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04 15:34:56
2월 다섯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우리의 봉준호가 돌아왔다! <미키 17> 박스오피스 1위 등극

바로 어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가운데,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던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미키 17>은 개봉 첫 3일간 약 98만 명의 관객을 극장에 불러 모으며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3월 3일 기준 누적 관객 수 130만 명을 돌파하며 앞으로의 성적을 기대케 했습니다.
개봉 전 진행된 이동진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배우들의 향연과 미키와 미키와의 관계를 <미키 17>의 감상 포인트로 꼽았는데요. 주인공 '미키'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은 "제 바람은 제가 이 작품에서 느낀 걸 관객도 느끼는 거예요. 이 정도로 독특한 작품은 솔직히 정말 드물거든요. 이 작품은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정말 좋은 영화예요."라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여전히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누적 수익 1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2위는 우디 해럴슨, 시무 리우, 핀 콜이 출연하는 <라스트 브레스>가 차지했습니다.
<라스트 브레스>는 숙련된 심해 잠수부들이 맹렬한 자연의 힘과 싸우며 수백 피트 아래 바닷속에 갇힌 동료를 구하려 하는 실화를 그린 영화입니다.
지난주 2위를 차지했던 호러 영화 <더 몽키>는 한 계단 내려와 3위에 올랐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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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값하는 재난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잠에서 깬 남편 '클레이'(에단 호크)에게 '아만다'(줄리아 로버츠)는 선언한다. 빌라를 빌렸으니 당장 그곳에서 휴가를 보낼 거라고. 그렇게 클레이와 아만다, 아들 '아치'(찰리 에반스)와 작은 딸 '로즈'(파라 매캔지)는 여행길에 오른다. 기대 이상으로 호화로운 빌라 덕분에 갑작스러운 휴가는 꽤 즐거워 보인다. 자녀는 수영장을 즐기고, 부부는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해변에서부터 휴가가 꼬인다.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던 도중 거대한 유조선이 해수욕장을 덮친 것. 급히 빌라로 되돌아 오지만, 와이파이와 핸드폰 데이터, 심지어 TV까지 먹통이 되면서 아만다는 점점 당황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자신을 빌라 주인이라고 소개한 'G.H.'(마허샬라 알리)와 그의 딸이 불쑥 찾아오기까지 한다. 그렇게 아만다의 휴가는 재난이 되기 시작한다.
재난 영화의 클리셰에 도전장을 던지다
건물과 다리가 무너진다. 검은 연기가 치솟고, 차들은 물에 잠기며,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군인과 경찰의 무의미한 고함이 사이렌과 헬기 소리 사이에 갇힌다. 자유의 여신상도, 타워 브리지도, 에펠 탑도 논외는 아니다. 성 베드로 성당이 갈라지면 확실해진다. 신조차 사람을 외면했다고.
재난 영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2012년처럼. 이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는 영화는 없다. 이야기 구조도 공식화되어 있다. 재난을 예측한 인물은 정부나 기관에서 외면받는다. 일부 음모론자만 위기를 눈치챈다. 동물들이 이상 행동을 보일 때는 이미 늦었다. 이처럼 클리셰가 반복되는 이유는 명백하다. 뻔하다고 비판받을지언정 실패하지 않으니까. <2012>가 그랬고, <투모로우>가 그랬다. <해운대>나 <타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강력한 권위는 도전을 유발하는 법. 클리셰에 도전하는 영화도 적지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도 그중 하나다. 샘 에스마일 감독은 미국 정부가 붕괴하고 뉴욕이 파괴되는 재난을 그려냈다. 하지만 자극만을 위한 이미지 전시는 찾을 수 없다. '세상을 등진다'는 제목대로다. 대신 사람을 비춘다.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재난을 맞닥뜨린 사람들을.
현실로 튀어나온 재난 영화
물론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가 재난을 아예 안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재난을 다룬다. 판에 박힌 재난 영화에서 벗어나겠다는 포부를 표한다. 극 중 재난은 디지털 재난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네트워크가 차단되면 일어날 수 있는 사건과 상황을 하나씩 선보인다. 특히 매 순간마다 익숙함을 거부하는 전복적 아이디어가 인상적이다.
유조선 장면이 대표적이다. 자동 항법 시스템이 고장 난 유조선이 해수욕장을 들이받는다. 이 장면에서는 영상과 음성의 불일치가 돋보인다. 영상은 평화로운 휴가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아만다와 클레이는 일광욕을 즐기고, 아치는 썸녀랑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로즈의 시점에서 유조선이 점점 커지자, 음산한 배경 음악이 서서히 존재감을 내뿜는다. 충격적인 이미지 없이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일깨워진다.
비슷한 아이디어는 다른 장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뉴욕 시내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차들로 막혀 있다. 일반적인 재난 영화라면 사람들이 차를 버리고 떠났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에서는 다르다. 막 출고된 테슬라 전기차들이 자율 주행 중에 통제권을 잃고 충돌한 결과 길이 막혔기 때문. 이 발상의 전환 덕분에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의 재난은 더 현실적이고, 생생하다.
이러한 장면은 관객의 태도를 바꾼다. 많은 재난 영화는 거대한 스케일을 강조한다.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광경 앞에서 관객과 영화의 거리는 멀어지고, 관객은 영화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으므로. 재난은 그저 눈요깃거리인 셈이다.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다르다. 부조화와 발상의 전환으로써 거리감을 좁힌다. 넷플릭스 작품임을 고려하면 특히 인상적이다.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재난을 맛볼 수 있으니까.
가짜 고립과 진짜 고립
스크린으로부터 일상으로 디지털 재난을 옮겨온 덕분에,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의 이야기도 설득력이 높아진다. 영화는 재난이 초래한 고립을 미시적 관점에서 파고들며 진짜 재난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 질문은 오프닝에서부터 암시된다. 아만다는 가족 휴가를 선언한다. 사람들이 싫어졌으니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가득한 도시에 지쳤다면서.
이 장면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연출이 돋보인다. 아만다는 제4의 벽을 넘듯이 카메라를 똑바로 노려본다. 자기가 얼마나 도시에서 지쳤는지, 사람들이 싫어졌는지 제발 알아달라고. 제목대로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결심이 결코 허황되거나 과장되지 않았다고. 그런데 카메라도 지지 않고 아만다의 얼굴, 그리고 눈을 연이어 클로즈업한다. 마치 "진짜로 세상을 등진 채 고립되고 싶어?"라고 되묻는 듯이.
그 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녀의 결심이 얼마나 미약했는지 보여준다.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고립을 자처했지만, 아만다는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 진정한 고립의 실체를 마주한 후에야 꿈꾸던 휴가가 가짜 고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와이파이와 데이터가 먹통이 돼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하는 상황을 그녀는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빌라 주인인 G.H.가 딸과 함께 찾아왔을 때 그녀의 무력함은 극대화된다. 메일도 볼 수 없어서 그들의 신분을 명시적으로 확인할 수 없자, 그녀는 극도의 불신을 숨기지 못한다. 도시가 이미 정전됐고 마비되었다는 G.H.의 증언을 무시하고, 그토록 싫어했던 도시로 돌아가기로 결정할 정도로.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도 세상을 등지고 싶어 하던 사람이 누구보다도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 싶어 한다.
진정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법
따라서 남은 이야기가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보여준다고 해도 놀랍지는 않다. 특히 아만다와 가장 반대되는 캐릭터가 가장 세상과 적극적으로 연결된다는 지점이 흥미롭다. 바로 로즈다. 그녀는 일견 젊은 세대의 단점만 보여주는 인물 같다. <프렌즈>를 보지 못해 불안해하고, 태블릿과 TV가 안된다고 보채는 모습은 과장 보태 중독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그녀는 극 중 유일하게 뭔가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유조선도 가장 먼저 발견했고, 동물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니 그들을 추적하자는 것도 그녀만의 발상이다. 다들 집에서 상황을 기다려 보자고 할 때 유일하게 집 밖으로 나가서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기도 한다. 그 결과 그녀는 지하 벙커를 찾아내고, DVD로 그토록 염원한 <프렌즈> 마지막 회를 보는 데도 성공한다.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가 진정으로 보여주려는 재난과 연결 지어 생각하면 로즈의 행적은 꽤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연결이 끊긴 상황 그 자체를 재난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유조선 오작동, 자율 주행차 충돌, 비행기 추락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클레이, G.H., '대니'(케빈 베이컨)의 삼자대면에서 볼 수 있는 양극화가 그 재난이다. 정보의 바다에서는 정보를 갖느냐 마느냐에 따라 생존 여부가 갈릴 수밖에 없으므로.
실제로 수동적인 가족과 이웃은 재난을 악화한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겠다는 아만다의 결정이 시작이다. 새로운 정보가 생길 때까지, 세상과 연결될 때까지 기다리자는 선택도 마찬가지다. "안전한 집에서 기다리자"는 대사는 스스로 괴사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무력하게 정보를 기다릴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해야 비로소 실마리가 보일 테니. 로즈가 벙커를 찾아내듯이.
마지막 단추만 잘 뀄더라면
이처럼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형식도 내용도 신선한 재난 영화임이 확실하다. 다만 마무리가 아쉽다. 우선 미스터리를 클리셰로 채우는 선택이 문제다. 영화는 중국이나 이라크가 배후에 있는 테러로 인해 미국 사회가 정지되었음을 암시한다. 챕터가 바뀔 때마다 우주에서 지구를, 달에서 지구를 비추며 극도로 끌어올린 긴장감을 재난의 정체나 뒷배가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듯싶다.
숨은 정보를 안일하게 알려주는 방식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애널리스트인 G.H.의 입을 빌려 시청자가 궁금해할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의 말만 있을 뿐, 믿을만한 추가 정보나 증거는 없다 보니 착실히 쌓은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는 무너진다. 차라리 세 번째 인물인 대니를 만나기 전까지 그 어떤 확답을 내놓지 않았으면 마지막까지 재난의 실체를 감추며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연결성도 떨어진다. 영화 중간에는 의문스러운 장치가 많다. 빌라와 헛간을 둘러싸고 바라보는 사슴 떼, 수영장을 점령한 홍학이 대표적이다. 중간중간 귀를 찢는 듯한 굉음, 아들의 병을 유발한 벌레도 있다. 이들의 등장은 작위적이다. 필요한 순간에 등장해 분위기를 환기하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큰 그림은 끝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한두 마디 단편적인 대사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몰입도에 비해 전체적인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시작에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대상이 등장한다. 그러나 종국에는 그들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드러난다.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그렇지 않다. 독특한 장치로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 간의 그물을 만드는 데는 끝내 실패했기 때문이다.
Acceptable 무난함
그랜드슬램으로 시작해 블론세이브로 끝난 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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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스 오브 막시> 여성 영화의 자기 파괴적 발전
<걸스 오브 막시>
여성 영화의 자기 파괴적 발전
새로운 학년을 맞이한 '비비안(해들리 로빈슨)'은 절친인 '클라우디아(로런 차이)'와 등교 첫날부터 학기마다 여학생들을 품평하는 리스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불쾌한 기분을 애써 떨쳐내려고 한다. 그런 그녀 앞에 전학생 '루시(알리시아 파스칼 페냐)'가 나타난다. 자신을 포함해 여자라면 일단 집적대는 미식 축구부 주장 '미첼(패트릭 슈왈제네거)'에게 명확히 거부의사를 표하는 루시. 그런 그녀를 보면서 비비안은 왜 여태까지 쌓이던 분노를 당당히 표현할 용기를 내지 못했는지 생각에 잠기고, 여성 운동을 펼쳤던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 후 교내 여성 운동, '막시 Moxie(용기)'를 시작한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할리우드는 물론 국내 영화계 주류를 강타한 트렌드가 있다. 바로 페미니즘이다. 여성 인권 향상의 기치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은 <스타워즈>나 <터미네이터>처럼 오래된 프랜차이즈를 리모델링하고 <원더우먼>과 <캡틴 마블>처럼 영역을 넓혀가며 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언론사의 성 불평등을 고발하는 <밤쉘>, 능동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여성상을 조명한 <작은 아씨들>과 <벌새> 같은 작품들은 평단의 호평 속에 시상식을 휩쓸었다.
그러나 모든 빛에는 필연적으로 그림자가 따르듯이, 영화계의 새로운 방향성은 짙은 어둠을 만들기도 했다. 여성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여성에는 백인이나 중산층만 포함하며 여성이라는 범주 안에 존재하는 사회적, 경제적 차이를 무시하거나, 역으로 남성 차별을 정당화하는 작품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메시지 전달 방식에 있어서는 페미니즘을 '영화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걸캅스>와 같은 몇몇 영화는 개연성이나 장르의 문법과 같은 최소한의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페미니즘 철학을 전달하는 데 급급했다. 그 결과 여성 영화에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 내지는 강제하는 프로파간다라는 이미지가 덧입혀지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제니퍼 마티유의 소설을 영상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걸스 오브 막시>의 초중반부는 이러한 여성 영화의 부정적 전철을 착실히 뒤따라간다.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여성 운동을 다루는 이 영화는 상당히 작위적이고 직접적인 연출로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도한다. 예를 들어 교내 모든 여학생들에 대한 품평이 전체 메시지로 뿌려지고, 남학생들은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전학생 루시는 이유 없이 미첼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이 문제를 알고도 교장은 무조건 사건을 덮으려고 애쓴다. 운동 장학생 선거를 앞두고서는 여성 후보인 '키에라(시드니 박)' 대신 미첼에게만 교내 방송 출연이 허가된다. 이러한 장면들은 개연성과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 이전에 무조건적으로 영화의 메시지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장치다.
이에 더해 페미니즘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도덕적인 선악의 범주로 치환시키며 영화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주입한다. 비비안이 막시 운동에 소극적인 클라우디아를 일방적으로 다그치는 장면이나, 미첼에게 독립적인 서사를 주는 대신 필요한 모든 악역을 떠안기는 연출이 대표적이다. 영화의 메시지에 동의하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고, 동의하면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은 결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없다. 왜 백인 중년 남성이 쓴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야 하느냐는 루시의 질문이 그 사례다. 이 질문은 그녀의 의견에 설득력을 더하기보다는 소설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젠더의 이분법으로 무리하게 치환한다는 비판을 낳으며 연출 상의 한계를 드러낸다.
등장인물들을 설정, 활용하는 방식 역시 인종 차별을 방패 삼아 페미니즘의 메시지와 전달 방식에 대한 비판을 도덕적으로 봉쇄하는 듯 보인다. 백인 남성 교사는 여성 운동을 지지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지만, 비비안의 애인이자 동양계 남학생인 세스는 적극적으로 교내 여성 운동인 막시를 지지하며 대조를 이룬다. 운동 특기생 장학금을 두고 경쟁하는 미첼과 키에라의 구도, 가장 먼저 교내 성차별 이슈로 대립하는 루시와 교장의 구도가 모두 흑인과 백인으로 짜인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비비안 외에 막시를 주도하는 캐릭터의 다수는 유색인종으로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걸스 오브 막시>는 언뜻 보기에 일부 여성 영화들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답습한다.
그러나 <걸스 오브 막시>는 멋진 반전을 선사하면서 점점 짙어지던 그림자를 단숨에 빛으로 전환시킨다. 절친인 비비안이 익명으로 팸플릿을 만들고 캠페인을 계획하며 막시 활동을 이끌고 있음을 눈치챈 클라우디아는 그녀를 돕기 위해 막시를 교내 단체로 정식 등록한다. 그러나 막시를 좌시할 수 없었던 교장은 클라우디아를 비비안 대신 정학시킨다. 소식을 뒤늦게 듣고 찾아온, 자신이 적극적으로 막시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던 비비안에게 클라우디아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백인이라서 내 입장을 몰라." 뒤이어 미국으로 이민 온 동양인의 입장에서 교육과 대학 진학은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며, 따라서 학교에서 쫓겨날 각오를 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대화를 기점으로 비비안은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잘못되어 있었음을 반성한다. 본인이 옳다고 믿었던 일이 모두를 위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불의에 저항하는 일은 같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정작 익명 뒤에 숨은 자신이 가장 용기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는 익명을 벗고 사람들 앞에, 연단 위로 당당히 나서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저항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공간을 열어준다.
그녀의 변화와 함께 영화의 스탠스도 180도로 달라진다. 앞서 보여줬던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상황과 분위기 연출, 여성 운동은 무조건 옳다는 신념에는 제동이 걸린다. 인종과 젠더의 대립 구도도 허물어진다. 그 빈자리는 정체성에 관계없이 자신이 받은 차별에 함께 저항하는 연대의 정신이 자리 잡는다. 일부 여성 영화가 초래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답습하던 초반부 연출과 설정을 역이용한 결과 여성 운동과 미투 운동이 현실에서 보여줬던 영향력은 영화 내에서 성공적으로 재현된다.
사실 <걸스 오브 막시>가 반전을 선사할 것이라는 점은 오프닝에서부터 암시된다. 숲에서 쫓기다가 쓰러져 버린 비비안은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하려는 찰나에 악몽에서 깨어난다. 이후 영화는 하이틴 영화의 클리셰를 충실히 재현하며 예상치 못한 오프닝을 잠시 잊게 만든다. 방학 동안 몰라보게 달라진 이성을 향한 호감과 관심, 운동부 주장과 치어리더 팀 주장 간의 연애와 같은 가십, 전학생의 등장과 그로 인한 기존 친구들과의 갈등, 주인공들의 인생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교사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모범적인 하이틴 영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비안이 여성 운동과 시위를 펼쳤던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되고, 'Rebel Girl'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막시를 만들기로 결심하는 대목에서 오프닝은 잊혔던 의미를 되찾는다. 꿈이 무의식의 통로라는 고려 하면, 숲에서 헤매는 비비안의 악몽은 모든 여성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경험하지 않아도 공통된 불안함을 느끼다는 것, 그리고 그 악몽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묻어두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클리셰처럼 평범하게 이어지는 일상의 이면에 항상 불안함이 숨어 있고, 이를 직시하고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다소 갑작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비비안의 변화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는 홀로 어두운 숲 속에 쓰러져 있던 비비안과 대낮의 밝은 학교에서 친구들 앞에 나서 목소리를 높이는 비비안의 모습이 멋진 대조를 이루는 이유다.
이처럼 <걸스 오브 막시>는 영화 앞 뒤로 예상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에게 쓰인 여성 영화의 부정적인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난다. 여성 영화들의 잘못된 선례를 바로잡고, 자칫 일방적인 프로파간다로 전락할 위험을 영리하게 피해 가며, 이를 원동력 삼아 영화를 접하는 모든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준다. 여성과 남성, 백인과 유색인종이라는 이분법 대신 여성 문제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각자 처한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 결과 <걸스 오브 막시>는 여성 영화의 몇몇 부정적인 전철과 이미지를 직접 파괴하면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데 성공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모든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 법한 반성, 공감, 연대의 여성 영화
* 본 콘텐츠는 브런치 DAY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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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변해도 순간은 변하지 않기에
개강 후 처음 보게 된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 힐링 영화로 여러 번 추천을 받았던 영화이다. 원래 로맨스 장르의 영화를 잘 즐겨 보지는 않는 편이라 감상을 계속 미루다가 일주일 동안 두 번이나 보게 됐다. 최근 몇 달 동안 선혈이 낭자하고 주인공이 고통을 받는 영화들만 보다가 따뜻한 시선의 영화를 보게 되니 오히려 더욱 처연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는 아침에 잠에서 깬 한 남성(조엘)이 그 날 출근을 갑자기 그만 두고 몬톡행 열차를 타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엘은 열차 안에서 파란 머리를 한 여자(클레멘타인)와 만나 대화를 하고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되어 빙판 위에서 밤을 샌다. 아침이 되어 차 안에서 여자를 기다리던 남자의 장면은 갑자기 차 안에서 울고 있는 남자로 바뀐다. 알고보니 둘은 이미 서로 사랑했다가 헤어진 사이었고, 서로에 대한 기억을 견딜 수 없어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에 의뢰했다. 기억을 지우는 도중 처음에 너같은 사람을 지우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던 조엘은 기억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죽어도 잃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기억 속 첫 클레멘타인의 존재마저 사라지려 하던 찰나, 조엘은 몬톡이라는 역을 머리 속에 깊게 새기게 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몬톡행 열차를 타 클레멘타인을 두 번째로 처음 만나게 된다.
이 영화 속에는 현재의 장면 사이에 꿈과 비슷한 형태의 과거가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차 안에서 우는 조엘의 모습을 보게 되는 우리는 '사랑이 시작되고 오랜 시간이 흘러 이별하게 된 상황이구나~'라고 처음 받아들이게 되지만, 사실 이는 가장 먼저 삭제될 최근의 과거일 뿐이다. 영화의 이러한 구성은 우리에게 현재와 과거는 분리된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스스로 쌓은 순간들에 기대며 살아가고 있으며, 엔딩 이후 두 연인이 재결합하더라도 결론이 같을 수 있음을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들여다본 우리는 오프닝과 완전히 똑같은 후반부 장면에 이르러서 안타까움, 안도, 불안함, 복선에 의한 카타르시스 등이 합쳐진 복합적 감정을 느낀다.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기억을 지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엘의 기억이 이어지는 장면들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기억'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우리는 순간을 각자의 눈으로 어떻게 저장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영화적으로 정말 재밌게 충족시켜준다. 흥미로운 소재를 찍는 더욱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연출(기억을 지우는 회사, 무너지는 공간 등)이 이 영화에 독창성을 부여하고 있다.
기억과 관련된 소재의 영화는 많았지만, 자신의 기억에 상처받은 사람도 납득이 가능한 따뜻한 메세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훌륭하게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아무래도 후반부 - 엔딩일 것이다. 만약 클레멘타인이 조엘의 녹음을 듣고도 눈과 귀가 멀어 조엘을 사랑하겠다고 말했다면 이 영화는 눈물 몇 방울 흘리는 그냥 재밌는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다. 또 만약 떠나는 클레멘타인을 조엘이 붙잡지 않았다면,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는 씁쓸한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안다. 그래도 괜찮다.'라는 마지막 대사로 '아닌 건 아닌 것'이라는 우리의 이성과 '그래도 다시 한 번'이라는 우리의 감성을 동시에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다. 이는 맹목적이지도, 시니컬하지도 않은 멋진 메세지이기에 공허하게 울리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영화에 고마움을 느꼈다. 위에 적은 두 생각 사이에 갈팡질팡하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후회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나아가라고 제안한다. 사랑을 신성화하지도 격하하지도 않고 우리는 우리로 존재하면 된다고 말한다. 내가 영화를 보는 동시에 영화도 나를 보고 있었다. 작중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아'라는 대사처럼 우리의 기억이 사라지면 곧 우리도 사라진다. 우리는 기억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잘못을 저지른 순간을 끝없이 뒤돌아보며 후회해야 할까, 아니면 행복했던 과거의 순간들을 붙잡고 늘어져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잘못된 순간이라는 건 만들지 않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가 우리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의 잘못을 따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믿는 것, 우리를 둘러싼 세계, 우리 자신까지도 끝없이 변하고 추해지기도 하며 끝에 가서는 소멸한다. 우리가 어떻게 얼마나 변할지 알 수 없고 얼마나 살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순간들만큼은 과거 속 그 자리에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 그렇기에 어쩌면 한 순간 순간은 인생 전체보다도 더 중요하고 고귀하다. 만약 영원히 반복해도 후회가 없을 순간을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주변의 모두가 뭐라고 비난하더라도 자신에게 당당할 것이다. 그저 시간이 흐름으로 인해 생긴 후회들, 나라는 사람의 성격이 변해서 다르게 기억되는 순간들 모두 그 당시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안다.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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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살아 있는 <여성국극>
일본에서 생활 할 당시 ‘다카라즈카’ 문화를 알게 되었다. 전 배역 모두 여성들이 맡으며, 그들은 어릴 적부터 양성되고 그 명맥이 아직까지 탄탄하게 이어져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도 이와 같은 문화가 있는지 몰랐다. 그 명맥이 얇고 희미했기 때문일까?
<정년이>라는 웹툰과 드라마를 통해 여성국극 문화에 대해 어느정도 인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웹툰과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에 그 문화가 현재까지 있는 지는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명맥은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해보였다.
여성국극 제작소의 박수빈, 황지영 배우는 무형문화재 조영숙 선생님의 배움 아래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유수연 감독은 처음에는 조영숙 선생님의 이야기로 다큐를 만들려고 하다가 그 옆의 젊은 여성 국극 배우 박수빈, 황지영 배우의 이야기에 더 집중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번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다큐는 과거보다는 현재 여성국극이 ‘어떠한 상황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그 상황은 좋지 않다. 두 배우들의 무대는 민속촌, 마을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잔치 등 여성국극을 불러주는 곳만 있다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러나 관객들은 공연을 보다가 나가거나 무심하게 지나치는 장면들이 나온다. 안쓰러운 장면이면서 또한 현실적인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 둘은 굴하지 않고 여성국극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 여성국극의 영광의 시대 때 활약했던 배우들과 함께 ‘레전드 춘향전’ 무대를 기획한다. 이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접대 장면이었다. 박수빈 배우는 이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접대를 한다. 그 과정은 매우 녹록치 않아보였다. 바로 앞에서 여성국극을 비판하기도 하고 이 공연을 만드는 이유 조차도 회의적인 반응들이었다. 그러나 박수빈 배우는 굴하지 않고 그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이 공연을 만들기 위해 여성국극 공연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를 보여줬다.
그외에도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하지 말라는 연로 배우들의 말과, 춘향 역은 누구보다 여성스럽고 살을 빼야한다는 이야기에 머쓱해지는 순간들도 많았지만 공연의 결과는 멋지고 아름다웠다. 확실히 레전드 배우들은 시간이 많이 지났고 체력도 예전같지 않지만 그 힘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둘은 안산시에 협력을 받아 전문 예술인단으로 소속되어 활동하고 현재까지도 활동중이다. 여성국극이 현재 어떠한 상황인지 알려주고 그 명맥을 이어가려는 두 배우와 감독의 노력이 좋았다. 영화적으로 아쉬운 점은 중간 중간 나오는 배우들의 그다지 큰 연관성을 느낄 수 없는 인터뷰와 ‘레전드 춘향전’ 공연이 꽤 길게 느껴졌다. 공연실황이 유튜브에 전부 올라와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공연 실황을 보여주기 보다는 여성 국극이 그래서 판소리랑 다른 것이 무엇이고 현재까지도 여성국극이 살아남아야하는 이유를 좀 더 알려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감독의 전작은 여성국극에 대한 설명에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현재 여성국극의 배우들의 이야기에 집중을 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초반에 등장만 살짝 등장하는 여성국극에 대한 유래와 각 역할에 대한 설명으로는 이번 다큐멘터리로 여성국극을 알게된 관객들에게는 깊은 몰입감을 주기 어려웠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여성국극이니까 좀 더 ‘여성’에 대한 이야기에 방점을 찍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마지막으로 남겨본다.
*씨네랩 초청을 통해 관람 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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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최초 힙합영화
- 줄거리
줄거리라고 할 게 있는지 사실 모르겠다.
- 느낀 점
학생의 입장으로서 걱정이 되었다. 실제로 힙합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고, 랩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다수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는 한 명은 부유한 집안 외동아들, 한 명은 가난한 집안이지만 양아치 무리 중 한 명으로 캐릭터를 잡았다.
이로 인해서 현실에서 랩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모두 안 좋은 이미지로 바라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영화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현재의 학생들을 잘 알지 못하거나 질이 안 좋은 학생들 말고 만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대사에 욕이 많이 나오는 부분 또한 랩하고 힙합 하는 애들은 다 그럴 것이라고 작가가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나 싶었다.
중학생이라는 설정을 잡은 것 같은데 캐스팅된 배우들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고등학생으로 설정을 했어야 알맞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의 이미지 말고도 극 중에서 나오는 대사나 상황들을 보았을 때 중학교 3학년은 극에 이입하기에는 깨는 설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 운전을 한다, 칼을 들고 다닌다)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동아리와 함께 랩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송주는 갑자기 마이크 스탠드를 고치러 간다.
근데 이 전에는 송주가 마이크 스탠드 근처에 가거나 그쪽을 쳐다보는 장면이 없어서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서 스탠드를 고치는 게 진짜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왜 이 이야기가 들어갔는지, 왜 이 장면이 나온 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 영화감독이 하고 싶은 건 많고 담고 싶은 건 많은데 제대로 담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다 감상하고 나서는 내가 뭘 본 건지도 모르겠고, 뭘 느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헷갈리고, 누구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심지어는 저 등장인물이 왜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졌고, 이 이야기는 왜 들어간 것이며 엔딩 또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영화의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면 불편하게 느껴졌던 장면들도 이해하고 넘어갔을 텐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대체 그 부분들이 왜 들어간지도 몰라서 그냥 불편했다.
(+주연 와 송주가 햄버거를 만들 때 장난치면서 했던 대사들, 전체적으로 많은 욕, 오토바이 교통사고, 중3의 운전 등)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고, 시나리오가 좋아야 한다는 이유 또한 알게 되는 경험이 되었다.
파노라마_테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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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시착한 뉴욕행 비행기가 도착한, 여섯 개의 밤
6★/10★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가 감독을 맡아 2022년에 국내 개봉한 영화 〈우연과 상상〉을 기억한다. 세 편의 개별 에피소드에서 주인공들은 대화를 통해 갈등을, 삶의 모순과 아름다움을 펼쳐냈다. 잔잔한 분위기의 영화지만 엄청난 흡인력을 가진, ‘말’의 놀랍도록 강렬한 힘을 확인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최창환 감독의 신작 〈여섯 개의 밤〉은 여러모로 〈우연과 상상〉을 연상시키는 영화다. 우선 이야기 구조가 그렇다. 비행기 엔진 고장으로 뉴욕행 비행기가 김해 공항에 불시착한다. 어쩔 수 없이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사람들. 영화는 총 세 개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탑승객들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모토는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말, “모든 여행은 여행자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이다. 그리하여 개별 여행자들이 도달한 ‘알 수 없는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예상치 못한 목적지에 도달한 이들은 웃음을 지을까 눈물을 흘릴까.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정과 선우다. 수정에게 호감을 가진 선우가 호텔 빨래방에서 수정에게 말을 걸고, 둘은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기에 가능한 막연한 호감과 느슨한 긴장감으로 조금씩 서로를 탐색한다. 하룻밤을 보내고도 다음날 인사조차 하지 않는 둘이지만, 그 ‘가벼움’ 속에서도 그들은 깊은 위로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깊은 슬픔에 싸여 있던 수정과 그런 수정을 욕망하던 선우 모두에게 따뜻하게 기억될 밤이 흐른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예비 신혼부부 지원과 규형이 주인공이다. 규형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던 둘은 곧 펼쳐질 장밋빛 미래에 들떠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런데 규형에게는 지원이 모르는 또 다른 미국행 이유가 있었다. 어긋남이 물꼬를 트자 이직, 출산 등 둘이 어느 정도 합의한 줄로만 알았던 굵직한 이슈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전혀 달랐다는 사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진다. 마음이 상한 둘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누가 더 희생했느냐며 공치사를 하기에 이른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사실은 가장 먼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둘은 과연 약속한 미래를 온전히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마지막은 암 수술을 위해 미국에 가는 엄마 은실과 그의 딸 유진의 이야기다. 오랫동안 삶의 무게에 시달려온 은실은 한껏 예민해져 봇물 터지듯 자신의 걱정거리를 쏟아내고, 유진은 익숙한 엄마의 푸념에 조금씩 지쳐간다. 그리고 수많은 모녀가 그러하듯 끝내 폭발하며 부딪힌다. 서로의 처지와 감정을 가장 잘 알지만 바로 그 이유로 상대를 오롯이 사랑하기만 할 수는 없는 모녀. 그러나 폭풍이 지나가면 결국 서로만이 자기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념하듯 깨닫는 모녀. 은실과 유진의 이야기는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모든 모녀관계에 잔잔한 위로를 전한다.
뉴욕행 비행기의 불시착으로 누군가는 따뜻하지만 흐릿한 위로를, 누군가는 관계의 균열을, 누군가는 관계의 끈끈함을 재확인하는 계기를 가졌다.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목적지’에 도착한 셈이다. 여섯 명의 각기 보낸 밤이 증명하듯, 비밀스러운 목적지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 우리를 흔들어놓는다. 이 흔들림을 어떻게 품으며 나아가는지에 우리 삶의 깊이가 달려 있다. 등장인물이 대체로 다소 전형적으로 젠더화되어 재현된다는 점은 아쉽지만, 생의 가능성을 살피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여섯 개의 밤〉의 시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출간한 문예출판사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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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에 누구나와요? 그 사람들 나오나요?
큰 스포일러는 없지만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상이나 글은 영화 관람 후 읽어주세요! :)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이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기존 마블 영화의 팬이시거나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들을 좋아하셨던 분들에게는 선물같은 영화입니다.
그동안 모든 시리즈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그동안의 추억과 영화의 장면, 대사들이 많이 떠오르실 거에요.
마블이 작정하고 팬서비스를 해주는 영화 같기도 합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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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드나이트 후기 / 진기주 주연 / 역대급 답답함 / 답답한거 못참는 사람은 티빙으로 볼 것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미드나이트”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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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중갑 드라큘라의 직속비서 #렌필드 ?♂ 4월, 그의 눈물겨운 종신 계약 탈출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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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리키시> 공식 예고편
빚, 폭력, 가정 파탄... 벼랑 끝에 몰린 반항아 오제 키요시(이치노세 와타루 분). '엔오'라는 이름의 리키시(스모 선수)가 되어 스모계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는 그의 모습을 대담하고 강렬하게 그린 휴먼 드라마. 1500여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일본 전통문화이자 종교의식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스모. 하지만 프로 스포츠로서의 스모계는 여전히 베일 뒤에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스모 시합이 벌어지는 무대 '도효'는 이 평범하지 않은 세계 위에 구축된, 그야말로 '성역'이다. 연습할 의욕도 없고, 훈련은 자꾸 빼먹고, 툭하면 선배들에게 대들며 구제 불능이란 소리를 듣던 오제. 하지만 그런 오제가 스모의 세계에 점점 빠져든다. 오제를 시작으로, 스모를 사랑하지만 체격이란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시미즈(소메타니 쇼타 분), 스모 담당으로 좌천된 신문기자 쿠니시마(쿠츠나 시오리 분) 등, 스모계를 둘러싸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 분투하는 젊은이들의 휴먼드라마가 펼쳐진다. '성역'이라 불리는 세계에 휘둘리지만, 그 밑바닥부터 기어오르는 청년들의 뜨거운 '한판 뒤집기'가 지금 시작된다. 넷플릭스 시리즈 《리키시》,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