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샤2025-04-20 23:05:26
곤돌라는 무언의 사랑을 싣고
영화 <곤돌라(Gondola)> 리뷰
오래전 모 제과 회사의 초콜릿 파이 광고 배경 음악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가사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초콜릿 파이만 건네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이 아주 잘 전해진다는 것이었다. 기억하기 쉽고, 따뜻하고, 중독성 있는 가사와 멜로디 덕분인지 그 초콜릿 파이는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데 마법을 부리는 초콜릿 파이의 도움 없이 입을 꾹 닫은 채 눈짓, 손짓, 몸짓 등 비언어적 표현만으로 정말 나의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대사 없이 무성 영화처럼 연출된 <곤돌라>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랑의 가능성을 낙천적으로 긍정한다.
영화 <곤돌라>의 공간적 배경은 꽤 험준한 산맥에 안겨 있는 조지아의 조용한 산골 마을이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이어 주는 사실상 유일한 교통수단은 비좁은 곤돌라다. 사람들은 삶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곤돌라에 실어서 옮긴다. 사람, 동물, 와인, 음식, 각종 생활용품은 곤돌라의 단골 승객이다. 곤돌라의 양쪽 문을 활짝 열면 길쭉한 관(棺)도 곤돌라에 적재할 수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의 희로애락을 곤돌라와 함께한다. 이런 환경이라면 사랑도 곤돌라와 떼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마을 곤돌라의 새로운 승무원 '이바'와 일한 지 좀 된 듯한 승무원 '니노'는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엇갈리며 서로를 지나치는 찰나의 순간마다 눈빛을 교환한다. 서로를 향한 그윽한 눈길은 곤돌라를 움직이게 하는 기계 장치와 철제 케이블처럼 서로를 서로에게로 끌어당긴다. 두 사람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장난치고, 함께 체스를 두고, 각자가 다룰 수 있는 악기를 연주해서 선율을 들려주고, 함께 와인을 마신다. 곤돌라 혹은 곤돌라 승강장에서.
영화 <곤돌라>는 일부 장면의 음악과 비주얼이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을 떠오르게 할 만큼 언뜻 보면 마냥 행복한 동화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 성 소수자가 겪는 다양한 난관을 곤돌라를 활용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이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곤돌라와 곤돌라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산경(山景)은 아름답지만 멀리서 보면 철사 두 줄에 의지하고 있는 듯한 곤돌라는 매우 위태롭게 느껴진다. 기발하고 깜찍한 착상으로 창조한 영화 <곤돌라>의 동화 같은 세계는 관객의 마음을 데워 주는 한편 냉혹한 현실도 곱씹게 만든다.
- 끝 -
* 씨네랩의 초청으로 4월 12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곤돌라>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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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4주차, 최신 씨네뉴스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작 엠마스톤 X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재결합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오늘은 따끈따끈한 외신 뉴스들 같이 보아요
<마담 웹> 혹평 세례, 로튼 토마토 지수 13% 기록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4번째 영화 <마담 웹>이 관객들로부터 혹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는 매우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으며, 이로 인해 소니 픽처스는 “향후 10년간 <마담 웹> 시리즈를 제작하지 않을 것이다. 소니 픽처스는 다른 유형의 슈퍼 히어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봉준호 <미키 17> 내년 1월 개봉확정
워너 브라더스는 봉준호와 로버트 패틴슨의 기대작 <미키17> 개봉일을 2025년 1월로 연기했다고 밝혔습니다. 고질라 x 콩: 새로운 제국>을 2주 앞당겨 그 자리를 대신하며 2025년 1월 31일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토니 콜렛, 마크 러팔로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를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비틀스 멤버들 그린 영화 4편 제작, 샘 멘더스 감독 메가폰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즈’ 네 멤버를 각각 주인공으로 한 전기 영화 4편이 제작된다고 합니다.
<아메리칸 뷰티> <1917>을 연출하며 오스카 수상에 빛나는 샘 멘데스가 2027년도를 개봉을 목표로 네 편의 작품을 모두 연출한다고 합니다. 또한 감독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밴드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돼 영광이다.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방식으로 개봉할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엠마스톤 X 요르고스 란티모스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 협의중
영화 <가여운 것들>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엠마스톤은 한국 판타지 코미디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작을 욜고스 란티모스와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여름부터 영국과 뉴욕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인 영화는 외계인으로 인해 지구가 곧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믿는 주인공이 사업가를 외계인으로 믿어 납치하고 고문하는 이야기를 담고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언젠가는 공포 영화를 만들고 싶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런던의 영국영화협회에서 열린 대담 행사장에서 공포 영화를 만들 생각이 있느냐는 관객의 질문에 “<오펜하이머>에는 그 주제와 걸맞다고 생각되는 공포 요소가 분명히 들어가 있습니다. 공포 영화는 매우 영화적 인 장치들에 의존하며, 사물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공포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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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5주 차 개봉작 추천,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주지훈 배우 주연 범죄 오락 영화 <젠틀맨>의 개봉부터
제주의 전설과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드라마 <아일랜드>의 공개까지!
그럼 12월 다섯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더 자세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극장 개봉 영화
젠틀맨
ⓒ 네이버 영화
개요: 범죄 | 한국 | 123분
감독: 김경원
출연: 주지훈, 박성웅, 최성은 등
개봉: 2022.12.28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줄거리
성공률 100% 흥신소 사장 '지현수'가 실종된 의뢰인을 찾기 위해 검사 행세를 하며 불법,
합법 따지지 않고 나쁜 놈들을 쫓는 범죄 오락 영화.
관전 포인트
색다른 설정과 스피디한 전개,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매력인 영화 <젠틀맨>은 연기력부터
화제성까지 다 잡은 배우 주지훈, 박성웅, 최성은이 출연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크레이지 컴페티션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스페인, 아르헨티나 | 115분
감독: 가스톤 두프라트, 마리아노 콘
출연: 페넬로페 크루즈,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개봉: 2022.12.28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한 억만장자가 80세 생일 기념으로 자신의 명성을 더 널리 알릴 불세출의 걸작 제작을 기획하고,
이에 천재 감독, 월드 스타, 연기 거장이 모여 영화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관전 포인트
영화 제작 과정을 담아 관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정식 상영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했을 때 뛰어난 영상미와 OST로 많은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메모리아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콜롬비아, 타이 등 | 136분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배우: 틸다 스윈튼 등
개봉: 2022.12.29
배급: 찬란줄거리
알 수 없는 소리에 이끌린 한 여성의 여정을 그린 시네마틱 사운드 오디세이.
관전 포인트
제74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자 국내 영화제 전석 매진 행렬을 기록한 영화
<메모리아>. 거장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8년 만에 국내에 선보이는 신작이라
관객들의 이목이 더욱 집중된다.
아일랜드
ⓒ 티빙
개요: 판타지 | 한국 | 12부작
연출: 배종배우: 김남길, 이다희, 차은우, 성준 등
공개: 2022.12.30
OTT: 티빙줄거리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악에 대항해 싸워야 하는 운명을 가진 인물들의 여정을 그린 판타지
액션 드라마
관전 포인트
제주도를 배경으로 제주도의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드라마이다. 화려한 영상미부터
각양각색 개성으로 중무장한 캐릭터들의 열연이 드라마의 매력을 더하였다.
화이트 노이즈
ⓒ 네이버 영화
개요: 코미디 | 미국 | 135분
감독: 노아 바움백배우: 아담 드라이버, 그레타 거윅 등
개봉: 2022.12.30
OTT: 넷플리스줄거리
일상적인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려 애쓰는 오늘날 미국 가정의 모습을 담은 블랙 코미디
관전 포인트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이 매력인 영화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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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던 나는 정말 행복했었는지
새해가 지나고 더욱 내 자신의 앞길에 많은 고민이 들었었다. 지금은 누군가에게 말하기 창피하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영화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성공한 덕후가 되고 싶다'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몇 안 되었고, 영화를 종종 찍기도 하는 배우였으니 꾸준히 이 업계에서 일을 하다보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회로 같은 거. 나는 그 단순한 동기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영화 업계에서 일을 해왔다.
하지만 코로나를 겪고, 일을 하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작품을 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 보단 쉽지만 아무튼 그래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니 더 이상 일을 하기가 싫었다. 코로나로 인해 월급은 줄었는데 팀원도 줄어 일하기가 더욱 힘들었던 요즘, 나는 내 미래와 꿈에 대한 걱정이 너무나 많았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극에 치달았고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하고,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잠에 드는 그 순간까지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야근을 하고, 월급도 못받아가면서 영화를 개봉시키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게으르지만 내가 추구하는 성취감을 얻지 못하면 항상 구렁텅이로 빠지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굉장히 힘들었었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소울>은 그럴 때 보게 된 영화고, 정말로 적절한 타이밍에 날 찾아왔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학교의 재즈밴드 선생님이지만, 궁극적인 자신의 꿈은 '재즈 밴드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유명한 재즈 뮤지션과 함께 공연을 하기로 한 날, 너무 들뜬 나머지 발 밑의 맨홀 뚜껑이 열린 것을 보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한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지구에 아직 태어나기 전인 영혼들이 머무르는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진다.
다시 지구로 돌아가 재즈 공연을 해야하는 그는 마음이 급하지만, 무턱대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조는 아직 지구로 가지 못한 영혼 '22'의 멘토가 되기로 결심한다. 지구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지구 통행증을 발급 받으려면 영혼의 불꽃이 반드시 필요한데, 영혼 22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불꽃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조는 어떻게 해서든 22의 불꽃을 찾아주고, 대신 통행증을 받으려 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놀란 것은, 픽사는 절대 뻔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무조건적으로 영화의 끝은 '조'가 자신의 몸에 다시 들어가고, 재즈 공연을 멋지게 성공시키며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조가 영화 초반부터 닳도록 외치던 꿈이었으니까. 그렇게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며, 찝찝함 없이 갈증을 해소시켜줄 것이라고 혼자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 갑작스럽게 조와 22는 지구로 떨어지게 된다. 제대로 몸을 찾은 것이 아니라, '조'의 몸에는 '22'의 영혼이 들어가고 그 옆에 있던 고양이의 몸에 '조'의 영혼이 들어간다. 지구 생활을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영혼이 성인의 몸을 제대로 다룰리가 없었다. 조는 22와 함께 필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이끌고 그 몸을 되찾기 위한 길을 떠난다. 이 순간부터 <소울>은 나, 그리고 우리가 짐작하던 스토리와는 별개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는 어느샌가부터 '꿈'에 집착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매체 및 미디어에서 특별한 '꿈'을 가진 사람들,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의 사연에 쉴 틈 없이 노출된다. 모두들 자연스럽게 꿈을 가지게 되고, 그 꿈을 이루려 부던히도 노력한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룬 이후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실 내가 가진 '꿈'과 그것을 이루는 것만 보통은 생각하지 꿈을 이룬 이후에 대해서는 대부분 관심이 없다.
이동진 평론가와 김이나 작사가의 <소울> GV 영상을 보고 공감한 부분인데, '꿈'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거치는 정류장 같은 것이지, 단순히 꿈은 인생의 '종착역'으로 바라보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삶, 인생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만 존재하면 안된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며 느끼는 맛있는 음식, 친구들과의 대화, 잠깐씩 느끼는 기분 좋은 바람. 이것들을 느끼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인생이고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소울>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 '조'에 완전히 이입했었다. 꿈이라고 믿었던 재즈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았던 조. 나도 한때는 '영화 일만 하면 정말 행복할 거 같다'라고 굳게 믿었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막상 일을 해보니 좋은 순간들도 물론 있었지만, 아닌 적이 더 많았고 "왜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도 이렇게 불행할까?"라고 곱씹던 적이 많았다. 대학생 때부터 온갖 영화제 대외활동을 하며 영화계 일을 하는 그 순간을 꿈꿔왔지만, 현실은 그렇게 눈부시지 않았고 다른 직장인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내 꿈은 영화계에서 일해서 성덕이 되는 거야" 입 버릇처럼 말했지만 내가 영화계에 일한다고 해서 그 일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기쁜 순간에 비해 힘든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코로나가 찾아오면서 얼어붙은 영화계에 관객들은 발을 돌리기 시작했고 나는 더욱 더 일할 의미, 더 나아가 삶의 의미를 잃었던 것 같다.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영화 일을 하는거지? 사람들이 관심도 없고 보지도 않을 영화를 위해 내가 이 개고생을 왜 해야하는 거지? 라고 하루에 쉴 틈 없이 물음표를 떠올렸다. 그렇게 지쳐있던 내게 <소울>은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건네줬다. "네가 바랐던 꿈이 네 인생의 끝이 아니야"라고. 내가 겪는 모든 순간들이 인생의 일부분이며, 일상을 겪어내는 순간들이 내 인생 자체고 그것이 소중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눈물을 펑펑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 이렇게 힘들어도, 네가 틀리지 않았어. 괜찮아. " 그렇게 누군가 말해주길 바랐던 거 같다.
항상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이 업계 언젠가 떠야지"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보면 그랬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이런 영화로 마케팅하면 정말 재미있고 신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는 이 업계의 노예인가 라는 생각도 한다.
<소울>을 보고 나서도 딱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라고.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힐링'이 된다. '힐링'은 이제 너무나도 많이 쓰여 닳고 닳은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이렇게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어 아쉽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세계, 만나지 못할 캐릭터들이 내 마음을 울리는 보편적인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것들은 나를 가만히 토닥여준다. 그 어떤 사람과의 대화보다도 가끔은 영화 속 캐릭터들이, 그들의 행동이 내게 위안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는 그래서 어쨌거나 한동안 계속 영화를 사랑할 예정이다. 끊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야근몬스터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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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로서 드러내라, 예술가로서 저항하라
영화를 볼 때, 저는 자주 영향적 감상에 빠지곤 합니다. 영향적 감상은 '나를 변화시킬 만큼 큰 영향을 주는 영화 감상'이라는 뜻인데요. 영화에 감명을 받고 마음을 다잡는 일이 너무 많아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사진을 아끼는 사람이기에 이번 영화는 제게 특히 더 많은 영향을 주었죠.
사진의 힘은 위대합니다. 사진을 훑는 것만으로 기억의 파편들은 이야기로 재생됩니다. 그리고 여기,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의 파편들을 사진으로 담은 한 사진작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2024년 5월 15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Summary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사진은 나의 유일한 언어였다. 나는 생생하게 반짝이는 뉴욕에서 죽어가는 친구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포착했고, 있는 그대로의 내 얼굴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이제는 내 모든 명성을 걸고 거대 제약회사에 맞서 싸운다. 생존과 투쟁의 기록이 담긴 나의 일기장을 당신에게 펼쳐 보인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로라 포이트라스
명성을 이용해 폐단을 무너뜨리다
낸 골딘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입니다. 거장이나 대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엄청난 분이죠. 그런 그가 미술관을 돌며 시위를 벌입니다. 그중에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했던 미술관도 있고, 곧 자신의 회고전을 열 미술관도 있습니다. 낸 골딘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미술관 바닥에 약통을 뿌리고, 바닥에 드러누워 죽은 시늉을 합니다.
그의 저항 운동은 제약사 퍼듀 파마와 그 배후에 있는 새클러 가문을 향합니다. 퍼듀 파마는 '옥시콘틴'이라는 진통제를 만든 회사입니다. 옥시콘틴은 가벼운 고통을 느끼는 환자에게도 의사가 쉽게 처방해 주던 약이었죠. 하지만 이 약은 퍼듀 파마가 매출을 높이기 위해 만든 마약성 진통제였습니다. 퍼듀 파마는 부작용을 은폐하고, 거짓 광고로 현혹하고, 공격적인 영업으로 판매를 촉진했죠. 옥시콘틴을 처방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마약에 중독됐습니다. 옥시콘틴은 판매가 금지되기 전까지 무려 720억 정이 팔렸으며, 이로 인해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퍼듀 파마를 운영하는 새클러 가문은 옥시콘틴으로 벌어들인 돈을 예술계에 후원함으로써 이미지를 세탁했습니다. 전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기부금과 후원금을 제공한 덕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뮤지엄, 루브르 박물관 등 유수의 미술관에 이른바 '새클러 갤러리'라는 이름을 건 전시관이 개관했습니다. 예술을 방패 삼아 탐욕의 벽을 쌓아 올린 새클러 가문의 악명을 알리기 위해서는 내부자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예술계를 움직이는 내부자의 힘, 이를 발휘한 사람이 바로 낸 골딘이었죠.
낸 골딘은 사진작가로서 쌓아온 자신의 명성을 이용했습니다. 위대한 사진작가의 전시를 유치해야 하는 미술관의 입장에서 그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었죠. 미술관들은 하나둘 새클러 가문의 후원을 거부하고, 갤러리에서 새클러의 이름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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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그 자체로 예술
낸 골딘이 새클러 가문에 대한 저항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은 그 역시 옥시콘틴을 복용했다가 약물에 중독된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명성까지 거침없이 이용하는 그의 저항력이 오직 당사자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중첩되어 온 그의 과거가 저항력의 힘과 크기를 키운 것이었죠. 영화는 낸 골딘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강력한 저항력의 출처를 탐색해 나갑니다.
언니의 자살 이후, 어릴 때부터 바깥 생활을 전전해 온 그는 소외된 자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베스트 프렌드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터부시되던 성소수자였고, 그 역시 그랬습니다. 낸 골딘은 무언가를 억지로 꾸며내 프레임에 담기보다는 자신의 일상을 고스란히 포착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에게 사진은 표현의 두려움을 대신할 도구이자 해방처이기 때문이었죠. 낸 골딘은 일상의 모든 아름다운 면과 유혈사태를 가감 없이 사진에 담아냈습니다.
내밀한 일상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소외된 자를 드러내는 예술적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예술과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저항을 실천해 온 셈입니다.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사회에서 바뀌지 않는 것을 바꾸는 것. 정해진 답을 따르는 것은 예술가의 행보와 어울리지 않지만, 낸 골딘이 포착한 기억의 파편들을 보다 보면 '예술가는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물씬 밀려옵니다.
어떠한 행운 또는 불운의 결과로 제게도 권력이 생긴다면, 저도 낸 골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쌓인 기억의 파편으로 저항력의 힘과 크기를 키운 사람,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메시지에 힘을 더하는 사람, 권력을 권력답게 쓰는 사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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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자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지만, 항상 예쁘고 멋진 순간만 포착하려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낸 골딘이 그러했듯이, 있는 그대로의 일상에서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싶어졌습니다. 영향적 감상 끝에, 평소와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으로 가방에 카메라와 삼각대를 넣어봅니다.
One-Liner
예술의 가치는 표현의 자유에서 오고, 표현의 자유는 예술을 저항의 도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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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하고도 서슬 퍼런 폐곡선!
불안하다. 그리고 가혹하다. 바람에도 쓰러질 것 같고, 잠금장치를 해도 괴한이 들이닥칠 것 같은 비닐하우스를 집 삼아 사는 이 여성의 삶은 위태로워 보인다. 아들과 행복한 삶을 목표로 돌봄 노동의 굴레에 벗어나지 못하는 비참한 현실도 한 몫 한다. <비닐하우스>는 희망에 저당잡혀 고통을 반복하는 여성의 일상을 켜켜이 쌓아 불쏘시개로 활용하며 마지막 절망이란 화마를 관객에게 안긴다. 활활 타오를수록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불꽃을 한 참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관객들도 절망의 늪에 빠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만큼 이 영화는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폐곡선을 그리고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문정(김서형)은 소년원에서 출소를 앞둔 아들과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간병인 일을 한다. 치매를 앓고 있는 화옥(신연숙)을 돌보는 건 쉽지 않지만, 많은 걸 이해해주는 화옥의 시각 장애인 남편 태강(양재성) 덕분에 문정은 조금이나마 숨을 돌린다. 하지만 그녀 앞에 산재해 있는 고난은 변함없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집단 상담도 참여하지만 그녀의 삶을 행복으로 인도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태강이 외출한 사이 문정은 화옥을 돌보다 그만 사고를 낸다. 집에 돌아온 태강이 마주한 건 싸늘한 시체가 된 아내의 모습. 그가 앞을 볼 수 없다는 걸 아는 문정은 이 사실을 숨긴 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비닐하우스>는 마치 부풀어 오르는 풍선을 보는 듯하다. 문정이 숨기는 진실이 언제 밝혀질지 모르는 심리적 압박감은 계속해서 관객을 짓누르는데, 마치 문정이 처한 고난의 현실을 관객 또한 오롯이 느끼라는 감독의 의도처럼 보인다.문정에게 희망은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계속되는 돌봄 노동과 지옥 같은 현실을 버티기 위해 자신의 뺨을 후려 치는 자학뿐이다. 그녀를 도와줄 이는 없다. 오히려 그녀가 돌봐야 하고 선의를 배풀어야 하는 이들이 더 많다. 화옥은 물론, 요양병원에 있는 친엄마, 소년원 출소를 앞둔 아들, 그리고 집단 상담에서 만난 순남(안소요)이 바로 그 주인공. 문정은 이들에게 선의를 배풀지만 돌아오는 건 악의뿐이다. 어쩌면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현실은 그녀를 점점 미치게 만든다.
영화는 절망의 늪에 빠진 여성을 구하기는커녕, 온 몸이 잠길 때까지 지켜보는 세상의 비정함이 서려있다. 이는 사회안전망 밖에 놓인 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절망적 상황에 빠진 한 개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의 힘이 필요한데, 영화는 아예 이 부분은 거세한다. 스릴러 장르에 충실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이지만, 이런 감독의 의도는 실제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모두 케어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의 한계를 꼬집는다.
물론, 이 영화가 사회 비판적 시각만으로 점철된 작품은 아니다. 연출을 맡은 이솔희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따뜻하고 조용한 드라마로서 연약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벌어지는 지독하게 아픈 이야기”라고 설명한 바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감독의 이 말을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독’하게 아픈 이야기는 맞다고 본다. 극 중 문정을 포함해 행복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마지막 화재 장면은 모든 증거를 없애려는 문정의 행동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의 울분이자 그동안 억눌러왔던 화와 욕망이 발현된 장면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영화의 무겁고도 차가운 분위기는 절망뿐인 인물들의 감정을 돋보이게 하고, 의도하지 않은 예측불허의 사건들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등 스릴러 장르의 긴장감도 갖는다. 물론, 후반부 몰아치는 결말로 가기 위한 문정의 비윤리적, 비논리적 행동들이 스토리의 짜임새를 헐겁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건 김서형 덕분이다. 그녀는 전작에서 보여줬던 카리스마를 내려놓고 도무지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공허한 눈빛과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로 기이함까지 전한다. 그녀의 예측불허한 연기는 영화의 동력으로 작용하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서형에게 뒤질 세라 안소요의 연기 또한 발군이다. 순남 또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로서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문정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빚어지는 에너지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비닐하우스>는 예측불허의 스토리만큼이나 점점 변해가는 문정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뺨을 치는 소리로 시작해 화염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이 작품은 그동안 짓눌렀던 감정이 폭발하는 동시에 또 다른 죄책감에 사로잡힌 문정의 이야기로도 보인다. 마지막 그녀는 무엇을 보고 놀란 것일까? 진실은 그녀만이 알고 있을 듯하다.사진 제공: ㈜트리플픽쳐스
평점: 3.0 / 5.0
한줄평: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하고도 서슬 퍼런 폐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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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틴 아메리카 4 | 반등했지만 비상하지는 못한 MCU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의 방패를 물려받고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난 '샘 윌슨'(앤서니 매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위험이 닥쳐온다. 소코비아 협정으로 어벤져스를 궁지에 몰았던 '로스'(해리슨 포드) 장군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 로스는 인도양에 자리 잡은 티아무트 섬에서 채굴된 새로운 금속 아다만티움을 둘러싼 국제 분쟁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그 목으로 샘에게 어벤져스 재창설을 제안하며 협력을 요청한다.
하지만 둘은 쉽사리 손잡지 못한다. 백악관 테러의 배후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 2대 팔콘 '호아킨 토레스'(대니 라미레즈)와 함께 수사에 나선 샘은 이내 '리더'(팀 블레이크 넬슨)의 음모를 발견한다. 뇌에 스며든 헐크의 피 덕분에 초인적인 계산 능력을 얻은 그가 약속을 안 지킨 로스에게 복수하려 했다는 것. 그 사이 티아무트 섬 분쟁은 전쟁으로 치닫고, 분노를 참지 못한 로스는 '레드 헐크'로 변할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MCU, 마침내 반등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루소 형제의 MCU 복귀 뉴스는 멀티버스 사가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자인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캐릭터를 못 살렸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퇴장한 주요 캐릭터의 후계자 중 자기만의 서사와 매력을 보여 경우는 많지 않았다. 자연히 이전 작품이 그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3> 같은 인피니티 사가의 후속담에 관객들이 호응한 이유였다.
MCU만의 매력도 잃었다. MCU의 핵심은 시리즈 간의 연계였다. 한 영화 속 사건이 다른 영화에 영향을 끼치는 연쇄작용은 다른 프랜차이즈에서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쾌감이었다. 그런데 멀티버스 사가는 각자 자기 일을 해결하기 바쁜 영웅들만 비췄다. 토니 스타크처럼 시리즈를 오가는 구심점도, 인피니티 스톤이나 타노스 같은 궁극적인 목적지도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데드풀과 울버린> 이후 약 8개월 만에 공개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이하 <캡틴 아메리카 4>)는 상술한 두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안을 제시하는 듯하다. 그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다.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 샘 윌슨은 차별화된 매력과 상징성을 증명하며 성공적으로 재데뷔했다. 미국 대통령이 된 로스는 흩어진 MCU의 이야기 중 일부를 묶어냈다. 이에 힘입어 MCU도 마침내 반등의 기틀을 마련한 듯 보인다.
샘 윌슨의 증명
캡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자유',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자유'다. 1편 <퍼스트 어벤져>에서 스티브 로저스는 나치와 하이드라에 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영웅이었다. 2편 <윈터 솔져>에서는 모든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으로 전 세계를 통제하려 한 하이드라와 맞서 싸웠다. 3편 <시빌 워>에서도 미국 정부와 유엔, 동료 절반과 척을 지면서까지 어벤져스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즉, 스티브 로저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를 제외하면 정부 뜻대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비록 이름은 누구보다도 미국 정부의 하수인처럼 느껴지지만, 그에게는 개개인의 자유가 최우선 가치였다. 자유에 뒤따르는 책임도 개인이 온전히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유를 억압하려는 정부의 개입에는 일관되게 반대하는 슈퍼히어로였고,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어벤져스의 이상을 상징했다.
샘은 자신이 스티브의 신념과 이상을 계승했음을 증명해 낸다. 일례로 로스가 어벤져스 재창설을 부탁했을 때도 샘은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사야 브래들리(칼 럼블리)'를 무작정 백악관 테러 범인으로 몰아간 처사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샘이 리더의 음모를 알아채고, 전쟁을 막은 것 역시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가 로스 대통령의 압력에 굴하는 대신 독자적으로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리더의 계략 때문에 의도치 않게 레드 헐크로 변한 로스를 샘이 저지하는 장면 또한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자격을 증명한다. 샘은 레드 헐크 안에 있는 로스의 자유의지를 신뢰했다. 로스가 헐크에게 저지른 과오를 씻고, 딸 '베티'(리브 타일러)에게 속죄하려는 열망이 진심이라고 믿었기에 레드 헐크를 설득해 로스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이는 <윈터 솔져>에서 버키를 믿고 그에게 자기 목숨을 맡겼던 스티브의 선택과 다르지 않다.
같게 또 다르게
그와 동시에 <캡틴 아메리카 4>는 '버키'(세바스찬 스탠)의 입을 빌려 샘 윌슨만의 상징성과 매력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옳다고 믿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스티브 로저스는 믿음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윈터 솔져>에서 쉴드의 일반 요원들은 그의 연설에 용기를 얻어 하이드라와 총격전을 벌였다. 이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그보다 능력이 뛰어난 다른 히어들이 그의 지시를 따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샘 윌슨은 다르다. 그는 혈청도 맞지 않았고, 초인적인 정신력을 지니지도 못한 평범한 군인이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티브를 도우며 옳다고 믿은 신념을 따르는 과정에서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더 나아가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났다. 즉, 그는 누구나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고 옳은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타고난 리더였던 스티브보다는 동반자에 가까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달라진 액션 스타일은 두 캡틴 아메리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방패를 활용한 액션은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공통점을 보여주지만, 더 아크로바틱 한 액션은 차이점을 암시한다. 대인 액션 시퀀스에서 샘은 스티브보다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스티브와 달리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는 없기 때문. 슈퍼 솔저는 아니어도 스티브의 신념을 이어가려는 샘의 노력이 액션의 차이점에도 녹아있는 셈이다.
로스라는 연결고리
샘이 캡틴 아메리카의 자격을 증명하는 사이, 로스 대통령은 MCU의 유산을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의 플롯은 샘과 마찬가지로 증명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로스는 헐크에게 군대를 보내고, 어벤져스를 감옥에 보냈던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의 변화는 정치적 측면과 개인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지점에서 <캡틴 아메리카 4>는 서로 다른 시리즈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던 과거 MCU를 연상케 한다.
로스의 플롯 중 정치적 측면은 <이터널스>의 후폭풍과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인도양의 섬이 되어버린 티아무트에서는 비브라늄보다 단단한 금속 아다만티움이 발견된다. 이에 로스는 일본, 인도, 프랑스 등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자 한다. 티아무트 섬을 남극처럼 중립지대로 놔두고, 아다만티움을 지구촌이 공유하자는 것. 로스는 호전적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백악관 테러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대화를 통해 조약을 체결하고자 애쓴다.
로스의 변화는 개인적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크레더블 헐크>의 유산을 활용해 그의 부성애를 부각한다. 로스는 한때 브루스 배너의 연인이었던 딸 베티와의 화해를 염원하고 있으며, 그전에는 차마 죽을 수 없어서 리더에게 심장병 치료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 과정에서 리더의 계략 때문에 레드 헐크로 폭주하기도 하지만, 그에 맞는 죗값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히어로로 변모할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즉,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피니티 사가의 후일담이자 멀티버스 사가의 연결고리인 셈이다. 마침내 MCU다운 영화를 보는 듯하고, 극 중 삽입된 여러 복선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벤져스 재창설이라는 떡밥이 등장하고, 쿠키 영상에서 <어벤져스: 둠스데이>와 <어벤져스: 시크릿 워즈>를 암시함에 따라 마침내 멀티버스 사가의 목적지가 보이기 때문. 마치 10여 년 전 MCU를 보는 듯한 향수를 자극하는 장치다.
양날의 검
그러나 로스를 전면에 내세운 선택은 양날의 검이다. 우선 진입장벽을 높인다. <캡틴 아메리카 4>는 <인크레더블 헐크>와 <팔콘과 윈터 솔져>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문제는 두 작품 모두 접근성이 낮다는 것. 전자는 MCU가 인기를 얻기 전인 2008년에 개봉했고, 후자는 디즈니+ 드라마이기 때문. 초반부에 뉴스 형식으로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두 작품을 보지 않았으면 극 중 상황을 즉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의 밀도도 낮춘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빌런과 히어로의 대립이 고조될 때 클라이맥스의 쾌감이 극대화된다. 그런데 샘과 리더는 각자의 이유로 로스와 갈등을 빚을 뿐, 정작 서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티아무트 섬에서 샘과 로스의 대립이 일단락된 순간, 영화는 긴장감이 꺾인다. 로스와 리더의 플롯이 남은 가운데, 샘의 역할이 애매해지는 것. 그 결과 레드 헐크와 샘의 충돌도 비록 눈은 즐겁지만, 뒷북처럼 느껴진다.
리더와 <시빌 워> 속 제모 남작을 비교해 보면 문제가 더 명확하다. 두 빌런은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며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가짜 미끼를 던져주고, 주인공끼리 싸우게 만든다. 그러나 리더와 달리 제모는 캡틴 아메리카에게 원한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와 아이언맨을 분열시키는 전개는 복수라는 맥락 안에서 개연성이 있었고, 서스펜스를 끝까지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정확히 <캡틴 아메리카 4>에서 빠진 스토리라인이다.
더 나아가 기시감도 극대화된다. 영화가 늘어짐과 동시에 지난 시리즈를 답습한 장면이 드러기 때문. 일례로 백악관에서 이사야가 도주하는 시퀀스의 연출과 타이밍은 <윈터 솔져>에서 버키가 닉 퓨리를 저격한 후 도주하는 장면을 빼닮았다. '사이드와인더'(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가 도로에서 샘을 급습하는 장면, 리더가 군사 기지 지하에 숨어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는 오마주를 넘어서서 자가복제에 가까워 보인다.
비상까지는 부족한 한끗
그 외에도 <캡틴 아메리카 4>는 이전 시리즈에 비해 완성도가 한끗 부족한 순간이 적지 않다. 액션 연출이 대표적이다. 물론 확실한 장점도 있다. 캡틴 아메리카와 팔콘이 일본 해상자위대 및 세뇌된 미 해군과 펼치는 공중전에서는 최근 MCU에서 보지 못한 역동감이 느껴진다. 빠른 속도감과 레드윙을 활용한 신선한 연출 덕분이다. 레드 헐크도 <어벤져스> 1편과 2편에서 보여준 헐크의 위용만큼 파괴적인 액션 시퀀스를 선보인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라는 제목에 비하면 전반적인 액션 연출은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대인 액션, 육박전 장면에서는 카메라 워크나 편집 속도가 한 템포씩 늦다 보니 주인공들의 움직임에서 박력이 덜 강조된다. 군사 기지 지하 복도에서 군인들과 샘, 호아킨, '루스'(쉬라 하스)가 한 데 뒤엉키는 액션 장면을 <윈터 솔져>나 <시빌 워>의 액션 시퀀스와 비교해 보면 부족함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숱한 재촬영의 여파도 가리지 못했다. 주요 캐릭터 중 일부는 중요성에 비해 분량이 적다. 일례로 로스의 안보 보좌관이자 레드룸 출신 블랙 위도우인 루스는 스티브-샘-나타샤처럼 샘, 호아킨과 팀을 이루는 데도 활약이 미미하다. 전개도 편의적이다. 레드 헐크가 샘에게 갑자기 설득되거나, 사이드와인더가 손쉽게 샘에게 협력하는 식이다. 기존 촬영분과 재촬영분을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후반부 전개를 섬세하게 다듬지 못한 흔적이다.
종합하면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새로운 <퍼스트 어벤져>에 가깝다. 기존 클리셰에 기대면서 완성도는 일부 포기하더라도, 세계관의 핵심 인물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며 시리즈와 유니버스의 기반을 다졌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달리 말하자면 반등에 성공했을 뿐, 아직 날아오르지는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결국 두 후속 타자, <썬더볼츠*>와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의 어깨가 여전히 무거워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날아오르기에는 아직 출력이 부족한 캡틴 아메리카와 M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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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가 날 부를 때> 메인 예고편
꿈을 이루기 위해 홀로 돈을 벌고 공부하며 고군분투하던 ‘안란’.
어느 날, 간절히 바라던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몇 번 본적도 없는 어린 남동생이 안란에게 덜컥 맡겨진다.
동생을 키우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누나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어른들.
“내 인생에는 너만 있는 게 아냐.
나에게도 우주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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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아나 2> 메인 예고편
전 세계를 감동시킨 모험이 다시 시작된다! 부족의 파괴를 막고, 고대 섬의 저주를 깨기 위해 길잡이로 다시 떠나는 새로운 여정🌩️ [모아나 2] 메인 예고편 공개!🌊⛵️ 올 연말 최고의 기대작 [모아나 2], 11월 27일 극장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