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2-19 14:16:41
유난히 짧은 2월, 러닝타임 짧은 영화 -9-
러닝타임 90분 미만
❣️[Cinelab Curation]❣️
이번 주 씨네랩 뉴스레터 씨네-뉴스에서는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들을 소개해 드릴 예정인데요!
2월.. 너무 짧아 아쉽진 않나요?
그런 여러분들께 짧지만 마음에 오래 남을 영화 몇 편 소개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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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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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디 옆에 오은영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좀 달랐을 텐데
철이 들 때가 됐는데
케이시. 이제 그만하자. 차에 탑승한 케이디 가족. 여느 때의 아이들과 다름없이 케이디는 엄마 말을 안 듣고 있다. 어떤 것에 먹이를 주고 있는 케이디. 원래 있을 때 잘해야 하는 법인데 부모님은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다. 스크린 타임 30분으로 하지 않았어? 언쟁이 오가는 부부. 금세 언쟁은 눈길에 대비를 안 했다는 소재로 이어진다. 안전하게 벨트 끼고 아무것도 안 해도 모자랄 판에 돌발행동을 한다. 놀라는 케이디의 엄마. 케이디! 안전벨트 해! 차는 잠깐 흔들릴 정도로 방향을 주체하지 못했다.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잠깐 멈춰 서기로 한 부부. 제설차가 눈을 치울 때까지 잠시 대기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때, 큰 차가 갑자기 케이디 가족을 들이받는다.
젬마는 AI를 만드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일 하고 있는 엠마. 전 세계 만국공통으로 통하는 것이 직장생활 아닌가. 경쟁사의 표절부터 달달 볶는 상사까지 여러모로 짜증 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원래 훈수가 창작과 실행보다 쉬운 것이다. 상사의 이래라 저래라에 짜증 난 젬마는 자기가 만든 기계 ‘메간’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다. 시원찮은 상사의 반응. 상사 데이비드에게 메간을 보여줄 때 이 기계가 좀 이상한 리액션을 보여준 것도 한몫한다. 그런데 이 메간만큼이나 젬마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조카 케이디다. 언니를 잃은 젬마. 사실 마음이 많이 복잡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일에 전념하지만 그녀에게도 가족을 잃은 슬픔은 여전히 남아있다. 임시 보호자가 된 젬마. 케이디에게 뭔가 힘이 될 수는 없을까?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젬마의 직업이었다. 그래. 내가 AI를 만들었었지? 메간과 케이디가 서로 잘 지내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일거양득 아닐까? 언뜻 보면 빛나는 센스지만 이 아이디어는 오히려 케이디와 젬마를 수렁에 빠지게 만들었다.
블룸하우스 맛
블룸하우스는 2010년대 중반부터 관객에게 신선한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우선 이야기에 그렇게 제한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큼 발랄함은 영화 내적을 굉장히 플러스 요소가 된다. <해피 데스데이>나 <살인 소설>, <인비저블 맨>은 뭐 뻔하다면 뻔한 호러지만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나름 잘 눌러 담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생각한다. <2014년 <위플래쉬>부터 시작해서 2017년 <겟 아웃>까지 데이미언 셔젤과 조던 필이라는 신인 감독을 등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 두 감독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좀 알아주는 아티스트들 아닌가? 작년 <놉>이나 올해 <바빌론>까지 수작을 뽑아내는 데 있어 안목이 좋았던 제작사의 선택이 잘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M. 나이트 샤말란과 스파이크 리라는 베테랑을 다시 등장시킨 전례도 있다. <23 아이덴티티> 시리즈의 샤말란도 뭐 나름 성과가 있지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석권한 <블랙클랜스맨>은 스파이크 리의 직업이 인권운동가가 아닌 영화감독임을 세계에 보여주는 좋은 선택이었다.
이렇게 신선한 선택을 보여주는 블룸하우스답게 이 영화도 남다르다. 일단 AI와 호러라는 선택이 좀 익숙해 보이지만 영화가 가지는 선택은 다른 영화들과 다른 느낌은 분명히 있다. 우선 기존 호러 영화가 공포를 다뤘던 방식은 1) 인간이 무섭거나 2) 초자연적인 행동이 무서운 것이 주류를 이뤘다. 우리가 잘 아는 <랑종>이나 <곡성>은 2)에 속하고 인간이 무서운 쪽은 <미드소마>에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AI 때문이다. 신선하다. 이 신선한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영화는 기괴함이라는 감정을 중심으로 이끌어간다. 메간의 얼굴을 보면 글쓴이는 솔직히 그래픽을 입힌 티가 너무 났다. 너무 인간같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는 어떤 분들은 불쾌한 골짜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이 AI가 기계의 사용자인 젬마의 계산을 어떻게 뛰어넘는지도 역시 호러 요소로 작동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뉴스들을 생각해 볼 때 많은 분들이 ‘언젠가 AI가 인류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뉴스들을 영화가 어떻게 활용했을까? 막연히 ai가 인류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케이디의 정서적 교류와 예측불가능함이라는 양가적인 특성으로 소화한 것이다. 영화의 기본적인 기획력이 좋았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의외로 철학적
영화에서 내적으로 작동하는 모티브는 두 가지다. 첫 번째. 가족구성원의 유대감에 대한 질문이다. 두 번째. 인공지능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다. 우선 전자 가족구성원에 대한 이야기는 한 인물의 직접적인 대사로 나온다.’ 넌 언제?’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약간 초중반부에 나오긴 하지만 이 문장이 작품 전부를 꿰뚫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반부. 젬마는 케이디에게 선물을 했다. 바로 AI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젬마는 제이디에게 이상한 선물을 했다. 여기서부터 젬마는 케이디에 대해서 좋은 어른으로서 아이를 성장시킬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 젬마의 선택은 2부로 이야기가 전환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반복된다. 말만 그럴듯하게 하고 별로 가족으로서의 책임감이 없는 것이다. 이 부주의는 영화의 핵심 소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임감은 중반부 찍고 벌어지는 대환장파티의 결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젬마의 내적인 결함을 영화의 원동력으로 사용한 것이다. 극의 서스펜스와 모티브를 병치시킨 감독의 수가 돋보인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역할에 대한 질문은 첫 번째 모티브도다 더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장 첫 장면 케이디가 부모님 말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는지, 또 실험실 내부의 사람들은 영화 끝에 가서 어떤 입장에 놓이는지, 젬마의 부주의가 어디까지 반복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는 영화 자체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또 이 영화에서 인간과 기계는 주종관계가 뒤엎어진 것처럼 보인다. 글쓴이는 이 영화의 모든 리액션들이, 인간이 주체가 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분명히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위해 잠식된 내면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로 보인다. 이 부분을 여러분이 집중해서 본다면 좀 색다르지 않을까 싶다. 이때 사람이 더 주체적으로 행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상한 준비물
뭐 이렇게 나름 철학적인 것도 넣고 장르적인 특색도 어느 정도 넣었다고 해서 단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글쓴이는 영화 내적인 이야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는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갈 수 있다. 영화 내적으로 품고 있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지탱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 중에서 메간이 벌이는 일들이 과연 가능할까? 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다.
그리고 영화의 근본적인 설정에서도 의문점이 생겼다. 처음 케이디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다음에 바로 메간을 선물하는 행동이 좀 의문이었다. 영화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설정이지만, 또 젬마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무조건 필요한 일이지만 사건 자체의 현실성이 좀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뭐 케이디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를 수 있다. 영화 내적으로 눈이 쏟아졌던 것이 교통사고의 계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니 부부와 최소한의 대화도 없이 그런 선물을 했다는 것은 의아하다.
또 중반부 기점 찍고 전반과 후반의 이야기 전개가 확 달라진다. 후반부부터 메간의 광기가 폭발한다. 이 광기가 폭발하고 난 후는 흥미롭지만 전반부의 이야기는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간 후반부가 오히려 더 폭발적이어서 전반부가 인간적인 느낌? 특히 (이미 해외에서 유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부에 메간 춤추는 신 웃기다. 이 춤추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 가치가 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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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레이드 러너'라는 세계관
7★/10★, 8★/10★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과 로봇/인조인간의 경계를 질문하는 SF 영화의 계보에서 늘 손꼽히는 영화다. 시간이 지나 영화 수가 쌓이며 고민의 결과 방향성은 더 섬세해지고 예리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고민을 상업 영화의 문법과 버무려 보편적 휴머니즘의 차원으로 밀고 나간 〈블레이드 러너〉의 성취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한 후속작 격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본 이후로는 이들 영화가 인간과 로봇/인조인간을 다룬 SF 장르 영화에서 아무도 넘보지 못할 왕좌에 올랐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블레이드 러너〉의 시간 배경은 인간이 우주에 식민지를 건설한 2019년이다.* 첨단 기업 타이렐은 인간의 모습을 본뜬 로봇 리플리컨트를 개발하고 월등한 신체 조건을 갖춘 이들을 우주 식민지 건설에 활용한다. 그러나 창조물은 때때로 창조자의 의도를 넘어서는 법이다. 리플리컨트는 독자적인 감정을 갖게 되어 인간의 욕심에 자신의 노동이 동원되는 데 반감을 품고 지구로 넘어온다. 기술의 한계로 4년으로 제한된 수명을 늘릴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을 ‘배반’한 리플리컨트를 사냥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은퇴한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에게 지구로 침입한 리플리컨트를 잡아들이란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데커드는 리플리컨트를 추적하며 그들이 단순한 기계 그 이상의 존재임을 점차 깨닫는다. 그러던 중 타이렐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리플리컨트 레이첼과는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데커드는 지구에 몰래 들어온 4명(혹은 4개)의 리플리컨트를 모두 사살하는 과정에서 리플리컨트에 대한 편견을 거스르는 경험을 하고 그들의 존재를 다르게 이해할 방법을 학습한다. 데커드가 레이첼과 어딘가로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그가 종種의 경계를 뛰어 넘었음을 보여준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데커드와 레이철의 도피에 상상력을 덧붙이며 시작한다. 주인공 K는 리플리컨트 신 모델로, 주체적 감정을 가지고 인간에게 반항했던 구 모델을 사냥하는 블레이드 러너다. 요컨대, K는 로봇을 사냥하는 로봇이다. 평소처럼 자기 임무를 수행하던 K는 어느 날 충격적인 현장을 마주한다. 아이를 낳은 것으로 추정되는 리플리컨트 유해를 발견한 것이다. 리플리컨트가 감정에 더해 생식 능력까지 있다면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완전히 허물어진다. 이에 당국은 재빨리 K에게 이 사건을 추적하라 명령한다. 극심한 불평등 속에 살아가는 지구인들을 위로하는 건 자신이 ‘껍데기(skinner, 인간이 리플리컨트를 부르는 멸칭)’보다 낫다는 하찮은 자의식뿐이기 때문이다. 리플리컨트 문제가 종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넘어 우주 식민지 시대의 체제 존폐 문제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드니 빌뇌브는 그가 여러 영화에서 선보인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스산한 풍경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언제나 그렇듯 그의 영화에는 황량한 배경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이 깃들어 있다. 드니 빌뇌브는 여기에 〈블레이드 러너〉가 처음 나온 이후 한껏 확장된 여러 철학적 물음도 영화에 적극적으로(물론 조잡하지 않은 방식으로) 끌어온다.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레이첼과 데커드의 아이가 아닐까 고민하며 당혹감과 기대감이 복합된 채 한껏 부풀어 오르던 K가 자신의 보조적 지위를 인지한 이후에도 실망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데커드에서 K로 이어지는 장엄한 부자父子 서사가 어그러진 후, ‘인간에 순응하며 그들을 보조하라’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따라가는 K의 수동성은 역설적으로 그의 행위에 존엄성을 부여한다. 즉, K는 수동적 존재론을 성실히 수행하여 이를 숭고함으로 뒤집어낸다. 영화의 마지막, 그 모든 복잡한 상황과 다층적 질문 속에서도 우리가 안도하며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그을린 사랑〉에서 시작되어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 〈컨택트〉를 거쳐 이후 〈듄〉으로 이어지는 드니 빌뇌브의 장대한 필모그래피(내가 본 영화에 한정해서 말하자면)에 어울리는, 동시에 원작의 감동과 여운을 완벽에 가까이 계승하는 영화다. 〈블레이드 러너〉는 〈블레이드 러너 2049〉 덕에 다시 한번 자신의 영화적 수명을 갱신해내기도 한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 여정에 동참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2022년의 현실에서는 몇몇 글로벌 재벌이 인간의 우주 거주지를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의 상상력은 그저 조금 느리게 진행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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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다비전> 완다가 보여주는 MCU의 새 비전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시리즈와 영화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이야기를 펼치는'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성공리에 안착시킨 처음이자, 모범이고, 유일한 성공 사례인 MCU. 그러나 이들도 두 가지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우선 영화라는 미디어의 본질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2시간 내외라는 시간의 한계로 인해 주인공들을 제외한 인물들은 편의에 따라 플롯의 소재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야 했다. 심지어 '인피니티 사가'의 대미를 장식하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3시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브루스 배너와 헐크의 화해나 토니가 시간 여행 기술을 발명하는 과정 등을 대사 한 줄이나 몇 초 간의 장면으로 처리했다.
또한 모든 영화들이 큰 그림을 위한 스케치이자 하나의 부품으로써 다루어지다 보니 스토리텔링, 연출, 편집, 액션, 음악, 영상미 등이 균등한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특출 난 독창성과 신선함을 조금씩 잃어 갔다. 자신의 실명과 정체를 당당히 공개하며 슈퍼히어로 영화의 클리셰를 파괴했던 <아이언맨>과 진지함과 무거움을 내던지고 유쾌함과 감동을 모두 갖춘 음악으로 무장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새로움이 들어설 자리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신 그 자리는 안정적인 유머와 화려한 볼거리, 익숙한 서사로 무장한 채 제2의 <아이언맨>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노리는 작품들이 대신했다. <아이언맨>과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한 같은 해에 DC에서 각각 <다크 나이트>와 <조커>를 선보인 역사는 이러한 MCU의 문제점을 요약해 보여준다.
그러나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의 부실한 액션을 지적하자 <윈터 솔져>와 <라그나로크>로 응답했으며, 인상적인 빌런의 부재라는 빈틈은 타노스로 채워버린 의지의 MCU는 페이즈 4의 첫 작품인 <완다비전>을 통해 자신들의 단점을 비교적 깔끔하게 해결했음을 증명한다. 미국의 한 마을 웨스트 뷰에서 이웃들처럼 평범한 회사원과 주부의 삶을 누리는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와 '비전(폴 베타니)'. 어느 날 그들은 외부의 소음과 함께 마을에서 보지 못한 남자와 흑백의 세상에 나타난 빨간 장난감 헬리콥터처럼 이상한 사건들을 연이어 목격한다. 완다는 시간을 돌려 해당 사건의 존재를 부정하고, 비전은 그런 완다와 완다를 도와주는 이웃 '애거사(캐스린 한)'를 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완다가 만든 가상현실 장벽의 밖에서 '모니카 램보(티오나 패리스)'와 '헤이워드(조쉬 스템버그)' 국장을 비롯한 S.W.O.R.D.는 가상현실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고 완다와의 소통을 시도하기 위해 장벽 안으로의 진입을 시도한다.
우선 <완다비전>은 조각나 있던 완다와 비전의 서사에게 온전한 모습을 되찾아준다. 사실 안드로이드 로봇과 마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MCU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명쾌하고 충분히 설명될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 등 팀업 영화에서만 모습을 비추다 보니 완다의 불우한 과거사와 감정선은 다른 히어로들의 그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분량을 할당받았고, 완다와 비전이 호감을 느끼다 연인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갑작스러웠다. <인피니티 워>에서 연인을 파괴해야 하는 둘의 애절한 로맨스가 어벤져스의 이길 수 없는 저항을 더욱 비장하게 만들었지만 비전의 이름은 엔드게임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마침내 그 둘의 이야기는 처음으로 온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완다가 빚어낸 가상현실 속 세계는 그녀의 내면이 처음으로 시청자들에게 선보여지는 채널이라는 점에서 특히 인상적이다. 초능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부부가 자아내는 웃음은 부모, 오빠, 히어로의 삶을 가르쳐주던 멘토들, 연인과 연달아 이별해버린 완다의 외로움, 고독함, 슬픔, 덧없음을 은연중에 노래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로 모아준다. 타노스에게 마인드 스톤을 뺏긴 후 완다의 힘에 의해 다시 태어난 비전 역시 자신의 진정한 기억, 존재, 신체를 되찾기 위한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여정을 경험한다. 이처럼 그간 무대 밖으로 밀려나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마블의 각오는 <앤트맨>의 우, <토르>의 달시, <캡틴 마블>의 모니카 램보처럼 잠시 잊혔던 캐릭터들을 소환해 같은 사건을 상이한 시점에서 다루는 대목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형식의 스토리텔링과 연출의 도입이다. 이를 통해 마블은 단지 안정적인 흥행과 시리즈의 유지는 물론 가능성과 독창성의 확인 및 도전도 자신들의 목표에 포함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드라마는 크 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1~3화, 그 뒤의 몇몇 에피소드들은 1950년대의 흑백 시트콤부터 90년대의 홈비디오를 거쳐 <모던 패밀리>에 이르는 미국 시트콤의 형식을 차용한다.
한편 4화부터는 현재 시점에서 완다가 만들어내는 혼란을 목격하고 대응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면 비율부터 의상과 색상에 이르는 디테일의 차이를 통해 같은 사건을 대하는 인물들의 시점 차이는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사실 마블 작품들이 상당히 높은 타율의 유머를 선사한다는 점은 언제나 다른 시리즈와 차별화된 지점이었지만, 시트콤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이전까지는 기대하기 어려운 선택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완다의 수상한 이웃인 애거사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을 마치 고전 뮤지컬을 보는 듯한 연출로 풀어낸 대목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완다비전>은 단순히 영화적 형식을 새롭게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그 변화 자체를 하나의 스토리텔링 장치로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시도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각 시대를 상징하는 시트콤의 형식과 내용은 시종일관 마음속 한 구석에 있던 어두움을 애써 억누르고, 희망을 쫓아 어두움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던 완다의 이야기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 시트콤을 보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낙이었던 완다는 잃어버린 부모님, 오빠, 연인을 대신할 수 있는 남편과 쌍둥이 아이들을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세계 안에서 다시 만난다. 이처럼 TV 쇼는 현실 속 그림자, 절망, 슬픔을 빛, 희망, 행복으로 탈바꿈시키는 도구이자 탈출구이기에 단순한 연출 방식의 변화 이상의 감동을 준다. 이는 완다가 마침내 '스칼렛 위치'로 각성하고, 자신의 마법을 마음껏 선보이는 마지막 회보다도 현실을 TV 속 공간으로 바꾼 그녀의 능력, 그녀의 과거사, 이 드라마가 시트콤으로 시작한 이유를 알려주는 8화의 임팩트가 더 강렬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완다비전>은 MCU라는 건물을 올리는 것은 물론 그 외양을 다채롭게 만들고,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완다비전> 역시 드라마 내외적으로 여전한 한계점을 노출한다. 드라마 내적으로는 기존의 MCU 작품들이 보여준 것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한 선악의 대립 구도를 선보인다. 드라마는 한 마을에 사는 이들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거대한 혼란을 낳은 완다에게 시종일관 동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완다가 초래한 온갖 문제는 그녀와 과거사와 개인사 앞에 무게감을 잃고, 그녀의 손에는 면죄부가 주어진다. 더 나아가 그녀를 대량살상무기로 취급하며 단순히 악인으로만 묘사되는 S.W.O.R.D.의 헤이워드 국장 덕분에 면죄부는 그 반대편에 위치한 완전한 선인인 완다의 면죄부는 더욱 강한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는 그간 마블이 보여준 것과는 다른 선택이다. 선악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존재, 그리고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는 이들의 서사가 선사하는 뭉클함은 그간 마블이 수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은 이유였다. 이 세계의 히어로들은 본질적으로 선하지만, 때때로 악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토니 스타크는 선의였지만 울트론을 만들고, 이로 인해 캡틴 아메리카와 크게 대립했다. 캡틴 아메리카도 생명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했다가 타노스를 막지 못했고, 토르 역시 복수심에 눈이 멀어 영웅으로서 타노스를 죽이지 못하는 과오를 범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결과적으로 행한 악을 외면하지 않는다. 고뇌하면서 해결책을 강구한다. 그러나 <완다비전>은 완다에게 이러한 복합적인 면모를 심어주지 않았고, 이 선택은 회차가 진행될수록 완성도가 낮아지며 초반부 회차에서 선보인 독창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사실 이러한 작품 내적 문제는 MCU 시리즈 특유의 패턴과도 관련이 있다. 많은 마블 작품은 극 중 발생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대신 의문을 남기거나 일부분의 엔딩만 보여준 채 일단락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떡밥은 항상 후속 작품의 발단으로 이어진다. <어벤져스>에서 파괴된 뉴욕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발단이 된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파괴된 소코비아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속 사건의 원인이 되고, <시빌 워>에서 마무리되지 않은 토니와 스티브의 갈등은 <엔드게임>에 이르러서야 종결된다. 또 <엔드게임>에서 평행우주로 도망간 로키는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MCU의 패턴은 일장일단이 있다. 시리즈 간의 연계가 긴밀해지는 것이 장점이라면, 한 작품이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점이다. 완다의 선한 면모와 안타까운 사연만 강조하는 연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연출은 설사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는 다소 해칠 지언정 그녀가 초래했거나 직접 행한 악의 결과물들이 <닥터 스트레인지 인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에서 다루어질 것임이 이미 확정되었기에 가능하다. 향후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것은 덤이다. 이처럼 <완다비전>은 그 도전적인 시도와는 별개로 하나의 기계를 만드는 부품으로써 존재하기에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완다비전>이 MCU의 새로운 시대, 페이즈 4의 미래를 환히 비추는 것은 분명하다. 마법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 것이나 완다와 비전처럼 독자적인 서사를 부여받지 못했던 캐릭터들이 향후 디즈니+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칠 것이라는 점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속편을 비롯한 다음 전개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또한 당장은 허사에 그쳤으나 다시 한번 던져진 엑스맨 등장의 떡밥은 덤이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구조나 문법에서 벗어나고도 훌륭한 드라마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완다비전>이 보여준 완다, 비전, 그리고 마블의 비전은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충분히 만족스럽다.
A(Acceptable, 무난함)
앞으로의 발전이 더 기대되는 마블의 착실한 오답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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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룩 업 (Don't Look Up) (2021)
** 본 리뷰는 <돈 룩 업>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돈 룩 업 (2021)
감독: 애덤 맥케이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케이트 블란쳇, 티모시 샬라메, 아리아나 그란데, 조나 힐 등
장르: 코미디, 드라마, SF
러닝타임: 139분
개봉일: 2021.12.08
정치병 말기 환자들 VS 천문학자들, 역대급 불통 SHOW!
천문학자 '랜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박사와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는 어느 날 연구 도중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혜성 하나를 발견한다. 데이터를 계산한 결과 정확히 6개월 후 지구와 커다란 혜성이 정면으로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혼란에 빠진 채 나사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 연락을 돌린다. 두 사람은 혜성을 첫 발견한 장본인들로서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과 대담을 하고, '브리(케이트 블란쳇)'가 진행하는 토크쇼에도 출연해 소식을 전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기울이지 않는다. 다자고짜 황당무계한 소식을 진지하게 이야기한다며 두 사람을 비웃었고,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만 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케이트와 민디는 고군분투하지만, 두 쪽으로 갈라진 세상은 쉽게 그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신랄하게 까는 블랙 코미디, 웃고 난 후의 찝찝한 기분
인류의 아포칼립스 상황을 다룬 '애덤 맥케이' 감독의 SF 영화는 역시 뭔가 달랐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신랄한 풍자와 밈으로 가득 채웠고,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허구의 이야기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현재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팬데믹 중 하나인 '코로나 바이러스' 시국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극중 등장하는 인류의 재난이 전혀 남일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한마디로, 현감독은 재 국제사회에 관한 많은 이야깃거리를 함의할 수 있는 시의적절한 작품을 내놓은 셈.
'랜들 민디'와 '케이트 디비아스키'가 처한 상황은 마치 이들을 주인공으로 <트루먼 쇼>를 찍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들을 심리적으로 따돌린다. 이들은 객관적인 과학 데이터를 갖고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대중은 이들을 그저 자신들만의 세상에 갇힌 미치광이 과학자로 괄시한다. 연예인의 열애설과 같은 가십거리에는 SNS가 폭주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가지면서 두 과학자에게는 '케이트'를 재물 삼아 인터넷 밈으로 희화화시켜 버리기까지 한다. 두 사람과 '오글소프 박사(롭 모건)'만을 제외하면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이성적이고 탐욕스러우며 현실을 외면하는데, 아무리 영화라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현실감각이 밑바닥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SNL 블랙코미디식 콩트로 받아들이며 웃어넘길 수 있는 장면들이 많지만, 다시 한 번 해당 장면을 곱씹으며 우리 현실에 덧입혀 보았을 때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보다 더한 정치 코미디라는 사실을 덜컥 깨달을 수 있다. 그 때부터 관객은 마냥 웃을 수 없게 된다.
조연까지 꽉 채운 스타들, 연기 변신
<돈 룩 업>이 주목받은 까닭은 <바이스>, <빅 쇼트> 등으로 명성을 쌓은 '애덤 맥케이'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도 있지만, 다른 작품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화려한 멀티캐스팅이 가장 결정적이다. 투톱 주연으로 나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는 물론 대배우 '메릴 스트립'과 '케이트 블란쳇', 가장 핫한 젊은 배우 '티모시 샬라메', 인기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 그리고 '조나 힐'과 '마크 라이언스'까지 내로라 하는 배우들을 조연으로 채웠다. 제일 돋보인 건 극중 신경 안정제가 필수일 정도로 긴장을 많이 하는 '랜들'과 침착하다가도 감정을 폭발시키는 '디비아스키'의 대비를 훌륭하게 선보인 '제니퍼 로렌스'와 '디카프리오'의 깔끔한 호흡이다. 특히 열과 성을 다해 혜성과의 충돌을 막으려 진심으로 애쓰는 '제니퍼 로렌스'의 열연은 '역시'라는 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반면, 조연으로 나선 스타들은 작은 비중 대신 큰 폭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며 극중 캐릭터 싸움에 열을 올리는데, 가장 독보적인 임팩트를 남긴 배우는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대통령으로 분한 '메릴 스트립'이다. 멍청함과 영악함, 유머와 계산적인 감각을 모두 갖춘 새로운 타입의 대통령을 연기하며 관객의 국적을 막론하고 비슷한 타입의 지도자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카리스마와 우아한 이미지로 대표되는 '케이트 블란쳇'은 섹시한 앵커 '브리'로 또 한번의 연기 변신에 성공했고, 최근 알차게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티모시 샬라메'는 '게임 덕후+힙찔이' 속성이 더해진 캐릭터를 배우 특유의 매력으로 맛깔나게 완성했다. 정말 많은 배우들이 등장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세 배우의 연기 변신이 유독 눈에 띄었다.
대선을 앞둔 지금, 우리의 심란함을 극대화해줄 작품
<돈 룩 업>은 결국, 탐욕과 이기심에 찌든 국가 지도자와 이성을 잃어버린 정치병 말기의 대중이 합심하면 지구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경고를 날린다. '설마 대통령 하나 때문에 지구가 무너지겠어?'라는 낙관을 펼칠 수도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인간의 생존권을 위협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닥쳐왔을 때도, 많은 국가들의 정부는 발빠르게 국민들을 위해 조치를 취하기 보다는 다른 국가의 눈치를 보고, 국가의 이익에 합치되는 판단을 내리려 하지 않았는가.
영화는 결국 최악의 결말을 그대로 가져감으로써 우리가 미래를 긍정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조차 남기지 않았다. 대선 투표라는 중대한 결정을 앞둔 우리는 더욱이 심란해질 수 밖에 없다. 작품의 신랄한 풍자와 적절한 유머에 한껏 웃었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이 뒤통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역대 최악의 대선이라고 평할 정도로 후보자들의 네거티브가 극에 달했고, 정치 자체에 대한 대중의 피로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국가가 최악의 사태로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실제로 우리는 지도자를 잘못 선택하는 결과가 얼마나 큰 문제를 야기하는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네 정쟁은 'Don't Look Up'과 'Just Look Up'을 외치며 한 끗 차이로 싸우는 극중 인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겨우 한 단어만 다를 뿐이지만, 이 챌린지의 승부가 불러온 결말은 참혹했다. 누굴 선택하든 부정적인 미래만 보이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선택의 과정을 회피할 수는 없다. 물론, <돈 룩 업>이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단지 최악의 결말만을 보여준 채 우리의 고민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 뿐이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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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빼앗긴 레즈비언은 기억과 몸짓으로 말한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후 쓴 리뷰입니다.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은 가장 손쉬운 자기 선언의 수단이다. "나는 남자입니다." "나는 30대입니다." "나는 게이입니다." 등의 말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정보를 상대에게 빠르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이 전부는 아니다. 말이 없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릴 수 있다. 때로는 말보다 더 선명한 방식으로. 영화 〈우리, 둘〉(원제: 'Two of Us')은 '말할 수 없는' 레즈비언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강렬하게 선포하는 일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노년의 레즈비언 커플인 니나와 마도다. 둘은 복도를 가운데 두고 마주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은퇴한 둘은 로마로 이주해 한 집에 같이 살 계획을 꾸린다. 그런데 니나와 마도가 갈등을 겪기 시작한다. 마도가 자녀들에게 자신이 레즈비언이고 애인인 니나와 함께 살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니나는 '말하지 못하는' 마도를 답답해한다.
둘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던 때,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관계에 기묘한 변화가 생긴다. 이제 '말하지 못하는' 건 니나다. 니나는 매일 마도를 보고 싶고, 항상 마도의 곁에 머물고 싶다. 그러나 마도의 간병인은 그런 니나를 이상하게 여긴다. 니나는 간병인에게 자신이 마도의 레즈비언 애인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니나는 자신이 마도의 이웃, 친구로만 여겨지는 상황이 너무 답답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영화의 절정, 어머니가 레즈비언임을 알게 된 마도의 딸 앤은 그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마도를 니나와 분리하려고만 한다. 그럼에도 마도가 계속 니나를 찾자 '제발 자신과 대화를 하자'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마도는 이중적 의미에서 말할 수 없다. 뇌졸중에 걸려 언어능력을 잃은 게 첫 번째 이유고, 이성애규범적 세계가 레즈비언의 발화를 허용하지 않는 게 두 번째 이유다. 앤이 애타게 소리쳐봤자, 대답은 오지 않는다. 엄마와의 대화를 막는 건 이성애중심적 체제와 그에 안주하는 앤의 편견이지만, 앤은 끝내 무엇이 자신과 엄마의 대화를 막는지 알지 못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말'이 중요한 소재임을 암시한다. 영화는 두 여자아이가 숨바꼭질을 하다가 한 명이 사라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술래인 아이는 사라진 친구를 애타게 부르지만, 그 목소리는 까마귀 울음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 애타게 부르짖어도 들리지 않는 아이의 목소리는 자신들이 레즈비언 커플임을 말하지 못하는 니나와 마도를 닮았다.
하지만 말이 없다고 니나와 마도가, 그들의 관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말이 아니어도 그들의 존재와 사랑을 증명할 수단은 있다. 말의 강제적 부재라는 상황에서, 니나와 마도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식은 기억과 몸짓이다.
먼저 기억의 문제를 보자. 앤이 아무리 부정해도, 마도의 옛 앨범에 담긴 건 그녀의 아버지가 아닌 니나다. 마도의 모든 걸 제일 잘 아는 사람도 니나다. 오랜 기간 서로가 서로의 가장 친밀한 존재였던 둘은 동성애 친밀성을 배제한 가족제도와 규범이 알지 못하는 내밀한 경험들을 쌓아왔다. 니나와 함께 쌓아온 내밀한 경험은 '말을 잃은' 마도에게 가장 분명한 언어가 되어 둘의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를 구성하며, 미래를 꿈꾸게 한다. 니나와 마도는 오랫동안 함께 쌓아온 기억으로 소통한다. 이들의 소통이 앤을 비롯한 타인에게 '들리지 않는' 건 이 영화의 가장 큰 비극이다.
두 번째는 몸짓이다. 영화의 마지막, 니나는 요양 병원에 있는 마도를 몰래 자기 집으로 빼돌린 후 함께 블루스를 춘다. 밖에서는 앤이 문을 쾅쾅 두드리며 마도를 돌려달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마도와 니나는 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듣지 않는 건' 앤이 아닌 마도와 니나다. 세계가 그들을 거부하자, 그들만의 세계를 만든 것이다. 사랑을 속삭이는 말은 들리지만, 사랑에 손가락질하는 말은 들리지 않는 세계를. 서툴고 경직된 그들의 블루스가 무엇보다 단단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렇게 말을 빼앗긴 늙은 레즈비언 커플은 기억과 몸짓으로 자신들을 증언한다. 〈우리, 둘〉은 '말'의 은유를 통해 존재에 대한 윤리의 문제를 다루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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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의 상처와 온기, 그 선명한 기록
치열한 생존 눈치싸움 –〈우리들〉이 포착한 아이들의 세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만들어진다. 친한 친구들끼리 무리가 형성되고, 소속과 배제의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아무렇지 않게 오가던 말 한마디, 우연히 엿듣게 된 대화, 한순간의 표정 변화만으로도 관계의 역학이 흔들린다. 영화 **〈우리들〉(2016, 윤가은 감독)**은 이 미묘한 감정을 치밀한 시선으로 포착하며, 아이들의 세계가 얼마나 치열한 눈치싸움 속에서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표류하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붙들 수 있는 끈
영화는 친구 관계의 본질을 집요하게 탐색한다. 주인공 선은 새 학기를 앞둔 여름방학, 전학 온 지아와 가까워지면서 처음으로 ‘친구를 만든다’는 감각을 경험한다. 그러나 방학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왔을 때, 관계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무리에 속하지 못한 선과 새롭게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지아는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이어가며, 서로를 밀어내기도 하고 붙잡기도 한다. 윤가은 감독은 이를 통해 ‘우리’라는 집단 안에 속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과,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우리들의 시선 – 낮은 눈높이에서 본 세계
〈우리들〉이 돋보이는 지점은 아이들의 시선을 정확히 포착하는 촬영 방식이다. 카메라는 철저히 주인공들의 눈높이에 머물며, 어른들의 세계를 배제한 채 또래 집단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또한 긴 롱테이크와 자연광을 활용한 촬영 기법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이런 연출 방식은 단순한 아동 영화가 아닌, ‘어린 시절’이라는 시기를 살아본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끌어낸다.
〈우리들〉이 남긴 여운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왕따 이야기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쁜 아이’도, ‘착한 아이’도 없다. 선과 지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아이들은 그저 ‘우리’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칠 뿐이다. 영화는 누군가를 배제하는 집단의 잔인함을 고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집단 안에 속하고 싶어 하는 개인의 절박함을 이해하는 따뜻한 시선을 견지한다.
결국 〈우리들〉은 특정한 세대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지나온 순간을 정밀하게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의 감정을 여과 없이 담아낸 이 영화는, 우리 각자가 거쳐 온 길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그럼 언제 놀아?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친구가 때리고..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선의 동생인 윤이가 한 말이다.그러게 말이다. 우리는 그때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했는지. 우리는 왜 그게 잘 안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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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3주 최신개봉영화(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 도쿄 리벤저스, 어나더 라운드드, 아이스틸 빌리브, 미싱타는 여자들)
[WEEKEND CHOICE MOVIE] 2022년 1월 3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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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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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이징 파이어> 티저 예고편
강력 범죄 수사대에서 함께 믿고 일하던
베테랑 경찰 ‘장충방’과 그의 후배 ‘추강아오’.
어느 날 같은 임무를 맡은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해
한순간에 운명이 뒤바뀌게 되고
동료에서 적이 되어버린다.
서로가 서로의 표적이 된 그들은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시작하게 되는데….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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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55> 메인 예고편
전세계 로케이션&압도적 스케일? 초대형 액션블록버스터를 목격하라! 영화 [355] 메인 예고편 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