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2025-05-21 19:58:14
영화 <브릭레이어>, 백인 남성의 시큼한 액션
[시사회 후기] 2025.05.28.(수) 한국 개봉
나름 액션 영화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스파이 영화를 찾고, 여름밤에는 누아르 영화가 끌린다. 와인이나 위스키 한 잔과 함께 마주하는 액션 영화는 서사와 대사로는 전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전한다.
물론 액션에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고, 그만큼 관객의 취향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는 스타일은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 시리즈다. 깔끔한 액션에 쓸모없는 대사는 많이 생략한, 그러면서도 영화 전반의 분위기에 스며드는 작품을 사랑한다. 그 외에도 많은 액션 영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스파이 영화는 감사하게도 ‘007’,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보고 자란 세대로서 새로운 작품이 개봉했다면 영화관을 찾게 되는 장르다.
그런데 이번 <브릭레이어>는 백인 남성의 시큼한 땀 냄새가 그득한 영화였다.
* 씨네랩(cinelab)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한 시사회 후기입니다.


영화 <브릭레이어>의 한국 포스터와 주연 에런 엑하트 / (C) 한국 배급 ㈜플레이그램
<브릭레이어>는 은퇴한 CIA 첩보 요원이 다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소환되어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하는 스파이 액션 영화다. CIA 최고 요원들이 연이어 살해당하고, CIA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다. 그 주범으로 추정되는 빅터 라덱을 처리하기 위해 전직 요원 스티브 베일(에런 엑하트)은 다시 작전에 소환되고, 현장 요원이 아닌 케이트 배넌(니나 도브레브)이 함께 투입된다. 과연 그들은 무사히 사건을 해결하고 평화를 지킬 수 있을까.
주연인 스티브 베일 역으로는 <다크 나이트>의 ‘하비 덴트’ 역으로 한국 관객에게도 잘 알려진 에런 엑하트가 출연한다.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57세의 나이에도 뛰어난 액션을 보여준다. 케이트 배넌 역에는 드라마 ‘뱀파이어 다이어리’ 시리즈의 주연으로 잘 알려진 니나 도브레브가 출연했다.


(C) 한국 배급 ㈜플레이그램
서론이 길었지만 이번 영화에 대한 개인 감상을 공유하자면 <브릭레이어>는 말 그대로 백인 남성의 오래된 시큼한 땀 냄새가 그득한 영화다. 액션 장면은 일부 카메라의 구도에서 종종 흥미롭게 본 장면들이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다소 부산스러운 화면 전환이 액션의 매력보다는 긴박한 흐름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은밀히 침입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의 과한 호흡 소리는 장면에의 몰입을 깬다.
무엇보다 시대적으로 아쉬운 스토리가 영화 전반을 장악한다. ‘은퇴한 요원을 다시 불러들여 사건을 해결하는 스파이 영화’는 이제 너무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런 스토리는 다른 전개를 보여주거나 혹은 액션 그 자체로 승부해야 한다. 하지만 <브릭레이어>는 그러지 못했다. 여전히 러시아 마피아와 라틴계 악당이 등장하고, 벨트로 목을 조르는 진부한 액션이 연출된다. 영웅이 되고픈 감상적인 백인 남성 주인공의 모습도 진부하다. 감상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뒷받침할 서사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 눈물을 빼려는 다소 당황스러운 연출이 보인다. 사이드킥으로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가 무능력하고 극히 보조적인 존재로 등장한 후 성장한다는 전개 또한 시대착오적이다.


정말 주인공을 의심하는 사이드킥 서사와 폭발을 뒤로 하고 걸어나오는 주인공 장면이 필요했나 (C) 한국 배급 ㈜플레이그램
영화에 대해 안 좋은 얘기는 참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세상에는 안 좋은 얘기가 너무 많기에, 거기에 내가 하나를 더해서 무엇하나’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너무 좋은 영화가 많은데, 안 좋은 영화를 한 편 더 볼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 또한 든다. 그리고 영화를 애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최소한 시대를 거슬러 가는 작품은 더는 만나고 싶지 않다.
영화 <브릭레이어> (2025)
감독 레니 할린
주연 에런 엑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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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실화이고 어디까지 픽션인가??
- 킹메이커 영화정보
장르: 드라마
감독: 변성현
각본: 변성현, 김민수
제작: 이진희
촬영: 조형래
조명: 이길규
미술: 한아름
음악: 김홍집, 이진희
편집: 김상범
출연: 설경구, 이선균 외
제작사: 씨앗필름
배급사: 대한민국 국기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촬영 기간: 2019년 3월 25일 ~ 2019년 7월 30일
개봉일: 대한민국 2022년 1월 26일
상영타입: 2D : 디지털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1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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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샤잠! 신들의 분노> 1차 예고편
샤 to the 잠 to the 컴백! #DC코믹스 최강 #인싸 의 ★화★려★한★귀★환 더욱더 거대한 스케일과 강력한 액션으로 돌아온 #샤잠 을 힘찬 박수로 모십니다? [샤잠! 신들의 분노] 1차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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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보낼 순 없어! 넷플릭스 5월 종료작 5
여러분! 어린이날, 어버이날 잘 보내셨나요?
지금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 진출 임박이라고 합니다. 넷플릭스가 한국 점유율 1등을 차지하고 있는 OTT 시장에서 과연 디즈니 플러스는 어떤 결과를 보여줄까요?
5월엔 넷플릭스에 흥미로운 영화들이 많이 공개되는 반면, 그만큼 재미있는 영화들도 종료 예정이라고 합니다. :( 종료 예정작으로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여러분들의 시간을 아껴드리기 위해서 씨네랩이 재밌는 영화들로만 선정했습니다.
1.마 Ma (2019) - 테이트 테일러
2021.05.30 종료 예정
" 10대 청소년인 ‘매기’(다이애나 실버스)는 마트 앞에서 술을 대신 구매해줄 어른을 찾던 중, 우연히 ‘수 앤’(옥타비아 스펜서)과 조우하게 된다. 처음에는 ‘매기’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던 ‘수 앤’이지만
‘매기’의 친구 ‘앤디’(코리 포겔매니스)의 얼굴을 보자 돌변한 듯 마음을 바꾸고,
심지어 ‘매기’와 친구들이 안전하게 놀기를 바란다며 자신의 지하실을 빌려주기까지 한다. 아낌없이 친절을 베푸는 ‘수 앤’에게 마음을 연 ‘매기’와 친구들은
그녀를 ‘마(이모)’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가까워지지만,
점차 아이들과의 관계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수 앤’에게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
<마> synopsis포스터부터 강렬함이 느껴지는 영화 <마>는 옥타비아 스펜서 주연의 공포/스릴러 영화입니다. 2019년도 북미에서 개봉하여 핫한 반응을 이끌었지만,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국내 개봉은 아쉽게도 하지 않았는데요. '호러 공장'이라고 불리는 블룸 하우스에서 제작한 영화인 만큼, 스릴러 공포영화를 즐기는 분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2. 폭스 캐처 Foxcatcher (2014) - 베넷 밀러
2021.05.30 종료 예정
" 레슬링 선수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는 금메달리스트이자 국민적 영웅인 친형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의 후광에 가려 변변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미국 굴지 재벌가의 상속인인 존 듀폰(스티브 카렐)이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자신의 레슬링 팀, ‘폭스 캐처’에 합류해 달라고 제안한다. 선수로서 다시없을 기회라고 생각한 마크는 생애 처음으로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폭스캐처 팀에 합류하고 존 듀폰을 코치이자 아버지처럼 따르며 훈련에 매진한다. 하지만 기이한 성격을 지닌 존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둘 사이에는 점차 균열이 생기고 존이 마크의 형인 데이브를 폭스캐처의 코치로 새롭게 초청하면서 세 사람은 전혀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폭스캐처> synopsis2014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베넷 밀러의 영화 <폭스캐처>는 미국에 실제 있었던 '존 듀폰 살인 사건'을 다룬 드라마/스릴러 영화입니다. 감독 특유의 캐릭터 분석/관찰 능력과, 스티브 카렐, 채닝 테이텀, 그리고 마크 러팔로 세 배우의 연기력이 더해지며 [명작]이라는 많은 호평을 받은 영화입니다. 베넷 밀러 감독의 <머니볼>을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영화 <폭스캐처> 추천드립니다.
3. 미트 페어런츠 Meet the Parents (2000) - 제이 로치
2021.05.31 종료 예정
" 남자 간호사 그렉 포커(벤 스틸러 분)는 애인인 팜(테리 폴로 분)에게 프러포즈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막상 이러한 마음을 전하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려 프로포즈는 수포로 돌아가는데, 그 전화는 바로 팜의 여동생이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그 순간 그렉은 팜과의 결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무서운 아버지 잭 바이런(로버트 드니로 분)에게 승낙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 승낙을 팜의 여동생 결혼식 때 참석하여 받을 것이라 다짐하고 그녀의 고향인 뉴욕으로 향한다. 하지만 전 CIA 심리분석가이자 일명 '걸어 다니는 거짓말 탐색기'인 잭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
<미트 페어런츠> synopsis영화 <미트 페어런츠>는 로버트 드니로 를 보려다가 영화 관람이 끝나면 결국 벤 스틸러에게 입덕 하게 된다는 영화입니다. 가끔은 머리를 비우고 생각 없이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죠? 소소한 웃음으로 영화를 가득 채운 영화 <미트 페어런츠> , 가벼운 코미디 영화로 추천드립니다.
4. 우주전쟁 War Of The Worlds (2005) - 스티븐 스필버그
2021.05.31 종료 예정
" 레이 페리어(톰 크루즈 분)는 이혼한 항만 근로자로 아무런 희망 없이 매일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주말, 그의 전 부인(미란다 오토 분)은 아들 로비(저스틴 채트윈 분)와 어린 딸 레이첼 (다코타 패닝 분)과 주말을 보내라고 레이에게 맡긴그리곤 얼마 안 있어 강력한 번개가 내리친다. 커다랗고 다리가 셋 달린 정체 불명의 괴물이 땅속 깊은 곳에서 나타나 사람들이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모든 것을 재로 만들었다. 레이는 그의 아이들을 이 무자비한 새로운 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급히 피난을 떠나, 파괴되고 황폐해진 도시를 가로지르는 여정에 오른다. 거기서 그들은 침략자들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피난민들을 만나 합류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안전한 곳은 없고, 피난처도 없다. 단지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겠다는 레이의 확고한 의지만 존재 할 뿐인데....."
<우주전쟁> synopsis스티븐 스필버그 + 톰 크루즈 조합으로 흥행 안 할 수가 없는 조합인 영화 <우주전쟁>은 2005년 개봉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연출력과 연기력으로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영화입니다. SF, 우주, 외계인 이 세 키워드 중 좋아하는 키워드가 하나라도 있다면 영화 <우주전쟁>을 추천들입니다.
5. 잭 리처 Jack Reacher (2012) - 크리스토퍼 맥쿼리
2021.05.31 종료 예정
" 현장의 모든 증거들이 한 남자를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그는 자백을 거부한 채 ‘잭 리처를 데려오라’는 메모만을 남긴다.
전직 군 수사관 출신이지만 실제 정체를 아는 이는 누구도 없는 의문의 남자 ‘잭 리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그는 모든 정황이 완벽해 보이는 사건에 의문을 품고
홀로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나서는데…!
법의 한계를 넘어선 자, ‘잭 리처’
이제 그의 심판이 시작된다! "
<잭 리처> synopsis톰 크루즈의 액션 영화 <잭 리처>는 액션 영화입니다. <미션 임파서블>의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이 맡은 영화로, 원작 소설 '원샷'의 시리즈 중 아홉 번째 작품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관객들에게 원작의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죠. 그러나 '액션'을 주로 홍보했던 거에 비해, 막상 영화는 액션보다는 추리극에 가깝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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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말란이 다시 인류에게 보내는 서늘한 경고
가족 여행
신난다! 가족 여행이야! 언제 어디를 가든 여행은 늘 설레다. 귀여운 꼬마 웬. 한적한 별장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즐거운 기분이다. 노래 볼륨 크게 키우고 이동하고 있다. 적지 않은 시간을 이동하는 세 사람. 여행지에 도착했다. 짐을 꺼내고 어디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복잡한 고민은 어른 둘이서 해도 큰 문제는 없잖아? 팔랑팔랑 뛰어 어딘가로 향하는 웬. 별건 아니다. 별장 앞에 어떤 풀숲이다. 혼자 놀고 있는데 떡대 큰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안녕!” “안녕하세요!”
성격은 좋아 보인다. 처음 보는 아저씨와 대화하는 웬. 서로 이름을 말한다. 저는 웬이에요. 난 레너드야. 사람 없는 한적한 동네였기 때문에 웬의 입장에서 이 손님이 낯설다. 왜 여기에 오셨어요? “사실 인류를 구해야 할 과제가 있거든” 갑자기 차분한 전원일기에서 sf로 장르가 바뀌고 있다. 뭔 소리지? 웬이 레너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난 너희 가족을 만나러 왔어. 너희 가족은 이제 숭고한 결정을 해야 하거든.” 느낌이 안 좋다. 어린 나이지만 이 사람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 느낌이 현실로 이뤄지듯 웬의 시야에서 어떤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사람들은 무기를 갖고 있다. 설마? 이거 우리 가족을 해치려고 오는 건가? 쿵쿵 다가오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자마자 웬은 달린다. “아빠! 아빠!” 그런 웬을 보는 레너드. 레너드의 속셈은 간단했다. “웬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을 죽여 인류를 살려야 한다”라는 것이다.
믿지 못하는 이유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하는 문장은 예고에도 나온 것으로 보인다. “내 가족을 희생시킬 것인가, 인류를 구할 것이다”다. 이 질문은 굉장히 자극적이다. 만약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묻는다면 답이 쉬울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공리주의에서 타고 내려오는 인류의 고전적 떡밥이 영화에서 구현된 셈이다. 영화는 이 딜레마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어떻게? '불신'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왜 불신하게 됐을까? 영화에서 배경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세팅이 있다. 이게 시놉시스에서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서 뭐라고 쓸 수는 없다. 대략적으로 써보자면, 이 웬 가족은 약간 특별한 가족이다. 가족 구성원이 살짝 다른 것이다. 이 다르다는 특성은 영화에서 핵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인과관계를 갖는다.
바로 이 가족 구성원의 배치는 불신이라는 핵심으로 닿을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사회를 들여다보면,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있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뭐 PC주의다 뭐다 해서 이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뛰운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혐오 내지는 혐오범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는 두 이야기(가족의 탄생, 레너드 일행과의 인질극)를 축으로 끌고 줄거리를 이끈다. 이 가족이 왜 세상에게 이럴 수밖에 없는가? 의 배경을, 또 두 가지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괜히 세상이 망해가는 이야기와 가족의 탄생을 병치시킨 것이 아니다.
이들이 소수자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불신이라는 키워드는 영화에서 굉장히 흥미롭다. 영화에서 왜 딜레마가 일어날까? 상대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믿지 못하는 이유’에 따라 주인공(들)이 설정해 놓은 장치들이 있다. 뭐 동양인 딸을 입양했다던가, 차에 뭔가가 있다던가 하는 것들이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 장치들이 매 번 다르고, 왜 구비했는지도 사실감이 있게 제시했기 때문에 글쓴이는 영화가 흥미로웠다. ‘아, 감독이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이 도구들을 영화에 넣었구나’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인류와 가족 중 어떤 것을 고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불신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전개한다는 생각에 빨려 들어갔다.
현재 그리고 미래
영화에서 제시한 불신을 과거 그리고 현재에 어떻게 적용시키는가에 대해서도 흥미로웠다. 우선 영화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종말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종말을 어떻게 다루는가? 의 답은 간단하다. 주인공 일행이 이걸 믿지 않으면 그의 반작용으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샤말란은 이 현재 세태에 대해서 '단순히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가 비극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라고 규정지었다. 이는 우리 현대 사회에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를 인과관계로 설정했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영화가 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과연 이 영화에서 제시하는 재앙들이 어느 날 갑자기 뚝딱 일어났던 걸까? 아닐 것이다. 이미 레너드와 같은 사람들이 계층을 가릴 것 없이 경고했던 것이다. 또 이런 일들이 전부 다 별개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살짝 이루어져 있다. 물질론적 사회구성이론이 세상에 한 트럭인 것이 이 근거로 볼 수 있다. 영화는 이런 것들이 서로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항변하는 듯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이 역설을 중심으로, 좁은 공간을 설정한 후 강강강의 템포로 전개하는 영화의 서사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영화의 목표와 목적이 정해진 것이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는 방식은 전작을 생각나게 한다. 바로 <올드>다. 이 <올드>와 <똑똑똑>이 세상을 구현하는 방식은 유사한 듯 보인다. 먼저 좁은 공간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어느 해안 <올드>, 한적한 별장 <똑똑똑>이 공간적인 비슷하다. 또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담았다는 점도 비슷하다.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올드>, 경고와 불신을 소재로 담은 <똑똑똑>이 그렇다. 또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에서 시간을 소재로 다룬 <올드>와 인과관계를 소재로 담은 <똑똑똑>이 유사하다. 물론 이 둘은 안 좋은 지점까지도 닮은 듯하다. 그러나 이 유사하다는 특징은 인간을 바라봤던 샤말란의 관점이 느껴진다는 점, 그러니까 감독이 샤말란을 어떻게 현재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절대 그냥 넘어갈만한 세팅은 아닌 듯하다.
좀 심했어
그러나 이렇게 사회비판적인 코드를 '샤말란스럽게' 잘 소화한 듯 하지만 이 영화의 불호 포인트는 명확할 듯싶다. 우선 첫 번째, 영화 템포가 너무 강강강의 템포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 빠른 템포에 비해서 영화의 키워드가 주인공들의 특수한 세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어떤 분에게는 영화를 부정적으로 보기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전작 <올드>는 주인공들에게 병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여러 커플이 나오기 때문에 샤말란이 품고 있을 다층적인 관점을 품을 수 있다. 넓은 영화라고 보기는 좀 어렵기 때문에 이 영화의 이야기 방식이 지루하고 기가 빨린다고 느끼기 쉬울 것 같다. 또 주인공들의 선택(들)이 합리적이었는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박력이 갑자기 풀리기 때문이다.
또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동하는 몇 가지 반전이 있다. 그중 하나는 집단의 구성이다. 영화에서 거의 주인공격인 집단이 후반부즈음에 밝혀진다. 이 집단이 구성되는 이유가 샤말란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때려 박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를 제시하는 방식도 위에서 서술했던 '박력이 약해지는 이유'기도 했지만 글쓴이는 더 나아가 이 암시가 굳이 필요한지도 의문점이 있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서스펜스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일반인'이라는 점이다. 이 사람들은 전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 일어나는 상황이 뭔지 감 잡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인물들이 벌이는 어떤 행동들이 더 잔혹하게 느껴진다. 이걸 이야기의 긴장감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 자체가 영화에서 충분히 하고 싶은 말을 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하는 방식과 내용까지 아쉬운 단점이 되는 것이다. 아니 초중반부까지 '이 사람들이 과연 어떤 인간인가'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 그러니까 일반인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상상하게 만들었던 힘으로 영화가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런데 이를 후반부에서 다 너무 설명하고 넘어가니까 주인공의 입장 빼고 영화가 무뎌졌을 것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또한 이 인물구성이 이루어진 계기를 생각해 보면 좀 살짝 작위적인 느낌이 있다. 이 사람들이 크고 작게 행동하는 근거들이 힘이 떨어진다. 게다가 네 명 중 한 사람의 가장 또렷한 히스토리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기능적으로 끼워 맞췄다는 느낌이 좀 있다. 이는 후반부가 될수록 좀 이질감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레슬러
영화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캐스팅 둘이 있다. 바로 레너드 역을 맡은 데이브 바티스타와 레드먼드 역을 맡은 루퍼트 그린트다. 데이브 바티스타는 MCU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 출연하며 나름의 인지도를 높였다. 또 이를 바탕으로 작년 <나이브즈 아웃 : 글라스 어니언>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치를 잘 살리듯 바티스타는 영화를 끌고 가는 원 톱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이끈다. 영화에서 '안타까움'에 대한 감정적인 리액션이 좀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바티스타의 공이 크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면 갈수록 살짝 질리기는 한다. 뭐 관객 분들이 보는 데에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또 '해리포터' 시리즈의 론 위즐리 역이었던 루퍼트 그린트 역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론 위즐리' 생각이 잘 안 났다. 그렇게 좋은 연기를 보여준 두 사람과는 다르게 주인공 둘은 연기가 많이 아쉽다. 한 인물은 감정연기를 하는데 거의 똑같은 표정으로 매번 같은 억양을 보여준다. 레너드 일행이 나올 때는 몰입되지만 주인공 가족이 나올 때 루즈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또 세 주인공 중 하나는 영화에서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는데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연기에 힘이 없었다. 이러다 보니 주인공들이 별로 기억에 안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샤말란 영화에 절대 빠질 수 없는 깜짝 카메오가 있다. 솔직히 좀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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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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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은 서기 2027년을 배경으로 한다. 지금이 2022년이니, <칠드런 오브 맨>의 세계가 구현된다면 바로 지금이다. 출생자가 없으니 살아있는 자들이 다 죽으면 인류가 멸망하는 세상. 영화가 개봉되었던 2006년에는 픽션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반쯤은 논픽션이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는 다니스 고렛 감독의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는 2043년이 배경이다. 20년 뒤에는 이 영화를 두고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이라고 말하게 될까. 하지만 이 영화는 지금도 충분히 현실적이다.
제국주의 메타포
거대 독재국가 '에머슨'은 4살 이상의 아이들을 모두 아카데미로 보낸다. 이름은 아카데미이지만 사실상 군대라고 볼 수 있다. 에머슨은 전쟁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데, 살상무기가 바로 아이들인 것. 한 번 아이들을 아카데미로 빼앗기면 다시는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아이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다. 그 국가가 조국도 아니다. 원래 살던 땅을 점령한 침략자이자 식민지 통치자들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있는 지금, 이 영화는 오히려 현실보다 덜 비극적여 보인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국기"를 표방하는 에머슨의 구호는 낯설지 않다. 러시아뿐인가. 중국 역시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고 있다. 영화는 마치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던 1492년처럼 구현된다. 흰 피부와 최첨단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토착민들이 살고 있는 땅을 빼앗고 그들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에머슨은 식민지의 사람들에게 드론으로 식량을 배급한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들은 드론이 떨어뜨리는 식량들로 연명하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죽어간다. 식량에 바이러스를 심은 것. 우리는 침략자들이 가지고 온 균 때문에 토착민들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어갔다는 것을 역사에서 배웠다.
디스토피아의 종말론적 세계관이라기 보다는 과거의 재현에 가깝다. 실제로 토착민의 피가 흐르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였을지도 모르겠다. 연출을 맡은 타이카 와이티티 역시 뉴질랜드 토착민을 조상으로 둔다.
우리나라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기간과도 거의 유사하다. 일제의 대동아공영론이나 가상 국가인 에머슨의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언어를 말살하고 땅과 민족성을 빼앗는 것. 일제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통치 방식은 비슷비슷하다.
요컨대 이 영화에서 표현하는 디스토피아는 새로운 것(외계인, 로봇 등)의 등장이라기 보다는 이미 존재했던 제국주의적 학살의 재현이다.
구원자 서사
영화는 내래이션으로 시작된다. 명상을 하면서 거대한 모기떼와 북쪽에서 구원자가 찾아오는 것을 보았다는. 니스카와 그의 딸 와시즈는 에머슨의 눈을 피해 숲속에 산다. 무려 11년이나 에머슨을 따돌렸다.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새 사냥을 해야 하는데 와시즈는 새에게 말을 건다. 그의 말을 알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새는 날아 가버리고,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어야 하는데다 설상가상 와시즈의 다리가 덫에 걸린다.
어쩔 수 없이 황폐화된 도시로 돌아간 모녀. 약을 구하고 싶지만 보건소에 가면 당연히 와시즈가 끌려갈 테고, 속수무책으로 친구의 집에 숨는다. 친구의 아들은 에머슨에 끌려가 군인이 되었다. 덫에 걸린 상처는 점점 깊어지고 열까지 끓어오르는 와시즈를 구하기 위해 니스카는 스스로 아이를 에머슨에 보낸다.
이렇게 되면 관객들이 예상할 수 있듯 영화는 '엄마의 딸 구하기' 양상으로 접어든다. 시장에서 말린 과일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니스카에게 접근한 남자는 같이 에머슨으로 가자고 제안하고, 또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에 의해 크리족의 본거지로 가게 된다. 전개가 다소 갑작스럽고 불친절하다.
크리족은 공동체사회를 이루어 사는 토착민이다. 그들의 모습은 인디언과 비슷하다. 그들은 니스카가 북쪽에서 온 크리족이라는 걸 알고는, 그가 자신들의 구원자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에 나온 내래이션은 크리족의 예언인 것.
니스카가 할 일은 크리족 아이들을 데리고 빅스톤이라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주면 딸 와시즈를 에머슨으로부터 구해주겠다는 딜. 알고 보니 크리족들도 아이들을 숨겨두었고, 그 아이들을 안전지대로 데리고 가야 했다. 그 역할을 할 사람이 니스카라는데, 한 부족의 운명을 맡길 사람을 너무 검증없이 믿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다.
에머슨의 이간질로 딸은 엄마가 자기를 버린 줄 알고 있다. 이간질과 세뇌는 상대편을 우리편으로 끌고 오기에 너무 좋은 수단이다. 상대가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클수록 효과도 커진다. 아무튼 와시즈는 와시즈대로, 크리족은 크리족대로, 니스카는 니스카대로 난관에 봉착한다.
거대한 국가주의와 힘없는 가족주의의 싸움에서는 필연적으로 소집단이 패하게 된다. 그때 소집단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구원자 신화이다. 영화는 힘없는 토착민들에게 구원자를 내려줌으로써 그들을 구하고자 한다. 니스카가 이들을 구하게 될까, 와시즈를 구하게 될까, 혹은 크리족이 이 모녀를 구하게 될까.
디스토피아는 왜 비슷한 모습일까?
타이카 와이티티의 (아직까지는) 대표작인 <토르-라그나로크>의 환상적인 영상과 <조조 래빗>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면, <나이트 레이더스>에서는 와이티티가 왜 자신만의 디스토피아를 구현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기대했던 포인트가 와이티티의 연출이었는데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왜 모든 디스토피아는 회색일까.
눈이 내려 컴컴한 숲, 에머슨 시민권을 얻지 못한 자들이 사는 곳, 그들의 옷, 골목 등 모든 것이 회색이다. 디스토피아들이 대부분 회색으로 표현되는 것처첨,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지난 디스토피아 영화들의 답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과하게 화려하고 발랄한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 회색 디스토피아는 너무 많다.
요즘 2시간 반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영화가 주를 이루는데, <나이트 레이더스>는 러닝타임 101분이라는 대단한 미덕이 있다. 러닝타임이 짧은 탓인지 전개가 갑작스럽거나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꽤 있었다. 세계관의 구현도 다소 아쉬웠다. 다른 디스토피아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변별점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 그러나 아직 작품수가 많지 않은 감독이고, 첫 장편이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 <나이트 레이더스>의 속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감독이 세계를 그리고 인식하는 방식이 좋다. 거대한 힘이 휘두르는 폭력 앞에 우리 모두는 패전국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힘이란 군사력뿐만 아니라 자본력도 포함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러시아가 있고, 신장 위구르 지역 및 기타 소수민족을 핍박하는 중국이 있다. 그뿐이겠는가. 우리나라 내에서도 폭력은 끝없이 자행된다.
<나이트 레이더스>에서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된 원인은 외계인도,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도, 어떤 특별한 힘도 아닌 그냥 못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다.
그럼에도 폭력에 굴하지 않는, 서로를 구원하려는 인간이 있는 한 이 세상이 쉽게 디스토피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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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화 제목에 대해서 한번 언급했는데, 나이트 레이더스... 나는 처음에 '밤의 전파'인가? 했다. 알고 보니 Rader가 아니라 Raider이니 '야간 침입자'인가... 알고 보지도 못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도 사실 어느 쪽이 레이더스인지 모르겠다.
에머슨처럼 전 세계가 하나의 언어를 쓰는 것도 아닌데... 알고 보면... <나이트 레이더스>의 디스토피아는 이미 진행 중인 게 아닐까?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남기는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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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내라고 하면 힘낼 수 있나요
진짜 포기하고 싶다. 아니 포기해야겠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을 꿨기 때문에 좌절감도 맛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노력을 무지막지하게 들여도 안 되는 것이 있으니 삶이란 역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다못해 메이플스토리의 데미안과 스우를 잡는 것도 숙련도가 올라가면 쉬워지는데 삶은 그런 게 없어 잔인하다. 난 근본적으로 사랑받기엔 못돼 쳐 먹은 인간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만하고 싶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당분간 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든다. 모든 것이 싫다. 무엇이든 할 맘이 안 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포기하면 뭐 어쩔 건데? 엄마, 아빠한테 내 정신적인 고통을 줄줄 늘어놓으면 어떤 지점이 달라지나? 사실 선생님에게 최근의 내 상태를 말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기에 이 선택이 내 인생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똑같은 하루의 반복일 것이다. 몸이 고장 난 것도 바뀌지 않을 거고. 뭔갈 사고 싶은 강박은 아마 죽을 때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 맞다. 나는 지친 것 같다. 유럽에 갔다 와도 지친 게 해소되지 않아 '이런 식으로 가다간 나의 정신적 탈진은 아마 영원할 것'이라고 설레발을 쳤던 때가 생각난다. 다시 생각해보면 1년 동안 지치는 타이밍이 한 번도 안 오는 게 더 이상하다. 어물쩡 넘긴 나 자신이 싫다. 쉬어야 할 때 제대로 쉬질 못했으니 지금 닳고 닳았다. 요즘 나는 삶의 동기부여가 단 1%도 남지 않았다. 난 남들에게 위로해주는 법은 알았지 나 자신에게 격려를 하는 법이라곤 단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람도 사랑도 다 무섭다. <굿 윌 헌팅>과 <그린 북>이 어쩐지 환상 속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요즘이다. 가끔은 내가 쓴 글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때도 많은데 요즘은 반대의 기분을 느끼고 있다. 정말 내가 쓴 글이 맞는 말이란 말인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가 돈이라기엔 난 경험해야 할 것들이 많지 않나. 상상과 희망도 재미가 없는 오늘 난 천천히 가는 버스에 기대 잡생각을 하고 있다.
<체리 향기>는 소소한 일상에 관한 영화다. 나의 인생영화 중 한 편으로 꼽는 작품이기도 하다. 트럭을 운전하는 주인공. 어쩐지 표정에서 사연이 많아 보인다. 이 사람은 갑자기 지나가는 남자 한 명을 태운다. 군인을 태운 주인공 바디. 바디는 군인에게 본인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그는 죽고 싶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어디 땅굴에 묻힐 테니 그 조력자가 돼 달라는 부탁을 한다. 군인은 당연히 거절한다. 다음 손님으로 신학도를 태운 바디. 같은 부탁을 하지만 역시 거절한다. 죽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바디는 세 번째 손님을 찾아 나선다.
세 번째 손님은 나비를 박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아들의 치료비가 급해 바디의 제의를 받아들인 이 노인은 주인공과 차를 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주제는 삶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다. 나 역시 죽고 싶던 때가 있었어요. 내가 인생을 살아야 했던 이유는 코 끝에 스친 체리 향에서 왔죠. 소소한 삶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는 노인. 바디는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아예 말을 안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바디에게 변화가 있긴 했다. 노인을 다시 찾아간 바디. 내일 내가 살아있을지도 모르니 적극적으로 깨워달라는 요청이었다. 영화는 웃으며 바디의 근심 걱정 모든 것을 떠나보내지 않는다. 노인의 진정성이 통했다고 해서 바디의 우울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바디는 다시 무덤 아래에 누웠다. 생각이 바뀐 게 없는듯한 바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디의 요청에서 우리는 뭔가를 기억할 수 있다. 유의미한 차이는 있지만 이 무언가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는 정의해주지 않은 채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영화에 엔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바디는 죽을 곳에 다시 누웠다. 그의 생각은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하다. 난 인생을 얻는 동기부여의 힘이 갑자기 어느 날 번쩍하고 생기는 게 아니라고 본다. 한참을 어두운 터널 속에서 살 때 느낀 게 있다. '힘 내'는 너무 포괄적인 단어라는 것이다. 힘을 내? 힘을 낸다는 게 무슨 뜻이지? 힘 내면 내가 이 뭐 같은 일상을 이겨낼 수 있나? 당연히 이 반응이 '와닿지 않았다'란 말을 자격지심에 빠져 거칠게 하면 나오는 것이란 걸 모르지는 않는다. 말하는 이에게 상처 줄 생각 단 1도 없지만 큰 골자가 되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앞서 쓴 바와 같이 그 말을 하는 이는 내가 다시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것일 테지. 난 살짝 다르다. (그렇다고 힘 내!라는 말을 하는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말을 잘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겪는 비극은 나를 다시 공격할 것이고, 난 같은 방식으로 또 표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디는 모든 걸 웃어넘겨 행복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단 조금의 변화만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는 사려 깊다. 바디의 인생이 무조건 다 잘 풀릴 거라고 묘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서 부정적인 순간을 마주할 때를 생각해보자. 어느 순간을 극복했다고 해서 비슷한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행복이 갑자기 뚝 떨어지나? 아닐 것이다. 삶은 같은 순간의 반복이다. 그래서 어느 것을 극복했다는 생각이야 말로 인간의 교만일 수도 있다. 큰 힘을 줘가며 삶의 순간을 지나가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이 이유로 인생에 환기란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 같다. 환기가 안되기 때문에 상처는 누적될 수밖에 없다. 또 힘 내!라는 말에 힘을 내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 곪았다. 모두가 심하게 깊게 파여서 단순히 끌어올리는 게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목표에 실패하기.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나기. 영원한 이별. 이런 삶을 가로지르는 실패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이라고 하는 건 우리 머릿속에서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상처와 우울함은 천둥번개 치듯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삶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과거를 지워버린다? 지울 수 있으면 인간이 아니지.
감독은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좀 특별한 시각을 보여준다. 간단하다. 인생을 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전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는 극적인 성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생의 목적에서 진 인물이 다시 이겨내는 걸 제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분명한 연출 의도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 사람은 같은 곳에서 똑같은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여러분은 예외인가? 아니다. 여러분이 사는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같은 곳에서 머무르는 건 매한가지일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무언가를 위해 달려왔다고 생각해왔지만 나는 지금의 이 기분이 뭔지 모르겠다. 죽고 싶은 건 절대 아니다. 엄마 아빠가 나한테 못하냐? 그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이 뭔지 모르겠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외로움인지. 권태인지. 뭔가를 이겨내기 위해 그렇게 노력해왔지만 그게 정말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또 언제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게 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내가 나를 속였던 거짓말이었다. 나는 내 20대를 관통하는 동기부여보다 더 얻고 싶은 것을 마음속에 둔 인간이었고 그 관점에서는 사실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 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이런 나를 보여주는 증거다.
근데 또 삶을 포기하라 한다면 아쉬울 것 같다. 아니 사실 지금 당장은 모든 걸 던져버리고 쉬은 게 맞긴 하다. 당장 이 세상을 뜨고 싶지는 않다. 나에겐 수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아직도 정산 못 받은 돈. 가지 못한 여행지. 공익근무지에 들어오는 바나나우유. 우리나라 아티스트가 나이키와 협업해서 나오는 새로운 스니커즈.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왠지 모르게 사실이 아닐 거라는 기대감까지. 나는 아직도 바라는 것이 많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나 무너져있다고 해서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 이 시간은 흘러가 있을 것이고, 나는 오랫동안 극복하지 못한 삶의 터널을 훌쩍 지나있을 것이다. 이 모든 걸 포기하기엔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이 상태로 살아왔다.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그건 좀 많이 어렵다. 사랑받기 위해 이제까지 달려온 모든 시간들에 실패해 지금은 괴롭지만 내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소소한 재미들 덕이었다. 이를 위해 계속 같은 것만 하겠지. 지겹게. 그러나 삶은 원래 지겨운 것이 맞다. 근데 또 지겨워서 좋은 것이다. 실패한 인생을 살더라도 나를 일으켜주는 사소한 무언가가 있다면 하루를 버리기엔 너무 아쉽다. 그래. 사랑받는 인생 다 좋은데. 이것 역시 나에게 중요한 거 맞는데. 돈 많이 벌어서 나 좋은 거 엄마 아빠 멋있는 거 사는 거 다 좋은데. 사실 나는 어느 날 맡은 체리 향기와 같은 소소한 인생의 재미를 좇는 사람이었다. 그런 재미 하나 만드려고 일을 벌이고 돈을 벌고 하는 것이다. 난 감독이 삶의 이 지점에 대해 논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를 찾지 못한 당신에게 묻는 것이다. 과연 당신의 삶의 이유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닐걸. 의외로 우리의 삶을 가로지르는 것은 사소한 무언가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를 바뀌게 하고, 서서히 좋아지게 만들며, 또 살아 숨 쉬게 도와준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매일마다 감상이 다른 내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한다. 다들 지겨울 것이다. 매일이 현타의 연속이고 우울감은 하루마다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러니까 오래 살자. 힘은 되도록이면 내지 말자. 빨리 가지 말고 천천히,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위해 살자. 그러려면 천천히 걸어야 할 것이고, 남들보다 늦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건 어차피 중요하지 않을수도 있다. 한번 사는 인생 과연 그 목표가 삶의 전부가 되더라도 우리는 그것보다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을테니 말이다. 고통받으며 살더라도 오래오래 살자. 언젠가 만날 체리 향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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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서사의 가능성
한국형 서사의 가능성
오늘날 한국은 김구 선생님이 꿈꾸었던 ‘문화강국’의 모습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전 세계가 ‘한국적인 것’을 궁금해하고, 기꺼이 소비하며, 스스로의 문화로 재해석한다. 곧 ‘한국적인 것’이 트렌드다.
지난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은 성공 기로를 달리고 있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차트 최상위권에 올랐고, 41개국 1위에 진입했다. 영어권 영화 중에서는 전 세계 2위에 올랐으며, 첫 3일 동안 9.2백만 뷰, 총 시청시간 15.4백만 시간 기록했다. OST 앨범이 미국 아이튠즈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수록곡 중 ‘Golden’ 등은 각국 음악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진입했다. 뚜렷한 성공 지표를 보유한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단히 한국적이다.
전 세계적 대중문화로 떠오른 케이팝을 한국의 무속신앙과 결합했다. 아이돌은 화려한 군무를 추고 노래를 부르며 귀신을 퇴치하고 세계를 구한다. 미국 제작사 소니에서 제작을 맡았으나 국내 인력을 고용하여 최대한 고증을 살리고자 했다. 먹는 음식, 옷을 비롯하여 캐릭터의 입 모양, 자세와 같은 사소한 부분들에도 신경을 썼다. 고증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오로지 국내팬이 아닌 해외팬 입장에서 아이돌 활동이 그려졌다는 점이다.
세계는 넓고, 한국은 작다. ‘K-Culture’가 세계적으로 대중성을 가지려면 문화적 원주민의 소비를 넘어서 수많은 외부자의 관심이 필요하다. 한국은 예로부터 노동요를 부르며 노동을 하는 ‘흥의 민족’이다. 집단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공동체적 감정 몰입에 익숙하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신파’적인 이유다. 따라서 한국형 서사 구조는 ‘참여’와 ‘몰입’이 중요시되는 현대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 강점을 갖는다.
<기생충>은 계급 서사와 블랙코미디를 결합해 아카데미를 휩쓸고, <오징어 게임>이 생존 게임에 한국적 정서를 더해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의 독자적인 케이팝 아이돌 문화와 전통 무속 신화를 결합해 새로운 한국적 이야기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 이런 실험이 쉽지 않다. 기성 매체는 검증된 장르와 익숙한 서사 구조 내에서 비슷한 콘텐츠를 양산한다. 글로벌을 타겟으로 하는 넷플릭스에 비해 위험을 감수할 자본과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한계도 있다.
한국에서 새로운 서사로 발굴될 수 있는 흥미로운 소재는 아직 많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글로벌 기획을 통해 한국 서사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이제 남은 과제는 국내에서 더 많은 시도가 이뤄지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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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비율로 만든 커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최동수(조현철) 대리가 커피 원두 1, 프림 1, 설탕 1 비율로 먹는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마치 최동수 대리가 타 먹는 커피처럼 공평한 비율로 만들어진 영화 같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커피 원두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커피 원두 역할을 맡은 부분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각색하여 만들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 대기업이 운영했던 영어 토익반 시스템과 1991년 발생한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뿐만 아니라 당시 고졸 학력, 여성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차별을 겪었던 일들과 시대 배경을 재연한 연출을 영화가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커피 원두는 맛이 씁쓸하지만, 향은 은은하며 커피에 없으면 안 되는 재료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역시 배경은 당시 시대 사회의 편견에 대한 잘못을 보며 느끼는 씁쓸함과 90년대 옛 향기를 맡게 해 준다. 설탕 설탕 역할은 캐릭터다. 이자영(고아성), 정유나(이솜), 심보람(박혜수)이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점과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무거운 사회 비판을 가볍고, 통통 튀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삼진그룹에 등장하는 여러 남성 직원들도 초반에 권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성격을 취했으나 최동수(조현철)를 시작으로 후반에 빌리 박(데이비드 맥기니스)이 추진하는 계획을 막기 위해 도와주는 모습들이 등장하며 학력, 성별에 대한 차별이라는 초반에 느껴진 좁은 시야에서 그들 역시 메인 캐릭터들과 다를 바 없는 피지배층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점차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대립구도로 확장되는 시야로 변한다. 이를 통해 이자영, 정유나, 심보람이 개성이나 주연이라는 점에서 각설탕이라면, 삼진그룹 직원들은 뚜렷한 개성은 비치지 않지만 이들도 똑같이 기업이 저지른 잘못에 불만을 품고, 함께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가 그녀들과 같기에 가루 설탕 같은 존재들이다. 프림 프림은 커피에 넣는 크림(cream)이다. 쉽게 말해 커피를 더 맛있고 풍미 있게 만들어주는 재료다. 하지만 프림은 지방이므로 칼로리가 높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프림 역할은 아마 빌리 박과 이자영, 정유나, 심보람이 필두로 있는 여성 직원들의 설득 장면일 것이다. 사회에 억압받았던 주인공들과 직원들이 통쾌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이 장면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사건 해결 과정을 과장되게 연출한다. 주인공들 성격과 사회 비판 설정에 어울리는 클라이맥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절정이 과도하다고 느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커피의 맛을 살려준다. 다만, 1.3이 들어간 프림 같다. (반내림하면 1)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신롬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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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실화이고 어디까지 픽션인가??
- 킹메이커 영화정보
장르: 드라마
감독: 변성현
각본: 변성현, 김민수
제작: 이진희
촬영: 조형래
조명: 이길규
미술: 한아름
음악: 김홍집, 이진희
편집: 김상범
출연: 설경구, 이선균 외
제작사: 씨앗필름
배급사: 대한민국 국기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촬영 기간: 2019년 3월 25일 ~ 2019년 7월 30일
개봉일: 대한민국 2022년 1월 26일
상영타입: 2D : 디지털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1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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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샤잠! 신들의 분노> 1차 예고편
샤 to the 잠 to the 컴백! #DC코믹스 최강 #인싸 의 ★화★려★한★귀★환 더욱더 거대한 스케일과 강력한 액션으로 돌아온 #샤잠 을 힘찬 박수로 모십니다? [샤잠! 신들의 분노] 1차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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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 보낼 순 없어! 넷플릭스 5월 종료작 5
여러분! 어린이날, 어버이날 잘 보내셨나요?
지금 디즈니 플러스가 국내 진출 임박이라고 합니다. 넷플릭스가 한국 점유율 1등을 차지하고 있는 OTT 시장에서 과연 디즈니 플러스는 어떤 결과를 보여줄까요?
5월엔 넷플릭스에 흥미로운 영화들이 많이 공개되는 반면, 그만큼 재미있는 영화들도 종료 예정이라고 합니다. :( 종료 예정작으로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여러분들의 시간을 아껴드리기 위해서 씨네랩이 재밌는 영화들로만 선정했습니다.
1.마 Ma (2019) - 테이트 테일러
2021.05.30 종료 예정
" 10대 청소년인 ‘매기’(다이애나 실버스)는 마트 앞에서 술을 대신 구매해줄 어른을 찾던 중, 우연히 ‘수 앤’(옥타비아 스펜서)과 조우하게 된다. 처음에는 ‘매기’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던 ‘수 앤’이지만
‘매기’의 친구 ‘앤디’(코리 포겔매니스)의 얼굴을 보자 돌변한 듯 마음을 바꾸고,
심지어 ‘매기’와 친구들이 안전하게 놀기를 바란다며 자신의 지하실을 빌려주기까지 한다. 아낌없이 친절을 베푸는 ‘수 앤’에게 마음을 연 ‘매기’와 친구들은
그녀를 ‘마(이모)’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가까워지지만,
점차 아이들과의 관계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수 앤’에게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
<마> synopsis포스터부터 강렬함이 느껴지는 영화 <마>는 옥타비아 스펜서 주연의 공포/스릴러 영화입니다. 2019년도 북미에서 개봉하여 핫한 반응을 이끌었지만,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국내 개봉은 아쉽게도 하지 않았는데요. '호러 공장'이라고 불리는 블룸 하우스에서 제작한 영화인 만큼, 스릴러 공포영화를 즐기는 분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2. 폭스 캐처 Foxcatcher (2014) - 베넷 밀러
2021.05.30 종료 예정
" 레슬링 선수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는 금메달리스트이자 국민적 영웅인 친형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의 후광에 가려 변변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미국 굴지 재벌가의 상속인인 존 듀폰(스티브 카렐)이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자신의 레슬링 팀, ‘폭스 캐처’에 합류해 달라고 제안한다. 선수로서 다시없을 기회라고 생각한 마크는 생애 처음으로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폭스캐처 팀에 합류하고 존 듀폰을 코치이자 아버지처럼 따르며 훈련에 매진한다. 하지만 기이한 성격을 지닌 존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둘 사이에는 점차 균열이 생기고 존이 마크의 형인 데이브를 폭스캐처의 코치로 새롭게 초청하면서 세 사람은 전혀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폭스캐처> synopsis2014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베넷 밀러의 영화 <폭스캐처>는 미국에 실제 있었던 '존 듀폰 살인 사건'을 다룬 드라마/스릴러 영화입니다. 감독 특유의 캐릭터 분석/관찰 능력과, 스티브 카렐, 채닝 테이텀, 그리고 마크 러팔로 세 배우의 연기력이 더해지며 [명작]이라는 많은 호평을 받은 영화입니다. 베넷 밀러 감독의 <머니볼>을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영화 <폭스캐처> 추천드립니다.
3. 미트 페어런츠 Meet the Parents (2000) - 제이 로치
2021.05.31 종료 예정
" 남자 간호사 그렉 포커(벤 스틸러 분)는 애인인 팜(테리 폴로 분)에게 프러포즈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막상 이러한 마음을 전하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려 프로포즈는 수포로 돌아가는데, 그 전화는 바로 팜의 여동생이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그 순간 그렉은 팜과의 결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무서운 아버지 잭 바이런(로버트 드니로 분)에게 승낙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 승낙을 팜의 여동생 결혼식 때 참석하여 받을 것이라 다짐하고 그녀의 고향인 뉴욕으로 향한다. 하지만 전 CIA 심리분석가이자 일명 '걸어 다니는 거짓말 탐색기'인 잭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
<미트 페어런츠> synopsis영화 <미트 페어런츠>는 로버트 드니로 를 보려다가 영화 관람이 끝나면 결국 벤 스틸러에게 입덕 하게 된다는 영화입니다. 가끔은 머리를 비우고 생각 없이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죠? 소소한 웃음으로 영화를 가득 채운 영화 <미트 페어런츠> , 가벼운 코미디 영화로 추천드립니다.
4. 우주전쟁 War Of The Worlds (2005) - 스티븐 스필버그
2021.05.31 종료 예정
" 레이 페리어(톰 크루즈 분)는 이혼한 항만 근로자로 아무런 희망 없이 매일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주말, 그의 전 부인(미란다 오토 분)은 아들 로비(저스틴 채트윈 분)와 어린 딸 레이첼 (다코타 패닝 분)과 주말을 보내라고 레이에게 맡긴그리곤 얼마 안 있어 강력한 번개가 내리친다. 커다랗고 다리가 셋 달린 정체 불명의 괴물이 땅속 깊은 곳에서 나타나 사람들이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모든 것을 재로 만들었다. 레이는 그의 아이들을 이 무자비한 새로운 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급히 피난을 떠나, 파괴되고 황폐해진 도시를 가로지르는 여정에 오른다. 거기서 그들은 침략자들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피난민들을 만나 합류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안전한 곳은 없고, 피난처도 없다. 단지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겠다는 레이의 확고한 의지만 존재 할 뿐인데....."
<우주전쟁> synopsis스티븐 스필버그 + 톰 크루즈 조합으로 흥행 안 할 수가 없는 조합인 영화 <우주전쟁>은 2005년 개봉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연출력과 연기력으로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영화입니다. SF, 우주, 외계인 이 세 키워드 중 좋아하는 키워드가 하나라도 있다면 영화 <우주전쟁>을 추천들입니다.
5. 잭 리처 Jack Reacher (2012) - 크리스토퍼 맥쿼리
2021.05.31 종료 예정
" 현장의 모든 증거들이 한 남자를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그는 자백을 거부한 채 ‘잭 리처를 데려오라’는 메모만을 남긴다.
전직 군 수사관 출신이지만 실제 정체를 아는 이는 누구도 없는 의문의 남자 ‘잭 리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그는 모든 정황이 완벽해 보이는 사건에 의문을 품고
홀로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나서는데…!
법의 한계를 넘어선 자, ‘잭 리처’
이제 그의 심판이 시작된다! "
<잭 리처> synopsis톰 크루즈의 액션 영화 <잭 리처>는 액션 영화입니다. <미션 임파서블>의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이 맡은 영화로, 원작 소설 '원샷'의 시리즈 중 아홉 번째 작품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관객들에게 원작의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죠. 그러나 '액션'을 주로 홍보했던 거에 비해, 막상 영화는 액션보다는 추리극에 가깝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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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말란이 다시 인류에게 보내는 서늘한 경고
가족 여행
신난다! 가족 여행이야! 언제 어디를 가든 여행은 늘 설레다. 귀여운 꼬마 웬. 한적한 별장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즐거운 기분이다. 노래 볼륨 크게 키우고 이동하고 있다. 적지 않은 시간을 이동하는 세 사람. 여행지에 도착했다. 짐을 꺼내고 어디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복잡한 고민은 어른 둘이서 해도 큰 문제는 없잖아? 팔랑팔랑 뛰어 어딘가로 향하는 웬. 별건 아니다. 별장 앞에 어떤 풀숲이다. 혼자 놀고 있는데 떡대 큰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안녕!” “안녕하세요!”
성격은 좋아 보인다. 처음 보는 아저씨와 대화하는 웬. 서로 이름을 말한다. 저는 웬이에요. 난 레너드야. 사람 없는 한적한 동네였기 때문에 웬의 입장에서 이 손님이 낯설다. 왜 여기에 오셨어요? “사실 인류를 구해야 할 과제가 있거든” 갑자기 차분한 전원일기에서 sf로 장르가 바뀌고 있다. 뭔 소리지? 웬이 레너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난 너희 가족을 만나러 왔어. 너희 가족은 이제 숭고한 결정을 해야 하거든.” 느낌이 안 좋다. 어린 나이지만 이 사람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 느낌이 현실로 이뤄지듯 웬의 시야에서 어떤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사람들은 무기를 갖고 있다. 설마? 이거 우리 가족을 해치려고 오는 건가? 쿵쿵 다가오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자마자 웬은 달린다. “아빠! 아빠!” 그런 웬을 보는 레너드. 레너드의 속셈은 간단했다. “웬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을 죽여 인류를 살려야 한다”라는 것이다.
믿지 못하는 이유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하는 문장은 예고에도 나온 것으로 보인다. “내 가족을 희생시킬 것인가, 인류를 구할 것이다”다. 이 질문은 굉장히 자극적이다. 만약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묻는다면 답이 쉬울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공리주의에서 타고 내려오는 인류의 고전적 떡밥이 영화에서 구현된 셈이다. 영화는 이 딜레마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어떻게? '불신'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왜 불신하게 됐을까? 영화에서 배경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세팅이 있다. 이게 시놉시스에서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서 뭐라고 쓸 수는 없다. 대략적으로 써보자면, 이 웬 가족은 약간 특별한 가족이다. 가족 구성원이 살짝 다른 것이다. 이 다르다는 특성은 영화에서 핵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인과관계를 갖는다.
바로 이 가족 구성원의 배치는 불신이라는 핵심으로 닿을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사회를 들여다보면,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있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뭐 PC주의다 뭐다 해서 이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뛰운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혐오 내지는 혐오범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는 두 이야기(가족의 탄생, 레너드 일행과의 인질극)를 축으로 끌고 줄거리를 이끈다. 이 가족이 왜 세상에게 이럴 수밖에 없는가? 의 배경을, 또 두 가지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괜히 세상이 망해가는 이야기와 가족의 탄생을 병치시킨 것이 아니다.
이들이 소수자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불신이라는 키워드는 영화에서 굉장히 흥미롭다. 영화에서 왜 딜레마가 일어날까? 상대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믿지 못하는 이유’에 따라 주인공(들)이 설정해 놓은 장치들이 있다. 뭐 동양인 딸을 입양했다던가, 차에 뭔가가 있다던가 하는 것들이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 장치들이 매 번 다르고, 왜 구비했는지도 사실감이 있게 제시했기 때문에 글쓴이는 영화가 흥미로웠다. ‘아, 감독이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이 도구들을 영화에 넣었구나’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인류와 가족 중 어떤 것을 고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불신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전개한다는 생각에 빨려 들어갔다.
현재 그리고 미래
영화에서 제시한 불신을 과거 그리고 현재에 어떻게 적용시키는가에 대해서도 흥미로웠다. 우선 영화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종말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종말을 어떻게 다루는가? 의 답은 간단하다. 주인공 일행이 이걸 믿지 않으면 그의 반작용으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샤말란은 이 현재 세태에 대해서 '단순히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가 비극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라고 규정지었다. 이는 우리 현대 사회에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를 인과관계로 설정했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영화가 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과연 이 영화에서 제시하는 재앙들이 어느 날 갑자기 뚝딱 일어났던 걸까? 아닐 것이다. 이미 레너드와 같은 사람들이 계층을 가릴 것 없이 경고했던 것이다. 또 이런 일들이 전부 다 별개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살짝 이루어져 있다. 물질론적 사회구성이론이 세상에 한 트럭인 것이 이 근거로 볼 수 있다. 영화는 이런 것들이 서로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항변하는 듯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이 역설을 중심으로, 좁은 공간을 설정한 후 강강강의 템포로 전개하는 영화의 서사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영화의 목표와 목적이 정해진 것이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는 방식은 전작을 생각나게 한다. 바로 <올드>다. 이 <올드>와 <똑똑똑>이 세상을 구현하는 방식은 유사한 듯 보인다. 먼저 좁은 공간을 설정했다는 것이다. 어느 해안 <올드>, 한적한 별장 <똑똑똑>이 공간적인 비슷하다. 또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담았다는 점도 비슷하다.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올드>, 경고와 불신을 소재로 담은 <똑똑똑>이 그렇다. 또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에서 시간을 소재로 다룬 <올드>와 인과관계를 소재로 담은 <똑똑똑>이 유사하다. 물론 이 둘은 안 좋은 지점까지도 닮은 듯하다. 그러나 이 유사하다는 특징은 인간을 바라봤던 샤말란의 관점이 느껴진다는 점, 그러니까 감독이 샤말란을 어떻게 현재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절대 그냥 넘어갈만한 세팅은 아닌 듯하다.
좀 심했어
그러나 이렇게 사회비판적인 코드를 '샤말란스럽게' 잘 소화한 듯 하지만 이 영화의 불호 포인트는 명확할 듯싶다. 우선 첫 번째, 영화 템포가 너무 강강강의 템포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 빠른 템포에 비해서 영화의 키워드가 주인공들의 특수한 세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어떤 분에게는 영화를 부정적으로 보기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전작 <올드>는 주인공들에게 병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여러 커플이 나오기 때문에 샤말란이 품고 있을 다층적인 관점을 품을 수 있다. 넓은 영화라고 보기는 좀 어렵기 때문에 이 영화의 이야기 방식이 지루하고 기가 빨린다고 느끼기 쉬울 것 같다. 또 주인공들의 선택(들)이 합리적이었는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박력이 갑자기 풀리기 때문이다.
또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동하는 몇 가지 반전이 있다. 그중 하나는 집단의 구성이다. 영화에서 거의 주인공격인 집단이 후반부즈음에 밝혀진다. 이 집단이 구성되는 이유가 샤말란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때려 박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를 제시하는 방식도 위에서 서술했던 '박력이 약해지는 이유'기도 했지만 글쓴이는 더 나아가 이 암시가 굳이 필요한지도 의문점이 있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서스펜스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일반인'이라는 점이다. 이 사람들은 전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 일어나는 상황이 뭔지 감 잡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인물들이 벌이는 어떤 행동들이 더 잔혹하게 느껴진다. 이걸 이야기의 긴장감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 자체가 영화에서 충분히 하고 싶은 말을 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하는 방식과 내용까지 아쉬운 단점이 되는 것이다. 아니 초중반부까지 '이 사람들이 과연 어떤 인간인가'를 상상하게 만드는 것, 그러니까 일반인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상상하게 만들었던 힘으로 영화가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런데 이를 후반부에서 다 너무 설명하고 넘어가니까 주인공의 입장 빼고 영화가 무뎌졌을 것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또한 이 인물구성이 이루어진 계기를 생각해 보면 좀 살짝 작위적인 느낌이 있다. 이 사람들이 크고 작게 행동하는 근거들이 힘이 떨어진다. 게다가 네 명 중 한 사람의 가장 또렷한 히스토리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기능적으로 끼워 맞췄다는 느낌이 좀 있다. 이는 후반부가 될수록 좀 이질감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레슬러
영화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캐스팅 둘이 있다. 바로 레너드 역을 맡은 데이브 바티스타와 레드먼드 역을 맡은 루퍼트 그린트다. 데이브 바티스타는 MCU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 출연하며 나름의 인지도를 높였다. 또 이를 바탕으로 작년 <나이브즈 아웃 : 글라스 어니언>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치를 잘 살리듯 바티스타는 영화를 끌고 가는 원 톱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이끈다. 영화에서 '안타까움'에 대한 감정적인 리액션이 좀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바티스타의 공이 크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면 갈수록 살짝 질리기는 한다. 뭐 관객 분들이 보는 데에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또 '해리포터' 시리즈의 론 위즐리 역이었던 루퍼트 그린트 역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론 위즐리' 생각이 잘 안 났다. 그렇게 좋은 연기를 보여준 두 사람과는 다르게 주인공 둘은 연기가 많이 아쉽다. 한 인물은 감정연기를 하는데 거의 똑같은 표정으로 매번 같은 억양을 보여준다. 레너드 일행이 나올 때는 몰입되지만 주인공 가족이 나올 때 루즈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또 세 주인공 중 하나는 영화에서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는데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연기에 힘이 없었다. 이러다 보니 주인공들이 별로 기억에 안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샤말란 영화에 절대 빠질 수 없는 깜짝 카메오가 있다. 솔직히 좀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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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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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은 서기 2027년을 배경으로 한다. 지금이 2022년이니, <칠드런 오브 맨>의 세계가 구현된다면 바로 지금이다. 출생자가 없으니 살아있는 자들이 다 죽으면 인류가 멸망하는 세상. 영화가 개봉되었던 2006년에는 픽션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반쯤은 논픽션이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는 다니스 고렛 감독의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는 2043년이 배경이다. 20년 뒤에는 이 영화를 두고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이라고 말하게 될까. 하지만 이 영화는 지금도 충분히 현실적이다.
제국주의 메타포
거대 독재국가 '에머슨'은 4살 이상의 아이들을 모두 아카데미로 보낸다. 이름은 아카데미이지만 사실상 군대라고 볼 수 있다. 에머슨은 전쟁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데, 살상무기가 바로 아이들인 것. 한 번 아이들을 아카데미로 빼앗기면 다시는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아이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다. 그 국가가 조국도 아니다. 원래 살던 땅을 점령한 침략자이자 식민지 통치자들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있는 지금, 이 영화는 오히려 현실보다 덜 비극적여 보인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국기"를 표방하는 에머슨의 구호는 낯설지 않다. 러시아뿐인가. 중국 역시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고 있다. 영화는 마치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던 1492년처럼 구현된다. 흰 피부와 최첨단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토착민들이 살고 있는 땅을 빼앗고 그들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에머슨은 식민지의 사람들에게 드론으로 식량을 배급한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들은 드론이 떨어뜨리는 식량들로 연명하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죽어간다. 식량에 바이러스를 심은 것. 우리는 침략자들이 가지고 온 균 때문에 토착민들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어갔다는 것을 역사에서 배웠다.
디스토피아의 종말론적 세계관이라기 보다는 과거의 재현에 가깝다. 실제로 토착민의 피가 흐르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였을지도 모르겠다. 연출을 맡은 타이카 와이티티 역시 뉴질랜드 토착민을 조상으로 둔다.
우리나라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기간과도 거의 유사하다. 일제의 대동아공영론이나 가상 국가인 에머슨의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언어를 말살하고 땅과 민족성을 빼앗는 것. 일제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통치 방식은 비슷비슷하다.
요컨대 이 영화에서 표현하는 디스토피아는 새로운 것(외계인, 로봇 등)의 등장이라기 보다는 이미 존재했던 제국주의적 학살의 재현이다.
구원자 서사
영화는 내래이션으로 시작된다. 명상을 하면서 거대한 모기떼와 북쪽에서 구원자가 찾아오는 것을 보았다는. 니스카와 그의 딸 와시즈는 에머슨의 눈을 피해 숲속에 산다. 무려 11년이나 에머슨을 따돌렸다.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새 사냥을 해야 하는데 와시즈는 새에게 말을 건다. 그의 말을 알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새는 날아 가버리고,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어야 하는데다 설상가상 와시즈의 다리가 덫에 걸린다.
어쩔 수 없이 황폐화된 도시로 돌아간 모녀. 약을 구하고 싶지만 보건소에 가면 당연히 와시즈가 끌려갈 테고, 속수무책으로 친구의 집에 숨는다. 친구의 아들은 에머슨에 끌려가 군인이 되었다. 덫에 걸린 상처는 점점 깊어지고 열까지 끓어오르는 와시즈를 구하기 위해 니스카는 스스로 아이를 에머슨에 보낸다.
이렇게 되면 관객들이 예상할 수 있듯 영화는 '엄마의 딸 구하기' 양상으로 접어든다. 시장에서 말린 과일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니스카에게 접근한 남자는 같이 에머슨으로 가자고 제안하고, 또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에 의해 크리족의 본거지로 가게 된다. 전개가 다소 갑작스럽고 불친절하다.
크리족은 공동체사회를 이루어 사는 토착민이다. 그들의 모습은 인디언과 비슷하다. 그들은 니스카가 북쪽에서 온 크리족이라는 걸 알고는, 그가 자신들의 구원자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에 나온 내래이션은 크리족의 예언인 것.
니스카가 할 일은 크리족 아이들을 데리고 빅스톤이라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주면 딸 와시즈를 에머슨으로부터 구해주겠다는 딜. 알고 보니 크리족들도 아이들을 숨겨두었고, 그 아이들을 안전지대로 데리고 가야 했다. 그 역할을 할 사람이 니스카라는데, 한 부족의 운명을 맡길 사람을 너무 검증없이 믿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다.
에머슨의 이간질로 딸은 엄마가 자기를 버린 줄 알고 있다. 이간질과 세뇌는 상대편을 우리편으로 끌고 오기에 너무 좋은 수단이다. 상대가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클수록 효과도 커진다. 아무튼 와시즈는 와시즈대로, 크리족은 크리족대로, 니스카는 니스카대로 난관에 봉착한다.
거대한 국가주의와 힘없는 가족주의의 싸움에서는 필연적으로 소집단이 패하게 된다. 그때 소집단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구원자 신화이다. 영화는 힘없는 토착민들에게 구원자를 내려줌으로써 그들을 구하고자 한다. 니스카가 이들을 구하게 될까, 와시즈를 구하게 될까, 혹은 크리족이 이 모녀를 구하게 될까.
디스토피아는 왜 비슷한 모습일까?
타이카 와이티티의 (아직까지는) 대표작인 <토르-라그나로크>의 환상적인 영상과 <조조 래빗>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면, <나이트 레이더스>에서는 와이티티가 왜 자신만의 디스토피아를 구현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기대했던 포인트가 와이티티의 연출이었는데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왜 모든 디스토피아는 회색일까.
눈이 내려 컴컴한 숲, 에머슨 시민권을 얻지 못한 자들이 사는 곳, 그들의 옷, 골목 등 모든 것이 회색이다. 디스토피아들이 대부분 회색으로 표현되는 것처첨,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지난 디스토피아 영화들의 답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과하게 화려하고 발랄한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 회색 디스토피아는 너무 많다.
요즘 2시간 반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영화가 주를 이루는데, <나이트 레이더스>는 러닝타임 101분이라는 대단한 미덕이 있다. 러닝타임이 짧은 탓인지 전개가 갑작스럽거나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꽤 있었다. 세계관의 구현도 다소 아쉬웠다. 다른 디스토피아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변별점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 그러나 아직 작품수가 많지 않은 감독이고, 첫 장편이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 <나이트 레이더스>의 속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감독이 세계를 그리고 인식하는 방식이 좋다. 거대한 힘이 휘두르는 폭력 앞에 우리 모두는 패전국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힘이란 군사력뿐만 아니라 자본력도 포함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러시아가 있고, 신장 위구르 지역 및 기타 소수민족을 핍박하는 중국이 있다. 그뿐이겠는가. 우리나라 내에서도 폭력은 끝없이 자행된다.
<나이트 레이더스>에서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된 원인은 외계인도,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도, 어떤 특별한 힘도 아닌 그냥 못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다.
그럼에도 폭력에 굴하지 않는, 서로를 구원하려는 인간이 있는 한 이 세상이 쉽게 디스토피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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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화 제목에 대해서 한번 언급했는데, 나이트 레이더스... 나는 처음에 '밤의 전파'인가? 했다. 알고 보니 Rader가 아니라 Raider이니 '야간 침입자'인가... 알고 보지도 못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도 사실 어느 쪽이 레이더스인지 모르겠다.
에머슨처럼 전 세계가 하나의 언어를 쓰는 것도 아닌데... 알고 보면... <나이트 레이더스>의 디스토피아는 이미 진행 중인 게 아닐까?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남기는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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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내라고 하면 힘낼 수 있나요
진짜 포기하고 싶다. 아니 포기해야겠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을 꿨기 때문에 좌절감도 맛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노력을 무지막지하게 들여도 안 되는 것이 있으니 삶이란 역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다못해 메이플스토리의 데미안과 스우를 잡는 것도 숙련도가 올라가면 쉬워지는데 삶은 그런 게 없어 잔인하다. 난 근본적으로 사랑받기엔 못돼 쳐 먹은 인간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만하고 싶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당분간 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든다. 모든 것이 싫다. 무엇이든 할 맘이 안 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포기하면 뭐 어쩔 건데? 엄마, 아빠한테 내 정신적인 고통을 줄줄 늘어놓으면 어떤 지점이 달라지나? 사실 선생님에게 최근의 내 상태를 말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기에 이 선택이 내 인생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똑같은 하루의 반복일 것이다. 몸이 고장 난 것도 바뀌지 않을 거고. 뭔갈 사고 싶은 강박은 아마 죽을 때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 맞다. 나는 지친 것 같다. 유럽에 갔다 와도 지친 게 해소되지 않아 '이런 식으로 가다간 나의 정신적 탈진은 아마 영원할 것'이라고 설레발을 쳤던 때가 생각난다. 다시 생각해보면 1년 동안 지치는 타이밍이 한 번도 안 오는 게 더 이상하다. 어물쩡 넘긴 나 자신이 싫다. 쉬어야 할 때 제대로 쉬질 못했으니 지금 닳고 닳았다. 요즘 나는 삶의 동기부여가 단 1%도 남지 않았다. 난 남들에게 위로해주는 법은 알았지 나 자신에게 격려를 하는 법이라곤 단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람도 사랑도 다 무섭다. <굿 윌 헌팅>과 <그린 북>이 어쩐지 환상 속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요즘이다. 가끔은 내가 쓴 글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때도 많은데 요즘은 반대의 기분을 느끼고 있다. 정말 내가 쓴 글이 맞는 말이란 말인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가 돈이라기엔 난 경험해야 할 것들이 많지 않나. 상상과 희망도 재미가 없는 오늘 난 천천히 가는 버스에 기대 잡생각을 하고 있다.
<체리 향기>는 소소한 일상에 관한 영화다. 나의 인생영화 중 한 편으로 꼽는 작품이기도 하다. 트럭을 운전하는 주인공. 어쩐지 표정에서 사연이 많아 보인다. 이 사람은 갑자기 지나가는 남자 한 명을 태운다. 군인을 태운 주인공 바디. 바디는 군인에게 본인의 사연을 늘어놓는다. 그는 죽고 싶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어디 땅굴에 묻힐 테니 그 조력자가 돼 달라는 부탁을 한다. 군인은 당연히 거절한다. 다음 손님으로 신학도를 태운 바디. 같은 부탁을 하지만 역시 거절한다. 죽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바디는 세 번째 손님을 찾아 나선다.
세 번째 손님은 나비를 박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아들의 치료비가 급해 바디의 제의를 받아들인 이 노인은 주인공과 차를 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주제는 삶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다. 나 역시 죽고 싶던 때가 있었어요. 내가 인생을 살아야 했던 이유는 코 끝에 스친 체리 향에서 왔죠. 소소한 삶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는 노인. 바디는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아예 말을 안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바디에게 변화가 있긴 했다. 노인을 다시 찾아간 바디. 내일 내가 살아있을지도 모르니 적극적으로 깨워달라는 요청이었다. 영화는 웃으며 바디의 근심 걱정 모든 것을 떠나보내지 않는다. 노인의 진정성이 통했다고 해서 바디의 우울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바디는 다시 무덤 아래에 누웠다. 생각이 바뀐 게 없는듯한 바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디의 요청에서 우리는 뭔가를 기억할 수 있다. 유의미한 차이는 있지만 이 무언가가 어떻게 표현되는지는 정의해주지 않은 채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영화에 엔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바디는 죽을 곳에 다시 누웠다. 그의 생각은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하다. 난 인생을 얻는 동기부여의 힘이 갑자기 어느 날 번쩍하고 생기는 게 아니라고 본다. 한참을 어두운 터널 속에서 살 때 느낀 게 있다. '힘 내'는 너무 포괄적인 단어라는 것이다. 힘을 내? 힘을 낸다는 게 무슨 뜻이지? 힘 내면 내가 이 뭐 같은 일상을 이겨낼 수 있나? 당연히 이 반응이 '와닿지 않았다'란 말을 자격지심에 빠져 거칠게 하면 나오는 것이란 걸 모르지는 않는다. 말하는 이에게 상처 줄 생각 단 1도 없지만 큰 골자가 되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앞서 쓴 바와 같이 그 말을 하는 이는 내가 다시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것일 테지. 난 살짝 다르다. (그렇다고 힘 내!라는 말을 하는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말을 잘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겪는 비극은 나를 다시 공격할 것이고, 난 같은 방식으로 또 표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디는 모든 걸 웃어넘겨 행복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단 조금의 변화만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는 사려 깊다. 바디의 인생이 무조건 다 잘 풀릴 거라고 묘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서 부정적인 순간을 마주할 때를 생각해보자. 어느 순간을 극복했다고 해서 비슷한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행복이 갑자기 뚝 떨어지나? 아닐 것이다. 삶은 같은 순간의 반복이다. 그래서 어느 것을 극복했다는 생각이야 말로 인간의 교만일 수도 있다. 큰 힘을 줘가며 삶의 순간을 지나가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이 이유로 인생에 환기란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 같다. 환기가 안되기 때문에 상처는 누적될 수밖에 없다. 또 힘 내!라는 말에 힘을 내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 곪았다. 모두가 심하게 깊게 파여서 단순히 끌어올리는 게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목표에 실패하기.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나기. 영원한 이별. 이런 삶을 가로지르는 실패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이라고 하는 건 우리 머릿속에서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상처와 우울함은 천둥번개 치듯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삶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과거를 지워버린다? 지울 수 있으면 인간이 아니지.
감독은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좀 특별한 시각을 보여준다. 간단하다. 인생을 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전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는 극적인 성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생의 목적에서 진 인물이 다시 이겨내는 걸 제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분명한 연출 의도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 사람은 같은 곳에서 똑같은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여러분은 예외인가? 아니다. 여러분이 사는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같은 곳에서 머무르는 건 매한가지일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무언가를 위해 달려왔다고 생각해왔지만 나는 지금의 이 기분이 뭔지 모르겠다. 죽고 싶은 건 절대 아니다. 엄마 아빠가 나한테 못하냐? 그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이 뭔지 모르겠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외로움인지. 권태인지. 뭔가를 이겨내기 위해 그렇게 노력해왔지만 그게 정말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또 언제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게 돈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내가 나를 속였던 거짓말이었다. 나는 내 20대를 관통하는 동기부여보다 더 얻고 싶은 것을 마음속에 둔 인간이었고 그 관점에서는 사실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 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이런 나를 보여주는 증거다.
근데 또 삶을 포기하라 한다면 아쉬울 것 같다. 아니 사실 지금 당장은 모든 걸 던져버리고 쉬은 게 맞긴 하다. 당장 이 세상을 뜨고 싶지는 않다. 나에겐 수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아직도 정산 못 받은 돈. 가지 못한 여행지. 공익근무지에 들어오는 바나나우유. 우리나라 아티스트가 나이키와 협업해서 나오는 새로운 스니커즈.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왠지 모르게 사실이 아닐 거라는 기대감까지. 나는 아직도 바라는 것이 많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나 무너져있다고 해서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 이 시간은 흘러가 있을 것이고, 나는 오랫동안 극복하지 못한 삶의 터널을 훌쩍 지나있을 것이다. 이 모든 걸 포기하기엔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이 상태로 살아왔다.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그건 좀 많이 어렵다. 사랑받기 위해 이제까지 달려온 모든 시간들에 실패해 지금은 괴롭지만 내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소소한 재미들 덕이었다. 이를 위해 계속 같은 것만 하겠지. 지겹게. 그러나 삶은 원래 지겨운 것이 맞다. 근데 또 지겨워서 좋은 것이다. 실패한 인생을 살더라도 나를 일으켜주는 사소한 무언가가 있다면 하루를 버리기엔 너무 아쉽다. 그래. 사랑받는 인생 다 좋은데. 이것 역시 나에게 중요한 거 맞는데. 돈 많이 벌어서 나 좋은 거 엄마 아빠 멋있는 거 사는 거 다 좋은데. 사실 나는 어느 날 맡은 체리 향기와 같은 소소한 인생의 재미를 좇는 사람이었다. 그런 재미 하나 만드려고 일을 벌이고 돈을 벌고 하는 것이다. 난 감독이 삶의 이 지점에 대해 논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를 찾지 못한 당신에게 묻는 것이다. 과연 당신의 삶의 이유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닐걸. 의외로 우리의 삶을 가로지르는 것은 사소한 무언가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를 바뀌게 하고, 서서히 좋아지게 만들며, 또 살아 숨 쉬게 도와준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매일마다 감상이 다른 내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한다. 다들 지겨울 것이다. 매일이 현타의 연속이고 우울감은 하루마다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러니까 오래 살자. 힘은 되도록이면 내지 말자. 빨리 가지 말고 천천히,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위해 살자. 그러려면 천천히 걸어야 할 것이고, 남들보다 늦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건 어차피 중요하지 않을수도 있다. 한번 사는 인생 과연 그 목표가 삶의 전부가 되더라도 우리는 그것보다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을테니 말이다. 고통받으며 살더라도 오래오래 살자. 언젠가 만날 체리 향기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