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1-07-29 12:51:11
말을 빼앗긴 레즈비언은 기억과 몸짓으로 말한다
영화 〈우리, 둘〉 리뷰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후 쓴 리뷰입니다.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은 가장 손쉬운 자기 선언의 수단이다. "나는 남자입니다." "나는 30대입니다." "나는 게이입니다." 등의 말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정보를 상대에게 빠르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이 전부는 아니다. 말이 없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릴 수 있다. 때로는 말보다 더 선명한 방식으로. 영화 〈우리, 둘〉(원제: 'Two of Us')은 '말할 수 없는' 레즈비언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강렬하게 선포하는 일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노년의 레즈비언 커플인 니나와 마도다. 둘은 복도를 가운데 두고 마주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은퇴한 둘은 로마로 이주해 한 집에 같이 살 계획을 꾸린다. 그런데 니나와 마도가 갈등을 겪기 시작한다. 마도가 자녀들에게 자신이 레즈비언이고 애인인 니나와 함께 살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니나는 '말하지 못하는' 마도를 답답해한다.
둘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던 때,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관계에 기묘한 변화가 생긴다. 이제 '말하지 못하는' 건 니나다. 니나는 매일 마도를 보고 싶고, 항상 마도의 곁에 머물고 싶다. 그러나 마도의 간병인은 그런 니나를 이상하게 여긴다. 니나는 간병인에게 자신이 마도의 레즈비언 애인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니나는 자신이 마도의 이웃, 친구로만 여겨지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영화의 절정, 어머니가 레즈비언임을 알게 된 마도의 딸 앤은 그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마도를 니나와 분리하려고만 한다. 그럼에도 마도가 계속 니나를 찾자 '제발 자신과 대화를 하자'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마도는 이중적 의미에서 말할 수 없다. 뇌졸중에 걸려 언어능력을 잃은 게 첫 번째 이유고, 이성애규범적 세계가 레즈비언의 발화를 허용하지 않는 게 두 번째 이유다. 앤이 애타게 소리쳐봤자, 대답은 오지 않는다. 엄마와의 대화를 막는 건 이성애중심적 체제와 그에 안주하는 앤의 편견이지만, 앤은 끝내 무엇이 자신과 엄마의 대화를 막는지 알지 못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말'이 중요한 소재임을 암시한다. 영화는 두 여자아이가 숨바꼭질을 하다가 한 명이 사라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술래인 아이는 사라진 친구를 애타게 부르지만, 그 목소리는 까마귀 울음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애타게 부르짖어도 들리지 않는 아이의 목소리는 자신들이 레즈비언 커플임을 말하지 못하는 니나와 마도를 닮았다.
하지만 말이 없다고 니나와 마도가, 그들의 관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말이 아니어도 그들의 존재와 사랑을 증명할 수단은 있다. 말의 강제적 부재라는 상황에서, 니나와 마도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식은 기억과 몸짓이다.
먼저 기억의 문제를 보자. 앤이 아무리 부정해도, 마도의 옛 앨범에 담긴 건 그녀의 아버지가 아닌 니나다. 마도의 모든 걸 제일 잘 아는 사람도 니나다. 오랜 기간 서로가 서로의 가장 친밀한 존재였던 둘은 동성애 친밀성을 배제한 가족제도와 규범이 알지 못하는 내밀한 경험들을 쌓아왔다. 니나와 함께 쌓아온 내밀한 경험은 '말을 잃은' 마도에게 가장 분명한 언어가 되어 둘의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를 구성하며, 미래를 꿈꾸게 한다. 니나와 마도는 오랫동안 함께 쌓아온 기억으로 소통한다. 이들의 소통이 앤을 비롯한 타인에게 '들리지 않는' 건 이 영화의 가장 큰 비극이다.
두 번째는 몸짓이다. 영화의 마지막, 니나는 요양 병원에 있는 마도를 몰래 자기 집으로 빼돌린 후 함께 블루스를 춘다. 밖에서는 앤이 문을 쾅쾅 두드리며 마도를 돌려달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마도와 니나는 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듣지 않는 건' 앤이 아닌 마도와 니나다. 세계가 그들을 거부하자, 그들만의 세계를 만든 것이다. 사랑을 속삭이는 말은 들리지만, 사랑에 손가락질하는 말은 들리지 않는 세계를. 서툴고 경직된 그들의 블루스가 무엇보다 단단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렇게 말을 빼앗긴 늙은 레즈비언 커플은 기억과 몸짓으로 자신들을 증언한다. 〈우리, 둘〉은 '말'의 은유를 통해 존재에 대한 윤리의 문제를 다루는 수작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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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2021. 04. 21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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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샹치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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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말고 또 뭐가 있는데?" ⟨베이비 드라이버⟩ 릴리 제임스, ⟨크루엘라⟩ 에밀리 비첨 주연! 운명적인 사랑과 자유를 열망하는 린다와 안정적인 가정을 꿈꾸는 사려 깊은 패니. 두 단짝 친구의 사랑, 낭만, 우정, 그리고 모험 같은 나날들의 아름다운 기록. 믿고 보는 왓챠 익스클루시브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 8월 25일, 곧 왓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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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클리포드 더 빅 레드 독> 메인 예고편
뉴욕의 아파트로 이사 온 12살 소녀 에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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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을 가면서 철없는 삼촌 케이시에게 맡기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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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작고 빨간 강아지를 만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함께하게 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작고 빨간 강아지 클리포드는
하루아침에 3M가 넘게 커져버려 순식간에 뉴욕의 유명인사가 되어버린다.
엄마가 오기 전 클리포드를 되돌리려는 에밀리와
클리포드를 유전학 사업에 이용하려는 기업까지 뒤쫓으며
클리포드는 위험에 빠지고 마는데..!
세상에서 가장 큰 빨간 댕댕이,
클리포드의 놀라운 모험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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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태풍이 우리를 해방케 하리라•마고 내시의 <무소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고 내시: 호주 사회의 도전적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언더커런츠: 힘에 관한 명상>(이하 <언더커런츠>)와 <무소유>다. 최근작 <언더커런츠>는 단편으로, 1994년작이자 장편 극영화인 <무소유>의 이미지들이 일부 들어갔다. 필자는 작년 6개월 동안 호주 시드니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때 느낀 것은 호주의 문화라는 것이 사실 상 없다는 것이다. 호주는 여기저기서 온 이민자들이 세운 국가다. 필자가 다니던 광고홍보회사에도 정통 순혈 호주인이라는 것은 있는 개념 같지도 않았고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그리스계, 필리핀계, 한국계 외에도 수많은 다양한 계통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이 바로 호주다.
이러한 다양성은 호주의 정체성이지만, 뭔가 고유한 것이 없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호주의 전통 음식이라는 것은 정체가 불분명하다. 모두가 입을 모아 하나로 외칠 수 있는 것이 없다. 호주는 이러한 자국 문화의 한계를 선주민들에게서 찾아오려고 하는 것 같다. 마침 필자의 회사 근처에는 ‘Gadigal’이라는 이름의 지하철 역을 짓고 있었다. Gadigal은 부족의 이름으로, 호주 선주민들 중 하나다. (방금 완공된 Gadigal 역의 모습을 찾아보고 애틋한 감상에 잠기고 말았다…) 현재 호주 정부는 이런 식으로 선주민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기리려 하고 있다. 필자가 호주의 예술에 대해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도 호주 선주민들의 페이즐리 무늬를 닮은 전통 문양이다.
<무소유>는 테사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집으로 귀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상영 후 게스트 시네필로 초대된 호주의 영화평론가 에이드리언 마틴은 이러한 귀향(Return) 모티프가 호주 예술에서 자주 반복된다고 말한다. 호주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호주인들이 자신의 국가를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이는가? 호주는 문화적 황무지인가, 혹은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인가? 마고 내시의 영화에서도 이런 질문들이 언급된다.
테사는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지붕이 있고 울타리 형식의 대문이 있는 호주에서 흔한 주택이다. 테사는 원래 언니 케이트의 집에 묵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세 아이를 키우는 케이트는 돈 때문에 집을 팔려고 하고, 테사는 그 집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않느냐며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집을 두 자매 모두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찾으려고 그 집으로 향한다. 영화는 처음에는 두 자매의 갈등으로 시작하여 테사가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어두운 과거로 빠져든다.
테사는 브라를 하거나 하지 않은 채로, 멍하니 집안을 거닌다. 이 상태는 해방감과 불안함을 동시에 준다. 그녀의 옷은 붉거나 살구색 계통으로, 가슴이 깊이 파여있다. 머리는 검은색 단발머리다. 떡 벌어진 어깨로 스크린을 유유히 걸어다니는 테사의 육체를 보며 이 영화가 정말로 여성적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적인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에이드리언 마틴은 여성적 미학(female aesthetic), 어슐러 르 귄의 캐리어백 이론을 언급한다. (어슐러 K. 르 귄은 허구를 운반하는 가방 이론(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 1986)에서 찌르고 때리고 자르는 창의 문명과 채집하고 보존하고 나누어주는 가방의 문명이 분기되는 아주 오래 전을 되돌아 본다. 창이 영웅을, 주인공을 필요로 하고 정복, 개척, 승리와 패배, 구원과 희생의 서사를 구축한다면 가방은 작고 다양한 이름 없는 것들이 뒤죽박죽 순서를 가지지 않은, 구체적인 삶의 진실을 닮은 이야기를 위한 공간이다. 출처: http://leehanbum.com/writing/the-man-who-carried-the-bag)
가부장적 픽션은 폭력이나 사냥의 스릴에 관한 것이다. 대조하여, 여성적 픽션은 모임(gathering), 돌봄(caring), 세상의 파편들을 모으고 기억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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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줄을 가로질러 저 너머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 이후 또 다른 이웃집 히어로 '마일즈 모랄레스'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로 다시금 스파이더맨 팬들을 향해 낭만의 거미줄을 쏘아 올렸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보다 더 본격적으로 SSU(Sony Spider-man Universe)을 온전히 발휘한다. 더 많은 스파이더맨들의 등장과 히어로가 되는 과정, 자질, 성장은 영화에 기대감 그 이상을 보여준다. 스파이더맨 매력의 거미줄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컷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전작보다 더 색채감이 풍부하고, 화려하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가 코믹북을 읽는 느낌이라면 이번 영화는 미디어 아트를 보는 기분이다. 전작에서 말풍선이나 부딪칠 때 나는 만화책과 같은 효과를 내는 연출이 많이 나오지 않고, 다양한 스파이더맨들이 등장하므로 등장이나 액션 장면 영상미에 비중을 쏟는다. 특히, 멀티버스 세계관 속 스파이더맨들의 작화 특징을 살리는 모습들은 다양한 스파이더맨을 살펴볼 수 있는 재미를 살린다. 레고 스파이더맨, 고양이 스파이더맨, 공룡 스파이더맨 등 스파이더맨의 향연은 제작진의 창의력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중간마다 현대 자동차나 기숙사 방에 붙어있는 손흥민 포스터까지 스파이더맨이 인기가 많은 한국인에게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있다. 스파이더맨뿐만 아니라 배경이나 부가적인 요소까지 세심하게 챙긴 연출이다.
'마일즈 모랄레스'가 스파이더맨이 되는 과정을 그린 전작. 이번 영화는 스파이더맨뿐만 아니라 히어로의 공식 설정과 히어로가 되는 자질을 그려낸다. 히어로가 된다는 게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사실, 그리고 마일즈 모랄레스는 필연 중 또 다른 우연으로 히어로가 됐다는 점에서 비롯된 플롯이 앞으로 마일즈 모랄레스의 행방을 어떻게 이어갈지 궁금증을 야기한다. SSU가 본격적으로 발휘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초반부 '스팟'이 자신이 곧 멀티버스를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인식하는 장면 중 등장한 <베놈> 세계관 속 '애디'가 자주 찾아가는 가게 주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는 <베놈> 세계관을 연결하는 복선이다. 그리고, 시간선의 변칙점으로 발생한 존재를 보관하는 공간에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등장했던 '애런'(도널드 글로버)이 프라울러 복장으로 갇힌 장면은 '톰 홀랜드'가 있는 세계관에서 벌어진 일일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스파이더맨 2099'가 르네상스 벌쳐를 포획하면서 말한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 사건을 통해 '지구 616' 스파이더맨의 존재와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파이더맨답게 멀티버스도 하나의 거미줄에 비유해 설명하는 모습은 머지않는 유니버스 영화에 이들의 대편성(Spider-man assemble)이 이루어지지 않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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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려 깊은 시선이 안내하는 아이의 세계
- 누구나 거쳐왔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안경을 쓰지 않고 앞을 바라보는 것처럼 명확하진 않지만, 온기와 촉감, 나긋나긋한 말소리와 사랑한다는 말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한다. <클레오의 세계>는 사려 깊은 시선으로 여섯 살 소녀의 세계를 잠시 엿본다. 누구나 겪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한 뼘 더 성장하는 그 순간 등 84분 동안 유려하게 담긴 그 여름날의 추억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파리에 사는 여섯 살 클레오(루이스 모루아-팡자니). 이 소녀 곁엔 언제나 유모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가 있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대신 그 빈자리를 채운 글로리아는 클레오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나라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이들의 관계는 유사 모녀와도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글로리아는 모친상을 당하고, 급히 고향인 아프리카로 간다. 클레오의 곁엔 유모 대신 바쁜 아빠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도 글로리아의 빈 자리는 메워지지 않고, 아빠는 우울한 딸의 행복을 위해 여름방학 동안 글로리아에게 보낸다. 재회한 클레오와 글로리아. 하지만 그곳의 시간은 마냥 기쁘고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아이들은 부모가 아닌 사람에게도 절대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게도 그 사실은 말하지 않겠죠. 그것은 비밀스럽고 아주 은밀하며 무언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클레오의 세계>는 나라와 인종을 넘어선 소녀 클레오와 유모 글로리아 간의 사랑을 그린다. 감독의 말처럼 이들의 관계를 지탱하는 건 무언의 사랑. 극 중 이들의 관계는 소녀와 유모를 넘어 모녀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상 곁에서 있어 주며 씻기고, 밥 먹이고, 등하교를 도와주고, 놀아주고, 잠을 재워주는 등 클레오에게 글로리아는 부모 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별이라는 개념을 몰랐던 갓난아이 시절과 달리, 그 개념을 어느 정도 인지한 상황에서의 이별은 클레오에게 큰 슬픔과 절망으로 다가온다. 마치 엄마와의 이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단순히 유년 시절 느꼈던 그 소중한 감정만을 들여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랑을 알면 이별도 알아야 하는 법. 클레오는 여름방학 동안 더 이상 글로리아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유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모이기 이전에 그녀는 한 남매의 엄마다. 어린 시절 돈을 벌기 위해 클레오를 돌봐 준 글로리아는 늦게라도 진짜 부모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큰 탈은 임신 중이라 보살핌이 필요하고, 자신을 원망하는 아들의 마음도 얻어야 한다. 이에 따라 글로리아와 함께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려 했던 클레오의 계획은 틀어지고 만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클레오의 세계>의 빛나는 순간은 여섯 살 소녀가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 여름방학 동안 일련의 일들을 통해 자신의 세계 속 가장 중요한 인물인 글로리아와의 갈등을 빚고, 도망쳐 나오는 순간, 클레오는 엄마의 품과도 같은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리고 있는 힘껏 수영해 그곳을 빠져나온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여섯 살 소녀는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비로소 엄마(실제 엄마, 유모)와의 이별을 인지하고, 스스로 헤어짐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이 어린 소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극 중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는 클레오다. 감독은 1.37:1 비율의 화면비, 스토리보다 소녀의 감정선으로 이어지는 구성, 요동치는 감정의 파고를 표현한 애니메이션 등 클레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 두려움, 슬픔, 혼란 등 클레오의 감정선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장면은 눈에 띈다. 이는 클레오의 세계로 인도하는 징검다리인 동시에 유년 시절 느껴봤던 마음과 기억을 가닿게 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어 이 꼬마의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사랑으로 성장하고 이별로 단단해진 여섯 살 소녀의 마지막 모습은 왠지 모르게 눈물 난다. 홀로서기에 따른 대견스러움일까, 아님 유모와의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우리의 얼굴은 담담한 클레오일지, 아님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글로리아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덧붙이는 말: 영화는 ‘로린다 코레이아에게’라는 헌정 문구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이 인물은 극 중 글로리아처럼 마리 아마추켈리 감독의 어린 시절 그를 돌봐줬던 포르투갈 이민자다. 로린다 코레이는 감독이 6살 되던 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클로이의 세계>의 또 다른 제목은 <마리의 세계>라고 해도 될 듯싶다.
평점: 3.5 / 5.0
한줄평: 이별의 성장통으로 우리는 자랐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 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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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 속의 썸머에서 현실의 어텀으로.
마크 웹의 '500일의 썸머'는 조셉 고든 레빗과 조인 데이셔넬을 중심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처음부터 너무 달랐던 그들이 언제나 그 계절에 머무를 수 없는 시간 같은 사랑을 담았다. 겹겹이 쌓였지만 조각조각 흩어진 500일의 시간은 어떤 계절을 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사랑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부분들과 그렇지 않은 부분들을 톰과 서머의 관계를 통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듯하다.
남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같은 계절에 있지만 사뭇 다른 온도에 머무는 톰과 썸머의 모습을 보여준다. 썸머에게 운명을 느끼며 조금씩 다가가는 톰, 자신만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는 썸머에 좌절감을 느낀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지나가고 어떤 계기에 의해 관계가 진전되며 그들은 시작하게 된다. 온도는 다르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같아서 좋은 기억이든, 좋지 않은 기억이든 함께 할 수 있었다. 톰의 500일 중에 어떤 날도 썸머가 빠지지 않지만 함께할수록 환상이 조금씩 벗겨지며 현실로 바뀌며 그 운명은 조금씩 깨져간다. 하지만 그 운명이 깨지는 것을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엔 아직 어리석었기에 한참 후에 깨닫게 되었다. 운명은 없지만 우연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기에 계절이 바뀌면서 여름을 놓아주고 가을을 맞이한다. 링고 스타보다 건축이 더 잘 어울리는 계절로.
지극히 톰의 관점으로 비치는 이 영화는 서머를 나쁜 사람으로 규정한다 라기 보다는 그때 나이의 미숙했던 톰이 서머를 환상 속에 가두어놓고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특히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는 장면이 그를 뒷받침한다. 늘 나서지 않고 소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고 가볍다고 생각했고 결핍을 채우기 위해 톰을 이용한다고 생각했지만 깊고 진했던 썸머의 사랑을 다 이해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썸머의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장면을 통해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 자신에 취해있다는 것이 썸머의 시선에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만 남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시작하는 만큼 그의 시선에 가려진 여자 주인공의 시점도 궁금해진다. '500일의 톰'을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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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정말 사랑한 게 맞을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김광석의 노래 가사 중 일부다. 나의 어렸을 적 음악 취향은 김광석에 일부 있었다. 그것도 <사랑했지만>을 좋아했다. 왜 좋아했니?라고 물으면 팍 터지는 하이라이트 후렴부가 좋아서!라고 답할 것이다. 10대 때 '난 김광석이 좋아요'라고 말하곤 했었던 과거의 나. 이 말을 들은 많은 어른들은 '네가 김광석에 대해 뭘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면 김광석은 시간이 지나면서 느껴지는 게 많은 아티스트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슨 어린 친구가 나에게 '김광석이 좋아요'라고 했을 때 '네가 뭘 아느냐'식의 꼰대스러운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을 의미한다. 물론 안 그래야겠지. 16살 중학생이 나보다 더 철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는 것이 달라진다는 말은 부정하기 힘들다. 사람이 나이를 들면서 성장이라고 하는 게 있으니 생각이 달라지는 건 뭐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우리의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남의 떡이 더 맛있어 보인다는 말처럼 새로운 것은 사람의 시선을 강탈하기에 충분하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게 참 멋져 보인다는 건 잘 알면서도 끊기가 어려운 것 같다. 물질적인 것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책과 영화를 보는 이유도 새로운 재미를 찾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알면 알수록 이것에 점점 질려오지만 이걸 채우려고 난 참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이 영화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난 언제쯤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고 있던 즈음에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전달하는 영화가 나타났다. <우리도 사랑일까>다.
운명 같은 사랑이긴 한데
마고는 비행기를 탔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고의 눈에 어떤 남자가 눈에 띈다. 이름은 다니엘. 이 남자 어디에서 몇 번 본 것 같다. 어디에서 봤지? 여행을 하다 마주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 거기서 봤었지. 간통죄를 처벌하는 상황극에서 봤었다. 비행기에서 처음 대화를 하는 두 사람. 비행기도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다. 시답지 않은 헛소리만 늘어놓는데 유머감각이 있어서 웃기긴 하다. 금세 친구라도 된 듯 대화를 하는 두 사람. 마고는 공항이 두렵다고 말하며 '중간에 붕 떠있는 게 두렵다'라고 말한다. 장면이 전환되고 두 사람은 비행기에서 하차한다. 엥.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사는 곳도 비슷하다. 집이 같은 방향이니 만큼 같은 택시를 타고 온 두 사람. 마고는 남자에게 '나 결혼했어요'라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내가 유부녀라는 이유로, 잠깐 여행하다 만났다는 이유로 거리를 둘 수 있어 다행이다. 당연히 남편이 있으면 애인이 없어야 정상이잖아? 그런데, 이 막연한 바람은 의미가 없어졌다. 다니엘과 마고의 거주지가 단지 같은 방향이라 끝나는 수준이 아니다. 바로 옆 집에서 산다.
사실 살짝 비튼 각도에서 보면 운명적인 사랑이 맞다. 대화도 잘 통하고. 사는 곳도 비슷하고. 여행지에서 만날 정도로 취향도 비슷한 셈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다. 그냥 뭔가 다르다. 늘 같은 일상을 살던 마고에게 재미있는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재미가 있고 나발이고 간에 마고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선 안 된다. 나를 사랑하는 남편도 있고, 처가 식구들도 그렇게 나쁜 사람이 없다. 이런데도 마고는 새로운 무언가와 지금 갖고 있는 현재의 것들 사이에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새롭게 찾은 마고의 운명적인 사랑을 소재로 삼으며 '새로운 것과 예전 것의 차이점'에 대해 조명한다.
많은 경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들
사랑의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닌가 싶다. 틀린 선택지를 한 번쯤 골라봐야 '어떤 것이 최선이었는가'를 답할 수 있으니까. 또 열렬하게 사랑해본 기억이 사람을 성장시켜 준 다는 것에는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것과 무관하게 우리는 마음의 구멍 하나쯤은 품고 산다. 그 구멍 채우려고 바쁘게들 산다. 친구라는 이름도, 연인이라는 것도 그의 비슷한 맥락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신선한 재미를 안기게 해 준다. 가끔 우리는 이런 것들 덕에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다. 천만에. 어림없다. 새로운 건 늘 나이 들기 마련이다. 잠깐 느낀 신선함이야 말로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든다.
영화는 이 절묘한 틈을 파고든다. 새로운 것과 갖고 있는 것의 차이를 미묘하게 보여준다. 마고가 하고자 하는 일을 유심하게 보시라. 또, 다니엘의 취미에 집중하시라. 이 둘은 분명히 다르지만 '표현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는 무언가를 아내에게 계속 시도하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마고의 처지와 대비된다. 철저한 연출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극초 반부부터 제시하는 다니엘의 성격 특성을 집중해보자. 마고가 다니엘을 만나면 어떤 행동을 자주 하는지를 조명하면, 그와 현 남편 루와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단순하게 '새로운 것을 만나 그녀는 어떻게 변하는가'만 생각해봐도 영화의 깊이가 옅지 않다. 당연하지. 그게 소재인 영화인데. 그런데 그 새로운 것을 대면하며 반응하는 인물의 선택지가 '누구를 나쁜 인간으로 만드는가'를 잘 마무리지었다는 점에서 탁월했다고 본다.
꼼꼼한 연출
영화를 보면 잊히지 않는 장면이 몇 개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극초 반부에 마고가 요리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냥 요리하는 장면 아닌가?'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왜 나에게 임팩트가 있었는지는 끝까지 보신 분들은 이해할 것이다. 또 'video kill the radio star'라는 노래 가사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이 음악의 활용도 탁월했다. 그리고 중반부에 조명을 왔다 갔다 하는 신이 있다. 이 장면은 두 번 반복해서 나타나는데, 색감을 활용한 방식이나 미셸 윌리엄스의 연기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연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빠져선 안 되는 장면이 있다. 하이라이트 신이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이 정도로?'싶었지만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엔딩이었다는 것에는 여지가 없다. 영화를 보며 관객이 느꼈을 감정을 그 찰나에 모두 압축시킨 훌륭한 장면이었다. 아. 이들과는 별개로 영화 자체의 색감이 잘 빠진 편이라 보기 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사랑 잘하는 데에 나이가 어디 있겠냐만은
뭐 나이 먹었다고 해서 똥차 만나지 말라는 법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말 인격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구린 사람 만나서 연애할 수도 있다. 그게 뭐 비단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명제들을 분명히 잘 알고 있지만 이 영화는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래야 하지 않았나'하는 미련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 그 사람과 헤어질 걸. 그 사람 잡았어야 했나.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런 아쉬움이 사람의 마음에 깊게 남아있다. 영화는 이 아쉬움을 갖고 있는 이들을 위한 큰 한방을 준비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왈츠 속에 산다 하더라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지금 내가 서 있기 위해 어떤 것이 소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다. 우리는 이 덕에 행복한데 이것을 잊고 살다 간 인생이 파는 같은 함정 속에서 놀아나는 꼴이 아닐까 싶다. 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러려니 잊어버린다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삶의 루틴 속에 미친놈마냥 나이 들다 가는 거겠지.
사랑일까? 묻지 마라. 삶은 그게 '사랑이 맞다'라고 진작에 답을 내렸다. 그리고 다 알고 한거잖아? 뭔가 새로울거라 생각해서.
#왓챠영화추천 #넷플릭스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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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모든 단점을 최민식의 연기력으로 덮다
영화 <더 베트맨>을 보러 영화관에 갔을 때 대문짝하게 포스터가 붙어있었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어떤 내용인지 굉장히 궁금했고, 최민식 배우의 작품이어서 기대를 하며 본 작품이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시놉시스
“정답보다 중요한 건 답을 찾는 과정이야”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 그는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기피 대상 1호인 이학성은 어느 날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수학을 가르쳐 달라 조르는 수학을 포기한 고등학생 한지우를 만난다. 정답만을 찾는 세상에서 방황하던 한지우에게 올바른 풀이 과정을 찾아나가는 법을 가르치며 이학성 역시 뜻하지 않은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한국 영화의 진정한 클리셰를 모아봤어요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한 줄로 평하자면 한국 영화의 클리셰를 한 데 모아 놓은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수학이라는 소재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독창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내용의 전재라든지,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그 과정이라든지, 현실에서는 있 수 없는 굉장한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관객이라면 다음 장면은 이러한 내용이겠지? 이런 대사 한 번은 쳐줘야 되지 않겠어?하는 3초 스포가 자동적으로 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런 클리셰 속에서도 수학이라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청각적 요소들을 활용한다거나 칠판의 맞은 편에서 열정적으로 풀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조금은 색다른 카메라 구도를 보여줘서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최민식의 연기력은 대단했다
이러한 클리셰 덩어리들이 영화 곳곳에 포진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최민식의 연기력 때문이다. 수학을 정말로 사랑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다고? 공식을 하나 설명하고 해설하는데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고? 아름답다고 안 해주니까 세상 무너지는 듯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을 통해서 이 캐릭터가 어떠한 감정인지 너무나도 잘 드러나서 경이로웠다. 만약 표정백과사전이 있다면 거기에 등재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찰나의 순간에도 변하는 최민식의 연기를 보면서 저렇게까지 인간의 감정은 다채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행복, 슬픔, 감격, 씁쓸함이 동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점을 정말 잘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 표정을 보면서 그리고 증폭되는 감정연기를 보면서도 단 한순간도 과장됐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을 보면 왜 최민식 배우를 대한민국의 대표배우라고 하는지 잘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정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아는 말이다. 방향이 중요하지 정답이 중요하지 않다. 모두에게 옳은 정답은 없다. 하지만 치열한 입시 세계 취업 세계에서 이 말은 잘 통하지 않습니다. 내 정답이 아닌 남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답을 내밀어야 사회에서는 '나'를 봐주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를 향해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다시 한 번 방향과 방법이 중요하다, 문제의 답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외친다.
사실 그저 그런 영화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사회의 현실을 알지 못한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렇게 답만 찾아내는 입시 공부를 하는 줄 아느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인데 구조적인 체제를 비판하지 않고 그저 이상적인 소리만 해대면 어떡하냐고 신랄하게 비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민식 배우가 주는 강력한 울림은 그런 생각마저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래서 왜 작품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굉장히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배우의 연기력 만으로도 그 이상적인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반성을 하게 만드는 그 강력한 울림은 이번 작품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보는 내내 최민식 배우를 찬양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었다. 영화에서 배우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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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의 첫 아시안 영화, 샹치가 걱정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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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2021. 04. 21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
00:00 샹치 예고편 공개
00:43 익숙한 그림과 냄새들
02:24 다양한 성공&실패 예시들
04:18 기대와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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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 30초 예고편
"사랑 말고 또 뭐가 있는데?" ⟨베이비 드라이버⟩ 릴리 제임스, ⟨크루엘라⟩ 에밀리 비첨 주연! 운명적인 사랑과 자유를 열망하는 린다와 안정적인 가정을 꿈꾸는 사려 깊은 패니. 두 단짝 친구의 사랑, 낭만, 우정, 그리고 모험 같은 나날들의 아름다운 기록. 믿고 보는 왓챠 익스클루시브 ⟨린다의 가장 완벽한 5개월⟩ 8월 25일, 곧 왓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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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클리포드 더 빅 레드 독> 메인 예고편
뉴욕의 아파트로 이사 온 12살 소녀 에밀리
새로운 학교에 고군분투하는 에밀리를 바쁜 엄마는
출장을 가면서 철없는 삼촌 케이시에게 맡기고 떠난다.
마법 동물 구조 센터를 지나던 에밀리는
운명처럼 작고 빨간 강아지를 만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함께하게 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작고 빨간 강아지 클리포드는
하루아침에 3M가 넘게 커져버려 순식간에 뉴욕의 유명인사가 되어버린다.
엄마가 오기 전 클리포드를 되돌리려는 에밀리와
클리포드를 유전학 사업에 이용하려는 기업까지 뒤쫓으며
클리포드는 위험에 빠지고 마는데..!
세상에서 가장 큰 빨간 댕댕이,
클리포드의 놀라운 모험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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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태풍이 우리를 해방케 하리라•마고 내시의 <무소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고 내시: 호주 사회의 도전적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언더커런츠: 힘에 관한 명상>(이하 <언더커런츠>)와 <무소유>다. 최근작 <언더커런츠>는 단편으로, 1994년작이자 장편 극영화인 <무소유>의 이미지들이 일부 들어갔다. 필자는 작년 6개월 동안 호주 시드니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때 느낀 것은 호주의 문화라는 것이 사실 상 없다는 것이다. 호주는 여기저기서 온 이민자들이 세운 국가다. 필자가 다니던 광고홍보회사에도 정통 순혈 호주인이라는 것은 있는 개념 같지도 않았고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그리스계, 필리핀계, 한국계 외에도 수많은 다양한 계통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이 바로 호주다.
이러한 다양성은 호주의 정체성이지만, 뭔가 고유한 것이 없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호주의 전통 음식이라는 것은 정체가 불분명하다. 모두가 입을 모아 하나로 외칠 수 있는 것이 없다. 호주는 이러한 자국 문화의 한계를 선주민들에게서 찾아오려고 하는 것 같다. 마침 필자의 회사 근처에는 ‘Gadigal’이라는 이름의 지하철 역을 짓고 있었다. Gadigal은 부족의 이름으로, 호주 선주민들 중 하나다. (방금 완공된 Gadigal 역의 모습을 찾아보고 애틋한 감상에 잠기고 말았다…) 현재 호주 정부는 이런 식으로 선주민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기리려 하고 있다. 필자가 호주의 예술에 대해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도 호주 선주민들의 페이즐리 무늬를 닮은 전통 문양이다.
<무소유>는 테사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집으로 귀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상영 후 게스트 시네필로 초대된 호주의 영화평론가 에이드리언 마틴은 이러한 귀향(Return) 모티프가 호주 예술에서 자주 반복된다고 말한다. 호주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호주인들이 자신의 국가를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이는가? 호주는 문화적 황무지인가, 혹은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인가? 마고 내시의 영화에서도 이런 질문들이 언급된다.
테사는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집은 아파트가 아니라 지붕이 있고 울타리 형식의 대문이 있는 호주에서 흔한 주택이다. 테사는 원래 언니 케이트의 집에 묵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세 아이를 키우는 케이트는 돈 때문에 집을 팔려고 하고, 테사는 그 집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않느냐며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집을 두 자매 모두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찾으려고 그 집으로 향한다. 영화는 처음에는 두 자매의 갈등으로 시작하여 테사가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어두운 과거로 빠져든다.
테사는 브라를 하거나 하지 않은 채로, 멍하니 집안을 거닌다. 이 상태는 해방감과 불안함을 동시에 준다. 그녀의 옷은 붉거나 살구색 계통으로, 가슴이 깊이 파여있다. 머리는 검은색 단발머리다. 떡 벌어진 어깨로 스크린을 유유히 걸어다니는 테사의 육체를 보며 이 영화가 정말로 여성적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적인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에이드리언 마틴은 여성적 미학(female aesthetic), 어슐러 르 귄의 캐리어백 이론을 언급한다. (어슐러 K. 르 귄은 허구를 운반하는 가방 이론(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 1986)에서 찌르고 때리고 자르는 창의 문명과 채집하고 보존하고 나누어주는 가방의 문명이 분기되는 아주 오래 전을 되돌아 본다. 창이 영웅을, 주인공을 필요로 하고 정복, 개척, 승리와 패배, 구원과 희생의 서사를 구축한다면 가방은 작고 다양한 이름 없는 것들이 뒤죽박죽 순서를 가지지 않은, 구체적인 삶의 진실을 닮은 이야기를 위한 공간이다. 출처: http://leehanbum.com/writing/the-man-who-carried-the-bag)
가부장적 픽션은 폭력이나 사냥의 스릴에 관한 것이다. 대조하여, 여성적 픽션은 모임(gathering), 돌봄(caring), 세상의 파편들을 모으고 기억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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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줄을 가로질러 저 너머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 이후 또 다른 이웃집 히어로 '마일즈 모랄레스'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로 다시금 스파이더맨 팬들을 향해 낭만의 거미줄을 쏘아 올렸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보다 더 본격적으로 SSU(Sony Spider-man Universe)을 온전히 발휘한다. 더 많은 스파이더맨들의 등장과 히어로가 되는 과정, 자질, 성장은 영화에 기대감 그 이상을 보여준다. 스파이더맨 매력의 거미줄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스틸컷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전작보다 더 색채감이 풍부하고, 화려하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가 코믹북을 읽는 느낌이라면 이번 영화는 미디어 아트를 보는 기분이다. 전작에서 말풍선이나 부딪칠 때 나는 만화책과 같은 효과를 내는 연출이 많이 나오지 않고, 다양한 스파이더맨들이 등장하므로 등장이나 액션 장면 영상미에 비중을 쏟는다. 특히, 멀티버스 세계관 속 스파이더맨들의 작화 특징을 살리는 모습들은 다양한 스파이더맨을 살펴볼 수 있는 재미를 살린다. 레고 스파이더맨, 고양이 스파이더맨, 공룡 스파이더맨 등 스파이더맨의 향연은 제작진의 창의력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중간마다 현대 자동차나 기숙사 방에 붙어있는 손흥민 포스터까지 스파이더맨이 인기가 많은 한국인에게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있다. 스파이더맨뿐만 아니라 배경이나 부가적인 요소까지 세심하게 챙긴 연출이다.
'마일즈 모랄레스'가 스파이더맨이 되는 과정을 그린 전작. 이번 영화는 스파이더맨뿐만 아니라 히어로의 공식 설정과 히어로가 되는 자질을 그려낸다. 히어로가 된다는 게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사실, 그리고 마일즈 모랄레스는 필연 중 또 다른 우연으로 히어로가 됐다는 점에서 비롯된 플롯이 앞으로 마일즈 모랄레스의 행방을 어떻게 이어갈지 궁금증을 야기한다. SSU가 본격적으로 발휘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초반부 '스팟'이 자신이 곧 멀티버스를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인식하는 장면 중 등장한 <베놈> 세계관 속 '애디'가 자주 찾아가는 가게 주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이는 <베놈> 세계관을 연결하는 복선이다. 그리고, 시간선의 변칙점으로 발생한 존재를 보관하는 공간에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등장했던 '애런'(도널드 글로버)이 프라울러 복장으로 갇힌 장면은 '톰 홀랜드'가 있는 세계관에서 벌어진 일일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스파이더맨 2099'가 르네상스 벌쳐를 포획하면서 말한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 사건을 통해 '지구 616' 스파이더맨의 존재와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파이더맨답게 멀티버스도 하나의 거미줄에 비유해 설명하는 모습은 머지않는 유니버스 영화에 이들의 대편성(Spider-man assemble)이 이루어지지 않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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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려 깊은 시선이 안내하는 아이의 세계
- 누구나 거쳐왔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안경을 쓰지 않고 앞을 바라보는 것처럼 명확하진 않지만, 온기와 촉감, 나긋나긋한 말소리와 사랑한다는 말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한다. <클레오의 세계>는 사려 깊은 시선으로 여섯 살 소녀의 세계를 잠시 엿본다. 누구나 겪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한 뼘 더 성장하는 그 순간 등 84분 동안 유려하게 담긴 그 여름날의 추억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파리에 사는 여섯 살 클레오(루이스 모루아-팡자니). 이 소녀 곁엔 언제나 유모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가 있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대신 그 빈자리를 채운 글로리아는 클레오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나라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이들의 관계는 유사 모녀와도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글로리아는 모친상을 당하고, 급히 고향인 아프리카로 간다. 클레오의 곁엔 유모 대신 바쁜 아빠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도 글로리아의 빈 자리는 메워지지 않고, 아빠는 우울한 딸의 행복을 위해 여름방학 동안 글로리아에게 보낸다. 재회한 클레오와 글로리아. 하지만 그곳의 시간은 마냥 기쁘고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아이들은 부모가 아닌 사람에게도 절대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게도 그 사실은 말하지 않겠죠. 그것은 비밀스럽고 아주 은밀하며 무언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클레오의 세계>는 나라와 인종을 넘어선 소녀 클레오와 유모 글로리아 간의 사랑을 그린다. 감독의 말처럼 이들의 관계를 지탱하는 건 무언의 사랑. 극 중 이들의 관계는 소녀와 유모를 넘어 모녀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상 곁에서 있어 주며 씻기고, 밥 먹이고, 등하교를 도와주고, 놀아주고, 잠을 재워주는 등 클레오에게 글로리아는 부모 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별이라는 개념을 몰랐던 갓난아이 시절과 달리, 그 개념을 어느 정도 인지한 상황에서의 이별은 클레오에게 큰 슬픔과 절망으로 다가온다. 마치 엄마와의 이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단순히 유년 시절 느꼈던 그 소중한 감정만을 들여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랑을 알면 이별도 알아야 하는 법. 클레오는 여름방학 동안 더 이상 글로리아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유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모이기 이전에 그녀는 한 남매의 엄마다. 어린 시절 돈을 벌기 위해 클레오를 돌봐 준 글로리아는 늦게라도 진짜 부모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큰 탈은 임신 중이라 보살핌이 필요하고, 자신을 원망하는 아들의 마음도 얻어야 한다. 이에 따라 글로리아와 함께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려 했던 클레오의 계획은 틀어지고 만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클레오의 세계>의 빛나는 순간은 여섯 살 소녀가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 여름방학 동안 일련의 일들을 통해 자신의 세계 속 가장 중요한 인물인 글로리아와의 갈등을 빚고, 도망쳐 나오는 순간, 클레오는 엄마의 품과도 같은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리고 있는 힘껏 수영해 그곳을 빠져나온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여섯 살 소녀는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비로소 엄마(실제 엄마, 유모)와의 이별을 인지하고, 스스로 헤어짐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이 어린 소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극 중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는 클레오다. 감독은 1.37:1 비율의 화면비, 스토리보다 소녀의 감정선으로 이어지는 구성, 요동치는 감정의 파고를 표현한 애니메이션 등 클레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 두려움, 슬픔, 혼란 등 클레오의 감정선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장면은 눈에 띈다. 이는 클레오의 세계로 인도하는 징검다리인 동시에 유년 시절 느껴봤던 마음과 기억을 가닿게 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어 이 꼬마의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사랑으로 성장하고 이별로 단단해진 여섯 살 소녀의 마지막 모습은 왠지 모르게 눈물 난다. 홀로서기에 따른 대견스러움일까, 아님 유모와의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우리의 얼굴은 담담한 클레오일지, 아님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글로리아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덧붙이는 말: 영화는 ‘로린다 코레이아에게’라는 헌정 문구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이 인물은 극 중 글로리아처럼 마리 아마추켈리 감독의 어린 시절 그를 돌봐줬던 포르투갈 이민자다. 로린다 코레이는 감독이 6살 되던 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클로이의 세계>의 또 다른 제목은 <마리의 세계>라고 해도 될 듯싶다.
평점: 3.5 / 5.0
한줄평: 이별의 성장통으로 우리는 자랐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 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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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 속의 썸머에서 현실의 어텀으로.
마크 웹의 '500일의 썸머'는 조셉 고든 레빗과 조인 데이셔넬을 중심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처음부터 너무 달랐던 그들이 언제나 그 계절에 머무를 수 없는 시간 같은 사랑을 담았다. 겹겹이 쌓였지만 조각조각 흩어진 500일의 시간은 어떤 계절을 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사랑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부분들과 그렇지 않은 부분들을 톰과 서머의 관계를 통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듯하다.
남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같은 계절에 있지만 사뭇 다른 온도에 머무는 톰과 썸머의 모습을 보여준다. 썸머에게 운명을 느끼며 조금씩 다가가는 톰, 자신만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는 썸머에 좌절감을 느낀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해서 지나가고 어떤 계기에 의해 관계가 진전되며 그들은 시작하게 된다. 온도는 다르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같아서 좋은 기억이든, 좋지 않은 기억이든 함께 할 수 있었다. 톰의 500일 중에 어떤 날도 썸머가 빠지지 않지만 함께할수록 환상이 조금씩 벗겨지며 현실로 바뀌며 그 운명은 조금씩 깨져간다. 하지만 그 운명이 깨지는 것을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엔 아직 어리석었기에 한참 후에 깨닫게 되었다. 운명은 없지만 우연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기에 계절이 바뀌면서 여름을 놓아주고 가을을 맞이한다. 링고 스타보다 건축이 더 잘 어울리는 계절로.
지극히 톰의 관점으로 비치는 이 영화는 서머를 나쁜 사람으로 규정한다 라기 보다는 그때 나이의 미숙했던 톰이 서머를 환상 속에 가두어놓고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특히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는 장면이 그를 뒷받침한다. 늘 나서지 않고 소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고 가볍다고 생각했고 결핍을 채우기 위해 톰을 이용한다고 생각했지만 깊고 진했던 썸머의 사랑을 다 이해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썸머의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장면을 통해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 자신에 취해있다는 것이 썸머의 시선에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만 남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시작하는 만큼 그의 시선에 가려진 여자 주인공의 시점도 궁금해진다. '500일의 톰'을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