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04 15:34:56
2월 다섯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우리의 봉준호가 돌아왔다! <미키 17> 박스오피스 1위 등극

바로 어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가운데,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던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미키 17>은 개봉 첫 3일간 약 98만 명의 관객을 극장에 불러 모으며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3월 3일 기준 누적 관객 수 130만 명을 돌파하며 앞으로의 성적을 기대케 했습니다.
개봉 전 진행된 이동진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배우들의 향연과 미키와 미키와의 관계를 <미키 17>의 감상 포인트로 꼽았는데요. 주인공 '미키'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은 "제 바람은 제가 이 작품에서 느낀 걸 관객도 느끼는 거예요. 이 정도로 독특한 작품은 솔직히 정말 드물거든요. 이 작품은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정말 좋은 영화예요."라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여전히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누적 수익 1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2위는 우디 해럴슨, 시무 리우, 핀 콜이 출연하는 <라스트 브레스>가 차지했습니다.
<라스트 브레스>는 숙련된 심해 잠수부들이 맹렬한 자연의 힘과 싸우며 수백 피트 아래 바닷속에 갇힌 동료를 구하려 하는 실화를 그린 영화입니다.
지난주 2위를 차지했던 호러 영화 <더 몽키>는 한 계단 내려와 3위에 올랐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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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롤 - 수우미양가 중 우, 우, 우, 우, 우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성 영화와 오락성 영화. 모든 영화가 철학을 논해야하는 건 아니며, 오락성 재미만 존재한다고 해서 그 영화가 나쁜 영화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예술성 측면에서 훌륭한 영화가 있고, 오락성 측면에서 훌륭한 영화가 있다. 그리고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은 오락성 측면에서 훌륭한 감독이라 생각하며, 이번 크롤은 특히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설정은 참으로 대담하고 과감하고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것 들이다. 허리케인과, 부상자, 악어.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닌. 키워드만 봐도 재밌을 거 같지 않은가. 이런 설정들의 잘 버무려진 조합과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의 피칠갑이 넘치는 호러 스타일과의 만남은 그야 말로 훌륭하다 평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예술성과 영화적 미학은 찾을 수 없지만, 분명 훌륭한 '킬링타임' 영화이다. 초반부터 끝까지 꾸준히 악어와 고어씬을 보여줌으로서 지루하지 않고 빠른 전개를 통해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예산 영화라서 CG가 아쉽다는 점, 요거는 사실 볼 때 관객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라 큰 문제점이라 할 수는 없다. 저예산이라고는 해도 흔히 저예산 영화로 유명한 어사일럼과 트로마 영화보다는 훨씬 훌륭하니 킬링타임으로는 충분하다. 또 하나의 단점은 저예산과 연결되는 단점인데 일어난 사건에 비해 장소가 제한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에 서술한 훌륭한 재미와 끝까지 유지되는 공포로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단점이다. 마지막으로는 뭔가 영화 전체에서 손 꼽을만한 엄청난 고어가 없다는 점. 15세 판정을 받을 정도의 영화라 이 감독의 전작인 "피라냐 3D(2010)" 수준의 엄청난 고어는 기대하기 어렵다. 수우미양가 중 수가 없고 다 우라는 것이 1% 아쉬울 뿐. 하지만 99%가 마음에 든다는 것은 잊지 마시길.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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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이 된 후의 타협
최악이 된 후의 타협
오슬로 3부작
요아킴 트리에 감독 자신이 영화를 만들 때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지만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요아킴 트리에 ‘오슬로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던 장르 영화 <델마>(2017) 뒤에 내놓은 신작으로 장편 데뷔작이었던 <리프라이즈>(2006)와 차기작 <오슬로, 8월 31일>(2011) 이후 10년 만에 찍은 이 영화는 첫 영화였던 <리프라이즈>를 지금의 배경으로 소환해 다시 써 내려간 이야기처럼도 느껴진다.
<리프라이즈>가 오슬로의 두 20대 초반 작가 지망생 청년을 주인공으로 두 인물의 공통된 꿈과 도전까지의 망설임, 과정에서의 실패를 겪으며 가지게 되는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했던 영화라면,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비슷한 골조의 이야기에 29살로 조금 더 나이가 있고 여성인 캐릭터 ‘율리에’를 주인공으로 둔다. 감각적인 연출부터 내레이션 식의 전개, 꿈을 찾는 주인공을 따라가는 방식은 두 영화를 겹쳐 보이게 만든다.
꿈과 현실의 타협
이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건 초기작과 유사한 구조의 이야기를 다시금 이야기하는 이유였는데 영화의 결론에 다다를수록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감독은 다양한 관계를 겪는 친구들을 보며 사랑에 대해, 삶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고 거기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방점은 바로 이 '타협'에 찍혀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 점이 이 영화를 감독 초기작에 깔려있던 우울한 정서보다도 희망과 공감의 마음으로 보게 만드는 힘이 되지 않을까.
율리에는 20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다짐한다. 시작할 때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작의 충동성만큼이나 한계에 부딪힐 때에도 쉽게 무너지고 갈등한다. 모든 걸 자신의 주관대로 바꿀 수 있다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건 사람 간의 관계도, 내게 주어진 시간도, 나 자신의 몸까지도 마찬가지다. 나를 위했던 선택은 나 자신을 최악이 되게 만들고, 누군가에게까지 나는 결국 최악이 되고야 만다. 누구나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통념이 옆구리를 쿡쿡 쑤시지만 일단은 나의 주관대로, 뜻대로 행동해본다. 율리에의 충동과 갈등 사이의 감정을 연기하는 배우 레나테 라인스베를 보고 있자면 <프란시스 하>와 <매기스 플랜>에서의 그레타 거윅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타협 후에도 계속되는 삶
사실 이 영화는 율리에의 입장에 얼마나 공감 가능한 지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영화라 할 수도 있다. 율리에라는 인물이 누구에게나 공감을 얻을만한 인물이 아니라 더욱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율리에가 결국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것이며, 유사한 경험을 겪었을 누군가는 공감할 것이다. 이런 점을 보완하는 게 이 영화의 구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는 12개의 챕터와 앞뒤의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구성됐는데 이것이 내레이션과 맞물려 마치 율리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읽는 듯한 인상을 준다.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게 만든다 하더라도 12개의 챕터는 결코 적지 않은 수이기 때문에 이 구성은 자칫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 수 있기도 한데, 오히려 이 영화는 어떤 챕터는 몇 분도 안돼서 끝나버리는 반면, 어떤 챕터는 다른 챕터에 비해 다소 길게 만들면서 고유의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순간의 감정을 녹여내는 요아킴 트리에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까지 더해져 율리에 삶의 한 부분을 특별한 마법과도 같이 만든다.
한계의 벽에 부딪히고 타협하면서도 율리에의 여정은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율리에의 삶이 계속되는 한 한 챕터의 끝은 또 다른 챕터의 시작이다. 모두가 각자 삶의 챕터를 써 내려가고 있는 만큼, 그리고 꿈과 현실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타협의 시기를 생의 중간에서 언젠가는 마주하게 되는 만큼 정도는 다를 지라도 이 영화를 보며 공감하고 위로받을 이가 적지 않을 것임을 확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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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지는 금빛 토사물, <슬픔의 삼각형>
이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및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지난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을 보고 나오는 길에 친구에게 질문했다. ”부르주아들을 놀려 먹는 영화들은 왜 이렇게 재밌을까?” 더 넓게는 인종적, 젠더적 권력을 전복하는 내용이 구미가 당길 때도 있다. 어떤 영화들은 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조롱하며 어떤 때에는 특별한 잘못이 없음에도 죽여 버리기도 한다. <슬픔의 삼각형>은 이렇게 ‘위에서 아래로 올라가는’ 유머를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를 단 채 스크린에 걸렸다. 결과는 8분 간의 기립박수와 완전히 압도당한 채 용산역 지하철 플랫폼을 터덜터덜 걷는 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슬픔의 삼각형>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런 멋진 제목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편과 황금색의 무언가를 토해내는 포스터를 보고는 저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해서 벼랑 끝까지 떠밀릴지 확인하게 되기만을 기다렸다.
보기 전에는 구토를 하는 장면이나 침몰하는 요트, 식탁 앞에서 사진을 찍어대는 젊은 남녀의 모습 같은 이미지 때문에 <더 메뉴>처럼 긴강감을 높이면서 조금 더 신랄한 유머를 구사하는 정도를 예상했다. 그리고 요트 위가 가장 중요한 공간일 거라는 상상도 했다. 그런데 젊은 커플과 그들의 유치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너무나 시의성 있어서 미치도록 웃긴) 갈등에서 시작해 요트, 무인도로 옮겨 가는 파트 분배가 흥미로웠다. <슬픔의 삼각형은> 너무 고지식하지도, 지나치게 가벼워서 생각을 못하게 만들지도 않는 적절한 유머를 구사한다. 그러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깔깔 웃을 수밖에 없는 장면, 놀람과 역겨움, 웃음을 동시에 토해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도록 만드는 장면들로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슬픔의 삼각형>은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처럼 반복적이고 연극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연출을 이어나가거나, <더 메뉴>처럼 하나의 소재를 붙들다 이내 불타 없어져버리지 않는다. 고통을 주기보다는 오물을 뒤집어씌우면서 조롱하고, 제 업보 때문에 바보같이 죽어버리는 캐릭터보다는 깔끔하게 수장해버리는 방향을 택하면서 구조를 하나씩 전복해나간다. 거기에 매끄러운 촬영과 과장된 캐릭터를 그렇지 않게 연기하는 배우들이 더해지면서 세련된 영화가 된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직접 말했듯, 동시대 관객들이 극장에서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리며 즐길 수 있는 영화로 거듭났다. 먼 미래에 누군가가 21세기를 비틀어 묘사한 가장 신랄하고 웃긴 영화를 찾는다면 주저 없이 추천해 주고 싶다. 바위를 든 채 번뜩이는 눈을 한 가모장제 사회마저.
실은 시사회를 처음 가봐서 티켓 수령할 때부터 엄청 우왕좌왕했다… 줄이 두 개로 나뉘어 있는 데에서 1차 당황, 직원분께서 내게 ‘구토 방지용 봉투’만 주시고 팜플렛은 안 주셔서 2차 당황. 하지만 출석체크를 무사히 마치고 이 넓은 용산 CGV에서 내가 해냈다..!! 하는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상영관에 들어갔는데 자리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ㅎㅎ 비록 옆에 앉은 남자분이 지각 + 상영관 안에서 음주 + 중간에 퇴장하기…를 모두 해내셨지만 영화도 정말 재밌었고 첫 시사회 경험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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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와 돌아온 씨네픽입니다!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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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더 퍼스트 슬램덩크> (-)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3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2023년 들어 최장의 기록인데요, 누적 관객수 290만 관객을 돌파하고 300만을 앞두고 있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기록적인 흥행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번 주는 마블 신작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주말 개봉을 앞두고 있어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상황인데요, 현재 예매율 1위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3배 앞선 수치를 기록 중입니다. 이로써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개봉 첫 날 박스오피스 1위를 할 것이 확실시 된 상황이지만, 첫 주말을 기점으로 실관람객의 평에 따라 앞으로의 순위 여부가 정해질 전망입니다.
2. <타이타닉: 25주년> (NEW)
개봉 25주년을 맞아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한 <타이타닉>은 지난 주말 15만명이 넘은 관객을 동원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2위에 자리했습니다. 이는 역대 국내에서 재개봉된 외화 가운데 역대 최고 기록인데요, 대한민국에서의 기록이 해외 개봉 국가 중 흥행 성적 중 1위를 달성했다고 합니다. <타이타닉: 25주년>을 팬들이 찾는 이유로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작품에 대한 관심과 맞닿아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바타: 물의 길>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감독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3. <아바타: 물의 길> (▼1)
<아바타: 물의 길>은 재개봉한 <타이타닉>에 밀려 주말 박스오피스 3위로 내려갔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누적 관객을 1067만명까지 끌어모으며 매출액은 역대 2위인 1361억 5565만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1357억 7483만원을 기록했던 한국 영화 <명량>을 제친 기록으로, 현재 1위를 지키고 있는 <극한직업>의 매출액과 약 30억원 가량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1위에 오를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마찬가지로 개봉을 앞둔 마블의 신작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관람객 평가에 따라 앞으로의 지표가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39회 예측 이벤트는 2월 2주차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한 주동안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 주셨는데요, 실제 1위를 차지했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1위를 예측한 유저는 63%로 높은 확률을 기록했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 질주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많은 분들이 정답을 맞히신 것으로 보입니다. <타이타닉: 25주년>이 예상 밖으로 매우 좋은 성적을 내 2위, 3위의 정답 비율은 19%, 11%에 머무른 것으로 추측됩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140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4. <교섭> (▼1)
<교섭>은 한국 영화 중 유일하게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5위 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타이타닉: 25주년>, <아바타: 물의 길>이 압도적으로 관객을 끌어모으며 한국 영화들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양상입니다. 이번 주말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개봉을 앞두고 있어 <교섭> 역시 지난 주보다 낮은 관객 수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5. <바빌론> (▼1)
데이미언 셔젤의 <바빌론> 역시 국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입니다. 3시간이 넘는 긴 상영시간과 대중을 사로잡기에는 조금 마이너틱한 소재로 인해 개봉 전에도 우려의 대상이었는데요, 주말 관객 수는 34,069명으로 누적 관객 수 역시 161,622명에 그쳤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애호가들의 평은 좋은 편이니, <바빌론>을 위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도 얼마 간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2)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실제 스트리퍼였던 배우 채닝 테이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 많은 인기를 끌었던 <매직 마이크>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 <매직 마이크스 라스트 댄스>가 지난 주말 1위를 차지하며 막을 올렸습니다. <매직 마이크스 라스트 댄스>는 미국 최고의 남성 스트리퍼 '마이크'(채닝 테이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1편을 연출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다시 한 번 메가폰을 잡은 작품입니다.
2위는 <아바타: 물의 길>이, 3위는 <타이타닉: 25주년>이 각각 차지해 제임스 카메론의 두 작품이 나란히 북미 박스오피스 2위, 3위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지난 주 2위를 달성했던 <80 포 브래디>가 4위를 기록하였으며, 1위를 달성했던 <똑똑똑>은 개봉 2주차 6위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5위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개봉했던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이 차지하여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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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2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더 다양한 컨텐츠로 찾아뵙기를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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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 로치가 말하는 '민족'
켄 로치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보여주듯, 민족은 단결의 이름이자 분열‧적대의 이름이다. 먼저 단결이다. ‘민족’은 아일랜드인들이 독립이라는 공동의 꿈을 가졌음을 표지하는 범주다. 아일랜드인은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독립을 꿈꾸며 ‘하나’가 된다. 하지만 민족은 아일랜드인 사이의 차이를 보이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아일랜드인에게는 독립 이후에 대한 다양한 꿈이 있었다. 누군가는 사회주의에 가까운, 누군가는 전통적 권위에 기댄 사회를 꿈꿨다. 그러나 민족의 독립이라는 ‘같은 꿈’을 꾸는 동안 이 차이는 논의되지 않는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는 치열하게 조정‧경합되었어야 할 차이들이 민족이란 이름 아래 억눌린 채 쌓여 있다가 끝내 폭발해 버리고 마는 과정이 담겼다. 우리와 비슷한 아일랜드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민족’이 무엇을 가능케 했고 또 무엇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는지를 숙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난민, 이주민 혐오의 시대에 굉장히 시급한(혹은 이미 늦은) 작업이다.
1920년대 아일랜드의 한 마을. 영국 군인이 불시에 들이닥친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하키를 치는 게 집회를 금지한 조치에 위반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과정에서 17살 청년 미하일이 영국군에게 반항하다가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하일의 죽음은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공통의 비애를 느끼게 한다. 모두의 슬픔 속에서 주인공 데미엔의 고민은 깊어진다. 데미엔은 의사 자격증을 딴 시골 마을의 드문 엘리트인데, 이제 막 런던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곧 마을을 떠날 참이었기 때문이다.
고민을 품은 채 런던행 기차를 기다리던 기차역에서, 데미엔은 영국군에게 두드려 맞는 아일랜드인 기관사를 본다. 그리고 미하일과 기관사, 자신 사이에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아일랜드가 자유를 얻지 못하는 이상, 아일랜드인은 어디서든 구타당할 수 있다. 이 깨달음이 데미엔의 인생 경로를 바꾼다. 데미엔은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아일랜드인의 ‘공통의 비애’를 극복하는 일에 자신을 투신하기로 한다. 마을 청년들과 함께 아일랜드 독립전쟁에 뛰어든 데미엔은 게릴라 부대를 꾸려 영국과 치열하게 싸운다.
영화가 의미심장해지는 건 이 공통의 비애가 위기에 빠지기 시작하면서다. 첫 번째 사건은 어릴 때 함께 자란 동네 꼬마 크리스를 밀고자란 이유로 처형한 일이다. 망설임‧괴로움 끝에 크리스를 총으로 쏜 데미엔은 이 사실을 직접 크리스의 어머니에게 전한다. 데미엔 일행에게 줄 음식을 만들고 있던 크리스의 어머니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다시는 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어리숙하고 순박한 동네 소년이었던 크리스의 죽음은 모든 아일랜드인을 ‘민족’이란 이름으로 묶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드러낸다. 크리스 총살과 그 어머니의 슬픈 눈빛은 모든 아일랜드인의 자유를 위한다는 데미엔의 정당성을 마구 뒤흔들어 놓는다.
두 번째는 고리대금업자와 가난한 노파의 대립이다. 둘은 모두 아일랜드인이다. 하지만 계급이 다르다. 마을 사람들은 고리대금업자가 노파를 착취하도록 둬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고리대금업자가 독립군에 무기 자금을 대는 사람이기에 그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나뉘어 갈등한다. 데미엔과 그의 동지이자 친형인 테디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것도 이때부터다. 데미엔은 가난한 노파의 편에, 테디는 고리대금업자의 편에 선다. 아일랜드 독립이라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다른’ 사회적 조건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민족이라는 ‘동질적’ 집단이 무엇을 배제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인지를 고민케 한다.
가장 결정적인 세 번째 사건은 아일랜드의 자유국 지위 확보 이후에 일어난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평화 협정을 맺고 아일랜드의 자유국 지위에 합의했다. 아일랜드가 일정 정도의 자치를 보장받은 것이다. 평화협정 이후, 데미엔과 테디 그리고 아일랜드인들은 둘로 쪼개진다. 제한된 자유나마 수용하자는 사람과 완전한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자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고조된다. 둘 사이의 대립은 격화되어 영국군이 아일랜드인을 핍박할 때와 다름없는 정도의 폭력이 오고 간다. 아일랜드인들은 절망한다. 어제까지 밥을 지어 주고 무기를 숨겨 주었던 자국의 군대가 둘로 나뉘어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상황에 그들이 느낀 분노와 슬픔, 좌절의 크기가 얼마나 큰 것일지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다.
급진적 자유를 갈망하던 데미엔은 결국 온건한/제한된 자유에 만족하자는 테디의 군대에 붙잡히고, 무기의 위치를 발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총살당한다. 데미엔 총살 명령을 내리는 건 그의 친형 테디다. 영화는 테디가 죽은 데미엔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같은 꿈'을 꾸던 형제가 정작 ‘내부’의 차이를 조율하지 못해 마주한 비극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역사의 특정한 국면에서 민족은 분명 저항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정치적 범주가 된다.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이 모이고, 경험‧감정을 공유하며, 투쟁할 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면이 전환되고 민족이 더 이상 저항의 범주로만 작동하지 않을 때, 문제는 시작된다. 동질성을 강조하는 민족 담론이 내부의 차이를 삭제하고 진압하는 폭력의 명분이 되는 것이다.
폭력을 극복하자는 명목하에 부상한 민족 범주가 폭력의 주체가 된다는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테디와 데미엔의 갈등이 본격화되기 전, 데미엔은 연인 시네드가 영국군에게 고초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데미엔은 시네드를 구하려 하지만 테디가 막는다. 위치가 노출될 경우 전 부대원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데미엔은 결국 형 테디의 말을 따른다. 그리고 주저앉아 “느끼는 법을 잃었다”며 오열한다. 데미엔의 눈물은 위기에 빠진 연인을 향한 공감보다 ‘합리적 선택’을 우선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좌절감의 표현이다.
앞서 언급했듯, 데미엔은 마을 청년 미하일의 죽음과 아일랜드인 기관사가 영국군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며 분노와 슬픔을 ‘느꼈고’ 이를 동력 삼아 아일랜드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정작 투쟁의 과정에서 그는 느끼는 방법을 잃고 말았다. 이는 데미엔만의 문제가 아니다. 데미엔이 동네 청년 크리스를 총살한 후 괴로워했듯, 테디도 친동생 데미엔을 총살한 후 눈물을 흘린다. 분명하게만 보이던 자유의 길이 점차 어렵고 불투명해진다.
이 모든 비극과 혼란은 느낌에 기반한 열린 공동체가 민족이라는 이름의 닫힌 공동체로 전환될 때 일어난다. 느낌의 공동체는 포용적이다. 아일랜드인을 향한 영국의 제국주의적 폭력에 분노한다면, 영국인도 저항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족 공동체는 이 분노한 영국인을 포용하지 못한다. 나아가 ‘민족적 대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는 내부 구성원들을 ‘적’으로 만든다. 이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민족 범주는 저항의 공동체로 출발한 스스로가 억압의 이름이 되는 모순을 피할 수 없다. 데미엔과 테디가 비극을 비껴가지 못한 건 모두 이 때문이다. 영화를 보며 슬펐던 건, 이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익숙해서였다. 지금 우리의 민족 담론은 어디에 와 있는가? 우리나라 사람도 힘든데 무슨 난민이고 이주민이냐는 말이 횡행하는 지금, ‘한민족’의 서사에 이 슬프다는 ‘느낌’의 자리가 보장되길, 그럼으로써 열린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기에는 너무 늦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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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그보다 늦게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다
7★/10★
영화만큼이나, 때로는 영화보다 더 유명한 영화 음악(혹은 음악 감독)이 있다. 영화를 본 후 누가 연출했는지보다 음악 감독이 누구인지가 궁금해질 때도 있다. 그리고 엔리오 마리꼬네야 말로, 이 두 사례의 가장 적합한 예다. 〈엔리오: 더 마에스트로〉는 2020년 타계한 전 세계적인 영화 음악가 엔리오 마리꼬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고백하자면,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해 2017년까지 엔리오가 음악 작업을 한 영화 중 내가 본 것은 〈시네마 천국〉, 〈헤이트풀 8〉 두어 편에 불과하다. 내겐 곱씹다 보면 여운을 자아내는 그와의 추억이 없다. 그러나 156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현대 영화 음악이 그에게 빚진 것이 너무나도 많고,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해온 음악이 그의 성과라는 점을 새로이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엔리오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음악을 시작했다. 이후 현대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고프레도 페트라시에게 작곡을 배웠다. 엔리오가 ‘순수 음악’의 테두리 아에서 음악을 배웠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장점은 탄탄하고 체계적인 기본기를 바탕으로 영화 음악을 작업해 다채로운 작업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단점은 동료들이 엔리오의 영화 음악 작곡을 하찮게 대했다는 것이다. 영화 음악은 순수 음악보다 한참 격이 떨어지는 장르로 여겨졌다. 엔리오가 동료들에게서 고립된 이유다. 더불어 그는 늘 예술적 정체성과 ‘순수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배신자’, ‘매춘’, ‘천박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순수 음악계 출신으로 이와 같은 시선을 어느 정도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던 엔리오는 오랜 세월 이 문제로 괴로워했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 음악 쪽에서는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당시의 영화 음악은 천편일률적인 배경 연주곡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엔리오는 전통적인 사운드에 실험적인 요소를 결합해 영화 음악을 별 의미 없는 부가 요소로 취급하는 현실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캔 소리, 첨벙거리는 소리, 휘파람 등을 음악에 더해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사운드를 만들었고, 영화는 그 덕에 더 큰 몰입감을 가질 수 있었다. 〈엔리오: 더 마에스트로〉에는 그가 작업한 영화 음악과 해당 음악이 사용된 장면이 여럿 소개된다. 본 적도 없는 영화의 짧은 장면이, 마찬가지로 짧은 음악과 함께 소개될 뿐인데도 배우의 감정과 영화의 분위기가 생생히 느껴졌다. 엔리오의 음악이 화면 속 여러 요소와 만나 극적인 시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미처 영화 음악인지 몰랐던, 귀에 익숙한 곡도 꽤 많다. 엔리오의 작업이 얼마나 큰 문화적 파급력을 지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그의 음반은 전 세계에서 7,000만장, 한국에서는 200만 장 이상 팔렸다고 한다).
작업한 영화마다 자신의 인장을 새긴 엔리오. 엔리오는 이내 영화 음악계의 스타가 되었다. 보통 음악 감독이 영화를 먼저 보고 그에 맞는 음악을 작업하는 데 반해, 엔리오의 음악을 먼저 들은 몇몇 감독은 자신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요소를 그로부터 찾아내 이를 보완하는 연출을 하기도 했다. “영화 음악은 감독의 역량 바깥에 있다”, “곡 자체가 의미가 있어야 영화에 기여할 수 있다”라는 엔리오의 말에서 자기 일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프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늘 혁신의 전위이기를 멈추지 않은 엔리오. 그의 이런 면모가 ‘영화 음악에 관한 영화’를 가능케 한다. 때로는 관객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분야에서도, 누군가는 장인정신을 발휘해 영화에 기여하고 있고, 〈엔리오: 더 마에스트로〉가 입증하듯 이런 헌신은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가 된다. 영화를 아끼는 동시대 관객이 이 위대한 장인보다 뒤늦게 태어나 그가 이뤄놓은 것들을 누리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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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시대] 끝장리뷰 | 대만과 중국 | 에드워드 양의 양가성 | 예술에 대한 코멘트 | 오프닝, 결말해석 | 제목분석 | 아킴과 찰리 채플린 상징
[독립시대](199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대만
Chapter 2 예술
00:00 독립시대
01:20 대만 은유
02:45 유자의 곤혹
04:07 제목 분석
04:57 아킴과 채플린
08:18 양덕창 예술론
09:40 오프닝, 결말해석
11:39 별점 및 한 줄 평
11:56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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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헤어스타일, 감미로운 목소리, 낭만적인 풍경화. '참 쉽죠?'로도 알려진 밥 아저씨에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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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실종된 딸을 찾고 있는 관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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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작가인 루쿵원을 죽이면 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거래를 제안한다.
이에 관닝은 그녀의 위험한 제안을 수락하고 루쿵원을 죽이기 위해 접근한다.
한편 루쿵원은 자신의 팬이라 밝힌 관닝을 그의 소설에 등장시키고
관닝은 곧 소설이 현실을 바꿀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현실을 바꿔 딸을 구할 것인가? 소설을 바꿔 딸을 구할 것인가?
소설과 현실이 이어진 평행이론의 세계관!
펜 끝에서 창조되는 새로운 세계의 문이 지금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