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 soyo 2025-05-07 15:38:39
헛된 꿈의 자유: ‘미몽’ 속 신여성의 비극
영화 <미몽>을 보고

억압과 통제로 얼룩진 시대 속, 한 여성이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하게 삶의 방향을 선택하려는 순간,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자유가 아닌 사회적 낙인이었다. 영화 미몽은 그러한 여정을 그린다.
진취적으로 자신의 길을 모색하려는 애순의 모습은 당시 사회에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 소위 ‘신여성’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 명칭은 환호가 아닌 불편함과 경계의 시선 속에 만들어진 낙인이었음을 알게된다.
제목 미몽(迷夢)은 ‘헛된 꿈’이라는 뜻으로, 애순의 자율적인 삶의 추구가 사회에 의해 ‘잘못된 욕망’으로 규정되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그리고 부제 ‘죽음의 자장가’는 신여성의 가능성과 희망을 품은 이 이야기가 결국 비극으로 마무리될 것임을 암시한다.
애순은 사랑을 좇고, 새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은 '도덕'이라는 이름의 경계선 너머로 규정되고, '자유'는 곧 '방탕'으로 해석된다. 사회는 그녀를 이상과 비난 사이의 어딘가, 정의되지 않은 자리에 밀어 넣어 자유를 향한 그녀의 몸짓은 곧 사회적 틀에 다시금 갇혀버리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영화 속 ‘새장 속의 새’는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날고자 했지만, 어디론가 갈 수 없었던 그녀와 새는 결국 다시 철창 속에 안긴다. 겉으로는 보호받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자유를 빼앗긴 채 갇혀 있는 존재. 이는 곧 애순의 처지이자 당시 신여성으로 일컬어졌던 수많은 여성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새장 속에 갇힌 순간, 그 자유는 존재하되 도달할 수 없는 이상으로 전락하는 새와 같이 애순 역시 자율적인 삶을 꿈꾸며 사회의 벽을 넘어서려 하나, 그녀를 둘러싼 도덕과 규범이라는 철창은 그녀의 날갯짓을 끝내 허공에 머물게 만들어버렸다. 즉, 그녀가 느끼는 자유의 감각은 철창 너머 펼쳐진 허상일 뿐, 결코 닿을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이다.
애순은 순간순간 자유로운 선택을 했다고 믿지만, 그 모든 선택은 사회의 금조 속에서 철저히 제한되고 있었고,결국 그녀는 날 수 있는 새이되 날지 못하는 새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고로 끝나는 결말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신여성의 꿈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냉혹한 메시지다. 그것은 경고이자 거부였다. 애순의 죽음은 그녀 개인의 비극이기보다 여성의 자율성과 가능성에 눈감은 시대의 비극 그 자체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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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우마와 싸우는 두 사람의 이야기
누군가가 눈 앞에서 죽음을 목격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이런 죽음을 목격하는 것 자체가 보통의 삶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장면은 아니다.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사고를 목격하는 것도 그것을 목격한 개인에게는 큰 타격을 준다. 개인의 머릿속에 남아서 계속 그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생성된 트라우마는 꽤 오랜 기간 당사자를 괴롭힌다. 옆에 있는 사람들의 위로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개인에게는 큰 싸움이자 전투와도 같다.
특히 누군가의 사고를 보고 경험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끔찍한 일들을 종종 목격한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들도 있고, 특히나 재난 상황에서 누군가를 구해야 하는 소방관들은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 자주 놓인다. 큰 불 속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며 불을 끄다가도 미처 구하지 못한 인원들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소방관 동료가 죽거나 여러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소방관도 생겨난다. 여러 가지 심리 상담 등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소방관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두 인물의 이야기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그런 사고의 트라우마 속에 갇혀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공수 소방대원 한나(안젤리나 졸리)는 과거 큰 산불 진화 작업에서 산불에 갇힌 세 소년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주변 동료들 앞에서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고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그 앞에 또 다른 트라우마를 가진 소년 코너(핀 리틀)를 등장시킨다. 코너는 눈 앞에서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걸 목격하고 킬러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는 인물이다. 회계사였던 코너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비리를 알게 되었고, 그 증거를 죽기 전 코너에게 넘긴다. 그래서 코너는 숲으로 도망치고 숲에서 산불감시를 하던 한나를 만나게 된다.
영화는 한나가 가진 트라우마와 코너가 가진 트라우마가 만나 같이 그 트라우마를 희석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두 사람이지만 첫 만남 이후 왠지 두 사람은 상대방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 코너의 눈을 한나는 한눈에 파악하고 그를 안심시키는데 사실 여기에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저 조용히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고, 천천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의 이야기도 하게 된다. 영화 중반 이후 그들은 서로가 가진 트라우마를 바라보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그 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한나와 코너 이외에도 지역 보안관 에단(존 번탈)이 등장한다. 코너와 친척관계에 있는 그는 한나와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과거에 연인관계였던 인물이다. 그는 한나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인물로 한나가 하는 여러 가지 기행들을 막으면서 도움을 주려 하는 인물이다. 배우 존 번탈이 연기하는 에단은 무심해 보이지만 주변 사람을 아끼고 챙기려 하는 착한 인물이다. 존 번탈이 가장 잘하는 연기 패턴이기도 해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의 주변부에서 보이지 않게 챙겨주는 인물을 잘 묘사하고 있다.
흩뿌려진 이야기가 합쳐지며 만들어지는 긴장감
사실 영화의 초반부에는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흩뿌려져 있다. 한나의 이야기와 코너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전개되지만, 에단과 그의 아내 이야기 그리고 두 킬러의 이야기가 각각 보이면서 각 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함과 동시에 각 캐릭터들의 과거와 성향들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영화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이 인물들을 한 지역의 장소로 서서히 모이게 한다. 마치 산불이 조금씩 나무들을 태워 나가서 산불이 없는 곳을 포위해가는 것처럼 각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숲으로 들어오고 서로 서서히 가까워진다. 그 과정에서 긴장감은 서서히 달아오르고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순간부터 추격전이 시작된다. 그 추격전은 두 킬러로 인해 발생한 것이지만 이들이 일부러 만든 산불도 각 인물들을 조여들며 긴장을 만들어낸다.
감독 타일러 쉐리던은 <시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2015)와 <시카리오:데이 오브 솔다도>(2018)의 각본을 썼다. 액션을 아무 의미 없이 나열하기보다는 각 캐릭터의 특성을 이용해 보는 관객을 옥죄어 스릴을 유발하는 이야기를 잘 쓰는 각본가였다. 그는 2016년 영화 <윈드리버>를 연출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주 건조한 듯 보이지만 울분으로 가득 차 있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일종의 복수극을 보여줬다. 역시 긴장감을 서서히 높여 폭발하듯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이번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감독의 스타일대로 서서히 긴장을 끌어올려 폭발하듯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그대로 포함되어 있고 전작들에 대비해서 스케일을 키워 좀 더 대중적으로 접근한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트라우마와 대결하는 듯한 클라이맥스 추격 장면
무엇보다 <윈드리버>의 주인공들 역시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그것으로 인한 심리적인 고통을 보여줬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트라우마를 가진 두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서로 힘을 합해 그 트라우마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한나와 코너가 한 킬러와 대결하는 장면은 마치 이 둘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와 대결을 벌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한나는 구하지 못했던 산불 속 소년들의 모습을 코너에게서 보고, 코너는 미처 구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한나에게서 본다. 그런 부분들이 더욱 그 둘이 상대방을 구하려고 애쓰게 만든다.
한나 역할을 맡은 안젤라나 졸리는 감성적인 연기와 액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배우다.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로 인해 눈물 흘리던 한나의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부모를 잃고 겁에 질려있는 소년 코너를 보고 그를 지키려는 액션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그가 흘리는 눈물과 진심으로 코너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끌어안는듯한 느낌을 준다. 완전히 겁에 질린 소년 코너를 연기하는 핀 리틀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완전한 상실감과 공포심에 사로 잡힌 코너의 모습을 움츠러든 몸과 불안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두 킬러 잭(에이단 길런)과 패트릭(니콜라스 홀트)이 등장한다. 이 둘이 영화 초반 보여주는 행동에는 인정사정이 없다. 목격자는 과감히 처리하고, 증거를 남기지 않는 완벽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악역의 총명함이 사라지고 점점 바보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이 두 킬러가 보여주는 후반부의 모습이다. 오히려 갑자기 바보가 된 두 킬러보다 산불이 더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어쨌든 영화는 스릴러 영화로서 기본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한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가진 두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비록 두 인물의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렵겠지만 영화의 말미 한나의 대사처럼 어떤 후련함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을 보는 인물 또한 약간의 시원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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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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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원초적 본능>, 무릎 사이론 알 수 없는 것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드디어, 갑자기 본 영화. 이런 스릴러인 줄 알았더라면 진작 봤을텐데. 해석의 재미가 쏠쏠하다. 여타 매혹적인 장면과 눈빛이 가득한 영화다. 제목은 원초적 본능이라 본능의 '끝까지 간다' 버전 같아보이지만 사실은 줄 타기를 잘하고 있다. 형사 닉 커랜과 작가 캐서린 트라멜. 그들의 한 마디가 떠나질 않는다. 살인은 담배와 달라. 그만둘 수 있으니까, 라는 그녀의 말과 그의 말. 난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당신을 잡아넣을 거야. 캐서린은 자신만만했다. 그는 자신이 알려주지 않는 걸 절대 알 수 없을 거라면서. 영화가 끝나면 질문을 각자에게 하고 싶다. 닉에게 묻고 싶다. 정말 캐서린이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라도 알고 있는지, 그녀를 정말 잡아 넣을 자신이 있는지. 그리고 캐서린, 살인이 정말 담배와 다른가요? 그만둘 수 있는 건가요?
누가 취조 당하는 걸까? 이 장면으로만 기억되서는 안 될 영화
캐서린 트라멜을 '섹시한 악녀'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녀가 다리 한번 꼬았을 뿐인데 경찰들이 정신을 못차린다. 누군들 안그랬겠나. 아무것도 숨길 것 없다며 침착하게 사람을 당황시키는 말까지. 그렇다. 그녀를 '섹시한 악녀'라 한다면 있을 건 다 있는 말이다. 그녀는 섹시하고, 매력적이고, 악하고, 여자다. 하지만 뉘앙스가 좀 다르다. 그녀는 원한다면 언제든 섹시하기 보단 우아할 수 있고, 악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나라면 그녀는 똑똑한 살인자라고 말하겠다. 섹시함 역시 그녀의 지능적인 의도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에이미 던/캐서린 트라멜
영화를 보면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가 떠오르는데 좀 다르다. 에이미와의 공통점은 꽤 많다. 사람들의 심리 파악에 능하고, 영문학을 전공했고, 작가라는 점. 어쩌면 에이미가 캐서린을 많이 닮은 후배일 수도 있겠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마치 세상을 자신이 쓰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다만 차이는 명확하다. 에이미는 살인을 즐기진 않는다. 그녀의 이야기 역시 죽음을 주로 다루지 않는다. 자신은 '어메이징 에이미'처럼 늘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원했다. 우아하지 않더라도, 피해자로 보이더라도, 결국엔 해피엔딩. 몇 명이 알아차리는 것 정도는 상관 없다. 남편은 알고도 자신을 떠날 수 없을테니까. 하지만 캐서린은 살인을 즐긴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해도 들키지 않을까? 가 궁금하다. 담배만큼 즐기지만 필요에 따라 절제하고 있다. 그녀의 모든 책에선 사람이 죽는다. 대체론 여자가 남자를 죽이고, 그 이야기를 위해서 그녀는 경험을 필요로 한다. 사람을 유혹하고 죽여야 하기 때문인지, 자신이 지적이고 자유로우면서도 관능적인 모습을 유지하려 한다. 그걸 위해 돈도 시간도 공들이고 있다. 그녀에겐 즐거움이 중요하다. 사람과 죽음, 욕망 같은 것들. 사람이 이리 저리 게임판에 끌려다니는 게 재밌으니까, 그로 인해 충족할 수 있는 많은 욕망은 감칠맛이 난다. 에이미가 똑똑한 연기자라면, 캐서린은 똑똑한 살인자다.
닉과 캐서린, 베스를 둘러싸고 다양한 7건의 사고 혹은 사건이 나타난다. 배가 고장나 돌아가셨다는 캐서린의 부모님. 자동차로 추격하다 추락사한 캐서린의 연인 록시. 살인의 경우 흉기는 얼음송곳과 총이다. 얼음송곳으로 찔려죽은 세 사람. 캐서린과 베스의 지도교수. 캐서린과 만나던 은퇴한 로커. 닉의 동료 형사 거스. 총을 맞고 죽은 두 사람. 베스의 전남편. 닉과 날을 세우던 죽은 형사 닐슨.
코난을 10년 넘게 봐서 인지 사라지지 않는 찜찜함
일단 경찰에서 수사하던 형사 닐슨 및 거스 살인 사건(아마 은퇴한 로커 살인사건까지도)의 용의자는 베스로 결론내려졌다. 범인이 베스라는 결말은 충격적이긴 하다. 닐의 심리치료사였고 다른 형사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하게 너무 완벽하게 다 맞아들어간다는거다. 범죄현장에서 멀지 않은 계단에 고이 모셔진 금발의 가발, 경찰들만 입는 우의와 얼음 송곳. 캐서린을 누명씌우려 했던 그녀의 의도가 이렇게 간단하고 투명하게 드러난다니. 그녀의 집에서 발견된 총과 서랍에 놓인 캐서린에 대한 사진, 살인을 다룬 캐서린의 책. 어째 그렇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증거를 보란듯이 집에 걸어뒀을까. 이건 하나 하나 흩어져있던 증거를 모아 범인의 윤곽이 드러났을 때의 희열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증거는 베스가 범인이라는 걸 증빙하는 서류같다.
너무 완벽할수록 찜찜하다. 베스가 닐슨과 자신의 전남편은 총으로 죽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스는? 거스는 베스가 죽였는지, 캐서린이 죽였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닉은 캐서린이 이미 탈고해서 인쇄까지 한 미출간 신간 <Shooter>의 결말을 봤다. 책에선 주인공인 형사가 엘리베이터에서 살해된 동료를 찾으러 간다고까지 대본처럼 쓰여 있었고 이는 거스의 죽음과 일치했다. 물론 책에서 쓰여진대로 이미 그는 송곳으로 난도질 당한 후였지만.
베스(엘리자베스) 가너/캐서린 트라멜
베스와 캐서린 모두 거짓말을 했다. 베스는 전남편의 죽음도, 전남편과의 결혼도 닉에게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소문에 따르면 당시에 '여자친구'가 있었다는데 모를 일이다. 거스가 죽는 사건현장에서 만나자는 메세지가 있어서 왔다고 했다. 굳이 그녀는 총을 들고 자신을 의심하는 닉 앞에서 주섬주섬 열쇠고리를 꺼내다 총을 맞았다. 총을 가진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는데. 캐서린은? 그녀는 책에서 일어난 사건은, 실제 사건이 일어난 '후'에 썼다고 말했다. 배가 고장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책을 썼다고. 하지만 은퇴한 로커 살인사건이나, 형사가 죽는 이야기는 이야기가 먼저 완성되었고 그 이후에 살인이 벌어졌다. 작가인 내가 이 그대로 하기엔 자신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이 걸 그대로 따라하는 멍청한 짓을 '누가' 한단 말인가?
베스가 생각보다 캐서린과 관련이 많다는 결론에 이른다. 미끼처럼 맞춰진 퍼즐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캐서린이 사랑에 빠져서 닉에게 한번도 안 하던 고백을 하며 자신을 따라하던 '리사 후버맨'을 말한 것도 이상하다. 베스는 이미 비슷한 얘기를 한참 전에 했고, 캐서린이 이렇게 말했을 거라며 나중엔 그대로 맞추기까지 한다. 캐서린에게 베스는 록시와는 다른 존재다. 록시와 캐서린이 성적으로 탐닉하고 관음하는 사이라면, 둘 사이는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이일 수도 있다. 책을 탈고한 그 짧은 시간에 베스가 캐서린의 책을 입수해서 있는 그대로 실현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캐서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한 베스가 캐서린에게 이용당해 꼭두각시처럼 범죄장소로 오게 되었다 해도, 어차피 캐서린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리는 없다. 사건 당일 그녀가 <shooter>라는 책을 다 썼으니 닉은 더 이상 필요헚다며 매몰차게 이별을 고한 건 왜일까. 거스가 살해되기까지 무대를 세팅했든, 직접 행동에 옮겼든 그의 시선을 벗어나 뭔가를 했을 시간은 충분하다. 자의든 타의든 베스는 캐서린의 책대로 사람이 죽는 멍청한 '짓'을 한 사람이 된다.
그러면 닉은 바보같은 형사, 그녀와 사랑에 빠져 눈이 멀어버린 멍청이로 남아있을까. 그도 곧, 혹은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베스만 죽은 것으로 모든 게 끝났을까? 캐서린에 대한 의심은 이렇게 사랑의 힘으로 영영 이겨낼 수 있을까? 닉과 캐서린이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외모도 있지만 자신과 같은 류의 사람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살인자. 코카인과 담배를 즐기고 끊을 수 없고 거짓말 탐지기를 가볍게 통과할 수 있고, 들키지 않고 수사망을 빠져나와본 사람이다.
캐서린이 너무 무서운 사람이라고 잊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닉 역시 무서운 사람이다. 5년동안 4건이나 민간인을 총으로 쏴 죽인 경험이 있으니 괜히 별명이 'shooter'가 아니다. 코카인이 사람을 망쳤을 수도 있지만, 코카인을 한다고 사람을 다 죽이는 건 아니다. 사람을 죽게 한 건 그의 욕구였다. 모두가 신나서 베스가 범인이라고 할 때, 닉은 얼빠진 듯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뜻하지 않게 베스를 죽여서 범인을 죽인 의로운 형사가 된 순간에도 그는 그리 기뻐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진짜 친구인 거스를 잃은 슬픔에 잠겨서일 수도 있지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이상한 기분은 뭐지, 하고. 그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등 뒤로 반짝거리는 얼음 송곳을 몰랐을까? 그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면서 그녀를 잡아넣을 방법을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대로 아주 위험한 방법이지만 그게 그가 범인을 잡는 방법이니까.
주도권을 얻은 것 같다고 생각했겠지
캐서린은 닉에게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은 다 죽는다고 흐느꼈다. 처음엔 부모님, 그리고 지도교수, 소중하진 않지만 은퇴한 로커, 또다른 연인 록시. 그래서 그를 사랑하고 싶지 않다고, 자기 자신에게 허락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를 사랑하면 그 역시 죽을 거라는 말처럼. 혹시나 그녀가 안타까운 운명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면 그의 형사로서의 안테나는 꺼진 셈이다. 사건에서만큼은 우연이란 없다. 적어도 사람이 죽어나가는 데 있어선. 아, 그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가 너무 사랑스러워 깨물어주는 대신 죽여버리고 싶어지는 사람이니까. 언제든 그녀는 그를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다 쓰면 그를 버릴 수도 있다. 언제든 그의 목에 송곳을 박아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닐 뿐. 소중한 것들은 차라리 내 손에 죽는 게 낫다. 어차피 사람은 죽으니까. 그녀에게 기억되고, 책으로 기억되면 영원히 남을 수 있다.
'당신은 내가 알려주지 않는 건 아무것도 알 수 없을거야'
영화가 소름돋는 건 트레이드 마크인 무릎 사이에서는 알 수 없다. 캐서린이 무릎 사이를 들썩이며 그녀의 매력적인 몸을 보여주어서가 아니다. 그녀가 늘 상위를 차지한 채 남자를 묶고 언제든 얼음송곳을 찔러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섹스신 때문도 아니다. 죽은 이들의 목덜미에 사정 없이 박힌 송곳 때문에 피가 웅덩이처럼 고여서도 아니다. 결말처럼 그녀가 그의 등 뒤로 얼음송곳을 들었다 놨다해서도 아니다. 소름돋는 건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 주변 사람이 모두 사라지는데 그녀는 들키지 않았다, 들키지 않아서 그녀로 인해 계속 죽게 될 사람들이 생겨난다. 사람은 어차피 죽으니까, 그녀는 글로 범인인 걸 숨기니까. 사람들이 자신에게 불신을 거두고 죽어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으니까. 아무리 절제한다 해도 그녀가 살인을 그만둘 것 같아보이지 않는다. 무서운 건 얼음송곳이 아니다. 살아숨쉬는 그녀, 그녀의 살인이라는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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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진흥위원회, 한국 영화배우 대표 200인 선정! 해외홍보 나선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영화진흥위원회가 한국 영화계 대표 배우들의 글로벌 홍보를 위해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 영화배우의 해외 홍보는 올해의 주요 영화제를 앞둔 3월부터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유럽영화진흥프로그램이 진행한 ‘슈팅스타즈’ 운영과 유사한 캠페인인 ‘한국 배우 200 캠페인’은 한국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하는 남자 배우 100명 그리고 여자 배우 100명을 선정해 진행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10년간의 배우들의 흥행력, 한국 영화 참여도, 국내외 영화제 수상 기록, 독립영화 출연, 국제 프로젝트 참여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별도 스페셜 웹페이지를 오픈하여 3월 중 캠페인을 전면 공개할 예정이라고 알리며, 배우의 대표 필모그래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무빙 트레일러 및 한국 배우 200인의 다채로운 포트레이트, 배우별 필모그래피를 집약한 동영상 200편 등 양질의 캐스팅 자료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캠페인을 위한 사진 촬영 및 책자와 무빙 트레일러 제작 등은 영화 전문 미디어 <더 스크린>이 전체 진행을 총괄하여 완성도를 강화하였으며, 포트레이트 촬영은 한국 사진계를 대표하는 김중만 작가와 안성진 작가가 전담했습니다. 김중만 작가는 1977년 프랑스 아를 국제사진 페스티벌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이래 40여 년 간 국제적인 명성을 이어온 세계적 사진가이며 안성진 작가는 1992년 이후 한국에 셀러브리티 CF를 선도한 사진가로 수많은 영화, 드라마, 연극 포스터와 앨범 재킷을 촬영해 온 한국 대표 사진가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최고의 영화제 및 넷플릭스 등의 글로벌 OTT 제작사, 에이전시, 미디어 등 전 세계 영화계의 핵심 관계자들에게 직접 홍보물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캠페인의 일환으로 발간하게 될 책자의 타이틀로, 전 세계를 감동시킬 배우가 ‘여기 있다’는 선언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버라이어티는 ‘영화 <기생충>이 여러 개의 오스카상을 거머쥔 이후 한국 배우들은 해외 언론과 영화제에서 많은 주목과 함께 인정받은 것은 사실이다’라고 전하며 ‘배우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를 통해 찬사를 받고 있으며, 배우 김민희는 <도망친 여자>에서 보여준 연기로 작년에 찬사를 받았고 배우 이주영은 뉴욕 아시아 영화제에서 국제 라이징 스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밖에도 배우 이민호는 애플TV플러스가 제작하는 미국 드라마 <파친코> 주연으로 발탁되고, 배우 송강호, 배우나, 그리고 강동원은 2018년 영화 <어느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한국 연출작 <브로커>(가제)에 출연 확정 소식을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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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보다, 돌아보다
8월 26일 (목), 바로 어제 '돌보다, 돌아보다'라는 슬로건 아래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그 스물세 번째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7대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문가영'이 사회자로 나서며, 핫펠트(예은)의 축하공연과 개막작 <토베 얀손>의 상영으로 그 문을 연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6일(목)부터 9월 1일(수)까지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에서 7일간 개최되는데요.
코로나 팬데믹 하에서 일상을 잠시 멈추고,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온 사람들의 품으로 느리지만 차근차근 많은 작품들이 돌아오고 있고, 이와 함께 앞으로를 위한 '영화제'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칸 영화제가 2년 만에 다시 개최되었으며, 2021년 7월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필두로 국내 많은 영화제 역시 하반기에 온/오프라인 동시 개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올 하반기! 철저한 방역수칙 아래 개최될 영화제 목록을 지금부터 같이 알아볼까요?
잇츠 CINE PICK!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홍보대사 문가영 (출처 : 키이스트) /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 포스터 / 뮤지션 핫펠트 (출처 : 아메바컬쳐)
일시 : 2021.08.26(목) ~ 2021.09.01(수), 총 7일간
장소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문화비축기지
규모 : 27개국 119편 영화 상영 (장편 74편, 단편 45편) / 온라인 : 66편 (장편 44편, 단편 22편)
슬로건 : '돌보다, 돌아보다 (A Caring Reflection)'
올해 공식 슬로건 ‘돌보다, 돌아보다’는 ‘누군가를 관심 가지고 보살핀다’는 뜻의 ‘돌보다’와 ‘내 주변과 지난 일을 되돌아본다’는 ‘돌아보다’를 나란히 배치해, 팬데믹 상황의 장기화를 잘 버텨온 서로를 응원하고 주변과 일상을 돌아보는 성찰을 통해 단단하게 함께 나아가기를 제안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합니다.
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함께 영화 보기를 통해 영화제가 창출해 온 가치를 안전한 방법으로 이어가면서도, 오프라인 영화제의 제약을 뛰어넘어 온라인으로 영화제의 영역을 확장시켰습니다. 상영작의 절반이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상영되고, 프로그램 이벤트는 사전녹화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전면 무관중,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요. “발견”과 “아시아단편”, “아이틴즈” 등 경쟁섹션의 영화와 신작, 고전 영화 등 다양하게 구성된 온라인 상영작 66편 (장편 44편, 단편 22편)은 영화제 전용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엔ONFIFN’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되고 있는 배두나, 김아중X변영주, 문가영의 스타토크, <고양이를 부탁해> 20주년 스페셜 토크, “안부를 묻다: 여성영화제의 친구들에게”, 감독 대 감독, 쟁점포럼 등의 행사는 온라인으로 생중계 될 예정이며, 스페셜 토크와 해외 감독들의 GV는 사전녹화되어 송출된다고 합니다.
개막작 - <토베 얀손> (Tove)
핀란드, 스웨덴 | 2020 | 100min | Fiction
감독 : 차이다 베리로트 | 출연 : 알마 포이스티, 크리스타 코소넨PROGRAM NOTE : <토베 얀손>은 ‘무민’ 시리즈의 창조자, 퀴어 예술가 토베 얀손의 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 시기부터 10여 년간 삶을 그리고 있다. 관객들이 가장 처음 보게 되는 것은 춤을 추듯 몽환적으로 또는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토베의 모습이다. 그리고 곧 2차 세계 대전 한가운데 방공호에서 무민 캐릭터의 원형을 스케치하는 토베의 모습이 이어진다. 무민 시리즈의 탄생과 성공에 안착하기까지 토베 얀손의 작가적 경력이 영화의 원경이라면, 전경에는 여성 퀴어 예술가 토베 개인이 맺는 개인적 관계들과 그로 인한 불안과 긴장, 자아의 발견과 성장, 자유와 독립에 대한 갈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과하며 발산되는 토베의 에너지와 얼굴 표정이 내세워진다. 거의 항상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 있으며 시종일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카메라는 이러한 영화적 구조를 뒷받침하며, 아버지와의 갈등, 비비카 반들레르와의 연애, 평생의 파트너 툴리키 피에틸레와의 만남이 어떻게 토베의 작품 세계에 불가분의 영감을 주는지 보여 준다. 린다 바스베리의 16mm 촬영은 투박함과 온화함을 동시에 전달하며, 영화의 엔딩에 삽입된 8mm 푸티지는 영화 내내 토베가 보여 준 자유로운 움직임과 활력, 생동감의 원천을 확인시켜 준다. [황미요조]
제13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13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공식 포스터
일시 : 2021.09.09(목) ~ 2021.09.16(목), 총 8일간
장소 : 메가박스 백석, 고양아람누리
규모 : 39개국 126여편 영화 상영
비전 : 평화, 소통, 생명의 가치를 구현하는 아시아 대표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도약이번 영화제의 메인 포스터로 선정된 사진은 노순택 작가의 작품 '백기완의 주먹'입니다. 올 2월 타계한 사회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불끈 쥔 주먹을 담은 사진으로, 약자와 소수자가 있는 곳에서 함께 투쟁하고 활동한 백기완 선생의 모습처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역시 관객, 영화인과 함께하며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 사회를 진실하게 비춰갈 것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이 사진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코로나로 인하여 전세계가 어려운 시기임에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변함없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믿으며, 코로나로 위축된 제작환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있기에, 영화제 역시 '좋은 작품을 관객들에게 소개한다'는 영화제 본연의 역할을 이어가려 한다고 전했습니다. 영화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오프라인 극장 상영은 이어가되, 이와 함께 자체 개발한 스트리밍 서비스 VoDA(보다)를 통해 온라인 상영을 병행해 관객들이 영화제를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고 하는데요. 영화제는 앞으로도 관객과 다큐멘터리 창작자의 만남을 중단 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 전했습니다.개막작 - <수프와 이데올로기> (Soup and Ideology)
일본, 한국 | 2021 | 118min | Documentary
감독 : 양영희 (YANG Yong-hi)
SYNOPSIS : 2009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일본에 남은 것은 어머니와 딸 뿐이었다. 혼자 사는 노모가 걱정된 딸은 매달 도쿄에서 오사카의 본가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러한 딸에게 어머니는, 문득 당신이 제주 4.3의 체험자라는 말을 꺼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둔 기억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절대로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어머니는 자신이 제주 4.3에 어떻게 관련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제17회 인디애니페스트
일시 : 2021.09.09(목) ~ 2021.09.14(화), 총 6일간
장소 :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인사아트센터
온라인 상영 : 2021.09.10(금) 10:00 ~ 2021.09.24(금) 17:00 [Vimeo]
슬로건 : 人비트人1. (형용사) 개재하는, 중간의
2. (애니메이션 용어) 키프레임 사이에 들어가는 프레임
3. (영화제 슬로건) 또 한번 보고 듣고 말하는 우리들의 사이를 이어 주는, 인디애니페스트!
2005년부터 매년 주목할 만한 해외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 국내외 애니메이션계의 긴밀한 네트워킹을 이어오며 매년 전 세계의 독창적인 애니메이션을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해온 '인디애니페스트'는 국내 유일의 독립애니메이션 전문 영화제에서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영화제입니다. 인디애니페스트는 지난해 여타 영화제들이 코로나19 이슈로 인해 온라인 개최 등의 형식 변경과 축소 개최로 행사를 치른데 반해 기존 오프라인 개최 방식을 고수하며 성황리 영화제를 마무리해 크게 주목받은 바 있는데요. 영화제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12년째 이어온 국제 협업 프로젝트 '릴레이 애니메이션' 등을 상영한다고 합니다.
개막작 - <죽이고 떠나라> (Kill It and Leave This Town)
폴란드 | 2020 | 88min | Animation
감독 : 마리우스 발친스키 (Mariusz Wilczynski)
PROGRAM NOTE : 마리우스 빌친스키 감독은 다양한 형태의 상실과 절망을 겪는 주인공들의 정신적으로의 불안한 여정을 과거와 현재의 틈새를 가로지르며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며 종종 외설적인 묘사로 가득 채워 놓는다. 작품의 스타일은 우리에게 익숙한 선형적 서사의 문법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결로 다가온다. 절제된 흑백의 선과 거친 얼룩의 색채가 스며든 우울한 판타지는 파편화된 몽상들과 뒤엉켜 낯선 거리감까지 드러낸다. 그러니 굳이 해석하려 애쓰지 말고 감독이 미처 전하지 못해 나지막이 읊조리는 독백에 감각을 기울이며 잠시나마 감정의 전이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추혜진]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관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영화 그리고 영화제와 함께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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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1950, 1995년. 레즈비언 로맨스의 두 계보
(왼)〈올리비아〉, 자클린 오드리 감독 작품, 1950, 프랑스, 7★/10★
(오)〈두 소녀가 사랑에 빠진 믿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 마리아 마젠티 감독 작품, 1995, 미국, 7★/10★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복원: 아카이브의 맹점들’이라는 제목의 세션이 열렸다. “최근 몇 년간 세계 각지의 내셔널 아카이브와 필름 파운데이션에서 복원된 여성 감독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표방한 세션이었다. 그중 〈리옹으로의 여행〉, 〈올리비아〉, 〈두 소녀가 사랑에 빠진 믿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를 봤다. 첫 번째 영화는 역사에 중대한 공헌을 했으나 잊힌 여자를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좇는 작품이고, 나머지 두 작품은 레즈비언 로맨스‧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각각 1950년 프랑스, 1995년 미국에서 제작된 후자의 영화들을 다뤄보고자 한다.
영화제 홈페이지에 따르면, 〈올리비아〉를 연출한 자클린 오드리는 1950년대의 거의 유일한 여성 감독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의 한 기숙학교다. 주인공 올리비아는 영국 기숙학교에 있다가 막 프랑스로 옮겨 온 참이다. 그녀가 영국과 프랑스의 기숙학교를 비교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그는 교장 쥘리에게 영국 기숙사의 엄한 규율과 도덕적 규제가 숨 막혔다고, 그와 반대되는 이곳이 좋다고 말한다.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학교에서 규율과 도덕 없음이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분출로 이어짐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올리비아가 새로 옮긴 기숙학교에는 교장 쥘리와 또 다른 선생님인 카라를 중심으로 한 두 세력 축이 있다. 쥘리와 카라는 묘한 경쟁관계에 있다. 그들이 표면적으로 경쟁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인기’다. 그러나 '인기'는 레즈비언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올리비아를 유독 아끼는 카라는 올리비아가 쥘리에게 빠진 게 명백해지자 질투에 사로잡힌다. 카라를 연기한 시몬느 시몽 배우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인데, 그녀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늘 신경질적이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여성’ 캐릭터를 굉장히 인상적으로 연기해낸다. 질투에 빠진 카라의 존재로 인해 암시적으로 언급되는 쥘리와 올리비아의 로맨스도 한층 강렬해진다. 쥘리 방 바로 옆에 배정된 올리비아의 방, 우연한 스킨십에 뒤따르는 “열정이 넘치는구나!”라는 말, 올리비아와의 밀회 약속을 ‘망상’이었다고 철회하는 쥘리 등등…. 카라의 질투와 결부된 두 사람의 은밀한 로맨스는 성애적 장면 없이도 섹슈얼리티를 강렬히 그려낼 수 있음을 보인다.
영국에서 이 영화가 상영 금지되었다는 데서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위반하는 힘은 한층 더 강해지기도 한다. 파국적 사건 이후 비밀을 품은 우아함을 지닌 채 학교를 떠나는 쥘리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매달리지 않겠다는 올리비아의 표정도 압권이다. 남성/권력이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뒷모습만으로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대목은 쥘리, 올리비아, 카라 등 여성들이 구축한 내밀한 세계가 독립성‧자립성을 갖추었음을 보이기도 한다.
〈올리비아〉가 고상하고 고전적인 방식으로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세계를 엿보게 해준다면, 〈두 소녀가 사랑에 빠진 믿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는 유쾌하고도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레즈비언 로맨스를 풀어낸다. “1990년대 퀴어 로맨스 영화의 정전과도 같은 영화”라는 평을 받는 영화답게, 영화에는 그 시대 레즈비언 하위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주인공 랜들 딘은 낙태 반대 운동을 하는 어머니와 헤어지고 레즈비언 애인과 함께 사는 이모네 집에서 지낸다. 딘에게 ‘다이크’라는 모욕이 일상적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그 역시 전형적인(그래서 멋있는) 톰보이 미학을 체현한 레즈비언이다.
주유소 화장실에서 이성애 결혼을 한 여자와 몸을 섞으며 욕망을 충족하던 딘은 어느 날 자신과는 모든 게 정 반대인 한 여자를 만난다. 딘의 정체성은 노동자계급, 백인, 남성성, ‘문제아’ 등으로 구성된 데 반해 이비는 부유하고, 흑인이며, 이제 막 남성 애인과 헤어진 '이성애자'고, 모범생이다. 완벽하게 다른 둘은 금세 사랑에 빠지고 다름 앞에 놓인 금기들을 하나하나 헤쳐 나간다. 그리고 다름을 조율하는 동시에 유지하며 서로를 매혹의 대상으로 남겨두고 영원히 탐색할 것임을 약속한다.
모든 소란이 한 장소에 모여 폭발하듯 분출되는 영화의 유쾌한 결말에서 그 모든 소음이 상관없다는 듯 서로의 귀를 막아주고 생긋 웃는 딘과 이비의 얼굴은 〈올리비아〉가 창조한 세계와 닮은 데가 있다. 누가(특히 남성/권력) 뭐라 하든 그들 관계의 주인은 자신이며 그 주권을 빼앗기지 않은 채 앞으로도 여성을 욕망하는 여성으로 남겠다는 의지가 읽힌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 영화에서 파생된 수많은 여성/퀴어 영화가 남성중심적‧이성애규범적 사회에서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순되는 점이나 틈’인 맹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계보는 세계가 변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SWIFF)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5일부터 9월 1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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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망 넘치고 치열하고 살벌한 이야기
야망을 가진 인물들이 치열하게 분투하는 이야기
야망을 갖고 치열하게 노력하고 쟁취하는 사람들을 다룬 이야기가 있다. 영화 블랙스완도 그랬고, 전부터 지금껏 흥행하고 있는 보컬과 댄스 등 경연 프로그램도 같은 결의 이야기를 다룬다.
각자 사연이 있는 등장인물들이 있고, 그들은 각각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정적인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개인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은 현실 속 이야기라 '우와 즐겁다'하는 마음으로 보기가 힘들다. 전에 공연계 지망생으로서 훈련하면서 동료들과 각자의 꿈, 어려움 등을 나누어본 경험 때문인 것 같다. 경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도 예전의 나와 동료들이 나누었던 고민과 걱정을 비슷하게 하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잘 되면, 다른 누군가는 놓치고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경연 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는다.
하지만, 치열한 현장을 가공해서 만든 콘텐츠는 종종 소비한다. 완벽에 대한 인간 심리와 발레계의 치열함을 엮은 영화 <블랙스완>은 아름답고 치명적이었으며, 공감이 가서 좋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지휘자를 위한 1분>에서 역시 한정적인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프로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서로 알고 있는 정보나 이론을 공유하며 '더 나은 지휘자가 되기 위한 경험'으로서 경연을 받아들인다. 내가 설 자리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갈망하지만 영화 <블랙스완>만큼 파괴적으로 경쟁하지는 않는다.
블랙스완, 지휘자 1분과 유사한 점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감상한 드라마 <사랑하는 작고 예쁜 것들> 역시 어떤 자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영화 <블랙스완>, 다큐영화 <지휘자를 위한 1분>과 유사한 점이 각각 있었다.
발레계의 치열함을 다루고 있으며, 완벽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다는 점은 블랙스완과 닮았다. 내가 설 자리에 대해 고민하고, 갈망하고, 더 나은 댄서가 되기 위해 서로 돕는 장면은 지휘자를 위한 1분과 닮았다.
사랑하는 작고 예쁜 것들만의 특징
뚜렷한 1인 주연이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이다 보니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읽어보면, 한 소녀를 주인공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레 명문 학교에 극적으로 입학하게 된 그 인물은 이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아니다. 에피소드를 거듭 헤쳐갈수록 확신하게 된다. 나는 '내레이션을 하고 있는 인물은 그 흑인 여성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은 뒤에 이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콘텐츠 속 콘텐츠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이 작품은 콘텐츠 속에 등장하는 콘텐츠 두 가지를 영리하게 사용했다. 우선, 잠자는 숲 속의 미녀(또는 공주). 또 다른 콘텐츠는 '리퍼'. '잭 더 리퍼'로 알려진, 오래전 영국의 미제 사건 이야기이다.
캐시가 사고를 당하기 전,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발레 공연으로 올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고 이후 새로운 학생과 새로운 안무가가 영입되고, 살인마 이야기를 공연하게 된다.
작품 밖에서도 실존하는 두 콘텐츠를 작품 속에 녹여내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이 이야기의 발단이 된 불의의 사고로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진 '캐시'는 잠자는 미녀이다. 여성들을 살해한 리퍼 공연을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솔로이스트(독무를 추는 최고 댄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서우리만치 살기를 띠는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사랑하는 작고 예쁜 것들 시즌1, 총평
여러 인물들이 겪는 각자의 문제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을 다루는 이야기인 점은 좋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된 이유인 유망했던 발레리나의 추락사고 전말은 여러 인물들을 곤란하게 했던 것 치고는 밋밋했다.
썸네일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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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스타일의 리메이크 / 말할 수 없는 비밀 / 판타지 로맨스 멜로 / 도경수, 원진아 주연 / 행복한 잔상의 수작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말할 수 없는 비밀"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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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닥터 스트레인저 : 대혼돈의 멀티버스> 티저 예고편
5월, 차원의 경계가 무너지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온다 전 세계를 뒤흔들 역대급 멀티버스 전쟁의 시작!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티저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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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F20> 30초 예고편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아들을 둔 엄마 ‘애란’은
군 생활을 떠났던 아들 ‘도훈’에게
조현병이 발병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완벽했던 자신의 일상을 빼앗길까 두려운 ‘애란’은
아들의 병을 숨긴 채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그러나, 순조로울 것만 같았던 그녀의 삶에
유일한 비밀을 알고 있는 ‘경화’가 나타나자
‘애란’의 불안은 점점 광기로 변해가는데…
가장 날카롭고 충격적인 영화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