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1-10 10:35:51
에디터 PICK! 2025년 개봉이 기다려지는 영화
당신의 취향을 저격한 에디터는?

오늘은 네 명의 에디터가 2025년 개봉이 기다려지는 영화를 각각 2편씩 뽑아보았습니다.
4인 4색! 여러분의 취향과 가장 가까운 에디터는 누구인가요?
여러분의 최대 기대작도 댓글로 알려주세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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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000년의 기다림(2022)> 리뷰
이야기는 매혹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실체 없는 것이 이토록 오래 살아남을 수가 없다. 변형되고, 반복되며, 이따금 자신의 꼬리를 잃더라도 이야기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과학이 없던 시절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발명되었던 신화이든, 자신의 지혜를 전할 방법이 없어 구전으로 이어져 온 민담이든 간에. 오죽하면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하지만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기록이고, 공동의 기억이자 역사라고. 기록할 수 없었던 자들이 해낼 수 있던 최후의 반향이자 상실에의 저항이라고 말이다.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로 유명한 조지 밀러 감독의 2022년 작품이다. <옥자(2017)>, <설국열차(2013)>로도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자,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2005)>, <콘스탄틴(2005)> 등을 통해 20여 년 전부터 판타지에 자주 얼굴을 비친 바 있는 근사한 배우 틸다 스윈튼과 <어벤저스> 시리즈의 헤임달, BBC 드라마 <루터> 등을 통해 우아한 카리스마를 내비친 배우 이드리스 엘바가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A.S. 바이엇이 199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집 <나이팅게일의 눈 속의 정령>을 원작으로 삼는다. 생소한 제목이더라도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알라딘’에 등장하는 지니를 기억하고 있다면.
‘지니’에 대한 언급을 했으니, 3,000년 동안 자유를 갈망한 정령 진(이드리스 엘바)과 3,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면면히 흩어진 인류의 이야기를 채집하며 살아온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의 첫 만남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테다. 알리테아는 유리병을 닦아내며 거대한 정령을 마주한다. 자유를 갈망하는 불의 정령 진. 그는 알리테아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알리테아는 열망하던 것을 손쉽게 이루고, 진은 오랜 세월 바라 마지않던 자유를 이룰 수 있으니 너무도 완벽한 윈윈의 거래일 게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하나 있다. 알리테아가 자신은 현재에 더없이 만족하여 바라는 것이 없다고 말한 까닭이다. 심지어 알리테아는 이렇게 지적하기까지 한다. 소원을 비는 이야기의 교훈은 언제나 경고로 끝난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진은 이러한 알리테아를 이해하지 못한다. 살아있음과 욕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진은, 열망하는 것이 없다는 관조적 자세는 개인의 본성 혹은 의지를 드러내지 않는 행위이며 삶에 대한 배반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우리는 알리테아가 특별한 추진력 없이 관성적인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가 학자로 살며 쌓아온 시간이 멈춰있었다고 말하는 건 틀림없이 실례일 터다. 다만 알리테아는 개인의 삶에서 일정 부분을 단념한 인물이라고 묘사된다. 아이를 잃은 이후 슬픔을 비롯한 그의 감정은 전반적으로 정지한 상태이다. 이런 모습에 대해 절제의 미덕(진은 어리석음이라 일갈하는)을 언급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의 초조함은 분명하게 표시된다. 그러하므로 진과 영화 내 카메라의 시선에 따르면, 알리테아가 마땅히 지녀야 하는 생(生)에의 원초적 욕구는 체념과 같은 그 어드매의 방향으로 휩쓸려 사라졌다고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알리테아는 빠르게 공감하지 못한다. 둘의 몰이해는 불에서 태어난 정령과 흙으로 빚어진 인간 사이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만, 어쨌든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좁히는 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단순한 두 인간 사이의 갈등이었다면 헤어지고 끝났을 텐데 3,000여 년의 구속에서 벗어나고픈 진은 절박하다. 그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알리테아의 허락을 구하고자 애쓴다. 자신이 갇히게 된 사연과 자신에게 소원을 빌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자신을 볼 수 있었으나 보지 못한 자, 단순히 소원을 들어주려는 만남이었으나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어리석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기꺼이 풀어내는 이유는 그래서다.
이야기 속 이야기가 주요한 축인 영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진을 거쳐간 이들이 아무도 그에게 물질적 풍요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을 만났던 이들이 모두 특권 계층이어서 여유로운 삶이 가능했던 게 아니었음에도. 이 이야기의 원형일 『천일야화』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조차 우리는 결핍에서 비롯된 인간의 욕망을 찾아낼 수 있다. 끊이지 않는 파티, 무한할 것만 같은 부와 명예, 갖가지 음식과 사치품. 비현실적인 것을 넘어 때로는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장면이, 영화 <3000년의 기다림>에선 모조리 생략된다. 진에게 소원을 빈 여성들은 각기 다른 것을 원하는 듯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자신이 지닌 한계점을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필멸자가 바라는 초월에의 의지는 다양하게 나타나며 인물이 있던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노예로 살던 귈텐은 사랑을 통한 생명의 초월을 소망하여 아이를 임신했고, 여성으로서 사회적 진출에 한계를 절감했던 제페토는 지식을 끝없이 흡수하며 시공간을 초월한 명예와 공적을 원했다. 개인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없던 둘은 신분의 벽과 성별의 벽에 막혀 갇혀 있었으니 병 밖에 있더라도 병 안에 갇힌 진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신세였다. 그렇다면 현대를 사는 알리테아, 진실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그는 무얼 갈망하는가?
인간은 사회적으로 촘촘하게 이어진 존재이니 타자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개인이 바로 서도 사회가 그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탈취한다면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리테아는 이전의 여성들과 다른 세상에서 삶을 살고 있으니 그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개인의 삶이며 들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역사이다. 사회가 관심 없지만 자신만큼은 들었어야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한다. 그러하므로 알리테아가 발견한 자신의 소망은 고독에의 초월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3000년은 언뜻 진의 시간처럼 보이지만 내겐 보다 알리테아의 것, 아니 알리테아로 대표되는 인간 여성 전체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진의 시간은 추후의 인간들이 발명한 시간에 따라 계산된 것이지 그가 타인과 교류하며 쌓아온 역사의 시간이 아니다. 그가 소비한 대부분의 시간은 신에게 자신의 자유를 갈구하며 기도했던 것으로, 홀로 있어 셈하기조차 어려웠던 공백 그 자체이다. (환상으로 구성되었고 타자의 계산으로 보충된 그의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과 심리적 시간 간의 간극을 생각한다면, 사실 진이 경험한 시간은 3,000년이 아니라 30,000년, 혹은 3억 년에 조응할지도 모른다.) 반면 그가 병 밖에서 만나던 여성들의 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사회와 시간은 3천여 년의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인간들의 삶 속에서 구르고 변화해 왔다.
알리테아와 진이라는 두 존재가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예정된 만남 –한 단어로 줄여야 한다면 운명-처럼 보인다. 끝내 죽음을 맞이할 운명인 인간, 종말이 예정된 인간이 욕망 없음의 상태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야기가 끝을 맞이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인간의 존재, 역사,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정령의 종막을 뜻하기 때문이다. 고립과 고독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는 인간과 정령을 다시 잇는다. 신비를 지우고 합리에 의지해 지어진 현대사회다. 이곳에서 순식간에 멸종될 뻔한 정령은 이따금 나타나 개인의 감성과 마음을 쓰다듬는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갈 힘을 다시금 얻는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지혜이며 예술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이지 않을까. 그러한 점에서 <3000년의 기다림>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우화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굳이 ‘초월’이라는 단어와 함께 읽어내고자 한 건, 여성 주안공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함께 붙이고 싶지 않았던 나의 고집 때문이다. 사실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영화를 읽는다면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매끄러울 것이다. 다만 알리테아의 서사가 아이를 잃은 여성에서 출발하여 진과의 사랑으로 맺어지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영화의 짜임새가 구시대적이라고 느끼게 될 수밖에 없고, 전체적인 이야기가 납작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2022년에 나온 영화를 2023년의 시청자가 독해하는 자세로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나는 어떠한 양가감정을 느낀다. 사랑이란 기실, 가장 값지고 쟁취하기 어려운 가치인데 그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영국 락밴드 퀸Queen이 자신들의 노래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에서 “사랑이란 구시대적 단어이기 때문에Because love's such an old-fashioned word”라고 노래했듯 나는 이 단어의 오용, 사랑 앞에서 수동적으로 변해버리는 여성의 태도를 반성 없이 관습적으로 찍어내는 미디어에 반대하기보단 그저 단어 자체를 거부하는, 더없이 손쉬운 방향을 선택해 버린 것은 아닐까 우려한다. 사랑을 대체하거나 다양하게 소화할 수 있는 단어를 발명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선함과 다정함의 가치를 잊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는 한 명의 작은 개인일 뿐이지만, 이런 고민을 가진 인간의 발버둥이 쌓인다면 3,000년 후의 사람들에겐 내 고민이 모조리 옛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망을 감히 가져 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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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우연의 마법들은 바로 감독의 상상이었다.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2021년)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현재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 영화제, 오스카(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다수 부문에서 후보로 오르며 한국에도 더욱 많은 팬들을 만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다. <우연과 상상>은 40분 내외 단편 세 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 프로젝트로 <드라이브 마이 카>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단편’과 ‘장편’의 차이가 있다면 인물과 플롯 모두 단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감독은 이 점을 잘 활용하여 심플하고 흥미로운 플롯 라인에, 그 과정을 긴 호흡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런 연출 스타일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강점이라는 의견이다. 그냥 ‘만났어. 안 잤어. 또 만날 거 같아'가 아닌,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했고, 그때의 감정은 어떠했고, 다음 만남을 위해 이렇게 얘기했어'라는 그 과정을 얘기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2부 중간쯤, 나오는 세가와가 지은 소설을 세가와 앞에서 읊으며 소설에 왜 이런 부분을 넣었냐고 질문한다. 나오의 질문에 세가와는 '이 부분을 통해 독자의 관심을 끝까지 끌고 가는 거죠'라는 식의 말을 건넨다. 도발적인 도입부를 시작으로 묘한 긴장감을 주며 끝까지 관객들의 관심을 쥐고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연출작이다.
등장하는 세 편의 이야기는 모두 두 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1부, <魔法: よりもっと不確か/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모델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는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스타일리스트이자 절친 츠구미(현리로부터 거래처에서 만난 새로운 남성과의 인연에 대해 듣는다. ‘달리는 택시 안’이라는 조명, 카메라 각도 등 연출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텍스트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빠른 컷 전환이 아닌 원 쇼트를 보는 듯한 긴 호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상 이야기의 대부분이자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부분 모두 택시 안에서 대화로 이루어진다. 꽤나 긴 대사임에도 연기를 하는 듯한, 다음 이야기를 알고 대화를 주고받는 연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도 프레임으로 하여금 같은 공간에서 츠구미의 ‘썰’을 듣는듯한 느낌을 준다. 이후 나오는 이야기들도 다른 주제이지만 비슷한 느낌의 연출 형식으로 진행한다.
2부, <扉は開けたままで/ 문은 열어둔 채로>
사사키(카이 쇼우마)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는 기혼 대학생 나오(모리 카츠키)는 사사키의 부탁에 담당 교수인 세가와(시부카와 키요히코)의 명성을 추락시키려 한다.
3부, <もう一度/ 다시 한 번>
동급생 이름조차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 나츠코(우라베 후사코)는 20년 만에 고향의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한다. 돌아오는 길, 유일하게 가장 친했던 아야(카와이 아오바)를 마주치게 된다.
세 편의 이야기에는 모두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마법이 작용한다. 이러한 마법들은 우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이지만 그로 인한 주인공들의 반응과 결과는 제각각이다. 또한, 마법은 각기 다른 위치에서 작용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마법은 중간, 두 번째는 말미, 세 번째는 초반에 작용한다. 영화의 구조를 보자면, 1부는 앞서 말했듯 ‘나의 친구’ 츠구미의 이야기를 메이코와 흥미진진한 연애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2부는 좀 더 높은 성적 긴장감을 가지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 긴장감을 가지고 3부를 들었을 때, 묘한 위로를 받게 된다. 마치 2부에서 세가와의 작문법처럼 말이다. 영화의 가장 첫 장면인 ‘모델 츠구미를 촬영하는 사람들을 보는 관객(카메라)'이라는 시선에 시선을 통해 순식간에 몰입도 높이며 시작한다. 그리고 1,2부의 감정구축 덕분에 긴장도가 좀 풀리는 듯한 3부는 오히려 힘을 받을 받게 된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이들의 관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감독의 상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때로는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도 있고, 묘한 긴장감 속에 긴 대화에도 관객의 관심을 놓지 않는 능력이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좀 더 확실해지는 영화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중간중간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 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인물들의 솔직함이 나온 순간들이었다. 우연과 상상 속에서, 우리의 솔직함이 우리를 웃음 짓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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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향성 없이 시대상을 잘 드러낸 영화 《에놀라 홈즈》
넷플릭스에서 셜록 홈즈 전편을 보고 나서 그 이후 셜록 홈즈는 실존 인물처럼 다가와버렸다. 나의 머릿 속에는 셜록-베네딕트 컴버비치가 각인되어 있었던 터라 다른 셜록 시리즈들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에놀라 홈즈는 셜록 드라마 시리즈에서 마지막에 조금 등장을 했던 터라 그래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보기 시작했다. 물론 캐릭터 설정은 많이 다르긴 했다. 드라마 셜록에서는 여동생이 감옥에 수감될 정도로 똑똑한 아이였지만 영화 에놀라 홈즈는 철부지 같으면서도 소녀미 가득한 진취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드라마의 세계관과는 이어지지 않아서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괜찮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에놀라 홈즈》 시놉시스영화 《에놀라 홈즈》는 에놀라가 사라진 엄마를 찾으러 나서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식 끊긴 두 오빠들에게 에놀라는 맡겨지고, 보수적인 마이크로프트는 에놀라를 현모양처로 키우려 한다. 하지만 홈즈 가문 답게 에놀라는 두 오빠를 따돌리며 런던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시작부터 도망자 신세인 귀족 청년과 엮이고 만다. 그 와중에 오빠 셜록까지 따돌려야 하는 에놀라. 미스터리가 가득한 이 모험. 과연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큰 줄기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영화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을 때 정면을 보면서 에놀라가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오는 바람에 아주 격하게 놀랐다. 영화의 형식의 중간중간 에놀라가 관객에게 현재 상황을 리포팅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연극에서 대표적인 방법으로 활용되던 서사극 형식을 차용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주인공이 연극 속에 있다가 갑자기 관객에게 이야기를 설명해주면서 관객들이 몰입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효과를 주는 방법이다. 영화 《에놀라 홈즈》에서는 이 효과가 제대로 먹혔다. 갑자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여러분~?하고 에놀라가 관객을 불러댄다. 에놀라의 감정선에 몰입하기 보다는 그 상황과 흐름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였다.
그리고 내용이 여성 참정권에 관련된 이야기였기 때문에 여성 화자인 에놀라의 감정선에 너무 몰입하다보면 영화 자체가 억압의 구조로만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서사극 형식이 여성 화자가 여성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관객들이 자신의 입장에 맞춰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끔 만든 장치이지 않았나 싶다.
본격 자아 찾기 프로젝트
에놀라는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런던으로 향한다.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자란 에놀라지만 엄마는 에놀라에게 친구이자 선생님이었기에 엄마에 대한 의존이 상당히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사라진 엄마에 대한 좌절감에 허우적 거리기보다 에놀라는 스스로 엄마를 찾아나선다. 그런 에놀라에게 런던에서 조우한 엄마의 친구는 충고의 말을 건넨다. “다른 사람 찾는라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네 자아를 찾아.”
이 이후 에놀라는 엄마를 찾는 것에도 몰두하지만 점차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가를 깨닫는다. 도망자 신세의 귀족 청년을 다시 찾아내고 그를 도와 여성 참정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에놀라는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이 해낼 수 있는 것을 찾으면서 “내 인생의 나의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여성 탐정의 길을 떠난다.
후속작이 나올까?
그래서 든 의문은 후속작이 나올 것인가?였다. 에놀라 홈즈는 원작 소설이 6권이라고 한다. 에놀라 홈즈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셜록처럼 그 추리의 세계를 깊게 담아낸 것도 그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여성들의 삶을 면밀하게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즉, 이미 그 시대상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맞제. 그 땐 그랬었지.’하는 감상을 할 수 있는 영화였다. 그 소재를 되게 러프하게 다루면서도 재밌게 풀어냈고, 여성의 입장에서만 편향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작품이었다.에피타이저 같은 작품이랄까?
그래서 과연 에놀라 홈즈가 이제 에놀라의 인생과 그 시대상을 면밀하게 보여주는 후속작으로 찾아올 수 있을지에 대해 기대감과 함께 궁금증이 들었다.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후속작이 나왔으면 좋겠다.
어찌보면 무거운 소재를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영화 《에놀라 홈즈》. 후속작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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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의 나날들 Day of Heaven - 테렌스 멜릭
천국의 나날들 Day of Heaven - 테렌스 멜릭
멜릭 감독은 데뷔작 '황무지'를 연출하고 3년만에 다시 명작을 만들었다. '황무지'에서 보여준 황량하고 메마른 장면들이 여기도 등장한다. 주이공들 역시 '황무지'에서의 연인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이 영화에서도 떠돌이 노동자로 전전한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두번째 봤을 때 사뭇 다른 감정이 들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쓴 글이 아래에 이어지고 있지만, 사회적 분석을 떠나, 이 영화는 처연하고 슬픔이 너무 깊어 그것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빌(리차드 기어)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노동자다. 그는 시카고에 살며 영세한 제철소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은 1916년 무렵이니까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의 배경과 비슷하다.
하지만 빌은 공장에서 일을 하다 관리자와 마찰을 빚고, 의도하지 않게 관리자를 살해한다. 이 앞부분은 매우 빠르게 진행하므로 관객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리둥절하다. 더구나 공장 내부의 소음이 너무 커서 빌과 관리자의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마치 쏘련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몽타주 기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빌은 애인 애비(브룩 아담스)와 여동생 린다(린다 만츠)를 데리고 시카고를 떠나 남쪽 텍사스까지 내려와 떠돌이 노동자들이 넓은 밀밭을 수확하려 모여 드는 곳에 주인공들도 일자리를 얻는다. 빌은 애비를 애인이나 아내가 아닌, 여동생으로 소개하는데, 부부라고 하는 것보다 유리한 점이 있기 때문에 빌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직한 태도는 아니었다.
떠돌이 노동자로 일하려면 부부라고 말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빌은 애인 애비를 여동생이라고 말한 이유는, 언젠가 애비와 헤어질 거라는 예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즉 빌은 자신이 공장관리자를 실수로 살해하고 도망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이 비극적으로 끝날 거라는 짐작을 했을 수 있다. 그래서 애인 애비의 삶을 위해 자기와 묶어두기 보다는 조금 느슨하고 자유롭게 연결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밀 수확을 하는 농장의 농장주는 젊은 백인으로, 그는 돈이 많았지만 아직 결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병을 앓고 있었고, 가족도 없었다. 수백 명의 일꾼들이 수확철이 되면 기차를 타고 몰려왔다가 수확이 모두 끝나면 임금을 받고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에 오똑한 집 한 채에 머무는 농장주는 부유해도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 농장주가 우연히 애비를 발견하게 되고, 호감을 갖는다. 빌은 우연히 농장주가 시한부 삶이라는 걸 엿들었고, 애비에게 농장주와 결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빌의 생각은 애비가 농장주와 결혼하고, 농장주가 곧 죽으면, 농장을 물려받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으리라.
밀 수확이 끝나 떠돌이 노동자들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빌과 여동생, 애비는 농장에 남아 허드렛일을 하며 농장주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곧 농장주와 애비는 결혼식을 올린다. 그렇게 농장주와 애비는 공식 부부가 되었고, 빌은 농장주의 처남이 된다.
네 사람은 밀 수확이 끝난 들판에서 노동을 하지 않고 매일 매일을 행복하게 지낸다. 이 영화에서도 데뷔작 '황무지'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빌의 여동생의 시각이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빌과 여동생, 애비는 농장에서의 삶이 마치 천국에서 지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풍족한 생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아름다운 자연,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온전한 시간들이 이들에게는 처음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농장주는 아내 애비와 처남 빌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낌새를 챈 빌은 농장을 떠나고, 세 사람은 다시 밀을 심고, 수확할 때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애비는 처음에 농장주와의 결혼이 정략결혼이었고, 애정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다정한 농장주의 태도에 자신도 남편(농장주)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을 느낀다.
한 해가 지나고, 다시 밀 수확철이 되었을 때, 떠났던 빌이 멋진 자동차를 타고 나타난다. 농장주는 다시 빌과 애비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결정적 장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밀밭에 메뚜기 떼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메뚜기를 없애려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농장주는 빌에 대한 분노와 배신의 감정으로 가득 찼고, 우연인지, 고의인지 알 수 없는 불씨를 밀밭에 던지며 밀밭이 모두 불에 타버리도록 방치한다.
농장주는 빌을 죽이려고 총을 들고 다가서지만 빌의 공격으로 살해당하고, 빌은 다시 애비와 린다를 데리고 도망한다. 보안관들이 빌의 뒤를 추적하고, 마침내 빌은 보안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애비와 린다는 빌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지만, 살인자 빌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것이다.
이후 애비와 린다는 서로 헤어져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애비는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들과 함께 기차에 올라타 어디론가 사라지고, 린다 역시 무용학원에서 친구와 함께 도망쳐 철길을 따라 사라진다.
결말은 세 명의 주인공이 죽거나 미래를 알 수 없는 운명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의 운명이 가난에서 시작했고, 가난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당시 시대 상황에 관한 인식은 아래,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썼던 글로 대신한다.
천국의 나날들. 1978년 테렌스 멜릭 감독 작품. 젊은 나이의 리차드 기어와 샘 쉐퍼드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영화임에 틀림 없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적 상황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하겠다.
스토리만 보면 단순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비교적 평면적인 이야기 구조 속에 미국의 20세기 초를 살아가는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성, 역사성을 잘 구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초의 미국 즉 1900년에서 1930년대까지의 미국 사회를 살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업튼 싱클레어가 쓴 소설 '정글'부터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로 이어지는 일련의 미국 현대 소설들은 당대의 현실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 시기에 이미 놀라운 판매와 함께 여론을 집중한 베스트셀러였다.
'정글'과 '분노의 포도' 사이에 이 영화의 시대가 있다. '정글'은 시카고 도살장에서 일하는 유르기스는 리투아니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난한 노동자다. 그는 도살장에서 일하는데, 그가 일하는 도축장의 현실은 생지옥이 따로 없는, 참혹한 환경이다. 그가 받는 임금은 집세를 내기에도 버겁고,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참혹한 공장 환경을 비롯해 그가 살아가는 환경은 최악이다.
'정글'은 이 시기의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지만 그보다는 주인공 유르기스가 고통스러운 삶에 허덕이는 평범한 노동자에서 각성하는 사회주의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기에는 미국에서도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이 노동자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은 30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분노의 포도'에서도 조드 일가가 겪는 고통스러운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이 가진 재산을 모두 잃고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은 바로 이 영화와도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또한 '분노의 포도'에서도 당시 미국의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무대는 텍사스의 농장이다. 대도시인 시카고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빌은 공장장과 말다툼을 하다 의도치 않게 살인을 하게 되고, 그의 애인과 여동생을 데리고 도망한 곳이 텍사스의 농장이다. 광활한 농장은 밀을 키우는데, 수확철이 되면 떠돌이 노동자들을 불러 들여 그들을 먹이고 재우면서 밀 수확을 하게 된다.
백여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노동자들은 왜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 물음에 답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자본주의를 들여다 봐야 한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지금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이름들-J.P 모건, 록펠러, 카네기, 제이 굴드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유명한 자본가들의 이름이며, 지금까지도 미국의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는 지배집단이기도 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계급의 대립이 매우 격렬하게 맞붙게 되는데, 이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이후출판사)'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의 미국사회는 거대 자본에 저항하는 세력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치되어 있는 반면, 20세기 초에는 미국에서도 강력한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자들의 활약으로 미국노동자들의 계급적 각성은 세계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훌륭했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고 미국의 자본가들은 러시아에서 권력을 장악한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미국의 노동자 계급으로 전이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폭력적인 방법으로 노동조합을 박살내고 사회주의자들을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이 자본(가)을 향해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결국 모든 노동쟁의와 반자본투쟁의 원인은 바로 자본(가)이 만든 것이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자본의 내적 모순'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했고,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것 역시 이러한 내적 모순에 의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미국의 자본주의는 지금도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지만, 폭력적인 방법으로 노동운동을 파괴하고 말살시킨 이후, 미국은 제3세계를 통해 착취한 이윤의 일부를 자국의 노동자들에게 분배함으로써 노동계급의 불만을 완화했고, 미국의 노동자들은 순치되었다.
이 영화는 그러한 미국의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공장에서 쫓겨나거나 배제된 노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빌과 그의 애인 애비, 여동생은 텍사스의 농장에서 밀 수확을 하게 되는데, 그 농장의 주인은 미혼의 젊은 남성으로, 애비를 눈여겨 보게 된다. 빌은 자신의 애인을 여동생이라고 소개하는데, 그들이 애인 사이인 것을 드러내면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미묘한 감정 싸움은 빌이 애인인 애비를 설득해 농장주와 결혼하라고 권하면서부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빌은 농장주가 병이 있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결국 빌과 애비의 관계를 눈치 챈 농장주(샘 셰퍼드)는 빌과 다투는 와중에 빌에게 살해당한다. 두 번씩이나 사람을 죽인 빌은 도망자가 되어 쫓기다가 결국 경찰관의 총에 맞아 죽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나지만, 겉으로 드러난 빌의 범죄-살인-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몰린 노동자가 두려움에 저지른 실수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발전하던 시기였던 20세기 초는 특히 노동자의 생존 조건이 말할 수 없이 열악했고, 노동자는 그야말로 소모품에 불과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때였다. 지금의 미국은 자본주의와 함께 민주주의도 발달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상황까지 오는 동안 미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탄압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거의 유일하게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영상의 아름다움이 탁월한 작품이다. 멜릭 감독은 이 영화로 음악에서는 엔리오 모리꼬네가 영국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고, 전미비평가협회 최우수영화상, 뉴욕비평사협회 감독상, 로스엔젤레스비평가협회 쵤영상,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의 장면 한컷 한컷이 마치 회화처럼 아름답다. 이것은 영화의 주제와 내용이 매우 처연하고 슬픈 것과 대비되며, 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희생되는 떠돌이 노동자의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비극적으로 대비하고 있어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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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인연들이 떠나가기 전에 잘해주자!
시놉시스
멧은 암에 걸린 자신의 아내인 니콜을 절친한 친구인 데인과 함께 간병하고 있다. 암이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니콜은 자신의 버킷리스트들을 적는다. 6개월간의 시간이 그녀에게 남았는데 그 시간 동안 많은 목표를 이루고 딸인 몰리와 이비에게도 작별 편지를 남긴다. 멧과 니콜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오해가 있었던 걸까?
니콜에게 있어 갑작스럽게 다가온 암은 너무나도 놀랐을 것이다. 항암제를 먹어도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서 이미 말기로 발전한 니콜은 자신이 못해봤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기 시작한다. 먼저 반지의 제왕 책 다 읽기와 파란 머리로 염색하기, 퍼레이드 걸 되보기 등등의 목표들을 이루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왜 니콜이 암에 걸렸을까? 그 이유는 바로 남편인 멧과의 다툼부터 시작되었다. 멧은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고 해외로 나가는 기자 일을 했고 불륜도 저질렀지만 니콜의 부모님과 니콜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니콜 또한 뮤지컬 배우이면서 피터라는 무대 감독과 불륜을 저질렀고 노트북에 적혀있는 메일 때문에 멧에게 발각되었다. 그래서 둘은 서로 거칠게 다투기 시작했고 니콜은 암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멧은 사실 가족들을 먹여살리려고만 했지 직접 가족과 함께 있어본 적 없는 가장이면서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니콜이 말하길 가족과 함께 있어달라는 요구도 무시하고 그저 자신의 일에만 집착하는 멧이였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니콜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딸인 몰리도 그런 아빠를 싫어했으며 이비가 놀다가 다쳤는데도 그렇게 보살피지 못했다.
어쩌면 니콜이 암에 걸린 건 멧이 자초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니콜이 죽고 난 후 멧은 아버지로서 사명을 다하는데 진정한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한다. 그 이후로 니콜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 위해 글로 쓴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데인도 불쌍하기 그지없다. 사실은 니콜의 절친한 친구였음에도 멧이 니콜과 결혼하고 난 후 그저 멧에게 조언만 해주는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단점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니콜이 암에 걸렸을 때 제일 니콜을 간병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결국 멧의 빈자리를 데인이 계속 대신해 줬는데 너무 착했고 멧에게 이용만 당한 것 같이 느껴진다.
데인은 그런 자신을 위해 자가용을 타고 사람이 드문 한적한 사막의 산으로 올라가 등산을 하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어느 중년의 여자를 만나고 그 중년의 여자도 자살도 계획해 봤고 인생이 힘들었는데 데인에게 따뜻한 수프를 건네면서 말벗이 필요하다면 전화를 달라고 하면서 전화번호를 건네준다. 어쩌면 데인은 그렇다 할 직장도 없었고 멧에게 끌려다니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혼자라는 기분은 데인도 마찬가지로 느끼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서 실화라고 하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저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보살피는 멧의 심정과 쓸쓸한 빈자리를 지키고 있는 니콜과 그 자리를 메꾸어주는 데인의 심정까지를 보여주는데 이 영화를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과 지금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여운을 남긴다. 떠나가면 붙잡을 수 없는 게 인연인지라 필자도 지금의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잘해줘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지금의 인연들이 떠나가기 전에 소중히 대하자!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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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주 차 개봉작,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칸 영화제 수상작부터 전주국제영화제 전석 매진 작품, MCU의 새로운 슈퍼 히어로 이야기를 담은 영화까지!!
극장부터 OTT까지 많은 기대작이 개봉 및 공개를 앞두고 있는데요.
그럼 6월 둘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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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개봉 영화
브로커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29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등
개봉: 2022.06.08
배급: CJ ENM
줄거리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영화.
관전 포인트
<브로커>는 일본 거장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번째 한국 영화 연출작으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송강호 배우가 대한민국 첫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화려한 라인업이 더욱 더 기대를 높였다.
윤시내가 사라졌다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한국 | 107분
감독: 김진화
출연: 이주영, 오민애, 노재원 등
개봉: 2022.06.08
배급: 블루라벨픽쳐스
줄거리
고별 콘서트를 앞두고 사라진 윤시내. 꿈의 무대와 일자리를 잃은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와
조회수 떡상을 바라는 유튜버 짱하가 윤시내를 찾는 여정을 담았다.
관전 포인트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예매가 오픈되자마자 초고속으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영화제 최고 화제작으로 주목 받았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 이주영, 오민애, 노재원, 김재화 등이 출연해 기대를 높였다.
이공삼칠
ⓒ 네이버 영화
개요: 가족 | 한국 | 126분
감독: 모홍진
출연: 홍예지, 김지영, 김미화 등
개봉: 2022.06.08
배급: (주)영화사 륙, (주)씨네필운
줄거리
열아홉 소녀에게 일어난 믿기 힘든 현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희망을 주고 싶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입니다.
관전 포인트
배우 홍예지의 데뷔작이자 첫 주연작인만큼 어떤 연기를 선보일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전작 <널 기다리며>로 호평 받은 모홍진 감독이 <이공삼칠>의 연출을 맡으며 기대를 높였다.
베르네 부인의 장미정원
개요: 드라마 | 프랑스 | 95분
감독: 피에르 피노드
출연: 카트린 프로, 팟사 부야메드, 올리비아 코트 등
개봉: 2022.06.09
배급: 찬란
줄거리
파산 위기에 처한 장미공원을 지키려는 프랑스 최고의 원예사 베르네와 신입 직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힐링 드라마.
관전 포인트
세자르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7차례 이름을 올린프랑스 국민 배우 카트린 프로가 출연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다채로운 색감으로 영화의 기대감을 높였다.
OTT 공개 예정작
미즈 마블
ⓒ IMDB
개요: 액션 | 미국 | 6화
감독: 아딜 엘 아르비, 빌랄 팔라, 샤르민 오바이드-취노이, 미라 메논
출연: 이만 벨라니, 아라미스 나이트, 모한 카푸르 등
공개: 2022.06.08
스트리밍: 디즈니+
줄거리
'어벤져스’와 ‘캡틴 마블’의 열렬한 팬이자 히어로를 꿈꾸는 16살 '카말라'가 숨겨져 있던 폭발적인 힘을
얻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
관전 포인트
마블 최초의 '무슬림 히어로'의 탄생이자 최초로 어벤져스의 팬이 그들의 세계에 합류한다는 점이 <미즈 마블>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또한 총 네 감독이 각 에피소드를 담당해 에피소드 별로 연출의 차이를 보는 것도 하나의 작은 재미가 될 것 같다.
허슬
ⓒ 다음 영화
개요: 코미디 | 미국 | 117분
감독: 제러마이아 제이가
출연: 아담 샌들러, 후안 헤르난고메즈, 퀸 라티파 등
개봉: 2022.06.08
스트리밍: 넷플릭스
줄거리
NBA 농구 코치로 복귀하려는 열망을 품고 고된 스카우터의 일을 하던 스탠리가 스페인에서 발군의 농구실력을
갖고 있는 건설 노동자인 보를 발견하고 NBA 선수로 데뷔시키기 위해서 분투하는 이야기
관전 포인트
미국에서 유명한 코미디 배우 아담 샌들어가 주연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예고편 속에서 보반 마리야노비치, 카일 라우리, 세스 커리 등 NBA 현역 선수가 등장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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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2024) - 하마구치 류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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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독립시대 (1994) - 에드워드 양
6. 안티크라이스트 (2009) - 라스 폰 트리에
7. 우나기 (1997) - 이마무라 쇼헤이
8. 노 베어스 (2024) - 자파르 파나히
9. 나의 올드 오크 (2024) - 켄 로치
10. 시빌 워: 분열의 시대 (2024) - 알렉스 가랜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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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러의 보디가드 2 영화 후기 / 라이언 레이놀즈와 사무엘 잭슨의 티키타카 / 난무하는 f*** 욕설 / 사방에 튀는 핏방울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킬러의 보디가드 2”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 전에 쿠키영상이 하나 있고, 엔드크레딧 후에 관객도 깜빡한 쿠키사진이 하나 있습니다.#코믹, #액션, #블록버스터, #라이언레이놀즈, #사무엘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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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큐페이션 2 레인폴> 메인 예고편
드디어 전면전이 시작된다!
외계의 침공으로 지구가 점령된 지 2년
살아남은 저항군들은 반격을 준비한다.
한편, 평화를 원하는 동맹군들로 인해
외계 세력 내부의 분열이 일어나고
전쟁의 종식을 위해 손을 잡은 인류와 외계 동맹군은
거대한 전쟁을 끝낼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기회는 단 한번!
인류의 미래를 건 최후의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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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바타 : 물의 길> 티저 예고편
“이것만은 변치 않아. 우리가 어딜 가든지, 가족은 우리의 요새야.” [아바타: 물의 길] 티저 예고편 대공개 2022년 12월, 오직 극장에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