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08 14:46:39
4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박찬욱 신작 <어쩔수가없다>, 칸 영화제 출품 불발

제78회 칸영화제에 초청될 것으로 점쳐졌던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의 출품이 불발되었습니다.
‘문화일보’에 의하면, 투자배급사인 CJ ENM 측은 “하반기 공개 예정이며, 현재 후반 작업이 진행 중”이라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쩔수가없다>와 더불어,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 역시 미완성으로 출품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전지적 독자 시점>, <경주기행> 두 편을 출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전지적 독자 시점>은 약 3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이민호, 블랙핑크 지수, 안효섭 등이 출연하였습니다.
배우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이 주연을 맡은 <경주기행>은 막내딸 경주를 살해한 범인의 출소 날, 복수를 위해 경주로 떠난 네 모녀의 여행기입니다.
제61회 백상예술대상 개최일 및 수상 후보 공개

제61회 백상예술대상이 내달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됩니다.
개최일과 함께 방송/영화/연극 부문 수상 후보를 공개했습니다.
심사는 2024년 4월부터 2025년 3월까지 방영되거나 공개/공연된 작품을 기준으로 합니다.
영화 부문 작품상 후보로는 <대도시의 사랑법>, <리볼버>, <장손>, <전,란>, <하얼빈>이,
감독상 후보로는 <아침바다 갈매기는> 박이웅 감독, <리볼버> 오승욱 감독, <하얼빈> 우민호 감독, <대도시의 사랑법> 이언희 감독, <탈주> 이종필 감독이 올랐으며,
외에 최우수연기상, 조연상 등의 수상 후보가 공개되었습니다.
<트론: 아레스> 트레일러 첫 공개

‘트론’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 <트론: 아레스>의 첫 번째 트레일러가 공개되었습니다.
<트론: 아레스>는 <말레피센트 2>를 연출한 노르웨이 감독 요아킴 뢰닝이 맡았으며,
2025년 10월 10일 IMAX를 포함한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작품은 고도로 발달한 프로그램 '아레스'가 디지털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보내져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인류가 AI 존재와 처음으로 조우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며, 자레드 레토, 제프 브리지스, 그레타 리, 에반 피터스, 하산 미나즈,
조디 터너-스미스, 아르투로 카스트로, 카메론 모나한, 질리언 앤더슨 등이 캐스팅되었습니다.
<데스 스트랜딩> 실사 영화, 감독 확정

A24에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 <데스 스트렌딩>을 2년 간의 개발 끝에 실사 영화 제작과 감독을 확정 지었습니다.
실사 영화 감독은 <피그>를 연출한 마이클 사노스키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게임에는 노먼 리더스, 매즈 미켈슨, 레아 세이두, 기예르모 델 토로, 엘르 패닝, 마거릿 퀄리 등 걸출한 배우들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으나,
해당 캐스팅이 실사 영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질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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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화학물질로부터 대탈출 중
2019년에 우리는 괜찮은 코미디 영화들을 많이 만났다. 연초에는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이었고, 중반에는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였다.
<엑시트>라는 영화는 대학생 때 산악 동아리에서 이름 좀 떨쳤지만 이제는 만년 취업준비생인 용남과 용남의 옛 짝사랑이자 용남 어머니의 칠순 잔치의 웨딩홀에서 일하고 있는 의주가 알 수 없는 유독가스를 피해 탈출하는 영화다. 장르는 액션과 코미디. 분명히 무섭고 진지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과 해학으로 풀어나가는 감독님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유독가스는 '화학물질'이다. 화학물질이라는 말이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화학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즘은 일반적으로 공업용으로 쓰이는 것들을 화학물질이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화학물질의 결합이나 화합을 통해 발견된 대표적인 물질은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셀룰로스에 질산과 황산을 가해서 얻어진 물질이기 때문이다.
온 도시를 유독가스로 뒤덮은 범인은 어떤 기업의 연구자였고, 연구 결과를 빼앗긴 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 행위로 가스를 살포한 것이었다. 실제로 악덕 기업에서 연구자의 특허권을 빼앗든지, 연구 결과를 훔쳐 가는 사건은 종종 발생한다.
영화에서 유독가스라고 불리는 그 화학물질은 호흡을 곤란하게 하고 피부에 기포를 생기게 했으며 종례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아주 독한 물질이다. 우리는 이런 화학물질을 '유해화학물질'이라고 부른다. 유해화학물질은 독성이나 발암성을 띠고 있어서 사람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화학물질인데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아서 노출되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이 직접 닿거나 섭취하였을 때 건강과 관련된 부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유출되어 공기 중의 물질과 반응하여 폭발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끝까지 이 물질의 정체는 나오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 부분은 아주 현실적인 부분이다. 왜 현실적일까?
많은 기업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화학물질들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화학물질들을 혼합하여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에는 화학물질과 관련된 법들이 많이 있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학물질 관리법」 이 두 가지 법을 대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간단히 '화평법', '화관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원래는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이었는데 2012년 휴브글로벌의 불산(불화수소산) 가스 누출사고와 2013년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의 불산 누출사고를 계기로 법을 분리하여 관리하게 된 것이다. 화평법은 국내에 들어오는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정보를 만드는 것이고, 화관법은 화학사고 문제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시행 이후에도 사고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나쁘게 말하면 <엑시트>에 나오는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의 화학물질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2만여 개의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5억 5천만 톤을 유통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화학산업이 세계 2위 규모이고 국내 최대 수출 분야로서 매년 400여 종의 새로운 신규 화학물질이 제조되고 수입될 만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에 반해 화학물질 취급 시설은 점차 낡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화학단지 대부분이 7~80년대 가동되기 시작해서 적게는 20년, 많게는 50년 이상 가동된 시설이라고 한다. 실제로 2014년에서 2020년 4월 사이에 발생한 화학 사고의 522건 중 취급시설 관리를 소홀하게 해서 발생한 사고가 전체 화학사고 중 46%나 차지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고의로 살포한 것이었지만 노후 시설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 노후시설을 관리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고의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영화에서 이 물질이 어떤 물질인지 정확히 말해줄 수 없는 것은 정말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해화학물질을 관리하는 곳은 환경부와 그 산하기관인데 화관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시설의 수, 규모, 업종 등 전체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이 바뀌면서 영업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시설이 정기 검사와 안전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영업 허가가 면제된 시설은 신경 쓰지 않고 있기도 하다. 감사원 감사 결과 정기검사를 받지 않는 곳이 39%나 되었고 정기검사를 받지 않고 영업하다가 적발된 곳도 있었다. 사업자가 영업허가를 신청하지 않는 이상 영업허가가 면제된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에 대해 정부도 지자체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원주의 경우도 문막 공단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약품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원주시에 문의하면 강원도와 원주지방환경청에 문의하라고 민원을 돌린다. 하지만 돌려받은 두 곳도 대답해 주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강릉의 수소 폭발 사고가 있었을 때는 관리·감독에 대한 책임을 서로 미루기도 했다. 이처럼 유해화학물질과 관련해서 법적으로는 명확한 관리 주체가 있지만 현장에서는 적용되지 못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사고가 터지면 책임 공방을 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는 사람을 구조하는 중에 끝이 났지만 이런 현실이 있기 때문에 과연 도시가 회복될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정말 모르기 때문인 이유는 또 있는데 이는 기업의 '영업비밀' 때문이다.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다루는 회사에서 어떤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지 공개하면 문제가 터졌을 때 빨리 대비할 수 있게 되는데 이를 영업비밀로써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인들이나 다른 회사에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공개 시 정말 영업상 손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에까지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가 있다니… 우리나라는 기업의 이득과 국민의 안전을 동일 선상에서조차 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 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탄올 대신 '메탄올'을 사용하여 실명한 노동자들에 대해 뉴스를 통해 보신 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 2020년에 들어서야 사업장의 잘못이 인정되었다. (참조: KBS 뉴스7, '메탄올 실명' 파견노동자들 4년 만에 손배 인정..."안전관리 방치 책임")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을 외치는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도 마주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화학물질은 하나의 물질일 때는 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다른 물질과 만나서 반응하면서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하루하루 새로운 화학물질이 나오고 있고, 현시점에 있는 모든 화학물질의 특성도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정말 조심히 다뤄야만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불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 바로 화학물질이다.
<엑시트>에서 유독가스로부터 피해를 받는 존재는 '인간'으로 한정되어 있다. 사람이 그렇게 죽을 정도라면 나무와 동물은 분명한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불산 누출의 피해가 있었던 동네의 사진을 보면 나무들이 붉은색으로 모두 죽은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아주 힘겹기는 하지만 사람은 두 다리가 있어서 도망이라도 갈 수 있는데 나무는 그러하지 못하니 얼마나 애석했을까.
그리고 걱정이 되었던 것은 하천이었다. 영화에서 유독가스는 결국 물을 뿌려서 잡는다. 물에 녹는 성질을 가진 수용성 화학물질이었던 것이다. 물과 비로 눈에 보이는 가스상 화학물질을 잡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화학물질의 성격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물질이 하천으로 유입되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될지는 정말 어느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떼죽음 맞을 수도 있고, 시간이 걸려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도 있고, 식수로 활용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생태계는 연결되어 있고, 눈에 보이는 위험이 사라졌다고 해서 위험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낙동강에서 과불화화합물과 1.4-다이옥산이 검출되어서 식수로서의 기능을 의심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화학물질로부터의 위험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공단이나 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서만 사고가 일어난다는 법은 없고, 우리의 삶의 모든 곳에 화학물질과 유해화학물질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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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다>에게 주어진 질문과 소통의 노래라는 답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아빠 '프랭크(트로이 코쳐)', 엄마 '재키(말리 매트린)', 오빠 '레오(다니엘 듀런트)'와 세상을 이어주는 막내딸 '루비(에밀리아 존스)'. 어느 날 그녀는 남몰래 호감을 품고 있던 '마일스(퍼디아 월시 필로)'를 따라간 합창단 연습에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노래에 대한 열정을 발견한다. 마찬가지로 루비의 재능을 알아본 합창단 선생님 '빌라로보스(에우헤니오 데르베스)'는 그녀와 마일스의 듀엣 콘서트를 준비하고, 그녀에게 버클리 음대 오디션에 지원할 기회를 준다. 그러나 그녀 없이는 생업에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들은 루비의 선택을 두고 고민에 빠지고, 루비는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살면서 처음으로 가족이나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미국 극영화 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비롯해 4관왕을 달성하고, Apple TV+와 2,5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된 시안 헤더 감독의 <코다>는 기본적으로 모범적인 음악 영화다. 십 대 소녀가 자신의 꿈을 이해하거나 응원해주지 않는 부모님과 갈등을 빚는 가족 드라마와 아웃사이더인 주인공이 인싸인 학교 친구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점차 가까워지고 장애물이었던 모종의 오해까지 풀면서 사랑을 이루는 하이틴 로맨스의 흐름을 착실히 따라간다. 특히 어선 조업 중 노래와 리듬에 몸을 맡기는 루비의 첫 등장만 봐도 정석적이고 반듯한 영화의 전개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한 소녀가 본업과 관련이 없는 음악이라는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는 <비긴 어게인>과 <싱 스트리트>, <스타 이즈 본>과 같은 영화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그러나 <코다>의 진가는 이처럼 모범적인 면모가 영화를 결코 뻔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특히 마냥 평범해 보이는 요소인 노래에 여름날 햇빛을 닮은 감동을 담아내면서 힐링 영화로 발돋움하는 게 인상적이다. 그 중심에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인 '코다(CODA, Childern Of Deaf Adults)'라는 루비의 정체성, 그리고 뜬금없이 합창단에 들어가고자 하는 루비에게 친구인 거티가 건네는 "너 노래해?"라는 질문이 있다. 언뜻 듣기에 거티의 질문은 단순히 노래라는 걸 부를 줄 아느냐고 묻는 듯하다. 그러나 루비가 겪은 코다로서의 경험과 만나는 순간 이 질문은 들리는 것 이상의 의미, 곧 소통과 불통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우선 영화가 묘사하는 루비의 삶과 경험은 '통역'이라는 단어 하나로 축약할 수 있다. 루비 없이 그녀의 가족과 다른 사람들은 소통하지 못하며, 이는 일상의 위기로 이어진다. 당장 배 위에서 루비의 주된 역할은 해경 및 다른 어선들과의 무전 담당이다. 배 아래에서도 그녀는 잡은 물고기의 경매가를 흥정하고, 물고기 판매 방식을 둘러싼 회의에서 가족들의 의견을 대표로 전달한다. 그런 그녀가 조업에 나서지 않자 프랭크와 레오는 무전을 받을 사람이 없어서 해경에게 제지당하며, 그들은 회의장에서 안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통역으로 살아온 루비는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말하는 것을 꺼리고, 타인의 이야기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가족과 사회 양쪽 세상을 이어주면서도 동시에 양쪽 모두에게 배척받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녀는 진정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단순한 메신저에 불과하다. 당장 농인인 가족들과 루비는 삶의 기준이 다르다. 식사 자리에서 틴더 어플을 사용해도 아무 제지를 받지 않는 오빠와 달리 그녀는 식탁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무례하다고 혼난다. 또 그녀는 가족들이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만들어내는 온갖 소음에 홀로 괴로워하며, 자신의 말에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는(못하는) 가족들로부터 자신이 점차 소외되어 간다고 느낀다.
한편 가족 너머의 사회에서도 그녀는 괴짜다. 학교에 처음 간 날 친구들과 달리 농인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등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루비는 놀림을 받는다. 멸시와 조롱 때문에 그녀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자 그로 인해 그녀는 또다시 놀림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그녀는 양쪽 세상 모두와 점진적으로 단절되어 간다. 이는 루비가 마일스와 쌓인 오해와 감정을 푸는 장면이 그녀가 어선 조업 문제를 두고 가족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하지 못한 대가를 맛보는 모습과 교차되는 이유다. 상반된 분위기의 장면이 엇갈리면서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한 위기는 가장 극적으로 조성된다.
이때 영화는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이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말할 줄 모르던 한 소녀에게 탈출구를 선물한다. 바로 노래다. 일단 그녀에게 노래는 자신만의 감정과 사연을 기록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일기장이다. 가족들이 음악과 노래를 들을 수 없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남길 수 있었다. 물론 동시에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는 흉터이기도 하다. 처음 합창단 연습에 간 루비는 노래를 부를 차례가 되자 연습실에서 도망쳐 버린다. 처음으로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자 자신이 말한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말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던 그녀의 트라우마는 반복된다.
하지만 그 흉터는 이내 치료를 위한 거울이 된다. 노래를 통해 마침내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남들에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들릴까 봐 노래를 망설이는 루비에게 음악 선생님인 미스터 브이는 노래하는 목소리보다 그 목소리에 담긴 이야기가 소중하다고 이야기한다. 또 루비가 예쁘게 노래하려고 애쓸 때 그는 당장 예쁘지 않더라도 분노, 실망, 좌절처럼 그녀가 애써 숨기고 마음속에 가두려는 감정을 모두 노래에 털어놓아야 비로소 노래에 힘이 생긴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레슨을 받으면서, 또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는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준비를 마친다.
이는 영화가 서두에 던진 "너 노래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루비의 이야기라는 특별한 맥락 안에서 위 질문은 단순히 노래한다는 행위의 유무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노래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된다. 그렇기에 루비가 마일스와 쌓인 오해를 풀고자 그를 자신이 혼자 노래하던 호수로 데려라고, 음대에 진학하겠다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질문에 대한 답이 되며, 그녀의 노래는 따뜻한 울림을 선사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코다>는 진정으로 노래하게 된 루비의 변화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노래를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대화와 소통은 말하는 사람과 말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을 듣고 이해하는 사람까지 있어야 진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화자의 표현과 그 내용이 진실될 때 소통이 더 용이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도 주목하여 그녀의 성장과 노력, 그리고 진심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닿는지에도 주목한다.
그래서 루비가 무대 위에 올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순간, 카메라는 루비보다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 특히 그녀의 가족을 주시한다. 노래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딸이 노래한다는 사실도 믿지 못하던 아빠 프랭크는 다른 관객들의 박수세례와 눈물을 통해서 비로소 그녀의 노래가 갖는 힘을 인식한다. 그러고는 집에서 루비가 노래할 때 그녀의 목을 만져서 울림을 확인하고, 입모양을 보면서 가사를 확인하며, 눈물을 보면서 노래에 담긴 진심을 확인한다. 이때 영화는 루비가 무대 위에 있을 때 영화 관객에게도 숨겼던 노랫소리를 그제야 들려주며 루비와 그녀의 가족이 진정으로 서로의 속마음을 이해하는 순간의 임팩트를 극대화한다.
이렇게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법을 배우고, 또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게 하는 루비의 노래는 그녀에게만 필요했던 탈출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비록 모든 사람이 루비와 같은 코다는 아니지만, 다양한 이유로 그녀가 겪는 것과 유사한 불통의 문제를 현실의 삶 속에서 공유하기 때문에 그녀의 노래에 더욱 공감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너 노래해?"라는 질문은 루비의 시점에서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에게 주어진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루비가 자신의 이야기로 노래하는 거 봤지? 이제 너는 어떤 노래를 부를 거야?"라고 묻는 것처럼.
A(Acceptable, 무난함)
코다의 노래를 빌려 모든 이들의 불통과 소통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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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를 정의하는 시선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오와 레미, 두 소년의 친밀한 관계는 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변화한다. 서로의 집에서 서로의 가족과 함께할 때는 전혀 이상하지 않던 것들이 학교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하게 되면서부터 다른 아이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가 된다. 매일같이 당연스럽게 여겨지던 이들의 두터운 관계는 타인의 시선이 입혀지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친구치곤 너무 가까운 사이’로 여겨진다. 첫 등교일에 자기소개 시간부터 서로에게 기대며 다정한 둘을 바라보는 같은 반 아이 시선부터 시작해 둘이 사귀는 사이냐는 다른 아이의 직접적 질문이나 보통의 남자아이들과 다른 행동을 한다며 놀리고 괴롭히는 일부 아이들은 그 정도는 다를지라도 레오와 레미에게 직간접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관계가 틀어지는 계기가 되는 주된 장소가 '학교'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학교는 가족을 제외한 타인을 사실상 처음 마주하게 되는 공간이며, 사회화 과정의 본격적 시작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학교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사회의, 세상의 폭력을 처음 마주하게 되는 두려운 곳이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시선이라도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쉽게 정의하고 사고의 범주 안에 있지 못한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떠한 시선이 말이다. 레오와 레미를 자신들과 다르게 본 아이들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 그것이 잘못됐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고, 그중 한 사람, 레오가 레미를 스스로 멀리하게 만들었다. 같은 상황에 놓인 두 소년의 태도는 달랐다. 레오는 그러지 않길 택했고, 레미는 놀림받는 것보다도 자신을 배척하는 레오의 행동을 견디지 못한다.
<클로즈>는 트랜스젠더 발레리나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던 <걸>에 이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감독 자신이 밝혔듯 이번 영화는 자신의 유년시절 자전적 경험과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전작에서 감독은 영화의 초점을 온전히 주인공 '라라'에게 맞춰 라라의 내면 변화를 세밀하게 따라갔다. 신체와 환경의 변화를 겪으며 혼란스러운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형식의 연출을 취하며 관객이 여성성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는 라라에게 간접적으로 동화되도록 만들었다. 인물을 그려내는 감독의 분명하고도 명확한 시선은 공감의 깊이를 더해 많은 당시 많은 호평을 받았다. 감독은 <걸> 이후 남성성과 관련된 영화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지금의 어린 소년들의 우정이 사회의 요구와 압박에 의해 파괴되는 이야기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의 경우 전작보다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반면,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정치적인 영화라 칭하는 점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레오와 레미가 함께 전쟁놀이를 하며 놀던 요새는 둘을 지켜내지 못한다. 서로가 전부여도 다라고 할 만큼의 평화롭고 친밀했던 관계를 보여주는 초반부가 지나가고, 다른 아이의 "너희 둘이 사귀어?"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둘은 서로의 관계를 의식하게 된다. 둘이 같은 침대에서 자다가 몸장난으로 시작하던 것이 몸싸움으로 번져 서로 돌아누워 가쁜 숨을 내쉬는 장면은 묘하게 생긴 둘 사이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신들 스스로가 정의할 틈도 없이 두 사람의 사이는 그렇게 점점 멀어져 간다.
두 사람의 다툼은 한 번 더 등장하는데 이번엔 돌이킬 수 없다. 다투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회복되던 관계는 레오의 행동 하나에 결국 어그러지고야 만다. 먼저 간 레오를 기다리다가 나중에야 학교에 도착한 레미는 레오에게 화가 나 그를 마구 때리는데 앞선 다툼과 마찬가지로 핸드헬드로 비교적 거칠게 찍었다. 울분에 차 서럽게 울며 주먹을 휘두르는 레미의 얼굴만큼 현재 상황을 파악하면서도 레미의 행동까지는 예상하지 못해 당황한 레오의 얼굴이 들어온다. 당연히, 레오는 그것이 마지막이 될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미가 보이지 않아 신경 쓰이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결국 레오는 친구의 상실을 맞게 된다.
레미는 영화의 일반적인 구성을 생각한다면 정말 갑작스럽게 사라지게 되는데, 이 점이 처음엔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두 인물이 주인공인줄 알고 러닝타임의 반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한 인물이 사라지다니. 하지만 이 영화의 방점은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사회적 원인과 갑작스럽게 친구의 상실을 맞이하게 된 레오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 바로 그 과정에 있다. 꽃밭에서 함께 활짝 웃으며 달리던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이 웃을 수 없다. 이젠 레오 만이 그곳에 남아있다. 레오 가족의 생업으로 보이는 화훼농사 즉, 꽃은 레오와 레미 두 사람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꽃의 수확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레오와 레미처럼 사회의 시선과 기대에 억눌리게 되는 많은 어린 소년들을 은유하는 것 같다.
레오는 처음엔 크게 티 내지 않지만 레미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레미에 관해 좋게 얘기하는 반 아이들의 말에도 화가 난다. 레미를 보던 레오의 시선은 이제 레미의 엄마에게로 향한다. 아마도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레미가 그렇게 됐다는 생각에. 하지만 레오는 용기가 나지 않아 주변을 서성일뿐이다. 학년이 다 끝날 때가 되어서야 용기를 냈다. 자기 자신 만이 멀어졌던 관계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레오는 그렇게 레미의 엄마에게 숨겼던 사실을 말하며 레미와의 관계를 닫는다. 어쩌면 그럼으로써 레미와 다시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친구와의 예상할 수 없던 갑작스러운 이별을 레오는 그렇게 스스로 마무리짓는다. 타인의 시선에서 시작했던 영화는 레오의 시선으로 끝을 내며 모든 과정을 본 우리에게 당신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봤는지 묻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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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로버트 에거스의 <노스페라투 (2024)>는 고딕 호러의 충실한 재현과 더불어, 우리를 병들게 하는 근원적 요소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그는 원작의 상징성을 현대적으로 확장하며,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불안과 병리적 공포를 직면하게 한다. 영화는 1차원적인 공포 영화의 서사가 아니라, 흡혈귀를 매개로 하는 존재론적 감염, 사회적 붕괴, 그리고 인간 정신의 부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1. 흡혈귀라는 질병: 육체의 병리와 정신적 감염
영화 속 올록 백작(빌 스카스가드)은 마치 현대 사회의 병리적 문제를 은유하는 존재로 보여진다. 그는 전통적인 드라큘라보다 더욱 기괴하고 초자연적인 형상으로 등장하며, 그의 존재 자체가 마치 치명적인 전염병처럼 도시를 잠식해 간다. 영화는 흡혈귀의 피를 빠는 행위를 단순한 육체적 침해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정체성을 갉아먹는 감염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연출은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은 외부적 위협이 아니라, 욕망에 눈이 멀어 그것을 허용하는 우리 내부의 취약성일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진다.
2. 사회적 병리: 붕괴하는 공동체와 고립된 개인
올록 백작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영화 속 공동체는 급격히 붕괴해간다. 마을 주민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서로를 의심하며 고립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질병이나 공포가 확산될 때 나타나는 사회적 반응과 유사하다. 팬데믹 상황에서 목격한 신뢰의 붕괴, 가짜 뉴스로 인한 대중의 혼란, 그리고 극단적 개인주의의 심화가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묘사된다. 특히 주인공 엘렌(릴리 로즈 뎁)의 심리적 고립은 이러한 사회적 붕괴를 더욱 강조한다. 그녀는 남편 토마스(니콜라스 홀트)와 함께 이 새로운 공포를 마주하지만, 점점 더 자신의 내면에 갇혀버린다. 이는 공포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단절될 때 더욱 강력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3. 인간 정신의 부식: 공포는 우리를 어떻게 잠식하는가?
영화가 진행될수록 등장인물들은 신체적으로만 병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점점 무너져간다. 공포가 단순한 감정적 반응을 넘어서 인간 존재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올록 백작의 그림자가 마을을 덮어가듯, 공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에거스는 이를 음향 디자인, 어두운 색채 사용, 그리고 점진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변하는 카메라 앵글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연출은 공포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공포에 사로잡힐수록, 우리의 정신은 더욱 약해지고, 결국에는 자멸의 길로 나아간다.
4. 진짜 공포는 무엇인가?
로버트 에거스의 <노스페라투 (2024)>는 우리가 무엇으로 인해 병들고,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탐구하는 철학적 호러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육체적 감염이 아니라, 공포와 불신, 그리고 개인의 고립과 욕망이야말로 우리를 병들게 하는 근본적인 요소임을 보여준다. 에거스의 영화는 우리가 공포를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지 묻는다. 우리는 공포를 피하려 애쓰기보다, 영화 속 엘렌의 선택과 같이 그것을 직시하고 스스로 극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올록 백작과 같은 존재는 언제든 우리의 정신을 잠식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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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본드 게섯거라 시에라 식스가 나가신다
당당당당~ 다니엘 크레이그가 저벅저벅 걸어서 갑자기 총 쏘는 자세를 취한다. 카메라는 남자 주인공에게 집중된다. 작년 <007 : 노 타임 투 다이>가 기억난다. 그 전 주까지 <007 : 스카이폴>까지의 정주행을 완료하고 극장에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물론 영화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감이 있다. 인트로와 엔딩 빼고는 기억에 하나도 안 남는다. 엔딩도 초반 보자마자 '아 이렇게 될 듯' 싶은 게 적중해서 기억에 남는 것이다. 아. 하나 더 있다. 후반부쯤에 본드가 무릎을 꿇는데 이게 굳이 필요한가? 싶었다. 나중에 후기를 찾아보니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었다;
007 시리즈의 팬 까지는 아니었어도 나름 정주행을 마친 나. 이 시리즈물에 대한 기억은 작년 12월 15일로 옮겨간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지금 생각하면 엔딩이 참 좋았다. 이제는 다들 알고 있을 '두 인물의 등장'을 그렇게 마무리 지은 것 자체는 좋았다. 그 둘이 뭐 또 멀티버스를 연 채로 MCU 세계관에 자리 잡아 숙식하면 좀 깼을 것 같다. 그리고 MCU 피터 파커의 새로운 시작이 색다른 인연으로 인해 벌어진다는 설정은 소년의 성장 서사로서 깔끔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팬이었던 나.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원섭섭해서 VOD로 2,3회 차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버키와 샘을 상대하던 장면이 시원시원해 기억에 남았다. 물론 <노 웨이 홈>이 끝나고 생긴 뭉클한 감동도 좋았지만 그런 소소한 액션 신도 시리즈물을 보는 이유이기도 했다. 뭐가 더 중요하고 별로고 할 게 있을까? 영화 왜 보나? 친구들이랑 이야기해서 감상 나누려고 보는 거지. 그리고 그 정말 재밌는 순간들을 만들려면 세계관 연동이라는 방식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어떤 남자가 훈련을 받고 있다. 이 사람은 살인 면허 소지자도 아니고, 강화 인간도 아니며, 외계 종족도 아니다. 이름은 식스. 007은 누가 써서 식스라고 지었댄다. 치앙마이로 날아가 이 남자와 함께 모험을 떠나보자.
예상치 못했던 손님
시에라 식스. 본명은 코트 젠트리. 그는 일을 하고 있다. 일의 정체는 암살이다. 상관 데니 카마이클의 명령에 따라 한 인물을 저격해야 하는 식스. 사람 북적이는 나이트클럽 아래층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다. 카메라가 연결되어 있어서 위층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CIA의 안보를 위해 일하는 식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가는 인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대기한 덕에 저격을 할 타이밍이 왔다. 근데 그때 하필이면 민간인 어린이가 목표 앞에서 얼쩡거린다. 고민하는 주인공. 동료였던 미란다와 이야기도 하지 않고 단독행동을 한다. 은근슬쩍 목표를 암살하랬더니 그냥 대놓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버린다. 대놓고 아수라장을 만드는 식스. 총기 없이 맨몸으로 들어가 목표와 대면한다. 암살 대상을 맨몸으로 제압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암살 대상 캘런 멀베이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을 고백한다. 자기 역시 시에라 프로젝트의 구성원 중 하나였다고 말하는 멀베이. 금세 코트의 상관 도널드에 대한 정보를 말한다. 또 시에라 프로젝트에 영입되기 전에 어떤 처지에 있던 인물이며 비밀임무 수행을 위한 훈련장소가 어디였는지까지 말해준다. 내부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에 흔들리는 식스. 캘런 멀베이는 식스에게 암살당하며 여러 메시지와 물건 하나를 전한다. 데니 카메이클은 쓰레기이며, 네가 모르는 CIA의 정보가 있다는 말을 귀띔하며 최후를 맞는다. USB를 확인하는 주인공. 그렇게 CIA에게 비밀을 서서히 알아가고자 할 때, 식스는 위기에 봉착한다. 이 비밀의 공개 여부를 두고 전직 CIA 요원 로이드 핸슨의 추격을 받게 된다. 사람 죽이는 것으로는 특화되어있는 로이드. 로이드는 식스와 함께 유럽 전역에서 대결을 펼친다.
무려 제작비 2억 달러
일단 이 영화는 장소를 많이 바꾼다. 치앙마이, 방콕, 프라하, 비엔나 등등 세계 각국을 로케이션 삼아 영화를 제작했다. 단순히 이사만 잘 다닌 게 아니다. 영화 전반적으로 여러 장소를 부순다. 일단 초반부 식스가 캘런 멀베이를 암살하는 신에서는 그 큰 파티장을 묵사발을 내버린다. 다른 지역에 가면 더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부수기 시작한다. 아예 연립으로 주어진 주택(들)을 폭탄으로 콰콰쾅 부숴버린다. 비싸 보이는 차를 부수는 건 일도 아니다. 식스가 하는 직업의 성격상 위험한 일을 하기 때문에 이는 당연하다. 그래서 뭐 유리창이 깨지고 차가 파손되고 이런 건 기본이다. 액션이 쉴 새 없이 계속 이어지는 탓에 일단 지루할 일은 없다.
근데 이런 쉴 틈 없이 파괴되는 건물이 아니더라도 맨몸액션 역시 뛰어나다. 일단 크리스 에반스 액션 잘하는 건 다들 알 것 같다. 기계로 된 수트를 입고 빌런들을 상대하던 아이언맨과는 달리 캡틴 아메리카는 맨몸으로 적을 상대해야 했다. 이 덕에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맨몸 액션이 굉장히 호평을 받았다. 루소 형제와 함께하던 합이 있던 탓인지 하이라이트 신에서 몸을 쓰는 연기는 이 기라성 같은 배우들 중에서 가장 돋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라이언 고슬링은 대사 칠 때보다 액션 연기가 더 멋있었다. 이게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고슬링 어깨가 좀 좁아 보였다. 그래서 격투 전에는 뭔가 멋이 안 났다. 그러나 액션 연기에 들어가면 역시 명품 배우다 싶다. 극 중에서 기억나는 이 인물의 설정은 정이 많다는 것이다. 은혜를 갚으려고 하고, 민간인은 피해 가지 않으려고 하는 둥 여러모로 '나쁜 놈만 벌하는' 강박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이를 위해 처리해야 하는 인물(들)에 대한 감정연기가 필수적이다. 어쩔 땐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야 액션 연기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이 역할이 되게 쉬워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어렵지 않은 줄거리를 이끌기 위해서는 이 배우의 호연이 필수적이었다. 총기, 맨몸, 카체이싱, 폭발물 등 다 잘하는 이 배우의 연기는 넷플릭스 구독료가 아깝지 않다. 괜히 비싼 돈 들여서 액션 잘하는 배우 섭외하나 싶다. 이러니까 돈 주고 쓰는 거지.
그리고 이 영화의 호화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미란다 역의 아나 데 아르마스다. 일단 처음 등장할 때 꽃무늬로 된 수트를 입고 나온다. 솔직히 쉽지 않다. 이 배우는 좋은 비율과 아름다운 미모로 이를 소화한다. 등장부터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근데 미란다는 곧이어 액션 영화를 보는 많은 분들의 로망을 실현한다. 슈트 입고 맨몸액션을 벌이는데 우리가 홍콩영화를 보며 주윤발이 쌍권총을 날리는 것만큼이나 고대해왔던 장면이다. 되게 잠깐 짧게 샤샥 지나가는데 그 장면 되게 잘 찍었다. <007 : 노 타임 투 다이>에서 잠깐 총기 액션을 보여준 신스틸러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 많이 있을 것이다(나도 영화보다 아나 데 아르마스 분량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좋은 액션 연기를 보여줬다. 또한 카메라 구도, 아나의 몸 쓰는 각도, 심지어 괴랄한 의상까지 시너지가 있어 액션 연출에는 도가 튼 루소 형제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납작한 이야기에 부여한 개성
이 영화는 액션이 중요하다. 루소 형제가 감독이고 크리스 에반스와 라이언 고슬링이 나오는 액션 영화면 사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이 문장에는 사실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영화의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까지 개성이 있는 편은 아니다. 솔직히 영화 보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생각났다. 또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랑도 살짝 비슷하다. 뭔가 <아저씨> 느낌도 있다. 또 있다.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 느낌도 있다. 얼핏 보면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선택하며 전개하는 이 영화. '이건 몰랐지 이 녀석들아'같이 신선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는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뚝심이 정말 중요했다. 그냥 무난하게 싸우는 영화 볼 거면 리암 니슨 아저씨 나오는 액션 영화가 더 박진감이 넘칠 것 같다. 단순히 액션 영화이기 때문에 이야기에 뇌를 비우고 박진감만 있으면 된다? 뭐 당연한 이야기다. 영화 왜 보나? 재밌는 거 보려고 보는 거지. 그러려면 뭔가 기억에 남는 게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는 갖는 강점이 있다면!
바로 크리스 에반스의 연기다. 일단 로이드가 처음 등장할 때 캡틴 아메리카가 생각 안 났다면 거짓말이다. 난 크리스 에반스를 MCU와 <판타스틱 포> 시리즈에서 알고 있었다. 정의로운 슈퍼 히어로서 열일했던 크리스 에반스. 한 편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되면 얼굴을 기억하는 일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게 씌여있는 이미지를 일단 코디에서 확 바꾼다. 슈퍼마리오 같은 헤어스타일에 콧수염을 기르고 나타났다. 금발에 덩치 좀 있던 근육질의 캡틴 아메리카가 점점 옅어지기 시작한다. 또 감정적으로도 변화된 인물을 연기하기도 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진중하다. 어벤저스의 리더로서 영웅들을 이끌어 타노스와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다. 반대로 <나이브스 아웃>의 랜섬은 진중한 나쁜 놈이다. 익살스럽거나 가벼운 느낌이 없지는 않은데 랜섬의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데 집중했기 때문에 행동과 대사 하나하나가 그 인물을 보여준다. 그래서 후반부에 비교적 힘이 많이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이 로이드는 다르다. 이 배역은 말이 많다. 이상한 유머도 날린다. 식스를 보고 '예쁜이'라고 한다던가 하는 농담을 자주 던진다. 사람 죽이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 이런 맥락에서 소시오패스라는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장면도 묘사가 된다. 그러나 이 인물 특성 중 중요한 건 감정을 쉽게 휙휙 드러낸다는 점이다. <나이브스 아웃>에서 흑막이 밝혀지고 랜섬의 입장 변화는 영화에서는 잘 볼 수 없던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화나면 화내고 조롱하고 싶음 조롱한다. 그래서 인물의 순수하게 못돼 쳐 먹은 본성이 잘 드러난다. 이 크리스 에반스의 인물 해석은 이 영화 전반적인 톤을 형성한다. 얼핏 보면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 유사하다. 조커의 광기를 받아치는 브루스 웨인의 리액션이 영화의 줄거리가 된 것처럼, 하나 딱 잡고 그거만 집요하게 파는 인물의 내면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가벼울 땐 인물의 성격을 바탕으로 가볍고, 무거울 때는 크리스 에반스의 맨몸액션 덕에 진중하다. 순수한 악이라고 해서 클리셰를 빗겨나간 것은 아니다. 인물들이 고르는 선택지의 결과는 뻔하다. 그런데 그 과정을 전개하는 방식이 뭔가 다르다고 느껴진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나는 이것이 크리스 에반스가 캐릭터 해석을 잘해서 갖는 이점이라 생각한다. <범죄도시>의 '장첸'이 시리즈를 대표하는 광기의 아이콘이 됐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영화에서의 로이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광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낸다.
엥 이거 아는 맛인데
앞에서 이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봤다고 서술했다. 여기에 한 영화를 뺐다. 바로 <범죄도시>다! 루소 형제가 범죄도시 시리즈를 참고해서 이 영화를 만든 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러 부분이 <범죄도시> 시리즈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싸움 잘하는 주인공(마석도-식스)은 공통점이 있다. 식스가 마석도처럼 초반부부터 강하다고 묘사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마석도와 비슷하게 기시감이 든다. 또 말장난하는 신이 있다. 어떤 인물이 식스에게 '왜 식스예요?'라고 묻자 '007은 누가 쓰고 있거든'이라고 대답한다. 또 이런 식으로 로이드나 식스가 말장난을 계속한다. 유머가 뜬금없이 만들어진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이건 마석도와 전일만이 했던 말장난 같은 느낌이다. 또 빌런 캐릭터 둘이 해당 영화의 아이덴티티를 공유한다는 점(장첸-손석구) 역시 공통점이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이 영화가 <범죄도시> 시리즈와 비슷하다고 느낀 점은 따로 있다. 바로 후속작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의 감독이 루소 형제다. 바로 전작에서 영화 시리즈의 선장이었던 두 사람을 섭외했다. 또 시에라 포도 있고 식스도 있다. 이건 007 시리즈의 역대 제임스 본드가 바뀌어왔다는 점을 연상케 한다. 또 조직 내부에 있는 의문의 인물은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하이드라'를 연상케 한다. 단일한 작품이 아닌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3편을 할애해서 하이드라 분량을 나눈 만큼 이 부분은 루소 형제가 뭔가를 구상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충분하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영화 예고편에도 나오는 대사 '007은 누가 쓰고 있어서'와 '비공식 임무'라는 단어는 '우리 넷플릭스 판 <007>, <미션 임파서블> 만들 거야!'라고 동네방네 소리 지르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가 일단 액션에는 힘주고 내러티브에 모험수를 두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긴 한다. 시리즈의 정체성을 규정짓고 시작하기 위해서, 식스(고트)의 성격, 성장배경 묘사와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는 게 일차적인 목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후속작의 전초전으로 생각한다면 사실 그만큼의 역할은 충분히 한다.
그냥 잘 만든 액션 영화
근데 이러나저러나 그건 루소 형제와 넷플릭스 사정이다. 우리는 관객이다. 이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그냥 재밌으면 최고다. 예술 영화 보고 싶으면 넷플릭스에 들어가서 <파워 오브 도그>와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보는 게 낫다. 그게 더 걸작이고 좋은 작품이니까. 어차피 액션 영화 보려고 보는 거잖아? 그럼 멋지게 싸우고 이야기는 쉬우며 캐릭터들이 개성 넘치면 그만이다. 영화는 자기 역할에 충실하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아름다우며, 레게 장 페이지는 섹시하고, 크리스 에반스는 (사견으로) 커리어 하이의 퍼포먼스가 나왔으며 라이언 고슬링은 멋있다. 그럼 뭐 말이 필요한가? 7월 20일 넷플릭스 정식 공개 이후 여러분이 모바일 환경에서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영화가 되는 셈이다. 아. 내가 오늘 이 영화를 보고 온 것처럼 일부 극장에 상영관이 잡히기도 한 것 같다. 웬만하면 극장에서 보시는 걸 추천한다. 사운드 연출에 나름 힘을 준 것 같다. 에어팟으로 듣기에는 좀 아쉽긴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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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앳된 얼굴의 청년이 교도소의 왕이 되기까지
8★/10★
어느 범죄자 소년이 감옥에서 ‘갱생’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느와르, 범죄 영화 〈예언자〉(2010)를 보며, 자크 오디아르가 영화적 재미와 정치적 메시지를 배합하는 데 정말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감독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주인공 말리크는 부모가 없다. 어릴 때부터 감옥을 들락거렸다. 아랍계이긴 하나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프랑스어와 아랍어 모두를 말할 줄 안다. 그러니까, 말리크의 정체성은 ‘혼종적 백지 상태’다. 그래서 감옥의 왕으로 군림하는 또 다른 수감자 세자르의 심부름을 하면서도 이너서클에는 들지 못하고, 아랍계 죄수들에게서는 동포를 팔아먹은 자라고 비난받는다.
그러나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말리크의 정체성은 바꾸어 말하면 어디 한 곳에 속하지 않고 두 세계를 오고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록 완전한 ‘내부인’은 되지 못할지라도, 즉 확고한 정체성은 갖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말리크는 타고난 순발력과 대담함으로 이를 자신의 무기로 만들어 스승, 아버지, 교도관 등의 역할을 종합해 폭력적으로 군림하던 세자르를 잡아먹고 새로 왕좌에 오른다.
영화에는 세자르와 그 수하들이 감옥에 점차 아랍계 죄수가 많아지는 데 불만을 표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유럽계 간수들이 자기들 편이라 감옥을 장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아랍계 죄수들을 자신들 통치하에 두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세자르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말리크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과 맞물린다. 동료들이 다른 감옥으로 이송되고, 아랍계 죄수들은 점점 늘어나면서 세자르는 서서히 몰락한다. 그리고 말리크는 ‘타고난’ 인종적 정체성으로 아랍계 죄수 무리에 스며들어 그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한다. 지금까지도 프랑스에 횡행하는 인종주의적 극우의 공포 속에서 ‘백지’ 상태이던 말리크를 아랍계의 수장으로 만든 건 뭘까? 프랑스인을 우대하고 아랍계를 차별한 (감옥) 시스템 그 자체다. 말리크는 다른 모든 죄수와 마찬가지로 시스템 안에서 생존을 도모했고, 특출나게 성공해 왕좌를 대체했을 뿐이다.
앳된 얼굴의 청년 말리크가 몇 년의 수감 기간 중 ‘갱생’ 및 ‘교화’되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예언자’로 등극하는 과정은 어떠한가? 말리크는 수감되자마자 세자르의 강압적 요구로 아랍계 죄수 레예브를 살해한다. 이후 레예브의 유령과 말리크가 대화하거나 함께 있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말리크의 성장은 그가 레예브의 환영을 ‘불태우고’ 자신의 모호한 정체성이라는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혼란스러운 정체성에서 죄책감을 거쳐,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던 한 남자가 강력한 남성 주체로 우뚝 선다.
말리크의 성장은 극우와 인종주의를 둘러싼 감정 역학과 더불어 젠더 정치의 측면에서도 흥미롭다. 세자르가 그에게 레예브를 죽이라 했을 때, 말리크는 동성애자 레예브의 성기를 애무해주다 입안에 숨긴 면도칼로 그의 목을 공격하려 한다. 계획이 어그러져 그 방법으로 죽이진 못하지만, 세자르가 말리크에게 알려준 살인의 방법은 말리크가 남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갓 입소한 말리크는 세자르가 아랍계 남성의 성기를 빨다 살해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존재, 즉 ‘호모’ 혹은 ‘여성’이었다. 말리크에게 규범적 의미의 남성성은 부재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말리크는 죽은 동료 리야드의 아내, 아이와 함께 걷는다. 가장의 죽음으로 위기를 맞은 이성애 핵가족의 구원자로서 행진한다. 그리고 그 뒤로는 수많은 남자가 뒤따른다. ‘여성’이자 ‘호모’였던 그는 수컷 무리의 우두머리이자 한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남자’로 거듭난다. 〈예언자〉는 이처럼 여러 정치적 주제를 종횡무진 망라하며 장르의 재미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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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시간 여행 : 과거에 갇힌 남자> 메인 예고편
가까운 미래, 과학자 '노만'은 인공지능 ‘애니’와 함께 과거를 바꾸기 위해 시간 여행을 시도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그는 다른 과거의 시점에 갇히게 되고,
'노만'은 그곳에서 타임머신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혹여나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바꿀까봐 혼자서 고립된 생활을 하던 '노만'은
점점 희망을 잃어가던 가운데 우연히 '제니'라는 여성을 마주치게 되는데...
과연 그는 그토록 염원하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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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당신얼굴 앞에서> 메인 예고편
그녀는 고층 아파트에 있어 본 적이 없다.
여동생은 어떻게 이런 높은 곳에 살면서 괜찮은 걸까, 란 의문이 든다.
며칠 전부터 동생 집에 불쑥 들어와 살면서 한국에 다시 사는 걸 경험하고 있다.
숨기는 비밀이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하루하루에 집중하며 살게 하는 맘 챙김을 잘하고 있다.
한 그녀보다 나이 어린 영화감독이 그녀를 영화에 쓰고 싶다고 연락이 왔고,
한두 번의 사양을 거쳐 오늘 그 감독을 만나러 간다.
서울 도심 어느 골목에 있는 작고 오래된 술집에서 낮술을 마시는데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