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2025-02-25 23:57:29
3시간 50분의 대작, 영화 <브루탈리스트>
영화 <브루탈리스트> 리뷰
젊은 감독이 저예산으로 짧은 촬영기간 동안 만들어 낸 영화가 영화제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 이야기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대작이라는 소문에 비해 생각보다 상영하는 극장이 적어 예매가 쉽지 않았다. 아마도 긴 러닝타임으로 극장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이 영화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분)가 미국에 정착하며 겪는 삶을 그린 작품이다.
브래디 코베 감독은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을 활용해 주인공의 내면과 시대적 배경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독특한 연출과 카메라 워크는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피아니스트>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애드리언 브로디는 이번 작품에서도 주인공의 복잡한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해 몰입도를 높였다.
<브루탈리스트>는 AI 기술을 활용해 일부 장면을 구현했다. 이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AI가 예술적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예술과 기술의 조화 속에서 이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해진다.
총 러닝타임은 3시간 35분이지만, 15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해 3시간 50분으로 늘어났다. 아내는 한 시간 정도 줄였으면 더 좋았겠다고 했다. 인터미션 없이 편집한다면 1시간 15분을 단축하는 셈이다. 긴 러닝타임은 관객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킬링문>이 3시간 26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인터미션을 도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오히려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독창적인 연출과 깊이 있는 연기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관객의 집중력 한계를 넘기는 긴 상영시간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서사를 압축하고 몰입도를 높였다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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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글로리' 시즌 2 후기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더 글로리 시즌 2
(Netflix, 23.03.10 오픈)
크리에이터: 김은숙, 안길호
출연: 송혜교, 임지연 등
드디어 3월 10일!
'더 글로리' 시즌 2가 공개되었습니다 박수~~
무려 두 달을 기다린 작품이라 더욱 기대가 되었는데요
2달 기다린 것 치고는 실망이었,,, 달까요
사실 이보다 깔끔, 명료한 결말은 나올 수 없지만
시즌 1이 너무 휘몰아치는 전개였다 보니까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그 기대감에 못 미치는 엔딩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보면 더 글로리 시즌 2 포스터가
아주 강력한 스포일러였네요 ㅎㅎ
박연진 - 영혼
전재준 - 눈
손명오 - 말
이사라 - 손
최혜정 - 입
각자 저것들로 추락하게 되었거든요
박연진은 영혼이 탈탈 털린 정신 이상자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도 있겠지만
무당이 굿을 하며 윤소희의 영혼과 접신하거든요?
윤소희의 영혼이 박연진에게 말을 쏟아내자 박연진이 겁에 질려 도망을 치고,
그로 인해 박연진이 범죄 현장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사실상 윤소희의 '영혼'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재준은 눈을 완벽히 잃게 되었죠
문동은의 지시로 인해 최혜정이 전재준의 안약에 손소독제를 넣었거든요
운전 중에 눈이 따가워 도로 한가운데 멈추게 되고
하도영측이 트럭으로 전재준을 쳐요
여기서 죽으면 아쉽쥬
하도영은 시각 잃은 전재준을 공사장으로 끌고 와서 한참이나 겁을 준 후에야!
아래로 밀어서 진흙에 파묻히게 만듭니다
전재준의 결말이 가장 속시원하고 잔인했던 거 같아요
손명오는 마지막까지 '말'을 나불대다 죽었...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캐릭터
박연진 협박하겠답시고 시에스타로 불러서
뭐 콘돔을 쓰게 해 줄래,, 그냥 할래,, 깝치다가
열받은 박연진이 술병으로 내리치거든요
+) 강력한 스포인데,
사실 손명오는 박연진 때문이 아니라 김경란 때문에 죽은 거예요
손명오가 피 흘리면서 살려달라고 하는데
과거 괴롭힘의 트라우마가 떠오른 김경란이 손명오를 한 번 더 내리쳐서 죽게 만들거든요
이 역시 완벽한 권선징악이라 너무 좋았네요
이사라의 '손'은 마약을 거부할 수 없죠
이미 마약에 중독돼 버린 몸... 탈색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요
문동은의 덫에 걸려 또다시 교회에서 마약을 하게 되고
교회 사람들에게 들켜서 수치심도 얻고 감옥도 가게 되는 결말이었습니다
최혜정은 '입'을 잃었어요 유일하게 최혜정은 문동은의 판에 걸리지 않았네요
물론 모두 문동은이 짠 판이긴 하지만!
이사라랑 싸우다 연필로 목을 찔리거든요
성대 근처를 다쳐서 평생 목소리를 잃을 수 있다고 하네요
시즌 2가 실망적인 이유는 아역의 부재 탓도 큰 듯해요
사실 시즌 1도 아역들 보는 맛으로 봤거든요...
정지소, 신예은 님 포함한 모든 아역 분들이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약간,, 해품달 때 성인으로 바뀌며 재미없어지던 것처럼...
아아 그리고 엄마 역 박지아 배우님이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사실 박연진보다 엄마가 더 짜증 났어요
엄마를 주인공으로 했어야 해요 이 정도면
보통은 문동은의 복수를 기대한다고들 하시는데
저는... 괴롭힘 당하는 장면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가장 충격적이고, 주인공의 의지를 이끌어내는 장면이라 더욱 그런 듯한데요
시즌 2는 복수 위주로 돌아가기도 하고, 시즌 1보다 강력한 장면이 많이 없어서
시각적으로 충분한 만족을 못 느끼겠더라고요
이래서 앞에서 기대치를 올려 놓으면...
그래서 복수가 아쉽단 생각이 든 걸지도 모르겠어요!
사실상 캐릭터들이 죽음, 파국을 맞이할 거란 거... 저희 모두 알고 있었잖아요?
학폭 소재 드라마에 권선징악은 필수적이니까요
그런데 동은이가 고데기로 화상을 입고, 한참을 맞고, 성추행을 당하던 거에 비해서
가해자들이 너무 빨리 추락해 버렸달까요
조금 더 진득하게 괴롭혔으면 좋았을 텐데
동은이 겁을 줄 때는 그들도 무언가 움직이는 중이었어서 그닥 와닿지 않았고......
이제 처절한 죽음을 맞이할 타이밍에 박연진은 교도소 들어가고
전재준은 그냥 아 눈 따거 하다가 죽어 버렸으니,,,
더 잔인한 방법이었으면 좋았을 거 같아요 이왕 청불 달은 거...!!
계속 아쉬운 것만 얘기하는데...... 또 로맨스가 아쉬웠습니다 하핫
사실 송혜교-이도현 배우님끼리 나이 차이도 많이 나시고
그닥 케미가 맞는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애초에 주여정이 문동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얼굴밖에 더 있나...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요
문동은이 주여정에게 빠져가는 장면은 로맨틱하고 좋았지만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에는 로맨스가 빠졌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을 거라서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아무래도 로맨스 강자 김은숙 작가님이셔서 ㅎㅎ
아 그리고 주여정의 복수는 아직 덜 끝난 거 같던데
혹시 주여정으로 시즌 3 나오는 건가요 ㅎㅎ
아아 그리고 김현남은... 나름 해피(?) 엔딩이에요
어쩌다 보니 남편이 죽었거든요 (박연진 엄마가 죽임)
혼자 반찬 가게 하면서 생활을 이어가는데 딸은 이미 미국으로 갔구......
사실 그닥 행복할 거 같진 않아요 엄마로서는 ㅠㅠ
언젠가 딸을 만나게 되는 날이 오겠죠...??
그게 진짜 행복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좋은 점도 말해야겠어용
주인집 아주머니와 어린 문동은의 관계가 좋았어요
"얘 근데, 물이 너무 차다, 그치?
우리 봄에 죽자, 응?"
더 글로리 명대사
이게 너무너무 기억에 남아요 ㅠㅠ
"죽지 마", "왜 죽으려고 해, 살아" 이런 말보다도 더 살아갈 의지를 갖게 되는
대사 아니었을까 싶어요......
문동은의 곁에 괜찮은 어른 한둘은 있었다는 게 참...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김은숙 작가님 인터뷰 중에
"내겐 가해자들 지옥 끝까지 끌고 갈 돈 있다" 라고 하신 내용이 있었는데
이렇게 영향력 있으신 분이 학폭 관련 소재 드라마 써 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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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핵심은 연기력이에요.
다른 언어를 쓰는 배우에게 전율을 느끼기는 몇 배로 어렵다. 말과 글은 다르기 때문에 그 갭은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더더욱 나는 첫 장면부터 슬로운에게 압도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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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렇게 짜릿한 영화는 처음이다. 그냥 전부 다 짜릿했다.
스릴러보다 스릴넘치고 액션보다 짜릿하며 수사극보다 쫄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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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선언을 할 때도, 위기에 처하고 선을 넘고 팀원들과 분열이 일어나고 궁지에 몰릴 때조차 나는 시종일관 '슬로운이니까!' 하며 조마조마하긴 커녕 절대적으로 그를 신봉하고있었다. (장담컨데 내가 보아왔던 작 중 그 어떠한 인물보다 슬로운에 대한 신뢰만큼은 절대적으로 높았을 거다. 아마 저기에 내가 있었더라면 뭐가 됐던 미스 슬로운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장렬히 전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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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동안 슬로운은 내게 절대적인 리더였고 정신적 지주였다. 중간에 정말 '지진'이 일어 쓰나미가 덮쳤다 해도 나는 별 걱정없이 편안하게 슬로운의 행보를 관람했으리라.
영화의 명대사로 꼽히는 대사 중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이에요."라는 슬로운의 대사가 있다.
이 대사가 영화 '미스 슬로운'의 구심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엘리자베스 슬로운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로비의 핵심이 통찰력이라면,
제시카 차스테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영화의 핵심은 연기력이다.
사실 영화를 구성하고 작품성을 이끌어내는 요소는 무척이나 다양하고 작용하는 방법이 무수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연기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영화를 가장 잘 보았다고 생각할 때는, 그 영화를 가장 몰입해서 보았을 때인 것 같다.
그 몰입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인물들의 연기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몰입을 넘어 이입하게되면 사실상 이외의 요소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가장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역할을 200% 수행해주는 배우. 덕분에 캐릭터만큼은 정말 인상깊게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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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시린 겨울을 달랠 '뉴 크리스마스 클래식'
남겨진 사람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족 없이 독수공방 하는 역사 선생님 폴 허넘(폴 지아마티)이다. 어느 해의 크리스마스이브. 폴이 소속한 고등학교는 이미 방학을 하고도 남았다. 텅텅 빈 학교. 학교가 비었다는 의미는 폴에게 자유를 의미한다. 하지만 ‘바튼 아카데미’엔 남은 학생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영화의 다른 주인공 앵거스(도미닉 세사)였다. 당연히 앵거스 혼자만 남은 건 아니다. 여러 학생들이 있었다. 다른 학생과 걸핏하면 싸우는 앵거스. 앵거스는 여러모로 골칫덩어리였다. 크리스마스인데 내가 얘를 봐야 해? 폴에게 스트레스가 팍팍 쌓인다. 귀찮아 죽겠는 건 폴도 마찬가지지만 앵거스도 선생님이 좋진 않다. 학생들에게 있어 비호감덩어리인 폴 선생님. 귀찮은 사람 한명 더 추가다. 둘을 위해 일을 해야 했던 메리 선생님이 급식실에 있다. 메리 선생님도 딱히 방학 중에 일하고 싶지 않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데, 메리, 앵거스, 폴은 서로 보기만 해도 꼴 보기 싫다. 과연 세 사람의 크리스마스는 어떨까?
느낌 알잖아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어디서 맡아본 향기라는 점이다. 솔직히 이런 영화 어디서 본 것 같다. 버려진 사람들이 펼치는 이야기? (아예 딴판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가 생각난다. <브로커>같은 영화들 대안가족에 대해 다루고 이 <바튼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면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이 모여 나름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나 홀로 집에> 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런 연대와 유머, 감동을 갖춘 영화는 뭐 비단 두 영화와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아주 많다(크리스마스로 국한 짓지 않아도 있다). 이 <바튼 아카데미>는 우리가 아는 맛 그 자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적절하게 터지는 유머와 영화의 톤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분위기 하나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충분한 것이다.
그 이면을 꾹 눌러보면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견지해 온 필모그래피의 특성이 드러나는 듯하다. 그 특성은 깊숙한 인간관계 탐구다.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디센던트>가 생각났다. <디센던트>는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두고 세 명의 딸과 아버지가 펼치는 이야기다.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위기에 봉착한다. 그럼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까? 부녀가 함께 힙을 합쳐 가족 간의 정을 교류하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 하지만 글쓴이는 <디센던트>가 마냥 연대만 강조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반대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챙겼다.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멀리 떨어졌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바튼 아카데미> 역시 이야기를 아이러니로 끌고 간다. <디센던트>와는 당연히 다른데, 대안가족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함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아이러니가 이 <바튼 아카데미>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작품의 엔딩이 묵직하게 다가가는 이유도 이 아이러니의 의미를 영화가 잘 고수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뉴 크리스마스 클래식
글쓴이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씨네랩 감사합니다!) 든 생각은 ‘이 영화는 새로운 유형의 크리스마스 클래식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다.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글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트리 앞에서 파티를 여는 모습이 생각난다. 인스타그램 키면 친구들이 스토리에 자기 나름대로 그 파티 현장을 올리기도 하고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이를 다루기도 했다. 영화는 그 두 가지를 다뤘다. 우선 전자, ‘우리 현실에서 맞이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라는 점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기본 설정에서 읽을 수 있다. 물론 친구들이 많아서 나름대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분이 다수인 건 알고 있지만, 솔직히 인간이라면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인스타그램과 틱톡이 그 외로움을 더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바튼 아카데미>는 기본 설정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외로운 사람들의 내면을 다룬다. 그리고 폴과 앵거스가 이끄는 차의 뒷자리에 앉게 유도한다. 차에 동승함으로써 우리가 느끼는 건 캐릭터들이 다 우리가 잘 아는 마음들을 느끼고 있다는 공감과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위안이다. 또 후자 ‘크리스마스 파티’도 다룬다. 이는 전자와는 반대되는 성격인데, 글쓴이는 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묘사하는 방식이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파티에 관한 부분이 어떻게 반복되는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셨으면 좋겠다.
급식실 아주머니, 도시락 반찬 가득히
그냥 일반적인 코미디, 가족영화로 읽어도 충분히 좋은 영화인 <바튼 아카데미>지만 그 이면에 깔려있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바로 197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이다. 메리라는 인물의 아들과 관련한 설정을 제외하면 '그냥 2022년'이라고 하고 밖에서 마스크 끼는 인물들로 배경을 설정해도 큰 문제는 없다. 근데 왜 하필 1970년대로 설정했을까? 바로 이 영화의 화면의 질감과 음향 연출을 통한 고전적인 향취 때문이다. 글쓴이는 보면서 왜 <황무지>와 <졸업>, <택시 드라이버>가 생각났을까? 그 이유는 화면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방식에 있다. CG로 사람도 딥페이크로 구현하는 현세대에서 인간관계성을 탐구하는 것도 아날로그틱한데 영화의 형식까지 그 형태를 따른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예고만 봐도 고전적인 향기가 짙은데 실제 작품 안에서도 이를 충분히 구현한다. 어떤 장면에서? 글쓴이는 이 영화 안의 눈밭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인물들이 눈밭에서 하는 모든 행동들은 1970년대 할리우드의 향기 그 자체다. 이렇게 영화가 이야기와 장면의 형식을 일치하게 연출한 것이 이 <바튼 아카데미>를 두고 생각하면 별 것 아닌 듯 하다. 하지만 굉장히 중요하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이룬 성취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아카데미 거기 서라
이렇게 감독이 영화의 장면 연출과 촬영, 편집을 딱 맞게 만들었다는 뜻은 이 영화를 확실하게 통제했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는 크다. 글쓴이는 영화라고 하는 것이 감독이 만든 세계 하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이 <바튼 아카데미>가 시네마의 의미 그 정확한 지점을 찔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오펜하이머>에서 봤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력에서 볼 수 있던 것이었다. 규모의 관점에서 판이한 두 영화가 어떻게 공통점을 갖냐고? 바로 결과물의 측면에서 비슷하다. <오펜하이머>에서 컬러로 된 이야기 / 흑백으로 된 이야기가 별개로 전개되다가 하나의 사건으로 부딪혀서 쾅 터지는 지점이 있지 않나? 이런 것들은 <오펜하이머>의 통일성을 부여하는 연출이었다. <바튼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다. 판타지물이 많은 현대에 인간관계를 강조한다. 그것도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오리지널 한 인간의 감정들을 이야기로 삼겠다는 것이 영화의 포맷이다. 그러려면 1970년대 이야기를 갖고 오는 게 좋겠지? 이왕 아날로그를 다룬다면? 이에 대한 결론이 모인 집합체가 <바튼 아카데미>다. 이게 단순히 <오펜하이머>가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철저하게 받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바튼 아카데미> 최고야’라고 주장하는 걸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아쉬웠던 영화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영화가 정말 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더 필요한 게 있지 않았을까? <바튼 아카데미>나 <오펜하이머>는 그런 것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모순(<오펜하이머>)과 사람 사이의 연대(<바튼 아카데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뿐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아카데미가 이 <바튼 아카데미>를 수많은 후보군으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작품/편집/각본상에 노미가 됐는데 뭐 모든 부분에서 시상이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바튼 아카데미>가 받는다고 해도 절대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난 대이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튼 아카데미>는 총 다섯 가지 후보에 노미네이트 됐다. 작품/편집/각본이 아닌 두 분야는 남주/여조다. 각각 폴 지아마티와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인데, 이 두 사람 중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건 여우주연상 후보인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다. 당장 강력한 상대는(글쓴이가 생각하기에)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의 조디 포스터다. 하지만 그나마 뽑자면 그런 거지 사실 거의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는 이 영화에서 든든한 버팀목 같은 연기를 보여준다. '왜 유달리 든든할까'라는 점을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감정적인 설득력이라고 답하고 싶다. 이 인물이 보여주는 행보에 주목해서 영화를 본다면 큰 감동을 느끼실 것 같다. 남우주연상 후보인 폴 지아마티도 상을 받는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BAFTA(영국 아카데미)와 SAGA(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킬리언 머피가 상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성이 그렇게 높진 않다. 폴 지아마티의 연기는 어떻게 해야 이 영화가 전하고 싶은 마음을 전할 수 있는지를 철저하게 연구한 연기다. 앵거스 역을 맡은 도미닉 세사와 시시건건 충돌해야 강조되는 것을 잘 체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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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서 본] 풍성한 잔칫상
누구도 해보지 않았다는 신선함은 원조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겹친다면 진부함 혹은 따라 한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따라오기 마련인데, "멀티버스"는 누가 먼저 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어벤져스: 엔드게임, 2019>에서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는 과정에서 처음 나왔으며, 최근에 개봉한 "DC"의 <플래시>는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런 점에서 전작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2018>는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다양한 "스파이더맨"을 선보였다!전작으로부터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스파이더맨"으로 활동하는 "마일스"에게 "그웬"이 나타난다.
이유를 물어볼 것도 잠시, 그들의 앞에 자유로이 시공간을 오가는 "스팟"이 나타나고 그를 막기 위해 모든 곳에서의 "스파이더맨"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의 리더 "미구엘"은 그동안 "마일스"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을 밝히는데...1. 이젠, 기피감도 드는 소재인데...
앞서 말했듯이 "멀티버스"를 소재로 삼은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기대치는 역시, 다양한 모습의 "스파이더맨"이다.
전작 <뉴 유니버스>에서도 "일본 만화"풍의 캐릭터부터 "누아르", 그리고 "스파이더 햄" 등. 다양한 버전들을 선보였으며, 이에 맞는 분위기까지 연출해냈다.
이런 시각적인 부분에서 충족했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또한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만드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 스파이더 캣부터 서부 영화, 그리고 티라노까지 안 좋아할 수가 있을까?여기에 "MCU"부터 "레고", 그리고 <베놈, 2018> 등. 여러 영화들을 언급하거나 출연시켜 "멀티버스"만의 재미까지 챙기려 든다.
이렇게 "팬 서비스"가 두둑한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이나 해당 영화의 장점은 이야기에 있다.
앞서 써 내려간 <플래시2023>의 리뷰에서도 말했듯이 "만약(IF)이 '정사'가 아닐까?"는 혼란함은 "멀티버스"가 가지는 문제점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수많은 스파이더맨들 사이에서도 "마일스 모랄레스"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그런 점에서 영화가 가져온 주제는 어딘가 익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벤져스: 엔드게임, 2019>에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퇴장에서도 언급된 소재 "개인의 행복"과 "다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를 "스파이더맨"만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규칙으로 적용하는 동시에 "멀티버스"의 붕괴까지 연결 지으니 "스파이더맨"만으로도 '이렇게, 스케일이 크게 가져올 수 있구나'라는 감탄까지 하게 된다.2. 귀 빼고는 다 즐거운 영화
무엇보다 "스파이더맨"이라는 이름에 떨어지지 않는 액션 시퀀스와 "스팟 - 미구엘" 등.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많다.
2시간 20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도 있지만, 이들의 동기부터 활약상은 단점으로 지적되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결말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당초 2부작으로 기획된 작품으로 이야기의 결말이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게 단점이 아닌 장점이라는 것만으로도...굳이, 문제점을 찾아본다면 "음악"에 있지 않을까?
전작 <뉴 유니버스, 2018>만 하더라도, "Sunflower"외에도 "What's Up Danger"와 "Elevate"까지 계속해서 듣고 싶은 노래들이 있었던 것과 다르게, 이번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귀에 맴도는 노래는 없었다! - 이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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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 '전하지 못한 퍼즐 조각을 맞춰가다.'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개봉일 : 2021.05.14 (넷플릭스 공개)
감독 : 김성호
출연 : 이제훈, 탕준상, 홍승희, 정석용, 정영주, 임원희, 지진희
전하지 못한 퍼즐 조각을 맞춰가다.
가장 인간답기에 가장 아프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무브 투 헤븐>은 특별한 시선을 가진 유품 정리사 나무와 그의 후견인 상구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마지막 이사를 도우며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가고 본인의 이야기와 흔적들을 남긴다. 각자 다른 형태의 죽음, 다른 인생, 다른 이야기들을 한 아름 담은 노란 유품 상자의 무게가 꽤나 묵직하게 느껴진다. 유품 정리사인 나무는 그 무게감을 끌어안고 오늘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언젠가 죽는다. 인생과 죽음의 과정은 공평하지 않을지언정 죽음이란 결과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온다. <무브 투 헤븐>은 시청자들이 누군가의 죽음과 마주하게 만들며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나는 <무브 투 헤븐>을 보며 몇 년 전 내가 처음으로 마주했던 죽음과 작년 여름쯤에 읽었던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을 함께 떠올렸다.
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꽤 많은 반려동물들과 함께하고 그 친구들을 보내며 ‘반려동물의 죽음’을 겪어봤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23살의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 겪어보았다. (동물과 인간의 죽음의 무게를 나누려는 의도를 가진 표현은 아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죽음과 생은 고귀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어린애를 굳이 상갓집에 데려갈 필요는 없다는 부모님의 신조 아래 자란 나는 먼 친척들이 돌아가셔도 상갓집에 가보지 못했다. 사실 정말 어릴 때 한두 번 본 사이라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어른들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돌아가셨단다.”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별다른 감정을 느낀 적도 없었다. 내 눈앞에, 마음에 그의 죽음이란 것이 와닿지 않았으니까.
내 주변엔 어린 나이에 가족의 죽음을 겪은 친구들이 꽤 있었다. 중학교 때 함께 어울렸던 친구는 초등학생 때 산업재해로 아버지와 이별했고, 고등학교 때 함께 어울렸던 친구는 나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쯤 할아버지와 이별을 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간혹 아물지 않은 이별의 상처를 털어놓기도 했는데, 나는 그저 “네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진짜 힘들겠구나.”와 같은 내 감정에 충실한 반응을 뱉어내기만 했다. 그땐 나름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지만, 돌이켜보니 그 친구들에게 미안할 만큼 영양가 없는 한마디였던 것 같다.
그렇게 ‘죽음’이 무엇인지 티끌만큼도 가늠하지 못한 채 나는 20살을 넘겨 성인이 되었고 23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만난 <무브 투 헤븐>은 그때의 기억과 고민들을 다시 떠오르게 만들었다.
<무브 투 헤븐>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목소리를 전함과 동시에 억울한 죽음, 외로운 죽음,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 등 여러 인물들의 죽음에 담긴 사회적 문제들을 따끔하게 꼬집는다. 산업 재해 사망사건을 돈 몇 푼으로 해결하려 하는 회사, 노인이 된 어머니를 방치하고 돈만 챙기려는 아들, 데이트 폭력으로 사망한 피해자, 차가운 사회의 시선에 내몰린 연인과 노부부, 무책임한 부모들에게 버려져 해외 입양된 아이의 외로운 인생까지. 각 화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생 이야기를 함께 더듬다 보면 그들이 겪어야 했던 차가운 시간들과 고질병처럼 고쳐지지 않는 문제의 까끌함이 마음속에 깊이 스며든다. 정말 힘들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하나도 없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유품 한 박스와 슬픔, 후회가 가득하다. 슬픔과 후회는 그들을 지키지 못한 남은 이들의 몫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 외롭고 억울한 죽음을 겪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 또한 남은 이들의 몫이다.
사람은 죽어서 자신의 이름과 몇 개의 흔적을 남긴다. <무브 투 헤븐>의 주인공 그루는 비정형적으로 흩어진 흔적을 정리하며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들의 조각을 맞춰간다. 고인들의 자리에 남은 단출한 짐들은 그들의 인생을 말해주고 그 몇 마디가 남긴 무게감은 그루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그루는 진심이 담긴 고인들의 마지막 말들을 마음으로 품어내며 조금씩 성장한다. 아빠(정우)와 헤어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던 아이가 아빠의 빈자리를 받아들이고 그 자리를 슬픔이 아닌 아빠가 남겨준 사랑으로 채워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형(정우)에 대한 오해로 인해 그를 미워했던 상구가 형이 오래도록 쌓아두었던 마음과 마주하며 변화하는 과정 또한 꽤나 감동적이다. 본인도 어리면서 더 연약한 동생을 위해 모든 마음을 내주고도 후회하고 미안해했던 정우의 마음이 두텁게 쌓인 캐비닛 문을 열었을 때, 상구의 세상은 정우가 남긴 사랑으로 가득 찬다.
그루는 사랑하는 동생과 아들을 위해, 못다 한 말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마음과 사랑을 모두 내바쳤던 아빠 정우의 길을 그대로 따라 걷는다. 아빠가 남긴 사랑과 마음가짐을 연료 삼아 아주 천천히, 하지만 아주 바른 걸음걸이로 말이다. 그리고 그 옆엔 그루의 삼촌, 상구가 있다.
그루가 들고 있는 유품 박스의 색깔은 노란색이다. 봄이란 계절과 희망을 담은 듯이 아주 예쁜 노란색. 어쩌면 죽음은 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죽음이란 새로운 생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지점이 될 수도 있으며 떠난 이가 남긴 말과 흔적들은 새로운 희망이 되어 이 세상을 바꿔놓을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루의 품에 안긴 노란 유품 박스가 슬픔이 아닌 희망과 그들의 아름다운 추억들로 가득 차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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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기생충' 다르게 보기
이것은 파이프(로 보이는 물체)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놓음으로써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 <이미지의 반역(배반)>이라는 그림이다. 정말 그럴까? 이 그림을 그린 르네 마그리트의 사유를 차용해 물질적 속성을 따지자면, 이 이미지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이미지의 반역(배반)>이라는 '그림'을 스캔한 '컴퓨터 파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철학자' 르네 마그리트는 언어와 대상, 대상과 대상을 재현한 이미지, 언어와 이미지의 연결은 자의적이므로 얼마든지 단절되거나 자유롭게 재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대상이 통념상 있음 직한 공간을 벗어난 생경한 장소에 위치하고, 현실에서라면 한 프레임 안에 있는 것이 불가능한 대상들이 공존하는 그의 그림들은 나태한 사고를 깨부순다. 생각의 한계를 무너뜨린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회화는 당대를 뒤흔들었고, 후대의 다양한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블랙코미디, 스릴러, 가족 드라마 등 하나의 영화 안에서 함께 존재하기 어려운 다양한 장르적 요소가 뒤섞여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영화 <기생충>을 본 후, 현실의 경계를 파괴하는 파격적 미학을 선보인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반역(배반)>이 떠올랐다. 르네 마그리트가 회화 예술의 관습을 격파했듯이 봉준호 감독은 영화 장르의 틀을 붕괴시켰고, 언뜻 누가 보아도 빈부격차가 핵심인 것 같은 <기생충>에 빈부격차 자체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가정 형편이 극단적으로 차이나는 두 가족이 등장한다. 두 가족은 사는 곳이 정반대다. 잇따른 자영업 실패로 궁지에 몰린 기택(송강호) 가족은 누추한 반지하집에 살고, 성공한 IT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 가족은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대저택에 산다. 햇빛이 잘 들어올 리 없는 기택의 반지하집은 대낮에도 어둑하고, 채광이 끝내주는 박사장의 대저택은 실내에 있어도 비타민D를 합성할 수 있을 만큼 자연광이 풍부하게 들어온다. 기택 가족은 고기는커녕 한끼 제대로 챙겨 먹기도 힘들지만, 박사장의 부인 연교(조여정)는 짜장 라면에 한우 채끝살을 넣어 먹는다. 박사장 집에 사는 강아지들이 기택 가족보다 영양 상태가 훨씬 더 좋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 두 가족 간의 극심한 격차는 영화 플롯의 변곡점이 되는 비 오는 밤 시퀀스에서 극적으로 표현된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는 기택 가족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수직적 계급 사다리가 연상된다. 가난한 자는 달동네처럼 높이 올라가야 하거나, 반지하처럼 깊이 내려가야만 하는 곳에서 자신의 거처를 마련할 수 있다. 물론 부자도 지대가 높은 곳에 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부자는 가난한 사람처럼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지 않고,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에 앉아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집에 도착한다.
이처럼 빈부격차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설정과 상징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기생충>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빈부격차가 아니라는 생각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기생충>에는 부자와 빈자가 함께 등장하는 영화라면 으레 기대할만한 부자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없다.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 박사장의 부인 연교와 기택에게서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박사장이 재수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계급 격차를 다룬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자들처럼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부를 일군 사람들이 아니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돈을 지급하고, 속마음은 다를지 몰라도 최소한 겉으로는 예우한다. 기택의 부인 충숙(장혜진)이 술에 취해 박사장 가족의 인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돈이 다리미야. 돈이 주름살을 쫘악~ 펴줘.”라고 말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기생충>은 빈부격차의 ‘현상’ 자체는 실감 나게 보여주지만, 빈부격차를 타파하고 경제적으로 더 평등한 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화는 아니다.
돈을 매개로 엮인 박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의 관계는 빈부격차를 문제시하기보다 빈자와 부자 간의 상호의존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박사장 가족은 굳이 자신들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될 출퇴근 운전, 집안일, 자녀 교육을 자신들보다 더 잘 처리해주는 사람에게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박사장 가족에게 귀찮고 시간 낭비에 불과한 일들을 대신해주는 기택 가족은 요긴한 존재다. 한편, 박사장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임금은 기택 가족이 당장 먹고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돈이다. 박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다.
이렇게 본다면, 영화의 제목인 '기생충'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과연 박사장의 재력에 의지한 기택 가족만 누군가에게 기생한 것일까? 부자의 일상을 누리기 위해 허드렛일을 대신해줄 누군가가 꼭 필요한 박사장 가족도 기택 가족에게 기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 중에 부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기택 가족의 사업이 잘 풀렸다면, 기택 가족이 누군가를 고용해 잡일을 맡겼을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기생충>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줄 따름이다. 강한 신분 상승 욕망을 지닌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가 자신의 계획대로 부자가 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기우는 박사장만큼 주름지지 않은 부자로 살 수 있을까? 혹시 나쁜 인간이 되지는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내면의 꿈틀거리는 욕망과 콤플렉스를 잘 살펴보라고 영화 <기생충>은 우리 앞에 거울을 들이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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