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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7 23:21:55

일상과 투쟁의 경계에서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를 보고

일찍이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은 오직 공적인 영역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개별자로서의 인간 또한 소문자의 역사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그 역사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구성된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 사태>는 낸 골딘이라는 한 사진 작가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중노년의 삶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진가이자, 사회 운동가로서 살아가는 낸 골딘. 작품은 낸 골딘을 오피오이드 사태를 비판하는 운동가로 비추며, 시작을 연다. 이후 비선형적으로 펼쳐지는 그녀의 삶의 편린들. 사적이디 사적인 그녀의 대표작 ‘성적 의존의 발라드’와 퀴어 커뮤니티에서 친구들과 함께 향락을 즐겼던 삶, 에이즈의 창궐로 인해 수많은 친구들을 잃어버리게 된 삶을 거쳐, 낸 골딘의 인생의 분기점이 된 그녀의 언니인 바바라의 죽음에 대한 기억에 도달한다.

 

 

 

부모가 자신의 존재를 끝없이 부정하는 시간 속에, 결국 죽음을 선택한 바바라는 상담사에 의해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를 볼 수 있었던 자로 재규정된다. 바바라는 세상을 너무나 예민하게, 어쩌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존재였기에, 세상에서도 가족에게도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살아온 삶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작품은 ‘낸 골딘’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소수자성으로 인해 살아내는 것이 투쟁이었던 낸 골딘의 삶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재구성된다. 그러나 낸 골딘의 삶에 있어, 바바라의 존재는 큰 축을 담당한다. 어릴 적 낸 골딘이 유일한 애착 관계를 가졌을 것으로 유추되는 바바라가 그런 고통에 의해 죽음을 선택했다면, 낸 골딘은 오히려 그 빚을 안고 살기로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바바라가 바랐을 삶을, 가장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었던 걸 수도 있다.

 

 

 

그 삶은 더없이 아름답게 빛났고, 실재의 유혈사태가 벌어지듯 바라지 않은 죽음 또한 가득했다. 그녀 에게 애도의 삶이란, 단순히 바바라를 애도하는 삶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의 무지와 배척, 멸시받던 질병으로 인해 그녀는 수많은 친구를 잃었다. 끝없는 절망과 애도 속에서도 그녀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더 많은 이들의 죽음을 이해하며, 다른 삶을 선택한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죄없이 떠난 이들의 가족 및 생존자들과 그녀는 연대한다. 결국 그녀의 과거와 현재는 끝없이 대화하고 만난다.

 

 

 

그녀의 과거를 다룬 이야기는 작품의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러나 중간에 끝없이 개입되는 현재의 삶들. 결국 우리 모두가 살아내는 삶은 그런 것이 아닐까. 나의 지금이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과거에 빚을 지고, 또 상흔을 안고 현재의 우리가 된 것이다. 감히 온전한 타자인 내가 그녀의 상처와 삶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보편화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순간들엔 분명한 공명을 느꼈다.

 

 

 

 

 

 

<Paris is burning>, <데이빗 스트리트의 창녀들> 등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특히 이토 시오리의 작품을 떠올리며,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상과 투쟁의 경계에 놓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나아가 그들이 지쳐 쓰러지지 않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고 싶다. 손을 잡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작성자 .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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