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1-10-29 22:22:01
배우 신세경과 서촌의 모습을 담다
-<어나더 레코드>(2021)
마케팅 사의 지원으로 제공된 Seezn 관람권을 이용해 웹에서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 시작은 아마도 10대 시절일 것이다. 10대의 대부분은 그저 앞만 보고 달린다. 대학이라는 관문으로 열심히 달려가다 대학교에 간 이후에는 취업의 문을 향해 달려간다. 그게 끝이 아니다. 취업한 이후에는 사회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커리어와 성공의 문으로 향한다. 숨을 헐떡이며 앞으로 달려가면서 주위를 둘러볼 시간은 없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볼만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기 어렵다. 어쩌면 인생은 끊임없이 그런 작은 목표들로 열심히 달려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면 그다음 문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를 외치다 보면 어느덧 지치고 정신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잠시 멈추는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잠깐 그 자리에 멈추는 시간은 꽤 중요하다. 앞으로 달려가야만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 속에서도 지금까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지금 뛰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결정도 해보고 다른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 하면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준다. 사람마다 그 기간은 다르겠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그렇게 달려온 길을 돌아보고 앞에 보이는 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앞을 보며 다음 문을 향해 차분히 걸어간다.
배우 신세경의 마음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나더 레코드>
다큐멘터리 영화 <어나더 레코드>는 쉼 없이 일을 하며 달려온 배우 신세경의 멈춤을 담는 시네마틱 리얼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는 이 영화 속에서 서촌의 거리를 걷고 여러 카페나 가게를 돌아다니며 그 주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서촌 특유의 분위기와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은 느린 시간이 영화의 전반에 걸쳐 펼쳐진다.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동네다. 좀 더 관광객이 많이 찾는 북촌에 비해 서촌은 좀 더 조용하고 한적하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의외의 식당이나 가게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은 이 복잡한 길을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배우 신세경은 아역배우 출신으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연기라는 일을 하며 계속 달려왔다. 영화 속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20대 중반까지 계속 일에 바빠 여유로운 시간 속에 머무르지 못했다. 그저 다음 가야 할 곳을 보며 앞으로 연신 달려갈 뿐이었다. 영화 초반 신세경 배우가 타로 점을 배운 김주우 배우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신세경 배우는 자신에 대한 타로 점을 보고 설명을 듣는다. 그가 하는 질문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것, 과거 선택에 대한 것 그리고 자신 주변에 있는 존재의 마음에 대한 것이다. 즉,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것들을 차례로 물으며 자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타로 점을 믿든 믿지 않든 그가 받아 든 결과는 그가 결정한 휴식이라는 시간 속에서 내면의 소리를 보게 만들었다.
그가 방문하는 곳은 차례로 위스키를 파는 작은 바인 '무용소', 드립 커피와 떡을 파는 '카페 자하', 차를 파는 '에디션 덴마크', 이탈리아 요리를 파는 '효자동 두오모'이고 어린 동화 작가 전이수 군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담는다. 영화는 각각의 장소에서 주인과 대화하는 배우 신세경의 모습을 차분히 담는다. 그가 만나 대화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고, 가게마다 어떤 고유의 특성이 있다.
작은 바 '무용소'에는 과거의 물건들이 가득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맛이 깊어지는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여행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카페 자하'에서는 쉬지 않고 일해온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곧 영업을 종료한다는 그는 2년 동안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앞만 보고 달려와 잠시 쉼을 선택한다. 다음 방문지인 '에디션 덴마크'의 주인은 덴마크 남편과 한국 아내 국제 부부를 만난다. 그들은 느리고 평화로운 서촌의 분위기와 느리게 걸을 때 보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어린 동화 작가 전이수 군을 만난 배우 신세경은 어릴 때부터 달려온 자신과 비교하여 어린 나이에 일을 하게 된 전이수 군과 일의 의미와 가족, 그리고 외부인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결국에는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효자동 두오모'의 사장님과는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결정과 즐겁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타인과 나누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서촌의 아름다움 풍경과 분위기 그리고 휴식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눈 이후, 결국 만나게 되는 건 휴식이라는 것이다. 배우 신세경은 앞만 보고 달려오다 이직을 하고 잠깐의 휴식을 택했다. 그것이 과연 잘한 선택이었는지를 영화 속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일하는 모습이 아닌, 편안한 마음으로 누군가와 만나고 대화하면서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처음부터 그것은 이미 옳은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바쁜 와중에 휴식을 결정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추면 저 멀리 있는 문에서 더 멀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휴식을 결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휴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점도 많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 담긴 서촌 속 가게들은 대부분 아주 작은 가게들이다. 골목골목에 숨겨져 있는 그 가게들은 그곳을 느리게 걷던 이들에게 발견되고 그들에게 작은 선물을 선사한다. 서촌의 선물 같은 모습을 배우 신세경의 뒤를 따라 같이 걷는 느낌을 주는 영화는 마치 배우와 같이 그 길을 걷고 이야기하는 자리 옆에 앉아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배우 신세경과 함께 서촌을 산책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영화는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천천히 빨아들인다.
영화에는 극적인 순간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대화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힐링되는 느낌이 있다. 특히나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배우 신세경의 모습이나 마음속 이야기를 같이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잔잔하고 느린 서촌의 모습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진 모습일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은 현실적이지만 조금은 관객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감성적인 연출을 잘하는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더 테이블>, <조제>, <아무도 없는 곳> 같은 영화들을 통해 감독이 가진 고유의 감성을 잘 느낄 수 있다. 그 감성을 그대로 다큐멘터리 영화 <어나더 레코드>에 담았다. 아름다운 서촌의 풍경과 분위기를 담는 한 편, 배우 신세경의 개인적인 고민과 모습을 서촌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밀어 넣었다. 그래서 보는 내내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만든다. 다큐멘터리 영화 <어나더 레코드>는 OTT 서비스인 Seezn에 단독으로 공개되었다. Seezn 웹사이트나 앱을 다운로드 받아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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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상상했던 빛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를 바탕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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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발리우드'라는, 인도 영화에 대한 어떠한 선입견이 있었다. 과장된 연기와, 뮤지컬식 구성 등등... 흔히 그런 것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그러한 선입견을 뛰어넘음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이하: 우빛상모)>의 예술적인 가치와 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소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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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현대 인도의 뭄바이와 작은 해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인도라는 나라와 그 문화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이 영화를 충분히 깊게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인도는 아직도 신분제가 작동하는 나라이며 결혼 제도 또한 초기의 대한민국 내지는 조선의 제도와 닮아있을 정도로 보수적이다. 가족의 기대와 사회적 규범 즉, '결혼은 어떠해야 한다'를 두고 그 관습이 강하게 적용되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 규범은 여성들에게 더 심하다. 여성들의 결혼은 마치 '인생의 역전'처럼 인식되고, 남편이 무엇을 하든 여성은 남자를 서포트해주어야 한다는 문화적인 배경이 있다. 또한, 인도의 종교적 배경도 주목해야 한다. 인도는 힌두교가 약 80%, 이슬람교가 약 15% 정도로 이루어져 있는 다종교 국가이다(출처 : 위키백과). 특히나 인구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인 '뭄바이'에서는 여러 종교들이 한데 모여 (물론 힌두교가 비율상으로는 훨씬 많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도시이다. 특히 결혼과 연애에 대해 관습적이고 보수적인 인도 내에서 힌두교와 무슬림교 신자들 간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도 '뭄바이'에 살고 있는 두 여성이 <우빛상모>의 주된 인물이다.
'프라바'는 결혼 직후 남편이 독일로 떠나 1년째 연락이 끊긴 간호사다. 겉보기엔 안정적인 직업과 결혼 생활을 가진 듯하지만, 남편의 부재로 인해 내면의 공허와 외로움을 겪고 있다. 그녀의 직장 동료 '아누'는 무슬림 남성과 비밀 연애 중인데, 인도 사회의 종교적 장벽과 가족의 맞선 강요로 인해 사랑과 결혼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병원에 파견 나온 남성 의사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여 자신을 억누릅니다. '프리바'보다는 자유로운 연애관을 갖고 있다. 아직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여있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프리바'가 같은 병원의 파견 의사에게 설렘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 독일에 있는 남편과 자신은 유부녀임을 생각하며 자책한다. '아누'는 반대로 무슬림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는 것에 갈등을 느끼지만 '프라바'보다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찾으려 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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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물 모두 인도라는 사회 속에서 '사랑'이라는 것 때문에 고뇌하고 또 행복해한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자세히는 설명하지 못하지만, 둘의 사랑 이야기를 진득하게 따라가다 보면 '인도'라는 '한국'과는 많이 달라 낯선 곳의 인물이 사실 인류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그 문제를 건드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이 있지만, 1년 넘게 돌아오지 않아 외로운 와중에 새로운 사람이 눈에 띄는 것, 종교적 문제로 금기시되는 위태로운 사랑을 하는 것은 비단 뭄바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빛상모>는 사랑에 대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마치 시를 그려내듯 섬세하고 진득하게 묘사하고 있다.
'프라바'가 독일로 간 남편이 자신에게 선물해 준 것으로 '추정되는' 전기밥통을 끌어안고 없는 온기를 느끼는 장면, 그 장면에 희미하게 비치는 창 밖의 달빛과 밤에도 들려오는 기차 소리는 그녀의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부터 시작되는 해변 마을에서의 이야기는 마치 환상처럼 진행되고, 꿈인 듯 현실인 듯 모호한 그 경계에서 각자의 사랑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비주얼적으로도 아름다운 부분이 많았는데, 그 비주얼은 분명 서사의 미학이 뒷받침되어 나온 결과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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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빛상모>의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 이 영화가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는지 여실히 이해가 갔다. 영화는 도시의 어둠과 여성들의 고독,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연대와 희망을 몽환적이고 시적인 영상미로 담아낸다. 세 여성의 여정은 인도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여성의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랑과 우정이 결국 어둠 속에서 빛이 됨을 보여준다. 척박한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한 편의 아름다운 꿈을 꾼 것 같은 메시지와 희망을 건네준다. 이 영화는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어진다.
4/23(월) 극장 개봉
- 추천 점수 : 5.0 / 5.0
- 이럴 때 보면 좋아요! :
외부적인 요인으로 나의 사랑을 진지하게 고민 중일 때 이 영화의 빛을 보고 용기를 얻어가세요!
- 추천 점수 : 5.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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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까지 적시는 우중 영화 8선
비가 오면 고민이 더 깊어지기도, 오히려 마음이 환기되기도 하는데요.
영화에서도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극적인 장치로 사용하기도 한답니다.마음까지 적시는 우중 로맨스 영화 8선을 소개합니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상상해 봐요 막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 센트럴 파크 델라코트 시계 아래 누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면... 재즈를 사랑하는 ‘개츠비’(티모시 샬라메) 영화에 푹 빠진 ‘애슐리’(엘르 패닝) 뉴욕이 좋은 ‘챈’(셀레나 고메즈) 매력적인 세 남녀가 선사하는 로맨틱 해프닝!
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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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고등학생 ‘다카오’는 비가 오는 날이면 도심의 정원으로 구두를 스케치하러 간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유키노’라는 여인과 정원에서 만나게 되고, 예상치 못한 만남은 비가 오는 날이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비록 이름조차 모르지만 걷는 법을 잊어버린 그녀를 위해 ‘다카오’는 구두를 만들어 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장마가 끝나갈 무렵, 그들 사이에는 뭔가 말하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는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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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근교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을 결심한 우즈키는 홋카이도에 있는 가족과 작별인사를 마친 뒤 도쿄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무사시노라는 한적한 동네에 거처를 정한 후 그녀는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생활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고 작은 모험과 경험들을 하게 하고 동시에 시련을 겪게 한다. 비현실적인 낚시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고, 이웃집 여자와 이상한 만남을 갖는 등 생소한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우즈키는 동네에 있는 서점에 자주 들리게 되는데.. 마침내 동네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이 그녀가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는 것이 점차 밝혀진다. 과연 우즈키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인사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헤어질 결심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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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자들을 위한 소네트
반 년전, 왕따 당하는 삶에서 자신과 기꺼이 친구가 되어준 개, 루를 그리워하는 조숙한 소녀가 있다. 소녀는 어느 날 루와 산책을 하다 빈 공터를 만나게 된다. 그 공터에서 루와 쌓은 추억으로 가득하기에 루의 죽음 이후에도 사야카는 꾸준히 그 공터에서 멍하니 앉아있다. 루가 다시 와주길 기다리면서.
그렇게 상념에 젖어있던 어느 날, 사야카는 아들을 오래 전에 잃은 후세 할아버지와 친해진다. 소중한 존재를 잃어본 공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공유하며, 그들은 세대를 거스른 베스트 프렌드가 된다. 오랜 시간 동안 죽은 아들을 그리워한 할아버지와 많은 추억을 쌓은 개를 그리워하는 초등학생 소녀의 짧은 우정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면, 영화관에 방문해 볼 것.
1. 반칙이 난무한 등장인물
내가 아는 지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영화를 만들 때, 반칙했다고 평가받는 부분 게 뭔지 알아요? 아이와 개를 등장시키는 거예요. 웬만하면, 아이와 개는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거든요."
영화 내용이 루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야카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반칙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 반칙 덕분에 사야카와 루의 관계성을 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뭔가 세상에 믿을 만한 있을 지도 모른다고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갖게 한다. 진짜 사야카 본체와 사야카의 대사들이 너무 귀엽다.
"후세 상도 기다리고 있는 게 있나요?"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하거나 "소중한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라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주장할 때는, 애늙은이 같다가도 엄마, 아빠가 어디 갔다 왔냐는 질문에 (후세씨와) 데이트를 하고 왔다는 발칙한 답변을 하는 사야카의 모습이 어른인 척 하는 아이 같아서 귀여움이 배가 되었다.
그리고 사야카가 말을 걸 때마다 루 역할을 한 개는 표정으로 참 많은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어디서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개를 찾아왔는지 영화를 보면서 그 점이 신기했다. 개도 연기 연습을 시키는 건가 싶을 정도로.
2. 독특한 카메라워크에서 느낄 수 있는 관찰자적 시선
카메라워크가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지점이 몇 군데 있었다. 비단 비행기가 지나가는 장면을 간단하게 찍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아래에다 배치함으로써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사야카의 뒷모습을 찍어 관객인 우리가 관찰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게 하였다. 또한, 사야카와 루가 벽으로 가로막힌 새로운 초원에 진입하기 전에 개구멍을 통과할 때, 개구멍 옆에 있는 공간에다 카메라를 넣어놓아 사야카가 불평을 하며, 개구멍을 힘겹게 들어가는 과정을 우리가 관찰하듯이 바라볼 수 있다는 점도 독특하게 찍어냈네 생각했던 점이었다. 사야카와 루가 행복하게 놀던 시간을 위에서 관망하듯이 찍어놓은 것도 관객들이 사야카를 관찰하듯이 바라보기를 감독이 바랐던 것이 아닐까 하는 뇌피셜도 해본다.
사야카의 소중한 존재를 잃은 상실감을 그저 관망하듯이 바라보게 한 이유에 대해서 뇌피셜을 해본다면,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에 신도 우리를 그저 관망하면서 잃어버린 존재를 그리워하며, 고통에 잠겨 있는 우리들을 그저 응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간이 신이 전지전능하기에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지만 정작 신은 우리를 관찰하며, 우리가 알아서 극복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했다. 써놓고 보니, 그저 망상같긴 하지만 말이다.
3.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 기차역
어린이 사야카에게 기차역이라는 공간은 많은 의미를 담은 곳일 것이다. 애정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거나 다시 만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인 만큼 사야카와 후세 할아버지는 그 곳에서 자신의 그리움이 투영된 존재들을 만난다. 그렇게 영영 돌아오지 못할 머나먼 길을 간 사람들을 다시 만난 사야카의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기차역이란 결국 몸은 멀리 떠나갔지만 주변인들의 기억 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해 저승을 가지 못한 령들이 살아있는 이들의 기억으로 인해 매여있는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사야카가 후세 할아버지와 갔던 여행에서 루 뿐만 아니라 후세 할아버지의 오래전 죽은 아들까지 보였던 것을 보면, 후세 할아버지도 오래 전에 아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해 그 아들의 혼이 기차역에서 머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결국 기차역은 죽은 이들을 마음 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해 마음 편히 떠날 수 없었던 혼령들이 집합한 곳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야카가 후세 할아버지의 아들과 루를 모두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차역은 사람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떠나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사야카가 루를 놓아주지 못하고, 후세 할아버지 또한, 아들을 놓아주지 못한 결과로 사야카와 후세 할아버지 모두 여행의 목적을 이뤄냈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최종 결정을 해야할 날이 올것이다. 헤어짐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하는 날, 그 날 말이다.
총평
영화가 전체적으로 루즈한 면이 없지 않지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고 느꼈다.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산자의 시간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많은 것을 공유하던 내 사람이 없어진 세상은 이처럼 공허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공허함을 떨쳐내려면, 내 마음 속의 기차역에서 그들을 언젠가는 보내주어야 산 자가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생겨남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마치 죽은 자를 실컷 그리워하다가 언젠가는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말이다. 일본 영화만의 감성을 좋아하시거나 잔잔한 분위기에서 훈훈한 메시지를 가진 영화 보고 싶은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이 훈훈하다고만 하기에는 중심이 되는 메시지가 죽음을 다루고 있는 만큼 킬링 타임으로 가볍게 보고 지나갈 정도의 훈훈함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 같다.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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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장하실 분?
이 글은 영화 [살인자 리포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세상에는 두 부류의 배우가 있다고 했다.
모든 역할에 자신의 색을 입히는 배우와, 오롯이 그 배역이 되어버려 예전의 모습을 지워버릴 수 있는 배우. 물론 어느 배우가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배우가 한 역할에 갇히는 바람에 자신의 커리어를 비슷한 역으로 채우게 되는 안타까움을 느낄 때면. 후자가 더 낫지 않나.라는 같잖은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조여정, 정성일 배우의 캐스팅에 아주 조금의 미심쩍음이 남아 있었을 관객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배우의 재탄생을 보면서 그들의 내공에. 그리고 여태 서슬 퍼렇게 갈아왔을 복수(?)의 칼날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들은 선주(조여정)와 영훈(정성일)으로 오롯이 존재하며, 그 어떤 잡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대단한 연기를 펼친다.
그것이 언제가 되었건 간에, 자신을 속박한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날아오르는 배우들을 보는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영화의 모든 찬사의 순간들을 배우들에게 준다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애석하게도 이 영화의 장점은 여기까지다. 자기 스스로가 살인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인터뷰한다는 설정은 매우 매력적이지만, 기대하는 긴장감이나 치밀함은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무려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된 영화 [자백]의 원작과도 비슷한 설정과, 언뜻 조디 포스터를 연상케 하는 [양들의 침묵] 같은 냉철함을 지니고 있는데도 말이다.
영화는 등장하는 몇몇 사건들을 교차해서 보여주기보다 직선으로 그저 읊어준다. 그래서 사건들이 얽히고설키는 과정들이 시간에 쫓기는 것처럼 다급하게 느껴진다. 또한 초반부에 깔아놓은 복선 외에는 간접적인 언급에 그치는 복선들의 조합 때문에, 후반부에 몰아닥치는 선주와 영훈의 급격한 주객전도에서 영화의 장르마저 바뀐 것 같은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비밀을 조금씩 들여다보며 느끼는 원초적 호기심에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영화는 까발리는 것에 치중해 버린 탓에. 살인자도, 리포트도 남지 않은 채 영화는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기만 한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분명 배우로서 하나의 굴레가 될 법한 것을 모조리 던져내고 훌훌 날아다니던 배우들이었건만. 갑자기 만난 이 예측할 수 없는 조류 때문에 그들의 날갯짓이 안타까워 보이기 시작하는 시점이 온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는 영화가 보여주는 사실보다는 그들의 노력에 대한 박수만을 치게 된다. 그들의 대단함에 한 번, 그리고 한계에 부딪혔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날아오르는 그들을 향한 알 수 없는 마음에 한 번.
그제야 두 배우를 감싸고 있던 부담감이 보인다고나 할까. 이 수많은 문제들을 함께 풀어갔어야 했는데. 마치 조장하실 분?이라는 말에 두 사람에게 쏠린 시선 탓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긍하게 된 조별 과제처럼. 배우들의 혹사(?)에 그저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낄 뿐이다.
[이 글의 TMI]
물론 다른 배우들도 정말 훌륭했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배우 정성일에 대한 두려움까지 밀려왔다. 배우에게서 색깔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닌. 어느 역할이나 정말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버려서, 모든 역할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배우의 탄생이라고 할까. 제발 소처럼 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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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감독: 김철민 | 출연: 강종헌, 김창오, 박금숙, 서원수, 부만수, 이동석, 이철 외 | 제작: ㈜엠앤씨에프, 다큐창작소, ㈜영화사 진 | 배급: ㈜인디스토리, ㈜엠앤씨에프 | 러닝타임: 94분 | 관람등급: 12세이상관람가 | 극장개봉: 2021년 12월 9일]
재일조선인은 그간 <우리학교>(2007) 등 조선학교를 중심으로 영화 속에서 종종 다뤄졌다. 하지만 재일조선인은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는 한국사람, 한국 사회에서는 일본사람으로 여겨지며 차별과 편견의 대상에 머무르고 있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김철민 감독이 18년간의 취재로 시대가 외면하고 이념이 가두었지만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온 사람들, 재일조선인 76 년의 역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재일조선인은 일본 식민 지배의 결과로 일본에 거주하게 된 조선인과 그 후손들을 일컫는 말이다. 해방 후 여러 사정 때문에 일본에 남게 된 그들은 ‘조선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재일조선인 1 세대는 무엇보다 후손들의 민족성 고양을 가장 중시했다. 우리 말과 역사,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가장 먼저 학교를 세웠고, 조선학교의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식민 지배 35 년간의 뼈아픈 역사를 지나자마자, 그들이 맞닥뜨린 비극은 남과 북의 분단과 이념 대립의 냉혹한 시간이었다.
재일조선인 사회는 대한민국(남한)을 지지하는 재일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지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총련’)로 크게 양분되었다. 이승만 정권을 지나 박정희, 전두환 정권까지 ‘냉전’의 격화로 자본주의, 사회주의 진영간 신경전이 극렬했기에 남한은 ‘민단’만을 동포로 여겼고, 북과 교류하는 ‘총련’계는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철저히 외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독재정권은 국내에 유학 온 민단의 청년들을 체제 강화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재일조선인 유학생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남한에 암약해 온 ‘유학생 간첩단’으로 조작한 1975 년의 간첩조작사건이 바로 그것. 이들 130 여 명의 희생자 중 재일조선인 2 세인 강종헌, 이동석, 이철 등이 영화에 등장해 당시를 증언한다.
재일조선인 3 세 박정임과 박금숙 씨는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낸 학부모로 수년간 감당해야했던 트라우마를 떨리는 목소리로 전한다.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를 위시한 습격 데모 단체들이 조선학교를 수시로 찾아와 벌이는 헤이트 스피치가 학부모는 물론 학생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상상 이상의 강도임을 느낄 수 있다. 재특회는 2007 년 혐한과 극우의 정서를 등에 업고 발족한 시민단체로 욱일승천기를 들고 폭력적인 언행을 동반한 재일조선인 특권 반대 가두 시위를 주로 벌였다. 영화 속에서도 나오듯 조선학교를 찾아가 폭언과 협박, 기물파손을 일삼는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이들의 만행은 일본 사회 내에서도 사회 문제로 인식되어 2016 년, 일본 거주 본국 외 출신자에 대한 차별적 언동을 금지하는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 시행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에서 재일조선인들이 마주하는 차별과 혐오는 사실 그들만의 일상도 아니고 일본 사회만의 이슈도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15 년째 국회에서 표류중인 ‘차별금지법’의 사례를 보더라도 작금의 우리나라에 전하는 메시지도 남다르다. 우리 사회는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백래시와 혐오 정서가 사그라들기는 커녕 날로 거세지고 있어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인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유린되고 있다. 이들에게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그 모든 혐오와 차별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재일조선인들의 눈부시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힘찬 연대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의 말과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자립적으로 조선학교를 세웠던 선대 재일조선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끔 평화적으로, 하지만 또렷한 음성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은 민족성을 보장받기 위한 목소리를 이어간다. 이렇듯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미움만이면 증오심만이면 원동력은 되지만 쭉 싸우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삶’을 사는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희망이 된다.
재일조선인은 한반도의 밖에서 한반도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다시금 되새기고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단초를 제공한다.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속 재일조선인들이 한국의 관객들을 만나는 것처럼 이들이 한반도를 자유롭게 오가고 즐겁게 소통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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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하면 누구나 천국에 가나요?
인간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기에, 일상을 위협하는 자극을 경계한다. 적당한 낯섦은 건강한 스트레스를 만들어 발전의 동력이 되지만, 실연이나 시한부 선고처럼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만큼의 거대한 사건은 안정 궤도를 이탈할만큼의 큰 충격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런 고통은 한 번에 받아들이기엔 너무 독하므로 꼭꼭 씹어삼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탄성을 잃고 축 늘어진 고무줄처럼 망가진다.
인간은 다섯 단계를 거쳐 비애(悲哀)를 소화한다.
<죽음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
스위스 출생 정신과 의사 Elisabeth Kübler-Ross가 저서 <죽음과 죽어감>에서 설명한 인간의 슬픔 수용 모델. 죽음을 선고받은 뒤 이를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있다.
부정(Denial):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분노(Anger) : "이 세상 수 많은 사람 가운데 왜 나야?"
협상(Bargaining): "한 번만 봐주시면 정말 착하게 살게요."
우울(Depression): "세상 모든 것 다 부질 없다."
수용(Acceptance): "여생을 잘 정리하자."마주하기에 너무 큰 사건 앞에서 인간은 도망친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믿는다. 바꿀 수 없는 현실임을 깨닫고는 분노하기 시작한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며 온 세상을 원망한다. 그러다가는 이내 죄인으로 변해 하늘에 용서를 구한다. 전생을 탓하거나 일상의 업보를 운운하며 절대자에게 빌기 시작한다. 절대자는 부름에 응하지 않고, 좌절한 인간은 현실로 돌아온다. 이미 벌어진 일 어쩔 수 없다며 마음껏 슬퍼하고, 뚫린 구멍을 매만지며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창동 감독 <밀양>의 주인공 신애의 삶에서 거대한 고통을 마주한 인간의 모습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신애는 아주 기구한 사건에 휘말렸고, 끊임없이 시험에 든다.
서울에 살던 신애는 남편을 잃은 후, 하나 뿐인 아들 준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 내려가 살기로 결심한다. 이방인 신애에게 밀양은 낯설고 모진 동네였다. 주민들은 남편을 잃은 과부의 처지에 동정하면서도, '돈 많은 서울 여자'라는 이유로 은근히 배척한다. 어느 날 준이 납치되면서 신애의 삶은 완전히 붕괴된다. 신애는 준을 품 속으로 되돌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준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삶의 이유를 잃은 채 방황하다가 김 집사의 전도로 종교에 귀의한다. 신애는 깨달음을 얻고 납치범을 용서하고자 교도소로 면회를 가는데, 이미 신에게 용서를 청하고 구원받았다는 그의 이야기에 다시 무너진다. 병원에서의 긴 치료를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신애는 기분전환을 위해 미용실을 찾는다. 미용사는 다름 아닌 납치범의 딸. 매정한 삶이 신애에게 다시 시험을 시작한다.
신애는 거대한 상실 앞에서 어떤 과정을 통과했을까. 궤적을 따라가본다.
부정
준이 사라진 것을 믿지 못하는 신애, 늦은 밤 거리를 배회하며 준의 이름을 외친다신애와 준은 이따금씩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따라 장난이 지나친 것이라고 믿었다. 때문에 밤새 배회하며 준을 찾아다닌다.
분노
유괴범과의 전화 직후, 차 시동이 걸리지 않자 화를 낸다유괴범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신애는 준이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유괴범은 요구 사항만 늘어놓은 채 전화를 끊어버리고, 신애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덩그러니 남겨진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순간, 차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핸들을 매섭게 때리며 울부짖다가 이내 진정한다. 사이드 브레이크가 걸려 있었을 뿐이었다.
협상
가진 돈을 다 내놓겠다며 목소리만 들려달라고 애원한다신애는 유괴범에게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다만, 준이 건강한지 알 수 있도록 목소리만 들려달라고 요청한다. 부당한 협상이지만, 테이블을 떠날 수 없다. 협상 테이블을 떠나는 순간 준이가 잘못될지도 모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유괴범에게 매달린다.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근데 먼저 우리 준이 좀 바꿔주세요. 목소리라도 들어야죠.'
우울
소파에 누워 자는 척 하는 신애준이 시체로 발견되자 신애는 실성한다. 범인은 잡혔지만 준은 세상을 영영 떠나버렸다. 심지어 범인은 가깝게 지내던 웅변 학원 원장이었고, 더 이상 의지할 데가 없다는 슬픔에 좌절한다. 준은 아빠가 보고싶을 때면 소파에 누워 자는 척을 했다. 생전 아빠가 코고는 소리까지 그대로 따라하며 그리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제 홀로 남은 신애가 두 사람을 그리워하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수용
용서를 결심하고 교도소에 방문하여 유괴범과 면회한다신애는 신앙의 힘을 빌려 용서를 통해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한다. 마음으로 용서하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죄를 사하고자 교도소에 찾아가는데, 유괴범은 예상과 달리 이미 편안해보인다. 마찬가지로 종교에 귀의해 하나님께 용서를 얻고 구원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애는 혼절한다.
유괴범의 이야기에 신애는 다시 속이 메스꺼워진다. 지난한 시간을 통과하며 겨우 소화를 하나 싶었지만, 단 한 마디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절대자는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했다. 어떤 아픔도 다 보듬어줄 수 있는 든든한 내 편이라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절대자는 나의 편이기 이전에 모두의 편이었다. 나의 편임과 동시에 원수의 편이었다.
큰 상처를 마주했을 때 용서는 가장 고결하게 인간성을 실현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했다. 먹고 먹히는 복수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는 궁극의 행복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용서가 진정 행복한가. 모든 것에 달관하여 무감해지는 것이야말로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 아닌가. 희노애락에 얽히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일테다. 제아무리 가깝고 전지전능할지언정, 내가 아닌데 내 마음을 아주 알아줄 수 있을까. 신도 내 마음을 모른다. 모두에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제 자신이다.
<작가의 단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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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께 죄를 사면받아 구원받았다는 유괴범의 뻔뻔한 궤변을 듣고 신애는 절대자의 존재에 의구심을 품는다. 당사자인 내가 아직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신이 무슨 자격으로 죄를 사하는가. 신애는 김 집사의 남편(장로)을 유혹해 간음을 유도하고, 야외 부흥회에서 목사가 설교할 때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크게 틀어 신앙을 조롱한다. 평등한 것이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다면 왜 선함을 노력하는가.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결코 달관할 수 없다. 삶이라는 시험에서 영원히 투쟁해야 한다. 선함을 노력하는 투쟁의 과정에서 인간은 존재한다.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았대요. 근데 내가 어떻게 다시 용서를 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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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착병 환자들의 이선생 찾기는 계속된다
?Rabbitgumi 입니다!
지난 주 영화 독전2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습니다.
1편의 하이라이트와 결말부 사이의 일을 다루고 있어요.
감독이 바뀌었지만 등장인물은 그대로 입니다.
형사 원호와 락 그리고 브라이언이 극을 이끌죠.
큰칼이라는 강력한 캐릭터도 있죠.
그런데 영화가 많이 느슨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업데이트하고 있는 영화 에세이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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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레센도> 티저 예고편
점점 세게, 점점 강하게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꿈꾼다!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에두아르트’는 평화 콘서트를 위해
오디션을 거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재능 있는 연주자들을 뽑는다.
수십 년간 이어온 분쟁과 갈등을 넘어 오직 음악을 바라보고 모였지만,
깊이 담겨 있던 분노와 증오는 이내 서로를 공격한다.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위해 지휘자 ‘에두아르트’는 진심을 담아 노력하고
영원히 평행선을 걸을 것 같던 이들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공연을 하루 앞두고
팔레스타인 클라리넷 연주자 ‘오마르’와 이스라엘 프렌치 호른 연주가 ‘쉬라’가 사라지는데…
오케스트라 공연은 무사히 열릴 수 있을까?
평화를 향한 희망의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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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블루 비틀> 티저 예고편
#DC 의 새로운 히어로 등장!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특별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