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3-11 20:42:24
콘클라베 | 의심으로써 바로 세운 신비함과 믿음
<콘클라베>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교황 사망 이후 추기경단 단장 '토마스 로렌스'(랄프 파인즈) 추기경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새로운 수장을 선출하는 선거, '콘클라베'를 총괄한다. 로렌스는 무사히 선거를 관리한 뒤 다음 교황이 뽑히는 대로 교황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교황청에서 일하는 동안 오히려 신앙심이 약해진 것 같았기 때문.
하지만 콘클라베는 그의 기대와는 달리 혼란스러워진다. 후보 간의 정치 공세가 시작되면서 유력 후보인 '알도 벨리니'(스탠리 투치), '트랑블레'(존 리스고), '아데예미'(루시언 음사마티),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스),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 추기경과 관련된 추문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 이에 로렌스는 추문의 진상을 밝혀내는 데 집중한다. 그러는 사이 갑작스레 유력 교황 후보로 떠오른 그는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다.
의심 위에 지어진 교회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토마스는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회자되는 사도는 아니다. 초대 교황 베드로, 배신자 유다, 복음서 저자인 요한 등에 비하면 성경 속 활약이 부족하기 때문. 12 사도에 포함되지 않는 사도 바오로보다도 알려진 행적이 부족할 정도다. 그나마 부각되는 이미지도 부정적이다. 예수의 손과 허리에 난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는 한 그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 제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사도 토마스는 누구보다도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의심은 가장 강력하고 명확한 신앙고백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의 신성을 의심한 것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환희를 담아 예수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Dominus meus et Deus meus)”이라고 고백했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 그 자체임을 밝힌 토마스의 고백은 기독교의 근간인 삼위일체론의 근거가 된다.
즉, 토마스는 흔히 간과하는 신앙의 핵심 중 하나, 의심을 상징하는 사도라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자신의 확신에 사로잡혀서 새로운 앎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신까지도 의심하는 사람의 믿음이 더 건강하다는 것. 실제로 토마스를 혼내는 대신 제자의 의혹을 풀어주고 확신으로 가득 채워준 예수의 모습에서도 맹신보다 의심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확인할 수 있다.
사도 토마스의 가르침은 에드워드 버거 감독이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한 <콘클라베>를 통해 스크린 위로도 펼쳐진다. 또 한 명의 토마스,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이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관장하면서 깨달은 의심의 중요성이 정치 스릴러의 형식으로 드러나기 때문. 특히 그의 깨달음이 개인적, 종교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 사회적 함의로도 확장되기에 <콘클라베>는 더욱 흥미롭고, 의미심장하다.
의심하는 '토마스'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의 의심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전임 교황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의심한다. 추기경단 단장으로서 교황의 최측근인 그조차도 교황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 때문. 그는 교황의 사인이 무엇인지, 선종 전에 이상한 낌새는 없었는지를 캐묻는다. 더 나아가 교황이 마지막으로 접견한 사람과 처리한 업무는 무엇인지도 조사한다.
콘클라베 중에는 교황 후보로 거론된 추기경들을 의심한다. 특히 그들의 추문을 조사한다. 수녀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 자신의 추기경직 파면 소실을 감추고 추기경들을 매수했다는 소문. 교황직을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거나, 라틴어 미사 부활 및 성소수자 차별과 같이 시대를 역행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로렌스는 새 교황이 결정되는 순간까지도 모든 추문의 진상을 확인하려 애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 유력 후보들의 추문이 하나 둘 사실로 밝혀지자 콘클라베 결과는 예측불가능해진다. 그 과정에서 로렌스는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유력 후보로 떠오른다. 진심을 담은 그의 강론이 결정적이었다. 콘클라베 전 미사에서 그는 십자가에 매달릴 때까지 신을 의심한 예수처럼 의심하는 교황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의심 없는 확신이 통합의 적이고, 다양성이 곧 교회의 힘이라 믿었으니까.
그의 강론은 교회의 변화와 개혁을 촉구하는 진보 성향 추기경들의 지지를 받았고, 그를 차기 교황 후보로 만들었다. 하지만 로렌스는 기뻐하거나 욕심내지 않는다. 과거보다 신앙이 약해졌다고 느끼는 그는 자신이 과연 교황직에 적합한지 의심한다. 더 나아가 다른 추치경들의 추문을 조사한 것이 교황이 되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 아니면 관리자의 업무에 충실한 것인지도 자문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의심하는 그는 실로 '토마스'답다.
의심으로써 쌓아 올린 스릴러
삼중의 의심 덕분에 <콘클라베>는 정치 스릴러로서의 쾌감과 종교 영화로서의 메시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다. 우선 로렌스가 모든 소문을 하나씩 확인해 나가는 과정은 탁월한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로렌스도, 관객도 진실을 모르는 입장이다 보니 마지막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
랄프 파인즈의 연기도 한 몫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 <007> 시리즈, <타이탄>과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볼트모트, M, 하데스 등의 역할을 맡은 배우이지만, <콘클라베>는 그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다. 모든 이야기와 의도, 장르적 쾌감까지도 토마스 로렌스의 의심에서 비롯되는데, 랄프 파인즈는 냉정한 듯 흔들리는 눈빛으로 추기경이라는 지위 뒤에 숨은 인간적인 연약함을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한 소문에 관한 상반된 정보가 투표 전후로 제공되거나, 얼마 간의 텀을 두고서 소문의 진실을 확인하는 식의 완급조절도 인상적이다. 특정 캐릭터를 악역으로 단정하지 않으면서 정치극으로서의 스릴을 끌어올리기 때문. 관객이 캐릭터가 전혀 다른 추기경 중 호감 가는 인물을 응원하도록 유도한 뒤, 자신이 선택한 캐릭터의 진실과 그의 최후를 지켜보고 확인하는 과정의 긴장감과 묘미가 상당하다.
이에 더해 일반적이지 않은 배경도 정치극의 스릴을 강화한다. 카메라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콘클라베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교황 사망 시 반지에 표식을 남기는 것, 하얀 연기와 검은 연기를 만드는 방법, 투표 순서 및 방법 등. 이러한 디테일은 콘클라베의 신비함을 벗기고 속살을 들여다보는 관음증적 쾌감을 충족시키며, 정쟁의 서스펜스도 증폭시킨다. 관음증적 욕망과 권력욕이라는 인간적 욕망이 만나 서로 공명하기 때문이다.
스릴러로 벗겨 낸 신성함
이 대목에서 삼중의 의심은 종교적 메시지도 전해준다. 교황 선거를 정치 스릴러로서 풀어낸 <콘클라베>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성함도 한 꺼풀 벗겨낸다. 실제로 카메라는 전통에 스며든 현대적 흔적을 포착한다. 최신식 호텔을 연상시키는 교황청 숙소, 어벤져스 기지처럼 자동적으로 닫혀서 외부와의 소통을 막는 창문, 투표지뿐만 아니라 염소산칼륨을 함께 태워서 만드는 하얀 연기와 검은 연기가 대표적이다.
현대적 이미지는 교회와 현실의 갈등, 전통과 미래의 모순을 시각화한다. 콘클라베의 속살을 보여줌과 동시에 가톨릭 교회의 속살도 함께 드러내는 셈이다. 실제로 극 중 추기경들을 둘러싼 추문은 사실 낯설지 않다. 이미 수차레 지적받고 공론화된 가톨릭 교회의 오래된 문제들이기 때문. 일례로 신부들의 성 추문과 교회의 조직적 은폐 시도는 <스포트라이트>나 <신의 은총으로> 같은 영화가 여러 차례 다룬 바 있다.
추치경들의 부패도 심심찮게 비판받고 있다. 당장 프란치스코 교황도 2020년에 죠반니 안젤로 베추 추기경을 시성성 장관에서 전격 경질한 바 있다. 베드로 성금으로 부동산에 투자하고 교회 기금을 사적으로 활용했다는 문제제기가 경질 이유였다. 이에 더해 교회의 방향성 역시 뜨거운 감자다. 성소수자 및 이혼자, 타 종교인에 대한 처우와 관련해서는 교회 내에서도 좀처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즉, <콘클라베>는 전통과 관습을 고수하는 교회가 현대 사회에 발맞추지 못한 세태를 비판하며 변화를 촉구하는 영화다. 그렇기에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이 무너지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로마 시내에서 발생한 테러로 인해 성당의 창문 한쪽이 파손되고, 추기경들은 부상당한다. 이 이미지는 교회와 세속을 가르는 강고한 경계의 붕괴와 현대 사회의 변화에 적응 못한 교회의 퇴락을 동시에 상징하는 듯하다.
문을 열어야 보이는 진리
흥미롭게도 <콘클라베>는 폭탄 테러가 발생한 순간의 연출을 통해 교회와 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로렌스는 삼중의 의심 끝에 자기 이름을 투표지에 적는다. 그가 투표함의 문을 열고, 표를 넣으며 함의 문을 닫으려는 바로 그 순간, 시스티나 성당은 폭탄 테러로 인해 먼지로 뒤덮이고 콘클라베는 중단된다. 사건이 수습된 뒤 콘클라베는 파손된 시스티나 성당의 창문이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로 재개된다.
이때 핵심은 '문'이다. 문은 로렌스의 의심을 상징하는 오브제이기 때문. 로렌스에게 문은 '판도라의 피토스'나 다름없다. 피토스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판도라처럼 로렌스는 문 뒤에 숨은 진상을 찾을지, 아니면 문을 외면할지 고민을 거듭한다. 일례로 그는 행방불명된 보고서를 찾기 위해 봉인된 전임 교황의 방문을 열어야 할지 고민한다. 추문에 휩싸인 추기경들을 조사하기 위해 그들의 숙소 문을 열어야 할 지도 고뇌한다.
하지만 의심 끝에 문을 열면 그는 고통스러울지언정 진실에 한 발짝씩 가까워진다. 즉, 문은 의심을 멈추지 않을 때 비로소 진실과 진리가 보인다는 메시지의 상징이다. 테러 이후 성당 창문이 열린 채로 콘클라베가 재개된 이유이기도 하다. 반대로 그가 의심을 멈추고 투표함의 문을 닫으려는 순간, 콘클라베는 엉망이 된다. 마찬가지로 의심 없이 자신이 믿는 신과 교리에 대한 확신으로 무장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에 의해서.
의심으로 빚은 <콘클라베>의 진의
테러 이후 다른 종교에 더 강경하게 대응하자고 주장하는 보수파 추기경들의 모습을 보면 언제나 그 누구든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보수파 추기경들처럼 특정 이념에 경도되거나, 특정 사상을 확신하는 극단주의자들로 인해 갈등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이 커지는 중이기 때문. 이는 <콘클라베>의 메시지에 종교적 차원을 넘어서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새로 뽑힌 교황도 의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교회 내에서 비주류 지역으로 여겨지는 분쟁 지역에서만 활동했고, 인터섹스이지만 스스로를 남성으로 규정하는 인물이다. 그의 활동과 정체성은 가톨릭 교회가 현대 사회과 교회 사이의 문제와 모순에 대해 관습과 전통에 의존하는 대신 새롭게 대응해야 함을 상징한다. 이는 그가 순결을 뜻하는 '인노첸시오'를 새 교황의 이름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콘클라베>의 모든 플롯을 뒷받침하는 로렌스의 서사도 새 교황의 선출로 완결된다. 이는 콘클라베 시작 미사에서 의심하는 교황이 필요하다던 로렌스의 강론에 맞는 응답이 신으로부터 전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자신에게 아직 신앙이 있는지, 다시 기도할 수 있을지 의심하던 그는 콘클라베로써 답을 찾은 셈이다. 그렇기에 콘클라베 기간 동안 닫혀 있던 창문이 열림과 동시에 영화가 끝나는 결말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끝없는 의심의 다른 이름, 진리와 진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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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돌아 보아도 괜찮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인물의 얼굴과 손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다. 소리를 매우 예민하게 들려주고 무언가를 몰래, 물끄러미, 혹은 뚫어져라 쳐다보는 소녀와 그녀의 꿈을 보여 준다. <클레오의 세계>는 아이인 클레오가 느끼는 촉각과 시각, 청각적인 자극을 아주 민감하게 잡아내고, 세상을 떠난 엄마 대신 자신을 돌본 베이비시터 글로리아와 만들어낸 애착 관계를 영화를 통해 마음껏 전달한다. 제목이 말해주는 것과 같이 영화는 클레오의 세계, 그리고 클레오가 성장하면서 일어나는 확장에 대해 말한다.그러나 <클레오의 세계>는 아름답고 눈부신 성장, 낭만적인 여름 휴가로만 들어차 있지 않다. 감독은 아이의 세계를 혼란이나 상실의 감정, 그리고 힘겨운 배움을 통해 확장한다. 어쩌면 성장을 다루기에 조금 어색해 보일 정도로 완성된 연기를 지닌 배우를 통해, 클레오는 어떤 때에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모래사장을 달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서럽게 울거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는 동안 영화는 여름 방학을 맞아 방문한 동네에서 죽음과 탄생, 관계의 형성과 부재를 모두 보여 준다.클레오는 애착 관계를 베이비시터인 글로리아와 형성했다. 그리하여 살을 맞대고 자란 존재와 분리되는 일을 당장 겪어야 한다. 특수한 상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관객 모두가 하는 경험을<클레오의 세계>는 스크린에 재현한다. '분리'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못하게 되는 것을 뜻하지 안흔다. 바로 부모를 비롯한 가족과 자신이 다른 존재라는 것, 그들이 나와는 다른 개인이고 가족은 어떤 형태의 집합 중 하나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그래서 클레오가 글로리아의 삶, 즉 그녀의 집을, 추억을, 아이들과 이웃과 앞으로의 그녀의 계획을 천천히 살펴보고 또 죽음과 새 생명의 탄생을 목격하는 것은 곧 성장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클레오는 울고 웃기도 하고, 달리고 수영하기도 하지만 단순한 묘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쌓아올리거나 잘못된 행동에는 사과함으로써 관계를 지키는 경험을 한다. 또 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울음을 그치는 방법을 익힌다. 그리고 감정이 부풀어 올라 어쩔 줄 모르겠는 순간이 오자 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일을 저지르고 성공해냄으로써 스스로 해결해내고야 만다.상실이나 부재로부터 성장의 발걸음을 내딛는 이야기는 아주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언어를 붙여 설명하든 그렇게 하지 않든, 피부를 맞대고 식탁에 둘러앉아 평생을 보내 온 사람과 정신적으로 분리되는 경험은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예컨대 올해 개봉한 샬롯 웰스 감독의 <애프터썬>이나 셀린 시아마 감독의 <쁘띠 마망> 또한 그러한 경험을 말하고 있다. 신경숙 작가의 그 유명한 소설 '엄마를 부탁해'조차 부재, 상실, 성찰로부터 뻗어나가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클레오의 세계>가 가지는 특별함은 그 감각과 감정을 통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클레오가 꾸는 꿈 같기도 하고 기억 같기도 한 이미지를 회화로 만들어낸 스톱모션으로 재현함으로써 관객도 잘 기억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의 감각을 되살려낸다. 그리고 영화의 언어로 성장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관객은 말로 듣기보다는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향수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클레오의 세계>만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면, 이별의 순간에 관객은 클레오가 또다시 뒤돌아 볼지라도 결국을 스스로 헤엄쳐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알게 된다.*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아 참석 및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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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증에만 열심히 힘썼구나
고증 하나만큼은 확실히 인정해줘야 한다. 실화를 영화로 가지고 오는 데 성공했지만, 재난 영화 장르 특유의 재미는 갸웃거리게 만든다. 아무래도 비행기에 같이 탑승하지 못한 것 같다.
영화 '하이재킹'은 1971년 대한민국 상공, 여객기가 공중 납치돼 월북의 기로에 선 부기장 태인(하정우)과 납치범 용대(여진구), 그리고 기내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남북 갈등이 심했던 1969년~1971년을 배경으로 1969년 12월 11일에 발생한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과 1971년 1월 23일에 벌어진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모티브 삼았다.
실화 바탕 영화는 기본적으로 드라마틱한 서사를 바탕으로 몰입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 '하이재킹'도 그렇다. 태인과 용대를 축으로 한 팽팽한 심리전으로 전개해 나갔다. 긴박한 하이재킹 상황과 360도 공중회전(임멜만턴), 전투기 추격 장면 등 고공액션을 생동감 있게 구현했다. 또 1970년대 분위기를 완벽하게 고증하여 펼쳐내는 점도 장점이다.
다른 영화에 비해 러닝타임이 상대적으로 짧아서인지 전개 속도는 마하로 달리는 것 같지만, 그렇게 속도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실화의 단점인 '스포일러 결말'이 정해져 있어서인지 단조롭고, 즐길거리도 생각보다 많진 않다.
특히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을 극한으로 몰아가야 하는 빌런인 용대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50여 명 넘는 기내 승객들을 위협하거나 조종석을 점거해 목숨줄을 쥐고 좌지우지하는 인물 치고는 아우라가 매우 약하다. '비상선언'에서 기내 승객들을 쥐락펴락했던 테러범 류진석(임시완)에 비해 관객들을 설득시키기엔 역부족인 모습이었다.
신파나 사실 전달이 부각된 건 아니나, 표현하는 방식이 옛날 영화처럼 올드하다. 스릴을 포기한 만큼의 재해석의 성의가 부족하고, 과거룰 거울삼아 현재에 재조명하는 깊이감, 진정성이 전달하는 가슴속 울림 모두 부족하다. 뻔한 스토리텔링에 극의 밸런스를 잘 맞추지 못해서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각 등장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도 딱히 와닿진 않는다. 극 중 영웅 역할인 하정우는 진한 멋짐을 표현하지만 어딘가 보던 캐릭터가 어우러지니 식상함이 느껴진다. '하이재킹'을 통해 악역으로 깜짝 변신한 여진구 또한 결과물이 아쉽다. 중반까지 노련하게 이끌어갔지만, 사족이 늘어나면서 힘이 빠진다. 또 어딘가 모르게 어색함도 엿보였다. 다른 배우들은 맡은 바 충실히 소화하지만 캐릭터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한때 관객들 사이에선 '하정우가 개고생하는 영화는 흥행한다'는 말이 있다. 아쉽게도 '하이재킹'에서는 그 말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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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Dune) [2021]
* 본 리뷰는 <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듄 (2021)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페르구손, 오스카 아이작, 제이슨 모모아, 조시 브롤린, 젠데이아, 장첸, 하비에르 바르뎀, 스텔란 스카스가드 등
장르: SF, 판타지, 스페이스 오페라
러닝타임: 155분
개봉일: 2021.10.20
장대한 운명의 서막, 시련에 맞서다
10191년,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 아트레이드(티모시 샬라메)'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베네 게세리트' 출신인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페르구손)'의 피를 물려받아 꿈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고, 미래의 구원자로 점지되어 태어난 인물이다. 아트레이드 가문은 황제로부터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스파이스'가 생산되는 '아라키스'를 다스리라는 명을 받고, 낙원과도 같은 본거지를 떠나 새 터전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이는 세력이 커지는 아트레이드 가문을 시기한 황제의 함정이었다. 아라키스를 오랜 기간 억압했던 하코넨 가문과 사다우카 연합군이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기습하고, '레토 아트레이드(오스카 아이작)' 공작은 물론 성 안의 모든 인물들이 몰살당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레이디 제시카'와 '폴'은 그들을 지키는 소드마스터 '던칸 아이다호(제이슨 모모아)'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고, 적에게 맞서기 위해 아라키스의 '프레멘' 부족을 찾아간다.
복잡하고 심오한 세계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시놉시스나 줄거리를 텍스트로만 접한다면, <듄>의 복잡하고 장대한 세계관에 대해 알 길이 없다. 따라서 <듄>을 단순히 킬링타임용으로 관람하는 것이 아닌 웅장한 스토리에 담긴 깊은 매력을 탐미하고 싶다면, 유튜브를 통해 세계관 정보와 관련된 짤막한 영상을 우선적으로 시청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듄>은 가상의 거대한 제국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부족들의 권력 투쟁이 등장하고, 현실 세계의 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SF영화 특유의 미래 기술과 소품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스타워즈>, <블레이드 러너>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물을 표방한다. <스타워즈>가 어느 정도 오락성과 스펙터클함을 가져간 시리즈라면, <듄>은 좀 더 심오하고 황량한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에 익숙한 10-20대 관객들에게는 다소 지루한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듄>에 대한 사전 정보를 조금만 인지한 상태에서 관람한다면 마냥 따분한 작품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구현된 세계의 다양한 인간 군상과 판타지적 존재들, 그리고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이들의 관계성을 하나씩 짚어보며 전개를 따라간다면, <듄>이라는 발상 자체에 대한 놀라움과 어릴 적 한번쯤 머릿속으로라도 해보았을 법한 비현실적 시공간에 대한 공상을 떠올리게 한다. 십 년간 지속되어온 마블 세계관에 이제는 익숙해졌을 대중에게 새로운 신비감을 자극할 만한 드넓은 무대가 펼쳐진 셈.
광활한 우주와 행성, 영상미에 취하다
<듄>은 러닝타임이 2시간 30분에 달할 정도로 작품의 길이가 길고, 생소한 세계에 대한 설명적인 내용의 등장, 그리고 알 수 없는 시공간이 뒤섞인 '폴'의 꿈에 관한 이야기 등 때문에 상당한 집중력을 요한다. 작품의 이러한 심오함은 집중을 통해 몰입감을 끌어낼 수도 있지만, 몰입과 흐트러짐은 한 끗 차이이기 때문에 본편의 서막과도 같은 내용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를 제쳐두고라도 <듄>은 봐야할 가치가 있다. '드니 빌뇌브' 작품답게 영상미에 상당한 공을 들였는데, 대표적으로 광활함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아라키스'의 사막 배경은 작품의 장대한 세계관을 머금은 듯 엄청난 위압감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뿐만 아니라 <테넷>을 뒤로 하고 <듄>을 택한 '한스 짐머'의 묵직하고 웅장한 음악이 더해져 언제 어디서든 주인공들을 향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듯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만든다. 줄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렵더라도, 영상의 압도적인 비주얼만큼은 우리 두 눈에 최대한의 만족도를 선사한다. IMAX로 촬영하여 화면 비율을 무려 1.43:1까지 확장한 스크린은 드넓은 우주의 시공간을 폭넓게 탐험하는 기분을 자아내는데, 이 때문에 꼭 IMAX로 관람하기를 추천하고 싶다.
초호화 캐스팅, 제몫 다한 배우들
<듄>은 명감독인 '드니 빌뇌브' 감독, 그리고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원작 소설만으로도 감상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지만, 초호화 캐스팅을 실현시키며 작품의 스케일을 극대화시켰다. 주인공 '폴'을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0대 배우 중 한 명이며 그의 부모님을 연기한 '레베카 퍼거슨'과 '오스카 아이작', 전투 장면에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조시 브롤린'과 '제이슨 모모아', 섬뜩한 악역 '데이브 바티스타'와 '스텔란 스카스가드', 후속작에서의 기대를 남긴 '젠데이아'와 '하비에르 바르뎀'까지. 주인공급 인물들이 대거 출연하며 짧은 등장에도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가장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한 배우는 '레이디 제시카'를 연기한 '레베카 퍼거슨'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형적인 어머니상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서 강인한 눈빛과 카리스마로 작품의 중심을 무게감 있게 잡아준다. 보통 부녀가 함께 등장하는 SF 장르 영화에서는 아들이 어머니를 지키는데, 레이디 제시카는 작중 가장 강한 인물 중 하나로 그려지며 각성을 앞두고 혼란을 겪는 폴의 멘탈을 케어해주는 것은 물론 모진 시련에도 아들보다 앞장 서서 상황에 맞서는 모습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두려움과 기개가 공존하는 '레베카 퍼거슨'의 표정과 눈빛 연기, 그리고 적을 공격할 때 발산하는 파워는 작중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티모시 샬라메' 때문에 본 작품이지만, 의외로 가장 눈길이 가는 배우는 '레베카 퍼거슨'이었다.
운명을 받아들인 유약한 소년의 성장
<듄>의 원작 소설은 6부작으로 된 대작이지만, 영화는 해당 소설을 2편에 걸쳐 모두 담는다고 한다. 따라서 극에 등장하는 여러 세력의 특징 혹은 '레토 공작'과 '하코넨'의 대립 관계 등 극에 미처 담지 못한 에피소드들이 많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HBO Max 드라마 <듄: 자매들>을 추가로 기획했다고는 하지만, 원작을 보지 못한 관객들은 여전히 이 세계관을 이해하기에 갈 길이 멀다.
따라서 시리즈 1편에 해당하는 본작은 주인공이 각성해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며 본편의 인트로인 것처럼 그려진다. '폴'의 강인함이나 구원자적 존재로서의 용맹함보다는 유약함과 두려움이 부각되는 것 역시 운명을 거부하고 싶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삶에 놓인 인물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담기 위해서일 것이다. <듄>은 SF 판타지 영화임에도 그 흔한 주인공의 전투신조차 없다. '폴'의 활약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극이 끝나고 도대체 무슨 내용이 전개된 것인지 납득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주인공 혹은 히어로의 능력을 강조하여 주인공 보정을 입히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 활약을 하는 틀에 박힌 구조를 탈피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 된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듄>은 이제 시작일 뿐이며 '폴'이 이끌어갈 후속작에 대한 완벽한 빌드업을 마쳤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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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넷플릭스 신작
넷플릭스 2022년 2월!
신작 추천5편
라스트 킹덤 시즌5
오랫동안 잉글랜드의 평화는 아슬아슬하게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곧 닥칠 재양을 직감하는 우트레드
머지않아 그의 우려를 증명하는 사건들이 터지는데..
크리에이터: 스테판 버차드, 나이젤 매처드, 가레스 니암
출연: 알렉산더 드레이먼, 에밀리 콕스, 이안 하트, 해리 매킨타이어, 일라이자 버너워스 등
장르: 시대물, 액션, 도서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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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저튼 시즌2
결혼을 결심한 앤소니 브리저튼 자작
예비 신부의 고집 센 언니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의무와 열망, 추문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크리에이터: 크리스 밴듀즌
출연: 아조아 안도, 줄리 앤드루스, 로레인 애슈본, 조너선 베일리, 루비바커 등
장르: 드라마, 시대물, 도서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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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들리 클래스
1980년대 샌프란시스코.
범죄자 조직의 자녀들이나 입학할 수 있는
사립학교에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십 대 소년이 영입된다
살 떨리고 피 튀기는 수업의 종이 울리는데...
크리에이터: 마일스 오라이언 펠드솟, 릭 리멘더
출연:베니딕트 윙, 벤저민 워즈워스, 라나 콘도어, 마리아 가브리엘라 데 파리아, 리암 제임스 등
장르: 액션, 스릴러,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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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프로젝트
시간 여행 중 2022년에 불시착한 전투기 파일럿 애덤 리드
그가 12살 시절의 자기 자신과 한 팀이 되어 미래를 구하는 임무에 나서는데...
감독: 숀 리비
출연: 라이언 레이놀즈, 마크 러펄로, 제니퍼 가너, 워커 스코벨, 조이 살다나, 캐설니 키너 등
장르: 액션, 코미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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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같은 나의 연인
남다른 솜씨의 미용사에게 반한 사진작가 지망생
그들 앞엔 미래가 펼져지고 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 둘의 사랑을 흔들기 시작하는데...
감독: 후카가와 요시히로
출연:나카지마 켄토, 마쓰모토 호노카, 나가야마 겐토, 사쿠라이 유키, 야나기 슌타로 등
장르: 로맨스, 드라마, 도서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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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평등, 존경이 담긴 음식의 맛! <프렌치 수프>
영상으로 음식을 음미한다는 게 바로 이런 걸까? 그것도 길~~게! <프렌치 수프>는 미식의 나라 프랑스 음식을 시청각으로 맛보는 영화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음식은 물론, 그 안에 담긴 재료가 어떻게 맛있는 예술 작품으로 탄생하는지의 과정, 그리고 이 음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주인공들의 모습까지 코스요리처럼 쫙 펼쳐진다. 이 만찬의 정수는 바로 사랑과 평등, 그리고 존경. 음식에 담긴 이 의미의 맛은 긴 여운을 남긴다.
미식 연구가 도댕(브누아 마지멜)과 함께 음식을 만드는 천재 요리사 외제니(줄리엣 비노쉬)는 아침부터 바쁘다. 도댕의 미식가 친구들이 방문을 하기 때문. 텃밭에서 공수한 채소는 물론, 에피타이저부터 본식, 디저트까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메뉴와 레시피를 음식으로 구현한다. 도댕 또한 외제니와 함께 독창적인 미식의 세계를 펼친다. 이 집에서 최상의 파트너로 지낸 지도 20년. 서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몇 번이고 오갔고, 도댕은 몇 번이고 청혼했지만, 외제니의 거절로 결혼이란 결실을 맺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외제니는 몸이 아파 쓰러지고, 도댕은 오직 그녀만을 위한 요리를 만든다.
| 음식을 통한 평등한 사랑과 관계의 의미
<프렌치 수프>는 음식을 통한 평등한 사랑과 그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오랜 시간 끓이고 정성을 들여야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곰국(또는 프랑스 가정식 수프 ‘포토푀’) 것처럼, 영화 또한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하는 음식들이 가득하다. 이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 안에 자극적인 맛으로 만들어 내놓는 음식이 아닌, 오랜 시간을 들여 풍미를 살려 내놓는 음식처럼, 사랑이란 복잡미묘한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감독은 말한다.
두 주인공을 통해 평등한 사랑이란 건 무엇인가를 재차 강조한다. 외제니는 도댕을 사랑하고 육체적인 관계도 맺는 사이이지만, 그의 청혼을 매번 거절한다. 그를 사랑하지만, 자신을 아내로서가 아닌 동등한 요리사로서 사랑받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그녀는 되도록 주방을 떠나지 않는다. 요리사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사랑을 느낄 있는 주 공간이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이란 시대적 배경인 영화에서 남성과 여성의 계급과 역할 차이는 확연하다. 따지고 보면 도댕은 고용주고 외제니는 고용인이라는 갑을 관계다. 게다가 만약 결혼한다면 외제니는 더 이상 요리사로 살기 힘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요리사로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길 바라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함께 바라보는 사랑의 눈높이가 매번 같아지길 바란다.
| 이렇게 섹시한 음식 조리 과정이라니?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드러내지 않는 섹시함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도댕과 외제니는 함께 음식을 만드는데, 중요한 건 이 자체가 섹시하게 느껴진다. 극 중 이들은 멋진 협업을 통해 음식을 만들면 그날 밤 잠자리를 같이한다. 여느 영화였다면 한 번쯤은 아름답고도 고혹적인 이들의 베드신을 보여줄 법한데, 트란 안 홍 감독은 그 생각을 갖기도 전에 컷을 외친다. 마치 아까 베드신 보다 더 야릇한 장면을 봤는데, 또 찍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음식을 만들며 맺는 관계는 유사 성적인 관계로까지 확장된다. 절묘한 이들의 합, 그리고 이들이 내놓은 결과물은 사랑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아드레날린이 분출되기까지 한다. 조리 과정 이후의 장면이지만, 도댕이 요리를 연구하기 위해 설탕에 절인 배를 손으로 꺼내어 만진 후, 외제니의 방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이때 나체로 누워 있는 외제니의 뒷모습은 마치 도댕이 끈적한 터치가 이뤄졌던 배 모양과 흡사하다. 에로틱함은 물론 한 폭의 그림 같은 이 장면 또한 도댕의 터치 이후 가차 없이 컷 한다.
계절로 따지면 영화는 가을에 가깝다. 설렘과 열정을 지나, 따뜻하고, 사려 깊고, 농익은 사랑의 감정이 곳곳에 묻어 있다. 안 먹어도 그 맛을 아는 것처럼, 영화 또한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이들이 나눈 사랑과 그 관계의 농도를 가늠할 수 있다. 감독은 결은 다르지만, 관계 속에서 빗어지는 섹시한 사랑의 맛을 보라고 펼쳐놓는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걸 트란 안 홍도 아는 듯하다.
| 프랑스 주방에서 덕임이를 만나다?
<프렌치 수프>는 도댕과 외제니의 평등한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사랑과 결혼이란 굴레에 저당 잡히지 않으려 하는 한 여성의 몸부림을 담는다. 도댕과 함께하고 싶지만, 자신의 일 또한 소중한 그녀에게 사랑, 그리고 결혼은 얻는 것 보다 잃을 게 많은 게 사실. 그렇기 때문에 외제니는 계속해서 도댕의 청혼을 거절하고 동거인으로서 살아간다. 결국 도댕과의 결혼을 승낙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외제니를 보며 떠올린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덕임(이세영)이다. 덕임이 또한 궁녀로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었는데, 이산(이준호)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눈다. 훗날 정조가 된 이산은 사랑하는 덕임에게 승은을 내리지만, 그녀는 무려 두 번이나 거절했다. 이유는 사랑보다 권력보다 자신의 삶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시대와 국가가 다른 이들이지만 사랑 뒤에 감춰진 불평등의 늪에 빠지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여성들이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결은 다르지만, 이들의 마지막 모습, 그리고 도댕, 정조 모두 뒤늦게 이들의 소중한 사랑을 깨닫는 부분도 오버랩된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평등한 사랑을 나눴던 주방에서 도댕과 외제니의 대화 회상 장면이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이때 그 공간을 채운 이들의 질문과 대답을 찬찬히 음미하길 바란다. 이 세상 다양한 음식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 세상 다양한 사랑은 존재하는 법. 급하지도, 빠르지도 않고 천천히 가을 녘에 물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감상하길 바란다.
p/s: 일단 뭘 먹고 영화를 보는 걸 권한다. 빈속에 보면 떨어지는 군침에 스스로 당황할지 모른다. 프랑스 유명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가 요리를 감수할 정도로 음식 퀄리티가 너무 좋아, 영화가 끝난 후에 프랑스 전문 레스토랑을 방문해서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시각이 아닌 청각에 의존해 감상하는 것도 추천한다!
사진 제공: 그린나래미디어
평점: 4.0 / 5.0
한줄평: 사랑, 평등, 존경이 담긴 음식의 맛!
* 〈씨네랩〉 초청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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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이 된 후의 타협
최악이 된 후의 타협
오슬로 3부작
요아킴 트리에 감독 자신이 영화를 만들 때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지만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요아킴 트리에 ‘오슬로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던 장르 영화 <델마>(2017) 뒤에 내놓은 신작으로 장편 데뷔작이었던 <리프라이즈>(2006)와 차기작 <오슬로, 8월 31일>(2011) 이후 10년 만에 찍은 이 영화는 첫 영화였던 <리프라이즈>를 지금의 배경으로 소환해 다시 써 내려간 이야기처럼도 느껴진다.
<리프라이즈>가 오슬로의 두 20대 초반 작가 지망생 청년을 주인공으로 두 인물의 공통된 꿈과 도전까지의 망설임, 과정에서의 실패를 겪으며 가지게 되는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했던 영화라면,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비슷한 골조의 이야기에 29살로 조금 더 나이가 있고 여성인 캐릭터 ‘율리에’를 주인공으로 둔다. 감각적인 연출부터 내레이션 식의 전개, 꿈을 찾는 주인공을 따라가는 방식은 두 영화를 겹쳐 보이게 만든다.
꿈과 현실의 타협
이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건 초기작과 유사한 구조의 이야기를 다시금 이야기하는 이유였는데 영화의 결론에 다다를수록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감독은 다양한 관계를 겪는 친구들을 보며 사랑에 대해, 삶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고 거기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방점은 바로 이 '타협'에 찍혀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 점이 이 영화를 감독 초기작에 깔려있던 우울한 정서보다도 희망과 공감의 마음으로 보게 만드는 힘이 되지 않을까.
율리에는 20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다짐한다. 시작할 때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작의 충동성만큼이나 한계에 부딪힐 때에도 쉽게 무너지고 갈등한다. 모든 걸 자신의 주관대로 바꿀 수 있다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건 사람 간의 관계도, 내게 주어진 시간도, 나 자신의 몸까지도 마찬가지다. 나를 위했던 선택은 나 자신을 최악이 되게 만들고, 누군가에게까지 나는 결국 최악이 되고야 만다. 누구나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통념이 옆구리를 쿡쿡 쑤시지만 일단은 나의 주관대로, 뜻대로 행동해본다. 율리에의 충동과 갈등 사이의 감정을 연기하는 배우 레나테 라인스베를 보고 있자면 <프란시스 하>와 <매기스 플랜>에서의 그레타 거윅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타협 후에도 계속되는 삶
사실 이 영화는 율리에의 입장에 얼마나 공감 가능한 지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영화라 할 수도 있다. 율리에라는 인물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만한 인물이 아니라 더욱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율리에가 결국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것이며, 유사한 경험을 겪었을 누군가는 공감할 것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는 게 이 영화의 구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는 12개의 챕터와 앞뒤의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구성됐는데 이것이 내레이션과 맞물려 마치 율리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읽는 듯한 인상을 준다.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게 만든다 하더라도 12개의 챕터는 결코 적지 않은 수이기 때문에 이 구성은 자칫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 수 있기도 한데, 오히려 이 영화는 어떤 챕터는 몇 분도 안돼서 끝나버리는 반면, 어떤 챕터는 다른 챕터에 비해 다소 길게 만들면서 고유의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순간의 감정을 녹여내는 요아킴 트리에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까지 더해져 율리에 삶의 한 부분을 특별한 마법과도 같이 만든다.
한계의 벽에 부딪히고 타협하면서도 율리에의 여정은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율리에의 삶이 계속되는 한 한 챕터의 끝은 또 다른 챕터의 시작이다. 모두가 각자 삶의 챕터를 써 내려가고 있는 만큼, 그리고 꿈과 현실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타협의 시기를 생의 중간에서 언젠가는 마주하게 되는 만큼 정도는 다를 지라도 이 영화를 보며 공감하고 위로받을 이가 적지 않을 것임을 확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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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낫 아웃 영화 후기 / 고3 야구선수 / 불공정한 세상의 서바이벌 / 돈으로 대학가나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낫 아웃”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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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일링 포인트 - 크리스마스 저녁때 손님 100팀을 받은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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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이벤트 공지?]
영화등대 채널 구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8월 4일 개봉'하는 원테이크 키친 서스펜스 영화
[보일링 포인트] 개봉전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질주하는 키친 서스펜스 [보일링 포인트],
기대평 남기고 가장 먼저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까지!
?참여방법
1. 보고싶은 이유와 기대평을 댓글로 작성한다! #보일링포인트
2. 추첨을 통해 [보일링 포인트] 시사회 초대권을 드립니다! (1인 2매)
?시사회 안내
일시: 7/23(토) 2:00pm
장소: CGV영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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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헬’s 키친!
90분간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현장 스릴러!
365일 중 가장 바쁜 크리스마스,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
셰프 ‘앤디’는 사고 없이 음식과 직원, 손님 모두를 살펴야 한다.
쏟아지는 주문으로 정신없는 가운데
반갑지 않은 위생 관리관의 급습과
입맛 까다로운 평론가의 눈치까지 보게 되고,
여기에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들은 서로 싸우기까지 한다.
도저히 통제되지 않는 현장에
`앤디`는 점점 끓어오르기 시작하는데…
단 한 번의 테이크로 질주하는 키친 서스펜스를 경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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