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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usmesentez2025-08-31 23:11:48

일상의 마찰로 드러나는 감정의 단면들

<내 말 좀 들어줘> 리뷰

 

 

 

  마이크 리의〈내 말 좀 들어줘>는 “사람을 바꾸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는 시선에 대한 영화였다. 그는 주인공 팬지를 단죄하거나 구원하지 않는다. 대신 팬지의 거친 말투와 편협한 판단 뒤에 웅크린 불안과 슬픔, 그리고 오래 방치된 상처의 결을 오래, 가까이, 꾸준히 바라본다. 그 집요한 응시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독설을 ‘악의’로만 읽지 못하게 만든다. 말이 쌓일수록 표정이 마모되고, 단언이 커질수록 마음이 더 작아지는 사람—팬지는 그런 감정의 고갈 상태를 견딜 줄 모르는 인물이다.

 

  영화의 정서는 팬지의 집과 동생 샨텔의 집이 지닌 공기의 온도 차에서 명확해진다. 팬지의 공간은 밀폐된 방처럼 차갑고, 샨텔의 공간은 숨 쉴 구멍이 난 듯 따뜻하다. 마이크 리는 이 두 공간을 빠르게 대조하지 않고, 대화의 리듬과 숨 고르기로 조금씩 체감하게 한다. 그러다 문득, 사소한 말 한마디나 작은 몸짓이 팬지의 확신에 미세한 금을 낸다. 영화는 바로 그 금이 벌어지는 소리를 들려준다—고함 대신 침묵과 머뭇거림으로. 이 과정에서 우리는 “왜 저렇게 말할까?”에서 “어떻게 저렇게 말하게 되었을까?”로 질문을 바꾸게 된다. 

 

  인상 깊었던 건, 이야기의 굴곡을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사물과 미묘한 제스처가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말라붙은 꽃다발 하나, 열린 창문 하나가 관계의 체온을 대변하고, 누군가의 무심한 취기 같은 말이 하루의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이 영화의 ‘드라마’는 플롯의 전진보다 감정의 진폭에 가깝다. 그 진폭은 종종 불편하고, 때로는 우습고, 가끔은 뼈아프다—그러나 무엇보다 정직하다.

 

  〈내 말 좀 들어줘〉를 보고 난 뒤 오래 남는 감정은 연민도, 희망도 아닌 견딤의 윤리였다. 상대가 틀렸다는 사실보다, 그 사람이 왜 그 자리에 머물렀는지 끝까지 듣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 어려움을 견디는 시간이야말로 관계를 조금 움직인다는 사실. 마이크 리는 관객에게 “이해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보는 연습, 듣는 연습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할 뿐이다. 그리고 그 제안이 조용히 스며드는 순간, 우리는 타인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내가 듣는 방식만큼은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본 영화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관람하였습니다. 

작성자 . vousmesent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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