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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2025-06-29 17:12:17

전쟁의 상흔,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학이 난다, The Cranes are Flying(1957)》 해빙기의 러시아에서 건져 올린 기억



《학이 난다, The Cranes are Flying(1957)》 해빙기의 러시아에서 건져 올린 기억 

 

 

영화 《The Cranes Are Flying》(1957) 포스터 ⓒ TMDB (https://www.themoviedb.org) 

 

 

1957년, 러시아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한 마리 학이 스크린 위로 날아올랐다. 미하일 칼라토조프 감독의 《학이 난다》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전쟁 자체보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감정에 집중한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소련 사회 전반이 움츠려 있던 어둠 속에서, 마침내 ‘사람’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첫 신호탄이기도 했다.

 

 

시대를 바꾼 바람, 해빙기


영화가 제작된 1957년은 러시아가 소련 체제를 유지하던 시절, 그중에서도 ‘해빙기(Thaw)’로 불리는 짧고도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스탈린의 사망(1953) 이후, 흐루쇼프가 집권하며 소련은 기존의 철권 통치를 완화하고 점차 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영화는 철저히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즉 국가의 이상을 찬양하고 인민의 낙관을 강조해야만 했다.

개인의 고통이나 감정, 더 나아가 사랑조차도 스크린에선 부적절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해빙기의 도래는 달랐다. 일리야 에렌부르그의 소설 『해빙』이 남녀의 사랑과 결혼, 개인의 행복 같은 ‘금기’의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시대의 변화를 상징한 것처럼, 영화 역시 조금씩 ‘현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영화 역시 러시아 영화사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제작 되었는데, 탈린 시대의 전쟁 영웅주의나 집단주의를 넘어 평범한 이들의 고통에 시선을 고정한다. 병사로 전선에 나간 보리스, 그리고 남겨진 연인 베로니카. 그녀는 전쟁과 상실, 죄책감과 현실의 고통 속에서 점점 무너져간다. 과거라면 절대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을 감정들이다. 칼라토조프 감독은 그녀의 아픔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의 ‘심리’에 천착하며, 단지 전쟁이 아닌 ‘전쟁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의 마음’을 드러낸다. 이로써 《학이 난다, The Cranes are Flying(1957)》는 단순한 전쟁영화가 아니라, 전쟁 시대의 심리극에 가까운 독특한 결을 가지게 되었다.

 

 

 

금기 너머, 새로운 영화의 언어



 

 BY COSMO BJORKENHEIM

 

 

이러한 감정 표현은 이전엔 금기였다. 스탈린 체제 아래선 전쟁의 희생은 영광이어야 했고, 연애는 공동체 보다 앞서선 안되는 추상적 가치였다. 하지만 해빙기의 도래와 함께 영화계는 억눌렸던 창작 욕망을 해방시키기 시작했다. 연간 10편 미만이던 소련 영화 제작 편수는 1954년 이후 급증했고, 영화는 다시금 ‘사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1956년, 그레고리 추흐라이 감독의 《마흔한 번째》가 인간 감정의 복잡함을 조명하며 해외로부터 주목을 받았다면, 그 이듬해 나온 《학이 난다, The Cranes are Flying(1957)》는 그러한 흐름의 결정체였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국제적으로도 소련 영화의 새 물결을 대표하는 이정표가 된 것이다. 

 

 

전쟁의 상흔,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학이 난다, The Cranes are Flying(1957)》는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그 감정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전쟁이 빼앗아간 것은 단지 생명만이 아니었다. 꿈과 사랑, 미래를 향한 신념 같은 비가시적인 가치들 또한 무참히 무너졌다. 그리고 그 파편을 견디며 살아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이 영화가 기록한 진짜 주인공들이다. 몇 해 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을 때 나는 ‘영원의 불꽃(Plamya Vechnosti)’ 앞에 섰다.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을 기리는 장소였다. 365일 꺼지지 않는 불꽃과 헌화된 꽃들, 전쟁을 기억하는 이들의 고요한 기도 속에서 문득 《학이 난다》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학이 날아오르던 그 순간, 영화는 말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상처는 남는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The Cranes Are Flying Movie Review

이미지 출처 | Simbasible (2025.06.29)

 


《학이 난다, The Cranes are Flying(1957)》는 과거의 이야기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를 전쟁터로 떠나보낸 이들이 감내해야 했던 상실, 침묵 속에 삼켜야 했던 눈물과 분노는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중동에서는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격화되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세계의 위기를 지혜롭게 풀어낼 수 있는 현명한 지도자의 등장이 절실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들 또한 국제 정세를 안정시킬 리더십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 강대강의 대립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극단적인 형태의 국제전으로 치닫게 될지도 모른다. 1957년, 전쟁의 참혹함을 지나 하늘로 날아오른 한 마리 학처럼, 사람들은 결국 사랑을 품고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전쟁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그렇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학이 난다, The Cranes are Flying(1957)》를 다시 꺼내봐야 한다. 영화가 전하는 슬픔의 무게를 기억하고, 그 너머에 담긴 인간의 존엄과 삶의 연속성을 되새겨야 한다. 전쟁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막아야 할 미래의 현실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작성자 . 크레마

출처 . 유경, 「시대와 영화 - 소련의 ‘해빙기’와 영화 <학이 난다, The Cranes are Flying>」 - 「영화 <학이 난다, The Cranes are Flying>의 시대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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