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1-03 07:46:50
길 잃은 이야기들의 중첩
영화 〈은빛살구〉

정서는 아파트 청약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분투한다. 우리는 그 모습에서 아파트에 투영된 시대의 욕망을 읽어내야 할까? 아니면 정서가 비정규직 디자이너로 일하며 뱀파이어 웹툰을 그리는 데서 우리 시대의 불합리한 계급 구조와 자아실현의 관계에 질문을 던져야 할까? 정서가 외도로 이혼해 다른 가정을 꾸린 아버지와 재회해 가까워지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은 어떤가. 우리는 여기서 질긴 혈연의 의미를 곱씹어야 할까?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문득 마음에 들어오는 이복동생과의 관계에서는 자매애의 새로운 토대를 발견해야 할까? 결혼을 앞둔 남자 친구와의 사랑이 아파트 계약 성사 여부에 오락가락한다는 데서는 사랑의 조건을 질문해야 하는 걸까? 이혼 후 딸을 홀로 키운 어머니가 정서와 맺는 관계는 또 어떤가? 아니면 무엇보다 이 거대한 여정을 모두 거친 후 주인공이 맞이하게 될 성장에 집중해야 하는 걸까?

〈은빛살구〉를 보며 도무지 이야기의 결을 종잡기가 힘들었다. 결혼을 앞둔 정서는 비정규직 디자이너로 일하며 웹툰을 그린다.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지만 계약금이 없다. 어머니는 정서에게 오래전에 외도로 가정을 떠난 아버지를 찾아가라고 말한다. 자신이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을 대신 받아 계약금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재혼해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다. 운영하는 횟집도 문전성시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자신을 찾은 딸이 반가운 기색이다. 이복동생도 은근히 정서를 따르며 살갑게 군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그러나 아버지의 다른 속셈과 비밀, 오해를 불러일으킨 동생과의 해프닝 등등이 겹치며 정서의 계획은 꼬여만 간다. 계약금 마련이 어려워지자 정서는 점점 초조해지지만 남자 친구는 속도 모르고 엉뚱한 짓만 반복해 그녀를 화나게 한다. 하필 그때 옛 연인이 등장해 정서의 마음이 흔들린다. 엉망진창으로 마무리된 여정 후, 회사에서는 ‘정규직 계약’을 빌미로 정서를 못살게 군다. 결국 정서는 은근히 혹은 대놓고 자신을 옥죄어 오던 것들과 단절하고 자신의 웹툰 속 최상위 포식자 ‘뱀파이어’가 되어 결연한 표정으로 홀로 걸어간다.


결과적으로는 그럴듯한 이야기다. 하지만 결론에 다다르기까지의 이야기는 중구난방이다. 초점이 없다. 사건 전개가 유기적이라기보다는 단절된 채 이어지는 듯한 인상이고, 여러 갈래로 흩뿌려진 이야기 갈래를 꿰뚫는 하나의 주제 의식을 찾기도 어렵다. 어느새 우리는 내내 짜증이 나 있는 정서의 감정에 물들고야 만다.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운 인물의 변화와 사건의 연쇄 속에서 정서의 감정은 관객의 감정이 된다.
배우들의 호연을 고려했을 때 아쉬운 일이다. 정서를 비롯해 그녀의 아버지와 이복동생 등 영화에는 생기와 개성을 갖춘 캐릭터들이 꽤 있다. 이들이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엇갈렸다면 어땠을까. 길 잃은 이야기들의 중첩에서 헤매는 인물들의 고군분투가 못내 아쉽다. 25회 전주국제영화제 수상작(한국경쟁 배우상).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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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호실] 음악을, 연인을, 다정함을 향한 사랑은
tick,tick...BOOM!(2021)
세상은 천재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구나
스티븐 손드하임-조나단 라슨-린마누엘 미란다로 이어지는 미국 뮤지컬의 역사를 영화 안팎으로 지켜볼 수 있어서, 린마누엘미란다 세대의 뮤지컬을, 음악을, 영화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한 세대라고 생각했어
담백하고 깔끔하게 tick,tick…BOOM! 3인극 원작과 조나단 라슨의 삶을 동시에 전개해 나가고
뮤지컬씬 연출도, 관객의 감정을 쌓아올리는 길도 잘 깔아놓았다
일상 속에서 빛을 찾아내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지
흔하고 뻔한 세상 안에서 멋진 언어들을 발견하는 작가들은 어떤 마음일지 가늠해보게 한다
그런 자신의 인생과 가치관을 음악으로 풀어놓는 조나단을 앤드류가필드의 연기와 그의 넘버로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끊임없이 사회를 향해 외치는 말들로 가득한 넘버들이 좋다
같은 장면을 몇번이고 돌려봐도 매번 조나단라슨처럼 가슴이 뛰게 만드는 영화
what does it take to wake up a generation
actions speak louder than words
bones and all(2022)
완벽하게 내 취향의 영화
우선 오프닝. 어디서 본 해석과 내 해석을 종합해보면
일단 송전탑은 집과 집을 연결하는 소재로 미국의 혈관을 의미한대.
잘못 성장한 어른은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점을 의미하고자 했대
나는 여기에 더해서 오프닝에서 학교 친구가 우리 집은 송전탑 맨 끝에 있어 이러잖아
그 송전탑으로 연결된 선의 끝.
즉 집과 집, 마을과 시람들과 연결된 선 위에 자리하려 하고 속하려 노력한 매런은
결국 송전탑의 맨 끝에서 친구의 손가락 혈관을 끊어버리면서 자신이 이 선 안에 속하지 못할 것임을.
스스로 인간의 혈관을 끊음으로서 자신과 사회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렸다는 걸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또 공식 설정이 이러한지는 알 수 없지만 매런과 리는 모두 부모에게서 그 식성이 온 거잖아
그것 또한 결국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사랑에서 기인했다는 점
사랑을 인생에서 놓을 수 없던 이들이 아이를 갖고 그 아이에게도 자신의 삶을 물려줘야 한다는 점
결국 사랑
사랑이다 참 사랑이 뭐길래
인간의 삶을 살아가게도, 죽게도, 잠시 멈추게도 만드는 건 항상 사랑이다
구아다니노는 콜미바이유어네임에서도, 서스페리아에서도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조용하게 분위기를 자아내는 걸 좋아하는 감독 같았다 그걸 또 잘한다
그리고 티모시 샬라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나는 그가 출연한 작품들을 봐오면서 그의 매력을 잘 몰랐는데 이번 작품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연기를 잘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인물을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배우더라고
특히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던 씬에서
매런의 옷가지를 쥐어뜯을 듯 잡으며 매런에게 매달려 울던 모습에서
리가 마음에 와닿고 그랬다
매런은 어렴풋이 알았을 거야. 그녀의 어머니가 쓴 편지를 읽은 이후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거야
그들에게 사랑은 허락되지 않는 것이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상대를 껴안는 처절한 선택을 한 것이고
잠깐이라도 평범하게 살아보자던 둘은. 매런은
침대 위 카라멜 빛깔의 가방을 보고서 지금이 그때임을 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 깨달았을지도 몰라
결국 자신을 먹어달라던 리는 bones and all 이라 속삭이고
본성에 의해 허락되지 않는 사랑을 하는 그들에게
뼈도 남기지 않고 모든 부분을 먹어달라는 건 사랑의 끝이라 할 수 있는 걸까
자신이 상대에게 온전히 들어갈 수 있도록. 그 안에 자리할 수 있도록. bones and all. 그 모든 것을
마침내 말 그대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이터들이 느끼는 외로움이란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2022)
멀티버스 영화의 백미. 과거 이 순간에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또 다른 우주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에블린을 보는 게 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멀티버스 영화의 법칙을 잘 지키면서도 참 새로운 멀티버스 영화 같았다
우선 양자경은 말할 것도 없고 웨이먼드 역 키호이콴도 정말 잘한다 연기로 나를 울려 이 사람들이
특히 조이 역의 스테파니 수
조이일때도, 조부 타파키일때도 인물을 너무 잘 살리는 배우 같았다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은 에블린이 아버지에게 조이의 여자친구를 냅다 소개시킨 뒤 조이가 에블린과 다투는 씬에서
두 배우의 연기가 너무도 현실적이고 마음아프고 미치겠는 조이를 너무 잘 표현한 것 같았음
이 씬이 조부에게, 결국 조이에게 닿기 위해 싸우는 에블린과 교차되어 나와서 더 몰입되기도 하고,, 너무 좋았다
키호이콴은 거의 문나이트 오스카아이작처럼 한 테이크 안에서 상반된 연기차력쇼를 하는데 너무 잘하더라고
맞다 해리슘주니어도 너무 반갑고 웃겼다
여러 가지로 할 말이 많은데 일단 이 영화는 황당함이 80을 먹고 들어가는 영화인데
그 황당무계한 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다 있어서 영화의 아이덴티티가 된다
챕스틱을 냅다 씹어먹는다거나, 적인 디어드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거나 신발을 거꾸로 신는 것.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황당한 일도 다른 우주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거야
이런 설정이 2부까지 이어져서 조부에게, 조이에게 닿기 위한 싸움에서도
에블린이 단순히 싸움을 선택하지 않고 여러 우주의 황당한 능력의 에블린을 이용해 상대를 다정함으로 이겨내는 전개가 참 좋았다
웨이먼드가 다정함이 우리의 삶을, 관계를 바로잡을 키워드임을 직접적으로 알려주긴 하지만
결국 에블린도 여러 우주의 자신을 겪으면서 이를 깨달았고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해도 현재를 선택해 다정함을 무기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결말이
참,, 좋았다,,
벼랑에서 떨어지는 돌맹이들을 보며 눈물을 삼키게 될 줄이야
이동진 파이아키아 영상 보면서 새로 알게 된 이 영화의 황당한 아이덴티티 또 있다
검정 베이글 사이 흰 구멍과 눈알스티커의 흰자 사이 검은 눈동자는 결국 닮아있지만 상반된다는 점이
베이글로 대표되는 인생의 허무주의와 눈알로 대표되는 다정함은 정반대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
그냥 보면 황당한 설정들이 사실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라는 게 보였다.
빌런인 조부가 단순히 에블린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 베이글에 들어가기 위해 찾으러 왔다는 점도 좋았다
세상을 끝장내고 어쩌고 하고 싶다기보다, 그냥 외로웠던거야
수천개의 우주에 존재하는 나를 모두 맛보고 나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온 우주에 나밖에 없다는 외로움을 절실히 느끼면서 끝없이 외로워했겠지
그래서 에블린을 찾아나선 것이고
아무튼 이 영화는 황당함이란 장막을 온 사방에 쳐두었다
그 장막을 열어보면 영리한 설정들을 열심히 숨겨두었다는 점이 막 마음에 이 영화가 차오르게 만든다
다만 1부가 조금 간결했다면 더 즐길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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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질타의 행방,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 그리고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연애편지 (1953)Love LetterSYNOPSIS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온 레이키치는 일본 여성들이 미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번역하는 일을 하며, 한편으로 잃어버린 옛 연인을 찾고 있다. 일본의 대배우 다나카 기누요의 연출 데뷔작으로,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여성의 시선으로 담고 있다.감독TANAKA Kinuyo(다나카 기누요)출연MORI Masayuki(모리 마사유키), KUGA Yoshiko(쿠가 요시코), MICHISAN Shigesan, UNO Jukichi(우노 쥬키치), KAGAWA Kyoko(카가와 쿄코), SEKI Chieko(세키 치에코)1:1 정방형의 프레임을 영화관에서 본 건 오랜만이었다. 첫 장면은 일본어가 수 놓인 종이와 한 송이의 꽃. 컷을 바꾸어가며 글자와 꽃의 위치가 오묘하게 바뀌다가 꽃은 점점 그림자로 변해갔다. 꼭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처럼. 컷이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 내내 흐르던 서정적인 멜로디가 사라지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스포일러 있습니다.번듯한 차림새의 남자. 바삐 어딘가로 향하는 발걸음이 익숙해 보였다. 아주 잘 아는 길을 습관처럼 걷는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도착지는 집이었다. 번역가로 일하는 자신의 형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장 그의 손에 일감을 쥐어준다. 방 안에서 번역 일만 하느냐는 가벼운 타박에 멋쩍게 웃는 남자, 레이키치는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인다.그에겐 작은 방이 생활 반경 전부일 것 같았는데 곧, 변화가 생겼다. 친구의 제안으로 이제는 논문 같은 서적이 아니라 편지글 번역을 맡는다. 어디에서 어디로 부쳐지는 편지인가 하면, 미군과 사귀는 여성들의 재촉과 질타 따위를 영어로 보내는 일이다. 대개 양육비를 제때 내지 않는 등 벌인 일을 책임지지 않은 것에 화를 내는 편지였다.여기서 주목할 건 질타의 방향이다. 1953년 영화인만큼 시기상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일본과 일본의 적국인 미국. 십 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니 오묘한 감정선을 타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의연하다. 편지 번역을 의뢰한 여성의 한숨 섞인 말에도 레이키치는 헤실대는 웃음이 전부였다. 전후의 분위기가 담기지 않은 걸까, 혹은 일이기 때문에 감정의 분리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사람이 의연한 걸까.약간의 의구심을 일으킨 채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바로 미치코.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치코의 목소리였다. 마유키는 곧장 밖으로 뛰쳐나가 미치코를 찾는다. 하지만 이미 그가 떠난 후였다. 온화한 미소와 점잖은 말씨, 그리고 묘하게 기품 있는 지적인 레이키치의 모습이 한 번 깨진 순간이다. 레이키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는 사람, 그것도 오래 기다려왔던 미치코라는 걸 알게 된다.미치코는 이혼 후 혼자 지내고 있는데 레이키치는 자신의 첫사랑인 미치코를 잊지 못해서 주변의 재촉과 물음에도 시종일관 웃음으로 대응하며 그를 기다려 온 것이다. 지극한 순애보라고만 볼 수 있을까. 이 모든 건 레이키치의 생각이자 바람이고, 자신이 타인에게 관철시키고 싶은 뜻일 뿐. 다만 지식인처럼 보이는 번듯한 겉모습에 그의 요상스러운 집착은 그럴싸하게 포장된다.두 사람은 결국 조우하고, 서로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면서 레이키치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레이키치는 그렇게 그리던 미치코를 단 한 번에 내팽개친다. 미군에게 편지를 보내려는 의뢰인으로 미치코가 나타난 것이다. 레이키치가 상대했던 여성 의뢰인들은 대개 미군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던 여성이었으므로 그가 꿈에 바라던 '순결한' 미치코는 영영 사라진 것이다.레이키치 마음 한 편에 있던 아이러니가 그제야 가시화된다. 미군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실 책망과 불안이 뒤섞인 내용이어야 한다. 양육비는 결국 생활에 필요한 최소 비용의 일부이자 무엇보다 미군이 벌인 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므로. 회유나 설득으로 점철되어야 할 언어는 레이키치의 손을 거쳐 로맨틱한 것, 그러니까 '연애편지'로 왜곡된다.그 여성들이 바라는 건 다정한 말을 속삭이는 연애가 아니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경고이지. 그러나 와 편레이키치지의 수신인들에겐 상냥한 말씨로 다정히 말하는 '여인' 쯤으로 다가올 뿐이다. 승전국과 패전국 사이의 위계가 미군-일본 여성부터 일본 내 남성 지식인-하층 여성으로 확장되어, 영화에서는 개인의 모순으로 드러난다.미치코는 자신은 그들과 다르며, 미군과는 진지한 만남을 가진 것이지 몸을 판 게 아니라고 그의 오해를 풀고자 한다. 영화는 그의 말이 변명인지 해명인지 파헤치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듯 미치코의 진위여부는 조명하지 않는다. 대신 레이키치의 동생을 내세워 한쪽에서는 설득과 거절을 반복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황 설명과 이해를 표하려 한다.끝으로 치닫은 영화는 다시금 우연을 활용한다. 미치코와 레이키치의 재회가 그랬던 것처럼. 미치코를 자신들과 동류라고 말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고, 힘겹게 그들을 뿌리쳐 낸 미치코와 레이키치의 동생. 미치코는 자신의 억울함을 표명한다. 동생은 이에 동조를 표하고, 레이키치는 미치코와 대화를 하고자 그의 집에 찾아간다. 그를 '용서'할 가능성을 생각하며.레이키치의 행태는 볼수록 아리송했다. 과연 이 남자가 느끼는 배신의 근원이 뭘까? 미치코가 '미군'과 얽혀있어서 그 자신의 애국심을 무한히 발휘한 것일까, 혹은 '순결함'을 잃었다는 생각에 분노를 느낀 것일까, 둘 다일까. 한 사람의 명확한 계기는 알 수 없으나, 분노의 감정이 치솟은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이, 그리고 사회가 규정한 올바르고 좋은 상태의 여성을 자신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상정했고, 이를 타인에게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자신만의 판타지를 견고하게 만들었으며, 이를 현실로 소유하고자 했음을.이러한 꽉 막힌 시선에서 벗어나는 건 어째서 또 다른 고통뿐인지. 또 '우연한' 교통사고로 미치코는 레이키치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병원에 실려간다. 이윽고 전보를 받은 레이키치 또한 병원으로 향하는데, 차 안에서 그의 친구가 말했다.일본인 모두 전쟁에 책임이 있어.전쟁이 끝난 뒤 다들 힘들게 살고 있는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어?이야말로 영화 전체, 특히 레이키치를 꿰뚫은 말이다. 대체 누가 누구를, 무엇을 근거로 탓하는가? 레이키치 자신이 참전군인이라고 해서 자신의 기준대로 타인을 재단할 순 없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 채 더 약해 보이는 존재에게 화풀이하는 꼴이다.전쟁은 끝났는데 왜 홀로 전쟁 속에 갇혀있는가.Schedule in SIWFF2022-08-27 | 20:30 - 22:05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1관2022-08-30 | 13:30 - 15:05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MX관서울국제영화제 SIWFF8/25(THU) ~ 9/1(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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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하지만 쉽게 망각하는 사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였다. 영적 세계를 표현한 픽사의 엄청난 상상력과 표현력은 놀랍다. 이래서 픽사 영화는 믿고 봐도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단순히 쉽게 흘러가는 줄거리 속 숨어 있는 심오한 메시지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그리고 <소울>에서 가끔 등장하는 한국어와 한글은 한국인이 봤을 때 친근함과 소소한 웃음 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 나에게 불꽃을 만들어준 영화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화 서두에 적었다시피 한글과 한국어에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우리들처럼 흑인들이나 뉴욕에 사는 사람들도 <소울>에 소소한 재미를 느낄 것이다. 거대한 뉴욕 도시 풍경과 분위기는 물론, 주인공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의 인종에 맞춰 소울 가득한 재즈 음악과 흑인 바버샵, 흑인 특유의 억양과 발음 등 자연스럽게 녹아든 흑인 문화들을 살펴볼 수 있고, 같이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 조 가드너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라라 랜드>의 세바스찬(라리언 고슬링)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과 비슷하여 그를 떠올렸지만, 피아노 연주로 전해져 오는 분위기와 소울이 달랐다. 역시 재즈는 흑인 문화인만큼 그 소울을 따라갈 순 없나 보다. 표현 같은 픽사 작품인 <인사이드 아웃>이 인간의 감정과 정신세계를 창의적이게 표현한 영화라면 <소울>은 인간의 영적인 세계 즉, 죽음과 창조에 대해 창의적으로 표현한 영화다. 인간이 죽고 난 후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의견은 각자가 다를 것이다. <소울>은 우주처럼 보이는 배경에 거대하고 환한 빛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으로 죽음을 표현한다. 환한 빛을 향하니 긍정적인 세계로 향하는 듯 보인다. 반면, 창조는 생물학적인 탄생 이전으로 인간이 가지게 되는 성격이나 성향을 미리 만든 상태로 성장해간다는 배경을 지니고 있다. 자아를 미리 만들어놓고 성장하면서 그 자아를 발현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이 같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든 영적 세계는 신기함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인간의 자아 형성은 어떻게 되고, 죽음 이후에 다가오는 과정은 이러한지 그리고 인간이 지닌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순간 <소울>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없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일상의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가자라고 느낀 영화다. 이 주제는 너무 단순해서 금방 망각하기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소울>은 이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영화다. 일상의 즐거운 순간,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다독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주제와 더불어 '목적'이라는 키워드도 언급하고 싶다. 조 가드너는 '하프 노트'라는 재즈 클럽 멤버가 되길 원했다. 그러나 막상 꿈에 그리던 재즈 멤버가 되니 그는 마냥 기뻐하지 않고, 공허함을 느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불꽃이 약해진 것이다. 목적, 목표를 정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긍정적인 성과나 변화를 얻길 원하고, 실제로 얻기도 한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좋은 결과에 대한 기대감을 한 없이 높아지고 과장되어 간다. 그리고 결국 꿈에 그리던 목표에 도달했을 때, 과장되었던 기대감에 김이 빠지기 시작하며,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기대감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 두려워서 무계획을 실현할 수도 있다. <소울>은 한편으로 목적 있는 삶이 필요한가를 묻는다. 정확히는 무조건 목적이 있어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불꽃이 생겨날 수 있는가를 묻지만, 단순하고 일반적인 순간에도 마음속 불꽃이 생겨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신롬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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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한데... 재밌어... 당신의 길티플레져 영화는?
❣️Cinelab Curation❣️
여러분의 길티플레져 영화는 무엇인가요?
유치하지만.. 심장이 울리는 그런 영화요!
절대 안 볼 것 같았지만, 나도 모르게 이끌려 어느새 엔딩크레딧을 보게 되었던 영화들이 있지 않나요?
제게는 어릴 때 봤던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그랬는데요!
너무 유치해서 입을 틀어막고 보다가,
나중에 시리즈 마지막 편을 보고 나오는 길에는 너무 섭섭했던 거 있죠?😅
오늘은 이런 유치하고도 사랑스러운 영화들을 모아보았는데요🤍
여러분의 길티플레져 영화도 추천해 주세요!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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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없이 밀려오다 부딪히는 파도처럼. 빅 리틀 라이즈 (2017-2019)
이렇게 여성들의 연대를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 또 있을까. 매 화마다 등장하는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는 그들이 매번 마주하는 풍경이자, 순간들이고 때로는 이들을 한 곳으로 이끌어 위로해주기도 한다.
드라마 오프닝 장면부터 오랫동안 기억해두고 싶다. <빅 리틀 라이즈> 속 이들은 모두 '엄마'라는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데,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이들의 학교를 데려다 주기 위해 차를 모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클로즈업하며 스쳐 지나가는 표정을 담아낸다. 누군가에겐 놓치기 쉬운 일상의 일부분인 순간을 이렇게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드라마는 몬터레이에 사는 다섯 인물들(메들린, 제인, 셀레스트, 레나타, 보니) 속 관계의 매듭을 풀어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제목에서 짐작했듯이, 그들에게 '거짓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 또는 우정과 연대 그 자체이다. 이들 사이에는 '크고 작은 거짓말'들이 존재하고, 이를 대하는 각각의 다른 시선들을 따라가 보면 이들의 선택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시즌 1이 그들이 거짓말을 대하는 각자의 방식이라면, 시즌 2는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진실들을 마주하게 되는 그들의 선택이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이 다섯 인물이 지목되고, 과거 회상 방식으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되묻게 하며 시즌 1은 시작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진술은 이들 중 과연 누가 범인인지를 예측하는 데 있어 일종의 내기를 하는 듯하다. 다들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결코 누구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이 게임. 점점 사건에 가까워질수록 이들은 의심이 가는 행동들을 하며 걷잡을 수 없이 의심은 커진다. 시즌 1의 마지막화는 그동안의 늘어뜨린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가며 실마리를 잡고, 그렇기에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여운을 남긴다. 누구 하나가 단독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 함께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고, 더 이상의 불행을 막고, 자신을 가로막던 고리를 끊기 위해 대응했다. 속을 알 수 없는, 미궁의 인물이었던 보니가 직접적인 행동을 했던 것이 바로 <빅 리틀 라이즈>가 말하고 싶었던 바이다. 여성들의 시기와 질투보다는, 연대와 포용이 앞서는 순간들. 외부의 진술들이 그들을 내던지고 있을 때 누구보다 똘똘 뭉친 그들을,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그 순간의 시작은 어쩌면 1화에서 우연히 메들린을 도와주는 제인에서부터 이미 시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시즌 2 속 그들은 거짓말에 직면하고, 이로 인해 감당해야 할 것들을 떠안으며 혼란에 빠진다. 가정 폭력, 성폭행과 같은 과거의 트라우마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들 한구석에 자리 잡아 있고, 가끔은 갑작스럽게 일상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 또한 절대 아물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에 맞서는 태도를 보인다. 결국 양육 재판에서 승리하고, 다시 사랑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며 기쁨을 나누기도 한다. 언제나 그랬듯, 마지막까지 이들은 함께한다. 다 같이 경찰서로 가는 뒷모습을 비추며 우리들의 시선은 멈춘다.
무엇보다 극적인 '성장'이나 희망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 어딘가에 부딪히면 마구 부서지는 파도처럼, 그들은 수없이 무너짐과 갈등을 반복한다. 그렇지만 그들에겐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자신을 위해, 계속 나아간다. 우리가 늘 느끼고 지나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관계들을 담아낸, 섬세함과 온기가 가득한 작품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W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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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의 세상에 사랑을 담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다가온다. 친척이나 지인, 가족 중에서 돌아가시는 분이 있을 때 처음 경험하는 죽음은 때론 슬프고 때론 조용하다. 조금 가까웠던 사람의 죽음을 만나게 된다면, 슬픔과 처음 맞닥뜨리게 된다.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된 이후에는 상대방을 현실에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길게 남는다. 장례식을 통해 짧게나마 작별인사를 하지만, 더 이상 상대방의 반응은 들을 수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렇게 죽음은 아주 긴 이별이 된다.
여기에 특별한 AI프로그램이 있다. 죽음을 맞은 가족이나 지인의 디지털 데이터와 정보가 있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AI 프로그램 안에 그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준다. 만들어진 가족과 영상통화 형식을 통해 대화하고 소통을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 직전에 자신의 정보를 관련 회사에 보내 자신의 모습을 AI 프로그램 안에 만들어둔다. 장례식이라는 이별의 절차를 보내지만, 그 이후에도 가족들은 큰 상실감 없이 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다루는 영화가 바로 <원더랜드>다.
[첫 번째 감정] 엄마 바이리의 배려
바이리(탕웨이)는 불치병에 걸려 죽음 직전에 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될 자신의 딸을 걱정한다. 그 걱정은 결국 원더랜드라는 AI 서비스를 신청하게 만든다. 자신을 디지털화하는 그녀의 결정은 바로 딸을 배려한 것이었다. 직접 만나는 건 더 이상 할 수 없지만, 영상 통화를 통해 딸은 엄마와 계속 소통할 수 있다. 실제로 바이리의 죽음과 장례식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딸이 바이리와 영상 통화하는 장면은 실제 살아있는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딸을 위한 그 배려로 딸은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 바로 바이리의 엄마 화란(니나 파우)다. 그녀는 화면 속의 바이리를 진짜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를 하면서 진짜 딸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화란은 이미 딸의 죽음을 받아들인 상태고 개인적으로 장례를 치르고 난 이후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란에게는 AI로 만들어진 바이리가 아무리 딸과 똑같은 말투와 행동을 하고 있더라도 인정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원더랜드라는 AI 세상 속의 바이리는 생전의 그녀가 원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고고학자로서 유물을 탐사하는 장소에서 일을 하는데, 그런 모습을 자신의 딸에게도 보여주어 꿈을 키워주는 역할도 해주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죽음 직전 만들어낸 원더랜드의 세상은 모두 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대화를 하고,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주면서 그는 딸에게 무한한 사랑을 선사한다.
모든 진실이 딸에게 공개된 순간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적인 장면이 만들어진다. 딸은 그 사실을 생각보다 금방 받아들이고, 이내 그 상황에서 자신이 계속 엄마와 소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이 장면은 아직 어린 딸의 심리를 무척 현실감 있게 담은 장면이다. 딸은 화면 속 엄마에게 잘 때 책을 계속 읽어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 옆에 있던 바이리의 엄마 화란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역시 무척 좋은 장면이다. 화란은 화면 속 바이리를 그제야 비로소 딸로 인정한다. 그리고 딸이 죽은 이후의 슬픔을 그제야 터뜨린다.
[두 번째 감정] 연인 정인의 그리움
원더랜드에 자신이 그리워하는 존재를 넣은 다른 사람이 있다. 정인(수지)은 연인인 태주(박보검)를 원더랜드의 세계에 만들어 넣어두었다. 실제 태주는 사고로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있다. 매일 찾아가 자신의 연인을 보고 오지만 현실에서는 대화할 수가 없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 정인이 택한 건, 이별이 아니라 자신만의 태주를 AI로 만드는 것이었다. 혼자 남았다는 그리움은 정인을 원더랜드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세계와 접속하면서 정인은 자신이 가진 그리움을 잊어간다.
아침마다 정인을 깨워주는 AI 태주는 친절하고 밝다. 늘 웃는 얼굴로 우주비행사의 모습을 한 태주가 화면 속에 등장하면 정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해진다. 화면을 보며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같이 게임을 하기도 한다. 여느 연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비록 현실의 태주는 누워있지만 정인의 태주는 원더랜드의 세계 속에 이미 존재한다. 그렇게 정인은 현실의 태주와 점점 멀어진다.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태주는 진짜 태주의 모습과 진짜 똑같을까?
현실에서 결국 태주가 깨어나는 걸 본 정인은 원더랜드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아직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현실의 태주는 삶의 안정성을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듯, 여러 실수를 반복하면서 정인을 당황스럽게 한다. 하지만 AI에 만들어놓은 태주는 그렇지 않다. 정인이 원하는 정보를 알려주고, 자신의 기분에 맞춰 대해주는 존재다. 현실의 태주와 AI태주 사이의 괴리를 느낀 정인은 꽤 오랜 시간 동안 혼란스러워한다. 정인이 자신이 사랑하는 태주를 너무나 그리워해서 만들어낸 AI 태주는, 어쩌면 정인이 기억하는 태주의 좋은 면만 담긴 것이 아닐까.
[세 번째 감정] 원더랜드에 담긴 사랑
AI프로그램인 원더랜드는 아직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근미래에는 이런 서비스가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미 특정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가상 VR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영화 <원더랜드>의 설정은 충분히 현재의 우리들이 공감할 만한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원더랜드에 특정 인물을 넣어두는 것은 대부분 사랑 때문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혹은 곧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을 사랑해서, 그 존재를 AI로 만들어 프로그램 속에 넣고 시간이 날 때마다 평소처럼 대화를 해나간다. 그렇게 상대방을 보고 위안을 얻고 관계를 계속 이어나간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과한 욕심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이런 원더랜드와 같은 기술이 발전하여 실제로 실현 가능해진다면, 죽음은 완전한 이별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랑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다. 지금 현재 시점에 AI 와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를 던진다.
가족을 위해서, 연인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영화 속 사람들은 AI 세상 속에 자신을 넣는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서로 상대방의 사랑을 확인한다. 기술로 만들어진 사랑의 세상이 바로 원더랜드다. 원더랜드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때론 그 기술적인 것들이 과하게 느껴지지도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사랑은 영원히 이어진다. 영화는 각 인물들이 이 새로운 세계 때문에 겪게 되는 혼란과 고민을 세심하고 감성적으로 담았다.
영화 <원더랜드>는 다양한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특히 바이리 역을 맡은 탕웨이는 엄마로서 자신이 가진 감정을 극에 그대로 녹여 폭발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들보다 바이리의 서사가 특히 더 인상적이다. 여기에는 탕웨이와 바이리 엄마를 연기한 니나 파우의 연기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정인 역을 맡은 수지의 얼굴에선 이제 비로소 배우의 느낌이 나고, 정인의 감정이 널뛰는 모습을 잘 표현해 냈다.
무척 아름다움 화면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감성적으로 풍부한 느낌이 드는 영화음악을 사용해 원더랜드라는 새로운 세상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이 기술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 영화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은 이 시스템으로 인해 변화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은 긍정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다. 각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각각 따로 노는 느낌을 주지만, 적어도 바이리 가족의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단점을 상쇄할 힘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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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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