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3-18 20:06:09
침범 | 악의 마음을 읽는 대신 가리기 급급하다
<침범>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7살 딸 '소현'(기소유)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 '영은'(곽선영). 수영 강사 일을 하며 혼자서라도 딸을 잘 키워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녀는 버겁기만 하다. 화가 나면 엄마도 칼로 베고, 유치원에서도 친구들을 물리적으로 괴롭히고, 왜 다른 생명을 죽이면 안 되냐고 묻는 소현의 기이한 행동이 좀처럼 끝나지 않기 때문. 엄마의 헌신과 정신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소현이 달라질 기미가 안 보이자, 영은은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다.
20년 후,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고 특수 청소 업체에서 일하는 '김민'(권유리). 그녀는 딸이 잃은 이후 자신을 딸처럼 '현경'(신동미)과 가족처럼 지낸다. 어느 날, 그들 앞에 해맑은 얼굴의 '박해영'(이설)이 나타난다. 가족도 없고, 과거 이력도 알 수 없는 해영이 조금씩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자 민은 그녀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민과 해영이 갈등이 정점에 달한 순간, 그들이 각자 숨기고 있던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악인의 서사를 거세한 스릴러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 잔혹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SNS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구호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애도나 연대보다 가해자의 사연, 수법 및 범죄 결과 등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미디어를 비판하는 구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외침에는 우려도 따른다. 이 구호에 내포된 사회적 악영향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악인의 서사는 때때로 유용하다. 가해자의 서사는 범죄 발생의 개인적, 구조적 원인이나 사회의 모순, 그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대책까지도 말해줄 수 있다. 일례로 조현병 환자의 살인 사건은 범죄 예방 대책과 보건 복지 대책이 더 끈끈하게 연계되어야 할 필요성을 일러준다. 따라서 그들의 서사를 극단적으로 배제할 경우 동종의 범죄를 예방하고 잠재적인 피해자를 더 많이 구제할 기회를 놓칠 위험이 따른다.
악인이 아닌 사람까지도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경향성도 유발할 수 있다. 악인의 서사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도덕적 확신이 견고할수록 더 많은 서사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 설령 악인이 아니어도 자신과는 다른 서사를 지닌 타인을 쉽게 배제하고, 악마화할 수 있으니까. 소설, 영화 등을 통해 악인의 이야기를 꾸준히 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게 일부 공감하는 자신을 보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힘을 잃지 않으려는 훈련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침범>은 단편적이다. 영화는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라는 구호에 충실하다. 악인을 순수악으로 규정하고,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며, 악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어도 일부러 외면하면서 스릴러로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데에만 열중한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다. 악인의 서사를 회피했을 때의 부작용으로 인해 전체적인 완성도에 균열이 생기고, 의도와 메시지에도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케빈에 대하여>와의 결정적 차이
<침범>은 1막과 2막으로 나뉜다. 그중 1막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연상시킨다. 소재가 같기 때문. <케빈에 대하여>는 사이코패스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고, 그를 두려워하는 엄마 '에마'(틸다 스윈튼)를 보여줬다. <침범>의 1막도 마찬가지다. 엄마 은영은 딸 소현을 키우기가 버겁다. 그녀는 기본적인 사회성도, 선악의 구분도 없는 사이코패스 같은 딸이 무섭다.
그런데 두 작품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악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케빈에 대하여>는 케빈을 타고난 악인으로 규정하는 대신 그의 서사를 보여준다. 원치 않았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처음부터 아들을 두려워하고 밀어내려 한 엄마. 그런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질까 무서워하며 불안정해지고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아들. 영화는 모자의 갈등과 충돌이 사이코패스 살인범 케빈을 낳는 과정을 차분히 훑는다.
<침범>은 정반대다. 소현을 순수한 악인으로 묘사한다. 반려견을 죽이고, 친구들을 공격하고, 엄마도 칼로 베는 그녀의 악행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그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부추긴다.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서사는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소현의 아빠가 가족을 떠날 만큼 그녀의 타고난 기질이 잔인하고 남다르다고 언급하고, 단순한 질투심 정도를 공격적인 행동의 이유로 등장시킬 뿐이다.
반면에 영은의 모성애는 강조된다. 영은은 딸에게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설명하고, 그녀의 공격성을 해소하기 위해 시골 농장에서 닭도 잡는다. 그녀의 헌신은 악인과 그의 서사를 애초에 배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엄마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딸이 변할 기미가 없다 보니 배제의 논리에도 힘이 실리는 것. 이는 1막의 끝을 장식하는 수영장 시퀀스에서 영은이 딸과 함께 자살하려 하는 이유로 이어진다.
장르적으로 거부한 악인의 서사
2막도 다르지 않다. 2막에서도 소현이라는 악인의 서사는 선택적으로 다뤄진다. 그녀가 얼마나 잔혹하고 파렴치한 지를 장르적으로 풀어낼 때에만 포착하면서 영은의 선택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때 핵심은 <화차>를 연상시키는 미스터리다. 1막과 2막 사이에 존재하는 20년이라는 시간의 공백 덕분에 관객은 2막에 등장한 인물 중 누가 소현인지를 알 수 없다. 이 무지에서 비롯된 서스펜스가 2막의 원동력이 된다.
소현처럼 보이는 주인공은 두 명, 김민과 박해영이다. 김민에게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있다. 이 대목은 수영장에서의 자살 시도 후 영은은 입원하고, 소현은 이름을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낸다. 한편 갑작스럽게 등장해 김민과 현경 사이에 끼어든 박해영은 과거사가 아예 묘사되지 않는다. 공백으로 남은 개인사는 20년의 공백과 이어지면서 해영을 소현으로 의심하는 근거가 된다.
다만 소현의 정체를 다룬 미스터리는 큰 효과가 없다. 해영의 반복된 악행을 김민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소현의 정체가 일찍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현의 정체를 숨기면 김민이 현경 몰래 가족 행세를 하는지, 아니면 해영이 김민과 현경의 관계에 침범하는지가 헷갈린다. 그러나 소현의 정체가 밝혀진 순간 침범의 주체는 명확해지고, 미스터리도 단순 서프라이즈를 유발하는 데서 그친다.
그렇지만 <침범>은 스릴러다운 공포감과 긴장감만큼은 유지하면서 이름값을 해낸다. 타인의 사정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이코패스를 얼굴을 맞대고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 특히 직장과 거처를 마련해 주는 호의를 가족을 침범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적의로 되갚는 해영, 곧 소현을 지켜보다 보면 왜 영은이 딸인데도 그녀를 제거하고자 했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읽는 대신 덮다
에필로그에서도 <침범>의 관점은 유지된다. 물가에서 영은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는 소현은 죄책감보다는 세상의 잘못을 토로한다. 엄마가 자기 말에 공감하지 않고, 도리어 수영장에서처럼 물속으로 들어가자고 하자 소현은 영은의 환영을 죽인다. 이렇게 <침범>은 마지막까지 소현의 서사를 단순한 변명으로 치부하고, 그녀를 '순수악'으로 규정하며, 어떤 가족과 사회도 침범할 수 없도록 배제해야 한다면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은 다소 편의적이고 무책임해 보인다. 소현이라는 악인의 서사를 편린이나마 보여줄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대비를 이루는 물과 불의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물과 불의 차이에 주목하면 순수악처럼 그려지는 소현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소현은 어려서부터 물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두려울 때 솔직해진다"라는 소현의 대사로부터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그녀는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교육받고, 본모습을 드러내면 늘 혼났다. 심지어 그녀의 본모습을 아는 아빠는 가족을 떠났고, 엄마는 자신을 버리려고 했다. 이처럼 솔직해져서는 안 되는 소현이 보기에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물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감춰야 할 때면 물과 반대되는 불을 선택한다. 가출 후 보육원에서 지낼 때 할머니가 찾아오자 정체를 들킬까 봐 보육원에 불을 지른다. 김민이 자신의 과거를 알아채자 또 한 번 불을 지르고 자신을 숨기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에필로그도 의미가 달라진다. 엄마의 환영을 죽이는 장면에서는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으면서도 동시에 숨기고 싶은 모순된 욕망과 강박이 잔혹함 대신 느껴지기 때문이다.
배제와 회피의 대가
이처럼 극 중 흩어져 있는 파편으로부터 소현의 서사를 읽어내면 <침범>의 내용과 메시지가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녀가 불을 지르지 못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침범>은 소현을 '순수악'의 포지션에 가두면서 그 가능성 자체를 닫아 버린다. 같은 소재를 다루는 <케빈에 대하여>에 비하면 소재의 잠재성을 끄집어내고, 성장시킬 용기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소현의 서사를 일부러 무시한 선택도 역효과를 낸다. 그녀의 악행을 장르적으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악인과 관련된 이들의 서사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침범>은 악인의 서사에 관심이 없지만, 악인의 피해자도 그의 잔혹성을 과시하는 도구로만 활용한다. 즉, 악인의 서사를 무조건적으로 배제할 때 발생할 부작용을 <침범>의 회피적 태도가 보여주는 셈이다.
실제로 소현의 할머니는 은영이 죽은 후에도 소현이를 돌보다가 수 차례에 칼에 찔리고 베인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그저 소현의 악함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20년 간 할머니의 일상이 어떤 모습이었지는 다뤄지지 않기 때문. 김민과 해영의 플롯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야기는 20년 간 일관된 소현의 악행을 과시할 뿐이다. 소현이 도망친 후 피해자인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침범>은 장르적으로 즐길만한 스릴러 그 이상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매력적인 소재, 모성애와 사이코패스적 특성을 살려낸 배우들의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색깔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악인의 서사'에 대한 단편적이고, 선택적인 고찰의 부작용이라고 불 수도 있다. 같은 소재를 다룬 <케빈에 대하여>, 비슷한 장르와 구성을 취한 <화차>의 그림자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cceptable 무난함
탐구 대신 덮어두기를 선택한 회피형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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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말했지.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시놉시스: 50년간 묵묵히 '물방울'만을 그리며 물방울 작가로 사랑받은 화가 김창열 침묵과 고독으로 가득한 그의 세상에는 기묘한 균열이 존재한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같은 예술가인 '인간 김창열'을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아들은 그리움의 시간을 살다 간 그의 삶을 담는다.
예고편│ Trailer
원제: L'homme qui peint des gouttes d'eau, 영제: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감독·각본: 김오안, 브리지트 부이오
출연진: 김창열│장르: 다큐멘터리│상영 시간: 79분
국가: 한국, 프랑스│등급: 전체 관람가
평점: 관람객 7.0, 네티즌 8.73, 기자·평론가 7.25, 왓챠피디아 3.6
개봉일: 2022년 9월 28일
제작: (주)미루픽처스│배급: 영화사 진진
수상내역: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특별상 - 신진감독상)
보러가기: 현재 극장 상영 중
#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평점
따뜻한 거리감 속에 묻어나는 애정 어린 시선
프랑스를 주 활동 무대로 50년간 물방울 그림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김창열 화백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2021년 작고하기 이전 5년의 시간과 그가 살아온 인생을 역사와 함께 되짚어 보는 아들의 시선을 따라가는 작가주의적 분위기를 냅니다. 전쟁의 참상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그 외상을 평생 지고 살아오며 오랜 세월 끝에 자신의 화실에서 마주하게 된 다양한 물방울, 그가 본 모든 피를 물의 원천으로 변형해 고통을 씻어냈다는 그의 방식을 천천히 살펴봅니다.
전체적으로 작품에 대한 논의보다 그가 느꼈을 삶의 회한과 그림에 대한 집착,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하게 담아내는데 집중하고 점차적으로 그가 그린 물방울과 물에 대한 의미를 슬며시 밀어 넣어 잠깐의 쉼터 같은 말들로 알듯 모를듯한 그의 세계를 대중의 언어로 쉽게 풀어갑니다. 과거 전쟁의 장면도, 침묵을 유지하는 장면도, 손주들과 장난을 치는 장면도, 작가의 삶과 생각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아름답지만 집착에 가깝게 물방울만을 그린 이유를 설명합니다. 한국전쟁이라는 큰 트라우마를 겪고, 과거의 상처를 씻어내고 치유하기 위해 애절함을 담았던 그에 대한 궁금증과 이해를 위해서 말이죠.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장면을 넣겠다는 아들의 질문에 아기, 눈 내리는 숲, 고향 등을 말했던 화백,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이자 예술가 김창열을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김오산 감독. 한 사람의 인생과 예술가로서 설명하기에 부족한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함께한 수많은 세월 속 묻어나는 애정에서 그의 삶을 담백하고 차분히 담아냈다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지, 얼마나 좋은 아버지인가를 떠나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시선으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서 말이죠. :)한 줄 평 : 각각의 물방울에 담긴 아버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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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서사를 덜 폭파시킨 마이클 베이식 추격전
앰뷸런스 (Ambulance , 2022)
“이번엔 서사를 덜 폭파시킨 마이클 베이식 추격전”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액션, 범죄
러닝타임 : 136분
감독 : 마이클 베이
출연 : 제이크 질렌할,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에이사 곤잘레스
개인적인 평점 : 3,5/5 (저에겐 4점짜린데 취향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앰뷸런스 줄거리
인생 역전을 위해 완벽한 범죄를 설계한 형 ‘대니'와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해야만 하는 동생 ‘윌', 함께 자랐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형제는 각기 다른 목적을 위해 인생을 바꿀 위험한 계획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틀어지게 된 두 형제는 구급 대원 '캠'과 부상당한 경찰이 탑승한 앰뷸런스를 탈취해 LA 역사상 가장 위험한 질주를 하게 되는데....
영화 <나쁜 녀석들>로 데뷔해 <트랜스포머 시리즈>, <6 언더 그라운드>등, 거침없는 액션 영화들을 남긴 ‘마이클 베이’감독의 신작 <앰뷸런스>가 개봉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매 작품마다 특유의 쫀득하고 타격감 있는 액션을 보여주며 “제대로 폭파하는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무려 5편이나 끌고 가며 일각에선 ‘개연성도 폭파시킨 영화’라는 아쉬운 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앰뷸런스>에 우당탕탕 때려 부수는 액션을 제외하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내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비하면 확실히 개연성과 폭발. 두 가지를 모두 잡은 느낌이랄까. CG는 S**t이라며 어지간한 건 직접 다 폭발시키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뚝심과 최근 그의 작품에서 찾기 힘들었던 감정선까지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팬데믹으로 인해 예정되었던 차기작 촬영이 미뤄지자 소소하게 찍어보자(폭파시켜보자)는 느낌으로 유니버셜 픽처스의 회장에게 새로운 영화 제작에 대해 어필을 했고, <앰뷸런스>의 연출을 맡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트랜스포머에 비해선 약간 힘을 덜 주고 찍은, 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 담긴 액션들은 결코 소소하지 않다. 드론이 추가되며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게 된 키메리의 움직임과 제이크 질렌할의 아슬아슬 은은하게 돌아있는 눈빛, “언제 터지나” 기다릴 것 없이 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전개와 약간의 서사까지 더해지니 콕 집을 큰 단점이 없다.
영화관에서 봐야 할 영화
그냥 하는 말, 농담이 아니라 <앰뷸런스>는 영화관에서 만나봐야 할 영화다. 시원하게 터져나가는 액션을 극장의 화면과 스피커로 만나보는 것만큼 스트레스 풀기에 좋은 것이 또 없다. 개봉 전에는 IMAX와 돌비 외 특별 포맷 상영이 없는 게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니 왜 이 영화가 4DX 포맷이 없는지 알 것 같았다. 사족 전부 제외하고 최소한의 설명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영화이기에 거의 2시간 내내 카 체이싱 장면이 이어지는데, 2시간 내내 모션 체어에 앉아 이리저리 후두려 맞을 생각을 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리고 굳이 4DX가 아니더라도 화면 자체가 입체적이고 어질어질한 느낌이 있기도 하다. 딱 ‘마이클 베이’다운 액션신들이 가득하기에 이건 기회가 될 때, 극장에서 봐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너무 진지하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막힘없이, 멈추지 않는 질주
이야기의 구조는 보통 기승전결로 나뉜다. 2시간 정도 되는 영화라면 30분 정도는 배경 설명을 하고, 30분이 넘어갈 때쯤에 제대로 된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다. 근데 <앰뷸런스>는 바로 은행 털기! 카 체이싱!!을 외치며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본론으로 들어간다. “요즘 누가 은행을 털어요?”라며 영화의 소재가 식상하다고 툴툴댈 틈도 없이 일단 냅다 달린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몇 번이고 대사로 강조한다. “멈추지 않아.”라고. 정말 이 영화는 멈추지 않고 달린다. 긴 추격전 중간에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웃음 포인트를 넣어뒀으니 다행이지, 그마저도 없었으면 어깨가 뻐근했을지도.
LA 곳곳을 터트리는 마이클 베이
은행 강도는 빌드업이었을 뿐, 이 영화에서 실제로 보여주고자 하는 건 LA 곳곳을 훑는 앰뷸런스의 모습이다. 처음엔 추격전에 최적화되었다고 보긴 어려운 커다랗고 눈에 띄는 앰뷸런스를 추격전에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했다. 영화는 이 외적인 부분을 포기하고 앰뷸런스 안에 탄 사람을 볼모로 잡아 간단하게 끝낼 수 없는 긴 추격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혈관처럼 뻗어있는 LA의 도로, 골목을 달리며 온갖 것들을 터트리고 부수고 밀어버린다. 이 정도면 마이클 베이 감독이 LA를 좋아해서 이 영화를 연출한 건지, LA를 싫어해서 폭파시키고 싶어 이 영화를 연출한 건지 헷갈릴 정도다.
제이크 질렌할의 두 가지 눈빛
<앰뷸런스>를 무조건 봐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제이크 질렌할’때문에.
이 영화의 주연은 세명이다. 형 대니를 맡은 제이크 질렌할, 동생 윌을 맡은 아히아 압둘 마틴 2세, 구급 대원 캠 역할을 맡은 에이사 곤잘레스. 제이크 질렌할을 제외한 두 배우 역시 최근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인물들이지만, 극의 전체적인 텐션과 분위기를 책임지는 건 당연하게도 ‘제이크 질렌할’과 그의 캐릭터 대니다.
동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형 대니와 마지막으로 큰 한탕을 노리는 미친 은행 강도, 두 정체성 사이를 재빠르게 넘나드는 그의 연기에 이번에도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특히 제이크 질렌할의 큰 눈은 멜로나 서정적인 연기에도 잘 맞지만 광인 연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 같다. 그가 갑작스레 폭발해 소리를 지르거나 반대로 비정상적으로 침착한 모습을 보일 때면 자연스레 “이 캐릭터 정말 미친놈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트 크롤러>에서 제대로된 잔잔한 미친 연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언젠가 <아메리칸 사이코>처럼 진짜 본격적이고 폭발적인 광인 연기를 보여주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은근 괜찮게 다가오는 서사
앞에도 언급했듯 <앰뷸런스>는 개연성까지 부숴버린 영화가 아니다. 이야기는 대니와 윌 형제의 뜨끈한 형제애로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위선과 갈등, 진심이 뒤섞이며 누구의 말을 따르는 게 맞을지,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누군가의 선택에 의문이 생기는 부분도 있지만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서사였다고 생각한다.
거침없이 본론부터 / 이야기의 배경
영화의 주인공인 동생 윌은 해병대에 지원해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남은 건 공로 훈장뿐이고 연금도, 제대로 된 의료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윌은 아내 에이미의 수술을 위해 보험금을 받으려 하지만 임상 수술이란 이유로 지원을 거절당한다. 일자리도 구해지지 않고 도저히 돈 나올 구석이 없자 그는 마지막 보루로 형 대니에게 찾아간다. 윌은 백인인 대니의 집안에서 입양아로 자랐다. 대니는 윌을 ‘진짜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진심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둘은 끈끈한 우애를 유지해왔지만 아버지와 얽힌 상황 때문에 갈라져 살게 된다.
윌은 돈이 필요했고, 대니는 때마침 큰돈을 벌 마지막 은행 강도를 계획한다. 계획 시작까지 단 5분 만이 남은 상황,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대니의 말들이 몰아치고 “가족을 위해서!”라는 커다란 이유에 윌은 차에 함께 올라탄다. 이런 상황에서 휩쓸리지 않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갈 인물이 몇이나 있을까. <앰뷸런스>는 시작부터 강하고 빠르게 보는 이들을 휘어잡으며 시원하게 전개된다. 가장 거침없다고 느꼈던 건 여러 명으로 시작했던 강도 동료들이 한순간에 떨어져 나갈 때였다. 버켄스탁을 신은 동료와 차를 잘못 댄 동료, 윌을 배척한 동료 등등… 이름조차 거의 기억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주변인들을 밀어버릴 줄은 몰랐다. 그 덕분에 딱 추격전에 필요한 인물만 남게 되고, 가벼워진 몸체로 거침없는 액션이 시작된다.
추격전 중간에 삽입되는 잠깐의 쉬는 시간
은행을 벗어난 순간부터 이들의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숨차게 달리는 와중에도 대니의 입과 주변 경찰들을 통해 아주 잠깐의 쉬는 시간을 선사한다. “진정하고 냉정을 찾아”, “아타리 게임기처럼 생겨서 헷갈린단 말이야!”, “이거 캐시미어라고!”라고 윽박지르는 대니의 대사와 플라밍고, 반장의 커다란 개 나이트로, 80년대 음악으로 찾는 잠깐의 힐링 등등… 옅은 웃음이 피식 새어나오는 순간들이 꽤 많다. 여기서 더 재밌었던 건 영화에 나온 그 커다란 개가 마이클 베이 감독의 반려견이라는 사실이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해가 질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반려견이 차에 타주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마치 반려견의 눈이 “나보고 이 작은 차에 타라는 거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근데 나였어도 그 몸으로 좁은 차에는… 타기 싫었을 것 같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위선과 갈등이 교차하는 앰뷸런스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듯 보이지만 앰뷸런스 안에선 별일이 다 펼쳐진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구급 대원 캠, 형과 예전 같은 삶의 선택지에서 갈등하고 있는 윌, 동생의 탈출과 돈을 모두 챙기고 싶었던 대니. 윌과 대니는 함께 멈추지 않는 질주를 하기도 하고, 인질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반쪽자리 선의 앞에서 갈등하기도 한다. 대니는 끝까지 형으로서 동생을 감싸고, 윌은 끝내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한다.
추격전의 끝에서 되새기는 과거의 마음가짐 / 결말 해석
형으로서 보여준 모습과 엔딩 때문인지 희한하게도 대니가 ‘미친 은행 강도’라기보단 왠지 윌과 캠의 초심 찾기를 위한 희생양으로 보이기도 했다. 윌은 오늘 아침 은행 강도가 됐고, 캠은 오랜 구급 대원 생활에 지친 것인지 사건 현장을 떠나자마자 환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얼굴을 지워버리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그는 ‘가장 같이 일하기 싫은’ 구급 대원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추격전의 끝자락에서 다시 정의로운 마음가짐과 따뜻한 구급 대원의 시선을 되찾게 된다. 잔인한 은행 강도였던 양아버지를 떠나 자원입대를 결정한 정의로운 과거의 윌과 사람들을 구하고 그들의 손을 잡는 구급 대원 캠의 모습을 말이다. 윌은 대니에게 총을 겨누면서 은행 강도의 피를 이어받은 형으로부터 인질 두 사람을 구해준 사람이 되었고 아내를 위한 돈도 챙기게 된다. 그리고 캠은 자신이 구해준 아이의 병실을 찾아가 조용히 손을 잡는다.
두 사람에겐 이 추격전이 각성의 계기이자 해피엔딩이 되었지만 멀리서 지켜본 이의 시선으로는 대니만 애잔하게 되었다. 대니가 죽는 순간에 지나갔던 어린 시절의 보안관 놀이 장면도 어째 아련함보단 약간의 어이없음을 불러온다. 그럴 거면 쏘지 말든가…!
아니 어쩌면 이 장면을 통해 대니를 나쁘기만 한건 아닌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동생에게 무조건적으로 져주던 멋진 형이었던 그의 모습을 보여주며 은행 강도를 하다가 죽은 게 아닌 끝까지 동생을 도와주려다 유명을 달리한 형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려고 한걸 지도.
완벽한 해피엔딩이 되기 어려운 시작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이 형제를 응원하고 있었기에 꽉 닫힌 해피엔딩이 되길 바랐다. 엔딩이 조금 아쉬운 반쪽짜리 해피엔딩이긴 했지만 이만하면 마무리까지 괜찮게 맺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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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와 사랑에 빠진 남자, 그에게 빠진 세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보고 띵작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메시지의 전달과 음악의 결합이 굉장히 탁월했고, 오스카 피터슨의 생애와 재즈에 대해 더욱 깊이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시놉시스
재즈 아이콘이자 작곡가였던 오스카 피터슨의 사운드와 스타덤, 환상적인 연주를 통해 아티스트의 생애와 그가 남긴 유산을 탐구한 다큐 콘서트 <오스타 피터슨: 블랙 + 화이트>. 명실공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은 피카소나 모차르트처럼 독특한 천재성을 지닌 것은 물론, 거침없는 연주와 개성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천재 재즈 뮤지션의 70년 역사를 담은 영화는 신동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그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완성된 트리오 시절의 녹음, 유명 스타들과의 컬래버레이션, 전 세계를 누비며 펼친 솔로 공연뿐 아니라 미국 투어 시절 겪은 인종차별 속에서 그가 보인 불굴의 의지, 그리고 그가 남긴 역사적인 곡 ‘자유를 위한 찬가’(Hymn to Freedom)까지 담고 있다.
* 해당 내용은 전주국제영화제 보도자료집을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음반을 사고 싶게 만들다
취미 중 하나는 집에서 LP를 듣는 것이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LP를 들을 때 특히 아무일 없는 주말에 그러고 있으면 편안해져서 자주 듣는 편이다. 그리고 LP로 들었을 때 가장 좋았던 장르는 재즈였다. 그렇다고 재즈에 대해서 잘 알지도,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어서, 이번 영화를 보면서 재즈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스카 피터슨의 이야기를 접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예매를 했던 작품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재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스카 피터슨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그의 곡이 얼마나 훌륭한지 잘 담아내고 있는 영화였다. 오스카 피터슨이 재즈씬에 데뷔한 후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의 업적과 곡들을 순차적으로 담아내고 있어서그 연대기와 흐름을 잘 알 수 있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피터슨의 명반을 구매해봐? 이러면서 바이닐 검색을 엄청 했던 것 같다.
곡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접하다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라이브 밴드로 그의 곡을 연주하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다. 밴드 장면 전후로 이 곡이 만들어지고, 이 곡을 가지고 투어를 다닐 때의 피터슨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곡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물론 피터슨의 곡을 조금 더 듣고 싶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건 솔직히 음원이나 앨범에서 찾아 들을 수 있기에 밴드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 음악은 점차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피터슨의 이야기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당시 시대상황을 알려주는 인터뷰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접목되어서 솔직히 좋았다. 이러한 이야기가 끝난 뒤 다시 밴드음악이 메인으로 등장하면서 그 음악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된 상태에서 노래를 듣다보니 그 곡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고비를 뛰어 넘은 사람
오스카 피터슨이 언제나 전성기를 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하기에 은퇴하는 그 날까지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사람이라고 지레 짐작을 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뛰어났기에 전성기 시절보다 떨어진 기량임에도 압도적이긴 했지만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더 발전적인 연주를 보여준 오스카 피터슨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예체능계에서는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은퇴를 생각하고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피터슨의 경우에는 뇌졸증이 와 왼쪽 마비가 오면서 왼손의 기량이 현격하게 떨어졌음에도 이 과정에서 은퇴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피터슨은 기존에 트리오 편성을 쿼터로 바꾸면서 자신의 떨어진 왼손 기량을 받춰줄 기타리스트를 영입해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간다. 전성기 시절의 피터슨은 왼손으로 베이스를 다 만들었기에 다른 악기의 반주가 없이도 독주가 가능했었다. 이 지점이 다른 피아니스트와의 차별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비 이후 기량이 떨어지자 그만둘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쿼터에 도전함으로써 더 풍부하면서도 기존과는 다른 음악을 만들어내고 연주했다는 그 도전정신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간만에 음악다큐를 보고 그 명반을 찾아 들으면서 영화관을 기분 좋게 나왔던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재즈에 관심이 있으신 사람이라면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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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행세계로 가니 모든게 바뀐 처지가 된 베스트셀러 작가의 이야기?
시놉시스
칸바야시 리쿠는 따분한 대학 교양 강의가 듣기 싫어서 창룡전기라는 자신의 소설 세계관을 구성해서 습작 노트에 적는다. 하지만 교양 교수에게 그 습작 노트를 뺐기게 되고 밤에 자신의 습작 노트를 되찾으려고 몰래 교수의 방에서 가져오지만 경비에게 들키고 만다. 도망가는 사이에 학교 강당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마에조노 미나미라는 여자 밴드부 보컬의 노래를 듣는다.
둘은 그 강당에서 우연히 만나 캠퍼스 커플이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칸바야시 리쿠는 창룡전기 시리즈로 대박을 터뜨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난 후 마에조노 미나미에게 소홀히 대했다. 창룡전기 완결 부분을 완성하고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달에 이상현상이 뜨는 것을 보고 잠이 든 후에 모든게 변해있었다. 자신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일반 출판사 직원일뿐 자신의 아내인 마에조노 미나미는 슈퍼 스타가 되어있었는데...
평행세계에서는 모든게 달라졌다?
마에조노 미나미는 평행세계에서는 성공한 싱어송라이터이자 슈퍼 스타였고 칸뱌야시 리쿠는 자신이 바뀐 처지에 대해 한탄을 하다가 원래 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먼저 그녀에게 사생팬으로 보이는 척 다가가 그녀가 좋아했던 에그타르트를 준비하거나 그쪽 세계의 카지 선배에게 부탁해서 부단히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력은 실패하지 않았다. 몇 번의 실패는 있었지만 그쪽 세계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칸바야시 리쿠에게 주어진 과제는 출판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그 노력으로 그쪽 세계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를 발굴하는 노력을 하는데 성공한다.
후회는 지나봐야 소용없는 걸까?
그 때 지나간 인연에게 더 잘할 걸 내가 더 노력할 걸 해도 달라지지 않는게 있나보다. 이 영화는 평행세계라는 설정을 빌려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잘나갔으나 자신을 사랑했던 여자에게 정작 소홀히 했던 후회에 대한 반성의 이야기라면 현실은 자신을 떠난 연인이나 헤어진 사람들에게 다시는 잘해줄수도 다시 전처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그렇기에 칸바야시 리쿠는 자신이 쓴 창룡전기의 주인공인 갤리오스의 동반자인 쉐도우를 자신이 사랑했던 마에조노 미나미를 투영시켜 만들었지만 갤리오스는 동반자를 잃은 채 홀로 떠난다고 결말을 정해버렸다.
쉐도우는 죽었지만 갤리오스는 자신의 앞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로 정한다. 창룡전기의 결말은 이렇게 맞이했고 칸뱌야시 리쿠 또한 자신이 쓴 완결작을 고치지 않았다. 그런데 평행세계로 온 후에 그는 자신의 진짜 세계로 돌아가 사랑하는 인연들에게 후회 없이 잘해주려고 소설의 결말을 고치기로 마음먹는다.
그간의 사건들이 수없이 있었으나 주인공은 좌절하지 않는다는 공식을 버리지 않는게 영화인 걸까? 갤리오스도 칸뱌야시 리쿠도 결국은 해내고야 만다는 그런 사명에 자신의 모든 걸 던진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필자도 연인은 아니지만 소중한 인연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그 사람들을 떠나가기 전에 잘해주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칸뱌야시 리쿠도 마에조노 미나미도 각각의 세계에서 전세가 바뀌었듯 지금의 인연도 어떤 세계에서는 다른 위치에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창룡전기를 완성하기 전에 마에조노 미니미에게 첫번째 독자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한 건 칸뱌야시 리쿠였다.
그는 그 때를 모르고 거만해져서 다른 세계로 가 모든게 바뀌어 후회를 하지만 결국 진정한 건 그의 진심은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달라져도 그때와 변치않아야 한다는 것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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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퉁이에 사는 이들의 삶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하며 만난 토리와 로키타.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애틋한 사이지만, 실제 남매인 것처럼 꾸며내서 말을 하는 것은 로키타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아동 학대를 인정받아 체류증을 발급받은 토리와 실제 남매라는 점을 강조해 자신도 체류증을 발급받고자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로키타. 체류증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마약 배달뿐이다. 그 과정에서 생긴 돈마저 이주 브로커에게 강탈당하자 로키타는 대마 재배 시설에서 일하게 된다.
이 과정은 아주 자연스럽게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영화는 그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그저 시선을 따라감으로써 보여준다. 특히 토리가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건너는 모습은 너무나 아슬아슬해 관객 모두가 숨을 죽이게 된다. 혹시라도 차에 치일까 봐서. 이렇게 위태로운 삶을 연명하는 것에 비해 남매가 소망하는 것은 참으로 소박해서 더욱 슬프다. 학교에 다니고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것. 평범한 삶을 원해서 범죄에 물들어버리는 현실이다.
남매는 마약을 빼돌려 직접 거래하고자 한다. 자신들을 압박하고 통제하는 무리로부터 벗어나 위치를 뒤바꿔보려는 시도이다. 들통나면 목숨을 잃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끝끝내 로키타가 체류증을 발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간의 일탈은 성공하는 듯했으나 한순간의 실수로 실패하고, 결국 로키타는 죽임당한다. 토리는 로키타의 시신을 붙들고 서럽게 울며 이름을 외친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 현실. 토리는 누나와 함께 부르던 노래를 장례식에서 홀로 부르며 영화가 끝난다.
결국 체류증을 발급받지 못한 아이의 삶은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끝나 버렸다. 남은 아이의 삶이 위태로울지라도 끝끝내는 살아남아 어른이 되는 모습을, 단단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영화가 세상의 모퉁이, 가장 어두운 골목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조금씩 가운데로 끌어줄 수 있길 바란다.
*이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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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판과 고질라 그 무엇들보다 <커튼콜>
*영화추천*
<커튼콜> Curtain Call, 2016
감독: 류훈
빨판과 고질라, 그 무엇들보다
출처: 영화 <커튼콜> 스틸컷(네이버)그는 한때 셰익스피어를 쪽쪽 빨아먹는 빨판이라 불렸다.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기대주이자 모든 동료의 눈과 입에 요란하게 걸릴 인재이기도 했다. 그의 친구는 맛깔난 애드리브로 연극판을 씹어먹는 고질라였다. 빨판과 고질라, 민기와 철구, 두 친구는 자칭, 타칭 천재 연출가와 배우, 그보다 더한 수식어가 따라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예술가’가 될 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매섭고 서글프다. 빨판은 ‘하느냐, 마느냐’에 철학을 욱여넣은 삼류 에로 극단 ‘민기’의 연출가가, 고질라는 식대 영수증만 보면 애드리브가 폭발하는 프로듀서가 됐다.
꼭 꿈과 현실 중 하나를 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착각이다. 두 친구는 셰익스피어와 에로 중간에 서서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극단에 소속된 단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의 암울한 속사정이 무대 위에 난잡하게 흩어져 있는 걸 알지만, 굳이 치우려 하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절망이 때론 답답한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수단이 된다는 걸 알고 있고, 무엇보다 무대에 올라간 ‘내가’ 그것들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출처: 영화 <커튼콜> 스틸컷(네이버)
물론 극단 민기의 햄릿은 엉망진창이다. 정말 배꼽 빠지게 웃긴다. 단원들의 숨 막히는 실수는 끊이질 않고, 우리가 알던 햄릿은 점점 요상해지지만, 실없거나 우습지 않다. 오히려 놀랍다. 한없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던 햄릿이 순식간에 수백 개의 질문을 머금고 원래 제 무게를 찾는 순간, 우린 <커튼콜>이 대극장에 오른 연극이었음을 깨닫는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고 했던가. 아니다, 진짜 일류는 어쩔 수 없음을 어쩔 수 없음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자다. 세상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은 날려버리고 무작정 끝을 보는 자, 언제든 절망을 희망으로 읽을 수 있는 자, 갑자기 ‘죽느냐, 사느냐’가 ‘하느냐, 마느냐’로 들려도 전혀 개의치 않는 자, 바로 ‘민기’ 같은 사람들이다.
출처: 영화 <커튼콜> 스틸컷(네이버)
위로든 힐링이든 힘이 든 뭐든 다 좋다. 빨판과 고질라 같은 것들이 주는 위세보다 더 강렬하고 곧은 나만의 심지를 확인했으면 한다. 그런 커튼콜이라면 몇 번이고 반복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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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커리뷰]조커를 완성한 영화! 앞으로DC는 조커를 건들지 말라!
#조커#조커리뷰#영화조커리뷰
조커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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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흥신소-라떼극장]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라이터를 켜라'
영화 흥신소 - 라떼극장 EP.02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에서 발견한 소중한 기억들
탑골 부산행 '라이터를 켜라'과 함께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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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이 되면 모든 게 바뀌고 모두가 바뀐다! 환상의 팀워크로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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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왓챠 독점 공개]
올 여름, 살인의 꽃이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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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시선 속 아버지이자, 예술가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유년기 시절 할아버지와 외삼촌에게 서예와 데생을 배우고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공부하는 동화가로 활동하며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 한국 역사의 아픈 격동기를 목격하면서 상처받은 개인의 기억 안에 뒤엉킨 시대적 상흔들을 화폭에 담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김창열 화백의 다큐멘터리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리뷰입니다. 연출을 맡은 김오안은 그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이자 예술가로서 자신이 느낀 경외심과 존경심을 담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술 쪽엔 문외한이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 모습부터 아들의 속마음이 드러난 내레이션까지 마음 편히 어려움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말했지.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시놉시스: 50년간 묵묵히 '물방울'만을 그리며 물방울 작가로 사랑받은 화가 김창열 침묵과 고독으로 가득한 그의 세상에는 기묘한 균열이 존재한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같은 예술가인 '인간 김창열'을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아들은 그리움의 시간을 살다 간 그의 삶을 담는다.
예고편│ Trailer
원제: L'homme qui peint des gouttes d'eau, 영제: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감독·각본: 김오안, 브리지트 부이오
출연진: 김창열│장르: 다큐멘터리│상영 시간: 79분
국가: 한국, 프랑스│등급: 전체 관람가
평점: 관람객 7.0, 네티즌 8.73, 기자·평론가 7.25, 왓챠피디아 3.6
개봉일: 2022년 9월 28일
제작: (주)미루픽처스│배급: 영화사 진진
수상내역: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특별상 - 신진감독상)
보러가기: 현재 극장 상영 중
#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평점
따뜻한 거리감 속에 묻어나는 애정 어린 시선
프랑스를 주 활동 무대로 50년간 물방울 그림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김창열 화백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2021년 작고하기 이전 5년의 시간과 그가 살아온 인생을 역사와 함께 되짚어 보는 아들의 시선을 따라가는 작가주의적 분위기를 냅니다. 전쟁의 참상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그 외상을 평생 지고 살아오며 오랜 세월 끝에 자신의 화실에서 마주하게 된 다양한 물방울, 그가 본 모든 피를 물의 원천으로 변형해 고통을 씻어냈다는 그의 방식을 천천히 살펴봅니다.
전체적으로 작품에 대한 논의보다 그가 느꼈을 삶의 회한과 그림에 대한 집착,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하게 담아내는데 집중하고 점차적으로 그가 그린 물방울과 물에 대한 의미를 슬며시 밀어 넣어 잠깐의 쉼터 같은 말들로 알듯 모를듯한 그의 세계를 대중의 언어로 쉽게 풀어갑니다. 과거 전쟁의 장면도, 침묵을 유지하는 장면도, 손주들과 장난을 치는 장면도, 작가의 삶과 생각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아름답지만 집착에 가깝게 물방울만을 그린 이유를 설명합니다. 한국전쟁이라는 큰 트라우마를 겪고, 과거의 상처를 씻어내고 치유하기 위해 애절함을 담았던 그에 대한 궁금증과 이해를 위해서 말이죠.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장면을 넣겠다는 아들의 질문에 아기, 눈 내리는 숲, 고향 등을 말했던 화백,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이자 예술가 김창열을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김오산 감독. 한 사람의 인생과 예술가로서 설명하기에 부족한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함께한 수많은 세월 속 묻어나는 애정에서 그의 삶을 담백하고 차분히 담아냈다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지, 얼마나 좋은 아버지인가를 떠나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시선으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서 말이죠. :)한 줄 평 : 각각의 물방울에 담긴 아버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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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서사를 덜 폭파시킨 마이클 베이식 추격전
앰뷸런스 (Ambulance , 2022)
“이번엔 서사를 덜 폭파시킨 마이클 베이식 추격전”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액션, 범죄
러닝타임 : 136분
감독 : 마이클 베이
출연 : 제이크 질렌할, 야히아 압둘 마틴 2세, 에이사 곤잘레스
개인적인 평점 : 3,5/5 (저에겐 4점짜린데 취향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앰뷸런스 줄거리
인생 역전을 위해 완벽한 범죄를 설계한 형 ‘대니'와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해야만 하는 동생 ‘윌', 함께 자랐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형제는 각기 다른 목적을 위해 인생을 바꿀 위험한 계획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틀어지게 된 두 형제는 구급 대원 '캠'과 부상당한 경찰이 탑승한 앰뷸런스를 탈취해 LA 역사상 가장 위험한 질주를 하게 되는데....
영화 <나쁜 녀석들>로 데뷔해 <트랜스포머 시리즈>, <6 언더 그라운드>등, 거침없는 액션 영화들을 남긴 ‘마이클 베이’감독의 신작 <앰뷸런스>가 개봉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매 작품마다 특유의 쫀득하고 타격감 있는 액션을 보여주며 “제대로 폭파하는 감독”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무려 5편이나 끌고 가며 일각에선 ‘개연성도 폭파시킨 영화’라는 아쉬운 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앰뷸런스>에 우당탕탕 때려 부수는 액션을 제외하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내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비하면 확실히 개연성과 폭발. 두 가지를 모두 잡은 느낌이랄까. CG는 S**t이라며 어지간한 건 직접 다 폭발시키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뚝심과 최근 그의 작품에서 찾기 힘들었던 감정선까지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팬데믹으로 인해 예정되었던 차기작 촬영이 미뤄지자 소소하게 찍어보자(폭파시켜보자)는 느낌으로 유니버셜 픽처스의 회장에게 새로운 영화 제작에 대해 어필을 했고, <앰뷸런스>의 연출을 맡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트랜스포머에 비해선 약간 힘을 덜 주고 찍은, 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 담긴 액션들은 결코 소소하지 않다. 드론이 추가되며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게 된 키메리의 움직임과 제이크 질렌할의 아슬아슬 은은하게 돌아있는 눈빛, “언제 터지나” 기다릴 것 없이 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전개와 약간의 서사까지 더해지니 콕 집을 큰 단점이 없다.
영화관에서 봐야 할 영화
그냥 하는 말, 농담이 아니라 <앰뷸런스>는 영화관에서 만나봐야 할 영화다. 시원하게 터져나가는 액션을 극장의 화면과 스피커로 만나보는 것만큼 스트레스 풀기에 좋은 것이 또 없다. 개봉 전에는 IMAX와 돌비 외 특별 포맷 상영이 없는 게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니 왜 이 영화가 4DX 포맷이 없는지 알 것 같았다. 사족 전부 제외하고 최소한의 설명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영화이기에 거의 2시간 내내 카 체이싱 장면이 이어지는데, 2시간 내내 모션 체어에 앉아 이리저리 후두려 맞을 생각을 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리고 굳이 4DX가 아니더라도 화면 자체가 입체적이고 어질어질한 느낌이 있기도 하다. 딱 ‘마이클 베이’다운 액션신들이 가득하기에 이건 기회가 될 때, 극장에서 봐줘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너무 진지하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막힘없이, 멈추지 않는 질주
이야기의 구조는 보통 기승전결로 나뉜다. 2시간 정도 되는 영화라면 30분 정도는 배경 설명을 하고, 30분이 넘어갈 때쯤에 제대로 된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다. 근데 <앰뷸런스>는 바로 은행 털기! 카 체이싱!!을 외치며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본론으로 들어간다. “요즘 누가 은행을 털어요?”라며 영화의 소재가 식상하다고 툴툴댈 틈도 없이 일단 냅다 달린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몇 번이고 대사로 강조한다. “멈추지 않아.”라고. 정말 이 영화는 멈추지 않고 달린다. 긴 추격전 중간에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웃음 포인트를 넣어뒀으니 다행이지, 그마저도 없었으면 어깨가 뻐근했을지도.
LA 곳곳을 터트리는 마이클 베이
은행 강도는 빌드업이었을 뿐, 이 영화에서 실제로 보여주고자 하는 건 LA 곳곳을 훑는 앰뷸런스의 모습이다. 처음엔 추격전에 최적화되었다고 보긴 어려운 커다랗고 눈에 띄는 앰뷸런스를 추격전에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했다. 영화는 이 외적인 부분을 포기하고 앰뷸런스 안에 탄 사람을 볼모로 잡아 간단하게 끝낼 수 없는 긴 추격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혈관처럼 뻗어있는 LA의 도로, 골목을 달리며 온갖 것들을 터트리고 부수고 밀어버린다. 이 정도면 마이클 베이 감독이 LA를 좋아해서 이 영화를 연출한 건지, LA를 싫어해서 폭파시키고 싶어 이 영화를 연출한 건지 헷갈릴 정도다.
제이크 질렌할의 두 가지 눈빛
<앰뷸런스>를 무조건 봐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제이크 질렌할’때문에.
이 영화의 주연은 세명이다. 형 대니를 맡은 제이크 질렌할, 동생 윌을 맡은 아히아 압둘 마틴 2세, 구급 대원 캠 역할을 맡은 에이사 곤잘레스. 제이크 질렌할을 제외한 두 배우 역시 최근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인물들이지만, 극의 전체적인 텐션과 분위기를 책임지는 건 당연하게도 ‘제이크 질렌할’과 그의 캐릭터 대니다.
동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형 대니와 마지막으로 큰 한탕을 노리는 미친 은행 강도, 두 정체성 사이를 재빠르게 넘나드는 그의 연기에 이번에도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특히 제이크 질렌할의 큰 눈은 멜로나 서정적인 연기에도 잘 맞지만 광인 연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 같다. 그가 갑작스레 폭발해 소리를 지르거나 반대로 비정상적으로 침착한 모습을 보일 때면 자연스레 “이 캐릭터 정말 미친놈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트 크롤러>에서 제대로된 잔잔한 미친 연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언젠가 <아메리칸 사이코>처럼 진짜 본격적이고 폭발적인 광인 연기를 보여주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은근 괜찮게 다가오는 서사
앞에도 언급했듯 <앰뷸런스>는 개연성까지 부숴버린 영화가 아니다. 이야기는 대니와 윌 형제의 뜨끈한 형제애로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위선과 갈등, 진심이 뒤섞이며 누구의 말을 따르는 게 맞을지,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누군가의 선택에 의문이 생기는 부분도 있지만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서사였다고 생각한다.
거침없이 본론부터 / 이야기의 배경
영화의 주인공인 동생 윌은 해병대에 지원해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남은 건 공로 훈장뿐이고 연금도, 제대로 된 의료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윌은 아내 에이미의 수술을 위해 보험금을 받으려 하지만 임상 수술이란 이유로 지원을 거절당한다. 일자리도 구해지지 않고 도저히 돈 나올 구석이 없자 그는 마지막 보루로 형 대니에게 찾아간다. 윌은 백인인 대니의 집안에서 입양아로 자랐다. 대니는 윌을 ‘진짜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진심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둘은 끈끈한 우애를 유지해왔지만 아버지와 얽힌 상황 때문에 갈라져 살게 된다.
윌은 돈이 필요했고, 대니는 때마침 큰돈을 벌 마지막 은행 강도를 계획한다. 계획 시작까지 단 5분 만이 남은 상황,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대니의 말들이 몰아치고 “가족을 위해서!”라는 커다란 이유에 윌은 차에 함께 올라탄다. 이런 상황에서 휩쓸리지 않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갈 인물이 몇이나 있을까. <앰뷸런스>는 시작부터 강하고 빠르게 보는 이들을 휘어잡으며 시원하게 전개된다. 가장 거침없다고 느꼈던 건 여러 명으로 시작했던 강도 동료들이 한순간에 떨어져 나갈 때였다. 버켄스탁을 신은 동료와 차를 잘못 댄 동료, 윌을 배척한 동료 등등… 이름조차 거의 기억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주변인들을 밀어버릴 줄은 몰랐다. 그 덕분에 딱 추격전에 필요한 인물만 남게 되고, 가벼워진 몸체로 거침없는 액션이 시작된다.
추격전 중간에 삽입되는 잠깐의 쉬는 시간
은행을 벗어난 순간부터 이들의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숨차게 달리는 와중에도 대니의 입과 주변 경찰들을 통해 아주 잠깐의 쉬는 시간을 선사한다. “진정하고 냉정을 찾아”, “아타리 게임기처럼 생겨서 헷갈린단 말이야!”, “이거 캐시미어라고!”라고 윽박지르는 대니의 대사와 플라밍고, 반장의 커다란 개 나이트로, 80년대 음악으로 찾는 잠깐의 힐링 등등… 옅은 웃음이 피식 새어나오는 순간들이 꽤 많다. 여기서 더 재밌었던 건 영화에 나온 그 커다란 개가 마이클 베이 감독의 반려견이라는 사실이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해가 질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반려견이 차에 타주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마치 반려견의 눈이 “나보고 이 작은 차에 타라는 거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근데 나였어도 그 몸으로 좁은 차에는… 타기 싫었을 것 같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위선과 갈등이 교차하는 앰뷸런스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듯 보이지만 앰뷸런스 안에선 별일이 다 펼쳐진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구급 대원 캠, 형과 예전 같은 삶의 선택지에서 갈등하고 있는 윌, 동생의 탈출과 돈을 모두 챙기고 싶었던 대니. 윌과 대니는 함께 멈추지 않는 질주를 하기도 하고, 인질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반쪽자리 선의 앞에서 갈등하기도 한다. 대니는 끝까지 형으로서 동생을 감싸고, 윌은 끝내 이해하기 힘든 선택을 한다.
추격전의 끝에서 되새기는 과거의 마음가짐 / 결말 해석
형으로서 보여준 모습과 엔딩 때문인지 희한하게도 대니가 ‘미친 은행 강도’라기보단 왠지 윌과 캠의 초심 찾기를 위한 희생양으로 보이기도 했다. 윌은 오늘 아침 은행 강도가 됐고, 캠은 오랜 구급 대원 생활에 지친 것인지 사건 현장을 떠나자마자 환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얼굴을 지워버리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그는 ‘가장 같이 일하기 싫은’ 구급 대원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추격전의 끝자락에서 다시 정의로운 마음가짐과 따뜻한 구급 대원의 시선을 되찾게 된다. 잔인한 은행 강도였던 양아버지를 떠나 자원입대를 결정한 정의로운 과거의 윌과 사람들을 구하고 그들의 손을 잡는 구급 대원 캠의 모습을 말이다. 윌은 대니에게 총을 겨누면서 은행 강도의 피를 이어받은 형으로부터 인질 두 사람을 구해준 사람이 되었고 아내를 위한 돈도 챙기게 된다. 그리고 캠은 자신이 구해준 아이의 병실을 찾아가 조용히 손을 잡는다.
두 사람에겐 이 추격전이 각성의 계기이자 해피엔딩이 되었지만 멀리서 지켜본 이의 시선으로는 대니만 애잔하게 되었다. 대니가 죽는 순간에 지나갔던 어린 시절의 보안관 놀이 장면도 어째 아련함보단 약간의 어이없음을 불러온다. 그럴 거면 쏘지 말든가…!
아니 어쩌면 이 장면을 통해 대니를 나쁘기만 한건 아닌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동생에게 무조건적으로 져주던 멋진 형이었던 그의 모습을 보여주며 은행 강도를 하다가 죽은 게 아닌 끝까지 동생을 도와주려다 유명을 달리한 형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려고 한걸 지도.
완벽한 해피엔딩이 되기 어려운 시작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이 형제를 응원하고 있었기에 꽉 닫힌 해피엔딩이 되길 바랐다. 엔딩이 조금 아쉬운 반쪽짜리 해피엔딩이긴 했지만 이만하면 마무리까지 괜찮게 맺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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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와 사랑에 빠진 남자, 그에게 빠진 세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보고 띵작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메시지의 전달과 음악의 결합이 굉장히 탁월했고, 오스카 피터슨의 생애와 재즈에 대해 더욱 깊이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시놉시스
재즈 아이콘이자 작곡가였던 오스카 피터슨의 사운드와 스타덤, 환상적인 연주를 통해 아티스트의 생애와 그가 남긴 유산을 탐구한 다큐 콘서트 <오스타 피터슨: 블랙 + 화이트>. 명실공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은 피카소나 모차르트처럼 독특한 천재성을 지닌 것은 물론, 거침없는 연주와 개성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천재 재즈 뮤지션의 70년 역사를 담은 영화는 신동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그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완성된 트리오 시절의 녹음, 유명 스타들과의 컬래버레이션, 전 세계를 누비며 펼친 솔로 공연뿐 아니라 미국 투어 시절 겪은 인종차별 속에서 그가 보인 불굴의 의지, 그리고 그가 남긴 역사적인 곡 ‘자유를 위한 찬가’(Hymn to Freedom)까지 담고 있다.
* 해당 내용은 전주국제영화제 보도자료집을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음반을 사고 싶게 만들다
취미 중 하나는 집에서 LP를 듣는 것이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LP를 들을 때 특히 아무일 없는 주말에 그러고 있으면 편안해져서 자주 듣는 편이다. 그리고 LP로 들었을 때 가장 좋았던 장르는 재즈였다. 그렇다고 재즈에 대해서 잘 알지도,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어서, 이번 영화를 보면서 재즈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스카 피터슨의 이야기를 접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예매를 했던 작품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재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스카 피터슨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그의 곡이 얼마나 훌륭한지 잘 담아내고 있는 영화였다. 오스카 피터슨이 재즈씬에 데뷔한 후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의 업적과 곡들을 순차적으로 담아내고 있어서그 연대기와 흐름을 잘 알 수 있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피터슨의 명반을 구매해봐? 이러면서 바이닐 검색을 엄청 했던 것 같다.
곡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접하다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라이브 밴드로 그의 곡을 연주하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다. 밴드 장면 전후로 이 곡이 만들어지고, 이 곡을 가지고 투어를 다닐 때의 피터슨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곡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물론 피터슨의 곡을 조금 더 듣고 싶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건 솔직히 음원이나 앨범에서 찾아 들을 수 있기에 밴드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 음악은 점차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고, 피터슨의 이야기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당시 시대상황을 알려주는 인터뷰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접목되어서 솔직히 좋았다. 이러한 이야기가 끝난 뒤 다시 밴드음악이 메인으로 등장하면서 그 음악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된 상태에서 노래를 듣다보니 그 곡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고비를 뛰어 넘은 사람
오스카 피터슨이 언제나 전성기를 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칭송하기에 은퇴하는 그 날까지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사람이라고 지레 짐작을 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뛰어났기에 전성기 시절보다 떨어진 기량임에도 압도적이긴 했지만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더 발전적인 연주를 보여준 오스카 피터슨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예체능계에서는 기량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은퇴를 생각하고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피터슨의 경우에는 뇌졸증이 와 왼쪽 마비가 오면서 왼손의 기량이 현격하게 떨어졌음에도 이 과정에서 은퇴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피터슨은 기존에 트리오 편성을 쿼터로 바꾸면서 자신의 떨어진 왼손 기량을 받춰줄 기타리스트를 영입해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간다. 전성기 시절의 피터슨은 왼손으로 베이스를 다 만들었기에 다른 악기의 반주가 없이도 독주가 가능했었다. 이 지점이 다른 피아니스트와의 차별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비 이후 기량이 떨어지자 그만둘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쿼터에 도전함으로써 더 풍부하면서도 기존과는 다른 음악을 만들어내고 연주했다는 그 도전정신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간만에 음악다큐를 보고 그 명반을 찾아 들으면서 영화관을 기분 좋게 나왔던 영화 <오스카 피터슨: 블랙 + 화이트>. 재즈에 관심이 있으신 사람이라면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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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행세계로 가니 모든게 바뀐 처지가 된 베스트셀러 작가의 이야기?
시놉시스
칸바야시 리쿠는 따분한 대학 교양 강의가 듣기 싫어서 창룡전기라는 자신의 소설 세계관을 구성해서 습작 노트에 적는다. 하지만 교양 교수에게 그 습작 노트를 뺐기게 되고 밤에 자신의 습작 노트를 되찾으려고 몰래 교수의 방에서 가져오지만 경비에게 들키고 만다. 도망가는 사이에 학교 강당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마에조노 미나미라는 여자 밴드부 보컬의 노래를 듣는다.
둘은 그 강당에서 우연히 만나 캠퍼스 커플이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칸바야시 리쿠는 창룡전기 시리즈로 대박을 터뜨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난 후 마에조노 미나미에게 소홀히 대했다. 창룡전기 완결 부분을 완성하고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달에 이상현상이 뜨는 것을 보고 잠이 든 후에 모든게 변해있었다. 자신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일반 출판사 직원일뿐 자신의 아내인 마에조노 미나미는 슈퍼 스타가 되어있었는데...
평행세계에서는 모든게 달라졌다?
마에조노 미나미는 평행세계에서는 성공한 싱어송라이터이자 슈퍼 스타였고 칸뱌야시 리쿠는 자신이 바뀐 처지에 대해 한탄을 하다가 원래 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먼저 그녀에게 사생팬으로 보이는 척 다가가 그녀가 좋아했던 에그타르트를 준비하거나 그쪽 세계의 카지 선배에게 부탁해서 부단히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력은 실패하지 않았다. 몇 번의 실패는 있었지만 그쪽 세계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칸바야시 리쿠에게 주어진 과제는 출판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그 노력으로 그쪽 세계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를 발굴하는 노력을 하는데 성공한다.
후회는 지나봐야 소용없는 걸까?
그 때 지나간 인연에게 더 잘할 걸 내가 더 노력할 걸 해도 달라지지 않는게 있나보다. 이 영화는 평행세계라는 설정을 빌려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잘나갔으나 자신을 사랑했던 여자에게 정작 소홀히 했던 후회에 대한 반성의 이야기라면 현실은 자신을 떠난 연인이나 헤어진 사람들에게 다시는 잘해줄수도 다시 전처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그렇기에 칸바야시 리쿠는 자신이 쓴 창룡전기의 주인공인 갤리오스의 동반자인 쉐도우를 자신이 사랑했던 마에조노 미나미를 투영시켜 만들었지만 갤리오스는 동반자를 잃은 채 홀로 떠난다고 결말을 정해버렸다.
쉐도우는 죽었지만 갤리오스는 자신의 앞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로 정한다. 창룡전기의 결말은 이렇게 맞이했고 칸뱌야시 리쿠 또한 자신이 쓴 완결작을 고치지 않았다. 그런데 평행세계로 온 후에 그는 자신의 진짜 세계로 돌아가 사랑하는 인연들에게 후회 없이 잘해주려고 소설의 결말을 고치기로 마음먹는다.
그간의 사건들이 수없이 있었으나 주인공은 좌절하지 않는다는 공식을 버리지 않는게 영화인 걸까? 갤리오스도 칸뱌야시 리쿠도 결국은 해내고야 만다는 그런 사명에 자신의 모든 걸 던진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필자도 연인은 아니지만 소중한 인연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그 사람들을 떠나가기 전에 잘해주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칸뱌야시 리쿠도 마에조노 미나미도 각각의 세계에서 전세가 바뀌었듯 지금의 인연도 어떤 세계에서는 다른 위치에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창룡전기를 완성하기 전에 마에조노 미니미에게 첫번째 독자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한 건 칸뱌야시 리쿠였다.
그는 그 때를 모르고 거만해져서 다른 세계로 가 모든게 바뀌어 후회를 하지만 결국 진정한 건 그의 진심은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달라져도 그때와 변치않아야 한다는 것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