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8-06 12:38:05
씨네랩 크리에이터가 선택한 사랑에 관한 필름 🎞️
사랑
지난 8월 4일,
씨네랩에서 활동 중인 크리에이터분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답니다.
그중, 하나의 키워드를 선택해 영화 큐레이션을 완성해 보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하나의 키워드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씨네랩 크리에이터들은 ‘사랑’을 주제로 어떤 영화들을 선택했는지 함께 만나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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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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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워내야 채울 수 있다는 깨달음!
비워내야 채울 수 있다는 깨달음! <문경>은 번아웃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이 메시지를 오롯이 전하는 영화다. 이를 위해 인물들은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걷고, 문경의 푸른 산과 맑은 계곡 등 자연을 바라보며 힐링을 얻는다.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를 토로하며,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도 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넌지시 묻는다. 함께 비움을 실천하겠냐고.
직장인들이 매일 힘듦을 겪듯 문경(류아벨)도 예외는 아니다. 예술 전시 기획 담당 팀장인 그는 팀 내 일도 잘하고 성실한 계약직 초월(채서안)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회사는 묵묵부답. 결국 초월은 계약직 만료가 되어 홀연히 사라진다.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문경은 회사 복귀 후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복잡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초월의 고향이자 자신의 이름과 같은 문경으로 휴가를 떠난다. 그곳에서 우연히 첫 만행을 나선 비구니 가은(조재경), 길 잃은 강아지 길순을 만난 그는 유랑 할매(최수민) 집에서 신세를 진다. 그리고 그날 밤 이들은 저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아픈 과거를 꺼낸다.
<문경>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진 이들이 만나 펼치는 로드무비 형식을 취한다. 도시에 사는 직장인 문경과 산 속 사찰에서 지내던 비구니 가은은 문경이라는 특별한 곳에서 조우하고 길순이의 주인을 찾아주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이들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점점 필연이 되어가는 과정이 펼쳐지는데, 서로 접점 하나 없는 이들이 가까워지는 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실과 부채감이 드러나면서다.
길순이가 맺어준 거나 다름없는 이들은 유랑 할매 집에서 비로소 공통점을 찾는다. 바로 자신과 가까운 이가 세상을 떠났고, 그에 따른 상길과 부채감이 마음 깊숙이 자리해 있다는 점이다. 문경은 가수를 꿈꿨던 동생을, 가은은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특히 가은은 과거 일어났던 사회적 참사를 연상케 하는 장소의 유일한 생존자로 그 죄책감에 비구니가 되기로 결심한 것. 이들이 각각 초월과 길순이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이유는 이 전사 때문이다.
유랑 할매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후 마음의 문을 닫은 손녀 유랑(김주아)을 보살피는 그는 미리 그 아픔을 알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가득하다. 손녀만 생각하면 마음이 디비진다(뒤집히다의 경북 방언)는 그의 말에는 어른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신의 책망이 담겨있다.
이런 이들의 아픔이 치유되는 곳은 유랑 할매의 집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법한 자연처럼, 이 집은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어 주는 공간으로 표현된다. 특히 툇마루에 앉아 문경은 동생, 가은은 친구, 유랑 할매는 손녀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그동안 감춰뒀던 아픔을 끄집어내고 서로 교감한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의 공감과 이해는 비로소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집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마음을 여는 환경을 조성한다. 마치 자연이란 따뜻한 품 안에서 사람으로 받은 상처, 사람으로 치유하는 격이랄까. 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을 나누고 배려하는 행동만으로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걸 영화는 말하고 있다.
기존 힐링 영화처럼 <문경>은 자극적인 소재나 구미를 당기는 이야기들이 별로 없다. 선유동계곡, 윤필암, 고모산성, 주암정, 진남교반, 잉카마야박물관 등 문경의 아름다운 풍광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자칫 문경시의 홍보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사찰 음식을 먹는 듯한 심심함이 영화 전반에 깔리는데, 그 맛이 나쁘지 않다. 건강하다. 장르 영화와 비교했을 때야 단점으로 각인되지만, 영화의 메시지를 도드라지게 보이기 위한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두 시간 동안의 힐링 여정은 그 의미를 더한다.
이 영화가 힐링을 전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 건 신동일 감독의 변화된 연출력에 있다. <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반두비> 등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이들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조망했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문경과 가은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이어 나간다. 단, 이전과 다르게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전 서로의 다름을 첨예한 대립으로 이끌고 갔던 작품들과 달리, <문경>에서는 그 다름을 이해하는 쪽으로 가져간다. 여성과 여성의 관계, 인간과 개(동물)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확장해 공감을 통한 연대의 가능성도 펼친다. 이는 길순의 시선으로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샷만 봐도 알 수 있다.
<문경>은 소박한 이야기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담는다. 욕심 보단 비움, 인과응보 보단 인연과보(因緣果報, 어떤 일이 일어나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의 철학으로 인간 세상의 모습을 담는다. 이런 이유에서 <문경>은 지금 우리 삶에 필요한 영화라고 보인다. 기자간담회에서 문경 역을 맡은 류아벨 배우는 “그냥 우리가 사는 이야기 같은 점이 좋았다”고 작품의 매력을 소개했다. 특별함은 없지만, 봐도 봐도 마냥 좋은 자연의 모습처럼, 이 영화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여름의 마지막 끝자락, 문경으로 힐링 여행을 떠나길 바란다.
사진 제공: 트윈플러스파트너스
평점: 3.0 / 5.0
한줄평: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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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대한 믿음 - 영화 <더 웨일>
이 영화는 사랑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브렌든 프레이저
희망 혹은 사랑의 밝은 느낌은 결코 찾기 어려운 포스터와 트레일러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다면, 우리는 분명
주인공 찰리 역을 연기한 브랜든 프레이저의 말처럼
이 영화가 사랑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스포주의
※ 해당 시사회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주인공 찰리는 살아있지만, 사실은 죽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보조기 없이는 쉽게 일어날 수 없고, 혼자 힘으로는 떨어트린 핸드폰과 열쇠도 줍지 못하며 천장에 달린 손잡이 없이는 침대에 눕기조차 쉽지 않다.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망가져 버린 몸과 마음은, 그를 세상과 단절시킨 채 작은 아파트먼트의 소파 위에 가두어버렸다.
마치 망망대해처럼 깊고 어두운 그 속에 말이다.
영화 속 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진짜 사람답게 '사는' 것과 겨우 '살아가지는' 것의 차이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마음 속 내적인 고통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또한 말이다. 찰리는 자신의 집에 방문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역겹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는데, 사실상 이는 스스로에 대한 짙은 자기 혐오가 깔려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삶이 전부 타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찰리 본인의 선택이 있었고, 그 속에서 느끼는 죄책감과 혼란, 갈등은 그를 더욱 괴롭게 하는 부분이다. 사랑을 찾아 가족을 두고 떠났던 본인의 이기적인 선택에 대한 죄책감과 결국 자기 삶의 전부였던 파트너를 잃은 고통 속에서 그는 오랜 시간 헤엄치게 되었다.
온라인 강의를 업으로 삼는 찰리는, 학생들에게 작문에 대한 강의를 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에세이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성' 이라며 끊임없이 이를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카메라가 망가졌다는 거짓말과 꺼진 검은 화면 아래 본인의 모습을 숨길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의 마음 속에는 본인이 강조하는 진실성과 정직함으로부터 비롯된 당당함이 아닌 세상과 스스로의 삶에 대한 분노와 슬픔만이 가득찼을 뿐이다. 그렇게 분노에 찬 마음으로 노트북을 내던지는 순간, 그는 바깥 세상과 자신을 잇던 유일한 끈을 잘라 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분노에는 마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만도 같았던 피자 배달부의 존재가 큰 트리거가 되었다. 배달부는 매일 비슷한 시각, 같은 피자를 시키지만 모습은 드러내지 않는 찰리에 대해 은근한 걱정과 관심을 주었다. 문 앞에 피자를 놓으며 찰리의 안부를 묻고, 짧은 대화와 더불어 심지어는 통성명까지 한다. 하지만 찰리의 모습을 마주한 그가 내뱉은 탄식 한 마디는 벼랑 끝에 있던 찰리를 마침내 무너뜨린 순간이 되버린다. 결국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는 세상의 모습을, 찰리는 그 배달부를 통해 확신한 것이다.
영화는 찰리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그들 간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속에는 서로 간의 구원과 사랑,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있다.
찰리는 발작으로 인해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죽음의 문턱에 닿을 때마다 소설 <모비딕>을 주제로 삼은 한 에세이를 읊고, 또 듣기를 원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그 거대한 고래를 잡기 위해 삶을 다하는 것처럼, 어쩌면 찰리는 자기 삶의 고래를 찾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잘 한 일이 단 하나라도 있음을 확인해야겠다고 절규하는 그의 대사는, 공허한 삶속에서 단 하나의 희망으로 삼아왔던 딸 엘리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을 보면, 찰리가 정말 자기 삶의 고래를 찾았는지, 마침내 구원을 얻게 되었는지는 어쩌면 확실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허나 확실한 건, 결국 삶에 대한 의지와 사랑에 대한 그의 믿음이 그를 다시 두 발로 일어서게 했다는 것이다. 온전히 그의 힘으로.
그의 재기를 알리는 작품이 등장했다.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고 배우로서 암흑기를 겪던 브렌던 프레이저가
이제는, 다시 두 발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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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생활! - 정녕 실사화는 답이 없는 것인가
필자가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본 일본 만화가 있다. "학교생활!"이라는 일상물을 탈을 쓴(?) 좀비 아포칼립스 애니메이션인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롭게 봤다. 귀엽고 예쁜 여자 캐릭터들이 몇몇은 죽고, 좀비 소굴 속에서 버틴다니. 그 뿐만 아니라 진중하고 상당히 암울한 스토리가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작품을 평가도 좋아서 애니메이션화도 됐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실사화까지 되었다. 일본 애니 실사화는 거의 일본 영화계의 적폐(?) 수준으로 평을 받다보니, 이것도 역시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이 영화를 제작년 BIFAN에서 스크린으로 소수의 관객들과 관람을 했다. 그 당시 든 생각은 이 영화는 여기서 안 보면 스크린으로는 볼 기회가 절대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좀비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고. 그런데 아뿔싸. 결론은 역시다. 이번에도 실사화의 저주는 계속 되었다.
보통 이러한 모에 계열 만화(좀비 아포칼립스라고는 소개했지만 모에 요소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를 실사화하는 경우에는 만화와 실사의 괴리감이 심한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문제점이 본 작품에도 존재한다. 심해도 너무 심하다. 이 중 심각한건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도 어설퍼서, 정상적으로 관객이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리고 좀비 영화에서 보기 힘든 12세 관람가라는 등급은 보기 전부터 불안감을 선사했는데, 그에 보답하듯 좀비와의 전투씬은 심심하기 짝이 없다. 피도 볼 수 없고, 잔혹한 현장도 없다. 그나마 원작의 전개를 영화화 하기 위해 바꾼 스토리는 볼만하지만, 실사화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인해 볼만한 스토리도 못볼게 되버리고 말았다.
코스프레로 끝나고 만다는 일본 애니 실사화의 단점을 피하기 위해 배우들의 헤어 컬러를 염색하지 않는 등의 새로운 시도는 참신해보였지만, 그 외의 단점들은 여전히 존재할 뿐더러 더 부각된 부분들도 있다. 만화 실사화의 반면교사들 중 하나. 이 영화는 역시 수입사 측에서도 흥행성이 없다고 평가 되었는지 꼼수 개봉 후 VOD 직행되었다. 혹시 원작을 좋아하거나, 실사화 애니가 어떤지 궁금하다면 한번 봐봐도 좋다. 부디 나를 탓하진 말아달라.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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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자식의 친구를 죽인 살인자를 면회하는 이유
범죄자의 인권은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
중범죄자도 경범죄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할까?
흉악범은 교화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위협하는 강력 범죄가 나에게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오늘날의 범죄 사회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수시로 머릿속에 차오릅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제 대답은 항상 변덕스럽습니다. 범죄자도 사람이므로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우리 가족을 해친 사람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있다고 상상하면 절로 피가 거꾸로 솟죠.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은 이처럼 선악, 가해자와 피해자, 인권에 관한 고민을 다시 한번 촉발하는 영화였습니다.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
Kaneko′s Commissary
Summary
폭력으로 수감된 '가네코'는 면회 온 아내에도 화부터 내는 남자였다. 개차반이던 그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내와 아이, 삼촌이라는 가족의 힘이었다. '가네코'는 과거 자신처럼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영치물품을 넣어주고 대신 면회를 해주는 영치품 매점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평화는 아들의 친구인 어린 여자아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Cast
감독: 후루카와 고
출연: 마루야마 류헤이, 마키 요코, 미우라 키라
'옥바라지'도 대행이 됩니다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은 구치소와 교도소에 영치품을 대신 전해주거나 면회를 대행해 주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전과자였던 '신지'의 과거와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영치품점의 역할을 소개합니다.
영치품점은 이른바 옥바라지 대행 서비스입니다. 정부 시설의 특성상, 구치소와 교도소는 주민센터와 같은 평일 낮 시간에만 방문객을 받는데요. 아무래도 평일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방문이 쉽지 않은 데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우려해 일부러 발길을 끊기도 합니다. 영치품점은 그 빈자리를 메꾸며 옥바라지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지요. 취재 과정에서 영치품점의 존재를 알게 된 후루카와 고 감독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치품점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폭행 전과자였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에 힘입어 새 삶을 살고 있는 '신지'는 삼촌이 운영하던 영치품점을 물려받아 수감자와 가족들을 잇고 있습니다. 영치품과 면회는 수감자들의 권리이며, 이를 대행하는 자신의 업을 부끄러워하지 않죠.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아들 '카즈마'의 동네 친구 '카린'이 묻지 마 살인으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남일로만 여겼던 강력 범죄가 내 일이 된 동네 사람들은 '가네코' 가족이 범죄자를 돕는 일을 한다며 거리를 두기 시작하죠. '신지'는 그 과정에서 무력함과 회의에 사로잡힙니다. 그렇게 혼란을 겪던 그에게 '카린'을 살해한 범인의 어머니가 영치품과 면회를 대행해 달라며 찾아오면서 ‘신지’는 또 다른 괴로움과 직면합니다.
영화는 사회가 규정하는 선악을 모두 경험한 '신지'라는 인물을 통해 선을 망치는 악과 악을 품는 선에 관한 통찰을 전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선을 일순간에 파괴해 버리는 것이 악이지만, 그러한 악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바로 선이지요. 선과 악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철옹성 같은 벽이 세워져 있는 것 같더라도, 이 세상에 절대불변의 가치란 없고요. 관객은 교정 시설을 오가는 '신지'의 혼란을 스크린 너머로 체험하며, 선악에 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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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허무는 것, 결국 가족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에는 선과 악을 오가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신지'가 그렇습니다. 그는 동료를 폭행해 징역 3년을 받고, 감옥에서 난동을 부려 1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출소 이후에는 이전의 삶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베푸는 선한 사람이 되었죠.
엄마를 살해한 야쿠자를 면회하기 위해 매일 교정 시설을 찾는 고등학생 '사치'도 그렇습니다. '사치'의 이야기는 '신지'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서브플롯인데요. 초반에는 '사치'가 그저 강도에 의해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이로 보였지만, 실은 엄마의 강요로 성매매에 시달리는 소녀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야쿠자는 성매매를 위해 그 집에 들렀다가,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어린 '사치'를 구하기 위해 엄마를 공격했던 것이었죠. 그 과정에서 엄마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린 사람은 바로 '사치'였습니다. 선이었다가도 악이 되고, 악이었다가도 선이 되는 인물들. 이처럼 영화 속 선과 악은 손바닥 뒤집듯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선과 악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를 선의 방향으로, 또는 악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지'가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미와코'의 단단한 지지와 아들 ‘카즈마’를 향한 부성애 덕분이었습니다. 살인이라는 분명한 악의 편에 서 있던 '사치'와 야쿠자는 어떨까요? 가족에게 이용당한 '사치'와 출소 후 가족 같았던 조직의 해체를 맞닥뜨린 야쿠자는 혈혈단신인 서로를 가족으로 인지하면서 서서히 악에서 벗어납니다. 이렇듯 영치품점을 소재로 벌어지는 여러 선과 악의 이야기 아래에는 따스한 가족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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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허무는 가족의 힘을 말하는 영화지만, 메시지를 소구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감정선을 다소 과장하거나 불필요한 이야기들을 삽입해 영화의 탄력을 저해했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식 신파가 무릇 그렇듯이 어쩐지 다정함이 넘쳐, 다 보고 나면 괜히 마음이 포근해지는 작품이랍니다.
극 중 '카린'을 살해한 범인이 늘어놓은 궤변이 떠오릅니다. 100마리 개미를 모아 놓으면 그중 20%는 일하지 않고 농땡이를 피우는데, 일하던 80마리를 따로 떼어 놓으면 또 그중 20%가 일하지 않다는 실험을 언급하며 성악설을 주장하는 장면이었죠. 영화를 곱씹어 보니, 이처럼 쉽게 뒤바뀌는 선악 속에서도 언제나 80%의 보편적인 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외려 희망적으로 느껴집니다. 일하지 않는 20마리를 따로 떼어놓으면 그중 80%는 다시 선해진다는 사실까지도 말입니다.
One-Liner
누구나 흐릿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악으로도, 다시 선으로도.
Schedule in BIFF
2024.10.03(목) 영화의전당 소극장 19:30
2024.10.04(금) CGV센텀시티 3관 19:30
2024.10.10(목) CGV센텀시티 7관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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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7(2019/ 미국)
- (이미지 출처: 구글이미지)
<영화적인, 너무나 영화적인>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4월6일. 노란 들꽃으로 가득한 어느 아름다운 들판. 나무에 기대어 영국 병사 둘이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영국 육군 제8보병연대 소속 톰 블레이크 병장과 윌리엄 스코필드 병장이다. 블레이크에게 한 중사가 다가와 병사 한 명과 함께 사령부로 가보라는 명령을 전하면서 이들의 꿈 같은 휴식은 끝이 난다.
블레이크는 별것 아닌 명령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옆에 있던 스코필드와 함께 사령부에 도착하나 사령관 에린모어 장군으로부터 매우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독일군의 계략에 빠져 다음날 아침 총공격을 할 데번셔연대 지휘관 매켄지 중령에게 공격중지 명령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데번셔연대 군인 1,600명의 목숨이 걸린 임무였다. 더욱이 그 연대엔 톰 블레이크의 형, 조셉이 소속되어 있는 형편. 장군은 진지 건너편 독일군이 작전상 후퇴를 한 상황이어서 저항이나 공격은 없을 것이니 즉시 떠나라고 명령한다.
신중한 스코필드는 장군의 정보가 틀린 것이라면 적에게 노출될 지도 모르니 밤에 출발하자고 의견을 제시하지만 형을 구해야만 한다는 급한 마음에 블레이크는 당장 출발하라는 명령과 적은 없다는 정보를 강조하며 그 자리에서 임무에 나선다.
아군 진지의 좁은 참호밖으로 나가는 것부터가 난관. 최전선의 지휘관이 일러준대로 아군 철조망, 무너진 청음초, 적군 철조망까지의 길은 정확했으나 그 뒤부터는 오직 둘이 지도에 의지해 나아가야만 했다. 장군의 말대로 독일군은 철수한 후여서 공격은 없었지만 철수하면서 설치한 부비트랩이 폭발하는 바람에 죽을 뻔한 스코필드를 블레이크가 간신히 구한다.
위기를 넘기며 전진하다가 영국과 독일의 공중전에 노출되고 마는 두 사람. 추락한 독일군 비행기가 폭발하기 직전, 블레이크는 적군이 편히 죽게 그냥 두고 가자는 스코필드의 의견에 맞서 독일군을 구하나 그의 칼에 찔려 전사하고 만다.
반사적으로 독일군을 사살한 뒤 블레이크의 죽음으로 망연자실한 스코필드. 정신을 차리고 전사한 친구의 반지와 인식표를 챙기며 시신을 수습하고 있는데 그의 앞에 다른 연대 소속 아군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지휘관인 스미스 대위는 스코필드의 목적지에서 가까운 에쿠스트까지 차를 태워주겠다며 호의를 베푼다.
우여곡절 끝에 에쿠스트에 이르는 다리 앞에 도달했으나 독일군의 폭파로 다리가 두 동강이 나 차로는 건널 수가 없었다. 스코필드는 스미스 중위와 헤어져 무너진 다리를 간신히 건너는 중에 매복 중이던 독일군의 저격을 받는다. 한 건물의 2층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것을 안 그는 혼자 남은 독일군을 사살하나 적군이 쏜 총에 철모가 날아가면서 받은 충격으로 쓰러져 계단을 굴러 잠시 의식을 잃는다.
어둔 밤. 떨어지는 빗물에 눈을 뜬 스코필드는 조명탄이 터지는 가운데 에쿠스트 마을로 진입하던 중 적의 추격을 받는다. 그곳은 이미 적에게 점령 된 상태. 도망하다가 간신히 몸을 피한 곳에서 숨어지내고 있는 한 프랑스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버려진 갓난 아기를 기르고 있었다.
서툰 프랑스어와 영어를 교환한 끝에 데번셔연대가 있는 숲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된 스코필드는 여성과 아기에게 음식이 없음을 알고 그가 지니고 있던 식량 모두와 우유를 남긴다. 이제 곧 날이 밝아 총공격 명령이 떨어질 시각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긴박한 상황.
적들이 사방에 포진해 있을 것이지만 스코필드는 장군의 명령과 블레이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명탄과 총알을 헤치고 전진해야만 한다.
결국 적군들의 일제사격을 받게 되자 이를 피해 강물로 뛰어들어 생사를 수 차례 오간 후에 프랑스 여성이 알려준대로 강을 따라 가다가 강둑으로 헤엄쳐 나가 숲에 이른다.
죽을 고비를 너무 많이 넘긴데다 총도 군장도 모두 잃어버리고 기진맥진한 스코필드는 숲속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홀린 듯 끌려간다. 소리를 따라가니 숲속에 빼곡히 들어찬 사병들 가운데서 한 사내가 찬송가를 부르고 나머지 병사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데번셔연대였다. 그러나 이들은 후발대이고 선발대는 이미 출격한 후였으며 블레이크의 형은 선발대였다.
일각을 다투는 형편에 참호 속을 누비다가는 매켄지 중령의 공격명령을 도저히 중지시키지 못할 것임을 즉각 깨달은 스코필드는 참호 밖으로 뛰쳐나와, 적진을 향해 순차적으로 돌격하는 병사들과 직각의 방향으로 내달려 사령부로 향한다.
드디어 공격명령 30초 전에 매켄지 중령에게 장군의 친서를 전달하는 스코필드. 간신히 공격은 중지시켰지만 이제는 블레이크와의 약속을 지킬 차례.
조셉 블레이크를 찾아 이리저리 뛰던 그는 톰이 알려준대로 그와 닮은 블레이크 중위를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와의 두 가지 약속도 지키게 된다.
<1917>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쟁영화이다. 92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촬영상, 음향믹싱상, 시각효과상을 거머쥐었던 화제작이어서 꼭 보려고 아껴두었었다. 그리고 소문대로 롱테이크는 볼만했다.
우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여서 그런지 내러티브에 힘이 있다. 전장에 있어 보지 못했거나 치열한 전투를 여러 차례 겪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하지 못할 대사가 곳곳에서 튀어나와 관객의 마음을 빼앗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차대전이라는 큰 전쟁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 하나 없이 이 영화를 대작으로 느껴지게 한 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장면으로 여겨지게 하는 롱테이크 촬영기술에 돌려야 할 것이다. 영화 공부를 하며 수 천 편의 작품들을 보았지만 이렇게 촬영한 영화는 처음 보았다. 카메라도 등장인물들도-전방과 후방 모두에서-움직이게 동선을 배치하여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긴박감을 유지한다. 콘티를 도대체 어떻게 짰을까.
스코필드가 정신을 잃는 장면에서 암전이 있던 것 빼고는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테이크로 진행되는데 편집은 또 어떻게 한 것일까.
요즘 영화들이 리얼리티를 기치로 내세우며 특별한 촬영기법이나 편집방법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마치 다큐멘터리나 TV드라마처럼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못내 불만이었는데 정말 오랫만에 영화 같은 영화를 볼 수 있어 반가웠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철조망에 걸려 있거나 땅에 파묻히거나 물 위에 떠 있는 시체들의 모습은 폭력적인 교전 장면을 대신하여 전쟁의 잔인함과 허망함을 충분히 전달함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분노하게 만든다.
백미는 스코필드가 매켄지 중령을 만나기 위해, 돌격하는 전우들과 직각의 방향으로 뛰는 광경이다. 그가 카메라 앞으로 전력을 다해 계속 달려 오는데도 카메라와의 간격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목적지에 쉽게 닿지 못하는 답답함과 저러다 끝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감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하는 장면. 이는 또 국가와 국가 사이의 치열한 전쟁 가운데 한 개인이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겨야만 하는 또 하나의 전쟁이 동시에 이루어 지고 있는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한 장면이기도 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슴에 사랑하는 이들의 사진 두어 장을 품은 채 생명을 걸고 전투에 나서는 젊은 군인들과, 그들의 아름답고 건강한 생명을 제물로 삼아야만 얻어지는 국가의 위신과 이익의 대비가 관객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어찌 생각하면 롱테이크의 촬영기법이 관객의 시선을 제한하는 듯하여 다소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나무에서 시작하여 나무로 끝나는 마무리가 진부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영화 전체를 마치 편집하지 않은 한 장면처럼 만들어 두 시간 가량을 신속하게 지나게 한 샘 멘데스 감독의 실험적인 연출에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인류 역사를 통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걸었던 무수한 젊은이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지켜보며 만약 정치인들이 군인들만큼이나 사리사욕 없이 그들의 일을 헌신적으로 수행해 왔다면 우리나라는, 세상은 좀더 좋아졌을 것이라는 하릴없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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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푸팬더 4 | 익숙한 맛으로 생명 연장하는 시리즈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면의 평화도 찾고, 숱한 빌런을 물리치며 용의 전사다운 위업을 쌓아 올린 쿵푸팬더 '포'(잭 블랙). 마스터 '시푸'(더스틴 호프먼)는 그에게 새 과제를 낸다. 이제는 평화의 계곡을 지키는 보호자가 아니라, 계곡을 이끌 영적 지도자로 거듭나라는 것. 그 일환으로 포는 후계자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태가 좋은 포는 스승의 과제가 마뜩잖다.
때마침 과거의 숙적 '타이렁'(이언 맥셰인)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리고, 포는 시푸와 수련하는 대신 새 모험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는 쿵푸 마스터의 유물을 훔치려는 도둑 여우 '젠'(아콰피나)을 붙잡고, 그녀에게서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빌런 '카멜레온'(비올라 데이비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다. 그렇게 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용의 전사로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여정을 떠난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할리우드 영화에 가해지는 여러 비판 중 하나가 속편 제작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등장하면, 돈이 안 된다고 판단할 때까지 속편을 계속해서 찍는 경우가 많다. 물론 속편 제작 자체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죽은 자식 불알을 계속 만지니 문제다. 시리즈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1편에서 참신했던 캐릭터나 스토리가 모두 무너지고 오로지 돈 만을 쫓는 작품이 양산되기 때문.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시작은 화려했다. 1편 <블랙펄의 저주>는 <컷스트로 아일랜드> 이후 명맥이 끊긴 할리우드 해적 영화를 부활시켰다. 조니 뎁이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였을 정도. 하지만 삼부작으로 끝난 이야기를 무리하게 늘리면서 프랜차이즈는 무너졌다. 5편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주인공 잭 스패로우의 캐릭터성도, 전편과의 연결고리도 지키지 못하면서 팬들의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쿵푸팬더>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캐리비안의 해적>을 향한 눈초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포의 이야기는 지난 삼부작으로 이미 깔끔하게 끝났기 때문. 제작사인 드림웍스의 전례 때문에 우려는 더 컸다. <슈렉> 시리즈를 4편까지 늘리다가 시리즈의 명성에 금이 갔으니까. 다행히도 <쿵푸팬더 4>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시리즈를 이어져야 할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면서 생명 연장에 성공했다.
포의 새 과제
<쿵푸팬더> 트릴로지는 포의 성장기로서 흠잡을 데 없었다. 1편은 포의 육체적 각성을 보여줬다. 쿵푸 마스터를 꿈꾸지만 정작 주방에서 국수를 만들어야 했던 포. 그는 본인도 모르던 쿵푸 마스터로서의 자질을 발견하고, 평화의 계곡을 지켜내는 '용의 전사'로 거듭났다.
2편에서 포는 자기 과거를 극복했다. 아버지는 거위인데 자기는 판다인 이유를 궁금해했던 포. 그는 출생의 비밀에 관한 환상을 본 후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포는 자기처럼 과거의 상처에 집착하는 빌런 '셴'을 만나고, 그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단단한 용의 전사가 됐다.
3편에서 포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다. 용의 전사이자 쿵푸 마스터로서는 과거 자기가 동경했던 '무적의 5인방'까지 가르치는 진정한 스승으로 거듭난다. 그와 동시에 팬더로서의 정체성도 확립한다. 마침내 친부를 만나고, 팬더 마을에서 다른 팬더들을 만나며 마음속 응어리를 완전히 해소한다.
<쿵푸팬더 4>는 포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이제 그는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용의 전사라는 타이틀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세대가 성장할 토양을 마련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포는 이제 직접 빌런을 무찌르는 대신, 그의 후계자가 빌런을 대적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다져주는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마치 우그웨이가 시푸와 포에게 그러한 존재였듯이.
진정으로 변화하는 법
물론 포는 변화를 거부한다. 그는 현재에 안주하려 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새로운 빌런 카멜레온이 나타나 포를 공격한다. 그녀는 누구로든 변신하는 능력을 살려 포의 숙적이었던 타이렁을 가장해 그를 혼란에 빠트린다. 그 틈을 노려 우그웨이가 포에게 남긴 영혼의 지팡이를 탈취하려 든다. 지팡이가 있어야만 영혼계로부터 모든 쿵푸 마스터를 소환하고, 그들의 무력을 탈취할 수 있으니까.
카멜레온의 능력은 의도적인 설정처럼 보인다. 이 능력 덕분에 포와 카멜레온의 대결을 능력을 갖고도 변하지 못하는 빌런과 능력 없이도 진정으로 변할 줄 아는 영웅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포는 카멜레온을 쉽사리 이기지 못한다. 모든 쿵푸 마스터의 능력을 지닌 상대에게 숱하게 패한다. 하지만 파훼법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온다. 포가 후계자 젠에게 기회를 양보하며 스승으로 거듭날 때, 마침내 카멜레온은 패한다.
<쿵푸팬더 4>는 이 대결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듯하다. 직접 부딪혀 봐야만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그때서야 비로소 낯설고 어색한 자리와 새로운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단순히 외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것은 진정한 변화도, 성장도 아니라고. 카멜레온이 남의 능력을 탐내듯이 재물과 권력, 지위를 탐내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캐릭터에 조금만 신경 썼다면
다만 포의 새로운 성장담은 기존 서사에 비해 얕고 급하다. 포를 도와줘야 할 새 캐릭터가 기존 주인공과 빌런을 대체할 만큼의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빌런인 카멜레온은 효과적인 도구다. 포가 왜 한 번 더 성장하고 변해야 하는지를 적당히 전달하는 장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자체로 매력적이지는 않다. 돈을 강탈하고, 세상을 정복하려는 평범한 악당에 불과하다. 만약 쿵푸 마스터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과거 개인사를 강조했다면 포의 아치 에너미로서 기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서사를 대사 몇 마디로 축약해 버린 나머지 가능성을 살리지는 못했다. 도심 추격전이나 술집 액션처럼 다소 길고 늘어지는 대목을 줄이고, 카멜레온에게 분량을 조금 더 나눠도 좋지 않았을까 싶은 이유다.
그 결과 카멜레온은 시리즈의 완성도와 매력을 망치는 주범에 가깝다. 타이렁, 셴, 카이 등 지난 악역을 모두 소환하고도 정작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 액션을 보여주는 건 타이렁뿐이다. 다른 빌런은 한 두 컷 스쳐 지나가는 데서 그친다. 심지어 타이렁조차도 개그 캐릭터로 허비된다. 그 결과 용의 전사가 되겠다는 야심, 스승을 뺏기지 않으려는 결핍이 더해져 묘한 매력을 뽐냈던 시리즈의 개국공신은 허망하게 퇴장한다.
포의 후계자가 될 젠 역시 불만족스럽다. 물론 기존 시리즈와 결이 다른 재미를 주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포와 버디 영화를 찍는 대목은 익숙한 캐릭터만 반복될 수 있는 상황에서 적절히 변주를 준다. 때마침 젠이 여우이다 보니 마치 <주토피아> 속 닉과 주디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첫 등장부터 젠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다 보니 나름 힘을 준 반전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맛집이 괜히 맛집인가
더 나아가서 전반적인 구조와 구성도 좋게 말해 익숙하고, 나쁘게 말하면 뻔하다. <쿵푸팬더 4>는 시리즈의 기본 패턴을 반복한다. 포의 활약을 짧게 보여준다. 우그웨이나 시푸가 던져주는 새로운 이슈가 등장한다. 뒤이어 빌런이 등장하자 포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의 첫 도전은 실패한다. 그러나 이내 각성한다. 결국에는 빌런을 격퇴하고 스승이 준 과제를 끝내면서 성숙해진다.
물론 장점이나 특별한 점은 아니어도 단점이라 말하기 애매한 것은 사실이다. 애니메이션 작품에는 종종 다른 잣대가 필요하기도 하고, 애초에 이 맛에 <쿵푸팬더> 시리즈를 찾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 다만 4편까지 나온 상황에서 '식상하다' 내지는 '안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익숙한 맛에 풍미를 더하는 여러 조미료에 힘입어 영화는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내달린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머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다른 제작사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꼽자면 성인 취향의 말장난 대사를 많이 쏟아낸다는 점.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에 더해 포가 등장하는 모든 컷마다 개그씬을 연출하려고 애쓴다. 이때 유머 타율이 꽤 높다. 특히 포와 시푸의 투닥거림은 이번에도 미소를 자아낸다.
그렇게 <쿵푸팬더 4>는 비록 삐걱거릴지언정, 모두가 기대한 맛을 선사하며 오랜만의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6편까지 기획 중이라는 소식에 기대감도 조심스럽게 키워볼 만하다. '무적의 5인방'의 복귀가 화룡점정을 찍는 크레디트가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욱 그렇다.
Acceptable 무난함
살아남는 국밥집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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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2022년 1월 1주 신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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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큰 울림을 선사한 영화” 온 세상이 [다음 소희]를 주목해? 폭발적 극찬! 리뷰 30초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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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계는 그녀로부터 세 사람의 긴장감 넘치는 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