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한2025-10-16 08:52:10
서툴수록 찬란한 축제
영화 <린다 린다 린다>(2005) 리뷰
“우리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순간을 어른으로 변신한 순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이를 그만두는 순간,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 축제를 며칠 남기지 않은 시바고. 고교 시절 마지막 공연을 앞둔 밴드부는 기타를 담당하던 모에(유카와 시오네)가 갑작스러운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더이상 함께 공연 준비를 할 수 없게 된다. 공연을 위한 멤버 재구성에 의견 차이를 보이던 린코(미무라 타카요)와 케이(카시이 유우)는 말다툼으로 충돌하게 되고, 결국 린코는 팀을 떠난다. 두 멤버가 빠진 공백 속에서 케이, 쿄코(마에다 아키), 노조미(세키네 시오리)는 끝내 공연을 진행하기로 결심하고, 보컬의 빈자리에 일본어가 서툰 한국인 유학생 송(배두나)이 합류한다. 엇박의 발음과 박자로 출발한 합주는, 밤샘 연습과 연대의 시간을 경유해 마침내 무대에 오른다.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린다 린다 린다>는 2005년 개봉 20주년을 맞아 4K 리마스터링으로 극장에 다시 찾아왔다. 아이와 어른 사이 경계의 순간에서, '나'를 '우리'로 엮어내는 끝나지 않는 노래로.
소통의 가능성

공연날 아침, 화장실 거울 앞에 나란히 선 송과 케이의 대화는 기묘하면서도 아름답다. 송이 한국어로 "고마워, 밴드하자고 해줘서."라고 말을 건네자,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케이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면서도 자연스레 "고마워, 멤버로 들어와줘서."라고 일본어로 답한다. 이어 송이 "고마워 동지네."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순간, 결코 교차될 수 없었던 두 언어가 기적처럼 서로에게 닿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지닌다. 그것은 각자의 기억과 상처, 성장의 궤적이 엮어 만들어낸 사적인 문법이다. 그렇기에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재할수록 소통은 쉽게 어긋나고 마음은 고립되기 마련이다. 송은 일본어가 서툰 한국인 유학생이고, 케이는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 이러한 두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는 단순한 국적의 간극이 아니라, 각자가 살아온 시간의 결이 새겨온 파동의 무늬이다.
송이 밴드를 함께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인연은 서로를 바라봄에서 비롯되었다. 송이 밴드에 합류하게 된 첫날, 송과 케이는 같은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서툰 일본어로 어색한 대화를 이어간다. 송이 케이에게 자신을 버스에서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케이는 "아니"라고 답하지만, 송은 케이를 왼손 검지로 가리키며 "본 적 있어"라고 말한다. 무엇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그 존재를 자신의 프레임 속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송은 이미 케이를 '보고' 있었고, 케이가 새 보컬을 찾으며 송을 '본' 순간, 두 사람의 진정한 소통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이렇듯 송과 케이의 관계는 언어의 불통에서 출발해 조율의 시간을 경유하며 투명한 공명으로 이어진다. 정제된 수사적 대화가 아니라 상대를 진실로 이해하려는 몸과 마음의 방향, 그것이야말로 본래적인 공동체의 언어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가시적인 차이의 벽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상대방을 온정으로 바라보며, 엇박의 리듬을 함께 맞춰 나가는 것으로 서로에 대한 순수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결국 진실한 소통의 감동은 완벽한 메시지 교환이 아니라, 서로의 리듬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맨발로 달리는 파란마음
© 그린나래미디어
대망의 공연 직전, 밤샘 연습 끝에 스튜디오 Q에서 깜빡 잠들어버린 밴드는 결국 공연 시작 시간을 놓치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우는 그들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우산조차 없이 펼쳐진 험난한 길은 그야말로 고난의 절벽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송이 망설임 없이 빗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주저하던 다른 멤버들도 잇따라 차례대로 달려 나간다. 학교 체육관을 향해 빗줄기를 가르며 함께 달리는 이 장면으로, 이 좌절은 더이상 패배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세례로 기능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청춘에게, 비는 오히려 성장의 토양을 적시는 빗물로 변모한다.
아슬아슬하게 체육관에 도착한 이들은 젖은 신발과 양말을 벗어두고 맨발로 무대에 선다. 맨발로 딛고 일어서는 것은 신발이라는 보호막—즉, '아이로서의 정체성'을 내려놓고 세상과 직접 마찰하는 행위다. 그들이 맨발로 무대를 밟는 순간, 그들은 어른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밴드원 누구나 맨발로 무대 위에 올라서니, 이 성장의 완성은 결코 단독 개인의 것만이 아니다. 함께 달리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며, 같이 노래했으니 이들의 성장은 집단적 성숙의 형태로 조형된다. 결국 <린다 린다 린다>의 청춘은 혼자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지지 위에서 자라난다. 그들의 맨발이 닿은 바닥, 그들이 통과한 폭우의 길이야말로 곧 아이와 어른 사이의 경계를 지나는 이들이 공동으로 체험하는 기립의 장이다.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 그린나래미디어
그들의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2시 혹은 2시 반의 비품실에서의 떨림, 옥상에서 나눠 먹던 소소한 간식, 폭우 속의 달리기. 공연은 이미 그 모든 시간을 경유하며 시작되어 있었다. 결국 '무대 위 성공적 공연'이라는 외적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함께 견디고 통과한 시간이다. '푸른마음'에서 ‘파란마음’으로 도달한 합주는 이러한 축적된 시간 속에서 형성된 관계의 울림에 의해 연주된다.
“이것은 끝이 아니다. 기적을 기다리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왜냐면 고교 시절을 추억으로 끝내진 않을 거니까.”
축제 마지막 날 홍보 아카이브 영상을 촬영하던 여학생의 대사처럼, 그들의 시간은 분명 추억으로만 마침표 찍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를 견디고 지지하던 감각의 조각들이 각자의 가슴 한 켠에 언제토록 남아있을 테니까. 그렇게 간직한 조각들은 제때마다 환히 빛을 발할 것이다. 그 빛이야말로 정녕 끝나지 않는 노래이며 도달한 기적일 것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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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 영화', 그 틀 밖의 작품
- 지인에게 이 영화를 추천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쓱 검색해보더니, "동물 나오는 영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리고 서부 영화도 내 스타일 아니야."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척 봐도 서부 영화 같고, 게다가 제목이 <퍼스트 카우>인 이 영화는 놀랍게도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반신반의하는 제 지인을 위해, 그리고 혹시나 같은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는 여러분을 위해, 오늘 이 영화를 한 번 본격적으로 영업해보겠습니다.※ 10월 28일(목)에 진행된 <퍼스트 카우>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퍼스트 카우>는 2021년 11월 4일 국내 개봉했습니다.퍼스트 카우First Cow<퍼스트 카우>의 배경은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입니다. 미국이 기회의 땅으로 불렸던 때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서부 시대입니다. 그럼 이 영화도 결국 ‘서부 영화’ 아닌가요? ‘서부 영화’는 맞지만, ‘서부 영화’가 아니라고 해야 정확하겠습니다. 시대적 배경은 서부 시대가 맞지만, 장르로서는 서부 영화가 아니거든요.몰아치는 액션과 시끄러운 총소리로 버무려진 개척 정신과 약육강식. 영화의 한 장르로서 ‘서부 영화’는 이러한 전형성을 갖습니다. 화끈한 총격전은 필수, 매력적인 액션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총탄을 갈겨도 서부 영화는 그저 통쾌하기만 할 뿐,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개척 정신이라는 명목 하에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어쨌든 서로 죽고 죽이는, 살인과 폭력의 스토리니까요.그런데 <퍼스트 카우>는 유쾌합니다. 이 서부 영화는 그저 ‘서부 개척 시대의 두 남자가 돈을 벌기 위해 의기투합하여 소젖 서리를 하는 이야기’거든요. 총은 고사하고, 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습니다. 개척 시대에 소젖 서리라니, 영화의 줄거리를 텍스트로 옮겨놓으니 이 영화의 유쾌함이 더욱더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주인공 ‘쿠키’와 ‘킹 루’는 총을 잡는 대신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고, 그 빵을 팔아 돈을 법니다. 여느 서부 영화와 다를 바 없이 남성들이 주인공이지만, 이들은 어느 서부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남성들입니다. ‘쿠키’는 유대인, ‘킹 루’는 중국인입니다. 유대인과 동양인은 2세기가 흐른 지금도 여전히 비주류의 상징이죠. ‘킹 루’는 사업가적인 기질을 발휘해 총 대신 머리를 굴리며 개척 시대를 살아내는 인물이고, ‘쿠키’는 괴롭힘을 당하는 무리 내 약자이면서도 거처에 들꽃을 꺾어 꽂아둘 만큼 섬세한 성정을 가진 인물입니다. 이들은 싸움이 벌어져도 총을 들고 맞서기보다 그 자리를 조심스레 벗어나기를 택하곤 합니다. 개척 시대의 전형적인 남성성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들이죠. 총잡이들의 세상에서 총잡이로 살아가지 않는 비주류의 인물들. 이 영화가 서부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유쾌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영화는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해 두 인물의 특징과 성격을 느긋하게 설명합니다. 서부 시대를 살아가는 두 비주류의 이야기를 관객이 낯설어하지 않도록 말이죠. 당연히 서부 영화인 줄 알고 보러 왔는데, 총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극장을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한 발 정도의 총소리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만, 이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이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갑니다.주류의 역사만을 그려온 서부 영화에 등장한 비주류의 이야기. 낯섦은 유쾌함으로 바뀌고, 유쾌함은 곧 깨달음이 됩니다. 내가 주류의 그늘에 가려진 비주류의 이야기를 또 놓치고 있었구나. 훌륭한 영화 한 편 덕분에 오늘도 제 시야가 한층 더 넓어졌습니다.⊙ ⊙ ⊙가끔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도통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 되게 좋은 영화 같은데, 도대체 하려는 말이 뭐지? 관객에게 해석을 맡기는 건가? 나만 이해를 못 한 건가?’ 하며 혼란에 빠지곤 하죠. 하지만 걱정 마세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정말 친절하거든요. 시작부터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상냥하게 알려줍니다. 바로 이 인용문을 통해서요.The bird a nest, the spider a web,man friendship.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인간에게는 우정.윌리엄 블레이크가 쓴 ‘지옥의 격언(Proverbs of Hell)’의 한 구절입니다. 영화는 이 시를 인용하며 우리가 풀어놓을 스토리가 다름 아닌 ‘우정’에 관한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퍼스트 카우>는 나란히 누워 숨진 두 사람의 시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친절한 길잡이 덕분에 쉽게 유추할 수 있죠. 저 시신 2구가 우정을 나눈 친구일 것이며, 남은 러닝타임 동안 그것을 설명하리라는 걸요. 아무래도 앞서 소개해드렸던 영화 줄거리를 조금 보충해야겠습니다. 이 작품은 ‘서부 개척 시대의 두 남자가 돈을 벌기 위해 의기투합하여 소젖 서리를 하며 우유보다 진한 우정을 쌓는 이야기’입니다.왜 그런 것 있지 않습니까.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이 어떠한 사건(대부분 오해)으로 인해 사이가 멀어진다. 이후 끊임없이 대립하던 두 사람은 갑자기 위기의 상황에 놓이고, 어느 한 사람이 모종의 희생(목숨에 위협이 갈 정도로 심각하지만, 절대 죽지 않는다)을 통해 요란하게 우정을 증명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보고 이런 영화겠거니, 지레짐작한 것이 사실입니다.그러나 ‘쿠키’와 ‘킹 루’의 우정은 요란스러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들은 참으로 차분하게 우정을 쌓아갑니다. ‘쿠키’는 위기에 빠진 ‘킹 루’를 구해주고, ‘킹 루’는 나중에 다시 만난 ‘쿠키’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배려를 베풉니다. 그들은 개척 시대의 한복판에서 노닥노닥 서로의 고향과 각자의 꿈에 관한 대화를 나눕니다. 그저 고향에서 먹던 우유 넣은 빵이 먹고 싶을 뿐인 ‘쿠키’와 그렇게 만든 빵을 팔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킹 루’.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의기투합하여 마을에 하나뿐인 소젖을 훔칩니다. 훔친 우유로 만든 빵이라는 사실을 들켜 쫓기는 와중에도 둘의 우정은 탄탄합니다. 사소한 오해도, 야비한 배신도 없습니다. 이들의 우정은 그렇게 변곡점 하나 없이 끝까지 무탈하게 흘러가죠.흔하디흔한 배신, 탐욕, 오해가 없는 우정 이야기가 어찌나 낯설던지. 저도 모르게 세속에 너무 물들어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꼭 배신한 상대를 용서해야만, 탐욕을 억눌러야만, 오해를 풀어내야만 진정한 친구가 되는 건 아니죠. 진정성 있는 교감, 우정의 전제조건은 그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 ⊙시사회장에서 제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분은 자신이 예상했던 서부 영화가 아니었는지, 소젖 서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극장을 나가시더군요. 참 안타깝습니다. 이 영화야말로 ‘서부 영화’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작품인데 말이죠. 장르의 전형성을 비트는 역작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관람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과연 의구심을 품던 분들께 제 영업이 제대로 먹혔을지 궁금하네요. 혹시 이 리뷰를 읽으시고 영화를 감상하고픈 마음이 드셨다면, 영화 감상 후 댓글에 여러분의 느낀 점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참, 어느새 낯설어져 버린 35mm의 필름의 투박한 종횡비에 적응하며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또 한 가지 묘미랍니다.Summary19세기 서부 개척 시대,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쿠키는 표적이 되어 쫓기는 킹 루를 구해준다. 몇 년 후 정착한 마을에서 재회한 이들은 마을의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어 돈을 벌기로 하는데… “우리에게는 지금이 기회야” (출처: 씨네21)Cast감독: 켈리 라이카트 존출연: 존 마가로, 오리온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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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올드 오크 | 노장이 마지막으로 건네는 당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느 날, 정부에서 허가한 시리아 난민들이 영국 북동쪽 폐광촌에 집단 이주를 한다. 마을 주민들은 난민을 전혀 환영하지 않는다. 탄광이 문을 닫은 후 경제 침체가 이어지고, 빈 집이 늘어나고, 부동산이 헐값에 팔려 나가며 분위기가 어둡기 때문. 자연히 난민과 주민 사이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오래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데이브 터너)는 사진작가를 꿈꾸는 '야라'(에블라 마리)를 만난다. TJ는 야라의 고장 난 카메라를 고쳐주고, 야라는 TJ의 슬픔을 위로하면서 우정을 싹틔우기 시작한다. 그 사이 '올드 오크’ 앞 길거리에는 어느덧 훈풍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켄 로치 그 자체인 은퇴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켄 로치 감독. '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그가 거장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성과부터 압도적이다. 칸 영화제에만 14회 초청받았고, 황금종려상 2번과 심사위원상 3번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 철학은 호불호가 나뉘기도 한다. 미학적으로 독특하고 새로운 연출을 선보이기보다는 정치적 이슈에 지나치게 천착한다는 지적도 때때로 받기 때문.
1997년 '키노' 기사만 봐도 그의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다. '싸우는 작가주의에 대하여' 인터뷰에서 그는 "역사를 탐구하여 민중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되돌려 주는 것은 감독으로서 갖는 책임 중 하나인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과거에 대한 민중의 생각을 조정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다.
은퇴작 <나의 올드 오크>에서도 켄 로치는 자기 신념을 또 한 번 스크린 위에 그려냈다. 잉글랜드 북부 폐광촌 주민의 아픔과 이민 및 난민 문제를 함께 다룬다. 실패한 과거를 반추해 새 미래를 만들자고 손을 내민다. 켄 로치의 이 제안은 거부하기 어렵다. 영화의 휴머니즘이 다소 나이브하고, 감상적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거. 러닝타임 113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마법을 켄 로치가 부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야라의 사진이 달라진 이유
<나의 올드 오크>는 여러 장의 사진으로 시작한다. 전쟁을 피해 시리아에서 잉글랜드까지 건너온 소녀 '야라'. 사진작가를 꿈꾸는 야라는 잉글랜드의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프닝 시퀀스는 그녀의 사진을 하나씩 보여주고, 배우들의 대사와 주변 소음을 사진에 더했다. 카메라에 담긴 거리와 사람은 적대적이고, 배타적이다. 왜 허락 없이 사진을 찍냐고 항의하며 그녀의 카메라를 빼앗아 렌즈를 부술 정도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사진은 정반대다. 동네 주민들은 한 데 모여 그간 야라가 찍은 사진을 같이 감상한다.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도 판이하다. 야라를 경계하던 눈길은 없다. 체육대회에서도, 미용실에서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포즈를 잡고, 미소 짓는다. 그녀의 사진을 대하는 태도도 따뜻하고 친절하다. 멋진 사진을 찍어줘서 고맙다고 말할 정도다. 야라는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나 다름없다.
이런 변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리는 없는 법. 영화 시작과 끝의 분위기가 상이한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그 까닭을 설명하는 일은 TJ의 몫이다.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왜 어두웠는지, 왜 길거리에서 적대적이었는지, 또 그들의 마음이 바뀐 계기는 뭔지... TJ는 목격자, 증인, 당사자로서 그들의 입장을 담담히 대변한다. 그 중심에는 영국 북부의 가슴 아픈 현대사가 위치한다.
아픈 과거가 낳은 현재의 갈등
야라가 도착한 마을은 음울하다. 탄광이 폐쇄된 이후로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이는 마을. 마을 집값은 나날이 떨어지고, 외국계 기업이 부동산을 싹쓸이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은 커진다. 시리아 난민에게는 정착을 도와줄 기부금과 물품이 전달되지만, 가난한 마을 어린이들에게는 아무런 지원도 없다. 주민들은 4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킨 TJ의 술집 '올드 오크'에서 회포를 풀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러나 난민이 점점 늘어나자 올드 오크도 선택의 기로에 선다. TJ의 친구 찰리는 술집 안쪽 빈 공간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과거 광부들의 파업을 기록한 사진만 걸린 채 안 쓰이고 있으니, 주민들이 난민들을 성토하고 대책을 세우는 공론장으로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한편 TJ와 새로 친구가 도니 야라도 같은 공간을 쓸 수 있냐고 물어온다. 주민과 난민 가리지 않고 함께 밥을 먹으며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면서.
TJ는 누구의 편도 쉽게 들지 못한다. 야라와 난민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찰리와 주민들의 아픈 과거를 마음속 깊이 공유하기 때문. 한 때 삶의 의욕을 잃었던 TJ는 우연히 자기 목숨을 구해준 강아지에게 '마라(Marra)'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Marra'는 광부들이 사용하던, 단순한 친구 그 이상의 깊은 관계를 뜻하는 단어다. 이처럼 강아지 이름만 봐도 TJ가 광부였던 아버지와 마을의 과거를 못 떠나보냈음을 알 수 있다.
증오를 빌려 희망을 전하다
하지만 마라의 죽음을 목격한 후에 TJ는 달라진다. 마라는 시리아 난민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에게 공격당해 죽었다. 마라를 잃어 슬픔에 빠진 그의 옆에는 야라와 그녀의 어머니가 있다. 그들은 J를 진심으로 위로한다. 야라는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아끼고 사랑하는 이를 잃는 슬픔을 공유한다. TJ가 야라의 카메라를 고쳐주며 그녀의 꿈을 응원했듯이, 야라도 TJ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에 힘입어 TJ는 술집 안쪽 공간을 주민과 난민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곳에서 과거 광부들이 파업할 때처럼 무료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추억을 쌓는다. 그렇게 시리아 난민들은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 야라의 카메라를 고쳐준 TJ의 선의와 올드 오크의 공간을 개방하자던 야라의 제안이 바꾼 풍경이다. 이처럼 <나의 올드 오크>는 사회적 이슈를 환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솟아나는 인간애에 주목한다.
<나의 올드 오크>가 난민 증오의 양상을 생생히 표현하기에 TJ의 변화와 선택은 더 감동적이다. 영화는 잉글랜드 북부 사람들의 설움이 증오로 이어지는 과정을 비춘다. 찰리가 대표적이다. 찰리는 TJ의 절친이다. 그의 약혼식에서 TJ가 축하 연설을 했을 정도다. 그랬던 그가 올드 오크를 테러한다. 자신과 지역 주민이 아닌 난민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이에 더해 온라인상에서도 TJ에 대한 비난이 이어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TJ의 일침은 유달리 귀에 잘 꽂힌다. 그는 찰리에게 말한다.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면서 우리보다 약자를 비난해. (...) 약자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게 더 쉬우니까.” 이 대사에서는 아픔을 증오로 배설하는 대신, 포용과 배려로 승화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켄 로치는 마지막까지 시민 공동체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뜻하거나 감상적이거나
다만 비판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 소재의 심각성에 비해 영화의 태도가 다소 편의적인 인상이 남기 때문. <나의 올드 오크>는 일견 중립적이다. 지역 주민들의 소외감을 먼저 보여준 뒤, 그 반대편에서 난민에 대한 경계심과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는 과정을 대조한다.
그런데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은 다소 감상적이다. 극 중 주민들의 반발은 광산이 닫힌 이후 마을과 주민을 도외시한 영국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한 데 뭉쳐서 튀어나오는 분노에 가깝다. 그런데 영화는 그들의 절규를 전혀 다른 윤리적, 도덕적 차원으로 끌어들이며 논점을 흐리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영화는 야라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에 그녀를 위로하는 사람들과 찰리와 뜻을 같이하는 주민을 대조한다. 이에 더해 영국과 유럽 내에서 발생하는 난민 범죄는 일절 보여주지 않는 반면, 찰리와 친구들의 범죄는 자세히 묘사한다. 자연히 전자는 선, 후자는 악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주민들의 분노 역시 막연한 증오와 혐오로 치환돼 인식되기 쉽다.
즉, <나의 올드 오크>는 사회적 갈등의 본질을 더 치열하게 추적하는 대신 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한다. 또 감정적으로 원만하게, 봉합하는 데서 그친다. 그렇기에 인본주의적이고 따뜻한 결말도 시각에 따라서는 교묘하게 논의의 장을 뒤트는 시도처럼 보일 수 있다.
지극히 품격 있는 퇴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켄 로치의 비범한 필모그래피의 끝을 장식하기에는 이보다 적절한 마무리를 떠올리기 어렵기도 하다.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고, 명성에 비해 아쉬운 지점도 존재하지만, 작품 전반에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의 기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기 때문.
특히 "당신이 민중의 과거에 대한 생각을 조절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들의 현재를 재조정할 수 있고 현재를 조정하게 되면 결국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신념을 끝까지 견지하는 노장의 용기와 미덕을 마지막으로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기회이기에 <나의 올드 오크>는 분명 특별하다.
Acceptable 무난함
거장의 따뜻한 희망과 노장의 마지막 바람이 부디 헛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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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층간소음 현실 공포가 아파트를 향한 욕망에 잠식될 때!
뉴스를 보다 보면 층간 소음 문제와 관련된 범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속되는 층간 소음 때문에 칼부림 사건도 일어나는 등 이 문제의 심각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층간 소음 문제를 소재로 현실 공포를 전하는 작품이 연이어 공개됐다. 그중 한편이 바로 <84제곱미터>. 아파트에 사는 이들이라면 극 중 주인공이 겪는 층간 소음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절감하는데, 영화는 한발 더 나아가 아파트 공화국인 우리나라의 현실과 사람들의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우성(강하늘)은 영끌족이다.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면 모든 게 다 될 것 같은 환상에 젖어 사는 그는 신용대출은 물론, 남해에 사는 엄마 마늘밭까지 팔아서 기여이 아파트를 산다.(아들 잘 키워봤자 소용없다.) 행복할 것 같았던 우성의 삶은, 바로 대출 상환이라는 현실에 맞닥뜨리고, 새벽마다 고통을 안기는 층간소음에 시달린다. 문제는 아래층 이웃이 층간소음의 근원지를 자신의 집으로 알고 있다는 것. 우성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위층인 진호(서현우), 펜트하우스에 사는 아파트 입주민 대표 은화(염혜란)까지 만난다. 하지만 원인 모를 층간소음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런 와중에 팍팍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무리하게 작전 세력이 개입한 ‘코인’ 매수를 한 그는 이성을 잃게 된다. 급기야 소음 범인으로 몰리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84제곱미터>는 층간 소음을 소재로 문제의 근원이 어디서 출발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해 내집마련이 지상 최대의 꿈인 현실 속 사람들의 욕망을 길어 올린다. 제목인 <84제곱미터>는 공급면적 기준 34평으로, 우리나라 아파트의 기준이 되는 평수다.
국민 평수라고도 불리는 84제곱미터 아파트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더 이상 평범한 이들의 것이 아니다. 영끌족으로, 대출금을 갚기 위해 퇴근 후 배달 일까지 하는 우성의 모습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이 평수가 그림의 떡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성은 이를 뼈저리게 알면서도 어떻게든 이 아파트를 소유하려고 한다. 그래서 대출금을 갚기 위한 삶을 지속한다. 이도 저도 못하고 매일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인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고, 그 모습이 청년 세대의 모습이며, 내 집 마련의 꿈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패티 킴의 ‘서울의 찬가’가 씁쓸하게 느껴지는 건 다 이 때문이다.
영화는 우성을 통해 아파트에 투영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우성을 비롯해 주민 모두 층간소음 때문에 고통을 받지만, 모두 다 쉬쉬한다. 이유는 집값이 떨어질까 무서워다. 행여 부정 이슈로 인해 GTX 개통에 실패하면 안되기에 알면서도 감내하고, 오로지 집값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거지를 조심한다. 층간소음을 알고 있지만, 최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펜트하우스 입주자 대표 은화의 모습과 그녀의 말에 모두 수긍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집값에 예민한 실제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이 영화가 자본주의 사회에 입각한 아파트 공화국의 현실을 옮긴 건 각 층수에 사는 인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우상의 아래층에 사는 이들은 전세 세입자고, 우상의 위층에 사는 진호는 힘도, 욕망의 크기도 크다. 그리고 가장 위층에 사는 은화는 입주자 대표로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다. 이렇듯 층수에 따른 수직 구조는 자본주의 계급 체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층간소음으로 벌어진 이 게임의 승자는 결국 우상이 될 수 없음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이렇듯 <84제곱미터>는 팍팍한 우리의 현실과 겹치는 현실 공포를 보여주며, 보는 이들에게 설득과 공감을 부여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후반부 인물들이 가진 욕망이 하나씩 공개되고, 그게 뒤섞이면서 전반부에 보여줬던 현실 공포는 다소 위축된다. 감독은 후반부에 층간 소음과 아파트를 통해 우라나라 사람들의 뒤틀린 욕망과 불안을 블랙 코미디로 보여주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시도는 좋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설득력은 부족하다. 문제는 다른 주민들과 다른 진호의 욕망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가 원하는 건 대체 명예인지, 돈인지, 아니면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마음인지에 모호한데, 결국 그 부분이 발목을 잡는다. 그러다 보니 초반에 적립했던 공감과 설득된 마음이 와해된다.
그나마 강하늘, 염혜란, 서현우의 연기가 멱살 잡고 끌고 간다. 강하늘은 불안한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공포와 불안감을 연기로 잘 승화시킨다. 답답함을 안겼던 장면들 또한 배금주의에 살면서 불안한 미래를 살기 위해 필요한 건 돈이라는 걸 뼈저리게 아는 세대들의 자화상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염혜란은 사회적 명성과 자본력으로 사람들을 착취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서현우는 현실을 직관적으로 보지 않고 오롯이 자신이 세운 진실로만 행하려는 우둔한 어른의 모습을 그린다.
은화는 우성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아파트가 무슨 죄야? 결국 사람이 문제지.” 이와 반대로 진호는 우성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왜 사람들이 몇억씩 주고 사는 집에서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서로 원망하고 저주하고 죽이고 왜 그러는 걸까. 왜 똑바로 안 지을까.” 상반된 욕망을 가진 이들이 우성을 향해 내뱉은 말은 어떤 의미일까? 애초에 층간소음을 100% 방지하는 아파트를 만들면 우성이 겪은 지옥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이 부분은 충분히 곱씹을만한 지점인 건 확실하다.사진출처: 넷플릭스
평점: 2.5 / 5.0
한줄평: 아파트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 층간 소음 공포를 집어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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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걸 왜 봐요마 소다팝 마이 리틀 소다 팝!
이 글은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엘르/넷플릭스
5분만 참으면 된다.
그러면 웬만한 뮤지컬 뺨치는 퀄리티의 노래들도, 이 세상 만으로도 모자라서 저세상까지 호령하는 아이돌들도. 게다가 왕크왕귀의 정석답게 왕발로 쓰러트린 것들에 집착하는 더피도 모두 누릴 수 있게 된다.
사실 최근에(?) 개봉한 애니메이션이었던 [퇴마록] 덕분에 한동안 마음에 드는 작품은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제목에다 떡하니 케이팝이라는 말이 박혀 있어서 거부감이 좀 컸던 것도 부인하지는 않겠다. 설상가상으로 재생버튼을 누르자마자 얼토당토않은 소다팝 타령을 해대는 바람에 살짝 위기가 왔지만, 정말로 딱 5분이다. 그것만 넘기면 된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생각해 보면 반가운 점(?)들이 참 많은 작품이다. 한국적인 색채가 가득하기 때문에 그다지 씹어 삼키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샤이니 이후로는 아이돌의 계보에서 멀어진 나 같은 사람들에게도 부담감 없는 노래와 콘셉트(소다팝 제외)이었기에 후반부로 갈수록 작품에 대한 편견이 서서히 사라져서, 보면서 꽤 몰입할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한국 사람들을 제외하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요소들을 가득 담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이질감을 전형적이지만 언제나 먹히는 서사와 구조로 안정화시켰다. 게다가 고리타분함을 피하기 위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먹히고" 있는 한국형 아이돌의 모티프를 차용한 셈이다.
사진출처:미주 중앙일보
이 절묘함은 작품이 가진 확실한 차별점이 된다. 그리고 그 차별점은 신선함이 되어 이 낯선 것들로 가득한 작품의 배경인 한국, 더 크게는 한국 문화(불교 포함)에 대한 궁금증까지 불러일으킨다. 덕분에 우리는 사자 보이즈가 갓끈 돌리는 것에 가장 열렬한 물개박수를 치는 관중들이 되는 동시에 저걸 나는 알고 있다.라는 자부심 비슷한 것 마저 느낄 수 있게 된다.
분명 소다팝이 울려 퍼질 때 머리를 싸매며 꺼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말했던 나였는데 작품이 끝나고 나니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 내가 싫어요마 소다팝 마이 리틀 소다팝.
[이 글의 TMI]
1.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웃겼던 것은 HAN의원이었음.
2. 더피 시무룩해할 때 나도 같이 시무룩해짐.
3. 그래도 저승사자한테 가터벨트는 너무한 거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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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 최고의 애니메이션 두 편 - 코코, 모아나
내 인생 최고의 애니메이션 두 편 - 코코, 모아나
개봉일: 2018. 1. 11. 목
관람일: 2020. 11. 29. 일
가족들 모두가 반대하지만 오로지 뮤지션만을 꿈꾸는 소년 미겔 리베라는 '망자의 날' 축제를 위해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 델라크루즈의 기타에 손을 댔다가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이미 사망한 가족들의 축복을 받고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려고 하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미겔은 델라크루즈의 친구라 주장하는 헥토르와 함께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과정을 그린 픽사의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일단 정말 재미있게 봤다. 무려 인생 영화로 꼽아주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영화였고,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픽사의 애니메이션이었다. 우선 영화의 메시지부터 칭찬을 해주고 싶은데, 최근에 개봉한 [소울]이 철저히 개인을 다루고 있었다면 [코코]는 가족 구성원 모두를 다루고 있었다. 언제나 각자 다른 꿈과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모두 존중해 줘야 한다는, 그러니까 '가족 중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제목인 '코코'부터가 주인공이 아닌 가족들로부터 소외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진외조모인 것부터가 이러한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전달하고 있고, 가족들 머릿속에서 잊혀지면 진짜 죽음을 맞이한다는 설정 또한 이러한 메시지에 더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메시지 외에도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스토리라인 또한 훌륭했다. 주인공 미겔이 자신의 꿈을 향해 도달하고, 진정한 자신의 가족을 찾아가는 과정을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성
장물로서는 정말 완벽하다는 표현을 쓰게 만든다. 여기에 끝내주는 OST까지 깔아놓으니 환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Remember Me'는 충분히 누군가의 인생곡이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메시지와도 잘 어울리고, 클라이맥스를 화려하게 장식하는데 일조했다 보니 더더욱 애착이 가는 곡이다. 심지어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화려한 비주얼까지 들어가 버리니 대체 단점이 무엇인지 의문이 갈 지경이다. 특히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는 정말 감탄이 나왔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애니메이터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역대급이었다고 본다. 그냥 모든 면이 다 훌륭했고 현재까지 필자에겐 인생 영화임은 물론이요, 픽사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내 결론이다.
개봉일: 2017. 1. 12. 목
관람일: 2020. 12. 27. 일
반인반신 마우이가 테 피티의 심장을 훔치고 달아난 후 몇 십 년 뒤, 항상 평화로울 줄 알았던 모투누이 섬에 저주가 쓰이게 되고 바다의 선택을 받은 소녀 모아나는 섬을 지키기 위해 먼바다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선 마우이의 도움이 필수적으로 필요했고, 결국 모아나는 마우이를 찾아 테 피티의 심장을 돌려놓고 모투누이 섬을 구하려는 과정을 그린 디즈니의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코코]와 마찬가지로 정말 재미있게 봤다. 기본적으로 [코코]처럼 스토리, 메시지, 캐릭터, 음악, 연출 모두 훌륭했다. 특히 이 영화의 메시지인 '진정한 자신을 찾으라.'는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작중에서 모투누이의 족장이 되어야 할 운명에 처한 모아나는 자신이 원했던 모험을 마무리했고, 마우이는 인간들에게 모든 걸 바치는 것을 그만두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려고 다짐하는 등 여러모로 뜻깊은 메시지였다고 본다. 이 외에도 주인공의 고난과 성장을 잘 담아낸 각본도 정말 칭찬받아야 마땅하고, 이를 청각적으로 드러낸 음악 또한 매우 끝내줬다. 특히 모아나의 대표곡인 'How Far I'll Go'는 이 영화에서 총 3번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소름 돋는 건 둘째 치더라도 곡의 내용이 조금씩 변경이 되며 모아나의 내면이 어떻게성장하였는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이렇게 성장물로서 봐도 훌륭하지만 이 영화는 [겨울왕국]과 마찬가지로 디즈니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솔직히 기존의 디즈니 로맨스 영화는 개인적으로 정말 별로였다. 추억 보정 때문에 심한 말은 하기 힘들지만 그저 왕자에게만 의지한 채, 수동적으로만 묘사되는 디즈니 공주들이 썩 마음에 들지않았다. 그러나 [겨울왕국] 1편을 시작으로 [모아나]도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데 성공하며 디즈니의 긍정적인 변화가 정말 좋게 와닿았다. 캐릭터의 매력도 더 살고, 페미니즘적 관점으로도 긍정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뿐만 아니라 비주얼적으로도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고, 연출 또한 매우 우수했기 때문에 [모아나]를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다만 후반부의 급전개는 좀 아쉬웠다. 작중에서 모아나와 마우이가 서로 다투다 헤어지게 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마우이가 다시 나타나 모아나를 도와준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마우이의 심리 묘사가 나오지 않는 탓에 후반부에 몰입감이 살짝 깨졌다. 물론 이 외에는 다 마음에 들었지만.
*본 콘텐츠는 네이버 블로거 콩까기의 종이씹기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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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질문하는 심리 스릴러
6★/10★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청소년의 투표권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투표 제한 연령을 낮춰 청소년도 미래에 목소리를 내게 하자는 주장에는 호의적일 때가 많다. 청소년이 투표하기에 충분히 성숙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성적 보수주의, 엄숙주의 등의 이유도 있겠으나 최근 급증한 청소년 대상 그루밍 범죄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한 결과일 수도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심리 스릴러 〈메이 디셈버〉는 이 문제를 고민하는 데 하나의 참조점이 되어준다.
그레이시와 조는 부부다. 그러나 부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레이시는 36살에 조를 처음 만났다. 조가 13살일 때였다. 그레이시는 조와 육체적 관계를 맺었고, 감옥에 갔다. 감옥에서 조의 아이를 낳았다. 출소 후 이전 결혼 관계를 깨고 조와 결혼해 부부가 되었다. 그레이시가 첫 결혼에서 얻은 손자와 조와 결혼해서 얻은 아이는 같은 날, 같은 학교에서 졸업한다. 그레이시와 조가 사건 이후, 결혼 이후에도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엄청난 비난 속에서도 둘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버텼고 마을에 정착했다.
그런 부부에게 엘리자베스가 찾아온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레이시와 조 사건을 영화화하는 작품에서 그레이시 역을 맡은 배우다. 엘리자베스는 영리한 사람이다. 부부와 함께 머물며 많은 것을 보고 들을 뿐 아니라 그레이시의 전남편과 변호사, 그레이시가 첫 결혼에서 얻은 아들이자 조의 친구인 조지도 만나본다. 모든 극적인 사건이 그러하듯, 그레이시가 강조하는 ‘사랑’만으로 두 사람의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의 연기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 이면의 감정과 맥락을 알아야만 깊어질 수 있다. 그래서 타고난 영리함과 작품에 대한 집요함으로 두 사람 사이를 계속 파고든다.
그레이시는 내내 엘리자베스가 불편하다. 엘리자베스가 관계의 다른 가능성을 파헤쳐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는다는 건 그가 수십 년간 지켜온 관계와 평판이 다시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레이시는 점차 예민해지고 조에게도 이 감정을 드러낸다. 조는 달래지지 않는 그레이시의 불안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엘리자베스와 조 두 사람만 함께 있는 자리가 생기고, 조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그에게 그레이시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제안한다. 조가 그레이시와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려서다. 조는 혼란스럽다. 엘리자베스의 말이 맞다. 하지만 자신이 떠나면 그레이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조는 그레이시와 가족에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물꼬를 튼 조의 마음은 결국 그레이시에게도 흘러간다. 조가 그레이시에게 묻는다. 우리가 그 모든 것을 겪어내며 결정할 때 내가 너무 어렸다면? 그레이시는 무너져 내리는 듯한 목소리로 둘이 처음 관계를 가진 날 누가 리드했느냐고 반문한다. 함께한 20여 년의 세월을 한쪽은 가스라이팅으로, 다른 한쪽은 사랑으로 의미화하며 충돌한다. 영화는 그레이시를 절대 악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그레이시의 예민함이 트리거가 되어 조가 오랫동안 그레이시의 입장을 ‘자발적 강제’로 수용한 듯 보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일궈온 모든 것이 그레이시의 의지만으로 가능했을 수는 없다. 그레이시는 자신의 믿음을 현실로 만드는 일에 진심을 다했고, 조 역시 ‘진심’을 다해 짝을 맞췄다. 한편 조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질문한 엘리자베스는 맡은 배역을 ‘진실하게’ 연기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조는 잠시나마 엘리자베스에게 마음을 열었지만, 엘리자베스에게 조는 그저 적당히 호감 가는, 스쳐 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 결과로 조는 (어쩌면 성장의 근거가 될지도 모를) 혼란에 빠졌고, 그레이시는 조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평생의 믿음이 깨졌다. 그렇다고 엘리자베스에게 조를 책임지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일에 충실했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 관계 이면의 무언가를 들추어냈을 뿐이다. 영화는 조의 억눌린/뒤늦은 성장통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끝난다. 생각과 감정에 남은 여운이 뒤엉키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시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돌아와보자. 청소년에게 성적 자유를 보장할 혹은 자유를 제한할 적정 연령은? 알 수 없다. 그저 한순간의 ‘자발성’이 어떤 맥락에서 구축되고 지속되는지를 면밀하게 읽어낼, 성적 자기결정권이 손쉽게 단정할 수 없는 복잡한 맥락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데 둔감하지 않은 섬세한 해석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밖에.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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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판은 깔았으나 재미는 그닥
#영화 #올드가드 #리뷰
액션, 판타지│미국│124분
감독 지나 프린스-바이스우드│출연 샤를리즈 테론, 키키 레인오랜 시간을 거치며 세상의 어둠과 맞서운
불멸의 존재들이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
또다시 힘을 합쳐 위기와 싸워나가는 이야기#리뷰문의
adonai0919@gmail.com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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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임씨를 부탁해 리뷰 - 국민 엄마 김영옥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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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영상은 홍보마케팅사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남 같은 가족, 가족 같은 남
85세 정말임 여사의 선택은?
85세 대구의 꼬장 할매 정말임 여사는 자식 도움 1도 필요 없다며
인생 2막을 내돈내산 나홀로라이프로 즐기려 했건만 이놈의 몸이 말썽!
오랜만에 외아들 종욱의 방문 탓에 팔이 부러지고,
이 사고로 요양보호사 미선을 들이게 된다.
엄마 걱정에 CCTV까지 들이는 아들과는 마음과 다르게 모진 말만 오가고,
요양보호사는 어쩐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영 맘에 안 든다.
그렇게 마찰과 화해를 반복하던 중 종욱 가족이 불쑥 찾아온 명절날,
묻어두었던 관계의 갈등이 터져버리는데….
가족이 뭐 별거야? 이제 함께 살 테니 “우리 말임씨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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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베테랑2> 티저 예고편
THE 찐해진 [베테랑2] 티저 예고편 공개🔥 오라... 황정민 X 정해인이 말아주는 베테랑표 액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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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시스턴트> 30초 예고편
꿈에 그리던 영화사에서
보조 직원으로 일하게 된 ‘제인’
어떤 일도 능숙하게 처리하는
그녀의 일상은 평범해 보이지만,
사소한 사무실 정리부터 상사의 개인적인 스케줄 관리까지
하루 종일 몰아치는 잡다한 업무에 지쳐간다.
그러한 일상이 반복되던 중
어느 날, 신입사원으로 채용된 한 여성이 찾아오면서
회사 내 부조리함을 마주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