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5-28 15:04:27
🎫 5월 5주 차 개봉예정작
🎩 웨스 앤더슨표 첩보 스릴러...?
📮 5월 5주차 씨네뉴스가 도착했습니다!
마크 러팔로, <스파이더맨: 브랜뉴 데이>에서 브루스 배너로 복귀한다고 합니다! MCU 10번째 등장으로,
단순 카메오가 아닌 주요 역할로 참여 예정입니다.
배너가 헐크로 변신할지는 미정이지만, 피터 파커의 과학적 멘토 역할이 유력하며 <쉬헐크>이후 첫 복귀이자, 향후 <어벤져스: 둠스데이>와도 이어질 흐름이라고 합니다.
이번 헐크의 등장은… 단순한 팬서비스가 아닐지도?
🗞️
❶ 마크 러팔로, <스파이더맨: 브랜뉴 데이>에서 브루스 배너로 복귀
❷ 이병헌, <오징어 게임 3> 앞두고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배우 특별전 주인공 선정
❸ 라이언 레이놀즈, R등급 <스타워즈 영화> 각본 집필 중
❹ 이정재, 英 제작사와 K-POP 첩보 영화 <시크릿 아이돌> 기획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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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이 전부인 영화 5선
스포주의 | 절대 잊혀지지 않는 영화 결말이 있나요?
오늘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라스트씬의 대사들을 선정해왔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어떤 대사들이 남아있나요?
전 세계가 사랑한 거장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그 위대한 꿈의 시작! 난생 처음 극장에서 스크린을 마주한 순간부터 영화와 사랑에 빠진 소년 ‘새미’(가브리엘 라벨). 아빠 ‘버트’(폴 다노)의 8mm 카메라를 들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담기 위해 열중하던 새미는 우연히 필름에 포착된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고 충격에 휩싸인다. 진실을 비추는 필름의 힘을 실감한 새미에게 크고 작은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엄마 ‘밋지’(미셸 윌리엄스)의 응원으로 영화를 향한 열정은 더욱 뜨거워져만 가는데…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 영화의 모든 순간과 사랑에 빠진다!
5년동안 무고하게 감옥에 있었던 빌리 브라운(Billy Brown: 빈센트 갈로 분)은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1만 불짜리 내기에 지는 바람에 그와 같은 쪽에 내기를 걸었던 사람들 대신 감옥에 들어갔다. 그는 냉혹하고 폭력적인 사내다. 그래서 자신의 불행을 내기 경기에서 진 스코트 우드(Scott Wood: 봅 왈 분) 탓으로 생각한다.
빌리는 한 가지 생각, 복수밖에 없다. 빌리는 부모에게 전화를 건다. 빌리의 부모는 그가 감옥에 있었던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들은 아들 빌리와 빌리가 편지에서 자랑했던 새신부 웬디(Wendy: 로산나 아케트 분)를 몹시 보고 싶어한다. 혼자 갈 핑계가 궁해진 빌리는 댄스 연습장에서 나오는 젊은 댄서 라일라를 발견한다.
그는 그녀를 잡아서 강제로 차로 밀어 넣은 다음 자신의 아내 노릇을 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한다. 이 우울하고도 낯선 남자에게 겁을 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매력을 느끼는 라일라는 그의 뜻에 따르기로 한다. 막상 집으로 갔으나 스포츠광인 어머니와, 잔인하고 우울증에 빠진 아버지는 빌리에게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반면 라일라는 빌리의 부모에게 즉각적으로 애정을 불러일으킨다. 라일라는 자신의 역할을 열정적으로 연기하면서 인질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잡는다. 빌리는 옛친구 군(Goon: 케빈 코리건 분)에게 전화하고 군은 스코트가 그 지역의 스트립쇼 극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빌리와 라일라는 부모의 집을 떠나 한 더러운 모텔에 투숙한다. 빌리가 아침이면 떠날 것을 아는 라일라는 그에게 함께 목욕하도록 설득한다.
그들은 서로의 품안에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밤을 보낸다. 다음 날 빌리는 스트립쇼 극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스코트를 찾는다. 빌리는 스코트가 한물 간 술주정뱅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처럼 외롭고 지친 사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빌리는 스트립쇼 극장에서 걸어나가면서 생애 처음으로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 라일라.
“나는 완벽했어요.” 새롭게 해석된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순수하고 가녀린 백조와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흑조, 1인 2역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프리마돈나 ‘니나’. 완벽을 향한 그녀의 욕망은 집착이 되어가고 모두 자신을 파괴할 것 같은 불안감이 깊어질수록 점차 어두운 내면이 드러나는데… 흑조를 탐한 백조의 핏빛 도발이 다시 시작된다.
트루먼 버뱅크는 작고 조용한 섬마을에 사는 평범한 세일즈맨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범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촬영용 조명등이 떨어지고, 어렸을 적 자신이 익사를 직접 목격했던 아버지가 살아오고, 또 누군가에 의해 끌려가는 등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나서부터였다. 평생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지냈던 일상이었지만 주변을 보니 이상한 일이 너무 많았다. 결국 자신이 특별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확신을 하게된 트루먼은 첫사랑 실비아의 모든 것이 다 거짓라는 말을 되새기며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결심하게 되는데...
모두가 기다리던 여름방학. 하지만 마사오는 전혀 즐겁지 않다. 할머니는 매일 일을 나가시느라 바쁘고 친구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다나 시골로 놀러 가버려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 어느 날 먼 곳에 돈을 벌러 가셨다는 엄마의 주소를 발견한 마사오. 그림 일기장과 방학숙제를 배낭에 넣고 엄마를 찾아 여행길에 오른다. 친절한 이웃집 아줌마는 직업도 없이 빈둥거리는 전직 야쿠자 남편 기쿠지로를 마사오의 보호자로 동행시킨다. 왕복 600km의 여정. 그러나 그 여행은 마사오도 기쿠지로도 잊을 수 없는 생애 최고의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는데... 52세 철없는 어른과 9세 걱정많은 소년. 그들이 마침내 찾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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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은 결코 온유하지 않다
2024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가 11월 7일부터 13일까지 일주일간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렸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성소수자 국제영화제로, 개최 기간 동안 국내외의 다양한 퀴어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여러 장단편 영화 중 뉴 프라이드 섹션에 선정된 <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뉴 프라이드는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과 독창적인 작품 세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선보이는 섹션으로, 신인 감독으로 분류되는 데뷔작과 두 번째 작품을 기준으로 뛰어난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정하여 상영한다. 수 이쉬안 감독은 <반교: 디텐션>의 연출을 맡은 바 있고, <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이 그의 첫 장편영화이다.
1994년 대만의 계엄 해제 이후, 학생들은 시위에 한창이었다. 학교에서 암묵적인 복종 문화를 답답해하던 여대생 치웨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파업에 동참한다. 시위 도중 치웨이는 서서히 칭에게 끌리게 되지만, 칭의 남자친구이자 시위의 리더인 쿠앙 또한 치웨이에게 관심을 보인다. 치열한 시위는 개인의 욕망까지 불을 붙이고, 치웨이와 칭의 감정은 점점 깊어지낟. 시위와 삼각관 격렬해지고, 서로를 사랑할수록 상처와 고통은 더해진다. 권력과 사랑의 투쟁은 서로 얽히며, 결국 치웨이는 자신의 욕망과 감정도 그들의 창작의 자유처럼 억제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이 시위는 단순한 자유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그녀 내면의 각성을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 줄거리
치웨이가 다니는 미술대학은 학과장의 눈 밖에 나면 졸업이 어려울 만큼 독재적인 분위기이다. 치웨이는 학과장의 비위를 맞추기보다는 맞서는 인물로 복종 문화를 파훼시키고 자유를 얻기 위해 학생회 시위에 참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학생회장인 쿠앙과 그의 연인으로 다른 과이지만 미대 학생회 시위를 돕고 있는 칭을 만나게 된다. 시위는 당연하게도 순조롭지 않다. 학교는 학과장 편에 서 학생회를 지지하다 해임당한 교수가 마치 학생회 때문에 그만둔 것처럼 여론을 조성하고, 반성문을 쓰면 수업 거부 등의 시위로 인해 낮아진 학점을 복구해 주겠다며 학생들을 회유하기도 하며 학생회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런 궁지에서 학생회 내부 역시 분열한다. 그들은 특히 칭과 쿠앙은 시위 방식과 관련하여 의견이 계속 충돌하게 된다. 교육부 앞에서의 농성, 학과 사무실 점거, 단식 시위 등을 칭이 이끌자 쿠앙은 이를 탐탁지 않게 바라본다. <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에서는 시위가 흘러감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과정만을 보여주지 않고 시위를 이끌어가는 학생회 인물들의 심리도 세밀하게 접근한다.
학생회 내부에서도 학과장 눈 밖에 나 퇴학을 당해 이 시위의 시발점이 된 인물, 학과장의 학점을 이용한 압박에 이기지 못하고 반성문을 쓴 인물, 정치인의 딸인 칭을 이용하려는 인물, 칭과 쿠앙의 갈등을 앎에도 시위를 위해 눈을 감는 인물 등이 존재한다. 특히 학생회장으로서 학교, 정치인 등과 협의해 나가며 시위를 전개해 나가길 원하는 쿠앙과 미대와 관련은 없지만 독재적인 운영방식에 저항하기 위해 다소 과격한 시위를 주도하는 칭, 그리고 자유를 위해 시위에 참여하며 칭과 쿠앙의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된 치웨이, 이 셋 사이에는 로맨스까지 끼며 각자의 감정들이 끝없이 부딪힌다.
칭과 쿠앙, 그리고 치웨이 중 가장 복잡한 인물은 바로 칭이다. 칭은 세상과 불화하는 인물이다. 정치인인 아버지와 학생회장인 연인 쿠앙 둘 다 자신의 일에는 방해가 되지 않는 하지만 옆에 두면 자신이 더 돋보일 수 있는 존재로서 칭을 대한다. 그들이 칭을 대하는 태도는 곧 세상이 칭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지며, 세상이 칭을 칭 그대로보다는 정치인 아버지를 둔 딸, 학생회장의 든든한 지지자로 보게끔 만든다. 그렇기에 칭은 누군가의 도구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에 끊임없이 불화할 수밖에 없다.
칭이 시위에 참여하는 이유는 분명 미대 학과장의 독선적인 학과 경영방식에 대한 저항도 있겠지만, 자신을 얽맨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를 추구하기 위함도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칭의 감정이다. 칭의 감정선은 영화 내내 끊임없이 요동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칭이 왜 모든 것에 이성적이지 못한지, 자신만을 끌어안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칭이 평생 본인 그대로 봐주는 세상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칭은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한 꺼풀 씌워진 시선들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칭은 당연히 순간순간을 회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만난 인물이 바로 치웨이이다.
치웨이는 단순한 인물이다. 본인의 외모, 그림 등에 대해 트집 잡는 학과장에게 겁내지 않고 곧장 항의하고 자신에게 작업을 거는 선배들을 딱 잘라내기도 하며, 칭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을 때조차 혼란스러워하지만 칭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무언가를 꼬아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반응하는 치웨이이기에 복잡한 내면을 갖고 있는 칭 역시 그에게만은 속마음을 끄집어낸다. 물론 치웨이의 존재가 있다고 해도 솔직히 보는 내내 갑갑한 마음을 감출 수 없긴 하다. 학내 자유를 위한 투쟁도 칭과 칭웨이의 사랑도 어느 하나 시원시원하게 풀리지 않는다. 계속 부딪히고 회피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하지만 치웨이는 다들 칭에게서 등을 돌릴 때 그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칭의 곁에 있는다.
<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의 대만 원제는 '青春並不温柔'로 직역하면 '청춘은 결코 온유하지 않다'이다. 영화 속 청춘들은 각자의 이해는 다를지라도 자신을 억압하는 세계에 맞서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투쟁한다. 어떤 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그들이 더 큰 세력에 저항하는 게 어리석다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춘들만이 갖고 있는 자유에 대한 의지와 강인한 생명력은 그만의 힘을 갖고 있다. 겁도 없이 개인으로서 시작된 저항은 분명 입장은 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로 이어진다. 영화 속에서 학과장에 대한 저항으로 모인 학생회 사람들이, 세상과의 불협화음에 의해 칭과 치웨이가 연대를 한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 시위가 어떻게 끝나건 그들의 투쟁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어질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칭과 치웨이의 그리고 청춘들의 끝없는 투쟁을 응원한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소녀들이여, 거센 비처럼>을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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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나더 레코드 / Another Record, 2021
앞서 예정된 "디즈니 플러스"만으로도 국내 OTT 플랫폼 시장의 열기는 뜨거운 상태입니다.
여기에 갑작스레, "애플 TV"의 등장은 더 뜨겁다 못해 과열되고 있음을 보여주니 기존에 상비하고 있는 업체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 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어나더 레코드>는 "시즌"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오리지널 작품입니다.
<큰엄마의 미친봉고>와 <더블패티> 이후 한동안 기존 영화들의 배급권을 샀던 것과 달리, 오직 시즌에서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에 등판하는 감독은 이름 자체가 장르인 "김종관"감독이고, "신세경"배우이니 기대감도 컸습니다.
과연, <어나더 레코드>는 어떤 작품이었는지? -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1.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네이버에서 소개하기를 <어나더 레코드>의 장르는 "다큐멘터리"입니다.
근데, 포스터를 보자니 그냥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시네마틱 리얼 다큐멘터리'로 명명되어 있습니다.
기존 다큐멘터리와 무슨 차이가 있겠냐만, <어나더 레코드>는 보여주는 화면에서 그 차이를 보여줍니다.
기존 다큐멘터리는 의도적인 디렉팅이 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투박하다는 느낌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해당 작품은 진짜 좋은 화질로 보는 영화처럼 조명도 딱딱 갖춰져서 가뜩이나 이쁜 얼굴이 더 이쁘게 나와 신세경이 전개이고 개연성으로 관객들을 압도해나갑니다.
이로 <어나더 레코드>는 관객들에게 생경한 '시네마틱 리얼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익숙하게 만듭니다.2. 이 어색함은 뭘까?
근데, 이를 제외하고는 <어나더 레코드>를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어색한 점들이 많습니다.
앞전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의 리뷰를 인용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라면, "다큐멘터리 = 진실"이라는 것입니다.'처럼 기존 관객들에게 자리 잡힌 "다큐멘터리"의 인식입니다.
이런 차이는 '다만, 영화·드라마와 다르게 의도적인 디렉팅이 없다는 것에 "다큐멘터리 = 진실"이라는 말에 부함 되나 완벽한 진짜로 볼 수는 없습니다.'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의도적인 디렉팅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앞서 말한 '진짜 좋은 화질, 갖춰진 조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해당 작품의 기호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기존 "다큐멘터리"는 가독성을 위해 '자막'을 달아 '어떤 대화들이 오가는지?'를 보여주는데, 해당 작품에서는 이게 없어 무슨 말을 하는지 동참하기 참으로 어려웠습니다.3. 산만하다.
이외에도 <어나더 레코드>의 아쉬운 점은 이야기가 되는 구심점이 없습니다.
가령, <동네 한 바퀴>나 <한국인의 밥상>, 이외에도 많은 "다큐멘터리"들을 살펴보면 주제가 있습니다.
큰 윤곽으로 제목을 정하고, 세부적으로 어느 "지역"을 설정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 달리 <어나더 레코드>는 없습니다.
여기에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도 있어야 하나, 그런 점도 없어 94분이라는 짧은 분량임에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기본에 충실하자!
특히, 첫 번째 만남에서 "타로"를 보는데, 그녀에게 "지도"를 주는데요.
이를 통해서, 앞서 말한 주제인가 싶지만 이를 더 이상 보여주지도 말하지도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막도 없는 다큐멘터리에서 지도를 화면 가득히 보여주는 건 꾀죄죄한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건 "다큐멘터리"라고 명시했음에도 정작 받은 느낌은 그녀의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는 "V-log"에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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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운 작품에서 빛나버린 배우들의 연기력
어떠한 정보도 없이 조승우가 나오는구나! 사극이구나! 라는 점만 알고 왔던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이 작품이 명성황후, 민비에 대한 이야기인 줄 꿈에도 모르고 봤다. 극이 시작하면서 민자영이 어쩌고 이래서 민,,,자영,,? 명성황후? 하고 뒤늦게 깨달았고, 역사왜곡은 이해하더라도 과연 그 입장 차이를 잘 풀어낼 수 있을지 불안해 하며 본 작품이었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시놉시스
세상에 존재를 알리지 않은 채 자객으로 살아가던 무명은 어느 날,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피비린내에 찌든 자신과 너무나 다른 여인, 자영을 만나게 된 것. 하지만 그녀는 곧 왕후가 될 몸으로, 며칠 후 고종과 자영의 혼례가 치러진다. 무명은 왕이 아닌 하늘 아래 누구도 그녀를 가질 수 없다면, 자영을 죽음까지 지켜주겠다고 다짐하고, 입궁 시험에 통과해 그녀의 호위무사가 되어 주변을 맴돈다.
한편, 차가운 궁궐 생활과 시아버지와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하루도 안심할 수 없는 나날들을 보내던 자영은 무명의 칼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외압과 그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한 자영의 외교가 충돌하면서 그녀를 향한 무명의 사랑 또한 광풍의 역사 속으로 휩쓸리게 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왜곡이야 그렇다치고,, 그럼 개연성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명성황후, 민비에 대한 재현은 언제나 역사왜곡 논란이 거듭된다. 왜냐면 그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개혁 개방 정책을 한 왕후를 좋게 보기도 하지만 그 방향은 옳았을지 모르지만 그 방법은 옳지 못했기에 나쁘게 평가를 하기도 한다. 더불어 을미사변으로 시해됐을 때 목격자들 마저 모조리 몰살당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 대해서 상세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그 소재는 미디어 재현으로서 굉장히 적합한 소재이면서도 역사 왜곡이 너무나도 쉽게 될 수밖에 없는 소재이기도 하다.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이처럼 논란이 많은 명성황후, 민비를 소재로 택햇기 때문에 역사 왜곡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왜곡을 한다 하더라도 그 왜곡된 내용 안에서는 개연성이라도 갖춰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보는 내내 도대체 저 둘은 왜 사랑에 빠진 것인지 알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 봤는데...? 수애 정도의 미모면 물론 한 눈에 반할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까지 목숨바쳐 사랑할 일인가? 저렇게까지 식음을 전폐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랑이라는 큰 주제 자체에서 이미 개연성을 잃어버려서 영화를 보는 내내 큰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불필요한 장면들이 너무 많았던 작품
주제 자체로도 개연성이 없는데 장면장면도 개연성이 없었다. 불필요한 장면들이 너무 많이 나왔다. 무명이 자객이고 무술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굳이 저렇게 티나는 CG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휘영청 달빛이 쏟아지는 바다 위 쪽배에서 칼로 싸우는데,,, 무슨 만화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 물 마시며 보다가 사례 들릴 뻔 했다. 그리고 연희장에서 뜻하지 않게 펼쳐진 대련에서 갑자기 빙판 CG라니.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격동적이고 화려한 무술을 보여주고 싶다면 저런 CG 말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게 훨씬 더 임펙트가 있었을텐데 안타까웠다.
또한, 무명을 의식하기 시작한 고종이 무명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기 위해 일부러 무명을 침실밖에서 호위를 하게 하고 자영과 관계를 갖는다. 굳이,,? 이런 질투유발작전을 펼칠 이유가 있었을까? 이렇게 정말 쓸데없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잇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작품에서 빛나버린 배우들의 연기력
이렇게 안타까운 작품에서 더 안타까웠던 점은 저렇게 평면적인 캐릭터들을 배우들이 너무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진짜 너무 안타까웠다. 어떻게 조승우, 수애를 데리고 와서 이런 작품에 출연시킬 수 있었을까? 솔직히 조승우, 사극, 액션, 멜로 이 조합을 보고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보는 내내 손발이 오글거리고 대본을 보고 출연을 결심한 것이 맞을까? 어디 누구한테 협박당해서 출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작품은 정말 안타까웠지만 그 와중에 배우들은 무명과 자영의 캐릭터에 온전히 녹아들어서 그들은 빛이 나고 있었다. 하지만 빛이 난다고 해도 이 영화는 추천할 수가 없다. 킬링타임용으로도 아까운 작품이니 말이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조승우 필모 깨기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 작품이었을 텐데,, 정말 안타깝고 씁쓸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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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니 데이 인 뉴욕(A Rainy Day in New York/ 2018/ 미국)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뉴욕, 뉴욕>
개츠비와 애슐리는미국 뉴욕주 북부에 위치한 인문학의 명문, "야들리대학교" 캠퍼스 커플이다. 둘은 학교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만났다. 야들리대학교를 좋아하는 개츠비의 어머니는 자신처럼 아들이 훌륭한 문학가가 되기를 원한다. 그뿐 아니라 피아노를 가르쳤고 뉴욕의 모모한 미술관에는 꼭 가도록 챙기면서 예술적 소양을 길러주었다.
개츠비는 문학가로 이름을 떨친 어머니가 속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가을마다 맨해튼의 집에서 파티를 열며 두 아들들이 꼭 참석하기를 원하나 순종적인 형과 달리 애슐리는 어머니의 '허세 가득한 버젓함'이 싫어 파티를 피할 궁리만 한다.
어머니의 파티가 열리는 주말, 애슐리는 예술 영화감독 롤란 폴라드를 뉴욕 맨해튼에서 인터뷰할 기회를 얻는다. 진작에 주말을 뉴욕에서 지내며 애슐리에게 여러 명소들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던 개츠비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함께 보내게 될 특별한 주말에 마음이 설렌다.
그러나 뉴욕에 도착하여 애슐리가 롤란 감독을 만나게 되자마자 일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영화에 대한 평가에 매우 엄격한 롤란. 그의 신작은 애슐리가 보기에 훌륭하지만 롤란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다. 시사회에서 완성된 영화를 보고 우울했던 그는 인터뷰 도중에 사라지고 만다. 시나리오 작가 테드에게 남겨진 애슐리는 어쩌다 테드 아내의 불륜 사건에 휘말려 개츠비와의 저녁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만다. 아내로부터 불륜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되어 옥신각신하던 테드는 롤란이 있을 만한 곳의 주소를 애슐리에게 건네며 택시를 태워 보낸다.
주소대로 영화 스튜디오로 찾아간 애슐리. 간발의 차이로 롤란은 놓치고 그대신 매력적인 배우 프란시스코를 만난다.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애슐리에게 접근한다. 프란시스코와 함께 있던 애슐리는 파파라치들에게 노출되어 방송을 타게 된다.
프란시스코가 초대한 영화인들 파티에 간 애슐리. 그 자리에서 롤란과 테드, 프란시스코 등 세 사람 모두와 어울리며 애슐리는 꿋꿋이 인터뷰를 이어간다.
한편 애슐리와 함께 지내려고 세웠던 계획이 모두 무너지자 개츠비는 맨해튼을 거닐며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다. 뒷담화 킹 트롤러는 의대에 다닌다고 했고 영화학교에 진학한 조쉬는 길에서 학교 영화를 촬영 중이었다. 배우 구하기가 여의치 않아 이웃 친구들을 동원하여 만드는 영화에는 고교시절 개츠비의 여자친구였던 에이미의 동생, 챈이 출연 중이었다. 챈은 언니와 개츠비가 사귈 때 여느 남학생들과 많이 달랐던 개츠비를 몰래 좋아했었던 후배. 남자 배우가 궁했던 차에 급하게 캐스팅된 개츠비는 몇 번의 NG 끝에 화끈한 키스 장면까지 해치운 뒤 챈과 헤어져 형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엄마에게 자신이 뉴욕에 왔음을 비밀로 해달라고 약속하고 형 대신 포커게임을 하기로 한다.
비가 세차게 내려 택시를 잡은 개츠비와 거의 동시에 같은 차에 오른 챈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동행한다. 챈은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는데 그림 속 옛날 인물들의 의상에 관심이 많았던 것.
그런데 미술관에서 개츠비는 파티에 참석하려고 뉴욕에 온 삼촌 부부와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아 어쩔 수 없이 어머니에게 전화로 애슐리와 함께 파티에 가겠다고 알린다.
형대신 포커게임을 한 개츠비는, 언제나처럼 또 이겨서 수 만불을 손에 쥔다.
애슐리가 프란시스코와 함께 있는 장면을 TV로 보고 낙심한 개츠비는 애초에 그녀와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던 칼라일호텔의 바에 들러 혼자 술을 마신다. 그러다가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금발 미녀를 만나 거금을 주고 어머니의 파티에서 애슐리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집을 찾은 개츠비. 그의 어머니는 한눈에 금발의 미녀가 창녀임을 알아채고 내보낸다. 그리고 개츠비를 불러 가족의 비밀을 알려주는데 개츠비는 충격을 받는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반감에서 놓여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문 닫을 시간에 칼라일 바를 다시 찾아 피아노를 치는 개츠비 앞에 비에 흠뻑 젖은 애슐리가 나타난다. 그렇게 토요일은 둘의 계획과 관계없이 전혀 로맨틱하지 않게 날아가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 센트럴파크에서 애슐리의 원대로 마차를 타던 개츠비는 느닷없이 무언가 깨달은 듯, 특종 기사를 쓰게 되어 의기양양한 애슐리에게 돈을 쥐어주고 자기는 뉴욕에 남겠으니 혼자 학교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둘이 헤어지자 다시 비가 내리며 뉴욕은 안개 속으로 잠긴다.
노래하는 시계탑 아래에서 저녁 6시에 낭만적인 생각에 잠겨 서성이는 개츠비 앞에 그의 마음이 닿아있는 한 여성이 나타난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비내리는 뉴욕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스크린에 담은 우디 앨런 스타일 영화이다. 우디 앨런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배우들이 히스테리컬하게 쏟아내는 대사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 대사는 노골적일 정도로 솔직하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이는 롤란은 애슐리가 그의 감정을 편하게 해주기를, 테드는 그녀가 그를 이해하고 그에게 영감을 줄 뮤즈가 되기를, 프란시스코는 육체적으로 그에게 쾌락을 주기를 매우 솔직하게 요구한다.
챈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애슐리의 형은 약혼자에 대한 불만을, 애슐리 어머니는 가족의 비밀을 태연하게 애슐리에게 알린다.
영화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그가 싫어하는 것은 명확하게 안다.) 또 당당하게 주장하지도 못하며 우물쭈물하는 것은 애슐리 뿐이다.
애슐리는 학교신문 기자 일이나 문학 공부에는 시큰둥하고 오히려 승률이나 내기, 포커 게임과 술집에서 연주될 법한 피아노곡 연주에 매우 능하다. 그가 흠뻑 빠져 있던 애슐리가 그와의 연애보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성공에 열심을 내는 것에는 그러려니 할 뿐이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폭탄 같은 고백에 비로소 그는 문학과 별로 맞지 않으며 어머니 같은 야망도 없는 자기 자신에게 눈을 뜬다. 그리고 같은 예술적 소양을 지니고 있고 유대 문화를 배경으로 한 챈에게 마음이 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당하면 우리는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아울러 엄청난 충격을 준 대상을 원망하며 자기 연민에 함몰되고 말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딛고 일어설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할 형편을 맞는다.
애슐리의 선택은 후자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그런 결정을 한 애슐리는 어쩌면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혹은 보이는 이상으로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있다가 잠깐 돌아와 보낸 주말 동안 그는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된 후 그 깨달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부쩍 성장한 것 같다.
이 영화의 볼 거리는
첫째, 뉴욕이다. 불안과 신경증적인 고민이라는 성장통이 비와 안개에 젖은 아름다운 뉴욕에서 일어나고 잦아든다.
둘째, 호화 캐스팅이다. 캐릭터를 스크린 위에 살아나게 하는 그들의 연기가 빛난다.
셋째, 배경 음악이다. 비와 잘 어울리는 풍성한 재즈 선율은 모든 것의 첨단인 뉴욕이 매우 올드하게, 감성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들과 어머니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강한 유대감을 보이는 유대문화이다. 모계사회처럼 어머니를 중심으로 움직여지는 가정과 자녀교육이 우리문화와 비슷하여 흥미롭다. 영국인에게 직접 들었는데 영국의 전통에 따르면 아들은 어머니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더 돈독하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요즘 긴 장마로 매일 만나게 되는 비가 지루하거나 귀찮지 않게 느껴진다. 오히려 무언가를, 깨달음이나 신선한 만남을 기대하게 만든다. 역시 노장은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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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랑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뻔해진다
어떤 이야기를 단지 '사랑 이야기'라고 말한다면 그게 어떤 것으로 다가오는지. 영화 <반쪽의 이야기>(2020)는 대만계 미국인 감독 앨리스 우(Alice Wu)의 작품이다. 동양인 여성 감독인 그는 커밍아웃을 한 레즈비언이기도 하다. 영화 감독으로서는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그는 MIT와 스탠포드에서 컴퓨터 공학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잠시 소프트웨어 디자인을 했었다고 한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알려진 <세이빙 페이스>(2004)가 토론토국제영화제와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감독으로 전업하나 싶었는데, 지금 소개할 <반쪽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16년이나 걸렸다. 그동안 앨리스 우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감독의 트위터에는 어느 여섯 살짜리 아이가 말했다는 “Drawing is my favorite enemy.”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나의 친애하는 적. 감독은 이 말이 영화 만드는 일에 관해 자신이 느끼는 바와 비슷하다고 인용하고 있다. 그에게 영화를 만드는 일은,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스스로와의 싸움이며 동시에 즐겁지 않은 일,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을 동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할 수밖에 없는 일.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 사이의 16년이라는 시간은 그런 것들로 채워지기도 했겠지.
<반쪽의 이야기>는 고등학생인 ‘엘리’(리아 루이스)가 같은 학교 남학생 ‘폴’(대니얼 디머)로부터 연애편지 대필을 부탁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위 ‘하이틴 로맨스’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감독의 전기적 특수성 때문만이 아니라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방식과 전하고 있는 메시지 자체가 이런 종류의 10대들 사랑 이야기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배경에 대해 하나씩 풀어보겠다.
‘폴’이 부탁한 연애편지라는 건, ‘폴’이 좋아하는 동급 여학생 ‘애스터’(알렉시스 러미어)에게 쓰는 것이다. ‘엘리’는 평소에도 약간의 돈을 받고 학우들의 과제를 대신 써주고는 했다. 대필 이야기를 듣자마자 ‘엘리’는 “세 페이지 이하는 10달러, 열 페이지까지는 20달러, 그 이상은 안 해.”라고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견적을 말한다.
‘엘리’는 저 말을 다른 학우들이 숱하게 부탁했을 과제 이야기겠거니 하고 꺼낸 건데 ‘폴’이 원하는 게 학교 과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라는 걸 알게 되자 그걸 단호하게 거절한다. 누군가의 진심은 대신 써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서. 편지의 명목상의 발신인과 그 수신인을 아주 잘 안다고 해도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을 꾸며낸다는 건 아주 천재적인 작가에게 조차 쉽지 않을 것 같다. 영화 <그녀>(2013)에서 ‘테오도르’(와킨 피닉스)가 쓰는 종류의 조금 간단한 대필 편지 정도면 모르겠지만. ‘엘리’가 편지 대필을 해주기로 하는 계기는 따로 있었다. 당장 50달러가 필요한 일이 있었는데 ‘폴’이 그 돈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신이 직접 써도 그게 전해질까 말까 할 텐데 다른 사람이 대신 써주는 편지. 마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폴’이 자기가 일단 써봤다며 내민 편지를 읽더니 ‘엘리’는 거의 다 고쳐야겠다고 말한다. 이제 이 영화의 키워드는 흔하디 흔하지만 ‘진심’이 되었다. 사랑 이야기에 진심이라니. 우여곡절이 있지만 한 사람의 간절하고 지순한 마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전해지고 둘의 관계가 ‘결실’을 맺는 정도의 구조일까.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 원하는 걸 얻는 이야기도 아니다.” 영화 서두에서 ‘엘리’의 내레이션은 이미 <반쪽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가 아님을 전제한다. 장르의 흔한 공식을 따르기를 애초부터 거부하는 이 영화의 실질적으로 중요한 발단은 따로 있다. ‘폴’의 편지를 대필해주던 ‘엘리’는 한 번이라고 생각했으나 ‘애스터’로부터 답장이 오면서 계속 이어지는 편지 속 이야기의 과정을 통해 ‘애스터’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기왕 쓰는 것 잘 쓰기 위해서 ‘폴’과 계속해서 ‘애스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애스터’의 일상을 몰래 관찰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묘사하지는 않지만 ‘엘리’가 ‘애스터’를 좋아하게 된다는 정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한 가지 더 언급해야겠지만, 이건 '흔한' 퀴어 영화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사랑 영화도 아니고 퀴어 영화도 아닌데 하이틴 로맨스 영화이고 흔한 이야기는 아니라니. 정말 제목처럼 이야기의 반만 꺼낸 셈인데, 글 제목의 뜻에 대해서도 아직 말하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려낸 것 같다.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이 그렇게 숭고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영화다. 실은 아주 엉망이고 제멋대로인 게 사랑이라면서.
“
“Love is messy and horrible and selfish …and bold.”
그러니까, ‘엘리’는 사랑이 상대방에 대해 낱낱이 아는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 같다. ‘폴’이 편지 대필을 부탁했을 때 처음 써준 편지에 의도치 않게 ‘애스터’의 답장이 오고 나서, ‘폴’과 ‘엘리’는 이제 정말 작정을 해야만 했다. ‘폴’은 이제 데이트 신청을 하자고 했지만 ‘엘리’는 “다른 남자애들과 똑같아지고 싶냐”라며 편지로 대화를 이어가기로 한다.
‘엘리’에게는 단서가 있었다. 복도에서 우연히 ‘애스터’와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애스터’는 ‘엘리’가 들고 있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있는 나날』을 보고 자기도 그 책을 좋아한다고 언급했다. ‘엘리’는 ‘폴’을 대신해서 그의 이야길 하고 있었다. 사랑이 뭔지 모른다는 핑계로 빔 벤더스 영화 속 대사 언급을 했더니 ‘애스터’가 자신 역시 빔 벤더스를 좋아한다고 답장을 한다든가... 이제 ‘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좋아하고 빔 벤더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편지를 대신 써줄 것을 부탁한 이상 그건 자연스럽게 떠안아야만 했을 문제일지 모른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엘리’와 ‘폴’은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애스터’의 일상을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일단 데이트 약속을 잡았으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애는 구상화보다 추상화를 더 좋아해. ‘남아있는 나날’ 얘길 꺼내면 영화가 나치 얘기를 줄이면서 얼마나 많은 걸 잃었는지를 말해.” ‘엘리’가 ‘폴’에게 해주는 조언은 대략 이런 것이었는데, 이런 건 ‘애스터’의 취향에 대해 ‘폴’이 학습하도록 하는 정보들이었다.
당연히 첫 데이트는 ‘엘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데, 그럼에도 ‘폴’은 두 번째 데이트 약속을 잡아낸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눈만 깜빡거리며 밀크셰이크에 든 빨대를 쪽쪽거리는 ‘폴’이 ‘애스터’에게는 나름대로 귀여워 보였던 모양. 실제로 ‘애스터’는 “넌 좀 이상하지만 그래서 귀여워”라고 언급한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의 중요한 대목은 이런 것에 있다. 이 일련의 데이트는 ‘폴’의 짐작대로도 되지 않고 ‘엘리’의 짐작대로도 되지 않는다. 가령 ‘엘리’는 ‘폴’ 대신 직접 ‘애스터’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이런저런 조력을 하지만 이건 마치 ‘글로만 배운 연애’ 같아서 가끔은 그것보다 투박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폴’의 것이 통하기도 한다.
일단 제목의 의미 하나가 여기 있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그리고 많이 영향 줄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그 영향들이 쌓이고 쌓이는 방식으로 완성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니, 영화 속 ‘반쪽’이라는 건 ‘폴’과 ‘애스터’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고 ‘애스터’와 ‘엘리’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며, 나아가 ‘폴’과 ‘엘리’ 아빠 ‘에드윈’(예성)의 관계도, ‘엘리’와 ‘에드윈’의 관계도 모두 포함한다. 반쪽의 이야기라는 것은 반쪽과 다른 반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는 것.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것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앞에서 ‘사랑이 아주 엉망이고 제멋대로인 것’이라는 인용을 했는데 ‘엘리’의 말이다. 관찰하고 계산한 대로, 정해진 공식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라 불확실함과 의외성이 통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서로가 만나 각자의 고유함을 바탕으로 조금씩 관계를 다져가고 완성해 나간다는 것. <반쪽의 이야기>는 특정한 가치관에 따라 흘러가지도 않고 누군가의 가치관을 다른 누군가에게 주입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아주 똑똑한 영화다.
‘애스터’는 원래 미대에 진학하고 싶어했는데 어떤 사정으로 포기한 인물이다. 그래서 ‘폴’의 이름으로 ‘엘리’는 ‘애스터’와 그림 이야길 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대화 내용에는 어쩌면 <반쪽의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게 된다. ‘애스터’는 미술 시간에 들었던 그림에 관한 이야길 꺼내고 그림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선을 그려 넣는 일에 관한 대화가 이어진다.
“
“어쩌면 중요한 건 그거야. 그림을 망가뜨리더라도
그 괜찮은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해.
하지만 대담한 선을 그려 넣지 않는다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는 영영 모르겠지.”
사랑으로 한정해 볼까.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은 본래 서로가 만나기 전부터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것이다. 굳이 서로가 관계를 맺지 않고 지나가도 괜찮을 일.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을 일. 그러나 한 사람은 용기를 낸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한 사람이 거기 어떤 식으로든 반응한다. 이것이 어떤 흐름을 낳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 그건 훗날 서로가 서로가 아니면 안 되었으리라 믿을 만큼 삶 전체를 바꿔버리는 운명적 관계가 되기도 한다.
양귀자의 소설 『모순』에는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라는 문장이 나온다. 말하자면 ‘훌륭한 그림’을 만드는 건 ‘괜찮은 그림’에 대담하게도 굳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선 하나를 그려 넣는 행위일 거다. 뚜렷한 정답이 없는. ‘엘리’는 ‘폴’과 ‘애스터’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애스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억지로 읽고 그러면서도 자기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 ‘폴’의 방식이 통하기도 하는 것처럼.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이 누가 정해놓거나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마치 대단히 중요한 내용처럼 플라톤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사랑이란 완전함에 대한 추구와 갈망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같은 이야기. 보통 영화에서 검은 화면에 자막으로 이런 식으로 뭔가가 적혀 있으면 그건 거의 반드시 중요하거나 상징적인 이야기인데 이 영화에선 별로 그렇지 않다. 전형적인 구성을 기반으로 하면서 그 안에서 영리하게 그걸 비트는 영화라고 해야할지.
가톨릭을 독실하게 믿는 조용한 동네의 고등학교에서 뻔한 하이틴 로맨스처럼 인물 관계를 구성해놓고 <반쪽의 이야기>는 ‘애스터’를 중심으로 ‘엘리’와 ‘폴’ 각자의 내면을 꽤 세밀하게 펼쳐놓는다. 게다가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10대니까, 이들은 얼마든지 삶의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그래도 되는 존재들이다. ‘엘리’는 ‘폴’이 불쑥 내뱉는 “그게 사랑 아냐? 상대를 사랑하는 데 노력을 쏟는 거.” 같은 말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사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삶이란 그런 것인지도. ‘나를 뺀 세상의 전부’가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걸 예상치 못한 채 쉽사리 뒤흔들어 놓기도 하는 일 말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10대 중반쯤 되면 보통 사랑에 관해 나름의 기준 내지는 목표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거나 조금씩 갖기 시작하는 것 같다. 가령 ‘폴’에게 사랑은 “치즈프라이를 하나 더 시키는 것”이다. ‘애스터’와 무슨 대화를 할지 말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편지부터 쓰는 것이고, 편지에 대뜸 “맛있는 곳 아는 데 같이 먹으러 가자”거나 “나 트럭도 있고 풋볼 선수야” 같은 이야기나 꺼내보는 것이다. 졸음을 참아가며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을 읽는 것도 물론이고.
50달러를 받기 위해 편지를 정성들여 써주긴 했지만 ‘엘리’는 ‘폴’과 ‘애스터’가 서로 전혀 공통점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엘리’는 두 사람의 첫 데이트가 완전히 실패했다고까지 생각하지만 ‘엘리’의 생각과 달리 ‘폴’과 ‘애스터’의 두 번째 데이트가 성사되고 둘은 키스까지 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듯 보인다. 물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둘이 하나여서 머리도 몸통도 둘 팔 다리도 넷이었는데 신이 하나된 둘의 완전함을 시기하여 둘을 갈라놓았고 평생 동안 서로를 계속해서 찾아다니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영화 제목도 사실 거기서 따온 것인데, 아주 진지한 이야기인 양 플라톤도 인용되고 사르트르도 인용되는데, 아무리 이 영화의 ‘엘리’라는 캐릭터가 다른 학우들의 과제를 대필할 만큼 언어 능력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반쪽의 이야기>는 주인공을 사랑에 관한 각종 문학적 인용에 통달한 지혜로운 인물로 그리거나 그가 깨달음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는 이야기로 서사를 맺을 생각이 없다.
영하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그 근거 중 하나는 저 인용들의 대상이 후반에 가면 ‘엘리 추’ 자신이 된다는 점이다. ‘엘리’에게 어떤 좌절의 상황이 찾아오자 영화가 띄우는 인용은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이며, 속으로만 담아두고 있던 ‘엘리’의 어떤 진심이 발언되는 장면 직후에는 앞에서 소개한 “사랑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대담한 거예요.”가 자막으로 등장한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계속해서 고쳐 써 내려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반쪽의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이며, 그 점은 효과적으로 성취된다.
<반쪽의 이야기>는 흔한 해피엔딩을 거부한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그 모두를 응원하는 방식으로 뭉클하고도 아름답게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갈등이나 오해는 대체로 해소되지만 그것이 사랑의 실현으로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엘리’는 물론이고 ‘폴’에게도 ‘애스터’에게도, 수많은 실패와 좌절, 상처들이 분명 찾아오고 어떤 것은 아주 오래 갈 것이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앞에서 제목에 관하여 ‘반쪽과 다른 반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언급했는데, 그 연장선에서 <반쪽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빈번하게 내레이션까지 하며 ‘폴’의 행동을 이끌고 자신도 움직이지만 전지적이지는 않다. 예컨대 전기 요금을 3개월 체납한 것에 대해 ‘엘리’는 아빠에게 전력 회사에 전화해봤는지 묻고 아빠는 동양인인 자기 억양을 못 알아들을 거라며 (통화) 안 해봤다고 한다. 이에 ‘엘리’는 시도는 해보았는지 되묻지만 다음날 자기가 직접 전화를 할 뿐 아빠를 나무라지 않는다.
‘폴’의 이름으로 쓰는 편지를 통해 ‘엘리’는 ‘애스터’와 꽤 여러 주제에 걸쳐 폭넓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내용을 보면 취향을 강요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서로의 것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인정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무엇보다 ‘애스터’에게는 사실 이미 공인된 (약혼 직전의) 남자친구쯤 되는 ‘트리그’(볼프강 노보그라츠)가 있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그는 당연히 주인공과 갈등을 빚는 캐릭터로 쓰였겠지만 여기선 전혀 그렇지 않다. 갈등을 빚지 않는 정도를 넘어 아예 ‘애스터’와 ‘폴/엘리’의 관계를 모르기까지 하지만, 알았다고 해도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갈등 요소로 쓰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 더 짚자면 영화 속 스쿼하미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톨릭을 믿는 보수적인 동네지만 여성이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 역시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얼굴을 붉히거나 뺨을 때리는 등의 일이 살짝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건 당사자만의 문제일 뿐 공동체의 것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이 모든 건 놀랍게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지적인 동양인 여성 캐릭터, 투박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하는 백인 남성 캐릭터, 무엇인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인기 많고 예쁘기까지 한 또 다른 여성 캐릭터라는 아주 전형적인 인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좋은 영화는 전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틀을 가지고도 선례를 답습하지 않고 활용과 변주, 시도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영화라고 <반쪽의 이야기>를 보는 순간 생각하게 된다.
“난 늘 사랑은 한 가지 방식뿐이라 생각했어. 올바른 방식 하나. 하지만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아.”라는 ‘폴’의 말처럼 <반쪽의 이야기>는 사랑은 특정한 어떤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모든 종류의 사랑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평등하고도 특별하게 보여준다.
괜찮기만 한 그림과 훌륭한 그림 사이에는 아름다운 실패가 있다. 어떤 그림은 잊히거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한 번 그린 그림의 순간을 기억하고 다음 그림을 또 그릴 수 있기도 하다. 이 영화를 두 번 더 되풀이해서 보는 며칠 동안 사랑에 관한 시나 산문을 여럿 읽었다. 확신하지 않은 채로, 그리지 않아도 되었을 선을 그려 넣는 일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끌어안으면서, 낙관하지 않되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이 영화를 보고 여러 문장들 중에서도 떠오른 대목이 있어 여기에 덧붙일까 한다.
“두근거리다가 터지는 풍선이 되어 내가 먼저 고백하려고 해요. 바람 앞에서 살랑거림을 주체 못하고 펄럭이는 내 쪽에서 먼저 고백하기로 해요. 달은 밤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밤에 뜨는 건 아닐 테니까요. 해도 마찬가지로 아침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아침마다 뜨는 건 아닐 테니까요.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뒤늦게 뜨는 날이 더 많았을 테니까요. 늦어도 좋으니 일단 뜨기만 하면 세상이 밝아지는 일이니까요.”
(이원하,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에서)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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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_#1] 이미지의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with. 김승원 감독)
🎙️ Episode 1. 영화 감독 김승원 편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는 단편 영화 감독을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입니다. 영화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영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 김승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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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옴표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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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렌필드> 메인 예고편
죽여서라도 퇴사하고 싶은 직장이 있나요? 불멸의 꼰대 드라큘라에게 던지는 #렌필드 의 피 튀기는 死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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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 후의 두 여자> 메인 예고편
"남편과 결혼하려고 아무나 못하는 일을 했어요"
사랑을 위해 종교까지 바꾸며 모든 것을 믿었던 영국 여자 '메리'
"우린 결혼도, 이혼도 안했어요. 함께지만 함께가 아니죠"
사랑을 위해 결혼을 포기하며 모든 것을 바친 프랑스 여자 '쥬느'
사랑의 불꽃이 꺼지고 상실의 연기만이 피어오르는 삶에서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가는 두 여자의 인연
항해사였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부인 메리는 슬픔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우연히 그에게 숨겨진 가족이 있다는 비밀을 알게 되고 큰 충격에 휩싸인다.
프랑스에서 남편의 또 다른 가족인 쥬느를 만나 진실을 밝히려 하지만
자신을 청소부로 착각한 쥬느로 인해 의도치 않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말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