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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ofilm2025-04-29 23:54:57

해피엔드 (2024)

각자의 성장을 위해 다른 길로 나아가는 것일 뿐



 근미래의 도쿄,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진 시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해피엔드>의 배경이 된 일본은 겉보기에 현재와 크게 다른 사회처럼 비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거리 곳곳에서 얼굴 인식으로 신원을 파악하는 경찰이라던가, AI 시스템으로 학생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벌점을 매기는 학교 등 사회적 요인들을 통해 지금보다 기술적으로 발전을 이룬 미래를 무대로 삼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끔 한다.

 

초반부까지만 해도, 극의 주축인 학생들의 삶 또한 현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소꿉친구인 '유타(구리하라 하야토)' '코우(히다카 유키토)'는 친구들과 함께 약간의 일탈을 일삼으며 한밤중 학교에서 음악을 즐기는 십 대들일 뿐이고,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자유롭게 낭만을 만끽하며 학교생활을 보내는 게 전부일 듯했다.


 

 

 

 

 하지만, 학교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유타' '코우'가 살아가던 세계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교장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감시 카메라 시스템을 도입하고, 학교는 일종의 작은 판옵티콘 사회가 되어버리고 만다.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며 수시로 벌점이 매겨지고, 주인공들의 아지트와 같던 동아리실마저 빼앗긴다. 그제서야 '코우'는 재일 교포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거리에서 신분을 증명해야만 했던 일본 사회 나 자신의 위치를, 그리고 권력의 부조리함을 체감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세상이 뒤바뀐 게 아니었다. 눈앞에 있음에도 보지 못했던 현실에 눈을 뜬, 철없던 10대 소년의 시야가 한 발짝 넓게 확장되었을 뿐이었다.

 

극중 정권을 잡기 위한 극우 세력은 투표권을 가진 국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외국인을 배척하는 정책을 내세워 불안감을 조성한다.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그럴싸한 프레임을 짜기 위해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도구화하고, 갈라치기를 통해 권력을 다잡겠다는 의도가 분명히 담겼다. 재일 교포 4세인 '코우'는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을 일본에서 살았음에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노골적인 차별을 받는다. 거리에서 음악을 크게 틀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과 집까지 동행해 영주권자임을 증명해야 했고, 교장에게는 출신을 빌미 삼아 차량 파손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받았으며,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가 혐오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분노와 답답함에 혼란을 겪고 있던 그는 교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던 여학생 '후미(이노리 키라라)'와 부당한 체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사회 운동가들을 접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이들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 '코우'는 더 이상 한밤중 학교에서 테크노 비트에 맞춰 춤추던 해맑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지진을 계기로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사고, 그리고 이를 꼭 빼닮은 사회의 모습으로 인해 '코우'의 가치관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바뀌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절친 '유타'는 여전히 친구들과 밤을 지새우고, 음악과 함께 노는 게 좋은 이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사고의 차이는 결국 관계에 균열을 불러일으키고, 극 초반부의 천진하게 '사랑해'를 외치던 소꿉친구들은 서로에게서 난생처음 느낄 법한 거리감을 경험한다. '코우'는 지금 당장 웃고 즐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유타'는 집회 따위로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고뇌하지 않는다.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같은 꿈을 키우며 함께할 줄 알았던 두 사람에게 앞으로 가는 길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균열의 틈새가 벌어지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도 컸기에, 그들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던 '유타'의 삶도 결국은 흔들림이 찾아든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날 친구들과의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고, 음악 장비를 함께 옮기던 '코우'가 사소한 이유로 또다시 경찰에게 신원 확인을 목적으로 붙잡혀 가는 광경을 무력하게 마주한다. 이는 일본인인 자신과 처지가 극명하게 달랐던 친구의 입장을 처음으로 헤아릴 수 있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서브우퍼를 낑낑대며 옮겼으나 폐쇄된 클럽 앞에서 허탈감을 맞아야 했던 '유타'는 분명 몸소 느낀 바가 많았을 것이다. 자신의 짐을 덜어내주었던, 소중한 존재를 부당한 권력에 의해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는 비로소 '코우'가 왜 자신과 다른 길에 발을 내디뎠는지, 작은 가능성에도 몸을 던져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해피엔드>라는 제목과 모순되게 '코우'와 '유타'의 끝없는 우정, 학생들이 자유를 되찾은 학교의 모습, 혼란스러운 일본 정부에 찾아든 평화 등 무엇 하나 뚜렷하게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소 어설프지만 용감한 연대로 교장실에서 농성을 펼친 외국인 학생들이 거둔 약간의 성과만을 비출 뿐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어?' 같은 냉소를 받아칠 만한 극적인 마무리는 없다. 그럼에도 '해피엔드'라는 타이틀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작품인 이유는, 같은 길로 함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반드시 새드 엔딩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엔딩 신에서 친구들과 헤어진 '코우' '유타'는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며 각자의 길로 향한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잠시 프리즈된 화면처럼 끝나버릴 수도, 다시 움직이는 장면처럼 문제 없이 지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두 사람은 십 대의 끝자락에서 서로가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제는 결코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없음을 안다. 함께 갈 수 없다는 건, 관계의 끝을 의미하는 걸까? 두 친구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상대와의 차이를 깨닫기도 했지만, 동시에 각자의 해피 엔딩을 위해 자신의 방식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비록 함께할 수는 없을 지라도, 미소 띤 응원과 함께 멀리서 지켜봐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마지막에 '코우' '유타',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나누는 작별에는 '해피엔드'라는 제목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작성자 . popofilm

출처 . https://blog.naver.com/ksy1327/223850516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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