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샤2025-04-20 23:05:26
곤돌라는 무언의 사랑을 싣고
영화 <곤돌라(Gondola)> 리뷰
오래전 모 제과 회사의 초콜릿 파이 광고 배경 음악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가사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초콜릿 파이만 건네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이 아주 잘 전해진다는 것이었다. 기억하기 쉽고, 따뜻하고, 중독성 있는 가사와 멜로디 덕분인지 그 초콜릿 파이는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데 마법을 부리는 초콜릿 파이의 도움 없이 입을 꾹 닫은 채 눈짓, 손짓, 몸짓 등 비언어적 표현만으로 정말 나의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대사 없이 무성 영화처럼 연출된 <곤돌라>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랑의 가능성을 낙천적으로 긍정한다.
영화 <곤돌라>의 공간적 배경은 꽤 험준한 산맥에 안겨 있는 조지아의 조용한 산골 마을이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이어 주는 사실상 유일한 교통수단은 비좁은 곤돌라다. 사람들은 삶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곤돌라에 실어서 옮긴다. 사람, 동물, 와인, 음식, 각종 생활용품은 곤돌라의 단골 승객이다. 곤돌라의 양쪽 문을 활짝 열면 길쭉한 관(棺)도 곤돌라에 적재할 수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의 희로애락을 곤돌라와 함께한다. 이런 환경이라면 사랑도 곤돌라와 떼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마을 곤돌라의 새로운 승무원 '이바'와 일한 지 좀 된 듯한 승무원 '니노'는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엇갈리며 서로를 지나치는 찰나의 순간마다 눈빛을 교환한다. 서로를 향한 그윽한 눈길은 곤돌라를 움직이게 하는 기계 장치와 철제 케이블처럼 서로를 서로에게로 끌어당긴다. 두 사람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처럼 장난치고, 함께 체스를 두고, 각자가 다룰 수 있는 악기를 연주해서 선율을 들려주고, 함께 와인을 마신다. 곤돌라 혹은 곤돌라 승강장에서.
영화 <곤돌라>는 일부 장면의 음악과 비주얼이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을 떠오르게 할 만큼 언뜻 보면 마냥 행복한 동화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 성 소수자가 겪는 다양한 난관을 곤돌라를 활용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이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곤돌라와 곤돌라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산경(山景)은 아름답지만 멀리서 보면 철사 두 줄에 의지하고 있는 듯한 곤돌라는 매우 위태롭게 느껴진다. 기발하고 깜찍한 착상으로 창조한 영화 <곤돌라>의 동화 같은 세계는 관객의 마음을 데워 주는 한편 냉혹한 현실도 곱씹게 만든다.
- 끝 -
* 씨네랩의 초청으로 4월 12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곤돌라>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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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설>
<청설>
로맨스 장르 속에 숨겨진 달달한 주제의식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로맨스 장르가 떠오른다. 혼자 사는 게 익숙해지면서 죽은 감성 되살리는데 로맨스만 한 장르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로맨스 영화를 찾아볼 때 나는 몇몇 필터를 끼워두고 영화를 찾아보는 편인데,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이 어디서 탄생했는지를 보는 것이다. 배경만으로 영화를 판단해서 본다는 것이 우습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효과가 있는 편이다. 팬심으로 가득 채워서 보는 나라가 바로 대만영화인데 대부분의 작품들이 내게 실망 없이 비교적 좋은 인상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부러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는 몇 편씩 뒤로 미뤄놓고 나중에 봐야지 하고 아껴두는 편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청설>이다. 영화를 습관적으로 보던 때부터 눈에 띄어서 '봐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아까운 마음에, 마치 맛있는 음식을 제일 뒤에 먹어야 할 것처럼 미루어두다가 마침내 보게 되었다.
<청설>을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대충 '내가 듣기로는' 정도가 되겠다. '내 말을 들어주세요'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기엔 전자가 오히려 영화의 주제나 분위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청설>의 시놉시스는 비교적 간단하다. 손으로 말하는 양양(진의함 분)과 그녀에게 반하게 된 티엔커(펑위엔 분)의 연애 스토리다. 양양은 청각장애인 언니 샤오펑(천옌시 분)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손으로 말한다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전에 시놉시스를 보는 편일 텐데, 개인적으로 시놉시스가 영화에 비해서 조금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로맨스라고만 정의하기엔 가족애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고, 사랑이라는 주제를 넘어서 이해에 관한 직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였다. 영화의 비중만 따져보았을 때에도 남녀의 로맨스보다 이해에 관한 메시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 그 특유의 무드를 유심히 관찰하는 편인데. 영화 초반부 10분 내에 탐색전을 끝마치는 편이다. 전개 속도는 어떤지, 영화의 전체적인 색감은 어떤지, 영화 배경의 비주얼은 어떤지 등등 보다 보면 10분 안으로 마음에 드는 영화인지 아닌지가 금방 판명나버린다. 때문에 아깝게 놓친 몇몇 작품들도 있겠지만, 첫인상에 마음이 가지 않는 것만큼은 돌릴 방도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청설>은 마음에 꼭 들어맞는 영화는 아니었다. 색감이나 비주얼은 마음에 들었지만, 배경 설명조차 없이 전개되는 10분의 시간 동안 영화를 단번에 파악하기가 조금 어려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초반 10분에는 주인공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대사가 말이 아닌 수화로 진행되기 때문에 자막을 놓치면 인물들의 감정조차 읽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설>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개인적인 취향의 무드를 잘 지켰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만영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부모님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인화해 보는 그런 기분이 든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유난히 짙은 따뜻한 색의 톤과, 그런 톤에서 오는 청량함, 고전적인 배경음악, 오래된 것 같은 장비와 순진한 인물들의 성격까지. 영화 자체가 2009년 개봉작이다 보니 오래전처럼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최근에 개봉하는 영화들을 보더라도 그 감성을 자극할 줄 아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무드들에 어울려 떨어지는 스토리가 후반부까지 잔잔하게 이어진다. 뚜렷이 매력적으로 끌어당기는 것과는 다른 삼삼한 맛이 있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영화 중반 중반마다 의도적으로 연출한듯한 여백 또한 마찬가지로 그런 맛을 위한 첨가물 정도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하나, 대놓고 말하자면 스토리 전개 방식은 진부한 편이다. 로맨스 영화의 뻔한 답습을 그대로 이어서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녀가 우연하게 만나고, 반하고, 오해하고, 화해하고 ... 내용만 꺼내놓고 보자면 심심하기 짝이 없지만 영화의 부소재들을 잘 활용했기 때문에 높은 평점을 주고 싶다. 영화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인물 한 명의 감정에만 초점을 맞춰 서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꽤나 급작스러운 전개에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지킬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인물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스토리의 본질을 잊지 않는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소재를 덧대어 대사 몇 마디 없는 이 영화가 주는 감정과 메시지는 무엇일까.ㅍ영화가 조용했던 탓에, 영화를 보며 이런저런 사색에 빠지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도리어 좋은 기회를 주었던 셈이다.
영화 정보를 보면서 단순한 로맨스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영화 소개를 잘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맨스 장르로만 판별하기엔 가족애를 이야기하고픈 장면들이 많이 보였다. 언니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희생하는 동생이 결코 아름답게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도 일차원적인 인물의 서사로 잘 보인다. 남녀의 감정 변화보다 자매의 감정 변화가 더욱 초점이 맞춰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동시에, 남자 주인공 티엔커의 가족 또한 이러한 모습을 더욱 부각한다. 청각장애를 가진 여자 친구를 들이는 일은 분명 큰 고민이었을 것이다. 아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믿어주는 것에 대해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을 보는 과정은 즐겁지만, 현실에 맞대어 비추어 보았을 때 괜히 씁쓸한 감정이 들었던 것만큼은 부정하고 싶지 않다.
청각장애인도 똑같은 일상이 있다는 누군가의 리뷰가 흥미로웠다. 그토록 영화를 많이 봤던 내게도 일종의 프레임이 있었다는 게 동시에 부끄러웠다. 맞는 말이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손과 입이었을 뿐이었다. 밥을 먹고, 꿈을 꾸고, 잠을 자고 이런 모든 행동들이 매번 희생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내 꿈을 빼앗지 말라는 강한 어투에서 마침내 양양은 착각에서 벗어나 샤오펑과 진심을 공유한다. 언니의 응원이 되어주고 싶었던 삶이 의무로 바뀌는 순간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지, 깨닫은 순간에서야 서로에게 진심이 되어준다. 그리고 양양은 그 순간에 성장의 길로 걸어간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깨닫고, 자신의 사람에게로 돌아가도 괜찮다는 각오를 한다. 이 과정을 관객은 같이 걸어간다. '수화를 하는 사람이니까 말도 못 하겠지'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결말에 당도하는 순간 알게 모를 희열을 느끼게 된다. 결국, 오해는 주인공과 마찬가지인 우리도 함께 했었던 셈이다.
'말 안 했어요, 수화로 얘기했어요.' 이 대사 한 줄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 들을 수 없어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는 것. '사람과 꿈은 기적 같은 일이다 들리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통역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영화는 직접적으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하지 않는데 내 모든 진심이 통하길 바라는 것은 이기적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소통은 가끔 불통이 되고, 어긋나고 오류를 범한다. 주인공은 그래서 고민하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탓하기보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다시 노력한다. 마침내, 이뤄낸 사랑 앞에서 두 주인공 모두 깨닫는다. 사랑이나 꿈 모두 굳이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이다. 가족이라면 희생이 아닌 믿음으로 응원할 수 있고, 사랑이라면 노력하려 애쓰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는 것까지 영화 전반적으로 거듭 강조해서 이야기한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이 메시지는 역으로 더 강하게 드러난다. 눈치챌 것만 같은 반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까지 다다르게 하는 힘은 바로 메시지에 있었던 셈이다.
<청설>은 맘 놓고 쉽게 보기에 편한 영화다. 극적인 영화 장치나, 판을 뒤집을만한 갈등이나, 무지막지한 반전이 있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두 남녀가 조금 특수한 상황에서 사랑을 이루어가는 뻔한 영화일지도 모른다. 이런 로맨스 영화를 두고 나는 '순수하다'라고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유치하다는 표현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표현을 하고 싶은 일종의 팬심일지도 모른다. 기대를 하고 보면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밤에 맥주 한 캔 꺼내놓고 가벼운 안주랑 보기에는 딱 적절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코로나 때문에 영화 시장이 완전히 기울고 말았다. 영화관이 문을 닫으며 제작사들은 제작을 멈추고, 큰 규모의 영화들의 대부분이 개봉을 연기하거나 심지어는 취소하기도 했을 정도니까 영화계 여파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화라는 하나의 장치를 통해 로맨스를 보며 죽어있던 감정을 깨우고, 액션을 보면서 꿈을 키우며, 다큐멘터리를 보며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으면 한다.
사진 출처 : <聽說> In Mo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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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 너머에 사는 아이들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청 받은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날 하루 전이었다. 나는 영화 한 편을 보러 갔다. 예고편도 챙겨보지 않아 어떤 내용일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보러 간 영화였다. 그리고 극장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음, 글쎄. 흔히들 '어린이날 전야에 보는 영화'를 생각하며 떠올릴만한 그런 종류의 영화는 아니었다. 내가 본 것은 어느 그림자의 가장 밑바닥, 채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때떄로 우리 살기 바쁜 나머지 이웃이나 그 너머의 삶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곤 한다. 나만 해도 그렇다. 세계는 눈부시게 발전했고 사람들은 어디에서든지 얼마쯤은 먹고 살만 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아와 난민, 전쟁과 마약 따위는 언제나 뉴스와 신문을 빼곡히 채우고 있지만 나는 그것이 어쩐지 나와는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여겨져서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보지 않으려고 했다는 게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령 내가 그곳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그런 그림자 속을 사는 이들이 있다. 이를테면 영화 <토리와 로키타> 속의 두 사람이 그렇다.
토리와 로키타는 벨기에에 사는 난민 남매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둘은 서로를 유일한 가족으로 삼고 서로를 애틋해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고 두 사람은 매 순간 벼랑 끝에 몰린다.
학대 정황이 포착된 토리와는 달리 로키타는 체류증을 받지 못했다. 체류증이 없으면 그 땅에서 일하지 못하고, 일하지 못하면 돈을 벌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하면 로키타는 난처해진다. 돈 나갈 구석이 너무 많았으니까. 고향 카메룬에서는 엄마와 동생들이, 도시 내에선 그를 밀입국 시켜 준 브로커가 호시탐탐 그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었다. 이 낯선 땅에서 만난 유일한 가족인 토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라도 돈은 필요했다. 그래서 어린 로키타는 그 체류증이 너무나 절실했다. 로키타가 너무나 소중했던 토리에게도 그랬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서 그렇듯, 어떤 절실함은 돌이키지 못할 후회를 낳곤 한다.
로키타가 체류증 발급 심사에서 떨어졌다고 하자, 베팀이라는 남자는 체류증을 위조해주겠노라 한다. 자신이 제안한 '수상쩍은 일'을 승낙한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베팀은 이를테면 토리와 로키타의 상사였다. 두 사람은 밤마다 몰래 복지 센터를 빠져나와 그가 건네는 마약을 배달하는 일을 했다. 베팀은 어린 소녀를 거리낌없이 성적으로 유린하는 사람이었고, 로키타는 그런 그가 건네는 푼돈이 끔찍했을테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하여 로키타는 스스로 비극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아니, 떠밀려 들어간다.
토리와 로키타의 삶은 지난하다. 어른들은 상냥하지 않았다. 탐욕스럽고 잔혹하거나 매정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아이들은 더 손쉽게 착취되거나 무시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법의 이면에 있는 일에 손을 대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더 나았을테지만, 그들에게 정말로 그러한 기회가 주어졌을까? 로키타는 정당하게 일하고 싶어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림자 너머의 일은 너무나 쉽게 손에 닿았을 것이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것은 지독하게도 선명한 현실의 단면이다. 스크린 밖에는 여전히 수많은 토리와 로키타가 있다. 그들은 어쩌면 영화 속에서보다 더 날카로운 흉터를 안고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서로를 살게 하는 토리와 로키타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그들은 존재한다. 거기에 있다. 우리가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간에 외면했던 그 그림자 너머에.
이러한 착취적인 삶은 우리와 완전히 유리된 것일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자본주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누군가에게 착취 당한다. 쥐가 고양이에게 잡아 먹히고, 고양이가 개에게 물리고, 개가 나무 몽둥이에게 맞아 죽고 말았다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노랫말(극 중 토리와 로키타가 불렀다.)처럼 말이다. 한국만 하더라도 난민 문제가 대두된 바가 있고, 불법 체류자 문제는 오래 전부터 신문의 한 면을 장식하다 못해 식상할 지경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온갖 정치적인 문제 이전에 그들이 정말로 사람다운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비극이 손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 슬프고 끔찍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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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탁에 둘러앉아 새해를 맞는 과거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고기를 정성스레 펼치는 칼질로 영화는 시작한다. <커밍 홈 어게인>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은 조심스러운 돌봄의 손길이다. 1997년 쓰인 에세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는, 꼭 문장을 가만가만 읽을 때처럼 소리 없이 앉아 주인공이 누비는 집안을 둘러본다.
아시아계 이민자의 가시화가 어느 때보다도 많은 지금, <커밍 홈 어게인>은 그렇지 못했던 시대의 이야기에 늦은 보상을 하기라도 하듯 영화관에 나타났다. 주인공이 아침 일과를 마치고 식탁 앞에 앉자 카메라는 돌연 뒤를 돌아본다. 혼자 사는 남자인 줄로만 알았던 창래는 순식간에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간병하는 아들로서 소개된다.
영화는 제목처럼 집으로 다시, 또 다시 돌아간다. 고기를 손질하고, 야채를 손질하고, 비닐로 꼼꼼히 누르는 손길 사이사이로 그는 어머니가 아프지 않았던 과거를 자꾸만 회상한다. 이건 이렇게 해야지, 저건 저렇게 해야지, 하면서도 다정한 말투와 언제나 편을 들어주는 눈길은 거두지 않는다. 아픈 어머니가 이것저것 혼자 하겠다는 고집을 부리게 되자 그 손길은 창래가 어머니에게 해주는 돌봄의 손길로 변하고, 카메라는 우두커니 서서 그들의 근심과 한숨을 지켜본다.
창래는 결국 어머니와 어떻게 이별할지 정하지 못한다. 새해 전 날, 음식을 한 상 차려놓고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해보려 애쓰지만 아버지는 그대로 가부장적이고, 누나는 ‘아픈 엄마’라는 존재에 상심하기만 하고, 엄마는 한 술도 제대로 뜨지도 못한다. 영화는 폭발하고 상실하는 그조차 계속 쳐다보기만 한다.
<커밍 홈 어게인>은 삶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경험과 감정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배우가 연기할 시간을 충분하다 남겨 두는 숏들이 꾸밈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영화는 그렇게 집을 떠난다. 이민자 가족이 새 삶을 꾸리고 자라났던 집. 한편 영화의 길고 긴 숏들은 그 자체로 집 안에 들어온 유령처럼 가만히 앉아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심히 담아내면 아름다웠을지도 몰랐을 장면들은 원작인 에세이를 아무 각색없이 영상화한 듯 건조하게 담아내는 바람에 관객에게 와닿지 않는다. 영화의 막바지에 폭발해 큰 소리를 내는 창래의 모습은 설정을 잘못한 캐릭터처럼 보일 만큼 갑작스럽다. 한국인 이민자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다는 특별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연민으로 막을 내리는 이야기는 영화가 관객을 떠나고 있다는 감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어머니의 반찬으로만 기억되는 과거는 눈물겹게 감동적일지언정 미래로 가지고 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관객은 집을 지키던 카메라 유령의 느릿한 걸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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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샤를리즈 테론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차기작에 합류합니다. 2025년 초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인 이 작품은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젠데이아, 로버트 패터슨, 앤 해서웨이, 루피타 뇽오 등 걸출한 스타 배우들이 출연을 알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놀란은 지난 3월, <오펜하이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큰 성공을 거둔 직후 이 영화의 각본 작업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해당 작품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제작, 배급하며 2026년 7월 17일에 개봉 예정(북미 기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플TV+ <파친코>, 티빙에서 볼 수 있다
국내 OTT 플랫폼 티빙에서 ‘애플TV+ 브랜드관’을 출시를 알렸습니다. 오는 10일부터 티빙 프리미엄 요금제 가입자는 추가 비용 없이 애플TV+의 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애플TV+의 콘텐츠로는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던 <파친코>를 비롯하여 <테드 래소>, <세브란스: 단절>, <디킨슨> 등이 있습니다.
변요한 <타짜 4> 주인공 발탁
배우 변요한이 새로운 타짜 시리즈의 주인공 장태영 역으로 발탁됐습니다.
<타짜 4>는 싸이더스가 제작을 맡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국가부도의 날>을 연출한 최국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입니다.
한편,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타짜’ 시리즈는 각각 569만 명(타짜), 401만 명(타짜: 신의 손), 222만 명(타짜: 원 아이드 잭)의 관객을 동원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해 왔습니다.
<어느 가족> 릴리 프랭키,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연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를 다룬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한 배우의 베일이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에서 호연을 펼친 릴리 프랭키가 그 주인공입니다.
우민호 감독은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였다. 그분이 흔쾌히 이 작품의 진정성을 알아주시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셨다.”라고 캐스팅 비하인드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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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죽도록 살고 싶었어요
한국 관객으로서 숱하게 봐온 봉준호 필모그래피의 장면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영화. <설국열차>로 이미 놀라움을 안긴 바 있지만 더 커다란 스케일, 행성 단위의 SF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에서는 순간 번뜩이는 장면 가운데서 봉준호 감독이 쌓아온 노하우의 정수가 돋보인다. 할리우드식 SF의 흥행 구도를 반영하는 플롯과 봉준호 감독의 개성이 섞여 ‘새로운 익숙함’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야심차게 시작했다가 망해버린 마카롱 가게, 이후 사채업자에게 당할 고문과 죽음이 두려워 지구를 떠나 개척지 ‘니플하임’ 행성으로 향한 미키. 그러나 번듯한 기술도 자격도 없는 그가 지원한 ‘익스펜더블’은 그가 두려워 도망친 죽음을 숱하게 반복하는 직업이었다.
뭐 어때, 다시 복제될 거잖아? 말 그대로 실험용 쥐가 되어 구르고 또 구르는 미키. 방사능, 유독 가스, 바이러스 실험에 이르기까지 복제인간이라는 명목 하나로 그는 죽고 또 죽는다. 니플하임 행성에서 단 한 명 있는 익스펜더블인 미키는 그 행성 가운데 유일하지만 누구보다 유일하지 않은 존재다.
삶이 고귀하고 살인이 금기시되는 이유는 누구나 한 번 꺼지면 되살릴 수 없는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을 끊어버리는 살인 행위는 그 자체로 끔찍한 죄악이다. 그러나 죽음에서 벗어난 삶의 연속성을 가지는 자가 바로 익스펜더블이다. 그들은 고통을 느끼고 죽음을 맞이하지만 기억은 이어져 새로운 몸으로 프린트된다. 마치 인형을 찍어내는 공장처럼 프린트되는 미키. 그는 언제든 죽어도 상관없는 소모품이자 대체품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멀티플 사건은 반복되는 죽음에 나름 적응하며 체념하던 미키에게 다시금 살고자 하는 욕망을 일깨워준다. 죽은 목숨인 줄 알았으나 원주 생명체 ‘크리퍼’의 도움을 받아 생존한 미키. 그 사실을 모른 채 본부에서 18번째 미키가 복제되며 미키가 두 명이 되는 멀티플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또 다른 내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면서 미키는 ‘연속하는 나’가 아닌 ‘분리된 나’로서 변화된 속성을 띠게 된다. 즉 미키17 그 다음 미키18이 아닌, 미키17과 미키18이 된 것. 이들은 같은 기억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태도와 행동을 보인다. 그러자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대체품의 죽음이 아닌 고유한 한 사람으로서의 죽음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한다. 평소 같았다면 실험 약의 부작용 다음에는 그냥 죽여 달라고 했을 미키이지만, 숨을 헐떡이며 죽기 싫다고 외친다. 고유한 개체로서의 존엄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지도자 마샬은 누구보다도 그 대체품을 유용하게 소모하는 순혈주의자다. 그가 개척하고 싶어 하는 새로운 이상향은 과학 기술을 활용해 태어난 불량 식품 같은 인간이 아닌 순수한 ‘번식’을 통해 태어나는 인간이다. 저녁 식사에서 여성 캐릭터 카이를 향해 건강한 가임기 여성이라며 예찬하는 마샬 부부. 카이는 묻는다, 자신이 자궁으로 보이냐고.
결국 지도자 마샬 부부의 눈에 그들은 모두 먹음직스러운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한 번 음미한 후 먹어 치운 뒤 또다시 구매하면 그만일 뿐인 소스인 것이다. 익스펜더블의 목숨은 비싼 카페트보다 하찮고, 새로운 행성에서 인류의 정착을 위해 가임기 여성은 번식을 위해 힘써야 할 자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온갖 과학의 수혜는 누리면서도 그 과학으로 탄생한 복제인간은 혐오하고 순혈 인간을 유용한 장기로만 칭송하는 그들 지도자들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명백한 적대 세력이자 가장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드러난다.
반면 니플하임 행성에 거주하는 생명체 ‘크리퍼’는 작은 구성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로,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인간 공동체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집단이다. 극중 쉽게 쓰다 버려지는 미키와는 대조적으로 그들은 작은 베이비 크리퍼 하나를 위해 온 구성원 전체가 그를 구하기 위해 응답한다. 인간의 이기로 인해 인질로 잡힌 베이비 크리퍼, 그리고 그 울음 소리에 하나로 모여 응집하는 크리퍼 무리는 자연스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속 오무의 행진을 연상케 하며 외형 또한 흡사하다.
어떤 존재든 소모품으로 취급하며 짧은 생각으로 폭정을 일삼다 가장 하찮게 여기던 존재인 익스펜더블에게 죽임을 당하는 마샬, 그리고 작은 생명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고 구해낸 원주 생명체 크리퍼. 그들 집단의 대립과 결말은 명확하고 알기 쉽게 두 갈림길로 나뉜다.
씁쓸한 뒷맛을 남기던 기존 필모그래피의 결말을 기대했다면 다소 의외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모든 것이 내 탓이오 하고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사실은 죽기 싫다고, 살고 싶다고 말하는 미키가 행복해질 기회를 얻는 꽉 닫힌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인력과 자본이 투입된 할리우드 영화에서 불가피하게 고려해야 했을 신중한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키의 악몽 속 경고의 메시지를 통해 이 영화의 결말은 비로소 완성된다. 악몽 속 미키18의 희생이 무색하게 새롭게 프린트되고 있는 마샬. 영화는 주인공의 행복한 결말과 함께 엄중한 경고를 들이민다. 과학 기술과 마비된 윤리의식 아래 마샬과 같은 지도자는 프린트로 찍어내듯 지금도, 그다음에도 동일한 모습으로 반복해 출현할지도 모른다고. 공교롭게 영화를 관람하면서도 현실의 많은 사회적 이슈가 오버랩되는 만큼, <미키17>이 SF적 상상력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휴머니즘이자 사회를 향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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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면을 알았지만 여전히 모르겠는 ‘가족’
주인공처럼 공부와 연애가 전부이던 10대 시절, 따로 사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학교가 끝나면 유치원에 있는 동생을 데리러 가야 했다. 다행히인지 공부에는 별 욕심이 없었지만 친구들이랑 놀 때면 집에 혼자 있는 동생이 마음에 걸려 뭔지 모를 죄책감을 가진 채 핸드폰의 진동모드를 벨소리로 바꾸고 손이 닿는 곳에 둬야 그나마 마음이 좀 놓였다. 가족 간의 역할 분담이 필요한 상황에서, 내가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고 효율적이지도 않은 상황이었기에 반자발적으로 동생을 돌보겠다고 했던 것이다. 나만 힘들지 않을 거란 생각에 굳이 티 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급하게 연락을 받고 조금 늦게 동생을 데리러 가는 날엔, 텅 빈 놀이방에서 혼자 색종이를 오리고 있던 동생을 볼 때면 마음이 많이 무너졌었다. 10대면 열심히 놀고 공부하고 연애에도 관심을 가지는 때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이상적인 이론에 불과했다. 실상은 매일 가족과, 나의 미래와, 나의 오늘과 균형을 맞추며 고군분투해야 했다. 한 감독님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어서 어쩐지 마음이 좀 놓였다.’ 가끔은 명확하고 현실적인 대안보다도 ‘나도 그랬어.’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잊고 있었던, 잊으려 노력했던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위로가 되었던 영화 <코다>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영화는 망망대해 한가운데 작은 어선에서 시작한다. 농인 아빠 프랭크 로시(트로이 코처)와 오빠 레오(다니엘 듀런트), 그리고 청인 루비(에밀리아 존스)가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한다. 아무도 없는, 다른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바다는, 육지로 돌아와 루시를 통해 청인들과 소통하는 프랭크와 레오에게는 육지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바다로 가는 가족을 두고 노래 연습을 하러 가는 루비의 내적 갈등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농인 가족의 사이에서 자라고, 수어를 가장 먼저 배웠을 루비는 새로운 언어이자 가족과 소통이 불가한 ‘노래'를 하게 된다. 영화의 기본 로그라인이 되는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은 자신이 살아오던 패턴을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주제가 ‘CODA(Children Of Deaf Adult)’인 만큼 영화에서 ‘언어'란 기본적인 소통의 수단이자 중요한 요소이다. ‘가족과 소통해오던 언어를 바꾼다(새로 설정한다)’는 말은 가족과의 갈등을 통한 루비의 성장기임을 보여준다. 노래는 수화와 음성어를 쓰던 루비의 새로운 언어이다.
여기에는 음악 선생님 ‘미스터 V’의 역할이 크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스터 V의 주된 교육 방식은, 음악적 기교들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 내고 호흡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발성을 찾는 것이었다. 미스터 V는 ‘새로운’ 언어가 아닌 루비가 익힌, 사용하던 언어를 통해 루비만의 언어를 확장시켜준 셈이다. 따라서 노래는 루비에게 단순히 새로운 언어가 아니라 자신을 만들어온 과거의 언어인 수어와 소리의 혼합형 언어인 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노래는 루비와 가족을 분리시키는 수단이기에 루비의 자아를 찾는 양면적인 도구가 된다. 덕분에 가족과 소통하기 위해 수화를 구사하고 가족 외의 사회와 소통하는 음성어, 그리고 자신만의 언어를 찾으며 루비의 성장기를 마친다.
‘구름의 양면을 봤지만 구름의 실체를 모르겠어.’ 루비가 영화 후반부, 시험장에서 부르는 노래 <Both Sides Now>의 가사다. 노래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구름을 보며 아이스크림 성, 계곡을 상상했지만 어느새 구름은 태양을 가리고 비를 내려 앞길을 막더라. 다시 생각해보면 모두 구름의 환상일뿐, 여전히 구름을 모르겠다. 동일한 패턴으로 사랑과 인생까지 이어진다. 노래에는 없지만 여기에는 ‘가족'도 넣어볼 수 있겠다. 노래를 듣고 나면 이 영화 한 편을 압축한 것 같았다. 루비 로시의 시선을 통해 가족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가족이란 실체는 모르겠다. 성장 중인 루비에게 가족의 존재는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계속해서 ‘그래도 우린 하나 된 가족'의 뉘앙스만 풍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갈등들을 아낌없이 보여줬기에, 그저 그 과정에서 루비의 성장을 보여주었기에 단순한 우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가지고 공감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또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삶과 나의 삶의 저울 위에 서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췄던 것 같다. 어느 쪽도 답은 없었고 그 균형을 맞추는 자체가 내가 해야 할 일이었고 ‘성장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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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 촬영장소는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서울 로케이션 답사영상
? 기생충 촬영지 (로케이션) 답사영상
음... 어르신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카데미의 기운을 받으러 갔습니다!!- 로케이션ㅣ주소
1. 자하문 터널ㅣ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219
2. 돼지 쌀 슈퍼ㅣ서울 마포구 손기정로 32
3. 기택 동네 계단ㅣ서울 마포구 손기정로 6길
4. 기사식당ㅣ서울 마포구 희우정로 72
5. 스카이 피자ㅣ서울 동작구 노량진로 6길 86
6. 올가홀푸드 방이점ㅣ서울 송파구 양재로 71길4
7. 박사장 집ㅣ서울 성북구 선잠로 8길"이 영화는 악인이 없으면서도 비극이고, 광대가 없는데도 희극이다."
- 봉준호, 텐아시아 인터뷰, 2019.05.31.- 기생충의 의의
한국 영화사 최초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두 번째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각본상 수상작, 비영어 영화 최초 SAG 미국 배우조합상 앙상블상, 그리고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영화상 수상작- 스태프
감독: 봉준호
각본: 봉준호, 한진원
윤색: 김대환
원작: 봉준호
제작투자: 이미경, 허민회
제작: 곽신애, 문양권
프로듀서: 장영환
조감독: 김성식
출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 박명훈 외
촬영: 홍경표
미술: 이하준
음악: 정재일
음향: 최태영
편집: 양진모
장르: 드라마, 블랙코미디, 스릴러
제작 기간: 2018년 5월 18일 ~ 2018년 9월 19일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기생충촬영지 #봉준호수상소감 #봉준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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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4] 자살을 선택한 사람에 대한 세심한 접근
Rabbitgumi 입니다! 김혜수 배우가 주연한 영화 내가 죽던 날 을 보고 왔어요.
자살한 아이에 대한 수사를 종결시키기 위해 마무리 수사를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데요.
한 사람이 자살로 이르는 심리묘사가 탁월합니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이 자살보다는 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사람의 믿음과 도움을 통해 보여주려 합니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좋은 드라마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봐주세요!^^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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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스피츠> 메인 예고편
이것이 ‘미스피츠’가 보여줄 참/교/육 이다!
절도는 물론, 탈옥에도 일가견이 있는 범죄자 ‘페이스’. 그에게 뜻밖의 제안이 들어온다.
변장에 능한 ‘링고’, 폭탄전문가 ‘윅’, 암살자 ‘바이올렛’, 물주 ‘프린스’, 그리고 ‘페이스’의 딸이자 이번 작전의 기획자 ‘호프’까지, 그들과 함께 테러 자금을 대는 교도소장 ‘슐츠’의 아부다비 교도소에 숨겨진 금을 털자는 것이다.
스스로 사회 부적응자, 즉 ‘미스피츠’라 이름 지은 그들은 세상 나쁜 놈들에게 사이다 한 방을 날리기 위해 아부다비로 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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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사랑한다고 말해줘> 메인 예고편
들을 수 없어도 말할 수 없어도 누구나 사랑할 수 있다 ⠀ 서로 다른 세상에 찾아온 사랑 이야기❣️ [사랑한다고 말해줘] 11월 27일 디즈니+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