밀을 털어놓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다. 할머니의 미묘한 불안감을 느낀 손자 테오가 이렇게 묻는다. “할머니 정말 괜찮아요?”
이 사랑은 불안하다. 사실 이 사랑은 언제 끝을 맞이할지 알 수 없다. 두 사람의 나이와 사회적 시선을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은 내일 당장 갑자기 이별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다.
똑딱똑딱 움직이는 마도 남편의 시계 소리, 브레몬트와 니나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점점 빠르게 들려오던 세탁기 소리, 프라이팬이 타들어가는 소리, 니나가 찻잔을 톡톡 때리는 소리, 마도가 없어진 날 주위에 들려오던 어지러운 사람들 소리가 주던 불안감. 행복하고 부드럽게 흐르기보단 긴장되고 초조하게 흐르던 순간들. 마도가 쓰러지던 날, 평온했던 두 사람의 시간은 잠시 멈췄다 이내 경직된 상태로 가쁘게 흐른다.
“미안해. 내가 한 말, 진심이 아니었어.”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날, 니나는 마도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엔 친한 이웃일 뿐인 니나는 마도의 옆을 지키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니나의 집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오래 쓰지 않은 느낌의 침대, 텅 비어버린 냉장고, 깔끔하다 못해 허전한 느낌의 거실.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마도의 방과는 사뭇 다른 공기가 흐르는 방 안에서 니나는 여느 날보다 더 길고 느린 밤을 보낸다. 그렇게 긴 밤이 지나고 마도가 돌아왔음에도 니나는 마도를 가까이서 만나지 못한다. 니나는 현관문 구멍으로 간병인 뮤리엘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몰래 들어가 겨우 마도의 손을 잡아본다.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사과와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여봐도 마도는 반응이 없다.
“기억 안 나? 우리야.”
가족들은 마도에게 간병인을 붙이지만 마도의 상태는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니나는 마도를 만나기 위해 매일 문을 두드린다. 마도가 산책 나가는 날, 타이밍 좋게 함께 집안에 들어간 니나는 뮤리엘에게 신발을 건네받아 마도에게 신겨준다. 애정이 가득한 정성스러운 손길에 신발은 부드럽게 마도의 발에 맞아들어간다.
뮤리엘에게 마도는 돌봐야 하는 환자고, 니나에게 마도는 사랑하는 연인이다. 뮤리엘이 아무리 오랜 경력의 간병인이라 해도 뮤리엘과 니나의 행동과 눈빛엔 각자 다른 마음이 담겨있다. 그 차이 때문일까, 마도는 니나의 보살핌을 받으며 조금씩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 스스로 걸음을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된 마도. 두 사람에게도 어슴푸레 희망이 보이는듯했다.
“내가 마도의 유일한 사랑이죠”
앤은 엄마(마도)의 유일한 사랑이 오래전에 떠난 아빠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빠와 결혼을 했고,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아무도 만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년 만에 밝혀진 엄마의 비밀은 앤을 혼란스럽게 했고, 충격을 받아들이지 못한 앤은 마도를 호스피스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니나는 한순간에 마도를 빼앗긴다. 마도의 ‘진짜 유일한 사랑’은 니나인데.. 마도의 남편이 책장에 장식되어 있는 오래된 장식용 시계와 같은 인연이라면 니나는 그 시계를 대신할 모든 것인데, 앤과 프레드릭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노년의 나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거나, 사랑에 목숨을 걸고 영원을 맹세하기엔 늦은 순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니나와 마도는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둘은 어떻게든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호스피스에 들어간 마도는 빙고판을 보며 니나의 번호를 정확히 떠올리고 전화를 건다. 겨우 호스피스 탈출에 성공한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문안엔 희망이 아닌 허망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스 안에 들어있던 돈은 뮤리엘이 훔쳐 갔고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로마로 떠나기는커녕 당장 내일도 명확히 보이지 않는 상황. 니나와 마도는 절망적인 현실을 뒤로하고 서로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20년 전과 같은 음악, 그때처럼 마주 잡은 손. 20년이란 시간에 맞춰 늙어버린 몸은 전보다 무거워졌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우리.
마도는 느린 걸음으로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닫는다. 앤이 선물했던 고양이가 복도로 쫓겨나고, 두 사람을 방해하는 현실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진다. 니나의 집안엔 이제 마도와 니나뿐이다. 희망도 탈출구도 보이지 않지만, 니나와 마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는 한 그저 서로를, 우리를 사랑할 것이다. 나의 유일한 사랑인 그녀가 내 남은 인생의 모든 것이자 의미니까.
우리는 연애를 하며 현실적 문제를 맞이했을 때 현실을 따라 사랑을 포기할 것인지, 조금 힘들어도 사랑을 붙잡을 것인지 수없이 고민한다. 내가 지금껏 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먼저 ‘사랑’을 포기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은 끝에 결국엔 후회에 도달했다. 사랑을 지키는 힘은 젊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상대와 우리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 둘>을 보며 한 번 더 느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세상을 내던져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사랑,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랑. 서로의 등을 감싸 안은 팔을 절대로 풀지 않을 사랑. 유한함을 마주한다 해도 포기하지 않을 무한한 사랑. 물리적 한계를 마주하기 전까진 이 아프고 아름다운 사랑이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
- 균열의 시작, 변화의 끝맺음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해피엔드> 시사회의 리뷰입니다.
지진, 시위, 10대의 끝자락.
<해피 엔드> 속 모든 것은 흔들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변화의 조짐 앞에서 방황하면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아이들.
그들은 작은 꿈 하나만으로 넓은 세상을 꿈꾸고, 균열 어린 세상 앞에 생채기를 입는다.
몰래 클럽과 학교에 숨어들어 신나는 음악 파티를 벌이는 다섯 명의 친구들.
그 중 유타와 코우의 짓궂은 장난이 교장을 자극하고, 학교에는 학생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통제하는 AI 감시 체제가 도입된다.
이들이 살고 있는 근미래는 격동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이미 수많은 다국적 인종으로 교실이 구성되어 있음에도 분열을 부추기듯 일본인과 비일본인의 구분은 극명하고, 허공에 일렁이는 전광판이 일본 도심을 비추는 가운데 사람들은 여전히 몸을 던져 시위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지진은 오죽하랴, 흔들리는 땅 위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혼란에 잠긴다.
그곳에서 10대의 끝자락에 서 갈림길로 나뉘는 아이들. 왜 그 시절의 우리는 무심코 평생 함께할 거라는 막연한 착각을 반복했던 걸까.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태생을 찾아, 또는 꿈을 좇아, 그리고 옳음에 눈을 뜨고 제각기 나아간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유타는 아직도 변함없이 어린 아이같은 인물이다. 여전히 음악으로 잘나가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하고 고리타분한 선생들이야 따돌리면 그만.
하는 것이라고는 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악기를 훔치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뿐. 유타와 가장 가깝던 코우는 슬슬 유타의 철없는 행동을 전처럼 받아주기가 힘들다.
그러나 변함없이 음악과 친구가 전부인 유타 또한 세상의 벽에 부딪힌다. 악기를 훔쳐 홀로 아지트로 옮겨온 유타. 그러나 빈 건물에 위치했던 아지트는 하루아침에 재개발이 시작되어 몽땅 폐기처분을 당한 이후다.
갈 곳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유타. 유타는 어떤 말도 꺼내지 않는다. 모두가 떠나가는 끝자락에서 머물기를 고집한 그에게 남은 것은 빈 자리의 고독이다.
작은 균열이 세상을 바꾸기까지
흔들림은 곧 불균형을 뜻하지만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불합리한 외국인 거주자와 감시 문제로부터 힘을 모아 저항을 시작하는 아이들.
이런다고 무언가 바뀌기는 할까.
목소리를 내었다가 괜히 후회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과 배고픔에 휩쓸리면서도 아이들은 교장에 대항해 농성을 벌이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의 저항은 비록 거창한 것이 아닐지라도 결국 학교라는 작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불씨가 된다.
결국 흔들림을 넘어 세상은 변화한다. 대지진이 세상의 판을 바꾸듯 과도기를 거쳐 졸업식을 마친 아이들은 각자의 갈림길을 향해 새로운 인생의 장을 시작한다. 그 마지막 배웅의 끝에서 그들은 서로를 응원하며 꼭 끌어안는다.
작별한 다섯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가능성으로 나아갈까. 영화는 끝내 그 갈래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찰나의 가능성을 잔잔히 비출 뿐이다.
결국 모든 삶의 흔들림이란 처음은 석연치 않을지라도, 그 끝에는 응원의 작별 인사를 건네는 해피엔드다.
ps. 마치 유타의 꿈을 대변하듯 영화를 이루는 요소 가운데 무엇보다 강렬한 것은 장면 사이사이 기민하게 빛나는 음악이었다.
-
- 왕실을 포기한 그녀가 되찾은 '이것'
-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하는 영화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는 배우가 그 인물을 얼마나 잘 재현해내는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외모는 물론, 말투, 표정, 의상, 걸음걸이까지, 익숙한 배우의 외형에서 실제 인물의 특징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연기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외형적 유사성을 먼저 따져본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대보단 우려가 앞섰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현장 사진을 보았지만, '왕세자비'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어딘지 모르게 잘못 끼워 맞춘 퍼즐 같았습니다.하지만 이는 올해 들어 했던 걱정 중에 단연코 가장 부질없는 걱정이었습니다. 누구도 크리스틴 스튜어트보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여정 위의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완벽하게 연기해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영화 <스펜서>에서 만난 크리스틴 스튜어트 표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소개합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3월 11일(금)에 진행된 <스펜서> 시사회에서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스펜서>는 2022년 3월 16일 국내 개봉했습니다.스펜서Spencer절망스러운 듯 고개를 파묻은 '다이애나'의 모습과 화려하고 아름다운 순백의 드레스가 모종의 대비를 이루는 압도적인 포스터는 개봉 전부터 소셜 미디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이 장면은 왕실의 식사 자리를 박차고 나온 '다이애나'가 화장실에서 속을 게워내는 모습이죠. <스펜서>는 영국의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가 왕실 가족들과 별장에 모여 보내는 크리스마스 연휴 3일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가족들과 보내는 연휴는 편안해야 마땅하지만, 안타깝게도 왕실의 연휴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연휴를 보내기 위해 별장에 도착하면 우선 모든 왕실 사람들은 몸무게를 재야 합니다. 불어난 몸무게로 연휴를 즐겁게 보냈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이 왕실의 전통이거든요. 마음대로 창밖을 볼 수도 없습니다. 사진 한 장 건지기 위해 별장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파파라치를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죠. '다이애나'는 창밖을 보며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해보려 하지만, 수행인은 윗선의 지시에 따라 별장의 커튼을 박음질해버리고 맙니다. 음식 하나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고, 옷 하나도 마음대로 입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휴일을 불편해하는 것은 오직 '다이애나'뿐이죠.갑갑함을 느끼는 '다이애나'는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왕실 생활에 대한 속내를 진솔하게 드러냅니다.There’s the past, the present, future.세상엔 과거, 현재, 미래가 있어.Well here, there is only one tense.여긴, 오직 하나의 시제뿐이야.There is no future.미래가 없어.Past and the present are the same thing.과거와 현재는 곧 같은 것이지.'다이애나'의 말처럼 왕실의 현재는 곧 왕실의 과거입니다. 재미로 시작한 과거의 행동(몸무게 재기)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현재의 관습으로 남는 곳이 바로 영국의 왕실이죠. 몸무게 재기 전통은 왕실이 실체가 없는 의례만을 따르는 곳임을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는 왕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왕실의 의례에 거부감을 느끼는 '다이애나'의 심정만을 착실히 뒤쫓습니다. 덕분에 영화는 단 3일의 시간만을 다루면서도, 관객이 '다이애나'가 왕세자비로서 겪었을 그동안의 고통을 제대로 통감하도록 장치하죠.⊙ ⊙ ⊙<스펜서>에는 두 명의 왕세자비가 등장합니다. '다이애나'와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였던 '앤 불린'입니다. '앤 불린'은 '다이애나'가 동질감을 느끼는 과거의 인물입니다. 왕실에서 버려져 결국 사형에 처해진 비극의 왕비죠. 둘은 남편인 왕세자가 외도를 저질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이애나는 왕세자의 불륜을 묵인하는 왕실 사람들 사이에서 자꾸만 그녀의 환영을 목격합니다.왕실에서는 과거가 곧 현재인 만큼, '다이애나'도 자신이 '앤 불린'이 될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앤 불린'의 환영은 오히려 '다이애나'가 과거의 전통만을 따르는 왕실의 굴레를 끊어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다이애나'는 '앤 불린'의 환영에서 그녀를 옥죄는 왕실의 전통, 의례, 거짓, 그리고 이로 인한 정체성 상실에서 벗어나라는 무언의 외침을 듣습니다. 결국, 그녀는 왕세자가 선물한 진주 목걸이를 끊어버림으로써 왕실에서의 탈출을 결심합니다. 진주 목걸이는 왕세자가 '다이애나'와 그의 내연녀에게 동시에 선물한, 왕실의 부정을 상징하는 물건이었죠.왕실로부터 버려지는 대신 왕실을 직접 벗어나는 것을 택한 '다이애나'. 그녀는 하기 싫은 꿩 사냥에 억지로 나선 아이들을 데리고 별장을 나섭니다. 그들이 탄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마이크 루더포드와 크리스토퍼 닐의 'All I need Is A Miracle'. 그녀에게 기적이란 참으로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죠.현재가 없던 왕실에서 스스로 현실을 개척한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 '스펜서'를 되찾습니다.⊙ ⊙ ⊙이 작품은 제목 자체가 그러하듯 오직 '다이애나 스펜서'에게만 주목하는 영화입니다. '다이애나'의 감정 변화만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죠. 흔치 않은 여성 원톱 영화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주인공으로서 해내야 할 몫을 착실히 해냈습니다.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털털하고 반항적인 이미지는 왕실의 규율 안에서 위태롭게 버텨내는 '다이애나 스펜서'를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미국 출신인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영국의 왕세자비를 연기하기 위해 입 모양을 아예 바꾸고, 악센트 코치와 발음을 연습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습관과 소통 방식을 익혀 완전히 그녀 자신이 되려고 노력했다고도 밝혔고요. <트와일라잇> 시리즈로만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접하신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그녀의 색다른 모습을 느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 ⊙덧붙여, 이 영화는 포스터만큼이나 훌륭한 영상미를 자랑합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찍은 클레르 마통 촬영감독이 필름으로 찍은 영상은 관객이 1990년대에 무사히 안착하도록 돕죠.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마치 매 컷이 완성도 있는 사진 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답니다.극 중에서 '다이애나'는 천 년 뒤에 자신이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해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녀의 삶을 비극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지 고작 1년 만에 파파라치를 피하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영화는 그녀의 삶을 '비극으로 끝난 다이애나 스펜서'가 아닌 '비극에서 벗어난 다이애나 스펜서'로 기록합니다. 다이애나 스펜서의 이야기를 다룬 여러 작품 가운데 이 영화가 특히 돋보이는 이유입니다.Summary왕비가 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찾기로 결심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새로운 이야기 (출처: 씨네21)Cast감독: 파블로 라라인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샐리 호킨스, 티모시 스폴, 숀 해리스
-
- [JIMFF 데일리] 젊은 음악가에게 보내는 편지
세상에는 정답 없는 일들이 많다. 영화와 음악도 그렇다. 일반적인 규칙이나 경향성의 갈래는 있지만, 단일한 규칙이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취향의 영역도 존재하니까. 이런 길을 가는 건 어렵지만, 결국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면밀히 살피며 가야 하는 길일 것이다.
영화 <당신의 모든 것> 주인공 서준(강찬희 분)은 아직 그 길의 초입에 서 있는 존재다. 명확하고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 은정(김규리 분)이 가르치는 내용은 그에게 잘 흡수되지 않고, 클래식을 듣고 싶지 않아 하기도 하고 지긋지긋하다는 표현을 쓸 만큼 클래식에 짓눌려있는 동시에 클래식이 자신의 유일한 길이라 생각해 매달리고 있다. 재즈를 기계적으로 거부하지만 우연히 하게 된 친구들과의 합주는 처음부터 자기 옷처럼 들어맞는다.
이런 구도에서는 어느 한쪽을 정답처럼 바라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쉽게 올라온다.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재즈의 매력을 내세우고, 은정의 꼿꼿한 태도를 마치 클래식만 고수하는 콧대 높은 사람의 재수 없는 편견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느 한쪽을 정답으로 몰아가는 낡은 해법이 아닌, 자기 길을 찾아가는 젊은이의 미욱하고 서툰 여정으로 풀어냈다.
한 음만 쳐도 곧바로 “다시.”라는 말로 서준의 연주를 잘라내며, 은정이 서준에게 가르치고자 한 것은 명료하고 정확한 형식미 쪽이다. 웅얼거리지 말고 손가락에 바늘을 세운 듯 날카롭게 치라는 말은 마치 서준의 인생에 대해 던지는 일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은정의 이런 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은정은 콩쿠르 무대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을 확실히 알고 있고, 서준의 장점과 단점도 명확히 알고 있다. 다만 서준이 스스로 생각하여 찾아내기를 요구하는 은정의 방식은 서준이 흡수하기엔 너무 다른 종류일 뿐.
은정이 몇 번이고 요구한 대로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서준은 계속해서 도구를 활용한다. 메트로놈은 당연히 사용해야 하는 도구라지만, 그 밖에도 끈으로 눈을 감아 가리거나 얼음 주머니를 손에 갖다 대고, 소주를 입에 털어 넣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실패한다. 은정의 가르침을 내치지도 못하지만 수용하지도 못한 채, 정리되지 못한 감정이 이따금 과격하게 분출되어 상황을 악화시킨다.
그러나 모든 젊은 이들은 성장해 간다. 서준의 성장 과정에는 ‘악보에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라’며 악보보다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친구와, 그 과정을 함께하며 서준 안의 음악을 끌어내고 서준에게 믿음을 이야기하는 든든한 연인이 있고, 분명한 기준을 갖고 꼿꼿한 등을 보이는 선생님이 있다. 아직은 피해의식 없이 라이벌을 바라보기도 어려워하고 자기 감정조차 주체하지 못할 만큼 서툰 모습이지만, 음악과 관계 안에서 그는 차차 자라갈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젊은 날의 미숙함을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원석처럼 투박하게 빛나는 서준의 시간을 주변 사람들의 면면이 다정하게 다듬는데, 이는 배우들의 호연으로 훌륭하게 구현된다. 무대 위 아이돌의 모습부터 어두운 시절을 거친 캐릭터 연기까지, 그간 청춘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표현해온 배우 강찬희의 시간이 이 영화에서도 미숙한 청춘의 기쁨과 슬픔을 올올이 빛나게 한다. 은정을 맡은 배우 김규리가 진중한 발성과 단단한 눈빛으로 메트로놈처럼 딱딱 영화의 박자를 휘잡고, 지수 역할 배우 한성민 또한 서준보다 한 걸음 성숙하고 든든한 조력자로서 무게를 더한다. 영화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클래식과 재즈 음악 또한 마치 각각의 등장인물처럼 서준의 성장을 자극하며, 관객의 귀도 즐겁게 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후배 시인에게 쓴 편지 모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떠올렸다. 길을 찾아가는 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 이 영화가 그 책과 닮은 마음을 품고 있다고 느껴졌기에. 오늘도 영화와 음악처럼 정답 없는 세계를 유영하며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주목하고 있을 젊은 이들에게,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 이 영화와 함께 전하고 싶다.
“당신은 젊고 출발선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인내로 대하십시오. 그 문제들 자체를 폐쇄된 방이나 알지 못하는 언어로 쓰인 책처럼 사랑으로 대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당신이 얻지 못한 답을 찾아내려 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당신은 아직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요. 모든 것은 경험입니다.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 살아보십시오.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새 해답 안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낼 것입니다.” (45p,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시간표]
9월 7일 토요일 16:00 세명대 태양아트홀
9월 9일 월요일 10:00 세명대 태양아트홀
-
-
- 모르겠어? 사랑이잖나, 사랑.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명대사 모음
:: BGM
My Life (feat HiTydes) by Broken Elegancehttps://www.youtube.com/user/BrokenEl...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 3.0 Unported — CC BY 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
Music promoted by Audio Library https://youtu.be/1PPq8L3QElA
-
- 영화 <옥수역귀신> 런칭 예고편
당신이 알고 있던 괴담? 그것은 진짜다?
-
- 영화 <플랜 A> 메인 예고편
히틀러와 괴벨스가 자살하며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살아남은 유대인 일부는 '나캄'이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한다. "눈에눈 눈"이라는 구약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들은 나치가 학살한 600만 명의 유대인에 대한 복수로 600만 명의 독일인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