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7-24 13:49:57
📮7월 4주 차 최신 영화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안도 사쿠라 한국 영화 출연, <어쩔수가없다> 베니스영화제 초청
📮7월 4주 차 최신 영화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어느 가족>과 <괴물>의 안도 사쿠라가
정주리 감독 신작 <도라>로 한국영화에 첫 출연합니다!
바닷가 마을 배경으로 여성 간 연대를 그리는 작품으로
영화는 신체적, 정신적 아픔을 갖고 있는 한 소녀가
또 다른 여성을 만나면서 치유받는 이야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오는 8월, 남해에서 크랭크인 한다고 하네요.
박찬욱 감독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8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습니다!
한국 영화가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이후 13년 만이며
박찬욱 감독은 2005년 <친절한 금자씨>로 젊은 사자상 등
세 개의 비공식 부문으로 상을 받은 이후 20년 만에
베니스를 다시 찾게 되는 셈인데요! 일단 빨리 보고싶네요
예고편 보니 감도 안잡혀서…!
마지막으로 마블 소식인데요
케빈 파이기는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 이후
마블은 X-멘과 토니 스타크 등 주요 캐릭터를 새로운 배우로 교체하고,
이를 “리부트”가 아닌 하나의 “리셋”으로 진행할 계획”
이라고 밝혔습니다. 원년 멤버들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에서가
정말 마지막이겠네요 🥲
❶ 루카 구아다니노 신작 <Artificial> ‘일론 머스크’역은 누구?
❷ 케빈 파이기 <시크릿 워즈>로 MCU 리셋…“X-멘·토니 스타크 바뀐다”
❸ 다코타x엘르 패닝 자매 <더 나이팅게일> 동반 출연
❹ <어느 가족> 안도 사쿠라,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 신작 출연
❺ 손예진x조유리 주연…넷플릭스 시리즈 <버라이어티> 제작 확정
❻ 박찬욱 감독 신작 <어쩔수가없다> 8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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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viction of Everyone, 영화 <브이 포 벤데타>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해 주던 친구가 있었다. 영화 초반에 나오던 독백을 적어서 편지에 적어주면서. 추천받으면 제때 보지 않는 이상한 습관이라도 있었던 건지, 한참이 지나고 이제서야 봤다. 이비의 목소리로 Remember, Remember the 5th of November로 시작되는 대사를 들으면서 그 친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라고 했을까 궁금해졌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그 친구를 마음 한 켠에 두고 시작되었다.
유쾌한 사이다 영화다. 이상적인 전개지만 배경은 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미래의 국가이지만 익숙하다. 역사는 패션보다는 좀 더 큰 주기로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리라. 세계대전과 테러, 질병을 겪으면서 등장한 전체주의 국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질병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2차 세계대전은 강렬하며, 생체실험은 저 멀리 일제강점기까지 떠오르게 한다. 히틀러를 떠올리게 만든 것 같은 미래엔 서틀러가 있고 언론을 포함해 수많은 통제가 있다. 늦은 밤엔 통금이 있고, 하나가 되기 위해 다양성은 배척된다. 서틀러와 크리디는 일부러 질병을 퍼뜨려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넣었다. 생화학무기를 만들겠다던 생체실험은 본래 목적 대신 유일무이한 질병을 만들고 치료제를 갖고 있다가 적시에 풀고 이익을 얻는데 쓰였다. 얼마나 짜릿했을까. 온 나라를 내 손에 넣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기분이란. 또 얼마나 불안했을까. 조금씩 틈이 생기는 게 보일 때마다. 그래서 자꾸 통제하게 되었겠지.
사람들은 서틀러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불만은 있지만 그들에게 서틀러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차악이다. 다시 고통받고 두려워하며 살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도 그냥 듣고 있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면서 그런대로 산다. 때 되면 밥을 먹고, 술도 마시고 TV도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허전하다면 그건 사람들의 어딘가 결핍된 표정 때문일 것이다. 미술과 음악 등 예술은 물론 음식까지 제한했다니 서틀러는 정말 고약하기 짝이 없다. 예술은 자유롭게 자신을 비판하는 게 싫어서 그랬던 모양이고, 본인 입에만 넣으라고 있는 버터가 아닌데.
그때 나타난 게 브이다. 이비를 포함해 사람들이 가면을 쓴 그를 마음에 담게 된 건 그는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모두가 알고 있지만 대놓고 이 나라는 뭔가가 제대로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권력자들이 가장 큰 잘못을 했지만, 사실은 거울 속에 비치는 당신들이 가만히 있었던 걸 되돌아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 놀라워서 귀 기울인 건 아닐까. 당장 나와 함께 하자고 하지 않고 1년 후에 함께 하자는 그 말에 사람들은 미친 사람이라고 치부하지 않는다.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 궤변론자나 과대 망상가라고 평가받지 않게 되는 건 정말 세상이 문제가 있고, 사람들도 알고 있지만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을 때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억압적으로 느껴질수록 브이에게 설득력이 생긴다. 누군가에겐 그럴듯하고, 누군가에겐 헛소리가 되어버릴 땐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이상하지, 하나가 되자고 할수록 하나같이 절망감을 느끼게 만드는 게.
브이의 '11.5 선언'은 묘하게 교훈적이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밉상일 때도 있는데 이상하게 수긍이 가는 건 그는 사람들과 다르게 도전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그 방송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판소를 시원하게 폭파하면서 1812 서곡을 들려주었고, 언론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정규 방송을 차단하고 비상 방송을 장악해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였다. 방송국에서는 황급히 그를 검거한 것처럼 내보냈지만 이미 사람들은 믿지 않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을 흔들고 내년 11월 5일을 기대하게 만든 것이다. 1년 후 11월 5일이 다 되어선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렸다. 모든 집에 자신과 똑같은 가면과 망토를 선물하면서 사람들은 거리에 나올 준비가 되었다. 그 가면을 쓰고 망토를 걸치고 한마음으로 거리를 활보하며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정이 지났을 때, 400여 년 전 가이 포크스의 생각처럼 시원하게 국회의사당을 날려버렸다.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해 준 건물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잃었을 때 쓸모를 다 한다. 국가나 정부에도 이는 똑같이 적용된다.
이쯤 되면 다가오는 느낌을 알다마다. 뭔가 술술 풀리는 게 좋으면서도 불편하다. 음악과 함께 펑펑 터지는 건물에 하늘 위를 수놓는 폭죽은 속이 다 시원하다. 그러면서도 그 광경이 잠잠해지면 이비가 처음 브이를 만났을 때 경계했던 생각이 그대로 소환된다. 이상은 어디에나, 누구의 마음속에나 있었지만 왜 우리의 현실은 늘 그러지 못했을까? 한바탕씩 뒤집어지면 이제는 모든 게 다 잘 될 것 같다가도 다시 보면 제자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다시 사람들은 무기력해질 것이고 누군가는 권력이나 이익을 위해 기상천외한 일을 벌일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신념(이데아, Idea)에 답이 있다고 하는 건 안도해야 할 부분인지 모르겠다. 개인의 마음속 신념은 절대적일지 몰라도, 사람들 사이에 신념은 너무나 다른 의미다. 각자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거나 빼앗기까지 하며, 그럼에도 그 신념은 끈질기게 살아있다. 인간이 때론 신념의 숙주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내가 잘 사는 것과 우리가 잘 사는 방향은 다를 때가 많다. 국가나 정부가 있는 한 그 부분이 충돌하는 문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나 정부 없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혼란과 변화 속에서 안정을 찾고 싶어 할 테니까. 둘 다 우리를 공포와 무기력에 잠식하게 만들기는 충분하다.
또 다른 불안감의 원인은 브이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후에 브이처럼 이렇게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해 줄 존재가 있을까? 브이는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불렀지만 영화 속의 그는 적잖이 멋진 영웅이었다. 위트가 넘친다. 문학은 셰익스피어, 영화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좋아하며, 총보다 칼을 선호하고, 재즈를 즐겨 듣고, 자신만의 갤러리를 갖췄다. 심지어 앞치마를 곱게 두르곤 아침엔 몰래 구한 버터에 계란 넣은 토스트도 만들어주지 않나. 이비에겐 첫 만남부터 핑거맨에게 붙잡혀 있는 걸 구해줬을뿐더러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킬 만큼의 온갖 V를 가져와 언어유희를 펼쳤다.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전신이 불타 있는 걸 알고도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면 왜일까? 흔들리지 않는 신념 혹은 그 신념을 내뱉는 깊은 목소리의 덕일까? 부정하지 말자. 브이는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만큼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다만 팬텀이 크리스틴에게 한 것처럼 이비에게 소유욕을 보이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물론 브이 역시 팬텀 못지않게 몹쓸 구석도 많다. 애초에 이비를 이 모든 사단에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처음 만났는데 재판소를 터뜨리는 그 자리에 데려가서 공범으로 만들지 않았나. 이비가 일하고 있는 BTN 방송국에서 때마침 '11.5 선언'을 하면서 건물을 장악했고, 이비가 그를 구해주자 예상에 없던 전개인지 고민을 하다가 자신의 집에 데려와 안전하게 내년 11월 5일까지 나갈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 이비의 신분증을 제 것처럼 훔쳐서 자신의 복수에 이용했고 두려움을 없애주겠다는 이유로 그녀를 고문하고 별로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기에 고문을 해줬어. 머리를 밀고, 물에 집어넣었지. 왜 그렇게 오래 고문했냐고? 네가 굴복하지 않았잖아. 용서를 바라진 않지만 넌 덕분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되었다면서. 가만 보면 상당히 뻔뻔하다.
영화에서 조금 아쉬운 건 고문 장면 이후에 이비가 브이를 쉽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둘 사이에 애틋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서 좀 더 시간을 할애하며 전달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제삼자가 보기엔 방금 전까지 자신을 고문했던 브이를 이비가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에라도 걸린 것처럼 사랑에 빠진 느낌이었다. 물론 무슨 의미인지는 안다. 초반부터 이비는 모두가 11월 5일을 기억하지만, 자신은 한 남자, 브이를 기억하겠다고 할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한다. 그날이 다가올수록 사랑도 깊어졌다. 심지어 두려운 게 없다던 브이는 막판에 이비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들은 통했다.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고 신념이 확고한, 단단한 존재가 되었다. 11월 5일 전날 밤 그들은 마지막으로 Cry me a river을 듣고 춤을 추었다. 사랑을 느낄 수 없으리라고 했던 브이에게 이비는 그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줬다. 그렇다고 브이가 이비를 고문했다는 사실이 사라지진 않는다. 둘이 애초에 결사단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넘치던 증오가 갑자기 진정된다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사랑을 전하려 했던 발레리의 편지가 아니었으면 이비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장담할 수도 없다. 둘이 애틋해지는 걸 보고 함께 100퍼센트 애틋해지진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브이가 이비를 무척 아꼈기 때문에 고문까지 했겠다 싶다. 브이는 왜 그녀에게 빠져들었을까. 그가 우연을 믿지 않아서는 아닐까. 브이로 현란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이 이비(Evey)라는 이름에 v가 들어가서? 혹은 E-V라고 생각하니 너무 인연처럼 느껴져서? 마침 재판소를 터뜨리러 가는 저녁에 Eve라는 뜻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혹은 그녀에게 고마워서는 아닐까? 마침 방송국에서 위기의 순간 이비가 자신을 구해줘서?
혹은 얄팍하게도 그의 곁을 먼저 떠나서는 아닐까. 브이가 복수를 위해 그녀를 미끼로 썼을 때,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도망쳐 일하던 방송국의 PD 고든에게 찾아갔다. 고든은 묘하게 브이와 닮았다. 재즈를 틀은 채로 계란 넣은 토스트를 해주고, 집에 자신만의 위험한 갤러리가 있다. 그가 자신이 브이라고 장난칠 때, 왠지 그게 장난이 아닌 것도 같았다. 좀 더 평범하고 힘이 세지 않다고 해서 그가 브이와 다른 것은 아니다. 고든은 간판 프로그램의 PD고 무슨 바람인지 갑자기 말도 안 되게 풍자적인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브이에게 고든과 그의 결정적 차이점은 이비가 고든의 집에서는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단 점은 아닌가? 고든이 프로그램 내용으로 붙잡혀 가고 나서 도망치던 이비를 붙잡아 고문을 시작한 걸 보면, 지극히 공적인 이유만으로 고문을 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궁금했겠지. 그에게서 도망치고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지 않을지 확인하고 싶었을 갓이다.
Ideas are bulletproof.(My turn!)
고문 후에 이비가 브이를 떠난 걸 보면 브이가 준 교훈과 별개로 이비가 다행히(?) 완전히 그를 용서한 건 아닌 듯싶다. 이비와 브이는 복수라는 지점에서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복수를 하는데 피를 흘려야 하는가. 이비는 자신의 온 가족을 이 나라에 빼앗기고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영화를 보고도 복수에 눈이 멀어 외면당한 메르세데스가 안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만약 브이가 복수할 대상이 마침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그때도 우리는 지금처럼 브이를 공감할 수 있었을까? 그가 복수할 대상들이 이제는 힘을 잃은 약자가 되었다면 애초에 그는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도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죽였을 것이다. 그들의 힘을 빼앗고 모든 것을 정상화하는 방법이 브이에겐 죽음뿐이었다.
한 가지 더 아쉬웠던 건, 이비가 그저 브이를 기억하는 어느 특별한 누군가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만약 그 고문이 이비가 자신을 대신할 또 다른 브이가 될 수 있는 걸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해도 설득력은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이비에게 집과 심지어 10년을 넘게 노선을 깔고 만들어놓은 지하철 폭탄을 넘기는 걸 보면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브이는 복수가 삶의 목표였지만, 이비는 복수가 목표인 사람이 아니다. 그녀에겐 이름처럼 삶이 있고, 그 삶은 국회의사당이 폭파된 이후에도 이어진다. 원작에선 실제로 이비가, 이후에는 도미닉이 브이를 이어간다고 하는데 그 부분이 살아났어도 좋았을 것이다.
20년을 걸었던 도미노
영화는 브이의 원맨쇼이자 이비와 브이의 콤비이자, 수많은 사람들의 팀워크였다. 그래서 더더욱 반드시 브이라는 '한 남자'를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브이였고, 브이이며, 브이가 될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이제서야 그 영화를 보게 된 게 현실과 무관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우리의 과거는 지구 상 어딘가에서 되풀이된다. 그 과거는 누군가의 현재이자 미래다. 조금 가깝고 먼 나라들에서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억압에 맞서 저항하려 하지만 영화처럼 속 시원한 모습은 보기 힘들다. 브이는 피의 복수에 성공했지만 현실엔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흐른다. 마음이 아파서 영화를 통해서라도 대리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면 역시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초인적인 힘을 가졌던 영화 속 브이를 찾고 싶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건 브이가 아닌, 이비, 발레리, 핀치 경감, 고든 PD, 그리고 안경잡이 소녀다. 이비가 브이가 방송국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돕지 않았다면, 발레리가 고문당하면서도 모두를 사랑한다는 편지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당에 27년이나 충성해 온 핀치 경감이 이 나라가 권력을 위해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걸 알고 이비가 레버를 당길 때 말리지 않았다면, 고든 PD가 사람들에게 코미디를 가장해 서틀러를 풍자하지 않았다면, 안경잡이 소녀가 브이의 상징을 스프레이로 그리지 않았다면, 술집과 식당, 집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망토를 걸치고 한 곳에 모여있지 않았다면,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1812 서곡이 그렇게 통쾌하게 들릴 리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끝까지 브이와 이비를 뒤쫓다가 걸음을 멈췄던, 모든 걸 알고 밤잠을 설쳤던 핀치 경감이 기억에 가장 남는다. 그의 촉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고, 언제 총을 내려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V가 들어가는 수많은 단어가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남는 건 모두(everyone), 그리고 신념 혹은 유죄(conviction)이란 단어다. 신념이자 유죄라는 뜻을 가진 게 이해가 되기도 한다. 반드시 처벌을 받는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더라도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유죄다. 신념 없이 살아서 유죄가 되기도 하고, 신념이 있더라도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유죄가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특정한 정치체제나 사상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목격한 건 통제와 억압 사이에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었다. 어떤 해결 방법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영화도 무조건적인 답을 주진 않는다. 브이 역시 완전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느 누구도 완전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가 남긴 말들 중 스스로에 마음에 남았던 말을 기억하면 된다. 그리고 언젠가 뭔가가 제대로 잘못되었을 때, 그 말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으면 된다. Voil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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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빈의 원맨쇼가 빛났던 좀비물
현빈과 장동건의 조합이라는 사실만으로 보고 싶었던 영화 <창궐>. 그 당시까지만 해도 넷플릭스에 <킹덤> 이 나오기 전이었고, 사극과 좀비물의 결합이 굉장히 신선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조합으로 나온 영화 <창궐>에 대한 기대가 상당했었다. 그런 기대에 영화 <창궐>은 상당히 선방을 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 <창궐> 시놉시스
야귀떼가 온 세상을 집어삼켰다!
밤에만 활동하는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야귀(夜鬼)‘가 창궐한 세상, 위기의 조선으로 돌아온 왕자 이청은 도처에 창궐한 야귀떼에 맞서 싸우는 최고의 무관 박종사관 일행을 만나게 되고, 야귀떼를 소탕하는 그들과 의도치 않게 함께하게 된다.
한편,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절대악 김자준은 이 세상을 뒤엎기 위한 마지막 계획을 감행한다. 조선필생 VS 조선필망, 세상을 구하려는 자와 멸망시키려는 자!.오늘 밤, 세상에 없던 혈투가 시작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창궐>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박씨전이 연상된 영화 <창궐>
영화 <창궐>을 보는 내내 박씨전의 창작의도가 생각났다. 박씨전은 병자호란 때 당한 치욕을 씻기 위해 소설에서 나마 그 치욕을 씻어 용골대를 처형하는 그런 내용의 소설이다. 영화 <창궐> 역시 비슷한 노선이었다. 그냥 역사대로 인조가 노환으로 죽고, 돌아온 세자가 효종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청나라에 굴복한 인조를 야귀(좀비)에 먹히게 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 속에서 벌을 주는 것인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무서웠던 좀비들
영화 <부산행>을 볼 때도 좀비들의 떼거지 등장에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아마 영화 <부산행>은 홍보 초기부터 한국형 좀비라는 타이틀을 강하게 내걸고 와서 이미 예상을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창궐>은 그 때까지만 해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을 보지 않은 상태였고, 사극이라는 것에 초첨이 맞춰져 있어서 이렇게 좀비가 사실적이라고 예상하지도 못했고, 한복과 좀비의 조합이 이렇게나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라 가늠조차 안돼서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그만큼 분장팀의 사실적인 묘사와 배우들의 연기력의 조합이 좋았던 것 같다.
현빈의 원맨쇼
영화 <창궐>에서 가장 빛이 났던 것은 현빈의 액션신이었다. 청나라에서 자라며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이청의 모습을 현빈은 굉장히 재치있게 표현해냈다. 야귀떼들과 1대 100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보는 내가 진이 다 빠질 정도였고, 재치 넘치고 유머러스하던 이청이 백성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왕으로 거듭나는 변화를 굉장히 잘 표현해서 현빈이라는 배우가 이렇게나 연기를 잘하던 배우였나 싶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창궐>은 현빈의 원맨쇼 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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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다큐>,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기록해준다는 것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무언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영화를 보고 난 후 '집에 가서 꼭 떡볶이를 먹어야겠다', '이 영화를 보고 피로해졌으니 집에 가서 푹 쉬어야겠다' 등의 생각이 드는 것 말이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짐한 것을 꼭 실천하는 편인데,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내가 다짐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하자'였다.
<오늘 영화>의 세 번째 에피소드인 <연애다큐>의 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연인 사이인 교환과 하나는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사전제작지원금을 받기 위해 둘의 셀프 연애 다큐멘터리(프로젝트명: 러브(LOVE))를 촬영한다. 이 다큐는 캠코더를 들고 교환과 하나가 계속 서로를 찍어줌으로써 완성한 작품이다.
이들은 1차에 합격하고, 2차 피칭심사까지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하나의 '변덕'과 예술성 취향의 차이 등을 이유로 둘은 헤어지게 된다.
그러던 중 교환은 둘의 작품이 심사에서 합격하여 사전 제작지원금 500만원이 지급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하나에게 이 소식을 알리며 연애다큐를 다시 찍자고 한다.
헤어진 뒤로 다시 교환과 만날 생각이 없었던 하나는 처음에는 거절한다. 하지만 전시회를 구경하다 300만원짜리 도자기를 깨트려버린 하나는 지원금 500만원 중에서 300만원을 가져간다는 조건을 걸고 결국 교환과 다시 연애다큐를 찍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교환의 가족잔치에도 참여한 하나는 갑자기 다큐를 촬영하러 나오지 않았고, 며칠 후 교환에게 깨진 도자기를 택배로 보낸다.
교환은 깨져버린 도자기를 온 집안에 본드냄새를 풍기며 억지로 다시 붙인다.
그리고 본드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도자기를 들고 하나를 찾아간다.
-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자, 영화의 시작과 끝에 내레이션처럼 나오는 대사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그 순간의 상대방의 모습을 영구적으로 남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도 함께 기억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사진이나 영상은 화면 위에 보여지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 기록을 남긴 사람의 마음도 함께 담아져서 나오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를' 찍느냐- 만큼 중요한 게 '누가' 찍느냐-라고 생각한다.
교환과 하나가 열심히 연애다큐를 찍고 있는 장면들이다.
진짜 내가 한 커플의 연애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 나는 갑자기 아빠에게 교환이를 소개시켜줄 마음이 사라졌다.
그냥 변덕이었다.
두 시간 동안 오토바이를 탔는데 아직 여의도롤 못 벗어나서도 아니고, 지식인에서 봤다는 그 저질스러운 오줌소태 퇴치법이 소용없어서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변덕이었다.
'변덕'.
때로는 그 단순하다고 느껴지는 변덕 때문에 많은 모습이 바뀌곤 한다.
변덕 때문에 열심히 준비하거나 쌓아왔던 어떤 일을 단숨에 그르치기도 한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도 아니고,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아니다.
변덕 때문인데 뭐 별 수 있나.
- 교환이는 남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까에 대해서 많이 신경쓰는 타입이다.
EIDF 다큐멘터리 제작지원작 공모를 알리는 뉴스에 교환이 자꾸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장면이다. 너무 재미있다.
이런 유머포인트가 정말 너무 진짜 완전 좋다..
보다보니까 약간 무한도전 <TV전쟁> 에피소드에서 자꾸 서성거리는 정준하 같기도 하다.
화면에 자꾸 나오는..
교환: 셀프 연애다큐멘터리 '연애다큐' 가제를 기획한 구교환, 이하나 커플입니다.
이하나 배우와 저는 실제 연인입니다.
이하나 배우는 저희 집에서 같이 삽니다. 아니, 거의 같이 잡니다.
근데 저는 부모님이랑 같이 삽니다.
하나: 그렇다고 저희가 결혼을 약속한 사이는 아니구요.
구교환 어머님, 구교환 감독님의 어머니께서는 저한테 매우 잘해주십니다.
맛있는 걸 많이 주십니다. 참외는 어디서 사오시는지 껍질채 먹어도 참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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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그래서 주제가 뭔가요?
교환: 반지의 제왕에도 주제가 있죠? 뭐, 좆밥 호빗이 큰일을 해낸다든지?
마찬가지로 저희 다큐에도 주제가 있는데요, 그 호빗이··· 아라곤과···
2차 피칭심사를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정말 영상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글로만 전달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이 장면에 가득하다.
주제가 뭐냐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좆밥 호빗이 큰일을 해내는' 반지의 제왕 이야기를 꺼내는 교환의 모습이 참 재미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내 웃음포인트이다. 너무 재밌어.. 너무 웃겨
그리고 황급히 하나가 교환의 마이크를 뺏는다.
심사를 마치고 둘은 치킨을 시켜 먹는다.
하나는 양념을 좋아하는데 교환은 후라이드만 주문했다.
그럼 반반을 시키면 되는 거 아니냐는 하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교환은 왜 양념을 고집하냐면서 또 카메라를 꺼내든다.
술을 마시다 전시회에 가자는 하나의 전화를 받고 교환은
- 내가 어쩌다 문화예술오타쿠를 만나가지고···
라는 말을 남긴다.
하나는 먼저 와서 전시회의 커플 사진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숙취로 힘들어하는 교환은 뒤늦게 전시회장에 도착했다. 하나는 이런 교환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먼저 전시회장 밖으로 향한다.
사람이 꽉 차 있는 엘리베이터를 본 교환은 얼른 엘리베이터에 탔고, 하나가 가만히 서 있자 하나에게 밑에서 만나자는 수신호를 보낸다.
하나는 이 모습을 가만히 서서 보다가 큰 소리로 웃더니 교환을 기다리지 않고 그냥 나가버린다.
하나와 헤어진 교환은 노래방에서 변진섭의 '로라'를 열창한다.
실제로 구교환 배우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부른 노래도 로라라고 한다.
완전.. 진짜 다큐다..
영화 <세마리>에서 윤종신의 '부디'를 부르는 교환 배우를 보고도 한 생각이지만 담백하게 노래를 참 잘 부르는 것 같다.
그리고 며칠 후, 교환은 2차 피칭심사도 합격하여 최종적으로 사전제작지원금 500만원을 받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리고 하나에게 연애다큐를 다시 찍자고 한다.
처음에 이를 거절했던 하나는 전시회장에서 도자기를 깨트리게 되었고, 결국 300만원을 본인이 가져간다는 조건 하에 다시 연애다큐를 찍기로 한다.
<연애다큐>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교환과 하나는 어느 날, 교환의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사진관에서 함께 일하게 된다.
손님 한 분의 여권사진을 찍고 사진을 보정하면서 교환이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넨다.
- 하나야. 난 이렇게 가게에 손님이 딱 들어오잖아? 그럼 이 사람이 증명사진 찍으러 온 건지, 여권사진 찍으러 온 건지 딱 안다?
내 이 여자도 여권사진인줄 딱 알았어.
눈이 너무 슬프잖아. 떠날 사람은 준비하는 게 보여.
'떠날 사람은 준비하는 게 보인다.'
이미 그 눈에서 떠나기로 결심한 슬프고도 단단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 말을 하는 교환의 눈빛이 조금은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교환의 가족잔치에도 초대된 하나는 그곳에서 노래를 불러보라는 가족의 성화에 이선희의 '인연'을 부른다.
-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난 여배우니까.
하지만 이날 이후 하나는 연애다큐를 찍으러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교환에게 하나가 보낸 깨진 도자기가 도착한다.
교환은 온 집안에 본드 냄새를 풍기며 깨진 도자기를 다시 붙인다.
- 나는 하나가 왜 도자기를 보냈는지,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이건 이하나의 편지다.
이미 깨져버린 도자기.
산산조각나서 온 집안에 본드냄새를 풍기면서 다시 붙여야만 원래의 모습을 간신히 갖출 수 있는 도자기.
하지만 원래의 깨끗하고 정교한 모습을 갖추지는 못하는 도자기.
자칫 잘못 만지면 손이 베여서 다칠수도 있는 도자기.
이미 깨져버린 하나의 마음, 깨져버린 교환과 하나의 사이.
자칫 잘못 건드리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게 되어버렸다.
- 우리 엄마가 너 되게 미워해. 집에 본드 냄새 많이 난다고.
이걸 내가 붙이면서 진짜 생각을 많이 했어.
이렇게 막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거 있잖아.
잘했어. 잘 보냈어, 응.
그리고 교환은 자신이 열심히 붙인 도자기를 하나의 앞에서 떨어트린다.
당연히 이미 한 번 깨졌었던 도자기는 산산조각이 났다.
- 이거 딱 붙여놓고나서 이걸 보니까 무슨 생각이 제일 먼저 든 줄 알아?
봐봐. 안 예쁘잖아.
'안 예쁘잖아'.
이미 깨져버린 도자기는 다시 열심히 붙여봐도 안 예쁘다.
이미 떠난 사람도 붙잡아봤자 그 마음이 이전과 같을 리가 없다. 오히려 더 이질적이다.
교환도 이를 깨진 도자기를 붙이면서 깨달았다.
깨진 도자기를 다시 붙여봐도 안 예쁘듯이, 이미 깨져버린 하나의 마음을 다시 붙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져버린 하나와의 사이도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 대사가 나오며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유난히 예뻐보이는 사진이나 영상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기록물들에는 모두 사랑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순간의 장면만 포착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누군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나의 마음, 나의 사랑까지 모두 담아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끔 누군가 나를 기록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정말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모습을 마음을 담아 기록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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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뒷모습 보기
다른 모든 단어가 그러 하듯이, ‘예술’이라는 단어 또한 무수하게 많은 유동적인 의미를 가진다. 예술이 우리가 흔히 문화예술이라 부르는 영상물, 회화, 음악, 문학 등의 창작물들을 아우르는 분야를 일컫는 말이라고 했을 때, 왜 인간에게 예술이 필요할까?
늘 생각하지만 인간이 하는 일들 중 가장 크게 오해받고 있는 것이 예술인 것 같다. 사람들이 예술의 가치를 해석할 줄 모른다는 식의 엘리트주의적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예술이 엘리트 계급의 전유물이라는 편견 또한 제일 큰 오해 중 하나니까. 내가 생각하는 오해의 가장 큰 요인은, 예술이 스스로를 입증하는 데에 너무 자주 실패한다는 점이다. 예술에는 많은 정보값이 들어있다. 그것이 예술 작품을 만든 창작자들의 잘못일 수도 있고 그 작품들을 유통하고 전달하는 사람들의 잘못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예술의 역할은 가진 정보값을 전달해 수신자가 모종의 영향을 받도록 하는 것이고, 그 영향에 대해 대중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어쨌든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어디에도 많이 없으니까.
그래서 수많은 영화들을 보고 보다가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 같은 영화를 만나게 되는 건 무더운 한여름 차가운 보리차를 들이키는 것처럼 상쾌하고 시원한 경험이다. 영화가 하는 역할에 대해 영화라는 방식 그 차제로 18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분명하게 설명해주는 영화라니, 살아가며 중간중간 이런 영화를 봐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은 세월동안 또 다른 영화들을 보며 살아가는 일은 뜨듯미지근한 물만 마셔야 하는 여름처럼 답답한 일이 될 것이다.
이 영화에는 어떤 기승전결이나 클라이막스가 될 만한 내러티브 또한 없다. 그저 배경이 되는 타이페이의 모습이 보여지고, 거기에 살고 있는 주인공 가족들이 등장하고, 가족 구성원들 각자가 겪는 일상들을 계속해서 나열해 보여준다. 누군가들에게는 충격적이기도 하고 ‘막장’이라 할 수 있을만한 자극적 사건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런 일들은 늘상 일어난다. 결혼식, 장례식, 아픈 가족, 가출, 첫사랑,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던 진심, 사기 당해 날린 돈, 그리고 살인, 이 중에서 살면서 실제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전부 일상적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한 데 모아서 영화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 뿐.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이유는 이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영화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삼촌은 자기 뒷모습을 못 보니까 내가 찍어 줬어요.”
영화가 삶을 왜곡없이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삶을 그대로 비춰주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 굳이 내가 겪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비추어 볼 필요는 없을 테지만, 내가 주목하지 않고 지나쳤던 어떤 것들을 확대해 보여준다거나, 존재하는지 몰랐던 것들을 알려준다거나 한다면 하루에 몇 편이라도 시간을 내어 볼 의미가 있다. <하나 그리고 둘>은 이 영화를 시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앞으로 계속해서 영화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는 굴곡진 거울이다.
에드워드 양이 말하는 영화는 양양이 찍는 사람들의 뒷모습 같은 것이다. 나에게 뒷통수가 존재한다는 건 알고 사람의 뒷모습 자체가 새롭거나 의미있는 일은 전혀 아니지만, 누군가가 그 뒤통수를 찍어서 나에게 사진으로 건네 준다면 그것은 특별한, 어떻게 보면 특별 보다는 특이에 가까운 비일상적 순간이 된다. 나의 뒷모습이지만 그것을 찍은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가 있고 사진이라는 틀 안에 담긴 새로운 이미지의 탄생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를 가지고 전혀 새로운 예술로 만들어 준다니, 게다가 개인적인 이야기가 보편적이 되기도 하고 보편적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하다니, 이처럼 신기하고 의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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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한 시도로 가린 곱씹을수록 아쉬운 퀄리티
이 세상에 각자가 부여받은 임무란 게 있다. 어떤 사람은 영화를 만들고, 또 어떤 사람은 빵을 만든다.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누가 먼저 협박한 게 아닌 솔선수범의 글쓰기지만 어쩔 때는 의무감과 비장함에 근거해서 글을 쓰는 셈이다. 그런 나지만 가끔 그런 고민을 마주한다. '어떻게 써야 하지?' 조회수와 금전적인 문제로 설명할 수 없는 나만의 뿌듯함을 찾기로 한지 거의 1년이 지났다. 청년실업이 들이닥친 현재 자기가 재밌어하는 일이 하나라도 있으면 축복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면서, 그렇게 재미없는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하루하루 흘려보내고 있다.
그렇게 일상을 살다 축복 같은 날을 마주한다. 바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같은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럼 정말 문화생활 제대로 한 것 같다. 역시 잘 만든 예술이 세상을 구한다. 다음 날은 금요일이다. 극장으로 향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것이 신이 점지해준 일이라고 생각하고 했을까? 돈 얼마 안돼도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 가끔 무당이 나의 미래를 예견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잡생각도 무색하게 극장에서 거의 2시간가량을 보냈다. 괜찮은데? 새로운 스릴러 같은데? 그러나 집에 오니 생각이 바뀌었다. 마치 영화의 신이 홀렸던 것처럼, 돌이키면 돌이킬수록 단점이 느껴져 왠지 모르게 별점을 깎게 된다. 이는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했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세 명의 무당이 신을 불러 모은다. 이 사람은 각기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대무가>다.
무당 학원
신남은 오늘도 바쁘다. 동분서주하는 신남. 바쁘다 못해 엄마한테 전화를 건다. 띠리리리링. 엄마. 나 신남인데. 천만 원만 보내줘. 엄마가 ATM기도 아니고 갑자기 천만원이 튀어나올 리는 없다. 신남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신남은 학원을 다니고 있다. 코딩학원이나 제빵학원 같은 학원이 아니다. 좀 특별하다. 학원의 이름은 무당학원이다. 아니 무당학원이 있어? 싶지만 실제로 있다. 좁은 공간에 수강생들을 몰아넣고 신내림에 대해 강의하는 강사가 있다. 심지어 꽤나 진지해 보인다. 사실 신남은 요즘 취업이 도통 안 돼 무당학원에 들어왔다. 무당은 정년이 없다는 말에 혹했다. 천만원도 학원에서 보내라고 해서 필요한 돈이다. 여러모로 궁상맞은 신남. 학원에서 가르치는 수업 내용을 전부 다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난데없이 열린 프리스타일 굿에서도 청담 도령에게 압도적으로 털린다. 누가 봐도 초짜 무당인 신남이지만 그에게도 일거리는 들어온다.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열심히 바이럴 마케팅을 한 덕에 어떤 사람이 의뢰를 요청한 것이다.
의뢰의 주인공은 정윤희라는 여자였다. 얼마 전 돌아가신 윤희의 아버지. 사인은 자살이었다고 한다. 윤희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딸을 때렸다고 한다. 술만 들어가면 사람이 난폭하게 변하는 것이다. 이 난폭함이 자살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윤희는 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다시 보고 싶어 신남을 찾았다. 의뢰를 받아들이는 신남. 신남은 자신이 없다. 신내림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없는데 엄마한테 빌린 돈 천만원을 갚기 위해 무작정 받아들였다. 어떡하지? 발만 동동 구르기엔 경찰서에 가게 생겼다. 무당학원의 원장님에게 달려가는 신남. 신남은 원장님에게 '대무가'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된다. 대무가를 연마하는데 힘쓰는 신남. 원장은 신남에게 대무가를 깨우친다면 신내림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전한다. 신남은 과연 윤희의 의뢰를 무탈하게 끝마칠 수 있을까?
재미는 있었어
영화를 보기 전에 그렇게까지 기대를 하고 간 편은 아니었다. 금요일 바로 전 목요일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봐서 그런 것도 있다. 그냥 단지 웃기기만 해도 만족하지 않았을까? 그에 걸맞게 일단 초반부는 웃기는 데 성공했다. 일단 무당학원이 있는 게 신기했다. '목사학원'이나 '스님학원' 이 있지는 않잖아? 이 특이한 소재를 미술로 구현하는 방법도 신기했다. 극에서 학원 원생 역을 맡은 배우들을 보면 진짜 그곳에 다니는 사람 같다. 또 이 학원에서 강의하는 것도 웃기다. 무슨 굿이 아니고 무슨 길거리 버스킹 같다. 무엇이든 간에 학문이면 그 안에 짜여있는 체계라는 것이 있다. 그런 거 다 무시하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갈기는 이 모습이 웃기긴 웃기다. 특히 여기서 양현민 배우는 진짜 프로 같다고 느꼈다. 실제 직업인 무당 같기도 하지만 하나의 어색함도 없이 그 퍼포먼스를 소화한다. 어디서 저런 배우가 나왔지? 후에 많은 영화에서 조우진 배우처럼 많은 쓰임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깔깔 웃을 수 있는 초반부가 지나면 이야기의 핵심으로 들어간다.
이야기는 신남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아예 바뀐다. 뻔뻔한 맛으로 살리는 코미디에서 스릴러로 톤이 바뀐다. 일단 영화에서 중요하게 자주 나타나는 문서가 있다. 또 정경호 배우가 맡은 손익수는 한 동네의 소위 '통'으로서 마을을 접수하고자 한다. 이 손익수가 이 마을 7구역을 접수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다. 이 이유를 중심으로 마을의 재개발 권리를 하나씩 수거하는 것이 극의 과제라고도 볼 수 있다. 대무가가 왜 필요해? 바로 이런 손익수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서다. 무당이라는 존재가 그의 야심을 채우는데 주요한 역할을 맡는다. 이 손익수의 야심이 이야기에서 장르를 바꾸는 변곡점이 된다. 이후 이 스릴러로 장르가 바뀐 후로 극의 몰입감이 뛰어나다. 몰입감이 좋으니까 극을 보는 도중에는 크게 걸리는 것이 없다. 물 흐르듯이 전개되는 이야기. 이 이야기에서 지적하는 사회문제도 있다. 신남이 부딪힌 청년실업 문제, 이권다툼을 앞둔 인물들의 갈등, 가정폭력 이야기 등등. 연출 능력 자체는 좋기 때문에 단점이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는 곧 작품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게 된다. 이 영화가 지금 CGV 에그 지수가 알이 깨져서 그렇지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클래스는 영원해
박성웅이 맡은 마성준 캐릭터는 입체적이다. 극의 후반부까지 이 사람은 과연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사실 까고 보면 너무나도 인간적인 동기부여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기 쉽다. 이 이점을 먹고 가는 인물 설정 덕에 신남이 갑자기 비중이 줄어드는 이야기를 마성준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박성웅 배우는 이렇게 더하고 빼는 강약 관리를 매우 잘했다. 어쩔 때는 순수한 모습을, 또 그 모습 이면에 깔려있는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연기를 잘 수행했다. 일례로 마성준과 청담 도령이 첫 대면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박성웅 캐릭터가 했던 말투 하나, 제스처 하나가 상대방을 기 싸움에서 찍어 누른다. 하나하나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개인기로 직조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또 이 사람은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무당들 중 하나다. 그럼 무당으로서 굿을 펼치는 부분도 류경수/양현민 두 배우와는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도 메이크업과 의상, 말투만으로도 입체감을 부여하며 극에서 가장 선명한 캐릭터로 자리 잡는다.
또 양현민의 뛰어난 퍼포먼스는 이에 기름을 붓는다. 극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청담 도령. 청담 도령은 과거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고, 이것이 자격지심으로 발현되며 인물의 동기부여를 이끌게 된다. 뿐만 아니라 손익수라는 인물에 대한 리액션을 보여주며 빌런이 얼마나 악랄한 인간인지를 보여준다. 이에 대한 설계가 오롯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청담 도령이 어떤 공간에 잠입해서 중요한 정보를 빼내는 시퀀스가 있다. 이때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청담 도령 같은 일반인들에겐 충격적인 장면이다. 여기서 충격받는 리액션이 카메라에 중심으로 잡힌다. 안 그래도 반응을 유심히 볼 수 있는 장면 세팅에 생동감 있는 연기까지 더해지니 극의 리듬을 변환하는 중요한 시퀀스에 힘이 실린다. 또 중반부와 후반부 하이라이트 신에서 굿 하는 거 보면 몸 자체를 잘 쓰는 배우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극의 분위기를 이 인물의 화장법과 손발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배우들 연기도 좋았고. 이야기도 영화를 볼 땐 괜찮았다. 애초에 힙합이랑 굿이랑 융합해서 무언가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이런 형식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별점을 매겨보자. 3.5점? 3점? 3.5점을 줬다.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해봤다.
맥 빠지는 이야기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볼 때 힘이 부족하면 보는 재미가 줄어든다. 영화는 하이라이트 굿으로 이를 피했다 뿐이지 돌이켜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다. 우선 극의 이야기 구성은 하이라이트 신에서 굿을 펼치는 것 말고 인물 간의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볼 때 후자에 대해 돌이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서가 있다. 사회비판적인 맥락에서도 읽을 수 있고, 이야기의 측면에서도 이것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극을 볼 때 이 문서가 중요하게 읽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심심할 때면 강한 템포의 무언가가 개입해서 연출력으로 이야기를 넘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서의 행방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완성도의 높은 평가를 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 그 많은 인물 중에 '아예 그 문서를 찾지 않는 법'을 고민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심지어 이 문서에 대해서 두 번 반복되는 지점이 있다. 이 반복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딸 '윤희'라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그녀가 무당들을 섭외해서 불렀으니 말이다. 그런데 윤희 입장에서 인물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묘사가 없었다는 점은 아쉽다. 이 인물이 어떤 행동을 믿으면 이야기가 굉장히 쉽게 풀린다. 그런데 그냥 후반부에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 갈등구조를 만들었다는 분명한 단점이다. 이 때문에 윤희라는 배역의 서사가 훼손된 것이다.
그리고 <대무가>라는 소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대무가>의 제목에서 내포하는 것이 그렇게 넓지 않다. 인물 간의 각성이 이뤄지는 소재가 <대무가> 긴 해도 극에서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으니까. 인물이 각성하게 되는 계기? 그게 정말 대무가 때문인가? 잘 따지고 보면 대무가가 극에서 어떤 영향을 구체적으로 줬는지 묘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됐는지는 의문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극에서 제시되는 신남의 사연인 청년실업 문제, 청담 도령의 과거 문제, 마성준이 갖고 있던 인간관계 문제와 엔딩은 사실 큰 연관이 없다. 이 사람들은 대무가를 단지 불렀을 뿐 어떻게 보면 안 불렀어도 그런 결과를 맞이핳 수 있었다. 단지 후반부에 하이라이트를 그렇게 만들어서 무당이라는 속성을 부여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소재가 끌고 가는 원동력이 약했던 것이다.
또 마성준 캐릭터가 동기부여가 중요했던 것만큼 신남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신남이도 이유가 굉장히 중요했다. 본인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가 있고. 이 음모에 의해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그것 치고 이 굿판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지나치게 소박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불분명한 인과관계는 극 전부를 겉돈다. 다른 예로 윤희는 극에서 변환점이 되는 어떤 선택을 한다. 초반부에 나오는데, 여기서도 굳이 이럴 이유가 없는데 너무 과장해서 행동한다. 또 극의 중반부를 넘어가서 굿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이 부분에서도 '이 영화는 초자연적인 것을 다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다. 또 있다. 중반부 지점에서 경찰을 불러야 하는 장면이 있다. 캐릭터 입에서 직접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 캐릭터가 목격한 광경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벌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이 벌컥 뒤집힐만한 일인데 그냥 어물쩡 넘어간다. 이 낡은 각본은 후반부에 모든 상황이 마무리될 때로 이어진다. 이야기의 행방이 결론이 나면 허무하다. 솔직히 그 전부터 확인할 수 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황을 인물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에 힘입어 경찰이 인물들에게 묻는다. '오늘 뭐 하셨어요?'라고. 이 오늘 '뭐 하셨어요?'라는 질문은 영화의 모든 이야기를 함축한다. 사실 간단하다. 이 영화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 뭐 했냐?'라는 말에 '아무것도 안 했다'로 답할 수 있는 영화가 되는 셈이다.
철저한 개인기로
영화에서 화려한 연출은 많이 쓰였다. 군데군데 화면에 사람 얼굴을 크게 보이는 쇼트가 몇 번 찍혔다. 이는 영화에서 분출하고 있는 요란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쓰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출법은 <럭키 몬스터>가 연상된다. 철저한 B급 연출법으로 맹수의 흑화를 표현했던 감독의 역량이 코미디로, 스릴러로 기능한 부분이 흥미로웠던 영화. 이 <대무가>는 전체적으로 기이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스릴러로서의 장르적인 재미는 충분히 챙긴다. 또 정경호, 박성웅, 양현민 세 배우의 호연 덕에 극이 흥미진진하게 잘 굴러간다. 이런 이유로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다. 그래서 극장을 나오고 바로 직후에는 '어 괜찮네?' 싶다가도 책상 앞에 앉아 다시 생각하면 '..?' 싶은 영화가 되는 셈이다. 감독이나 배우들의 능력은 좋은데 각본이 아쉬웠던 영화였다. 추천은 한다. 그런데 정말 할 일이 없으면 보시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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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물 속에 녹아든 미국 사회의 풍자
2019년 겨울왕국이 영화관을 지배하고 있을 때 입소문이 퍼지던 작품 하나가 있었다. 바로 영화 <나이브스 아웃>이다. 추리물인데 그렇게들 재밌다고 해서 N차 관람각이라기에 기대를 했으나 솔직히 추리물은 그저 그랬고, 오히려 사회 풍자가 군데군데 있어 재밌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시놉시스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각 85세 생일에 숨친 채 발견된다. 그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경찰과 함께 탐정 브누아 블랑이 파견된다. 그렇게 집안 사람들을 한 명씩 조사하던 중 탐정 블랑은 간병인 마르타를 사건의 중심에 두며 수사를 펼쳐나간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나이브스 아웃>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기존 추리물을 한 데 모아놓은 듯한 느낌
영화 <나이브스 아웃>을 보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이 작품이 원작이 있는 작품인가?였다. 그만큼 익숙했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등장인물을 용의선상에 올려둔다는 점, 단조롭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점, 정치적 풍자나 약물오용, 그리고 히피문화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많이 생각났다. 또한 사건의 대략적인 구조를 알려준 후 이를 추적해나가면서 퍼즐을 끼워맞추는 블랑의 수사 방법은 형사 콜롬보과 굉장히 유사했다.
지루함과 긴장감의 핑퐁게임
그래서 그런지 영화 초반에는 조금 지루했다. 뭐 이렇게 떡밥들을 많이 뿌려놓나 싶었다. 사건의 진전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아서 좀 휘몰아쳤으면 좋겠는데 하는 감정이 종종 들었다.
중반부터는 간병인 마르타가 범인임을 단정지어 놓고 사건을 전개해나간다. 그래서 마르타는 자신이 범인임을 감추기 위해 블랑과 함께 수사를 하면서 수사를 방해한다. 그런데 뭔가 퍼즐조각이 안 맞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도대체 이 쎄한 감정은 무엇일까? 이미 범인이 밝혀졌는데 이 찝찝함은 무엇일까? 하면서 긴장감이 감도는데 영화 전반적으로 텐션이 낮게 흘러가서 함께 공존하기 힘들거라 생각했던 지루함이 느껴졌다. 이 부조화는 도대체 무엇인가? 물음표는 머릿 속에 자꾸 뜨는데 은근히 지루했던 작품이었다.
블랙코미디 덕에 웃을 수 있었던
지루함과 긴장감이라는 오묘한 감정 속에서 정말 재밌게 웃을 수 있었던 부분은 블랙코미디가 다량으로 등장했던 부분이었다. 아직도 생각하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굉장히 고전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요소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해서 이 작품이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할런의 엄청난 재난으로 인해 야기된 가족 간의 깊은 불화가 주요 소재인 이 작품에서 인플루언서 조니와 백인 우월주의에 물든 제이콥, 인종차별주의자 리처드 등 각각의 캐릭터에 미국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회, 정치적 현안들을 부여해 익살스럽게 풍자하고 있어서 작품을 보는 데 재미가 있었다. 특히 할런의 85세 생일에 벌어진 이민자에 대한 토론이야기는 정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합법적인 이민자들의 성실함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이 기여를 하지 않고 들의 세금만 축내는 불법 이민자들은 마땅히 추방되어야 한다는 리처드의 모습은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안의 이단아였던 랜섬의 행동을 보고 자신들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할런의 가족들을 볼 때는 점잖게 자신들을 포장하느라 참 애썼다는 측은한 감정까지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기대만큼 엄처난 재미를 안겨주진 않았지만 블랙코미디를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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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1. 15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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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8 카말라 칸 in 미즈마블
02:52 캐시 랭 aka 스태쳐 in 앤트맨 퀀터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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