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07-05 13:49:14
죽고 못 살던 남자가 죽어도, 여자들은 산다
넷플릭스 드라마 <데드 투 미> 시즌 1,2
*이 글에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여자가 있다. 한 명은 아이를 낳아 정상가족을 이루는 게 인생의 목표인 주디다. 또 한 명은 뺑소니 사고로 남편을 잃은 젠이다. 우연히 만난 이들은 서로의 불행에 공감하며 친구가 된다.
문제는 주디와 젠이 서로의 남자를 죽였다는 사실이다. 젠의 남편을 죽인 뺑소니범은 주디고, 주디가 애착을 끊어내지 못하는 전 애인 스티브를 죽인 건 젠이다. 하지만 주디와 젠은 끔찍한 진실을 안 이후에도 우정을 깨지 않는다. 그 남자들의 죽음으로 또 다른 세계가 열렸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데드 투 미〉 스틸컷 ⓒ넷플릭스
젠의 남편은 그녀가 유방암 예방을 위해 가슴 절제술을 한 이후로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젠은 더 이상 남편에게 '여자'로 인식되지 못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파탄난 관계를 이어간다. 젠은 남편이 죽고 나서야 자신이 잘못된 곳에 에너지를 쏟아왔음을 알게 된다. 물론 슬픔도 크고 현실적 어려움도 많다. 하지만 젠은 주디와 함께하는 생활이 나쁘지만은 않다.
주디는 아이를 낳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으나 다섯 번이나 유산했다. 게다가 의사로부터 임신은 불가능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도 듣는다. 무너지기 직전이다. 그런데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전 애인 스티브가 죽은 이후 다른 세계를 만난다. 자신을 존중하며 사랑해주는 레즈비언도 만났고, 젠의 두 아들은 주디를 믿고 의지한다. 이제 주디에게 중요한 건 '정상가족' 아니라 젠과의 우정에 기반한 '대안가족'이다. 그것이 주디의 새로운 토대가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데드 투 미〉 스틸컷 ⓒ넷플릭스
그래서 젠과 주디는 자신의 남자를 죽인 서로와 계속 같이 산다. 서로의 존재가 기존의 문제적 욕망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젠과 주디의 살인은 서로에게 큰 상처를 안겨줬지만, 동시에 이전에는 갈 수 없었던 곳으로 그들을 인도해주기도 했다. 남자들의 죽음은 지금껏 현재를 몽땅 투자한 대상이 오히려 불행의 근원이었음을 깨닫게 해줬다. 즉 젠과 주디는 서로의 살인을 매개로 자기 욕망과 에너지를 투여할 새로운 대상을 찾는다. 두 번째 욕망의 대상은 이전처럼 그들의 존재를 갉아먹지 않는다.
죽고 못 살던 남자가 죽어도(사라져도), 여자들은 산다. 젠과 주디처럼 때로는 더 좋은 삶을 산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불평등한 젠더 권력에 놓인 이성애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며 지지해주는 관계였다. 범죄, 스릴러, 코미디 요소가 절묘하게 섞인 드라마 〈데드 투 미〉의 다음 시즌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rewr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모가디슈」 1차 예고편 분석 그리고 예매권 이벤트
?'모가디슈(2021 여름)' 1차 예고편 확장판 분석
그리고 예매권 이벤트
*자세한 내용은 고정댓글 참조- 모가디슈 영화정보
장르: 드라마, 액션
감독: 류승완
각본: 류승완
제작: 강혜정
출연: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김소진, 정만식, 구교환, 김재화, 박경혜 외
촬영: 최영환
조명: 이재혁
편집
미술
음악
의상
주제곡
촬영 기간: 2019년 11월 ~ 2020년 2월
제작사: 대한민국 외유내강, 덱스터 스튜디오, 필름케이
배급사: 대한민국 국기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대한민국 국기 2021년 7월
화면비
상영 시간: 121분
제작비: 240억 원#모가디슈 #모가디슈리뷰 #모가디슈예고편
-
- [Movielog #29] 실망스러운 리메이크 액션영화-모탈컴뱃
영화 모탈컴뱃이 리메이크 되어 개봉했어요.
9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1편과 2편은 그 당시 먼저 등장했던 격투게임을 기반으로 했는데요.
실사로 찍어 표현했던 게임 상의 액션 모습이 사실감이 있어 인기를 끌었죠.
영화는 CG로 게임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해서 이야기는 매력이 없었죠.
그 당시에도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들늘 주로 기용해 만들었었는데 이번 리메이크도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들을 내세워 비슷한 전략을 가지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렇게 성공적인것 같지는 않네요.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좋지 않았어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하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 영화 <나소흑전기: 첫만남편> 메인 예고편
요정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상적인 세계가 열린다!
숲속의 집을 잃고 홀로 떠돌던 검은 고양이 요정 ‘소흑’은
도시 뒷골목에서 미스터리한 능력의 요정 ‘풍식’을 만나 위기를 모면한다.
‘풍식’의 무리와 버려진 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소흑’.
그러던 중 최강 능력의 집행자 ‘무한’이 ‘풍식’을 쫓아 섬에 오자
‘풍식’ 일행은 달아나고, ‘소흑’만 남게 된다.
홀로 남은 ‘소흑’을 요정들의 회관으로 데려가려는 ‘무한’과
‘무한’을 무서운 인간이라 여겨 도망치려는 ‘소흑’.
둘은 여정 속에서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무한’은 ‘소흑’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요정들이 공격받는 의문의 사건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엄청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 ‘소흑’과 ‘무한’의 앞을 막아서는데…
함께하면 두려울 것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
-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1차 예고편
1970년대 평화시장에는 가난해서 혹은 여자라서 공부 대신 미싱을 타며 '시다' 또는 '공순이'로 불린 소녀들이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부푼 꿈을 품고 향했던 노동교실 그곳에서 소녀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노래를 하고, 희망을 키웠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청춘이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온 편지.
-
- [JIFF 데일리] ‘새벽의 모든’에서 새로운 경계선을 발견하다! 미야케 쇼 감독님의 관람 포인트
(기자회견에서의 미야케 쇼 감독)
5월 1일, 25주년을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가 드디어 개막하였습니다! 개막작은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으로 선정됐는데요. 올해의 슬로건인 '우리는 는 선을 넘지(Beyond the Frame)'와 걸맞는 영화였습니다. 각자의 무수한 삶과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까지 경계선을 넘어 모두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주연과 조연 그리고 엑스트라까지 각 인물의 하나하나가 궁금하고, 스며듦이 매끈한 영화였습니다.
'새벽의 모든'은 동명 소설을 원작 각색한 영화이며, 공황장애가 있는 야마조에와 주기적으로 PMS를 겪는 후지사와가 작은 연구소에서 만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부딪히며 각자의 결핍과 공백을 발견하고, 서로의 틈을 보게 됩니다. 그 틈에서 맞지 않았던 '어떤 사람'에서 어느새 곁을 내어주는 '동료'이자 '친구'인 관계가 확장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사회적 장애'에 관한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고 갖고 있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다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가 갖고 있던 틀을 인지하고 그 선을 넘게 하는 것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야마조에와 후지사와가 단순히 '남녀관계'로 뭉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주변인으로 존재합니다. (마치 지구 옆에 있는 위성처럼요!) 또 작품에서 이웃, 친구, 동료, 시설의 보호자와 의사 등 '혈연'과 이어지지 않는 다양한 보호자의 형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야마조에와 후지사와의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사회적) 보통적으로 '심리적 장애'와 관련해 간섭하고 지지하는 역할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보호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림으로 바로 연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마조에는 가족과의 왕래가 뜸하고, 후지사와는 어머니가 신체적 장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야마조에의 주변 동료들이 야마조에의 안부를 늘 묻고, 후지사와 어머니는 늘 후지사와를 위한 식제품들을 마련해 후지사와에게 보냅니다. '보호자-피보호자'라고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는 일방적 관계가 아닌 경계선을 넘나드는 상호협력적 관계로 그려집니다. 야마조에는 후지사와의 PMS에 도울 수 있다며 설득하기도 합니다. 이에 서로의 느슨하지만 약간의 짐을 덜 수 있는 연대를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돌봄' 시스템에 관해 거대하게 혹은 사소하게 들여다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혈연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닌 대안적 관계들과 느슨하더라도 덜컥거리더라도 같이 짐을 나눠드는 느슨한 돌봄과 보호와 연대.
미야케 쇼 감독의 1일 기자회견 질의응답 시간에 간략히 주고 받은 질문과 답변을 소개합니다!
-
Q1> 원작이 있는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그 작품을 영화화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A) 원작 소설을 보면서 인물들의 행동에 큰 인사을 받았다. 자신의 상황에 그저 무력하게만 있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과의 질문과 답을 찾아냅니다. 이런 끈질긴 자문자답의 방식과 어떻게든 행동의 실천으로 이뤄지는 모습들이 우리가 갖고 있던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관해서 다른 시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든다. 더불어 현대의 질병이 불리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그 양상을 여러 시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마음처럼 일을 계속할 수 없으면서, 생각처럼 할 수 없는 것들에 그들을 조명하고 싶었다.
Q2> 작품에서 달력을 통해 세월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런 '시간의 흐름'의 배치 관한 의도가 궁금하다.
A) 공황장애나 PMS 같은 병은 간단히 해결하기가 어려우며 장기간 내 삶과 같이 지내야 하는 고통이다. 이런 질병은 오랜 기간의 치료 기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매우 놀랬었다. 자신의 장애와 삶을 쭉 이어가야 하는 이들의 시간을 영화를 통해 같이 느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주'라는 시간을 가져와 거대한 흐름을 표현해보았다.
Q3>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불안이 찾아오면 강박적으로 하는 일로써 '잡초 뽑기'가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왜 '걸레질' 같은 무언가를 닦는 행동으로 교체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책을 읽을 때 '잡초 뽑기'란 행동은 매우 유니크했다. 그러나 글로써 '잡초 뽑기'를 마주할 때 다가온 큰 인상이 영상에서는 잘 발휘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래서 대체할 수 있는 행동으로 '움직임'이 있고 '소리'가 있는 행동을 찾아봤다. 그렇게 찾던 중에 '무언가를 열중하며 닦는 모습'을 가져와 표현해봤다.
Q4>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무엇인지 궁금하며, 캐릭터 빌딩과 캐스팅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이번에 처음으로 (자신의) 영화에 다양하고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들을 단순히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닌 개성이 실린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가령 같은 '의사'라 해도 특유의 성격이 드러나도록 했다. 어떤 의사는 덤덤하고, 어떤 의사는 발랄해 보인다. 이렇게 개성이 잘 표현력에 주목하여 캐스팅하였다. 더불어 엑스트라에도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 봤다. 그러니 등장이 많든 적든 다채로운 등장인물들에 주목해주시면 좋겠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고, 두 번, 세 번, 많이 또 봐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장애와 같은 것이 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 '일반(보통) 사람'이라는 표현이 많은데 나는 '일반(보통)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공황장애가 있거나 PMS를 겪고 있다거나, 그저 다른 특징으로서 있는 것일 뿐이다. 이것의 유무가 보통을 정의하고 특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Q5>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장애는 각 문화별로 다르게 느껴질 것 같은데, 영화를 선보이기 위한 작업으로서 이 다양성에 관한 어떤 리서치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A) 일단, 리서치는 원작 소설 작가가 공황장애가 당사자인 점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이후 인터넷과 책을 찾아봤고 공황장애 당사자들과 일본에 있는 전문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양성'에 관해 알아갈 수 있었다.
또 영화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시 여긴 지점 중 하나는 우리 영화에서 질병이 등장하고, 이것을 하나로 지정해버리는 것을 경계했다. 무수한 사례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가 일반화할 수 없다. 그리고 '공황장애'를 연기하는 순간들도 주의를 많이 기울렸다. 늘 현장에 의사가 대기된 상태에서 발작 연기를 촬영했고, 장면이 끝나면 배우의 심장박동을 확인하고 괜찮을 때에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배우에게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발작 연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표현의 오류나 예측불가능함을 재현하는 과정을 경계하고 주의있게 임하고 싶었다.
Q6> 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과 이번 개막작인 '새벽의 모든'의 공통점이 있다. 폐업 직전의 복식장과 AI 기술이 발전된 지금, 아날로그 연구소라는 공간이다. 한 마디로 두 공간은 소멸해가는 공간이라 느꼈는데, 감독은 이런 공간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했다. '소멸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A)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먼저 '영화관'이란 공간이 먼저 떠오르면서 가장 걱정되기도 하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영화관 수가 반이 줄어들었다. 그에반해 스크린 수는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펜데믹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우려가 많이 된다. 그래도 낙관적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관'은 절대로 없어지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 영화를 사랑하는, 지키길 노력하는, 이용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있는 이상 사라지지 않지 않을까. 이런 마음과 믿음을 반영하게 된 것 같다.
Q7> 한국 배우 중에 같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A) 개인적으로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한다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배우 중 참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배우가 있다. 바로, 심은경 배우이다. 존경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몇 분이 더 계시지만, 부끄러우니 그만두겠다.
Q8> 기자분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
A) 많은 분들이 모여 주셔서 매우 감사하다. 질문을 주시면 우리는 이야기하고, (기자분들은) 일로써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이 과정도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같이하는 시간들이 너무너무 좋았다. 남은 기간 동안에도 관객들과 함께 영화제를 즐기고 싶다.
이렇게 간략하게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이란 작품에 관한 계기와 말하고 싶던 메세지를 살짝 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다양성'을 중점으로 인무들에 많은 공을 들인 영화라 느껴졌습니다. 그런 만큼 저는 여러 인물들이 말 그대로 눈에 밟히곤 했습니다. 또, 미야케 쇼 감독은 개막식에서 영화는 관객이 생각하는 것이니 각자의 생각과 이해를 마음껏 풀어주면 좋겠다고 말은 전했습니다. 경계선을 넘어 다양함을 마주하고, 분리되는 것이 아닌 이어짐으로, 분별이 아닌 스펙트럼의 속으로, 같이 존재함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의 삶 혹은 남의 삶에서 힘듦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어떻게 봐줘야 할지 고민된다면 '새벽의 모든'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저는 어쩌다 보니 영화를 두 번을 보게 되었는데요. 두 번째로 감상하였을 때,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감독님 말대로 두 번, 세 번, 많이 볼수록 좋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상영 정보>
05.01. 19:30 개막식 + 개막작: 새벽의 모든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05.02. 13:30 새벽의 모든 + 전주대담
(CGV 전주고사관 3관)
05.05. 10:30 새벽의 모든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영화제 기간>
5월 1일~5월 10일
-
- 길복순 (2023)
* <길복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길복순 (2023)
감독: 변성현
출연: 전도연, 설경구, 김시아, 이솜, 구교환, 이연
장르: 액션, 스릴러, 느와르
공개일: 2023.03.31
상영시간: 137분
'길복순(전도연)'은 중학생 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동시에 살인청부업체 'MK Ent'의 에이스 킬러다. 여느 엄마들처럼 평범하게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학부모 모임에 나가 아이들의 학업에 대한 담소를 나누는 여성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를 얕잡아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3만원 주고 산 도끼 하나로 칼을 든 일본 야쿠자와 일대일 맞다이를 뜰 수 있는 실력자에 주어진 '작품(살인)'은 반드시 성사시키는 냉혹함을 지닌 프로 청부살인업자니까. 하지만 찔러서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그녀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 바로 하나뿐인 딸, '재영(김시아)'을 대할 때면 도저히 수가 읽히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어렵다.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이라고 '복순'이 직접 말할 정도니까.
단지 질풍노도의 사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건만 딸 '재영'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도 버겁고, 마음의 문을 닫은 딸은 쉽사리 방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러한 딸의 변화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던 천하의 킬러 '복순'의 마음을 흔들고,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스스로를 이끈다. 늘 그렇듯 영리하게 문제 해결을 위한 수를 찾아내는 '복순'이지만 한 번 꼬인 운명은 고달프고 귀찮은 일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액션 느와르 영화는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지 않는 장르에 가깝다. 소위 조폭·깡패 영화라고 불리는 전형적인 타입의 한국 액션물들은 대부분 내용들이 예상 가능한 대로 흘러가고, 지나치게 자극적이기만 하며 등장하는 배우들 역시 익숙한 얼굴들이 많아 도통 끌리지 않았다. 그런 내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라는 작품은 이같은 장르에 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부순 작품이었다. 분명 조폭이나 살인 따위와 같은 뻔한 소재들이 쉼없이 범람하는 줄거리였지만 주인공들의 관계에 멜로적 색채를 더하고 서사를 탄탄하게 쌓아 스테레오타입을 뒤집는 전개로 상당한 몰입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한국 느와르 영화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었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내게 큰 영향을 준 작품이었다. 이 때문에 '변성현' 감독의 신작 <길복순>에도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페르소나 '설경구'와 최고의 여배우 '전도연'이 주인공으로 출연한다니 그의 세련된 터치를 만나 세 사람이 어떠한 시너지를 보여줄지 개봉 전부터 궁금증이 크게 증폭됐었다.
하지만 <길복순>은 기대만큼 짙은 인상을 남길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변성현' 감독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크게 두드러졌고, 그에 따른 호불호도 더욱 크게 갈릴 것이라 느꼈다. 우선 '변성현'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 그리고 색감과 촬영 로케이션을 감각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탁월하게 발휘됐다. 사실 조폭·청부살인 류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배경들은 대개 틀에 박힌 공간들인데, <길복순>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대체로 새롭고 아름답다. 화초들의 싱그러움과 차가운 대리석 인테리어가 '길복순'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듯한 그의 자택, 근대식으로 지어진 서양의 건축물이 떠오르는 '설경구'의 클래식한 사무실, 하물며 떡볶이집과 국수가게까지 냉기 가득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장면들이 하나같이 예쁘다. 미술과 소품에 굉장한 공을 들였음이 느껴졌고, 시각적으로 디테일한 요소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을 것이다.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는 단연 주인공 '전도연'이다. 감독은 <길복순>의 개봉 전부터 '전도연'의 광팬임을 고백해 왔다. 실제로 '복순'이라는 캐릭터는 배우이자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전도연'과 닮은 부분이 많을 정도로 작품에 그의 영향력이 많이 들어갔다. '전도연'이 유능한 베테랑 배우인 덕도 있겠지만, 감독의 무한한 애정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그는 원톱 주연으로서 대단한 활약을 펼친다. 액션신에서의 디테일은 부족했을지 몰라도, 냉혹하고 스피디한 나이프 액션신을 끌고 가는 카리스마가 압도적이며 특유의 나긋나긋한 화법은 모든 것에 통달한 A급 킬러의 여유를 발산하는데 제격이다.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을 위한'이라는 표현이 적격할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전도연'을 보기 위해서라도 <길복순>은 꼭 감상해야 하는 작품이라는 의의를 남긴다.
주연의 대활약, 아름다운 미장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길복순>은 시종일관 킬러 '길복순'의 실력을 과시하고, 그의 눈부신 활약상만을 비춘다. 물론 '길복순'은 살인청부업자와 엄마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입체성을 지닌 캐릭터이지만 대부분의 캐릭터가 그를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로서만 활용된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변성현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설경구'는 특히 이번 작품에서 쓰임을 제대로 알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한 포지션을 담당하며 '구교환'과 '이솜'의 역할도 이들의 역량을 십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작품은 연기 변신에 도전한 '전도연'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이지만, 이는 곧 '전도연'이 아니라면 볼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다양한 기법으로 액션신을 표현하고자 한 감독의 시도도 눈에 띈다. 특히 '복순'이 상대의 수를 미리 읽으며 수싸움을 하는 장면을 수 차례 활용하는데, 이는 미국 코믹스나 해외 액션 영화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연출의 활용 빈도가 높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장면이 난잡해 보이고, 긴박하게 흘러가야 할 구간들이 지루해져 거슬린다는 인상을 크게 받았다. 그래도 국수가게에서의 잔혹한 액션신을 미국 B급 액션영화처럼 유쾌하게 연출한 것, '복순'과 '영지'의 일대일 대치 장면에서 템포에 불규칙한 변화를 준 것은 매력적이었다. 한국 액션영화에 없을 법한 작법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 '변성현 감독'의 최대 강점 중 하나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장르성을 돋보이게 하는 데는 출중했으나 내용의 긴밀성이 부족했다. 결국 '길복순'이 모든 위기를 홀로 헤쳐 나간 뒤 제손으로 모두를 죽이고, 딸과 함께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을 넘어 유치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며, 마치 히어로 액션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는 장르성에 출중했다는 방증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길복순'이라는 킬러가 가차없이 사람들을 쓰러뜨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분명한 쾌감과 매혹을 일으킨다. 물론 이와 같은 감상을 느낄 수 있는 데는 배우 '전도연'이 가진 아우라와 연륜이 결정적이었겠지만. '전도연', 그리고 '길복순'을 위해 감독이 엄청난 애정과 욕심을 쏟았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지만 배우로서 '전도연'의 도전 의식을 불태우는 횃불을 제공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남기지는 못했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
- 풋풋하고 싱그러운 남녀의 성장 - <시시콜콜한 이야기>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로스쿨을 보고 이수경 배우의 연기가 너무 인상 깊어서 필모그래피를 훑던 중 보게 된 단편 영화이다.
로스쿨에서 비춰진 냉정한 모습이 아닌 따뜻하고 호기심 가득한, 그리고 이수경 배우만의 수수한하고 청초한 이미지가 너무나도 신선했고, 특히 엄태구 배우가 눈에 들어왔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이 웃던 배우였나.. 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항상 진지하고 무거운 역할들을 맡아서 그런지 영화를 보면서 생각지도 못한 색다른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영화 줄거리는 감독 지망생이자 시나리오 작가, 도환(엄태구 배우)과 대학생, 은하(이수경 배우)가 지인 추천으로 사설모임에서 만나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이다. 특히 둘은 공통으로 좋아하는 '글쓰기'란 소재로 서로에게 더 다가가면서 알아간다. 낯도 많이 가리고 옛 연인을 잊지 못한 채 계속 똑같은 시나리오만 쓰던 도환이었는데, 은하를 만나고 나서 별거 아닌 시시콜콜한 대화들을 이어나가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었던 옛 연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정리할 수 있었고 아예 새로운 테마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계기가 된다. 은하도 항상 궁금했던 '글쓰기'에 대해서 도환한테 '뭐 써요?, 무슨 내용이에요?' 등과 같은 질문을 통해 더욱더 도환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책하면서 또는 전화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며 누구는 자신의 과거를 흔쾌히 떨쳐내는, 누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다가오는 상반된 이미지가 연출되어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임팩트가 강했던 것 같다. 32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이었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적 배경 덕분에 산뜻하고 시원한 공간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서로가 천천히 밀고 당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그래서 그런지 여운이 더욱더 남았던 것 같다.
32분이라고 못 느낄 정도로 보는 동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고 알차고 편안하게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제목 그대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다루면서 한 층 더 발전된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등장인물 모두, 그리고 시청자로서 보는 나 또한, 성장할 수 있는 영화였던 것 같다.
-
- 죄 많은 소녀
죄 많은 소녀
충격적인 영화다. 주제, 배우의 연기, 감독의 연출 모두 예사롭지 않을 뿐 아니라 탁월하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작품 수준이 이 정도라면, 한국영화는 가능성과 희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해도 좋겠다.
여자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한 여학생의 자살 사건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살해하는가'에 관한 핍진한 관찰 기록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관객의 심리를 건드린다. 그것은 배우들의 연기 뿐 아니라 음악, 음향, 인물들이 놓여 있는 극단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도록 한다.
경민이 실종되고, 담임 선생과 형사들은 전날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를 불러 경민의 실종에 관해 묻는다. 학교에 오지 않은 경민의 부재를 보면서, 영희도 마음 속에 한가닥 불안함이 꿈틀거리는데, 담임과 형사는 경민의 실종에 영희가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질문한다.
영희는 억울하다. 형사는 영희와 친하게 지내는 한솔을 불러 영희와 대질 심문을 한다. 한솔은 영희가 경민에게 '죽을 용기도 없는 게...'라는 말을 했다고 말하면서 영희의 말이 경민의 실종 또는 자살을 부추기는 말을 했을 거라는 의미로 말한다.
영희는 사실을 말하지만, 이때까지 관객은 영희와 한솔의 진술 가운데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영희의 태도는 자칫 도도하고 건방져 보이기도 하고, 담임을 비롯한 학교의 선생과 경민의 부모는 경민이 아무 이유없이 실종되거나 자살할 아이가 아니라고 믿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가장 만만한 아이가 영희였다. 실종 전날 밤 늦게까지 함께 있었고, 경민의 가방과 신발이 발견된 장소 부근에 있는 CCTV를 모두 조사한 결과, 경민이 다른 누군가에게 해를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렇다면 경민과 마지막까지 있었던 영희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경민이 실종 또는 자살한 것일까를 선생들과 형사들은 구체적으로 알아야만 했다.
영화에서 경민은 자살한 것이 확실하다. 다만, 경민이 왜 자살했는가에 관한 이유나 암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나중에 경민의 시신이 발견되고, 모든 사람들 - 선생들, 형사들, 심지어 같은 반의 친구들도 - 이 영희를 의심과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면서, 영희도 억울함을 벗어나려고 자살을 기도한다.
영희가 병실에서 겨우 회복하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찾아와 경민의 집에서 유서를 발견했다고 알려준다. 즉, 경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유서를 쓰고 자살한 것이며, 영희가 함께 있었던 날은 우연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선생들과 같은 반 친구들은 - 그들 가운데는 영희의 집으로 쳐들어가 영희를 린치한 몇 명의 같은 반 친구들도 있었다 - 경민이 영희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상황이 분명해지는 순간 모두 태도를 바꾼다. 영희를 의심하고 비난하던 친구들이 다정한 태도로 영희의 건강을 걱정하고, 병문안을 오며, 기꺼이 어려운 일을 돕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같은 세대의 갈등은 봉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경민의 자살에 영희보다 더 책임이 있는 사람은 '한솔'이었다. 영희와 가까운 친구였지만, 영희가 경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질투를 느끼고, 영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이다. 한솔은 영희가 병원에 있을 때 찾아가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사과한다. 영희도 한솔을 안아주고 입맞춤을 하는데, 이 영화에서 동성애 코드를 넣은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희와 한솔은 화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말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영희를 괴롭히는 또 한 사람은 경민의 엄마다. 경민이 자살한 직접적 원인은 알고 보면 그의 부모에게 있다. 경민의 부모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어떻게든 원인과 책임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그래서 경민의 유서가 발견되었음에도 영희의 병실을 찾아와 영희를 괴롭힌다.
처음부터 영희의 말을 믿지 않았던 선생들과 형사들, 경민의 엄마는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경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으려 하고, 없는 죄를 덮어 씌우려 했던 기성세대에게 영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는 '자신의 죽음'이다. 그래서 영희는 표백제를 먹고 자살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실패한 죽음 이후에도 영희는 끝없이 자살을 궁리한다. 이때 두번째 자살은 명백한 의도와 목적을 갖는다.
영희가 경민에게도 말했듯, 지금과 같은 의미 없는 삶이라면 사는 것과 죽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고등학생은 가장 고통스러운 세대다. 이미 유치원,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서는 암기식 수업을 해야 하고, 여러 개의 학원을 다니며 밤낮 없이 공부, 공부, 공부만 하는 지겹고 역겨운 나날이 무려 12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여기에 부모의 무관심(경민), 가난(영희)과 같은 외부적 환경까지 겹치면서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은 우울하고 괴로운 심리상태가 된다. 청소년들을 이렇게 망가뜨리고, 질식시킨 건 기성세대인데, 정작 그 기성세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영희는 그런 기성세대를 보면서 환멸과 증오의 감정이 차갑고도 날카롭게 솟아나는 걸 느낀다. 영희는 한솔과 함께 경민의 엄마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한다. 자기(영희)는 경민이 왜 죽었는지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경민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이면 내(영희)가 왜 죽었는지 사람들이 당신(경민 엄마)에게 물어볼 거다. 그때 내 죽음에 대한 이유나 잘 대답하길 바란다.
즉, 영희는 경민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추악한 책임전가를 그대로 경민 엄마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앞부분에서 경민의 죽음을 두고 선생들, 형사들, 경민 엄마는 영희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한솔은 그 장면을 보면서 침묵한다.
이제, 영희가 죽게 되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경민 엄마가 되고, 그 옆에 한솔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 드러난다. 형사와 사람들은 영희의 죽음에 대해 경민 엄마에게 물을 것이고, 한솔은 역시 침묵할 것이다. 경민 엄마는 당연히 영희의 죽음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을 것이며, 한솔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도 사과할 대상이 사라지고, 죄책감은 무겁게 그의 삶을 짓누를 것이다.
처음부터 경민의 죽음은 기성세대가 만든 원죄의 결과이며, 기성세대가 저지른 타살이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같은 세대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워 책임을 전가한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과 억울함이 기성세대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게 되고, 기성세대에 대한 복수는 자기 자신을 죽임으로써 완성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김의석 감독은 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인데,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서 연출부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대부분이 여성이어서 여성의 심리, 세부적인 생활 모습을 보면서 여성 감독인 줄 알았는데, 남성 감독이어서 놀라웠다.
영희가 형사에게 추궁당하고, 마치 범인인양 낙인 찍히고 나와서 화장실에 앉아 생리대를 보는 장면은 영희의 심리와 이 영화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영희는 죽을 만큼 억울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것은 하혈인 것처럼 보이는 다량의 생리혈을 보여줌으로써, 영희가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는 걸 관객이 느끼게 한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굴다리를 향해 걸어가는 영희는 중간에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볼 듯 하다 다시 걷는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굴다리 안쪽을 향해. 영희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게 있었을까. 성대를 다쳐 말을 하지 못하는 신세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뱉어내지 못한다. 그의 침묵은 죽음보다 무겁다.
배우 전여빈의 연기는 마치 '곡성'에서 어린이 배우 '김환희'의 연기와 비교할 수 있다. 그만큼 처절하고 극적이다. '영희'는 자존감도 있고, 자기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청소년이지만, 그 모습이 기성세대에게는 건방지고 불편하게 보인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신세대를 길들이려는 기성세대의 어리석은 모습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억울한 심정을 꾹꾹 눌러 참으며, 자신을 죽임으로써 기성세대에 복수하겠다는 영희의 태도는, 죽을지언정 기성세대에 굴복하거나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태도이며, 기성세대가 저지른 죄를 자신의 죽음으로 고발하겠다는 자기파괴적 행동이 극단적으로 보여도 그같은 방법 밖에는 가지지 못한 약자의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영희'는 기성세대가 키운 훌륭한 신세대지만, 결국 기성세대가 죽인 신세대이기도 하다. 아니, '영희'는 기성세대가 키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잘 큰 신세대였고, 그를 죽인 기성세대는 오만하고 건방지며, 비겁하고, 야비한 존재였음이 드러난다.
-
-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 / 激突! ラクガキングダムと ほぼ四人の勇者, 2020
작년 현장실습이 끝나고, 극장에서 못 보던 영화들이 한 번에 몰아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 영화들을 기대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영화는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이었습니다.
아무리, 전성기 시절만큼의 폼은 아니더라도 해왔던 것들이 있기에 차마 발길을 끊을 수는 없었고요.
그렇게 보게 된 <신혼여행 허리케인~ 사라진 아빠!>은 '사라진 제 짱구를 찾습니다!'라는 단말마와 같은 평가만을 남기게 되었습니다.그렇게 속았음에도 이번에 다시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을 다시, 극장에서 보게 된 이유는 이번 극장판이 기존 극장판과는 다르게 원작을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물론, 최초는 아닙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극장판들은 원작이 있던 반면에 이후 극장판들은 오리지널 이야기를 가지고 만들었으니 일본 개봉 기준으로는 25년 만에 원작을 가지고 만든 극장판인 것이죠.
그러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개봉하는 극장판으로 역시 기대를 품게 만들었는데, '과연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은 어땠는지?' -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아이들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낙서로 에너지를 받는 '낙서 왕국'은 사라진 아이들의 낙서로 어느새 멸망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에 왕국은 기존 국왕에게 쿠데타를 일으키고, 공주는 자신의 부하에게 '미라클 크레용'을 건네며 '낙서 왕국'을 구해줄 용사를 찾을 것을 부탁하고 지상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낙점된 "짱구"는 먼저, '미라클 크레용'으로 자신을 도와줄 동료들을 그리는데...원작을 모르는데, 익숙하다?
1. 강도 높은 웃음을 어떻게 대체하나?
앞서 말했듯이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눈치채고서 보는 관객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도 그럴 것이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을 저와 같은 성인 관객들이 보는 이유는 단, 하나 "얼마나 웃겨주는지?"일겁니다.
근데, 이 웃음의 기준이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전 극장판 <신혼여행 허리케인~ 사라진 아빠!>의 리뷰를 살펴보면, '"성기"가 노출되는 표면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헨더랜드의 대모험>에서 인형이 된 부모님을 향해 "아빠! 맘모스가 없어요.. 엄마! 가슴이 커졌어요!"는 대사가, <암흑 타마타마 대추적>은 구슬을 삼킨 짱아에게 짱구가 '하나만 더 삼키면, 남자가 된다'라는 대사, 그리고 <불고기 로드>에서는 유부남 상사를 좋아하는 여성의 상황'까지 이처럼 성인이 봐도 헉! 할 만큼이죠.이제는 'PG 등급'이니까!
그렇기에 한껏 순해진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의 '웃음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냐?'에 해당 작품의 만족도를 달라질 겁니다.
물론, 해당 작품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은 그때만큼 높은 수위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당연한 거지만...)
그럼에도, 해당 작품의 유머에 큰 불만이 없는 이유는 "낙서"라는 소재를 통해서, 어른과 아이을 대치하는 것도 있으나 이를 보여주는 캐릭터들의 매력이 다분한 작품입니다.2. 이걸 애들 보는 만화에서 보여줘도 되나요?
이번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국내에서 "국방장관"으로 나오는 캐릭터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보기에는 "악당"으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저와 같은 성인들이 보기에는 그저 "악당"으로 바라볼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낙서로 에너지를 받는 '낙서 왕국'의 특성상 낙서를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어른들이 곱게 보이지 않음과 동시에 손을 놓고 바라보는 국왕의 모습을 보자니 그가 "쿠데타"를 일으킨 동기는 확실하게 설득되었거든요.
이후 이야기에서 아이들을 어른들로부터 격리시켜, 재우지도 않고 낙서를 시키는 모습은 삐뚤어진 애국주의자의 모습과도 꽤 겹쳐 보였습니다.이렇게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마지막에는 "제발, 낙서를 해달라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애결하는 모습까지 악당을 떠나서 완벽한 캐릭터의 기승전결을 지는 유일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도 "가짜 이슬이 누나"라든지 "부리부리 자에몽"과 같은 캐릭터들도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들의 경우. 극에서 눈물을 담당하는 역할들로 특히, "부리부리 자에몽"는 "오마주"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돼지발굽>을 연상시키는 장면은 저와 같은 관객들에게는 때아닌 향수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3. 나의 가장 보편적인 악당들
앞서 말했듯이 이번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은 원작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아는 사람들은 있을지'가 걱정일 정도로 그 어느 극장판처럼 낯설겠지만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은 그 어떤 극장판보다 가장 익숙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에는 앞에서 언급한 "부리부리 자에몽"의 마지막 모습에 <돼지발굽>을 연상시켰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외에도 낙서를 그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원숭이"들과 대결했던 <정글>을, 초반 왕국의 추격전 구도와 "판타지"적인 요소는 <헨더랜드>의 장면들이 떠오르니 여러분들도 그 어떤 극장판보다 가장 익숙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나요?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작품?
익숙한 것도 있지만, 이번 극장판에서 악당으로 출연하는 "국방장관"의 동기에 납득한 것처럼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현실적인 모습입니다.
극 중 후반부에 "낙서 왕국"이 떨어져 마을에 위험이 닥치자 사람들이 "미라클 크레용이 어딨냐고!"면서, 다그치는 장면은 불안과 이기심을 엿볼 수 있었거든요.
분명히, "낙서 왕국"을 다시 끌어올릴 방법을 인지했음에도 도망치는 모습과 애결하는 악당은 모습은 이번 극장판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절대적인 악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악이라는 것을 그것도 아동만화에서 보여주었으니까요.4.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줄까?
그렇기에 마지막 엔딩에서 "아동 만화"스러운 급하게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짓는 모습과 극 중 쿠데타를 일으킨 "국방장관"외의 다른 캐릭터들의 설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활용되지 않는 것도 아쉬움으로 적용됩니다.
그토록 흔했던 "오카마", 여장 남자들도 사라지고 성인들이 헉! 할 만큼의 유머도 사라진 이 마당에 올드팬들에게 오늘날의 극장판들은 분명히 실망스러운 점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로 큰 만족감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성인 관객들에게는 다음을 혹은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을 이어나갈 새로운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요?
-
- 진부하다고 하기엔 그저 웃긴
공포영화, 그닥 좋아하지도 않아 영화관에서 볼일은 없는 장르라 여겨왔다. 그런데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했던가. 동행자의 추천으로 이 영화를 보게되었다. 결말은 처참했지만.
1. 서론이 너무 길다
이 영화 처음부터 무섭진 않다. 오히려 가족갈등을 보여주느라 한 15분가량을 질질 끈다. 무서운 장면 1도 없이. 아, 언제쯤 무서워지는건가 싶을 때 그제서야 악령이 등장한다. 그런데 무섭긴 한데 뭐랄까 임팩트가 없는 공포랄까. 그저 놀래키는 데에 목적이 있는 듯하다. 그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충분히 놀랐으니 이 영화의 필요가치는 끝난걸까.
2. 간헐적 공포에 가족애 한 스푼
이 영화의 소재는 유체이탈이다. 유체이탈이라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어떤 사람들은 유령들에게 쫓긴다는 것이다. 흥미롭지만 대단히 충격적이지는 않았고 모든 장면이 예상가능한 떡밥인데다가 '나 지금부터 너 놀래킬 거니까 준비 단단히 하라'고 대놓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항상 눈감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언제 놀래킬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어서 오히려 공포영화 쪼랩인 나는 보기 편했던 영화였다. 공포영화 만렙이신 분들은 이런 포인트들이 보기 불편했을까.
그리고 이 영화는 공포영화라기 보다는 모든 떡밥 장면들이 가족애로 귀결되는, 가족애로 가득한 휴먼 드라마였다고 해야 맞다. 뜬금없지만 주인공 아들이 그려낸 과거 아버지의 모습이 약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속 괴물이 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3. 모든 것이 애매한, 그래서 더 웃긴
공포영화라면 사실 무서워야 하는데 오히려 웃긴 포인트들이 많았다. 결말을 가족애로 덮어버리니, 이제 좀 끝나나 싶으면 신파가 공격해 와서 헛웃음이 나온다. 나는 가뜩이나 심각한데 관객들 입장에서는 코미디인 게 이런 걸까.
심지어 어떤 관객 분은 영화 막판에 호탕하게 웃으시더라. 그 분덕에 공포영화 관람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공포영화가 코미디로 기억된다니,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
- 「모가디슈」 1차 예고편 분석 그리고 예매권 이벤트
?'모가디슈(2021 여름)' 1차 예고편 확장판 분석
그리고 예매권 이벤트
*자세한 내용은 고정댓글 참조- 모가디슈 영화정보
장르: 드라마, 액션
감독: 류승완
각본: 류승완
제작: 강혜정
출연: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김소진, 정만식, 구교환, 김재화, 박경혜 외
촬영: 최영환
조명: 이재혁
편집
미술
음악
의상
주제곡
촬영 기간: 2019년 11월 ~ 2020년 2월
제작사: 대한민국 외유내강, 덱스터 스튜디오, 필름케이
배급사: 대한민국 국기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대한민국 국기 2021년 7월
화면비
상영 시간: 121분
제작비: 240억 원#모가디슈 #모가디슈리뷰 #모가디슈예고편
-
- [Movielog #29] 실망스러운 리메이크 액션영화-모탈컴뱃
영화 모탈컴뱃이 리메이크 되어 개봉했어요.
9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1편과 2편은 그 당시 먼저 등장했던 격투게임을 기반으로 했는데요.
실사로 찍어 표현했던 게임 상의 액션 모습이 사실감이 있어 인기를 끌었죠.
영화는 CG로 게임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해서 이야기는 매력이 없었죠.
그 당시에도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들늘 주로 기용해 만들었었는데 이번 리메이크도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들을 내세워 비슷한 전략을 가지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렇게 성공적인것 같지는 않네요.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좋지 않았어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하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 영화 <나소흑전기: 첫만남편> 메인 예고편
요정과 인간이 공존하는 환상적인 세계가 열린다!
숲속의 집을 잃고 홀로 떠돌던 검은 고양이 요정 ‘소흑’은
도시 뒷골목에서 미스터리한 능력의 요정 ‘풍식’을 만나 위기를 모면한다.
‘풍식’의 무리와 버려진 섬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소흑’.
그러던 중 최강 능력의 집행자 ‘무한’이 ‘풍식’을 쫓아 섬에 오자
‘풍식’ 일행은 달아나고, ‘소흑’만 남게 된다.
홀로 남은 ‘소흑’을 요정들의 회관으로 데려가려는 ‘무한’과
‘무한’을 무서운 인간이라 여겨 도망치려는 ‘소흑’.
둘은 여정 속에서 점점 마음을 열게 되고,
‘무한’은 ‘소흑’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요정들이 공격받는 의문의 사건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엄청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 ‘소흑’과 ‘무한’의 앞을 막아서는데…
함께하면 두려울 것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
-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1차 예고편
1970년대 평화시장에는 가난해서 혹은 여자라서 공부 대신 미싱을 타며 '시다' 또는 '공순이'로 불린 소녀들이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부푼 꿈을 품고 향했던 노동교실 그곳에서 소녀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노래를 하고, 희망을 키웠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청춘이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온 편지.
-
- [JIFF 데일리] ‘새벽의 모든’에서 새로운 경계선을 발견하다! 미야케 쇼 감독님의 관람 포인트
(기자회견에서의 미야케 쇼 감독)
5월 1일, 25주년을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가 드디어 개막하였습니다! 개막작은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으로 선정됐는데요. 올해의 슬로건인 '우리는 는 선을 넘지(Beyond the Frame)'와 걸맞는 영화였습니다. 각자의 무수한 삶과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까지 경계선을 넘어 모두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주연과 조연 그리고 엑스트라까지 각 인물의 하나하나가 궁금하고, 스며듦이 매끈한 영화였습니다.
'새벽의 모든'은 동명 소설을 원작 각색한 영화이며, 공황장애가 있는 야마조에와 주기적으로 PMS를 겪는 후지사와가 작은 연구소에서 만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부딪히며 각자의 결핍과 공백을 발견하고, 서로의 틈을 보게 됩니다. 그 틈에서 맞지 않았던 '어떤 사람'에서 어느새 곁을 내어주는 '동료'이자 '친구'인 관계가 확장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사회적 장애'에 관한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고 갖고 있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다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가 갖고 있던 틀을 인지하고 그 선을 넘게 하는 것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야마조에와 후지사와가 단순히 '남녀관계'로 뭉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주변인으로 존재합니다. (마치 지구 옆에 있는 위성처럼요!) 또 작품에서 이웃, 친구, 동료, 시설의 보호자와 의사 등 '혈연'과 이어지지 않는 다양한 보호자의 형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야마조에와 후지사와의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사회적) 보통적으로 '심리적 장애'와 관련해 간섭하고 지지하는 역할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보호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림으로 바로 연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마조에는 가족과의 왕래가 뜸하고, 후지사와는 어머니가 신체적 장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야마조에의 주변 동료들이 야마조에의 안부를 늘 묻고, 후지사와 어머니는 늘 후지사와를 위한 식제품들을 마련해 후지사와에게 보냅니다. '보호자-피보호자'라고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는 일방적 관계가 아닌 경계선을 넘나드는 상호협력적 관계로 그려집니다. 야마조에는 후지사와의 PMS에 도울 수 있다며 설득하기도 합니다. 이에 서로의 느슨하지만 약간의 짐을 덜 수 있는 연대를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돌봄' 시스템에 관해 거대하게 혹은 사소하게 들여다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혈연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닌 대안적 관계들과 느슨하더라도 덜컥거리더라도 같이 짐을 나눠드는 느슨한 돌봄과 보호와 연대.
미야케 쇼 감독의 1일 기자회견 질의응답 시간에 간략히 주고 받은 질문과 답변을 소개합니다!
-
Q1> 원작이 있는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그 작품을 영화화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A) 원작 소설을 보면서 인물들의 행동에 큰 인사을 받았다. 자신의 상황에 그저 무력하게만 있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과의 질문과 답을 찾아냅니다. 이런 끈질긴 자문자답의 방식과 어떻게든 행동의 실천으로 이뤄지는 모습들이 우리가 갖고 있던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관해서 다른 시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든다. 더불어 현대의 질병이 불리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그 양상을 여러 시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마음처럼 일을 계속할 수 없으면서, 생각처럼 할 수 없는 것들에 그들을 조명하고 싶었다.
Q2> 작품에서 달력을 통해 세월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런 '시간의 흐름'의 배치 관한 의도가 궁금하다.
A) 공황장애나 PMS 같은 병은 간단히 해결하기가 어려우며 장기간 내 삶과 같이 지내야 하는 고통이다. 이런 질병은 오랜 기간의 치료 기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매우 놀랬었다. 자신의 장애와 삶을 쭉 이어가야 하는 이들의 시간을 영화를 통해 같이 느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주'라는 시간을 가져와 거대한 흐름을 표현해보았다.
Q3>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불안이 찾아오면 강박적으로 하는 일로써 '잡초 뽑기'가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왜 '걸레질' 같은 무언가를 닦는 행동으로 교체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책을 읽을 때 '잡초 뽑기'란 행동은 매우 유니크했다. 그러나 글로써 '잡초 뽑기'를 마주할 때 다가온 큰 인상이 영상에서는 잘 발휘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래서 대체할 수 있는 행동으로 '움직임'이 있고 '소리'가 있는 행동을 찾아봤다. 그렇게 찾던 중에 '무언가를 열중하며 닦는 모습'을 가져와 표현해봤다.
Q4>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무엇인지 궁금하며, 캐릭터 빌딩과 캐스팅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이번에 처음으로 (자신의) 영화에 다양하고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들을 단순히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닌 개성이 실린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가령 같은 '의사'라 해도 특유의 성격이 드러나도록 했다. 어떤 의사는 덤덤하고, 어떤 의사는 발랄해 보인다. 이렇게 개성이 잘 표현력에 주목하여 캐스팅하였다. 더불어 엑스트라에도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 봤다. 그러니 등장이 많든 적든 다채로운 등장인물들에 주목해주시면 좋겠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고, 두 번, 세 번, 많이 또 봐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장애와 같은 것이 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 '일반(보통) 사람'이라는 표현이 많은데 나는 '일반(보통)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공황장애가 있거나 PMS를 겪고 있다거나, 그저 다른 특징으로서 있는 것일 뿐이다. 이것의 유무가 보통을 정의하고 특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Q5>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장애는 각 문화별로 다르게 느껴질 것 같은데, 영화를 선보이기 위한 작업으로서 이 다양성에 관한 어떤 리서치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A) 일단, 리서치는 원작 소설 작가가 공황장애가 당사자인 점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이후 인터넷과 책을 찾아봤고 공황장애 당사자들과 일본에 있는 전문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양성'에 관해 알아갈 수 있었다.
또 영화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시 여긴 지점 중 하나는 우리 영화에서 질병이 등장하고, 이것을 하나로 지정해버리는 것을 경계했다. 무수한 사례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가 일반화할 수 없다. 그리고 '공황장애'를 연기하는 순간들도 주의를 많이 기울렸다. 늘 현장에 의사가 대기된 상태에서 발작 연기를 촬영했고, 장면이 끝나면 배우의 심장박동을 확인하고 괜찮을 때에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배우에게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발작 연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표현의 오류나 예측불가능함을 재현하는 과정을 경계하고 주의있게 임하고 싶었다.
Q6> 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과 이번 개막작인 '새벽의 모든'의 공통점이 있다. 폐업 직전의 복식장과 AI 기술이 발전된 지금, 아날로그 연구소라는 공간이다. 한 마디로 두 공간은 소멸해가는 공간이라 느꼈는데, 감독은 이런 공간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했다. '소멸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A)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먼저 '영화관'이란 공간이 먼저 떠오르면서 가장 걱정되기도 하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영화관 수가 반이 줄어들었다. 그에반해 스크린 수는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펜데믹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우려가 많이 된다. 그래도 낙관적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관'은 절대로 없어지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 영화를 사랑하는, 지키길 노력하는, 이용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있는 이상 사라지지 않지 않을까. 이런 마음과 믿음을 반영하게 된 것 같다.
Q7> 한국 배우 중에 같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A) 개인적으로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한다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배우 중 참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배우가 있다. 바로, 심은경 배우이다. 존경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몇 분이 더 계시지만, 부끄러우니 그만두겠다.
Q8> 기자분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
A) 많은 분들이 모여 주셔서 매우 감사하다. 질문을 주시면 우리는 이야기하고, (기자분들은) 일로써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이 과정도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같이하는 시간들이 너무너무 좋았다. 남은 기간 동안에도 관객들과 함께 영화제를 즐기고 싶다.
이렇게 간략하게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이란 작품에 관한 계기와 말하고 싶던 메세지를 살짝 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다양성'을 중점으로 인무들에 많은 공을 들인 영화라 느껴졌습니다. 그런 만큼 저는 여러 인물들이 말 그대로 눈에 밟히곤 했습니다. 또, 미야케 쇼 감독은 개막식에서 영화는 관객이 생각하는 것이니 각자의 생각과 이해를 마음껏 풀어주면 좋겠다고 말은 전했습니다. 경계선을 넘어 다양함을 마주하고, 분리되는 것이 아닌 이어짐으로, 분별이 아닌 스펙트럼의 속으로, 같이 존재함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의 삶 혹은 남의 삶에서 힘듦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어떻게 봐줘야 할지 고민된다면 '새벽의 모든'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저는 어쩌다 보니 영화를 두 번을 보게 되었는데요. 두 번째로 감상하였을 때,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감독님 말대로 두 번, 세 번, 많이 볼수록 좋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상영 정보>
05.01. 19:30 개막식 + 개막작: 새벽의 모든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05.02. 13:30 새벽의 모든 + 전주대담
(CGV 전주고사관 3관)
05.05. 10:30 새벽의 모든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영화제 기간>
5월 1일~5월 10일
-
- 길복순 (2023)
* <길복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길복순 (2023)
감독: 변성현
출연: 전도연, 설경구, 김시아, 이솜, 구교환, 이연
장르: 액션, 스릴러, 느와르
공개일: 2023.03.31
상영시간: 137분
'길복순(전도연)'은 중학생 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동시에 살인청부업체 'MK Ent'의 에이스 킬러다. 여느 엄마들처럼 평범하게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학부모 모임에 나가 아이들의 학업에 대한 담소를 나누는 여성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를 얕잡아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3만원 주고 산 도끼 하나로 칼을 든 일본 야쿠자와 일대일 맞다이를 뜰 수 있는 실력자에 주어진 '작품(살인)'은 반드시 성사시키는 냉혹함을 지닌 프로 청부살인업자니까. 하지만 찔러서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그녀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 바로 하나뿐인 딸, '재영(김시아)'을 대할 때면 도저히 수가 읽히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어렵다.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이라고 '복순'이 직접 말할 정도니까.
단지 질풍노도의 사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건만 딸 '재영'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도 버겁고, 마음의 문을 닫은 딸은 쉽사리 방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러한 딸의 변화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던 천하의 킬러 '복순'의 마음을 흔들고,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스스로를 이끈다. 늘 그렇듯 영리하게 문제 해결을 위한 수를 찾아내는 '복순'이지만 한 번 꼬인 운명은 고달프고 귀찮은 일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액션 느와르 영화는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지 않는 장르에 가깝다. 소위 조폭·깡패 영화라고 불리는 전형적인 타입의 한국 액션물들은 대부분 내용들이 예상 가능한 대로 흘러가고, 지나치게 자극적이기만 하며 등장하는 배우들 역시 익숙한 얼굴들이 많아 도통 끌리지 않았다. 그런 내게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라는 작품은 이같은 장르에 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부순 작품이었다. 분명 조폭이나 살인 따위와 같은 뻔한 소재들이 쉼없이 범람하는 줄거리였지만 주인공들의 관계에 멜로적 색채를 더하고 서사를 탄탄하게 쌓아 스테레오타입을 뒤집는 전개로 상당한 몰입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한국 느와르 영화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었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내게 큰 영향을 준 작품이었다. 이 때문에 '변성현' 감독의 신작 <길복순>에도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페르소나 '설경구'와 최고의 여배우 '전도연'이 주인공으로 출연한다니 그의 세련된 터치를 만나 세 사람이 어떠한 시너지를 보여줄지 개봉 전부터 궁금증이 크게 증폭됐었다.
하지만 <길복순>은 기대만큼 짙은 인상을 남길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변성현' 감독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크게 두드러졌고, 그에 따른 호불호도 더욱 크게 갈릴 것이라 느꼈다. 우선 '변성현'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 그리고 색감과 촬영 로케이션을 감각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탁월하게 발휘됐다. 사실 조폭·청부살인 류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배경들은 대개 틀에 박힌 공간들인데, <길복순>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대체로 새롭고 아름답다. 화초들의 싱그러움과 차가운 대리석 인테리어가 '길복순'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듯한 그의 자택, 근대식으로 지어진 서양의 건축물이 떠오르는 '설경구'의 클래식한 사무실, 하물며 떡볶이집과 국수가게까지 냉기 가득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장면들이 하나같이 예쁘다. 미술과 소품에 굉장한 공을 들였음이 느껴졌고, 시각적으로 디테일한 요소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을 것이다.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는 단연 주인공 '전도연'이다. 감독은 <길복순>의 개봉 전부터 '전도연'의 광팬임을 고백해 왔다. 실제로 '복순'이라는 캐릭터는 배우이자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전도연'과 닮은 부분이 많을 정도로 작품에 그의 영향력이 많이 들어갔다. '전도연'이 유능한 베테랑 배우인 덕도 있겠지만, 감독의 무한한 애정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그는 원톱 주연으로서 대단한 활약을 펼친다. 액션신에서의 디테일은 부족했을지 몰라도, 냉혹하고 스피디한 나이프 액션신을 끌고 가는 카리스마가 압도적이며 특유의 나긋나긋한 화법은 모든 것에 통달한 A급 킬러의 여유를 발산하는데 제격이다. '전도연에 의한, 전도연을 위한'이라는 표현이 적격할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전도연'을 보기 위해서라도 <길복순>은 꼭 감상해야 하는 작품이라는 의의를 남긴다.
주연의 대활약, 아름다운 미장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길복순>은 시종일관 킬러 '길복순'의 실력을 과시하고, 그의 눈부신 활약상만을 비춘다. 물론 '길복순'은 살인청부업자와 엄마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입체성을 지닌 캐릭터이지만 대부분의 캐릭터가 그를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로서만 활용된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변성현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설경구'는 특히 이번 작품에서 쓰임을 제대로 알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한 포지션을 담당하며 '구교환'과 '이솜'의 역할도 이들의 역량을 십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작품은 연기 변신에 도전한 '전도연'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이지만, 이는 곧 '전도연'이 아니라면 볼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다양한 기법으로 액션신을 표현하고자 한 감독의 시도도 눈에 띈다. 특히 '복순'이 상대의 수를 미리 읽으며 수싸움을 하는 장면을 수 차례 활용하는데, 이는 미국 코믹스나 해외 액션 영화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연출의 활용 빈도가 높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장면이 난잡해 보이고, 긴박하게 흘러가야 할 구간들이 지루해져 거슬린다는 인상을 크게 받았다. 그래도 국수가게에서의 잔혹한 액션신을 미국 B급 액션영화처럼 유쾌하게 연출한 것, '복순'과 '영지'의 일대일 대치 장면에서 템포에 불규칙한 변화를 준 것은 매력적이었다. 한국 액션영화에 없을 법한 작법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다는 점이 '변성현 감독'의 최대 강점 중 하나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장르성을 돋보이게 하는 데는 출중했으나 내용의 긴밀성이 부족했다. 결국 '길복순'이 모든 위기를 홀로 헤쳐 나간 뒤 제손으로 모두를 죽이고, 딸과 함께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을 넘어 유치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며, 마치 히어로 액션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는 장르성에 출중했다는 방증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길복순'이라는 킬러가 가차없이 사람들을 쓰러뜨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분명한 쾌감과 매혹을 일으킨다. 물론 이와 같은 감상을 느낄 수 있는 데는 배우 '전도연'이 가진 아우라와 연륜이 결정적이었겠지만. '전도연', 그리고 '길복순'을 위해 감독이 엄청난 애정과 욕심을 쏟았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지만 배우로서 '전도연'의 도전 의식을 불태우는 횃불을 제공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남기지는 못했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
- 풋풋하고 싱그러운 남녀의 성장 - <시시콜콜한 이야기>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로스쿨을 보고 이수경 배우의 연기가 너무 인상 깊어서 필모그래피를 훑던 중 보게 된 단편 영화이다.
로스쿨에서 비춰진 냉정한 모습이 아닌 따뜻하고 호기심 가득한, 그리고 이수경 배우만의 수수한하고 청초한 이미지가 너무나도 신선했고, 특히 엄태구 배우가 눈에 들어왔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이 웃던 배우였나.. 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항상 진지하고 무거운 역할들을 맡아서 그런지 영화를 보면서 생각지도 못한 색다른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영화 줄거리는 감독 지망생이자 시나리오 작가, 도환(엄태구 배우)과 대학생, 은하(이수경 배우)가 지인 추천으로 사설모임에서 만나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이다. 특히 둘은 공통으로 좋아하는 '글쓰기'란 소재로 서로에게 더 다가가면서 알아간다. 낯도 많이 가리고 옛 연인을 잊지 못한 채 계속 똑같은 시나리오만 쓰던 도환이었는데, 은하를 만나고 나서 별거 아닌 시시콜콜한 대화들을 이어나가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었던 옛 연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정리할 수 있었고 아예 새로운 테마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계기가 된다. 은하도 항상 궁금했던 '글쓰기'에 대해서 도환한테 '뭐 써요?, 무슨 내용이에요?' 등과 같은 질문을 통해 더욱더 도환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책하면서 또는 전화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며 누구는 자신의 과거를 흔쾌히 떨쳐내는, 누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다가오는 상반된 이미지가 연출되어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임팩트가 강했던 것 같다. 32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이었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적 배경 덕분에 산뜻하고 시원한 공간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서로가 천천히 밀고 당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그래서 그런지 여운이 더욱더 남았던 것 같다.
32분이라고 못 느낄 정도로 보는 동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고 알차고 편안하게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제목 그대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다루면서 한 층 더 발전된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등장인물 모두, 그리고 시청자로서 보는 나 또한, 성장할 수 있는 영화였던 것 같다.
-
- 죄 많은 소녀
죄 많은 소녀
충격적인 영화다. 주제, 배우의 연기, 감독의 연출 모두 예사롭지 않을 뿐 아니라 탁월하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작품 수준이 이 정도라면, 한국영화는 가능성과 희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해도 좋겠다.
여자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한 여학생의 자살 사건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살해하는가'에 관한 핍진한 관찰 기록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관객의 심리를 건드린다. 그것은 배우들의 연기 뿐 아니라 음악, 음향, 인물들이 놓여 있는 극단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도록 한다.
경민이 실종되고, 담임 선생과 형사들은 전날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를 불러 경민의 실종에 관해 묻는다. 학교에 오지 않은 경민의 부재를 보면서, 영희도 마음 속에 한가닥 불안함이 꿈틀거리는데, 담임과 형사는 경민의 실종에 영희가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질문한다.
영희는 억울하다. 형사는 영희와 친하게 지내는 한솔을 불러 영희와 대질 심문을 한다. 한솔은 영희가 경민에게 '죽을 용기도 없는 게...'라는 말을 했다고 말하면서 영희의 말이 경민의 실종 또는 자살을 부추기는 말을 했을 거라는 의미로 말한다.
영희는 사실을 말하지만, 이때까지 관객은 영희와 한솔의 진술 가운데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영희의 태도는 자칫 도도하고 건방져 보이기도 하고, 담임을 비롯한 학교의 선생과 경민의 부모는 경민이 아무 이유없이 실종되거나 자살할 아이가 아니라고 믿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가장 만만한 아이가 영희였다. 실종 전날 밤 늦게까지 함께 있었고, 경민의 가방과 신발이 발견된 장소 부근에 있는 CCTV를 모두 조사한 결과, 경민이 다른 누군가에게 해를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렇다면 경민과 마지막까지 있었던 영희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경민이 실종 또는 자살한 것일까를 선생들과 형사들은 구체적으로 알아야만 했다.
영화에서 경민은 자살한 것이 확실하다. 다만, 경민이 왜 자살했는가에 관한 이유나 암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나중에 경민의 시신이 발견되고, 모든 사람들 - 선생들, 형사들, 심지어 같은 반의 친구들도 - 이 영희를 의심과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면서, 영희도 억울함을 벗어나려고 자살을 기도한다.
영희가 병실에서 겨우 회복하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찾아와 경민의 집에서 유서를 발견했다고 알려준다. 즉, 경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유서를 쓰고 자살한 것이며, 영희가 함께 있었던 날은 우연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선생들과 같은 반 친구들은 - 그들 가운데는 영희의 집으로 쳐들어가 영희를 린치한 몇 명의 같은 반 친구들도 있었다 - 경민이 영희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상황이 분명해지는 순간 모두 태도를 바꾼다. 영희를 의심하고 비난하던 친구들이 다정한 태도로 영희의 건강을 걱정하고, 병문안을 오며, 기꺼이 어려운 일을 돕겠다고 말한다.
이렇게 같은 세대의 갈등은 봉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경민의 자살에 영희보다 더 책임이 있는 사람은 '한솔'이었다. 영희와 가까운 친구였지만, 영희가 경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질투를 느끼고, 영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이다. 한솔은 영희가 병원에 있을 때 찾아가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사과한다. 영희도 한솔을 안아주고 입맞춤을 하는데, 이 영화에서 동성애 코드를 넣은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희와 한솔은 화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말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영희를 괴롭히는 또 한 사람은 경민의 엄마다. 경민이 자살한 직접적 원인은 알고 보면 그의 부모에게 있다. 경민의 부모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어떻게든 원인과 책임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그래서 경민의 유서가 발견되었음에도 영희의 병실을 찾아와 영희를 괴롭힌다.
처음부터 영희의 말을 믿지 않았던 선생들과 형사들, 경민의 엄마는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경민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으려 하고, 없는 죄를 덮어 씌우려 했던 기성세대에게 영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는 '자신의 죽음'이다. 그래서 영희는 표백제를 먹고 자살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실패한 죽음 이후에도 영희는 끝없이 자살을 궁리한다. 이때 두번째 자살은 명백한 의도와 목적을 갖는다.
영희가 경민에게도 말했듯, 지금과 같은 의미 없는 삶이라면 사는 것과 죽는 것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고등학생은 가장 고통스러운 세대다. 이미 유치원,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서는 암기식 수업을 해야 하고, 여러 개의 학원을 다니며 밤낮 없이 공부, 공부, 공부만 하는 지겹고 역겨운 나날이 무려 12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여기에 부모의 무관심(경민), 가난(영희)과 같은 외부적 환경까지 겹치면서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은 우울하고 괴로운 심리상태가 된다. 청소년들을 이렇게 망가뜨리고, 질식시킨 건 기성세대인데, 정작 그 기성세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영희는 그런 기성세대를 보면서 환멸과 증오의 감정이 차갑고도 날카롭게 솟아나는 걸 느낀다. 영희는 한솔과 함께 경민의 엄마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한다. 자기(영희)는 경민이 왜 죽었는지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경민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이면 내(영희)가 왜 죽었는지 사람들이 당신(경민 엄마)에게 물어볼 거다. 그때 내 죽음에 대한 이유나 잘 대답하길 바란다.
즉, 영희는 경민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추악한 책임전가를 그대로 경민 엄마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앞부분에서 경민의 죽음을 두고 선생들, 형사들, 경민 엄마는 영희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한솔은 그 장면을 보면서 침묵한다.
이제, 영희가 죽게 되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경민 엄마가 되고, 그 옆에 한솔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 드러난다. 형사와 사람들은 영희의 죽음에 대해 경민 엄마에게 물을 것이고, 한솔은 역시 침묵할 것이다. 경민 엄마는 당연히 영희의 죽음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을 것이며, 한솔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도 사과할 대상이 사라지고, 죄책감은 무겁게 그의 삶을 짓누를 것이다.
처음부터 경민의 죽음은 기성세대가 만든 원죄의 결과이며, 기성세대가 저지른 타살이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같은 세대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워 책임을 전가한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과 억울함이 기성세대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게 되고, 기성세대에 대한 복수는 자기 자신을 죽임으로써 완성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김의석 감독은 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인데,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서 연출부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대부분이 여성이어서 여성의 심리, 세부적인 생활 모습을 보면서 여성 감독인 줄 알았는데, 남성 감독이어서 놀라웠다.
영희가 형사에게 추궁당하고, 마치 범인인양 낙인 찍히고 나와서 화장실에 앉아 생리대를 보는 장면은 영희의 심리와 이 영화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영희는 죽을 만큼 억울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것은 하혈인 것처럼 보이는 다량의 생리혈을 보여줌으로써, 영희가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는 걸 관객이 느끼게 한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굴다리를 향해 걸어가는 영희는 중간에 잠깐 멈추고, 뒤를 돌아볼 듯 하다 다시 걷는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굴다리 안쪽을 향해. 영희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게 있었을까. 성대를 다쳐 말을 하지 못하는 신세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뱉어내지 못한다. 그의 침묵은 죽음보다 무겁다.
배우 전여빈의 연기는 마치 '곡성'에서 어린이 배우 '김환희'의 연기와 비교할 수 있다. 그만큼 처절하고 극적이다. '영희'는 자존감도 있고, 자기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청소년이지만, 그 모습이 기성세대에게는 건방지고 불편하게 보인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신세대를 길들이려는 기성세대의 어리석은 모습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억울한 심정을 꾹꾹 눌러 참으며, 자신을 죽임으로써 기성세대에 복수하겠다는 영희의 태도는, 죽을지언정 기성세대에 굴복하거나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태도이며, 기성세대가 저지른 죄를 자신의 죽음으로 고발하겠다는 자기파괴적 행동이 극단적으로 보여도 그같은 방법 밖에는 가지지 못한 약자의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영희'는 기성세대가 키운 훌륭한 신세대지만, 결국 기성세대가 죽인 신세대이기도 하다. 아니, '영희'는 기성세대가 키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잘 큰 신세대였고, 그를 죽인 기성세대는 오만하고 건방지며, 비겁하고, 야비한 존재였음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