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1-28 12:27:10
로히림의 전쟁 | '반지의 제왕'이라서 눈감는 안일함
<반지의 제왕: 로히림의 전쟁>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주로서의 삶을 답답해하며 전사가 되고 싶어 하는 로한의 공주 '헤라'(가이아 와이즈). 어느 날, 그녀는 소꿈친구이자 웨스트마크 영주 '프레카'(숀 둘리)의 아들 '울프'(루크 파스콸리노)의 구혼을 받는다. 그러나 곤도르와 혼약을 맺은 로한의 왕 '헬름'(브라이언 콕스)도, 연심이 없었던 헤라도 구혼을 일언지하로 거절한다. 헬름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프레카는 결투를 청하고, 헬름은 결투 중 예기치 못하게 프레카를 죽이고 만다.
이에 격분하며 복수를 다짐하며 자취를 감췄던 울프. 그는 수년 뒤 로한의 적인 던랜드인을 이끌고 나타나 로한의 수도 에도라스를 습격한다. 헬름과 두 아들 ‘할레스’(벤자민 웨인라이트)와 ‘하마’(야즈단 카푸리)는 기마대 로히림과 함께 전투에 나서지만, 내부의 배신이 겹치면서 대패한다. 두 왕자를 모두 잃은 헬름과 헤라는 울프의 군세에 밀려 나팔 산성에 그대로 고립되고,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방도를 찾기 시작한다.
높고도 험한 <반지의 제왕>이라는 벽
영화팬들 사이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도는 말이 있다. 20년 전 <반지의 제왕> 포스터가 과장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팩트였더라. 아직까지도 '21세기 최고의 판타지 영화'라는 마케팅 문구는 <반지의 제왕> 몫이기 때문. 피터 잭슨 본인이 만든 <호빗> 삼부작도, 아마존 프라임이 심혈을 기울인 <힘의 반지> 드라마도 10억 달러 흥행과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동시에 달성한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에는 비견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판타지 영화 팬들은 <반지의 제왕>을 늘 그리워한다. 이 시리즈를 처음 본 전율을 언제 다시 느껴볼까 궁금해하면서. 이는 <반지의 제왕: 로히림의 전쟁>(이하 <로히림의 전쟁>)이 낯선 외양에도 불구하고 특히 궁금한 이유였다. '반지 전쟁' 250여 년 전 로한의 왕 헬름과 그의 딸 헤라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피터 잭슨과 앤디 서키스가 제작할 영화 <반지의 제왕: 골룸 사냥>에 앞서서 팬들을 가운데땅으로 초청했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약 한 달 늦게 공개된 결과물은 다소 실망스럽다. 원작에서는 이름조차 없었던 주인공 '헤라'의 서사는 평범하고, 그녀의 활약상을 보각한 각색은 부자연스럽다. 카미야마 켄지가 맡은 애니메이션 작화도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그러나 판타지와 <반지의 제왕>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로히림의 전쟁>을 싫어할 수 없다. 곳곳에 삽입된 <반지의 제왕>과의 연결고리를 찾다 보면 아쉬움이 절로 잊히기 때문이다.
에오윈을 넘지 못한 헤라
<로히림의 전쟁>의 성패는 헤라에게 달려 있었다. 애초에 원작에 없는 인물의 재조명이 기획 의도니까. 그런데 정작 헤라는 새로울 게 없다. 그녀는 공주로서의 삶을 답답해하며 전사가 되길 꿈꾼다. 공주로 태어났기에 다른 왕족과의 혼인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헤라는 모든 구혼을 거절한다. 대신 그저 말을 달리며 모험을 떠나는 삶을 꿈꾼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주 접한 말괄량이 공주가 바로 헤라다.
문제는 헤라와 똑같은 캐릭터가 이미 20년 전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했다는 것. 로한 제2왕조의 마지막 왕인 세오덴의 조카딸이자, 제3왕조의 첫 번째 왕 에오메르의 동생인 '에오윈'(미란다 오토)이 주인공이다. <로히림의 전쟁>에서 내레이션도 맡은 그녀는 전투에 나선 남자들을 기다리기만 하는 처지를 답답해하며 남몰래 무술을 연마했다. 심지어 왕명을 어긴 채 '펠레노르 평원의 전투'에 나서서 마술사왕까지 죽였다.
그런데 두 캐릭터가 겹쳐 보일수록 헤라는 에오윈에 비해 매력이 부족하다. 에오윈과 달리 헤라는 완성형 캐릭터이기 때문. 에오윈은 공주에서 전사로 변모해 가는 인물이었고, 관객도 그녀의 좌절과 성장을 함께 겪으면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헤라는 이미 완성된 전사다. 그러다 보니 관객은 그녀의 감정선에 이입하기 어렵고, 그저 활약상을 구경할 수밖에 없다. 헤라에게서 에오윈의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는 이유다.
<반지의 제왕 2> 다시 보기
그 결과 <로히림의 전쟁>에서는 프리퀄 겸 스핀오프만의 매력이 돋보이지 않는다. 사실 영화가 다루는 사건 자체의 한계가 명확하다. 사건의 전개나 세부적인 전투 양상이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이하 <반지의 제왕 2>을 반복하기 때문. 아이센가드의 적, 수적 열세 상황에서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는 주인공, 그 순간 헬름 협곡 위에서 등장하는 로히림 등.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적군이 오크가 아닌 인간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헤라는 이처럼 <반지의 제왕 2>의 반복에 불과한 이야기에 변수를 창출할 수 있는 존재였다. 원작 소설은 그녀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으니까. 그저 헬름에게 딸이 있었고, 그녀를 향한 울프의 구혼을 거절했다는 내용만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헤라를 어떤 캐릭터로 묘사하고 그녀에게 어떤 이야기를 붙여주느냐에 따라 <로히림의 전쟁>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극 중 헤라는 기존 캐릭터들의 조각모음에 불과하다. 그녀는 그저 세오덴처럼 농성하고, 아라고른처럼 최후의 돌격을 결심하고, 레골라스처럼 숱한 적군을 무찌르고, 간달프처럼 지원군을 끌고 온다. 기존에 못 본 역할을 선보이는 게 아니라, 여러 캐릭터가 맡았던 역할을 혼자 해낼 뿐이다. 결국 <로히림의 전쟁>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는 <반지의 제왕 2>를 일본풍 애니메이션으로 그린 것에 불과해 보인다.
실수는 반복된다
오히려 헤라의 존재가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는 구간도 적지 않다. 기존 서사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헤라의 활약상을 부각하려다가 전개가 꼬이기 시작한다. 단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은 헤라의 활약상을 덧댄 흔적이 가려지지 않은 셈이다. 이는 <호빗> 3부작에서 소설에 없던 오리지널 캐릭터, '타우리엘'이 중심이 된 로맨스가 등장할 때마다 영화의 흐름이 끊겼던 문제점과도 유사하다.
특히 헤라가 등장할 때마다 전투 시퀀스의 흐름이 꼬이는 경우가 잦다. 아이센 여울목에서 펼쳐진 전투와 수도 에도라스의 함락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시퀀스에서는 크게 세 주체가 등장한다. 헬름과 군대는 전투를 펼치고, 울프와 그의 본대는 헬름의 군을 우회해 수도 에도라스로 진격하고, 헤라는 울프의 공격으로부터 사람들을 대피시키며 수도를 방어한다.
그런데 전투가 진행될수록, 특히 헤라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시점부터 세 주체의 행적은 꼬이기 시작한다. 분명 여울목에서 부왕 옆에서 전투 중이었던 헬라스가 에도라스로 먼저 진군한 울프를 갑자기 앞지르는 식이다. 본편에서 엘프인 레골라스가 간신히 대적한 무마킬을 헤라가 혼자 죽이는 과장된 묘사도 시리즈의 일관성을 저해한다. 헬름 협곡에서 헤라와 그녀의 시녀 올윈이 숱한 적군을 대적하는 전개도 같은 맥락에서 의아하다.
프리퀄을 지탱하는 각색과 작화
안일하게 전편의 영광에 기댄 것 같은 헤라 캐릭터의 만듦새는 군데군데 몰입도를 높인 장점과 대조되기에 더욱 아쉽다. 각색한 울프의 서사가 대표적이다. 원작에서 그는 아버지를 죽인 헬름을 향한 복수심 때문에 로한을 침략한다. 반면에 영화는 울프의 동기를 더 구체화한다. 그가 헤라에게 품은 연심이 집착으로 변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 덕분에 승전하기 직전 그가 헤라를 놓지 못해서 패배하는 전개도 그저 허망하지는 않다.
헬름의 아들 하마의 최후를 변경한 각색도 인상적이다. 원작에 그는 나팔 산성 앞에 주둔한 울프의 군대를 기습하다가 사망한 반면, 영화에서는 울프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헬름이 보는 앞에서 처형당한다. 이는 헬름의 좌절감, 광증, 복수심을 강조하며, 더 나아가 헬름 협곡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이유를 알려주는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처럼 <로히림의 전쟁>은 원작이 간략히 다룬 감성적인 측면을 깊이 파고든다.
각색 외에는 작화가 놀랍다. 카미야마 켄지가 본래 배경을 그리는 미술 스태프 출신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원경에서 보여주는 가운데땅 풍경은 그림인지 실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밀하다. 일례로 오프닝의 경우 평원에서 말을 타는 헤라와 그 위를 날아가는 독수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순간적으로 실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시를 유발한다. 나팔 산성의 전경을 비추는 순간도 실사 영화 부럽지 않은 장엄함이 느껴진다.
다만 전투 시퀀스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로히림의 전쟁'이라는 부제만 보면 실사영화 속 로한의 기병대의 웅장한 돌격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림만으로 실사영화 수준의 장대한 전투 시퀀스를 보여주기에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그나마 보름달을 배경으로 프레알라프가 이끌고 온 지원군이 울프의 군대를 공격하는 장면만큼은 명장면으로 뽑기에 손색없다.
가운데땅은 여전히 반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히림의 전쟁>에는 <반지의 제왕> 팬이라면 아쉬운 대목이 눈에 밟혀도 모른 척 넘어가 줄 수밖에 없는 포인트가 적지 않다. 사루만의 재등장 때는 작고한 크리스토퍼 리가 <호빗> 촬영 당시 더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헤라가 반지만 찾는 모르도르의 오크들을 만나고, 그 순간을 궁금해하는 간달프와 헤라가 연락을 취하는 대목 또한 '반지 전쟁'과의 연결고리를 암시하기에 흥미롭다.
전반적으로는 <호빗: 다섯 군대 전투>와 유사하다. <반지의 제왕>에 못 미치는 완성도가 아쉽지만, 아라고른과 레골라스의 우정을 암시하는 대목이나 노년의 빌보 배긴스를 연기한 이안 홈이 출연한 순간에 결국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뉴라인 시네마 로고가 등장하고 로한의 테마 음악이 흘러나올 때부터 예견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Acceptable 무난함
'반지의 제왕' 향이 소량 첨가된 판타지 애니메이션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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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죽도록 살고 싶었어요
한국 관객으로서 숱하게 봐온 봉준호 필모그래피의 장면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영화. <설국열차>로 이미 놀라움을 안긴 바 있지만 더 커다란 스케일, 행성 단위의 SF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에서는 순간 번뜩이는 장면 가운데서 봉준호 감독이 쌓아온 노하우의 정수가 돋보인다. 할리우드식 SF의 흥행 구도를 반영하는 플롯과 봉준호 감독의 개성이 섞여 ‘새로운 익숙함’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야심차게 시작했다가 망해버린 마카롱 가게, 이후 사채업자에게 당할 고문과 죽음이 두려워 지구를 떠나 개척지 ‘니플하임’ 행성으로 향한 미키. 그러나 번듯한 기술도 자격도 없는 그가 지원한 ‘익스펜더블’은 그가 두려워 도망친 죽음을 숱하게 반복하는 직업이었다.
뭐 어때, 다시 복제될 거잖아? 말 그대로 실험용 쥐가 되어 구르고 또 구르는 미키. 방사능, 유독 가스, 바이러스 실험에 이르기까지 복제인간이라는 명목 하나로 그는 죽고 또 죽는다. 니플하임 행성에서 단 한 명 있는 익스펜더블인 미키는 그 행성 가운데 유일하지만 누구보다 유일하지 않은 존재다.
삶이 고귀하고 살인이 금기시되는 이유는 누구나 한 번 꺼지면 되살릴 수 없는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을 끊어버리는 살인 행위는 그 자체로 끔찍한 죄악이다. 그러나 죽음에서 벗어난 삶의 연속성을 가지는 자가 바로 익스펜더블이다. 그들은 고통을 느끼고 죽음을 맞이하지만 기억은 이어져 새로운 몸으로 프린트된다. 마치 인형을 찍어내는 공장처럼 프린트되는 미키. 그는 언제든 죽어도 상관없는 소모품이자 대체품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멀티플 사건은 반복되는 죽음에 나름 적응하며 체념하던 미키에게 다시금 살고자 하는 욕망을 일깨워준다. 죽은 목숨인 줄 알았으나 원주 생명체 ‘크리퍼’의 도움을 받아 생존한 미키. 그 사실을 모른 채 본부에서 18번째 미키가 복제되며 미키가 두 명이 되는 멀티플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또 다른 내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면서 미키는 ‘연속하는 나’가 아닌 ‘분리된 나’로서 변화된 속성을 띠게 된다. 즉 미키17 그 다음 미키18이 아닌, 미키17과 미키18이 된 것. 이들은 같은 기억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태도와 행동을 보인다. 그러자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대체품의 죽음이 아닌 고유한 한 사람으로서의 죽음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한다. 평소 같았다면 실험 약의 부작용 다음에는 그냥 죽여 달라고 했을 미키이지만, 숨을 헐떡이며 죽기 싫다고 외친다. 고유한 개체로서의 존엄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지도자 마샬은 누구보다도 그 대체품을 유용하게 소모하는 순혈주의자다. 그가 개척하고 싶어 하는 새로운 이상향은 과학 기술을 활용해 태어난 불량 식품 같은 인간이 아닌 순수한 ‘번식’을 통해 태어나는 인간이다. 저녁 식사에서 여성 캐릭터 카이를 향해 건강한 가임기 여성이라며 예찬하는 마샬 부부. 카이는 묻는다, 자신이 자궁으로 보이냐고.
결국 지도자 마샬 부부의 눈에 그들은 모두 먹음직스러운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한 번 음미한 후 먹어 치운 뒤 또다시 구매하면 그만일 뿐인 소스인 것이다. 익스펜더블의 목숨은 비싼 카페트보다 하찮고, 새로운 행성에서 인류의 정착을 위해 가임기 여성은 번식을 위해 힘써야 할 자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온갖 과학의 수혜는 누리면서도 그 과학으로 탄생한 복제인간은 혐오하고 순혈 인간을 유용한 장기로만 칭송하는 그들 지도자들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명백한 적대 세력이자 가장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드러난다.
반면 니플하임 행성에 거주하는 생명체 ‘크리퍼’는 작은 구성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로,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인간 공동체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집단이다. 극중 쉽게 쓰다 버려지는 미키와는 대조적으로 그들은 작은 베이비 크리퍼 하나를 위해 온 구성원 전체가 그를 구하기 위해 응답한다. 인간의 이기로 인해 인질로 잡힌 베이비 크리퍼, 그리고 그 울음 소리에 하나로 모여 응집하는 크리퍼 무리는 자연스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속 오무의 행진을 연상케 하며 외형 또한 흡사하다.
어떤 존재든 소모품으로 취급하며 짧은 생각으로 폭정을 일삼다 가장 하찮게 여기던 존재인 익스펜더블에게 죽임을 당하는 마샬, 그리고 작은 생명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고 구해낸 원주 생명체 크리퍼. 그들 집단의 대립과 결말은 명확하고 알기 쉽게 두 갈림길로 나뉜다.
씁쓸한 뒷맛을 남기던 기존 필모그래피의 결말을 기대했다면 다소 의외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모든 것이 내 탓이오 하고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사실은 죽기 싫다고, 살고 싶다고 말하는 미키가 행복해질 기회를 얻는 꽉 닫힌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인력과 자본이 투입된 할리우드 영화에서 불가피하게 고려해야 했을 신중한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키의 악몽 속 경고의 메시지를 통해 이 영화의 결말은 비로소 완성된다. 악몽 속 미키18의 희생이 무색하게 새롭게 프린트되고 있는 마샬. 영화는 주인공의 행복한 결말과 함께 엄중한 경고를 들이민다. 과학 기술과 마비된 윤리의식 아래 마샬과 같은 지도자는 프린트로 찍어내듯 지금도, 그다음에도 동일한 모습으로 반복해 출현할지도 모른다고. 공교롭게 영화를 관람하면서도 현실의 많은 사회적 이슈가 오버랩되는 만큼, <미키17>이 SF적 상상력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휴머니즘이자 사회를 향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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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마지막 주 씨네랩 위클리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영화계 안팎의 다양한 소식과 영화 개봉작들의 이벤트 소식과 굿즈 일정을 소개드리는 콘텐츠입니다!
2021년을 마무리하는 12월 마지막 주 영화계 소식을 다 같이 알아보실까요?
1. 이제훈 배우 구애, 구교환 배우 화답해..
영화 <탈주>주연, 내년 상반기 촬영 시작
이제훈 배우는 지날 달 열린 청룡영화상 시상식 무대에서 '구교환 배우와 함께 연기하고 싶다'며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적이 있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기분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연출한 이종필 감독의 신작 <탈주>에서 이제훈 배우와 구교환 배우가 함께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입니다.
영화 <탈주>는 철책 반대편 내일이 있는 삶을 꿈꾸는 북한군 병사 '규남'과 그를 막아야 하는 보위부 장교 '현상'의 목숨을 건 탈주와 추격전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제훈 배우는 남한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북한군 병사 '임규남' 역을 구교환 배우는 규남의 탈주를 막기 위해 추격하는 북한 보위부 장교 '리현상' 역을 맡았다고 합니다.
영화 <탈주>는 내년 상반기 촬영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2.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관객 수 500만명 돌파!
이제 두말하면 입아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인기!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관객 수 500만명을 돌파한 영화가 나왔습니다.
바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입니다. 현재 누적 관객 수는 508만 3784명인데요. 코로나 방역 대책 강화, 영업시간 제한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21년 하반기 대작으로 많은 영화팬들의 기대를 모았던 송강호, 전도연, 이병헌 주연의 <비상선언>, 설경구, 이선균 주연의 <킹메이커>는 2022년으로 개봉을 연기한 바 있는데요.
이 같은 열악한 극장가의 상황에서도 거뜬히 500만명을 돌파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개봉 3주차에 접어든 시점에서도 꾸준히 일 10만명의 관객 수를 동원하고 있어,
앞으로의 기록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3. 7년만에 다시 돌아온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29일 온라인 제작발표회
12월 29일 <해적: 도깨비 깃발>의 온라인 제작발표회가 있었습니다.
2014년에 860만 관객수를 동원했던 코믹 블록버스터 <해적> 시리즈가 7년 만에 돌아왔는데요.
1편과는 시대적 배경과 세계관은 비슷할 수 있지만, 직접적인 스토리 라인은 연관성은 없다고 합니다.
<해적:도깨비 깃발>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왕실 보물의 주인이 되기 위해 바다로 모인 해적들의 모험' 그린 영화로 자칭 고려 제일검이자 의적단 두목인 무치 역에 '강하늘', 바다를 평정한 해적선의 주인 해랑 역에 '한효주' 그리고 해적왕 꿈나무 막이 역의 '이광수' 등이 힘을 합쳤다.
뿐만 아니라 권상우, 엑소 출신의 세훈, 김성오, 박지환 배우 등이 출연한다고 하네요.
정확한 국내 개봉일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2022년 상반기 개봉될 예정입니다.
4. 마블영화 대상으로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와 거장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의견 차이 밝혀
톰 홀랜드는 최근 인터뷰에서 과거 마틴 스콜세지가 "마블 영화는 영화(cinema)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상반되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2019년 한 인터뷰에서 "마블 영화는 영화라기보단, 테마파크에 가깝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요.
마틴 스콜세지는 "마블 영화들은 시장의 어떤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획돼 제작되는 상품이다. 여러가지 테마로 변주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속편이라 이야기되지만 그 본질은 자가복제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것이 현대의 영화 프랜차이즈의 본질이다.
이 때문에 인디 영화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 우려된다"라고 걱정어린 발언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톰 홀랜드는 이같은 마틴 스콜세지의 발언에 대해 "스콜세지 감독에게 마블 영화를 만들고 싶냐고 하면 그는 안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자신은 마블 영화나 다른 영화도 출연해한 경험이 있으며, 차이점은 마블 영화들이 제작비가 훨씬 높다는 점,
결론은 모든 영화는 다 예술이라는 것이다. 마블 영화도 예술이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특히 톰 홀랜드가 많은 영화팬들의 지적을 받는 점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의견에 반박하며 "마블 영화를 만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라는 다소 경솔한 표현을 했기 때문인데요.
요즘의 스트리밍과 OTT플랫폼, 그리고 마블영화에 익숙한 젊은 배우와 수십년은 바뀌어온 시대적 상황과 영화적 가치 변화를 겪어온 거장 감독의 의견을 반영한 입장 차이인 것 같습니다.
5. 이번 주 (12월29일~2022년 1월 2일) 영화계 이벤트 &굿즈 증정 일정
12월 29일(수)
[CGV] <해피 뉴 이어> 필름마크 증정
일시 : 12월 29일(수)~ 소진 시
극장 : CGV
증정 : <해피 뉴 이어>필름마크 1종
[CGV] <아멜리에> 포스터 증정
일시 : 12월 29일(수)~ 1.4(화)
극장 : CGV 일부극장
증정 : <아멜리에>포스터
[CGV] <노웨어 스페셜> 포스터 증정
일시 : 12월 29일(수)~ 1.4(화)
극장 : CGV 일부극장
증정 : <노웨어 스페셜> 메인 포스터
[CGV] <램> 뱃지 증정
일시 : 12월 29(수) ~ 소진 시
극장 : CGV아트하우스 전용관
증정 : <램>한정판 뱃지
12월 30일(목)
1월 1일(토)
1월 2일(일)
그럼 오늘의 콘텐츠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부디 유익하고 유용한 콘텐츠가 되기를 바라면서
다음 콘텐츠는 다음 주 수요일날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얼마남지 않은 2021년 마무리 잘하시고, 2022년에 뵙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해피 뉴 이어! :)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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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를 향한 아주 짧은 예고편, <파문>
*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파문> Ripples, 2025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모두를 향한 아주 짧은 예고편, <파문>
<파문>은 다르다. 인물의 서사만으로 진한 감정적 파동을 일으키는 <강변의 무코리타>(2021)나 <카모메 식당>(2006)과 같으면서도 다른 보법을 가진다. 마음이 아픈 인물들을 치유하기 위해 모든 영화적 요소를 감독만의 색깔로 버무린 방식과 이들이 긴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를 얻게 된다는, 이미 완성된 이야기가 아닌 완성 ‘되어가는’ 이야기, 즉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음미하도록 유도한 연출은 같다. 하지만 따뜻함이 가득한 치유 과정에 집중했던 전작들과 달리 <파문>은 블랙코미디 가득한 해방 과정에 몰두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인공의 삶을 ‘이미지’란 형태로 바꿔 보여준다. 극을 이끄는 주체가, 가짜 평화로부터 진짜 평화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요리코)이 아니라 그녀가 생산한 수많은 사진이란 점이다. 시각적 즐거움은 장면과 장면이 연결되는 그때, 의도적인 찰나의 멈춤으로 발생한다. 카메라 화면 구성과 편집점이 계획적으로 만든, 눈에 보이는 공백이라 요리코도 관여할 수 없다. 그 결과 요리코의 삶이 흐를수록 관객은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환경(일본 사회)을 사진으로 인식하는 낯설고도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출처: 영화 <파문> 스틸컷
요리코가 등장하는 첫 장면을 보자. 잠에서 깬 그녀를 반기는 건 남편의 발뒤꿈치와 그의 우렁찬 코골이다. 분명 흠칫할 상황이지만 그녀에겐 익숙한 아침 풍경이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는 부부(한 컷)를 통해, 함께 하지만 부부관계는 이미 멀어졌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아침마다 마트에 달려가 생수를 사고, 가족을 위한 밥은 생수로, 투병 중인 시아버지 밥은 오염된 수돗물로 하는 요리코나,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우면서 며느리에게 성추행을 계속 시도하는 시아버지, 마당(꽃밭)은 애지중지하면서 방사능 괴담엔 무력하기만 한 남편, 가족보다 망해가는 세상에 더 관심 있는 아들까지 감독은 각 인물의 첫 이미지만으로 요리코가 처한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보여준다. 일본 여성을 향한 가족 내의 암묵적 희생 강요와 사회와 개인의 삶에 전반적으로 짙게 깔린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인한) 무기력과 자포자기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특히 두 요소는 참을 수 없는 웃음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씁쓸함을 적재적소로 유발해, 블랙코미디의 맛과 이야기의 집중도를 끌어올린다.
요리코는 행복해 보이지 않지만, 딱히 불행해 보이지도 않는 기이한 평화에 갇혀 있다. 어찌할 수 없는 원전 사고와 다를 바 없는 ‘가족’ 덕이다. 세 사람은 요리코의 삶에 가족이란 이유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열심히 뿜어대고 요리코는 기꺼이 흡수하는 식인데 그녀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심지어 남편의 가출(자발적 실종)과 시아버지의 죽음, 아들의 집 탈출로 혼자가 됐음에도 변함없다. 세 남자에게 치여 살다가, 사이비 종교(녹명회)가 만든 생명수(녹명수)를 믿으며 혼자 자유롭게 살게 된 삶은 당연히 전과 다르지만, 어디까지나 그녀의 착각일 뿐이다. 자기희생적 기질을 가진 요리코 마음에 사이비 종교가 가족을 대신해 들어온 것뿐이니까. <파문>은 이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리코가 남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화면이 끊기고 ‘수면 위로 물방울이 똑 떨어지는 아주 짧은 영상’이 삽입된다. 공백이 그녀를 흔드는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단절’로 변주해 나타나는 것으로, 아주 짧은 예고편과 같다.
출처: 영화 <파문> 스틸컷
단절은 그녀에게 반갑지 않은 과정이다. 방사능이 무서워 가출해 놓고, 암에 걸려 돌아온 것도 기막힌데 비싼 항암 치료비까지 요구하는 남편과 연상의 청각장애인 여자친구를 연락도 없이 데려와 결혼을 통보하는 아들, 아들과 헤어져 달라는 부탁을 당당히 맞받아치는 예비 며느리, 거기에 멀쩡한 물건에 하자가 있다며 제값의 반값을 요구하는 마트 진상 손님까지, 단절 이후 벌어지는 상황이 죄다 그녀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단절로 인한 그녀의 혼란은, 진정한 해방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니까.
가족들이 수면 위에서 요리코에게 가시 박힌 말을 내뱉을 때마다 그들의 발밑(수면)에서 시작된 물결이 그녀에게 닿는다. 이 흑백 장면들은 <파문>에서 가장 주요한 순간 포착이다. 가족의 이기심이 요리코의 고통 원인이자 전부임을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른 얘길 하고 있다. 사실 그녀 또한 가족과 같은, 파문을 일으키는 자로 무수히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였다는 얘기도, 가족이 더 괴로웠고 그녀가 덜 괴로웠다는 식의 결론도 아니다. 가족들 역시 그녀에게 영향을 준 만큼 그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상황 자체를 인지하는 일이다. 하지만 희생과 침묵이 당연한 삶을 살아온 그녀였기에, 요리코는 자신의 파문을 보지 못했다. 상처받은 원인을 들여다볼 생각 없이, 또 자신에게 철저히 무지한 채, 고통받는 나를 계속 억눌러 왔던 것이다. 요리코는 진작 ‘여러 일을 겪은 나’란 사람을 정확히 파악하고 보살폈어야 했다. 가족들의 이기적인 행보에 화가 났고, 슬펐으며, 한없이 무력했음을, 그래서 고통스러웠고 외로웠다고 표현했어야 했다. 돌아온 남편의 칫솔로 화장실 세면대를 몰래 청소할 게 아니라, 자신이 정말 원하는 바를 말하고 행동했어야 했다. 요리코가 진심으로 바랐던 건, 꽃밭을 없애고 만든 고산수식 정원도, 정원을 정성스럽게 가꾸며 영혼 정화와 영혼의 차원을 높이는 희망도 아니었으니까.
출처: 영화 <파문> 스틸컷
진전이 없는 요리코에 단절은 진짜 평화를 가진 듯한 새 친구, 마트 청소부 미즈키를 소개한다. 미즈키는 요리코가 버거워할 때마다 어느새 나타나 위로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들 때가 있고, 누구나 궁지에 몰리면 이성을 잃을 때도 있다고 말이다. 남편이 암에 걸렸든 말든 쫓아내라고 대신 화내주거나, 마음이 힘들 땐 녹명수를 마시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좋다며, 자기가 하는 수영을 권하기도 한다. 현실적이면서 효과적이기까지 한 미즈키식 위로에 그녀는 반응한다. 그러나 미즈키 또한 내면이 곪을 대로 곪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린 아들을 잃고 대지진으로 집이 엉망이 된 후 완전히 주저앉았다. 쓰레기장이 된 집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건 수영복이었고, 유일하게 신경 쓰는 건 반려 거북이 한 쌍뿐이었다. 방식만 다를 뿐 두 사람은 서로 다를 바 없는 삶을, 몰래, 숨죽이며 살고 있던 것이다.
거북이를 돌봐주겠다고 약속한 요리코는 친구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동안 모른 척해 왔던 고통의 실체를 마주하고 오열한다. 자신에게 얼마나 무지했고 가혹했는지 깨달으며 그동안 삼켜왔던 울분을 토해낸다. 그리곤 미즈키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처럼,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집을 깨끗하게 치워주며, 힘들었던 자신을 함께 위로한다. 마침내, 요리코의 삶에, 서로에게 대가 없는 희생이 아닌, 대가 없는 치유가 발을 들인 것이다.
출처: 영화 <파문> 스틸컷
요리코는 거북이가 정원을 헤엄치는 걸 보며 그토록 염원했던 자유의 꿈틀거림을 느낀다. 처음으로 후련한 미소를 짓는 그녀만의 따뜻한 파문이 해방의 파도로 관객에게도 닿는 순간이다. 요리코의 깨달음 이후 단절은 사라진다. 여전히 아픈 남편과 살고 아들의 사랑도 말릴 수 없지만, 더는 그들의 파문에 힘겨워하는 요리코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귀한 녹명수를 권하는 교인에게 자기 발등을 내리찍는 눈물로, 숭배의 마침표를 찍는 그녀만 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남편 시신이 담긴 관을 든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집을 나온다. 가짜 평화의 축소판인 고산수식 정원을 망가트리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건너던 사람들은 결국 관을 떨어트리고 만다. 관 밖으로 나온 남편의 시신을 보며 모두가 당황한 그때, 요리코의 쾌활한 웃음이 울려 퍼진다. 당황한 아들의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원에, 해방의 파도에 몸을 맡긴 남편을 보며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그녀‥. 요리코에게 해방은 무엇일까. 그녀에게도 이제 진짜 평화가 온 걸까. 요리코는 단절이 주는 절망이, 사실은 희망임을 받아들이면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나에게서, 그들에게서 벗어났고, 동지를 얻었으며 함께 기쁨과 슬픔을 겪어내는 법도 배웠다. <파문>의 정체성이자 메시지 그 자체인 강렬한 포스터가 이를 증명한다.
출처: 영화 <파문> 스틸컷
상복을 입은 요리코가 비를 맞으며 해방의 파도를 휩쓸며 플라멩코를 추기 시작한다. 정열적인 춤사위는 상복 안에 감춰진 붉은 드레스를 끄집어내고, 대문을 나서면서도 계속된다. 그리고 마침내 들리는 활기찬, 감탄사 올레!! 하늘을 보고 활짝 이를 보이며 웃는 요리코가, 내면이 아픈 이들의 치유와 희망을 반드시 전하고 마는 감독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예고편이다.
영화 <파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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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다비전> 완다가 보여주는 MCU의 새 비전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시리즈와 영화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이야기를 펼치는'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성공리에 안착시킨 처음이자, 모범이고, 유일한 성공 사례인 MCU. 그러나 이들도 두 가지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우선 영화라는 미디어의 본질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2시간 내외라는 시간의 한계로 인해 주인공들을 제외한 인물들은 편의에 따라 플롯의 소재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야 했다. 심지어 '인피니티 사가'의 대미를 장식하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3시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브루스 배너와 헐크의 화해나 토니가 시간 여행 기술을 발명하는 과정 등을 대사 한 줄이나 몇 초 간의 장면으로 처리했다.
또한 모든 영화들이 큰 그림을 위한 스케치이자 하나의 부품으로써 다루어지다 보니 스토리텔링, 연출, 편집, 액션, 음악, 영상미 등이 균등한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특출 난 독창성과 신선함을 조금씩 잃어 갔다. 자신의 실명과 정체를 당당히 공개하며 슈퍼히어로 영화의 클리셰를 파괴했던 <아이언맨>과 진지함과 무거움을 내던지고 유쾌함과 감동을 모두 갖춘 음악으로 무장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새로움이 들어설 자리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신 그 자리는 안정적인 유머와 화려한 볼거리, 익숙한 서사로 무장한 채 제2의 <아이언맨>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노리는 작품들이 대신했다. <아이언맨>과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한 같은 해에 DC에서 각각 <다크 나이트>와 <조커>를 선보인 역사는 이러한 MCU의 문제점을 요약해 보여준다.
그러나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의 부실한 액션을 지적하자 <윈터 솔져>와 <라그나로크>로 응답했으며, 인상적인 빌런의 부재라는 빈틈은 타노스로 채워버린 의지의 MCU는 페이즈 4의 첫 작품인 <완다비전>을 통해 자신들의 단점을 비교적 깔끔하게 해결했음을 증명한다. 미국의 한 마을 웨스트 뷰에서 이웃들처럼 평범한 회사원과 주부의 삶을 누리는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와 '비전(폴 베타니)'. 어느 날 그들은 외부의 소음과 함께 마을에서 보지 못한 남자와 흑백의 세상에 나타난 빨간 장난감 헬리콥터처럼 이상한 사건들을 연이어 목격한다. 완다는 시간을 돌려 해당 사건의 존재를 부정하고, 비전은 그런 완다와 완다를 도와주는 이웃 '애거사(캐스린 한)'를 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완다가 만든 가상현실 장벽의 밖에서 '모니카 램보(티오나 패리스)'와 '헤이워드(조쉬 스템버그)' 국장을 비롯한 S.W.O.R.D.는 가상현실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고 완다와의 소통을 시도하기 위해 장벽 안으로의 진입을 시도한다.
우선 <완다비전>은 조각나 있던 완다와 비전의 서사에게 온전한 모습을 되찾아준다. 사실 안드로이드 로봇과 마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MCU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명쾌하고 충분히 설명될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 등 팀업 영화에서만 모습을 비추다 보니 완다의 불우한 과거사와 감정선은 다른 히어로들의 그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분량을 할당받았고, 완다와 비전이 호감을 느끼다 연인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갑작스러웠다. <인피니티 워>에서 연인을 파괴해야 하는 둘의 애절한 로맨스가 어벤져스의 이길 수 없는 저항을 더욱 비장하게 만들었지만 비전의 이름은 엔드게임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마침내 그 둘의 이야기는 처음으로 온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완다가 빚어낸 가상현실 속 세계는 그녀의 내면이 처음으로 시청자들에게 선보여지는 채널이라는 점에서 특히 인상적이다. 초능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부부가 자아내는 웃음은 부모, 오빠, 히어로의 삶을 가르쳐주던 멘토들, 연인과 연달아 이별해버린 완다의 외로움, 고독함, 슬픔, 덧없음을 은연중에 노래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로 모아준다. 타노스에게 마인드 스톤을 뺏긴 후 완다의 힘에 의해 다시 태어난 비전 역시 자신의 진정한 기억, 존재, 신체를 되찾기 위한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여정을 경험한다. 이처럼 그간 무대 밖으로 밀려나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마블의 각오는 <앤트맨>의 우, <토르>의 달시, <캡틴 마블>의 모니카 램보처럼 잠시 잊혔던 캐릭터들을 소환해 같은 사건을 상이한 시점에서 다루는 대목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형식의 스토리텔링과 연출의 도입이다. 이를 통해 마블은 단지 안정적인 흥행과 시리즈의 유지는 물론 가능성과 독창성의 확인 및 도전도 자신들의 목표에 포함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드라마는 크 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1~3화, 그 뒤의 몇몇 에피소드들은 1950년대의 흑백 시트콤부터 90년대의 홈비디오를 거쳐 <모던 패밀리>에 이르는 미국 시트콤의 형식을 차용한다.
한편 4화부터는 현재 시점에서 완다가 만들어내는 혼란을 목격하고 대응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면 비율부터 의상과 색상에 이르는 디테일의 차이를 통해 같은 사건을 대하는 인물들의 시점 차이는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사실 마블 작품들이 상당히 높은 타율의 유머를 선사한다는 점은 언제나 다른 시리즈와 차별화된 지점이었지만, 시트콤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이전까지는 기대하기 어려운 선택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완다의 수상한 이웃인 애거사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을 마치 고전 뮤지컬을 보는 듯한 연출로 풀어낸 대목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완다비전>은 단순히 영화적 형식을 새롭게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그 변화 자체를 하나의 스토리텔링 장치로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시도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각 시대를 상징하는 시트콤의 형식과 내용은 시종일관 마음속 한 구석에 있던 어두움을 애써 억누르고, 희망을 쫓아 어두움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던 완다의 이야기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 시트콤을 보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낙이었던 완다는 잃어버린 부모님, 오빠, 연인을 대신할 수 있는 남편과 쌍둥이 아이들을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세계 안에서 다시 만난다. 이처럼 TV 쇼는 현실 속 그림자, 절망, 슬픔을 빛, 희망, 행복으로 탈바꿈시키는 도구이자 탈출구이기에 단순한 연출 방식의 변화 이상의 감동을 준다. 이는 완다가 마침내 '스칼렛 위치'로 각성하고, 자신의 마법을 마음껏 선보이는 마지막 회보다도 현실을 TV 속 공간으로 바꾼 그녀의 능력, 그녀의 과거사, 이 드라마가 시트콤으로 시작한 이유를 알려주는 8화의 임팩트가 더 강렬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완다비전>은 MCU라는 건물을 올리는 것은 물론 그 외양을 다채롭게 만들고,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완다비전> 역시 드라마 내외적으로 여전한 한계점을 노출한다. 드라마 내적으로는 기존의 MCU 작품들이 보여준 것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한 선악의 대립 구도를 선보인다. 드라마는 한 마을에 사는 이들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거대한 혼란을 낳은 완다에게 시종일관 동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완다가 초래한 온갖 문제는 그녀와 과거사와 개인사 앞에 무게감을 잃고, 그녀의 손에는 면죄부가 주어진다. 더 나아가 그녀를 대량살상무기로 취급하며 단순히 악인으로만 묘사되는 S.W.O.R.D.의 헤이워드 국장 덕분에 면죄부는 그 반대편에 위치한 완전한 선인인 완다의 면죄부는 더욱 강한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는 그간 마블이 보여준 것과는 다른 선택이다. 선악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존재, 그리고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는 이들의 서사가 선사하는 뭉클함은 그간 마블이 수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은 이유였다. 이 세계의 히어로들은 본질적으로 선하지만, 때때로 악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토니 스타크는 선의였지만 울트론을 만들고, 이로 인해 캡틴 아메리카와 크게 대립했다. 캡틴 아메리카도 생명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했다가 타노스를 막지 못했고, 토르 역시 복수심에 눈이 멀어 영웅으로서 타노스를 죽이지 못하는 과오를 범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결과적으로 행한 악을 외면하지 않는다. 고뇌하면서 해결책을 강구한다. 그러나 <완다비전>은 완다에게 이러한 복합적인 면모를 심어주지 않았고, 이 선택은 회차가 진행될수록 완성도가 낮아지며 초반부 회차에서 선보인 독창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사실 이러한 작품 내적 문제는 MCU 시리즈 특유의 패턴과도 관련이 있다. 많은 마블 작품은 극 중 발생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대신 의문을 남기거나 일부분의 엔딩만 보여준 채 일단락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떡밥은 항상 후속 작품의 발단으로 이어진다. <어벤져스>에서 파괴된 뉴욕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발단이 된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파괴된 소코비아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속 사건의 원인이 되고, <시빌 워>에서 마무리되지 않은 토니와 스티브의 갈등은 <엔드게임>에 이르러서야 종결된다. 또 <엔드게임>에서 평행우주로 도망간 로키는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MCU의 패턴은 일장일단이 있다. 시리즈 간의 연계가 긴밀해지는 것이 장점이라면, 한 작품이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점이다. 완다의 선한 면모와 안타까운 사연만 강조하는 연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연출은 설사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는 다소 해칠 지언정 그녀가 초래했거나 직접 행한 악의 결과물들이 <닥터 스트레인지 인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에서 다루어질 것임이 이미 확정되었기에 가능하다. 향후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것은 덤이다. 이처럼 <완다비전>은 그 도전적인 시도와는 별개로 하나의 기계를 만드는 부품으로써 존재하기에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완다비전>이 MCU의 새로운 시대, 페이즈 4의 미래를 환히 비추는 것은 분명하다. 마법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 것이나 완다와 비전처럼 독자적인 서사를 부여받지 못했던 캐릭터들이 향후 디즈니+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칠 것이라는 점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속편을 비롯한 다음 전개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또한 당장은 허사에 그쳤으나 다시 한번 던져진 엑스맨 등장의 떡밥은 덤이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구조나 문법에서 벗어나고도 훌륭한 드라마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완다비전>이 보여준 완다, 비전, 그리고 마블의 비전은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충분히 만족스럽다.
A(Acceptable, 무난함)
앞으로의 발전이 더 기대되는 마블의 착실한 오답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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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기에 사로잡힌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 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하는데... 단 한 가지 규칙,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 각각 7일간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한다면 무엇이 잘못되겠는가?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서브스턴스> 줄거리
화려했던 시절을 지난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사람들이 원하는 어리고 아름다운 스타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행하던 쇼에서도 해고를 당한다. '어리고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다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은 엘리자베스는 약물에 의해 추구하는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낸다. 수는 단번에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며 규칙만 잘 지킨다면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더 누리길 원하는 수의 욕심으로 이 평화는 깨지고 만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수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점점 추해져 가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극명하게 보인다.
엘리자베스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수를 증오하고 수는 집에 틀어박혀 엉망으로만 만드는 엘리자베스를 경멸한다. 하지만 그들은 몸이 두 개일 뿐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수'와 영광은 모두 과거에만 존재하는 늙은 '엘리자베스' 모두 나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서로에게 드러내는 경멸, 적대, 증오는 결국 자기혐오이다. 엘리자베스는 수의 욕심이 자신을 고립시킨다 여기지만 이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젊고 아름다운 수로 계속 존재하고 싶다는 엘리자베스의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엘리자베스는 다시 돌아가진 못하더라도 더 악화되기 전에 중단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고 있었으며 실제로 중단을 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수, 모두가 찾는 수가 없어지고 퇴물이 된 늙고 추해진 엘리자베스만 남는 것을 견딜 수 없기에 가장 원래의 버전인 엘리자베스를 포기한다.
노화에 대한 공포. 늙음에 대한 혐오는 현실의 사회에서도 만연하다. 이런 분위기가 단순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하기에는 사람들은 위험한 수술이나 건강에 좋지 않은 약을 먹기도 하며 젊음을 유지하려 한다. 이렇게 모두가 갖고자 노력하는 젊음은 사실 젊음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엘리자베스는 더이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춰지지 않는 자신의 늙은 신체를 부끄럽게 생각하며 더 늙어갈수록 본인의 신체를 최대한 가라기 급급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더욱 아름다운 수를 포기하지 못한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서브스턴스> 속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도 아니다. 영화에서 만든 이조차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약을 먹고 자신의 신체를 산산이 조각내고 일부를 도려내가는 모습은 우리가 과정을 보지 못해서 모를 뿐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아름다움, 젊음을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들을 생생하게 눈에 담는다. 그럼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끔찍하고 괴기하며 자신을 망치는 행위를 끝내지 못하는 엘리자베스가 이해가지 않는다고. 서브스턴스의 진짜 의미는 이런 감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왜 엘리자베스는 고통을 감내해가면서까지 '수'를 원했는지, 왜 그들의 간단한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는지, 왜 서로를 경멸했는지. 이제는 이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사회에서 요구되는 미의 기준은 끝도 없이 높다. 영화 속 엘리자베스에게도 이 기준은 잔인하게 적용되며 그저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내쳐진 그에게 다시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압박은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약을 사용할지 말지 중단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이 엘리자베스에게 주어진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게 현실이라며 팔짱을 낀 채 여성의 신체를 평가하고 탐닉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과 시선이 계속해서 엘리자베스의 선택을 종용한다. 아름다운 수를 모두가 사랑하고 원하고 있다는 달콤한 말은 엘리자베스가 그렇지 못한 자신을 파괴하게 만든다. <서브스턴스>는 이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사회에 결국 망가져버린 한 사람의 피를 뿌리며 비난한다.
<서브스턴스>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아름다움을 충족하다 파괴되는 내면을 바디호러무비만의 그로테스크함으로 풀어낸다. 진짜 '나'와 이상적인 '나' 사이의 간극과 그로 인한 자기혐오를 드러내기 위해 실제로 두 신체로 분리하여 그들 간의 갈등으로 나타내며 종국엔 사회가 바라는 아름다움을 충족하다 자신의 내면이 황폐해지고 파괴되는 것을 정말 그들의 신체를 부서뜨리며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서브스턴스>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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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호한 희망에서 초록빛 진실로
델핀(마리 리비에르)은 휴가 기간 동안 몇 차례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는 탓이다. 친구와의 휴가 계획이 무산되고 혼자 긴 여름휴가를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델핀은 막막함을 느낀다. 어디에서 누구와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알 수 없다. 델핀은 그저 삶의 지겨움과 무료함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델핀의 우울이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 탓 만은 아니다. 확고한 이상을 지니고 매사에 진지한 사람은 환영받기 어렵다. 채식을 하고, 가볍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거부하며 종종 울적함에 눈물을 흘리는 여자를 골치 아프게 바라보는 시선은 델핀을 위축시킨다. 테이블 위를 오가는 수많은 대화 속에서 델핀은 고립된 섬처럼 동떨어져 있거나 위태로운 배처럼 흔들린다. 델핀은 언제나 자신의 입장을 증명하거나 태도를 지적받는 상황에 놓인다. 나는 당신과 다르다. 이 당연한 명제는 ‘우리가 서로 다르다’라는 관용이 아닌 ‘너는 우리와 다르다’라는 분리의 의미로 쓰인다. 왜 남자를 가볍게 만나지 않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지 그리고 왜 고기를 먹지 않는지에 대한 논쟁은 모두 분절적인 ‘다르다’로 끝난다. 델핀은 갈 곳이 없다고 아무 곳이나 가고 싶지 않고, 만날 사람이 없다고 아무나 만나고 싶지 않다. ‘귀찮은 녀석’이 아닌, 낭만적인 남자와의 만남을 원한다. 타협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완고한 델핀은 어찌해야 할지 모를 긴 휴가기간 동안 내면의 우울을 마주하게 된다.
낯선 타인과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을까? 문제는 마음에 달렸지만 조심스러운 델핀에게는 쉽지 않다. 델핀은 누구에게도 쉽게 답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만 그저 호기심 많은 아이의 질문도 재차 의심한다. 사람들을 향한 무관심한 태도는 이런 예민함에서 비롯된다. 외부의 자극과 내면의 감정에 예민한 델핀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틈이 없다. 델핀은 온몸으로 ‘나를 내버려 둬’라고 외치는 동시에 자신의 인생에 누군가가 다가와 주기를 바란다. ‘녹색 광선’은 델핀의 낭만이다. 관계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타인과 진심으로 교감할 수 없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는 소망이다. 우리가 아주 잠깐이라도 타인의 진심을 알 수 있다면 복잡한 관계 속 외로움이 한층 덜어질 것이다. 타인의 진심을 알 수 있다는 미신을 믿어보는 것은 델핀 자신이 타인에게 진실로 대하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만난 친구 엘레나처럼 관심 없고 싫은데도 좋은 척, 관심 있는 척 가벼운 관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델핀은 자신이라는 모습 외에 꾸며낼 가면이 없기 때문에 “보여줄 모습이 없다”. 델핀은 자신의 믿음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 스스로를 속여 가며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 델핀은 상대방 역시 그러하길 바라나, 타인은 나와 다르다.
녹색 광선은 쉽게 볼 수 없으며 찰나의 순간 빛났다가 사라진다. 델핀은 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와 녹색 광선을 기다린다. 인생에 무언가 찾아오길 바라지만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기다리던 델핀은 이제 선명한 녹색 빛을 기다린다. 낭만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걸까? 그러나 델핀이 무작정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자신만의 미신을 따라 특별한 표시들을 찾아왔다. 직감이 이끄는 대로 뭔가를 예고하는 듯한 녹색 카드를 줍고 온갖 녹색의 단서들을 마음에 담았다. 델핀의 마음을 이끄는 것은 이 작은 미신적 단서들이다. 몇 개의 카드와 전단지, 상점의 간판이다. 에릭 로메르는 이 미신적 단서들을 갑작스러운 클로즈업과 의뭉스러운 음악과 함께 비춘다. 한 걸음 떨어져 델핀을 관찰하던 카메라가 그의 내면을 포착하는 순간이다. 미신적인 내면의 시점은 델핀에게 이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델핀에게 이입하지 않고 믿지 않을수록 희망의 모호함은 두드러진다. 델핀의 내면에서 모호한 희망이 확신으로 변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별 것 아닌 카드도 녹색이라는 이유로 의미 있는 물건이 된다. 델핀은 누군가가 자신을 선택하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신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기준으로 선택을 내린다. “녹색이 행운의 색깔“이라는 미신은 세상을 보는 하나의 관점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정하고 해석한다. ‘녹색 광선’이라는 희망은 현실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허구처럼 보인다. 아무도 모르고 믿지 않을지라도 델핀은 내면의 나침반을 따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희망은 내면의 상태다. 녹색광선이 진짜이든 아니든, 그것이 정말 진심을 알게 해주는 힘을 지녔든 아니든 그것을 보는 순간 타인의 진심을 헤아릴 틈이 생긴다. “오! 시간이 되니 심장이 뛰는구나” 영화가 시작하기 앞서 등장한 랭보의 시 한 구절은 논리적이지 않은 내면의 희망을 확신에 찬 어조로 노래한다. 영화적 거짓이든, 미신이든 상관없이 델핀은 초록빛의 진심을 보았다. 우리는 델핀의 진심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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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은 몇배는 더 잔인하다! 반전 또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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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 못봤다고? 시간을 순삭 시켜 버리는 송혜교의 복수극 [더글로리]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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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 메인 예고편
아이들의 낙서가 사라져 붕괴 위기에 처한 낙서왕국은
낙서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지구 침공을 시작한다.
낙서왕국의 위험한 작전을 막기 위해
지상의 용사로 선택 받은 짱구는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미라클 크레용’을 얻게 된다.
쓰윽 쓰윽~ 그려 그려~!
짱구가 미라클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자
브리프, 가짜 이슬이 누나, 부리부리 용사가
스케치북 밖으로 튀어나오는데..!
과연, 크레용 용사 짱구는 낙서 용사들과 함께
위험에 빠진 떡잎마을과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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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레치드: 악령의 저주> 메인 예고편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살고 있는 소년 ‘벤’.
방학을 맞아 아버지 ‘리암’이 있는 한적한 바닷마을에 찾아간 그는
매일 밤 기이한 소리가 들리는 옆집을 주시한다.
어느 날 옆집 꼬마 ‘딜런’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홀린 듯 기억을 잃은 사이, 아이들은 하나 둘씩 실종된다.
끊임없이 기이한 일이 발생하는 마을.
그리고 사건의 행방을 쫓는 ‘벤’의 눈 앞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끔찍한 존재.
정체 모를 존재의 죽음의 손길을 느낀 ‘벤’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협당하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