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2-05 09:56:54
한계가 없는 봉준호의 세계
필모그래피 완전 정복!

국내외를 종횡무진하며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한계가 없는 영화감독이자 한국 관객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오는 2월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영화와 만나기 전, 필모그래피 정주행 어떠신가요?
여러분의 최애 영화도 알려주세요!

줄거리
조용한 중산층 아파트, 백수와 다름없는 시간강사 고윤주(이성재 분)는 개소리에 괜히 예민해져서 방바닥에 엎드려서 소리를 들어보고 천장에서 소리를 들어보려고 하지만 개소리의 진원지를 알지 못한다. 할 수 없이 평소대로 버려도 아무도 안주워갈 슬리퍼에 츄리닝을 입고 밖으로 나가 분리수거를 하고 터덜거리며 들어오던 중 바로 옆집 문앞에 서 있는 강아지를 발견한다. 윤주는 그 개를 납치, 지하실로 뛰기 시작한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지하실에 가둬버리는 윤주.
한편 아파트 경비실엔 경리 직원 박현남(배두나 분)이 있다. 그날도 지루하게 낱말맞추기나 하고 있는 현남에게 꼬마 슬기가 삔돌이를 찾는 전단을 가지고 온다. 온 동네에 전단을 붙이는 현남. 어쩌면 교수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안고 한잔한 윤주. 집에 돌아와 임신한 아내의 배에 대고 속삭이고 있는데,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 급하게 달려나간 아파트 사방에 강아지 찾는 전단이 붙어있고 이렇게 써 있다. "특징: 성대수술로 짖지 못함". 그러나 지하실의 강아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신경질적인 목소리의 주인이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의 강아지임을 알게 된 윤주는 호시탐탐 그 개를 노리는데.
점점 늘어가는 강아지 실종사건. 사건이 마구 번져 가는 듯 보이던 어느날, 친구 뚱녀에게 들은 현남은 망원경을 들고 옥상에 올라갔다가 건너편 옥상에서 한 사내가 개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용감한 시민상을 타서 텔레비젼에 출연하는 것이 꿈인 우리의 현남.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뚱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사내를 쫓기 시작하는데.

줄거리
1986년 경기도. 젊은 여인이 무참히 강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2개월 후, 비슷한 수법의 강간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사건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일대는 연쇄살인이라는 생소한 범죄의 공포에 휩싸인다. 사건 발생지역에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수사본부는 구희봉 반장(변희봉 분)을 필두로 지역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과 조용구(김뢰하 분), 그리고 서울 시경에서 자원해 온 서태윤(김상경 분)이 배치된다. 육감으로 대표되는 박두만은 동네 양아치들을 족치며 자백을 강요하고, 서태윤은 사건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지만,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은 처음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다.
용의자가 검거되고 사건의 끝이 보일 듯 하더니, 매스컴이 몰려든 현장 검증에서 용의자가 범행 사실을 부인하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구반장은 파면 당한다. 수사진이 아연실색할 정도로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살해하거나 결박할 때도 모두 피해자가 착용했거나 사용하는 물품을 이용한다. 심지어 강간사 일 경우, 대부분 피살자의 몸에 떨어져 있기 마련인 범인의 음모 조차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후임으로 신동철 반장(송재호 분)이 부임하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박두만은 현장에 털 한 오라기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근처의 절과 목욕탕을 뒤지며 무모증인 사람을 찾아 나서고, 사건 파일을 검토하던 서태윤은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범행대상이라는 공통점을 밝혀낸다. 선제공격에 나선 형사들은 비오는 밤, 여경에게 빨간 옷을 입히고 함정 수사를 벌인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돌아오는 것은 또다른 여인의 끔찍한 사체.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를 다시 감추고 냄비처럼 들끊는 언론은 일선 형사들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형사들을 더욱 강박증에 몰아넣는데.

줄거리
햇살 가득한 평화로운 한강 둔치 아버지(변희봉)가 운영하는 한강 매점, 늘어지게 낮잠 자던 강두(송강호)는 잠결에 들리는 ‘아빠’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올해 중학생이 된 딸 현서(고아성)가 잔뜩 화가 나있다. 꺼내놓기도 창피한 오래된 핸드폰과, 학부모 참관 수업에 술 냄새 풍기며 온 삼촌(박해일)때문이다. 강두는 고민 끝에 비밀리에 모아 온 동전이 가득 담긴 컵라면 그릇을 꺼내 보인다. 그러나 현서는 시큰둥할 뿐, 막 시작된 고모(배두나)의 전국체전 양궁경기에 몰두해 버린다.
그곳에서 괴물이 나타났다. 한강 둔치로 오징어 배달을 나간 강두, 우연히 웅성웅성 모여있는 사람들 속에서 특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생전 보도 못한 무언가가 한강다리에 매달려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냥 신기해하며 핸드폰, 디카로 정신 없이 찍어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은 둔치 위로 올라와 사람들을 거침없이 깔아뭉개고, 무차별로 물어뜯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하는 한강변. 강두도 뒤늦게 딸 현서를 데리고 정신 없이 도망가지만,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사람들 속에서, 꼭 잡았던 현서의 손을 놓치고 만다. 그 순간 괴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현서를 낚아채 유유히 한강으로 사라진다. 어딘가에 있을 현서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갑작스런 괴물의 출현으로 한강은 모두 폐쇄되고, 도시 전체는 마비된다. 하루아침에 집과 생계, 그리고 가장 소중한 현서까지 모든 것을 잃게 된 강두 가족… 돈도 없고 빽도 없는 그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지만, 위험구역으로 선포된 한강 어딘가에 있을 현서를 찾아 나선다.

줄거리
읍내 약재상에서 일하며 아들과 단 둘이 사는 엄마(김혜자 扮). 그녀에게 아들, 도준은 온 세상과 마찬가지다. 스물 여덟. 도준(원빈 扮). 나이답지 않게 제 앞가림을 못 하는 어수룩한 그는 자잘한 사고를 치고 다니며 엄마의 애간장을 태운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살해 당하고 어처구니없이 도준이 범인으로 몰린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엄마. 하지만 경찰은 서둘러 사건을 종결 짓고 무능한 변호사는 돈만 밝힌다. 결국 아들을 구하기 위해 믿을 사람 하나 없이 범인을 찾아나선 엄마. 도준의 혐의가 굳어져 갈수록 엄마 또한 절박해져만 간다.

줄거리
기상 이변으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지구.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운 기차 한 대가 끝없이 궤도를 달리고 있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바글대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의 꼬리칸, 그리고 선택된 사람들이 술과 마약까지 즐기며 호화로운 객실을 뒹굴고 있는 앞쪽칸. 열차 안의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17년 째,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는 긴 세월 준비해 온 폭동을 일으킨다. 기차의 심장인 엔진을 장악, 꼬리칸을 해방시키고 마침내 기차 전체를 해방 시키기 위해 절대권력자 윌포드가 도사리고 있는 맨 앞쪽 엔진칸을 향해 질주하는 커티스와 꼬리칸 사람들. 그들 앞에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줄거리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에게 옥자는 10년 간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다.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나타나 갑자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가고, 할아버지(변희봉)의 만류에도 미자는 무작정 옥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선다.
극비리에 옥자를 활용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옥자를 이용해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질렌할), 옥자를 앞세워 또 다른 작전을 수행하려는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까지. 각자의 이권을 둘러싸고 옥자를 차지하려는 탐욕스러운 세상에 맞서, 옥자를 구출하려는 미자의 여정은 더욱 험난해져 간다.

줄거리
전원백수로 살 길 막막하지만 사이는 좋은 기택(송강호) 가족. 장남 기우(최우식)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시켜 준 고액 과외 자리는 모처럼 싹튼 고정수입의 희망이다. 온 가족의 도움과 기대 속에 박사장(이선균) 집으로 향하는 기우.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의 저택에 도착하자 젊고 아름다운 사모님 연교(조여정)가 기우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 뒤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줄거리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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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꾸고 있어.
얼마전 일하는 엄마들과 밥을 먹다가 육아와 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보면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엄마들이 사회생활을 한참 하던 때, 그러니까 불과 10년전만 해도 육아휴직이라는게 일반적인 단어가 아니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디 여자애가 서울로 학교를 가냐는’ 외할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외할머니집에서 걸어서 10분거리의 대학교를 가야 했다. 불과 25년전이었는데 외할머니는 아들이 아닌 ‘가시나’를 대학에 보내는 것도 못마땅해 하셨다. 아주아주 보수적인 지역의 보수적인 어른이었지만, 엄마와 아빠가 강력히 주장해서 대학을 보낸 것이다.
‘여자도 전문직을 해야해.’ 결혼해서도 원가족인 외할머니의 투병생활을 돌보고, 남동생들을 케어하며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지만, 내 딸만은 그렇게 살게 하지 않겠다는 엄마의 결연한 의지 덕에 나는 외할머니가 그렇게 싫어 하셨던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는 직업인 PD가 될 수 있었다. 꽤나 진취적인 직업군에 속하지만, 그래도 여자 PD가 육아휴직을 하고 다시 복직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 된 것은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2000년 초에 결혼 한 여자선배들을 떠올려 보면 결혼과 출산으로 일을 그만 둔 선배가 더 많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쓰고 돌아온 선배가 나보다 한살 많은 선배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엄청난 변화 속에 놓여 있는 중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미국의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마지막 씬에 직접 출연한다 )1950년대 하버드 로스쿨엔 전체 학생의 2%에 해당하는 9명의 여학생 밖에 없었고, 심지어 여자 화장실도 없었다고 한다. 수석졸업을 하고 두아이 까지 키웠지만, 로펌에서는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고 (거절하는 이유도 가지 가지다. 애나 돌봐야지 일은 언제 할거냐. 이미 작년에 여자를 뽑았다. 회사의 다른 여자들이 질투할거다? 등등 )그녀는 로펌 대신 결국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게 된다. 그리고 1970년대에 남성보육자와 관련된 한 사건을 접하고 이것이 남성의 역차별 사건이며, 성차별의 근원을 무너뜨릴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할때. 긴즈버그는 남편과 딸의 지지에 힘입어, 성별을 근거로 한 (On The basis of Sex (원제)) 178건의 합법적 차별을 무너뜨릴 재판을 시작하게 된다.
“백 년 동안 계속 져 왔다고 해도 이기려고 노력하는 걸 멈출 이유는 없죠.”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에서 딸 제인이 엄마 루스에게 하는 말이다. 이 대사는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그러고 보면 인종차별만큼이나, 성별에 근거한 차별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지… 의의도 정당하고, 의뢰인도 정당하지만, 여성들을 한세기 넘게 같은 논쟁에서 져왔다는 루스에게 딸 제인이 하는 저 말이 이 영화를 다 말해주는 것 같았다.
둘이 함께 택시를 기다릴 때 성추행 발언을 하는 남자들을 향해
“엄마, 남자들이 여자에게 저런식으로 말하게 두면 안돼.” 라고 시원하게 욕을 하는 딸을 보며,
“넌 자유롭고 두려움을 모르는 젊은 여성이야. 20년 전엔 이렇게 행동하지도 못했어.시대가 이미 변했어.“ 하고 말하는 엄마 루스.
차별이 차별인 줄도 모르고 지나왔던 시대를 지나, 우리 자녀들의 열망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되는 조항을 다시 검토하여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 달라고 주장했던 법정씬에서는 여지 없이 또 울컥했다. 실패하고 절망하더라도 결국엔 변화한다는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화.나는 어쩌면 이런 변화의 역사에 살아있는 증인일지도 모른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자라며 차별을 받았지만, 그걸 깨려는 엄마, 이모와 같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고, 이제 딸을 낳고 엄마가 되고 또 나의 일을 하는 이 시간 속에서, 내 딸을 위해 나 역시 매일 매일 크고 작은 싸움을 계속 해오고 있는 중이니까.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작은 행동이 모여 세상을 바꾼 다는 것을 이미 겪었으니까. 승리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나아가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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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필로프 사단의 28용사
판필로프 사단의 28용사
러시아 전쟁영화. 모든 전쟁영화는 판타지다. 현실을 최대로 재현한다고 해도, 피가 튀고, 몸뚱이가 산산조각 나서 날아다니는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리얼리티를 최대로 끌어올린 전쟁영화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있지만, 그것 역시 실제 전투 현장과 비교할 수 없다.
특히 헐리우드 전쟁영화는 영웅을 드러내기 위한 배경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전쟁의 참혹함과 잔혹함, 공포를 진지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전쟁영화 가운데 특히 1차, 2차 세계대전 영화는 이후에 나온 영화들과 차별이 있다. 이 세계대전은 근대 전쟁의 마지막 대규모 전쟁으로, 재래식 무기와 수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갈아 넣은 살육전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2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과 쏘련의 전쟁은 전쟁 전체의 판도를 바꾸고, 연합국의 승리로 주도권을 가져온 전쟁이었다. 독쏘전쟁은 우리에게 덜 알려졌다. 우리가 미국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어서, 2차 세계대전도 미국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미국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전쟁을 가장 참혹하게 겪은 국가는 쏘련이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이 쏘련을 침공한 1941년 겨울에서 1942년 초반까지 쏘련이 독일군에 계속 밀리는 상황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리고 있다. 이 시기는 '독쏘전쟁'의 1기에 해당하는 기간으로, 독일군은 이미 쏘련을 침공할 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해 1941년 6월 22일, 독일군 공군 폭격기가 쏘련의 주요 비행장을 폭격했고, 지상에서는 독일군 포병의 포격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에 쏘련은 독일군의 공격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모스크바 근처까지 처들어왔다. 쏘련의 서쪽 국경은 북쪽 레닌그라드부터 남쪽 하리코프까지 거의 직선으로 뒤로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쏘련은 뒤로 밀리면서도 대책없이 도망한 것은 아니었다. 비교하자면, 복싱에서 실력 좋은 선수에게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면서 코너에 몰린 상황이었는데, 쏘련은 맷집이 좋아서 맞으면서도 계속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고, 때리는 독일이 오히려 지쳐서 힘이 빠지는 형국이었다.
1941년 11월 14일, 독일 11기갑사단이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는 상황. 쏘련군은 방어선을 구축하고 단 한발짝도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맞서고 있지만, 기갑사단에 맞설 병력과 무기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독일 11기갑사단에 맞서는 쏘련군은 불과 50여 명으로, 대전차포 서너 문, 기관총 몇 문, 수류탄과 사제 화염병 정도의 무기로 방어를 하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11월 14일에 이미 독일군의 포격으로 참호 진지가 파괴되었지만, 첫 전투에서 독일군 전차 4대를 파괴하고, 독일보병 다수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린다. 하지만 뒤이어 두번째 전투에서는 독일군의 포격이 훨씬 격렬해지고, 이때 쏘련군은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생존군인은 불과 28명에 불과했다.
이들 소수의 군인들은 원래 '판필로프 사단'이라고 불리는 붉은 군대 316 소총 사단에 소속된 군인들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탄인들이 주류를 이룬 부대였다. 이들은 독일군이 침공한 1941년 6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창설된 동원 사단으로 당시 키르기스 관구장이던 '이반 판필로프' 소장이 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원래 이 사단은 레닌그라드를 방어하기 위한 예비사단이었지만, 그해 10월, 모스크바를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재배치되었으며, 사단 이름도 8소총사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전투가 벌어진 직후 판필로프 소장은 독일군의 포격 파편에 맞아 사망했다.
독일군 탱크가 몰려오기 시작하고, 참호에서 방어를 하는 28명의 군인은 탱크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탱크 주위에는 보병이 따라오고 있는데, 참호의 가장자리에 각각 기관총과 대전차포를 배치해 보병과 탱크를 분리하고, 탱크의 캐터필러를 부숴 탱크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전투력으로는 절대 강세에 있던 독일군은 탱크 수십 대를 밀어부치며 전진했고, 탱크에서 쏘는 포격으로 대전차포가 망가지고, 기관총병이 사망한다.
그럼에도 참호에 있던 쏘련군들은 수류탄을 던지며 탱크를 저지했고, 각각 한 대씩 남은 기관총과 대전차포는 진격하는 독일군 탱크를 저지하고 있었다. 관객은 영화라는 걸 알면서도 쏘련군의 용감무쌍한 전투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쥐게 된다. 이들은 몰려오는 독일군과 탱크에 맞서 좌절하지도, 만용을 부리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목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기 위한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고 있었다.
독일군 탱크 18대가 파괴되었고, 28명이던 병사는 6명이 생존했다. 전투가 끝나고 종군기자에 의해 이 전투가 쏘련의 언론에 알려지던 당시에는 쏘련군 모두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나중에 6명이 생존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 영화에서도 6명의 생존자가 전투가 끝난 들판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난다.
지금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공원에는 이들 6명의 생존 군인을 기념하고, 이 전투를 기록한 영웅 동상이 서 있다. 독일군의 침공을 일시적으로 막아내 모스크바를 지킬 수 있었던 이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탄의 군인들에 대한 기록을 영화로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미국영화보다 더 사실적이고, 흥미진진한 전쟁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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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의 판타지아 그리고 우드잡
2015년 어느 날, 좋은 영화라 같이 보고 싶다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날은 상영 마지막 날이었고, 관객석은 꽉 차 있었다. 내가 한여름의 판타지아에 대해 알고 있는 단 하나의 정보는 배경이 일본이라는 것.
배우도 감독도 아무것도 모른 체 영화 관람이 시작되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독특한 형식의 영화다. 흑백이라면 좀 답답할 것 같지만 몰입도가 높은 영화라 어느새 지금 보고 있는 화면이 흑백이라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그 중심엔 조감독 '미정'역의 김새벽 배우가 있었다. 영화감독 태훈과 새영화를 찍기 위해 일본의 지방 소도시 나라현을 방문한 미정. 그녀는 외지인임에도 자연스럽게 마을에 녹아 들어가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영화인지 다큐멘터리 필름인지 헷갈릴 정도로 자연스러웠던 그녀의 연기는 이후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어서 그랬을까? 1부와 2부의 주인공이 같은 사람들인데, '배우가 바뀌었나?'하고 생각할 정도로 느낌이 달랐다. 남주인공인 ‘이와세 료’씨는 2부의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 3일 동안 일부러 살을 까맣게 태웠다고 했고, 여주인공인 ‘김새벽’씨는 영화가 전환되는 시점에 머리를 풀고 나왔다. 참 신기하게 2부의 새벽씨는 다른 여자라고 느껴질 정도로 예뻤다.
영화는 큰 굴곡 없이 잔잔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힐링 무비였다. 그리고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끝나고 난 후, 고조라는 일본의 어느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온 듯 느껴졌다. 또 영화 내내 떠오르던 미우라 시온의 책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은 영화 '우드잡'으로 개봉했는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함께 보기 좋은 영화다.
순서는 조금 더 자극적인 우드잡을 뒤로 해야 한다.
워낙 미우라 시온의 원작 소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좋아해서 영화 '우드잡'을 보기 전에 기대와 불안감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괜한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아, 좋다."라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는 원작 소설과 약간 다르지만, 그 다른 점이 영화를 더 살렸다.
대학 시험에 떨어졌는데, 여친에게 차이기까지 한 우드잡의 주인공 히라노. 홍보 전단의 모델이 예쁘다는 단순한 이유로 산림관리 연수에 지원한다. 깊고 깊은 산속에서 나무를 다뤄야 하는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의 무서움을 모른 체, 모델만을 찾아 가무사리 마을에 떨어진 히라노. 휴대 전화도 터지지 않는 깊은 산속 마을에서 식객으로 산림관리 연수를 시작한 그. 고된 노동에 열두 번도 더 도망칠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어느새 벌목과 산림관리에 익숙해져 가고, 그를 가무사리로 이끌었던 홍보 모델인 이시이 나오키를 실제로 만나게 된다.
따뜻하고 먹먹한 소설 '가무사리 숲의 나날'에 스윙걸즈의 감독인 야구치 시노부의 유쾌함을 덧입혀 탄생한 영화 우드잡. 장면 장면을 사진으로 소장하고 싶은 영화다. 눈이 편해지면서 마음도 편해지는 영화의 색감도 좋았지만, 그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 히라노 유키역의 소메타니 쇼타의 구부정한 어깨가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영화다.
소메타니 쇼타의 어벙한 표정은 우드잡의 별책부록.(귀여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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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이 우리를 청춘에 데려다줄 거야
SYNOPSIS.
“빅밴드 재즈? 그게 뭐하는 건데?”
지루한 보충수업을 째고 싶었을 뿐, 토모코(색소폰)
야구부 선배에게 홀딱 반했을 뿐, 요시에(트럼펫)
남들보다 폐활량이 뛰어났을 뿐, 세키구치(트럼본)
어쩌다 친구 따라왔을 뿐, 나오미(드럼)
심벌즈가 적성에 안 맞았을 뿐, 나카무라(피아노)
짝사랑하는 재즈 덕후일 뿐, 수학 선생님(지휘)
대단한 이유 없음! 눈부신 재능 없음! 거창한 목표 없음!
그래서 우린 스윙한다♬ 그 누구보다 재미있게♬
POINT.
✔️ 우에노 주리가 실제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촬영한 영화. 조금 엉뚱하고 풋풋한 매력이 빛납니다.
✔️ 그러나 배역 준비는 풋풋하지 않음. 실제로 배우들이 악기를 배워서 연기했다고 해요.
✔️ 교복 입고 무언가에 열정을 불태우는 청춘 영화... 안 좋아하는 법 아시는 분?
✔️ <워터 보이즈>로도 사랑받은 야구치 시노부 감독 작품입니다.
교복 입은 아이들이 해맑게 나와서 각자의 청춘을 향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사실 이렇게 말한다는 자체가 특정 시대 콘텐츠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다. 요즘 교복 입은 애들은 해맑게 청춘 타령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괴생명체랑 싸우고, 좀비 바이러스 퍼진 학교에 고립되고, 성매매에 연루되고, 온갖 폭력에 맞서고, 기껏 공부 좀 해보려는 애도 타고난 재능이 싸움이고 뭐 그렇다... 다시 말해 학원물 또한 액션물과 장르물의 파도를 타는 시대다. 갖은 욕망들이 드글드글 서로의 머리채를 잡는 빨간 맛 드라마가 각광 받는 시대. 다이나믹한 스토리에 강한 K-콘텐츠 특성이기도 하고, 다이나믹한 현실을 노련하게 담아낸 창작물이라는 뜻도 되겠지만, 유순하고 말간 학원물이 이따금 그리울 때가 있다.
청춘 영화가 좋은 이유
콘텐츠조차 숨가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맹한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영화는 그냥 그 자체로 귀엽다. 특히나 <스윙 걸즈>는 2004년에 개봉한 영화다. (한국에서는 2006년 개봉했다.) 불과 20년 전이지만 분명 다른 시대 정신이 그 안에 분명 있다. 그 시절 시골에는... 정말 <스윙 걸즈> 같은 느낌의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가 그저 타성에 젖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교 풍경, 여름 방학 보충 수업이라고 그 타성조차 늘어진 날들. 학교에서 덥다는 생각으로 교복 깃을 풀풀 흔들며 매미 소리나 듣고 있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그래서 외국 영화임에도 <스윙 걸즈>의 풍경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
그다지 치열하지 않아도 되는 (관념 속의) 학교와 교복, 지방의 작은 열차를 타고 다니는 푸릇푸릇한 (관념 속의) 시골 풍경, 바쁘기보다는 무료할 정도로 단조로운 날들, 거기에 반짝 빛을 더해주는 친구들과의 시간, 집 전화로 서로를 부르던 시절의 감각, (역시나 관념 그 자체인) 여름 쓰르라미 소리, 기분 좋아질 수밖에 없는 음악까지... 이 영화는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영화다.
동양권 청춘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이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청춘의 파릇파릇 예쁜 면을 가득 보여주고, 조금씩 배경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한국-일본-대만 정도의 권역에서는 무리 없이 그 감성을 고스란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나라 애들은 수능 말고 무슨 시험을 보는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청춘의 표면만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20여년 전 일본 영화, 10여년 전 대만 영화 등 이런 "청춘물"이 우수수 쏟아지던 시절을 한 번 훑고 나면 그건 시대의 기억이 된다. 실제로 이 영화를 나도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 봐서, 내 청춘의 기억과 중첩되어 더욱 푸릇푸릇하게 느껴진다. 나이 들면서 좋은 점 중에는 이렇게 기억의 중첩으로 감각이 더 진하게 우러난다는 점도 있구나.
나이 들어 좋은 점은 하나 더 있다. 그 시절 '언니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였던 <스윙 걸즈>는, 얼추 두 배의 나이가 되어서 보니 마냥 귀엽기만 하다. 기껏 정 붙은 악기를 내어주고 자리를 비켜 주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나, 친한 친구여도 옆자리 친구와 기묘하게 경쟁하게 되는 마음, 꿈 같던 여름이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묘하게 어색해진 친구와의 거리감 같은 것들이 죄다 귀엽다. 그 시절에 가장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감각임을 알기 때문이다. 바쁜 일이나 정해진 일정 같은 것들에 얽매이는 삶을 아직 시작하기 전, 그 시기 특유의 감각.
우연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무료하리만큼 고요한 날들도, 그 시절의 청춘도 모두 아름답지만... 오랜만에 본 이 영화가 옛날과 달리 마음에 남긴 것은 또 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되는 것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하는 질문이다. 여름에 우연히 손에 쥔 관악기들이 아이들을 전혀 다른 겨울로 데려갔듯이, 우연한 시작은 우리를 생각지도 못한 길에 데려다 놓는다. 그런 마법은 어릴 때만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 새로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비록 시작이 마법 같다고 그 여정이 즐겁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악기를 갖고 준비를 하기 위해 나름대로 들인 시간과 공이 있었듯,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은 언제나 지난하고 쉽지 않다. 그러나 조금씩 해냈을 때의 즐거움도 있으니까. 이 아이들처럼, 그렇게 그 길을 가게 된다.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과 함께 은은한 유머 감각이 빛나는 장면이나, 모로 가든 어찌됐든 문제가 얼렁뚱땅 해결되는 뻔뻔한(positive) 전개, 타카하시 잇세이나 키노 하나, 에구치 노리코(악기점 점원이었다!) 같은 배우들의 한껏 젊은 시절을 보는 일, 뭐 그런 것도 즐겁긴 했지만... 이 영화가 가장 산뜻하게 즐거웠던 이유는 역시 그 우연한 시작을 정말로 무언가 '되게' 만드는 여정을 담았다는 지점이 아닐까.
우연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몰라도, 그 길을 박수 짝짝 치며 친구들과 즐겁게 걷다 보면 우린 어딘가에 다다른다. 그 지점은 청춘 영화에서 계속 본 그 싱그러움을 닮아 있다. 어쩌면 청춘의 외피를 더덕더덕 붙여 바른 것처럼 느껴지는 이 영화는, 그 속살을 따라갈 때 가장 싱그러운 청춘에 도달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치면 청춘은 나이의 개념이라기보다, 마음의 상태에 더 가까운 개념인지도. 고등학생 귀엽고 나이 들어 좋은 점이 있다고 글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싱그러운 자리의 빛에 가슴이 뛰고 있으니까.
그러니 오늘도 좋아하는 걸 마음껏 좋아하고, 그 길이 우리를 어떤 싱그러운 자리로 데려다 주는지 기쁘게 바라보자. 잘하든 못하든, 기회가 있든 없든. 우연이 우리를 청춘에 데려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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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스름한 운명의 결박을 뒤흔드는 관능과 냉소의 퀘스트
※영화 〈그린 나이트〉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한번 해 보자. 소위 명망가의 집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으레 가족 중에는 속을 썩이는 아픈 손가락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다들 명석하고 현명해 가업을 이을 인재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들이 하는 대로 당장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는 인물로 커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 천덕꾸러기 역할을 하는 사고뭉치가 없으란 법은 없다. 자식이 그런 역할일 때 부모는, 밖에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대충은 짐작이 가나 굳이 대답을 듣기도 싫고, 딱히 뭐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도 없어 보이는 저 아이를 어떻게 교화시킬지 고민이 많아진다. 그럴 때 몇 년이라도 더 살아 본 이웃과 주변인들은 자식을 키워 본 경험들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대로 기회가 찾아오듯 지금은 답답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잡고 제 구실을 할 것이라 위로한다. 하지만 그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를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걸 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 거대한 녹색의 형체에 도끼를 들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지는 않을까.
왜 기사가 되고 싶은가?
영화가 켜켜이 쌓은 은유와 상징은 여러 갈래로 해석할 통로를 만들어준다. 문학의 뿌리이자 시초를 선택해 새로운 변형을 가한 데이빗 로워리는 전환기의 문제작을 선택해 낯설지 않고도 예측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중세를 지탱하는 정신이었던 기사도는 접근할 수 없는 흠모의 대상인 귀부인을 향해 미혼의 기사가 펼치는 거세된 욕망의 궁정식 사랑으로 유지된다. 중세 귀족 중심의 남성연대를 유지하는 기능을 했던 이 논리에 따르면 기사는 꿈에도 넘볼 수 없는 성주의 ‘소유물’인 귀부인에게 플라토닉 사랑을 표출한다. 조금이라도 성적 욕망을 드러낸다면 궁정식 사랑의 가치와 논리는 파괴된다. 여성은 욕망을 표출하는 대신 기사의 임무를 부여하는 대상으로만, 마치 게임 속 퀘스트를 전달하는 NPC로 존재한다. 당대의 기사는 원하는 목표인 전설과 명예를 차지하여 자기 정체성을 획득하는 여정의 복잡성을 귀부인이라는 도구적 존재로 스스로 만들어낸다. 외부적 상황에 따라 애초에 불가능한 귀부인과의 감정적 욕망은 시작도 하기 전에 미리 장벽을 세워놓는 셈이다. 실패가 예고된 관계인 가질 수 없는 여성의 사랑은 그 자체로 남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충분하다. 그러나 〈그린 나이트〉의 원전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는 이러한 전통적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
양난 이후 조선을 지탱하던 사대부 정신이나 봉건제 같은 가치관에는 근원적 동요가 일어난다. 문학에서도 이 흐름은 이어진다. 평민과 여성의 각성으로 사회비판과 현실주의적 특성이 두드러지는 산문 문학이 발전하여 새로운 사조가 들어선다. 국가적 혼돈은 기존의 질서를 뒤흔들며 전복의 계기를 마련한다. 14세기 말 유럽, 인간의 탐욕은 총포를 만들었고 백년전쟁은 전 영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뿐인가.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은 무자비한 속도로 인명을 앗아갔다. 환란의 시기에 사회를 지탱하던 봉건제와 교회는 힘을 잃는다. 기사도 정신이나 궁정의 예법은 여전히 존재했으나 예전 같은 강경함은 사라진다. 이후 기사의 도덕적 권위가 하락함과 동시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문화예술도 예외는 없다. 14세기 말 쓰인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는 과거 아서왕 전설의 연장선상에서만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분명 서사의 진행은 기존의 문법인 궁정식 사랑과 기사의 영웅 서사를 따라간다. 그러나 본론으로 들어가면 인물의 태도와 분위기에서 확연한 변화가 엿보인다. 용기와 신의를 중시하던 원탁의 기사들은 녹색 기사의 게임 제안에 주저하고 서로 미룬다. 가웨인 역시 기사도의 덕목이라는 충성과 용맹, 겸허와 거리가 멀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주인공이었다면 기사의 게임 이후 일 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을 때 철저한 자기 계발과 조력자의 훈련이 동반되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미 준비된 영웅이었다면 그런 과정은 필요하지도 않았을 터. 하지만 가웨인의 일 년은 별 언급도 없이 생략되어있다. 그렇다고 그가 기사로서 완벽한 인물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얼떨결에 거대한 여정에 차출된 것처럼 떠나는 데다가 손쉽게 욕망에 휘둘린다. 이렇게 중세의 기사들이 유약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여성 인물들의 태도는 과감하고 적극적이다. 현명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상황을 이해하며 능숙한 계략을 선보이기도 한다. 모르간 르 페이는 가웨인의 전 여정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주동자이며, 레이디는 자신의 욕망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는 시선의 주체가 된다. 가웨인과 레이디의 뒤집힌 구도는 새로운 해방의 지점을 부여하며 관습을 거부하는 시대적 변화를 나타낸다. 남성 중심의 봉건 사회를 꼬집고 비판하는 수백 년 전 작품의 길을 2021년의 영화는 성실히 따라가면서도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색깔을 마음껏 드러낸다.
데이빗 로워리가 펼쳐낸 가웨인(데브 파텔)의 여정은 오늘날 젊은 세대의 불안과 역경을 담아낸다. 아직 기사 작위가 없는 젊은 가웨인은 다른 기사들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당당히 내세울 멋진 전설 하나쯤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아서 왕(숀 해리스)의 이복남매인 모르간(새리타 커드허리)의 아들로 태어나 원탁의 중심에 앉을 수 있는 혜택과 기회를 지닌 ‘은수저’지만 딱히 내놓을 에피소드는 마땅치 않다. 크리스마스에 모두 모인 자리에서 삼촌 아서 왕은 굳이 그를 옆자리에 부른 뒤 장광설을 펼친다. 기사들이 겪은 무용담을 즐기는 아서 왕과 기네비어 왕비(케이트 디키)는 가웨인에게 너도 저런 모험담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를 은근히 압박한다. 명절마다 만나는 친척들의 달갑지 않은 질문 세례와 긴 조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때마침 불청객인 녹색 기사(랠프 아이네슨)가 찾아와 ‘목 자르기 게임’을 제안하고, 가웨인은 떠밀리듯 플레이어가 되어 그의 머리를 자르지만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 녹색 기사는 일 년 후 등가교환에 따라 ‘목을 잘리러 오라’는 통보를 한 뒤 방을 나선다. 준비도 안 된 가웨인의 갑작스러운 여정은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낯선 사회에 발을 내디뎌야 하는 청년들의 고민과 불안을 내포한다. 기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모험은 삶의 첫 시련에 던져진 미숙한 인간이 어떻게 고난을 겪고 성장하는가를 보여준다.
기사가 스스로 차단한 욕망의 허들은 기존의 궁정식 사랑을 변용한 장르에서 종종 귀부인과 위험한 관계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킨다.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 남성의 페티시즘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여성을 이용하는 방식은 현대의 누아르와 로맨스로 구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웨인과 에셀/레이디(알리시아 비칸데르)의 관계에서 기사의 거세된 남성성은 여성의 욕망과 결합해 전복된 구도를 만든다. 사랑에 소극적이며 선택을 주저하는 가웨인에 비해 에셀은 자신의 감정과 소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나약한 남성이 홀로 유혹의 시험을 치르는 동안 카메라는 집요하게 그를 훑으며 욕망을 표출한다. 이 과정에서 가웨인을 향한 성적인 긴장은 레이디의 유혹에서 절정에 이른다. 우리는 원작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카메라가 모르간의 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웨인을 향한 성적인 함의가 농밀한 이 작품에 모르간의 존재는 곳곳에 드러난다. 영화 초반 녹색 기사의 행동과 교차하는 모르간의 의식은 모종의 계획을 암시한다. 처음 기사가 찾아왔을 때 아서 왕은 멀린을 쳐다본다. 잠깐의 붉은빛이 그에게 비춰오고, 왕을 향해 고개를 가로젓는다. 왕의 마법사조차도 당해 낼 수 없는 힘, 혹은 이 아이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안 모종의 거래가 의심되기도 하는 이 장면의 질문들 속 변하지 않는 사실은 모르간의 존재감이다. 버틸락의 성에서 가웨인 눈에만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눈먼 할머니와 눈을 가린 모르간, 그리고 한밤중 녹색 기사의 얼굴에 비치는 여러 얼굴 속 모르간처럼. 그렇다면 이 여정은 독립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한량 아들 가웨인을 험준한 사회로 내보내는 어머니 모르간의 시험이다. 스캐빈저와 성 윈프레드, 버틸락과 레이디의 내기 모두 모르간의 큰 그림 안에 포함된다. 원전에도 나오는 인형극의 인형처럼 가웨인의 모험은 퍼펫 마스터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가웨인은 왜 길을 떠났나?
혈육의 갱생 프로젝트치고는 상당히 과격한 여정을 가웨인은 왜 떠나야 했을까. 죽음을 담보로 한 게임에 머나먼 녹색 성당까지 가는 머나먼 길에는 매 순간 목숨이 위태롭다. 그뿐인가. 이해할 수 없는 마법과 말하는 여우, 귀신과 거인, 중세와 어울리지 않는 사진 기법까지 등장하는 이 혼돈의 세계는 문명과 대비되는, 태초의 인간에게 익숙했던 녹색의 자연을 상징한다. 인간은 문명을 만들어 자연을 지배하려 했지만, 숭고한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남아있었다. 동물성을 억압한 인간의 본성은 불확실과 혼돈을 넘나드는 설정으로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특히 ‘교환’의 상징이 어긋나는 지점은 흥미로운데, 영화 속 어디에도 ‘공정하고 평등한’ 규칙은 없다는 점이 그러하다. 크리스마스 아침의 게임부터 그러했다. 상대인 녹색 기사는 목을 날려도 일어나는 미지의 존재지만, 우리의 불쌍한 가웨인은 그 자리에서 죽을 것이 확실하다. 처음부터 불평등한 위치에서 일어나는 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캐빈저(배리 케오간)에게 길을 물어보는 대가로 동전을 쥐여주면 우리는 서로의 거래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캐빈저가 알려 준 실제 성당의 위치도 거짓인 데다 가웨인이 지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거래는 끝난다. 영주 버틸락(조엘 에저튼)과 레이디 사이의 ‘획득물 교환 게임’에서도 가웨인은 버틸락에게 레이디와의 관계 그대로를 돌려주지 않는다. 그나마 대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 윈프레드(에린 켈리먼)과의 거래도 일대일로 연결 짓기에 뭔가 석연치 않다. 이렇게 모험 내내 계속되는 비합리적인 교환의 연속은 영화에서 재신화화된 자연이 가진 혼돈과 대립, 거기에 나약한 인간을 대하는 냉정함마저 보여준다.
여기에 어머니라는 상징이 가진 자애로움마저 모든 것을 잃게 만든다. 가웨인의 방을 찾은 레이디는 그를 유혹하고, 이후 유사성행위를 암시하는 장면 이후 어머니가 짜 준 녹색 띠에 아들의 정액이 흩뿌려지는 장면의 결합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모든 과정이 어머니인 모르간의 의도와 설계에 의한 것이라면 관음의 시선인 카메라는 모르간의 것으로도 읽힌다. 거기에 레이디 역시 모르간의 휘하에 움직이는 존재라고 인지한다면 대상과 감시자 이상의 사회적 금기의 코드로 해석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법으로써 금지한 고대 시대 부족 내의 최초의 터부로 근친상간을 꼽았다. 특히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은 태곳적 금기와 훈육의 산물로서 만들어낸 인위적 죄의식으로, 상징적 아버지에 의해 경계된 사랑의 범위이다. 다만 영화와 이론을 관통하는 이 도식화된 관계의 원천이 서양 중심의 문화적 코드라는 점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 아버지는 의도적으로 존재를 소거한 문명과 제도라면, 영화는 남성-문명에 칼을 겨누는 여성-자연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들어선 인간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영화에 나오는 중심인물로 아시아인이라는 점은 동양과 신비로운 마법을 연결 짓는 오리엔탈리즘이면서 동시에 영화 속 유색인종인 가웨인이 유럽-백인 사회의 엘리트 중심 원에서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으로도 보인다.
그렇다면 모르간이 짜 놓은 거대한 계획의 마무리는 아들이자 한 청년의 고난 끝에 찾아오는 값진 성장이라는 해피엔딩일까. 감독은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영화 전반을 감싸는 비관적이며 냉소적인 시선은 몽환적인 사건들이 계속되며 한 청년의 불안에서 인간 전체의 죽음과 삶의 불안으로 이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그 냉소적 기운은 이미 드러난다. 첫 장면에서 우리는 저 멀리 집안에서 창문 밖으로 커지는 불길이 보인다. 가축들이 뛰어노는 아래는 평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벽에 기대 누워있는-아마도 모종의 이유로 의식을 잃어 보이는- 사람과 덩그러니 서 있는 말이 있다. 이후 담 밖에서 남자와 여자가 들어서고 여자는 말을 타고 남자는 칼을 빼 든다. 무기를 집어 들고 바삐 움직이는 두 사람을 통해 어떠한 일이 일어났음을 예측해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영화는 끝내 설명해 주지 않는다. 이는 영화의 전체 내용을 집약하면서도 결말을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오프닝 시퀀스에 나타난 인간의 본성은 폭력과 욕망, 그리고 혼란이다.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는 예수가 태어난 날, 축복이 가득해야 할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처음 봐야 할 것은 그렇게 성스럽지는 않고, 축복도 없는 인간의 실태이다. 그렇다면 이 모두를 바라보는 모르간, 그린 나이트, 그리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자연’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이 세상을 바라볼까. 아마 저 별 볼 일 없는 인간으로 인해 발생하는 탐욕과 파괴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웨인은 게임에서 살아남았을까?
크리스마스에 마을은 불타고, 범죄는 소리 없이 일어난다. 그런 세상에서 가웨인은 원탁 앞에서 모험담을 당당히 자랑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우리는 가웨인이 세 번 죽는 장면을 바라본다. 첫 번째는 여정을 떠나기 전 인형극에서, 두 번째는 스캐빈저 일당에게 묶여 백골이 된 채로, 마지막은 게임을 포기한 채 어머니가 준 녹색 허리띠를 평생 차며 죽음을 피하다 종말의 순간 스스로 허리띠를 풀어내는 때이다. 사실 영화 혹은 녹색 기사로 현현된 자연은 가웨인을 처음부터 살려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이미 그의 죽음을 겨울이 오기 전부터 보았고, 시작조차 하기 전에 백골이 되어 끝나는 가웨인의 운명도 바라보았다. 영화는 어디로 기준을 잡는가에 따라 이후 벌어질 모든 서사가 실은 일어나지 않은 환상이라는 허무 의식을 심어놓는다. 그게 숲에 들어가기 전이든, 용기 없이 도망간 후든 말이다.
가웨인은 게임에서 살아남아 기사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사실 잘못되었다. 가웨인은 애초에 기사가 될 수 없다. 그는 여정을 시작하자마자 스캐빈저에 모든 것을 빼앗긴다. 윈프레드의 요청에 보상만을 바랐고, 환상 같은 거인에게 겁을 먹고, 녹색 기사와의 리벤지 게임에도 수차례 움찔거리며 몸을 사린다. 그는 교환의 논리에만 매몰되었고, 용기라고는 없으며, 성적 욕망을 이기지 못한다. 최소한 침대 위에서 레이디에게 굴복당한 이 장면을 기점으로도 전통적인 기준의 기사로서 가웨인은 실격이다. 그리하여 모험을 이겨내 기사가 되어 명예를 얻는다는 가부장적 남성성의 신화는 갈기갈기 찢긴다. 용기는 사라지고 욕망만 남은 가웨인의 도덕적 실패는, 남성연대 안에서만 통용될 모험담의 허상만 남아 인간-남성 사회의 나약함을 보여준다. 어머니와 세 여자 형제의 손에 의해 정성껏 만들어진, 여성의 헌신과 노력은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이에게는 부적이나 전리품일 뿐이다. 마지막에 그 의미를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다.
거기에 세상을 구원하러 온 예수와 가웨인이 오버랩되며 더 깊은 주제로 확장된다. 첫 시퀀스로 다시 돌아가,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카메라는 잠에 빠진 가웨인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냅다 물벼락을 맞는 그의 앞에 에셀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어요.” 막 잉태되어 흠뻑 젖은 인간을 연상케 하는 이 모습과 에셀의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영화에 처음 등장한 가웨인의 모습을 겹쳐놓는다. 여러 고난을 거쳐 인간에서 신이 된 예수의 삶을 떠올릴 수 있다. 그의 연인인 에셀/레이디는 공교롭게도 한 배우가 연기한 1인 2역이다. 사창가의 창녀와 우아한 귀부인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연상하게 한다. 여성성의 이중구조를 투영해 남성의 페티시즘을 충족하는 존재로 취급되어 있지만 그의 진면모는 누구보다 현명하다. 에셀/레이디는 유혹과 회유를 거듭하고 질문과 정답을 말한다. 사랑에 용기 있게 대처하고, 자신의 명예를 지키며, 인간 앞의 거대한 자연을 향해 언제나 겸허하여지라는 메시지를 줄곧 던진다. 그러나 가웨인은 그 어떤 말도 대답하거나 수긍하지 않는다. 영화는 모르간과 에셀/레이디, 그리고 녹색 기사로 자연과 여성성, 즉 인간 문명과 신화에 객체로 존재했던 대상들을 앞으로 끌어낸다. 이들을 존중하지 않은 인간 사회의 최후는 ‘살아 있는’ 인간 중 가장 위대했던 그를 대표하는 것들의 몰락과 더불어 허위의식으로 꼿꼿한 인간의 목을 날려 버린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가장 강력한 인간의 상징을 내포한 존재도 결국 신화 속의 허상일 뿐이라는 도발적인 냉소를 자아낸다.
영화 후반부 가웨인이 맞닥뜨리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보고 누군가는 영웅의 성장을 만나겠지만 나는 뿌리 깊은 냉소를 본다. 어리석은 인간의 굴레는 끝나지 않을 것이며, 죽음을 기억하고 뒤늦게 깨달았다고 해도 여전히 목은 잘릴 것이다. 원작의 결말처럼 게임에서 살아남은 가웨인이 원탁 앞에서 녹색 띠를 두른 채 거대한 남성연대의 일원으로 들어갔을 때, 영화는 인간의 죄책감과 나약함이 만드는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모험의 고난은 살아남은 인간의 자양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여정의 끝에는 거대한 녹색 기사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죽음만이 기다린다. 느리지만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덧없는 명예와 영광에 사람들은 손을 뻗는다. 쿠키 영상 속 가웨인의 딸이 왕관을 집어 드는 모습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인간의 참을 수 없는 욕망의 감정에 관한 거대한 냉소주의적 시선이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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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이성진 감독 X 스티븐 연 배우의 <성난 사람들> 에미상 싹쓸이!
<성난 사람들>은 미국 내 계층에 따라 다른 동양계의 삶과 현실적인 인생 역경들을 표현한 드라마로 4월 공개된 직후 넷플릭스 시청 시간 10위 안에 5주 연속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작품입니다.
동양인, 한국계 배우들이 주조연으로 카카오톡, 한국어, 한인교회, 설렁탕, 라면등 한국적 요소의 등장은 물론 작품 초반 등장인물의 자살 충동은 이성진 감독이 실제로 겪었던 감정을 녹여낸 작품이라고 밝혔습니다.
스티븐 연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 이창동 감독의 <버닝>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등 한국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왔습니다. 이번 <성난 사람들>로 에미상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계 배우로서의 입지를 넓힌것 뿐만 아니라 글로벌 영화계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세계의 주목을 받는 한국의 문화, 오늘의 씨네뉴스 시작합니다.
<내부자들> 할리우드 영화 리메이크
<서울의 봄>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가 <내부자들>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직접 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제작사에서는 <내부자들> 프리퀄을 시리즈물로도 준비하고 있으며 할리우드 영화 리메이크 작업과 OTT
시리즈물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 중이라 했습니다.
최민식 주연 <파묘> 베를린영화제 간다
최민식 주연 영화 <파묘>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됐습니다. 동일한 포럼 섹션 선정작 부문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김태용 감독의 <만추> 김지운 감독의 <장효, 홍련>등이 초청된 적이 있으며 <파묘>는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그리고 무속인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습니다.
<성난 사람들> 에미상 8관왕
한국계 연출가, 한국계 배우, 한국계 제작진이 뭉쳐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성난 사람들>이 에미 시상식 리미티드 시리즈에서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 감독, 각본, 남우주연, 편집, 의상, 캐스팅상을 받았습니다. 한국계 한국인 연출가가 만든 작품이 에미에서 작품과 각본상을 받은 건 이번이 최초였고 주연 스티븐 연이 남우주연상을, 앨리 웡이 여우주연상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영화 100편이 명대사 만난다. 영상자료원 '대사극장' 전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16일부터 오는 5월 18일까지 ‘대사극장-한국 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을 연다고 밝혔습니다. 1950~2020년대 제작된 한국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약 80년간의 한국영화사를 조명하는 전시로 100편의 한국 영화 속 대사를 아름다운 영상으로 풀어낸 ‘대사극장’을 선보인다고 합니다.
<서울의 봄> 역대 한국 영화 7위 등극
<서울의 봄>이 역대 한국영화 흥행 TOP7위에 올라섰습니다. 역대 전체 박스오피스에는 <7번방의 선물> <알라딘> <암살>을 뛰어넘으며 10위에 등극했습니다. 개봉 9주차에도 후발주자로 개봉한 <노량>을 제치며 흥행 기록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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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4] 자살을 선택한 사람에 대한 세심한 접근
Rabbitgumi 입니다! 김혜수 배우가 주연한 영화 내가 죽던 날 을 보고 왔어요.
자살한 아이에 대한 수사를 종결시키기 위해 마무리 수사를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데요.
한 사람이 자살로 이르는 심리묘사가 탁월합니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이 자살보다는 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사람의 믿음과 도움을 통해 보여주려 합니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좋은 드라마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봐주세요!^^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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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장판 포켓몬스터 : 정글의 아이,코코> 메인 예고편
포켓몬의 손에서 자라
자신이 포켓몬이라고 믿는 소년 ‘코코’가
처음 만나게 된 인간 소년 ‘지우’와
파트너 포켓몬 ‘피카츄’의 친구가 되면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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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엄마> 메인 예고편
이번 5월, 공포 스릴러 기강 잡으러 상륙! 할리우드에서 건너온 K-샤머니즘 스릴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