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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채원2025-06-30 16:17:03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시선과 판단을 배제하다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리뷰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은 때때로 사건 그 자체보다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어떠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의 내면이 어떠한 지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령 <아사코>에서는 야외에서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사코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흔들리는 아사코의 시점 쇼트를 통해 재난 이후 어느 정도 회복된 일상에서도 사건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음을 보여주고,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지 2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가후쿠가 차 안에서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대사를 연습하는 모습을 통해 사건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그의 일상과 습관을 보여주며, 미사키와 가후쿠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그들이 서로 자신이 가진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하마구치의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시 영화 전체에서 주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작은 산골 마을에 도시의 자본가들이 오며 글램핑장 설립 문제를 둘러싸고 주민들과 도시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영화는 글램핑장 설립 문제를 둘러싼 사람들의 갈등과 대립 자체보다는 도시에서 내려온 외지인들에 대해 마을 주민들이 어떤 태도와 반응을 보이는지, 각 상황에 대해 인물들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고, 해당 사건이 일상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에 주목한다. 내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인간 중심적인 시각과 판단을 방지하려는, 혹은 부정하려는 듯한 영화의 태도를 볼 수 있는 지점들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인물의 시점 쇼트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이어지는 다른 컷들이나 인간의 시선이라고 보기엔 어딘가 어색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사실은 그것이 시점쇼트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지점들이었다. 이러한 지점들로 대표되는 장면으로는 오프닝 장면과 타쿠미가 하나를 데리러 간 장면, 타쿠미 모녀가 죽은 사슴의 뼈를 발견하는 장면과 엔딩장면을 말할 수 있다.

 

 먼저 오프닝과 엔딩 장면의 경우, 영화는 아래에서 나무를 위로 올려다보고 있는 듯한 시점의 화면을 제시하며 화면은 인물이 나무를 올려다보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듯 천천히 움직인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이 화면에는 어떠한 떨림도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움직이고 있는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이었다면 적어도 걸어가는 동안 인물의 움직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떨림이 감지되어야 하는 게 마땅하다. 특히 엔딩의 경우 거친 인물의 숨소리가 함께 등장하고 있기에 안정적인 화면은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보이는 움직임에서는 그러한 떨림 없이 수직 방향으로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이것은 다소 기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 이것은 어떠한 인물의 시점 쇼트, 인간의 시선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바와 달리, 기계의 시선으로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패닝으로 담는다. 이를 통해 관객은 마치 이동 중인 차 내부에서 차창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고, 해당 장면에 앞서 타쿠미가 딸 하나를 데리러 가기 위해 숲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목격했기에 관객은 이 시선이 차 안에 위치한 타쿠미의 시점일 것이라고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이내 한 대의 차가 프레임-인하고, 이 차에서 타쿠미가 내리며 앞선 관객의 기대는 무너진다. 만약 이것이 타쿠미의 시점이었다면 우리가 타쿠미의 차가 프레임-인 하는 걸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보고 있는 이 시선은 누구의 시선일까? 이어지는 장면에서 하나가 이미 홀로 걸어갔다는 말에 타쿠미는 다시 차를 돌려 나간다. 이때도 역시 우리는 그가 떠나는 길을 그의 시점이 아닌 차의 후면에서 바라보게 된다. 타쿠미와 하나가 죽은 사슴의 뼈를 발견하는 모습에서도 관람자는 어딘가 어색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한 어색함은 하나와 타쿠미의 정면 바스트-숏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장면은 숏-리버스 숏으로 연결되며 사물을 보고 있는 주체를 담은 쇼트, 그리고 관찰의 대상이 등장하는 쇼트가 이어지는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해당 장면은 죽은 사슴의 뼈가 먼저 등장한 뒤 이를 바라보고 있는 타쿠미와 하나의 모습이 로우앵글과도 가깝게 보이는 정면으로 등장하며 죽은 사슴의 뼈의 시점에서 바라본 인간, 혹은 땅(자연)의 시점에서 바라본 문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 가깝게 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 뿌연 안개 속 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점점 하나와 사슴의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 장면 역시 머지않아 카메라 양쪽에서 타쿠미와 타카하시가 프레임-인하며 이것이 인물의 시점일 것이라고 예상한 관객의 기대가 무너진다. 이것이 타쿠미나 타카하시의 시점 쇼트였다면 그들의 뒷모습은 결코 등장할 수 없을 것이고, 그들이 아닌 다른 어떤 인물이었다면, 타쿠미가 타카하시의 목을 조르는 상황 혹은 타쿠미가 하나를 안는 장면에서 존재가 감지되어야 했지만, 해당 장면에서는 타쿠미, 타카하시, 하나 세 인물과 사슴뿐 다른 어떤 존재도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것이 어떤 인물의 시점 쇼트가 아님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처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정 인물의 시점 쇼트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며 인간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파악하는 것을 배제하고자 한다. 인간의 시점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사유하려는 순간 영화는 기계적인 움직임과 예상치 못한 관점을 통해 우리의 판단을 제지하는 것이다. 니체는 소크라테스 주의에 대해 아무도 자기 자신에게 해를 입히고자 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악은 의도하지 않고 일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악인은 자기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만일 악이 좋지 않은 것임을 그가 알았다면 그것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어떤 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것을 행했을 리 없다는 가정으로부터 선과 앎, 악과 무지는 곧 동일시된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이러한 니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는 말 그대로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피해와 병치되는 타카하시의 피해는 타쿠미에게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했던 으로, 새끼를 지키려는 본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을에 글램핑장을 설립하려는 기업은 그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이 있기에 해당 일을 추진하고자 하고, 엔터업에 종사하는 타카하시와 마유즈미는 지원금이라는 선을 위해 행동한다. 특히 주민과의 대화에서 타카하시와 마유즈미는 해당 마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모습이 드러나는데, 니체의 말처럼 만약 그들이 마을에 가해질 악이 자신에게 돌아올 선보다 크다고 인지했다면 그들은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들뢰즈는 참과 거짓이라는 진리의 문제는 언제나 선과 악이라는 언제나 앞서 결정 되어있는 전제 뒤에 따르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의미와 우리가 믿는 것의 가치에 따라 우리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진리들만을 소유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며, 이렇게 미리 결정 되어있는 참과 거짓을 와해시키는 역량을 들뢰즈는 시간-이미지에서 발견하고 이를 거짓의 역량이라고 부른다. , ‘거짓의 역량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서의 오류가 가지는 상대적인 힘이 아니라 참과 거짓의 판단 체계 자체를 와해시키는 힘이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들뢰즈가 시간-이미지에서 발견한 거짓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영화는 인간의 시선과 인간 중심적 가치판단 체계를 계속해서 전복시킴으로써 관객이 쉽사리 악인을 특정할 수 없게 하고, 어떤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거나 악인의 존재를 찾는 것에 집중하는 대신 관객들을 악의 범주와 규정에 대해 사유하는 길로, 최근(하류의 변화)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 어떠한 변화(상류의 변화)에 대해 사유하는 길로 이끈다.

작성자 . 캘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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