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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한2025-10-16 08:52:10

서툴수록 찬란한 축제

영화 <린다 린다 린다>(2005) 리뷰

“우리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순간을 어른으로 변신한 순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이를 그만두는 순간,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 축제를 며칠 남기지 않은 시바고. 고교 시절 마지막 공연을 앞둔 밴드부는 기타를 담당하던 모에(유카와 시오네)가 갑작스러운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더이상 함께 공연 준비를 할 수 없게 된다. 공연을 위한 멤버 재구성에 의견 차이를 보이던 린코(미무라 타카요)와 케이(카시이 유우)는 말다툼으로 충돌하게 되고, 결국 린코는 팀을 떠난다. 두 멤버가 빠진 공백 속에서 케이, 쿄코(마에다 아키), 노조미(세키네 시오리)는 끝내 공연을 진행하기로 결심하고, 보컬의 빈자리에 일본어가 서툰 한국인 유학생 송(배두나)이 합류한다. 엇박의 발음과 박자로 출발한 합주는, 밤샘 연습과 연대의 시간을 경유해 마침내 무대에 오른다.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린다 린다 린다>는 2005년 개봉 20주년을 맞아 4K 리마스터링으로 극장에 다시 찾아왔다. 아이와 어른 사이 경계의 순간에서, '나'를 '우리'로 엮어내는 끝나지 않는 노래로.

 

 

소통의 가능성

© 그린나래미디어

공연날 아침, 화장실 거울 앞에 나란히 선 송과 케이의 대화는 기묘하면서도 아름답다. 송이 한국어로 "고마워, 밴드하자고 해줘서."라고 말을 건네자,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케이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면서도 자연스레 "고마워, 멤버로 들어와줘서."라고 일본어로 답한다. 이어 송이 "고마워 동지네."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순간, 결코 교차될 수 없었던 두 언어가 기적처럼 서로에게 닿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지닌다. 그것은 각자의 기억과 상처, 성장의 궤적이 엮어 만들어낸 사적인 문법이다. 그렇기에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재할수록 소통은 쉽게 어긋나고 마음은 고립되기 마련이다. 송은 일본어가 서툰 한국인 유학생이고, 케이는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 이러한 두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는 단순한 국적의 간극이 아니라, 각자가 살아온 시간의 결이 새겨온 파동의 무늬이다.

 

송이 밴드를 함께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인연은 서로를 바라봄에서 비롯되었다. 송이 밴드에 합류하게 된 첫날, 송과 케이는 같은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서툰 일본어로 어색한 대화를 이어간다. 송이 케이에게 자신을 버스에서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케이는 "아니"라고 답하지만, 송은 케이를 왼손 검지로 가리키며 "본 적 있어"라고 말한다. 무엇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그 존재를 자신의 프레임 속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송은 이미 케이를 '보고' 있었고, 케이가 새 보컬을 찾으며 송을 '본' 순간, 두 사람의 진정한 소통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이렇듯 송과 케이의 관계는 언어의 불통에서 출발해 조율의 시간을 경유하며 투명한 공명으로 이어진다. 정제된 수사적 대화가 아니라 상대를 진실로 이해하려는 몸과 마음의 방향, 그것이야말로 본래적인 공동체의 언어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가시적인 차이의 벽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상대방을 온정으로 바라보며, 엇박의 리듬을 함께 맞춰 나가는 것으로 서로에 대한 순수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결국 진실한 소통의 감동은 완벽한 메시지 교환이 아니라, 서로의 리듬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맨발로 달리는 파란마음

© 그린나래미디어

대망의 공연 직전, 밤샘 연습 끝에 스튜디오 Q에서 깜빡 잠들어버린 밴드는 결국 공연 시작 시간을 놓치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우는 그들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우산조차 없이 펼쳐진 험난한 길은 그야말로 고난의 절벽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송이 망설임 없이 빗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주저하던 다른 멤버들도 잇따라 차례대로 달려 나간다. 학교 체육관을 향해 빗줄기를 가르며 함께 달리는 이 장면으로, 이 좌절은 더이상 패배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세례로 기능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청춘에게, 비는 오히려 성장의 토양을 적시는 빗물로 변모한다.

 

아슬아슬하게 체육관에 도착한 이들은 젖은 신발과 양말을 벗어두고 맨발로 무대에 선다. 맨발로 딛고 일어서는 것은 신발이라는 보호막—즉, '아이로서의 정체성'을 내려놓고 세상과 직접 마찰하는 행위다. 그들이 맨발로 무대를 밟는 순간, 그들은 어른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밴드원 누구나 맨발로 무대 위에 올라서니, 이 성장의 완성은 결코 단독 개인의 것만이 아니다. 함께 달리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며, 같이 노래했으니 이들의 성장은 집단적 성숙의 형태로 조형된다. 결국 <린다 린다 린다>의 청춘은 혼자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지지 위에서 자라난다. 그들의 맨발이 닿은 바닥, 그들이 통과한 폭우의 길이야말로 곧 아이와 어른 사이의 경계를 지나는 이들이 공동으로 체험하는 기립의 장이다.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 그린나래미디어

그들의 공연은 무대 위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2시 혹은 2시 반의 비품실에서의 떨림, 옥상에서 나눠 먹던 소소한 간식, 폭우 속의 달리기. 공연은 이미 그 모든 시간을 경유하며 시작되어 있었다. 결국 '무대 위 성공적 공연'이라는 외적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함께 견디고 통과한 시간이다. '푸른마음'에서 ‘파란마음’으로 도달한 합주는 이러한 축적된 시간 속에서 형성된 관계의 울림에 의해 연주된다.

 

“이것은 끝이 아니다. 기적을 기다리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왜냐면 고교 시절을 추억으로 끝내진 않을 거니까.”

축제 마지막 날 홍보 아카이브 영상을 촬영하던 여학생의 대사처럼, 그들의 시간은 분명 추억으로만 마침표 찍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를 견디고 지지하던 감각의 조각들이 각자의 가슴 한 켠에 언제토록 남아있을 테니까. 그렇게 간직한 조각들은 제때마다 환히 빛을 발할 것이다. 그 빛이야말로 정녕 끝나지 않는 노래이며 도달한 기적일 것이다.

 

작성자 . 려한

출처 . https://brunch.co.kr/@ryeoha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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