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13 11:11:20
3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존 윅 5>, 실제로 제작되나

최근 키아누 리브스가 <존 윅 5>에 대해 “그 캐릭터는 죽었다.”라고 속편에 대해 답변한 것과 상반되게 제작사 라이온스게이트는 현재 <존 윅 5>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라이온스게이트는 <더 크로우>, <보더랜드>, <메갈로폴리스> 등 대형 흥행 실패를 겪어, 북미에서만 2억 달러를 벌어들였던 <존 윅> 시리즈(<존 윅 4>)를 제작하지 않기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한편, 라이온스게이트는 현재 매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HBO/HBO Max 오리지널, 쿠팡플레이에서 본다

<석세션>, <하우스 오브 드래곤> 등 HBO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다시 국내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쿠팡플레이가 국내 독점 제공으로, 오는 3월 21일 금요일부터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쿠팡플레이는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와 콘텐츠 파트너십을 맺어 HBO/HBO Max 오리지널 콘텐츠와 워너 브라더스 픽쳐스의 콘텐츠들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세이디 싱크, <스파이더맨 4> 출연 확정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로 큰 인기를 얻은 배우 세이디 싱크가 <스파이더맨 4> 출연을 확정 지었습니다.
톰 홀랜드와 함께 주연을 맡은 세이디 싱크가 <엑스맨> 시리즈의 대표적인 캐릭터 ‘진 그레이’를 연기할 것이라는 가설에 힘이 실리고 있는 가운데, 과연 그가 맡게 될 캐릭터는 무엇일지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한편, 이번 작품의 연출은 <샹치>의 감독 ‘데스틴 크리턴’이 맡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애프터 양> 코고나다 신작, 북미 개봉 연기

전작 <애프터 양>으로 호평받았던 코고나다 감독의 신작 <A Big Bold Beautiful Journey>가 북미 개봉일을 연기했습니다.
애초 2025년 5월 9일 개봉 예정으로 알려졌지만, 9월 19일로 개봉일이 연기되었습니다.
마고 로비와 콜린 파렐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의 자세한 줄거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결혼식에서 만난 낯선 두 사람이 GPS에 의존한 여행을 함께 떠나는 이야기라고 알려졌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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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르>, <할로우맨>, <블랙북> 폴 버호벤 감독의 화제작 <베네데타> 영화리뷰
작품명 : 베네데타
감독 : 폴 버호벤
출연 : 비르지니 에피라, 샬롯 램플링 등
어린 베네데타는 부모님과 함께 수녀원에 간다. 평생을 주님의 신부로 살기로 결심한 베네데타는 올곧은 믿음과 자신감을 지녔다.
왠지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만 같은 원장 수녀를 비롯해 수녀원의 냉랭한 분위기가 조금 섬뜩하기는 하지만, 베네데타는 열심히 기도해 이곳에서 잘 적응한다.
성인이 된 베네데타는 어느 날,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쫓기다 수녀원으로 달려 들어온 바르톨로메아라는 여성과 마주친다.
바르톨로메아는 아버지의 학대와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녀가 되고자 한다. 베네데타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정착한 바르톨로메아는 모범적인 수녀 베네데타를 은밀하게 자극한다.
서로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낀 둘은 당시의 온건한 가톨릭에서 금기시된 사랑을 시작한다.
한편 베네데타는 뜻 모를 환각과 환시에 시달리게 된다. 꿈속에서 반복적으로 예수님의 형상을 보게 되는가 하면, 다른 수녀들과 함께 미사를 위해 찬송가를 합창할 때도 별안간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점차 베네데타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성흔을 얻게 되고, 신부와 수녀들은 이 성흔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논박하면서, 베네데타는 수녀원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관객 또한 베네데타의 불가해한 경험들을 마주하는 동시에, 평생을 섬겨온 성직자로서와 숨겨진 사랑의 행위자로서의 그의 삶에서 어떤 곳에 방점을 두고 바라봐야 할지 의문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로써 <베네데타>는 기록되지 못하고 발견된 적 없었던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게 되는 영화가 된다.
<베네데타>는 <토탈 리콜> <할로우맨> <엘르> 등을 연출한 폴 버호벤 감독의 신작이다.
제74회 칸영화제에서 소개된 후 여러 논란이 된 바 있을 만큼 주제와 묘사에 있어 강렬한 폴 버호벤 감독의 스타일이 여일하게 이어진다.
두 여성의 성애는 물론이고 고문이나 자학 등 폴 버호벤 감독이 오랫동안 탐구해온 말초적이면서도 가학, 피학적인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감독이 여러 번 언급한 대로 <베네데타>는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
모두가 부정하고 싶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베네데타>는 근본주의적 기독교를 비롯해 가부장중심적이면서 이성애중심적인 세계의 관습에 전복적으로 대항하는 영화이다.
폴 버호벤은 이전에도 폭력적인 세계에서 여성이 느끼는 경험들을 극한으로 치달아 보여준 바 있다.
<블랙북>의 레이첼(캐리스 벤허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유대인으로서 겪는 엄혹하고 살벌한 시대의 풍경을 홀로 견디는 여성이며,
<엘르>의 미셸(이자벨 위페르)은 어느 날 정체 모를 남성의 침입에 성폭력 피해자가 되는 동시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살해 전력으로 살인자의 딸이라는 눈초리를 얻으며 살아온 여성이었다.
물론 폴 버호벤은 이들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피해자의 위치에 놓거나 또는 정확한 답을 준비해두기보다는 그들이 겪어오고 또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거의 정답이 없다는 듯 우리의 눈앞에 실행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
그래서 폴 버호벤의 영화가 더욱 입체적이고 풍부하면서 때로는 논란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영화<엘르>
영화<블랙북>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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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틴 스튜어트 버젼의 다이애나는? 영화 <스펜서>
- 스펜서 (SPENCER, 2021)
장르 : 영국·미국, 드라마 │ 감독 : 파블로 라라인
출연 : 크리스틴 스튜어트(다이애나), 잭 파딩(찰스왕세자), 샐리 호킨스(매기) 외
등급 12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6분
이 영화의 제목은 왜 스펜서인가
금발에 파란 눈, 훤칠한 키에 감각적인 패션, 수많은 파파라치. 엄숙함이 지배하는 영국 왕실에서 헐리웃 스타처럼 반짝이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나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사람들의 입에는 지금도 다이애나가 오르내린다. 패션의 아이콘으로, 영국 왕실의 이단아로, 그리고 만인이 사랑해마지않을 친숙하고 소탈한 성격의 한 여인으로. 그런 다이애나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연기했다기에, 한 걸음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다이애나의 일대기를 다룰 줄 알았던 영화는, 뜬금없이 크리스마스이브에서 시작한다. 이미 두 아들을 낳아 길렀고, 남편의 오랜 외도를 알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하는 시댁 식구들을 견디며 행복을 연기해야 하는 시점의 다이애나다. 동화 같았던 세기의 결혼식으로부터 너무나 멀찌감치 떨어진 시점을 다루고 있는 것에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제목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아니라 ‘스펜서’니까. 왕실의 며느리이기 이전에 고유한 인간이었을 다이애나 스펜서를 우선적으로 조명해준 덕에, 그녀가 겪었을 고통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었다.
공주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고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날이 크리스마스였던 걸까. 영화는,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 날조차 살얼음 같은 불행을 걷고 있는 다이애나를 비춘다. 남편과 싸우고, 자해를 하고, 변기에 몸을 구부려 음식물을 토해낸다. 그리고는 온 가족이 모여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찍는다. 국민들에게 따뜻한 왕실의 크리스마스를 보여줘야 하니 그에 걸맞게 몸무게도 1.4kg 찌워야 한단다. 왕세자비의 삶은 그런 것이었다.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반복의 일상. 정해진 옷을 입고, 몸무게를 통제받고, 마음대로 궁전 밖을 나가거나 개인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삶. 그 억압에 짓눌린 다이애나의 크리스마스는 당연히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앤 불린’의 귀신과도 마주한다. 오명을 뒤집어쓰고 목이 잘려 처형당한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그 앤 불린 말이다. 그녀는 왕실의 일부이면서도 영원히 왕실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자신과, 왕과 결혼했지만 결국 왕에 의해 처형된 앤 불린을 동일시했던 모양이다. 앤 불린의 환영을 보기도, 자기 자신이 앤 불린이 되기도 하면서 영화는 그야말로 미치기 일보 직전의 다이애나를 보여준다. 불안이 극에 달했던 고작 3일간의 시간을 비추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촘촘한 줄거리가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 두서없고 심란한 내면 상태를 편집증적으로 나열하는 방식 덕분에, 관객은 다이애나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궁전 밖에 있음을
많은 이들이 생각한다. 왕자랑 결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재벌가에 시집가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릴까. 하지만 매일매일 값비싼 의상에 둘러싸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그야말로 단편적인 이미지에 불과할 것이다. 영화 말미, 다이애나는 자신을 옥죄던 비싸고 아름다운 옷 대신 야구모자를 뒤집어쓰고 아이들을 차에 태워 KFC로 향했다. 궁전에는 일반 서민들은 맛보지도 못할 오케스트라와 최고급 요리가 즐비하지만, 굳이 다이애나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귀가 터지도록 떼창하는 대중가요나 KFC 치킨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것. 언제든 원하는 복장으로 원하는 음식을 먹으며 마음껏 넷플릭스를 봐도 되는 우리들의 이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고 행복이라는 것 아닐까.
우리가 사랑했던 건 스펜서
왕족들은, 언제나 왕실의 위엄을 드높이며 그 성벽을 굳건히 유지해왔다. 다이애나를 며느리로 들였던 영국의 윈저 가문 역시 자신들의 이미지를 엄격히 통제하며 그 위엄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건 더는 왕이 필요치 않은 이 자유평등의 시대에 걸맞는 방식이 아니었다. 다이애나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사랑받는 이유는, 단연 다이애나가 그 틀을 깨고 불행한 왕세자비에서 걸어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럼없이 국민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에이즈 환자들의 손을 잡거나 노숙인을 찾는 등 친근하고 자주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테다.
<실제 다이애나와 두 왕자들>
그리고 이는 다이애나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두 왕자를 통해 묻어나는 중이다. 어머니의 발취를 따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운동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는 왕자들의 발자취를 보노라면, 다이애나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두 왕자에게도 아마, 경호원도 대동하지 않고 켄터키 치킨을 먹던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기억이 아니었을지.
스펜서의, 스펜서에 의한, 스펜서를 위한
그녀가 원하던 방식대로 기억해주고 싶은 바람을 담아서인지, 영화는 샤넬백에 펌프스를 신고 있던 불안한 다이애나에서 시작해, 야구모자에 점퍼를 입은 채 웃는 다이애나로 마무리된다. 그녀는 너무나 고고해서 깨질 것 같은 존재가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존재였다. 또, 행복해 보이고 수동적인 동화 속 여성상을 벗어나 자유를 향해 소신 있게 살아간 한 여성이기도 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건 왕세자비 타이틀과는 무관한 그녀의 인품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바람대로 그녀를 영원히 ‘스펜서’로 기억해주고 싶다.
글쓰는 우두미
인스타그램 @woodumi
브런치 https://brunch.co.kr/@deum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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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의 속도로 걷다 보면
스물한 살, 휴학계를 내고 삼십만 원 정도 하는 자전거를 샀다. 다이소에서 대충 물건을 사들고 나와 어설프게 장비를 꾸려 길을 떠났다. 5개월 정도 이어진 전국 자전거 여행의 야심 찬 출발은 이렇게 허술했다. 6월 말, 장마의 시작과 함께 30킬로 가까운 짐을 이고 바퀴를 굴릴 수 있었던 것은 스무 살의 패기와 에너지로만 가능했던 무모한 도전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내리쬐는 태양, 올라오는 아지랑이에 수십 번 돌아갈까 고민하며 느릿느릿 무거운 공기를 뚫고 작은 마을을 지나갈 때였다. 저기 멀리서 어떤 사람이 걸어오길래 동네 분인가 생각하며 무심코 지나가는데, 서서히 한 청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검게 그을린 팔다리, 흰 민소매를 입고 씩씩하게 걷는 청년의 까만 백팩 위에 ‘국토대장정’이라고 쓰인 빨간 깃발이 작게 휘날리고 있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엄지를 치켜세우자, 그 청년도 밝게 웃으며 ‘엄지척’으로 인사를 되돌려주었다. 알 수 없는 기쁜 마음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한동안 서로의 인사를 되새기며 다음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발을 굴렀다.
하루에 길게는 120킬로 이상까지 자전거를 타고, 도저히 발이 떼어지지 않아 엉엉 울면서 억지로 끌기도 했던 날들. 폭우를 뚫고 초등학교 운동장 정자에서, 공원 화장실에서 말 그대로 지붕만 있으면 짐을 풀고 하룻밤을 보내던 당시의 기억들. 그때의 영상들은 희미해지지도 않고 여전히 나의 몸 어딘가 남아, 장마가 시작되면 다시금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그럴 때면 그 청년의 하얀 건치 미소가 함께 떠오른다. 자전거에 의탁해 그의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나아갔겠지만 나는 항상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짐에 휘청거렸기에, 그때 그 모습이 살짝은 부러웠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그 청년도 나를 보면 그랬겠지..) 악명 높은 한계령과 미시령을 넘으며 어느 순간 무거운 짐을 하나둘 덜어내고, 제주도에 도착해서 동고동락한 자전거를 내려놓으면서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며 걸을 수 있었다. 목적지까지 다 오고 나서야, 나만의 속도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 <행복의 속도>는 잠시 10년 전의 사진을 들춰보도록 한다. 자전거의 속도로 담지 못하는 절경이 아까워 멈춰 서야 했던 그때의 나처럼, 감독 역시 자신이 담아낼 장소가 숨 쉬는 매 순간을 아쉬워한 듯하다. 그곳을 가장 느린 속도로 걷는 이의 눈으로 ‘오제 국립공원’의 사계를 담은 것을 보면.
이곳을 매일같이 걷는 이들은 봇카 <ぼっか>라고 불린다. 생소한 일본어 직명에 궁금해져 사전을 찾아보니, ‘걸음 보(歩)’에 ‘멜 하(荷)’자를 써, 도보로 짐을 지고 운반하는 사람, 특히 일본 중부 산악 지대의 산장에 물자를 운반하는 사람을 지칭한다고 한다. 이들은 많게는 70킬로 이상의 짐을 메고 해발 1500m에 위치한 372㎢ 달하는 자연공원의 유일한 통행로인 목도(木道)를 지나 자신들을 손꼽아 기다릴 산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일찌감치 겨울이 찾아오고 또 느리게 물러가는 오제의 설원. 그 위에 가장 먼저 발자국을 남기는 이도, 또 등 뒤로 잠시 멈춰있을 그곳에 안녕을 전하는 이도 봇카들이다. 그들의 삶의 주기는 다채롭게 변하며 생명력을 뿜어내는 오제의 숨결과 함께 일궈진다.
이곳을 매일같이 걷는 이들은 봇카 <ぼっか>라고 불린다. 생소한 일본어 직명에 궁금해져 사전을 찾아보니, ‘걸음 보(歩)’에 ‘멜 하(荷)’자를 써, 도보로 짐을 지고 운반하는 사람, 특히 일본 중부 산악 지대의 산장에 물자를 운반하는 사람을 지칭한다고 한다. 이들은 많게는 70킬로 이상의 짐을 메고 해발 1500m에 위치한 372㎢ 달하는 자연공원의 유일한 통행로인 목도(木道)를 지나 자신들을 손꼽아 기다릴 산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일찌감치 겨울이 찾아오고 또 느리게 물러가는 오제의 설원. 그 위에 가장 먼저 발자국을 남기는 이도, 또 등 뒤로 잠시 멈춰있을 그곳에 안녕을 전하는 이도 봇카들이다. 그들의 삶의 주기는 다채롭게 변하며 생명력을 뿜어내는 오제의 숨결과 함께 일궈진다.
이곳을 매일같이 걷는 이들은 봇카 <ぼっか>라고 불린다. 생소한 일본어 직명에 궁금해져 사전을 찾아보니, ‘걸음 보(歩)’에 ‘멜 하(荷)’자를 써, 도보로 짐을 지고 운반하는 사람, 특히 일본 중부 산악 지대의 산장에 물자를 운반하는 사람을 지칭한다고 한다. 이들은 많게는 70킬로 이상의 짐을 메고 해발 1500m에 위치한 372㎢ 달하는 자연공원의 유일한 통행로인 목도(木道)를 지나 자신들을 손꼽아 기다릴 산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일찌감치 겨울이 찾아오고 또 느리게 물러가는 오제의 설원. 그 위에 가장 먼저 발자국을 남기는 이도, 또 등 뒤로 잠시 멈춰있을 그곳에 안녕을 전하는 이도 봇카들이다. 그들의 삶의 주기는 다채롭게 변하며 생명력을 뿜어내는 오제의 숨결과 함께 일궈진다.
오제를 향한 사심이 가득 담긴 4k 영상을 넋 놓고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감독이 왜 봇카의 속도로 오제를 바라보고자 했는지 느껴진다. 감독은 봇카의 삶을 통해 숭고한 노동의 가치라는 다소 거창한 의미를 강조하지 않는다. 이제는 이곳의 베테랑이 된 ‘이가라시’가 15년 전 작은 술집에서 통기타를 치며 자신을 소개하는 홈비디오로 오프닝 시퀀스를 대신하며, 감독은 그들의 삶이 그저 하루하루를 ‘쓸모 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넌지시 일러둔다.
봇카들은 10년 이상을 걸어온 길이라도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차곡차곡 걸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며 짐을 나른다. 자신의 속도로 좁은 목도를 천천히 걸어가는 이들의 하루하루가 쌓이는 속도로 오제는 변화한다. 그렇게 그 매일의 -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무겁고 지루한 일상일지라도 - 변화를 체득하며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것. 만약 영화를 보며 그들의 삶이 숭고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단순히 그들이 고된 육체노동을 한다거나, 위용을 뽐내며 순식간에 몇 배 되는 짐을 옮겨버리는 헬기가 곧 그들의 자리를 대체한다는 불안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켜내서가 아니라, 바로 모든 변화를 음미하며 "단 한순간도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게 끝에 달려 있는 '이가라시'의 카메라에는 그의 걸음으로만 담아낼 수 있는 화원의 일기가 쓰여있다. 계절이 순환하고 오제의 수호신인 할미새가 어느덧 가까이에서 소식을 전한다. 앞으로 커나갈 아이들과 생계를 걱정하면서도 다시 지게를 지고 걸어가는 그들의 발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자면, 오제의 목도를 그 속도로 나란히 걷고 싶어 진다. 글로는 다 담아내지 못할 그곳을 당신도 꼭 함께하길 바라며.
PS)
인도와 네팔 여행에서 만난 봇카들의 속도도 느껴보시길 바란다. 먼지 쌓인 외장하드의 소리까지 꺼내 들게 만드는 <행복의 속도>의 영상미를 더욱 확인하고 싶어질 것이다. :D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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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처음 태동한 개념이 몰고온 혼란, 그리고 담담하게 시대를 견딘 사람에 대하여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에서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영화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 시계공장과 아나키스트의 관계가 어떠할지, 그리고 무정부주의가의 모습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뱅크시 전시회를 보면서 무정부주의라는 사상과 예술의 조합에 굉장히 인상을 받은 터라 영화와 함께 결합한 무정부주의의 이야기는 어떨지 기대가 됐다. 영화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는 19세기,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시계를 만드는 스위스 한 마을은 변화를 겪는다. 이 마을에서 조용히 일어난 무정부주의 운동 지지 현장에서 한 러시아인 여행자와 시계 공장 노동자가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 이 이후로는 영화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인상적인 인물의 구도와 배치
영화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에서 궁금했던 것은 인물이 왜 자꾸 가장자리에 위치하는 것일까? 였다. 커다란 나무나 지붕을 가운데에 배치하고 인물들이 화면 끝에 걸쳐 있는 통에 무의식적으로 내가 몸을 움직이며 조금 더 시선을 옮기면 저 인물들을 더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었다.
그 이유는 영화 GV에서 풀렸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당시 무정부주의자들은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었고, 이러한 주변부적인 특성을 무정부주의를 따르는 인물들을 시각적으로 화면의 가장자리에 놓이게끔 만들면서 중심적인 세력이 아니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이렇게 비가시적인 개념들도 영화적 장치를 통해서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감독의 연출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영화 음악 없이 자연의 소리로 채워넣다
영화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ASMR을 틀어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째각째각 돌아가는 시계 소리와 걸음 소리, 그리고 새소리 등 일상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을 조금 더 부각시켜 놓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소리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여서 영화음악의 부재에 대해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영화 음악이 단 한 차례도 쓰이지 않고, 일상의 백색소음만 활용했다는 것에 굉장히 신선했던 작품이었다.
영화 음악이라는 것이 영화 속에서 굉장히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었고, 영화 음악이 없다면 영화에 대한 집중도와 몰입감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편견을 완벽하게 깨준 작품이었다. 무정부주의자들의 합창을 제외하고는 그저 일상의 소리만으로도 영화 자체의 집중도를 올리고, 청각적 요소가 전혀 비어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19세기 시간의 힘에 대해
이 작품은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시간이라는 개념이 시작되면서 이를 통해 권력의 힘을 잡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언뜻언뜻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처럼 표준시가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스위스에서는 공장시간, 지역시간, 전보시간, 시청시간 등 총 4개의 시간이 존재했고, 어떤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서 각 기관의 권력을 상징하고, 절대 다른 시간에 맞추려 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장악하는 것이 당시 권력의 상징이었음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국가라는 개념도 태동하던 시기였는데,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영토와 국가, 그리고 시간이 처음 이러한 개념이 등장했을 때는 굉장히 혼란스러웠고, 이에 대한 표준을 정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세력의 반발과 과도기적인 시간이 존재했음을 담담한 시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개념이 과거에는 혼란 그 자체였고, 그리고 현재 혼란한 개념에 대해서 미래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개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던 순간이었다.
영화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는 무정부주의와 함께 시간과 국가의 개념이 태동하던 유럽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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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몰리션> - ‘이별 앞에 분해된 세상을 마주하다’
데몰리션 (Demolition)
개봉일 : 2016.07.13 (한국 기준)
감독 : 장 마크 발레
출연 :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크리스 쿠퍼, 헤더 린드
‘이별 앞에 분해된 세상을 마주하다’
‘Demolition’ 파괴, 폭파, 타파.
어느 날 당연하게 생각했던 내 세상의 일부가 폭파된 순간 찾아온, 인생에서 가장 큰 상실을 겪는 남자의 눈물 나게 담담한 입꼬리에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슬픔이 느껴졌다. <데몰리션>은 개인적으로 뽑는 제이크 질렌할의 필모 Best3에 드는 영화다. 그는 참 크고 깊은 눈을 가졌다. 나는 그 눈을 정말 좋아한다. <바닐라 스카이>에선 꿈을 가득 담은 두 눈을, <나이트 크롤러>에선 조용한 광기를 담은 두 눈을, <브로크백 마운틴>에선 사랑과 후회를 가득 담은 두 눈을 보여주었던 그가 <데몰리션>에선 너무 벅찬 나머지 아무것도 담지 못한 공허한 두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세상은 연속적으로 무너졌고, 무너진 잔해들은 또다시 새로운 세계가 되어 그를 다시 뛰게 한다.
눈물도 마음대로 나오지 않는 슬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깊은 상실감. <데몰리션>의 주인공 데이비스는 견고히 지어졌다 생각했던 아내와의 인연이 허물어지자 어디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분석하기 위해 모든 걸 해체하기 시작한다. 나는 왜 슬프지 않을까. 나는 왜 눈물이 나오지 않을까. 아내는 왜 나에게 무심하다고 말했을까.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걸까. 이 죽음이, 그녀와의 시간이 진실이긴 한 걸까. 꽉 틀어막힌 마음을 붙잡은 채 홀로 남은 그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못한다. 말 그대로 모든 감각이 고장 나버린 것이다.
이미 없어졌을 거라 생각하는 감정을 다시 꺼내들고 깨부수고 해체하고 조립하며 새로운 눈물을 흘리는 데이비스의 모습에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언제부턴가 무미건조하게 흘러가고 있던 내 인연과의 시간을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데몰리션 시놉시스
“슬프게도… 그녀가 죽었는데 괴롭거나 속상하지도 않아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성공한 투자 분석가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 다음 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한 그를 보고 사람들은 수근거리고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데이비스는 점차 무너져간다 “편지 보고 울었어요, 얘기할 사람은 있나요?” 아내를 잃은 날, 망가진 병원 자판기에 돈을 잃은 데이비스는 항의 편지에 누구에게도 말 못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어느 새벽 2시, 고객센터 직원 캐런(나오미 왓츠)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캐런과 그의 아들 크리스(유다 르위스)를 만나면서부터 출근도 하지 않은 채, 마음 가는 대로 도시를 헤매던 데이비스는 마치 자신의 속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망가진 냉장고와 컴퓨터 등을 조각조각 분해하기 시작하고 끝내 아내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집을 분해하기로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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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데이비스와 줄리아는 눈을 마주치자마자 서로에게 매력을 느꼈고, 3시간쯤 되었을 때 사랑을 나눴고, 망설임 없이 결혼을 했다.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은 전보다 조금 헐거운 사이가 된다. 투자 분석가 데이비스는 새벽 5시 반에 눈을 떠 운동과 출근 준비를 하고 같은 시간에 오는 기차를 타고 출근한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그의 생활 속에 줄리아의 자리는 넓지 않았다. 줄리아는 시간을 내주지 않는 데이비스에게 섭섭함을 표현하고 데이비스는 줄리아의 말을 가볍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가벼운 다툼을 하던 중, 줄리아가 죽었다. 섭섭함을 토로하던 줄리아에게 제대로 된 대답도 해주지 못했고, 물이 새는 냉장고를 고쳐주겠단 약속도 하지 못했는데 줄리아가 죽었다. 아내가 죽었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자판기에서 초콜릿을 사 먹고 구두에 묻어있는 사고의 흔적을 지운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출근을 한다. 데이비스의 장인이자 회사의 회장인 펄은 데이비스가 감정을 잘 숨기는 것이라 예상했지만 데이비스는 아내를 잃은 슬픔 자체를 외면하고, 식당이 비싼 이유나 자판기의 고장 같은 다른 문제들에 집중한다.
데이비스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내가 죽었는데 슬프지 않았다며 사실 난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줄리아가 죽고 나서 솟아오르는 호기심, 눈에 보이는 새로운 것들. 바쁜 일상을 살아가며 한 번도 인식해본 적 없는 것들이 마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솟아오르는 궁금증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지는 문제. ‘나는 정말 줄리아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데이비스는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분해하며 문제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주문 사실도 몰랐던 줄리아의 커피 머신, 물이 새고 있는 냉장고, 철거 예정된 집의 벽, 그리고 줄리아와 함께 살던 집까지. 그는 평소에 입던 정장 대신 허리도 잘 맞지 않는 커다란 작업복 바지를 입고는 온갖 종류의 망치를 사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거실, 주방 가구들을 부수고 집의 창문을 부수고 포크레인을 사들여 지붕의 일부를 허문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쯤으로 남아있던 침실을 부수던 데이비스는 줄리아가 서랍 안에 넣어둔 초음파 사진을 발견하게된다. 그 사진 한 장은 망설이며 서랍장을 내리치던 데이비스를 그 자리에 주저앉게 만들고 그가 행해오던 모든 파괴 행위를 멈추게 만든다.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주지.”
서랍장을 부수던 망치의 머리가 부러지고 데이비스는 줄리아가 남긴 메모들을 보며 이제야 눈물을 흘린다.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주지.” 줄리아가 물이 새는 냉장고에 붙여뒀던 짧은 메모 한 장. 냉장고 얘기인 듯, 줄리아의 마음인듯한 한마디. 그리고 또 다른 메모 “비가 오면 내가 안 보이겠지만 해가 뜨면 내가 생각날걸.”
데이비스는 일이 바쁘다며 줄리아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데이비스는 빠른 속도로 줄리아에게 빠져들고 그녀와 결혼을 했지만 사실 줄리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 줄리아가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인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같은 사소한 것들조차 데이비스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데이비스는 줄리아를 잃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며 우는 표정을 지어보고, 거짓말을 했던 같은 기차 승객에게 진실을 말해보기도 하고, 캐런을 만나보기도 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정의하지 못한다. 슬프지 않으니 애써 신나는 척이라도 해보지만 그런 모습이 더욱 불안하고 슬프게 느껴질 뿐이다.
너무 커다란 상실감과 슬픔을 만날 경우 데이비스처럼 눈물을 잃어버리거나 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무력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배우자의 죽음’은 친구나 가족의 죽음보다 더 큰 슬픔을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데이비스가 겪게 된 상실의 아픔은 인생에서 가장 큰 아픔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갑자기 마주한 너무나 큰 폭발 앞에 데이비스는 슬픔이란 감정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데이비스는 줄리아와의 결혼을 돌아보고, 환상처럼 스쳐가는 줄리아와 함께했던 순간을 되새기며 자신이 줄리아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녀의 마음이 담긴 메모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린다. 데이비스는 눈물을 흘리며 줄리아와의 이별을 맞이한다. 그리고 부두에서 폭파되는 건물을 보고 아이들 사이에 섞여 달리기를 하며 새로운 시간을 향해 발을 돌린다. 어린 시절 가졌던 꿈인 ‘누구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되어 무기력한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린다. 새로운 음악을 듣고, 멈춰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앞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진정한 이별을 맞이했으니 슬픔에 허덕이는 대신 떠나간 인연을 추억하고 나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나와 인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지 않을까. 바로 눈물을 왈칵 쏟아내지 않아도, 당장 많이 아프지 않아도 이별의 슬픔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아픔과 이별을 외면하는 대신 받아들이고, 떠난 이를 추억하며 너무 아프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남겨진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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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을 사랑하는 곰, 런던이 사랑하는 곰
코끝에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마음이 들썩거려 여행지를 찾는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못했는데,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 아침 갑자지 뼛속으로 한기가 스미는 시기가 시작되면, 여행 가고 싶다는 마음은 추위에 발목을 잡히고 만다.
유독 손발이 찬 편이라, 겨울이면 아침마다 양말을 두 개 신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어서 겨울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이가 달달 떨리는 기분이랄까? SNS에 올라오는 삿포로의 눈밭을 보며, 약간의 부러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집 밖으로 나를 꺼내어 내기엔 겨울 추위란 존재는 너무도 강력한 장벽이다. 올해도 나는 비행기티켓을 검색하는 대신, 이불 속에 들어가 OTT에서 콘텐츠 여행을 시작한다.
해리포터 시리즈 정주행을 시작으로, 눈 내린 호그와트와 론의 크리스마스 스웨터로 영국의 겨울 무드를 느끼고 나면, 파란 코트를 입은 패딩턴 2로 본격적인 ‘런던 여행’을 떠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패딩턴과 브라운가족, 그리고 ‘런던’이기 때문이다. 마치 윈저 가든 그 어딘가에 내가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영화다.
<패딩턴1 >이 아기 곰이 페루를 떠나, 패딩턴 역에서 브라운 가족을 만나고, 패딩턴이라는 이름을 얻고, 런던에서 진짜 가족을 찾는 이야기 속에서 이제 막 런던에 도착한 아기 곰의 시선으로 런던을 보여준다면, <패딩턴2>는 런던의 명소를 담은 팝업북을 주요 소재로 두고, 런던명소를 옮겨 다니며 주요 스토리가 전개되며 ‘런던’이 주인공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Dear Aunt Lucy, Life in London has been better than ever. I really feel at home..
루시 숙모에게. 런던에서의 삶은 그 어떤 때보다 좋아요. 저는 집처럼 편안하답니다.
페루를 떠나 런던 윈저 가든에서 브라운 가족과 지낸 지 3년 차, 패딩턴은 곧 다가올 루시 숙모의 100번째 생일 선물을 고민하다 그루버씨의 골동품 가게에서 런던 명소 12곳이 담겨 있는 팝업북을 발견하고, 런던을 꿈꿔왔던 루시 숙모에게 선물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코즐로바 부인이 만든 세상에 단 한 권뿐인 그 책의 가격은 꼬마 곰의 용돈으로 사기엔 꽤 비쌌고, 패딩턴은 책을 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발소 보조, 아쿠아리움 청소, 창문 닦기 등 열심히 아르바이트를한다. 어느덧 이제 하루만 더 일하면 팝업북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으게 된 패딩턴은 퇴근길에 그루버씨의 골동품 가게 창문안으로 팝업북을 보는데, 그 때 마침 골동품 가게에 침입한 도둑이 팝업북을 훔쳐가게 되고, 그를 뒤 쫓던 패딩턴을 범인으로 오해한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만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패딩턴을 대신해, 브라운 가족은 진범을 찾는 데에 매진하는데, 이 과정에서 누군가 변장을 한 채로 팝업북에 나오는 명소를 돌아다니는 것을 알게 된다. 런던이 배경 장소가 아니라, 스토리의 중심이며, 또 다른 주인공 중의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범인이 보물 상자를 열기 위해 팝업북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찾아가는 세인트폴 대 성당뿐 아니라, 브라운씨가 일하는 더 샤드, 패딩턴이 전화를 하는 빨간 전화박스와 그리고 범인이 탄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찾은 패딩턴역까지. 영화는 런던스러운 로케이션으로 가득 차 있다.
패딩턴에게 런던은 무슨 의미일까.
런던의 탐험가가 루시 숙모와 페스투조 삼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떠나며, 루시 숙모에게는 오랫동안 바랬던 꿈이었고, 패딩턴에게는 좋은 사람과 가족을 만나게 된 스윗홈이 되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런던은 아마도 가족과도 같은 ‘따뜻함’일지도 모르겠다. 패딩턴은 루시 숙모에게 그런 런던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깝고 다정한 내 친구를 소개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런던을 선물하고 싶었던, 꼬마 곰의 순수하고 다정한 마음은 서로를 더 가까이 만들었다. 그리고 눈이 오는 어느 날. 선물처럼 찾아온 루시 숙모와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따뜻한’ 런던에서 백번째 생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Aunt Lucy said, if we're kind and polite the world will be right.
루시 고모가 말했어요. 우리가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면 세상도 올바르게 돌아갈 거라고요.
친절하고 예의 바른 다정한 런던을 만나고 싶을 때마다, 나는 패딩턴을 꺼내본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설레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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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도그](2021)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과거 vs 현재(feat. 수색자)
Chapter 2 필의 동성애, 피터의 살인
00:00 은사자상 수상
02:02 대결 구도들
04:44 수색자 오마주
05:59 기타와 자동피아노
06:37 꽃을 태운 이유
07:44 필의 동성애
09:31 피터의 아버지 살해
12:19 별점 및 한 줄 평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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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메인 예고편
집에서도 밖에서도 늘 혼자가 편한 진아.
사람들은 자꾸 말을 걸어오지만, 진아는 그저 불편하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의 1:1 교육까지 떠맡자 괴로워 죽을 지경.
그러던 어느 날, 출퇴근길에 맨날 말을 걸던 옆집 남자가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죽음 이후, 진아의 고요한 일상에 작은 파문이 이는데…
저마다 1인분의 외로움을 간직한, 우리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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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애프터썬> 2차 예고편
“오랫동안 이 영화의 햇볕에 그을리고 싶다” - ?????? 영원히 흔적으로 남은 그해 여름의 기억 [애프터썬] 2차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