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7-07 18:31:23
저승사자가 k-pop 아이돌이 돼...
해외 애니메이션 속 k-코드
🇰🇷 이제는 해외 애니메이션에서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예상치 못한 흥행이 계속 되고 있는데요!
어설프게 한국을 묘사했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너무나도 현대의 한국이 잘 담긴 애니메이션이 탄생해서 오랜만에 반가웠어요ㅎㅎ
매기 강 감독님은
“영어로 대사를 말하지만, 마치 한국어를 할 때의 입 모양처럼 애니메이터 분들이 작업해 주셨습니다. 이런 것들도 모두 한국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캐릭터의 리액션 같은 것도 모두 한국 스타일로 생각하며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습니다.
또한 과자 포장에 한국어가 거꾸로 된걸 발견한 제작진 분이 ‘이 장면에 글자가 거꾸로 되어 있다’고 말해 주시면 제가 바로 고치곤 했죠.”
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는데요 정말 디테일 하나에도 진심이었기에 많은 관객들의 공감과 찬사를 받는 것 같네요!
이제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문화적 상징과 감정선까지 담아내는한국적인 작품들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것들이 전 세계 스크린 속에서
👀 여러분은 어떤 작품에서 ‘K-코드’를 발견하셨나요?
<엘리멘탈>
<위 베어 베어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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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위도우> - '히어로, 딸, 언니, 친구였던 나타샤의 삶'
블랙 위도우 (Black Widow)
개봉일 : 2021.07.07 (한국 기준)
감독 : 케이트 쇼트랜드
출연 : 스칼렛 요한슨, 플로렌스 퓨, 레이첼 와이즈, 데이빗 하버, 레이 윈스턴, 윌리엄 허트
‘히어로, 딸, 언니, 친구였던 나타샤의 삶’
어벤져스가 처음 개봉한지 근 10년. 어벤져스의 원년 멤버로 긴 시간을 함께하고 엔드 게임을 마지막으로 어벤져스를 떠나는 블랙 위도우, 나타샤를 위한 마지막 배웅 같은 영화 <블랙 위도우>가 드디어 개봉했다. 개봉한지 근 3주가 지나가고 있는.. 아주 늦은 시점이지만 나타샤를 보내는 마음으로 늦은 글을 써본다.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1년 넘게 늦춰지는 바람에 그동안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는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무사히 <블랙 위도우>가 개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큰 감동이었다.
<블랙 위도우>는 시빌 워와 같은 타임라인을 공유하며 어벤져스 내부의 갈등이 일어나고 로저스(캡틴 아메리카)가 잠적한 후, 남겨진 나타샤의 이야기다. 그동안에 깊이 언급되지 않았던 나타샤의 어린 시절과 ‘레드룸’에 대한 비밀이 드디어 실체를 드러내는데, 지나치게 어둡거나 무겁게 다뤄지진 않는다.
이전 영화들에서는 나타샤가 레드룸에서의 기억과 그 안에서 잃어버린 것(어린 시절이나 가족, 여성으로서의 삶 등..)을 떠올리며 씁쓸해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는데, 어벤져스라는 새로운 동료이자 가족들을 만나며 그 부분들을 조금씩 채워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상 ‘난 가족이 없다.’고 말하던 그녀가 어벤져스를 ‘가족’으로 받아들였을 때, 갑자기 일어난 어벤져스의 내부 분열은 나타샤를 다시 한번 고민에 빠트린다.
<블랙 위도우>는 레드룸에 얽힌 음모와 그것을 전부 깨부수기 위한 여정이자 나타샤가 완벽하게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아픔과 죄책감을 덜어내는 과정, 지금껏 아팠던 만큼의 성장을 한 번에 이뤄내는 순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잠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가족 영화이기도 하다.
나타샤는 아이언맨처럼 강철 슈트를 입은 것도, 캡틴 아메리카처럼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실험을 받은 것도, 토르처럼 신도 아니다. <블랙 위도우>는 인간의 몸으로 몇 가지 무기를 들고 싸우면서도 전혀 ‘나약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던 그녀가 숨기고 있던 상처와 감정들을 밖으로 내놓으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슈퍼 히어로 블랙 위도우이기 전에 인간 나타샤로서의 그녀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를 보고 나서 어쩌면 나타샤가 어벤져스 내에서 신체적으론 가장 약할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마음과 정신은 다른 히어로들보다 훨씬 강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타임라인 이후에 인피니티 워, 엔드 게임에서 보여준 결단력과 용기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더 그런 확신이 든다.)
나타샤가 인피니티 워에서 짧은 금발머리를 하고 다시 등장했을 때, “그 사이에 뭔가 변화가 있었구나” 하고 짐작하긴 했으나, 그때는 그저 그녀의 외적 변신에 더욱 크게 환호했던 기억이 있다. 항상 아프고 씁쓸해 보였던 그녀가 새로운 머리, 새로운 옷을 입고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갈라섰던 동료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 킬러로서 살아온 세월을 속죄하며 세상을 위해 싸우던 그녀가 더욱 강한 사명감을 갖게 된 이유가 이 영화 <블랙 위도우>에 담겨있다. 모든 게 가짜라고 생각했던 나타샤의 삶에 ‘진짜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그녀가 마지막으로 몸을 내던져 지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나는 이제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블랙 위도우 시놉시스
어벤져스의 히어로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 (스칼렛 요한슨)는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레드룸의 거대한 음모와 실체를 깨닫게 된다. 상대의 능력을 복제하는 빌런 ‘태스크마스터’와 새로운 위도우들의 위협에 맞서 목숨을 건 반격을 시작하는 ‘나타샤’는 스파이로 활약했던 자신의 과거 뿐 아니라, 어벤져스가 되기 전 함께했던 동료들을 마주해야만 하는데… 폭발하는 리얼 액션 카타르시스! MCU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할 첫 액션 블록버스터를 만끽하라!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나타샤는 오하이오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확히는 3년간 러시아 스파이인 가짜 엄마 아빠와 피를 나누지 않은 동생 엘레나와 함께 ‘위장 가족’으로 살았다. 나타샤는 자신에게 진짜 가족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에게 보호받는 어린아이가 아닌 ‘킬러’라는 물건이 되어 살아남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 레드룸에서의 어린 날들과, 킬러가 되어 살아온 시간들을 지나, 모든 과오를 청산하기 위해 어벤져스가 되어 세상을 위해 싸우던 나타샤는 ‘이제 진짜 가족이 생겼나’싶었지만 어벤져스가 와해되고 다시 혼자가 된다.
“이제 떠날 거예요.”라고 말하며 수트를 놓고 추적을 피해 달아난 나타샤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아픈 어린 시절의 흔적을 마주한다. 그건 바로 아직도 건재하게 남아있는 ‘레드룸’과 여전히 소녀들을 세뇌시켜 위도우로 키우고 있는 드레이코프. 끝났을 거라 생각했던 드레이코프의 악행은 계속되고 있었고 지켜주는 어른이 없었던 소녀들의 고통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을 해방시켜줘.”
나타샤가 레드룸을 벗어난 후 남겨졌던 동생 엘레나는 다른 위도우의 도움으로 해독제를 맞고 탈출에 성공해 나타샤에게로 향한다. 나타샤는 레드룸이 아직 파괴되지 않았음을 알고 엘레나와 함께 해독제를 들고 가짜 엄마 아빠였던 멜리나와 알렉세이를 찾아간다.
“내게도 진짜 가족이었어.”
나타샤, 엘레나, 멜리나와 알렉세이가 한 식탁에 모이고, 그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칭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3년의 시간 동안 쌓아왔던 습관과 작은 추억들을 나눈다. 레드룸의 계획으로 이뤄진 ‘위장 가족’이었다는 비밀을 모두가 알게 되었기에 ‘가족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어느 순간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쌓아온 정과 사랑은 끝내 외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타샤는 멜리나가 건넨 “절대 너 자신을 잃지마.” 라는 한마디로 자신을 붙잡고 살아왔고, 멜리나는 나타샤, 엘레나와 함께 찍은 사진첩을 간직하고 있었고, 알렉세이는 엘레나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타샤에 등에 들어있던 멍과 이들의 행동을 보며 슈트를 입은 히어로나 킬러, 대단한 작전을 행한 스파이이기 이전에 이들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널 두고 갈 순 없었어.”
“그 안에 너 있는 거 알아. 널 두곤 안 갈게.”
나타샤는 다시 한번 드레이코프와 레드룸에 맞서며 지금껏 자신을 심하게도 아프게 했던 시절들을 털어낸다. 그리고 그만큼 강해진다.
힘없는 여자아이들을 세뇌시키며 차고 넘치는 자원이자 재활용품이라고 칭하는 드레이코프. 그의 앞에 선 나타샤는 스스로 자신의 후각 신경을 손상시키며 드레이코프가 남겨둔 마지막 세뇌의 흔적을 제거한다. 그녀는 자신의 신경을 끊으면 드레이코프를 공격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끝까지 기다려 그의 계획을 캐내는데 성공한다. 나타샤는 먼저 레드룸을 탈출하며 구하지 못했던 위도우들을 구하기 위해, 이번엔 혼자가 아닌 모두가 함께 탈출하기 위해 무너지는 레드룸에서 늦게까지 머물며 해독제와 정보를 챙긴다. 이번엔 ‘구하지 못했다’는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레드룸이 내려앉을 때, 대부분의 위도우들은 해독제를 맞고 탈출에 성공한다. 위도우 네트워크 정보를 들고 탈출하던 나타샤는 감옥에 갇혀있던 안토니오를 꺼내고 지상에서 다시 한번 격돌한다. 안토니오는 드레이코프의 딸이자 그가 세뇌를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1급 무기’다. 안토니오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어 마치 거울과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는 적이자 나타샤의 오랜 죄책감의 중심이다. 나타샤는 자신의 거울처럼 움직이는 안토니오에게 해독제를 투여하는데 성공하고 그녀가 정신이 들었을 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나타샤의 진심 어린 사과는 자신이 탈출한 후에도 갇혀있었던 여러 위도우들과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전 세계에 퍼져있는 세뇌당한 위도우들, 그리고 괴로웠다며 무조건 부정하려 했던 위도우 시절의 나, 자신의 과오에 희생된 이들에게 건네는 말일 것이다. 자신과 같은 운명을 겪고 있는, 거울 속 나와 같은 소녀들, 그리고 과오를 저지르던 그때의 나. 나타샤는 안토니오의 해독을 마지막으로 오래 묵은 고통에서 벗어난다.
“이젠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해.”
“절대 너 자신을 잃지 마.”
레드룸의 파괴와 나타샤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가족들과의 만남은 나타샤가 자신도 행복한 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있는 사람임을 알게 해준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타샤를 지배했던 세뇌의 흔적들은 사라졌고,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던 위도우들도 해독제를 통해 자유를 되찾았다. 가짜라고 생각했던 가족은 ‘가장 행복한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이었고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엘레나는 여전히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동생이었다.
“난 가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둘이나 있더라고.”
모든 게 가짜고 없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마음을 조금 더 뻗어보니 그들의 손이 있었고, 손을 내밀자 그들은 나타샤의 손을 잡아줬다. 위도우들도 알렉세이도. 그리고 어벤져스도.
“난 선물상자가 빈 통인걸 알면서도 다 열어보고 싶었어.
그 기분을 맛보고 싶어서.”
가짜인 걸 알면서도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어린아이’의 기분을 궁금해하며 빈 상자를 열었던 어린아이는 무사히 자신을 잃지 않고 어른이 되어 세상과 다시 만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킨다. <인피니티 워>에서 만난 나타샤가 입고 있던 엘레나의 조끼와 어린 그녀의 모습과 같은 짧은 금발머리는 그녀가 가장 큰 결핍이라 느꼈던 어린 시절과 가족을 새롭게 정의했음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을까.
<엔드게임>에서 나타샤가 내렸던 결정은 과거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 그에 대한 사죄와 사명감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 지켜내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합쳐져 만들어진 결과물일 것이다.
나를 위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된 나타샤가 내린 가장 큰 결정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슬픔과 함께 그녀의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나타샤는 해독제를 맞은 위도우들에게 마지막까지 미안하다고 말하고, 항상 자신이 행한 과오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레드룸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던 나타샤에겐 선택권이 없었다는걸, 그녀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빼앗긴 한 명의 위도우였다는 걸, 그녀의 희생은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나타샤가 멜리나에게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라고 위로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그녀를 위로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아쉬운 만큼 더 그녀를 사랑하게 된 느낌이다. 그렇기에 그 뜻을 이해하며 이제 나타샤를 보내주고 새로운 세대를, 엘레나의 등장을 반겨줄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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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스턴스> 리뷰
- ※ 스포일러를 포함한 리뷰 입니다.또 다른 완벽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욕망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했을 법한, 혹은 적어도 그런 모습을 추구하기 위해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는 하나의 판타지일 것이다. 코렐리 파르자 감독의 <서브스턴스>는 이러한 욕망을 주제로 ‘완벽한 나’ 라는 강박적인 그늘 아래의 자기 혐오와 여성을 둘러싼 가혹한 미의 기준, 그리고 이러한 기준을 만들어내는 쇼 비즈니스의 이면에 대해 다소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연출을 통해 풀어낸다.영화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에어로빅 쇼의 진행자인 왕년의 스타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나이를 이유로 방송사에서 해고되자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통해 더욱 젊고 아름다운 ‘수’(마거릿 퀄리)로 다시 태어나고 방송에 복귀하게 된다. ‘수’라는 또다른 나에 대한 집착은 갈수록 심해지며 결국 약물의 사용 규칙을 어긴 엘리자베스는 본래 자신의 모습을 점점 잃어간다. 결국 수와 자신이 필수불가결한 하나임을 망각한 엘리자베스는 수를 없애버리고 싶은 분노를 느끼면서도 서브스턴스를 계속해서 남용하는 파멸의 굴레에 빠진다.이러한 플롯은 젊음과 아름다움에 집착한 한 여성이 결국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자멸하는 내용으로 읽힐 수 있지만, 작품 곳곳에서 이러한 외모 강박은 여성들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미디어와 사회를 통해 공통된 미적 기준이 주입되기 때문임을 드러내고 있다. 가령, 작품의 초반부터 엘리자베스는 나이를 이유로 에어로빅 쇼에서 해고를 당하고, 이로 인해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엘리자베스를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상품으로서 대하는 쇼 제작자 하비(데니스 퀘이드)의 태도와 더불어 그를 표현하는 연출 또한 풍자의 의도가 다분하다. 하비가 엘리자베스를 해고하면서 새우를 먹는 장면에서는 의도적으로 그가 먹는 소리와 모습이 강조되며 불쾌감을 자아낸다. 이는 쇼비즈니스 세계에서의 갑을 관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여성을 상품화하여 끊임없이 교체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역한 비도덕성을 나타낸다.극 중반에 서브스턴스를 통해 완벽한 모습으로 다시 카메라 앞에 선 ‘수’의 모습은 보는 이가 이질감을 느낄 정도로 집요하고 대상화된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기게 된다. 이는 신체의 매력 그 자체가 콘텐츠의 목적이 아님에도 여성의 성적 매력을 불필요하게 강조하는 미디어를 겨냥한 의도로 보인다. 이후 수는 모니터링을 이유로 자신의 신체 부위에 집중하는 남성들의 노골적인 시선으로 인해 수치심을 느낀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여성의 성적 매력을 착취해 콘텐츠를 생산하고 또 소비하는 주체(주로 남성)를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이를 통해 여성의 성적 매력을 상품으로 다뤄왔던 미디어 산업과 이를 통해 형성된 ‘이상적인 미’의 기준 아래 여성들은 신체에 대한 기형적인 집착을 보일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미디어에서 다루는 여성들의 모습이 점점 완벽해질수록 현실의 여성들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미적 기준을 따르기 위해 강박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극 중 "서브스턴스"라는 약물도 현실에서 이러한 강박이 주입된 여성들이 행하는 끊임없는 다이어트, 섭식장애, 과도한 성형 등 다양한 자기파괴적인 습관 양상을 떠올리게 한다.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추앙하는 할리우드에서 이러한 외형적 이점를 가지고 정상에 올랐던 인물 엘리자베스를 통해 이상적인 미의 요구 조건을 충족한 것 같은 엘리자베스 또한 외모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객체임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엘리자베스가 단순히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자업자득의 결말을 얻었다고 느끼기보다, 사회에서 형성된 가혹한 미의 기준으로 인해 자아를 잃어버린 한 여성의 비극을 연민과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수'라는 존재 또한 ‘완벽한 나’의 표상으로서 현실에서 다양하게 대입해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화장을 했을 때의 자신으로 볼 수도 있고, 다이어트를 통해 이상적인 몸을 가진 자신일 수도 있으며, 소셜 미디어에서 보정을 거친 사진, 혹은 자신이 우상화하는 연예인 등 현실의 본인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게 하는 많은 것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이처럼 서브스턴스는 ‘자기 안에서 분화한 또 다른 나’라는 소재로 여성을 억압하는 미의 기준과 자기 혐오를 바디 호러물로 거침없이 풀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느껴지는 순간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이 다소 예상이 간다는 점과, 영화의 주제가 특별히 새로운 페미니즘적 담론을 담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감독 자신이 여성으로 살아오며 체감했던, 대상화된 객체로서의 삶을 바디호러라는 강렬한 장르로 보여준 이 작품을 앞으로 얼마간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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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나를 모른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완벽한데 속은 완벽하게 곪아 있다. 27살, 젊고 탄탄한 몸과 피부, 좋은 학벌. 남부럽지 않은 월가에서 일하고 집도 삐까뻔쩍하다. 얼마나 자기 관리가 철저한지 매일 아침에 피부에 팩을 하고 열심히 운동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을 모른다. 인간이지만 혐오와 분노 빼고는 별다른 감정이 없다. 서로의 명함, 입은 옷, 들리는 식당이 자신의 모든 것인양 뽐내고 비교한다. 내 명함보다 잘 빠진 명함을 보거나 내가 예약 못하는 인기많은 식당을 누가 예약했다고 하면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점점 멈출 수가 없어서 티가 날 정도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나는 썩어빠졌다고. 나는 사람을 죽였다고. 게다가 즐긴다고.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는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는다. 놀랍지도 않은 듯한 눈동자로 그는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아무 의미 없다고.
이 영화를 단순한 싸이코패스영화라고 볼 순 없을 것이다. 괴로워하는 그를 보면 원인이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주변 사람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케이스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하는 오늘의 주인공은 패트릭 베이트먼. 사이코패스 영화를 보면 볼 수록 주인공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느낌이다. 어느 정도냐면 어지간한 살인이나 괴팍한 장면들에 무덤덤하고, 살인 전에 신이 난 그의 미소와 율동이 귀엽게 느껴지고 있다. 아마 그와 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혹시 그에 비해 나는 용기가 없거나, 죄책감이 심한 것 정도는 아닐까.
영화를 관통하는 한마디는 초반과 후반에 나온다. 중요한 건 마지막 한마디다. 마스크팩을 벗으며 그는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더라도 진짜 자신을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영화의 말미에서는 Inside doesn't matter. 안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모두들 실제로 겉으로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름도, 대화도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가지는 건 역시나 그의 겉모습이다. 탄탄한 몸매, 잘 태닝한 피부, 명품 스타일의 옷과 소품들. 아무도 그에게 잘 지내는지, 건강한지, 보고 싶었다든지 묻지 않는다. 시체가 든 가방을 보며 '워후, 멋진 걸'.하는 말에 '응 장 폴 고티에꺼야.' 라는 심드렁한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없다. 하긴 뭐 태반이 약에 쩔어 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다. 정도의 차이일뿐 우리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아메리칸 사이코에 워너비 도르시아(Dorsia)가 있다면, 현실에선 요즘 뜨는 인스타 맛집이 있을까. 우리도 봐왔지 않는가. 음식을 제대로 먹고 즐기기보다 사진찍고 그곳에 갔다왔다고 자랑하는 것이 지나쳐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누가 입은 옷, 쓴 화장품들을 찾으며 더 예쁘고 멋있어지는데 고민을 하며 시간을 잔뜩 보내기도 한다. 자기 삶이 어떻게 보이는지 푹 빠져 건사하기 바쁘다보니 다른 사람의 말은 영화처럼 한 귀로 흘려듣게 되기도 한다. 듣고 있으면서 듣고 있지 않을 때도 많다.
패트릭의 내면은 황폐하게 버려져 있다. 그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월급루팡처럼 십자말풀이에는 뼈와 살, 가슴, 피 같은 그의 머릿속 초유의 관심사를 적고 음악을 듣고 있다. 그러나 대체 그런 건 누가 신경쓰겠는가. 그의 부사장 지위가 중요할 뿐이다. 그나마 조금 가까운 약혼녀는 묻는다. 왜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그 일 하는거야? 그의 답은 우리의 인생과 다르지 않다. 맞지 않아도 맞춰서 살아보려고 한다는 거다. 그의 모든 것은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된 것이다. 하버드 경영학과도, 어쩌면 클럽에서 하는 코카인, 머리스타일도 그냥 남들이 다 하는거라 그들과 맞추려고 시작한 것 아닐까. 그에게 자유나 개성이란 건 없다. 우리는 주인공인 패트릭을 보지만 사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는 어느 월가의 젊은 금수저 한량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손쓸 수 없이 망가지고 있고, 더 이상 제어가 되지 않는다는 걸. 여러 번 얘기했다. 우습게도 그가 가장 행복해보이는 순간은 이 모든 일련의 살인(혹은 그의 망상)을 고백했을 때이다. 왜 그렇게 기뻤을까. 늘 패트릭을 얼간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엄청난 일을 저질렀고, 드디어 한 순간이나마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가 필요했던 것은 인정과 관심이다. 자신이 아파하면 남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고, 비정상적인 일을 저질러서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싶었던 것이다.
살인은 그가 생각하는 개성이자 새로운 힘의 표출방법이다. 패트릭은 똑똑하게 이 세계를 알고 있다. 화가 나면 뒷골목의 약자들을 찾아간다. 남들 앞에선 오, 우리는 노숙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사회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입바른 소리를 내뱉는 그는 가짜다. 더럽고 냄새나고 무능력한 노숙자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죽인다. 특이하게 자신의 동료를 한 명 죽인다. 그의 행동 중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만큼 위험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는 그럴 만 했다. 그의 자존심을 온갖 방법으로 짓밟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도 꾸준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보다 멋진 명함을 갖고 있고 식당 예약은 더 잘 하고, 게다가 그의 진짜 이름을 들먹이며 멍청하고 한심한 녀석이라고 욕한다. 더 이상 그를 더 모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렇게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그는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과격하다. 뒷골목의 여자들을 학대한다. 자신이 이렇게 능력있고 탄탄한 체력을 갖고 있다는 자기애에 도취되어 거울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카메라까지 동원하는 남자라니. 특히 금발의 여자에게 엄청난 스크래치라도 입은 것인지 취향이 확고하다. 그가 만나는 여자는 모두 금발이다. 약혼녀, 내연녀 관계의 코트니, 비서 진, 에스코트 걸들까지.
이상한 점은 남자들처럼 그냥 죽이지 않고 여성의 경우 성적으로 유린하고 죽인다는 점이다. 힘과 권력의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모든 여성은 그에겐 힘이나 지위든 어느 면에서나 밀리기 마련이다. 이건 그만의 생각은 아니다. 그의 동료들과의 대화에선 세상에 성격좋은 여자는 없다는 결론이 난다. 자신들의 온갖 성적 취향을 맞춰주고 멍청하지 않은 그런 여자는 이데아라나. 게다가 똑똑하고 성격좋은 여자는 없단다. 오 있댔지, 못생긴 여자. 그나마 약혼녀와 내연녀는 죽이려는 충동도 없고, 건드리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이건 그가 새삼스레 일말의 보루가 있는게 아니다. 그쪽은 건들면 골치 아픈 걸 알기 때문이다. 부모님과도 연루되어 있고, 숨기기도 쉽지 않다. 그들의 친구가 그의 친구들이니까. 비서나 에스코트걸들이야 돈이나 많이 찔러주거나 소리 소문 없이 없애버리기 어렵지 않으니까.
그의 살인에는 이상하게도 음악이 빠지지 않는다. 살인이라는 체력적 소모가 심한 노동에 필요한 노동요라도 되듯, 마치 이 상황이 별 것 아니라는 듯 미끼처럼 혹은 음악 마니아처럼 그는 온갖 명곡들을 자체 bgm으로 틀어놓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들으면 정말 그 곡을, 그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는 좋은 머리로 그럴싸한 평론을 외워서 읊조리고 있다. 외우느라 힘들었겠네, 정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보이는 생기있는 눈빛이나 감탄사보다는 기술적이고 덤덤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 실제로 살인을 하기 위한 신나는 몸동작과는 대조적이다. 사실상 그의 개성을 표출한다는 살인마저도 다른 이의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신경쓰는 식당의 요리라도 되는 양 살인 앞에서 고상한 말들을 늘어놓는 꼬락서니라니.
그가 실제로 사람들을 죽였는가, 죽이지 않았는가는 영화를 볼 수록 아리송하다. 그는 정신과 약을 먹고 있고 그가 죽였다고 한 사람이 살아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자판기에는 고양이를 넣어주세요 같은 말도 안 되는 광경도 펼쳐진다. 그가 시체를 숨기는 은신처로 썼던 폴 알렌의 집은 다시 찾아가보니 구조도 다를 뿐더러 시체도 없다. 영화 <블랙 스완>에 나오듯 그의 내면이 불어일으킨 환상일 수도 있다. 착하고 억눌린 백조에서 경쟁자를 찔러 죽이고 흑조로 재탄생하던 니나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녀가 찌른 것은 자신이었고 누가 찔렸든간에 그녀는 자신은 완벽했다며 기뻐했다. 패트릭은 그의 넘치는 자신의 몸 사랑을 생각하면 자해를 했을 가능성도 적다. 또한 자신이 죽인(죽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게 그의 환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는 않다. 영화의 입장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게 중요한 거니까. 오히려 무서웠던 건 마지막 독백 때문이었다. 불러도 답이 오지 않는 이 상황에 모든 걸 초월했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 뭔가 저질러도 단단히 저지를 그 눈빛.
시도 때도 없이 그는 자신의 비밀을 폭로하고 있고, 폭로하고 싶어하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고작 그의 비서 진이 그가 끄적인 낙서로 알았을 뿐이다. 그는 길티 플레저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기관리의 1인자처럼 착실해보였던 그가 사실 엄청 비틀렸고 못된 짓을 했다는 걸, 더 이상 사람들에게 맞춰살지 않고 내 멋대로 산다는 걸, 들킬까봐 두려우면서도 어서 알아주길 바라는 모순적인 마음이 그에게 불안한 매력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똑똑한 그가 알고 있듯, 그가 아무리 무슨 짓을 해도, 설사 그것이 들킨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어차피 세상에서 죽어있는 존재이다. 그것이 영원히 그가 벗어나지 못하는 덫이다. 그렇게 살아있다고 소리쳐봐도 모든 것은 다른 삶의 소음에 묻힌다.
상상해보자. '패트릭 베이트먼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마도 다같이 멈칫했다가 심드렁하고 예측가능하게 말을 돌리지 않을까. '아, 그 얼간이 녀석이요. 멍청한 짓은 다하고 다녔는데.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혔다가 인생 종친 하버드 녀석이죠', 하거나 '흠, 저녁은 어디서 먹지. 딱히 땡기는 곳은 없는데, 도르시아?'라고 하거나, '자자, 새로 산 명함이야. 어때? '아니, 내 꺼 좀 봐.' 하며 어깨에 힘주고 자랑하고 있겠지. 역설적으로 그가 홀대했던 내연녀 코트니나 비서 진 정도만 말문을 잃은 채 슬퍼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그녀들이 그를 걱정해주면 믿지 않았다.
그렇다. 영화 < 아메리칸 사이코 >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선혈이 낭자한 살인이 아니다. 수많은 말이 오가도 진실과 내면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익숙한 외로움. 남다를 것 없는 일상의 변하지 않을 단절감. 딱히 아메리칸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될 보편적인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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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력 없는 안티 히어로, 모비우스
평생 앓고 있는 병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병을 고치려고 평생 매달리게 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안고 받아들이며 적응하겠지만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다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의료의 발달로 꽤 많은 병의 치료제가 만들어졌다. 꽤 긴 시간 동안 많은 연구진들이 매달리고 임상실험을 통해 얻어낸 결과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지를 주었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치료되지 못한 병과 그것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만약 그들에게 단기간에 병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영화 <모비우스>는 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모비우스 박사(자레드 레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와 동생 마일로(맷 스미스)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계속 몸이 불편해 일반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모비우스는 열심히 공부에 매달려 스스로 의사가 되었고, 이후 계속 자신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그는 그의 연구가 성공하면 자신과 동생 마일로까지 치료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전 인류에 존재하는 질병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더욱 연구에 집중했다.
질병으로 불편한 자신의 치료제를 만드는 모비우스 박사 이야기
영화의 첫 장면은 모비우스가 어디론가 이동해 동굴 속 박쥐 떼를 만나는 모습이다. 그는 박쥐 떼를 연구실로 데려와 박쥐의 DNA를 이용해 치료제를 만드는 노력을 계속하고 결국에 혈청 주사를 만들어낸다. 초반 모비우스의 모습은 목발을 이용해 걷고 굉장히 유약해 보인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자신의 온 힘을 기울여 치료제를 만드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가게 그려진다. 결국 그는 박쥐를 이용한 혈청을 만들어내고 자신에게 한 임상실험에서 좋은 결과를 받는다. 그런 게 부작용으로 인간의 피를 주기적으로 마셔야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된다.
모비우스가 그의 동료 마르틴(아드리아 아르조나)과 함께 치료제를 만들려는 모습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가 치료제로 자신의 몸을 치료한 이후,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특히나 모비우스의 동생 마일로의 변화가 그렇다. 마일로는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형 모비우스를 찾아왔다가 우연히 혈청 치료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몸에 주사를 한다. 그 역시 몸은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엄청난 힘을 얻지만 그렇게 얻은 힘으로 다른 인간들을 괴롭히고 피를 빨아먹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인공 피를 마셨던 모비우스의 선택과 대비된다.
문제는 마일로가 갑자기 그렇게 악행을 벌이는 것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마일로 주변에 있던 모비우스나 에밀(자레드 해리스)은 마일로를 최선을 다해 보호하려고 노력했다. 영화 속에서 마일로가 세상에 반감을 가질만한 일도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많지 않았다. 그저 힘없고 착해 보였던 그가 갑작스럽게 얻은 힘으로 아무 죄 없는 사람까지 죽이고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 또한 그에 대한해 마일로와 대결을 벌이는 모비우스도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과 힘을 이용해 더 큰 대결을 벌이려 하기 때문에 형제의 싸움에 파괴되는 도시의 모습이 화면에 계속 전시될 뿐이다.
어쨌든 영화에서 모비우스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것의 부작용을 대하는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흡혈에 대한 욕구를 실험적으로 관찰하여 기록하지만 해결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그는 최대한 실제 인간 피를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악행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이번 <모비우스> 영화 안에서 그는 악인의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실제로 <스파이더맨> 코믹스에 등장하는 악당 중 한 명인 <모비우스>는 꽤 파괴적인 능력을 가지고 스파이더맨에 대항한다. 영화에도 나오듯 그는 박쥐의 능력과 동일하게 바람을 타고 날고, 빠르다. 또한 초음파를 이용해 멀리 있는 존재의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다. 악인이라는 특성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가 가진 능력은 이번 영화에서 모두 소개되고 있다.
아쉬운 완성도의 안티 히어로 영화 <모비우스>
그래서 영화 <모비우스>는 ‘모비우스’라는 스파이더맨의 악당 캐릭터를 소개하는 정도만 하고 있는 영화다. 주인공 캐릭터가 실제로 악한 일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완전한 악행을 일삼는 동생 마일로와의 대결만 보여줄 뿐이다. 그렇게 대결을 벌이며 모비우스가 가진 능력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영화의 마지막 다른 악당과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향후 그가 스파이더맨과 대립각을 세우며 재등장할 것이라는 분위기를 전달할 뿐이다.
제작사 소니가 완성해 내놓았던 <베놈> 시리즈의 경우도 영화적 완성도나 재미가 뛰어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에디(톰 하디)와 그의 몸에 들어간 심비오트 베놈이 서로 주도권을 갖기 위해 티격태격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두 캐릭터가 어느 정도는 흥미롭게 구축되었었다. 하지만 이번 <모비우스>에서는 그런 매력적인 캐릭터조차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면서 모든 면에서 아쉬운 완성도를 보여주게 되었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마블이 제작하는 <스파이더맨> 영화들에 비해 소니에서 제작하는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영화들에 더욱 실망할 수밖에 없다.
모비우스 역을 맡은 배우 자레드 레토는 과거 DC코믹스의 영화에서 조커 역으로 등장했던 적이 있다. 그 영화 역시 나쁜 완성도로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 <모비우스>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꽤 좋은 연기 능력을 가진 배우지만 히어로 영화 장르에서 만큼은 잘못된 작품 선택을 하는 배우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다니엘 에스피노자는 과거 <라이프>나 <세이프 하우스> 같은 긴장감 넘치는 영화를 연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 연출작인 <모비어스>는 과거 감독이 연출했던 작품들에 비해 많이 아쉬운 작품이 되었다.
제작사 소니는 앞으로도 자신만의 <스파이더맨> 유니버스를 계속 구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어찌보면 마블이 만들어놓은 아이디어를 통해 계속 관심을 받게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판권을 잡고 놓고 있지 않는 소니가 향후에 제작할 다양한 <스파이더맨> 관련 영화들이 조금 더 재미있고 괜찮은 캐릭터들을 조합하여 보여준다면 이런 실패들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모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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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3주차 씨네랩 개봉작 추천작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매 주 화요일!
한 주의 개봉작 중에서 여러분께 소개드리고 싶은 작품을
씨네랩이 직접 큐레이션하여 소개드리는 콘텐츠를 시작합니다!
이번 주는 코로나 팬데믹,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극장가의 관객 수가 현저히 감소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극장가의 개봉작을 추천드리는 것이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힘차고 영화로운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면서,
그럼 다같이 이번 주 주요 개봉작을 알아보도록 할게요. :)
1. 스크림
공포 | 미국 | 114분
감독 : 맷 베티넬리-올핀, 타일러 질렛 | 출연 : 멜리사 바레사, 니브 캠벨, 커트니 콕스 등
개봉 : 2022년 2월 17일
배급사 : 롯데엔터테인먼트
"잔혹한 살인 사건으로 우즈보로 마을이 충격에 휩싸인 지 25년이 지난 후, 고스트 페이스를 한 새로운 살인마가 다시 십대들을 노리면서 마을의 어두운 비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관전포인트* :
공포/호러영화의 상징적인 레전드 작품.
11년만에 다시 돌아온 <스크림>은 북미에서 개봉 당시 <스크림>시리즈 역대 최고 박스오피스 스코어를 기록했다고 하는데요. 개봉 당시 북미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북미의 평론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로부터 역대 <스크림> 시리즈 중 최고 수준의 영화라고 평가받는만큼 <스크림>시리즈를 사랑하시는 관객들 혹은 <스크림>시리즈를 기다려온 관객분들에게 의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지않을까 기대도 해보는데요.
<스크림>을 이끌었던 '웨스 크레이븐' 감독은 이제 없지만 맷 베티넬리-올핀, 타일러 질렛 감독이 그 유산을 잘 이어받아 신선한 재미와 공포영화의 오락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영화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니브 캠벨'과 '커트니 콕스'등 <스크림>의 역대 주인공, 원년멤버들이 이번 영화에도 출연할 예정이며 새로운 배우들와 조화를 이룬 세대교체 <스크림>의 모습도 기대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드라마 | 일본 | 126분
감독 : 하시모토 나오키| 출연 : 오이다 요시, 아리무라 카스미
개봉 : 2022년 2월 17일 개봉
배급사 : 영화사 진진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루가 봄과 함께 떠났다 사야카는 처음 겪는 이별이 낯설기만 하다 오래전 아들을 잃은 할아버지 후세와 함께 헤어진 이들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려 하는데… 그곳에서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관전포인트* :
일본 나오키상 수상작가 '이주인 시스카'의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
<양과자점 코안도르>,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등 다양하고 훌륭한 영화를 제작한 영화제작사 '윌코'의 설립가이자 30년 이상의 경력을 통해 일본영화의 대표주자로 불리우는 '하시모토 나오키' 감독의 연출작입니다.
또한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아역 배우 '닛츠 치세'는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를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딸로 유명한 아역 배우인데요.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아역배우라고 합니다.
'닛츠 치세'의 사랑스러운 매력과 그의 반려견과의 앙상블, 또한 극 중 세대를 뛰어넘는 따뜻한 우정을 보여줄 일본의 베테랑 배우 '오이다 요시'와의 연기합도 매우 궁금해지는 영화입니다.
3. 극장판 주술회전 0
애니메이션 | 일본 | 105분
감독 : 박성후 | 출연 : 오가타 메구미, 하나지와 카나, 코마츠 미카코 등
개봉 : 2022년 2월 17일 개봉
배급사 : ㈜대교
"어릴 적 소꿉친구인 오리모토 리카를 교통사고로 눈앞에서 잃은 옷코츠 유타. “약속해, 리카와 유타는 어른이 되면 결혼하기로” 옷코츠는 원령으로 변한 리카의 저주에 괴로워한 나머지, 자신도 죽기를 바라지만 최강의 주술사인 고죠 사토루에 의해 주술고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동급생인 젠인 마키, 이누마키 토게, 판다를 만나면서 굳은 결심을 한다. “살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필요해” “나는 주술고전에서 리카의 저주를 풀겠습니다” 한편, 옷코츠와 친구들 앞에 과거에 일반인을 대량으로 학살해서 고전에서 추방된 최악의 주저사인 게토 스구루가 나타난다. “12월 24일, 우리는 백귀야행을 결행한다” 주술사만의 낙원을 만들려는 게토는 비술사를 섬멸하겠다면서, 신주쿠와 교토에 천의 저주를 내리는데…과연 옷코츠는 게토를 막을 수 있을까? 그리고 리카의 저주를 풀 수 있을까?"
*관전포인트* :
일본의 만화책 시장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연재 만화책이라고 평가받는 <주술회전>.
<극장판 주술회전 0>은 역대 일본 TVA 극장판 중 흥행 순위 3위에 등극한 작품이라고 할만큼 유명한 작품입니다. 일본에서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하여 지금까지 총 100억엔에 가까운 수입을 달성했다고 하니, 엄청나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애니메이션이기도 합니다.
원작 만화책을 보신 분들에게는 작품이 애니메이션화(영상화)되어 극장에서 좋은 사운드와 큰 화면으로 만나보실 수 있다는 점에서 희소식이 아닐까 싶으니, 꼭 극장에서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이 소개하는 개봉작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 개봉작은 평소보다 주요 화제작이 많지 않은 것 같은 예상이 들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이번 주도 건강하고 안전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씨네랩 콘텐츠는 다음 주에 더 재밌는 개봉작 소개와 함께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안녕!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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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가 가가?(그 외계인이 너가 말한 그 외계인이니?)
줄거리
서른 살의 홍지효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외계인을 본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외계인이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애써 달래가며 살아가지만 도무지 평범하게 살 자신이 없다. 결국 지효는 동거를 앞둔 남자친구 '시국'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런데 이별을 고한 다음 날부터, 시국이 연락 두절이 되어 보이지 않는다. 지효는 시국의 마지막 위치를 추적해 한강 공원에 찾아가고, 그곳에서 외계인과 함께 우주선이 남긴 듯한 문양을 발견하게 된다. 자꾸만 주변에서 지지직거리는 전자기기들. 혹시 외계인이 납치해간 것은 아닐까?
지효는 큰마음 먹고 외계인을 연구하는 덕후 같은 모임에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감상 포인트
1. 1화에서 3화까지는 전개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서 어떤 사람에게는 살짝 답답할 수도 있다.
2. 연기 구멍 없이 배우들 모두 연기력이 훌륭해서 소재에 비해 오글거리는 느낌 없이 볼 수 있다.
3. 장르가 단순 SF, 미스터리 라고 하기엔 여러 가지가 혼합된 형태다.
감상평
마지막 회차까지 보고 나서 바로 든 생각은, "왜?"라는 물음이었다.
보통 이런 미스터리물은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결말 부분에서는 그 궁금증이 해소되어야 하는데, 이 드라마는 많은 것이 축약된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인물의 개인적인 성장이나 인물 간의 갈등 해소 부분에서도 만족스럽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각각의 소재를 얼기설기 꿰맨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청첩장 돌리니까 되게 어른 같다."
"지효 씨도 어른이야."
지효는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고자 노력했다. 모든 것이 적당한 때에 적당하게 이루어지는 듯했고, 무사히 정착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을 방해라도 하듯 야구 모자를 쓴 외계인은 지효의 삶에 깊이 침투해버리고 만다. 이윽고 지효는 자신이 여태껏 잘 싸매고 포장해온 것들이 일체 거짓임을 인정한다. 그리곤 진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거기에서부터 지효의 성장은 시작된다.
시국이 자발적으로 떠난 것임을 증명하는 증거들이 넘쳐나는데도 지효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일순간 평범하기를 포기한 지효는 몸을 사리기보단 점점 온몸으로 문제에 직접 부딪히며 대책 없는 싸움을 이어간다. 그러는 도중에 점차 지효의 내면은 단단하게 굳어간다.
지효가 자신이 쌓아온 모든 삶의 기반을 포기하면서까지 그토록 뛰어다녔던 것은, 내면의 결핍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러한 모든 질문들을 뒤로 미뤘던 지난날들에 대한 자기반성이자 해답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인 것이다.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인물은 비단 지효뿐만이 아니다.
사실 드라마 [글리치]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각자 이루지 못한 성장을 위해 움직인다.
시국도, 보라와 외계인 모임 사람들도, 지효의 부모도, 영기와 김직진도, 심지어는 호산나를 믿는 신도들도. 내면에 채워지지 않은 각자의 이상향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이 진실한 자신의 모습이든,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이든, 부모와 자식에 대한 애정이든, 친구에 대한 우정이든, 삶에 대한 위로이든.
보라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것의 답을 찾고자 한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함으로써 남들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쩌면 드라마 [글리치] 내에서 가장 확고한 답변을 얻어낸 것은 보라일지도 모르겠다. 보라는 이제 새로운 미지의 존재를 탐구한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의 이야기가 계속될 인물은 보라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시국에게 지효와 같은 외계인이 보이는 것은 아마 그들이 같은 형태의 결핍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기 때문이라 해석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안정되고 성숙한 어른이 되려고 했지만 결국은 헤어지고 만다. 스스로 어른이 되지 않고 타인에게 의존한 채로 어른의 형태만을 띠는 것은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효의 부모에 대해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식에게 자신을 투영해 성공한 자식 즉, 성공한 자신을 만들고 싶었던 지효의 부모는 자식에게서 독립하여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고자 한다.
우리들 모두가 내면에 성장하지 못한 자아를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 드라마 [글리치]는 그 자아가 가진 불만을 해소해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여기서 '것 같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미 드라마가 메시지를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내면의 성장을 갈구하던 인물에게 외부의 존재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밝혀버리는 것이야말로 그동안 쌓아온 탑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세운 것이 아닌, 외부의 힘을 통해 영원히 자립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에 더욱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인물들이 스스로 성장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는가. 그 지점에서 실망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실에서 우리는 외부의 도움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도움일 뿐이다.
결국 내면의 자아가 성장하느냐 마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모든 사진 출처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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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엘리트들 시즌 5> 공식 예고편
이번 시즌, 해방이 시작된다. 더 이상 잣대도, 규칙도 없다. 당신은 자유로워질 용기가 있는가? 《엘리트들》 시즌 5,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엘리트들넷플릭스 #Élite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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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트레인저> 예고편
낯선 사람을 구하지 마라!
황량한 시골마을,
청각장애 소년 웨슬리는 학교에서 돌아오던 중
총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는 낯선 남자를 발견한다.
그를 집 근처 헛간에 옮긴 후 음식과 약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낯선 남자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