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4-03 11:50:41
4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2
웨스 앤더슨 <페니키아의 음모> 트레일러 첫 공개
최근 열린 CinemaCon에서 웨스 앤더슨의 신작 <페니키아의 음모 The Phoenician Scheme>가 트레일러를 공개하며 첫선을 보였습니다.
신작은 한 가족과 그들이 운영하는 사업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리며, 주연을 맡은 베니시오 델 토로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남성 중 한 명인 자자 코르다를,
미아 스레플턴은 그의 딸이자 수녀인 시르터 리즐을, 마이클 세라는 가정교사 비요른 룬드를 연기합니다.
이들을 비롯해 리즈 아메드, 톰 행크스, 브라이언 크랜스턴, 마티유 아말릭, 리처드 아요아데,
제프리 라이트, 스칼렛 요한슨,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다양한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페니키아의 음모>는 5월 30일 북미 한정 개봉 후, 6월 6일부터 확대 개봉할 예정입니다.
이 일정은 칸 영화제와도 맞물려 있어, 칸 영화제에서의 상영 여부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속편, 타란티노 아닌 데이빗 핀처가 메가폰 잡는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속편이 제작됩니다.
타란티노가 아닌 데이빗 핀처가 속편의 메가폰을 잡을 예정이라고 알려져,놀라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타란티노가 지난해 촬영할 예정이었던 <더 무비 크리틱>이 영화의 기반이며, 브래드 피트가 전작과 동일하게 주연을 맡을 예정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카메오 역할로 출연하며, 기존 제작사인 소니가 아닌 넷플릭스가 제작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나우 유 씨미 4> 제작 확정
마술 사기단 ‘포 호스맨’의 이야기를 담은 ‘나우 유 씨미’ 시리즈의 네 번째 영화 제작이 확정되었습니다.
라이온스게이트는 4편 제작을 발표했으며, <좀비랜드>의 루벤 플라이셔 감독이 연출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나 우 유 씨미: 나우 유 돈 트>는 오는 11월 14일 북미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제시 아이젠버그 등 기존 출연진과 더불어 아리아나 그린블랫, 로자먼드 파이크, 저스티스 스미스, 도미닉 세사 등이 새롭게 합류해 출연할 예정입니다.
| <헝거게임> '헤이미치' 프리퀄, 7월 촬영 돌입

<헝거게임>의 새로운 영화가 제작됩니다.
기존 영화에서 우디 해럴슨이 연기한 ‘헤이미치 애버내시’의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 영화가 올여름 촬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새로운 프리퀄은 지난 3월 출간된 소설 <선라이즈 온 더 리핑>을 원작으로 하며,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 이후, 모든 헝거게임 영화를 연출한 프란시스 로렌스가 감독을 맡았습니다.
‘헤이미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큼 <헝거게임> 원작 시리즈의 사건이 일어나기
25년 전, 그가 참가한 헝거게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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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상실한 과거, 그리고 언젠가 도래할 미래
일본의 국립공원 중 하나인 오제는 네 개 현에 걸쳐 있는 광활한 습원이다. 희귀 동식물이 많아 습지 보호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에 차량 통행도 불가하다. 산장으로 짐을 운반하는 봇카가 필요한 이유다. 오제에는 여섯 명 안팎의 봇카가 있는데 이들은 4월부터 11월까지 매일 80킬로그램에 가까운 짐을 지고 오제를 가로지른다. 〈행복의 속도〉는 그중 이시타카와 이가라시 두 봇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 오제의 풍경이다. 영화 중간중간 부감숏으로 나오는 오제의 풍경은 탄성을 자아낸다.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오제를 대하는 인간의 마음도 예쁘다. 드넓은 습원 중 인간이 발을 디딜 수 있는 건 통행을 위해 만든 좁은 나무판자길뿐이다. 관광객이 몰릴 때면 판자길 위에서 가만히 기다리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봇카의 모습은 빠르고, 효율적이며, 편리하지 않은 것도 가치 있는 태도임을 가르쳐 준다.
오제의 모습
이시타카와 이가라시는 각자 다른 태도로 등에 짐을 싣고 오제를 걷는다. 이시타카는 오제 밖에서 할 수 있는 봇카 일을 열심히 찾는다. 봇카 일은 겨울에는 할 수 없기에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 주지 않고, 건강 상태에 따라 당장에라도 일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는 불안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청년봇카대라는 단체를 꾸려 오제에서뿐만 아니라 여행, 등산을 가는 사람들의 짐을 대신 들어 주는 사업을 추진하며 도시로 나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이가라시 역시 이시타카와 같은 고민을 한다. 다만 고민을 해소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그는 오제의 변화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감각하는 사람이다. 아가라시는 그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도 마음을 끄는 풍경이 있으면 발걸음을 멈춰 이를 카메라에 담는다. 눈이 소복이 쌓인 오제에서도 능숙하게 길을 헤쳐나간다. 헬기가 산장으로 짐을 나르는 모습, 즉 자신들의 일자리가 곧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오랜 시간 오제와 조율해 온 호흡을 신뢰하며 묵묵히 제 일을 해낸다. 이가라시에게 오제는 돈을 버는 장소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 오제는 몸의 감각을 활짝 개방하여 적극적으로 서로를 주고받는 상호적 삶의 대상이다.
이가라시와 이시타카
이시타카와 아가라시 중 누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다만 방향이 다를 뿐이다. 영화도 누가 옳다는 식으로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구의 선택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지는 ‘취향’, ‘성향’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이가라시의 방식이 더 좋았다. 아들과 함께 떠난 오제 트레킹에서 아들이 새가 자신을 피하지 않아 놀라자 그는 “오제와 사람은 서로 빼앗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가라시가 불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흐름과 속도, 태도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자신이 오제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지 않는 한 오제도 자신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가라시
이가라시는 시종일관 부드럽고도 단단한 태도로 그가 오제와 맺어 온 오랜 관계의 깊이를 증명하는데, 이를 보고 있자면 ‘봇카의 노동이 참 고되겠다’는 안타까움이 ‘나에겐 과연 이가라시와 오제처럼 서로를 존중하며 단단히 묶여 있는 무언가가 있는가’라는 부끄러움으로 바뀌게 된다. 나아가 저런 태도야말로 잔뜩 웅크린 채 주변의 모든 것을 나를 위협하는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 함께 호흡하며 서로를 보듬음으로써 형성하는 신뢰. 어쩌면 봇카는 우리가 상실한 과거, 그리고 언젠가 도래할 미래의 표상일런지도 모른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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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대 조경가 정영선
도심 속 선물과도 같은 선유도공원부터 국내 최초의 생태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경춘선 숲길까지··· 우리 곁을 지키는 아름다운 정원을 탄생시키며 한국적 경관의 미래를 그리는 조경가 정영선 공간과 사람 그리고 자연을 연결하는 그의 사계절을 만나다.
<땅에 쓰는 시> 줄거리
영화의 시작은 뛰어노는 아이들이다. 초록의 공간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 영화가 담고자 한 것의 전부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연을 물려주는 것이 소원이라는 정영선 조경가의 제프리 젤리코상 수상소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인 셈이다.
<땅에 쓰는 시>는 봄부터 겨울까지, 그리고 다시 봄으로 돌아오는 계절의 조경을 보여준다. 새순 돋고 꽃 피어 모두가 자연을 즐기러 나오는 봄, 푸르른 식물들의 생명력이 가장 돋보이는 여름, 단풍에 의해 세상이 전부 알록달록 물드는 가을, 그리고 다시 돌아올 봄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겨울까지. 영화에서는 정영선 조경가님이 참여하셨던 곳의 사계절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개중에는 가본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었다. 가봤던 곳이라면 이곳을 조성한 분이 이런 생각을 갖고 만드셨구나, 거기에 있던 식물이 이거였구나 등의 생각이 들며 처음 보는듯한 새로운 공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가보지 않았던 곳이라면, 여러 생각과 손이 거쳐 만들어진 곳이 있었구나 라는 발견을 할 수 있다.
조경은 사실 잘 티가 나지 않는 일이다. 우리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 풀과 나무들이 모두 조경가의 손을 거친 것일 테지만 우리는 이를 체감하면서 살아가진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더욱 기꺼웠는지도 모른다. <땅에 쓰는 시>를 보고 나오면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보기 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잠깐 생겼다 사라지는 팝업스토어조차도 브랜드에 맞춰, 우리나라 생태에 맞춰 조경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앞으로 어느 곳을 갈 때마다 그곳의 식물들을 유심히 살펴볼 것 같다.
또 영화에서는 나오는 식물들의 이름을 꼭 하나하나 언급하고 지나갔는데, 이 부분이 매우 마음에 들었었다. 잠깐 걷는 거리에서도 우리는 정말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름은 대부분 모르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영화에서는 이런 식물들로 공간을 조성하는 조경가를 비추기 때문인지 이들 일에서 가장 중요한, 어쩌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인 식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일러준다. 물론 영화에서 모든 식물이 나오지도 못했고, 한번 본 걸로 이들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땅에 쓰는 시>에서 식물 하나하나를 조명해 줌으로써 우리 근처에 존재하는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게 만든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외래종이고 무엇이 토종 식물인지 구분하지 않기 시작했다. 예쁘면 옆에 두고 원래 있던 식물들도 뽑아내고 심었다. 이런 와중에 정영선 조경가는 한반도 자생 식물들을 다시 우리 곁에 가져다 놓았다. 산수유나무, 미나리아재비 등의 식물들은 정영선 조경가의 손이 거친 어디든 존재한다.
정영선 조경가가 한국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많이 쓰는 만큼 그중 하나인 생강나무도 영화에 종종 등장했는데, 이덕에 이름도 모른 채 그저 스쳐 지나갔던 나무의 이름이 생강나무이고, 한 번도 아름다울 거라 상상하지도 않던 생강나무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깨칠 수 있었다.
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이 앙상하게 남은 겨울의 풍경도 아름답게 조성하는 것이 조경가의 일이라고 한다. 황량한 겨울의 식물들을 가꾸며 다시 돋아날 새잎들을 기다리는 모습은 정영선 조경가가 가꾸어낸 조경이 우리 세대 그리고 그다음 세대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정영선 조경가가 가꾸는 정원에서 아이가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식물을 심는 마지막 장면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우리의 자연을 넘겨주고 싶다는 정영선 조경가의 뜻이 담겨있다.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정신을 엿보며 우리가 보는 풍경이 어떠한 생각을 거쳐 나왔는지 알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조경이 한국의 것, 우리의 것을 지키고 우리와 우리 다음의 세대에게 계속 자연을 사랑하고 늘 존재하는 당연한 것이 되게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땅에 쓰는 시>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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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하고인
산하고인
지아장커 감독 작품. 빠르게 변하는 중국의 현재를 세 개의 시간으로 나눠 보여주고 있다.
1999년 펜양.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는 같은 동네에서 자란 소꿉친구다. 20대 중반의 이들은 가깝게 지내지만, 서로 서 있는 위치는 다르다. 영화에서는 설명하지 않지만, 리앙즈는 부모도, 자신도 노동계급 출신의 노동자인 걸 알 수 있다. 진셩은 부모가 당 간부로 추측할 수 있다. 진셩이 20대에 탄광을 운영하는 자본가가 될 수 있었던 건 그의 능력보다는 그의 부모 능력으로 가능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오는 아버지가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 서로 다른 출신 성분이지만 세 사람은 가족처럼 가깝게 지낸다.
지아장커 감독이 직접 밝혔든, 중국에서 1999년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 중국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본격 퍼지기 시작한 것이 1999년이라고 한다. 중국은 시장 개방 정책을 통해 '세계의 공장'을 나서서 맡게 되고, 수억 명의 중국인민은 공장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전국에서 대도시와 대도시 근교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리앙즈와 진셩은 타오를 두고 삼각관계를 이룬다. 리앙즈와 진셩 모두 타오에게 자기와 결혼하자고 말하지만, 타오는 선뜻 한 사람을 선택하지 못한다. 리앙즈는 진실한 사람이지만 너무 가난하고, 진셩은 엄청난 부자라서 오히려 부담스럽다.
타오와 친밀하게 지내는 리앙즈를 본 진셩은 자기가 운영하는 탄광에서 일하지 말라며 리앙즈를 해고한다. 리앙즈 역시 구차하게 굽신거리며 일하기 싫다며 탄광을 그만둔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사이에 둔 정적이자,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는 적대적 관계라는 것을 '사랑'의 관계를 통해 드러낸다.
타오는 아버지와 고향을 찾아가는 기차에서 진셩과 결혼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 사실, 무표정 자체가 사윗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관객은 알아챈다 - 너의 미래는 너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한다. 타오의 아버지는 리앙즈가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리앙즈는 통신대학으로 법학과를 나왔는데, 스스로 지식인인척 하지 않고, 탄광노동자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타오는 리앙즈를 찾아간다. 바람에 먼지가 뿌옇게 날리는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걸어가던 타오 앞으로 갑자기 전투기가 추락한다. 놀란 타오는 그 장면을 한참 보다 다시 길을 걷는다. 비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곧바로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타오는 어렵게 리앙즈의 집을 찾아가 리앙즈를 만난다. 그리고 청첩장을 건네면서 결혼식 때 와달라고 말하지만, 리앙즈는 고향을 떠나겠다고 말하고, 그날로 가방 하나만 들고 고향을 떠난다. 리앙즈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랑했던 여자가 돈 많은 친구와 결혼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돈 없는 자신을 탓했을까.
타오는 아이를 낳는다. 아이의 이름은 '골드'다.
2014년. 리앙즈는 여전히 탄광노동자로 일한다. 그는 고향을 떠나 타관에서 일하고 있고, 결혼해서 얼마 전 아이가 태어났다. 15년 전,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땅에서 탄광노동자로 일하며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으니 그의 삶도 평범한 중국노동자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리앙즈는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병원에서는 더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한다고 말한다. 리앙즈는 탄광 일을 그만두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집은 그가 떠날 때와 똑같은 모습이다. 좁고, 먼지가 많이 쌓인 낡은 집.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물도 나오지 않는 움막 같은 집이다.
리앙즈는 고향에서 일할 때 가깝게 지내던 친구를 찾아간다. 다만 얼마라도 돈을 빌릴 생각이었지만, 그 친구는 리앙즈를 반기면서도, 탄값이 떨어져 탄광이 문을 닫을 처지라고 말하고, 자신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돈을 벌러 갈 계획이라고, 보증금을 여기저기서 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셩의 소식을 들려준다. 진셩은 예전보다 더 큰 사업을 하고, 상하이에서도 잘 나가는 자본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타오와는 이혼했다는 말도 한다.
직원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하는 타오. 고급한 옷을 입고 외제차(아우디 A6)를 타고, 많은 직원을 거느린 사장님이 되었다. 리앙즈의 아내가 타오를 찾아온다. 리앙즈가 아내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리앙즈의 성격에 타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건 참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가 이웃들이 말하는 소리 - 아마도 리앙즈의 가족을 도와주려는 선심에서 한 말이겠다 - 리앙즈의 어릴적 친구 타오가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일방적으로 찾아온 것이다.
타오는 리앙즈의 아내를 반갑게 맞고, 리앙즈는 잘 있는지 묻는다. 리앙즈의 아내는 서럽게 운다. 그녀도 남편이 암투병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슬프고, 안타깝고, 고통스러웠으니 처음 보는 남편의 친구에게 속절없이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타오는 리앙즈의 집을 찾아가 리앙즈를 만난다.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 누워 있는 리앙즈를 보면서, 타오는 치료비에 쓰라며 돈을 건넨다. 리앙즈는 고마운 마음으로 돈을 받지만, 그 뒤로 리앙즈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아마 리앙즈는 치료를 했어도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리앙즈에게는 아내와 어린 아이가 있고, 이 두 사람은 다시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타오는 진셩과 이혼했지만, 자식인 '달러'를 보고 싶어한다. 어렵게 진셩과 통화해서 '달러'가 비행기를 타고 타오에게 온다. 상하이국제학교를 다니는 어린 '달러'는 어려서 엄마와 헤어져 엄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지금은 아버지, 새엄마와 함께 살고 있고,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중국말도 잘 못한다.
타오가 아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이, 아버지가 고향을 방문했다 갑자기 사망한다. 타오는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아들을 다시 진셩에게 돌려보내면서 아들에게 집 열쇠를 준다. 언제든 네 집이니까 돌아오라고.
2025년. 대학생 '달러'는 수업시간에 엄마가 없다고 거짓말한다. 피터(진셩의 영어 이름)는 돈을 많이 벌어 평생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자본가로, 가족이 모두 호주로 이민을 왔다. 하지만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진셩은 영어만 하는 아들 '달러'와 정서적 거리가 생긴다.
수업시간에 교수는 90년대 중국에서 유행했던 노래라면 '산하고인'을 틀어준다. '달러'는 그 노래가 퍽 낯익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노래라고 생각하지만, 어디에서, 누구와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달러'는 교수와 함께 집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난다. 달러와 진셩이 대화하는 방식은, '달러'가 구글 번역기에 영어로 문장을 입력하고, 그것을 중국어로 번역해 아버지 진셩에게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방식이었는데, 그렇게는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래서 중국말을 잘 하는 교수에게 부탁해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것이다.
'달러'는 대학 생활을 그만두고 싶고, 집을 나가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아들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비웃으며 화를 내는 진셩. 중국의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의 갈등은 나라와 민족, 인종을 가리지 않고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와 교수와 함께 관광용 헬리콥터를 탄다. 시끄러운 헬기의 소음 속에서 '달러'는 중국에 계시는 친엄마 이야기를 꺼내며 서럽게 운다. 그의 내면에는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중국을 거쳐 교수가 살던 토론토까지 한바퀴 돌며 '달러'의 엄마도 만나보고 중국도, 캐나다도 돌아보고 오자고 말하며 공항에서 항공권을 구입하려 하지만, '달러'는 갑자기 마음을 바꿔 여행을 포기한다. 그에게 중국은 너무 멀고, 낯설고,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타오는 아들이 좋아하는 만두를 빚고, 눈 내리는 골목을 서성인다.
지아장커의 작품 가운데 비교적 덜 건조하고, 이야기의 맥락이 분명한 작품이다. 주인공 세 사람 가운데 아무래도 리앙즈에게 마음이 더 간다. 진셩은 젊어서부터 자본가로 잘 먹고, 잘 사는 인물이었고, 타오도 진셩과 결혼하고 이혼하면서 아마 큰 돈을 위자료로 받아 사업을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타오 역시 먹고 사는 문제는 겪지 않으며 나이 들어 가는데, 다만 자식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반면 리앙즈는 성실한 노동자로 일하지만, 결국 그는 암으로 고생하다 죽게 되고, 그의 아내와 아들은 역시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살게 된다. 만약 타오가 진셩과 결혼할 마음을 굳혔더라도, 진셩에게 부탁해 리앙즈에게 작은 가게라도 차릴 돈을 건넸다면, 리앙즈가 고향을 떠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영화는 주인공 개인의 세세한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이들 세 명의 친구가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을 중국의 현실에 맞춰 그려 본 것이니, 개인의 삶은 많은 부분 생략된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노동자 리앙즈의 삶이 고난으로 점철되는 것은, 중국인민의 현대사 역시 그렇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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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지 못한 장손들의 연대기
둘 이상의 형제자매 관계에서 맏이란 무엇일까? 가장 먼저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동생(들)이 태어난 후에는 관심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 자유 경쟁 상태에 내몰리는 것이 맏이다. 이것이 전 세계의 모든 인간 사회에서 맏이가 감내해야 하는 보편적 숙명이라고 한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맏이의 의미가 사뭇 더 엄중하다. 한국의 가족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맏이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책임감'이 아닐까 싶다. 학업을 포기한 맏딸이 남동생의 대학교 학비를 벌기 위해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사태는 이제 거의 없겠지만 오늘날에도 맏딸이나 맏아들은 다른 형제자매들에 비해 부모님께 효도하고 집안이 기울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는 은근한 압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맏이와 장손은 또 다르다. 맏이는 딸일 수도 있고 아들일 수도 있지만 장손은 보통 아들만을 지칭한다. 장손은 부계사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존재 중 하나다. 가족을 가장 중시하는 집안에서 장손은 자신이 누리는 혜택의 크기만큼 거대한 중압감에 시달린다. 게다가 영화 <장손>의 주인공 '성진(강승호 분)'처럼 3대 독자라면? 더군다나 성진의 할아버지 '승필(우상전 분)'이 가족주의의 전통이 강고한 경상도 어느 지역에서 두부 공장을 세워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면? 성진은 부모님을 살뜰히 모시고 조상들의 제사를 챙기는 정도를 넘어서 가업을 승계하고 온 가족을 짊어져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모든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야 이야기가 동력을 얻어 전진할 수 있다. 성진도 현재 아버지 '태근(오만석 분)'이 운영 중인 두부 회사 '대명'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선포한다. 성진은 두부 공장 사장보다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고, 장손 역할이 못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전날에 과음한 후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의 합동 제삿날에 최대한 늦게 할아버지 댁으로 내려온 성진에게 가족은 택시에서의 구토처럼 게워 내고 싶은 부담 덩어리일지 모른다.
영화 <장손>은 성진과 가족들이 증조부와 증조모의 합동 제사와 할머니 '말녀(손숙 분)'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발생하는 사건들을 두부처럼 담백하게 맛보게 해 준다. 쉽게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비극과 상처가 불거지고 여느 가족들처럼 영화 속 인물들도 다투지만 관객은 차분한 성진의 시점을 따라가며 이 가족의 역사를 관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 승필과 아버지 태근이 겪어야 했던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스친다. 그래서 어쩌면 영화 <장손>은 장하지 못한 장손들의 연대기다.
뛰어난 앙상블을 보여 준 배우들 사이에서 아버지 태근 역을 맡은 오만석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정중동의 카메라워크로 한국 농촌의 사계를 아름답게 포착한 장면들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끝)
* 9월 4일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진행된 <장손> 시사회에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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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이런 영화들을 보며 자라긴 했었지
세계관 최강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용의 전사 겸 팬더 포(잭 블랙)이다. 지금의 포에겐 걱정이랄 것이 없다. 당연하지. 빌런도 세 동물이나 때려눕혀 이젠 웬만한 악당들이 성에 차지 않을 정도고, 사람들의 인정도 받아 여러모로 충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근데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친아버지 리 샨(브라이언 클랜스턴)까지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포는 매일이 축제 같다. 평범하게 악한들을 해치우고 인질이었던 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난 어떤 날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동물들이 떼거지로 몰려든다. “포! 타이렁이 돌아왔다는 소문이 있어!”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넘기는 포. 사실 터무니 없는 이야기가 맞다. 왜냐하면 포는 과거에(<쿵푸 팬더> 1편에서) 타이렁을 때려눕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는 포. 하지만 포를 귀찮게 하던 여우 젠(아콰피나)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이건 분명 카멜레온(비올라 데이비스) 짓이야. 그녀가 누군지 아는 동물은 나뿐이지!” 귀가 열린 포. 용의 전사로서 카멜레온에게 승리해 평화의 계곡의 평화를 사수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이런 영화들을 봤었지
<쿵푸팬더 4>는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이 가진 근본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 글쓴이는 ‘어릴 때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자란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 기획의도에 걸맞게 영화는 온갖 귀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가령 어린 동물들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들은 다 재미있다. 혼자 노는 외로운 동물은 하나 없이 이 영화를 보는 아이들이 다 ‘아 저렇게 사이좋게 친구들이랑 노는 게 좋구나!’라는 생각을 쉽게 받아들일 것 같다. 또 그 아이들이 이 세계에서 어떻게 세상을 이루고 있는가? 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다. 영화에서 젠의 본거지로 갈 때 아이들이 등장한다. 이 어린 동물들이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방식을 보면 이 영화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만큼 사소한 부분도 따듯한 필치로 이야기를 구성한 것이다. 어리다고 다 어머니 아버지 품에 안겨서 ‘엄마아빠 말 잘 들어야 해!’라고 말하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도 충돌하고 어른으로서 좋은 역할을 이행하는 것 같지도 않다. <쿵푸 팬더 4>는 이 지점에서는 나름 매력 있는 화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클리셰에 천착하지도 않았고 그걸 부수려고도 하지 않은 채로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든 것이다.
영화에서 액션이 활용되는 방식 그러니까 시각적인 부분도 아이들을 고려한 듯하다. 우선 글쓴이는 이 <쿵푸 팬더 4>의 단점 중 하나가 액션영화로서 방점이 덜 찍혔다는 쪽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단점은 반대로 돌아와 ‘아이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캐릭터성’이란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고? 영화가 일부러 액션의 향만 첨가하고 세계관의 토대를 다지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는 뜻이다. 이 이유로 어떤 부분에선 영화가 기획의도를 잘 살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랑스러운 포와 젠의 모습을 보여주고 앞으로 시리즈를 예고하기만 하면 됐지 액션이 왜 필요해? 이 영화에서 쿵푸는 액션의 갈래로서 묘사하는 것이 아닌 그냥 서사에서 도구로서 작동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합 척척 주고받고 싸우는 모습보다 영화의 귀엽고 유머 가득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스포일러를 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 아닌 선에서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의 일부 장면을 가져온다고 해보자. 윈터 솔저 vs 캡틴 아메리카의 맨몸 액션 장면을 보면 영화가 이 작품을 통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1편의 줄거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두 사람의 무력과 관계를 유추할 수 있게끔 맨목액션을 타이트하게 짜는 것이다. 실제로 글쓴이는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져>를 안 봤음에도 이 영화를 통해 캡틴 아메리카가 어떤 캐릭터인지, 그리고 왜 이 영화에서 액션이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캡틴 아메리카 왜 멋있어? 당연히 이 장면 때문이지!로 요약이 가능한 것이다. 이 <쿵푸 팬더 4>는 이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에서 액션이 활용되는 방식이랑은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포와 젠에게 쿵푸가 왜 필요해? 그거야 두 캐릭터 간의 관계 때문이고, 그 내밀한 부분은 영화 안에 있기 때문이지!라고 답하는 것이다. 영화 안에서 사용된 색도 이를 성실하게 구현하듯 밝고 사랑스러운 톤이 중심이다. 아이들끼리 와서 무난하게 볼 만한 영화라는 기획의도를 충실히 살리는 것이다.
직구 뒤 슬라이더
이 영화에서 감독이 승부수로 던졌을 것 같은 요소는 두 가지다. 우선 아버지가 두 명이라는 점이다. 아버지가 둘인 이유는 간단하다. 어렸을 때 포가 아버지를 잃어버렸고, 그런 포를 핑(제임스 홍)이 키웠다. 이런 상태에서 친아버지를 찾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두 명이다. 요즘의 할리우드를 생각하면 이 두 사람이 동성애 로맨스로 향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1차적인 클리셰를 비튼다. 두 동물의 관계가 로맨스라고 보기엔 많이 어렵다. 하지만 이 두 동물을 연결하는 관계는 포를 통해 다진 견고한 우정이다. 이 두 설정을 영화 안에서 캐미로 살리는 부분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또 이 영화의 감독은 ‘아버지가 두 동물인’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기까지 하는 친절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영화가 두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줄거리 내에서 굉장히 중요해서 이 부분이 이야기의 전부를 쓰는 꼴이 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다 쓰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 두 캐릭터가 사실상 본 영화의 진주인공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특정 캐릭터들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글쓴이는 메인빌런이 ‘카멜레온’이라는 것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뱁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건 영화가 수도 없이 다뤄온 클리셰 중 클리셰기는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적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남을 따라 하지 말고 너 자신을 찾아라”라고 하면 와닿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부분을 염두하고 플롯을 짠다면 뭐부터 염두해야 할까? 따라 하려는 이유 / 따라 하고 난 다음 / 캐릭터가 가진 모순 이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왜? 남을 좇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허상인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이 캐릭터가 나약한 정도를 묘사할 수 있으니까. 영화는 이 세 부분을 나름 철저하게 묘사하면서 쉬운 화법을 통해 관객들이 ‘남을 따라 한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하게 유도한다. 이것은 영화가 간단한 액션과 귀염뽀짝한 색감과 소소한 유머를 가졌다는 점과 시너지를 낸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듣기 거북하게 하면 역효과가 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은 영리함을 지닌 것이다.
허무한 마무리?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단점은 무기가 없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그냥 무난하다. 장르적으로 뭔가 태도를 취하지만 확실하게 어필하는 무언가가 없다. 액션? 윗문단에도 적었지만 이 영화에서 ‘쿵푸’가 들어가는 이유는 인물간의 관계를 연결 짓기 위함이다. 포의 시원한 쿵푸액션을 기대하기엔 모자란 점이 많다. 또 핵심 캐릭터인 젠의 덩치를 보면 시원시원한 액션을 구현하기엔 역부족하니 영화가 이것을 염두하고 기획한 흔적도 보인다. 코미디? 영화에서 소소하게 웃음이 나는 장면이 있기는 하나 이것이 장르적인 특성이라고 볼 정도로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왜? 젠의 캐릭터성이 포의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잭 블랙의 개인기를 보기엔 영화가 이런 부분까지 보여줄 여력이 없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사랑스러움? 그렇다고 보기엔 이 영화가 서양이 생각하는 동양의 이미지를 너무 대놓고 가져와서 구현한 느낌이 있다. 가령 카멜레온이 사는 동네를 보면 이 캐릭터들도 동양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는 점이 이야기의 핍진성의 관점에서 ‘너무 뻔한 거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화려한 볼거리? 후반부 카멜레온과 관련한 모든 장면들이 굉장하긴 하지만 드림웍스의 전작 <장화 신은 고양이 : 죽여주는 모험>을 생각한다면 역시나 심심하다. 대단히 신선하다던가 귀엽다던가 유머러스하던가로 승부 보는 것이 아닌 기괴한 맛만 있으니 영화가 시각적인 부분을 잡으려다 만 것이다.
이렇게 내내 슴슴한 영화인 탓에 편의적인 줄거리가 거슬린다. 대표적으로 영화가 젠의 행보를 그냥 편의적으로 설정했다. 클리셰에 기댔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좀 더 불친절했거나 무언가를 암시하거나 극적인 감정선이 들어가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그럴 수 없었다. 왜? 이 영화는 내지는 시리즈가 이 영화를 통해 해소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 과제를 수행하려면 젠 입장이 다 이해되어야 한다. 그럼 포를 상대적으로 영향이 받는 캐릭터로 설정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이유로 주인공(포)이 핍진성이 떨어지게 묘사되는 것이다. 이에 연장선상에서 카멜레온이라는 캐릭터도 젠을 돋보이기 위해서 기능적으로 사용됐다. 카멜레온의 액션이 더 들어갔으면 영화의 생동감이라는 관점에서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지 '어떤 행위'를 두드러지기 위해 캐릭터들을 소모적으로 쓴 감이 있으니 빌런의 매력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단점을 가진다.
개봉일 때가 선거날이었고 이벤트로 팝콘을 무료로 주는 이벤트를 했었다. 그럼 어머니 아버지들이 투표하고 아이들 손 잡고 영화관에 갔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 여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아이들끼리 보기 좋은 애니메이션 영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 ‘나 이런 영화 보고 자랐지!’하며 자랐던 영화로는 제격이다. 뭐 데이트무비로 이 영화를 고른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영화는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영화고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것이 전부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 <슈렉> 시리즈나 디즈니의 <라푼젤>을 생각하면 영화가 51%짜리 성공을 거뒀다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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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터널스> 인간을 사랑한 신들이 그려내는 마블의 미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주의 창조자인 셀레스티얼 아리솀의 명령을 받아 지구로 향하는 열 명의 이터널스. 그들은 팀의 리더인 '에이잭(셀마 헤이액)'의 지시에 따라 인류 역사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되,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의 존재 데비안츠를 무찌르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인간에게 신으로까지 여겨지지만 마지막 데비안츠를 제거한 각자 살아가기로 결정한 이터널스. 그러던 어느 날, 런던에서 '스프라이트(리아 맥휴)'와 함께 지내던 '세르시(젬마 찬)'는 남자친구 '데인(키트 해링턴)'과의 데이트 중 수백 년 만에 나타난 데비안츠를 만난다. 때마침 나타난 '이카리스(리차드 매든)'와 함께 간신히 데비안츠를 따돌린 세르시는 에이잭을 시작으로 세계 각지에 흩어진 옛 동료 '킨고(쿠마일 난지아니)', '길가메시(마동석)', '테나(안젤리나 졸리)', '드루이그(배리 케오간)',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마카리(로런 리들로프)'를 찾아 나서고, 예상치 못한 진실과 음모를 마주한다.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석권한 클로이 자오 감독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만남으로 큰 화제를 모은 <이터널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유머의 소재로도 사용되었고 캐릭터의 이름과 능력에서부터 드러난 그리스 신화와의 유사성이었다. 예를 들어 테나와 세르시는 각각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와 오디세우스의 부하를 돼지로 만든 마녀 키르케를 연상시킨다. 이카리스는 태양 가까이 날다가 떨어진 다이달로스의 아들 이카로스의, 파스토스는 대장장이와 기술의 신인 헤파이스토스의, 마카리는 전령과 도둑의 신인 헤르메스의 로마식 이름인 머큐리의 변형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 신의 이름과 능력으로 대표되는 외적 유사성이 <이터널스>에서 신화가 느껴지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신화 속 신과 인간의 관계가 작중 이터널스의 서사 중심에 위치한 듯 보이는 게 더 큰 이유다. 그리고 이는 <이터널스>의 마블스럽지만 또 마블답지 않은 장단점을 낳은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그들의 차이에 의해 규정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죽어야만 하는 존재이고, 신은 불멸의 존재다. 또한 인간은 태어나서 성장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다가 늙어 죽지만, 신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다. 즉, 인간에게는 시간이라는 제약이 있고 신에게는 없다. 하지만 바로 이 유한한 시간 때문에 인간의 삶에는 신이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죽지 않는 신들의 삶에는 간절한 소망과 기대, 패배와 몰락, 위대한 승리와 성취와 같은 가치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반면에 항상 시간이 부족한 인간은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마지막처럼 살아야 하기에 이들의 삶은 빛난다.
동시에 인간은 신들조차 깨지 못하는 굴레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바로 자유의지다. 신화 속 신은 운명에 메여 있다. 제우스마저도 더 강한 신이 등장해 자신을 왕좌에서 끌어내릴 것이라는 예언에 전전긍긍하고, 죽어야만 하는 운명인 아킬레우스를 살려달라는 테티스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운명의 결과를 바꾸지는 못해도, 최소한 그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그리스에 남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자의로 트로이 전쟁에 나선다. 스스로를 테배에서 추방한 오이디푸스는 “그것은 아폴론이었소, 아폴론이오, 친구여. 나의 불행을, 불행을, 나의 고통을 완성한 것은. 하지만 눈을 직접 찌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가련한 나 자신이었소.”라고 외친다. 오디세우스도 칼립소와 신으로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집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한다.
그래서 신화 속 신은 자신들에게 없는 소질을 지닌 인간을 부러워한다. 영화 <트로이> 속 아킬레우스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 하기에 치열하게 살아야 하고, 그런 이유로 인간은 신보다 아름다우며,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멸의 신들은 인간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함과 그 유한함 덕분에 가능한 인간의 자유 및 진보와 발전을 향한 열망을 사랑하며, 더 나아가 그런 인간들을 보호해주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더 높은 신에게 영원히 고통받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고 아테나가 포기를 모르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보호했듯이. 이처럼 인간이 신을 우러러본다는 통념과 다른 신과 인간의 관계성이야말로 <이터널스>가 보여주려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터널스가 셀레스티얼의 명령을 받고 지구에 와서 데비안츠로부터 인류 문명을 지켜낸 것까지 보여준 후, 영화의 시선은 이터널스의 분열과 갈등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에게 주어진 한계로 인한 이터널스 개개인의 고통이 위치한다. 몇몇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해야 하는 무한함의 무게에 짓눌린다. 예를 들어 동료들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홀로 지키던 이카리스는 점점 내적으로 곪아가고, 자신의 선택이 초래한 결과에 좌절한다. 테나 역시 오랜 시간 쌓아왔던 수많은 기억과 감정의 급류에 쓸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한다. 또 몇몇은 신이기에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절망한다. 드루이그는 철저히 셀레스티얼에게 종속해야 하는 상황이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보다 못하다고 자조하며 이터널스로서의 삶에 의문을 품는다. 영원히 아이의 모습으로 지내야 하는 스프라이트는 성인으로서 사랑을 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이러한 고통으로부터 이터널스는 인간에 대한 부러움과 희망을 발견한다. 특히 한계를 뛰어넘는 힘에 주목한다. 길가메시는 무한한 삶에 지쳐가는 동료들에게 인간이 자신들의 유한함을 뛰어넘는 기억, 곧 신화와 영화 같은 기록이라는 기억을 만들었듯이 결코 스스로의 정체성과 기억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를 보며 인간에게 질려버렸던 파스토스는 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아픔을 치유하고 사랑의 힘에 다시 한번 희망을 걸어보기로 마음먹는다. 에이잭 역시 타노스로 인해 파괴된 우주, 그 가혹한 운명마저도 되돌려 놓는 인간들의 자유의지에 희망을 걸어보자며 다른 이터널스를 설득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인류에게서 보았고, 그 소질을 부러워하고, 또 원하면서 인간을 믿는다. 이렇게 층층이 쌓인 감정은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한다. 세르시와 데인 사이의 에로스적 사랑부터 더 나아가 훨씬 넓은 범주인 인류애까지 확장되는 사랑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사랑은 이터널스가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와 명령까지 거슬러가며 진정으로 인간과 지구의 보호자가 되는 계기이자 힘이 되며, 관객의 입장에서는 초월적 존재에게 공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가 된다. 이처럼 신과 인간의 관계성, 초월적 존재가 지극히 인간적 존재에 가까워지는 과정과 선택,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이터널스>는 마블 영화로서는 낯설 정도로 서정적이고 신화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터널스 개개인의 이야기가 어디까지나 마블 세계관의 부속품을 지향하는 <이터널스> 전체 콘셉트와 충돌하면서 괴리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이터널스>에서 마블스러운 대목이라면 지구보다 큰 셀레스티얼이 직접 등장하거나 우주와 이터널스의 기원에 대한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는 것, 더 나아가 블랙 나이트라는 새로운 영웅과 지구 외의 행성에서 활동하는 이터널스의 존재를 암시하는 장면 등을 꼽을 수 있다. 즉, <이터널스>는 <샹치>에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페이즈 4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마블 세계관의 기원을 밝히며, 새로운 캐릭터들을 소개하면서 배경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한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에서 <이터널스>가 내포한 불협화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중심 플롯은 우주적 존재인 이터널스를 지상의 존재인 인간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이야기인데, 정작 그 배경은 어떤 마블 영화보다도 깊고 넓은 차원으로 뻗어나가면서 서로 충돌한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들의 서사에 집중하면 세계관을 확장하는 여러 작업 때문에 인물들의 내밀하고 짙은 감정선이 느껴지려는 찰나에 영화가 끊기는 듯 느껴지고, 피상적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마블의 큰 그림 중 일부로 이 작품을 접하면 작중 발생하는 사건의 스케일에 어울리지 않게 이터널스의 이야기가 소소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이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연출력마저 애매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물론 각 장면의 연출은 기대했던 대로다. 자연의 풍광을 담거나 거대한 스케일의 우주를 보여주는 장면의 임팩트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영상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외로움 혹은 절망과 맞서야 하는 이터널스 멤버들의 감정선까지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기에 더욱 그렇다. 호주의 광활한 광야를 배경으로 세르시나 테나를 카메라에 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만 앞서 지적한 문제로 인해 떼어놓고 보면 좋은 각각의 장면이 막상 하나로 조화되지는 못하다 보니 그 감흥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사실 MCU라는 거대한 서사시 안에서 각각의 작품이 독립된 영화보다는 하나의 부품처럼 느껴지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터널스>에서는 그 둘 간의 갈등과 긴장이 유달리 강하게 느껴진다.
이에 더해 작품 자체의 완성도나 구조에서도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일단 마블 작품의 고질병인 빌런의 문제가 다시 도진 듯 보인다. 지금껏 마블 영화는 가시적으로 드러난 악역과 흑막에 숨은 악역이라는 이중 장치를 자주 활용해 왔다. 그런데 이 경우 전작인 <샹치>에서 볼 수 있듯이 흑막 속 빌런이 드러남과 동시에 먼저 등장한 빌런의 위치나 존재감이 애매해지는 단점이 발생할 수 있다. <이터널스>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빌런인 데비안츠의 존재감과 위치는 흑막이 밝혀지는 순간 급격히 흔들리고, 그들은 그저 반전을 위한 도구로서 소비되는 데 그치고 만다. 이터널스와 데비안츠의 마지막 승부에서 별다른 긴장감이나 비장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덤이다.
현재와 고대를 오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도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수천 년의 시간을 오가는 대담한 작법은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나 이슈타르 문, 테노치티틀란의 피라미드라는 스펙터클을 보여주기는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전반적인 서사가 지나치게 얇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자아낸다. 각각의 인물이 경험하는 내적인 고민과 갈등이 중심이 되어야 할 영화에서 필요한 에피소드만 단편적으로 취사선택한 나머지 인물들의 동기나 이유에 공감하기 어렵고, 작위적인 느낌만 남는 것이다. 또한 세르시와 이카리스, 혹은 테나와 길가메시처럼 짝을 이루는 캐릭터 간의 케미스트리를 부각하려는 영화의 잦은 시도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결과도 낳는다. 애초에 다소 복잡한 영화의 구성 자체가 자오 감독의 장점과 어긋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자오 감독의 장점은 간결한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감정선을 화면에 담긴 공간과 풍광에 담아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각 캐릭터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기 어려운 데는 영화가 마지막 순간까지 다양성이라는 콘셉트를 유지한 것도 하나의 이유로 보인다. 이 시도는 10명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상황에서도 각각의 캐릭터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 안에서 동성애, 장애, 인종과 같은 정지척 올바름의 요소가 캐릭터의 정체성으로 비교적 자연스럽게 녹여낼 충분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미 영화가 과거와 현재, 지구와 우주를 오가는 상황에서 전체적인 구심점 역할을 할 만한 인물까지 제시되지 않은 결과 전체적으로 산만한 인상을 피할 길은 없다.
<이터널스>가 매력이 없는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혹평을 받아야 할 작품 같지도 않다. 자오 감독의 영상미가 주는 웅장함은 살아있으며, 마블 팬의 입장에서는 두 개의 쿠키영상을 포함해 더 많은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고 기대감을 끌어올릴 구석이 많은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한쪽에서 멀티버스의 이야기가 펼쳐질 때, 다른 한쪽에서는 더 깊고 넓은 우주를 탐험할 것이라는 기대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또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이터널스가 합을 맞춰 만드는 액션의 앙상블도 눈을 즐겁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종합되었을 때 스튜디오의 의도와 감독의 장점이 조화되지 않은 채 상이한 지향점이 충돌하면서 만들어 낸 애매모호함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실 하나하나는 아름답지만 정작 그 실이 종횡으로 모두 흩어져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알기 어려운 태피스트리와 다를 게 없다. 그 결과 <이터널스>는 어떤 이유든 간에 마블답지 않으면서도 마블스러운 혼란한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다. 결국 <이터널스>는 마동석의 출연 등으로 큰 관심을 모은 것에 비해 비교적 조용히 다음 주자인 스파이더맨에게 바통을 넘기는 데 그치고 만다.
P(Poor, 형편없는)
감독, 기획, 콘셉트, 플롯과 연출까지 잘못된 만남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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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리볼버"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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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가 영화 판권을 가지고 있는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악당 캐릭터인 모비우스의
단독영화가 개봉하였습니다.
개봉 전 꽤 기대를 불러왔던 영화였는데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영화였습니다.
배우 자레드 레토의 재능이 또 한 번 소비되어버리고 마는 작품입니다.
캐릭터의 매력도, 액션 장면의 매력도, 이야기의 재미도 잡지 못한 영화네요.
아마도 앞으로 소니에서 제작될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에서 계속 보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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