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2021-11-07 21:04:52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아득히 먼 춤.
!!!!!스포일러 주의!!!!!
"아무도 없는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면 소리가 날까?"
파랑의 우울에 관해서 써볼까 한다. 드라마가 끝나고 난 뒤, 나는 파랑이가 별이라고 생각을 했다. 파란 별이 표면온도가 가장 높다는 말도 있으니까.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서야 자신을 봐달라는 식으로 밝게 빛나다가 폭발해서 사라져버린 별.
파랑이가 연극으로 선택한 작품은 신파랑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꺼져가는 태양 또한 파랑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로봇 세 명은 파랑이가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마지막 인류학자가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나는 태양이 왜 꺼져가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 질문을 했다면 아마 이런 대답이 돌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더 이상 자신의 춤이 닿으리라 생각하지 못하겠고, 더 이상 자신의 춤을 봐줄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 그의 춤이 닿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연극을 준비하면서 느꼈을 것이다. 아무도 그의 결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무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파랑이가 마지막으로 극단의 일원들을 만나고 다녔을 때, 닿지 않은 것이 아닌 머리카락을 태워 억지로 끊어버린 것이었단 걸 알았을 때 파랑이의 눈빛은 … 정말 깊고 어디론가 빠져버릴 것 같았다.
파랑이의 집 또한 나에게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 야외에는 어지럽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집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텅 비어있다. 나는 그것이 파랑이의 내면 같다고 생각했다. 파랑이의 우울한 파랑으로 가득 찬 것 같이, 퍼런 색의 소주병으로만 가득 차 있다.
파랑이는 모든 사진에서 항상 웃고 다녔다고 했다. 사실 나는 파랑이가 왜 계속 웃고 다녔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속은 너무 고칠 수 없이 망가져 겉옷이라고 주섬주섬 꺼내 입었던 것일까? 돈도 없고 망가져서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사지 못하고 근육통약으로 어영부영 상처를 덮었다. 그 사이사이 빈틈으로 우울의 파랑이 물 밀려오듯이 밀려왔다. 결국에는 죽을 사람이란 걸 알았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후 적어도 나에게는 닿았다고 말하고싶다.
우리는 각자 닿을 일 없이, 각자의 궤도를 떠도는 별들이다.
별과 별 사이 수억 광년의 거리.
속삭이듯 말해서는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온 몸으로 춤을 춘다.
그 별의 당신에게는 아직 판독 불가의 전파에 불과하겠지만,
언젠간 당신의 안테나에 닿길 바라며,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춤을 춘다.
- 파랑이의 연출 의도.
출처 . 파노라마에디터_먼치킨.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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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 이모와 F 조카의 특별한 동거, 그리고 성장!
이모와 조카 사이의 친밀도는 어느 정도일까? 사람마다 가족 관계에 따라 다르지만, <위국일기>의 이모와 조카는 친밀도 0%다. 이야기만 들었지 얼굴 한번 제대로 본적 없는 남남이기 때문이다. 연결고리라곤 혈연관계 하나뿐. T 성향의 이모와, F 성향의 조카가 만나 이루는 특별한 동거는 같은 구석 하나 없는 두 사람이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과정을 느리지만 무해하고 따뜻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이들의 성장 모습도 함께.
왜 그랬을까? 소설가 마키오(아라가키 유이)는 언니 장례식장에서 홀로 남겨져 갈 곳 없는 조카 아사(하야세 이코이)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그것도 홧김에. 연거푸 이불킥을 날릴만큼의 이 제안은 반려동물도 못 키울 정도로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걸 잘 못하는 본인이 더 놀란다. 혼자 글을 쓰고 사는 것에 익숙한 마키오의 생활을 잘 몰랐던 아사는 그날 이후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모 집에서 함께 지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처럼, 아사는 혼란스럽고 복잡하지만 새로운 세상에 한 걸음을 뗀다.
독특하고도 특별한 성장영화인 <위국일기>의 두 주인공 마키오와 아사의 관계는 가느다란 실과 같다. 오롯이 한 가닥만 이어져 있는 듯한 연의 끈은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팽팽하게 유지된다. 남들 앞에 서는 걸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빈말은 죽어도 못하는 마키오와 정반대로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를 중요하면서 감정적 공감을 잘 하는 아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이 거의 없다. 딱 하나 마키오에게는 언니, 아사에게는 엄마인 미노리(나카무라 유코)가 존재가 있지만, 각각 증오와 그리움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
영화는 너무나 다른 존재로서의 두 인물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린다. 그 중심에는 억지로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마키오의 모습이 자리 잡는다. 극 중 그녀는 성공한 소설가지만 아웃사이더다. 마치 사회가 규정짓는 평범함에 반기를 들 듯, 마키오는 소설을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 푹 빠져 산다. 아사가 온 이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지만, 여느 가족처럼 다정하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 아사에게 ‘널 사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널 절대로 짓밟지 않을 거야.’라는 말처럼 그녀는 사회가 요구하는 멋진(?) 보호자가 아닌 조금은 다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아사를 대하는 보호자로서 최선을 다한다.
아사 또한 이런 마키오의 낯선 모습에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지만, 이내 이모의 진실한 마음을 안다. 그동안 친구 등 자신의 행복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관계에 치중했던 아사는 이모와의 동거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보는 법을 배운다. 그녀는 자기 사랑했던 부모가 사라지고,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절친했던 친구와의 사이가 멀어지는 등 의지할 곳 없이 외톨이가 되어 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마음을 다잡아주는 건 일기다.
자신이 쓰다 말던 노트를 아사에게 건넨 마키오는 하루에 있었던 일이나 마음에 남은 감정을 쓰라고 권유한다. 소설가다운 처방전인데, 이는 아사가 남이 아닌 자신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마치 과거의 마키오처럼 말이다. 이 일기는 한 장씩 채워지면서 누군가가 아닌 오롯이 자신이 원하고, 하고 싶고, 바라는 것들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두 인물은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 의지하며, 성장한다. 사춘기를 관통하는 아사는 물론, 자신만의 세계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마키오도 모두 성장한다. 극 중 아사는 마키오를 보면서 어른에 대한 획일화된 모습, 어른도 친구가 있다거나 모든 걸 다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을 벗어던진다. 어른도 불완전하다는 걸 그때야 깨닫는 이 소녀는 이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재차 확인한다. 그 결과물로서 미완성이지만 그래서 더 좋은 가사를 쓰고, 직접 노래도 부른다.
어른이라면 알겠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과거 언니와의 절연 이후 마키오는 성장을 멈췄다고 볼 수 있다. 나이와 외관상만 어른이지, 과거의 상처로 인한 생채기는 그녀의 성장판을 닫아버린 셈. 운명의 장난인지 증오했던 언니의 딸인 아사를 통해 그녀는 굳게 닫혔던 마음을 조금은 연다. 그리고 아사와 반대로 자신이 아닌 타인을 이해하는 시도한다. 이 과정을 통해 마키오는 어른이 된다. 감독은 후반부 마키오의 고향 해변을 배경으로, 아사 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서서 이해의 시도를 하는 마키오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물론, 두 인물이 중심이 되다 보니 주변 인물들의 스토리가 뻗어 나가지 못하고, 큰 사건 없이 느린 템포로 이어지다 보니 극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영화의 메시지가 도드라져 보이는 건 배우들의 몫. 과거 사랑스러운 청춘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줬던 아라가키 유이는 보다 무표정하지만 성숙한 그리고 남다른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올해 4월 국내 개봉한 <정욕>에 이어 그녀의 진중하면서도 사려 깊은 내면 연기를 마주할 수 있다. 청춘의 모습은 하야세 이코이가 담당한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은 말간 미소를 짓고, 관심받는 걸 좋아하면서도, 친구들과의 관계의 어려움에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는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잘 표현한다. 과거 아라가키 유이처럼 하야세 이코이의 이름도 기억할 것 같다.
영화는 성장의 첫 단계가 남이 아닌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는 느슨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어진다고 전한다. 서로 다른 이모와 조카의 동거가 특별한 건 바로 진정한 성장의 좋은 예이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좋은 에코(울림)가 되는 순간의 기쁨은 꽤 크다. 어른이든 미성숙한 어른이든 간에.덧붙이는 말: 참고로 영화 제목인 ‘위국일기(違国日記, 어긋난 나라의 일기)’는 부모가 아닌 마키오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쓰는 일기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주)하이스트레인저
평점: 3.0 / 5.0
한줄평: 담담하게 적어가는 너와 나의 어른 일기!* 〈씨네랩〉 초청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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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감독의 고민을 엿보는 영화 <공드리의 솔루션북>
씨네랩의 영화크리에이터로 <공드리의 솔루션북(The Book of Solutions)>의 시사회에 초대받았다. 영화는 프랑스 영화감독 미셀 공드리가 실제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아카데미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터널 선샤인: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출연>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공드리 감독의 영화답게 창의성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의 전개는 감독과 제작자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으로 시작한다. 마크는 제작자가 스토리가 없다고 비난하는 말에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으면 나온다고 응수한다. 비용을 중시하며 시간을 돈으로 여기고 일정기간 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제작자들은 감독의 말에 좌절한다. 제작자가 내놓은 솔루션은 감독을 영화에서 아예 배제시키고 찍어놓은 영화를 적당히 편집하여 빠른 시간 내에 극장에 올리는 거다.
마크의 솔루션인 플랜 B도 극단적이다. 제작자들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자신의 아이디어와 예술적 터치가 담긴 영화를 고수하기 위해 자료를 통째로 들고 탈출한다.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솔루션북’을 찾아 자신의 아이디어를 적어가며 하나씩 실행한다.
마크의 좌충우돌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유머코드. 세상이 인정하는 천재 감독도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가까운 사람이 보기에도 무슨 일을 벌일지 종잡을 수 없고 못 말리는 감독의 기행. 마크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 겪는 제작자와의 갈등, 창작의 어려움, 관객의 평가 등을 어떻게 마주하고 해결하는지 보여주는 드라마 요소. 유머와 드라마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다. 함께 영화를 본 아내는 스필버그의 영화 <파벨만스>의 프랑스판 느낌이라고 했다.
작품을 공개하여 관객들에게 환영받지 못할까 극도로 두려워하는 마크의 마음에서 공드리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감독이 겪는 불안을 엿볼 수 있다. 영화와 감독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 되는 작품인 이유다. 한 편의 영화가 나오기까지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면 그들의 창작물을 더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될 터이다.
시원한 극장이 그리운 무더운 날씨. 파리 올림픽 시즌에 맞추어 프랑스에서 만든 영화를 보며 즐기는 일도 꽤 괜찮게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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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할 할리우드를 추앙하라!
8★/10★
1926년. 할리우드 인근의 고즈넉한 저택에서 비밀스러운 파티가 열린다. 파티의 분위기는 저택이 풍기는 느낌과는 정반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화려하고 소란스러우며 원초적 쾌락을 탐닉하는 광란의 유흥이 펼쳐진다. 그리고 세 명의 손님. 첫 번째는 잭 콘래드. 그는 할리우드 무성영화의 영웅으로, 별 볼 일 없는 배우라는 직업을 모두가 동경하는 스타의 지위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두 번째는 넬리 라로이. 그녀는 아직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스스로가 ‘스타’로 태어났다고 확신하며 기회를 모색한다. 마지막은 멕시코 출신의 제임스 맥케이. 그는 영화 일을 하고 싶으나 지금은 영화계 거물이 주최한 파티에서 서빙을 할 뿐이다. 정상에 있는 인물 하나, 영화판에서 상승하고자 하는 인물 둘. 서로 다른 욕망과 위치를 가지고 할리우드에 걸친 세 사람이 시끌벅적한 파티에서 조우하고, 이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할리우드는 지금과는 많은 것이 달랐다. 그 무엇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고,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만이 업계에서 살아남았다. 파티에서 우연히 잭의 눈에 들어 그의 로드 매니저가 된 매니가 마주한 도전을 보자. 매니는 임금 투쟁을 벌이는 엑스트라 출연자들의 무리와 전쟁 장면을 촬영하다 실제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장에 넋이 나간다. 설상가상으로 촬영 중 카메라가 망가져 해가 지기 전까지 새로운 카메라를 구해오라는 임무도 떠맡는다. 그러나 매니는 우격다짐으로 이 모든 일을 ‘해결’한다. 과정은 필요 없다. 결과만 좋으면 만사가 오케이다. 그것이 1920년대의 할리우드였다. 매니는 빠르게 잭의 신임을 얻고, 영화판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간다.
넬리 역시 기회를 얻는다. 한 영화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할 예정이었던 여성이 마약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자 넬리가 얼결에 기회를 얻는다. 자신이 타고난 스타라는 넬리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집, 가족, 과거를 생각하기만 하면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그녀는 촬영장에 투입되자마자 놀라운 감정연기로 두각을 나타내고, 감독의 눈에 들어 여러 영화에 연달아 출연한다. 매니가 그러하듯, 넬리 역시 빠르게 자신이 동경하던 자리인 ‘스타’에 도달한다.
매니와 넬리만 치열한 것은 아니다. 이미 스타인 잭 역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한다. 영화가 수많은 대중에게 위안을 주는 장르라는 데, 자신이 그런 영화를 일으켰다는 데 자부심을 가진 잭은 영화가 새로운 예술적 실험으로 나날이 진일보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그 과정에서 영화와 자신의 관계가 변함없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즉, 그는 영화의 변환기에서 스타 배우로서의 자기 입지가 여전히 탄탄하기를 소망한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은 셋 모두를 휩쓸며 소용돌이친다. 한 장르의 거대한 흐름이 바뀔 때는 많은 변화가 생긴다. 익숙한 방식으로 작업하던 수많은 사람이 나가떨어지지만, 새로운 장르에 적합한 수많은 사람이 금세 그 자리를 메운다. 새로 치고 올라온 자들이 뿜어대는 빛은 낙오된 자들을 잠시나마 추모하는 일조차 사치라 여겨질 정도로 밝고 환하다. 그리고 〈바빌론〉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 드라마적 요소를 만들어낸다.
〈바빌론〉은 영화판의 변화에 휩쓸려 시대의 뒤안길로 물러나지 않기 위한 세 인물의 투쟁을 스펙터클하고 격정적인 드라마로 펼쳐낸다. 그리하여 끝내 도달한 자리는 어디인가? 〈바빌론〉은 단호하고도 냉정하게 말한다. 영화라는 장르는 개개인의 흥망성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만큼 크고 위대하다고. 영화계를 쥐락펴락하던 평론가는 고작 ‘가십 칼럼니스트’라는 부고만을 남기고, 어렵게 기회를 얻은 흑인 뮤지션은 좌절한 후 다시 밴드로 돌아온다. 넋이 나갈 정도로 치열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잭, 매니, 넬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가 곧 나’라는 자칫 오만해 보이는 자부심을 현실로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들이지만, 영화는 스러진 개인이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영원히 이어진다. 심지어 위대하게. ‘네가 아무리 영화를 사랑하고 헌신했더라도, 영화는 너 같은 것 하나 없어진다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영화는 이토록 '비윤리적'이다.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려면, 이 엄혹한 진실 역시 사랑해야만 한다.
〈바빌론〉은 영화의 위기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기도 하다. 대중이 매체를 소비하는 방식이 바뀔 때마다 기존 매체는 '위기'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영화는 수많은 위기를 넘어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쇼트 콘텐츠의 유행, OTT 플랫폼의 대중화라는 동시대의 경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바빌론〉에는 자극적인 콘텐츠와 이를 소비하는 방식을 다소 적나라하게 비난하는 장면(폭력배 맥케이의 동굴)이 나온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장면은 어딘가 튀는 느낌을 자아내 영화의 질감을 해친다. 그러나 '영화 예찬'이라는 맥락에서 이 장면은 필요하다. 영화가 그 어떤 도전과 위기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감독의 확신이 담겨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영화를 버리고 떠난다 해도, 영화는 영원히 이어진다.' 그러니 망할 할리우드를 추앙하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뻔뻔스럽지만 거부할 수 없는 〈바빌론〉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덧. 1952년작 〈사랑은 비를 타고〉를 함께 보면 〈바빌론〉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캐릭터 설정부터 오마주,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영화인들이 마주한 도전까지, 〈바빌론〉에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많은 것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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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년 기다린 값을 하긴 했던 <아바타> 후속작
그 후
누군가가 "제이크! 잘 지내고 있어?"라고 묻는다면 그는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난 현재. 반인불수의 몸이었던 제이크 설리. 지금은 나비족의 몸을 얻어 살고 있다. 인류와의 전투가 있었다. 쉽지 않게 이긴 설리. 설리는 같은 전투 파트너였던 네이티리와 함께 가족을 이뤘다. 아이는 세 명이나 낳았다.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아이들 말고 부부에겐 두 자녀가 더 있다. 이 두 명의 아이들은 입양아들이다. 한 명은 '키리'다. 키리는 1편에서 사망한 그레이스 박사의 딸이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른 아이는 '스파이더'다. 이 아이는 나비족이 아니다. 엄연히 인간인 스파이더. 인류와 나비족 간의 전투가 끝나고 몇몇 과학자들은 판도라에 남았었다. 원래라면 판도라에서 지구로 돌아가야 했던 아이지만 나이가 너무 어렸던 탓에 나비족과 함께 살았던 아이. 그 아이도 어느덧 커서 나비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두 명의 부모에 다섯 명의 자녀라.. 쉽지 않다. 만약 2022년의 대한민국이었다면 애국자로 칭송받아 마땅했을 것이다. 난이도가 높은 육아 생활. 한 명만 낳아 길러도 어려운 걸 다섯 명 씩이나 감당하고 있으니 일상이 어지럽지 않을 수가 없다. 토루크 막토로서 외부 세력의 침략에 대응하는 설리. 이번에 설리와 군인들은 RDA의 보급 수송 열차를 약탈하는 일을 맡고 있다. 망을 봐야 하는 설리의 두 아들 로아크와 네테이얌은 아버지의 명을 안 듣고 군사작전에 참여한다.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 두 아들. 아버지는 아들을 크게 혼낸다. 근데 이 두 아들에게 위축된다는 것은 아예 모르는 이야기다. 어딘가로 향하는 설리와 네이티리의 아이들. 1편에서 인류와 나비족이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온갖 시체들이 보이는 것 같다. 울창한 숲, 출구는 물의 길처럼 안 보이는 것 같다. 서성이는 아이들. 아이들은 저 멀리에서 모르는 얼굴의 아바타들을 확인한다. 쟤들 뭐야? 처음 보는 얼굴들 같았다. 아니. 그 낯선 아바타들은 아이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 너는 설리의 아이들이군."
현장 로케이션 힘들었을 듯
13년을 기다려온 시리즈의 후속작이다. 13년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12년이 된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선거를 3번 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인간은 이 긴 시간 동안 영화를 내지 않았다. 만약 어떤 영화감독이 있다고 치자. 한 영화가 나오고 13년 후에 다음 작품이 나온다고 해보자. 그럼 그 사람을 영화감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마 투자받는 것도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카메론 할아버지는 창작자의 이름값과 시리즈의 파워 하나 믿고 차기작을 발표했다. 이 긴 시간 동안 뭘 했어?
제임스 카메론은 이 시간 동안 세계관을 구상하고 CG 이미지를 뽑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이 <아바타 : 물의 길>은 긴 시간을 희생한 만큼의 가치가 있다. 글쓴이가 영화를 보다 보면 이 극의 각본을 어떻게 설정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의 이야기를 먼저 그린 후 세계관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후자를 먼저 만든 다음 줄거리를 짠 느낌이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영화는 물 샐 틈이 없다. '이런 것도 짰어?' 싶은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하는 제의식, 나비족이 타고 날아다니는 동물, 판도라에 사는 다른 이주민, 그 외에도 어떤 행사든 빼곡히 차있는 디테일까지. SF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 세계관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관객을 설득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감독은 이해라도 한 듯이 긴 시간을 압축시킨 설득력을 구현한다. 영화의 자그마한 소재 하나하나가 다 판도라 행성, 내지는 나비족의 오리지널리티가 살아 있어 작품의 리얼리티성을 부여한다. 어디서 본 것들인데 묘하게 변주한 느낌이 탁월했다.
이 세계관의 디테일을 살리는 방식 중 하나는 때깔이다. 어마어마하다. 아마 내년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이미 찜해놓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두 곳의 공간 세팅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바로 숲과 바다라는 것이다. 첫 번째 '숲'이라는 공간은 이미 전작에서 볼 수 있다. 거기서 놀랍던 이미지가 그대로 보인다. 그대로 보인다고 해서 뭔가 신선함이 부족하지는 않다. 극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숲' 신은 아이들이랑 행복한 일상을 즐기는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제주에 살다 보면 곶자왈이라는 곳을 자주 방문하게 된다. 글쓴이는 제주 원주민이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더 곶자왈 같은 숲 묘사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시각화는 굉장히 중요하다. 당연하다. SF 영화니까. 초반부 스타트가 어색하면 극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극 한 시간을 할애하는 숲 세팅에서 이야기를 이끌 수 있었던 건 이 시각화의 힘이다. 후술 하겠지만 극 전개에서 이 숲에서의 사건 전개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영화의 집중력을 이끄는 건 이 덕이다. 나머지 두 시간을 할애하는 바다 묘사는 영화의 최고 강점이라고 볼 수 있다. 바다와 육지에서 사람을 보는 관점은 다른 것이 필연적이다. 이 바다에 사는 생물들도 신선해야 한다. 그런데 아예 없는 걸 갖고 오기에는 사람의 뇌로 감당할 수 없다. 이 지점을 살짝씩 변주한 창작자적 재능이 어마어마하다. 빛이 들어가는 방식도 신선하다. 어디에서는 그림자가 들고. 어디에선 빛이 굴절되는 것 같고.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디테일해서 실제로 카메라를 갖고 찍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후반부에 근 1시간을 할애하는 액션 시퀀스도 대단하다. 이 배에서 일어나는 액션을 잘 보다 보면 전작과 본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액션에 다 때려 박았다. 판도라의 동물들 나오고. 바다 생물로 빌런들 무찌르고. 화살, 총, 전투기 나오고. 여러 명이 구상해서 만들 상상력의 총합체를 이야기의 전개에 이질감 없이 잘 보여줬다. 이걸 구체적으로 다 구현했다고? 의 생각으로 영화를 봐도 지루하지 않을 듯하다. 진짜 카메라 들고 가서 해외 로케 안에서 찍은 것 같다.
해양 덕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이다. <터미네이터 2>, <피라냐 2>, <에이리언 2>부터 시작해서 <타이타닉>까지 글쓴이 같은 90년대생에게 이 사람의 영화를 한 번도 안 들어보기는 불가능하다. 제임스 카메론은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한 가지의 덕후 기질을 키워냈다. 바로 해양생물 덕후라는 것이다. <피라냐 2>는 제목만 봐도 바다라는 공간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타이타닉>은 배가 바다에 빠지는 이야기다. <어비스> 역시 바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 영화다. 심지어 <딥 씨 챌린지>라는 바다 다큐멘터리도 만든 적이 있다. 영화 잘 만드는 사람으로 이름값을 하면서 해양 생태계에 대한 덕후력을 뽐내는 제임스 카메론. 그의 러닝타임에서 바다를 꾸준히 볼 수 있을 만큼 영화 곳곳에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피라냐'를 연상케 하는 동물에게 쫓기는 부분이 있다.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 동물이 피라냐와 닮았냐?라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글쓴이는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쫓고 쫓기는 동물을 구현하는 방식은 그 시절 <죠스>와 <피라냐>를 위시로 한 호러 영화의 냄새를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다. 또 극에서 배가 후반부에 나온다. 이 배에서 극의 액션신이 이뤄진다. 이 배는 한 번 전복된다. 이불 덮고 그 안에서 싸우는 게 아닌 이상 액션의 속성이라고 하는 것이 주변에 상처를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후 그 바다에 빠지고 난 다음의 인물들의 모습은 <타이타닉>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이 액션도 묘하게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생각나는 부분이 있다. 또 나비족의 근본적인 세팅 자체가 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형태랑 좀 비슷하지 않았나? 싶었다. 또 사실상 영화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크리쳐도 그가 해왔던 영화 <에일리언 2>의 기본 바탕과도 비슷하다. 이렇게 제임스 카메론은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그의 작가적 특성을 빼곡하게 삽입했다.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 작품만의 시그니처가 된 셈이다.
품이 넓은 이야기
영화의 강점으로 이야기를 뽑고 싶다. 일단 글쓴이는 1편의 이야기가 나름의 깊이를 갖고 있는 소재와 전개 방식을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2009년에 개봉한 이 영화. 이야기 구상을 그전부터 했을 테니 10여 년 전에 구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2022년 12월 이 영화를 다시 돌아보면 전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 몇 개가 생각나게 한다. 일단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엄연히 설리는 인간으로 우선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극에서 인간인 설리 / 아바타인 설리 두 차이점을 연출로 내내 조명한다. 당연히 '어떤 측면이 진정한 인간에 가까운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뭐 이런 인간 실존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문제를 다룬 연출도 곳곳이 보인다. 우선 쿼리치 대령에게서 반지성주의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또 코로나19를 대응했던 어떤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 생각난다. 또 얼마 전에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있었던 복제인간에 관한 문제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몇 년 전 역시 우리나라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가?'와 '원주민과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이 영화를 통해 할 수 있다. 감독이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이야기를 짜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소재들은 인간사에서 클래식한 소재긴 하다. 그러나 이를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은 작가 제임스 카메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의 통찰력을 새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편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가지고 왔다. 일단 영화에서 두 공간적 세팅은 숲과 바다다. 이 두 사회가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손가락의 개수다. 원래 나비족이라 함은 손가락이 네 개여야 한다. 그런데 제이크의 아이들은 5개다. 5개라서 아이들은 다른 나비족들에게 놀림받는다. 우리는 인간이다. 손가락이 5개다. 어? 손가락이 5개라서 놀림받는다고? 이는 관객인 우리 역시 저 판도라에 가면 놀림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관점을 옮기는 감독의 수가 돋보인다. 우리 현대사회에서 누군가에 대한 혐오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혐오는 우리와 다른 지점을 바탕으로 일어난다. 극에서 주류가 비주류를 대하는 방식 역시 이 혐오와 비슷한 방식이다. 간단하지만 내실이 있는 비유를 든 셈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잣대를 만드는 것이, 그것 때문에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이 옳은가?를 물은 것이다. 이를 위해서 숲의 종족과 바다 종족이 아주 살짝 다른 피부색으로 세팅했다는 것, 빌런 쪽인 쿼리치 대령이 어떻게 변했는가? 에 대한 것이 이에 대한 근거로 쓰이기도 했다. 이 비유는 해양생물 '툴쿤'을 어떻게 캐릭터들이 바라보는가에도 잘 나타나 있다. 또 네이티리가 스파이더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에 대해서도 닿아있다. 이렇게 영화에서 끊임없이 소수자와 혐오, 차이와 배척이라는 소재를 곳곳이 새겨놓은 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창의성이 돋보인다.
이렇게 사회드라마적인 소재를 잘 넣은 영화지만 가장 근본적인 주제는 '가족영화'다. 이 가족의 구성원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아버지 제이크 설리는 나비족이다. 그러나 오리지널 한 나비족이라고 볼 수 없다. 근원이 인간이니까. 어머니 네이티리는 나비족이다. 두 아들과 하나의 딸은 혼혈 가족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다른 두 아이들의 친부모는 제이크와 네이티리가 아니다. 아들 스파이더는 그냥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인데도 자기를 나비족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딸 키리는 어머니가 그레이스 박사다. 어머니, 아버지의 피가 단 조금도 섞이지 않았다. 영화가 이 가족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유대감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보면 영화의 핵심소재를 튼튼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끌고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족영화의 특징을 살렸기 때문에 좀 애매해진 부분이 있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영화는 공간적 배경을 한 번 옮긴다.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가는데, 여기서 이 인물들의 선택지에 대해서 근거가 부족했던 것은 아쉽다. 이 영화 자체의 내적으로 근거가 부족하지만 딱히 1편에서도 인물의 선택이유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또 스파이더와 키리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도 아쉽다. 스파이더는 후반부의 어떤 행보를 위해 거의 모든 인물의 행동이 기능적으로 사용된 부분이 있다. 단순히 그 인물과 그런 관계였다고 해서 그의 모든 일이 합리화가 된다면 좀 어색한 부분이 많다. 차라리 생사고락의 위기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키리와 관련한 부분은 후반부에 시리즈를 펼치기 위해서 이렇게 설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느껴지는 예수의 모티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던 절대자의 존재까지 시리즈라는 이유로 끝마무리 짓지 못한 인물의 완성도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역시 이 키리도 물이 생명의 근원지라는 은유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능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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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진일보가 아니다
6★/10★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어느 부유한 집안에 불운이 연달아 생긴다. 아버지, 아들, 손자에게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이어진다. 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곳은 무당의 자리다. 두 무당 화림과 봉길은 괴로워하는 가족에게 조상의 묫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제안하고, 여기에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이 결합한다. 의뢰인 조상의 묫자리는 좀처럼 무덤이 있을 만한 곳으로 보이지 않는다. 화림, 봉길, 상덕, 영근은 이 일이 그리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걸 직감한다.
이 첫 번째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 영화가 자아내는 긴장감은 상당하다. 감독이 이미 전작 〈검은 사제들〉, 〈사바하〉에서 선보인 바 있는 능숙한 솜씨로 사건의 비밀을 향하는 여정을 채운다. ‘미신’으로 불리는 일에 종사하는 캐릭터와 배우들의 연기도 몰입감을 강화한다. 훌륭한 배우들이 나름대로 표현한 개별 캐릭터를 한국의 케이퍼 무비에서 본 능청스러운 호흡으로 엮어내 오컬트 장르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쉬이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영화의 중반, 의뢰인 가족의 사연이 갈무리된 후 영화의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하면서 영화는 고꾸라진다. 의뢰인 가족 조상의 관 아래에서 수직으로 박힌 거대한 관이 발견된다. 크기와 묻힌 방향 모두 기괴한 이 관은 말뚝의 형상이다. 묫자리는 한반도의 척추에 해당하는 곳이다. 때문에 관은 척추를 부러뜨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관 속에 든 것이 일본 다이묘(무사)라는 것이 금세 밝혀진다. 의뢰인은 친일파로 고위 관료였는데, 다이묘의 관을 파헤치지 못하게 고위 관료의 관을 그 위에 덮어 위장한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지도가 호랑이 모양인지 토끼 모양인지를 두고 다툼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누가 각각의 의견을 지지했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민족의 가능성과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들은 한반도를 도약하는 호랑이로, 민족의 기질을 유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것으로 본 사람들은 토끼로 보고자 했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영화의 대사는 이 영화가 전자의 관점을 취했다는 점을 알려준다. 요컨대 개인적 비극을 파헤쳐보니 민족의 비극이 보였고, 파묘를 통해 호랑이의 끊어진 척추를 되살려내 민족정기를 회복하자는 것이 영화의 메시지다.
그러나 두 번째 이야기는 완전한 실패로 보인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미스터리의 대상이 너무 빠르게 정체를 드러낸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대상의 정체가 무엇일지에 대한 궁금증은 오컬트 장르가 긴장감을 자아내는 핵심 장소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따르지 않고, 무당 일당이 어떻게 민족정기를 억누른 괴수를 퇴치할 것인지를 관객에게 몰입감을 유지하며 보여줘야 한다는 어려운 싸움에 자발적으로 뛰어든다. 장르 영화가 반드시 장르 공식을 따를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오컬트 장르의 재미 요소를 부정하고 시작하는 건 영리한 선택이 아니다. 장르의 문법을 넘어설 만한 분명한 장점이 있는 게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 〈파묘〉가 후반부에서 선보인 도전은 전반부와 달리 참을 수 없이 지루했다.
두 번째는 감독이 전작 〈검은 사제들〉, 〈사바하〉에서 보여준 치밀하고 깊이 있는 윤리 의식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아이를 위해 모든 걸 던지는 두 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검은 사제들〉, 영생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착취해야 한다면 그 존재가 불사의 존재라도 ‘신’일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사바하〉와 달리, 〈파묘〉에는 우리가 일상으로 끌어올 만한 윤리적 고민이 없다. 그저 우리 민족을 억누른 일제와 그에 동조한 친일파를 처단해야만 한다는 당위와 그 당위가 달성됐을 때의 통쾌함만 있다. 앞서 언급한 한국 케이퍼 무비의 능숙한 호흡과 더불어, 더 많은 관객이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소재를 영화에 들여왔다는 점에서 이는 흥행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오컬트 장르를 크리처물로 바꾸고, 민족 감정으로 지금껏 감독이 던져온 윤리적 화두를 대체한 결과가 과연 얼마나 의미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모든 걸 ‘의도하고 밀어붙였다’*는 감독의 말은 아리송하다. 지금껏 보아온 그의 뚝심이 이 작품에서는 적당한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데만 쓰인 것 같아서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다음 영화를 기다릴 테지만.
*https://sports.khan.co.kr/entertainment/sk_index.html?art_id=202402260903003&sec_id=540401&pt=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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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과 집중이 확실한 퇴마 판타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건에 천만 원씩 받고 가짜 퇴마극을 펼친다고 알려진 사기꾼 퇴미사 '천박사'(강동원). 여느 때처럼 특수효과 기술자 겸 유튜버인 '인배'(이동휘)의 도움을 받아 가짜 퇴마를 펼친 그에게 귀신을 보는 눈을 지닌 ‘유경’(이솜)이 찾아온다. 거액의 수임료를 제안한 그녀의 요구는 단 하나. 자기 여동생 '유민'(박소이)에게 붙은 귀신을 떨쳐달라는 것.
이번에도 가짜 퇴마극을 준비하던 천박사. 그러나 그는 곧 다른 기운을 감지한다. 귀신을 만나면 울린다고 알려졌지만 평생 울린 적 없는 방울이 울린 것. 그와 동시에 천박사는 무당을 사냥하는 악귀 '범천'(허준호)에게 습격당한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그에게 인배와 '황사장'(김종수)은 사건에서 손을 떼자고 제안하지만, 천박사는 다른 마음을 먹는다. 그간 애써 외면한 과거를 마주하고, 당주 무당의 장손으로서 악귀와 싸우겠다고.
웹툰 실사화의 딜레마
웹툰 원작 작품을 영화나 드라마로 옮길 때 항상 같은 딜레마가 있다. 바로 '톤'이다. 웹툰은 과장되거나 비현실적인 톤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원작을 지나치게 충실하면 작위적이거나 오그라들기 십상이다. 반대로 그렇다고 원작 색채를 과하게 빼 버리면 팬덤의 불만을 산다. 웹툰 원작 작품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눈에 띄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지 않은 이유다.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조감독 출신인 김성식 감독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는 위 딜레마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후렛샤 작가의 '빙의'를 영상화한 이 작품은 철저한 선택과 집중의 미덕을 보여준다. 웹툰 느낌을 살린다는 목적을 위해 장르, 캐릭터, 볼거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질주한다. 뛰어난 작품성이나 완성도를 보여주겠다는 야심은 없다. 그리고 그 계획은 결과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가능한 신선하게 비트는 노력
<천박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개성은 장르다. 장르 자체가 신선하지는 않다. 몇 년 사이 오컬트나 퇴마물은 대중적으로 익숙해졌다. 최근 방영된 SBS 드라마 <악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한국형 오컬트'를 표방하는 작품이 꾸준히 제작됐다. 달리 말해 마을의 서낭당을 지키는 무당인 ‘당주무당’, 충청 지역 앉은굿에서 사용하는 무구 '설경'이라는 소재만으로는 확실한 차별화가 어렵다.
대신 <천박사>는 장르 자체를 변주한다. 우선 다른 오컬트 영화에 비해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취한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 <곡성> 등 많은 오컬트 영화는 '신적인 요소가 실재한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을 유지한다. 그에 반해 <천박사>는 초반부터 <기생충>을 패러디한 도입부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당의 사기극 같은 코미디를 적극 활용한다.
특히 코미디는 분위기 환기 이상의 용도로 영리하게 활용된다. 웃음은 <천박사> 세계관으로의 초청장에 가깝다. 웃음 포인트를 주로 인배가 맡기 때문. 극 중 인배는 천박사, 유경, 황사장과 달리 혼자만 무속 세계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영화는 이들의 괴리감을 주로 유머의 소재로 삼는데, 관객이나 인배나 처지가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인배만 따라가도 <천박사>의 판타지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다.
오컬트 영화의 일반적인 전개를 피해 가기도 한다. 퇴마물 주인공은 주로 희생자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악귀와 질긴 싸움을 펼친다. <천박사>는 다르다. 유민에게 퇴마 의식을 진행하는 천박사. 그런데 이때 악귀 범천의 선택이 흥미롭다. 그는 유민 대신 유경에게 곧장 달려든다. 또 그녀의 눈을 갖기 위해 여러 사람의 몸을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천박사를 습격한다. 이 순간부터 <천박사>는 본격적으로 액션 활극을 펼쳐 보일 수 있다.
최소한의 설명
이처럼 각 장르의 장점만 모아 관객을 현혹하려면 내용을 최대한 압축해야 한다. 영화 내 설명이나 묘사가 간단하고, 빠르고, 가벼워야 한다. 진득하게 여러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상이한 장르 간의 충돌로 인해 단점만 부각될 수 있으므로. 실제로 <천박사>는 미묘한 불협화음을 알아챌 조금의 틈도 주지 않으려 한다.
핵심 소재인 설경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자막 한 줄로 모든 설명을 대신한다. “설경은 귀신을 협박하고 잡아 가두기 위해 경문과 문양을 한지에 조각한 부적이다.” 어떤 효과가 있고, 언제 사용해야 하고, 누가 쓸 수 있는지와 같은 자세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소재와 설정에 대한 설명도 단순하기는 매한가지다. 당주 무당의 역할, 손가락을 잘라서 만드는 주문의 정체, 범천이 무당을 사냥하는 궁극적인 목적, 칠성검에 깃든 힘... 하나하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소재이지만, 영화는 이 모든 것을 단순히 보여준다. 유경에게 신비한 눈이 있는 이유, 천박사에게 신기가 깃드는 묘사에 대한 설명도 없다.
내용 전개도 직선적이다. 천박사가 범천의 존재를 인지한 후 곧장 클라이맥스로 넘어가는 인상을 준다. 선녀 무당이라는 카메오를 활용해 '기승전결' 중 '승'을 생략하다시피 한다. 그 덕에 너무 단순한 장치들과 파훼법 같은 지점들이 여러 의구심이나 고민으로 떠오르기 전에 끝내버린다.
선택과 집중이 확실한 캐릭터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박사> 속 인물의 서사는 복잡하다. 풀어내야 할 내용이 적지 않다. 천박사의 집안 내력, 범천의 음모, 유경과 마을 주민들의 비극이 한 데 얽혀 있다. <천박사> 속 세계에 대한 설명도 필요로 한다. 여기에 중간중간 액션까지 곁들여 주려면 98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꽤 촉박해 보인다.
이 대목에서도 <천박사>는 철저힌 선택과 집중을 보여준다. 모든 플롯을 천박사 중심으로 배치하면서 분량을 조절한다. 천박사의 개인사를 풀어낼 때 범천을 도우미로 이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의 집안과 범천의 악연을 보여주면서 두 주인공의 서사를 동시에 풀어낸다. 이에 더해 천박사의 할아버지와 동생을 단순한 희생자, 피해자로 설정하면서 영화를 전반적으로 단순한 복수 서사 내에 위치시킨다.
유경의 개인사도 과감히 생략한다. 그녀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유경을 단순히 범천이 노리는 목적,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다루지 않는다. 그녀는 상황에 이리저리 휩쓸릴 뿐,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녀의 부모, 그녀와 마을 주민들의 관계, 범천이 마을 주민들을 악용한 방식 등도 퇴마 판타지다운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기 위한 배경으로 소비된다. 철저히 플롯의 도구일 따름이다.
몰입은 되지만 폭발력은 없다
초중반부까지는 <천박사>의 선택이 적중한다. 코미디, 오컬트, 판타지, 액션 모두를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문제는 후반부다. 이전까지의 선택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화려한 CG가 천박사와 범천을 감싸고, 비장한 검투씬이 등장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다. 물론 강동원이 기본적으로 액션을 잘 소화하는 배우인 관계로 액션을 보는 재미는 있다. CG도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기대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면서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하지만 범천을 물리치는 과정과 결과에는 쾌감이 없다.
중요한 원칙 하나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천박사>는 전쟁이 정치의 연장선이듯이 액션도 서사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보인다. 전쟁이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인의 행위라면, 액션은 인물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작가의 도구다. 즉, 서사가 쌓이지 않은 액션은 화려한 그래픽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천박사>는 인물의 서사를 쌓는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았다. 딱 필요한 만큼의 과거사를 단편적으로 알려준다. 범천을 향한 원한이 얼마나 크고 그가 사기꾼 행세를 하며 어떻게 복수의 칼날을 갈았는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즉, 천박사가 목숨 걸고 범천을 잡는 이유는 이해해도 그에게 공감하거나 몰입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모든 서사가 집중된 주인공이 이러니, 그에게 종속된 다른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날 일도 만무하다.
결국 강동원이 장르다
그 결과 영화가 끝나고 남는 것은 캐릭터가 아닌 배우들의 비주얼과 존개감뿐이다. 강동원은 다시 한번 스타로서의 가치를 증명했다. <전우치>, <군도: 민란의 시대>, <검은 사제들>에서 봤던 강동원의 이미지가 묘하게 한 데 합쳐져 있다. 대중적으로 인식된 배우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캐릭터에 이식한 느낌이다.
반대쪽에서는 허준호의 무게감이 인상적이다. 자칫 경쾌함 이상으로 가벼울 수 있는 분위기를 적절히 가라앉히는 데 최적화된 모습이다. 박정민과 지수, 두 카메오도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등장해서 특유의 연기력과 비주얼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다.
결국 <천박사>는 캐릭터와 CG, 설정이 조금 독특할 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난한 명절 영화에 그친다.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의도대로 시작부터 끝까지 경쾌한 톤의 코믹 액션 오컬트 영화를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다. 계획대로 결과물이 정직하게 뽑힌 듯 보여서 비판하기도 애매하다. 단지 아쉬울 뿐이다. 한국 상업 영화 중 나름대로 신선한 시도가 엿보이는 장르 영화이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Acceptable 무난함
화려하나 어색한 CG만큼 오묘한 끝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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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 촬영장소는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서울 로케이션 답사영상
? 기생충 촬영지 (로케이션) 답사영상
음... 어르신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카데미의 기운을 받으러 갔습니다!!- 로케이션ㅣ주소
1. 자하문 터널ㅣ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219
2. 돼지 쌀 슈퍼ㅣ서울 마포구 손기정로 32
3. 기택 동네 계단ㅣ서울 마포구 손기정로 6길
4. 기사식당ㅣ서울 마포구 희우정로 72
5. 스카이 피자ㅣ서울 동작구 노량진로 6길 86
6. 올가홀푸드 방이점ㅣ서울 송파구 양재로 71길4
7. 박사장 집ㅣ서울 성북구 선잠로 8길"이 영화는 악인이 없으면서도 비극이고, 광대가 없는데도 희극이다."
- 봉준호, 텐아시아 인터뷰, 2019.05.31.- 기생충의 의의
한국 영화사 최초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두 번째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각본상 수상작, 비영어 영화 최초 SAG 미국 배우조합상 앙상블상, 그리고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영화상 수상작- 스태프
감독: 봉준호
각본: 봉준호, 한진원
윤색: 김대환
원작: 봉준호
제작투자: 이미경, 허민회
제작: 곽신애, 문양권
프로듀서: 장영환
조감독: 김성식
출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 박명훈 외
촬영: 홍경표
미술: 이하준
음악: 정재일
음향: 최태영
편집: 양진모
장르: 드라마, 블랙코미디, 스릴러
제작 기간: 2018년 5월 18일 ~ 2018년 9월 19일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기생충촬영지 #봉준호수상소감 #봉준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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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공삼칠 리뷰 - 이름을 빼앗긴 소녀, 지옥에서 희망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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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영상은 홍보마케팅사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발견한 가장 빛나는 만남”
열아홉 윤영은 엄마와 단 둘이 살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친구들처럼 학교에 가고 싶기도 하지만, 얼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장에서 일하는 청각 장애가 있는 엄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뿐.
착한 마음과 성실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뜻밖의 사고는
윤영을 피해자에서 살인자로 돌변시켜 교도소에 몰아넣고
‘윤영’이라는 이름대신 ‘이.공.삼.칠.’이라는 수감번호로 불리게 만든다.
더 이상 절망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10호실 동료들은 윤영을 지켜주기 위해 희망의 손길을 내미는데…
반드시 돌려줄게 너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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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30초 예고편
“일도 사랑도 다 가지고 싶어!” 의욕 충만 아름
“아름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사랑 하나만 믿고 떠난 로맨티스트 성만
오직 의욕과 사랑만 가지고 프랑스로 떠나다!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학업, 생활비, 육아, 가사 노동…
우리는 왜 결혼했을까?
결혼, 도대체 뭘까?
에펠탑 아래에서 시작된 아름♥성만의 좌충우돌 결혼살이 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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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무파사: 라이온 킹> 예고편
세상에 홀로 남겨진 고아에서 세상을 지배한 위대한 왕이 되기까지👑 라이온 킹, 그 시작의 이야기 [무파사: 라이온 킹] 12월 극장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