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7-21 18:44:01
7월 3주차 주말 박스오피스
국내 & 북미 박스오피스
🏆 7월 3주차 주말 박스오피스가 도착했습니다!
이번 주말 국내 박스오피스에서는
개봉 4주 차를 맞은 <F1 더 무비>가 33만 2,915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다시 1위에 올랐고(누적 187만 3,720명), 역대 한국영화 북미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K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가 드디어 7월 18일 개봉하여 2위를 기록했습니다.
한편 국내에서는 이번 주말 박스오피스 6위를 기록한 <슈퍼맨>이 북미에서는 1위 자리를 지키며 워너브라더스의 구원투수로 나서고 있네요!
여러분은 주말에 어떤 작품 보셨나요?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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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버스라는 늪에서 악전고투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간여행을 통해 바네사를 되살리고 일상을 되찾은 '데드풀/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데드풀은 이제 어벤져스에 가입해 조금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어벤져스로부터 거절당하고, 그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바네사'(모레나 바카린)와도 이별한 후 '피터'(롭 딜레이니)의 도움을 받아 중고차 딜러 일을 하며 지낸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온다. '울버린'(휴 잭맨)의 죽음과 함께 엑스맨 유니버스가 소멸될 상황이 되자, TVA에서 데드풀을 MCU의 일원으로 캐스팅한 것. 데드풀은 '마블의 예수'가 될 것이라 들뜨지만, 흥분도 잠시. 그는 엑스맨 유니버스를 곧장 파괴하려는 '패러독스'(매튜 맥퍼딘)의 음모를 눈치채고, 자기 우주와 친구들을 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모든 면에서 상극이고, 자기 우주를 구하는 데 실패한 또 다른 '울버린'과 함께.
MCU의 예수는 되지 못하다
2024 슈퍼볼에서 처음 공개된 <데드풀과 울버린>의 티저 예고편. 2분 남짓한 영상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개 24시간 만에 3억 6,5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기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하 <노 웨이 홈>)의 3억 5,550만 조회수를 뛰어넘었다. 특히 한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바로 마블의 예수님이야"라는 데드풀의 대사는 MCU와 멀티버스 사가에 신선한 피가 수혈될 거라는 기대감을 높였다.
기대가 너무 큰 탓일까? <데드풀과 울버린>은 안타깝게도 기대에 미치 못했다. 데드풀과 멀티버스 사가의 만남 자체는 인상적이다. 데드풀만의 특색과 입담을 살려 디즈니의 20세기 폭스 인수 사가를 작품 내에서 풀어냈다. 엑스맨 버전 <노 웨이 홈>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엑스맨>, <판타스틱 포>, <데어데블>, <블레이드> 등 2000년대 초중반을 수놓은 과거 마블 캐릭터들에게 명예로운 엔딩을 안겨 주었다.
다만 MCU 멀티버스 사가의 문제점은 여전하다. 멀티버스 캐릭터에게 내준 공간만큼 데드풀과 울버린의 자리가 줄었다. 그 결과 데드풀도, 울버린도 각자의 서사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냉정히 말해 휴 잭맨이 복귀했다는 것 외에 의의가 없을 정도다. 프로모션 과정 내내 강조한 데드풀과 울버린의 버디 무비라는 개성도 덩달아 옅어진다. 결국 <데드풀과 울버린>이 MCU의 구세주냐는 질문에도 '아니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20세기 폭스의 <노 웨이 홈>
데드풀의 가장 큰 개성은 자유로움이었다. 그는 작품 내외를 오가며 히어로 영화의 금기를 전부 다 깨버렸다. 그래서인지 그는 엑스맨 유니버스에 속하면서도 따로 노는 미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MCU는 이를 엑스맨 유니버스와 MCU의 가교로 삼았다. 데드풀의 입담과 액션을 활용해 작품 외적인 이유로 퇴장했던 캐릭터에게는 마지막 인사의 기회를 주고, 세계관 자체는 멀티버스 속에 남겨두며 미래를 기약한다.
당장 기본적인 스토리부터가 현실의 은유다. 데드풀이 자기 우주를 파괴하려는 TVA에 맞서는 것은 디즈니의 폭스 인수로 인해 종료된 엑스맨 유니버스의 상황을 보여준다. 자기 우주에서 엑스맨을 구하지 못한 울버린의 모습도 마치 엑스맨 유나버스의 종료를 막지 못한 현실의 울버린을 보는 듯하다. 그들이 과거 마블 영화 캐릭터를 지배하려는 카산드라 노바와 싸우는 것 또한 MCU에 병합돼야 할 엑스맨 유니버스의 현실을 은유한다.
그 덕분에 영화는 다시 못 볼 캐릭터로 가득하다. 촬영은 완료했으나 공개되지 못한 채닝 테이텀의 갬빗과 <로건> 속 로라를 비롯해 파이로, 토드, 아자젤, 저거너트 같은 조연이 재등장한다. 이에 더해 크리스 에반스의 휴먼 토치, 제니퍼 가너의 엘렉트라, 웨슬리 스나입스의 블레이드 등 과거의 영웅도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즉, <데드풀과 울버린>은 20세기 폭스 버전의 <노 웨이 홈>이다. 엑스맨 시리즈를 비롯한 예전 마블 영화의 추억을 지키려는 메타적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다만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MCU 멀티버스 사가 중 진입장벽이 가장 높다. 일단 엑스맨 유니버스를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고, <판타스틱 포>, <블레이드>, <데어데블>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면 등장인물조차 알 수 없다. 또 <로키> 시즌 1을 보지 않으면 TVA, 보이드, 알리오스와 신성한 시간대 같은 설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갬빗의 경우에는 디즈니-폭스 인수 사가와 관련된 뒷이야기까지 꿰고 있어야 한다.
스파이더맨이 되지 못한 울버린
그러나 <데드풀과 울버린>의 완성도는 <노 웨이 홈>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다. 핵심적인 전제 하나를 놓친 까닭이다. <노 웨이 홈>의 힘은 과거의 두 스파이더맨에서 비롯했다. 그들이 과거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모습이 시간을 뛰어넘는 감동의 원천이었다.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가 그린 고블린을 치료하고,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 파커가 추락하는 MJ를 구해내는 모습은 팬들의 상상과 염원을 스크린에 펼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데드풀과 울버린>도 비슷한 방식으로 울버린을 활용하려 한다. 엑스맨을 구하지 못한 멀티버스의 로건을 기존의 엑스맨 유니버스로 불러와서 그가 다시 히어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문제는 이 울버린이 지난 20여 년간 엑스맨 시리즈에서 활약한 울버린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예전 스파이더맨과는 달리 이번 울버린은 관객과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교류할 길이 없다.
불친절한 전개는 문제를 더 키운다. 멀티버스의 울버린이 좌절한 이유나 정황은 실감하기 어렵다. 흔한 플래시백 하나 없이 대사로만 제시되기 때문. 그가 엑스맨으로 나서기를 주저하는 이유도 알기 어렵고, 로라가 멀티버스의 로건에게 그의 본성과 영웅성을 일깨우는 대화도 임팩트가 부족하다. <노 웨이 홈>에서 과거의 스파이더맨이 MCU의 스파이더맨에게 조언을 건네는 장면과 비교하면 차이가 명백하다.
이 괴리감은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암시된다. 데드풀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로건>에서 묻힌 울버린의 무덤을 파헤친다. 그러고는 울버린의 아다만티움 뼈를 이용해서 자신을 뒤쫓아온 TVA 요원들을 때려잡는다. 물론 분위기나 연출 자체는 데드풀답게 유쾌하고, 데드풀도 관객에게 사과를 건넨다. 하지만 <로건>의 결말을 기억하는 입장에서는 마냥 즐기기 어렵고, 이번 울버린과의 거리감이 더 멀어지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울버린과 함께 무너지는 데드풀
이에 더해 <데드풀> 영화인데도 데드풀의 서사를 살려내지 못했다. <데드풀> 시리즈의 매력은 평범한 주제나 메시지를 데드풀스럽게 풀어낸다는 점에 있다. 1편은 로맨스 영화를, 2편은 가족 영화를 B급 유머로 범벅해 흥미롭게 풀어낸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데드풀과 울버린>은 친구와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된 2편 이후로 무언가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데드풀. 그는 MCU의 어벤져스에 합류하려고 했지만, 어벤져스로부터 거절당한 후 크게 좌절했고, 평범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헤맸다. TVA에서는 마침내 MCU의 예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종국에는 그 꿈도 포기한다. 친구들과 그들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 그리고 새롭게 만난 친구인 울버린을 지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분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영화는 울버린과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 결과 데드풀의 서사는 직접적인 묘사 대신 상황 설명 대사로 자주 대체된다. 일례로 데드풀의 우주가 위험하다는 상황 설명도 패러독스의 대사로만 언급되니 실감하기 어렵다. 결국 <데드풀과 울버린>의 끝에는 데드풀다운 유머만 남는다. 시작과 끝을 장식한 내레이션 없이는 데드풀만의 서사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데드풀도, 울버린도 없는 버디 무비
전반적인 만듦새도 덩달아 미흡해진다. 두 주연 개개인의 서사가 부족하니 버디 무비인데도 둘의 호흡은 매끄럽지 않다. 예를 들어 울버린은 갈수록 데드풀에게 끌려다니는 듯하다. 새로운 울버린에게 마음을 주기 어려운 가운데 시리즈 내내 데드풀을 봐온 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시퀀스와 시퀀스의 연결도 부자연스럽다. 꼭 보여줘야 할 멀티버스 이벤트를 먼저 설계한 뒤, 데드풀과 울버린의 행적을 짜 맞춘 듯 보인다.
그래서 클라이맥스가 뒤바뀐 듯 보이기도 한다. 중반부 보이드에서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는 작중 가장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한다. 여러 돌연변이와 히어로들이 뒤엉켜서 각자의 능력을 뽐내는 이 장면은 마치 <엑스맨: 최후의 전쟁> 속 알카트라즈 시퀀스를 보는 듯하다. 과거 시리즈와 캐릭터들에 대한 헌사가 가득하기에 뭉클하기까지 하다.
그에 반해 데드풀과 울버린이 데드풀 군단을 마주하는 시퀀스는 임팩트가 부족하다. 물론 <올드보이>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를 연상시키는 액션 자체의 쾌감은 나름 인상적이고, MCU의 멀티버스 설정을 비꼬는 대사는 유쾌하다. 하지만 데드풀과 울버린의 서사가 부족하다 보니 단순한 팬서비스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시퀀스를 들어내더라도 스토리 전개에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악역의 존재감이 확실했다면 상술한 문제는 다소 가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산드라 노바'(엠마 코린)는 능력에 비해 존재감이 약하다. 그녀는 '보이드'로 떨어진 모든 캐릭터를 지배하고, 그러기 위해 모든 시간선을 붕괴시키려 한다. 이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역의 클리셰를 비튼 것에 불과하다. 그녀의 개인사마저 명확하지 않다 보니 그녀가 울버린의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마음을 바꾸는 전개 또한 다소 급작스럽다.
MCU의 고질병이 또 도지다
결국 <데드풀과 울버린>은 MCU의 고질병을 피하지 못했다. 이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등이 줄곧 노출한 문제점의 연장선이다. 이번에도 세계관 정리에는 성공했다. 꼬여버린 엑스맨 유니버스에게 깔끔한 엔딩을 선사하고, 이전 마블 영화와 MCU의 관계를 정리했다. 추후 MCU가 선보일 <엑스맨>과 <판타스틱 4>, <블레이드>, <데어데블> 등을 위한 길은 닦은 셈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독립적인 작품으로서의 매력은 잃어버렸다. 더 나아가서는 데드풀이나 울버린이 MCU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그 가능성도 제시하지 못했다. 즉, 지반을 정리하고 기초 공사까지는 완료했지만, 정작 그 부지 위에 무슨 건물을 올릴지 조감도조차 못 보여줬다. 그러니 MCU의 구세주라고 부르기에는 <데드풀과 울버린>이 남긴 아쉬움이 너무나도 크다.
Acceptable 무난함
데드풀과 울버린도 빠져나오지 못한 멀티버스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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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마지막 주 영화 한줄평] <갈매기>, <우리, 둘>
7월의 마지막 주를 맞아 씨네랩 크리에이터가 말하는 영화 두 편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갈매기>와 <우리, 둘>의 한줄 리뷰, 함께 만나볼까요?
1. <갈매기>
* 조금 더 자세한 리뷰를 보고 싶다면?
RABBITGUMI님 리뷰 - http://www.cinelab.co.kr/youtube.html?y_id=323
우두미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22
고태호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14
영직남님 리뷰 - http://www.cinelab.co.kr/youtube.html?y_id=321
드플레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30
공상가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39
코댕이님 리뷰 - http://www.cinelab.co.kr/sns.html?in_id=509
* 낯설지만 신선한, 다큐멘터리 같은 날 것의 힘이 느껴지는 웰메이드 독립영화 <갈매기>
예고편 바로보기
2. <우리, 둘>
* 조금 더 자세한 리뷰를 보고 싶다면?
rewr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46
popofilm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49
드플레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48
이정원님 리뷰 - https://cinelab.co.kr/insight_sub_details.html?i_id=1042
* 그 어떤 로맨스보다 몽환적인, 독창적이면서도 독특한 활력을 지닌 레즈비언 로맨스 <우리, 둘>
예고편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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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SYNOPSIS.
‘예분’은 손녀 ‘수정’을 사고로 잃은 뒤 삶이 1년 전 그날에 멈춰버렸다.
손녀의 유해를 찾기 위해 매일 같이 강가에 나가는 ‘예분’ 앞에 손녀의 절친 ‘지윤’이 나타난다.
두 사람에겐 들어야 할 진실이 있고, 삼켜야 할 비밀이 있는데…
진실과 비밀 사이 깊은 슬픔이 일렁인다.
#각자의 물결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스쳐간 자리는 그 이전과 영영 같을 수 없다. 설령 떠나간 이가 나에게 아주 작은 조각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아주 작은 구멍이 난 유리창이어도, 깨진 곳 없는 유리창과는 같을 수 없다. 그 작은 구멍 사이로 바람이 숭숭 불어와, 누군가의 빈 자리를 절감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아주 작은 순간일지언정.
하물며 이 이야기 속 예분과 지윤에게는. 손녀를 잃은 할머니 예분, 가장 절친한 친구를 잃은 중학생 지윤. 이들은 다른 부위에 난 같은 상처를 안고, 매일 다른 물로 뛰어든다. 예분은 손녀를 삼킨 강에 금속 탐지기를 들고 나가 손녀의 유품으로 추정되는 것을 매일 찾고, 지윤은 친구와 함께 있던 수영장에 매일 들어간다. 하나의 상실이 남긴 각자의 상처, 각자의 물결 속에서 이들은 매일 허우적거리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이들이 매일 뛰어드는 물 속의 축축함이 관객석까지 넘실넘실 전해진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문장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중간중간 교차하는 과거의 장면들을 보면서, 예분과 지윤의 시간을 순서대로 톺아볼수록 더욱 축축해진다. 그들의 과거와 그들의 현재, 그 사이 이들에게 있었을 무수한 감정들이 겹겹이 전해져서다.
#중첩되는 소리 속에서
이렇게 감정을 겹겹이 전달하는 데에는 소리가 큰 몫을 한다. 수정이 사고를 겪은 당일부터, 슬픔의 소리는 다른 소리들과 중첩되고 혼재되기 시작한다. 거센 빗소리, 경찰차 사이렌 소리, 수정을 잃은 엄마의 울음 소리...들이 어지러이 섞여들면서. 아주 거대한 슬픔의 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쉽게 삼켜 슬픔으로 중첩시키고, 우리를 먹먹하게 한다. 예분의 금속 탐지기 소리처럼, 때로는 진실을 찾으려 날카롭게 세운 소리가 반대로 귀를 막기도 한다.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할 만큼 했다는 말을 격렬하게 거부하며 끊임없이 진실을 찾아 헤매는 예분처럼.
사실 예분에게, 지윤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진실을 드러내고 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깊고 진득한 자책을 덜어낼 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이를 잃어버린 빈 자리를 돌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인간에게는 꼭 필요하니까. 그토록 숱하게 죽은 몸을 어루만지고, 누군가의 떠난 자리를 정리하며 살았던 예분이지만 정작 손녀의 죽음과 거기 어린 자기 감정들을 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토록 함께 뛰어들던 물 속, 그 익숙한 감각 안에서 친구를 잃은, 이어지는 상실 속에서 도저히 여유가 없는 지윤 또한 마찬가지다.
#물결도 소리도 없이 고요하게
이러한 두 사람이 부딪쳐 파장이 이는 자리마다 삶과 죽음이 물비늘처럼 몸을 뒤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치열하게 마주한 것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찾고자 혹은 감추고자 한 것이 정말 진실이었을까? 진짜 필요했던 것이 과연 진실이었을까? 가까워지고 다가서는 두 사람의 장면들을 통해, 두 사람의 거리 사이에서, 영화는 그 답을 조심스럽게 피워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죽음 이후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뭐부터 버려야 돼요?" 묻는 지윤에게 "남길 것부터 정리해야지." 말하는 예분의 차분한 어투다. 그렇게 죽음의 대처법을 가르치고서는 정작 지윤을 데려가는 곳이 병원과 식당으로, 죽음에 앞서 삶부터 가르친다는 점 또한.
죽음과 삶은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맞붙어 있다. 삶은 애초에 그렇게, 무수한 이들의 삶과 죽음이 조각조각 물비늘처럼 맞붙어 강을 이루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또한 하나의 물비늘, 그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지도. 그러나 설령 이 하나하나가 아무 것도 아닌 순간이라 해도, 강은 그런 식의 물비늘이 모여 반짝반짝 흘러 간다.
그렇게 끊임없이 몸을 뒤채는 만남과 헤어짐, 이해와 오해, 그 틈바구니 삶이라는 곳에 우리 그저 소리 없이 나란히 눕는다면. 다른 베개, 다른 이불, 다른 부위의 같은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그대로, 그저 같은 요 위에 나란히 눕는다면. 그때 비로소 이 마음에서 축축하고 눅눅한 습기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사실, 모든 축축한 것을 마르게 만드는 햇볕이니까.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개봉은 12월 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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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틀 곡 없는 네 번째 디스토피아 앨범처럼
<러브, 데스 + 로봇> 시리즈는 넷플릭스에 간헐적으로 발매하는 컴필레이션 앨범과도 같다. 사랑, 죽음 그리고 로봇(테크놀로지)이란 세 가지 주제를 갖고 다양한 감독이 만들어낸 이 작품들을 보고 듣는 재미는 그 자체로 쏠쏠하다. 이런 의미에서 <블랙 미러> 시리즈와 함께 매력적인 디스토피아 세계를 선사하는 <러브, 데스 + 로봇> 시즌4를 향한 기대감은 컸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아쉬움도 큰 법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공연 실황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CAN'T STOP>이나 <미지와의 조우>의 매운맛 버전처럼 느껴진 <미니와의 조우>, 독특한 색채와 화풍을 선보인 <400 보이즈> <지크는 어떻게 종교를 갖게 되었나> <기어갈 수 있으니>, 고퀄리티의 수려한 그래픽으로 구현한 <스파이더 로즈> <티라노사우르스의 비명>, 그리고 블랙코미디 스타일 짙었던 <또 다른 커다란 것> <골고다> <똑똑한 가전제품 멍청한 주인> 등 제목에 기인한 주제로 탄생한 10편의 이야기들은 완성도를 떠나 각기 다른 개성이 넘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이전 작품들에서 봤던 기시감은 벗어나지 못했다. 다수의 작품은 이전 시리즈에서 본 스타일과 세계관, 또는 콘셉트와 겹치면서 신선함은 떨어졌고, 일보 후퇴한 측면도 있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생길 수밖에 없는 거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팬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건 시즌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 부재하다는 것. 시즌1에서는 <굿 헌팅> 시즌3에서는 <히바로>를 꼽을 수 있는데, 이번 시즌에는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없다. 폭망했던 시즌2가 생각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4를 계속 볼 수 있었던 건 실존적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시리즈의 중점을 어떻게든 이어 나갔기 때문이다. 개성은 다르지만, 다른 존재(로봇, 동물, 로봇, 외계인, 악마 등)를 통해 인간이 가진 나약함과 이기심, 배타성 등을 들춰내고, 반성하게 만드는 부분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로봇은 물론, 고양이, 돌고래, 문어처럼 생긴 외계인, 타락한 천사 등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곧바로 객관화된다. 우리도 지구 안에서는 작은 개체일 뿐이라고 말이다.
여기에 현 인류의 혼란과 불안을 각 작품에 녹여냈다는 점이다. 로봇에게 의존하면서 점점 멍청해지는 인간, 인간성 말살 상황에서 실존에 대한 고민, 전쟁, 종말 등의 소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중심마저 흔들렸다면 제작을 맡은 팀 밀러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데이빗 핀처 감독이 미웠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시즌4를 보면 이전 시즌에서 봤던 좋은 작품을 찾아볼 것 같다. 처음 이 시리즈를 접한 이들이라면 시즌 1부터 정주행할 수도 있다. 왜 넷플릭스 구독자들이 이 시리즈를 기다렸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때문.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시즌 5를 기다린다. 왠지 짝수 시즌보다 홀수 시즌의 완성도가 좋다는 가설이 세워졌다고나 할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 CAN'T STOP이나 들어야겠다.
개인 추천 에피소드 3| <지크는 어떻게 종교를 갖게 되었나>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독일군이 깨운 타락천사와 사투를 벌이는 미 공군들의 이야기.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피칠갑 고어 액션과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모습은 박진감 넘치게 연출된다. 특히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액션 시퀀스와 이를 구현하는 작화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에 전쟁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신과 종교, 믿음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묵직한 물음은 힘든 상황 속에 놓인 우리들의 삶을 돌이켜보게 한다. 참고로 해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연출은 시즌 3 <킬 팀 킬>의 디에고 포랄이 맡았다.
| <티라노사우루스의 비명>시각적으로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 경기장, 검투사, 공룡 등이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호쾌하고도 잔인한 액션이 볼거리. 액션보다 잔인한 건 검투사들과 공룡의 죽음을 유희로 즐기는 군주와 상류 지배층들의 모습이다. 결국 폭군을 향한 피지배층과 동물(또는 자연)의 복수가 벌어진다. 극 중 자연을 무참히 짓밟은 인간, 유색인종을 노예로 부려 먹은 백인들의 추악한 과거 등을 잘 녹인 이야기. 다만 세계관의 설명이 조금이라도 나왔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출은 팀 밀러가 맡았다.
| <스파이더 로즈>
브루스 스털링의 동명 단편을 영상화한 단편. <쿵푸팬더> 시리즈로 잘 알려진 제니퍼 여 넬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남편을 떠나보낸 후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여성, 외계 애완동물, 그리고 복수라는 주제를 잘 융합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면서 감정이 메말라갔던 스파이더 로즈와 귀여운 애완동물로 그 공허를 채우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여기에 SF 장르에 걸맞은 우주 전쟁과 액션 장면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도 있다. 반전의 힌트는 초반에 나오니 주의 깊게 보기 바란다.
사진출처: 넷플릭스
평점: 3.0 / 5.0
한줄평: 타이틀 곡 없는 네 번째 디스토피아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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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둘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영화 <변호인>, <강철비> 시리즈로 자신만의 색깔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감독 양우석이 신작으로 돌아옵니다. 무게감 있는 작품들을 연출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남녀노소 즐기기 좋은 연말 맞이 코미디 영화로 기분 좋은 변신을 꾀했습니다. 과연 앞선 작품들을 연달아 성공시킨 것처럼 이번 작품도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해외에서 남다른 호평을 받아 국내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영화들도 줄지어 개봉합니다. 데미 무어의 최고작이란 평을 듣고 있는 <서브스턴스>, 주연인 킬리언 머피가 제작까지 맡아 화제가 되었던 <이처럼 사소한 것들>, 독보적인 디스코그래피의 주인공 FKA 트위그스가 출연하는 <더 크로우>까지!
12월에도 영화와 함께해요!
대가족
About Family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07분
감독: 양우석
주연: 김윤석, 이승기, 김성령, 강한나, 박수영
개봉: 2024.12.11.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줄거리
줄이 끊이지 않는 맛집 사장 무옥 승려 선언한 외아들 문석 때문에 대가 끊기다?
마지막 함씨 가문! 세울 것인가, 무너질 것인가!
자수성가 맛집의 근본, SNS 없던 시절부터 줄 서 먹던 노포 맛집 평만옥의 사장 무옥(김윤석)은 대를 이을 줄 알았던 외아들 문석이 승려가 되어 출가한 이후 근심이 깊어 간다. 자신의 대에서 끊겨버릴 예정인 가문을 걱정하던 가운데 어느 날, 평만옥에 문석이 자신의 아빠라며 방문한 어린 손님들!
끊길 줄 알았던 가문의 대를 잇게 생긴 무옥은 난생 처음 맛보는 행복을 느끼고 문석은 승려가 되기 이전의 과거를 되짚다 그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데…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개요: 스릴러 | 영국 | 141분
감독: 코랄리 파르쟈
주연: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데니스 퀘이드
개봉: 2024.12.11.
배급: (주)NEW
줄거리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 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하는데...
단 한 가지 규칙,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
각각 7일간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한다면 무엇이 잘못되겠는가?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개요: 드라마 | 미국 | 98분
감독: 팀 밀란츠
주연: 킬리언 머피, 에밀리 왓슨
개봉: 2024.12.11.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줄거리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 빌 펄롱은 석탄을 팔며 아내, 다섯 딸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지역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빌 펄롱은 숨겨져 있던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더 크로우
The Crow
개요: 액션 | 프랑스 | 111분
감독: 루퍼트 샌더스
주연: 빌 스카스가드, FKA 트위그스
개봉: 2024.12.11.
배급: 판씨네마㈜
줄거리
가장 완벽했던 사랑의 끝, 가장 처절한 복수의 시작!
죽음마저 두려워할 피의 부활이 펼쳐진다!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외로웠던 순간, 자신과 비슷한 영혼을 가진 '셸리'를 만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에릭'. 완벽한 행복을 만끽하던 그때, 두 사람은 의문의 괴한들에게 무참히 살해 당하고 '셸리'는 과거의 끔찍한 실수로 지옥에 끌려가게 된다.
지옥에서 '셸리'를 되찾기 위해 '에릭'은 까마귀의 저주를 받아 불사의 몸이 되고 죽여도 죽지 않는 복수의 화신으로 부활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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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 밖의 세상에 나온 수학 천재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이다.
1742년, 독일의 수학자 골드바흐(Goldbach)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수학적 추측입니다.
골드바흐는 알았을까요? 자신의 추측이 2세기가 훌쩍 넘도록 증명되지 않고, 먼 미래에도 '골드바흐의 추측'이라는 미해결 문제로 남는 것을요. 그리고 이 추측을 소재로 하는 성장 로맨스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을요. 해결되지 않은 수학적 추측을 둘러싼 성장과 로맨스를 그린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마거리트의 정리>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마거리트의 정리>는 2024년 6월 27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마거리트의 정리
Marguerite’s Theorem
Summary
명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가장 인정받는 수학 천재 ‘마거리트’는 세계 난제 ‘골드바흐의 추측’에 관한 연구를 증명하는 세미나에서 오류를 범하고 만다. 그날 이후 충격에 빠져 학교를 그만둔 ‘마거리트’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며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안나 노비옹
출연: 엘라 룸프, 장 피에르 다루생, 줄리앙 프리종
'마거리트'는 연구교수를 꿈꾸며 대학에서 수학을 탐구하는 여성 수학자입니다. 그의 수학적 사명은 바로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것. 수학 천재 '마거리트'와 기자의 대담이 담긴 오프닝 시퀀스에서, '골드바흐의 '정리'를 연구하고 있지 않냐'는 기자의 말에 '골드바흐의 '추측''이라고 정정하는 '마거리트'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이처럼 수학자에게 증명을 거치지 않은 문제는 완벽하게 정리되었다고 말할 수 없기에, '마거리트'는 3년째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대한 사명을 갖고 연구해 온 증명을 발표하는 세미나 자리에서 오류가 발견되고 맙니다. 그것도 자신과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루카'에 의해서 말이죠. '마거리트'는 그간의 연구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허탈함, 다른 주제, 다른 지도교수를 찾아보라는 스승에 대한 배신감, '루카'를 향한 질투심에 휩싸이며 제2의 집과 다름없었던 학교를 제 발로 뛰쳐나갑니다. <마거리트의 정리>는 이렇게 시련을 맞닥뜨리고 수학 밖의 세상에 발을 내디딘 '마거리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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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너드 걸의 매력
공부만 잘하고 세상 물정은 아무것도 모르는 너드 보이의 이야기는 많지만, 너드 걸의 이야기는 흔치 않습니다. <마거리트의 정리>는 그 희귀한 포지션을 딱 낚아채는 영화입니다. 수학이 삶의 전부였던 '마거리트'는 수학 밖의 세상에 뛰어들면서 너드 걸의 고군분투를 보여줍니다.
너드 캐릭터의 매력은 엉뚱하면서도 어리숙한 면에 있지만, 이 너드 걸의 매력은 조금 다릅니다. 수학만 보고 살아온 너드지만, 세상을 알아가는 데 한 치의 망설임이 없죠. 추론을 시도하며 사실을 증명하고, 문제가 있으면 즉시 해결하며, 언제나 새로운 길을 탐구하는 게 익숙한 수학자의 습성이 발휘된 걸까요? '마거리트'는 수학을 대할 때처럼 거침없이 세상을 알아갑니다. 쭈뼛거리는 것 없이 옷 가게에서 일해보고, 클럽에도 가보고, 남자도 하나 골라잡아보고, 흥미로워 보이는 마작판에도 뛰어들어 보죠.
그렇게 나 홀로 연구하는 수학의 세계에서 살던 '마거리트'는 비로소 수학 밖 '함께'의 세상을 배웁니다.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질투심을 느꼈던 '루카'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하고, 수학보다 더 신경 쓰이는 사랑까지 경험하죠. 그리고 그러한 변화 속에서 다시 한번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할 길을 찾아 나섭니다. 모르는 것으로 가득한 세상을 경험하면서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수학을 어려워하지만, 어찌 보면 '사실 - 추론 - 증명'으로 구성된 수학은 복잡다단한 21세기의 세상보다는 훨씬 더 간결해 보입니다. 21세기는 말이 되지 않는 설문조사도 답만 나오면 통계의 근거로 쓰고, 집세로 건네준 돈을 룸메이트가 홀라당 써버리기도 하는 비논리적인 세상이니까요. 이처럼 혼잡한 세상에 파묻혀 사는 우리들이기에, 처음으로 간결한 수학 속 세상에서 복잡한 수학 밖 세상에 나온 '마거리트'의 성장을 더욱더 응원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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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을 견디는 자세
영화에서는 사제지간도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극 중 '마거리트'는 증명에 실패했다는 사실보다도 오랜 시간 같은 주제를 연구해 온 지도교수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더 분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대학을 떠난 후, 다시 골드바흐의 추측에 도전하는 것도 지도교수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치죠. 결국 '마거리트'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한 발짝 다가가는 성과를 냅니다.
교수는 오류가 발견되자마자 세미나 자리를 박차고 나선 '마거리트'를 미성숙한 학자라며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실패한 '마거리트'의 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증명을 세상에 선보이는, 다소 쩨쩨한 짓을 하죠. 그러나 학교를 박차고 나선 '마거리트'가 자신이 평생을 도전해 왔던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오묘한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청출어람, 스승보다 나은 제자를 뜻하는 말이죠. 어쩌면 교수는 학자로서 '마거리트'에게 약간의 질투심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을 바쳐 연구한 증명을 향해 자신보다 먼저 나아가는 제자를 보면서요. 하지만 종국에는 '마거리트'가 정리한 증명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냅니다. 학자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학의 진보이며, 그 진보를 이끌어 낸 사람이 자신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 저도 모르게 뿌듯했기 때문이겠지요. 교수는 진정한 스승의 표정을 내비치며, 주변 사람들에게 '쟤가 내 제자야'를 시전합니다.
성장 로맨스 영화에서 사제지간에 자꾸만 눈길이 간 것은 마음속에서 던진 '나였다면?'의 질문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과연 청출어람을 견딜 수 있을 것인가?' 교수의 심경 변화를 유추해 보며, 언젠가 나에게도 제자가 생긴다면 스승에게 청출어람보다 더한 성공은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섣부른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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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에 굴하지 않고 수학적 증명이라는 목표를 이뤄가는 '마거리트'의 성장과 귀여운 로맨스가 담긴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 지금까지 '메디컬 로맨스 코미디' 같은 장르는 들어봤지만, '매스매틱 로맨스 코미디'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재치 있는 연출과 대사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육성으로 터지는 웃음을 참아가며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수학을 소재로 얼마나 사랑스러운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마거리트의 정리>를 감상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One-Liner
수학 밖의 세상을 당차게 헤쳐 나가는 너드 걸의 매스매틱(Mathematic) 로맨스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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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독전 2분만에 끝내는 리뷰, 그래서 이선생이 누구야?
**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감상해주세요!
** 영화나 특정인물에 대한 비하의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영화 '독전'을 감상했습니다.
이해영 감독의 신작이자, 故김주혁 배우의 유작이죠.
영화의 스타일은 독보적이지만 단점도 명백한 영화였습니다.영화 '독전'을 2분만에 제 나름대로 재밌게 구성해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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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전 #류준열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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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티저 예고편
예기치 못한 일로 자허의 어머니는 2년 전 살해됐다. 이 일로 자허와 그녀의 아버지는 인생의 중심을 잃는다. 레슬링팀에서 은퇴한 후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한 자허의 아버지는 도축장에서 육류 배달업자로 일하고 이로 인해 자허는 놀림을 받는다. 외롭고 무기력해진 그녀는 수치심과 불공정에 맞서기 위해 본인만의 도덕 규범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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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2> 티저 예고편
게임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모두 준비되었는가? 《오징어 게임》 시즌 2, 12월 26일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