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8-06 16:50:25
[8월 셋째 주 영화 한줄평] <팜 스프링스>
씨네랩 연구원 시사 리뷰
여름의 끝을 장식할 판타스틱 썸머무비 <팜 스프링스>의 시사에서
2주나 빠르게 <팜 스프링스>를 보고 오신
'씨네랩' 연구원 분들의 한줄평, 한 번 확인해볼까요?
<팜 스프링스>
<기생충>을 넘어
선댄스 최고가 경신!
Hulu 스트리밍 최고치 기록!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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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평한 사회를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
<창문 없는 방>은 레바논, 중동지역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들의 현실을 다룬 영화이다. 레바논 여성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과 고충을 다루는 내용으로 영화를 보고 나서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스포일러를 좋아하지 않아 줄거리를 안 읽고 제목만 보고 봤는데 아무 생각 없이 케이크 먹으면서 보다가 답답해서 물을 벌컥벌컥 마신 게 생각이 난다.
영화에서는 여러 사람의 삶을 소개하는데 그중에 영어를 좋아하는 아이가 영어를 더 배우고 싶어서 지인의 소개로 중개인을 만나 레바논에 가게 된 일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기는 나름대로 유학이라는 꿈을 키우고 다시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오지 않고 거기서 계속 거기서 살 거라고 다짐하며 기대를 가득 안은 채 레바논에 간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니 자기 생각과는 정반대인 노동착취를 당하고 학대받고 온갖 비난을 받았다는 점에서 너무나 분했고, 똑같이 배우고자 하는 학생으로서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카팔라 시스템`을 이용해 권력으로 여성들의 자유, 인권과 존엄성을 짓밟고 무시했다. 여성 인권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고 하나, <창문 없는 방>을 통해 낱낱이 여성 노동착취를 한 층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그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당장 내일부터 이런 인권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래도 서서히 조금씩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묵인이 아닌 여럿의 외침을 통해 한 단계씩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동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아직 여성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같은 사람으로서 그 나이대에 해야 마땅한 일. 공부면 공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기회, 자신의 노력과 성과에 대해 모두가 수긍하는 보상.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에 막연하게 뿌리 잡고 있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계속 이어져가고 있다. 심지어 누구는 이러한 생각조차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옳지 않다고, 한쪽으로 편향된 사고와 가치관임을 알리도 잘못된 점은 바로 잡아, 떳떳하고 자신 있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실제 여성분들의 삶과 인터뷰를 담아서 조금이나마 이 심각한 상황을 알릴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다. 길다면 길고 어떻게 보면 짧고도 짧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많은 사람이 여성 인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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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터본능을 가진 복병의 습격
이 글은 디즈니 플러스 [메스를 든 사냥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btn뉴스
대체 디즈니에 어떤 저주가 내린 것일까.
마블도, 실화 영화도, 게다가 주식도 말아먹더니(우는 거 아님) 이젠 OTT서비스도 그럴 것만 같다.
분명 희망이 보이긴 했다. 정통 추리극을 연상시키는 인상의 예고편을 봤을 때만 해도. 그러나 정주행을 시작하자마자 생각하지도 못했던 복병의 습격에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복병은 “복병”이라는 이름부터 글러먹었다고 봐야 한다. 작품 안에 꼭꼭 숨어 있던 것이 아니라 정중앙에서 아주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난감한 복병은 존재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이름이자 존재였던 셈이다. 이 센터 본능을 가진 복병 덕에, 시리즈를 향한 몰입감은 아주 초반부터 박살 나 버린다. 처참하게.
사진 출처:구글
세현은 입체적이다 못해 4D로 표현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의문까지 드는 인물이다. 연쇄살인마의 딸이면서 공범이고, 아동학대를 받은 장본인이자 목격자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애정을 넘어선 집착의 감정을 느끼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치는 존재이자 감시자이기도 했고, 이 모든 살인의 용의자인 동시에 증인이었다.
그러나 박주현 배우는 이 미묘함을 단 하나도 살리지 못했다. 극 중 세현이 느끼는 이 복합적인 감정들을 모조리 일차원적으로 해석해 낸다. 이런 패착을 가능하게(?)한 요소는 다름 아닌 그녀가 연기하는 세현의 모든 것들이다. 쌍꺼풀 수술을 한 것인지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의도로 반쯤 감긴 눈. 어떤 감정을 담은 것인지 전혀 느낄 수 없게 하품하는 듯한 발성으로 내뱉는 대사들. 미스터리함이나 의뭉스러움이 아닌 어색함을 뿜어내느라 바쁜 걸음걸이까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연기를 못한다.라는 말 외에는 할 수 없는 수준이기에 세현이 등장하는 순간들이 심각하게 괴롭다.
사진 출처:구글
이런 상황을 더욱 못 참게 만드는 두 배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강훈과 박용우 배우의 활약이다. 이 작품 직전까지 예능에서 더 자주 보는 바람에 그의 연기 자체에 선입견이 있었던 강훈 배우는 우려와는 달리 매우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박용우 배우의 경우는 여기에 끼워 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연쇄 살인마 윤조균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세현과 가장 많이 부딪치는 두 배우가 날고 기어 주는 바람에, 이 대환장의 콜라보는 살다 살다 불쌍해 마지않아야 할 여주인공에 대한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상황을 연출해 낸다.
그뿐인가. 그녀의 뚝딱거림은 윤조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의 몸싸움에서 극대화된다. 액션 신(Scene)의 가장 기본이라 해야 할 합이 전혀 맞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은 기본이고. 그녀가 휘두르는 일격들은 술이 머리끝까지 취한 와중에도 귀소본능을 잊지 않은 취객의 몸짓처럼 허우적거리는 정도로만 보인다. 긴박감은커녕 심각한 분위기조차 조성되지 않는다.
사진출처:스포츠 한국
분명 얼마 전 디즈니에서 제공하는 작품들이 애매하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작품을 애매하게 만들어 버리다니.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디즈니에 재앙이 내리지 않고서야, 이런 애매함 총량의 법칙이 적용될 리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센터본능을 가진 복병 덕에. 이 작품은 초반부터 모든 동력을 상실해 버린다. 분명 아주 강한 흡입력을 가진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 글의 TMI]
1. 무표정으로 시리즈를 다 본건 또 오랜만임.
2. 주말에 갈비탕 먹을 거임 와하하하하
#메스를든사냥꾼 #감독 #배우 #배우2 #배우3 #영화국적영화 #영화장르 #영화추천 #OTT #디즈니플러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영화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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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라랜드>의 뉴욕 버전!
“Do You Remember~” 우연히 듣게 된 음악은 기억과 추억을 싣고 온다. 그 당시 계절과 시간, 그리고 함께한 사람과의 추억까지도. 상대방이 연인이었다면, 그 기억은 더 아름답게 떠오를 터.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은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과거 함께 들은 음악을 들으며,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을 담는다. 영화는 마치 꿈처럼 아스라이 사라지는 그 순간을 담기 위해 달려온 것처럼, 짧지만 마법 같은 시간을 관객에게 선물한다. 마치 말하지 않아도 이런 사랑의 기억을 하나쯤 갖고 있지 않냐는 무언의 메시지처럼.
뉴욕 맨해튼에서 사는 도그는 외롭다. 언제나 혼자 해야 하는 게 매일 돌려먹어야 하는 레트로 음식처럼 못마땅한 도그는 우연히 TV를 보다 발견한 반려 로봇을 주문한다. 마침내 조우한 도그와 로봇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뉴욕 곳곳을 누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해수욕장에 놀라 가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놓인다. 로봇이 방전되어 움직일 수가 없는 것. 도그는 어쩔 수 없이 로봇을 홀로 남겨놓고 집으로 간다. 다음 날, 도그는 일어나자마자 연장통을 들고 해수욕장을 찾는데, 하필 운영이 종료되어 해변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로봇 드림>을 관통하는 주제는 ‘그리움’이다. 원치 않은 이별을 하고, 언제 만날 줄 모르는 기다림을 견뎌야 하는 도그와 로봇은 물리적인 거리만큼 서로를 그리워한다.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이들은 하루 하루 비슷한 일상을 버티며 만날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운명은 이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특히 홀로 해변에 남겨진 로봇은 불청객의 습격을 받고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등 물리적인 고통을, 도그는 또 다시 찾아온 외로움에 사무치는 심리적인 고통을 부여받는다.
서로를 향한 그리움은 꿈으로 치환되는데, 제목이기도 한 로봇의 꿈은 매번 함께 들었던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를 휘파람으로 불며 도그의 집으로 가는 그의 여정이 그려진다. 물론, 만나기 일보직전에 항상 실패한다. 그리고 깨 보면 잔혹한 현실의 장벽에 놓여 있다. 로봇은 도그를 향해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히며 그리움은 켜켜이 쌓인다. 도그 또한 꿈에서 로봇과 재회하지만, 현실에서 더 큰 외로움을 느끼는 등 여파가 크게 밀려온다.
지난한 이 상황에서 이들은 각자의 세상에서 새로운 경험과 다른 이들과 인연을 맺는다. 이별 후 죽을 것 같은 통증에 더 이상 내 인생에 사랑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내 다른 사랑을 찾는 현실처럼, 이들 또한 그리움은 가슴 깊이 묻어두고 이 외로운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선택을 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도그와 로봇의 모습을 비춘다. 어쩌면 이게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에 가서야 우리는 그리움을 통한 애절한 감정의 순간과 그 감정을 자양분 삼아 현실의 사랑에 더 충실하려는 이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결은 다르지만 <라라랜드>의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미아(엠마 스톤)가 떠오른다. 서로 사랑을 하고 아쉬운 이별을 한 후, 각자의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간 이들의 마지막 재회. 그 찰나의 순간에 담긴 이들의 성숙한 로맨스 그리고 그 눈빛은 이 작품에서 오버랩된다. 이 부분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면 이 작품을 <라라랜드>의 뉴욕 버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한 <로봇 드림>은 오직 그림으로만 구성된 특징을 가져온다. 대사 없이 캐릭터의 몸짓과 표정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 작품은 무성영화를 방불케 하는 것처럼 캐릭터에 집중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변화하는 캐릭터의 감정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데, 집중한 만큼 느껴지는 감정의 폭은 깊다. 시의적절하게 ‘September’, 'You Raise Me Up' 등도 삽입되어 가사의 의미를 통해 이들의 숨겨진 마음을 전한다. 특히 ‘September’를 들으면 도그와 로봇이 생각날 정도로 감정의 동요가 크다. 손수건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애니메이션상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와 함께 후보에 오른 <로봇 드림> 또한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영화가 담은 의미와 감동은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이젠 기억 속에 어렴풋이 자리 잡은 1980년의 뉴욕 문화를 재현한 것처럼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던 그리움과 사랑의 기억을 복원한다. 보는 이로서 그 자체가 103분의 달콤쌉싸름한 꿈이라도 행복했던 지난날에 취하고 싶다. 현실로 돌아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칠지언정.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평점: 4.0 /5.0
한줄평: 지금 나를 성장시킨 건 그 때의 우리였다는 걸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 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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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대한 공감으로 만들어낸마블 영화
인생에서 진정한 사랑을 만나는 것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아주 형편없는 생활을 하던 사람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면서 생각을 다시 잡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려 노력한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전체 인생에서 보면 아주 짧은 순간이다. 그 기쁜 순간을 지나고 화학물질이 만드는 인체의 사랑 호르몬 분비가 끝나는 시기가 되면 열정적인 사랑도 시들어간다. 하지만 그 사랑을 위해 뛰어든 두 사람의 삶은 이미 꽤 많은 변화를 이룬 후일 것이다. 정말 상대방을 위하는 존재를 만났다면 두 사람은 자신의 바뀐 삶에 적응하며 열정적인 사랑 대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자신의 동반자의 손을 잡고 같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두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가족을 통해 그들의 삶의 에너지를 그다음 세대로 서서히 내린다. 그렇게 아주 완벽한 모습의 가족이라고 해도 그 안에는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서로 불만이 쌓여 다투기도 하고, 서로에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부가 된 두 사람 중 한 명이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로 인한 그늘은 다른 어떤 상황에서보다 어두울 것이다. 남은 사람은 그 자신이 운명을 다할 때까지 상대방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 또 남은 가족들을 챙겨갈 것이다. 두 사람이 만들었던 그 가족이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지 아니면 깨져버릴지는 순전히 남은 가족들의 몫으로 남는다.
한 가족의 사랑이야기를 다루는 마블 영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 히어로 영화지만 한 부부의 사랑이야기에서 파생된 이야기다. 웬우(양조위)는 수세기 동안 텐 링즈를 이끌며 세상을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열 개의 팔찌를 낀 그는 팔찌의 힘으로 다양한 조직과 싸우면서 자신의 조직인 텐 링즈를 운영하고 있다. 어찌 보면 세상의 어두움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갔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탈로라는 신비한 세계의 힘을 빼앗기 위해 그곳에 갔다가 입구에 지키고 있던 여인 리(진법랍)을 만난다. 팔찌의 힘을 이용해 싸우는 웬우를 막기 위해 맞서 싸우는 리는 아주 부드럽고 우아하게 웬우를 막아선다. 그 둘은 한동안 매일 서로 만나며 대결을 벌이다가 결국 사랑에 빠진다.
웬우와 리는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들의 기존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웬우는 팔찌를 빼고 악행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았다. 리는 탈로에서 나와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아들 샹치(시무 리우)와 딸 샤링(장멍)을 낳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듯했지만 아내 리의 죽음으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그들이 만들었던 사랑은 아주 따뜻하고 밝은 에너지를 만들어냈지만 한 순간에 큰 그늘이 지고 말았다. 영화는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가족 가운데 아들 샹치의 시점을 중심으로 하여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어쩌면 마블 영화 시리즈 중에서 가장 사랑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주인공 샹치의 가족 이야기가 기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모든 일이 발생한 것은 웬우가 가진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때문이다. 그는 영화의 가장 강력한 빌런이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가 가진 감정을 완전히 공감할 수 있게 되어 있어 그가 행하는 악행은 결국에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웬우는 영화의 초반에 잠깐 등장하고 중반 이후에 본격적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그가 등장하는 장면들에 그의 표정은 우리가 흔히 보던 악당의 모습이 아닌 우울하고 의욕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그가 행하는 악행의 이유가 드러나는 후반부가 되면 관객은 더욱 그의 감정에 공감하고 몰입하게 된다.
주인공 상치보다 공감 가는 캐릭터 웬우
물론 영화의 주인공은 샹치다. 영화 초반은 샹치가 미국에서 일을 하며 혼자 생활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가장 친한 친구인 케이티(아콰피나)와 자유로운 생활을 하던 그는 아버지 웬우가 보낸 괴한들의 습격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예전 삶에 대한 기억들을 더듬어 나간다. 동생 샤링과 다시 만나고 결국에는 웬우와 다시 재회하게 되는데, 다시 만난 아버지 웬우와 같이 앉은 샹치와 샤링의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영화는 한 가정의 그늘이 만들어진 이후, 각자가 짊어지고 있던 그늘이 그들을 어떤 식으로 변하게 했는지를 재회한 그날 이 가족의 식사 장면으로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웬우는 자신에게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가며 좋지 않은 선택을 하지만 자신의 자녀인 샹치와 샤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웬우가 샹치와 샤링을 볼 때 나타나는 단호한 눈빛에는 따뜻한 연민이 잠깐 머물다 사라진다. 웬우가 샹치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은 애증일 것이다. 아내의 죽음의 순간에 함께 있었던 아들에 대한 원망과 그래도 사랑했던 아들에 대한 애정을 가진 웬우의 감정은 배우 양조위의 눈빛과 몸짓으로 훌륭하게 표현된다. 그래서 적어도 샹치 캐릭터의 첫 영화인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샹치가 아닌 웬우가 진정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격투 액션 장면은 마치 중국 무협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빠른 속도감과 타격감을 통해 중국 무협 영화들에서만 보던 화려한 격투 액션을 마블 세계관 안에 훌륭하게 가지고 왔다. 때론 빠르게, 때론 부드러운 액션 장면으로 강약 조절을 해나가던 영화는 후반부에는 마블 히어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CG 액션과 화려한 무기들을 등장시켜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번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액션 장면들은 그동안 마블 영화들에서 볼 수 없는 종류의 무협 액션이 다채롭게 담겨있다는 것이다.
샹치가 활용하는 무술은 강력한 동작으로 강하게 타격하는 형태다. 이는 아버지인 웬우와 텐 링즈의 고수들에게 배운 스타일이다. 반면에 어머니인 리와 탈로를 지키는 사람들이 쓰는 무술은 부드럽게 상대의 힘을 이용해 반격을 가하는 스타일이다. 완전히 상반되는 격투 스타일은 캐릭터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 웬우와 리가 만나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서로 완전히 상반된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 상대방의 스타일에 끌려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 상반된 스타일의 두 사람이 만나 어찌 보면 완벽한 가족이 될 수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샹치도 아버지의 격투 스타일로 시작했지만 탈로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무술을 배우면서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의 스타일을 모두 받아들여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정통 무협 스타일과 마블 히어로 액션 스타일의 성공적인 조화
마블은 새로운 페이즈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얼마 전 개봉했던 <블랙 위도우>에서는 러시아 국적이나 배경을 가진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이번에는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또한 많은 대사를 실제 중국어로 구사하게 하여 더욱 해당 문화를 표현하려 노력했다. 아마도 향후 개봉하게 되는 마블 영화들에는 더욱 다양한 국적의 히어로나 인물들이 포함되고 해당 문화권의 특징들도 영화에 담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블 영화에서 한국어가 들리거나 그 외의 나라 언어들이 높은 비중으로 포함된다면 마블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샹치가 처음 소개되는 영화다. 그래서 샹치의 캐릭터의 특성과 격투 스타일이 어디서 왔는지, 그 근원에 대해 알려주고자 구상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샹치가 대부분의 장면에 등장하지만 이번 영화는 샹치의 윗 세대의 이야기가 끝맺어진다. 샹치의 아버지 웬우와 어머니 리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죽음으로 그 사랑이 끝나는 순간까지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샹치 캐릭터의 모험은 그가 등장할 다음 마블 영화부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많은 대사가 중국어로 이루어지지만 정작 중국 본토에서는 이 영화의 개봉이 금지되어있는 상황이다.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개봉을 하지 못하는 이 영화는 중국 이외의 국가에서 극장 개봉에 들어갔으며 꽤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마블 영화를 보여준 마블 스튜디오는 이 영화를 시작으로 새로운 페이즈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11월에는 <이터널스>, 12월에는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이 시리즈의 이야기를 이어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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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으로 가득하지만 끊임없이 사랑이 피어오르는 곳.
델리아 오언스가 펴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11월 2일에 개봉했다. 원작 소설은 2019년에 출간되어 뉴욕타임스에서 180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달성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영화 곳곳에서 표현되는 습지 특유의 분위기와 책 속의 등장인물들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책이 스크린으로 옮겨지는 순간을 마주하며 가을의 시작을 여는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소개한다. 갑자기 벌어진 죽음은 체이스의 평판보다는 모두가 낯설어하면서도 모두가 경멸하는 습지의 소녀인 카야에게 시선이 쏠리게 했다.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전체적인 정황과 심증이 카야를 가르키고 있는 터라 고정된 시선과 편견으로 그를 바라보는 이들로 인해 카야는 용의자가 되어 좁고 습한 곳에 갇히게 된다. 체이스의 죽음에 카야가 관련되어 있는지 궁금하다면 영화를 통해 확인해보길 바란다.
우리 사회는 소문이 늘 사실처럼 소문이 퍼지고 개개인이 휘말린다. 당사자가 되면 고통스러운 순간의 연속이지만 그와 관련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흔한 가십거리에 불과했다. 낯섦의 경계를 허무는 노력보다 미지의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추측하는 것이 훨씬 쉬우니까. 그렇게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시작되는 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진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지만 악순환은 끊기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는 습지와는 다르게 빛도 사라지고 생기도 사라진 모습으로 변모하고 쉽게 내뱉은 것들은 그 편안함과 달리 고독함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들이 전해주는 따뜻함이 카야에게도 닿을 수 있을까.
사랑으로 가득했던 공간은 금세 폭력의 장으로 바뀌고 모든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적막한 고독으로 가득 찼다. 두려움뿐만 아니라 용기, 설렘을 동반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생소한 감정을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하여 포기할 만도 하지만 카야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체득한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간 공간 사이에 피어나는 한송이의 사랑을 발견한다.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과 글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보며 카야는 조금 더 성장해간다. 항상 함께할 것 같았던 타인은 늘 그랬던 것처럼 떠나고 다시 그는 고독에 빠진다. 그를 온전히 그 자체로 바라봐주는 건 습지뿐이었다. 새가 둥지를 지키듯 습지도 카야를 지켜주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카야가 자연 그 자체로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카야의 마음이 타서 재가 되었던 것만큼의 상실은 아니었지만 사랑으로 인해 마음이 얼어붙는다는 건 다양한 감정이 다시 오므라들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듯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고 확신 없는 마음속에서 외롭지 않은 마음을 발견한다. 그것도 잠시 혼자 사는 것보다 두려움에 사는 게 더 무서워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사람들은 껍질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잊죠." 말처럼 유일한 카야의 세상은 카야 자신만이 알고 있었으니까. 습지에 갇힌 게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어 카야는 습지 그 자체가 되었다. 자신과 동떨어진 세계에서 마야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카야의 전반적인 삶이 주로 사랑 이야기에 집중되다 보니 카야 내면의 이야기는 많이 가려져 좀 아쉬웠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원작의 분위기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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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혹하게 친절한 '플레이그라운드'
* 2022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레이그라운드 Playground, 2021
벨기에 / 드라마 / 72분
감독: 로라 완델
가혹하게 친절한, <플레이그라운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자기 자신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할 때, 우린 그 끝에서 말살된 인간성을 발견한다.
그 이후 우리가 경험하는 건, 지독한 폭력과 끝나지 않는 후유증의 활기.
과연 도구란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에게 도구란 무엇일까. 언제부터 우린 서로를 쓸모 있는 물건으로만 인식하게 되었을까. 도구화되어버린 인간은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까? 인간이 인간을 도구로 만들어버리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또 뭘까. 결국 우린 죽을 때까지 서로를 짓밟고 살아가지 않으면 살 수 없을까? 하나의 질문엔 답이 아닌 수백 개의 질문이 따라온다.
하지만, 우린 매번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는다.
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니 확신을 목도한 적이 있다.
바로 앞에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몇 번을 입으로 소리 내며 따라 했지만, 결코 믿기지 않은 대답.
동시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버린 대답.
'본능'.
살아남기 위한 본능, 존재의 증명을 위한 본능, 심장이 뛰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본능 같은, 모든 본능.
<플레이그라운드>는 인간이 가진 폭발적인 본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직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일곱 살 노라는 학교 정문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빠, 아벨은 불안해하는 동생에게 쉬는 시간마다 꼭 놀아주겠다 약속한다. 그러나 노라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계속 뒤를 바라보며 아빠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다시 날 데려가 달라는 간절한 신호를 보낸다.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노라의 불안한 눈빛. <플레이그라운드>는 어른을 대변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등교하는 딸을 조마조마하게, 한편으론 대견스럽게 보는 아빠의 얼굴 대신 아이의 패색 짙은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을 때부터, 영화는 가혹하게 친절하기로 마음먹는다.
중심에는 아이들의 세계가 있다.아이러니한 건 그들의 세상이 사실상 모든 어른이 겪었던 '과거'란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의 아이가 겪었던 현재가 나의 과거였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않으면서, '나는 그랬었다'란 과거의 향수를 들먹인다. "누구나 다 그런 시절이 있어."라고 말이다.
쉬는 시간, 전교생이 뛰어노는 운동장으로 노라가 첫 발을 뗀다. 운동장 구석에서 친구들과 있는 아벨을 찾지만, 오빠는 노라를 어떻게든 멀리 떨어트리려 애쓴다."여기 오지 마 전학생 패고 있어, 여기 있으면 너도 맞아."
툭- "점심 뭐 먹을래?" 같은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말하며 노라를 밀어내는 아벨. 하지만 노라는 이미 얼굴도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일진에게 목이 잡힌 채 고통스러워한다. 아벨은 자신의 동생이라며 일진을 말리지만, 포식자는 결코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 공간에서 왕은 자신이며, 따라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음을 명확히 전달한다. 결국 아벨은 노라를 구하기 위해 일진에게 주먹을 휘두르다, 땅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일진은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자신이 사자인 게 당연하다는 듯, 약자는 강자의 먹이가 되는 게 순리라는 듯 아벨을 사냥감으로 설정한다.
감히 권력자의 업무를 방해한 죄로 아벨은 포식자의 무리에서 추방된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노라는 일진들의 새로운 타깃이 된 아벨을 어떻게든 구하려 애쓴다. 선생님께 일진들이 오빠를 괴롭힌다고 열심히 소리치지만, 아벨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낯선 환경 속에서 마음 편히 친구도 사귀지 못해서 속 시끄러운데, 거기에 오빠는 아빠에게 괜히 심각해진다며, 사실을 숨길 것을 주문한다. 노라는 오빠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고갤 말없이 끄덕인다. 침묵,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진실. 아벨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고, 노라는 아직 그 본능이 주는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오빠는 이미 자신이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아이들에게서 시작돼 끝난다는 현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진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 일진의 유희를 위한 도구로 자신이 쓸모없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역할.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어떠한 방식으로도 효과적이지 않을 거란 확신. 그 확신을 본능적으로 느껴버린 자신의 직감.
아벨의 침묵인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반면 노라에게 학교는 새로운 세계다. 온전히 안정적이고 안전한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나와 처음 맞이하는 사회. 우린 사회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와는 다른 '타인'을 만난다. 타인의 언어와 행동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뿌듯함을 얻기도 한다.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온몸으로 받아낸 후엔 반드시 한 번은 사회적인 관점으로 가족을 의심한다. 전에는 늘 완벽하고 좋았던 나의 울타리가 어딘가 이상해 보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인간은 성장과 후퇴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신발끈을 묶는 법을 모르고, 매일 엄마가 아닌 아빠가 학교 앞에 서 있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노라처럼 말이다.
변기에 머리가 처박혀 고통스러워하는 오빠를 무력하게 보고만 있어야 하는 노라. 아이는 잠깐의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파도에 힘들어한다.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끼는 아벨의 발버둥과 비웃는 친구들의 눈빛도 더는 견딜 수 없다. 결국 노라는 등교를 거부하는 오빠를 억지로 학교 안으로 밀어 넣는 아빠에게 오빠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진실을 고백한다. 나름 노라에겐 최선의 방법이었다.
아빠가 움직이면 지금까지 걱정했던 일들이 다 사라질 거라 믿는 아이의 순수한 맹목에서 나오는 마음.
그러나 집 안에서 느꼈던 당연한 것들은 집 밖을 나오는 순간 먼지로 사라져 버리는 법이다. 노라는 내 세상의 중심에 서서 고민들을 시원하게 해결해줬던 아빠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란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아벨은 일진들을 자신을 앞에 세워놓고 사과를 강요하는 아빠의 대처에 얼어붙는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무섭게 소리치고, 따끔하게 혼을 내면 착한 아이가 되어 내 아들과 친구가 되진 못해도, 다신 괴롭히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아빠의 허망을 눈앞에서 봐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보다 더 순진하고 무능력한 아빠의 문제 해결 방식은 사건을 더 잔인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만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플레이그라운드> 속 어른들의 대처엔 전부 그러한 망상이 숨어있다. 어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자위하고, 앞으로의 일은 다 괜찮을 거라 착각한다. 울타리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정체도 알 수 없는 괴물에게 쫓기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원래 그래'란 태도를 고집할 수 있는 이유도 전부 여기에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란 얄팍한 믿음 아래 정작 자신의 아들은 오줌싸개와 쓰레기로, 딸은 더러운 오빠의 동생으로 또 함께 놀기 싫은 애가 된 것도 당연히 몰랐겠지.
어른이 되면, 진짜 문제를 모르는 척 등가죽에 숨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내 의지로 꺼내지 않으면 절대 어둠 속에서 고갤 내밀 일이 없는 그런, 본능, 심보."문제 해결했어, 또 그러면 말해."
"오빠한테 문제가 좀 생겼어, 하지만 아빠가 오셨으니 괜찮아."
"누구든 도움받고 싶은 대로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 같아."
"넷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하는 거지?"
"그럼 이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악수해."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으면 막았을 거야."학교란 작은 공간이 세상을 배우는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라 해서 진짜 아이들의 세계를 모를까? 아니, 우린 다 알고 있다. 단지 마음가짐을 다르게 먹는 거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또 연마했기에 가능한 거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이 지점을 꼬집는다. 카메라의 시선이 노라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보호하고 도와줘야 할 어른들이 세상을 초월한 말을 내뱉을 때도 화면 속엔 항상 아이들의 불안한 낯빛뿐이다.
정말 좋게 생각한다고 좋아지는 비극이 있나? (솔직히 그런 비극은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
처음부터 그들의 말이 가진,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을 이제 막 무리에 들어간 아이들이 어떻게 알까.
노라의 아빠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의 내성이란 말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들이 직접 겪어야 할 현재를 함께 해아 한다. 부단히 아프면서 또 후회하면서 세상을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 정작 아이였던 자신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는 걸 인정하면 더 좋고. 본래 인간이 인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감'이 필수다. 눈앞에 있는 벽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는 후배에게, 선배가 해야 할 가장 좋은 위로법이 "나도 그랬어, 아니 너보다 더 최악이었지."인 것처럼 말이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도 공감과 해결책을 받아보지 못한 노라는 모래사장에서 죽음을 생각한다.
재미있게 모래를 만지며 장난치는 친구들 사이에서 떠도는 괴소문에 몰입한다. 자신이 앉아있는 모래 아래에 얼마나 많은 시체가 잠들어 있을까. 운동장이 거대한 무덤이 되어버린 순간, 아이는 묘비 하나 없는 공동묘지에서 두려움보다 더한 공포를 느낀다. 뛰어놀기 좋고 떠들기 좋았던 광활한 땅엔 어떻게든 벗어날 수 없는 폐쇄성이 깃들여져 있었다. 오빠의 사건을 두고 "가끔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는 일도 있거든"라며 뻔한 변명을 반복하는 선생님처럼, 아벨보다 어린 노라에게 계속 오빠를 위해 전부 다 말해달라는 아빠처럼.노라는 결국 그토록 원했던 친구의 생일 파티에도 초대받지 못하자 꾹 참았던 감정을 오빠에게 터트린다. 친구의 초대장을 찢어버리면서 다시 외톨이가 되고, 친구들 앞에선 오빠를 옆에 두고 "내 오빠 아니야."라고 선언한다. 동생의 말 한마디에 아벨은 아무 말하지 못하고 고갤 숙인다. 죄인처럼, 다신 웃을 수 없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라에게 주어진 선택은 아벨 밖에 없었다. 아벨이 자신과 유일하게 놀아준 친구(이스마엘)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그것은 애석하게도 본능이었다.
아이가 먼저 배운 게, 옆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이 아니라 인간을 도구화하는 방식이라니.
노라는 아벨에게 화를 내며 자신의 죄책감과 실망을 해소하려 하고, 아벨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나가기 위해 친구를 모래 구덩이에 넣는다. 일진이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기 위해 아벨을 괴롭혔듯, 아이들은 제각각의 본능을 무기 삼아 남을 옭아맨다. 누구도 나서서 알려주지 않았던 행동들을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두 발로 일어나 걷듯이 자연스럽게 혼자 습득한 것이다. 정작 어른들이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니었을 텐데.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아벨은 자신을 말리는 노라에게 날카롭게 묻는다. 다시 내가 맞는 게 좋냐고. 차라리 맞는 것보다 때리는 게 낮지 않냐고, 나의 폭력이 이 거지 같은 상황을 잊게 해 준다고, 나쁘고 좋고를 떠나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노라는 아벨의 변화가 전부 자기 탓인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린다. 단숨에 오빠를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만든 장본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왜 노라가 그런 프레임에 갇혀야 할까.
더구나 오빠는 이스마엘을 괴롭히면서 자신을 자해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이지.
마지막까지 어른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건, 일련의 사건들을 전부 지나갈 과거로 치부하는 그들의 행보다. 결국 아벨을 막아선 건 동생 노라였다. 아무도 관여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폭력 세계에 아이인, 노라가 선택한 건 두려움에 터져 나온 호소와 몸을 던진 애원이었다. 아벨은 이스마엘을 모래 구덩이 안으로 넣으려는 자신을 막는 노라를 밀어내려 하지만, 제발 이러지 말라는 동생의 외침에 마침내 멈춰 선다. 이윽고 자신을 꽉 안고 있는 노라를 안으며 억눌렀던, 참아야만 했던 참담한 슬픔을 토해낸다.
아벨 역시 이 현실이 노라만큼이나 버겁고 두려웠을 테니까. 돌고 도는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고 휩쓸려가 버렸던 오빠의 손을 잡아끈 노라의 용기가 <플레이그라운드>의 정점을 찍는 동시에 마지막을 장식한다.<플레이그라운드> 메인 포스터
살아남기 위한 본능은 필요하다. 존재의 증명을 위한 것도, 내가 살아있게 하는 것도 당연히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완벽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을 실수로 포장하곤 한다.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본능을 당연한 특권으로 받아들인다.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고 버리고 또다시 이용하려 애쓰는 것을 자연현상처럼 여긴다. 자연재해로 얼렁뚱땅 넘겨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플레이그라운드>가 보여준 노라의 용기는 인간의 본능을 가치 있게 활용한 결과이다.
우리가 계속 추구하고 바라보고, 따라가야 하는 본능. 나를 위해 남을 도구화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란 걸 먼저 아는 본능. 그것은 습득이 가능하다. 그러니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지.
학교폭력에 무감각한 어른들의 모습도 영화가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겠지만, 인간으로서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것이 제일 귀중한 메시지가 아닐까.결말이 주는 씁쓸함은 폭력의 고리를 끊은 주체가 어른이 아닌 아이란 점이다.
다행스럽단 느낌은 결국 노라가 해줬단 마침표의 영향이다.
하지만 <플레이그라운드>가 끝까지 남긴 건 불편함이다. 우리가 조금의 희망을 발견했다며 안도하고 '그래 다 끝났다' 생각한 순간을 예상하고 기다렸기 때문이다.
가혹하게 친절한 건, 아벨의 침묵을 이해한 것처럼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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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무가' 무당즈는 각자 일생일대의 한탕을 위해 비트에 몸을 맡긴 채 프리스타일 굿판 대결을 펼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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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의 날 <변호인> 예고편
1980년대 초 부산.
빽 없고, 돈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남들이 뭐라든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승승장구하며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 데뷔를 코 앞에 둔 송변. 하지만 우연히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만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 송변.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충격을 받은 송변은 모두가 회피하기 바빴던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하는데...
“제가 하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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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피 뉴 이어> 티저 예고편
올 연말도 혼자 쓸쓸히 보내시나요?? 12월 29일! 소중한 인연을 만나는 '호텔 엠로스' 문이 활짝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